제 목: 궁극의 마스터 [1 회] - 프롤로그 - 인적이 아주 드문 깊은 산속, 울창한 수림은 자신 들만의 생존공간의 내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햇빛을 차단하여 어두움을 만들고, 대지 위에 얼기설기 그 모습을 드러낸 나무뿌리들은 은밀한 천연의 덫이 되어 행인들의 발걸음을 방해한다. 유 일한 통행로인 오솔길은 인적이 과연 있었나 싶게 숲으로 뒤덮여 지근한 거리에 가서야 겨우 알아볼 정도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오솔 길을 찾아 용케도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리는 인영 이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를 달려 왔는지 그 호흡 은 몹시도 거칠었다. "허억, 허억!" 연신 가쁘게 토해내는 인간이 만든 거친 숨소리는 신비한 자연의 소리에 불협화음이 되어 버렸고, 마 침내 깊은 산중의 고즈넉한 정적을 깨뜨려 버리는 불청객이 되고 말았다. 산중의 적막을 깨뜨려 버린 그 인영은 소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민망한 어린 꼬마였다. 이마에 서부터 송골송골 맺혀 흐르는 땀은 아이의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축축이 적시고, 이내 이마를 타고 미끄러지며 간간히 눈에 들어가 아이의 눈가를 찌 푸리게 만들었으며, 쿵딱쿵딱 거리는 심장은 아이의 한계를 넘어섰는지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아이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야 정상이건만, 죽은 자의 핏기 없는 얼굴처럼 몹시 창백했다. 마치 극도의 공 포심으로 인해 피의 순환이 정지되며, 안면이 얼어 버린 듯한 모습처럼. 넘어진 상태에서도 길 같지도 않은 그 산길을 필사적 으로 기어가는 아이의 등 뒤에 3 라키르(미터)가 넘는 거구의 몬스터가 포효의 일갈을 터뜨리며 따라오고 있 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격한 그 포효는 상대의 마 음을 옭아매는 포승줄이 되기도 하며, 자신의 존재를 크게 각인시키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한다. "크아아앙!" 아이는 기어가다 말고 날카로운 포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 괴물을 지척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온 몸이 지저분한 검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몸집의 그 괴물은 7 키르(센티미터)가 넘을 듯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뜩이며 흉물스럽게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아이는 기어가는 그 모습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부들부들 떨며 굳어 있던 안면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 이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혼자 산에 오른 것을 크게 후회했다. 그러나 그것은 때늦은 후회가 되고 말았다. 갑자 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졌다. 그 놈의 다람쥐만 아니었어도 하는 후회감이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지만, 앞에 있는 잔 혹한 몬스터는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모를뿐더러 알고 있어도 봐줄 위인이 아니었다. 어느새 검은 털복숭이 몬스터가 아이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흉악스럽고 무시무시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그러나 아이의 사고는 그것조 차 인식하지 못하고 혼란이라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검은 털복숭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캘캘대고 있었고, 잠시 후 자신의 먹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날카로운 손톱을 아이 쪽으로 이동시켰다. 순간 아이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황금빛 햇살에 번뜩이는 손톱이 자신의 목을 그으러 다가오는 데 누군들 공포를 느끼지 않겠는가! 아이는 괴수의 손톱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음과 동시에 막혀있던 목이 트이며 장내가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었을까? 아이는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시무시한 손톱에 목이 잘렸다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야 할 텐데, 자신은 울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미지의 힘에 의해 자신의 몸이 부양되고 있음을 느껴, 아이 특유의 호기심에 꼭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대기를 찢을 만큼 날카로운 외마디 괴성이 아이의 귓전을 강타했다. "꺄아아아아" 시커먼 공간과 시뻘건 공간의 조화. 그리고 그것에 어울리지 않는 하얗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아이의 시선에 잡혔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괴물이 그 큰 입을 쫘악 벌려 아이를 꿀꺽 하려는 장 면으로, 바로 그 장면이 아이의 시선에 잡혔던 것이었다. 아이 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뭐야? 내가 저 끔찍한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야?" 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도 아이는 마지막 남은 정신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애써 중얼거렸으며, 거의 본능적으로 괴물의 입속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가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을 거부하 고자 사지를 버둥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아이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 되어 있었고, 더 이상 커질 수 없 을 정도로 부릅떠져 있었다. 그러나 커다랗게 떠진 눈은 점점 그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이 자신의 몸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 실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공포로 인해 부릅떠져 있던 아이의 두 눈꺼풀을 지탱하고 있던 힘이 서서히 사라졌다. 감겨지는 아이의 두 눈에 뭔가 희끗하는 빛무리가 보였다 사라졌 으나 아이는 그것이 환상이라 여기며 의식을 잃었다. 아이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심을 감당키엔 너무나 연 약하고 가녀린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옆에는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운 은발의 사나이가 앉아있었고, 따뜻한 모닥불이 그들을 훈훈 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탁탁거리며 타오르던 모닥불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아이는 힘겹 게 눈을 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위해 부르르 떠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의 아이는 맑고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주 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몸이 이등분 된 검은 괴물이 보였다. 아이는 크게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좀 진정이 되었는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휴'하며 안도의 한숨 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 아이의 의도완 상관없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흑흑거리며 울던 아이는 점차적으로 '으앙'하며 아이 특유의 울음으로 울기 시작했다. 은발의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상대한 몬스터들 100마리를 상대 하는 것보다 앞에 있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 더욱 힘들다고 생각했다. 자신 앞에서 우는 아이라곤 몇 십 년 전의 아들뿐이었는데. 그렇다 보 니 사내는 묵묵히 아니 대책 없이 꼬마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 을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마음이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아이는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제 다 울었느냐?" 아이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얼굴을 보며 사내가 물었다. 아이는 앞 에 있는 사내가 얼굴 표정과 말은 비록 무뚝뚝해 보이지만, 가슴만은 참 으로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이 멋들어진 은발의 사내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은발의 사내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은 발의 사내의 입가엔 조각 같은 미소가 걸렸다. "허허, 예의가 무척 바른 아이구나. 그래 이제 너를 괴롭히던 무서운 괴 물은 사라졌으니깐 더 이상 무서워 할 필요 없단다." 은발의 사내는 아이의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의외의 말이 아이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그렇지 않으면 저기 저 못된 괴물이 어떻게 가만히 누워 있겠어요. 아저씨, 살려 주셔서 무지무지 감사해요. 근데 아저씨 정말 쎄시내요? 대단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가 있어요? 난 무서워서 도망가기 바빴는데 그것도 얼마 도망도 못가고......." 은발의 사내는 다시 한번 '허허'하며 실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 아이가 바로 조금 전까지 그렇게 벌벌 떨던 아이가 분명 맞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 지만, 사내의 입은 아이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건 말이다. 음....... 이 아저씨가 무술을 익혀서 그런 거란다." "그럼, 무술이란 거 익히면 아저씨처럼 저 못된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거예 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아이야! 진정 강한 것은 백절불굴의 강인한 정신력을 대변하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당당한 자세란다." 사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 자신의 생각으론 강하면 됐지, 무슨 자세가 필요한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은발의 사내는 볼을 통통하게 만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가 그렇게 귀여울 수 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귀여운 손주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아직까 지 찾아 가보지 못했었다. 자신의 무심함이 아이의 귀여운 모습에 비춰지자, 문득 손주들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참에 한번 찾아가봐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손주들이 재롱을 떠는 행복한 모습에 잠시 빠져있던 사내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을 느끼고는, 아쉽지만 상상의 나래에 마침표를 찍 어야 했다. "험험, 그래 어린 네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이야기 같구나. 간단히 말하마. 첫째, 어깨를 펴라. 둘째, 가슴을 내밀어라. 셋째, 당당해져라. 아무리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 자세를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있다면, 비록 지더라도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상대의 능력에 두려움을 가지고 포기하는 나약한 정신력이란다. 알겠니?"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 그러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입을 연다. "아, 알겠어요. 그러니깐 쫄지 마라. 이 말이죠?" 사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 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후후,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구나, 근데 쫄지 말란 말은 누구한테 배웠니?" 사내의 질문에 아이는 당당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형아한테요." ~~~~~~~~~~~~~~~~~~~~~~~~~~~~~~~~~~~~~~~~~~~~~~~~~~~~~~~~~~~~~~~~~~~~~~~~~~~~~~~~ 안녕하세요, 궁극의 마스터를 쓰는 황보세준입니다. 예전에 궁극의 마스터라는 제목 으로 소설을 썼던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도 똑같은 제목으로 씁니다. 그때는 중간에 글을 놓았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 회] 2화. 바이사카 시의 대장 올슈레이 진 1. "흐아암, 잘 잤다." 갈색 빛의 원목으로 만든 이층 침대 중 아래층에서 한 소년 이 몸을 일으키며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면서 연신 하품을 해 대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잠의 유혹을 떨쳐내었는지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 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기 시작했다. 잠시 후, 헐렁한 갈 색 티셔츠에 검은 바지로 갈아입은 소년은 코를 킁킁대며 맛 있는 냄새의 근원지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와, 엄마. 냄새가 죽여! 오늘 반찬은 뭐야?" 다크 블루빛 머리칼의 소년은 대뜸 주방에서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리오네에게 말했다. 아리오네는 소년의 아 침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아들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해 주었다. "진아,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뭘 해야 한다고 했지?" "하품!" "진아?" "헤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빠, 엄마. 그리고 형도 안녕히 잘 잤어?" 진의 장난에 아리오네가 약간 언성을 높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천연덕스럽게 진은 차례차례 식구들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하하, 진아 너 아침에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더라. 내가 몇 번이나 깨웠는데 꿈쩍도 안하더라." "헤헤, 그랬어?" 진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뒷머리를 긁적 이는 행동은 진이 멋쩍을 때나 할 말이 없을 때에 하는 행동이 었다. 리오스는 동생의 이러한 습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모른 척 넘기며 맛있는 아침밥을 나르는 아리오네를 돕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어이구, 우리 장남께서 이 엄마를 도우시려고. 호호, 근데 이 건 너희 아버지 담당인데......." 아리오네는 말끝을 흐리며 신문을 읽고 있는 유리온을 은근한 시 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에 덩달아 리오스의 시선도 유리온을 향하 게 되었다. 이에 진 역시 아빠를 바라보게 되고. 묵묵히 신문을 보고 있던 유리온은 모든 가족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자 순간 당황했다. 처음엔 모른척하며 시선을 회피하다 그 시선들이 너무나 따가웠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험험, 십 몇 년간 내 담당이었던 것을 이제는 리오스에게 물려줄 때도 되었지. 암, 그렇고 말고, 리오스도 이제 많이 컸고 그리고 교육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단 말이야..." 이참에 밥 당번을 아예 리오스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는 유리온이었다. 그러나 유리온의 어설픈 궤변에 놀아나기에는 리오 스는 너무나 총명했다. "안타깝지만 저는 도저히 아버지께서 십 몇 년간 자부심을 가지고 하신 일을 뺏을 수가 없네요. 무엇보다도 어머니께서 그것을 원치 않으실 테니까요." 리오스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땐 나름대로 반박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즉 '아리오네'란 단어가 리오스의 입에서 나오자 유리온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리온에게 있 어 '아리오네'라는 이름은 감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자, 이제 그만하고, 식사나 하자 구요. 다 식겠어요." 아리오네는 말을 하며 덜어먹을 그릇에 아리오네식 특제 스프를 담아 주었다. 사실 아리오네식 특제 스프는 그녀만의 독특한 조미료 배합으로 만든 스프였다. 약간은 달짝찌근 하면서도 은근한 맛이 일품인 그 스프는 이 집만의 자랑이기도 했다. 식탁 위에는 파리오게티의 집에서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침에 굽자마자 바로 사온 것 같았다. 네 식구는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입을 놀리고 있었다. 사랑으로 하나 된 가족이 아니면 도저히 연출할 수 없는 참으로 화기애애한 식탁 분 위기였다. "그래, 진아 아빠가 일전에 했던 말 다시 한번 생각해봤니?" 진은 유리온이 했던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인상이 저 절로 찌푸려졌다. 전에 확실한 대답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아버지가 참으로 답답하게 보였다. 진은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토해 내며 입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똑똑히 밝혔다. "아빠, 전에도 중등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잖아요. 그런 데 왜, 자꾸 이러시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의무교육인 초등 교육까지는 이 미 마쳤고, 저는 형처럼 공부로 대성할 인재도 못되고, 아무튼 아버지께서 는 누구보다 저를 잘 아시잖아요?" 한 번 정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을 가진 진이었기에 이번에도 어 김없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유리온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 고 말을 꺼내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결국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자식의 장래를 그 누구보다도 걱정하는 아버지로서의 유리온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밖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또 무 엇을 하며 다니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그였기에, 유리온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고 쓰라렸던 것이다. 올슈레이 진은 금년으로 13살을 맞이했다. 예전의 어떤 인연으로 인해 강 함을 동경하는 열혈소년이 바로 올슈레이 진이였던 것이다. 그는 토젠트 마을의 이른바 뒷골목 아이들의 대장이었다. 패거리들 대부분은 진보다 덩 치도 더 컸고, 나이도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인 정하였다. 사실 진은 체구나 힘에 있어, 13세 소년 이상의 특별히 뛰어난 점이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40여명이라는 패거리의 대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빠른 몸놀림과 대담한 행동력, 그리고 본능적인 격투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은 동네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돈을 뜯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질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혼내주며, 힘이 약한 아이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편에 늘 서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 세계에선 협객으로까지 비췰 진이었겠지만, 부모인 유 리온의 입장에서는 진의 모든 행위가 소영웅주의에 빠진 한때의 철없는 장 난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나이가 어리고, 아직 철이 없어 그 러려니 하고 가볍게들 생각하고 이해를 하겠지만, 약관 스무살이 되었을 때까지도 이런 생활이 반복이 된다면, 인생 선배로서 유니온이 보기에도 진 의 인생은 시정잡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 손가락질 받고 질시를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크고, 높은 뜻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하여야 할 황금 같은 시간 을 저렇게 헛되이 보내고 있는 진을 바라보는 유니온의 마음은 참으로 답답 했다. 유리온은 차라리 진이 기사아카데미에라도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러나 거기엔 크나큰 장애가 있었다. 바로 필기시험이었는데, 기사가 되기 위 해서는 최소한의 지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제국 내 여러 기사아카 데미의 요구사항이었던 것이다. 그 말은 곧 올슈레이 진이 기사아카데미에 갈 수 없다는 잔혹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유리온의 심정이 오죽 답답 하고 기가 막히겠는가! 첫째인 리오스야 워낙 공부를 잘하니 걱정 따윈 할 필요가 없겠지만 오직 이놈의 진이 문제였던 것이다. 유리온이 해결책 없는 걱정에 빠져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아리오네가 한 마디 했다. "여보, 스프 다 식겠어요. 그리고 진의 고집 잘 알잖아요. 걱정은 나중에 하기 로 해요." 유리온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빵과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진 역시 유리온 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약간의 장애는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진의 생각이었기에, 결코 물러설 수 없었 다. 뜨거운 스프와 따뜻한 빵으로 아침을 해치운 진은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때 아리오네가 진의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진아, 오늘도 싸우러 나가는 거니?" 걱정 어린 목소리가 아리오네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집에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인데 왜 싸움 따위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전처럼 외출금지령을 내리면 이층에서 뛰어 내려 도망을 칠 테고, 뛰어내리다 다칠 수도 있으니. 거기다 강압적인 명령과 매 질은 오히려 진의 반발심만 키웠었다. 지금에야 많이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얼마 나 심했던가! 아리오네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앞으로 점점 좋아지겠지 하는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며 서투른 변명을 하는 아들을 보았다. "예? 하하, 안 싸울 수도 있어요. 아마......" 또 다시 뒷머리를 긁적인다. 멋쩍고 자신 없는가 보다. 그렇다고 '엄마, 나 싸우 고 올게요.'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힘든 부자(父子)요, 모자(母子)사이였다. 진은 걱정 어린 아리오네의 눈길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유리온은 아리오네의 어 깨위에 손을 얹으며 "여보, 미리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진을 믿어봅시다."라고 말하 며 밖으로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리오스는 무엇을 그리 골똘 히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이며 있다가 간혹 고개를 들어 지성으로 가득 찬 눈빛을 번 뜩이고 있었다. ~~~~~~~~~~~~~~~~~~~~~~~~~~~~~~~~~~~~~~~~~~~~~~~~~~~~~~~~~~~~~~~~~~~~~~~~~~~~~~~~ 일생일대의 연참을 위하여 화이팅~~~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 회] 3화. 바이사카 시의 대장 올슈레이 진 2.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공터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40여 명 쯤 될까? 대부분이 앳된 얼굴들이었는데 간혹,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식상한 면상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40여명의 아이들은 한 곳을 기점으로 빙 둘러싸는 형태로 서 있 었다. 보통 저 나이 때 애들이 한, 둘만 모여도 시끌벅적 할 텐 데, 이상하게 그들의 주변은 한적한 공터만큼이나 조용했다.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바라보는 곳에는 시장 통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크 블루빛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두 눈을 감고 서 있는 올슈레이 진이 있었다. 진은 비장감마저 들 정도의 분위기와 자신만을 응시하는 따가운 시 선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감았던 눈을 뜨고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번에 싸워야 할 상대는 자신이 생각해도 벅찬 상대였기 에 나름대로 마음을 다 잡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차분히 심호 흡을 한 후, 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진에게로 고정 된 상태였기에 그의 행동에 따라 그들의 시선도 따라 이동했다. '우씨, 무슨 말을 해야 멋있을까?' 진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 작했다. 되도록 근엄하면서도 대장다운 발언을 하고 싶었다. 물론 얼 굴은 잔뜩 굳어져 심각한 상태를 만들고 있었다. 출정식을 앞둔 대장 군의 진지함이랄까? 어쨌든 대상이 다르긴 해도 진 역시 분명 진지했 다. 그것이 겉멋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40여명의 아이들 중에 한 아이의 목울 대가 움직이며 꿀꺽하는 침 넘어 가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을 기점으 로 해서 진은 결연한 눈빛을 빛내며 비장한 음성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한마디씩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우린 옆 마을의 사악한 괴수와 싸우러 떠나야 한다. 그 사악한 괴수 는 특히 우리같이 선량한 아이들을 괴롭혔다.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자! 우리 모두 저 사악한 괴수를 무찌르러 옆 마을로 떠나자!" 그 나이 때, 아이 특유의 치기와 유치함으로 포장된 진의 발언은 한 순 간 군중(群衆)들의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고, 잠시 후, 웃음을 참지 못하 여 부들부들 떨던 몇몇 아이들이 등을 돌려 킥킥대기 시작했다.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전염병이라고 했던가? 킥킥거리던 아이들의 웃음 이 기폭제가 되어 좌중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자신이 연출할 수 있는 최상의 폼과 자신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멋있는 연설로 좌중을 충분히 사로잡았다고 생각했던 진은 아이들이 웃기 시작하자 '어, 이게 아닌데'하며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진이 무대를 내려 간다면 아마 진의 역할은 분위기 메이커정도로 인식 될 것이다. 그러나 진 은 분명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대장이었다. "웃지 마! 야, 너 이정도 말이라도 할 수 있어?" 진은 고함을 꽥지르며 공부완 담쌓은 슈벵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히 슈벵크는 고개를 내저었고 좌중은 다시 한번 웃음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해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격에 전혀 맞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잠시 광대놀음을 했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 무나 우스꽝스러웠기에 한참동안 신나게 웃어 제꼈다. 진 역시 선천적으로 걱정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체질이기에 이내 신나게 웃었다. '걱정 따윈 때려치우자. 내가 언제부터 이런 자잘한 것에 목숨 걸고 살았 다고. 크크, 좋았어. 오늘 신나게 한 번 몸을 풀어보는 거야!' 진은 싱긋이 미소 지으며, 무언의 말을 뒤로 남긴 채 즉각적인 행동으로 들 어갔다. 진의 몸은 서서히 공터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40여명 의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음은 기정사실이었다. 파아란 하늘에서 따스한 한줄기 태양빛이 '그들의 행도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듯 찬란한 빛을 진의 일행에게 뿌리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의 주인인 라크리나 제국의 서쪽 변두리 지방의 바이사카 시는 토 젠트 마을과 파요르 마을로 나뉘어 있다. 토젠트 마을과 파요르 마을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땅따먹기라도 하듯 정확히 두 마을이 구분 되어 있었다. 이것은 두 마을 사이를 가로 지르고 있는 드요프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기 때 문이었다. 드요프 강 주변은 사방이 탁 트였고, 길지 않은 잔디들로 뒤덮여 아 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다. 그 두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명의 물줄기이 기도한 드요프 강은 이래저래 사람들의 방문을 많이 받는 강이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 약 100여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드요프 강 상류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푹신한 잔디로 뒤덮인 땅을 굳건 히 밟고 있었다. 이들은 두 마을을 정확히 구분지어 흐르는 드요프 강이 그들 사이에 있기라도 한 듯,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두 무리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에서 비롯된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딱히 살기(殺氣)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약간은 부족한 묘한 기운이 그들 주위를 맴돌 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작은 실눈에 힘을 주는 몇몇 아이들의 그 작은 눈이 아예 살 속에 파 묻혀 버렸지만 누구하나 웃지 않았다. 또한 어떤 아이는 제법 매워 보이는 주먹 을 상대를 향해 꽉 쥐어 보이며 무언의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비 록 무언의 위협을 가할지언정 누구하나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았다. 대신 그들 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상시키 는 모습이 바로 이들의 대치상태였던 것이다. 그들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된 대치상태가 주위를 진 정시키는 듯, 침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무리는 우두머리인 듯한 한 사람씩 을 보호하는 형태로 서 있었다. 우두머리들의 눈싸움과 기세 싸움 역시 장난이 아니었지만, 그전에 이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황당함과 김이 팍 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눈에 봐도 심한 나이차와 키를 비롯한 신체적 차이 는 어른이 아이를 골려 주려는 것 이상으론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약 30 키르(센티미터)가 넘는 키 차이는 상대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만 작은 사람의 기세만큼은 더 없이 굳건하고 강렬했기에 절대 만만히 볼 수 없었다. "눈싸움은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떨까? 몸이 찌뿌둥해서 말이지. 난 계집애들처럼 째려본다거나 노려보는 건 영 성미에 맞지 않거든. 듣자하니 한 싸움 한다던데 어 디 그 실력이나 한 번 보자구!" 스테판은 자신의 190 키르(센티미터)가 넘는 덩치를 앞세우며 말했다. 진은 스테 판의 그 산만한 거대한 덩치에 일시 주눅이 들며,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음 을 알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의도적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말했다. "나도 눈싸움은 좋아하지 않아. 근데 듣자하니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난 걸로 아 는데, 어이, 그렇게도 할일이 없는가 보지? 내가 일자리라도 주선해줄까?" 진의 놀리는 듯한 말에 욱하는 성미가 이는 스테판이었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밟아 버리면 된다는 생각에, 평소에 있지도 않던 자제심이 생겼다. 그러자 상대의 말이 유치한 말놀음으로 보이고, 여유로운 자세로 상대를 대할 수 있었다. "자자, 어린애도 아니고. 하하, 아니지. 넌 충분히 어리지. 이거 미안하구먼, 몰 라봐서 말이야. 계집애같이 징징대는 소린 여기까지 하고 어서 시작해보자고." 스테판은 말을 하며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스테판이 자세를 취하자 두 무리는 원 을 만들 듯 두 사람을 빙 둘러싸, 두 사람이 싸우기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스테판이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진의 주위를 돌며 허점을 찾았다. 그런 그의 움 직임은 마치 태산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위압감을 주었고, 그의 눈빛은 먹이 를 노리는 사자의 그것과 같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에 알 수 없는 위화감 을 느낀 진이 보이지 않게 심호흡을 하며 불안감을 날려버리려 했다. 진은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앞으로 내밀었다. 이런 그의 동작 에는 내민 손으로는 거리를 재며, 허리의 주먹으로 필살의 일격을 날리겠다는 의 지가 담겨있음을 뜻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태풍전야의 고요함처럼 장내를 지배했 다. 구경꾼들의 침 삼키는 소리까지도 극도로 긴장한 그들에겐 들리는 듯했다. 그 러나 두 사람은 장내의 소음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 먼저 틈을 보이면 당한 다 는 것을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대의 틈을 찾기 위해 눈을 빛내며 대치한지가 꽤 되었을 때, 구경꾼들의 입에서 조금씩 짜증스런 불만의 소리가 나왔다. 스테판의 눈빛은 사자의 서슬 퍼런 안광과 닮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피식하 는 미소가 사나운 눈빛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의 입가에 걸렸다. 그리고 스테판이 지루한 대치상태를 끝내기 위해 먼저 몸을 움직였다. 스테판은 진에게로 맹렬하게 대쉬해 들어갔다.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동작을 보 이는 그는 동시에 주먹을 허리에 겨눈 자세로 가차 없이 날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진은 녀석이 가까이 이르지도 않았지만, 그 기세에 휘말리면 본능적으로 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잘못하면 한 방에 끝장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뒤로 물러서면 더욱 맹렬한 공격에 휘말릴 거야. 그렇다면 남은 길은?' 생각은 찰나였고, 행동은 빨랐다. 스테판의 주먹이 육박해오자 진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어 갔다. 순간 스테판의 주먹이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미 진은 그의 명치에 주먹을 박아 넣고 있는 상태였다. 퍽! 둔탁한 격타음이 울렸다. 그러나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될 신음소리 내지는 비 명소리가 없었다. 진은 순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주먹이 꽂혀 있는 스테판의 명치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려는데, 등짝에서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커헉!" 스테판의 팔꿈치가 연속으로 진의 등짝을 작렬했다. 순간 그는 숨통이 막혀오는 듯했다. 그러나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진은 등의 통증 때문에 정신이 흐릿해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눈을 빛내며 기회를 노리 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순간이라는 기회가 왔다. 스테판은 진의 등짝을 후려치다 잠시 숨도 고를 겸, 공격을 멈추고 있었다. 그 순간 진 의 무릎이 스테판의 낭심을 걷어 올렸다. "쿠헉!" 스테판은 불의의 일격이 너무도 강렬해 그도 모르게 커다란 상체가 숙여졌다. 그 틈을 탄 진이 본능적으로 머리로 그의 턱을 들이박아 버렸다. "크흑!" 스테판은 한손으로 턱을 어루만지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낭심을 가리며 엉거주춤만 동 작으로 뒤로 물러섰다. 이에 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스테판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주먹을 휘둘렀다. 진은 눈앞에 커다란 팔뚝이 나타나자 다급히 팔로 몸을 방어했으나, 스테판의 힘이 대단 한지라 어쩔 수 없이 뒤쪽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방어한 팔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지며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에 어쩔 수 없이 진은 몸을 둥글게 해서 충격을 등으로 흡수했다. 더구나 바닥 또한 단단하지 않은 푹신푹신한 풀밭이라 떨어질 때의 충 격은 없었다. 하지만 진의 팔은 순식간에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나마 갈색 티셔츠 속에 가려져 있어 스테판이 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진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이 아 직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가에 미소까지 걸며 날아 갔던 거리를 좁혀나갔다. 속으로는 고통으로 인하여 온갖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겉 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범하진 않았다. 이는 진이 수많은 싸움을 통해 체득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지게 된다.'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비록 그 통증이 너무나 극심 하여 얼굴이 약간 찌푸려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았다. "크흑, 이 생쥐 같은 녀석이 비열한 술수만 배워갖고." 스테판은 턱과 남자에게 가장 소중한 부분에서 올라오는 아련한 통증 때문에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흉포해져 있었다. 한편 진은 자신과 스테판의 힘의 차이가 너무도 극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쉽사리 접 근하지 못하고, 그의 주위를 빙빙 돌며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스테판은 진이 자신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 매우 짜증났지만, 상대에게 측면을 빼 앗기지 않으려고 작은 원을 그리며 진의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대치 상태 가 오래되자 주위에서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스테판이 육중한 몸에 걸맞지 않게 날쌘 몸동작으로 진을 향해 돌진했다. 진은 스테판이 돌진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해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그의 몇 발짝은 스테판의 한 발자국 거리밖에 되지 않았기에 금세 따라잡혀 버렸다. 스테판은 그의 공격범위 내에 진이 들어오자 사정없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몇 번 의 공방이 오간지라 진은 어렵지 않게 스테판의 주먹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테 판의 주먹의 위력이 대단한지라 진은 귀가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진은 저번처럼 그의 몸 안으로 파고들까 생각하다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스테판 의 옆으로 돌아나갔다. 스테판은 진이 공격을 하지 않자, 자신에게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공 격은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일변도였다. 진은 한 방이라도 맞으면 싸움에서 진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섭게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는 스테판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진은 등으로 흐르는 식은땀에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을 부정하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강렬한 외침을 토해냈다. "그 주먹으로 어디 파리 한 마리나 잡겠냐?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원." 진의 외침에 스테판은 불같이 화를 내며 주먹과 다리에 힘을 더 실었으나, 그럴수록 동작만 커질 뿐, 정확도는 훨씬 떨어졌다. 그렇다 보니 진은 순간순간 틈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놓칠 진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의 공격은 스테판에게 별다른 타격 을 주지 못했다. 이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스테판은 수비는 아예 무시하고 더욱더 광 포하게 진을 몰아 부치기 시작했다. 풍차가 돌아가듯이 사방으로 손발을 날리는 스테판의 공격은 분명 넓은 범위를 수용 할 수 있는 공격 기법이었다. 이것은 긴 팔에, 긴 다리를 가진 스테판만이 구사할 수 있는 풍차기술로써, 짧은 팔, 짧은 다리를 가진 진은 접근하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은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하며 시간을 벌었다. 싸움을 할 때,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체력은 급격한 속도 로 감소한다. 스테판 역시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얄미운 진 때문 에 많은 체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화가 치밀고 짜증이 나는 스테판 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아! 쥐새끼 마냥 도망만 치지 말고 맞서 싸우잔 말이다. 내 주먹 이 무서운 거냐? 크하하하, 그럼 애시 당초 나오질 말던가. 엄마 젖이나 빨아먹고 있 지, 여긴 왜 나왔냐?" 스테판의 노골적인 비난에 진의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저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다면 올슈레이 진이 아니다.' 진의 패거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추측은 불행히도 정확히 맞아 떨어 졌다. "시꺼! 너 내가 말하는데 어디서 키만 멀대 같이 커가지고 잘난 체 하지 말란 말이 야. 너,너……. 죽었쓰!" 한껏 달아오른 얼굴을 빳빳이 들어 스테판을 노려보는 진의 모습은 사나운 맹수라기 보단 귀여운 동물이 성을 내는 듯했다. 진은 무턱대고 돌진했다. 그러나 금방 뒤로 튕겨 나갔다. 스테판의 손짓 한 번에 뒤로 밀린 것이다. 순간 진의 자세가 무너졌다. 다리가 휘청거리며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테판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깨 를 뒤로 젖히며 온 힘을 주먹에 모아 뻗었다. 진은 자세를 잃은 것도 모자라 스테판의 공격이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하고 섣불리 돌격한 것이 허점을 노출한 꼴이 되었기에 진은 정말 후회막급이었다. 이번 공격은 아 무리 생각해도 피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진은 스테판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 을 강타할 순간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위급한 순간,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예전에 형이 했던 말이 번쩍하고 뇌리를 스쳤다. '내가 왜 공부를 잘하냐고? 후후, 열심히 하니깐 잘하지. 네가 만약 내가 하는 만큼만 공부하면 아마 나보다 나을 걸? 하하…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음…… 그건 말 이지. 공부를 할 때 집중해서 하면 돼. 집중의 힘이 인간이 가진 무한한 잠재성을 깨어 나게 하거든!' '집중'이라는 단어가 진의 뇌리를 꿰뚫고 지나감과 동시에 자포자기했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그러나 스테판의 주먹은 벌써 진의 얼굴 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진은 스테판의 커다란 주먹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엔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다. 오직 하나! 스테판의 주먹만이 진의 동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순간 진의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일어나며, 그의 몸은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 며 흔들거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스테판의 주먹이 진의 얼굴을 비켜나가며 허공을 쳐 버렸다. 흔들거렸던 것이 한 때의 꿈이었던 것 같이 진의 몸은 빠른 속도로 스테판의 몸쪽으로 파 고 들어갔다. 스테판은 예의 왼팔을 휘둘러 진의 돌격을 막으려했다. 그러나 진은 왼팔의 장애도 슬쩍 피하며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내딛었던 스테판의 무릎을 밟고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잠시 후,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킨 진의 발끝이 공기를 가르며 스테판의 관 자놀이에 박혀버렸다. 거기에 더해 진은 관자놀이를 찬 발을 축으로 해서 다시 한번 몸에 회전을 걸어 목 뒷부분을 가격했다. 공중에서 무리한 동작을 연속으로 펼친 진의 몸은 중심을 잃고 풀밭위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스테판의 무릎이 꺾이며 쿵하는 소리를 냈고, 향긋한 풀내음을 들이마시며 진의 고 개가 들려졌을 땐, 이미 스테판의 육중한 몸은 까칠까칠한 풀밭위로 쓰러진 후였다. 한 순간의 정적은 말없이 찾아왔고, 완전치 못한 정적은 너무나 쉽게 깨졌다. 거센 환호 성에 의해서 말이다. "와아아아, 이겼다. 이겼어!" "저, 거인 놈을 진이 기어코 쓰러뜨렸어!" 진과 스테판을 둘러싸고 있던 원의 반이 들썩이며 함성과 함께 승리의 외침을 울렸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새 모여들었는지, 진의 주변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패싸움에서 대장을 지키려는 갸륵한 마음씨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리 고 그들은 강렬한 눈빛을 파요르 마을 아이들에게 쏘아 보냈는데, 그들의 서슬 퍼런 눈빛에 우르르 달려들려던 파요르 마을 아이들이 움찔했다. 그런 파요르 마을 아이들 의 모습을 보며 토젠트 마을 아이들은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뿌듯함을 맛보았다. 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을 물리치며 앞으로 나섰는데, 스테판은 아직도 기 절한 상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진은 그런 스테판을 힐끔 쳐다 본 후, 한 발 내딛으며 말했다. "이번 싸움은 알고 있다시피 너희들이 우리 마을아이를 괴롭힌 데서 시작됐어. 어찌 됐든 결투의 승자는 나, 올슈레이 진이니깐 너희들이 약속을 지킬 차례야. 약속대로 너희들이 돈을 뜯고 괴롭힌 우리 마을아이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사과해야해! 그리고 너희들 역시 나를 대장으로 삼아야 돼! 왜? 불만 있어?" 진의 말을 듣고 있던 파요르 마을 아이들은 강한 반발심을 있는 대로 노출시키며 불 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진이 마지막 말 "불만 있어?"를 내뱉으며 은근히 주먹을 움켜쥐자, 그들의 불만은 봄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 괴물 같은 스테판을 이긴 상대를 자신들이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던 것 이다. 결국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가장 현명한 결단이라 말할 수 있는 진의 수하로 들어가기로 했다. 진은 밝게 웃으며 기분 좋은 소리를 흘렸다. "자, 몸도 풀었고 하니, 밥 먹고 다시 모이자!" 아닌 게 아니라,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점심시간임을 알리고 있었다. 진은 100여 명의 아이들을 해산시키고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의 발길을 잠시 멈칫거리게 만드는 음성이 들렸는데, 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뱉듯이 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저, 저기 스테판은 어떻게 하지?" "어? 아, 정신 차리도록 강가에 던지고 가!" 진의 모습은 어느새 드요프 강을 건너 토젠트 마을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뒤 를 40여명의 아이들이 따르고 있었다. 말을 꺼냈던 금발의 소년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아이들에게 고개 짓을 했다. 파요르 마을의 아이들도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있을 때, 드요프 강물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는 스테판은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그런 그는 최소한 숨이라도 쉴 수 있게 발목까지도 차지 않는 얕은 강가에 던져 놓은 금발의 소년과 그 일행에게 나중에 감사의 한 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 하아, 으음...실제적으로 나오는 첫번째 전투씬이군요..으음..많이 봐주세요..헤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 회] 4화. 바이사카 시의 대장 올슈레이 진 3. "앗, 따가워! 으으으!" 소매를 걷어 올리자 진의 팔뚝엔 낙인을 찍듯 시퍼런 멍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오늘 결투의 자랑스런 훈장이었다. 진은 퉁퉁 부어오른 시퍼런 팔뚝에 빨간 약을 바르고 있는 리오스에게 투정어린 신음성을 토해냈다. 한편 약을 바르던 리오스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갖은 호들갑을 다 떠는 동생 이 마냥 귀엽게 느껴졌다. 밖에선 진이 패거리의 두목이라는 둥, 토젠트 마을의 대장이라는 둥, 말이 많지만 자신에게는 어디까지나 철없는 말썽꾸러기 동생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진이 이러한 비생산적인 생활을 청산했으면 하는 것이 리오스 의 간절한 바램이었다. "형! 오늘 싸운 녀석은 스테판이라는 아주 큰 놈이었어! 근데 내가 그 녀석을 요렇게 저렇게 해서 때려 눕혔어. 하하, 형이 봐도 나 강해진 거 분명 맞지?" 빨간 약을 다 바르는 것이 끝나자,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리오 스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싸움을 리얼하게 보여주려는지 몸까 지 움직여 가며, 그때 그 상황을 생생히 재현해 주고 있었다. 진의 그러한 행동은 마치 어린꼬마가 엄마에게 칭찬이라도 기 대하는 듯 재롱떠는 모습이었고, 그런 동생의 모습이 너무 귀 여워 리오스의 입가에는 다시 한번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 러나 여기서 진이 기대하는 칭찬이라는 독을 주게 된다면, 진 의 장래가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공산이 매우 컸다. 리오스는 검은 철테 안경을 한 손으로 매만지며 입을 떼었다. 그 목소리에는 진지함과 엄숙함이 서려 있었다. "진아, 솔직히 말해서 너는 강한 편은 아니야. 얼마 전, 제국 전역에 있는 하이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대도시에 간 적이 있었잖아. 그 때, 나는 네가 생각도 할 수 없는 강한 사람 들을 보았어! 더군다나 그들의 싸움은 너희들이 치고 박고하는 단순한 그저 그런 싸움이 아니라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싸 움이었어! 알겠어? 네가 하고 있는 그런 싸움은 너를 그저 그런 삼류 싸움꾼으로 밖에 만들지 못해!" 리오스의 조금은 냉정하다 싶은 비판에 진의 들뜬 마음은 갑자기 식어지며 진의 머리는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이 하고 있는 싸움들이 결국엔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시정잡배로 가는 길이라 는 것이 진에게 있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기 에 이때까지 기분 좋았던 모든 감정들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 다. 예전에 자신을 구해줬던 아저씨처럼 되고 싶었기에 싸우고 또 싸워 나름대로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 이다. 비록 리오스의 주관적인 의견이기는 했지만, 진은 형의 말 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을 만큼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형의 말이었기에 진은 리오스의 말을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다. 진은 갑작스런 혼란으로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함께 느꼈다. 머리에 손을 얹으며 생각에 잠기는 진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 간이 지난 뒤였다. 리오스는 진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었기에 당황스러워 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리오스가 아는 진이라면 곧 정신을 차리며 다른 대안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 다도 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리오스였기에 가능한 행동이 었다. 아니나 다를까 침중한 기색이던 진의 얼굴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 했다. "형이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아마도 나름대로의 대안을 가지고 있 어서겠지? 내가 아는 올슈레이 리오스는 함부로 입을 여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결론으로 마음이 정리되자, 진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웃음이 자연스레 입가에 걸렸다. 리오스도 지금까지의 심각한 표정을 고 치며 본래의 신뢰감을 주는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후후, 네 말대로 나한테 생각이 있긴 해! 그전에 한 가지! 아버 지야 원래 일하러 나가셨으니 없다 치더라도 어머니는 어디 가셨 을까?" 진은 그에게 불의(不意)의 두통을 선사한 독에 대한 해독약을 기 대했었건만 갑자기 "엄마가 어디에 가셨을까?"라는 물음이나 던 지다니 한 마디로 황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문답식의 질문을 진 의 딱딱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능청을 떨까?'하며 생각 하는 것이 진이 사고 할 수 있는 한계였다. 궁리(窮理)에 궁리(窮理)를 거듭해도 떠오르는 것은 없고, 머리만 다시 아파오자 진의 목청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울려 버렸 다. "에이. 몰라. 형! 도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후후, 네가 알거라곤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물어봐?" "그냥, 혹시나 하면서 물어 본거지. 킥킥!" 점점 이야기의 방향이 자신을 놀리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 진의 몸은 확실히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타입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쉬이익! 진의 주먹이 자신의 의사완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리오스를 향해 뻗어졌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말이 증명하듯 진의 주 먹은 힘을 뺀 목적 없는 내지름이었고, 리오스 또한 가벼운 회피동 작으로 진의 주먹을 피하는 시늉을 했다. 리오스의 몸을 스치지도 못하고 허공을 때리는 진의 주먹은 뭐가 그리도 기쁜지 허공에서 가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하하, 말 할께! 이거 동생 무서워서 장난이나 치겠냐?" 리오스는 끝까지 장난을 치려다, 진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것을 보 며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험험, 내가 조금 전에 왜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시느냐고 물었냐 하 면, 좋은 소식이 있어 그것을 이웃들에게 알리려고 나가셨단 말이야." "무슨 말?" 진의 의문에 가득 찬 표정을 뒤로 하고 리오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전에 하이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한 입학시험을 치른 적이 있 잖아. 오늘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어!" 태연한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리오스의 목소리는 흥분된 감정으로 인 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역시 크게 뜨여 졌고, 얼마나 놀랐는지 '어, 어!'하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 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진은 너무나 기뻐 입가가 서서히 벌어 진다 싶더니 날듯이 다가와 리오스를 번쩍 들어올렸다. 진은 너무도 흥분하여 자신보다 십여 키르(센티미터)나 큰 리오스를 번쩍 들어 올 리며 수없이 외쳤다. "우리 형, 만세!" 진의 감동은 그만큼 크고 벅찬 것이었다. 리오스가 그곳에 입학하기 위 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옆에서 줄곧 지켜봐온 진이었기에, 그 감동은 마치 자신이 합격한 것과 같았다. 드넓은 제국의 영토에는 십대 도시가 있었다. 십대 도시는 이미 도시라 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광활했기에 작은 제국이라 일컬어 질 정 도였고, 실상 제국 변방에 있는 작은 왕국들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 십대 도시는 각 지방의 고유한 학문과 인재를 계발하고 발굴하기 위 해 하이 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한 흐름과 더불어 본래 취지는 빛이 바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지 배계층의 엘리트 양성코스로 변질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국내에 존재 하는 열개의 하이 아카데미가 무기력하게 지배계층의 자제들만 받아 들 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지배계층 자제들의 입학은 거대한 재정적 후원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들이 기부한 돈은 장차 제국 을 이끌어 나갈 진정한 인재들에게 재투자되었다. 진정한 인재들을 뽑기 위해 실시되는 입학시험은 매년 엄청난 경쟁률 속 에 치러졌고, 그러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사람들 중에 올슈레이 리오 스라는 이름이 존재함은 그 역시 진정한 천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었다. 진은 리오스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리오스는 현기증을 느껴 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진아, 다 좋은데 좀 어지러워!" 진은 너무나 기쁜 소식에 취해 무아지경(無我地境)속에서 형을 정신없이 돌리다가 리오스의 힘들어하는 음성을 듣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진은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는 리오스를 볼 수 있었다. 이에 깜 짝 놀란 진은 두 손을 놓게 되었고, 이어 '으악'하는 비명이 울리며 쿠당탕이라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이에 놀란 진이 얼른 다가가 구석에 처박힌 리오스의 몸을 일으켰다. "형, 미안해 내가 너무 기뻐서 그만." "괜찮아... 으읍... 잠깐만." "웅!"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장내의 분위기가 급박한 반전을 보이고 있었다. 리오스는 진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잠시간의 여유를 두고 리오스는 본래의 궤도로 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후우, 말 한번 하기 정말 어렵네. 진아 너도 좀 진정하고 의자에 앉아 봐라. 그래, 내가 보기에는 지금 넌 분명 우물 안 개구리야! 좀더 큰 세 상에 나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해! 네가 꿈에도 그리는 그 은 발의 아저씨처럼 되고 싶으면 말이지." "알고 있어. 그렇지만 형도 말했듯이 난 동네에서 싸움이나 하고 이런 거 밖에 몰라. 사실 형이 말하기 전까진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아저씨의 수준에 다가갈 수 있을 꺼라 생각했거든." "그러니깐 내가 방법을 제시해 주겠다는 거 아니겠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진짜배기니깐 잘 들어! 하이 아카데미에는 대부분 잘 사 는 사람들이 다녀. 그러다 보니깐, 의례(依例)적으로 입학생들의 편의 를 제공하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어. 입학자들 대부분이 편안한 생활을 누려왔었기에 하이 아카데미에 와서도 그러한 편의들을 누리려 하다보 니 생기게 된 거야. 처음에는 하이 아카데미 측에서야 당연히 그들에게 시종들을 제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기도 뭐 했어. 그래서 결국 입학자들 집안에서 시종 자격으로 한 사람 을 데리고 오는 것을 허용하기로 한거야. 지금에 와서는 조금 전에도 말 한 것 같이 제도로 굳어 졌고 말이지. 그들이 비록 보호자 내지는 시종 자격으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주인의 안전도 책임져야 하기 에 실력만큼은 확실한거지." 진은 리오스의 긴 말에 지루함을 느꼈다. 자신을 아마도 시종 자격으로 하이 아카데미에 데려 가려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 닌가? 주위의 시종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자신이 강해지는 것은 아 니지 않은가? 진의 강함에 대한 철학은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였기 에 리오스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거기 간다고 해서, 뭐가 변하는 건데? 여기나 거기나... 장소만 변할 뿐이잖아!" 리오스는 진이 많이도 참았다고 생각했다. 진의 부쩍 늘은 인내심에 흐 뭇함을 느끼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리오스였다. "뭐가 변하냐고? 변하지, 암. 그곳은 말 그대로 제국의 중심지 중 한 곳 이잖아.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냐? 더군다나 너에 대한 지원도 장학제도에 포함되어 있어, 돈 걱정은 할 필 요도 없고." "좋아, 모든 것이 좋다고 쳐! 하지만 난 강해지고 싶다고. 그냥 강한 사람들을 멀뚱히 쳐다보려고 거기 가려는 게 아니라고. 알겠어?" 진은 믿었던 리오스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진의 머릿속은 강함에 대 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걸 모를 리 없는 리오스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만 나오니 야속할 뿐이었다. "엉!" 그러나 그런 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오스의 대답은 뜻이 모호했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 그냥 진의 강함에 대한 욕구를 알겠다는 것일까? 아님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낀 동생의 마음을 알았다는 뜻일까? "하하, 그런 눈으로 쳐다 보지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니까. 네가 강해지고 싶어 하는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 는 거잖아.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넌 인내심부터 키워야 해.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 혼자 판단하고 이게 뭐냐?" 리오스의 말에 진은 인내심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새삼 느끼며 잘못된 행동을 반성했다. "미안해!" "그래, 다음부턴 그러지마. 하기야 나도 너무 끌긴 끌었지. 좋아. 간단히 말 할께. 하이 아카데미에선 기본적으로 체력을 단련할 장소와 무술을 제공 해 줘. 그리고 그것은 시종에게도 똑같이 부여되지. 뭐, 거창한 무술을 가 르쳐 주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처럼 아무런 기초도 없이 삼류로 살아가는 것보단 기초를 조금이라도 쌓고 세상을 경험한 이류가 낫지 않겠어?" 진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성급한 성격에 이를 갈 았다. 괜히 나서지만 않았어도 리오스에게 지적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됐든 진에게도 작은 희망의 불빛이 보이는 듯했다. 끼익! 문이 마찰음을 일으키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오의 태양빛과 함께 아리오네가 들어왔다. 그녀의 입가는 태양빛만큼이나 환했는데, 그에 덩달아 진과 리오스의 얼굴도 환해졌다. 그녀는 두 아들의 환한 반김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러나 두 아들의 시선을 쫓은 아리오네의 얼굴은 한 순간 무참히 일그러졌다. 두 아들의 초롱초롱한 시선은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장바구니의 맛있는 찬거리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어둠이 빛의 자리를 꿰찬 지도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대부분의 가정에서 하 루의 피곤함을 푸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과의 단란한 대화의 장을 열고 있 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 올슈레이 유리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이층 목 조 건물의 실내에서도 화목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깐 너의 말은 진이 시종 자격으로 너와 함께 하이 아카데미로 가야한 단 말이니?" 밖의 어둠과는 사뭇 대조적인 실내의 환한 분위기 속에서 유리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고 있었다. 한 바탕 잔치라도 열었는지 수북이 쌓인 식기들을 씻고 있는 아리오네 역시 열심히 손을 놀리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숨기진 않 았다. 리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아버지 말대로 입니다. 진이 여기에 있어봐야 아무런 비전도 보이지 않으 니, 좀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겁니다." 리오스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평소에 진과 장난치던 리오스 는 사라지고 냉철한 이성으로 논리적인 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유리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진이 여기에 있어봐야 우리들의 두통거리만 될 뿐이지. 리오스의 말마 따나 사나이라면 응당 커다란 포부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 있어 가지고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으니......' 유리온의 생각은 점점 리오스의 의도대로 변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리오스가 쐐기를 박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진은 강해지고 싶어 해요. 예전에 진을 구해주셨던 그 은 발의 아저씨처럼 되는 것이 진의 꿈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여기 있어서는 도저히 그분처럼 될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무엇보다 그곳에 간다면 진의 꿈을 이루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 확실 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음..... 그래 알겠다. 너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한 번 생각해 보자꾸나." "예, 알겠어요." 진의 미래는 어둠이 포근하게 감싸는 늦은 저녁에 서서히 정해지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 회] 5화. 바이사카 시의 대장 올슈레이 진 4. 유리온은 아리오네와 몇 날 동안 대화한 끝에 결국 진을 리오 스와 함께 보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에 따라 진은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내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진은 자신의 패거리들 100여명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하기에 이르 렀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러했다. "나, 떠난다. 그래서 너희랑 이제 더 이상 못 논다." 진은 자신의 후임으로 스테판을 지목했지만, 그는 이미 바이사카 시를 떠난 뒤였다. 그만큼 진에게 패한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 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진은 자신의 후임을 공정하게 투표로 정했 다. 토젠트 마을 대표로 형의 친구인 파츄산이 나왔고, 파요르 마 을 대표로 전 때 스테판의 처리에 대해 물었던 금발의 소년인 다 오리가 출마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각 마을의 아이들 수를 40명씩으로 맞춘 뒤 투표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금발의 소년인 다 오리가 토젠트 마을에서도 인망을 얻고 있었는지 45명이라는 득표 율을 얻으며 바이사카 시의 대장이 되었다. 대장 직을 물려준 진은 토젠트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얼 마 있지 않으면 떠나야 하기에 진은 더욱 이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 기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강한 것이 좋고 담이 큰 진이었지만, 13살 난 어린 소년임에 틀림없었기에 낮선 세상의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동물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과 비 슷한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새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은 진 은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올슈레이 부부와 같이 보냈다. 바이사카 시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던 진이 정든 고향을 떠나기 3일 을 앞둔 늦은 밤. 진의 부하이자 친구였던 바이사카 시의 아이들이 진에게 송별회를 해주겠다고 드요프 강으로 나오라고 했다. 진은 그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으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뭔가가 자 신을 포위하고 있음을 느끼고,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숱한 싸움으로 얻은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진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며 주위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포위망을 좁히며 돌진해오는 일단 의 무리가 있었다. "이야야!" "으흐흐, 너의 목숨도 오늘까지다." "크하하!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유치찬란한 말들을 당당하게 외치며 돌진해오는 무리는 언뜻 보아도 100 명은 되어 보였다. 처음엔 진도 놀랬지만 이들이 자신의 부하들이자 친 구임을 알게 되자 픽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의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은 얼굴과 몸통에 무수한 공격을 받으며 그 충격으 로 풀밭위로 쓰러져 버렸다. 진은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짓인가? 진은 바닥에 쓰러지는 동시에 발 을 휘둘러 주위의 몇 놈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천하의 진이라 할지라도 무식하게 머릿수로 덤비는 놈들에게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반격이 있었지만, 이내 진은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몸을 웅크 린 상태로 충격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데 온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진의 몸이 축 늘어져 뻗어버릴 때까지 신나게 두들겨 팼다. 아이 들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전해졌는지 진은 풀밭위에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기절해 버렸다. "그만!" 진이 기절한 것을 확인한 금발의 소년 다오리가 소리치자, 100여명의 아이들 은 패는 것을 멈추고 한 곳을 향해 뛰어가 뭔가를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불꽃이 공터 한 곳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주변 에 100여명의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진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꽃 근처에 눕혀져 있었는데, 그의 눈은 아직도 굳게 감겨 있었기에 아이들 은 기절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진은 기절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 을 두들겨 패는 이유가 궁금했던 진은 설마 기절한 놈을 더 패기야 하겠냐는 심정으로 기절한 척 했을 뿐이었다. 진은 자신이 기절하자마자 온갖 부산을 떨며 먹을 것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 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를 위해 마련된 송별식의 준비가 거의 끝났을 거라고 생각한 진은 눈을 뜨 려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듯, 진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 힘겹게 눈을 뜨려는 모습을 연출하려 던 순간, 얼굴로 날아오는 차가운 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얼굴을 세차 게 때려버렸던 것이다. 차악! "컥, 이, 이게 뭐야!" 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위를 보며 화난 듯이 말했다. 그러나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로 인해 진의 난폭한 기세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진도 화를 낼 생각은 애초 없었기에 금방 화제를 바꾸었다. "야, 근데 오늘 내 송별회를 위해 마련한 자리가 맞긴 한거야? 다짜고짜 패기 나 하고. 에휴, 그래도 명색이 내가 너희들 대장이었었는데." 진은 리얼한 연기에 우스깡스런 표정까지 곁들여 굳어져 있는 분위기를 일신시 켰다. "하하하, 우리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화 풀어. 자!" 리오스의 친구인 파츄산이 웃으며 진에게 닭다리 한쪽을 쭈욱 찢어 건넸다. 진 의 표정은 금방 헤헤 하며 변해버렸다. 그 모습이 또 웃겨 100여명의 아이들은 배를 잡으며 뒤로 넘어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주방장이 꿈인 콩쿠니와 프옹이 만든 닭고기는 순식간에 아이들의 뱃속으로 사라 져갔다.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산 50마리의 닭고기는 여기저기서 꺼억 하며 트림 을 해대는 아이들에게 간만에 포식이란 단어를 내뱉게 만들었다. 만찬이 끝나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숲 쪽으로 또 다시 달려가 뭔가를 꺼내왔다. 처음엔 단순히 음료수인줄 알았는데,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진은 묘한 흥분으 로 온 몸을 떨었다. "이, 이거 술 아냐?" "왜 아냐. 당연히 술 맞지. 하하, 너 설마 술 먹는 거 처음은 아니겠지?" "처, 처음이긴 몇 번 먹어 봤어!" 실상 진은 술을 먹어 본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지기 싫어하는 승 부욕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들고 있는 컵에 술이 따라지며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지자 아직 술을 먹지도 않았는데 진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다. "자! 우리의 대장 진이 이제 이 좁은 바이사카 시를 떠나 제국 전역의 대장이 되기 위해 수련하 러 떠난다. 우리의 대장이 제국 전역의 대장이 될 그 날을 기대하며, 그리고 그 전도에 무운장구를 빌며 우리 모두 건배!" 다리오의 힘찬 말이 끝나자 모두는 원 샷으로 술을 마셨다. 진도 원 샷으로 술을 마셨지만, 이것을 왜 그리 마시려하는가에 대해 의문만 들 뿐, 좋다는 생각은 들 지 않았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다시 다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대장! 다음에 왔을 땐 우리 모두가 덤벼도 간단히 이길 수 있도록 강해져서 돌 아와야 해!" "그래. 하하하,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먼. 내가 누군데. 나 올슈레이 진이야!" 진은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아이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 이제야 이해가 갔던 것 이다. 그러나 애써 그 감정을 감추려는 진이었다. 뒤이어 진은 많은 아이들이 건네는 술을 받아 마셨다. 한잔, 두잔, 이런 식으로 받 던 잔이 수십 잔이 넘어가자 안 그래도 처음 술을 마시는 진은 머리까지 술이 오른 상태가 되었다. 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나 떠난다. 솔직히 나 떠나기 정말 싫다. 그런데 나 강해지고 싶거든. 너희들 도 알고 있겠지만, 은발의 아저씨처럼 정말 강해질 거야. 꺼억! 그, 그러니깐 나중 에 내가 돌아오게 되면, 그 때도 이렇게 우린 친구인거야. 알겠지. 내가 없다고 날 잊으면 안돼!" 진은 그 말을 끝으로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털썩!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도 점점 그 강렬한 기세를 가라앉히고 있었고, 취기로 헤롱 거 리던 들뜬 분위기도 한 순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말없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다리오가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의 대장은 ......!" 다리오가 무얼 하려는지 몰랐던 이들도 곧 그의 뜻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대장은 .....!" "진! 올슈레이 진!" 모두가 진을 둘러싸며 다가왔다. 그리고 힘차게 외쳤다. 그들의 강한 신념이 정신을 잃고 있는 진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듯, 그들은 아주 크고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그리고 주인공이 술에 곯아떨어지자, 진한 우정으로 마련된 송별회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파했고, 진은 파츄산과 다리오에 의해 집에 무사히 배달되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억지로 술을 먹였거든요. 너무 아쉬워서 말이죠. 그러니깐 진에겐 제발 아무 말씀마시고, 저희들에게 화를 내주세요." 파츄산과 다리오는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고 있었다. 유리온과 아리오네는 흐뭇한 시 선으로 그들의 아들과 두 친구를 보았다.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 자신들의 아들이 마 냥 말썽꾸러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그들 부부는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요. 우리 진을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진에게 돌아갈 피해는 전혀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집에 들 돌아가세요." 아리오네의 부드러운 배려에 그들은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따스한 달빛이 유리온 에게 안겨 집으로 들어가는 붉게 달아오른 진의 얼굴을 살포시 비쳐주고 있었다. 어둡고 컴컴한 공간. 그러나 그리 비좁아 보이진 않는다. 아니 시커먼 공간은 너무나 어두컴컴했기에 어찌 보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넓은 것 같다고 생각했 다. 암흑이 자리하고 있지만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찌릿한 아픔과 슬픔이 가슴 한자리에서부터 파생되어 온 전신을 뒤집어 놓는다. 유리온은 자신의 가슴이 왜 이리 아 픈지, 그리고 찌릿한 아픔 뒤에 오는 뜨거운 슬픔이 왜 이렇게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반갑지 않은 이유를 만나게 된다. 어둡고 시커먼 공간이 점차 밀려나가며 주변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 했다. 거기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런 아리오네가 웃음 짓 는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억지로 웃는 웃음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 그의 자랑스러운 두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두 아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그리 고 그들은 말없이 걸어 나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시커먼 공간으로. 유리온은 다시 한번 찌릿한 충격을 받았다. 서운했다. 말없이 떠나는 아들들이 너무나 서운했다. 그리고 걱정이 들었다. 왜 인지, 자신의 삶의 희망이자, 분신인 사랑하는 아 들들과의 재회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그때, 그의 옆에 있던 시커먼 공간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예전에 평안히 눈을 감으신 유리온의 부모였다. 그리고 인 자한 인상의 노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따라가거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테니!" 유리온은 그의 음성이 귓가에 도달하는 순간, 몸을 움직여 두 아들을 쫓아갔다. 두 아들 은 얼마가지 못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는 듯했다. 그러나 유리온은 그러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돌아 올 거냐?" 유리온의 음성은 잔뜩 쉰 목소리였다. 아니 목이 너무 메어 턱턱 막히는 목소리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곧 돌아올게요." 큰 아들인 리오스가 말했다. 그러나 유리온은 결코 그들이 빨리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렬한 느낌! 그것은 영감이 전해주는 진실이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라 여겨졌다. 안타까운 마음이 유리온의 몸과 마음을 휩쓸었다. 그리 고 그 자리에서 굳어져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유리온에게 진이 말했다.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무감정한 음성이라고 유리온은 생각했다. 이제는 두 아들을 비추던 빛들도 차츰 사라져 점차 어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선 그들의 얼굴이 시커먼 공간에 잡아먹히며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유리온은 뒤를 돌아보았다. 멍하게 앉아 있는 아 리오네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슬퍼 보이지만, 역력히 참고 있는 아내. 그래서 더욱 안 쓰럽게 보인다. 당장 달려가서 끌어안고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떠나는 아들들을 배웅 할 의무가 있는 그들의 아버지였기에 슬픔을 참았다. 유리온은 마음속으로 아들들의 전도에 무운장구를 빌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 었다. 그들은 이미 어둠에 잡아 먹혀 이 자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유리온은 심장 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나 강렬한 충격은 그를 어둠과 빛의 교묘한 공간에 서 깨워나게 만들었다. "으허헉! 헉헉헉헉." "왜, 왜 그래요? 당신, 무슨 악몽이라도 꿨나요?" 유리온의 갑작스런 비명에 곤히 자고 있던 아리오네가 깨며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유 리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면에 가보로 내려오는 고풍스런 그림이 걸려있는 것이 보 인다. 그 밑에 아리오네의 화장대가 있고, 오른쪽 벽에 책장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 며 숨을 고르던 유리온은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여기는 내 방이다. 어두컴컴한 공간 따위가 아니다.' "괜찮아요? 어휴, 이 땀 좀 봐. 샤워라도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느낀 아리오네가 농담 삼아 말했다. "아니, 괜찮아. 꿈을 꾸었을 뿐이야." "그 꿈, 악몽이었나 보죠? 그것도 지독시리 진저리나는 악몽 말이에요." 아리오네의 귀여운 표정은 심장에 차가운 못이 박혀,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이었던 유리 온의 마음을 다소나마 가볍게 해 주었다. "후후, 분명 악몽이었지. 그러나 악몽이긴 하지만 당신이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꿈이었기에 반드시 악몽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 "무슨 소리예요?" 아리오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유리온은 꿈 이야기를 해줄 마음을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억지로 슬픔을 참고 있는 그녀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놓을지도 모를 사실을 이실직고하기에는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 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자, 날이 완전히 샐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자자고, 자!" 유리온은 자기할 말만 얼른 뱉어내고는,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당신...!" 무어라 말을 하려던 아리오네는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자연스레 유리온을 따라 이불속으 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의 이불이 들썩였다. 그리고 아리오네의 이불속에 파묻히는 비명이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은밀하게 그리고 난폭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 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중간에 여러 사건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란 정직한 신은 진과 리오스가 고향을 떠나 하이 아카데미로 가야 할 시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갈색 머리에 듬직한 사내가 올슈레이 부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오스 군과 진 군을 메테르티아 아카데미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겠 습니다." 유리온은 그의 믿음직한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 측에서 이렇게까지 해주니 마음이 다 놓입니다." "그럼, 한동안 못 보게 되니, 마지막 인사라도 하심이…" 사내는 인사를 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유리온이 걱정스런 눈으로 아들들을 바라보았다. 아리오네의 눈시울은 벌써부터 붉어지려 하고 있었다. 진은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거 같아, 고개를 돌리며 말 했다. "엄마, 아빠 갔다 올게요." "그래, 그래. 도착하면 꼭 편지 하고 알았지? 몸 건강해야 한다." 아리오네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진을 가슴에 꼬옥 안았다. 진은 자신이 결정한 일이기는 했 지만 막상 이 따스한 품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별의 아쉬움이 더욱 쩌릿하게 다가왔다. 이별의 아픔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서일까? 진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어느새 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리온은 착잡한 시선으로 모자(母子)를 바라보다, 듬직한 모습으로 서있는 리오스를 보며 신 뢰감이 충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오스야, 너야 뭐든 잘하니깐 걱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라. 너는 우 리 부부의 아니 우리 가족의 자랑이다. 알겠니?" "......예!" 리오스 역시 유리온의 부정이 담겨있는 따뜻한 한 마디에 콧잔등이 시큼졌다. "그래, 진이도 이리 오렴." 유리온은 리오스와 진을 안으며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는 마음을 달랬다. 잠시 후, 유리온은 그들의 등을 두들겨 주며 작별의 시간을 알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올게요." 두 아이를 태운 마차는 뿌연 먼지를 남기며 멀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올슈레이 부부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상태로 보고 있었다. 그들 부부 뒤에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떠나는 모 습을 보기 위해 모인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과 진의 패거리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 으며 서 있었다. "형, 우린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마차 안에서 고개를 뒤로 돌려 아빠,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던 진이 고개 를 바로하며 말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십대 도시 중 한곳인 메테르티아 시라는 곳이야." "거긴 크겠지?" 아쉬웠던 작별의 장면도 이미 진의 머리에선 지워졌는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얼굴을 들이 밀며 말한다. "당연하지. 같은 시라고 하지만 우리가 살던 바이사카 시 보다는 몇 십 배는 더 클 걸?" "진짜?" "그래." 진은 놀랍다는 듯이 초롱초롱한 두 눈망울을 굴리며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로 빠져 들어갔다. 리오스도 앞으로 있을 새로운 것들을 기대하며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나가는 창 밖의 풍경 으로 시선을 돌렸다. 막 시의 외곽을 벗어나는 것을 본 리오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 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다짐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뇌까려졌지만, 그의 의지는 더없이 확고했다. 그렇게 진과 리오스는 세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 회] 6화. 하이 아카데미로... 1. 다그닥! 다그닥! 경쾌한 박자로 발을 맞추며 달리던 마차가 검문소를 눈앞에 두고, 서서히 속도를 줄여 나갔다. 간단한 검문을 거친 마차는 조금 더 달려 거대한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차는 많은 인파 때문인지 본래의 경쾌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천천히 이동하던 마차가 멈춰선 곳은 '여행자의 순례지'란 현판이 걸려 있는 삼층 석조 건물의 여관 앞이었고, 마차가 멈춰 서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푸른 머리의 소년이 뛰어나왔다. "저희 여행자의 순례지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차는 제게 맡기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푸른 머리의 소년은 능숙하게 말의 고삐를 건네받으며 인사했다. 마차에서 내린 세 사람은 푸른 머리의 소년을 뒤로 하고,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깔끔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해가 머리 위로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에 식당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에리필 아저씨, 우리 저기 앉아요." 일행 중 가장 어린 다크 블루빛의 아이가 창문가로 쪼르르 달려가며 말했다. "천천히 가려무나." "진아, 넘어지겠어." 에리필이라 불린 사람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진이 잡아 놓은 자리로 가 앉았다. 그리고 리오스는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이들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빛의 머리칼을 단정히 기른 소녀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저희 여행자의 순례지를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그녀는 한 손엔 펜을 들고 한 손엔 받침대 위에 종이를 댄 것을 들고서, 주문을 기다리며 공손하게 서 있었다. 진의 일행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진은 심각한 표정까지 지으며 고민하고 있었다. 얼마 후, 일행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에리필이 각자의 주문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스파게티를 먹을 건데, 리오스하고 진은 뭘 시킬 거니?" 에리필의 물음에 리오스가 먼저 대답했다. 그러나 진은 한참이나 끙끙댈 뿐, 음식을 쉽사리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닭고기 탕요." "……" 휘리나는 주문을 받으며 이렇게 뻘쭘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상대가 귀여운 소년인지라 답답하거나, 짜증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이 더욱 귀여워 보였다. 결국 보다 못한 에리필이 나섰다. "진아, 그냥 평소처럼 종업원 누나에게 맡기면 어떻겠니?" "…예? 아, 예. 그렇게 해요." "하하, 아가씨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이럴게 아니라 추천 음식 같은 거 없을까? 이 아이가 먹을 만한 걸로 말이지." 에리필은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휘리나에게 말했다. "저희 여행자의 순례지의 음식은 다 맛있지만, 저 귀여운 소년이 먹을 만한 음식으로 피요가르티를 추천하겠어요." "피요가르티? 그게 뭐예요?" 진은 처음 들어 보는 음식 이름에 반사적으로 물음을 제기했고, 휘리나는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피요가르티란 퓨즈 시의 명물음식이야. 돼지고기를 매운 양념과 독특한 소스를 버무려 만드는 음식인데, 여기서 돼지고기는 술에 며칠 동안 절여 놓은 뒤에 요리하지." "술에 절인다고요?" 리오스가 술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말했다. 동생에게 맞는 음식을 추천하랬더니 고작 술에 절인 음식을 추천하다니… 이 아가씨가 정말 정신이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술이란 프론츄란 술을 말함인데, 알코올이 거의 없는 술이에요. 프론츄의 독특한 단맛을 오랫동안 흡수하기 위해서 절여 놓는 거거든요." 저렇게까지 말하니 리오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스를 보며 에리필은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에리필이 휘리나에게 피요가르티를 주문했다. 진 역시 퓨즈 시의 명물요리를 먹고 싶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휘리나는 총총 걸음으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리오스는 그것을 보다 진을 향해 한 마디 했다. "야, 너 음식 고르는데, 뭘 그리 고민하는 거냐? 그냥 대충 먹어. 안 그러면 처음부터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하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리오스의 음성엔 힐책의 뜻이 담겨 있었다. 바이사카 시를 떠나온 지도 벌써 10일이 지났다. 그 동안 가는 음식점 마다 주문을 질질 끄는 바람에 따가운 시선을 많이 느껴야 했었다. 그렇기에 리오스가 진에게 식사예절에 대한 설명을 또 다시 하기 위해 말을 꺼내는데, 다행히도 주문한 음식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오는 휘리나를 볼 수 있었다. 이에 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한 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를 설교가 두려웠던 것이다. 에리필은 리오스의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모습을 바라보다 갑자기 울적함을 느껴 옆에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다. 그러나 밖의 풍경은 평소에 보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에 그는 한숨을 내쉬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것이 밖의 풍경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머리칼은 관리하지 않아서인지 머릿결이 엉망이었다. 그리고 중년인의 외모를 가진 그는 제법 준수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준수한 얼굴은 음울한 음영에 가려 빛이 바래었다. 에리필은 창문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 보았다. 그러자 창문의 사람도 얼굴을 매만지는 것이 아닌가! 에리필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상념의 나래를 펼쳐 그의 어릴 적 추억들이 깃들어 있는 고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의 절친한 지기들이 편안한 모습으로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이번 일을 끝으로 고향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 휘리나가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진은 휘리나에게 환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했다. 휘리나도 그런 진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다, 주방에서 부르는 소리에 총총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진 일행은 맛있게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식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식당은 손님들로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점심을 다 먹은 에리필은 숙박체크를 하고 키를 받아서 이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 뒤를 진과 리오스가 따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침묵과 고요가, 방안에 들어와 한참을 웃고 떠들던 이들에게 찾아와,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거의 동시에 모두의 입이 닫혀 버렸다. 진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고, 리오스와 에리필 역시 의자를 끌고 와서 마주보는 형태에서 서로의 입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르륵 구르던 눈들의 움직임이 멈춤과 동시에 모두의 입이 터졌다. "하하하하하!"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시원스레 터트리는 웃음소리는 한참을 갔고, 차츰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진이 입을 떼어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저씨, 메테르티아 시에 갈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음…… 지금과 같은 속도로 간다면 한 20일 정도?" "그래요? 형, 입학식은 한 달 정도 남았지 않았어?" "맞아. 근데 왜?" 리오스는 갑자기 이러한 질문을 하는 진이 이상했다. 분명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신경을 묘하게 거슬리게 만드는 해죽거리며 웃는 진의 모습이 몹시 수상했다. 에리필 역시 갑자기 묘한 한기가 느껴져 그 출처를 따라가다, 의미심장한 미소로 배시시 웃고 있는 진의 얼굴을 대할 수 있었다. 에리필은 순간 헉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움찔거렸다. "뭐, 뭐냐?" "예? 하하, 아저씨도 참. 저기… 아니 여기 퓨즈 시 옆에 있잖아요……" 진은 말을 꺼냈다가 뒷말을 흐렸다. 분명 의도적인 말끝 흐림이었다. 그러나 에리필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처음엔 이 아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냐? 하며 잠시 혼란스러워했던 그였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자, 눈칫밥이 십단인 에리필은 오래지 않아 진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오라, 퓨즈 시의 옆 도시라면 전사의 도시라고 불리는 라디오카 시를 말하는 거구나. 그리고 거기엔 아마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 )가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진의 목적도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있는 것 같은데, 맞니?" "헤헤, 어떻게 아셨어요? 전사들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그 곳에 꼭 들렀다 가고 싶어요." 에리필은 자신이 눈칫밥을 헛먹은 것이 아니라는데 일면 만족감을 느꼈지만, 진의 요구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 본래 자신의 임무는 올슈레이 리오스와 그의 시종을 안전하게 하이 아카데미로 호송하는 것이었다. 호송자(escorter)인 자신은 그 일만 수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 진이라는 소년은 그러한 임무 이외의 것도 들어주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에리필은 10여 일간의 경험으로 무의미한 저항은 힘만 뺄 뿐,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저항할 의지를 스스로 꺾어버렸다. "후우, 그래. 내일 전사의 도시 라디오카시를 거치면서 캐슬 오브 마스터(master of castle)에 들르도록 하자." "이얏호!" "후후." 진은 에리필의 흔쾌한 승낙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침대에 올라가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한편 리오스와 에리필은 서로 다른 의미를 담은 웃음을 걸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디오카 시는 예로부터 전사의 도시라고 불렸었다. 그것은 라디오카 시의 중심부에 거대한 원형의 석조건물이 세워지면서부터였다. 석조 건물의 외벽은 튼튼한 강도를 자랑하는 프로이카 지방의 돌로써 지어졌다. 그리고 그 건물 외벽엔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장인들의 손길이 거치면서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고, 웅장한 듯하면서도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졌다. 특히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정문 바로 위에 새겨진 '영웅의 탄생'이라는 작품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는 총 5층의 건물이다. 그러나 단순히 5층짜리 건물로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말이 5층짜리 건물이지, 실제 그 높이는 40 라키르(미터)를 훌쩍 넘겼다. 오만한 듯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그 건물은 크기에서부터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리고 여러 전장을 누비며 쌓여진 걸출한 전사의 불굴의 패기처럼, 오랜 세월동안의 풍상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축적된 무서운 패의 기운은 그 건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여기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목이 부러져라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힌 소년이 있었다. "우와, 진짜 크다." "그러게…" 진과 리오스는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가 주는 웅장함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에리필 역시 감탄을 터트리며 보고 있었다. 진의 시선이 정문 위 '영웅의 탄생'이라는 조각물에 고정되었다. 인고의 고통을 이겨내며 강인한 위엄을 뿌리는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생동감을 주며 강렬한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그리고 한참을 보던 진이 손가락으로 조각물을 가리키며 에리필에게 물었다. "저게 뭐예요?" 진의 손끝을 따라가던 에리필은 정교한 솜씨로 조각된 조각물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이야기했다. "저건 '영웅의 탄생'이란 작품이야. 무릇 영웅이란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모든 도전을 이겨내는 강인한 사내라는 것을 말하지. 그런 영웅의 위엄스런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의 깊은 정신세계까지 표현한 이 작품은 그 당시 대륙 최고의 장인의 손에 의해 필생의 노력 끝에 만들어… 아니 창조되었다고 함이 옳겠지." 진과 에리필은 대화를 나누며 정문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리오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안은 거대한 공동 같았다. 우선 천장은 엄청나게 높았다. 보통 건물의 2.5배 정도로 높았는데, 그 위에 화려한 조명들이 은은한 빛으로 실내를 비추어 주고 있었다. 1층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각 방의 현판에는 서로 다른 말들이 적혀 있었다. 정문에서 들어가다 보면 왼편에 위치한 방엔 '대륙의 몬스터'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오른편을 보니 '바다의 몬스터'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잠시간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바라보던 진 일행은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왼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대륙에 사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생생한 모습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누가 조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정교한 솜씨로 각 몬스터들의 흉포함까지도 고스란히 옮겨 놓았던 것이다. 혼이 담긴 작품이란 이러한 작품들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라고 리오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옆에서 구경하던 진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갔다. 아니 진의 머리에도 생각이 스쳐가긴 했다. '저놈은 요렇게… 하하 저 녀석은 이렇게… 오 저건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하!' 진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 일행은 1층에 있는 여러 방들을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의 현판에는 '고대의 영웅'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선 방의 분위기가 여타의 방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풍스런 멋과 은은한 멋이 서로의 미를 손색 시키지 않고 오히려 상승시켜 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절묘하다는 감탄사가 입밖에 스스럼없이 나올 정도의 조화로움은 차라리 경이롭기까지 했으며, 여기 작품들은 고대 예술세계의 찬란함과 위대함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고대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약간은 색이 바랜 황토빛 벽지가 고대라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며,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었다. 고대의 영웅이란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리오스의 얼굴은 갑자기 벌겋게 달아올랐다. 에리필은 은근히 걱정스런 맘이 들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은 리오스의 환한 미소를 보고는, 부질없는 걱정을 의식 밖으로 물리고, 실내에 전시된 것들을 찬찬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방안의 양쪽 벽에는 섬세한 조각칼이 지나가 깊은 음각(陰刻)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정면의 벽에는 십여 개의 조각상들이 가득 차 있었다. 리오스가 한발 나서며 왼편의 벽면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표현이 정확한 엄청난 집중력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워낙 그 기세가 대단하여 근처에 가는 것이 꺼려질 정도였다. 그래서 에리필은 진을 데리고 조각상 쪽으로 갔다. 조각상은 실물 크기에 맞춰 만든 것 같았다. 그것들은 암회색의 돌을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고대 의복의 고풍스런 면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거기다 생전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의 세밀한 표현으로 그 사람의 성향까지도 담아 놓고 있었다. 진은 한 조각상 앞으로 가서 그 밑에 적혀 있는 글을 읽었다.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 에리필이 진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고대 통일 제국의 기반을 다졌던 두 분 대왕 중 한분이시란다. 조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분은 살아 있을 적에 광오하다 생각될 정도로 자부심이 아주 강한 분이셨지. 저기 보이는 미소만 보아도 알 수 있지?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는 '제왕의 미소'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바로 그 미소란다. 거기에 저 강렬한 눈빛은 제대로 마주보았던 사람이 드물었다고 말할 정도로 카리스마적이 않니?" 에리필의 상세한 설명에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옆의 조각상을 보다가 다시 그 밑에 적혀 있는 글을 읽었다. "반 드워드?" 이번에도 어김없이 에리필의 상세한 설명이 뒤따랐다. "그래. 이 분이 아까 말한 고대 통일 제국의 기반을 다졌던 두 분 대왕 중 나머지 한 분이시란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 특히나 아름다웠다고 하지. 이분은 앞서의 대왕보다 유약한 면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 무력은 고대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막강하셨다고 하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진정한 강자가 바로 이 조각상의 주인이지." 에리필의 주관적인 평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리오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진과 리오스가 조각상을 감상하다 에리필을 보면 설명이 이어지고, 이런 식으로 마지막 남은 조각상까지 오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조각상은 앞서의 조각상들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만들어 져 있었다. 리오스의 예리한 눈썰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근데, 이 조각상은 이상하게도 앞서의 조각상들보다 많은 것들을 나타내고 있네요. 여기 얼굴만 해도 단순히 그 대상의 특징을 잡아낸 게 아니라, 전체적인 마치 직접 보고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네요." 에리필은 새삼 리오스에게 감탄했다. 리오스의 말대로 마지막 남은 조각상은 주인을 보고서 제작했기에 앞서의 조각상들보다 대상자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대의 명장인 아르오키가 이 조각상의 주인의 모습을 조각할 때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시 너무도 작업에 몰입한 아르오키가 조각상을 완성한 후에 담배 한대를 피우고 뒤돌아보는데 조각상의 주인이 서있지 않은가! 그래서 아르오키는 그에게 조각상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각상의 주인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던 아르오키가 한참 후에 그것은 주인이 아니라 조각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아르오키가 한 말이 있었다. 그것은 절규를 담은 한탄이었고, 수많은 명장들에게 도전을 주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그분의 가늠치도 못할 기운을 내 작품에 담고 싶었다. 명장은 단순히 외모만을 똑같이 만들어서는 될 수 없다. 그 사람의 특유의 기질과 기운을 작품에 담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조각상과 그분을 착각했던 것이 그분께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다 담았다고 생각했던 그분의 기운은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명장이란 말인가! 만약 그분의 기운을 다 담을 수 있는 자가 나온다면 그가 바로 고금을 통틀어 제일의 명장이라고 나는 스스럼없이 부를 것이다." 에리필은 말이 잠시 옆으로 샜다고 생각하며 리오스의 물음에 답해줬다. "예리하구나. 네 말이 맞다. 저 조각상의 주인은 아직도 살아계신단다. 내가 알기로 이 방이 만들어 진건 최근이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다른 조각상들은 고대의 문헌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 진거야." 리오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나 리오스 옆에 서있는 진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내 설명이 부족했나?' 에리필의 이러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상황과 행동이 절묘하게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했던가! 진은 다른 것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혹시 저기 조각상의 주인은 나이가 많나요? 그리고 은발인가요?" 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에리필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대답은 해줘야 했기에 곧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래, 나이가 많아. 아마 70은 족히 넘으셨을 걸? 그리고 은발은 어떻게 알았니?" 진은 에리필의 물음을 뒤로하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진은 또다시 궁금증을 토로(吐露)했다. "음… 그럼 저 조각상을 만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그러니깐 저 조각상의 주인의 나이가 몇 살 때 조각상을 만들었냐고요?" "글쎄다. 조각한 것은 꽤 오래되었던 걸로 아는데. 르샨티우 대전 후에 조각했다고 들었으니깐. 족히 30년이 넘었을 거다." 에리필의 말에 진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리오스는 집히는 데가 있어 묻지 않았지만, 에리필은 그렇지 못했다. "근데, 무엇 때문이니?" "… 아, 예전에 저를 구해주셨던 은발의 아저씬가 싶어서요. 근데 정말 닮았어요. 그렇지만 아닌 거 같아요. 70살이나 되셨다면서요. 7년 전이긴 했지만 그 아저씨는 젊었으니까요." 진은 횡설수설(橫說竪說)했다. 그만큼 진의 심경이 복잡했던 것이다. 이에 에리필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별 생각 없이 넘어갔다. 진은 방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오르려 했다. 그러나 계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와서 진은 온통 궁금증 투성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궁금증이 들었다. 건물은 5층이라는데 1층에서 더 이상 올라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계단은 어디 있죠?" 진은 밖으로 나가려는 리오스와 에리필을 붙들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이에 진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고, 리오스는 한숨을 토하며 그의 머리에 꿀밤을 주었다. "어제 한 말 기억 안나?" "어제…… 아!" 리오스의 충격요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진은 무릎을 탁치며 알았다는 것을 표시했다. 어젯밤, 에리필은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대해 간단히 말했었다. 1층은 단순히 박물관 같이 조각상을 진열해 놓고, 2층부터는 전사의 등급이 매겨진 자만이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전사의 등급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해지는데, 심사는 2층에서 치러진다고 했다. 2층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후문에 위치한 워프의 방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그곳에는 삼엄한 경비가 세워져 있다고 했는데, 불순한 의도로 들어온 침입자를 엄격히 막겠다는 의도였다. 더군다나 각 층으로 올라갈수록 경비는 더욱 삼엄해지고, 경비들의 능력도 월등하다고 했다. 이렇게 적법한 절차를 거친 후에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이었다. 그리고 3층과 4층은 전사의 영역이라는 곳이다. 2층에서 충분한 등급을 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5층은 등급을 얻은 자라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다. 그곳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였다.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설립 목적과 세워진 연도, 그리고 각 시대별로 최고의 전사들. 그리고 그들의 능력들. 그곳이야말로 제국의 전사들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모든 것이 녹아있는 명예의 전당이었던 것이다. 진은 아쉬움을 달래며 밖으로 나왔다. 후문은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다. 결국 정문으로 들어와 서 정문으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구조였던 것이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느덧 핏빛을 머금은 태양이 서산에 걸리고 있는 중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어둠과 함께 다가왔다. 들어갈 때만 해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어느새 지고 있다니. 진은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생각했다. 웅장한 건물은 핏빛으로 물든 붉은 하늘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한층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황혼에 넋을 잃었음인가? 아님 고풍스런 분위기에 취했음인가? 그들은 일순 말을 잃고 한 폭의 그림에 혼을 빼앗겼다. 지상의 어떠한 화가도 표현하지 못할 자연이 주는 선물은 이렇게 역사의 산물과 한껏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말없는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 회] 7화. 하이 아카데미로... 2. 진의 요구로 라디오카시의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를 방문한 지도 15일이란 시간이 흘러 이제 그 여정도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인 메테르티아 시도 이 속도로 며칠만 더 가면 도착할 것 같았다. 매끈하게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마차가 지나가기엔 충분할 정도로 닦인 산길에 한 대의 마차가 '덜커덕'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깊은 산은 아니어선지 주위에 나무는 그리 많진 않았다. 대신 군데군데 옅은 녹색의 아름다운 물결이 황금빛 햇살에 의해 반짝이며 일렁거렸다. 마치 그 모습은 마차를 환영해주는 듯한 따뜻한 손 흔듦으로 이미지 변환이 되어, 나그네들의 외로움을 더할 수 없는 포근함으로 감싸 주었다. 그리고 주위의 작은 동물들도 숲 속 보금자리에서 나와 오래간만에 보는 마차를 신기한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지나가는 마차를 숲에 사는 모든 것들이 다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산길을 따라 녹색의 물결이 기다랗게 이어진 곳에서 일단의 사내들이 튀어 나옴으로서 반기지 않는 부류도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들은 '나 산적이요'라고 광고하는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락부락한 외모에 덥수룩한 수염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동물들의 가죽을 가지고 옷을 해 입고 있었는데, 마치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에 사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한 동작으로 마차의 앞을 가로 막았다. 마차를 몰던 에리필은 웬 산적 나부랭이들이 앞을 가로 막아서자 한숨을 내쉬며 마차의 속도를 줄여 나갔다. 이에 산적들은 자신들의 위세에 겁을 집어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심히 듣기에도 거북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호송자(escorter) A랭크에 기록되어 있는 에리필에겐 저들 같은 산적들은 몸 풀 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차를 모는 그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에리필은 어디까지나 고객을 안전하게 호송시켜야 하는 호송자(escorter)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책임감에 기인한 아주 작은 신경이라 할 수 있었다. 에리필은 주위에 숨어있는 녀석들이 더 있는지 잠시 살펴보다 더 이상 매복한 자들이 없음을 알고는 말에서 천천히 내렸다. 진과 리오스는 마차가 멈춰지고 에리필이 내리자 궁금증이 들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의 시선엔 흉악하게 생긴 십여 명의 인물들이 병장기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잡혔는데, 리오스의 얼굴엔 일순간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진의 얼굴은 흥미로운 불구경을 보는 듯, 기대감으로 인해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에리필은 잔뜩 무게를 잡고 있는 산적들에게로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갔다. 한편 가벼운 실랑이 정도는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산적들은 별 다른 저항 없이 천천히 다가오는 에리필을 보며 '저 녀석이 순순히 통행료를 내려고 제 발로 다가오는구나!'라는 순진한 착각들을 하며 에리필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야! 너희들 당장 꺼지지 못해!"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에리필의 고함소리에 십여 명의 산적들은 한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자신들에게 천천히 다가와 하는 소리가 고작 '꺼져'라니? 그들은 너무나 황당하기도 하고,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어 버렸다. 모두가 황당함에 빠져 있을 때, 그래도 두목이라고 가장 먼저 정신을 수습한 카르틴은 머리까지 치솟은 분노로 인해 몸을 잘게 떨었다. 카르틴은 수크라티나 산에 있는 수십 개의 산채 중에서 중간 규모의 산채 두목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부하들 중 일부분을 데리고 기분 좋게 아침 손님을 맞으려 나왔는데, 일진이 나빴는지, 그 첫 손님은 자신들의 심기를 있는대로 건드리며, 시쳇말로 꼭지가 엄청 돌게 만들었다. 2라키르(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카르틴은 감당 수 없는 엄청난 분노에 몸을 크게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울퉁불퉁한 근육질은 아니지만 육중한 무게감을 주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눈에 사선으로 그어진 상처가 붉게 달아오르며 벌렁거리고 있었는데, 이는 카르틴이 상당히 흥분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시 후, 분출하지 않으면 터질 것만 같은 엄청난 통증이 가슴으로 밀려온 카르틴은 매서운 일갈을 토했다. "얘들아,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다. 공격해라!" 말을 하며 손에 들린 두꺼운 도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카르틴의 뒤를 이어 그의 부하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뒤따랐다. 에리필은 '훗!'하고 웃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운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불나방들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달려들 듯 그들이 달려들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에리필의 평온한 기다림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 "하앗!" 언제 내려왔는지 진이 에리필의 옆을 스치며 카르틴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에리필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며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야했다. 카르틴의 무식한 도에 진의 몸이 양단되는 것이 그의 머리 속에 그려졌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진아!' 에리필은 다급한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허공에 뿌리며 진의 뒤를 따라 빠르게 쇄도해 갔다. 뒤에서 보고 있던 리오스도 진을 만류하러 달려 나오고 있었다. 카르틴은 웬 소년이 자신에게로 달려오자, '기분도 더러웠는데 잘 됐다.'며 무식하게 커다란 도를 수평으로 그으며 소년의 몸을 양단시키려 했다. 카르틴은 당연히 소년의 몸이 피를 뿜으며 갈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은 거짓말 같이 몸을 움직여 그의 도를 피함과 동시에 몸을 허공에 띄우며 그의 턱을 발로 올려 찼다. 그리고 잠시 후, 이차 공격을 날리려는 진을 넘어뜨린 에리필은 싸늘한 눈빛을 쏘아 보냄과 동시에 공중에는 번쩍하는 빛무리가 찰나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카르틴은 턱에 묵직한 충격을 받는 동시에 허리에서 화끈거림을 느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초점없는 텅 빈 시선만을 남긴 채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은 처음으로 예리한 도를 피하며, 자신의 공격이 성공한 것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곧 이어 분수처럼 터지는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내장들을 보는 그 순간, 짜릿한 전율은 이내 극도의 공포감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본 죽음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몸이 칼에 의해 정확히 양분되는 잔인한 죽음을 목격한 것이다. 진은 순간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통하여 들어옴을 느꼈다. 속이 몹시 메스꺼웠다. 진은 오심으로 인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진은 바로 토할 수도 없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인 듯, 그의 모든 의식은 일시 정지되었으며, 정신은 텅 빈 무(無)의 상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에리필은 진의 뒷덜미를 잡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이 아이는 도대체 내 속을 얼마만큼 태워야지 정신을 차릴까?" 에리필은 답답한 심정을 실어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진은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름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화가 난 것이 분명한 에리필의 얼굴과 마주쳤다. 진은 멍한 시선에 한 줄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에리필은 웃지 않았다. 그것이 진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이 순간 진에게는 처음 본 잔인한 죽음도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머릿속은 섬뜩할 정도로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필과 날카로운 그의 검만 보일 뿐이었다. 잠시 진을 노려보던 에리필은 극도의 공포심으로 인해 창백하게 변하는 진의 표정을 보고는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렸다. 그리고 그는 남은 산적들이 패닉상태에서 빠져 나와 맹목적인 돌진을 하는 것을 보자 진을 뒤로 던지며 질풍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목을 잃은 산적들은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더 매섭게 무기를 휘둘렀다. 투박한 감산도가 에리필의 허리를 노리고 날카로운 도끼가 그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에리필의 얼굴엔 차가운 미소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리필의 검이 또 다시 번쩍하며 S자를 그렸다. 그러자 도끼를 휘두르던 사내의 가슴이 갈라지며 앞으로 쓰러졌고, 감산도를 휘두르던 자 또한 허리가 양단되었으며, 상체를 잃은 하체에서는 선홍색의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에리필은 피가 옷에 묻는 것이 싫은지 슬쩍 피하며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산적들을 하나씩 베어나갔다. 일방적인 도살을 끝냄에 있어, 에리필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마지막 단발마의 비명을 끝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늘 그래왔듯이, 에리필은 검끝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망자들의 영혼을 위해 잠시 그만의 의식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품속에 늘상 지니고 다니는,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 흰 천으로 검신에 묻은 피를 닦은 후, 마차로 돌아왔다. 진은 그 모습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우욱! 우웨엑... 콜록....하아......우욱!" 한참동안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는 진의 등을 리오스가 두들겨 주고 있었다. 비릿한 피내음으로 인해 계속해서 토하고 있던 진은 '강해진다는 것은 사람을 죽인다.'란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도 강해지면 남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순간 진은 한 주검에서 뿜어져 나온 피분수가 자신의 얼굴을 향해 강하게 쏘아져 옴을 느꼈고, 거의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붉디붉은 선혈들은 그의 양손을 흠뻑 적시며 팔을 타고 땅에 떨어져 피의 바다를 만드는 듯한 환상 속에 빠졌다. 다시 한번 속에서 울컥하며 뭔가가 올라왔다. 그러나 더 이상의 토사물은 없었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도 동경하며 얻기를 열망했던 그 강함의 결과가 오늘 이렇게 참담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진은 울었다. 아니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의 세계에서 그렇게도 공들여 쌓아올린 '강함이란 이름의 탑'이 참으로 허망하게도 일순간에 뿌리 채 흔들리며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소리 없는 통곡과 더불어 진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리오스는 진이 언젠가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비록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창졸간에 일어난 사건이라 하더라도 꿈을 먹고 사는 이제 겨우 13세의 소년인 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잔인한 현실이 그렇게도 빨리 그에게 찾아 왔던 것이다. 물론 진이 추구하는 강함은 때론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렇게 잔인한 현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냥 순수하게 강함을 열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리오스 역시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끔찍한 장면을 처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의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오스가 진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음성은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진아, 너희들이 싸웠던 여태까지의 낭만적인 전투와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어른들의 처절한 전투는 분명 차원이 다르단다. 진아, 너도 잘 알겠지만 오늘 우리가 겪었던 그 싸움은 후자에 속하는 것이란다. 좀 어렵게 이야기하면 적자생존의 싸움이라 말할 수 있겠지. 아무튼 여기에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지. 그것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강한 힘 말이야. 만약 아저씨가 없었더라면 저들 대신에 우리가 죽었을 거야. 그리고 에리필 아저씨가 저들보다 더 약했더라면 가진 것을 몽땅 빼앗기는 것은 차치하고, 아마도 그들이 누운 자리에 우리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있겠지. 안 그렇니? 진아! 오늘 겪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네가 추구하던 강함에 대한 깊은 회의와 엄청난 충격과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줄 형은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진아, 이제부터 형이 하는 말 잘 들어라. 사실 강함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아주 귀한 것이란다. 강함은 너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이요, 네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보호한단다. 따라서 강함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분명 달라진다고 봐야 옳겠지. 예를 들어 아주 어린 꼬마의 손에 칼이 들려져 있다고 생각을 해 봐라. 그 칼은 아이는 물론이요 다른 사람에게도 엄청난 위협이 되지 않겠니? 그리고 어느 나라에 욕심이 아주 많고 품성이 악한 왕이 있다면 그 나라 신민들의 삶은 얼마나 피곤하며 힘이 들겠니? 그러므로 강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야. 강함의 진보가 일 단계 상승하면, 그 강함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도 한층 성숙해지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단다. 강함이 있는 듯 없어 보이고, 없는 듯 있어 보이는 극도로 절제되고 정제된 마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흔들림이 없는 부동의 마음과 모든 것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대해(大海)와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강함으로 가는 대도(大道)를 밝혀 궁극에 이르게 하며, 각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로운 생(生)을 줄 수 있는 것이란다. 그리고 진아, 강함에 대한 너의 열정을 두고 보건데, 멀지 않은 장래에 네가 생각해도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너는 충분히 강해져 있을 거야. 그러나 강함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지, 인위적인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단다." 진이 이해하기에는 약간은 난해한 듯한 리오스의 장황한 설명에 한동안 훌쩍이던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것이다. 한동안 물끄러미 그러한 진의 얼굴을 바라보던 리오스가 편치 않는 마음으로 진의 손을 잡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에리필 역시 이 두 형제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선 그의 실력이면 산적들을 죽이지 않고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을 죽이려 도를 휘두르는 카르틴을 보는 순간, 그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후벼 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렇기에 에리필은 최소한 혈향(血香)이 가득한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게 진을 위한 최상의 길이라 생각하며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이럇! 가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 회] 8화. 하이 아카데미로... 3. 눈물을 질질 짜며, 토하기 까지 했던 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 일행의 근심을 해소시켜주었다. 그래서 리오스와 에리필은 속으로 안도하며 귀엽기 그지없는 진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완전히 회복한 뒤부터 진은 에리필에게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해 그를 상당히 귀찮게 했다. 검술이란 본래 외인에게 함부로 가르쳐 줄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에리필 역시 처음엔 근엄한 목소리로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나 어디 진의 고집이 보통 고집이던가! 강함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강한 소년이 바로 진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얼마 전에 리오스가 한 말이 진의 가슴에 깊게 새겨져 마치 절대불변의 신념을 가진 자처럼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함은 소중한 것들을 보호해준다!' 이 말이 어느새 진의 신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약했다. 소중한 것들을 보호해주기엔 터무니없이 약하다고 진은 생각했다. 자신이 엄청나게 강해지면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싸움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하기에 진은 한시라도 빨리 강해지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진의 옆에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존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리필이었던 것이다. 진의 갖은 애교와 협박 속에서 꿋꿋이 버티던 에리필은 결국 올슈레이 진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굴복하기에 이른다. "그럼, 가르쳐 주신단 말이죠?" 진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래.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검술이란 것이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리한 욕심을 내서는 오히려 아니 배운 것만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된다." 에리필은 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단지 검술의 기본 동작들이나 가르쳐 주어 무료한 시간이나 때우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디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던가! 그리고 그것은 에리필에게 고스란히 적용되어 그의 계획과는 분명 상당부분 어긋난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저씨처럼 검만 휘두르다 보면 그렇게 강한 일격을 뻗을 수 있는 건가요?" "응? 무슨 일격?" "아 그거 있잖아요. 산적 아저씨가 검으로 막았는데도 아저씨 검이 산적 아저씨 검까지 자르면서 끝장냈잖아요." 진은 아직도 죽였다란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돌려서 말했다. 에리필 역시 그러한 것을 느꼈지만 괜히 진의 아픈 마음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그보다 에리필은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검을 검으로 자른 것을 본 진이 놀랍게 여겨졌다. 에리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생각하다 대충 넘어가잔 생각에 가볍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리필은 진과 만난 이후로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린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이 순간 인지하지 못했다. "음, 그건 말이다. 그러니깐 그걸 설명하려면 아주 복잡하거든." "상관없어요!" 에리필이 은근슬쩍 넘어가려하자 진은 단호히 잘라 말했다. "...... 알겠다. 그만 쳐다보겠니? 네가 그리 계속 쳐다보니 몹시 부담스럽구나. 험험. 그래, 우선 네가 물은 것에 대답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니 그럴 수도 있단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진의 항변 섞인 반응에 에리필은 멋쩍은 웃음을 허공에 띄우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지. 하지만 사실이란다. 네 말대로 검을 계속 휘두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육체를 극한상태로 몰아붙여서 힘을 얻는 수련법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수련법은 예전 바이얀 대륙 사람들 즉 웨스트 대륙 사람들이 사용했던 수련법인데, 현재는 웨스트 대륙 사람들도 이 수련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너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 이유는 부단한 수련을 통해 기(氣)라는 힘을 얻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란다." 진은 에리필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히 물었다. "그런가요? 음…… 그럼 아저씬 어떤 방법으로 검을 자른 거죠?" "후자 쪽이란다." "후자라면 수련을 통해 얻는 기(氣)라는 힘을 가지고 검을 자른 거란 말이에요?" 에리필은 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론 진이 기(氣)라는 것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겨우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어김없이 적중했고, 에리필은 귀찮음에 절규를 토했다. "그래요? 그럼 기(氣)라는 건 무엇이며 그리고 그건 어떻게 수련하는 거죠?" 에리필은 머리를 긁적였다. '에휴, 내가 무슨 말을 꺼낸 거지? 저 녀석의 찰거머리 성격을 어찌 깜빡했더란 말인가!' 집요하게 이어지는 진의 공세에 연신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에리필의 마음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진은 '빨리 말하세요.'라는 마치 재촉하는 듯한 의미를 담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에리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좌불안석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회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결국 에리필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까짓것 기왕지사 이미 시작한 이상 제대로 가르쳐주리라'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왕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은 거 질질 끌지 말자!' 에리필은 자신에게 암시를 걸며 기(氣)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氣)라는 것은 말이지. 좀 전에도 언급했듯이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선천적인 기운인 원기(元氣)와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동화되지 않은, 한 마디로 정제되지 않은 기운인 태고의 기(氣)로 나뉘지. 하지만, 내가 사용하고, 대부분의 무인들이 사용하는 힘이 원기(元氣)이기 때문에 대개 기(氣)라고 하면, 원기(元氣)를 뜻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어쨌든 원기(元氣)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인간이 기(氣)라는 기운을 단전에 저장시켜 소우주라고 불리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금씩이지만, 실현시켜 주게 해주는 힘이란다. 이는 본래 인간의 몸이 온 우주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창조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지. 단지 모태에서 떨어져 나오는 최초의 분리(FIRST DIVORCE)로 말미암아 일시적인 단절에 의해서 인간은 선천적인 기(氣)는 노력여하에 따라 사용할 수 있지만, 정제되지 않은 태고의 기(氣)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 그러나 인간이란 그야 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벽을 뛰어넘게 되면, 최초의 분리를 하나로 모아 정제되지 않은 태고적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 그 말인즉 소우주인 인간의 몸이 대우주에 주파수를 맞추어(기공이 열리며, 정제되지 않은 태고적 기운인 우주의 기(氣)를 느낄 수 있는 단계) 끊임없는 교감과 합일을 통해 자신을 확장해 나아가면, 얻을 수 있는 기가 바로 우주의 기(氣)라 불리는 태고의 기운인데, 이러한 기운을 사용하는 단계에 다다르면, 그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고 하지. 비록 이론상 이기는 하지만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다 보면 '내가 우주요, 우주가 내가 되는' 대초인의 경지가 바로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길이라 할 수 있어. 에… 이쯤에서 각설하고. 기(氣)를 어떻게 수련하는 가에 대해 말해주겠다. 기(氣)는 앞서도 말했지만 몸속에 흐르고 있는 기운(氣運)을 일컫는다. 우선 기(氣)를 수련하기 위해선 기(氣)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기감의 과정이 무척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에 숙달시키는 데에 오랜 시일이 걸린단다." "기(氣)라는 것을 느끼기가 상당히 힘든가 보죠?" 진은 오랫동안 떠들던 에리필이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물음을 던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리오스도 흥미가 도는지 에리필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에리필은 두 명의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기(氣)의 존재를 누구나 쉽게 느끼고 사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천지는 모두 강자들이 널린 세상으로 변할 테지. 하지만 아쉽게도 이 기(氣)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실제로 기(氣)를 익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왜 그렇죠?" "당연하지! 실제 기(氣)라는 기운을 끌어내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방법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각기 독창적인 방법들을 고안해냈거든. 그렇다 보니 전승자 외에는 외인들에게 함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진과 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말로 에리필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래, 그렇다 보니 내가 사용하는 기(氣)의 수련법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想起)하면서 듣도록. 우선 기수련에 있어 일반적 과정인 기(氣)의 존재와 흐름을 느끼도록 해야 돼! 이것이 이루어져야 기(氣)를 단전이란 곳에 축적하고 축적된 기(氣)를 가지고 단절된 소우주를 확장하고 대우주와 합일시키는 거지." 에리필은 여기까지 설명하며 만족스런 웃음을 피워냈다. 머리가 좋은 리오스야 간단한 설명이었기에 당연히 이해를 했다손 치더라도 머리까지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던 진마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보며, 에리필은 자신의 명 강의에 스스로 감격하고 흥분하여 자아도취에 흠뻑 취해 있었다. 이에 에리필은 진정 오랜만에 느껴보는 지적 포만감에 본래 의도를 망각한 채, 이들 형제에게 기(氣)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애들아 잠시 등을 내 쪽으로 돌려 보겠니?" 진과 리오스는 에리필의 말대로 침대 위에 올라가 등을 돌렸다. 그러나 등을 돌리면서도 호기심이 강한 진은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의아함을 풀기 위해 물었다. "근데 등은 왜 돌리는 건데요?" "그건 말이지. 너희들의 기(氣)를 잠시지만 느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지. 이건 편법이지만 그래도 기(氣)를 포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거야." 에리필은 말을 하며 진과 리오스의 등에 한 쪽 손씩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을 갖다 댐과 동시에 에리필의 손바닥이 붉어지며 기이한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에리필의 붉은 기운이 점점 짙어지자 진과 리오스는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를 1분여. 뜨거운 기운은 사라지고 그들의 단전 부근에서 뭔가가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잠시 그것은 곧 잠잠해졌고, 미약한 이동의 흔적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조금만 주의를 소홀히 하면 그 위치를 놓칠 듯했다. 그리고 또 다시 1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미약한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지자, 진과 리오스는 꼭 있어야 할 무언가가 빠져 나간 듯 허전함을 느꼈다. 에리필은 아이들의 몸에서 자신의 기(氣)를 흡수하여 단전에 저장하였다. 어느새 그의 두 손은 가부좌가 된 두 무릎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진과 리오스는 신기한 경험의 여운을 음미하다, 그것이 점차 희미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짐을 느끼는 동시에 두 눈을 떴다. 그 시점에, 에리필 역시 그의 기(氣)를 단전에 저장한 후 눈을 떴는데, 그들의 시선은 허공에서 교차했고 무거운 침묵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의외로 리오스의 입이 먼저 벌어지며 말이 새어 나왔다.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뭔가가 뛰는 듯하더니 이내 그것은 사라지고 잔잔한 흐름, 그리고 미약한 이동이 마치 올챙이가 돌아 다니 듯, 내 몸의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는 느낌이었어요." 진 역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입을 열려다 말고 다물었다. 똑같은 말을 해봤자 입만 아프기 때문이다. 에리필은 이들이 어느 정도 기(氣)의 흐름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행한 인위적인 기운 때문이었지만, 애시 당초 재능이 아예 없는 이들이었다면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보통 10명 중에 2명꼴로 확률이 극히 낮은 편이다. 시작부터가 이러하므로 기(氣)의 보편화가 이루어지지 못함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진과 리오스는 낮은 2명의 확률에 들어간 셈이 되었다. "그래, 너희들은 그래도 가능성은 있나 보구나. 하지만 아까도 느꼈겠지만 기(氣)라는 것은 신비한 생명체와도 같아서 이동하기도 하고 스르륵 사라지기도 한단다. 그것이 몸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할 때 그 움직임이 워낙 미약하여 그것을 포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 모든 것이 처음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기(氣)의 포착 역시 처음이 어렵지 정신을 집중하여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훈련을 계속 하다보면 기의 흐름이 자연스레 포착될 것이야. 다음이 단전에 기(氣)를 축적하는 것인데 기(氣)라는 것이 워낙 천둥벌거숭이들 같아서 말이지. 오! 참 그래 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거야." 에리필의 절묘한 비유에 리오스는 감탄했고, 진은 항의했다. 하지만 에리필은 능숙한 동작으로 그들의 반응들을 가볍게 받아 넘기며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단전으로 기(氣)를 이끌어 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 다음은 에.......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단절된 소우주를 확장하는 건데, 기(氣)를 단전에 축적한 뒤, '움직여라'라고 의념을 보내다 보면 스르륵 하며 이동해 막힌 곳을 뚫는 작업을 쉽게 말해 소우주를 확장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아! 너무 많은 말을 했더니 목이 타는구나!" 에리필은 실제로도 갈증이 났지만, 내심으로 진과 리오스를 부릴 요량으로 말을 꺼내었다. 아니라 다를까 진이 재빠른 동작으로 주전자를 들고 와서 컵에 물을 따라 주는데,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느릿한 동작으로 컵을 받아든 에리필은 천천히 입술을 축이며 물을 목안으로 밀어 넣었다. 에리필은 얄밉게도 컵을 다 비운 후, 한 잔을 더 요구했는데, 진은 ꡐ누구를 종으로 아나ꡑ라는 항변의 소리가 목구멍을 통과하여 막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누르고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이 찰찰 넘치도록 따라 주었다. 그리고 그가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빼앗듯이 컵을 받아 주전자와 함께 저만큼 멀찍이 가져다 놓았다. 진의 이런 행동에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는 리오스와 에리필을 은근슬쩍 무시하며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런 진의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빨리 말해요!' '마실 것 마셨으니 빨리 말하란 말이에요.' 사실 진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자신의 궁금함에 타들어가는 속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마실 것을 요구하는 저 당당한 모습이라니. 하지만 어찌 하리요! 총대는 들고 있는 사람은 에리필인 것을. "그러니깐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소우주 확장까지요!" "아, 그래? 그렇군. 험험, 이제부터 이야기 할 것은 쿤이라는 것인데 얼핏 들어봐도 알겠지만 고대어란다. 어찌됐든 쿤이란 길이라는 뜻과 원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여기서 쿤이 왜 길의 의미를 가지냐 하면은 기(氣)가 지나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실제로는 쿤은 다른 쿤과 이어져 있지 않은 개별적인 개체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길을 연상시킬 순 없지. 여기까지만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쿤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면 그 의문이 풀릴 거야. 모름지기 쿤이란 우주와 인간의 몸을 연결하는 길로서 쿤을 열수록 우주의 호흡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된단다. 이 말은 쿤이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우리 선조들은 이를 보고 다리라고 하지 않고, 까마득히 먼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밟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더구나. 그만큼 쿤의 길은 멀고도 험한 여행과도 같다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본래 쿤은 그 자체가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단다. 뭐, 인간의 첫 번째 쿤인 륜 같은 경우에는 그 쿤에 도달하기 위해 어떠한 길이 형성되어 있지만, 이를 보고 길이라는 뜻이 쓰여 진 게 아니라는 것은 앞서도 말한 바 있으니 이해할 수 있겠지?" 에리필은 잠시 말을 끊고, 진과 리오스를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를 본 에리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사실상 륜이라는 쿤의 중심부는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것들은 마치 호흡을 하듯, 움직인다고 하더구나. 이런 이야기도 있는데, 그 옛날 태초에는 우주자체가 둥근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그것이 호흡을 하듯 움직였는데, 이 쿤의 모양이 태초의 우주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런 뜻이 포함되었다고 하더구나. 이쯤하면 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을 줄 믿으마. 각설하고 쿤이라는 것은 소우주의 단절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꽉꽉 막혀 있는데, 우리 몸에 있는 7 개의 쿤은 그 막혀 있는 형태나 쿤의 특성들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쿤을 뚫는 방법도 제각각이란다. 그렇다 보니 쿤을 뚫는 다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란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쿤을 확장하려고 노력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비록 완전히는 아니지만, 각각의 쿤들을 여는 방법을 알아냈단다. 그러한 방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강맹한 기(氣)와 깨달음이라는 거다. 이 두 가지를 이용해서 쿤을 확장하면 기(氣)의 기운이 늘어나는데, 그 이유는 단절된 소우주가 조금씩 대우주와 합일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란다.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우주의 호흡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이는 앞서 내가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 뭐, 실제적으로 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엄청 길어지기에 이 이야긴 여기까지로 하자. 그리고 뒤에 대우주와 합일이니 이런 건 사실 나도 잘 모르고 있거든. 어쨌든 쿤의 확장이 진정한 고수의 길로 들어서는 거란 말이다." 에리필은 자신의 의도완 상관없이 복작한 기(氣)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해버렸다. 그러나 뭔가를 빠뜨린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많은 것을 설명했지만 중요한 뭔가를. 그때, 에리필의 의문을 풀어주는 청아한 음성이 방안을 울렸다. 그것은 지금껏 가만히 있던 리오스의 음성이었다. "기(氣)에 대해선 대충 알겠어요. 그런데 그 고유한 기(氣)에 대한 수련법이란 건 언제 설명해 주실 거죠?"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찾으려는 것과 같이 당당히 요구하는 리오스의 모습이 젊은 날의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에리필이었다. 그러면서도 에리필은 리오스의 물음에 대답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입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딴전을 부리는 에리필의 그 모습을 에리필 자신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간에선 저 모습을 보고 단 세 마디로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안면 뭉개질 놈!' 에리필은 특유의 뻔뻔함으로 무장된 자신의 철가면을 믿고 버텼지만, 결국 리오스의 특제 버터에 의해 느물거려 철가면은 속절없이 벗겨져 버렸다. "알겠다. 알겠어! 너희 형제들은 어찌 이렇게 옹고집들이냐! 지금이야 필요 없는 거겠지만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겠지. 이것은 바로 내 검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인데……." 에리필은 '기(氣)의 흐름과 검술의 흐름을 일치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단전에 저장시킬 때, 기(氣)를 어떻게 움직여야 더 많은 양이 흩어지지 않고 축적 되는가?'를 가르쳤다. 그러나 워낙 어렵고 심오해서 천재라는 리오스도 한 번 듣고는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진이야 오죽할까? 진은 그 다음날도 여행 틈틈이 에리필에게 물었고, 에리필은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아직 기(氣)의 존재도 포착하지 못한 진과 리오스에게는 심오한 기(氣)의 세계는 너무도 요원(遼遠)한 일이었다. 진과 리오스는 그 밖에도 에리필에게 검술의 기본적인 골격을 배웠는데, 세부적인 변초와도 같은 복잡한 것은 배우지 않았다. 기본 중에 기본인 베기 기술과 찌르기를 배웠는데, 확실히 몸으로 때우는 것은 리오스 보다 진이 뛰어났다. 그러나 센스나 감각 면에선 리오스도 진 못지않게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었다. 에리필은 이들 두 형제를 가르치며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검을 배운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어느 정도 골격이 잡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이야말로 검에 익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검을 익히는 이들에겐 너무도 친숙한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진과 리오스가 비록 검을 그럴듯하게 휘두른다고 하여 그들의 검 역시 그럴듯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과 리오스는 이 기본이라는 것이 몸에 배여 의식하지도 않은 순간에도 펼칠 수 있기 위해, 아직도 오랜 여정을 더 가야 할 것이다. 검의 길은 자고로 멀고도 먼 끝을 알 수 없는 끝없는 수평선과도 같은 길이니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란 공평한 신은 한 달이라는 약속된 시간을 다 채웠다. 그리고 이들은 목적지인 메테르티아 시에 도착했다. 입학식을 열흘 앞둔 어느 날의 일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 회] 9화. 하이 아카데미로... 4. "이야, 여기가 그 유명한 메테르티아 시인가요?" "그렇지. 여기가 바로 십대 도시 중 한곳인 메테르티아 시지." 진과 리오스는 생전에 이렇게 거대한 도시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리오스도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근처에 있는 큰 도시에 가 보았지만, 이 정도로 거대하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때 그 큰 도시가 작은 마을로 여겨질 정도로 메테르티아 시는 가히 작은 제국이라 불릴 만 했다. 진은 잘 정돈된 도로를 걸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리오스는 진처럼 눈에 띄게 기웃거리지는 않았지만 발전된 도시의 면모를 훑어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의 뒤를 느긋한 모습으로 따라가는 에리필은 이들 형제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사실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집안을 떠나 그 자체가 엘리트가 되었다는 특권의식 때문에 얼마나 거만을 떠는지 알고 있는 에리필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소탈하면서도, 순박한 모습에 절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이들의 순수함이 거짓으로 꾸민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에리필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은 그가 더럽고, 추악한 인간들의 모습에 실망해 있다 진 형제로 인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본 듯 했기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런 흐뭇한 상념 속에 빠져있던 에리필을 향해 앞서서 걷고 있던 진이 갑자기 뒤로 돌아보며 물었다. "아저씨,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잔 가 봐요?" "뭐? 아,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말하는 거구나. 음, 대충 그렇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왜냐하면 여긴 모든 게 풍성한 도시인 메테르티아 시니깐." 한참을 돌아다녀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이들은 여장을 풀어둔 '행복한 여관'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일행은 잡아놓은 방으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무공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기(氣)에 대해선 아직도 알 듯 말 듯해요. 한번씩 그 기운을 포착하는가 싶으면 사라지고, 에휴……. 이게 완전 사람을 갖고 논다니까요." 진의 솔직담백한 태도에 에리필은 너털웃음부터 새어나왔다. "허허허, 그래, 그럴 거다. 그래도 기(氣)의 기운을 약간이라도 포착했다는 것이 어딘데. 조만간 기(氣)를 포착하는 데에도 익숙해 질 거다. 요는 익숙하냐 안 익숙하냐의 문제거든. 기(氣)도 자신하고 많이 놀아준 아이한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이란다." 에리필의 설명에 진의 얼굴은 대번에 '화악'하고 밝아졌는데, 그의 얼굴 변화는 성격을 대변하는 듯해서 빠르고 잘 변했다. 그리고 진의 옆에서 리오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음을 에리필은 놓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내가 가르쳐준 검법의 기초들은 부지런히 익히고 있겠지?" "예!" 에리필의 물음에 진과 리오스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두 형제를 바라보던 에리필이 말했다. "그럼 한 번 볼까?" 에리필은 말을 하며 저번 도시에서 산 목검 두 자루를 진과 리오스에게 던졌다. 그리고 에리필은 말을 접고 문 밖으로 나갔고, 진과 리오스도 목검을 들고서 그의 뒤를 따랐다. 에리필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여관의 뒷마당까지 나와 있었다. 5층 건물짜리인 여관의 뒷마당은 허허벌판처럼 아무것도 없었지만 크고 넓어서 검을 수련하기엔 딱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이러한 마당이 있는 여관에 여장을 푼 것은 에리필이 자신과 있을 동안만이라도 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그만의 배려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검을 매만지며 따라 들어온 두 형제는 에리필의 지시에 따라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좋아. 검을 들고 있는 자세는 태산이 무너진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꿋꿋함을 담아야 한다. 한번!" 에리필의 '한번'이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공을 향해 뻗어있던 두 개의 목검 끝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그어졌다. "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앞의 모든 것들을 쓸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 강인한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나는 게 없다. 너희들의 휘두름엔 강인한 태풍을 담아야 한다." "자, 지금부터 태풍을 담은 검을 각 방위로 휘두른다. 실시!" 에리필의 엄격한 지도아래 진과 리오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에리필의 지도가 탁월해서인지 아님 이들 형제의 재능이 뛰어나서인지 한번의 수련 후에 뒤따르는 성취감이 남달랐다. 그리고 진과 리오스는 이 맛을 벌써부터 알았기에 더욱더 수련에 매진했다. "검에 빠름만을 추구하지 마라! 태풍의 거친 힘도 담아라!" 목검을 쉬지 않고 휘두르는 형제에게 에리필이 한 번씩 던지는 충고는 그들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에리필이 보기엔 아직도 너무나 부족했다. 그는 내일이면 떠나야 되는데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들 형제라면 조금 더 단시간에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그를 더욱 부추겼다. 그렇다 보니 진과 리오스의 훈련은 생각 외로 강도 높은 수련이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목검을 휘두른 지 두 시간이 흘렀을까? 에리필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진과 리오스를 향해 말했다. "여기까지!" 그가 수련의 끝을 알리자, 진과 리오스가 동시에 바닥으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들은 이제껏 정신력으로 겨우겨우 버티었던 것이다. 그들의 체력은 예전에 바닥난 상태였지만 이를 악 물고 견딘 것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엔 검을 추구하는 자들의 뜨거운 열망이 담겨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불꽃은 지옥의 불꽃과도 같은 영원함과 뜨거움을 가지고 있었다. 에리필은 그런 그들의 열망에 사로잡힌 눈빛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무엇이 자신의 입술을 막고 있는지 잠시 뜸은 들인 뒤,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호송자(escorter)다. 그리고 나의 임무는 리오스와 그의 동생 진을 무사히 메테르티아 시로 호송시키고, 입학식을 무사히 치른 후, 메테르티아 아카데미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어요." 에리필은 형제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았다. 임무의 대상에게 이토록 정을 느끼기도 처음이었기에 마음잡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일을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더욱 수련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이런 그의 무술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바로 진과 리오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들과 헤어지기가 몹시 힘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거운 입술을 열고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그리고 내일이 리오스의 입학식 날이고, 나의 임무는…… 끝이 난다. 그러니깐 너희들 을 볼 수 없다는 말이지. 너희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것도 오늘로 끝이고……." 에리필은 뒷말을 흐리며 그의 심정을 대신했다. 그만큼 흔들리고 힘이 들었다. 말 한마디 하기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속에서 뜨거운 한숨이 토해지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진은 놀란 듯 다크 블루빛의 눈동자를 크게 만들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아는 게 당연했다. 진은 워낙 한 곳에 빠지다 보면 다른 곳엔 신경을 끊고 살아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반응은 달랐지만 둘의 마음엔 아쉬움과 서운함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이별의 아쉬움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아쉬움과 서운함이라는 감정 속에서 한참을 헤매는 진을 뒤로하고 리오스가 입을 열었다. "후우, 아저씨하고도 이제 친해지는가 싶었는데 헤어져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그리고 검에 대해서도 아쉽고요. 어쨌든 여기까지 데려다 주시고 저희에게 보내주신 사랑과 수고하심을 잊지 못 할 거예요." "그래." 리오스나 에리필의 음성엔 씁쓸함과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 와중에도 리오스와 에리필의 마음엔 의아함이 생기고 있었다. '진의 반응이 너무 조용한데? 무슨 일이지? 가지 말라고 떼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용하게 넘어갈 아이는 아닌데?' '음…… 진이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둘은 이렇게 그들의 의문을 뒤로하며 진을 살피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개를 푹 숙여 어깨까지 내려오는 다크 블루빛 머리칼이 눈을 가리고 있는 진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땀마저 온기를 뺏어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던 진의 고개가 들려지며 다크 블루빛 머리칼이 뒤로 스르르 넘어가며 머리칼의 색깔과 똑같은 다크 블루빛 눈이 드러났다. 거기엔 아쉬움도 서운함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두 사람은 순간 의외의 상황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특히 에리필이 느낀 배신감은 리오스보다 더했다. 자신과 헤어진다는데 오히려 눈을 반짝이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먼저 드는 배신감은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돌변한 두 사람의 눈빛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형아, 그리고 아저씨. 저 결심 했어요!" 진의 뜻밖의 말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궁금함이 들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뭘 결심했다고?" "결심이라니?" 진은 두 사람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방에 두 사람을 골로 보내는 소리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나, 아저씨 따라 갈 거야! 그래도 되죠?" "뭐?" "무슨?" 두 사람은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에 허덕이며 물었다. 그러나 진은 자기 딴엔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연륜이 있는 에리필이 정신을 먼저 수습하며 말했다. "나를 따라간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너는 너의 형을 따라가야 하잖느냐?" 뒤따라 리오스도 정신을 챙기며 물었다. "그래, 넌 메테르티아 아카데미로 가서 무술을…… 너 설마?" 말을 하다말고 뭔가 느끼는 게 있는 리오스가 멈칫하며 머뭇거렸다. 이에 에리필은 리오스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껴 그에게 무언의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리오스가 계속 멈칫거리며 대답을 회피하자 진이 나서서 그 의문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니깐, 제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 배경을 보자면 말이죠, 저는 본래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 가서 무술을 좀 배우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 가는 와중에 아저씨를 만났고 무술도 배우고, 계속 배우면 더 강해질 게 확실해요. 그런데 뭣 하러 그 답답한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 들어가겠어요? 차라리 세상을 여행하면서 아저씨께 무술도 배우고 실전경험도 늘리고 얼마나 좋아요!" 에리필은 비로소 진의 말이 뜻하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는 기뻤다. 진 형제를 가르치고부터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사실 자신이 호송자(escorter)가 된 것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한 것 외에도 실상은 이미 자신이 단순히 몸으로 수련하는 경지를 넘겼다 보니 마냥 수련만 하기에는 무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슬슬 질리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마침 자신의 무료함을 깨부수고, 자신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진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마도 정식으로 진을 가르치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그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음만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의 나이가 성인으로 인정받기엔 터무니없이 어렸기에, 그는 엄연히 부모를 의지하고 보호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진이 부모의 슬하에서 잠시 벗어나 있지만, 결국 그의 나이는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어렸다. 에리필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조각 같은 천재를 보았다.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금발은 그의 외모를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176 키르(센티미터) 정도의 늘씬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는 언뜻 보면 많은 여자들의 모성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비실비실한 뼈다귀 위에 살점 몇 점을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 탄탄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에리필은 리오스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단순한 약골 수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생각이 무척 궁금했다. 어찌됐든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한 결론이라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리오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진의 의사도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진의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간접적이나마 진의 앞으로의 일을 위임받은 리오스 뿐이다. 리오스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진의 말은 단순한 칭얼댐이 아니다. 그것은 확신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진은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아는 아이다. 지금의 일은 아마도 순간적으로 생각나서 한 말이지만,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자신의 행동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확고함이 드러나 있다. 아니 자신이 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철부지 어린아이의 섣부른 발언일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의 이번 일에 가지는 마음은 결코 어수룩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은 아침인사처럼 가볍게 던졌지만, 그의 눈빛은 굳은 신념으로 반짝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진에게 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메테르티아 아카데미는 진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둬버릴지도 모른다. 에리필이란 사람도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믿을만한 사람인 것 같다. 기(氣)를 익히는 기법이나 검술과 같은 기술은 함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나 그는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성품 또한 믿을 만 하다. 이것은 직감이다. 뭐라 내세울 만한 증거 따위는 없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무엇보다도 끌리는 것은 진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그가 쏟는 관심과 사랑이 전해진다. 그러나 부모님이 문제다. 진을 에리필과 함께 여행을 하게 만든다면, 부모님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리오스의 머릿속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거다 하고 정해진 해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그는 알고 있었다. 답은 애시 당초 하나였고, 예전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하자니. 한숨부터 절로 나왔다. "후우!" 뜨겁고도 답답한 기운이 목을 통해 빠져나오며 한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머리를 흔들어 가볍게 만든 후, 리오스가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어?" 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실 텐데?" 진의 굳은 신념이 잠시 흔들렸다. "…… 하지만 형이 잘 말해줄 건데, 뭐." "……" 리오스는 말없이 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냉철한 이성이 담기어야 할 눈동자엔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공간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깨어져야 했다. 자연의 순리에 대한 역행은 언제나 깨어짐이라는 극단적인 말로를 보여주기에. 리오스의 고개는 진을 스쳐 에리필에게로 고정되었다. 에리필은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찌릿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이것은 무엇인가? 일개 소년의 시선에 자신의 감각이 놀라 날뛰고 있었다. 이것은 투기도 살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애라는 진정이 담긴 기운이었다. 에리필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물음을 던졌다. "뭔가?" 리오스의 잔뜩 굳어져 있는 입술이 들썩이더니 벌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청량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부탁이 있습니다.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집히는 게 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먼저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일일지라도. 리오스는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며 말을 이었다.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진은 아저씨를 따라가고 싶어 합니다. 어쩌실 생각이신지?" 리오스는 에리필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결국 진이 원하고 리오스가 승낙하더라도 에리필이 거절하면 끝인 것이다. "내 생각 말이냐? 음…… 글쎄다. 쉽게 결정을 내리기엔 좀 무리가 가는 문제 같구나." "그런가요? 그렇다면 내일 저의 입학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까지 결정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진을 데려갈 것인지. 데려가지 않으실 것인지." 순간 에리필의 눈이 둥그레졌다. 리오스의 말은 승낙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너의 뜻은……." "저의 뜻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진과 아저씨죠. 내일 입학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까지입니다. 그럼!" 리오스는 말을 마치고 목검을 들고 공터를 빠져 나갔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자신의 의지는 이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말을 대신하는 듯했다. 진과 에리필은 리오스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라앉은 붉은 황혼이 그의 머리 위에서 화려한 조명처럼 빛을 내고 있었고, 붉디붉은 기운에 감싸인 그의 등은 태양만큼이나 뜨겁고도 따스했다. 마치 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폭발하여 붉은 기운을 형성하듯이 말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 회] 10화. 하이 아카데미로... 5. 리오스는 대략 백여 명은 넘어 보이는 많은 소년 소녀들과 함께 거대한 돔 형식의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연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횡렬로 한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실내에는 빈 공간이 남으니 이 방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건물은 평소 강당으로 쓰이는 곳인 듯했는데, 금빛 철테 안경에 허연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이 강단 위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금색에 빨간 선으로 무늬를 그려 놓은 길다란 모자를 안경 위에 얹혀 놓은 듯한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체격은 깡마른 편도 아니고 뚱뚱한 편도 아닌 보기 딱 좋은 보통 체격이었다. 그리고 금색 일색으로 도배한 듯한 옷은 천박하다는 생각보단 인자한 노인의 품위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저는 사람들이 피요르티 드고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입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 해 저는 '역사학의 두더지'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험험, 여러분들은 저희 메테르티아 아카 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잠시 후면, 입학식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선 여 러분들이 저 문을 열고 나가시게 될 때,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것에 놀라 시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먼저 해두고 싶습니다. 에…… 그리고 밖에서 쿠히루 조세판 교장 선생님의 환영인사와 메테르티아 시의 시장이신 도요이프 프린샤님의 축하 인사로 식이 시 작해 학교 소개 및 준수사항 그리고 교칙 등을 간략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그외의 것들은 입학식이 끝나고 내일 설명회 때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드고르의 설명이 끝나고 얼마 후,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종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다. 그것을 기점으로 백여 명의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오스도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는데,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문에는 봉황이 새겨겨 있었으며,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문은 리오스를 포함한 백여 명의 학생들이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 음영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 음영 위에 고고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봉황이 날개짓 하며 하늘을 오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힘찬 역동감이 느껴졌다. 이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리오스는 긴장된 마음이 이완됨을 느꼈으며, 마음속으로 굳건한 다짐을 했다. '이제 시작이다! 저 문이 열리고 나면 나의 인생은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서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나를 갈고 닦을 것이다! 내 모든 것은 여기에서 새롭게 만들어 질 것이다!' 리오스가 마음속으로 비장한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봉황이 새겨진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이 열리자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빛에 의해 짙은 음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빛과 함께 무언가가 들어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소리였다.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 그것은 열광해서 지르는 거대한 환호성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메테르티아 시의 자랑거리인 메 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입학생들을 환영하는 메테르티아 시에 사는 사람들의 외침이기도 했다. 놀라지 말라고 이미 언질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리오 스만은 어떠한 놀람의 표시를 하지 않은 채, 문 밖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에 주위에 있던 몇몇 입학생들의 눈은 마치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러한 그들의 시선을 깡그리 무시하며 계속해서 걸음발을 옮겼다. 그런데 이들이 이토록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입학생들을 환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다른 도시엔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처럼 큰 교육기관이 없다. 나머지 구대도시와 수도에 세워진 아카데미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졸업생들 때문이다. 그들은 이들의 거창한 환영 식을 잊지 못해 매년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거금을 내놓는데, 이것의 대부분은 메테르티아 시의 복지사업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 대부분이 관리직이나 학계에 적을 두고 여 유로운 삶을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이것 또한 연례행사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본관 앞에 마련된 강단은 그 크기가 무척 커서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좁다 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 강단 앞에는 백여 명의 입학생들이 서 있었다. 대부분의 입학생들 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것이 흥분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들의 흥분된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발에 하얀 수염이 유난히 돋보이는 노인의 환영인사는 너무도 간단히 끝이 났다. 뒤이어 풍채가 좋고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인 도요이프 프린샤의 축하인사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간단 간결한 인사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인사말은 지겹다.'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이에 지금껏 긴장과 흥분으로 심장이 심하게 두방망이질치고 있던 입학생들도 차츰 여유를 찾게 되고, 그들은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입학식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축하 인사에 이어 학교소개 및 준수사항과 교칙을 한 눈에 봐도 고지식할 것 같은 금발의 중년인이 나와서 설명했다. 금발의 중년인은 감정이라곤 한점 섞이지 않은 무심한 목소리로 한 줄씩 읽어내려 갔다. 그가 마지막 줄을 읽고, 폐회식을 알리자 청명하면서도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고요 속에 침잠되어 있던 십만이 넘는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메테르티아 아 카데미의 입학식은 바로 지금부터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부르짖는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러했다. "식은 되도록 짧게, 축제는 가능한 한 길게!" 이것이야말로 메테르티아 시민들이 바라는 입학식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헐헐, 이번 입학식도 꽤나 성대하게 치러지겠구먼." 쿠히루 조세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서 같이 몸을 일으키는 도요이프 프린샤에게 말했 다. "그렇게 될 것 같군요. 이리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분명 화려한 축제가 될 것 입 니다." 범상치 않은 두 사람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그 걸음엔 감당치 못할 무게가 담겨 있었는데, 그 뒤를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을 따르는 그들의 걸음은 행여 실수로 라도 이들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는 듯, 조심조심 그리고 천천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생각 외로 짧은 입학식에 리오스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본래 방귀 꽤나 뀌는 족속들은 성대한 것을 좋아하며,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데, 의외로 너무도 빨리 식이 끝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이 발생한 이면에는 앞의 환영사와 축사를 맡았던 두 사람의 너무나도 짧은 인사 때문이라는 것을 리오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 리오스는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인연의 고리가 자신과 그들 사이에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리오스였다. '풋, 리오스야,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아무리 너라도 저 두 사람과 너와의 인연의 고리가 얽 혀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리오스는 공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게 되자, 괜히 픽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와 함께 그 는 자신의 허황된 생각을 나무랬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허황된 생각이 아니라, 나중에 실현될 중요한 인연의 고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비록 그것이 악연일지 선연이 될지 는 모르겠지만. 리오스는 내일 아침 10시에 있을 설명회를 앞둔 나머지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얻었다. 이것은 다른 입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은 오늘 있을 메테르티아 시의 축제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측의 배려였다. 메테르타아 시민들은 모두가 들떠 있었고, 그들의 얼굴엔 한결 같이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축제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잡상인들이 하나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는 아이들이 천진난만 웃음을 띠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수많은 폭죽들이 터질 것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음유시인들의 아름다운 노래들이 울려 퍼질 것이다. 이로 보아 오늘은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입학생들의 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이 오늘은 메테르티아 시에 사는 모든 이들의 날인 것이다. 모두가 웃고 즐길 수 있는 하루! 그 날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입학식일 것이고. 리오스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과 에리필을 대동한 채,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정문을 나 섰다. 그리고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은 진이 옆길로 자주 샜기에 가는 길보다 3배나 많은 시간 을 투자해야 했다. "아저씨…… 잘 부탁드립니다!" 리오스는 여관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에리필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비록 뜬금없는 말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리필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진정을. 그가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걱정 하지 말거라. 네 동생 진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테니깐. 만약 진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와 너의 부모님을 내 어찌 볼 수가 있겠느냐!" "감사합니다. 솔직히 제가 아저씨께 저 철없는 동생을 맡기려는 것도 아저씨 실력을 믿기 때 문입니다. 오면서 알게 되었는데, 호송자(escorter) 랭크 A급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힘이라면 진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면서, 안전 또한 책임지실 수 있 으리라 생각했기에 아저씨께 진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에리필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띄워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 었기에 부인은 하지 않았다. "하하하, 이거 너무 띄워 주는 거 아니냐? 하하, 하지만 믿어도 좋다. 진의 안전과 진을 강 하게 만드는 것을. 그런데 너에게 사람을 공중에 띄워 주는 재주까지 있다는 건 몰랐구나! 하하하, 이거 다시 봐야겠어." "…예? 하하, 예. 하하하하!" 리오스는 에리필이 무슨 말을 하나 감을 잡지 못하다가 농담인 줄 알고서 같이 웃음을 터뜨 렸다. 진은 대화에 끼일 수 없는 상태인지라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대충 대화도 마무리 되어 가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밖에 안 나가요?" "지금 나가봐야 별로 볼 건 없을 거다. 조금 있다 해가 질 때 밖으로 나가면 돼. 원래 메테 르티아 아카데미 입학식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있을 폭죽놀이거든. 시 당국에서 제공하는 폭죽이라던데, 엄청난 양이라고 하더구나. 구경하면 재밌을 거다." "그래요? 음. 그럼 그때까지 뭘 하고 있지?" 뒷말은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귀가 밝은 에리필은 그 작은 소리마저 놓치지 않았다. "심심한가 보구나. 그럼 기(氣)수련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리고 리오스에게도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 들어가서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 나. 기본적인 것은 웬만큼 가르쳐 주었기에, 혼자 수련을 해도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한 달 안에 기(氣)를 단전에 저장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속도라면 매우 빠른 속도라 할 수 있단다. 특히 너의 이해력은 엄청날 정도로 뛰 어난 편이다. 솔직히 네가 공부에만 매달리고 수련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흙 속에 있는 진주 를 그냥 버려두는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단다. 그래서 나는 네가 수련을 계속했으면 하는구나." 에리필의 간곡한 부탁에 리오스는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이 사람은 나에게도 정을 느꼈나 보구나.' "걱정하지마세요. 저 역시 기(氣)와 검술에 상당히 매력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리오스의 말에 에리필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리오스의 어깨를 잡으며 감격에 젖은 목 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네가 검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메 테르티아 아카데미 안에 있는 검을 아는 자에게 사사를 부탁하는 것도 좋은 생각일 듯 하구나." 에리필의 충고에 리오스는 감사의 뜻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스의 얼굴에도 어느새, 멋진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만의 뜨거운 분위기가 형성되자 또 다시 대화에서 소외되었던 진이 그 소외감을 털어내듯 한 소리 했다. "다 좋아요. 근데 심심하다고요. 기(氣)수련 하기로 했으면 지금 바로 하자구요." 진의 목소리엔 짜증과 함께 투정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슬쩍 미소를 지 으며 진의 요구대로 행했다. 진과 리오스는 가부좌를 틀며 침대위에 앉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사실 지금에야 이 자세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에 가장 적당하며, 가장 편한 자세라 할 수 있지만. 진과 리오스가 처음 이 자세를 만들 때만 해도, 온 몸이 땡기고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부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문제였었다. 기(氣)를 포착하려면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자세에 온통 정신을 뺏겨버리니 집중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오직 기(氣)를 포착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에리필은 둘의 집중력에 입이 벌어졌다.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리오스의 집중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진이 타고난 무재라고 한다면, 리 오스는 센스와 집중력의 귀재였다. 이러한 에리필의 놀람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더욱더 기(氣) 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두 사람은 기(氣)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떠난 탐험에 흠뻑 빠져 있었다. 곧 이어, 에리필도 기(氣)수련에 빠져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과 리오스는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그들은 에리필을 건드리지 않았다. 기(氣)수련 할 때, 건드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잠시 후, 에리필이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는 동작을 몇 번 한 후 눈을 떴다. 그리고 에리필의 눈에서 번쩍하는 기광이 나타 났다 사라졌다. 진과 리오스는 매번 보는 거지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호기심이 많은 진이 결국 참지 못하고 궁금증을 토로했다. "아저씨, 그거 아세요? 아저씨가 기(氣)수련한 후, 눈을 뜰 때마다 번쩍하는 빛이 눈에서 나오는 거 아세요?" "당연히 알고 있지. 기(氣)를 계속 수련하다 보면, 눈에서 빛이 나오게 된단다. 일정 단계 이 상의 수련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이야, 아저씨 확실히 강한가 봐요. 눈에서 빛도 막 나오고." 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에리필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할 말을 잠시 잃었다. 빛이 아무리 나와도 실전에서 힘을 못 쓰면 그만인 것을. 그렇지만 에리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꿈 많은 소년의 꿈을 짓밟고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허허,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자, 이제 날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으니 밖으로 나 가 볼까나?" 창 밖은 어느 새, 빛보다는 어둠이 많은 밤이라는 세계로 바뀌고 있었다. ~~~~~~~~~~~~~~~~~~~~~~~~~~~~~~~~~~~~~~~~~~~~~~~~~~~~~~~~~~~~~~~~~~~~~~~~~~~~~~~~ 다음화는 불꽃놀이~~~~ 축제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 회] 11화. 하이 아카데미로... 6.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은은한 조명이 사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소란스러운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팔짱을 끼고 연인들 특유의 느끼한 미소를 입가에 만들며 돌아다니는 아벡크족들이 있는가 하면, 근엄한 표정으로 감찰이라도 나온 듯한 모습으로 축제를 구 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특유의 호기심과 천진난만한 미소로 축제장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아이들도 빼놓을 수 없었다. 마치 진처럼 말이다. "진아, 잠시만!" 리오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진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처럼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은 초롱초롱했으며, 놀란 토끼 마냥 한껏 치켜 떠져 눈알이 튀어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은 귀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한껏 벌어져 있었다. 진은 빠른 걸음으로 시장 통은 물론이요, 온 거리를 누볐다. 마치 이곳이 자신의 주 무대였던 바이사카 시 인 냥 말이다. 에리필은 리오스와 함께 진을 쫓는데 정신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진은 사람들 사이를 미꾸라지 처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약자가 되어버린 에리필과 리오스는 그의 뒤를 쫓아 다니는 힘든 노역을 감내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진의 폭주를 막은 것은 리오스도 에리필도 아닌 달콤한 아이스크림이었다. 뱀이 똬리를 틀 듯 말려 올라간 아이스크림은 새하얀 크림 색에 빨간 딸기 맛이 느껴 지는 붉은 색소를 첨가해 맛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쏠쏠히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진은 행복한 미소를 안면에 가득 채우며 아이스크림을 혀로 야금야금 핥아먹고 있었다. 그 뒤를 리오스와 에리필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들 손에도 어김없이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셋 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걸음을 옮기던 세 사람이 시 곳곳에 마련된 인공 분수대 중 한곳에 도착했다. 그 순간 도시는 암흑천지로 변했다. 한 마디로 메테르티아 시에 존재하는 빛이란 빛은 모두 사라졌다는 말이다. 도시는 칠흑 같은 어두움만이 온통 지배했다. 그러기를 몇 십초.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감싸 안으며, 두려운 마음으로 다음 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르지만, 진과 리오스는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그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오스는 대략적이나마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에 막연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어, 느긋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대하며 기다 리고 있었다. 한편 진이야 단순한 머리구조 상, '어둡다. 그럼 곧 밝아지겠지.'하는 단순한 사 고회로에서 얻은 출력물 때문에 걱정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다. 정적과도 같은 어둠은 한 순간 '피융!'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쏘아지는 붉은 용에 의해 사라졌다. '피융!' '슈슈슝!' '퍼엉퍼엉퍼퍼엉!' 메테르티아 시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폭죽들은 엄청난 폭죽음과 함께 그 화려한 모습 들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그것들은 칠흑 같은 암천의 하늘에 아름다운 수를 놓으며,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였으며, 보는 이들의 눈동자엔 경이로움과 입에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수많은 환상동물들의 모습들이 하늘위에 집을 지었고, 한 순간 펑하며 터지는 폭죽들은 그들의 마지막을 알림으로써 새로운 빛의 씨앗들을 하늘에서 메테르티아 시로 뿌렸다. 또한 그것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쉴 새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폭죽이 터지면서 하늘을 메우는 색 들도 매우 다채로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황홀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폭죽이 터짐과 동시에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행진가 같기도 했으며, 군가 같기도 했는데, 이 노래는 다름 아닌 제국의 국가였다. "해일과 함께 드러난 우리의 대지여! 문명과 문명 속에서 탄생한 우리의 대지여! 피와 피 위에 세워진 우리의 대지여! 이곳이 우리의 대지이니 그녀의 이름은 바로 라크리나! 자랑스런 우리의 수호신! 그녀의 이름은 라크리나! 라크리나! 라크리나! 라크리나! 우리의 대지 우리의 주인 라 크리나! 우리의 삶은 라크리나 제국 위에 영원하리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어깨동무를 하며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시작은 음유시인들의 입에서부터였으나 이내 모두의 입에서 흥겹게 흘러나왔다. 수많은 주인들이 바뀌었어도 언제나 한결 같은 이곳은 라크리나 제국이었다. 이 초거대 제국 은 서로 다른 두 문명이 충돌해 흘린 피가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 처절한 싸움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진 조약아래 만들어졌다. 이 조약은 당시 두 제국을 이끈 대왕들의 자식들이 혼인 함으로 성립되었고, 그들에게서 탄생된 생명이 세상이 나오면서 단순한 조약을 뛰어넘어 진정한 평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처절했던 전쟁을 완전히 해소시킨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라크리나였던 것이다. 초거대 제국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 생명. 비록 수많은 시간이 흐르며 제국의 주인은 그녀의 피 가 아닌 다른 피의 주인들에게 넘어갔지만, 그 어떤 폭군도 제국의 이름을 그녀의 이름에서 빼 앗지 못했다. 진은 지금 보다도 훨씬 어렸을 때, 아리오네에게서 이 노래를 배우면서 이 이야기를 들었었다. 진은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리오스도 힘차게 불렀다. 평화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라크리나! 그 녀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찬양되었으며, 축복의 대 상이 되었다. 모두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하늘에선 화려한 폭죽이 터졌고, 터진 폭죽의 잔해들은 명멸 하는 빛의 모습처럼 메테르티아 시로 떨어졌다. 수많은 반짝이는 별빛들이 유려한 호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라도 그 별빛 들을 잡기위해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고, 그 모습이 귀여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훈훈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폭죽은 2시간이 넘도록 터졌다. 그러던 한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모든 폭죽들이 터지는 것을 멈 추었고, 고요와 침묵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온 정적에 흥겹게 노래 부르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옆 사람과 주저리 떠들던 말소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또 다시 이어지는 침묵. 이대로 아쉬운 축제를 마감해야 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도 허무한 축제 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쉬움에 떼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 몸을 집으로 이끌려 하는 순간, 뭔가가 타는 소리가 울리며 그들의 발 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취지직취지지직!' 그리고 곧 이어, 시내대로 곳곳에 굳어져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던 사람들이 엄청난 굉음에 자 기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화려한 불꽃이 하늘 위로 쏘아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쐐애애애앵!' 하늘 위로 고정되었던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 굉음의 출처를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 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긍정의 고개짓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메테르티아 시의 가장 요지인 도요이프 프린샤의 관저였던 것이다. 도요이프 프린샤의 거처에서 쏘아 올려진 불꽃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었다. 이어 영롱한 일곱색깔의 무지개가 천천히 내려오는 듯한 폭죽이 쏘아졌다. 은은하면서도 흐릿한 그래서 더욱 신비로움을 주는 그 용은 승천하기 위해 용틀임을 한 후, 그 몸을 무지개에 싣고 힘차게 비상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위엄을 뿌리며 승천하는 용은 메테르티아 시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그 용이 하늘로 올라감에 따라 암천의 하늘문이 빛을 내며 열리는 듯했다. 정말 하늘 문으로 들어가는 용의 모습은 필설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대장관이었다. 인세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광경은 보는 이들에게 말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수만 년을 염원하며, 기다렸던 인고의 시간을 보상받는가 보다며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용에게 축하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었다. 하늘 아래, 메테르티아 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고 수많 은 형형색색의 빛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들은 곧장 메테르티아 시로 떨어졌는데, 그 것은 그야 말로 번개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만큼 매우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그 모습 이 마치 우뢰의 신 헤르이트가 던지는 번개와도 같아, 사람들의 오금이 저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번개가 아니었다. 사납게 떨어지는 그 빛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점점 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던 빛들이 공중에서 다시 한번 폭발을 일으켰고, 그 빛들은 허공에서 낱낱의 빛의 결정체들로 변했다. 그리고 영롱한 빛의 결정체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떨어지던 그 속도를 조금씩 줄여,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신의 눈으로도 명확히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인세의 인간들에게 내 리는 축복과도 같았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빛의 결정체들이 천천히 내려와 사람들이 있는 장소까지 내려왔다. 사람들 은 너나할 것 없이 손을 내밀어 그 빛의 결정체들을 잡았다. 혹자는 그 빛이 사라질 까봐 소중히 두 손으로 받아드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꽉 잡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모두에게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기에 조심스런 기색은 누구나 한결같았다. 진과 리오스 그리고 에리필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이 행동했다. 특히 진은 조심조심해서 빛의 결 정체를 잡아챈 후, 또 조심조심해서 손을 폈다. 그러나 빛의 결정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손 과 부딪히는 순간 연약한 그 빛들은 사라진 뒤였던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하며 안타까 워하고 있을 때, 굵직하면서도 강인한 목소리가 메테르티아 시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시 곳곳에 설치된 음성 확장기에 의해서 나오는 소리였다. "용의 승천과 그의 축복을 제대로 받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메테르티아 시의 시장인 도요 이프 프린샤라고 합니다. 오늘 이 같은 마지막 이벤트를 준비한 이유는 바로 메테르티아 아카 데미 학생들을 잊지 말았으면 해서입니다. 눈치 채신 눈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승천하는 용은 바로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빛의 결정체 들은 다름 아닌 승천한 용의 축복입니다. 이것은 졸업한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학생들이 메테르 티아 시로 보내는 축복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메테르티아 아카데미를 입학할 잠 룡들이 들어오는 날입니다. 그들이 승천하는 용이 될지 안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 나 오늘 처럼 메테르티아 시의 모든 시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들도 열심히 노력하겠지요! 이것이 저의 또 다른 바램이었기에, 이 같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모쪼록 축제의 마지막까지 좋은 시간 가지시기를 바라며. 그럼 저는 여기서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음성 확장기를 통한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도요이프 프린샤의 설명에 마지막 폭 죽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감탄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시장님은 대단하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시지?" "그렇고 말구. 더군다나 이분 역시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출신이지 않은가!" "암,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학생들도 우리를 못 잊고, 우리도 그들을 못 잊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곳곳에서 들리는 대화들은 대개 이러한 것뿐이었다. 리오스 역시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감탄은 다른 사람들과는 성질이 좀 다른 것이었다. '역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어. 말 몇 마디로서 군중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다니. 거기다가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그 폭죽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이야. 한 번에 두 개의 먹이를 잡는다는 것. 하나는 메테르티아 시의 사람들이고, 또 다른 먹이감은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학생들. 어 찌됐든 그는 대단한 사람이야. 생각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을 그는 너무도 쉽게 해냈어!' 리오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악의가 깃든 일은 아니야. 도요이프 프린샤라는 인물은 가문의 힘만으로 메테르티아 시의 시 장을 하고 있지는 않아!' 자신이 이제부터 살아야 할 메테르티아 시를 맡고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축제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간도 오래되어 진은 피곤함을 느꼈다. 노래 부르고, 소리 지 르고, 웃고, 떠들다 보니 몸이 이렇게까지 지쳐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축제도 모두 파하고, 흥분이 가라앉은 지금에서야 그 피로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축제가 흥미진진했으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인 것이다. "하암, 피곤해요." 피곤을 참지 못한 진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저도 피곤해요." "그래? 그럼 여관으로 돌아가자꾸나." "예." "얏호, 자러간다." 세 사람은 축제의 막바지까지도 즐기려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여관으로 몸을 옮겼다. 그렇게 노 곤한 몸을 이끌고 지나가는 그들 뒤로 술기운에 젖은 노랫소리가 울렸다. 그 노래는 이러했다. "해일과 함께 드러난 우리의 대지여! 문명과 문명 속에서 탄생한 우리의 대지여! 피와 피 위에 세워진 우리의 대지여! 이곳이 우리의 대지이니 그녀의 이름은 바로 라크리나! 자랑스런 우리의 수호신! 그녀의 ……..!" 술 취한 사람들의 혀 꼬부라진 노래였지만 흥겹고 경쾌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여 관 길로 돌아가는 세 사람도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취객들의 노랫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그녀의 이름은 바로 라크리나! 자랑스런 우리의 수호신! 그녀의 ……."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라크리나와 승천하는 용과 함께. ~~~~~~~~~~~~~~~~~~~~~~~~~~~~~~~~~~~~~~~~~~~~~~~~~~~~~~~~~~~~~~~~~~~~~~~~~~~~~~~~ 문득 고3때, 야자 마지막 기념으로 했던 폭죽놀이가 떠오르는군요. 그때 학교에 압수당한 폭 죽값만 족히 몇 십만원이 된다고 하던데...쩝....그러나 저희는 해냈습니다. 푸하하. 한 친 구가 교무실로 폭죽을 쏘아보내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폭죽놀이하다 경찰 오고, 저희는 도망 가고.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하하.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 회] 12화.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1. 진은 씩씩하게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헤헤거리며 웃었다. 영락없는 평소모습 그대로였다. 리오스도 밝게 씨익 웃었다. 둘은 알고 있었다. 오늘 헤어지면 한동안 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웃어야 했다. 그렇게 헤어져야 하는 두 사람이기에 그들의 기억 속에 웃고 있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형, 나 이제 떠날 거야. 다음에 만날 땐, 나 형이 말한 일류가 되어 있을 거야." "그래, 네 말대로 다음에 볼 땐, 꼭 일류가 되어 있어야 해. 나도 너한테 뒤쳐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공부든 무술이든." "헤헤, 공부는 당연히 나한테 뒤쳐져선 안 되지. 그래 다시 볼 때, 한번 멋들어지게 겨뤄 보자 구." 진은 콧잔등을 매만지며 말했다. 잠시 뒤, 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가요!" "어? 어… 그래. 다음에 볼 땐, 서로 웃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구나." 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자그마한 진의 입이 열리며 절로 슬픈 감정이 들게 만드는 애처러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아저씨, 형 지금도 웃…고 있나요?" 에리필은 고개를 돌려 리오스를 힐금 보았다. 그는 반쯤 고개를 돌리고는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눈물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에리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진을 보았다. 진의 눈가에도 샘솟듯 올라오는 눈물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게다가 콧물까지 겹쳐, 눈물과 콧물이 덤벅이 되었다. 이에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가슴에 답답함을 느낀 에리필이 손수건을 꺼내 진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울고 있는 거니?" "예."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씁쓸한 마음을 느낀 에리필은 더 이상 진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려 리오스를 다시 한번 보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리오스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진을 배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에리필은 다시 한번 진을 보았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숨 죽여 울고 있었다. 이 모습이 너무나 측은하고 아릿하게 다가와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과연 이들 형제를 떼어놓는 것이 잘한 일인가?' 안타깝지만 이 물음에 정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별의 아픔만큼 진을 성장시켜 주겠노라고 자신에게 다짐할 뿐이다.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정문을 나서는 에리필은 그 자리 그곳에 굳게 서서 진과 자신을 배웅해주는 리오스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선 더 이상 눈물은 흐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충격으로 에리필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 충격은 마음의 문을 두드려 작은 중얼거림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는데. '리오스야!, 네가 형이다.' 작은 제국이라 불리는 메테르티아 시는 확실히 거대했다. 리오스와 아쉬운 작별을 고한 진과 에리필은 말을 타고서도 삼일이란 시간을 투자해서야 메테르티아 시를 벗어날 수 있었다. 본래 그 정도의 시간까지 걸리지는 않지만, 처음 말을 타 보는 진이 꾸물거려 시간이 더욱 지체된 것이다. 에레필은 시간도 넉넉했기에 이 참에 진이 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천천히 이동했다. 진은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어선지 삼일이 지나자, 제법 말 타는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타는 거야. 최대한 말에게 부담주지 않는 자연스러운 자세. 인마일체라는 말이 있듯이 기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말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 진은 말 위에 올라가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엉덩이의 수난이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안그래도 아픈 엉덩이에 더욱더 아릿한 통증이 더하게 되자, 결국 참다못한 진은 블만을 토로했다. "아저씨, 엉덩이가 얼얼해서 도저히 더는 못 타겠어요!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돼요?" 진은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리필도 진이 경험하고 있을 엉덩이의 수난시대를 익히 경험했고, 고통 또한 알고 있었기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커다란 나무쪽으로 몰고 갔다. 커다란 나무는 짙은 녹빛을 뿌리는 활엽수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 둘레가 어찌나 커던지, 장정 열명이 양팔을 쫙 벌리고 감싸 안아야 겨우 잡힐 듯했다. 그러나 의외로 나무의 키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나무는 보통 나무들 정도의 키 밖에 되지 않았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땅 넓은줄만 아는 듯한 그 모습이 진으로 하여금 한 가지 별명을 짓게 만들었다. '뚱뚱보 나무!' 진이 나무에게 짖궂은 별명을 지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넓은 그늘에 자연의 시원한 바람을 끌고 와 그들의 노곤한 몸에 활력을 채워주고 있었다. 에리필은 쉬는 와중에도 두 마리의 말들을 살폈는데, 두 마리의 말은 나무 근처에 있는 풀을 먹기에 바빴다. 한동안 말에게서 시선을 고정시켜 두었던 에리필이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자 얼얼한 엉덩이를 쓰다듬기에 바쁜 진의 모습이 잡히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 못해, 사랑스러워 에리필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를 만들었다. 나른한 오후에 평온한 일상이 에리필의 기분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훈훈한 기분은 진을 만남으로써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무료한 일상의 반복들. 그 무료함과 따분함은 그에게 짜증이라는 것을 내게 만들었고, 인생에 대해 회의감마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는 진을 만남으로써 예전에 잃어버렸던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포근함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가만히 진과 두 말들을 바라보던 에리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진아,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한 번 잡아봐라." 에리필의 진지한 목소리에 손으로 엉덩이를 문지르든 진이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진은 성격상 궁금증을 속으로 삭이지 못하고 물었다. "알겠어요. 근데 왜요?" 에리필은 허리에 걸려 있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며 진의 의문에 자상하게 답해줬다. "앞으로 네가 배워야할 검이 어떤 놈인지 알게 해주기 위해서다." 에리필의 검은 청아한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뽑혔다. 검의 폭은 바스타드 소드의 절반 정도였지만, 검의 날카로움은 바스타드 소드를 능가하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검을 보통 예도(銳刀)라고 불렀는데 전체 길이가 약 130 키르(센티미터)정도가 표준 길이였다. 그러나 에리필의 검은 기존의 예도(銳刀)보다 20 키르(센티미터)나 길었다. 날이 잘선 예리한 예도(銳刀)는 좀 더 길어진 만큼 늘씬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다 보니 에리필이 검을 살짝 들어올리는 동작만으로도 검끝이 그리는 호선이 순간적으로 길어지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고, 그것은 검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싸늘한 기운이 증폭되어 뿜어짐을 의미하기도 했다. 진은 자기 자신도 미처 느끼기 전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알 수 없는 위험신호가 몸을 사리게 만든 것이다. 에리필의 검이 진을 향해 돌려졌다. 싸늘한 한기를 내뿜는 검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엔 진이 서 있었다. 진은 검끝이 자신에게 돌려지는 순간 온 몸이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리는 벌써부터 풀려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에리필과 진과의 거리는 대략 5 라키리(미터)였지만 진은 검끝이 그의 목울대를 짓누르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 보니 그의 긴장감은 자연적으로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이 검의 위협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뒤로 몸을 빼 내려고 하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몸을 돌리는 순간 저 잔인한 검이 나의 몸을 갈라버릴 거야.' 순간 진은 섬뜩한 공포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 그곳에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진의 사고는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에리필이라는 것조차 잊어먹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주는 두려움은 진의 사고력을 백지화시켰던 것이다. 진의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진의 몸 상태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에리필은 가만히 검을 들어 진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진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고 생각했다. 온 몸에 있는 땀구멍이란 땀구멍 모두에서 끈적끈적한 액체들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사이에, 진의 모습은 몇 시간 동안을 악전고투를 한 사람처럼 기진맥진했다. 진은 가슴이 답답했다. 당장에라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 아니 무릎을 꿇을 자비라도 내려준다면 고맙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의 검은 자신이 한 치라도 움직이면 베어버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은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겨우 가누며 힘겹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은 극단적인 상황에 절망의 부르짖음을 외쳤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지 않는가! 그리고 뭔가가 후들거리는 무릎을 바닥에 박지 못하게 막고 있어! 젠장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그렇게 그가 절망의 상황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한 마디가 있었다. '어깨를 펴라! 가슴을 내밀어라! 당당해져라!' 이어서 진은 그 은발의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상대의 능력에 두려움을 가지고 포기하는 것이란다. 알겠니?" 진정한 강함을 추구하기 위한 여정의 처음부터 자신의 바이블과도 같은 언약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려 하다니. 부끄러웠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거기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회와 자책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검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진의 겁먹고 초라한 눈빛은 대번에 도전전적이고 진취적인 반짝거림에 파묻혔다. 에리필은 진의 변화에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굴복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원석이 다이아몬드로 변하기도 전에 차디찬 땅에 묻혀버려, 그저 그런 원석으로 끝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에리필의 바램대로 진은 굴복하지 않고 한 발을 내딛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다. 단호한 결단만큼 실행이 쉽다면 누가 힘들여 이 고생을 하겠느냐 마는 안타깝게도 현실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심력의 소모는 극심했고, 진의 몸은 온 통 땀으로 질퍽질퍽했다. 그러나 진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온 몸을 팽팽히 긴장시키는 기운은 한 발짝의 허용도 용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까의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해보면 지금 진의 발버둥은 장족의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진의 오른 발이 슬쩍 들어올려졌다. 그러나 들어올려진 오른 발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중에서 가늘게 떨고만 있었다. 가련한 생명의 연약한 호흡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진의 얼굴이 얼마만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허억, 허억. 한 발짝 내딛기가 왜 이리 힘이 드는 거야?" 거친 호흡을 뿜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 발 나서자니, 저 검이 가만있지 않을 테고. 이 상황은 모르긴 몰라도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무턱대고 달려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처음에는 검만 보였던 것이 이제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자, 지금의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의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이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뭔가를 고심하던 진이 돌연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진의 행동. 그러나 그것은 잠시 후, 조금 전 보다 검의 기운에서 한결 해방된 진의 모습을 볼 때, 그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진은 기(氣)를 포착하는 마음으로 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능적인 행동이었으나, 이 상황에서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를 알리 없는 진은 그저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최대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눈을 감는다면 내가 저 무시무시한 검으로 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진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속으로 뇌까리며 검을 향해 집중하였다. 그러는 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차츰 싸늘하게 조여 오던 검의 기운이 하나씩 풀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가능성을 발견한 진이 더욱더 집중하여 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풀려 나가던 껍질들은 어느 한 지점만을 빼놓고 흩어지고 있었다. 검의 기운의 껍질들조차도 피해가는 곳! 진은 확신했다. 이것이 에리필이 내놓은 해답이라는 것을. 진은 두 눈을 감고서 천천히 몸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표지점과 자신 사이에 나 있는 비좁은 길은 매우 위태위태해, 그 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흡사 높은 허공에 매달려 있는 줄 위를 걸어가는 모습과 비슷했다. 조금만 옆으로 빠져도 싸늘한 검날 아래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이 분명하지만, 진은 그러한 위험도 무시한 채, 목표지점을 향해 몸을 옮겼다. 5 라키르(미터)라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자그마치 10여분이나 걸렸다. 그러나 진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의 생각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진은 검을 들고 서있는 에리필의 옆에 서 있었다. "아저씨, 헤헤. 저 해냈어요!" 진의 말을 듣지 못했음인가? 에리필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검을 들고 서 있을 뿐이다. 마치 어떤 충격에 굳어져 돌이 되어 버린 듯했다. 그러나 진은 에리필의 이러한 상황을 눈여겨 볼 새도 없이 풀밭위로 쓰러져 잠의 나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 검과의 사투는 제아무리 튼튼한 진에게도 심한 피로감을 준 것이다. 한참을 석고상처럼 굳어 있던 에리필이 검을 검집에 밀어 넣으며 곤히 자고 있는 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리필의 시선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마치 인세에 보기 힘든 환상동물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물끄러미 진을 바라보던 에리필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평소에 웃던 조용한 미소가 아니라 근방이 떠나가라고 웃어 제끼는 호탕한 웃음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 평소 같으면 깼어도 몇 번이나 깼을 시끄러운 소음이었지만, 진은 세상모르게 잘도 자고 있었다. 속에 있는 답답한 것들을 한 번에 토해내려는 듯한 웃음은 그의 눈가에 작은 이슬까지 맺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웃어 제꼈던, 에리필은 웃음을 멈추며 진에게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는 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부드러움과 함께 비장감이 함께 어려 있었다. 하늘도 어느새, 서늘한 바람과 함께 어두컴컴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잠시간의 정적은 선선한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에리필의 크지는 않지만 애절함이 담긴 음성에 의해 깨진다. "크크크, 내가 바란 것은 검의 기운에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과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진이라는 녀석은 하하하! 검의 기운의 틈을 발견하여 그 길로 걸어 들어갔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자신의 결정을 믿기에 자신이 발견한 길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녀석의 이 같은 마음은 상승의 길로 가기에 가장 필요한 마음이다. 하하하, 녀석이라면, 녀석이라면 나의 숙원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치욕이라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그에게, 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게 만들었던 그에게…… 진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하던 에리필의 눈에 작은 이슬방울들이 맺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새벽이 되지도 않았건만, 풀밭위엔 에리필이 만든 작은 이슬방울들로 인해 잎사귀의 끝이 아래를 향하여 휘어져 있었다. ~~~~~~~~~~~~~~~~~~~~~~~~~~~~~~~~~~~~~~~~~~~~~~~~~~~~~~~~ 요번편은 남자들의 눈물이군요. 남자의 로망... 그 이름은 눈물~~~콧물~~~ 커헉 대략 10분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오후 8시 35분 쯤에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어떤 분이 전화를 해주셔서 일어난 거죠. 쩝... 오후 1시 30분에 잘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 회] 13화.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2. "아함, 잘 잤다. 엉? 여긴 어디지?" 진은 침낭 안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떻게 자신이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 지를 알기 위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침낭 속에 들어간 기억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기억을 더듬는 작업을 포기하고 침낭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 말해 코를 간질이는 맛있는 냄새가 더 이상의 사고를 불가능하 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진은 아리오네의 혹독한 교육아래 만들어진 아침인사를 에리필에게 건넸다. "그래, 몸이 결리지는 않고?" "하나도 안 결려요." 에리필은 말을 하며 맛있는 냄새의 근원지인 그릇을 건넸다. 이에 진이 기꺼워하며 그릇 을 받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순식간에 비워진 그릇을 에리필에게 건네는 진 의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그릇 더!' 에리필은 한숨을 토하며 힘없는 손길로 그릇을 받아 죽 비슷한 것을 가득 채워 진에게 건 넸다. 그릇을 조심스레 받아드는 진의 모습은 '나,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마친 진과 에리필은 자리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식기기구와 침구들 을 정리해 말 옆에 묶었다. 떠날 채비도 대충 끝이 나자, 에리필의 당부사항이 뒤를 따랐다.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 하마. 우선 호송자(escorter)길드에 가서 너희들을 무사히 보호 한 호송비와 경비를 받고, 나의 거처로 가는 것인데. 호송자(escorter)길드에 가는데 열흘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기(氣)를 단전에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이번 여행 중에 너에게 주어진 첫 과제다." "예? 열흘 후까지 기(氣)를 단전에 저장하라고요? 그게 가능한 이야긴가요?" "그래, 나는 어제 너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어제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진이 검과의 사투를 벌였던 어제의 일을 떠올릴 때, 에리필의 음성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나는 어제 시험을 통해 너에게서 용기를 보려 했다. 그러나 너는 나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 넘은 결과를 보여 주었다." "뛰어넘은 결과라뇨?" "자기 자신이 결정한 것을 믿고 추진할 수 있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추진력. 너에겐 그게 있다." 진은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무슨 소린지 알 수는 없지만, 너무 띄워주는 게 아닌가하는 걱 정이 슬며시 들었다. "하하 아저씨도 참. 괜한 소리를 하신 다니깐!" "어찌됐든 열흘이다. 기한을 정해놓고 하는 수련은 보다 효율적인 수련이 되지 않겠니?" "그렇겠네요." 진은 에리필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옆을 보니 어느새, 에리필이 말고삐를 들고 서 있었다. 진은 에리필이 건네주는 고삐를 잡으며, 말 위로 올라탔다. 에리필도 가볍게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라탔다. "아저씨! 자, 이제 떠나보실까요?" 진의 장난기 다분한 말에도 별다른 반응없이 에리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가편(加鞭)을 하였다. "이럇!" 에리필의 호쾌한 목소리가 두 인마가 지나간 자리에 여운처럼 남겨졌다. 모든 일에 있어서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상품까지 건다면 엄청난 능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것 이다. 특히 그 대상이 단순한 머리의 소유자라면 말이다. 여기에도 그와 같은 단순한 머리의 소유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올슈레이 진이었 다. 진은 에리필과 약속한 그 날부터 기(氣)를 포착하고, 단전에 저장하려고 부지런히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氣)를 포착하는 데는 상당히 익숙해져 있어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한 번 붙잡은 기(氣)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인 것이 기(氣)를 포착만 할 수 있 을 뿐, 단전에 저장하려 기(氣)를 이동시키려 하면,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머릿속으로 아무리 의념을 쏘아 보내도 기(氣)는 '뉘집 개가 짓냐?' 하는 식으로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그때, 에리필이 극약처방으로 조건을 하나 내걸었는데, 그것이 바로. "호송자(escorter)길드에 도착하는 그날 밤까지 네가 기(氣)를 단전에 저장할 수 있다면, 내가 검을 하나 마련해주마!" 에리필의 이 말은 너무도 매력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검과의 사투를 치룬 그날부터 예리 한 진검을 얼마나 가지고 싶었던가! 진의 풀죽었던 마음은 에리필의 말이 귀전에 도달하는 순간, 이내 원기를 회복하여 투지가 활화산 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기일전(心機一轉)한 뒤의 진은 기(氣)를 대하는 자세부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음만 급해 제대로 의념을 쏘아 보내지 못했던 이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기(氣)의 세밀한 모습까지 유심히 바라보며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여라.'라는 의념을 보내게 되었다. 커다란 나무에서 일박하고 출발한 지 6일이 지난 어느 날.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집쟁이 기(氣)군이 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하다 자신의 뜻대로 기(氣)가 움직여지자, 진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삼창 을 불렀다. 때는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려는 늦은 밤이었고, 장소는 다름 아닌 여관 방 2층이 었는데, 진의 엄청나게 큰 음성은 여관 측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했다. 이는 에리필 이 여관주인에게 한동안 시달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진아, 나도 기쁜 일이긴 하다만 장소가 장소이지 않니? 시각도 시각이고. 음…… 그리고 본 래 기(氣)수련할 때는 조심조심하는 거 알고 있지? 더군다나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위 험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야. 앞으로 조심하고. 어쨌든 축하는 해줘야겠지. 수고했다. 하지만 아직 단전에 기(氣)를 저장하는 일은 멀고도 먼 이야기 일 터. 더욱 증진해야 할 거야." 에리필의 꾸지람 반과 충고 반에 반, 칭찬 반에 반인 말을 뒤로하고 진은 더욱더 기(氣)를 움 직이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모든 일이 처음이 어렵다고 했듯이, 진 역시 한 번 기(氣)의 이동이 가능하자 그 다음일은 일 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이제는 기(氣)를 단전에까지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장은 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을 에리필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데. "기(氣)를 무조건 단전에 밀어 넣는다고 해서 모두 다 저장되는 것은 아니야. 일정 시간 안에 일정량 이상의 기(氣)를 밀어 넣어야 하는데, 즉 단전에서 빠져 나오는 기(氣)보다 단전 안으로 들어가는 기(氣)의 양이 많아야지 저장될 수 있는 거야. 더군다나 기(氣)가 단전에 쌓이는 것은 주기라고 정해진 이 틀을 깨어야 하는데, 어쨌든 내 말의 요지를 말하자면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氣)를 단전에 밀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와 같이 에리필이 간혹 가다 던져주는 조언은 진이 수련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충분한 활 력제가 되었다. 처음엔 기(氣)가 단전에 들어가자마자 사라지는 듯했는데, 이제는 단전에 들어와 있는 기(氣)를 느끼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진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에리필이 조금만 더 하면 기(氣) 가 단전에 저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여행의 일차 목적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본래 계획으론 10일이 걸릴 거라 예상했었는데, 그 사이 진의 말 타는 솜씨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해 이틀이라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진과 에리필은 트라이탄 시에 도착하자마자 여관에 방을 잡았다. 진은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에리필을 꼬드겨 목욕탕으로 가려했다. "여기 여관에서 제공해주는 목욕탕이 있다고 하던데요. 뜨뜻한 탕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노곤한 몸이 그냥 풀린다고 해요. 어서, 우리도 목욕탕으로 가요!" 침대에 몸을 눕히려는 에리필을 붙잡고 늘어지는 진의 모습은 거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혼자서 들어가기는 죽어도 싫고, 목욕은 하고 싶고, 그러니 결론은 하나. 에리필을 끌어 들이 자였던 것이다. 에리필은 나름대로 거부의사를 표했지만, 그게 어디 진에게 통할 일이었던가? 그의 찰거머리 작전에 발목을 붙잡힌 에리필은 결국 목욕탕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목욕탕은 여관 뒷편 창고 같은 건물에 만들어져 있었다. 대중목욕탕이라면 대부분 남탕, 여탕으로 나뉘어서 목욕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인데, 여기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탕을 가운데 벽으로 막아놓고 남탕, 여탕으로 구분해 놓았다. 한 개의 탕만 유지하면 되기에 주인장이 꽤나 머리 쓴 흔적이 엿보였다. 진과 에리필은 옷을 벗고, 뜨뜻한 탕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하기 싫다고 버티던 에리필도 막상 탕 안으로 들어가자 피로가 풀리며 나른한 기분이 좋은지, 행복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리고 진이야 물 만난 고기처럼 탕 안을 유유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시간이 어중간해서 인지, 탕 안에는 진과 에리필 두 사람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진의 행동도 아무런 제지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훈훈한 증기와 뜨뜻한 물은 피곤했던 몸을 원상태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진은 굳은살로 변한 엉덩이를 열심히 씻어 주고 있었다. 이때까지 괴롭힌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지 진은 정성을 다해 엉덩이를 씻고 또 씻었다. 진과 에리필은 몸에 붙어 있는 때가 어느 정도 불었다고 생각했는지, 때밀이 수건으로 온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때밀이 수건으로 몇 번 문지르자 새까만 국수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목욕탕 바닥에 우두둑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생명의 양식 처럼 때국수는 정말 많이도 떨어졌다. 밀었던 곳을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문지르자, 새까만 때국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진과 에리필은 만족스런 웃음을 피우며 탕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 동안 탕의 온기를 즐기던 진과 에리필은 마무리로 머리를 감은 후,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자, 온 몸이 한기를 느끼는 동시에 잔 떨림이 절로 일어났다. "으으, 좀 춥네요. 그래도 뜨뜻하고 좋지 않았어요?" "네 말대로 목욕하기를 잘한 것 같구나. 모처럼 느끼는 상쾌함이야." "크크, 아저씨. 평소에 목욕을 얼마나 안하셨으면 때가 그만큼이나 나와요? 거기 청소하는 직원이 오늘은 단체 손님을 받았나? 할 정도라고요."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솔직히 내가 좀…… 때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하여튼 그건 상당히 과장한거야!" "헤헤, 뭐라 그래요?" 진은 마지막 마무리로 혀를 내밀며 여관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에리필은 뒤늦게 자신이 놀림당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곧 쫓아가려고 했으나, 그러한 것도 진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 이내 포기해버렸다. ~~~~~~~~~~~~~~~~~~~~~~~~~~~~~~~~~~~~~~~~~~~~~~~~~~~~~~~~~~~~~~~~~~~~~~~~~~~~~~~ 드디어 에리필과 진의 본격적인 수업과 여행이 시작되었군요...흐음... 여러분 늦잠 을 자지 맙시다. 크흑... 하루가 왜 이리 짧아졌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4 회] 14화.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3. 트라이탄 시는 메테르티아 시와 같이 초거대 도시는 아니었지만 바이사카 시만큼 작은 도시도 아니었다. 트라이탄 시는 메테르티아 시의 남쪽에서 경유해 올 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도시 중 한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트라이탄 시를 거쳐야만 나오는 할라이산 시와의 거리가 어중간해서 반드시 하루를 거해야 하는 도시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숙박업과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는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중에 특히 온천이 유명했는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융트라이아 산의 지열이 언제나 온천물을 뜨겁게 데워 주고 있었다. 이 도시의 재미난 특징은 유동인구가 도시 인구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워낙 방문하는 이들이 많기에 이 같은 현상이 생겼다고 한다. "너는 그냥 여관방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에이, 아저씨도 참. 전에 아저씨가 말했잖아요. 세상경험을 많이 해야 된다면서요?" 정확히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기에 에리필은 아무 말도 못하고 진을 데리고 호송자(escorter)길드로 향했다. 시내의 대로를 따라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호송자(escorter)길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삼층짜리 석조건물은 주위의 건물들에 비해 별다른 특이성을 찾을 수 없었다. 진은 호송자(escorter)길드라고 해서 특별한 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 실망스런 기분이었다. "여기가 호송자(escorter)길드인가요?" "그렇지. 왜 실망했느냐?" "아뇨." 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부인했지만, 그 목소리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에리필은 피식 웃으며, 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는 진이 풀 죽을 때 마다, 리오스가 자주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에리필의 손길이 느껴졌을 때, 진은 형 인줄 알았다. 그러나 곧 현실로 돌아온 진은 형은 이제 그의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그리는 진이 었다. 에리필은 그러한 진의 웃음을 보지 못하고, 그를 이끌어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복잡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한, 두 번 온 것이 아니었기에 두리번거리는 것 없이, 손만 오갈 수 있도록 투명한 물질로 차단된 카운터 앞에 섰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금발의 웨이브 진 머릿결을 가진 휴트니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팔로이 에리필이요." 에리필이 이름을 밝히자, 휴트니는 매우 놀라워하며 입을 떼었는데, 이건 완전 호들갑 수준이었다. "아, 에리필님이셨군요. A랭크이신 팔로이 에리필님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호호호, 아, 가만 보자, 리오스와 진이라는 소년의 호송 일을 맡으셨군요. 그리고 호송 일을 무사히 마치셨군요. 호호, 참 당연한 일인데. 에리필님께서 나서시면 어떤 물건이라도 호송하실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 휴트니는 혼자서 쓸데없는 말까지 나불거리고 있었다. 이에 에리필은 더 이상 들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휴트니의 말을 끊었다. "저기, 그건 그렇고. 대금은?"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휴트니는 깜짝 놀라 허둥대며 돈을 꺼내 에리필에게로 넘겼다. "호호, 이런 실수를. 평소엔 이렇지 않거든요. 아시죠? 저, 대금은 여기 있고요. 아시겠지만, 본래는 소개료가 20%지만 에리필님께선 A랭크라서 특별히 소개료 10%만 빼겠습니다." "알고 있소. 그럼 수고하시오." 에리필은 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진은 잠시간의 시간동안 가슴 속에 묻어 놓았던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근데, 저 누나는 왜 그리 말이 많을까요?" "글쎄다.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아마도 타고나기를 그리 타고났겠지. 그런데 진아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고 있겠지, 진아?" 에리필 역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교묘하게 돌렸다. 진은 에리필의 교묘한 말 돌리기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앗,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아저씨 빨리 가요!" 진은 에리필의 소매를 붙잡고 여관을 향하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관으로 돌아온 진과 에리필은 때늦은 점심을 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올라오자마자 진은 침대위에 가부좌를 틀고 기(氣)수련에 들어갔다. 기(氣)를 포착하고, 기(氣)를 의지 하에 두고, 천천히 이동시킨다. 이때까지 진이 해왔던 수련방법이었다. 그러나 진에게 필요한 것은 기(氣)를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빠르게 이동시키려 하면, 순식간에 흩어지기에 조심에 또 조심하며 속도를 배가 시키고 있었다. 거의 무아지경(無我地境)에 빠져 기(氣)수련을 하던, 진이 눈을 뜬 것은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신기하게도 밥 먹을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는 진이었다. 진은 그답지 않게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저녁을 후딱 해치운 후, 수련에 들어가려 했다. 그때, 에리필이 진의 행동을 잠시 막으며 입을 열었다. "단전에 저장할 방법이 보이긴 하니?" "모르겠어요. 기(氣)를 붙잡으며, 이동한다는 것이 양쪽 다 신경 써야 해서 힘이 들어요." 에리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기(氣)를 붙잡는 것과 이동한다는 것을 따로 생각하지 말고,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겠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둘은 다른 사고 속에서 이어지는 다른 행동들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진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리필은 그저 웃고만 있을 뿐. 무어라 말을 하려던 진은 왠지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말을 접고 수련에 바로 들어가 버렸다. 알 수 없는 에리필의 말을 떠올리며. 진의 정신은 기(氣)라는 녀석을 잡기 위해 온통 곤두서 있었다. 곤두선 정신은 이내 통통 튕기는 기(氣)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포착과 이동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어쩐 일인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아니 기(氣)를 이끈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기(氣)를 발견하고 포착하려는 순간, 이루어진 일이었다. 어느새, 기(氣)는 단전에 밀어 넣어졌다. 느낌이 좋았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진 몰랐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원래 이랬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들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진은 에리필이 했던 말이 강하게 떠올랐다. 신기했다. 기(氣)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단전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니. '따로 생각하지 말고, 같은 것으로 생각하…….' 뭔가가 떠오를 듯 말듯했다. 그러던 와중에도 기(氣)는 계속해서 단전에 쌓이고 있었다. '기(氣)라는 것은 본래 한 곳에 정착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던 것을 단전에 밀어 넣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빠른 속도로 다른 기(氣)로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기(氣)를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해서 단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이 같은 생각이란 거지? 이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신기하게도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 몸은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평소의 나라면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속도다!' 진은 기(氣)가 단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마치 관조의 세계에 온 듯한 모습이었다. 생각날 듯 말 듯한 깨달음의 조각들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뭔가가 머리를 쿡쿡 찌르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안타깝고, 답답한 시간들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육체적 고통보다 답답함에서부터 오는 정신적 고통이 심신을 더욱 힘들게 했다. 진은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모든 것들이 풀릴 듯한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머리를 맴돌던 생각들이 사라지고, 쿡쿡 찌르던 날카로운 무언가도 사라졌다. 가슴 속에서 그를 괴롭히던 답답함도 사라지고, 여유와 평온함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생각들이었으나, 알지 못했던 생각들이기도 했다. '그래, 두 개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은 결국, 모든 초점은 단전으로 들어오라는 것 아니겠어? 즉, 내 몸 안에 있는 기(氣)들을 하나의 의념 안에 두고, 그 목표점을 설정해 놓는다면, 어디로 도망갈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 말이 아닐까? 이렇게 되면 기(氣)를 하나씩 이동시키는 것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는 빠른 속도로 단전에 저장할 수 있을 거야!' 진은 나름대로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해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있는 모든 기(氣)들 위에 의념을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의 현재 능력으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이 허락한 영역까지 의념을 보내 단전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도중에 흩어지는 기(氣)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의념을 보낼 뿐이다. 결국 사라진 기(氣)도 몸 속 어딘가에 있을 테니, 단전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의념을 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진의 작은 깨달음에 의해 기(氣)가 단전에 모이는 속도가 몇 배나 증가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의념을 뻗어 단전으로 이끌었는데, 그것도 잠시, 진은 곧 무아지경(無我地境)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리필은 가만히 진의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간도 많이 흘러, 어느덧 밤도 늦은 밤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에리필은 조금 있으면 진의 수련이 끝이 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진의 수련은 늦은 밤을 훌쩍 지새우고 새벽이 되어도 끝이 날줄 몰랐던 것이다. 에리필은 피곤도 피곤이거니와 그보다 진의 몸 상태가 걱정 되었다. 혹여나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창문 사이로 따가운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에리필은 진이 수련을 끝내면 배가 무척 고프리라 생각하며 아침식사를 받으러 밑으로 내려갔다. 에리필이 밑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진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평소보다도 몇 배나 긴 호흡을 마친 후, 진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그리고 진의 눈이 떠짐과 동시에 환상과도 같은 희미한 반짝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진은 고요한 모습을 유지한 채, 가부좌를 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진의 손이 무릎에서 풀어지며 단전 어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임산부가 사랑스런 뱃속의 아기를 쓰다듬는 듯한 부드럽고도 사랑스런 손길이었다. 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 알 수 없지만 배가 심하게 고픈 걸로 봐선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았다. 진이 허기를 느끼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에리필이 들어왔다. 그의 손엔 음식이 놓여있는 쟁반이 들려져 있었다. "앗! 밥이다!" 진은 인자한 고승의 미소를 포기하며, 에리필에게로 달려들었다. 정확히 말해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밥을 노린 돌격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5 회] 15화.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4. "맛있니?" "헤헤, 맛있네요." 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에게도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는지, 에리필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아저씨, 미안해요. 아까는 워낙 배가 고파서. 헤헤." 또 다시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사실 에리필에게 애시당초 화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저 천진한 미소와 뒷머리 긁적이는 습관적인 모습이 그에게 안도감 마저 주었다. 최소한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단전에 기(氣)를 저장하긴 했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에리필이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진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전 어림만을 두들길 뿐이었다.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에게 칭찬을 기대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진의 행동은 말보다도 확실한 대답이었기에 에리필은 매우 흡족했다. 그러나 자신을 이렇게도 불안케 만들었던 것이 못내 괘심하기도 했기에 슬쩍 놀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야 대단한데. 그런데 이거 어쩌지. 우리가 했던 약속에는 분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기(氣)를 단전에 저장해야 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아뿔싸! 이를 어째, 오늘은 분명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날이잖아!" 넘치는 칭찬과 함께 검을 사러 가자란 말을 잔뜩 기대했던 진은 에리필의 허를 찌르는 말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다. 분명 오늘은 약속한 날 보다도 하루가 지난 날이 분명했다. 그렇다 보니 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한 번 정한 약속을 변경할 수도 없는 노릇. 사나이 끼리의 약속은 목숨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진이었기에, 속이 타긴 했지만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쉽지만 단념할 수밖에. 받아들이겠다는 표정 속에 묻어 있는 진한 아쉬움이 처연함으로 다가와, 에리필은 여기에서 더하면 좋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렇지만 그것은 단순한 말장난이고, 처음에 약속한 10일보다 하루나 앞당겼으니, 당연히 상으로 검을 사줘야겠지." 은근히 진의 힘찬 대답을 기대하는 에리필의 말에 역시나 우렁찬 그의 음성이 뒤따랐다. "예!" "하하하하. 그래야지, 그건 그렇고 어느 정도의 기(氣)를 단전에 저장했는지 어디 한 번 볼까?" 에리필은 말을 하며, 진의 단전에 손을 갖다 대었다. 순간 에리필의 손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고, 잠시 뒤, 진은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진의 단전에 손을 대며 기(氣)의 양을 알아보려던 에리필의 얼굴이 시시각각(時時刻刻) 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럴 수가!" 감탄사만 연발 터뜨리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던 에리필이 진의 단전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의 마음에 작은 불안감으로 다가왔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아니, 아니다. 잘못된 거라니. 좋은 일이지. 하하하, 분명 좋은 일이야." 에리필의 태도는 진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리 입을 열지 않으실까?' 진의 속도 모르고, 에리필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멍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후 에리필은 고개를 몇번 끄덕거렸다. 그리고 진을 바라보며 그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시원한 소리를 내뱉었다. "어이구, 네 표정을 보니, 아저씨가 괜한 불안감을 조장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하지만 워낙 황당한 일이라서." "도대체 뭐가 황당한 일이라는 거죠?" "알겠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다 이야기 해 주마. 음, 일단 내가 황당하다고 말한 이유부터 말해야겠지. 보통 사람들이 처음으로 단전에 저장하게 되는 기(氣)의 양을 1이라고 한다면, 너의 단전에 있는 기(氣)의 양은 4정도가 된단다. 이러니 내가 놀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예? 정말이요?" 진 역시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기분이 몹시 좋았기에 다시 한번 사실을 확인했었다. "내가 거짓말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 당연히 없죠." 진은 에리필의 확신에 찬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분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한테 이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난 거죠?"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로구나! 뭔가 집히는 게 없느냐?" 에리필의 말에 진은 무엇이 자신의 기(氣)의 양을 끌어올렸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늘 얻었던 작은 깨달음에 그 생각이 미쳤고, 혹시나 하면서 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오늘 그러니깐 기(氣)수련 하면서 작은 깨달음 같은 걸 얻었거든요. 아저씨가 말했던 거요." 진은 자신이 얻은 작은 깨달음을 에리필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가 진의 입에서 나왔을 때, 에리필의 얼굴은 웃지 못해 안달이 난 하요이 지방의 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변해 있었다. "하하하, 그랬군, 그랬었어. 진아 잘 들어라. 사실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은 내가 얻었던 깨달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너는 그것을 너만의 깨달음을 얻는데 이용한 것이야. 게다가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작은 것이 아니기에 이것은 너에게 엄청난 복이라 할 수 있단다." 에리필은 흥에 겨워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의 깊은 수양을 말해 주듯, 에리필은 이내 평정심을 회복하여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본래 기(氣)를 익히는 사람들의 목표가 무엇이더냐? 소우주를 확장하여 대우주 와의 합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대우주와의 합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단다." "에이, 설마요." "아니, 정말이란다. 너는 지금 얻은 깨달음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한단다. 알겠니?" "예!" 진은 힘차게 대답했다. 무엇보다도 불현듯 얻은 깨달음이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아연 활기를 띄게 만들었다. "후후, 그래야지. 그럼 약속한 대로 검을 사러 나가볼까?" "정말요?" "당연하지. 사나이 입으로 한 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지 않겠니?" "예!" 진의 기분 좋은 대답을 들으며, 에리필은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진이 허겁지겁 따르고 있음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렇게 좋으냐?" "헤헤!" 에리필의 물음에 진은 손 안에 들려져 있는 검을 쓰다듬으며, 헤프게 웃기만 했다. 진의 손 안에 들려져 있는 검은 에리필의 검과 똑같은 예도(銳刀)였다. 그러나 그 길이는 표준 사이즈인 130 키르(센티미터) 그대로였다. 처음에 진은 에리필의 검과 똑같은 길이의 검을 요구했지만, 그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입을 쏙 다물 수밖 에 없었다. "진아, 내 검은 대장간에 주문해서 만든 특제 예도(銳刀)란다. 그렇기 때문에 검을 만드는데 시일이 오래 걸리게 되는 건 당연하지.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오랜 시간을 체류할 수 없는 여행 중이 아니냐? 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지?" "예!" 진과 에리필은 검을 사고 난 뒤, 짐을 챙겨 트라이탄 시를 벗어났다. 이제는 진도 능숙한 솜씨로 말을 몰 수 있었기에 두 사람의 이동 속도는 더욱더 빨라 졌다. 애초에 정했던 한달이란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에리필은 여행 틈틈이 진에게 검술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트라이탄 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진이 기(氣)에 대해서만 신경 쓰도록 검에 관해선 잠시 접어 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에리필은 진을 가르치면서, 사부만이 느낄 수 있는 쏠쏠한 재미를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비록 열은 아니더라도 둘, 셋 정도는 넘겨 짚을 수 있는 영리함을 진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리필은 대다수의 사부들이 느끼는 답답 함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만약 대다수의 평범한 제자들을 가르치는 사부들이 진을 보았다면, 서로 데려다가 가르치려고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졌을 지도 모르 는 일이다. 여행은 비교적 계획한 일정대로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진의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가고 있는 거지? 에리필 아저씨가 사는 곳이라는 것 밖에 모르잖아! 뭐, 지명을 말해줘도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곳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있어야 마땅한데 말이야. 돌머리 진, 너 참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진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에리필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이에요?" 한바탕 진검을 휘두르던 진이 갑자기 검 휘두르기를 멈추고 뜬금없이 묻자, 에리필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특별히 당혹스러운 질문도 아니었지만, 여행도 거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에서도 그가 살았던 곳에 대해 진이 모른다는 것은 그가 진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행 내내 강해지기 위한 수련만 시켰지, 세상에 무지한 진에게 세상구경도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찌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의 대답엔 약간의 죄책감이 묻어나 있었다. "어? 아. 내가 사는 곳 말이냐?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단히 말해서 제국의 남쪽에 있는 수많은 소도시들 중 한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요이르 시라고 하는 데, 요이르 시에서도 외지에 있는 산골짜기 마을에 나의 집이 있어. 이름 없는 작은 산이 우리 집의 뒤를 막아 주고 있고, 언제나 시원한 물을 제공해 주는 개울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에리필의 설명에 진의 입은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이야, 무척 아름다운 마을일 것 같아요. 제 말이 맞죠?" "글쎄다. 네 말이 맞을지는 네 눈으로 확인하는 게 훨씬 나을 듯한데." 그 뒤로, 에리필은 가는 곳마다 자세한 설명과 아울러 진 자신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그의 세상 보는 안목을 키워 주웠다. 에리필의 이러한 세심한 관심은 이때까지 관심을 가져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갚으려는 사려 깊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에리필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여행도 무사히 그 여정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에리필의 보금자리인 요이르 시의 어느 작은 산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메테 르티아 시를 출발한지 24일이란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 후우, 피곤하군요. 생활패턴을 위해 오늘은 끝까지 자지 않고, 저녁 쯤에 자려고 합 니다. 그래서 지금 잠이 너무 오네요. 게다가 목욕탕에 갔다 왔더니 몸이 더욱 나른 해진다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6 회] 16화. 무술수련 1. 얼마 있지 않으면 겨울이라는 순백의 눈과 시리도록 싸늘한 바람이 찾아오는 늦은 가을이지만, 이곳은 남쪽 지방 특유의 따뜻한 남풍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다지 춥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그래도 가을이란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으려는지, 숲도 산도 주위의 나무들도 천자만홍으로 계절을 알리며,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며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 높진 않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야산 중턱쯤에, 어설픈 솜씨지만 정성스 레 만든 듯한 통나무집 한 채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통나무집 근처에 몇 그루의 이름모를 나무들이 마치 주인 없는 집을 지키기라도 하듯, 호위하는 형세로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평소엔 오르는 사람이 드문 산길. 간혹 약초꾼들이나 사냥꾼들이 오르는 그 산길에 경쾌한 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은은하게 산 속을 울렸다. "이야! 여기예요?" 진은 눈앞에 보이는 경관에 감탄사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지. 여기가 내가 사는 집이란다." 에리필 역시 감회가 새로웠다. 집을 비우고 밖으로 돌아다닌 시간이 꽤 오래되었 기에 마치 몇 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붉은 낙조(落照)에 덩달아 붉어지는 통나무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 마디로 자 연에 동화된 인간의 손길이 절묘할 정도로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진은 예전에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 본 석양이 떠올랐다. 순간 그 당시의 감동이 지금 이 순간의 감흥과 혼합되어 더욱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불그스레하게 물들었으며, 자연스레 환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리었다. 진과 에리필은 붉은 태양이 서산으로 완전히 사라져서야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이 매정하다고 말하는 듯한 거친 마찰음이 문을 여는 순간 정 적을 깨뜨리며 온 방안을 울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주인의 무심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먼지들이 진과 에리필을 향해 쏟아졌다. "콜록, 컥컥, 아저씨! 마지막으로 집안 청소를 한 게 도대체 언제죠? 우리 엄마가 보았으면 학을 떼어도 크게 학을 떼었을 거예요!" 진의 솔직한 힐난에 에리필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 처럼 붉어졌다. "오늘은 대충 치우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대청소를 해야겠다." 에리필은 침대시트에 잔뜩 묻어있는 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그와 함께 낮은 분노가 가미된 중얼거림을 마음속에다 띄우는 에리필이었다. '이런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가 마음속으로 한 말은 자신을 향한 건지 아님 다른 특정 인물을 두고 한 말인지 모호했지만, 아마도 자신을 두고 한 말은 아닌 듯했다. 잠시 후, 진의 고개가 끄덕여지며 몇 년 만의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한바탕 대청소를 한 진과 에리필은 폐 속에 가득 차 있는 먼지들을 토해낼 겸, 산의 정기를 마실 겸해서 인근 뒷산을 타고 있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정상을 밟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기에 딱 좋은 그런 높이였다. "야호! 야호!" 높지는 않아도 그래도 정상에 올랐다는 뿌듯함에 진은 '야호!'를 연발했다. 그리고 그는 폐부에 가득 차있는 먼지들을 죄다 뱉어내기라도 하듯 숨을 한껏 들이마신 뒤에 큰 함성을 질렀다. 이런 진의 치기어린 행동에 에리필의 입에는 자연스런 미소가 피어 올랐다. 에리필은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저 멀리 펼쳐져 있는 풍경들은 마치 장난감 나라의 아기자기한 집들을 고스란히 옮겨 온 듯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이 단층집들이었다. 커다란 시에 있는 건물들처럼 오밀조밀하게 집들이 밀집되 어 있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의 기다란 길에 양 옆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건물들. 그렇다 보니 길을 잃을 염려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마을은 마치 하나의 기다란 길 처럼,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일체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따뜻한 인심이 살아 숨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한동안 이곳 생활이 지겹고 따분해 마을을 잠시 떠나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자신이 왜 마을을 떠났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질 만큼 현재 에리필의 마음은 따스했고, 풍요로웠다. 에리필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한참을 참은 후, 천천히 숨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될 때까지 숨을 내뱉었다. 어느새, 그의 눈은 감겨져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끊기던 숨마저 완전히 끊겨졌을 무렵, 에리필의 감은 눈 을 떴다. '돌아왔다. 제2의 고향에 드디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 새삼 실감났다. 진은 뜨거운 눈빛과 상기된 얼굴로 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에리필을 쳐다 보다가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에리필의 시선을 좇아 그도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림같은 마을이 정겨운 풍경을 선사하며 그의 눈앞에 다가왔다. 한참 동안 산 아래를 내려다 보던 진의 배에서 뭔가가 끓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꼬르륵!' 갑자기 새어나온 소리는 진의 얼굴을 벌건 홍시처럼 만들었고, 에리필을 실없는 사람으 로 만들었다. "킥킥킥, 커…커험. 배가 고픈 게로구나. 어서 산을 내려가자꾸나!" "죄송해요. 좋은 시간을 깨서." "하하, 녀석하고는. 괜찮다. 이 산에 오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단다. 그보다 어서 내 려가도록 하자. 나도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는구나." 에리필은 진을 이끌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또다시 뭔가가 끓는 듯한 소리 가 울렸다. '꼬르르륵!' 진의 미심쩍은 시선이 에리필의 배에 잠시 머물렀다가 그의 얼굴에 꽂혔다. "하하하!" 의미가 모호한 에리필의 웃음과 뭔가가 끓는 듯한 소리가 이름모를 야산에 한참동안 울 렸음은 그들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배도 찼겠다. 자, 그럼 이제부터 수련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일단 기본적으로 기(氣)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새벽에 두 시간, 정오에 두 시간, 저녁에 세 시간,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누어서 수련하기로 한다." 에리필의 말에 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왜 저녁에만 세 시간으로 한거예요?" "그건 말이다. 어두워지면 검술수련하기에 힘이 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보통 저녁 시간에 기(氣)수련을 많이 한단다." 진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자, 에리필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기(氣)수련이 끝나면, 특별 체력단련코스로 모시고, 피나는 검술수련이 준비되어 있 을 거야. 그리고 틈틈이 공부도 할 것이고."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다가 에리필이 공부라는 말을 꺼내자, 황당함이 극에 이르러 뒤로 넘어갔다. 올슈레이 진이 누구인가! 공부완 담쌓은 사람이 바로 올슈레이 진이 아닌가! 진은 에리 필의 황당한 말에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에게 공부라니! 강해지는 것과 공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은 혼란스런 머리를 애써 맑게 하려 애쓰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진 정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공…… 공부라뇨. 도…도대체 그게 강해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크크크, 진아 공부가 그렇게 싫으니?" "예? 아…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강해지는 것하고 공부하곤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후후,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에리필의 뭔가 있다는 듯한 말투에 진은 왠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 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일! 13년 동안 굳게 믿어왔던 신념이 단 몇 마 디 말에 무너져 버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진은 꿋꿋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나갔다. "예! 공부 잘한다고 싸움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지. 그렇지만 만약에 네가 유명해 졌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무식하데, 이 런 식으로 말하면 좋겠니? 그리고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싸움꾼 같은 삼류들에겐 학문이 필요 없겠지만, 너처럼 고수를 목표로 하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것이 학문이란 것이다. 상승의 경지로 오르기 위해서는 정신적 세계가 넓어져야 하는데, 학문은 정신적 세계를 넓히는데 무엇보다도 적합한 것이니, 당연히 상승의 경지로 목표로 수련하는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겠니?" 에리필의 말에 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틀렸다고 반박하기에는 에리필의 표정이나 말투가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머리란 머리는 모두 쥐어 짜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머리만 아프게 만들 뿐, 자신에게 유리한 해답을 찾아주진 못했다. 그렇기에 진의 고뇌는 결국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에리필은 진이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도록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진의 생각이 어찌됐든 그 가 공부하게 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을 것을 알기에 에리필의 마음은 매우 느긋했던 것 이다. 에리필의 음흉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그의 형 리오 스를 떠올렸다. 그러자 어느 정도 머릿속의 혼란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진이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아저씨 말대로 공부라는 것도 강해지기 위해서는 필요하단 것을 인정할게요. 그래도 공부 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겠죠?" 진은 마지막 말을 할 때, 얍삽할 정도로 비굴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글쎄다. 그건 그때 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 그건 그렇고. 너에게 우선 약속을 받아두 어야 할 게 있다." 에리필은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말했는데, 이에 진은 알 수 없는 패 배감에 잠시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는 에리필이 기대하고 있는 물음을 던졌다. "그게 뭔데요?" "너도 알고 있다시피 나는 이제 너를 가르쳐줄 사부가 된다. 그런데 계속 아저씨, 아저씨 라고 부르게 되면 내가 너를 엄하게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좋지 못한 결과만을 가져다 줄 뿐이야." 진은 에리필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여행을 통해 눈칫밥을 어느 정도 키워왔기에 에리필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 이제부터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죠?" "그래, 그렇다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싫다는 건 아니야. 내 맘 다 알지?" "예!" 에리필은 앓던 이가 시원스레 뽑힌 사람처럼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도 진에게 유난히 약한 그였기에 말을 꺼내는 데도 힘이 들었다. 그러던 것을 이렇게 쉽게 해결하게 되자 오히려 허전한 느낌마저 들었다. 에리필의 예상으로는 진이 분명 "왜요? 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아요!"라고 반 박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공연한 것이었다. 에리필은 후련한 마음에서 오는 시원스런 음성으로 말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손끝을 목표 지점에 고정시켰다. "그럼 지금부터 특별 체력단련코스로 들어가 볼까? 저기 저 산 보이지?" "아, 저기요. 저긴 아침에 올라갔던 산이잖아요. 저기 올라가라고요? 그건 너무 쉬운 일 아닌가?" 진은 희희덕대며 에리필의 말만 거창한 특별 체력단련코스를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크나큰 오판이요, 명백한 실수였다. 진은 에리필의 손가락이 무엇을 정확히 가 리키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알 수 있었다 손 치더라도 믿고 싶지 않았 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이란 가혹한 이름은 여기에도 어김없이 그 잔혹한 모습을 드러내 고 있었다. 에리필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다 그의 손끝이 지나가는 곳의 낮은 산을 보며 탄성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언제 저길 올라간 적이 있다고… 아! 혹시 저기 보이는 언덕보고 하는 소리냐? 하하, 아니 내가 말한 곳은 저기 언덕 너머에 보이는 진짜 산인데." 에리필은 산을 언덕이라 낮추며 은근히 진을 놀렸다. "헤헤, 설마요." "진짠데?" 에리필이 정말이라는 제스처까지 보이자, 진의 어깨는 축 늘어졌고, 초점 풀린 시선만이 그 가 가리키는 산에 고정되었다. 에리필의 손끝에 걸린 산은 언덕 아래에 있는 마을 너머에 있는 산이었다. 그렇다고 마을을 거쳐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언덕과 산 사이에 능선과도 같은 길이 연결되어 있기에 마을 을 거쳐 올라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능선이란 길도 한눈에 보아도 꽤나 험해 보였고, 거리 또한 상당히 멀어 진의 발바닥을 얼마나 뜨겁게 달구어줄지 능히 짐작하게 해 주었다. 거기다 능선의 끝부터 산의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 길이 아 닌 암반으로 된 길이라 그 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위험천만한 길이었던 것이다. 진은 썩은 동태 눈알을 연상시키는 눈빛과 함께 에리필에게 물음을 던졌는데, 그의 음성은 힘없지만 은연중 기대에 차있었다. "설마 저기 차가운 돌덩이로 이루어진 길을 오르란 말은 아니겠죠?" "아니, 그럼 너는 마을로 통과하여 저 산을 오르려 했단 말이니? 그렇게 하면 시간 못 맞출 걸.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심때까지거든. 어떻게 할래?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식사 시간 만큼은 칼이야. 일단 오늘은 평소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점심을 먹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출발하는 것이 좋을 거야. 아, 그리고 저기 능선 보이지? 저 길을 주욱 따라 올라가다보면 정 상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네가 끝까지 갔다 오지 않고, 그냥 돌아올까 봐서 하는 말 인데, 산 정상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서 떡을 팔고 있거든. 그러니 너는 그 사람한 테 '저는 올슈레이 진입니다.'라고 말하면 돼! 그러니 도중에 돌아와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매일 그 사람한테 꼭 확인할 테니깐 말이지. 하기 야 강해지겠다고 마음먹은 사내자식이 고작 저 정도 가지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 은 하지 않겠지?" 에리필의 은근히 자존심을 긁는 말에 진은 본능적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는 그딴 바보 같은 짓은 안 해요! 지금 당장 출발 할게요." 진은 잽싸게 몸을 돌려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젖힌 뒤,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의 당당했던 진의 표정은 돌아서자마자 종이 쪼가리가 마구 구겨진 듯한 표정으 로 변했다.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그때, 진의 구겨진 표정을 발로 밟아 비비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진아, 점심시간은 앞으로 4시간 정도 남았어. 그러니 발에 땀나도록 뛰지 않으면 점심 없 을지도 모른다." ~~~~~~~~~~~~~~~~~~~~~~~~~~~~~~~~~~~~~~~~~~~~~~~~~~~~~~~~~~~~~~~~~~~~~~~~~~~~~~~ 크헉, 웁스님... 제발 좀 봐주세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올릴께요. 음... 생활패턴을 바꾸기를 행한지 이틀째입니다. 오늘도 일찍 잘 수 있어야 하는데... 은 근히 걱정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7 회] 17화. 무술수련 2. 진은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달린 끝에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능 선의 마지막까지 도달했다.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너무나 먼 거리의 능선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은 그의 피로를 저 먼 하늘로 날려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감에 도취된 것도 잠시, 그의 눈앞엔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절벽길이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어느새 다시 찾아온 피로는 그의 다리를 힘 겹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결코 좋을 리가 없었다. "헉헉, 젠장! 여길 올라가라고?" 진의 음성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자의 음성과 비슷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다 수련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진은 마음을 다잡고 절벽이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을 등산로 길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절벽이라 생각될 정도로 가파른 길엔 흙 특유의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폭신 한 느낌을 주는 황토색은 아무리 찾아봐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차가우 면서도 칙칙한 암회색 바위들이 층계를 이루듯 쌓여 있어 안 그래도 험한 길을 더욱 위험천만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암회색 절벽은 마치 단단한 바위들로 피라미드를 쌓은 것처럼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러나 그 경사라는 것이 구십 도에 가까운 것이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에겐 매우 위험한 산행이라 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까닥 잘못해 발을 헛디디는 순간, 힘겹게 올라왔던 것보다 몇 십 배나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공기를 찢는 잔인한 파공음이 그 사람이 차디찬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함께 할 것이고, 파공음이 끝나는 순간, 그의 육체는 예전의 모습을 잃고, 영혼과 육체의 아쉬운 이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아찔한 순간과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는 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코스일 지 몰라도 진에겐 오르지 않으면 안 되는 수련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련 이라 하여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진은 또 한번 절망에 찬 신 음성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젠장! 특별체력단련코스라더니. 이건 완전 담력수련코스잖아." 진은 매우 두려웠지만, 예전에 에리필이 검으로 자신의 담력을 테스트 했을 때를 떠올렸 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그 테스트를 이겨낸 자신이 이 딴 산도 못 오를까 하는 자신 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진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 정상을 향한 일보를 내딛으며 힘찬 기합을 토했다. "하압!" 길이라 할 수 있는 바위들은 하나하나 모두 컸다. 그렇기에 한 걸음을 떼어놓는 다는 것 도 한 바위와 다른 바위 사이를 건너 띄어 오른다는 의미가 된다. 아마도 이 수련은 진 의 담력 뿐만 아니라, 체력과 특히 하체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 같았 다. 하지만 이를 알리 없는 진은 볼을 통통하게 만들어 불만의 표시를 있는 대로 표시하 며 공중으로 2 라키르(미터)정도 솟구쳤다. 그리고 가볍게 공중에 몸을 띄운 진은 가뿐 히 첫 번째 바위 위에 설 수 있었다. 진은 고개를 들어 산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선 적어도 이러한 바위 들 천여 개 이상을 올라야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막막함이 가슴을 스쳐 지 나갔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빠르게 털고, 깊은 호흡으로 심신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진은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그의 앞에 놓여진 천여 개의 적들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전의를 불태울 수 있었다. 처음엔 두려운 마음과 암담한 마음이 강했지만, 이제는 오직 한 가지, 투지에 찬 말만이 가슴에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하앗!" 우렁찬 기합과 함께 진은 위에 있는 바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위에 있는 바위에 발을 붙이는 순간,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이런 식으로 진은 조금씩 산을 오르기 시작 했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진의 얼굴엔 굵은 땀방울들로 가득했고, 다리는 조금씩 한계에 다다 랐는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힘이 들었지만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땅을 박차며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 순간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땀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짠 땀이 눈에 들어가자 진은 그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 때문에 한 순간 그의 시야가 가려 져버렸다. "어, 어!" 갑자기 다가온 어둠은 그의 사고를 한 순간 마비시켜 불안정하게 착지하도록 만들었다. 산의 노여움인가! 비좁은 바위 위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진에게 강한 바람이 몰아 쳐왔다. 가뜩이나 밑으로 떨어질까 조바심을 내고 있던 터에, 갑작스레 찾아온 강풍은 그 의 정신을 혼미케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진의 몸을 연약한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었다. 떨어지면 죽는다는 공포가 진의 몸에 있는 모든 잔털이란 잔털을 꼿꼿이 세우게 만들었고, 잔털 사이사이에 있는 땀구멍에선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기 위한 땀방울들의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젠장, 젠장!" 연신 '젠장'을 연발하는 진의 몸은 조금씩 뒤로 밀려 바위의 가장자리에 이르게 되었고, 그의 몸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연 적으로 진의 긴장감은 극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떨어지면 죽는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 수그러들고 있던 집중 력을 극도로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하지만 진의 몸은 그의 안간힘을 다한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공중으로 띄워졌다. 그리고 아 주 잠시, 진의 몸은 공중에서 멈추었다. 진은 세차게 바위산을 때리는 바람의 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느끼다 마침내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암회색 바위와 푸른 하늘이 가지고 있는 색들이 시커먼 색으로 변화며 그의 눈이 가지고 있는 색의 구별기능을 빼앗아 가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잠재능력이 깰 때, 일어나는 변화들이었다. 그렇게 진이 기묘한 변화에 놀라고 있을 때, 그의 몸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단전에 있는 기(氣)들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주인이 죽게 되면, 그들 의 생도 끝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기(氣)의 요동은 진의 몸이 부풀어질 정도로 강력한 힘을 일으켰다. 진은 알 수 없는 힘들이 온몸에 충만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을 이제 밖으로 방출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진의 몸은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때 진이 공중에서 몸을 틀어 절벽의 반대 쪽을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의 몸이 완전히 돌려졌다고 하여 낙하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았 다. 귓가가 찌릿할 정도로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진은 두렵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 도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간 진의 두 손이 천천히 들어올려지 고, 양 팔을 수평으로 나란히 뻗었다. 그리고 손은 뒤로 젖혀져 손바닥이 앞을 향하게 만들 었다. "하앗!" 온 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그의 기합엔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힘이 담겨 있었다. 진은 몸 안에 충만한 힘들이 손바닥으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힘들이 한계치까지 모 였다고 생각될 즈음, 잔뜩 응축되었던 힘들이 터지듯이 밖으로 방출되었다. 강렬한 폭발에 의한 반발력은 떨어지고 있는 진의 몸을 잠시지간 공중에 정지시켜버리는 것 과 동시에 그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내. 그리고 몸 안에 있던 힘들이 모두 빠져나갔을 때엔 진의 몸은 바위 위에 아무렇게 내팽겨 처져 있었다. "허억, 허억 살은 건가, 내가?" 진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는데, 지금 이 순간 바위 위에 내팽겨 쳐지면서 얻은 충격을 그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살았다는 사실은 통증마저도 앗아버리는 놀라운 효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호흡을 가다듬은 진이 하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땀으로 축축해진 등에 바위덩어 리의 차가운 기운이 전해졌다. '나는 살아있다.' 진의 감각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살았다. 나는 살아있다." 위험천만한 순간은 그의 모든 기력을 잡아먹어버렸는데, 몸에 힘이라곤 좁쌀만큼도 남아 있 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누워있던 진이 가부좌를 취했다.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체력저하뿐 만 아니라 기(氣)마저도 고갈된 상태였기에 한시라도 빨리 보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 이다. 진은 가부좌로 앉으려는 순간, 머리가 띵해져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몸이 한 곳으로 기울어 버 렸다. 그러나 진은 다시 가부좌를 틀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고, 괜시리 헛구역질이 올라오려 해 그것이 쉽지 않았다. "우흡! 하아……." 어지러움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진을 괴롭혔다. 그러나 진은 고개를 털어내고, 기(氣)를 다시 단전에 채워 넣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처음엔 집중하기 어려웠으나 기(氣)를 느끼고, 단전에 저장하기 시작하자 어지러움과 헛구역 질은 서서히 진의 사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단전은 본래 그가 갖고 있던 기(氣)들을 되찾기 위해 기(氣)들을 천천히 저장시키고 있다 진 의 기(氣)수련에 의해 그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다. 무아지경에 완전히 빠져든 진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氣)를 단전에 저장해 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본래 그가 단전에 저장해 놓았던 기(氣)의 양을 한참이나 초과한 상태였다. 그리고 진의 기(氣)수련은 단전에 채워져 있는 기(氣)의 양이 본래 양의 두 배가 되었을 때에 끝이 났다. "후흡, 후흡, 후흡." 마지막으로 호흡을 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던 진이 눈을 떴다. 순간 번쩍하던 광채가 진의 눈 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진은 가부좌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의 이곳저곳을 풀어보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 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진은 전과 다른 몸 상태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다 풀리지 않는 의문보다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 의 위치, 즉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나타나자 진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양의 위치가 지금 시각이 점심시간을 한참이나 지났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까딱 잘못하다가는 저녁도 굶을 수 있다는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할 수 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다 보니 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는 그만큼 다 급했고, 절망적이었다. "아아." 진은 바위덩어리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위치는 두 가지 사실을 진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하나는 진이 기(氣)수련을 한 지 3시간 이상이 흘렀음을 의미했고, 다른 하나는 점심식사가 하늘로 날아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은 비명 을 질렀다. "아아악, 젠장! 점심 다 날아갔잖아. 이이이, 이야아아!" 한참 동안 괴성을 지르던 진은 이성을 찾는 순간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 을 수 없었다. '하아, 그렇다고 수련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음, 아까는 운이 좋아 살았지만, 아까 와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으으으. 거기다 저기 올라갔다고 내려오면 백이면 백 저녁까지 굶어야 될 텐데. 으…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음…… 그래도 사나이 존심에 여기서 포기 하기도 그렇고.' 진이 수련을 끝까지 마칠 것인가 아님 여기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불현듯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모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 에리필의 비릿한 비웃는 모습이 떠올라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안돼! 그 모습만은 절대 못 봐! 그래 사나이 존심이 있지. 올라간다. 죽어도 올라가!" 진은 쥐어짜듯이 소리치며 튕기듯이 몸을 날렸다. 진은 여기까지 떨어진 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지 거침없이 올라갔다. 엄청난 속도로 거리낌 없이 올라가는 진의 몸은 흡사 야조처럼 보일 정도였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던 진은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의 눈에 정상의 끝자락이 얼핏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더 힘을 내는 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은 너무도 쉽게 정상에 도달하자 순간 허무한 느낌에 잘게 몸을 떨었다. '음, 정신없이 올라온다고 생각 못했는데, 지금 내가 올라온 속도는 내가 낼 수 없는 속 돈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진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며 정상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 았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정상을 둘러보았지만, 이내 에리필이 했던 말이 떠올라 떡 파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이에 진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하지만 자신은 분명 잘못 보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나무 한그루 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들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진은 허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울컥하는 감 정이 가슴에서 터지듯이 올라왔다. "크아아아, 아무것도 없잖아.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아아아아아, 에리필 아저… 사부님 정 말 당신이 어찌 저를 속일수가 있어요? 좋아. 돌아가서 보자 구요. 이썅!" 진은 분노를 참지 못해 주위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한참동안 주절대기 시작했다. 에리필의 배신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이었고, 간혹 욕지거리가 입에서 뛰어나오기도 했다. 한참을 발광하던 진이 진정한 것은 하늘에 걸려있는 태양이 저녁시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을 때였다. "이런, 잘못하다간 저녁도 못 먹겠다. 빨리 가야겠다." 배신에 대한 분노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식욕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진은 날듯이 바위덩어리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갈 땐, 오르는 것보다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지만, 아찔한 기분은 훨씬 강했다. 진은 산을 내려와 능선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서도 자신의 비약적으로 빨라진 속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산을 타는 거나 내려가는 것보다 평평한 능선을 달리다 보니 자신의 이전 속도와 지금의 속도 차가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 지금 진은 산 을 오르기 전보다 거의 두 배 이상이나 빨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놀람 반, 의아함 반 으로 머릿속에서 자문자답을 구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러한 변화에 명쾌한 해답을 구해줄 사람은 지금 집에 있기에 잠시 의문을 머릿속 한켠에 밀어 넣고 달리는데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 오늘은 연참입니다. 크헉....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8 회] 18화. 무술수련 3. 태양도 서산으로 넘어가고 붉은 황혼의 은은한 여운이 뒷자리를 대신할 즈음, 진은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저… 아니 사부님 이럴 수가 있어요?" 진은 문을 거칠게 열며 울분에 쌓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에리필은 저녁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있다 벌컥 열리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진의 험악한 몰아붙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의아함만이 떠올라 있을 뿐. 그런 에리필이 태연한 음성으로 물었다. "뭐가 말이냐?"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정상에 떡 파는 아저씨가 어디 있어요? 사람을 골탕 먹여도 어쩜 그리 골탕 먹일 수가 있어요?" 진의 열변에 에리필은 허허 웃으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반박했다. "떡 파는 사람이 없다고?" "예! 당연하죠. 거기엔 온통 바위밖에 없었다고요. 사람은커녕 나무 한그루도 없었단 말이에요." 진의 말에 에리필의 미소가 더욱 짙게 변했다. "후후, 그렇지 거긴 바위밖에 없지. 그러나 거긴 분명 떡과 떡 파는 사람이 있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에리필이 어이가 없는지 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황당함에 더욱 싸늘해진 진의 얼굴 근육이 팽팽히 당겨졌고, 그는 에리필의 말에 반박하려고 입을 벌리려 했다. 하지만 절묘한 차이로 에리필이 한발 앞서 말했다. 그렇다 보니 진은 사부의 말을 끊지 못하고,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이는 아무리 자신을 속였어도,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에리필은 자신의 사부였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암회색 바위들은 떡이요. 그것을 바라보고 지키는 하늘은 떡 파는 사람이지. 즉, 너의 행동을 하늘은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너의 양심에 맡긴다는 나의 믿음이라 말할 수 있지. 그리고 만약 네가 나를 속이려 한다면 나는 알 도리가 없는 데, 처음부터 네가 나를 속였다면 우리가 계획한 수련이란 것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 될 뿐이야. 사실 특별체력단련코스가 그만큼 위험하고, 힘든 것이기에 네가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이러한 편법을 쓴 거란다. 그리고 만약 네가 오늘 수련에서 돌아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도리어 너를 의심했을 거고. 하지만 다행히도 너는 날 속이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하며, 앞으로 있을 우리의 수련에 서광이 비치는 거 같구나. 그런데 아무리 등산로 길이 험하다고 해도 너무 늦게 돌아온 것 같구나." 처음의 황당한 말에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던 진이었다. 하지만 에리필의 뒤에 이어지는 말이 자신의 마음을 울렸기에 할 말을 잃었다. 요는 신뢰로 이어지는 사제간이 되잔 말이었기 때문이다. '믿는다. 나를 믿는다.' 진은 속으로 몇 번을 되 내었고, 곧이어 빙그레 웃음이 진의 입가에 맺혔다. 그 모습을 보고 에리필이 속으로 안도했다는 사실을 진은 몰랐으리라! 잠시 후, 에리필이 조금 전에 물었던 물음을 다시 한번 진에게 던졌다. "진아,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예? 아, 그러니깐 말하자면 조금 긴데요. 간단히 말하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뭐? 절벽에서 떨어져?" 진의 말에 에리필이 놀라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과 에리필은 신뢰로 묶인 관계라는 생각에 기분 좋은 웃음을 입가에 매달며 말했다. "하하, 제가 지금 살아있는 걸 보면 모르시겠어요? 하기야 그건 운이 좋았기에 산거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전 전보다 훨씬 튼튼하다고요." "음… 그런데 몸은 괜찮으냐?" 에리필은 진이 괜찮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나 진은 짜증내지 않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쨌든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깐 체력도 기(氣)도 완전 바닥나 버렸어요. 그리고 그걸 보충하다 보니 이렇게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요." 에리필은 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도 놀라 두방망이질 치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부지런히 애썼다. 그리고 한편으로 수련이 너무 위험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에리필은 진의 말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의 증대와 관계있을 꺼라 생각했다. "체력이 바닥난 것은 이해가 간다마는 기(氣)가 바닥났다는 말은 무슨 뜻이니?" "음,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물어보려 했던 건데요.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단전에서 알 수 없는 힘들 아마도 기(氣)라고 생각되는 힘이 요동치더니 손바닥으로 모였어요. 그러다 대부분의 힘이 모였을 때, 폭발하듯이 밖으로 방출되었고요. 그 반동으로 저는 바위위로 떨어진 거구요." 진의 말에 에리필은 경악했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억! 진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발경의 원리와 비슷한 것인데. 허허, 저 아이에겐 복이 저절로 들어오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저 아이의 증폭된 기운은 그도 모르게 쓰게 된 발경과 관계있지 않을까?' 에리필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는 진에게 다가가 또 하나의 의문을 풀기 위해 말을 던졌다. "바닥난 기(氣)를 보충하기 위해 기(氣)수련을 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기(氣)수련한 후, 너에게 일어난 확연한 변화 같은 것은 없니?" 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치 점쟁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에리필을 바라보았는데, 이어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에도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어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맞아요. 음, 오면서 체크해 봤는데요. 어림잡아 보아도 단전에 저장되어 있는 기(氣)의 양이 두 배정도 늘은 거 같아요." "정말이냐?" "예. 정말이에요." "그렇구나, 알겠다. 점심도 굶었는데 우선 저녁부터 먹자꾸나. 얘기는 저녁 먹고 나서 해도 늦지 않으니깐." 에리필의 말에 진의 얼굴이 활짝 피어졌다. 마치 귀여운 데이지처럼 순진하면서도 평화로운 웃음이었다. 이런 진의 귀여운 미소는 언제부터인지 에리필에게 강력한 활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진을 잠시 바라보다 그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저녁을 다 먹은 진과 에리필은 집 앞 공터로 나갔다. "너를 살려준 그 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쓸 수 있겠니?" "글쎄요. 자신은 없지만 한 번 해볼게요. 아직까지 그 느낌이 약간 남아 있거든요." 진은 말을 하며 몸속의 기(氣)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전에 있는 기(氣)를 요동치게 만 들어 손바닥으로 이끌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단전 안에 있는 기(氣)들은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뭔가에 꽉 막힌 듯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氣)들은 약하게 흔들리기만 할 뿐 도무지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진이 몇 번을 더 시도해 봐도 기(氣)들은 단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기(氣)수련할 때, 생기는 자연적으로 빠져나오던 기(氣)와 달리 단전에 저장되어있는 기(氣) 는 어떠한 계기가 없이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진이 아직 몰랐기에 그의 답답함은 더한 것이었다. 진은 답답했다. 기(氣)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기(氣)는 단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어떤 기(氣)는 못 빠져나오다니.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평을 터뜨리던 진의 머릿속에서 저도 모르게 생각에 생각의 고리를 이어 하나의 가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 잠깐. 불공평하다란 말은 일단 차이가 있다는 말일 테니깐, 두 기(氣)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게 따진다면 두 기(氣)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렇지. 단전에 있는 기(氣)는 단전이란 통 안에 익숙해져 버린 놈들. 그렇다 보니깐 단전이란 통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단전 밖의 기(氣)는 단전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잘 빠져나오는 거고. 요는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음이라. 어, 근데. 뭔가 핀트에서 벗어난 기분인걸.' 진은 생각에 빠져 발경을 일으키려는 것을 중도에 멈추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에리필은 멍하게 있는 진을 보다가 그가 상념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한거냐?" "기(氣)에 대해서 생각했었어요. 아까 전에는 자연스럽게 기(氣)가 단전에서 빠져나와 손바닥으로 갔는데, 지금은 도무지 단전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봤지요." "그래?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에리필의 기대에 찬 물음에 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기다렸다. 결국 노련한 에리필의 끈끈한 시선공격에 진이 항복했다. "만족할만한 결론은 못 내렸어요. 대신 이런 생각은 해봤어요." 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에리필이라면 그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리필은 진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비록 해답은 찾아내지 못했다하더라도 발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까지 생각해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궁금한 것은 단전에 있는 기(氣)가 어떻게 해서 밖으로 나갔느냐, 이 말인데. 이것은 나중에 배울 발경에 속하는 부분이지. 발경이란 간단히 말해 기(氣)를 밖으로 방출하는 것의 모든 것을 통괄한다고 보면 될 거야. 발경에는 내경과 외경이 있는데 단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내경이고, 몸 밖으로 방출되는 것이 외경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단전에서 기(氣)를 방출하는 것과 몸 밖으로 방출하는 것은 차원이 달라. 그만큼 외경이 내경보다 힘들다는 거지. 어쨌든 단전에서 방출하는 것은 즉 내경은 쿤을 확장해야만 가능한 건데, 넌 쿤을 확장하지도 않고서도 내경과 외경 즉 완벽한 발경을 해낸 거야. 내가 너한테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더 이상 놀라지는 않겠다만, 어쨌든 잘 들어라. 외경은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내경부터 시작하자. 내경은 앞서도 말했지만 쿤의 확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네가 생각했던 기(氣)의 차이점에 대한 해답을 먼저 내놓는 것이 좋겠지?" "예!" 진의 힘찬 대답에 에리필은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은 에리필의 열정에 도취된 것처럼 한 마디라도 놓칠까봐 두 귀를 쫑긋 세워 듣고 있었다. "네가 말했던 단전에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단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없고를 정한다고 한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분명 두 기(氣)의 차이점은 단전에서 나올 수 있나 없나 인데, 단전에 영향을 받는 다는 말은 맞지만 익숙한 것의 차이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지. 인간이 확장하는 첫 번째 쿤은 바로 내경을 가능하게 해주는 거지. 그렇다면 내경이 가능하게 되면 어떤 점이 좋을까?"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진은 눈만 껌벅일 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굳어져 있던 사고가 깨어나 활발히 움직이게 되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기(氣)를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에리필은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는 진짜 궁금했던 것이다. "제가 말했었잖아요. 손바닥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전에 모였다고요. 그것을 보고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에리필이 갑자기 손바닥을 짝 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쳤다. 이유도 없이 친 박수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행동이었다.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정확해. 네 말이 맞다. 무술을 익힌 사람들을 보면 주먹으로 바위를 깨부수고, 말보다도 빨리 달리고 공중으로 몇 십 라키르(미터)나 뛰어오를 수 있지. 이것은 한 곳에 기(氣)를 집중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란다. 그냥 단전에 기(氣)를 저장시키기만 해선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지만. 또 어떻게 보면 쿤은 억지로 열지 않아도 열리기도 해. 단전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기(氣)가 모이게 되면, 쿤은 자동으로 열리게 되지. 그렇지만 그것은 무식한 수련법이라 할 수 있어. 기(氣)를 단전에 저장만 하고 쿤의 확장엔 관심도 없는 사람과 쿤을 확장한 사람의 수련기간이 같다고 가정하면, 쿤의 확장에 힘쓴 사람이 훨씬 강하지. 그만큼 수련 속도가 느리다는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쿤을 확장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 내경을 여는 쿤을 흔히 륜이라고 한다. 륜을 확장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하나는 륜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까 네가 말했던 단전에 익숙하지 않은 기(氣)들이 단전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길을 찾게 되면, 단전에 있는 기(氣)로서 륜을 뚫어야 되고." "어, 본래 륜은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요? 단전 밖의 기(氣)들은 잘도 빠져 나가잖아요." "좋은 질문이야. 하지만 이걸 설명하려고 하면, 소우주 확장에 대해서까지 말해야 되니깐, 요번 질문의 설명은 뒤로 미루도록 하자. 괜찮지?" 에리필의 말에 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앞서 말했던 조건 중 두 번째가 바로 륜을 뚫을 수 있는 기(氣)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기(氣)라면 륜을 뚫을 수 있나요?" "아마도 될 거다. 자, 그럼. 바로 륜을 찾는 수련부터 해보자. 이건 안으로 들어가서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니 안으로 들어가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9 회] 19화. 무술수련 4. 에리필은 진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에리필은 진에게 침대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 것을 명했고, 진은 그의 말에 따랐다. "일단 약간의 기(氣)를 끌어와서 단전으로 밀어 넣은 뒤, 저장 시키려 애쓰지 말고 기(氣)가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중해서 륜을 찾아내야 한다." 진은 에리필의 말에 따라 기(氣)를 단전에 밀어 넣은 뒤, 집중하여 기(氣)의 뒤를 따랐는데, 륜을 향하여 가는 기(氣)의 흔적은 신기하게도 중간에서 스르르 흩어졌다. 륜을 찾기 위해 기(氣)의 뒤를 추적한 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중간에서 스르르 사라져 번번이 놓쳤던 기(氣)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진은 더욱 집중해서 미약한 기(氣)의 느낌을 쫓는 데 혼신을 다했다. 그러다 어느 한 곳에 이르렀을 때에 흩어졌던 기(氣)들이 모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흩어졌다 모인 기(氣)들은 어떤 통로를 지나갔고, 통로 중 한 지점을 지날 때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기(氣)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진은 처음엔 기(氣)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더 추적한 결과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 이곳저곳으로 이동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다시 기(氣)의 뒤를 쫓기를 수십 번, 진은 단전에 있는 기(氣)를 이용하여 륜으로 보내보려 했다. 그러나 단전에 있는 기(氣)를 륜으로 이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수많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 끝에 진은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많은 양의 기(氣)를 륜으로 밀어 넣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진은 소량의 기(氣)를 륜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소량의 기(氣)는 별 무리 없이 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예의 그 이질감이 느껴지는 지점에 이르자 소량의 기(氣)는 벽에 막힌 듯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 통로 옆으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진은 뒤를 이어 조금씩 보내는 기(氣)의 양을 늘려보았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기(氣)의 양을 늘리자 이질감이 느껴지는 지점까지 이르는 통로 역시 조금씩 넓어져 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단전에 있는 기(氣)를 한 번에 모두 옮겨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자마자 막대한 고통을 받았다. 그의 얼굴이 험상궂게 구겨졌으며, 그의 몸은 간헐적으로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서 조금씩 전진시키기 시작했다. 귓속으로 살이 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매캐한 냄새도 나는 듯했다. 그렇게 혼신을 다하는 진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에리필은 걱정이 들었지만, 매번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진을 믿었기에 옆에서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위험징조가 보이면 바로 손을 쓸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다. 진은 고통을 꾹 참고 기(氣)를 전진시켰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더디게 나간다고 생각해 답답하고도 안타까웠다. 그렇다 보니 그의 마음 같아서는 한번에 확 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내력을 고갈시켰지만, 그랬다가는 왠지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어 활화산처럼 뜨겁게 달구어진 가슴을 다스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결국 진은 각고의 인내와 노력으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그는 짜릿한 흥분과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껴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고 생각한 진이 기(氣)를 빠르게 이동시켰다. 쾅! 첫 번째 충돌로 몸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진은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에 다시 한번 밀어붙였다. 쾅! 콰쾅! 몇 번의 기(氣)와의 충돌로 인해 점차 륜의 견고한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의 인내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몸속의 내장과 모든 기관들이 뒤틀리는 듯한 지독한 고통이 그를 괴롭혀 지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은 이번이 마지막 승부처라고 생각했다. 그의 인내도 점점 무너지고 있었고, 조금 있으면 옆의 통로로 기(氣)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불안한 예감은 그의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만들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묵히 그러나 강인한 기세로 부딪혀나갔다. 혼신을 다한 일격! 퍽!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렸다. 실제로 울린 것은 아니지만 진은 뭔가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기(氣). 이제는 완전히 뚫린 륜으로 기(氣)가 들어가자마자 기(氣)의 자취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진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륜을 뚫었다는 것, 쿤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진은 가부좌를 풀며 눈을 떴다. 눈이 뜨여지면서 따사로운 햇살에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어느새, 아침이 온 것이다. 진은 시선을 돌리다 그의 맞은편 침대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에리필을 보았고, 두 사람 은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었을까? 에리필이 웃음을 먼저 멈추며 말했다. "축하한다. 이제 너는 이류가 된 거다."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저의 상태가 이륜가요?" 진은 기쁘고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의 성취가 아직 이류라는 것이 못 마땅했다. "하하하, 녀석.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륜을 정복한 느낌이 어떻더냐?"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황당해요. 륜을 뚫는 순간 기(氣)들이 그 구멍으로 사라져 버렸거든 요. 이게 어찌된 일이죠?" 진은 말하면서 실감나는 표정연기까지 더해, 에리필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건 말이다. 아직 네가 륜을 제대로 이용할 줄 몰라서 그런 거란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자, 아침밥이다." "와아!" 진은 순식간에 아침밥을 해치웠다. "꺼억, 잘 먹었다. 헤헤." 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머리 긁기를 선보였다. 게걸스럽게 먹은 것이 좀 멋쩍었는지 그의 표정이 약간 어색했지만, 에리필은 그런 진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지금부터 기(氣)수련을 다시 한번 해봐라. 이번에는 기(氣)를 단전에 저장할 수 있을 때까지 저장해봐라. 다른 덴 일절 신경 쓰지 말고." 침대 위에 가부좌를 튼 진은 기(氣)수련에 바로 들어갔다. 진의 기(氣)수련은 점심시간을 지나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어떻지? 네 느낌을 들어보도록 할까?" 진은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있다 에리필의 말에 반응하듯 입을 열었다.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니깐, 한 번에 저장할 수 있는 기(氣)의 양이 또 증가했어요. 그리고 단전에 들어온 기 (氣)가 빠져나가는 양도 줄었고요.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랬어요." "후후, 이것이 바로 륜을 정복하면 얻게 되는 좋은 점 중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내경의 길이 열린 것! 네가 아침에 말했던 기(氣)가 사라졌다는 것도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지." "예!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 간 거란 말이죠." "그렇지. 사실 륜을 이용한다는 것은 단전에서 륜의 통로까지 이동, 그리고 의념으로 어디로 보낼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즉 이 세 가지 과정을 얼마나 빠르게 쓸 수 있느냐에 따라 실력의 판가름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진의 힘찬 대답에 에리필은 웃음을 지으려다 참으며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저녁이나 먹자!" 뒷말은 약간 호들갑스럽게 했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쩝쩝거리는 소리와 후르륵거리는 소리가 인적이 드문 외딴 집에서 울려나왔다. 간혹 말소리 와 웃음소리도 터져 나왔는데, 마치 단란한 가족의 따뜻한 저녁식사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땅이 아닌 하늘에서는 조용한 숲을 포근한 달빛으로 감싸주던 고고히 떠 있는 달이 고요를 깨우는 두 사람의 정겨운 모습에 따스한 달빛 한줄기를 선물로 내려주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0 회] 20화. 무술수련 5.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처음 에 힘들어했던 기억들은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심 경의 변화는 진에게도 일어났다. "이야아,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조깅시간이 왔습니다." 진은 약간은 호들갑스럽게 말을 하며 뜀박질을 시작했다. 신나게 달리기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암회색 바위들만 덩그러이 놓여 있는 산 의 정상에 도착했다. 진은 힘차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아아, 들리시나요. 하느님! 저 오늘도 여기 왔습니다. 도중에 도망치 지 않고 여기 왔습니다. 그러니깐 우리 사부님한테 말씀 좀 잘 해 주세요." 진은 밝게 웃으며 파아란 하늘에 무채색으로 수 놓여진 하이얀 구름들을 쳐 다보았다.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정상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음을 모으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이제 진은 서서히 산과 공기와 그리고 하늘과 하 나가 되어 가고 있었고, 그들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키며 대자연의 호 연지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고 있었다. "하아, 하아, 우우웁. 하아, 우우웁." 진은 폐부에 갇힌 탁한 기운을 모조리 뱉어 내기라도 하려는지 깊은 호흡으로 숨 을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폐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모든 탁한 기운들 이 빠져나가고, 대자연의 활력 넘치는 기운들이 진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 작했다. 그래선지 진의 음성에는 활력이 넘쳐났다. "오늘도 정상의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을 벗 삼아 기(氣)수련을 시작해 볼까?" 진은 말을 하며 자리를 잡고서 기(氣)수련에 들어갔다. 기(氣)수련에 열중인 진은 점차 대해의 고요함을 지나 태산의 장엄함을 향해 나아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의 모습은 뼈와 살로 된 육신이 아니라 주위에 있 는 여러 바위들 중 하나가 된 것처럼 주위와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 주며 몰아지경 을 여행하고 있었다. 대략 두 시간여가 지났을까? 석고상처럼 굳어있던 진은 육신 을 감싸고 있던 무형의 석고들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기(氣)수련 후에 찾아오는 상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단 말이야!" 진은 온 몸에 충만한 기운에 만족해하며 몸을 날렸다. "오늘도 어제보다 시간을 더 단축한 것 같구나." "하하, 이제 아침수련 정도쯤은 장난이죠." 진의 자신만만한 말에 에리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칙칙한 골방에서 함정 을 팔 때에 나 어울리는 미소가 에리필의 입가에 찍혀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하기야 네가 여기 온지도 열흘이나 지났으니, 그 정도야 당연한 결과겠지.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다음 단계라뇨?" "후후, 이제부턴 거기서 기(氣)수련 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힘들어 질 거 라는 말이지." 에리필의 호언장담에 진은 슬며시 걱정이 들었다. 에리필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쉬 운 일도 어렵게 변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검술수련을 들 수 있었다. 쿤을 확장한 뒤, 검을 휘두름에 있어 그 속도나 정확성이 훨씬 좋아진 것을 보고, 좋 아했던 진에게 에리필은 지금과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뒤로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그의 예도(銳刀)가 무려 다섯 배나 무거워 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힘이 드 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거기다 에리필은 진에게 검이 무거워지기 전의 속도와 정확 성을 요구했기에 진의 팔과 등은 그 무게에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 엄청난 경련 속에 지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저번처럼 그런 무지막지한 방법을 쓰진 않겠지.' 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마음 한켠에 강하게 자리 잡은 불안감 이란 마물은 그의 간절한 바램을 가볍게 무너뜨려 버리고, 불행한 현실을 실현시켜 버렸다. 그날 밤, 에리필은 조용히 진을 불렀다. "진아 상의를 벗어 보거라." 미심쩍은 무언가가 자꾸 마음에 걸렸지만, 사부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진으로서는 상 의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맨살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던 진에게 에리필이 파란 액체가 담긴 그릇을 가 지고 다가왔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진은 그릇에 담긴 파란 액체를 슬쩍 바라본 뒤 말했다. "아뇨, 모르겠는데요." "하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 파란액체는 술법사들이 주문을 걸 때, 쓰는 술법시약 이라 하는데,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재료들은 한 마디로 말해 자연을 이루는 것들을 대 표하는 물질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관한 내용은 나중에 상세히 배울 것이기에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그것보다 너는 이 액체가 무슨 용도에 사용되는 지가 더 궁 금하겠지. 그렇지 않느냐?" "예, 그런데 설마 저 푸르죽죽한 액체를 저 보고 마시라는 말씀은 아니겠죠?" "어떻게 알았지?"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에리필을 보고, 진의 안색은 푸르죽죽한 액체에 오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대번에 시퍼렇게 변했다. "하하, 사부님 농담이시죠?" "하하, 그래 농담이다." "예?" 마치 한 편의 희극을 보는 듯한 두 사제의 대화는 듣는 이들의 신경을 싸늘히 얼려버릴 것 같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들 또한 그러한 싸늘함을 느꼈는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어 버렸다. 어정쩡하게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던 두 사제 중, 에리필이 먼저 나서서 어색하다 못해 싸늘한 공기를 일신시키기 위해 화제를 바꾸었다. 진도 사부의 의도를 짐작했기에 앞서 의 불민한 사건은 은근슬쩍 넘어가 버렸다. "험험, 시시껄렁한 말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등을 돌리고 앉아 보아라. 설명은 술법을 걸 면서 말해주겠다." "술법이요?" "왜, 두렵니?" 진은 자신의 몸에 듣기만 해도 거부감이 드는 술법이란 것을 건다고 하니, 자신도 모르 게 껄끄러운 어투로 되물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에리필의 다분히 의도적이며, 도발적인 소리는 진의 호승심에 불을 질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결국 내뱉게 만들었다. 내뱉는 동시에 후회하게 될 말이기는 하지만. "두려워요? 하하, 천하의 올슈레이 진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술법이 뭐가 두려워요? 자, 어서 그 술법이란 걸 걸어보세요. 어서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는 또 술법을 못 걸게 할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다고. 그래 네 말대로 어서 시술부터 하자꾸나." "…… 예." 진은 에리필 모르게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중얼거렸다. "에구, 참으로 한심한 놈!" 진이 조금만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처했더라면, 에리필의 격장시키는 그 말이 비록 노련하기는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허공에 날려 보낼 수가 있었을 터인데.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에리필이 손끝에 파란 액체를 묻혀 진의 등에 마법진과도 같은 문양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에리필의 손끝에 묻어나 있는 파란 액체의 차가운 느낌에 진은 그도 모르게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리고 이 작업이 심혈을 기울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문양을 그리는 작업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어 오랫동안 진의 몸은 가늘게 떨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랗게 새겨지는 문양들이 진의 등을 조금씩 메워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릇 안에 담겨있는 파란 액체의 양도 자꾸만 줄어들어 이제는 손을 몇 번 담글 정도의 양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에리필의 손끝은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원을 그려 나갔다. 진의 등에 새겨져 있는 모든 문양들을 가두려는 듯한 그 원은 크고도 견고해 보였다. 그리고 에리필의 손끝이 원의 시작점과 마지막 점이 겹치는 곳에 이르렀을 때, 에리필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 작했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모든 힘의 주인이신 그레비테이스님의 존영을 여기에 옮겨 놓으니 그 힘이 여기에 임할지어다." 기도문 같은 그의 말속엔 경건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에리필의 주문이 끝나자 마치 약 속이라도 한 것처럼 진의 등에 새겨져 있는 문양에서 일제히 황금색 빛이 쏘아져 나왔다. 문양에서 시작된 황금색 빛들은 진의 몸을 천천히 감싸기 시작했고, 등에서부터 시작된 황금색 빛은 머리는 물론이고 발끝까지 그의 몸을 온통 휘황찬란한 황금색 빛으로 감싸버 렸다. 그 황금색 빛 속에는 장엄함과 경건함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릎을 절로 구부리게 만들며 복종케 하는 절대적인 힘이 담겨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 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황금색 빛들이 문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모 든 빛들은 문양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번쩍!'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빛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문양에서는 눈이 부실 정도의 순백의 빛이 터졌다. 워낙 찰나지간에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육안으로 볼 순 없었지만, 그 빛은 엄연 히 현세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마치 신의 자비로운 축복의 세례처럼. 필설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지고지순의 순백의 그 빛은 진의 몸과 마음을 참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무한대의 정신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축복의 빛이었다. 진과 에리필은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만족감이 그들 의 가슴을 참으로 뿌듯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에리필로서는 매번 느끼는 감동이긴 했 지만 이번 시술로 통하여 느낀 그 감동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치 푸른 하늘을 이불 삼고, 만족의 바다를 자리 삼아 누워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 마도 이런 감동은 진에 대한 에리필의 사랑이 참으로 큰 것임을 반증해 주는 것이리라. 말도 죽고, 숨소리마저도 감동으로 죽은 오두막 안의 공기가 일순 크게 일렁거렸다. 그 것은 바로 진의 마비된 사고가 깨어나며 터져 나온 감탄사 때문이었다. "아, 황홀해!" "오랜만에 느끼는 순백의 빛이었다." 진도 에리필도 감동으로 벅차서 인지는 몰라도 음성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한 감동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진이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이상한 현상을 발견 한 뒤 소리침으로서 감동의 분위기가 깨져버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이거 뭐야? 내 몸이 왜 이래?" 진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정쩡한 걸음으로 뒤뚱뒤뚱 거리는 모습 이 특히 웃겼다. "사부님 제 몸이 이상해요. 마치 뭔가가 제 몸을 누르는 듯해요. 그것도 엄청난 힘으 로 말이에요." 진은 처음엔 당황했다가 이내 기(氣)를 운용해 전체적으로 몸의 기능을 끌어 올렸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목격한 에리필은 즉시 그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진아, 기(氣)를 운용하는 것을 당장 중지하도록 해라. 그러면 수련이 되지 않는다. 이번 수련의 목표는 육체적인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데 있다. 이는 바이얀 대륙의 사람 들이 수련하는 방법을 응용한 것이니, 너에게 또 다른 능력을 키워줄 것이다. 물론 아 침의 왕복질주 때는 기(氣)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 참고로 지금 네게 건 중력은 2G다. 그러니깐 너의 몸을 30kg정도의 무게로 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럼 오늘부터 30kg을 몸에 두르고 생활하는 거란 말씀인가요?" "쉽게 말하면 그렇지. 그리고 조금씩 G를 높일 거니깐 단단히 각오해야 될 거야!" 진은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수련의 일부라는 생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 다 진의 관심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사부님, 그런데 아까 어떻게 하신 거예요? 등에 뭔가를 그리는 것도 그렇고, 알 수 없는 주문도, 그리고 그 주문으로 인해 생긴 황홀한 빛의 향연에 이은 이 G라는 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더군다나 G라는 힘은 기(氣)하고는 상관없는 힘인 거 같아요." 진의 질문에 에리필은 잠시 고민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진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나 가르쳐 주려고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진이 술법에만 정신이 팔려, 검을 등한시 하게 되면 그것은 오히려 진의 성장에 큰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 직 외경은커녕 기(氣)를 한 곳에 모으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실력에 다른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덧셈도 못하는 녀석에게 곱셈을 가르쳐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죽도 밥도 안 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마음에 걸렸지만, 결국 에리필은 가장 기초적이며, 개략적인 것 만 설명해주고, 술법을 가르치는 것은 예정대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내가 쓴 힘은 너의 말대로 기(氣)와는 좀 다른 힘이지만, 그 힘의 원천은 같다고 볼 수 있지. 일단 술법사란 대기에 퍼져 있는 '마나'란 힘을 심장에 저장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신 이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의 술법을 쓴단다. 나 같은 경우는 중력의 힘을 쓰지. G라는 것은 그 힘의 세기를 대략적으로 수치로 정한 것일 뿐이고. 어쨌든 거기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자." "또 나중이에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진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에리필은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또…… 라.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네가 외경에 다 다르게 되면 술법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겠다. 어때?" 에리필의 말에 진은 잠시 생각했다. 분명 쉽지 않은 제안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그 길은 멀고도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 지금 꼭 배울 필요가 있겠어? 더군다나 죽을 둥 살 둥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하는 힘든 관문이 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데 말이야. 다른 곳에 신경 쓰다보면 더욱 요원한 일이 될 뿐이잖아!' 진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끝에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해요. 그럼 외경에 도달하게 되면 그 술법이란 거 가르쳐 주시는 거죠?" "그래. 네가 외경에 도달하기만 하면 술법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 지만 외경이란 일류에 도달한 자들이 필히 넘어서야 할 단계이고, 그 단계는 커다란 벽과도 같다는 걸 잊지 말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G라는 외부의 압력은 너의 수련에 도 도움을 줄 테니, 꾀부릴 생각은 하지 말고, G를 이용하여 열심히 노력하거라." "하하, 꾀부리는 일 같은 건 절대로 없을 테니깐,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요." 진의 화끈한 대답에 에리필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아직은 어리고 약하지만, 그 의 재능과 무엇보다도 강단 있는 그의 성격이 에리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오늘은 좀 깁니다. 후우, 생활패턴바꾸기가 참으로 힘드네요. 쩝. 이제야 일어나다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1 회] 21화. 인연의 고리 1. 요이르 시는 도심에 있는 큰 마을 외에는 작은 마을들 여럿을 모아 놓은 도시였다. 그래선지 대체로 요이르 시라 하면 흔히 도심만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더구나 그 작은 마을들에 사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 마을이 요이르 시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 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각자의 마을에 제일 어른을 촌장으로 세우 고, 자치적인 활동으로 마을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요이르 시의 어느 작은 산골마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 다. 그 산골 마을을 사람들은 쥬이시라 불렀는데,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오순도순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간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 었다. "사부님,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내가 알고 있기론 지금 이 시각은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으로 아는데?" "에이, 너무 그러지 마시라고요.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것 보단 가끔씩 머리도 휴식할 시간을 주어야 더 잘 돌아가죠."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그 나름의 애교 섞인 표정을 가미하여 말하는 진을 보며, 에리필은 참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어, 공부만 죽어라 한다고? 내가 알기론 하루에 두 시간도 채 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거기다 그 두 시간이란 것도 알고 보면 한 시간은 이스트 언어를 배우는 데 쓰이고, 나머지 한 시간 정도만 공부하는 데 쓰이는 걸로 아는데. 사람들은 이런 걸 보고 죽어라 공부한다고 하는 가 보지?" 에리필의 냉정할 정도로 정확한 분석은 진의 들뜬 사기를 여지없이 무너 뜨려 버렸다. 그의 붉게 상기된 얼굴은 이내 시커멓게 변했고, 초롱초롱 했던 눈망울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패잔병의 흐릿한 눈으로 변했다. 그 리고 빳빳이 고개를 들게 하던 그 힘도 이제 바닥났는지 고개를 힘없이 떨구는 진이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에리필은 속으로 후회하며, 진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러나 진은 여전히 고 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니 엷은 습막이 진의 눈가에 맺힌 듯 보였다. 이에 에리필은 가슴이 저려 옴을 느꼈다. 이렇게 에리필이 후회와 연민의 눈길로 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진은 그의 짐작과는 전혀 다른 생각 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런! 아저씨는 왜 아직까지 저러고 있는 거야? 평소 때 같으면 벌써 허 락했어도 했을 시각인데. 아! 하필 왜 이런 중요한 시간에 하품이 나오는 거야? 읍, 참아야 해. 지금 하품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고!' 진은 하품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참았고, 억눌렀던 하품이 입으로 나오지 못하자 위로 올라가 진의 눈가에 엷은 이슬을 맺게 만들었다. 이 얼 마나 공교로운 일인가? 일이 되려면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을. 절묘한 타이밍 에 맺힌 그 이슬은 에리필도 감쪽같이 속게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진에게 일어난 이 현상을 알리 없는 에리필은 질책이 어느 정도 는 가미된 자신의 발언을 자책하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진의 고개가 살짝 들려졌다. 진이야 에리필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에리필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엔 비에 젖은 가 련한 슬픈 새의 눈망울이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무엇을 애타게 갈망하는 것인가? 에리필은 그 갈망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풀어줄 수도 있었다. 너무나 쉽고 간단히. 그런데 자꾸만 뭔가가 걸 렸다. 왠지 속고 있다는 기분이 그의 입을 좀처럼 열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진의 입이 열리며 처량한 음성이 그의 귀에 꽂히듯이 파고 들어왔다. "사부님, 죄송해요. 그냥 갔다 오세요. 저는 공부나 하고 있을게요. 에휴, 저도 한번 마을에 내려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뒷말은 더욱더 처량하고, 동정을 유발시키는 음색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작게 중얼거린다고 듣지 못할 에리필이 아니었기에 진의 중얼거림은 그의 귀에 고스 란히 들어왔고, 에리필은 또 다시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그렇다. 이 아이는 아직 13살 소년이지 않는가. 망중지한이라 했던가? 가끔씩 갖는 휴식은 그야말로 꿀처럼 달며, 수련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에리필은 더 이상 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입 에서 나오는 말은 자연스레 항복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니, 같이 가자꾸나. 그래 네 말대로 가끔씩은 휴식도 필요한 것 같으니. 어 서 준비하고 마을로 내려가자." 에리필의 말에 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 렀다. 그간 말은 안했지만, 몇 달간 사람 냄새를 전혀 맡아 보지 못 한 진이였기 에 사람이 몹시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바깥 외출을 그렇게 강렬히 원했는지도 모른다. "준비랄 게 뭐 있나요? 지금 바로 나가죠." 진은 앞서가며 에리필에게 말했다. 뒤따라 나오는 에리필은 한 대 맞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에리필 씨 오랜만이네요. 어디 갔다 오셨다면서요." 인상뿐만 아니라 몸매도 넉넉한 중년의 여성이 푸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그랬었죠. 그런데 루시아 씨는 여전하시네요. 언제나 기운찬 모습이 정 말 보기 좋습니다." 본인은 아부라고 하는 말인 듯하지만, 도저히 숙녀에게 덕담으로 할 말은 아닌 듯 했다. 그러나 루시아 본인은 그걸 덕담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에리필의 빈약한 아부도 그럭저럭 통한 것 같았다. "호호, 그래요? 농담도 참 잘하신다니까. 그런데, 옆에 있는 아인 누구죠? 똘똘하 고 귀엽게 생겼네요." "그런가요? 이 아인 저의 제자인 진이라고 합니다. 진아 인사드리렴." "안녕하세요. 올슈레이 진입니다." 루시아의 아부 성 발언에 에리필의 제자 사랑이 또 다시 발동하여 입술이 귓가에 걸 쳐져 찢어질까 걱정될 정도로 벌어졌고, 진을 앞으로 내세우며 인사시켰다. "그래, 난 드보드 루시아라고 해. 에리필 씨의 제자라고? 좋은 스승을 두었구나. 열 심히 배워서 에리필 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 거라." "예!"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에리필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루시아 씨 주문은 매번 같은 걸로… 아시죠?" "당연하죠. 하루, 이틀 거래한 것도 아닌데. 물품 준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깐 간만에 마을이나 한번 돌아보시고 오세요. 뭐 특별히 변한 건 없겠지만요." "그럼 마을이나 한번 돌아볼까요?" "그러세요. 고향에 돌아왔다 생각하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을을 둘러보시고 오 세요. 마을사람들도 에리필 씨를 만나면 모두 반가워 할 거예요. 특히 헌트 씨가 많이 반길 거예요." "헌트, 그 친구 못 본지도 꽤 되었군요. 이런, 참 그 친구 성격으로 봐서는 맨 먼저 찾아오지 않았다고 화부터 버럭 낼 터인데… 그럼, 루시아 씨 좀 있다 오겠습니다." 에리필은 뭔가가 불현듯 떠올라 황급하게 인사를 하고 진을 이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진은 끌려가면서도 루시아에게 인사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고, 그녀는 포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진과 에리필이 사라지고, 그 뒤를 루시아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따라가고 있었다. "에리필 씨 아마 고생 좀 하실 거예요." ~~~~~~~~~~~~~~~~~~~~~~~~~~~~~~~~~~~~~~~~~~~~~~~~~~~~~~~~~~~~~~~~~~~~~~~~~~~~~~~~ 요번화는 좀 짧죠? 화를 나누다 보니, 뒷부분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고... 그래서 이렇 게 어중간한데서 짜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연참 들어갑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2 회] 22화. 인연의 고리 2.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지 않아 꽤 어둡지만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목조 건물이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로 건물을 이루는 나무들은 빛이 바래다 못해 퍼석해져 있었다. 그러 나 그 건물은 오래 묵은 술의 깊은 맛처럼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 어, 술보다 먼저 그 깊고도 아늑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이봐, 헌트. 소문 들었어?" 갈색 머리의 사내가 바에 앉아 거구의 사내에게 말했다. "무슨 소문?" 거구의 사내가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갈색 머리의 사내에게 오히려 되물 었다. 그의 음성은 약간 건조해,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냉정하다는 오해를 사기가 다반사였지만, 본래 그의 성격은 몸이 말하듯 화통하고 급 했다. 한 마디로 불같은 성격이라 단정할 수 있었다. "에리필 말이야. 그 친구가 돌아왔다고. 몰랐어? 어라, 돌아왔으면 자기 한테 제일 먼저 신고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도대체 무슨 배짱이래?" "뭐라고? 카이슨 그 말 믿을만한 말이겠지." 헌트는 카이슨을 통하여 소식을 들은 이 사실을 못내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카이슨에게 다짐을 받았다. "물론,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카이슨은 확실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헌트는 그 큰 덩치완 어울리지 않게 크게 놀랬다. 그리고 이어서 분노했다. 돌아왔으면 즉각 보고를 하러 내려와야 할 터인데, 카이슨에게서 소식을 듣 게 하다니. 헌트가 이렇게 에리필의 대한 분노로 인해 그 엄청난 에너지를 혼자서 발산 하고 있을 때, 갈색 나무로 만든 문이 기묘한 소음을 일으키며 열렸다. 끼이익! 화도 나고, 배신감에 몸이 달아올랐지만,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된 헌트의 고개는 문 쪽으로 자동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헌트의 시선이 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람을 잡았고, 곧 이어 그의 대머리엔 무럭무럭 연기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람 중 한명이 폭발하기 직전의 헌트의 모습을 보며, 심 한 갈증에 목말라하는 사람처럼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는 몇 번을 망설 이다 주저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잘 있었어? 헌트. 오랜만이야."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멋쩍게 흔드는 그에게 헌트는 흉포한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거센 일갈을 날렸다. "에리필! 다 들었어. 여기 온 지 꽤 되었다며. 그런데 여길 이제야 찾아와?" 헌트는 말을 하며 그의 육중한 덩치완 어울리지 않게 재빠른 동작으로 바를 뛰어 넘어 에리필에게 달려들었고, 거의 지척에 이르자 그는 주먹을 날렸다. 별로 힘 도 실리지 않고 스피드도 빠르지 않았기에 진은 에리필이 쉽게 막을 꺼라 생각했 다. 그러나 그것은 진의 착각이었다. 천천히 움직인다고 여겨졌던 주먹이 언제 다가왔는지 에리필을 강타했고, 팔로 십 자 방어한 그는 들어왔던 문을 등으로 밀며 밖으로 튕겨나갔다. "크윽, 이봐. 헌트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이, 이보게 진정하게." 방어 한 팔에 전해진 충격과 통증 때문에 에리필의 얼굴이 종이 구겨지듯이 마구 구 겨졌다. 그러나 자신의 통증보다도 먼저 헌트를 진정시켜야 했던 에리필은 또 다시 돌진하는 그를 보고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돌진은 더 이상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에리필도 절실히 몸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검을 검집에서 뽑을 수밖에 없었다. 진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무모한 돌진을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사부는 평소 때는 몰라도 검을 들고 있으면 아예 딴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의 사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절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즉 사부가 장난으로 상대방을 상대하고 있진 않다 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의 염려는 괜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대략 3 라키르(미터)정도 되었을 때, 느릿하게 움직이던 헌트의 몸이 갑자기 사라지듯이 앞 으로 쏘아져 나갔고, 에리필의 천천히 움직이던 검도 빗살처럼 빠른 속도로 세상을 양단하듯 그어졌다. 쾅! 살과 뼈로 된 주먹과 차디찬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검의 충돌은 일반적인 상식과 무 지로 인한 편견을 뛰어 넘는 놀라운 것으로, 이 사실은 진에게도 참으로 놀라운 충 격으로 다가왔다 "어라? 이게 무슨 조화지?" 진은 눈앞에 전개되어지는 이런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의 사부가 휘두른 검엔 엄청난 기(氣)가 모여 있었을 것이고, 순간이지만 진은 그 엄청난 기(氣)가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옴을 느꼈다. 그런데 그것을 맨 주먹으로 막 아버리다니. 주먹이 무슨 무쇠로 된 것도 아닌데. 하여튼 현실은 이렇게 상식과 편 견을 뛰어 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주위에 있 는 사람들 모두 이런 상황을 너무나 당연시하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헌트 와 같이 있던 갈색 머리의 카이슨은 진의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 왜소한 체구답지 않게 두 사람으로 인해 생긴 충돌의 회오리를 너무나 쉽게 받아 넘기고 있었다. 진 역시 그 여파를 받아 넘기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하며, 나름의 준비를 했어야 했는 데, 평범한 모습의 그가 너무나 간단히 받아 넘기는 것이 아닌가? 진은 뭔가 이상하 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작은 마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돌출상황은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켜 온 마을을 북새통으로 만들어야 정상인데, 도대 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리 고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이벤트로 이 사건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생 각하던 진은 모르긴 몰라도 그의 옆에 있는 카이슨이란 이 사람도 분명 고수일 거라 고 생각했다. 진이 이렇게 '모든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검과 주먹을 부딪히고 있었다. "여보게, 좀 늦게 찾아왔다고 이러면 정말 내가 섭섭하지." 에리필은 검을 휘두르며 나름대로 자기변호를 했지만, 헌트에겐 그 변명은 씨알도 먹 히지 않는 소리였다. "흥, 뭐 섭섭하지? 나를 여기에 썩히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 그리고 약속을 잊은 건 또 누군데! 그런데 뭐? 섭섭해? 이거 왜 이래, 정말 섭섭한 사람은 바로 나야 나!" 헌트는 온 마을이 울릴 정도의 쩌렁쩌렁한 큰 목소리로 말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내 질러진 그의 주먹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한편 이상한 상황에 골몰해 하며, 상념 의 나락에 떨어져 있던 진은 큰 고함소리에 놀라 얼떨떨한 상태에서 소리 나는 방향 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저게 뭐지? 혹시?' 진은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주먹에 맺힌 붉은 기운. 추측하건데 그것은 분명 기(氣) 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것은 외경을 이룬 상태에서 기(氣)를 방출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우연히 사용했던 외경은 말 그대로 방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헌트의 주먹에 나타나 있는 기운은 분명 맺혀 있는 것이 다. 방출과 맺힘. 어느 것이 더 높은 수준의 것인지 진의 현 수준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헌트의 주먹이 무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리필은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헌트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계속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폭하게 돌진 하는 헌트를 보며 에리필은 비록 '그 난폭한 기질은 여전하지만, 예전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잔혹했던 헌트가 아닌가? 어쨌든 이 마을에 와서 많이 순화되고 수양이 되었 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문득 헌트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리게 만들었다. ~~~~~~~~~~~~~~~~~~~~~~~~~~~~~~~~~~~~~~~~~~~~~~~~~~~~~~~~~~~~~~~~~~~~~~~~~~~~~~~ 커헉, 더 짧아진 거 같다는... 올리고 나니깐 그것을 알겠네요. 이런 마지막 회상씬을 올림으로써 사죄를 하겠습니다. 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3 회] 23화. 인연의 고리 3. 광활한 평원과 하늘이 맞닿아 생긴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안식을 위해 서서히 내려가던 어느 날 오후, 에리필은 참으로 우연히도 헌트와 조우를 하였다. 비록 첫 만남이었지만, 그는 헌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 도와 그만의 독특한 인상착의는 그의 화려하다 못해 경이로운 행로와 맞물려, 약간의 관심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헌트임을 알 아 맞추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하고 딱딱한 얼굴 뒤에 숨겨진 잔혹함과 흉포함, 갈 색과 흑색을 절묘한 배율로 섞어 놓은 짙은 흑갈색 피부. 그리고 예리한 칼로 머리털을 밀고 그 위에 새겨 넣은 십자가. '피의 낙인'이라고 불 리 우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 십자흉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상징이었으며, 야차라 불리 우는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불행의 매개체이 기도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피의 십자가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드는 순간, 천하의 어느 생명도 단지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소용되는 일회적 소모품에 불과하며, 재미로 꺾여지는 연약한 가지와 같다고." 에리필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믿지를 않았다. '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지게 마련이 며, 진정 그것은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정작 그를 만나고 나서야 '때론 지나치다고 생각될지언정 진실은 진실을 목도하는 순간 그 빛을 발한다.'고 외쳤던 카슈오 조르디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홀로 뜨거운 숨결을 토하며, 시뻘건 선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목욕하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흡사 야차와 같았다. 그의 주위에는 호흡할 수 없는 자들의 육신이 잔인하고, 흉포한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통곡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의 흘린 피가 혈해가 되어 흥건하게 고여 있는 붉은 웅덩이를 무심히 바라 보던 헌트가 순간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 진원지를 찾아 매서운 눈길을 쏘아 보냈다. 순간 살육에 희열을 느끼며, 광기로 번들거리 는 그의 눈빛이 거력이 담긴 날카로운 철창으로 변해 에리필의 모든 신경을 자 극하며 괴롭혔다. "쥐새끼는 아닌 모양이군!" 그의 안광은 범인(凡人)이 받을 만큼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시 선에 담겨진 안력은 무술을 익힌 이들이라 할지라도 치를 떨게 할 정도로 흉포 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막'피의 제전'을 끝낸 이후라 그 광기는 극에 이 르러 있었고, 피에 굶주려 선혈의 불꽃을 태우며 이글거리는 그 눈빛은 마치 먹 이를 쫒는 악마의 눈빛으로 그 강렬함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사지 육신의 자유를 뺏는 무서운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 그 마력에 신출내기 에리필이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렇다 보니 그의 입은 좀체 떨어지지 못했다. "조금 큰 쥐새끼일 뿐이었나?" 메마르면서도 거친 그래서 더욱 잔인하게 들리는 헌트의 음성이 에리필의 귀에 파 고들 듯이 들어갔다. 감정이라곤 일체 섞여 있지 않은 음성이었건만, 에리필은 그 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느꼈다. 순간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기의 움직임이 느껴 졌다. 그리고 곧 그것은 굳어있던 육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무형의 결박을 끊게 만 들었고, 막혀 있던 기도를 뚫어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외침을 토해내 게 만들었다. "에리필이오!"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뱉은 다짐의 말인 줄 알리 없는 헌트는 한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난데없이 그것도 진지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 하다니. 이 상황에서 저런 황당한 말을 하는 인물도 별로 없을 거라 생각되었다. 한편 에리필은 그 뜨거운 열기가 그의 얼굴까지 침범하였는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 었다.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헌트가 광소를 터트렸다. "크크큭, 큭큭크윽하하하하"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들어 가고 싶은 심정인 에리필을 앞에 두고 헌트는 신나게 웃어 제꼈다. 웃음도 삭막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음침하진 않았다. 오히려 광오하다 싶을 정도의 권위에 찬, 일면 듣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야성적이며, 남성적 인 호방한 웃음이었다. "크크 에리필이라고. 상대방이 이름을 가르쳐 주었으면, 내 이름을 밝혀야 되는 게 예의겠지." "알, 알고 있소!" 헌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하자 에리필이 다급히 말했다. "오호 그래? 그렇다면 나를 알고도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인데… 현상금 사냥꾼인가?" "아니오!" 흥미롭다는 듯이 헌트가 묻고, 에리필은 그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시키는 대답으로 자 신의 존재가치를 높였다. "아니란 말이지. 재미있군. 그렇다면 자넨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뒤 쫓겠군." "그, 그렇소." 상대를 접한 에리필은 이미 헌트를 잡을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 전 일이었다. 대신 무 사히 그리고 명예롭게 살아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헌트는 앞에 있는 청년에게 자신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는 호감이란 감정을 느꼈다. 도 대체 자신을 쫓는 자에게 호감이라니. 이런 감정의 변화가 참으로 의외라는 듯 헌트가 웃 었다. 그에겐 이런 여유를 부릴 만큼의 실력이 있었다. "하하하…… 가라!" 호탕한 웃음소리가 잠시 끊어지며 짧지만 확실한 방생의 한마디가 헌트의 입에서 튀어나 왔다. 순간 에리필은 몸을 돌려 앞으로 곧장 달려 나가려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아쉽게 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란 정신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 싫소!" "……?" 의외의 대답은 종종 인간의 사고를 한 순간 정지시킨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에리필의 이 시건방진 소리에 헌트는 머릿속에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뇌가 어디엔가 받친 것처럼 띵해 지며, 하얗게 탈색되는 진기한 경험을 한다. 분노보다도 허탈한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당장 쳐 죽일 놈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저 당돌한 녀석이란 이름으로 미화되며, 호감이 더욱 더 생기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헌트의 몸은 그의 주인아래 지배되지 않고 있었다. 온 몸에서 발산되는 무시무시 한 기운은 에리필을 압박하고 있었고, 십자 흉터는 붉게 상기되어 일촉즉발의 위험천만 한 상황을 조장하고 있었다. 에리필은 온 몸에 전율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는 공포를 느꼈다. 끈적하면서도 집요한 그 래서 더욱 두려운 공포의 그물이 그를 조여 오고 있었다. 에리필은 후회했다. 아니 후회 정도가 아니었다. '싫소!'란 생을 초월한 듯 한 이 망언을 내뱉은 이놈의 가벼운 입에 게 무한한 증오와 저주를 퍼부었고,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만 가득 찬 머리통을 부수고 싶 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눈앞에 닥친 이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헌트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몸이 연출한 상황을 잠시 즐기다가 아쉽지만 본능을 안으로 갈무리했다. 공포의 그물이 사라지자 에리필은 안도감이 드는 한편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과도하게 소 모된 심력의 쇠약과 육체적 피로가 일시에 몰려와, 몸이 곧 허물어지는 듯했다. 그는 이 처럼 극한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헌트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기 싫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가지.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땐 부디 큰 쥐새끼에서 좀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겠네." 그의 마지막 말이 대기에 유포되었을 때는 헌트의 몸이 미련 없이 돌아선 상태였다. 에리 필은 그저 멍한 상태로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온통 피로 얼룩진 그 자리에 붉은 석양이 지고 있었다. 붉은 석양은 멀어지고 있는 헌트 를 따라가듯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멍한 상태의 에리필은 인간이 만든 저주스런 붉음과 하늘이 연출한 황홀한 붉음이 묘하게 어울리는 그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광경에 자신도 모 르게 감탄을 터뜨렸으나, 이내 의식을 회복하고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빌며 그 자리를 떠났 다. 그러나 이미 그 때 그의 마음 한켠에는 헌트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싹이 움트고 있었다. ~~~~~~~~~~~~~~~~~~~~~~~~~~~~~~~~~~~~~~~~~~~~~~~~~~~~~~~~~~~~~~~~~~~~~~~~~~~~~~~~ 오늘의 연참은 여기까지라는.....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4 회] 24화. 인연의 고리 4. 강한 기세로 몰아치던 공격이 일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고, 에리필은 예전의 풋풋한 기억의 편린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채 의아스러움에 생각의 문을 닫았다. "가자!" 헌트는 뜬금없이 외마디 말을 토해내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부족한가?" 에리필은 그의 행동에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헌트의 뜬금없는 소리에 에리필의 알 수 없는 물음이라니. 그러 나 이미 헌트는 자리를 떠나고 없었고, 에리필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진에게 눈짓으로 뒤를 따르라 명하며.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기척 없이 진의 뒤를 따라오는 인물이 있었다. 진은 그가 입을 떼기까지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진의 걸음 소리에 자신의 소리를 숨겨 놓은 듯했다. "어린 친구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의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듯한 음성은 진의 정신을 혼비백산케 했다. 수 련으로 몸과 정신을 갈고 닦으면서 그의 감각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한 상태였 기에 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 신감은 뜻하지 않은 음성에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허무하게 꺾여 버렸다. 거기 다 그의 사부이자 앞서 걸어가고 있는 에리필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의 좌절 감은 더욱 심했다. '전투의 행방은 기척의 싸움에서 시작된다. 정정당당하게 일대 일 승부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투는 누구와 붙을지, 어디에서 싸울지 정해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의외의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 전투의 일상이고, 그렇기에 상대방의 기척을 먼저 알아채는 것이야말로 전투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싸운 다는 것은 내 목 여기 있으니 어서 따 가시오라고 말하는 거와 같다.' 진은 온 몸에 스산한 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잘게 몸을 떨었다. '그렇다면 난 이미 목 없는 시체?' 섬뜩한 이미지가 그려지자 진은 그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카이슨은 이런 그의 행위에 의뭉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러지? 못 먹을 걸 먹기라도 했나?' 진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지금 당장 그의 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도 그는 그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 속에 완전히 몰입해 두려움에 어쩔 줄 몰 라 좌불안석 하고 있었다. 카이슨은 진의 기묘한 행동에 다시 한번 의문을 느꼈고, 그는 지적 호기심을 풀 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툭! "히에엑!" 카이슨의 동작은 간단한 것이었지만, 진이 반응한 행동은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 다. 뭔가에 놀라 팔짝 뛰는 진은 순식간에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왔고, 이내 민망 함이란 화끈 달아오르는 감정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슨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의 벌건 얼굴이 뜻함은 알 수 있었다. "쿡쿡쿡큭하하하하" 카이슨이 웃기 시작하고, 진의 얼굴은 더욱 붉어져갔다. 에리필은 헌트를 따라 걷다 뒤에서 들려오는 친숙한 웃음소리에 몸을 돌려 바라보았 다. 그리고 그곳엔 풋풋한 기억 속 편린의 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 싸움은 여기서 해야 해!" 에리필의 집 앞에 있는 널찍한 공터에 도착하자 헌트는 텅 빈 땅을 둘러보며 시원스 레 말한다. 그의 뒤로 음영이 뒤따른다. 길지 않은 그림자 행렬의 선두는 어정쩡한 미소와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에리필이었다. "어이, 이제 맘껏 어울려 보자고." 헌트는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전투 자체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더 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것은 그가 바로 꾸밈이 없는 '자연산 헌트'이기 때문이다. 에리필은 의미가 모호한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에리필이 자리를 잡고 준비를 마쳤을 때 즈음, 진과 카이슨도 집 앞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익을 대로 익은 걸로 보아 이제 곧 시작하겠군. 그렇지 않나, 어린 친구?" "예? 그, 그렇네요." 심상치 않은 공기가 주위를 지배한다. 고요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몸에서 미증유의 힘 이 발산되자 긴장되어 있던 공기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대기 의 요동은 강한 압력으로 주위의 모든 것들을 뒤로 밀어버린다. 진도 카이슨도 그 힘 을 감당치 못하여 비틀거리며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공터 대부분의 공간이 그들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는 듯했다. 에리필은 허리에 매어둔 칼집을 풀어 뒤로 던졌다. 칼집은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진 의 손에 빨려 들어가듯이 잡혔다. "진아, 잘 보거라. 이것이 앞으로 네가 통과해야만 하는 경지에 도달한 자들의 전투다." "예!" 에리필의 음성에는 사뭇 비장감마저 엿보였다. 진도 그의 음성에 깃들여 있는 결의를 느 꼈는지 힘차게 대답했다. "후후, 저 어린 녀석이 이번에 구해온 제자란 말이지. 단련시킨 흔적이 눈에 보이는군. 크크 그래. 사부가 되었으니 더욱 기를 쓰고 덤벼야 할 거야. 사부된 자로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으면 말이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것이네." "크크크 좋아, 아주 좋아. 아까 몸은 이미 풀어놓았으니 본 게임으로 바로 들어 가보 자구." 헌트가 말을 마치자 그의 십자 흉터가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더욱 사나와지고 흉포해졌다. 에리필도 이에 맞서 더욱 기(氣)를 끓어 올렸고, 거대한 기(氣)의 분출은 회오리바람처 럼 그의 전신을 나선으로 감싸며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이를 양각풍이라 하던 가……. 하여튼 일촉즉발의 팽팽한 대치상태는 이렇게 이뤄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돌격할 것 같 던 헌트도 신중히 에리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 에리필 역시 헌트의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에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에 진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턱턱 막혀 옴을 느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정돈데, 저 두 분이 서 있는 공간 사이에는 얼마나 큰 압력이 지배할는지.' 진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는 진이었다. 한편 전장에 선 두 사내의 날카로운 시선이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고 움 직이다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 순간 강렬한 스파크가 터졌음은 물론이고 대기의 요동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일렁이던 대기가 미처 진정되기도 전, 두 사람의 몸은 그 자리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공터의 중심에서 전력을 다한 격렬한 충동이 터졌다.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과 망아지처럼 날뛰는 기(氣)의 폭주를 뒤로 남긴 채. ~~~~~~~~~~~~~~~~~~~~~~~~~~~~~~~~~~~~~~~~~~~~~~~~~~~~~~~~~~~~~~~~~~~~~~~~~~~~~~~~ 드디어 에리필과 헌트의 본격적인 대결이군요..쿠헬헬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5 회] 25화. 인연의 고리 5. 두 사람은 붙었다 싶으면 물러나고, 물러났다 싶으면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십여 차례의 격렬한 공방이 눈 몇 번 깜빡거리는 사이에 오고 갔다. 물론 더 큰 부딪힘을 위한 잠시의 공백이지만, 어쨌든 헌트와 에리필은 묘한 웃음을 입가에 걸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예리한 눈빛으로 상대의 미세한 빈틈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에리필의 검이 대지를 향하여 늘어뜨려 졌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 동작에 천하의 헌트도 눈에 띄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순 대지도 그 호흡을 멈추는 듯했다. 그리고 늘어뜨려 졌던 에리필의 검이 천천히, 그리고 참으로 느릿한 속도로 휘둘러졌다. 쾌(快)보다 중(重)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휘두름 이었다. 순간 검에서 발출된 거대한 기운이 공간을 심하게 때렸고, 거대한 파공음과 더 불어 공간은 심하게 일그러졌으며, 검이 스쳐 지나간 공간은 진공상태가 되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강력한 힘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헌트는 에리필의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헌트의 움직임은 항 상 직선의 움직임이었다. 원만한 곡선의 움직임을 그의 피하는 동작에선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탄력으로 움직이는 그의 몸놀림은 마치 한 동작에 수많은 변화가 숨어 있다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신속했다. 에리필의 검은 공터에 있는 흙과 돌들을 하늘로 튀어 오르게 만들며, 흙먼지를 하늘로 솟구쳐 오르게 하여 온 허공을 희뿌엿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경이적인 검공도 헌트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나게 하지 못했다. 그만큼 헌트의 이동이 빠르고 정확했단 말이다. 에리필도 이번 공격으로 헌트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차 공격을 감행했다. 하늘을 뚫을 듯 날카로운 검끝이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유려한 곡선이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을 넘어가기 시작했을 무렵, 그의 검은 희끗한 잔상만을 남 긴 채 무한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헌트는 정신없이 이동하다 사방을 조여 오는 검세에 놀랐다. 어지러울 정도로 난무하는 검은 실체와 잔상의 모호한 경계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사실 에리필의 이번 공격엔 잔상과 실체의 경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공격은 모두 실체였고, 한번이라도 그의 검세에 당하게 되면 무한대로 연결되는 검의 폭풍에 잔혹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는 무서운 검공이었다. 헌트도 에리필의 공격이면에 담긴 날카로운 이빨을 보았다. 그렇지만 헌트라는 인 물은 위험 속에서 본연의 존재가치를 찾고, 생사가 오가는 사이에서 진정한 쾌락이 존재한다고 믿는 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의 행동은 일순 지옥의 유황불로 들어 가는 불나비로 비쳐 보였다. 이제는 희끗한 잔상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쾌(快)의 극치로 휘둘러지고 있는 검세를 향해 헌트가 몸을 날렸다. "앗!" 외마디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진은 엄청난 실력을 소유한 헌 트가 순간적으로 판단착오를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무 모한 행동을 할 수가 있겠는가? 진으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러나 그것은 진만의 착각이었다. 금방이라도 잔혹한 검날 아래 온 전신에 흉한 상처를 남기며 쓰러지리라 생각했던 헌트 는 의외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있었다. 아니 상처를 입긴 입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생채기 일 뿐. 무시무시하게 날아오는 검날 아래에서 이 정도의 생채기는 상 처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 한 것이었다. 헌트가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에리필의 무수한 검의 변화가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헌트의 움직임은 매우 빠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에리필에게로 향하는 속도는 매우 느 렸다. 그러나 비록 그 속도가 느릿하나 착실히 벌어진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어느 순간 헌트의 동작이 멈추어 졌다. 그리고 헌트의 몸에서 강렬한 붉은 빛이 서서히 배어 나오 기 시작했다. 그 붉은 빛들은 단전에서 끌어올려져 그의 주먹으로 모였다. 실제 오랜 시 간이 소요된 것 같아 보이는 이러한 놀라운 현상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의 주먹에 모여 있는 붉은 빛은 모든 것들을 튕겨내 거나, 빨아들이는 가공할 힘을 가지 고 있었다. 헌트의 주먹이 천천히 뻗어진다. 그 주먹은 매우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사고도 헌트 의 주먹만큼 아니 그보다도 훨씬 느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의 법칙도 본연의 질서를 잃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의 어긋남은 인식의 밖에 있었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에리필이 왜 움직이지 않는가?' 그러나 에리필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은 사신의 낫처럼 에리필을 옮아 매고 있었지만, 위험은 눈에 보이는 붉은 사신의 낫만이 아니었다. 모든 방위를 차단하고 에리필을 압살시키려는 듯 조여 오는 하이에나와 같 은 헌트의 기(氣)의 장벽이 그의 거동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붉은 기운이 자신의 바로 코앞까지 도달했을 무렵, 에리필은 그의 검이 완 전히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헌트의 기(氣)의 장벽과 부딪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리고 그것은 곧 패배를 의미했다. 에리필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자신도 무리수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만 있을 뿐이다. 화려한 승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제자 앞에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스승 된 자들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힘겹게 움직이던 검로가 갑자기 바뀌며 다시 돌아온다. 갔던 방향 그대로. 그러나 튕겨 버리 는 상대의 힘에 의하여 속도는 갈 때 보다 몇 배나 빠른 것이었다. 예전의 자리로 돌아온 검 은 즉시 주인의 뒤로 돌아가고 그 뒤를 주인이 따라갔다. 그리고 그 비워진 공간을 붉은 기 운이 순식간에 매워 버렸다. 에리필이 무리를 해서 얻은 것은 '한순간'이란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것을 위해 그 가 입은 희생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검로를 억지로 바꾸기 위해 무리하게 기(氣)를 운행하 였고, 그리하여 작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얻었다. 그래서인지 에리필의 입가엔 목적을 성취한 자만이 웃을 수 있는 회심의 미소가 잔잔히 걸려 있었다.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이용하여 에리필은 자신의 검에 터질 듯이 집약된 기(氣) 를 모을 수 있었고, 그 넘쳐 나는 기(氣)가 타는 듯한 푸른 불길로 검에 어리게 되면서 좌중 을 압도하는 엄청난 위엄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회심의 일격을 기대하며 의기양양했던 헌트의 몸이 잠시 움찔하였다. 사실 고수들 간의 전투는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결정 된다는 것은 무술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에리필의 검이 유려하나 극쾌의 속도로 헌트의 공격에 대항했다. 붉은 기운과 푸른 불길이 부딪혔다. 콰앙! 고막이 터져나갈 듯한 굉음이 좌중을 휩쓸었고, 그 충돌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해 강한 돌 풍이 자신에게 저항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듯 참으로 거대한 힘으로 몰아쳐 왔다. 진은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에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려고 하 였지만, 그 눈물겨운 노력이 결국은 허사가 되고 말자, 진은 자신의 무력함에 절규하면서 그 거대한 힘에 의해 뒤로 날려갔다. 그러나 진은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얼마 날려가지 않 고 바닥에 착지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고서 말이다. 그 뒤 어찌된 연 유인지는 몰라도 두 절대고수의 전투로 인하여 발생되는 그 무시무시한 충돌의 여파는 이제 그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게 되었다. "괜찮니?" 진은 그를 붙들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왜소해 보이는 카이슨이었다. 진은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왜소한 신체를 가진 저 분이 버티는 것을 볼 때, 이 분 역시 기(氣)의 막 같은 것으 로 저 무식하게 그지없는 돌풍을 막고 있을 거야.' 진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카이슨의 염려에 대꾸를 했다. "예, 괜찮아요. 근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진은 두 사람의 마지막 충돌 후,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승부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카이슨의 입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넋이 빠져 있는 모습이라 말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자욱한 먼지가 조금씩 걷히면서 흑막에 가려져 있던 승패의 향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먼지가 걷히는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진의 얼굴도 카이 슨의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변했다. 더 이상 공터는…… 없었다. 다만 깊은 구덩이만 있을 뿐. 그리고 그 안에 두 사람이 서 있 었다. 입가에 붉은 선혈자국을 찍어놓은 것이 똑같았다. 여기저기 찢겨져 이제는 완전한 누 더기가 된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자욱한 흙먼지에 얼굴은 물론이고, 온 몸이 회색빛으로 변해 있는 것 까지 똑같았다. 그리고 점점이 찍혀 있는 선혈 자국이 회색빛으로 인하여 더욱 선명 한 제 빛깔을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깊은 구덩이 속에서도 승부를 내려는지 강렬한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숨 막히는 격렬한 시선의 공방이 끝난 것은 의외로 헌트 때문이었다. "크큭, 많이 컸어. 정말 많이… 그런데 왜 비장의 한 수를 안 쓴 거지?" 헌트의 거친 음성에는 다소 의외라는 음색이 묻어나면서 그가 놀라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 고 있었다. "굳이 여기서 쓸 기술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거든. 거기다 헌트 자네 역시 그 기술을 쓰지 않았지 않은가?" "크크크, 그래 그랬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단순한 비무에 목숨까지 걸 생각은 없어. 그 리고 그 기술은 딱 한 놈한테만 쓰면 되는 기술이고." "나 역시." 순간적으로 헌트와 에리필의 몸에서 끈적끈적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헌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크크, 그래. 그보다 우리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 헌트의 말에 에리필 역시 긴장시켰던 몸을 이완시키며 위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하자 저 멀리 땅의 경계점이 보이고, 그 한참 위에 하늘이라는 것이 보였다. "그러는 게 좋을 거 같군." 에리필도 동의 하며 몸을 움직였다. 두 사람은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멍한 두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 도 한 듯이 시선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엔 약간의 무안함과 장난스러움이 조금씩 묻어나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목욕물이나 받아줘!" 카이슨은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겪었는지 별다른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았지만, 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그들은 즐기는 듯했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격렬한 사투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고, 그 근처로 목욕물을 옮기는 두 사람의 부산한 움직임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기분 좋은 웃음을 절로 머금게 만들었다. 이렇게 진의 오랜만의 외출이었던 파란만장한 하루 도 끝이 나고 있었다. ~~~~~~~~~~~~~~~~~~~~~~~~~~~~~~~~~~~~~~~~~~~~~~~~~~~~~~~~~~~~~~~~~~~~~~~~~~~~~~~~ 헌트와 카이슨......이 두 사람으로 이 소설이 좀 더 재밌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6 회] 26화. 인연의 고리 6. 이른 아침, 이제는 완연한 겨울의 모습을 보이는 쌀쌀한 바람이 사정없이 뒤집혀 있는 땅을 스치듯 지나갔다. 한줄기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그 뒤를 잇는 것은 또 다른 바람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한 점 오점을 남긴 장본인이 그가 행한 만행의 현장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었다. 자연이 노했음인가! 다시 한번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왔다. 쌀쌀한 바람엔 날카로운 날이 숨겨져 있기라도 하듯 예리한 소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무심한 사 나이의 발길을 막아서지 못했다. 그에겐 모든 것이 무관심의 대상에 들어와 있기라 도 하는지 다른 곳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한 군데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걸 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강렬한 시선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작은 집이었다. 작 고 초라한 볼품없는 집이 그의 강인한 시선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정한 속도로 걷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강렬한 눈빛은 뭔가를 생각 하는 듯한 멍한 눈빛으로 변해버렸다. "근 2년 동안 떠돌아다니다 데려온 아이가 저 아이인가?" 카이슨의 말에 에리필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군. 그런데 저 아이 이름은 어떻게 되지?" "진이라고 하네. 올슈레이 진! 진아 인사해라." 에리필의 말에 진은 고개를 숙이며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무심한 눈동자로 인사 를 받던 헌트의 눈빛이 진의 맑은 눈빛아래에 감춰진 잠재력을 알아보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그가 입을 여는 것으로 대변되는 것이기도 했다. "저 진이라는 아이, 자네가 이곳을 떠난 뒤에 제자로 받아들였을 텐데. 수련한지 몇 년 되었지?" 에리필은 역시 헌트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의 현 성취는 미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수련한 기간과 그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았다면 무인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에리필의 음성엔 낮게 깔린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사 부 사랑이었다. "반년이 아직 못 되네." "반년이 못 되었다고? 거짓말!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저 아이가 이룬 성취에 도달 하려면 2년은 걸려야 하지 않은가. 자네 역시 거의 2년 정도 걸린 걸로 알고……." 카이슨은 가당치도 않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의외로 성미가 급하다고 알려진 헌 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카이슨은 흥분해 말을 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헌트와 얄밉게 미소 짓고 있는 에리필을 보며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느끼기엔 이는 분명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믿기지 는 않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사실인가?" "그렇네." 짧은 문답이 오고갔지만, 대화 속에는 녹록치 못한 의미가 녹아 있었다. 그리고 카이슨 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참동안 짓게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헌트는 카이슨이 어떤 표정을 짓든 개의치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물었다. "내가 보기엔 저 아이는 이미 내경을 이룬 것으로 보이는 데. 그것도 미숙한 내경이 아 닌 거의 완벽한 내경 말 일세. 내가 잘못보지 않았다면 저 아이는 거의 외경을 눈앞에 두 고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헌트는 말을 끊으며 에리필을 바라보았다. 이에 에리필은 그저 무언의 긍정이 담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헌트는 짧게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으려 입을 떼려고 했다. 그때, 가만히 앉아서 대 화에 귀를 기울이던 진이 입을 열었다. 그의 어투나 목소리는 명백히 불만을 표시하고 있 었다. "저, 죄송한데요. 저는 저 아이가 아니에요. 저는 올슈레이 진이라는 이름이 있다고요. 그 리고 보통 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진이라고 하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저 아이 따위가 아니에요." 진은 당돌하다고 생각될 언행을 서슴지 않고 행했다.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이 예전에 어떠한 악명을 떨쳤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이러한 담대한 행위가 성립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모두의 시선은 예상치 못한 진의 말에 한 방 먹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헌트에겐 특히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록 자신이 예전보다 흉포함과 잔인성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악명을 떨쳤을 당시의 기세는 은근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 기에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자신 앞에서 당돌한 면모를 과시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진이었던 것이다. 헌트는 풋 하며 웃음 문을 열어 시원스레 웃음보를 터뜨렸다. 돌연 그가 웃자 일동은 놀랬다. 그 놀람의 원인은 각기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터졌던 웃음보도 조금씩 꿰매져 이제는 터진 흔적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웅웅 울렸던 작은 집도 안정을 찾았다. "진이라고 했나?" "예!" 헌트는 일부러 음색을 낮게 깔아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장했다. 그는 음색만 낮춘 것이 아 니라 일부 기운을 방출하여 확실하게 음습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진은 본능적으로 몸이 떨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외면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알겠다. 이제부터 너를 저 아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그러면 되겠느냐?" 헌트는 진의 기백이 마음에 들어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도 그의 진심이 강하게 가슴에 와 닿자 마음속에 솟아나있던 반감이 어느새 녹아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 그리고 아저씨께서 저를 부르실 때도 진아 라고 불러주셨으면 해요." "그래, 그래." 헌트는 기쁘게 대답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나이도 어느새 60이 넘어가고 있구나. 허, 육체가 젊음을 유지하다 보니 나의 나이 도 잊어 먹고 있었지 않은가?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다면 아마도 진과 같은 손자를 두었을 나이인데 말이야.' 진한 후회감과 상실감이 그의 심장을 후벼 팠다. 잃어버려서가 아니다.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와 살육으로 허무한 시간을 보냈던 자신이 미웠던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고뇌가 강인한 얼굴에 언뜻 묻어났다 사라졌다. 그러나 주위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그가 설마 고뇌라는 것을 하겠냐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만이 어딘가 슬퍼 보인다고 잠시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거 대화가 약간 궤도를 이탈했구먼." 자기 딴엔 이상스레 숙연해진 분위기를 일신시키기 위해 한 농담이었지만, 분위기는 숙연함 에 싸늘함을 더해버렸다. 그에 무안해졌음인가! 헌트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떼었다. "험험,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겠네. 진의 실력은 이미 흔히 말하는 이류를 넘어서 일 류에 다가서고 있어 보이네. 물론 이류와 일류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지. 그것을 우리 는 외경이라 부르고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의 성취속도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 네. 반년 만에 이류에서 일류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경지에 올라있다는 말은 최소 1년 안에 일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기까지 하니 말일세." 가만히 듣고 있던 에리필은 헌트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그의 말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그러 나 그렇다고 해서 굳이 장황하게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군다나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헌트라는 무심한 사내라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 없었다. "자네답지 않군. 장황한 가지는 모두 쳐내고 본론만 말하게." 에리필이 정곡을 찌르자 헌트는 괜스레 무안해져 머리칼 없는 머리만 매만졌다. 그러다 결심 했는지 입을 한 번 꾸욱 다물었다 열었다. "역시 나답지 않은 행동은 어딘가 어색해! 그럼 본론을 말하도록 하지. 내 본론은 나 역시 진을 가르치고 싶단 말이네! 물론 사부 대접을 해 달라는 것은 아니네." 헌트의 갑작스런 발언은 장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어딘가 어폐가 있는 말은 아니 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이 헌트라는 것에 모두가 놀라고 있는 것이었다. 단 한 사람 진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을 뿐이었다. 헌트는 그 대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가 살아오면서 중시한 오직 한 가지는 '자신'이라 는 것이었다. 자신이 있고, 다른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헌트였다. 그런데 그런 자 신이 남을 위해 가르친다? 무언가 기존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두가 강한 뭔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게 변한 것이 신기 하고 한편으로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다. 또한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사부와 막상막하로 싸웠던 헌트가 자신에게 무술을 가 르쳐 준다니 배움의 입장에 선 사람으로서 기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진이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 헌트도 나름대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최우선이다. 예전 살육을 할 때도 싸움이란 거친 쾌락과 거기에서 흘 러나오는 뜨거운 피, 그리고 살을 찢을 때 오는 느낌에 전율이 일었기에 그리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복수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결국엔 내가 원 하는 피의 쾌락을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에리필과 같이 지내며 싸울 때는 비교적 대등한 상대와 싸울 수 있다는 만족감이 있었기에 여기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진이라는 녀석을 가르친다는 데 기쁨을 느낄 것 같기에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것 역시 다른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기쁘기에 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데 성공한 헌트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에리필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카이슨 역시 정신 을 다 잡았다. 모두가 혼란스런 정신을 수습한 뒤,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에리필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묻지 않겠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에서 결정했으리라 짐작되니깐. 어쨌든 결정은 진 자신이 내려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두 사람은 가볍게 합의를 맞춘 후, 진을 쳐다보았다. 에리필은 물어보나한 물음이라고 생각 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저야 영광이죠. 저는 사부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아저씨께서 가르쳐 주시는 거에 대환 영이예요." "후후, 그러냐? 그렇담 내 허락이 떨어져야 한단 말인데…" 에리필은 의도적으로 뒷말을 잇지 않고 말을 끌었다. 에리필이 말을 아낄수록 헌트의 가슴 은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다이너마이트 심지에 붙은 불이 심한 소음을 일으키며 타들 어가듯 헌트의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곧 터질 것만 같은 다이너마이트처럼 헌트의 가 는 인내심도 거의 다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헌트의 인내심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한 순간만을 남기고 있을 때, 에리필의 입이 떨어졌는데, 그의 말엔 사납게 타들어가는 불을 한 순간에 제압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알겠네!" 간단히 툭 내뱉는 에리필의 말에 헌트는 기뻐하고 진은 안도했다. 그리고 카이슨의 입이 근질 근질한지 들썩거리고 있었다. 에리필은 좌중을 둘러보다 카이슨의 기묘한 입 모양을 보며 의 문을 느껴 물었다. "카이슨, 무슨 할 말 있는가?" "어? 아니 아니야. 음…… 그게 말이지." 카이슨은 에리필을 따라하듯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러나 에리필은 애초부터 특별히 원 하는 대답을 정해놓고 물은 것이 아니기에 가슴이 타들어 갈 리도 없고, 도리어 카이슨의 가 슴만 헌트 짝 나고 있었다. 혼자서 낑낑대던 카이슨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치듯 말했다. "나도 진을 가르치고 싶어." "그래." 순간 방안의 공기가 싸늘해 졌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동시에 굳어버리는 불상 사가 일어난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진과 헌트도 순간 굳어졌다 카이슨의 우는 듯한 표정 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슨은 억울했다. 정말 신중하게 생각에 생각 끝에 결정내리고, 입을 떼기까지 얼마나 조심 스러웠는가. 그러나 그의 이러한 준비성을 철저히 무너뜨려버리는 한 마디 '그래.' 카이슨은 억울하다 못해 서러웠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했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그 러나 상황은 이미 종결되었기에 뭐라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굳어져 있던 에리필도 폭소클럽에 참여하여 허리를 꺾으며 신나게 웃자, 카이슨은 쥐구멍이라 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카이슨의 심정이야 어찌됐든 탁자를 치 며 의자를 혹사시키며 웃었다. 이에 카이슨이 더욱 울상이 되어 울먹이듯 외쳤다. "에이, 나 갈래!" 상념에 사로잡혀 있던 헌트가 피식 웃으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의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원목으로 된 문을 볼 수 있었다. 헌트가 가볍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엔 에리필과 카이슨이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헌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가 찾고 있는 진은 보이지 않았다. "진은 어디 갔지?" 헌트가 묻자 그제야 그들은 시선을 돌려 낯익은 방문객을 보았다. 그리고 에리필이 그의 의 문에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들어 대답했다. "아침 수련을 하러 갔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헌트는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신나게 수 다를 떨다 자연스럽게 진의 수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 간만에 긴 분량인 거 같네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7 회] 27화. 두 아저씨의 가르침 1. "음, 이제 돌아오는 것 같군." "그래." "……." 꽤 먼 거리지만, 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방안에서 '올슈레이 진 변신프 로젝트'를 거의 완성한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반응으로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 를 기다렸다. 잠시 후, 온 몸은 땀으로 절었고, 숨은 거칠게 헐떡거리는 진이 들 어왔다. 그는 엷은 수막으로 젖은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흔들며 들어오고 있었고, 그의 모습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인양 밝고도 신선했다. 진은 아침만은 기필코 사수하리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죽어라 달려왔다. 그리고 눈앞에 뜨뜻한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며 '나를 먹어주세요.'라고 방긋방긋 웃고 있을 밥이 대령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오산이었다. 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니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뜨뜻한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오는 듯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밥에서 피어올라오는 김이 아니었다. 진은 눈만 껌벅이며 고개를 갸 웃했다. '무슨 일이지? 저 세 분이 같이 있을 이유가… 아!' 진은 갸웃거리던 그 포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작은 깨달음은 진의 행동을 그렇게 제 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였다. "안녕하셨어요. 오늘부터 수련에 들어가는 건가요?" "그렇단다." 이미 에리필이 전체적인 수련 일정에 대해 말하기로 합의한 뒤였기에 그의 입을 제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말해둘 것은 어제까지 했었던 수련 방법과는 사뭇 다를 거라는 것이다. 일단 산까지 왕복 질주하는 수련은 내일부터 하지 않을 거다. 기초 체력은 어느 정도 단련 되었다고 판단되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할 수련은 실전수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전투 기법들을 너에게 가르 쳐 줄 것이고, 여기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대련을 할 것이다. 그러니깐 너의 실전능력 을 끌어올리는 데, 이번 수련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에리필이 장황하게 말을 하긴 했지만, 요는 이제부터 싸움수련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진의 머릿속에서도 이와 같은 연산처리가 일어나서 그의 메모리엔 싸움과 싸움기술만 이 저장되었다. 간단한 연산 작용 끝에 진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님, 우선 밥부터 먹고 시작하죠." 진의 한 마디에 모두는 에리필을 보았다. 그러나 에리필은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이에 진과 모두는 항의의 눈빛을 날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든 것을 반사하는 공포의 멍한 시선뿐. 그의 풀린 동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밥 없어!' 간단명료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도 강렬한 무언의 일침은 모두의 주린 배를 더욱 고프게 만들었다.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결국 뱃속의 암울한 외침에 굴복한 카이 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 걸음으로 주방으로 이동해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 는 주린 배를 감싸기 위함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뒤에서 그의 축 처진 어깨와 일정하게 움직이는 칼을 보는 세 사람의 눈동자는 반짝거리며 승리의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며 폭신한 풀밭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대지는 따스했고, 그들을 덮어주는 바람은 포근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감동도 잠시, 카이슨이 잔잔한 고요를 깨고 말했다. "제프 카이슨 이게 내 이름이고, 에리필처럼 사부라고 부를 필요 없단다. 그건 헌트에게 도 마찬가지니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면 될 거야. 그리고 내가 너에게 가르칠 것은 치고 박는 싸움기술이 아니야." "예,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근데 아저씨 싸움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에 요?" 자신의 메모리에는 분명 싸움과 싸움기술이란 것이 저장되어있는데 이제 와서 가르치지 않 는다니 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의아한 마음을 카이슨에게 전한 것 이다. "네가 보기에도 내가 헌트나 에리필처럼 무식하게 치고 박는 것을 잘하게 생겼니?" 난데없는 물음이었지만, 카이슨의 물음에는 확실한 대답이 나와 있었다. "아니요."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무식하게 치고 박는 것은 그 둘한테 배우는 거란 말이지. 대신 나 에게 배울 것은……." "배울 것은요?" 카이슨은 또 다시 에리필의 끌기를 시도했다. 왠지 이번만큼은 성공할거란 확신이 들어 행한 것이었는데, 대뜸 진이 그의 생각대로 반응하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카이슨의 입은 대번에 헤벌쭉으로 변해버렸고, 진은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게 되었다. 잠시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의 묘한 대치상태가 오간 뒤, 카이슨은 스승에게 요구되는 본연의 근엄함을 깨닫고 정신을 수습했다. "커험, 음음. 그러니깐, 나에게 배울 것은 몸을 가볍게 하여 먼 곳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기법이지. 어때 멋있지 않니?" "글쎄요. 그냥 빠르게 달리는 건 단전에 모이는 기(氣)의 양이 많아지고, 기(氣)의 운용 법이 향상될수록 빨라지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 물론 네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를 목표로 독특한 기(氣)의 운용법을 만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아주 뛰어난 이동기법을 만든 사람들도 있단다. 그런데 말이다. 뛰어난 이동기법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도대체 뭐가 가장 중요하죠?" 도리어 진이 묻자 카이슨은 그의 입에 맺힌 미소를 더욱 짙게 하며 말했다. "그건 말이지. 자신의 몸에 맞추는 것을 말한단다." "자신의 몸에 맞춘다고요?" 진은 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는 카이슨이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진의 그러한 생각도 카이슨의 부연설명에 의해 산산조각 나 버 렸다. "그렇지. 인간이란 신기한 존재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몸을 보면 미묘하게 차이가 나거든. 그리고 그것이 기(氣)의 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이지. 그렇기에 아 무리 좋은 기(氣)운용법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최고로 좋다는 말은 틀린 말이란 말이 지. 대신 대개 그렇듯이 검증된 기(氣)운용법들에겐 그만한 효능이 있지. 그리고 그것을 자 신에게 완벽히 맞출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카이슨은 말을 끝맺고 또 다시 에리필 따라하기에 돌입했다. 능글맞은 웃음을 매달고서. 진은 생각했다. 카이슨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는 되었다. 분명 그럴 거 같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주체는 나다. 기(氣)를 모으는 것도 나고, 기(氣)를 사용하는 것도 나다. 모든 것은 나로부 터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끝? 음… 그건 모르겠는데. 하하!' "음, 그럼 저에게 가르칠 그거 이름 같은 건 있나요? 왜 있잖아요. 영웅소설 같은 거 보면 주 인공이 쓰는 모든 것들에게는 대개 그럴듯한 이름이 있잖아요." "크크, 이름말이니? 있긴 있지. 통칭 이그젝트라고 부르지. 내가 사용하는 모든 기술들은 그렇게 부른단다. 에리필이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사용하는 권법, 각법, 장법, 검 법, 창법, 이동법, 회피법, 모든 것들의 통칭은 이그젝트다." 카이슨은 머나먼 시간여행을 떠나듯 아련한 시선으로 말했다.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 었고, 슬픈 비가 고이는 호수처럼 씁쓸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진은 이것을 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묻기에는 너무나 위험할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 은 수막이 그의 입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바람에 수막도 사라지자 진의 입 을 막고 있던 봉인도 풀어져 버렸다. "저 카이슨 아저씨, 이그젝트라는 게 무얼 뜻하는 거예요?" "이그젝트 말이냐?" 카이슨은 씁쓸히 웃고 있었다. 얼마 겪어보진 않았지만, 항시 웃음을 걸고 다니던 사람의 표 정이 아니었다. 아니 웃음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아파보일 수 없었다. "아니에요. 말하기 곤란하시면 말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진은 자신의 머리를 저주하며 말했다. 카이슨의 가슴에 묶인 상처를 터뜨린 것 같아 죄송스 러웠다. 그래서 더욱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한 진의 마음을 알았음인가! 카이슨이 다가와 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러나 알게 될 게야. 네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말이다." "예, 죄송해요." "허허, 괜찮단다. 이런 이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잖아. 자, 그럼 지금부터 설명할 테니 잘 듣고, 잘 따라해야한다." 진은 미안한 마음에 더욱 크게 소리쳤고, 카이슨은 피식 웃었다. 진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 음이리라. ~~~~~~~~~~~~~~~~~~~~~~~~~~~~~~~~~~~~~~~~~~~~~~~~~~~~~~~~~~~~~~~~~~~~~~~~~~~~~~~~ 죄송합니다. 8화 부분의 쿤에 대한 설정을 조금 바꿨습니다. 그 부분을 밑에 올립니다. 그러 니 오해마시길. "그러니깐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소우주 확장까지요!" "아, 그래? 그렇군. 험험, 이제부터 이야기 할 것은 쿤이라는 것인데 얼핏 들어봐도 알겠지만 고대어란다. 어찌됐든 쿤이란 길이라는 뜻과 원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여기서 쿤이 왜 길의 의미를 가지냐 하면은 기(氣)가 지나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실 제로는 쿤은 다른 쿤과 이어져 있지 않은 개별적인 개체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생 각해봐도 길을 연상시킬 순 없지. 여기까지만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쿤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면 그 의문이 풀릴 거야. 모름 지기 쿤이란 우주와 인간의 몸을 연결하는 길로서 쿤을 열수록 우주의 호흡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된단다. 이 말은 쿤이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우리 선조들은 이를 보고 다리라고 하지 않고, 까마득히 먼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밟 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더구나. 그만큼 쿤의 길은 멀고도 험한 여행과도 같다고 생각 한 거지. 그리고 본래 쿤은 그 자체가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단다. 뭐, 인간의 첫 번째 쿤인 륜 같은 경우에는 그 쿤에 도달하기 위해 어떠한 길이 형성되어 있지만, 이를 보고 길이라는 뜻이 쓰여 진 게 아니라는 것은 앞서도 말한 바 있으니 이해할 수 있겠지?" 에리필은 잠시 말을 끊고, 진과 리오스를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를 본 에리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사실상 륜이라는 쿤의 중심부는 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것들은 마치 호흡을 하듯, 움직인다고 하더구나. 이런 이야기도 있는데, 그 옛날 태초에는 우주자체가 둥근 원 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그것이 호흡을 하듯 움직였는데, 이 쿤의 모 양이 태초의 우주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런 뜻이 포함되었다고 하더구나. 이쯤하면 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을 줄 믿으마. 각설하고 쿤이라는 것은 소우주 의 단절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꽉꽉 막혀 있는데, 우리 몸에 있는 7 개의 쿤은 그 막혀 있는 형태나 쿤의 특성들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쿤을 뚫는 방법도 제각각이란다. 그렇다 보니 쿤을 뚫는 다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란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쿤을 확장하려 고 노력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비록 완전히는 아니지만, 각각의 쿤들을 여는 방법을 알아냈단다. 그러한 방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강맹한 기(氣)와 깨달 음이라는 거다. 이 두 가지를 이용해서 쿤을 확장하면 기(氣)의 기운이 늘어나는데, 그 이유 는 단절된 소우주가 조금씩 대우주와 합일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란다. 다른 말로 풀이하 자면 우주의 호흡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이는 앞서 내가 말한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지. 뭐, 실제적으로 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엄청 길어지기에 이 이야긴 여 기까지로 하자. 그리고 뒤에 대우주와 합일이니 이런 건 사실 나도 잘 모르고 있거든. 어쨌 든 쿤의 확장이 진정한 고수의 길로 들어서는 거란 말이다." 에리필은 자신의 의도완 상관없이 복작한 기(氣)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해버렸다. 그러나 뭔가를 빠뜨린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많은 것을 설명했지만 중요한 뭔가를. 쿤에 대한 설명이 많이 수정되었기에 이렇게 바꿉니다. 그리고 8화에 올라와 있는 이 부분 도 수정했으니, 그렇게 알아주시고, 이렇게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은 8화 전체를 다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8 회] 28화. 두 아저씨의 가르침 2. 내가 가르쳐 주려는 이것은 모든 이그젝트 기법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선 너의 기(氣)가 얼마나 안정적인 흐름으로 운용되는지에 따라 이동속도의 빠르고 느림이 갈린다. 일단 이그젝트의 기(氣)운용법에 대해 말하겠다." 카이슨은 복잡한 기(氣)운용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는 하체로 이동하는 기(氣)와 그와 동시에 허리에서부터 상체로 올라오는 기(氣)의 움직임에 신경 써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기(氣)의 분배에 관한 것인데, 허리를 기 준으로 아래, 위 모두 똑같은 비율로 기(氣)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은 그의 설명을 듣다 이상함을 느껴 손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카이슨은 의아한 표 정을 지 으며 손을 들고 있는 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즉시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움직임을 빠르게 하려면 하체 쪽에 많은 기(氣)를 불어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란다." 자상하지만, 단호한 음성이 진의 물음을 단박에 잘랐다. 이에 진은 더욱 의문이 들었다. "아니라고요? 그렇지만 기(氣)가 많아질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기(氣)를 반으로 나누어 두 부분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한 곳, 즉 하체 쪽으로 넣는 게 당연한 이치 아 닌가요?" 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지만, 카이슨의 머리는 당당히 부정의 고개짓을 하고 있 었다. 순간 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나 쉽사리 답이 나올 거 같지는 않았 다. 그냥 가르쳐 달라고도 생각해보았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아저씨의 말은 분명 이상해. 그렇지만 괜 히 거짓말할 분은 아니잖아. 음… 그렇다면 똑같은 비율로 상하체로 보내라는 거에 해답이 있단 말인데. 왜 똑같이 보내야 하지? 분명 거기에 내가 모르는 해답이 있을 텐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진은 나름대로 고심을 해보았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편 카이슨은 진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문득 에리필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의 얼굴에 긍정의 웃음이 걸렸다. '진은 승부욕이 강한 아이라네. 겪어보면 알겠지만, 특히 무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열과 집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네. 만약에 말이야. 진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에 잠기면 기다려 주게. 그 아이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깨달음들의 순간을 쉽게 넘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줄 테니 말일세. 그러니 아무리 단순한 것이라도 스스로 포기하기 전엔 가르쳐 주 지 말게.' 카이슨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진의 표정을 보며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만면에 희색 이 가득한 진을 보며 뭔가를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명백한 오판이었다. "카이슨 아저씨,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그래!" "헤헤, 그럼 얼른 가르쳐 주세요." 진의 너무도 당당한 말투에 카이슨은 한참동안 뻥진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그러다 약간은 얼떨 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아낸 게 아니냐?" "알아내요? 뭘요?" 그가 이마에 손을 대며 '끄응' 이라는 소리를 내며 긍정의 미소를 당장 철회했는데, 그 새 를 참지 못하고 진이 채근했다. "뭐하세요? 안 가르쳐주세요?" "……." 카이슨은 진의 채근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여전히 멍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는 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며 실망의 한숨을 푹푹 내 쉬었다. 그런데 이렇게 암울한 기운으로 가득 차있 는 분위기 속에서도 진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헤헤, 아저씨의 표정이 볼만한데. 종종 자주 애용해야겠어. 솔직히 별로 중요한 거 같지도 않은데 괜히 머리 아프게 골몰할 필욘 없잖아.' 진의 악동기질이 머릿속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 때, 카이슨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후우, 알겠다. 왜 하체 쪽으로만 기(氣)를 보내지 않고, 허리 위, 아래쪽에 똑같은 비율로 기(氣)를 불어넣느냐 하면 그것은 인간의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기에 초롱초롱한 눈망울까지 굴리는 진을 보니 아까의 실망의 한숨도 잊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마치 막중한 임무를 맡기라도 한 듯 신나게 설명하기 시 작했다. "지금 너만 해도 몸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하체 쪽으로 만 보내는 것은 상체를 버리는 것과도 같은 거야.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에 힘을 불 어넣어 달리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야. 생각해봐라. 몸이 움직이는데 상체, 하체 구분할 필 요가 없지 않느냐. 물론 몸을 움직이는 것은 하체지. 그리고 기(氣)가 많을수록 속도도 빨 라지지. 그러나 상승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한번에 보낼 수 있는 기(氣)의 양이 많아지는 데, 이때 힘의 방향이 아래쪽에만 치우치게 되면,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게 된단다. 그리고 종내에는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단 말이지." 카이슨의 열변에 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분명 의아함 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균형이 중요해도, 동일하게 기(氣)를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하 체 쪽에 7을 상체 쪽에 3 의 비율로 보내게 되면, 몸의 균형도 어느 정도 유지되며 속도도 더욱 빨라질 거 같은데요." 카이슨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난해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혼자만 알고 있 는 자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진은 그가 매우 얄밉게 웃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진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자 카이슨이 허둥지둥 서두르며 말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바로 네가 말한 거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인간 의 몸은 하나다. 이 말을 명심하고, 이 아저씨의 설명을 들어봐라. 기(氣)는 끌어당기는 성 질과, 미는 성질이 있어. 그리고 두 성질은 그들만의 미묘한 거리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지. 그런데 만약 기(氣)의 양을 똑같이 해서 상체와 하체 쪽으로 돌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기(氣)를 돌리는 속도와 위치가 절묘할 정도로 맞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지.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겠니?" "모르겠어요." 진의 간단한 대답에 카이슨은 가슴이 쓰라린지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여튼 기(氣)란 녀석은 끌어당기는 거리와 미는 거리의 중간거리를 유지하며 돌리게 되 면, 상승작용과도 같은 기운을 뿜어내. 인간으로 말하자면 기쁨이 극에 이르러 괴력을 발휘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기(氣)는 평소보 다 기(氣)의 움직임을 활성화시켜주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 또한 더없이 좋은 상태로 만들어 준단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똑같은 비율에서 뿜어져 나온 기(氣)의 유동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빠른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는 거야. 그리고 기(氣)들이 기쁨에 미쳐 날 뛰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과 기(氣)운용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 겠지. 여기까지 이해하겠니?" 카이슨이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진이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나 그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 다. 이에 한숨을 쉬는 카이슨이었지만, 그의 입은 어느새 처음부터 설명하고 있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해주자, 진도 이해가 되었는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카이슨이 다음 진도로 넘어갔다. "기(氣)의 양을 똑같이 해서 상하체로 돌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예!" 진도 지친 표정으로 설명하고 있는 카이슨이 안쓰러웠던지 힘차게 대답했다. 순간 카이슨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나갔으나, 그것은 착각이라 할 만큼 빨랐다. 그리고 카이슨의 수업 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앞서 설명한 것은 그야 말로 상승의 경지의 이동술의 기본 묘리라 할 수 있기에 아직은 너 에겐 무리라 생각되지만, 너 역시 나중에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것을 믿기에 맨 처음에 말 한 거야." 카이슨의 기대에 찬 표정은 진에게 힘찬 대답을 요구했다. 잠시 후, 카이슨은 만족스런 미소 를 지으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지금의 너에게 가장 필요한 수업은 기(氣)의 유통에 관한 거야. 기(氣)의 유통이란, 그야 말로 기(氣)가 인간의 몸속을 유통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 또한 상당한 노력을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거야. 어쨌든 기(氣)의 유통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동경로 에 맞춰서 속도를 조절하는 거야. 참고로 말해서 기(氣)의 유통에 관한 수련을 통해 기(氣) 들의 고유거리를 알 수 있게 되지. 하지만 실제로 그 거리를 알 수는 없어. 단지 우리는 기(氣) 들의 이동경로와 흐름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거고, 그렇게 하면 저절로 그 고유거리라는 것 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야." 카이슨의 상세한 설명에 진은 앞서 설명한 것과 지금의 설명이 고리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은 카이슨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에 의해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것 역시 많은 연습과 자기 몸 특유의 기(氣)의 호흡에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며 수련해나가면 돼. 여기서 기(氣)의 호흡이란 너의 단전에 있는 기(氣)말고 몸에 부유하는 기(氣)가 움직이는 방향의 일정함과 그 흐름 그리고 속도를 말함이야. 이건 륜을 뚫기 위해 수련했지 싶은데?" 진이 카이슨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에 크게 만족한 카이슨은 자기 강의에 도취되 어 그 뒤의 많은 내용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나 카이슨의 설명이 너무나 방대한 내용 을 다루고 있는지라, 이번 역시 진은 두어 번의 설명을 더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론은 대충 이 정도로 해두고 실기로 넘어가 보자. 자, 우선 륜을 뚫을 때처럼 기(氣)호 흡에 신경을 집중해라. 오늘 수련은 기(氣)호흡을 따라가는 것으로 끝을 낼 테니깐. 최선을 다해라." 카이슨의 명령조 말투에 따라 진은 기(氣)호흡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이기에 동시에 허리 위, 아래 모두에 정신을 쏟을 수 없어서 단전에서부터 하체로 뻗어 가는 기(氣)의 실타래들을 쫒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카이슨의 말에 따르면 끊어 지지 않고 하체를 한 바퀴 도는 기(氣)의 실타래가 있다고 했다. 이를 츄요 라고 하는데, 하 나의 실이라는 고대어라고 했다. 그러나 진은 츄요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수많은 실타래 들을 쫒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이것도 륜을 개척하고, 그 뒤 한 곳에 기(氣)를 모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츄요를 찾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륜을 통해 빠져나가는 기(氣)들은 수많은 실타래를 만들며 뻗어갔는데, 진은 몇 십, 몇 백번 의 실패만 했다. 그렇게 카이슨이 맡은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오늘 못 찾았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고. 내일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 고 명심할 것은 모든 것의 주된 기(氣)의 줄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야. 한 번 찾게 되면, 그 특유의 느낌이 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 부산에 갔다가 오늘 돌아왔습니다. 휴우, 설정이 정말 복잡하네요. 크헉...그러나 다음에는 단순한 헌트의 가르침이니...조금만 참아주시와요. 아, 하루 늦게 올리게 된점 죄송하군요. 마스터 오브 캐슬을 캐스 오브 마스터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29 회] 29화. 두 아저씨의 가르침 3. "검은?" "방에 있어요." "그래. 이 시간에는 검이 필요 없지. 오로지 육체만 필요할 뿐이다." 헌트는 짧은 문답이 오고간 뒤 한참동안 묘한 시선으로 진을 바라만 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어떠한 기세도 위압감도 없었다. 그저 묘했다. 그게 다였다. 그래서 더욱 진은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움에 지쳐 진이 몸을 움직이려고 움 찔했다. 그와 동시에 헌트의 두터운 입술이 열리며 걸걸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준비는 되어 있겠지?" "예!" 진은 힘차게 대답했다. 무엇을 준비하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헌트의 분위 기에 위축되어 크게 대답할 뿐이었다. "좋아. 그럼 간다!" 헌트는 가볍게 말을 하며 날쌔게 몸을 날렸다. 그에 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 며 손을 내저었다. 그와 동시에 진의 입술이 쉴 새 없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 음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 아저씨 이거 왜 이러세요?" 다급히 말하는 진을 보며 오히려 헌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준비되었다며?" "예. 그런데 갑자기 다짜고짜 덤비시면 어떻게 해요?" "준비되었다면서! 내가 공격할 테니 너도 알아서 방어하고 공격할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 아니었냐?" 헌트의 당연하다는 투의 말에 진은 경악했다. 상식적인 선에서 준비되었느냐는 말은 대개 정신적인 자세를 묻는데 쓰인다. 그러나 헌트는 아니었다. 정신적인 면은 고사 하고 육체적으로 맞을 준비가 되었느냐를 묻고 있는 듯했다. "그 말이 그 뜻이었어요?" 진은 황당한 표정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물었으나 헌트는 오히려 그의 표정이 이해되 지 않았다. "그럼, 다른 뜻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니?" "아뇨,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의 미약한 항의는 헌트의 단호한 음성에 절단 나 버렸다. "알겠다. 어쨌든 이제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되었으니 준비나 해라." 단호한 표정에 한점 부끄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헌트의 각진 얼굴을 잠시 쳐 다보던 진이 고개를 떨구며 불안한 쉼 호흡 몇 번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의 마음 속에서 강렬한 기대감이 꿈틀대고 있었다. 강한 사람과 붙어 보는 것. 분명 자신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강함을 가졌기에 상대도 되지 않을 테지만, 붙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 대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리고 미약하게 꿈틀대던 것이 갑자기 온 몸을 들썩일 정도 로 강렬해졌다. 그에 덩달아 진의 고개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들어 올려졌다. 진의 날카롭고 투지에 찬 눈빛이 헌트에게 꽂혔다. 순간 헌트의 입가에 피식 이라는 웃 음이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그가 몸을 날렸다. 아까 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다. "하압!"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당찬 기합성과 함께 몸을 움직이는 진을 보며 헌트의 입가에 다시 한번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공간을 좁히며 다가온 헌트가 가볍게 일권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 서의 가벼운 일권은 매서운 권풍을 동반하며 진을 압박했다. 진은 커다란 주먹이 얼굴을 터뜨릴 듯이 사납게 몰아쳐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몸을 틀 었다. 그는 귓가를 따갑게 때리는 대기의 파동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어느새 복부를 노 리고 올라오는 그의 무릎을 보고 뒷걸음질쳤다. 몇 발짝 물러선 진은 거친 호흡을 가다 듬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채 한 번의 호흡도 제대로 뱉지 못하고, 올라와 있던 헌트의 무릎 아래에서 뻗어오는 다리에 놀라 기겁했다. 퍽! 헌트의 발끝이 진의 명치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진의 몸이 허물어지듯 무너졌다. 그러 나 헌트가 발끝에 힘을 얼마 주지 않아서인지 진이 헉헉대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헌트가 피식 웃었고, 몇 초 정도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헌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헌트의 주먹은 여러 방위에서 기묘한 각도로 꺾이며 진을 위협했다. 그러나 헌트가 많이 봐주고 있어서 진도 어느 정도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벽은 느닷없이 진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퍽! 짧고도 경쾌한 타격음이 대기를 울렸고, 헌트의 강건한 주먹이 진의 복부를 찔렀다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의 영향인지 진은 무기력하게 공중에 붕 떠있는 상태가 되었다.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했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헌트의 무자비한 난타가 시 작되었다. 일수에 여덟 번의 연타가 진의 사지를 난타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이었다. 헌트는 한 번에 여덟 번씩 진의 몸 곳곳을 때렸다. 그렇다 보니 한 번 떠올랐던 진의 몸은 좀체 내 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내려올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 정확한 현장파악일 것이다. 처음에는 맞을 때마다 꿈틀대며 피하려는 몸짓을 보이던 것이 이제는 축 처진 시체마냥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의 몸이 땅에 내려올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쿵! 육중한 소음을 뒤로한 채 헌트가 어딘가에 갔다 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에 손에 철렁거 리는 물로 가득 찬 양철통이 들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양철통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조금씩 기울어졌다. 조금씩 기울던 각도는 어느 순간 빠르게 각도를 움직였고, 자연스런 현상으로서 양철통 안에 있던 물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확히 말해 기절해 있는 진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촤아아! 소리만 들어도 차가운 물소리가 진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앗, 차가. 이거 뭐야?" 진은 갑작스런 냉샤워에 잃었던 정신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유익한 일이라 할 수 없었다. "이제 깨워났구나. 그런데 반격도 못해보고 이게 뭐냐?" 헌트의 힐난조의 말투에 진은 고개만 숙였다. 고개가 숙여지자 난타당한 근육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진이 통증에 절로 미간을 좁히며 신음소리를 입 밖에 냈다. 하지만 헌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자, 다시 간다. 이번에는 피하기만 하지 말고 어디 주먹이라도 뻗어봐라. 네놈이 사내자식 이라면 말이다!" 헌트는 진을 살살 약 올리며 다시 돌진했다. 그리고 헌트의 격장지계에 열이 잔뜩 오른 진은 이 순간 아픈 몸보다도 그의 말에 기분이 더 상해 복수의 칼날을 조용히 갈았다. 그래서 헌트 의 주먹을 보며 이왕 맞을 거, 같이 때려보자 란 생각에 기(氣)를 주먹에 모으며 혼신을 다한 일격을 뻗었다. 퍽! 툭! 두 주먹이 허공을 교차하며 상대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날아간 주먹의 행방과 여파는 안타 까울 정도로 달랐다. 진의 주먹은 헌트의 왼팔에 막혀 있었다. 그러나 헌트의 주먹은 정확히 진의 관자놀이에 꽂혀 있었다. 헌트의 왼팔에 막혀 있던 주먹이 스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진의 몸이 중심을 잃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철푸덕! 잠시 뒤, 또 다시 차가운 물소리가 울렸다. 공터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공터에서 울리는 소리는 일방적인 소리였다. 주로 울리 는 소리는 퍽! 내지는 퍽퍽퍽퍽퍽퍽퍽퍽! 철푸덕! 촤아아! 크윽! 정도였다. 하늘에 떠 있던 해가 붉어지고 있었다. 붉은 빛을 받아 더욱 괴기스럽게 변한 진의 한 쪽 발을 들고 헌트가 방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쪽 발만 헌트의 우악한 손에 붙들려 공중에 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진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자각할 의식도 없었다. '끼익' 원목 문 특유의 마찰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방안에는 두 사람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끝났나?" "크크크, 꼴을 보아하니 에리필의 실전훈련은 한동안 못할 거 같아 보이는군." 카이슨이 웃으며 말하자 에리필이 강렬한 째림으로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그도 한동안 실전 훈련과는 거리가 멀어질 거라 생각했다. "원래 실전을 하려면 먼저 맞는데 익숙해야 돼. 맞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가 없지. 그런데 그걸 자네가 할 수 있겠나?" 헌트의 타당한 물음에 에리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사부 사랑이 괜히 사부 사랑이라 하 겠는가.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인데……." "무사에게 나이가 어디 있나? 그러니 자네는 진의 몸 상태를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놓기나 하라고!" 헌트의 말에 일리가 있으니 반박은 무리였다. 그러나 감성은 계속 말하고 싶어 했다. 그때 카이슨이 에리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마음 강하게 먹어. 확실히 실전으로 따지면 헌트를 당할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 이건 헌트 에게 맡기자고." 카이슨의 간곡한 말에 에리필은 결국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부 사랑은 이와 중에도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알겠네. 그렇다면 거의 구타나 다름없는 실전훈련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지?" 에리필은 대략 일주일 정도로 생각하며 물었다. 카이슨 역시 일주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꺼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헌트란 인물은 상식을 벗어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최소 한달!" 두 사람이 경악하며 헌트를 설득하려 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진의 구타가 약 한 달간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에게 설득은 존재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퍽퍽퍽퍽퍽퍽퍽! "오호, 피했겠다." 헌트는 마지막으로 뻗었던 주먹이 애꿎게 허공만 치고 돌아오자 낯선 감탄사를 터뜨렸다. "컥컥, 헤헤 매일 맞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그건 오산이에요." "오, 그래? 그럼 이번에도 피해봐라!" 헌트는 말을 하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공격은 그의 무식한 성격대로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듯했지만, 실상 진의 움직임을 철저히 봉쇄하며 위 압적인 기세로 압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은 또 다시 무자비한 구타의 피해자가 되어야 만 했다. "케헥!" 괴상망측한 비명을 토하며 저 멀리 날아간 진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자신이 준비해둔 양철통을 잡기위해 헌트가 허리를 숙이자 진의 몸이 거기에 반응하듯 꿈틀거렸는데,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잔 떨림은 이내 온몸으로 전달되었고, 잠시 후 부들부들 떨며 차디찬 바 닥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으로 승화했다. "오오, 이제야 수련의 성과가 보이는 구나." 무엇이 수련의 성과라는 것인지 헌트는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잠시 후, 진의 몸이 천천히 곧 추세워지자 헌트가 성큼 걸음으로 다가갔다. 진은 힘겹게 눈을 뜨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헌트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했 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으며 괜한 에너지 낭비일 뿐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잔뜩 긴장해서 온 몸을 팽팽하게 만든 진의 등을 팡팡 치며 헌트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제야 진도 그의 의도를 눈치 채고 어색한 미소로 화답했다. "아, 예. 하하. 그럼 오늘 수련은 여기까진가요?" 진은 섣부른 판단으로 감당치 못할 발언을 하고 말았다. 이에 기분 좋게 웃던 헌트의 입 꼬리 가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빠르게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리고 본래부터 싸늘한 웃 음이 걸려있었던 것처럼 헌트의 입가엔 냉혹한 조각이 걸리게 되었다. "진아, 안타깝게도 해는 아직도 저렇게 높은 하늘에 걸려있구나."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진의 눈빛이 암울한 회색빛으로 물들었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던 고 개는 힘없이 떨구어졌다. 퍽퍽퍽퍽퍽퍽퍽퍽! 깔끔하게 허공을 울리는 여덟 번의 타격음! 그리고 이어지는 헌트의 잔혹한 한 마디. "집중력이 떨어졌잖아. 빨리 일어나! 오늘 수련은 타격음이 여섯 번만 울릴 때까지다." "으아앙!" 타격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질 때보다도 더욱 크고 처량한 비명이 바람 한점 지나가지 않는 공터에 허망이 울렸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드뎌 헌트가 나왔군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카이슨의 머리 아팠던 이론 수업을 헌트의 시원스런 수업으로 식히길 바랍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0 회] 30화. 두 아저씨의 가르침 4. 진은 기(氣)수련을 할 때가 가장 좋았다. 편안하고도 아늑한 그러면서도 단전을 충만케 해주는 기(氣)의 묵직함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진은 숨을 빠르게 들이마셨다 내뱉은 뒤, 눈을 떴다. 그리고 묵직해진 단전을 손 으로 쓰다듬었다. 진은 기(氣)수련을 하면 할수록 기(氣)를 단전에 저장하는 속도가 빨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강해지고 있음을 뜻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진인지라 기(氣) 수련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한편으론 하루 종일 기(氣)수련만 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에리필의 "모든 일은 과해서 좋을 것이 없다."라는 말이 떠 올라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내 버렸다. 진은 산만해진 머리도 맑게 할 겸,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어두컴컴한 밤이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하늘은 아늑했고,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과 고고한 노란 빛을 뿌리는 달이 있어 진은 이 밤이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진의 몸을 스치듯 지나간다. 순간 포근한 밤하늘을 벗 삼아 눈을 감고 그것들을 영원토록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 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어 그러한 여유는 아주 잠시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하기에 그러한 여유는 사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어두컴컴한 하늘이 밀려나가며 한 사람의 얼굴이 그 자 리에 나타났다. 그는 예전에 진을 구해주었던 은발의 사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사내 다우면서도 부드러운 그래서 더욱 멋있는 미소라고 진은 생각했다. 진은 그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진이 고개를 끄덕이 며 다짐하듯 결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저씨, 나 아저씨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나이로 설게요." 순간적인 감정의 회오리 덕분에 두 아저씨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한 지 열흘이 지나 자 진은 얼추 츄요를 쫓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氣)의 실타래들 중에서 츄요를 찾는 것은 십에 일곱은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주위의 많은 기(氣) 때문에 중간에 길을 잃기 일쑤였 다. 그러나 완벽히 츄요를 정복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카이슨은 생각하고 있었다. "진아, 오늘은 꼭 츄요를 정복해 보자구나." 카이슨의 따뜻한 말에 진이 힘차게 대답했다. "예.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정복하겠어요." 진은 말을 한 뒤, 가부좌 자세를 취하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처음에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츄요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 진은 츄요의 끈을 잡았다. 츄요 의 끈은 의외로 다른 기(氣)의 끈보다 가늘고 미약했다. 그러나 진은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것이 얼마나 가증스런 트릭이라는 것을 알았다. 본래 츄요라는 것은 모든 몸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굵고 강렬한 기(氣)의 끈이라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상리였다. 그러나 츄요를 정복한 사람들은 알고 있 었다. 츄요란 다른 기(氣)의 통로와 비교해 그 굵기가 가늘었으면 가늘었지 결코 굵지 않다 는 것이다. 그러나 카이슨은 여기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개의 사부들은 제자 들에게 이 점을 명시하여 쉽게 츄요를 정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좋지 못한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진에게도 츄요의 성질에 대해 말했다면 아마도 훨씬 빨리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에게 이로운 방법이 아니기에 카이슨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동기법과 회피기법 그리고 모든 기법들을 사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가 기(氣)의 양이요, 둘 째가 바로 기(氣)의 이해도이다. 그리고 뛰어난 기(氣)의 이해도에서부터 기(氣)의 운용이 가 능한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진은 츄요를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기(氣)의 흐름을 분석하고 이해했다. 그렇기에 진은 이전 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氣)에 대한 이해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진은 '오늘에야 말로 꼭…!'이란 다짐을 속으로 외치며 츄요를 쫓았다. 중간에 몇 번이나 허탕을 쳤지만 이번에는 왠지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뇌리를 들쑤셨다. 진은 느꼈다. 츄요를 삼분지 이 정도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여기가 고비였다. 어제도 여기 에서 기(氣)의 흐름을 놓쳤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은 느슨해졌던 마음이 급속도로 긴장감을 찾 아갔다. 갑자기 늘어나는 기(氣)는 거센 홍수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여기서 조금만 헤이 해져도 츄요 를 놓칠 만큼 막대한 심력을 요하는 곳이었다. 역시나 마의 삼분의 이 지점을 지나자 기(氣) 의 물결이 거세지며 홍수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크윽! 여기다. 조금만 더 버티자. 버티자. 아자자자!' 진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의 눈빛 은 더욱더 맑아졌고, 초롱초롱해졌다. 그리고 굳건한 의지와 강인한 기세로 꿋꿋이 나아가는 진의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카이슨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도 앙다물며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당차보일 수 없 었다. 거기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 사이로 하얀 결정들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유명한 거장의 명화 속에 새겨진 영롱한 보석처럼 신묘한 이미지를 선사했다. 고귀하고 뜨거운 정열은 진의 모습마저 아름답게 승화시켰고, 어지러운 기(氣)의 홍수 속에서도 생명의 줄을 놓치지 않는 강건한 의지로 나타났다. 순간순간 정신을 놓칠 뻔 할 만큼 막대한 심력소모는 진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다. 기(氣)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성난 사자처럼 몰아쳐올 때마다 아찔함과 등에 후줄근 한 땀줄기 여럿을 그리게 만들었음은 물론이요, 간담이 서늘해져 얼굴이 하얗게 변하곤 했다. 그러나 진은 견뎌냈다. 마의 삼분지 이 지점에 도사리고 있는 얼굴 없는 기(氣)의 괴수를 진 은 물리쳤던 것이다. 사납던 기(氣)들이 진정하고 그들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옆은 아무것도 없는 뻥 뚫린 시원스런 길로 변해버렸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진의 얼굴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진은 자신이 츄요를 완전 히 정복했음을 깨달았다. 비록 그것이 반쪽짜리인 하체에 불과한 것이지만. 사실 완벽한 츄요 라는 것은 인간이 상상치도 못할 영역이지만. 진은 상식적인 범주 안에서 반쪽짜리 츄요를 정 복했다. 그것이 진의 첫 수업과제였고. 진은 츄요를 정복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명상에 잠겼다. 신기하게도 한 번 찾았던 길들이 머 릿속에 각인되듯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박히기 시작하던 길들이 점점 확장하더니 1시간여가 지나자 츄요의 지도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진은 알 수 없는 희열에 전율하며 츄요 를 찾아 다시 한번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진이었지만 마지막에 와서는 허무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힘들게 찾았던 츄요인가! 그런데 그저 따라가니 츄요를 한 바퀴 돌다니. 하아, 이렇 게 허망한 일이 어디 있을까?' 속으로 허망하다 외치고 있긴 했지만, 진은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허무하다 는 불만의 메아리가 마음속에서 돌아다니고 있기도 했다. 진이 눈을 떴다. "츄요를 정복했구나.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란 건 네가 더 잘 알겠지?" "예!" 진은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해!라고 입으로 되내이며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작은 것을 이루었다고 해서 만족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우민한 행동인지를 리오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진이었기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다짐이었다. 카이슨은 진의 열의에 감탄하며 내일부터 해야 할 과제를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 "내일부터는 오늘보다 더 힘든 수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카이슨의 나직한 목소리에는 벅찬 심정을 미처 다스리지 못해 일어난 작은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대답하는 진의 음성 역시 크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비록 정식적인 사제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사부와 제자만이 교감하는 뜨거운 격류가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감정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한 미소로 인해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를 사부와 제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 후후후,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월하오향이라는 작은 모임을 결성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후후, 거기서 전 막내라는....어쨌든 오늘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진 역시 매우 기뻐하는 거 같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1 회] 31화. 두 아저씨의 가르침 5. "이야기 들었다. 츄요를 정복했다고?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표정변화 하나 없이 무뚝뚝한 말투로 툭 내뱉지만, 진은 알고 있었다. 그의 무감정한 말투 속에 따스한 감정이 약동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 그럼 오늘은 특별히 네 몸을 속박하고 있는 것을 잠시 해제하 고 겨루어보도록 하자. 그래야 지금의 네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겠지? 일단 해제부터 하고 이야기하자." "예!" 진은 힘차게 대답하며,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아직도 기(氣)를 운용하지 않으면 행동에 제약이 따르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런 제약을 견디며 수련을 했기에 지금의 내가 어느 정도 강해졌을지 궁금해.' 잠시 생각의 호수 속에 빠져있던 진이 수면위로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는 경건한 음성으로 해제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모든 힘의 주인이신 그레비테이스님이시여 그의 가호가 원래의 곳으로 돌아갈지어다." 주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진의 몸에서 찬란한 황금색 빛이 번쩍이는 듯싶더 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몸을 속박하던 기운이 황금색 빛과 함께 사라지자 진은 청량한 내음과 함께 하 늘로 날아갈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그런데 진이 주문을 해제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헌트가 미심쩍은 음성 으로 물었다. "그런데, 원래 해제하는데 주문이 그리 거창하냐?" "예? 하하, 그건 아니고요. 그냥 주문을 해제한다는 강렬한 의념만 보낼 수 있 으면 말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알고 있는데요." 진이 멋쩍은 듯이 대답하자 헌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그렇군. 난 또 본래 그러한 주문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주문은 당 연히 에리필이 가르쳐 준 거겠지?" "하하, 예!" 진이 또 다시 머리를 긁적이자 헌트가 잠깐 그를 바라보았으나, 이내 지나가는 말투 로 물었다. "몸 상태는 어떠냐?" 진은 그제야 오랜만에 해방된 몸 상태를 알기 위해 세심하게 몸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는 팔을 굽혔다 폈다를 몇 번 반복하기도 하고 무릎을 살짝 굽혀 폴짝 뛰어보기도 했다. 잠시 후, 진의 얼굴은 보기만 하여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킬 수 있을 만큼 밝게 빛나고 있었다. 헌트는 역시나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말과 몸을 동시에 움직였다. "오, 만족한다는 표정이구나." 헌트의 말끝이 대기 중에 유포되었을 때는 이미 그의 주먹이 진이 있는 곳을 때린 상태 였다. 그러나 잔뜩 긴장해 있던 진이 몸을 날려 그의 주먹을 피하고 있었기에 돌덩이 같은 헌트의 주먹은 허공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헌트는 뻗었던 손을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한 발짝 내딛으며 허리에 붙어있던 주먹을 매서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뻗어 냈다. 이에 놀란 진은 습관적으로 헌트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고, 헌트는 뻗었던 팔을 채찍처럼 감아 그의 후두부를 강타하려 했다. 그러나 재빨리 앉아버리며 다리를 거두는 진의 공격에 헌트는 어쩔 수 없이 공중으로 도약하며 발끝을 쇠꼬챙이처럼 날카롭게 만 들어 바닥을 훑고 있는 그의 다리를 노렸다. 하지만 이미 그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던 진 은 땅을 짚고 있던 손으로 바닥을 밀 듯 힘을 주어 뒤쪽으로 몸을 굴렸다. 쾅! 진의 다리가 있던 자리에 헌트의 발이 박혀 있었는데, 놀랍게도 발목부분까지 땅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투두두! 헌트가 다리를 빼내기 위해 힘을 주어 올리자 그와 함께 마른 흙들이 딸려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진은 더욱 긴장했다. 헌트의 막강함이 전율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졌으나, 지 금 이 순간 그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헌트의 다리가 땅에서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진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는 최대한 몸을 빠르게 하여 헌트의 주위를 빙빙 돌며 공격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도권은 또 다시 헌트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이 오고갔다. 주먹과 주먹이 오가고, 발과 발이 교차하며 서로의 뜨거운 호흡과 심장의 박동을 공유하는 전투는 그들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결도 절정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진이 헌트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서도 정타는 한 대도 허용하지 않았 다는 것이다. 거기다 간혹 카운터 공격을 실행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반격은 헌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실행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칭찬받기에 충분하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진은 사람 좋게 의의타령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진은 카이슨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더욱더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헌트의 옷깃조차 잡을 수 없자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네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실력이 이 정도냐?" 헌트가 그답지 않게 빈정대며 말하자 진은 얼굴을 붉히며 항의하듯 외쳤다. "아니요!" "그래? 오호, 그렇담 뭔가 비장의 수라도 숨겨 두고 있나 보지?" 헌트가 또 다시 빈정대자 딱히 비장의 수라고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도, 지기 싫은 마음에 힘 차게 대답했다. "그, 그래요."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럼 그 비장의 수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나? 설마 여기서 끝내려는 건 아닐 테지?" 헌트의 빠져나갈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아놓은 말 때문에 진은 머릿속을 빠른 속도로 돌아다 녀야만 했다. '비장의 수라. 그런 게 나에게 있을 리가 없잖아. 아씨, 괜히 나서서 이 상황까지 몰고 왔 잖아. 크으, 어쩌지. 지금 와서 없다고 하면 내 자존심은 고사하고, 내가 먼저 맞아 죽을 거 야. 안돼! 그럴 순 없어! 여기서 죽을 수 없다고!' 진은 생각도중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를 치며 맹렬한 속도로 머릿속을 검색하기 시 작했다. '살아야 돼. 내가 미쳤지. 음. 보자 비장의 수라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생각 해보자. 우선 외경은 무리고 그 대신 내경의 최후 단계인 일순간 한곳으로 기(氣)를 모으는 것까지는 가능하지. 그리고 카이슨 아저씨에게 배운 이동기법을 이용하여 최고의 속도로 돌 진하는 것. 이 둘을 합친다면 그러니깐 고속이동과 함께 기(氣)가 운집된 주먹을 합친다면 더욱 강한 공격력이 갖추어지겠지. 그런데 문제는 아저씨가 내 공격을 받아준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실행된다는 건데. 솔직히 이 공격법은 단순한 직선돌격일 때,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그렇다 보니 상대가 피해버리면 그만인 단순한 공격이 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지. 거 기다 내가 뻗는 주먹과 움직이는 속도의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조금만 실수해도 균형 이 깨져 공격력을 잃기 십상이야. 음… 어떻게 하지? 아, 몰라! 일단 한 번 해보는 거야!' 진의 머리가 과도한 사고에 의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허연 연기를 뿜어 올릴 때 즈음, 헌트가 참다못해 말했다. "할 생각이 있긴 있는 거냐? 아니 비장의 수라는 것이 있긴 있는 거냐?" "있다니까요. 그런데 아직 미완의 비장의 수라서요. 제약이 있어요." 진은 이판사판이란 생각으로 말했다. "제약? 허허, 뭐 비장의 수를 쓰면 네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는 이런 말이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요. 이거 쓸려고 하면 상황을 만들어야 된다는 이야기죠." 진이 더욱 아리송한 말만 하자 헌트는 없는 머리칼을 붙잡기라도 하듯 머리를 매만지다 본래 자신의 스타일대로 간단명료하게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여기까지. 네가 원하는 게 뭔데? 간단하게 말해. 머리 아프니깐." "예? 아, 예!" 진은 갑자기 본연의 기질로 돌아간 헌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이 기회를 놓치 지 않기 위해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하아, 그렇단 말이지. 근데 보통 그런 건 비장의 수라고 하진 않는 단다." "에이, 몰라요. 사실 저한테 비장의 수 같은 거 가르쳐 준 적도 없잖아요. 솔직히 너무 많 은 걸 바라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헌트는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 헌트 스타일대로 일을 원만히 마 무리 지었다. "와라!" 짧고도 굵은 목소리! 그러나 거기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다. 이에 진은 작게 불만 의 웅얼거림을 토하다가 힘차게 기합을 토하며 달려들었다. "이얏!" 진은 카이슨의 지도 아래 습득한 이그젝트식 기(氣)운용법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오늘에야 츄요를 정복했기에 자신만의 츄요의 특이성에 맞춘 운용법은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직 돌격만을 목표로 한 움직임이었기에 진의 움직임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진과 헌트의 거리는 대략 10 라키르(미터)정도였다. 진이 가진 능력이라면 한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제로로 만들 수 있는 거리였다. 진은 발이 땅에서 뛰어진 뒤에는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뛰쳐나가는 속도와 내가 주먹을 뻗는 속도가 맞아야 해. 내가 저기에 도달하는 것 과 동시에 내 주먹이 최고의 조건에서 뻗어지는 점이 동시여야 해. 한 치의 어긋남도 있어 서는 안돼. 그렇담 힘이 분산 되 버려서 그저 보통 때 휘두르는 주먹과 별반 차이가 없게 돼!' 진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단전에 모여 있던 기(氣)를 오른쪽 주먹에 모으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모이던 기(氣)들이 헌트의 면전에 거의 도착할 무렵엔 포화상태가 되어 있었다. 진은 주먹을 뻗을 때, 습관적으로 회전력을 걸어 충격을 배가했듯이 이번에도 온 몸을 이용 하여 회전력을 걸었다. 몸이 앞으로 쏘아져나간 힘이 몸의 회전력으로 승화하여 주먹으로 밀 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의 강렬한 외침과 함께 혼신을 다한 기운이 헌트에게로 덮쳐갔다. "이그젝트!" 불현듯 씁쓸한 웃음을 보이던 카이슨이 떠올라 비장의 한수의 작명을 순간적으로 마친 진의 외침에 헌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작은 허점이 진의 눈에 잡혔다. "하압!" 진은 그의 주먹을 헌트의 명치 부분을 노리고 갖다 꽂았다. 그리고 굉음과 충격의 여파로 분 산되는 먼지가 두 사람을 가렸다. 기(氣)의 충돌은 강한 회오리를 일으켜 주위의 부산물들을 하늘로 띄었다. 그러나 그레비테 이스의 질서에 의거하여 모든 물체는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것이 한 줌의 먼지일지 라도. 자욱한 먼지가 희미한 실루엣만 남기자 두 개의 인영이 먼지를 뚫고서 밖으로 나왔다. 진은 정신을 잃고 헌트의 강인한 팔에 안겨 있는 상태였다. 두 눈을 꼭 감은 진의 입술 옆자 리에 검붉은 핏자국이 딱지처럼 붙어있었다. 발길을 오두막으로 향하는 헌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그젝트라? 크크, 그건 그렇고. 내가 아무리 방심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나에게 이 정도의 충격을 남기다니. 역시 에리필이 말했던 대로인가?" 헌트는 그의 명치에 선명하게 새겨진 진의 주먹을 생각하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 드뎌 두 아저씨의 가르침 편이 끝이 났습니다. 후후후...이제 아침 겸 점심 겸 간식 겸 식사 를 하기 위해 쓔웅 하러 갑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2 회] 32화. 창공으로 날아오르다 1. 고대 이전에 존재했다는 초고대문명에 관한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그에 관한 새 로운 학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죠. 이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 어요. 여러분들은 축복 받은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우리 고고학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선물이라 불리는 초고대문명의 흔적이 이렇게 여러분들의 손길을 기다 리고 있으니까요. 자! 그럼 1학기 마지막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모두들 반년 동안 생각했을 고고학 이론 파트와 고고학 현장 파트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겠어 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한번 이야기 할게요. 고고학 이론 파트는 수많은 문헌과 학설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죠. 무엇보다도 새로운 학설 을 세우는 데는 고고학 이론 파트에서 더욱 상세한 강의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 이에요. 그리고 고고학 현장 파트는 직접 유적을 탐사하는 어쩌면 모험가에 더욱 가까운 쪽이에요. 그래서 꿈 많은 어린 학생들이 선망하는 파트이기도 하죠. 그러 나 명심해야 할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모험과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유물들 뒤에는 흉포한 몬스터와 유적지에 숨겨진 함정들이 언제든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에서 미녀 교수로 유명한 필린샤 자네티가 설명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어울리지 않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는데,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 른 고고학반에서 설명하고 있을 교수들도 똑같은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고고학 현장 파트는 가슴 뿌듯한 성취감과 귀중한 유물을 발굴할 기회를 주지만, 그것 은 목숨을 담보로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 이 부분을 설명할 때는 조심해 서 말하는 것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자네티가 조성한 공포 분위기에 눌려 다시 한번 곰곰이 고려해 보는 모 습을 보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소수의 학생들만이 자네티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 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리오스는 자네티의 엄포에도 굴하지 않는 소수의 학생들 중 하나였다. 자네티는 아이들 을 찬찬히 훑어 보다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올곧은 자세로 자신을 쳐다보는 리오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스는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측에서도 기대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단순히 공부만 잘 해서 그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메테르티아 아카데미가 다른 아카데미를 앞지르는 학문은 고고학이었다. 거기다 교 장 역시 고고학자였고, 시장 역시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곳이 바로 메테르티아 아카 데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오스가 수석 입학으로 교장을 대면한 자리에서 고고학 현 장 파트를 하고 싶다고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으니, 메테르티아 아카데미 측의 관계자들 이 뿌듯한 기쁨을 맛보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리오스가 녹록치 못 한 무력을 가지고 있고, 무술에 대한 재능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 아카데미 측은 그 야 말로 고고학 현장 파트의 인재라고 믿고 있었다. 자네티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그럼 종이를 나눠 주겠어요. 제일 위에 학반 번호 이름을 기재하고 밑에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쓰는 거예요. 참고로 2학년 1학기 때 전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너무 부 담 가지지 말고 쓰세요." 자네티는 말을 하며 종이를 돌렸다. 잠시 후, 하얀 백지 위에 검은 글씨들이 적혀진 종이 뭉치가 자네티의 손안에 붙들려져 있었다. "여러분들의 신중한 결정이 이 종이 위에 적혀 있을 꺼라 믿어요.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 들이 고대하던 방학이 시작됨을 선포하겠어요! 참, 리오스 군은 1시간 후에 교장 선생님과 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으니 잊지 말고 꼭 교장실로 가세요." "알겠습니다. 자네티 교수님!" 허리까지 내려오는 보랏빛 머리칼이 그녀의 끄덕임에 의해 작은 찰랑거림이 일어났다. 20대 초반의 그녀는 메테르티아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바로 교수로 발탁된 우수한 지성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지성으로 가득 찬 보랏빛 눈이 찡긋거리며 리오스가 할 일을 가르쳐 주었다. 이는 그녀의 습관처럼 붙어진 마침 인사의 신호였던 것이다. 리오스는 그녀의 귀여운 신호를 놓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렷! 우리의 마돈나 자네티 교수님께 경례!" 일동은 리오스의 선동에 장난 끼 많은 청소년들 특유의 짓궂은 인사를 했다. "교수님 사랑해요." "흑흑, 우리의 마돈나시여. 굿바이!" 각기 자신만의 개성이 흘러넘치는 인사가 연이어 터져 나와 자네티의 얼굴을 붉게 물들 였다. "여러분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모두들 추억을 많이 남기는 소중한 방학이 되었으면 해 요." 자네티는 말을 마치고 황급히 교실 문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붉게 상기된 얼굴을 감싸 쥐 며 중얼거렸다. "마돈나? 훗! 기분 나쁘진 않네." 한편 교실 안은 완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리오스 너 고고학 현장 파트 했지?" 주위의 소음들을 사뿐히 무시한 붉은 머리를 귀여운 포니테일로 만든 조르그 레이슈어가 물었다. 리오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교재를 가방에 넣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그때 레이슈어의 뒤에서 굵직한 저음이 울렸다. "야, 당연한 소린 귀만 아프게 한다는 걸 모르냐? 리오스가 고고학 현장 파트로 들어가는 거야 이미 정해진 수순이잖아. 입학 초부터 그건 기정사실이었다고." 굵직한 저음에 어울리는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인 리더스 튜터가 육중한 몸을 앞으로 내밀었 다. 그에 레이슈어도 지지 않고 가느다란 몸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칫, 나도 아네요. 그냥 한 번 물어봤다. 왜? 안돼?" "그래. 안 된다." "뭐? 이게 정말?" 두 사람이 괜한 일에 열을 올리자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던 리오스가 한 마디 했다. "둘 다 소모적인 일은 그만하는 게 어때?" "시끄러!" "넌 조용히 있어." 리오스는 그들의 바람대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리오스 조차도 물로 보는 개성만점 인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열려진 교실 문을 뒤로하고 복도를 걸어가는 리오스의 귀에 더욱더 목청을 높이며 소리를 지 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를 만들었다. "훗, 오늘은 누가 이길까나?" 경쾌한 울림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리오스가 남긴 진심어린 궁금증이었다. ~~~~~~~~~~~~~~~~~~~~~~~~~~~~~~~~~~~~~~~~~~~~~~~~~~~~~~~~~~~~~~~~~~~~~~~~~~~~~~~~ 조금 짧지요. 후속타 들어갑니다. 요번편부터 리오스가 나오네요. 진 다음으로 비중있는 인물 이 리오스인지라, 리오스의 삶을 빼놓을 수가 없네요.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3 회] 33화. 창공으로 날아오르다 2. 방안의 벽이란 벽은 보기에도 질릴 정도로 방대한 양의 양서로 꽂혀 있는 서재로 완전 차단되어 있었다. 책들의 대부분이 주인의 손길을 많이 거쳤는지 손때가 묻 지 않은 책이 없었고, 몇몇 책은 검은 손자국이 찍혀 있을 정도였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갑갑함을 주는 이곳에서 유일한 피난처인 창가는 따스한 햇 살을 끌고 와 이 방의 주인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황금빛 햇살이 하늘에서부터 이끌림을 받아 도착한 곳은 그가 요새 연구해서 작성 하고 있는 논문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책상 위였다. 그리고 햇살의 영향 때문인 지 환한 후광이 어려 있는 듯한 노인의 모습에서 왜소한 몸집은 온데간데없고 현기 로운 기운이 오로라 같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노인은 조용히 앉아서 논문을 검토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하나씩 그가 생각하 고 있는 것을 서류에 옮겨 적는 작업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똑똑! 조용히 앉아서 논문을 검토하던 그가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그는 따스한 음성으로 방문객을 청했다. 끼이익! 오래된 문들이 마찰음을 낼 때에나 들릴 법한 소리가 방문객의 방문을 알렸고, 창가 에서부터 비쳐진 햇살은 방문객을 환영하듯 눈이 부신 환영식을 선물했다. 방문객은 따가운 햇살에 눈을 잠시 찌푸렸다. 잠시 후, 그는 금세 적응했는지 눈을 뜨 고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리오스였다. "안녕하십니까! 쿠히루 조세판 교장 선생님." "허허, 그래 리오스 군도 잘 지내셨는가? 기다리고 있었다네. 여기 앉아서 이야기 하 도록 하 지." 얼굴의 잔주름과 허연 백발이 노쇠한 나이를 짐작케 했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 은 의외로 힘차고 열정적이었다. "예, 교장 선생님." 리오스는 앞에 마련 된 소파에 앉았다. 조세판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노구를 이끌어 리오 스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조세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자한 미소로 한참동안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이 라면 무안해서 시선을 피할 법도 하건만 그는 잔잔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오랜 연륜의 고풍스런 정취가 느껴지는 방 안에 적막만이 존재하는 듯 했지만, 실은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간 느낌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앉아 있는 방의 분위기가 점점 훈훈해짐을 보아 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리오스 군!" 언제까지라도 계속 될 것만 같았던 고요는 조세판의 잔잔한 부름에 조용히 깨어졌다. 그러 나 그것은 일말의 부자연스러움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순리에 따른 당연한 귀결인 듯했 다. "예, 교장 선생님." 리오스도 잔잔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네가 제출한 건의서를 읽어 보았네. 고고학 현장 파트에 필요한 무력을 얻기 위해 방학 동안 특별 수련을 요청한다고?" 리오스는 조세판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유적지 탐사에 참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랬군. 음, 그런데 말일세. 지금 보다 더 높은 무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알기론 지금만 해도 낮지 않은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조세판은 허연 수염을 매만지며 은근히 물었다. 리오스는 이제부터 고비라고 생각했다. 본래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단순히 호신의 목적이 다였다. 아무리 고고학 현장 파트로 가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 는 이들에게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현장에서 일하는 고고학자들의 무 력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열망하고 있었다. 무술이라는 신비한 영역 이 그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유혹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리오스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힘차게 말했다. "고고학 현장 파트에서는 유적지의 중심부에 들어갈수록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고학자 본인도 무술을 익히지만, 대개 강력한 보디가드를 둔다고 들었습니다. 그 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별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래서 인지 이런 공고문이 학회 측에서부터 공표되었다고 하더군요." 리오스는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어 낭랑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초고대문명의 유적지는 기존에 있던 유적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유물이 존재하지만 그와 함께 상당한 위험도가 따른다. 그래서 학회측은 심사에 통과할 정도의 무력이 뒷받침 되고, 고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인물에 한 해, 나이 제한 없이 유적지 탐사 일행에 들어 갈 자격을 부여한다. 참고로 심사에서 요하는 무력은 최소 무인들이 말하는 일류에 가까운 실력이다." 리오스는 종이에 적힌 글자를 또박또박 읽고 난 뒤, 종이를 주머니에 아무렇게 구겨 넣었다. 리오스의 모든 신경은 조세판의 입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의 고요는 부자연과 뒤틀림으로 인해 만들어진 긴장과 불안의 공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리오스는 손을 꽉 잡고 조세판의 말을 기다렸다. '제발 부탁합니다. 지금의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솔직히 현장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벽에 부딪혀 있는 저에게 빛이 되어 줄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 진이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구나!' 기다리는 와중에도 리오스는 간절히 바랬다. 진심어린 외침이 그의 가슴을 울렸고, 그것은 조 세판의 가슴에도 전해진 듯했다. 허연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던 조세판이 갑자기 작은 신음을 토했다. 잠시 후, 한참 을 고심하던 그의 입이 열렸다. "한 가지만 묻겠네. 자네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장으로 가는 것인가? 아님 무 력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는가?"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리오스는 일순 당혹해했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긴 싫었다. "무력이 강해지는 쪽에 가까울 것입니다." "무력이 가까워지는 쪽이라 허허,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조세판은 흥미로운 대답에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마냥 궁금해 했다. 리오스는 이미 말을 꺼낸 이상 이참에 모든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숨길 것도 뭐도 아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해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여기 오기 얼마 전에 무술에 관해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술이 라는 매력적인 학문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길을 가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었습 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우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제 꿈 이 기사나 영웅처럼 자신의 무예를 제국에 널리 알릴 생각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알고 싶습니다. 그 무술이란 것이 얼마나 심오하고, 난해한 학문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 은 제게 힘이 되어 줄 것이기에 더욱 무술에 대한 열망이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리오스는 가슴속에 담아둔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조세판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 덕이기도 하고, 내젓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이 나자 천천히 조세판의 입이 벌어졌다. "역시, 그랬었군. 사실 나는 고민을 했다네. 이참에 자네를 유적 탐사에 동행시킬까라는 생각 을 했었지. 그러나 자네가 방학 동안 특별 수련을 요구한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네. 유 적 탐사에 동행하는 것이 다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그리고 결국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이 자네의 입이 증명해 주었고." 조세판의 말에 리오스는 고개를 조아려 감사의 뜻을 표했다. 조세판은 이미 허락하느냐 마느냐 의 문제를 뛰어넘어 동행여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가 고민한 이유가 리오스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서라니. 그만큼 그는 리오스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것은 뛰어난 스승 밑에서 무술을 배우는 것이라 말이지?" "그렇습니다." "알겠네. 그렇담 누가 좋을까? 음… 아 그래 그가 있었군." 조세판은 리오스에게 소개시켜줄 스승에 대해 생각을 하다 불현 듯 한 사람이 생각나 그도 모 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리오스는 그의 돌연한 행동에 놀랐지만, 그것은 속에서 일 뿐. 겉으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라면 리오스 군에게 좋은 스승이 될 거야. 음… 그러나 그는 강압적인 나의 요구가 통할 위인이 아닌데……." 조세판이 이번에는 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리오스가 물었다. "저 교장 선생님. 그라면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 "그? 아, 그가 누구냐고? 그는 바로 도요이프 프린샤 시장을 말하는 거라네." "도요이프 프린샤 시장님요?" 리오스는 의외의 인물에 경악했다. 도요이프 프린샤 시장이라니. 리오스가 알기론 도요이프 프 린샤 시장은 정치, 외교, 행정 쪽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운영하 는 메테르티아 시는 광활한 대지에 걸맞게 인물들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게다가 리오스는 이 미 몇몇 이름난 무술가들에 대해 생각해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거기엔 도요이프 프린샤라 는 이름은 없었다. "허허, 도요이프 프린샤 시장이라서 놀랐나?" "예, 조금. 그런데 그분이 무술을 익혔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그렇지, 그렇고 말구.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지는 데, 거기다 이것은 본인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서 말이지. 어쨌든 그 사람이 가장 적임자라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장님은 이 시를 운영하기 위해 공무로 바쁘실 텐데요." 리오스는 가장 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래, 그게 문제야. 내가 알기로 메테르티아 시에서 그만큼 강한 인물도 없거니와 바쁜 인물 도 없을 거야." 조세판의 지나가는 말의 끝자락에 리오스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메테르티아 시에서 그만큼 강한 인물이 없다고?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이곳이 얼마나 넓 은 곳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무술가들만 해도 인간을 초월한 인 물들 인데 그들보다 더 강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 말이 사실이라면…….' "저 교장 선생님. 제가 그 분을 직접 찾아뵈면 어떨까요? 물론 교장선생님의 진심어린 추천서 를 동행해서 말입니다."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리오스를 급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더욱 반긴 사람은 조세판이었 다. "그래? 그게 좋겠군. 프린샤 그 친구도 자넬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그게 좋겠군. 잠시 만 있어보게." 조세판은 책상으로 가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자, 이걸 들고 시장…… 아니지. 리오스 군 오늘 저녁에 시간 있나?" "시간요? 물론 있습니다." "그래? 좋았어. 그럼 오늘 저녁 나와 함께 프린샤 시장의 집으로 가서 저녁이나 얻어먹으세." 조세판은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한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리오스에게 말했다. 리오스의 마음 도 들뜨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밝은 미소를 뿌리는 것으로 그 흥분됨을 진정시켰다. ~~~~~~~~~~~~~~~~~~~~~~~~~~~~~~~~~~~~~~~~~~~~~~~~~~~~~~~~~~~~~~~~~~~~~~~~~~~~~~~~ 과연 리오스는 프린샤 시장에게 무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흐흐흐 후우, 조아라 이제 되네요. 황당해서리... 32화 올린지 10분도 안되었는데, 안되니 쩝...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4 회] 34화. 창공으로 날아오르다 3. 제국 변방에 있는 왕국들과도 비교될 정도로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메테 르티아 시의 중앙에는 주위의 다른 건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석조 건물이 굳건 히 버티고 있었다. 석조 건물은 높은 벽 뒤에 숨어 있는 형상이지만,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위엄과 권위로 쌓아 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숨 막히는 권위와 위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철문을 지나야만 했다. 다른 루트를 통한 방문은 주인의 심사를 어지럽혀 날카로운 창에 꿰 뚫리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만큼 경비가 삼엄한 곳이었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져 철의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날카로운 창도 아니 요, 숨 막히는 권위도 아니었다. 향긋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방문객들의 후각을 즐겁게 해주는 것과 동시에 다채로운 색상의 꽃들이 터지듯이 그 아름다운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는 화려한 만개는 보는 이 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어 준다. 이는 침입자에게는 최고의 함정이요, 방문객에게는 최 대의 볼거리이니 주인의 심기가 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아름다운 화원을 지나면 작은 숲이 나타난다. 지금은 밤이기에 어두운 색조의 청록색을 뿌리지만, 태양이 활개 치는 때에는 황금빛에 물든 숲의 즐거운 호흡을 들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숲은 주인의 숨겨진 창이니,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에게는 다시 한번 선혈을 뿌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했다. 작은 숲을 지나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호수는 너무나 투명해 밑바 닥까지 보여 당장에 그 끝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들지만, 호수의 끝은 생각 외로 깊어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 못했다. 예전에 하인의 아들이 호기심에 못 이겨 들어갔다가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 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호수는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의 정기를 빨아들여 매끈한 표면 위에 달을 띄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이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수는 '달이 높이 세워진 석조 건물 뒤로 사라지기 전에 기필코 그를 끌어 들이리라.'라 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한 것인가! 하늘에 떠 있던 달이 호수에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그 순간은 아주 잠시였다. 뜻하지 않은 파장에 의해 달이 이 지러지면서 잔물결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 버렸던 것이다. 호수는 바람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바람은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거짓말을 못하는 바람인 줄 알기에 호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범인은 금세 밝혀졌다. 범인은 놀람과 안타까움이 담 긴 음성을 흘리며 그의 옆을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달이 사라지는 구나.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한 순간이지만 호수와 달이 하나가 된 광경은 대단히 신비로웠어." 단정하게 기른 금발에 검은 철테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년이라 말하기는 성숙돼 보이고, 청년이라 말하기에는 좀 어려 보이는 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호수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동행하고 있던 허연 수염에 허연 백발의 노신사가 그의 표정을 보더니 위로 차 한 마디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오스 군, 괜찮은가? 저 호수는 하루에 한 번씩 달을 모셔 온다고 한다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게. 내일도 저 호수는 달을 모셔올 테니깐." 조세판은 왜 자신이 리오스를 위로 하고 있는지 몰랐다. 단지 위로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렬 히 뇌리를 두드렸기에 행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조세판은 거기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검은 정장을 입은 안내인을 따라 호수 뒤편에 있는 석조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메테르티아 시의 시장이자, 앞으로 리오스의 사부가 될지도 모를 도요이프 프린샤가 살 고 있는 곳이었다. 사나운 주인이 살고 있다는 석조 건물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그러나 흉악한 아가리에서 나 온 사람은 사나운 주인이 아닌 인자한 중년인이었다. 그는 단정한 금발에 대쪽같은 성격을 대변하듯 각진 사각 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술 로 다져진 탄탄한 몸은 멋진 풍채와 한껏 어우러져 그의 호방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쿠히루 조세판 교장 선생님과 리오스 군을 환영합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지요. 리오스 군도 들어가세. 융트 씨 수고했어요." 프린샤는 조세판과 리오스를 환영하며 여기 까지 이들을 안내한 융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것이 융트에겐 당연한 의무임에도 불구함에도 프린샤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프린샤의 예의 있는 인도 아래 화려한 거실을 지났다. 그리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입 안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이 이루어진 식탁으로 안내되었다. "허허, 우리가 괜히 찾아 와서 부담을 주는 거 같구려." 조세판은 식탁을 둘러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디 우리 사이가 이깟 음식 따위가 부담을 줄 수 있는 사이입니까? 하하하!" "그런가요? 허허." 짧은 대화를 하면서 세 사람이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메인 요리가 나왔다. 메인 요리 를 들고 나온 사람은 두 여인이었는데, 하인이라 하기에는 기품과 미모가 뛰어났다. 그래서 리 오스는 '메테르티아 시의 시장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하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감탄은 곧이어 다른 감탄으로 바꾸어졌다. "올 때 마다, 도요이프 부인과 따님이 이렇게 손수 대접해주시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구려. 언제 우리 집에 프린샤 시장과 함께 오시구려. 아내가 얼굴 못 본지도 꽤 되었으니 이 참에 얼 굴이나 보잔 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조세판의 말에 음식을 나르던 금발의 귀부인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저도 쿠히루 부인을 못 본지 꽤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언제 남편과 딸을 데리고 꼭 찾아뵐게요." "허허, 아내가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하구려." 조세판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다가 도요이프 부인의 옆에서 공손히 서 있는 묘령의 여인을 바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오, 그런데 시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고민거리가 커지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 말이오." 프린샤는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다 조세판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을 바라본 후, 동조의 웃음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단순히 작은 걱정거리를 주더니 요즘에 와서는 저의 가 장 큰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프린샤가 '애물단지'란 말을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프린세리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애물단지'가 누구를 뜻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의 옆에서 도요이프 부인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겠다는 암묵적인 태도를 밝혔다. "그러게 말입니다. 애물단지도 이만하면 최상품의 애물단지라 말할 수 있겠죠." "어디 방법이 없을까요? 요즘 들어 애물단지의 힘이 더욱 커지고 있으니 이러다간 저까지 잡 아먹힐 지경이라니깐요." 프린샤는 이참에 고집불통인 프린세리아의 고집을 꺾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린세리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 었다. '애물단지'는 프린세리아가 프린샤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애물단지의 힘이 강 해지는 것'은 그녀가 원하지만, 프린샤는 원하지 않는 그녀의 무력이 높아졌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기품 있게 생긴 미청년인 리오스가 있어 참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본성이 '이미지 관리'라는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아버지!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손님들 모신 자리에서 무슨 행동이냐고 요. 저기 보세요. 조세판 할아버지의 옆에 있는 저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 멀뚱히 자리만 지키는 꼴이 되었잖아요. 이런 실례가 어딨어요? 저는 손님을 모신 자리에 관한 예법에 서 이러한 법도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네요." 프린세리아는 고도의 말 돌리기 기술을 선보였다. 거기다 한 수 더 떠서 프린샤에게 일격까지 먹였다. 프린샤는 그의 딸에게 한 방 먹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는 그와 함께 연합전선 을 구축하던 조세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그의 경우에는 몸을 사리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가 알고 있는 본래의 프린세리아는 당하고 가만히 있을 만큼 너그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 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표적은 프린샤에게서 조세판으로 옮겨졌다. "조세판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와 작당해서 저를 몰아붙이는 것 을 요네 할머니께서 아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저는 조세판 할아버지가 요네 할머니에게 구박받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어요!" 그녀의 공격은 날카롭고도 강했다. 요네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조세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버렸고, 굳어 버린 입으로 더듬더듬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쿠히루 요네라는 이름은 조세 판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는 조세판에게 있어 신의 위치에 있는 존재였지 만 프린세리아에게는 인자하고 포근한 할머니였다. 통칭 쿠히루 부인이라 불리는 이가 요네 할머니이니 조세판의 아내가 바로 그녀였다. ~~~~~~~~~~~~~~~~~~~~~~~~~~~~~~~~~~~~~~~~~~~~~~~~~~~~~~~~~~~~~~~~~~~~~~~~~~~~~~~~ 오....드뎌 프린샤의 등장이군요. 프린샤도 매우 비중있는 인물입니다. 이 말이 무얼 뜻할 까요? 히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5 회] 35화. 창공으로 날아오르다 4. 리오스는 실소를 머금으며 주변의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후후, 천하에 이름 높은 두 분도 한 여인에겐 못 당하는군.' 한편, 도요이프 부인은 종종 보던 볼거리에서 시선을 돌려 처음 보는 청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리오스의 주위만은 정신없는 상황에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 다고 느꼈다. 이러한 느낌은 그녀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낯 선 느낌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친숙한 느낌은 회오리처럼 광포하고도 맹렬한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오스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그야 말로 온유함 그 자체였다. 그 런 힘이 주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서도 좌중 을 압도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사람을 바라보았다. 도요이프 부인은 프린샤를 그저 바라보았다. 그러나 프린샤는 뭔가에 감전이라도 된 듯 깜짝 놀라더니 도요이프 부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어색한 음성이 실내를 울렸다. "험험, 내 정신 보게. 갑작스런 상황에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절차를 건너뛰는 우를 범할 뻔 하다니. 자, 소개하겠네. 리오스 군 여기가 나의 아내인 도요이프 유리아라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리오스 군이라고 했죠?" 도요이프 부인이 은방울이 굴러가는 영롱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예, 만나서 영광입니다. 도요이프 느 유리아. 올슈레이 리오스라고 합니다." 리오스가 귀부인들이나 결혼한 중년 여성들에게 붙이는 '느'를 붙여 말하자 도요이프 부 인이 차분한 음성으로 그의 말을 수정해주었다. "호호,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답니다. 저는 도요이프 부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편하니까요. 아시겠죠?" "예, 도요이프 부인." "그래요. 그리고 지금 까지 말을 많이 한 아이가 저희 집 딸인 도요이프 프린세리아라고 해 요. 프린세리아 인사하거라." 도요이프 부인의 소개에 프린세리아와 리오스는 간단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모두가 간단 한 인사를 한 뒤, 조용히 앉아 있던 프린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며 즐거운 외침을 토해냈 다. "우선 저녁 식사부터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뜨거운 김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게 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단 말이야." 프린샤의 말에 조세판이 한 팔을 더했다. "맞는 말이네. 늙다 보니 영양과 식단에 관해 관심이 쏠리더군. 그래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말이야. 그것은 음식이란 차려져 있는 제때 먹어야 차리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모두 에게 좋다는 것이야." 프린샤와 조세판의 합공은 타이밍과 위력 모두 탁월했다. 그렇기에 고집이라면 누구에게도 뒤 지지 않는다는 프린세리아도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린세리아는 도요이프 부인과 함께 자리에 앉고 있었다. 리오스는 무심결에 자리에 앉는 그녀 를 보았다. 프린세리아는 도요이프 부인과 같은 아름다운 금발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얼핏 보아도 20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녀의 하얀 얼굴과 너무나 잘 어울렸 고, 대개의 여자들이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데 반해 프린세리아는 어깨에도 못 미치는 짧은 머 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짧은 머리가 그녀의 미를 깎아 내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 쾌하고 발랄한 느낌을 더해 주어 아름다운 얼굴에 귀여움을 더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고 리오 스는 생각했다.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리오스는 모녀를 번갈아 보는 영광 을 얻었다. 의도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음식을 집어 먹기 위해 젓가락을 움직이다 보니 거기에 덩달아 시선마저 따라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쨌든 자의가 아닐지라도 리 오스의 머리에 입력된 모녀의 모습은 그의 사고 회로를 통해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두 사람의 외모는 너무나 흡사하다. 그러나 그녀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도 요이프 부인은 마치 신비로운 안개와도 같은 깊고도 풍부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데 반해, 프린 세리아는 상쾌함과 발랄 그리고 어딘지 모를 강인함이 숨겨져 있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 래, 루케이스 지방에 핀다는 철의 데이지와도 같아. 후후, 철의 데이지라. 이미 그 루케이스 지방의 전설이 되어버린 꽃을 그녀에게서 느끼다니.' 리오스는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어이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자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런데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프린세리아가 독특한 양념으로 요리한 닭다리를 뜯다가 양념이 튀겨 그녀의 얼굴에 묻었다. 그러한 때에 리오스가 실소를 흘리니 프린세리아의 기분 이 좋을 리 만무했다. "이봐요, 당신은 예의가 없군요. 숙녀가 실수했을 때, 모른 척 넘어가는 예의를 배우지 못 했나요?" "예?" 리오스는 난데없는 독설에 어의가 없었다. 17년 동안 살아가면서 예의가 없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 리오스였던 것이다. "이제는 시치미까지 떼는 건가요? 대단하시군요."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급반전을 일으켜 싸늘한 냉기류가 흐르는 강줄기의 한 지점으로 변했다. 리오스는 답답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여자와 말싸움이나 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자 답답했던 마음 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느껴지고, 담담한 마음으로 프린세리아를 대할 수 있었다. "우선 고매하신 숙녀 분을 화나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왜 당신이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우매한 점을 들어 가르쳐 주시고, 오해가 있다면 풀었으면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리오스의 논리정연한 말 이면에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표면화시킬 정도로 리오스는 어리석진 않았다. 그렇기에 프린세리아는 그의 빈정거림을 눈치 채지 못한 채 한 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고집과 자신감이 유난히 강한 프린세리아는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복수의 복선을 깔았다. "좋아요. 그건 넘어가도록 하죠. 그렇지만 분명 전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유야 어떻든 간에 숙녀에게 모욕감을 준 당신의 행동은 자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책임을 져야한다 고 생각합니다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리오스는 상대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은 분명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 는 분명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결코 이롭지 못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한 전류처럼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불길한 재앙이 있다고 하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리오스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책임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프린세리아 양이 모욕감을 느끼셨다는 데,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책임이란 말을 꺼낸 데에는 이미 준비해둔 생각이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만." "호호,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네요." 프린세리아가 귀부인처럼 손을 가리며 웃자 주위의 세 사람은 속에서 게워 올라오려는 조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의 보살핌인지 프린세리아의 보는 이를 당혹케 하는 행동은 이내 사라지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좋아요. 보아하니 리오스 씨도 무술을 익히신 듯한데, 이때까지 갈고 닦은 무술의 기량을 겨뤄볼 수 있을까요?" "예?" 느닷없는 말에 리오스는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였기 어처구니가 없다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리오스는 에리필에게서 무술의 기초 중에 기초를 배운 뒤, 무술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하여 독학으로 수련했다. 그러나 독학에는 한계가 있었고, 한계의 벽에 막혀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리오스는 리더스 튜터를 만났다. 튜터는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무술을 익혀왔고, 그 자신이 대단한 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또래에서는 강한 축에 속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 다. 리오스는 튜터에게 무술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갔다. 그리고 종종 실전대련을 통해 수련의 강도 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앞으로 나가고 싶었다. 벌써부터 튜터의 경지가 눈에 보이 기 시작했기에 조만간 그에게서 배울 것도 없어질 거라는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그것은 리오스 에게 강한 자신감을 선물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리오스가 느끼는 당혹감이 얼마나 심한지 말하 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당혹과 황당함의 호수 속에 빠져있던 리오스의 사고가 수면을 헤치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아, 저와 무술을 겨뤄보잔 말인가요?" 어이가 없는 리오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바로 그 말이죠." 주위를 둘러보던 리오스는 프린세리아의 말이 입밖에 나오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쌍하 다는 듯한 연민의 시선이 그녀가 아닌 자신에게 꽂히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 것은 상당한 불쾌함으로 다가왔는데, 이성적인 리오스도 이때만은 이성을 감정의 호주머니 안 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비록 제 실력이 일천하지만 프린세리아 양이 원하시니 기꺼이 상대해 드리겠습니 다." 선언서를 낭독하듯이 입을 열어 말하는 리오스를 보며 세 사람은 안타까워했고, 한 사람은 희 열과 기대감에 의해 일어난 전율에 온 몸을 떨었다. 그러나 리오스가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기 에는 이성의 부재가 너무나 심각했다. 그러나 한 가닥 남은 이성은 리오스가 그나마 상식적인 행동을 하도록 도와주웠다. "프린샤 시장님. 따님이신 프린세리아 양의 말대로 제가 그녀와 겨뤄봐도 되겠습니까?" 리오스는 프린샤가 당연히 허락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감정의 호주머니에서 머리를 든 이성 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뒤, 이성은 감정의 호주머니 안에서 한 동안 잠을 자야만 했다. 그만큼 프린샤가 한 말은 충격적인 발언이었던 것이다. "음… 한 가지만 말해둠세. 리오스 군 부디 몸조심하게." 리오스는 강렬한 충격에 사고가 정지하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는 조세판이 프린샤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고요하지만 평온하지 못한 저녁 시 간도 지나가고 있었다 ~~~~~~~~~~~~~~~~~~~~~~~~~~~~~~~~~~~~~~~~~~~~~~~~~~~~~~~~~~~~~~~~~~~~~~~~~~~~~~~~ 프린세리아가 등장했습니다. 드뎌 속속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군요. 흐흐흐. 자, 리오스와 프린 세리아 과연 누가 이길까요?? 두두둥~~~~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6 회] 36화. 창공으로 날아오르다 5.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그들은 프린샤의 가족의 안내로 실내 수련장으로 가고 있었다. 실내 수련장은 석조 건물과 이어져 있었으며 돔 형식이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작열 하는 태양의 강렬함에도 신경 쓰지 않고 수련할 수 있는 전천후 수련장이었다. 실내 수련장은 크게 10개의 수련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는 이곳이 프린샤의 가족 들만이 수련하는 장소가 아님을 뜻했다. 프린샤는 메테르티아 시의 시장답게 치안 유 지를 위한 직업 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고, 이는 사병이라는 개인적인 부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프린샤의 사병은 보통 직업 군인들에 비해서 월등한 무위(武威)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아니었지만, 일부 고위층에선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 프린샤의 사병들이 수련하는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 이다. 프린샤는 그들을 이렇게 부르며 좋아했는데, 그것이 이 돔 형식의 건물의 이름으 로 굳어져 버렸다. '카오시어스!' 전설 속 아득히 먼 초고대 시대에 존재했다고 일컬어지는 불꽃의 제황! 활활 타오르는 불 길 속에서 더욱 그 생명력이 강대해진다는 하늘의 제황인 카오시어스가 그들 집단의 이름 이었으며, 이곳의 이름이기도 했다. 프린샤는 길을 가는 도중에 카오시어스의 구조에 대해 상세한 설명으로 리오스의 이해를 도왔다. 얼마 뒤, 그들은 카오시어스에서도 중심부인 카오시어스의 심장이란 수련장에 도 착했다. 이곳이 바로 프린샤의 가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수련 장소였던 것이다. 카오시어스의 심장의 가운데에는 무도대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격투장이 있었고, 그 옆 에는 수많은 무기들과 트레이닝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벽에는 암벽타기 형식의 수련지가 있었는데, 여기는 단순한 암벽타기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절벽과도 같은 벽 밑에는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갑옷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입고 암벽을 타는 것이라 했다. 얼추 보아도 50kg은 되어 보이는 갑옷 비슷한 것이 거무튀튀한 빛을 뿜으며 리오스에게 어서 와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장 가벼운 것이 50kg 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결코 만만한 수련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리오스가 카오시어스의 심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그의 귓가를 때리는 낭랑한 목소리가 있 었다. "소화도 시킬 겸 식후 운동 한판 해야죠?" 주위를 둘러보던 리오스의 시선이 움직임을 멈추고 프린세리아의 아름다운 황금색 눈동자에 고정되었다. 자신만만하면서도 어딘가 치기어린 악동의 눈빛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 의 동생 진의 눈동자처럼. "좋습니다. 식후 운동으로 이것처럼 좋은 운동도 없겠죠." 리오스는 프린샤 부부에게 인사하며 프린세리아의 뒤를 따라 격투장 위로 올라갔다. 격투장 은 두 사람이 서 있기에는 너무나 컸다. 가로 세로 100 라키르(미터)나 되는 거대함을 자랑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오스는 자신들이 커다란 공간 속에 작은 두 점처럼 참으 로 미약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그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프린샤 부부와 조세판은 관람하기 좋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프린 세리아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리오스에겐 매우 색다른 것이었으며, 앞으로 있을 고난 의 길을 예견하는 공격이기도 했다. "하압!" 맑은 기합성과 함께 프린세리아가 공간을 좁히며 리오스에게 달려들었다. 무기 사용은 상대에 게 위해를 가할 수 있기에 프린샤가 허락지 않아 두 사람은 맨 주먹으로 겨루어야 했다. 그러 나 맨 주먹이라 하여 다치지 않는 다는 것은 그들의 실력이 최하류 일 때나 가능한 일이었기 에 프린샤의 참견은 허공을 때리는 격이 되었다. 프린세리아는 빠른 속도로 접근해 주먹과 발을 사용하여 리오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먹을 뻗고 거둠의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해 리오스는 팔 한번 다리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방 어에 주력했다. 한 번 기세를 탄 프린세리아는 쉴 새 없이 리오스를 몰아쳤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감각적인 몸놀림으로 정타는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리오스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그녀의 실력 중 극히 일부라는 것을. 두 사람이 어울려 한창 기량을 펼치고 있을 때, 프린샤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생기는 듯 하더 니 검정과 은빛의 절묘한 조화의 제복을 입은 한 사내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주위의 분위 기에 완벽히 동화되어 나타났다. "올리테리어 왔는가?" 느긋한 목소리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린샤가 말했다. 옆에 있던 두 사람은 자주 보던 모습 이라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올리테리어 역시 두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본래의 말투로 말했다. "여기 오신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뒤늦게나마 찾아뵙습니다." 묵직한 저음이 잘 어울리는 갈색머리의 사내가 바로 카오시어스의 대장을 역임하고 있는 하 스이트 올리테리어였다. 올리테리어는 36살의 젊은 나이로 주군인 프린샤보다 5살 적었다. 그러나 단순한 외모로 보면 올리테리어가 프린샤 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올리테리어는 카오시어스의 대장답게 멋진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2 라키르 (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키에 온 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철 인간 올리테리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의아하다는 음성으로 프린샤에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저 젊은 청년은 아가씨의 상대가 아니라고 봅니다만." "잘 보았네. 분명 우리 프린세리아 보다는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 그렇지만 난 지금 그의 실 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네. 그의 가능성을 보고 있단 말이지."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에 가능성을 보신다뇨. 우리 카오시어스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은 저 청년의 나이 때 이미 월등히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올리테리어는 다시 드는 의문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이 그러했기에 더 볼 것도 없다고 그 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실을 알고 있는 프린샤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올리테 리어의 차이는 조세판의 한 마디로 인해 그 격차가 급격히 좁아지며 동일한 시각을 가지게 만 들었다. "올리테리어 씨 저 아이는 무술을 배운 지 이제 막 6개월 정도 되었답니다. 그것도 약간의 기 초를 배운 뒤, 거의 독학과 주워들은 것으로 저 정도 수준에 까지 오른 것입니다. 불과 6 개월 만에 말입니다." 올리테리어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내 주군과 같은 시각으로 두 사람의 대 결을 흥미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 프린샤의 한 마디가 격투장의 상황을 예견하듯이 힘 있게 돔 곳곳을 울렸다. "리오스 군의 눈빛이 변했군. 이제 점점 재밌어 질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프린세리아의 공격은 더욱 매섭고 빨라졌다. 이는 방어에 치중하고 있는 리오 스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 여자 지금까지 실력을 감춰두고 있었단 거야? 나 올슈레이 리오스가 여자에게 농락당하고 있단 말인가!' 리오스는 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며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는 것에 의해, 숨이 매우 가빠짐을 느 꼈다. 그리고 그는 그 답답함의 원흉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기생하며 그를 괴롭히 는 것이 분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감정을 분노 라는 단순한 감정으로 분류하기에는 뭔가 어폐가 있어 보였다. 물론 분노의 감정이 주된 것이 었지만, 그 주위를 사납게 회전하며 따라 올라오는 감정의 회오리는 오기와 투지라는 것도 한 부분을 점하고 있었다. 승천하는 용의 기세가 리오스의 내면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이내 안색이 부드럽게 풀려버렸다. 그는 어느새 침착함을 찾은 것이다. 복부를 노리고 들어오던 주먹이 사라짐과 동시에 반대쪽 관자놀이 바로 앞에 프린세리아의 주 먹이 나타났다. 프린세리아의 주먹이 관자놀이를 터뜨리려는 순간 리오스의 몸이 기묘한 움직 임을 보이며 그녀의 주먹을 회피했다. 그러나 그녀는 집요했다. 비스듬하게 몸이 기울어진 리 오스의 몸통을 노리고 무릎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그의 가드에 막혀 실패했 다. 그렇지만 그녀의 공격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가드 한 리오스의 몸이 아무런 보호막 도 없는 공중으로 띄어졌기 때문이다. 프린세리아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프린세리아는 발목에서부터 작은 회전력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무릎과 허리를 거쳐 어깨와 팔꿈치에서 그 회전력을 증폭시켰다. 순간 그녀의 주먹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사납게 요 동치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도록 방전을 일으키는 스파크를 보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짐과 동시에 온 몸을 이용하여 모았던 회전력과 그녀가 최대치로 모을 수 있는 기(氣)를 융합해 한 줄기 섬광을 그려냈다. "라이트 플래쉬!" "안돼!" 프린세리아가 하얀 빛줄기를 세상에 그려내기 직전 프린샤의 다급한 음성이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울렸다. 그러나 그는 프린세리아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프린세리아도 이렇게 까지 위험한 공격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력도 없으면서 자신의 공격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 리오스에게 괜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 무서운 일격 을 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리 없는 프린샤는 황당함과 함께 덧없이 사라 질 인재의 마지막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리오스는 하얀 빛을 보았다. 처음에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것과는 달랐다. 하얀 섬광은 리오스의 시야를 유혹의 열매를 내세워 현혹시켰던 것이다. 어 쨌든 그때까지 리오스는 자신에게 사신의 낫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백색의 광채로 인해 현실의 시간관념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 위에 부유하게 된 리오스는 진귀한 경험 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몸속에 있는 기관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순간 리오스는 문득 죽음을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싸늘한 사신의 낫이 그의 목을 언제든지 베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모든 소리가 삽 시간에 고요 속으로 사라지고, 오직 고요와 암흑만이 그를 지배했다. 죽음에 관한 사고는 그 의 사고를 암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암흑이 있으면, 빛이 있듯이 리오스의 내면에는 빛의 움직임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다. 암흑의 중심부가 갈라져 빛의 점들이 곳곳을 장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암흑은 빛의 노예로 전락해버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 니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불명확하고, 불충분했다. 단지 느낌과 이미지만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진실의 대변인으로 나설 뿐이었다. 모든 환상이 걷혀지며 리오스는 한 줄기 선을 볼 수 있었다. 섬광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느 렸다. 눈이 부실정도로 환한 빛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점 은 그것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그를 노리며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리오스는 공중에서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공중은 그의 영향권 밖이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 한 줄기 선이 사나운 맹수가 되어 그를 잡아먹으려 다가오고 있었다. 리오스는 다급했다. 그래서 그는 간절 히 외쳤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 사나이로서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게 해다오.' 리오스의 강렬한 외침은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단전을 움직이게 했다. 아니 외침과 동시에 단 전에서 기(氣)들의 활발한 이동이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기(氣)들은 주인의 의지 아래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인을 허공에 조금이지만 부 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약간의 이동, 그것이 리오스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쐐액! 퍽! 미약하지만 몸이 허공에서 돌아간 리오스는 프린세리아의 기(氣)의 정수가 실린 공격에서 간발 의 차이로 벗어날 수 있었다. 본래는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명서인 인명첩에서 제외되었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리오스가 무사하단 말은 결코 아니었다. 프린세리아의 하얀 섬광 은 리오스의 오른쪽 옆구리를 사납게 할퀴고 지나갔던 것이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분수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거기다 리오스는 공중에서 아 무런 보호망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커억, 콜록!" 내장이 상했는지, 입에서 뜨거운 선혈이 흘러나왔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너무나 위급한 상태 였다. 고통과 충격이 너무 심했음인가? 그는 강인한 정신력의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끈 을 놓아버렸다. 한편 프린세리아는 자신이 벌인 만행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었다. 잔혹한 일이지만 시선을 돌린 힘도 없었다. 날카로운 갈고리에 뜯겨져 나간 듯한 옆구리. 검붉은 피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 는 모습이 넝마처럼 찢겨진 선홍빛 살점과의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불현듯 역겨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그녀의 사고 속에 침투했다. 그것은 또한 불안감을 낳았다. '저 사람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녀는 두려웠고, 불안했다. '내가 살인자가 되는 것인가?' 인륜의 도리보다 먼저 고개를 내미는 것은 교활한 이기심이었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때, 그녀를 구원한 것은 따뜻한 한 마디가 아니었다. 그것은 혹독한 질책의 한 마디 였다. "뭐 하는 것이냐! 리오스 군을 빨리 보살피지 않고." 어느새, 다가온 프린샤가 리오스의 상태를 살펴보며 프린세리아를 질책했다. 그제야 그녀는 침체되어가는 사고의 혼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리오스 군의 안위만이 중요할 뿐이다. 네 문제는 차후 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프린샤는 그렇게 말할 뿐, 더 이상의 질책의 말은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올리테리어가 데려 온 치료사가 응급치료를 한 뒤, 리오스를 의무실로 데려갔다. 치료사는 의무실로 가기 전 한 마디를 남겼는데, 그것이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겁니다. 갑작스런 충격과 과도한 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니, 치료를 받으면 완쾌될 것입니다." "다행이네요." 프린샤의 옆에 서 있던 도요이프 부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세판 역시 같은 심정 이었기에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프린세리아는 풀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물론 프린샤도 고개를 끄덕여 부인의 말에 동의를 했지만,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생 각하는 것과 온전히 같지만은 않았다. "움직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움직였다. 이는 삶의 기로에서 발휘된다는 초인적인 힘의 발현 인가? 후후, 재미있군. 가르칠 보람이 무궁무진한 인재가 내 손에 들어온 셈인가!" 프린샤의 작은 중얼거림은 올리테리어만이 들을 정도로 작았다. 그의 말에 올리테리어가 고개 를 끄덕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내에 남은 모두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희극적 장 면은 진이 헌트의 마수에서 풀려나는 축복적인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 후우....드뎌 개강이군요. 전 2학기를 위해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도 따로 올려보내야 하고, 인터넷도 다시 설치해야되고, 음...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이 여러 개 겹쳐, 한 몇일 정도 올리지 못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다들 새학기 잘 시작하시 기 바랍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7 회] 37화. 수련의 나날들 1. 아침에는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를 외치다가 오후에는 '조금 더 적게 조금 덜 아프게' 라는 구호를 외치던 진이 간만에 평온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남쪽지역 특유의 따뜻한 기후는 언제 겨울이 지나갔는지를 오히려 되묻고 있었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벌써부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진이란 인간은 새싹들의 밝은 미래를 온 몸으로 누르며 기분 좋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해맑고 귀여운 미소였겠지만, 짓눌리는 새싹들의 입장에서는 가증스럽 고 잔인한 웃음이라 할 수 있었다. 진은 상쾌한 바람을 이불삼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개구쟁이 바람에 못 이겨 줄행랑치는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늘은 더 없이 푸르고 맑았다. 간만 에 찾아온 휴식은 진에게 여유라는 덕목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것도 어느듯 지겨워진 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바람의 따스한 움직임에 맞춰 온 몸을 맡기자 바람의 기분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아침 그가 느낀 그 감정이 바람의 감정이라고 진은 확신했다. "헌트의 무자비한 수련을 견뎌낸 네가 자랑스럽구나." 난데없는 칭찬에 진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는 천성이 그렇듯 주는 칭찬을 거절하지 않 았다. "뭘요. 그냥 견디는 거죠. 뭐, 헤헤." 에리필은 대견하다는 듯이 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녀석하고는. 어쨌든 너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줘야겠구나. 오늘은 수련이 없다. 그리 고 내일부터 헌트의 무자비한 수련은 없어지고, 나와의 검술수련이 있을 것이야. 물론 헌트도 널 가르칠 것이지만, 이전처럼 대련을 빙자한 폭행은 없을 거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단다." 뚝! 진은 어리버리한 미소를 짓다 차가운 뭔가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반갑지 않은 봄비였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가늘지만, 촘촘히 그 영역을 넓히는 치밀함을 보였다. 진이 누워있던 풀밭은 봄비의 영향으로 금세 촉촉해졌고, 풀밭은 이방인을 물러가게 할 든든한 후원자를 둔 격이 되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진은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 끼며 몸을 일으켰다. 사실 비를 맞는 것도 경우에 따라 낭만이 있어 보일 때도 있지만, 누워서 비를 맞는 것은 궁상스럽고도, 청승맞아 보인다. 봄비는 연이어 삼일 간 더 내린 후에야 그쳤다. 그 덕분에 진은 계획에 없는 휴가를 삼일 이나 더 즐길 수 있었다. 그것이 비록 집 안에서 차분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물론 삼일 간의 휴가에 반대의견을 표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물어보나마 나 단순무식의 대명사인 헌트였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에리필의 한 마디에 묵살되어 버렸 는데, 그의 말은 이러했다. "자네의 실전대련 덕분에 매번 진이 떡이 되어 버려서, 진의 이스트 언어의 진도가 많이 늦어졌다네." 그래서 진은 삼일 동안 육체적 노동보다는 정신적 노동을 해야 했다. 평소의 진이라면 분 명 차라리 수련을 시켜달라고 말했을 테지만, 헌트와의 한 달간의 수련은 그에게 절대안정 이라는 진단서를 끊어 주었던 것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스트 언어는 고대에 두 대륙이 양분되었을 당시 한 쟈크 대륙의 언어를 모태로 하고 있다. 한 쟈크 대륙은 나중에 바이얀 대륙과 합쳐지게 되고 제국이라는 한 집단이 되지만, 그 옛날 전통과 문화를 소중히 여기던 이들은 제국을 등지고 동쪽지방으 로 모이게 되었지. 그런 그들이 제국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제국은 그들을 정벌할 수 없었단다." "왜 정벌하지 못했죠?" 진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에리필이 더욱 열을 내어 말하도록 했다. 이는 리오 스에게 배운 '대화 중 적당한 호응'이란 것이었는데, 진은 형의 말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 다. 이를 알리 없는 에리필은 더욱 흥을 내어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피가 섞인 형제가 되었거든. 제국인에게 흐르는 피의 반은 분명 한 쟈크 대륙의 것이지. 그래서 그들은 암묵적으로 그들을 인정해주었단 말이야. 단 국가를 세우는 것 같은 반제국적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걸고서 말이야. 여기서 제국은 한 쟈크 대륙인의 기질을 다분히 감안하여 이런 계약을 하게 된 것이지. 사실 국가라는 개념이 한쟈크 대륙인에게 있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어. 오히려 그들은 혈연을 중시했었지. 한 마을에 한 피가 흐르는 친족관계의 사람들 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는 것을 선호했었지. 어쨌든 그들은 한 쟈크 대륙의 영토에 살며, 제국인과의 교류를 무시하진 못하고 그들의 언어를 변형, 발전시켜 나갔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에 이르러 이스트 언어라고 불리게 되었지. 그래서 이스트 언어를 알면 고대언어의 반쪽을 얼추 안다고도 볼 수 있단 말이 되기도 하지." "그런가요? 음… 그런데 고대어를 안다는 게 중요한가요? 그리고 사실 제가 이스트 언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에리필은 진의 말에 가슴이 찔렸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그를 토닥였다. 진은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찾기 시작하자 이때까지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사부님, 전에 술법사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저 보고 외경을 이루면 가르쳐 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지금 가르쳐 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진의 물음은 에리필에게 하나같이 무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해 줄 수 있었다. "내가 너에게 바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술법이 너의 성장에 방해물이 되지 않을까 하 는 노파심에서 행한 것이었다. 본래 술법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테스트 를 거쳐서 그 사람이 술법을 익힐 수 있는지 유무를 가리고, 거기서 술법의 종류를 판가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네가 술법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면 넌 실의에 빠져 수련을 게 을리 하겠지. 그리고 만약 네가 술법을 익힐 수 있는 몸이라면 넌 그것에 푹 빠져 기(氣)와 육체 그리고 검을 수련하는데 게을리 할 것이란 말이지. 아직 일정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네 게 술법을 가르친 다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단 말이지. 대개 술법사는 술법만을 죽어라 익히고, 우리 같은 이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기(氣)와 육체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를 갈고 닦는데 사용하지. 거기다 나 같이 술법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술법도 익히겠지만, 술법이 주가 되진 않는단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지 넌 알겠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지금 당장 술법 테스트니 이런 걸 해 달라곤 하지 않겠어 요. 대신 제가 외경에 도달하면 꼭 테스트 해 주세요. 실망하든, 좋아하든 전 꼭 알고 싶어 요. 제게 사부님과 같은 술법사의 재능이 있는지 말이에요." "약속하마!" 에리필은 자신 있게 대답했고, 진은 신뢰로 충만한 눈빛을 보냈다. ~~~~~~~~~~~~~~~~~~~~~~~~~~~~~~~~~~~~~~~~~~~~~~~~~~~~~~~~~~~~~~~~~~~~~~~~~~~~~~~ 죄송합니다. 지금 컴퓨터 본체에 이상이 생겨, 집에서 컴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복귀하겠습니다. 흑흑흑.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8 회] 38화. 수련의 나날들 2. 삼일 간의 재충전의 시간은 진에게 여러모로 큰 힘이 되었다. 그 중에 에리 필이 하는 모든 일에는 자신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안 뒤부터 진은 매일이 즐겁고 유쾌했다. 진의 일상은 작은 사고의 변화로 활력이 넘쳐났다. 아침에는 카이슨과의 달리 기 대결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 두 사람의 경주는 어른과 아이의 시합과 같이 불공정한 것이었기에, 카이슨 스스로 제약을 걸어 경주에 임했다. 제약의 내용은 진이 보유하고 있는 기(氣)의 양과 똑같은 기(氣)만을 사용하겠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진을 속박하고 있는 2G(30kg)의 힘을 자신에게 걸게 만 들었다. 코스는 예전에 등산로로 사용했던 산 정상까지 갔다가 집까지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밖에 마을을 가로질러 옆 마을까지 갔다 오는 등 장소도 돌아가며 선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카이슨이 진이 보유한 기(氣)의 양만을 사용한다 하여 도 기(氣)운용면에서나 노련미에서 밀리는 진이었기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 지만 두 사람의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는 진이 상체 의 츄요를 붙잡고 난 뒤 부터였다. 진은 카이슨에게도 조금씩 격투 기술도 배웠는데, 잔기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위급 시엔 그럭저럭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난 뒤, 헌트와의 수련이 시작되는데, 이때까지 행했던 무식한 대련 은 사라지고 그럴듯한 기술전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진이 헌트에게 처음으로 배운 것은 주먹을 뻗는 데 꼭 필요한 힘의 배분이라는 것이었다. 무조건 기(氣)를 모아 뻗는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한 마디 했는데,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 다. "육체는 모든 무기 중 으뜸이다. 그 중에 주먹과 발은 공격의 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무식한 놈들은 주먹에 기(氣)를 모아 휘두르면 다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것은 최고급 보검을 가지고 식칼로 사용하는 무지한 인간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주 먹 즉 권을 뻗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氣)의 흐름과 네가 권을 뻗는 다는 생각, 그리고 너의 생각에 움직이는 육체가 정확할 정도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말이다. 싸움이 란 말이지. 요컨대 타이밍 싸움이란 말이야. 그리고 그 타이밍이란 녀석은 똑같은 힘을 갑절로 높아지게 하는 마술까지 부린단 말이지." 헌트는 진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육체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진은 흡수력 좋은 스폰지처럼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헌트의 가르침이 끝나면 에리필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는데, 그 시각이 대개 붉은 해가 산 아래로 내려가기 두 시간 전이었다. 에리필이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빠른 검을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한 마디로 쾌검에 관 한 수련이었다. 에리필은 종종 이야기 했다. "적어도 쾌검이라 말하려면 섬광은 우습게 넘겨야지." 또 그는 쾌검에 대해 설명할 때, 매번 빼먹지 않고 이런 말도 했다. "쾌검은 무지막지한 기(氣)를 한곳에 응축시키는 것이 아니다. 쾌검에는 쾌검에 맞는 기(氣)의 운용법이 존재한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런 기도에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터뜨 리는 것을 일련의 동작처럼 이루어내야 한다. 잔뜩 긴장해 있다 터뜨리는 것은 의미가 없 는 것이란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기(氣)만 잔뜩 모아 긴장해 있는 것은 쾌검을 구 사하는 데엔 별 도움이 안 된단 말이다." 진은 그밖에도 검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들을 배웠다. 아직 환검이니, 강검이니 하 는 기술들은 배우지 못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이것이 에리필의 교육법이었다. 붉은 해가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싫어 안간힘을 쓰다보니 하늘도 붉게 변한다. 그러나 그 가 아무리 안간힘을 다해도 결과는 정해져 있었기에 결국 어둠이 찾아온다. 어두컴컴한 어둠은 검법수련의 마침을 알려주는 종소리와 같이 다가왔다. 검법수련이 끝 이 나면 저녁이 기다리고 있고, 그 뒤에는 이스트 언어와 기본적인 학문을 배웠다. 그리고 모든 일과가 끝이 나면 진은 습관적으로 하루에 세 번하는 기(氣)수련의 마지막 수련을 시 작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진의 하루는 계획된 스케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이건 제 스타일이 아니지만, 흑흑흑... 죄송합니다. 이번 거는 매우 짧네요. 어찌됐든 컴 퓨터의 빠른 쾌유를 빌어주세요. 쩝... 인터넷도 다시 깔아야 하는데...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39 회] [공지]요즘 저의 생활은 안녕하세요, 황보세준입니다. 요새 개강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문제였습니다. 제가 있던 자취방을 빼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숙사로 들어가는 거까지 정말 사람 피말리더군요. 여기엔 피치못할 고통이 있었다는 어쨌든 오늘 기숙사 문제와 방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휴우, 이제 한시름 놓았습니다. 글구 제가 요새 글 올리지 못했던 거 변명 몇 마디를 하자면... 복잡하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요약하자면, 컴퓨터의 고장과 인터넷 설치되지 않는 문제, 계약 해제 등, 그러다 보니, 집에 인터넷이 안됩니다. 글구 더욱 절망적인 사실 하나는, 기숙사에 현재 인터넷을 설치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전산실에서 올려야 될 거 같습니다. 지금은 피시방입니다. 휴우, 자취생 주제에 뭔 짐이 그리도 많은지 이삿짐 차를 불러야 되겠습니다. 음... 요즘 시간이 남다 보니, 제 글에 부족한 설정들을 채워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0 회] 39화. 수련의 나날들 3. "굼벵이도 너보다는 빠르겠구나. 상대가 되어야지 원. 이래서야 하나도 재미가 없지 않느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카이슨은 매우 놀라워하고 있었다. 진의 성취속도가 자신의 상 식을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상식적인 성장속도를 가능하게 만 든 것이 진이 얻은 기이한 깨달음 때문이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진 녀석, 이대로 기(氣)수련만 계속해도 몇 년 후엔 엄청난 고수가 되겠군.' 카이슨이 흐뭇한 생각에 절로 미소를 짓자, 진은 그것이 승자의 여유로 받아들여 오기 에 받힌 목소리로 말했다. "흥, 아저씨야말로 그렇게 여유부리다간 큰 코 다칠 거라 구요." 끈적끈적한 땀들이 진의 몸을 축축이 적셨고, 거칠어진 호흡은 그가 말을 함에 따라 더 욱 흐트러졌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카이슨을 쏘아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마치 진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오, 그래? 그런데 이를 어쩐담. 네가 말대답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거리는 자꾸만 멀 어지고 있는데." 카이슨은 흐뭇한 미소도 잠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진을 힐금 보며 능글맞은 목소리에 얄미운 미소를 곁들여 그를 약 올렸다. 약 50 라키르(미터)정도 떨어져서 달리고 있는 진 은 고개를 돌리는 카이슨의 얼굴에서 얄미운 미소를 발견하고, 뭐가 그리도 분한지 더욱 씩씩됐지만, 말해봐야 자신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얼굴을 굳히며 더욱 빠르게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이에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는 카이슨 은 입으로 연신 툴툴대면서도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여 두 사람의 거리를 더욱 벌렸다. 진과 카이슨은 가파르진 않지만 계속되는 경사를 나는 듯이 달리고 있었다. 길은 울퉁불 퉁해 평평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곳은 계단처럼 층계를 이루어 힘겹게 올라가게 만들다 푹 꺼지는 길이 존재해 진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을 때마 다 카이슨과의 거리는 더욱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진은 죽을힘을 다해 거리를 줄이려 하 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진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보니 주위의 장애물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부딪히거나 넘어지기도 했다. 굵은 뿌리와 여기저기 뻗어있는 얍살스런 가 지들이 장애물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땀 위에 구르고 넘어지고, 뽀얀 먼지를 맘껏 들이부으니 달릴 때마 다 진의 몰골은 흡사 거지처럼 변했다. 거기에 긁히고 찢긴 상처들이 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어 완연한 망신창이로 승화시켰다. 앞서 달리던 카이슨이 달리던 것을 멈추고, 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것은 의외의 행동이 아닌 일상적으로 매일 반복되는 행동이었다. 얼마 후, 카이슨의 옆에서 허리를 굽혀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진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 는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선선한 바람을 즐기고 있는데 반해, 또 다른 한 사람은 물에 젖은 생쥐마냥 온 몸이 땀에 절어 보기만 해도 절로 지치게 만들 모 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진의 다크 블루빛 머리칼에 맺혀있던 땀의 결정체들이 그가 허리를 펴는 동작에 흔들려 바 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카이슨의 기대된다는 음성이 두 사람 사이에서 힘차게 울렸다. "자! 오늘도 우리 모두 전력질주를 해 볼까?" "예!" 진과 카이슨은 몸에 걸어 둔, 2G(30kg)의 힘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광란의 질 주로 아침 수련을 마무리할 준비를 끝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집까지 는 대략 1 수키르(킬로미터)정도 되었는데, 비교적 땅도 평평했고,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허 허벌판이라 전력질주 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카이슨의 커다란 신호음이 터짐과 동시에 손에서 벗어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뛰쳐 나갔다. 진은 주위의 경물이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 나가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몸이 앞으로 떠밀려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는, 자유를 만 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 수키르(킬로미터)라는 거리는 그에겐 너무나 짧은 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카이슨의 신호음이 대기를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오늘도 재밌는 경주였다." "헤에, 그런 말씀은 얼굴에 땀 한 방울이라도 매단 뒤에 하시죠." 진은 카이슨의 말에 재치 있게 반격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낯선 방문객을 볼 수 있었다. ~~~~~~~~~~~~~~~~~~~~~~~~~~~~~~~~~~~~~~~~~~~~~~~~~~~~~~~~~~~~~~~~~~~~~~~~~~~~~~~~ 죄송합니다. 흑흑흑....제가 막내 학번이다 보니..컴터...쓸 시간이 없습니다. 흑흑흑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1 회] 40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1. 집안에 들어옴과 동시에 진은 경직된 공기와 이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낯선 인 물을 발견했다. 그가 보기에 에리필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고, 헌트는 심각한 표 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진의 뒤를 따라 들어온 카이슨이 낯익은 방문객을 보 며 탄성을 터트렸다. "이게 누군가!"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카이슨을 반갑게 맞이한 사내는 화려한 금발을 기른 멋들어지게 생긴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금발에 특이하게도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는데, 균형 잡힌 몸매에 기품이 더해져 여자 꽤나 울려봤겠다 란 소리를 자주 들을 외모였다. 그러나 그의 검은 눈은 이성과 냉철함을 축약해 놓은 듯했기에, 여자라는 것이 그에게 있어 의미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그래 오랜만이군. 몇 년 만이지?" "정확히 8년 4개월 만입니다." 세르디스는 따뜻하게 말하려 했으나 사무적 어투가 습관처럼 입에 배였는지 그의 말은 딱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하, 벌써 그렇게 되었나?" 카이슨은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정다운 회포를 풀려다 주위의 경직된 분위기를 감지했다. "음, 그런데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우리 같은 옛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네처럼 팔팔 한 현역이 올 만큼 그쪽 업무가 한량하진 않을 텐데." 카이슨은 반가운 감정을 한쪽에 접어두고, 이 상황을 냉철히 분석해 하나의 의문을 던졌 다. 그리고 그의 의문은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에리필이 대신하여 풀어주었다. "우선 앉게. 진아 너도 앉고." 에리필은 진과 카이슨이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본 뒤, 입을 열었다. "세르디스가 여기 온 이유는 그곳에서 우릴 부른다는 것을 전해주러 온 것이라네." "그곳?" 카이슨의 본능적인 외침에 에리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말이지? 그렇담 우리 두 사람을 부려먹기 위해 위에서 뭔가 수작을 부렸단 말 인데…" "그곳에서 부른 사람은 우리 두 사람만이 아니네." 카이슨은 에리필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심각히 굳어져 있는 헌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고, 의아함은 추측으로 그리고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설마 헌트도 불렀단 말인가?" 에리필은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헌트를 부른 이유도 그가 따라가야만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알고 있다시피 헌트는 그곳의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야. 그런데 이번에 그의 힘이 필요 하다고 그곳에서 판단했단 말이지. 물론 거기에는 우리와 같이 조용히 지낸 8년여의 시간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무인의 필요성이 그곳에서 헌트를 부른 절 대적인 이유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헌트가 그들의 부름에 응해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예전에 그곳에 압류된 헌트의 무구를 돌려주고, 이번 출진에서 공 을 세우면 그곳의 리스트에서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약속했다네." 카이슨은 에리필의 설명을 다 들었지만, 한 가지 납득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려할 때, 에리필의 의미심장한 말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도 알 텐데. 지금의 헌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 이 무엇인지." 그제야 카이슨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 헌트는 진을 위해서 이번 출진을 승낙한 것이다. 그 곳의 리스트에 오른 인물에게 무술을 배운다는 것은 그곳의 감시망에 진 역시 걸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트는 자신보다는 진을 위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헌트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 뻔했고, 이 는 그의 불만스런 표정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건 알겠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곳의 명령에 불응할 순 없는 일이겠군. 우리는 그곳 에 하나의 빚을 지고 있으니 말이야." "후후, 그렇지." 두 사람은 메마른 웃음 끝에 허무의 감정을 달고 쓰라린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씁쓰레한 웃음을 흘리던 카이슨이 뭔가가 생각났는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알기론 리스트에 오른 인물을 사면해 주는 경우는 큰 사건을 해결하는 등 매우 힘든 임무가 주어질 때이던데, 이번 임무는 골치깨나 썩겠군." 카이슨의 탄식에 반응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세르디스였는데, 그는 마치 문서를 읽는 것처 럼 빠르고, 딱딱 끊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노블레이카 산맥에 대형 몬스터와 중급 몬스터들이 출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열흘 전, 노블레이카 산맥 아래에 있던 디요이 마을이 몬스터들의 발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단의 몬스 터들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보아 조만간 폴큐레이티 시에 출몰할 것이라 합니다. 그렇기에 전 이그젝터이셨던 두 분과, 헌트님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된 것입니다. 지리상으로도 이곳과 폴큐 레이티 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협력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세르디스의 말이 끝나자 지금껏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헌트가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폴큐레이티 시라면 십대 도시에는 못 미치더라도 무역 도시로 유명한 큰 도시인 걸로 아는데. 대개 큰 도시, 더군다나 무역 도시처럼 치안유지에 신경 쓰는 도시라면 그 시 에서 보유하고 있는 군사들만 해도 무시 못할 숫자일 테고, 자네와 같은 이그젝터들의 전 력 또한 만만치 않을 텐데." "바로 보셨습니다. 폴큐레이티 시에 근무하는 이그젝터만도 저를 포함해 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폴큐레이티 시에 거하는 이그젝터급 정도의 고수들이 대략 2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에서 보유하고 있는 군사들은 하급몬스터들이 아닌 대형몬스터들이 상대 이기에 전력에서 빼기로 했습니다. 무의미한 희생은 하나도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러나 앞 서의 전력으로도 많이 밀린다는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도 이그젝터들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전력에도 밀린다니. 도대체 그 몬스터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이길래……." 헌터는 감탄인지 탄식인지 구별이 모호한 어조로 뒷말을 흐렸다. 그러나 그의 뜻은 세르디 스에게 충분히 전해졌다. "헌트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전력은 확실히 감당키 힘들 정도로 강대합니다. 대형몬스터 7 마리와 중급 몬스터 20여 마리가 그들의 전력이니 말입니다. 대형 몬스터 한 마리에 최소 이 그젝터 4, 5명은 붙여야 되는데, 거기에 중급 몬스터 20마리가 있으니 전력 면에선 확실히 밀 립니다. 그래서 이곳에 찾아온 것입니다. 헌터님의 강대한 무력은 대형 몬스터의 강대함을 능 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이그젝터이셨던 두 분께서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그젝터들 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그젝트에 연락을 해두긴 했지만, 모두가 바쁘게 활동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전력이 올지는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르디스는 이곳에 와서 지금에야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사실 그는 처음부터 머리를 숙일 수도 있었다. 이들은 위명이나 능력 면에서 모두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인물들이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는 진심이 전해질 수 있는 타이밍을 노렸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머리를 숙였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지만, 그의 진심이기도 했다. "허허, 이번 부탁을 거절하면 보복이 기대되겠구만." 카이슨은 짐짓 너스레를 떨며 비꼬았지만 그 속에 악의는 없었다. 세르디스는 암묵적인 허락이 떨어졌음을 알았다. 그제야 그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그는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전신이 팽팽히 당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실내를 둘러보던 세르디스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발견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오호, 엘리트 세르디스도 궁금한 것이 있나 보지?" 카이슨은 예전에 그를 놀려 먹을 때 자주 애용했던 말을 사용하여 그의 말에 오히려 되물었 다. '엘리트 세르디스!' 이는 그의 별명이기도 했거니와 그의 진실 된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같은 이그젝터 동기들 가 운데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띠였는데, 모든 수료과정을 수석으로 통과한 영예를 얻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는 '엘리트 세르디스'란 말에 어울리는 인물이 었던 것이다. 그런 그도 그를 지도해 준 선배이자, 선생인 카이슨의 놀림에는 당해내지 못하는 지,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비록 당할지라도 할 말은 꼭 하는 야무진 성격의 청 년이기도 했다 "선배님 옆에 있는 소년은 누구입니까?" 그제야 장내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은 이제껏 뭔가가 허전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들은 불만에 차 볼이 잔뜩 부어 오른 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순간 다급해졌다. 무술을 가르칠 때와 평상시에 그들이 진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틀렸는데, 지금의 그들 모습이 그러한 점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심약한 인물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진이라네…" "우리 제자인…" 세 사람은 동시에 말했지만, 조금씩 다른 정보를 전달했다. 그래서 세르디스는 두 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진에 대해 대략적이지만, 그에 대한 중요한 사항은 얼추 알 수 있었다. 세르디스는 매력적인 웃음을 입가에 걸며 말했다. "안녕, 나는 프케아이디 세르디스라고 해. 이름이 뭐니?" "올슈레이 진요. 그냥 진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두 사람은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그젝터라는 것은 혹시 카이슨 아저씨가 말하셨던 그 이그젝트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이그젝트?" 세르디스는 말을 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진이 이그젝터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가 지고 있지 못한 걸로 봐서 그들은 그에게 이그젝터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 기에 세르디스는 섣불리 나서서 저지를 수 있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에리필을 쳐다 보았다. 이에 에리필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의 걱정은 지나친 기우로 판명되었다. "이그젝트는 제국의 특수 무력 집단 중 하나를 일컫는단다. 그리고 이그젝터는 그 무력집 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고 말이지." "그런가요? 음…" 진은 더 물어보려 했지만, 갑자기 배에서 아침 식사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요란한 종이 울 려 그의 시도는 중도에 포기되어야만 했다.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 세르디스와 세 사람은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내는 진이 걱정되는지 떠나는 와중에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그들은 진의 모습 이 낮은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힐끔힐끔 뒤를 살폈다. 일행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빠른 이동에 공기도 비명을 질렀는데, 비명사이 로 세르디스의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진의 지금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의 물음에 나란히 달리던 세 사람이 한결같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일년 안에 이그젝터 예비생이 될 정도라네." ~~~~~~~~~~~~~~~~~~~~~~~~~~~~~~~~~~~~~~~~~~~~~~~~~~~~~~~~~~~~~~~~~~~~~ 드뎌 시간이 났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간이군요. 후우, 너무 죄송합니다. 그래서 요번 화는 비교적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2 회] 41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2. 온화한 기후와 훈훈한 인정이 숨쉬는 남부 지방의 폴큐레이티 시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유명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지리적 요건은 오늘날 폴큐레이티 시를 남부 지방의 무역 거점도시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폴큐레이티 시를 번영케한 그 넘치는 활력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거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남쪽을 바라보면 언제나 볼 수 있었던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어선들은 굳게 항구에 붙들려 있었고, 바다 위 창공을 활개치며 비행하던 바다새들도 무서운 기류를 눈치 채고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잘 닦여진 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간혹 가다 보이는 사람들이라곤 무장한 군사들이나 나름대로 수련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무인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수로는 평소에 폴큐레이티 시가 자랑하는 북적거림을 대신할 수 없었다. 폴큐레이티 시가 자랑하는 사대문 중 서문에 자리 잡은 모처에는 현 상황으로는 아주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략 40여명이 좀 못되는 숫자였는데,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자못 대단해 일개 군단의 군기 따위도 쉽게 꺾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였다. 제국의 한 군단이 보유하고 있는 군병이 천 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모인 사람들은 한 사람만 빼놓고 다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혼자 서 있는 사람은 지도 판을 가리키며, 작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지도 판을 가리키고 있던 지휘봉이 허공을 긋는 동시에 화려한 금발이 따라가듯 흔들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얼굴은 다름아닌 프케아이디 세르디스였다. "대략적인 작전은 이제까지 말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모두들 아시다시피 몬스터들 더군다나 대형 몬스터라는 존재는 단순한 몬스터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합동 공격은 필수입니다. 합동공격이라고 하여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방어선이 뚫리면 불안해하고 있는 시민들은 그저 몬스터들의 살육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죽는 한이 있어도 몬스터들을 막아 그들로부터 우리의 시민들을 지켜야 합니다. 자, 아까 정해준대로 팀을 이뤄 합동 공격을 연습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반나절 후면 그들이 이 앞 페르디난 평원에 도 달한다 하니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세르디스의 말이 끝나자 30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모두 5인 1조로 총 6개의 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대형 몬스터 한 마리를 목표로 합동 공격을 연마해야 했다.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숙달해야 했기에 더욱 이들의 마음은 다급했는데, 조교는 폴큐레이티 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그젝터들이 맡았다. 그들은 그렇게 서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경비병들이 사용하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지금 나간 사람들의 합동 공격으로 대형 몬스터의 발을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거요?"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갈색 머리에 갈색 코털이 인상적인 중년인이 회의에 찬 물음을 던졌다. 그의 음성은 일견 회의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좌절과 우울함을 담고 있진 않았다. 그는 진실로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 세르디스가 확답을 할 수 없어 입을 열지 못하자, 그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밖에 나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로우스트 급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던데, 비록 미디스트 급 몇이 보이긴 했지만, 그들 역시 초입에 머물러 있고, 그 정도의 전력으로 합동 공격을 한다고 하여 대형 몬스터를 무찌를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입니다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휘관 나리!" 그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빈정대는 듯한 말에 세르디스의 잘생긴 얼굴이 찡그러졌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카이슨 나섰다. "오호, 일반인은 잘 모르는 게 정상인 제국 포스 연합회에서 제정한 에너지 포이스트에 관해 아는 것을 보니, 군부에서 일했나 보지요?" 카이슨의 지적은 정확했다. 제국 포스 연합회에서 제정한 에너지 포이스트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로우스트니 미디스트라는 것에 대해 들어는 보았을 테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보고, 바로 등급을 매길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에너지 포이스트가 가장 많이 적용되는 곳이 군부였고, 그와 같이 등급을 매길 정도라면 녹록치 않은 연륜과 기(氣)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쿤의 각 색깔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수련을 쌓아야만 했다. 게다가 카이슨의 지적처럼 군부의 인사들이 대개 이러한 등급 매기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제국의 여러 무력단체들 사이에서 우스개 소리로 군부를 비아냥거릴 때 하는 소리였는데, 쿤의 색깔을 구별하는 수련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개 일정 경지를 넘어가면 기세 및 분위기만으로도 상대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이슨의 말은 어찌 들으면 심한 모욕일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갈색 코털 사나이의 안면에 미비하지만 잔 떨림이 지나갔다. 이는 그가 분노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순간 그는 이참에 자신의 정체를 밝혀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 분노를 안으로 갈무리했다. 잠시 후,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그의 음성은 더없이 차분하고 침착해져 있었다. "형씨의 말에 의하면, 제국의 자랑스런 군부에서 일한다는 것이 마치 무슨 큰 죄를 짓는 것과 같은 거라고 말하는 거 같구려. 이는 위대한 제국에 몸 바치는 군부를 모독하는 것은 물론이요, 제국을 모독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한 발언인줄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카이슨의 말을 부인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도 않아 그의 정체를 더욱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카이슨과 군부의 인물로 짐작되는 두 사람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금껏 권태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한 인물이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여섯 사람만은 조를 이루지 않은 것으로 보아 또 다른 작전이 있을 것 같은데… 이제 그만 그걸 설명해 주는 것이 어떻겠소?" ~~~~~~~~~~~~~~~~~~~~~~~~~~~~~~~~~~~~~~~~~~~~~~~~~~~~~~~~ 오늘은 연참 들어갑니다. 엔터신공으로 줄을 줄이다 보니, 엄청 노가다군요. 흑흑흑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3 회] 42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3. 2 라키르(미터)에 육박하는 큰 키에 호리호리 한 몸매를 가진 청년이 처소의 나무 벽에 기 댄 채 말하고 있었다. 그는 붉은 머리칼을 허 리 밑에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게 기르고 있었 는데, 무인치고는 드물게 머리가 길었다. 그리 고 그의 옆에는 보기만 해도 그 크기에 질려버 릴 거대한 검이 주인과 마찬가지로 벽에 기대 여 있었다. 세르디스는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던 스라이 드 레이터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군부의 인물과는 달리 이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라이드 레이터, 이 이름보다 더 유명한 것은 그의 별칭인 무채색의 사냥꾼이란 말이었다. 그 리고 무채색의 사냥꾼은 몬스터 사냥꾼들 사이 에서도 최고의 랭커로 등급 되어 있는 몇 되지 않는 사람을 뜻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강했 다. 그리고 그는 상대가 사람일 때보다 몬스터 가 상대일 때 훨씬 더 강한 면모를 선보였었다. 그래서 그는 레드 몬스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 까지 얻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도 관심가지지도 않았다. "스라이드 레이터님의 말처럼 저를 포함한 여섯 사람을 남게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전에 저기 프레데릭이라고 하셨죠. 저희들의 에너지 포이 스트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갑작스런 요청에 프레데릭은 갈색 코털을 몇 번 어루만지다 한 사람씩 살피기 시작했는데, 그의 눈이 은 은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그의 눈에서 붉은 빛이 폭사되면서 그가 카이슨의 전투력에 대 해 말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의 전투력은 하이스트에서도 최상급에 속 하는 실력이라고 보네. 그리고 지휘관 나리의 전투 력도 그와 비슷해 보이네. 그 다음에 음…" 그는 헌트와 에리필 그리고 남은 레이터를 보며 인 상을 찡그렸다. 프레데릭은 한참을 뜸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 다. "저 긴 머리청년은 익스퍼트급인 거 같고, 나머지 두 사람은 마스터의 경지로 보이네." 그의 말에 헌트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아 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에리필은 의미 가 모호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었다. 그 리고 레이터는 잠시간 움찔했다. 그의 실력은 확실히 익스퍼트에서 최상급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무채색의 표정 으로 돌아왔다. 세르디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프레데 릭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실력은 어느 정도죠?" 세르디스의 갑작스런 물음에 프레데릭은 잠 시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미리 생각해두었 던 대로 입을 열었다. "저 두 사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요." 그의 말에 헌트가 눈을 빛내며, 강렬한 투 기를 발산시켰다가 다시 갈무리했다. 그 모습을 보며 프레데릭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세르디스는 주위를 찬찬히 훑어본 뒤, 천천 히 입을 열었다. "프레데릭님이 말한 대로 저희들의 전투력 은 최소 하이스트에서 최대 마스터 사이입니 다. 물론 실제 전투에 미칠 전투력은 이와 다 를 수도 있겠지만, 대충 이렇다고 가정하고 말 하겠습니다. 우선 6개조의 사람들이 6마리의 대형 몬스터를 맡습니다. 그러면 대형 몬스터 1마리와 중급 몬스터 20마리가 남는 다는 결론 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한 마리를 헌트 님이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세르디스는 말을 하며 헌트를 바라보았고, 주 위의 분위기는 갑자기 냉각되었다. 특히 프레 데릭과 레이터 이 두 사람이 그들도 모르게 발한 기운 때문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헌트의 예전 행각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헌트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무심히 넘 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디스는 잠시 이 두 사람의 마음이 진정되기 를 바라고 기다렸다. 두 사람은 제각기 헌트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헌트라, 내가 알기론 이제는 살인마의 길에서 벗어난 인물인 걸로 아는데. 역시 에리필이란 인물이 그의 성정을 정화시킨 건가?' '인간 몬스터라고 불리는 흉악한 살인마라 재미있 군.'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두 사람이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세르디스는 속으로 안도하며 말을 이어나갔 다. "그렇게 되면 저희 쪽은 저를 포함한 5사람의 전 력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 두 사람은 대형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밀리는 전선 쪽으로 투입하기 위해 대기 및 자체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 역 할은 냉철한 판단력과 신속한 결단력이 필요하기에 많은 연륜을 쌓은 분이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르디스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느긋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에리필과 프레데릭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더욱 짙은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 역할에는 에리필님과 프레데릭님이 해 주셨 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저와 카이슨님 그리고 레 이터님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20마리의 중급 몬스터 를 처리하고, 밀리는 전선에 투입되는 것으로 하겠습 니다." 세르디스는 길지만 하나하나 설명하며 자신의 생각을 일행에게 전했다. 그들은 세르디스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수용했다. 특히 레이터가 이번 작전에 만족해하 고 있었는데, 이는 비록 중급 몬스터가 대형 몬스터 보다는 많이 약하지만 많은 수의 몬스터를 도륙할 수 있다는 사실과 대형 몬스터를 무너뜨리는 것이 단시 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중급 몬스터들을 도륙한 뒤에 남아 있을 대형 몬스터라는 메인 요리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라 생각했건만 시간은 흐르 고 흘러 그들을 페르디난 평원으로 이끌었다. 페르디 난 평원은 폴큐레이티 시의 서문에 위치해 있고, 광 활한 녹빛 평원이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비록 멀리 떨 어져 있지만, 파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이야말로 폴큐레이티 시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음껏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자리였고, 그들의 움직임 이 서문을 향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 비가 오다 잠시 멈추었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흐흐흐, 에췻~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4 회] [공지] 옆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엔터신공을 발휘 엔터신공으로 10화까지 수정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엔터신공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5 회] 43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4. 페르디난 평원 너머에는 희미하게 보이는 크고 작은 산들로 이루어진 산맥이 있다. 그런데 지금 그것들이 잔물결에 일렁이는 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들이 서 있는 땅의 거센 울림이 다리를 타고 전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녹빛의 평원을 짓밟는 괴수들의 거대한 몸체를. 10여 라키르(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을 가진 7마리의 대형 몬스터들은 한 걸음 한 걸 음이 마치 거인족의 진노와도 같이 온 땅을 진동시켰다. 그런데 위압적인 기세를 내뿜 는 대형 몬스터들은 크게 두 부류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형 몬스터 중 4 마리는 머리에다 커다란 두 개의 뿔을 꽂아놓고, 그 사이에 작은 뿔 을 박아놓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은 뿔이 더욱 사악한 힘을 발하는 것 같아 자연적으로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그리고 이 대형 몬스터는 한 마디로 기괴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몸집에 걸맞게 커다란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 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 그 작은 실눈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3분지 2를 차지하는 커다란 입은 흉포하게 벌려져 있어 기괴함을 넘어 공포심을 주었다. 그리 고 허리쯤에서 뻗어 나온 여섯 개의 팔이 달릴 때마다 각 방향을 점하고 흔들리고 있었고, 팔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이 사나운 외침을 토하고 있었다. 7마리 대형 몬스터 중 나머지 3마리는 2족 보행이 아닌 4족 보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외형은 흡사 하마와 같이 다리는 짧고 몸통이 굵직한 것이 여간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 리고 그 몸체는 흡사 철갑을 두른 듯 무수히 많은 철조각들을 붙여놓은 듯했다. 게다가 이 마부분에 길고 날카롭게 생긴 거무죽죽한 뿔이 햇빛에 받아 검은 빛줄기를 뿌리고 있어 요 사스런 느낌을 주었다. 이들의 뒤에는 흉포한 기세로 돌진하는 20마리의 중급 몬스터들이 있었는데, 대개의 중급 몬스터들이 그러하듯 모두 2족 보행이었고, 시뻘건 눈동자에 지저분한 털들을 가지고 있었 다. 그리고 중급 몬스터들은 기괴하게 일그러진 입과 날카로운 손톱에 인간이라면 만들기 불가능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어느 특정부위만이 발달되어 있기에 그것은 기괴함을 넘어 혐오감을 주기도 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면상들을 가진 중급 몬스터들의 몸집 은 작은 것은 4 라키르(미터)에서 큰 것은 6 라키르(미터)에 육박할 정도였다. 이들의 행진은 어찌 보면 꼬마들의 발랄한 발동작을 연상시킬 정도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폐허로 변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 실이었다. 두 진영은 약 1 수키르(킬로미터)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순간적인 거리만을 고려한 것일 뿐, 몬스터들의 행진은 멈춤 없이 계속되었다. 거리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줄어드는 거리를 보며 폴큐레이티 시 연합측이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활동할 영역을 정돈했다. 두 진영의 남은 거리가 100 라키르(미터) 쯤 되었을 때, 몬스터 측에서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강렬한 소음이 울렸다. 그것이 기점이었을까? 그들의 돌격은 더욱 과격해졌고, 붉은 눈동자엔 흉포함만을 남겨두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거 은근히 떨리는데……?" 카이슨이 두 손을 비비며 긴장된 몸을 풀었다. 그 옆에 있는 에리필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음을 짓는다. "자, 자기가 맡은 몬스터들을 놓치지 말고, 꼭 붙들어 두십시오. 빠른 시간 안에 승부를 내 려 하지 마십시오." 세르디스는 30명의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승리를 위해 무너져서는 안 되는 받침대와도 같은 것이었다. 세르디스가 말하는 순간에도 몬스터들과의 간격은 좁혀지고 있었다. 잠시 후, 헌트의 광소가 울리고, 이것을 기점으로 모두는 전장으로 돌진했다. "크하하하." "간만에 피가 끓어오르는구나!" 헌트는 그다운 한 마디를 던지며 몬스터 측 가운데서 돌진하는 팔이 여섯 개 달린 요네사네에 게 달려들었다. 달려들던 헌트의 양 주먹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것은 찰나간의 순간 에 요네사네의 여섯 팔 중 하나와 격돌했다. 그리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몬스 터의 시원스런 격돌로 인해 터진 충격음이 전투의 시작을 끊었다. "와아아아!" "폴큐레이티 시를 지키자!" 연합측은 몬스터 군단이 발하는 위압적인 기세에 꺾이지 않으려 혼신을 다한 외침을 토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맡은 상대에게 돌격했고, 작전대로 중급 몬스터와 대형 몬스터들이 서로 에게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그들의 노력에 보답의 상을 내리려는지, 스라 이드 레이터의 대검이 중급 몬스터와 대형 몬스터 사이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레이터의 양손에 붙들린 대검은 하늘에서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며 돌다 허공에서 기묘한 곡선 을 딱 세 번 그었다. 그리고 세 번의 선이 교차하는 한 지점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 다. 잠시 후, 활활 타오르던 푸른 불꽃이 레이터의 검에 이끌려 섬광이 되어 양 진영으로 쏘아 졌고, 일시지간 바다를 가르는 역도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렇게 엄청난 기세를 내 뿜는 레이터가 다시 한번 대검을 휘두르자, 그것은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는 차츰차츰 중급 몬스터들을 압박하며 한쪽으로 몰고 갔다. 그런 그를 도와 세르디스와 카이 슨이 그의 양옆을 지키며 중급 몬스터들에게 검을 휘둘렀고, 대세를 살피던 에리필과 프레데릭 또한 가세했다. 아직은 합동 공격이 어느 정도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서로의 힘이 비등비등했기에,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거기다 아무리 중급 몬스터가 대형 몬스터 보다 약하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중급 몬스터들이 수적으로 크게 우세했기에 오히려 연합측이 포위공격을 당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 었다. ~~~~~~~~~~~~~~~~~~~~~~~~~~~~~~~~~~~~~~~~~~~~~~~~~~~~~~~~~~~~~~~~~~~~~~~~~~~~~~~~~~~~~~~~ 자기 전에 하나 올려야 될 거 같아서 올렸습니다. 참 드뎌 엔터신공이 끝났습니다. 후우,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흑흑흑.... 결에 일렁이는 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들이 서 있는 땅의 거센 울림이 다리를 타고 전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녹빛의 평원을 짓밟는 괴수들의 거대한 몸체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6 회] 44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5. 한편 여섯 조로 나뉘어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는 30명의 무인들은 공격은 고사하고 버티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런 그들은 조금만 방심해도 저들의 육중한 몸에 깔리거나 거대한 팔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 눈에 선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뒤, 그것은 단순한 전율이 아닌 잔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그레크스는 폴큐레이티 시로 배속 받아 이그젝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요원이었다. 그러데 뜻하지 않게 폴큐레이티 시에 그만 몬스터 군단이 쳐들어 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속은 두려울지언정, 자신이 맡은 사명 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상대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레크스는 한 번의 공격이라도 허용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해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 하거나 틈을 노려 동료와 합격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어떠한 위력 적인 공격에도 작은 생채기만 날 뿐이었다. 한 마디로 중요 부위는 다 피하고, 딴딴한 외피로 그레크스들의 공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공격 해도 타격을 입지 않는 것이다. 그레크스는 허공을 나르며 그의 최대 비기인 크로스 블레이드를 펼쳤다. 순간 적으로 허공에서 두 개의 붉은 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가 그대로 쿠요르켄에 게로 날아갔다.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가 대지를 뒤집었다. 그리고 먼지 속을 노려보는 그 레크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먼지가 걷히 는 순간, 징그럽게 일그러져 버린다. '크흑! 젠장, 저 녀석은 괴물인가? 아니 괴물이 맞긴 하지. 하지만 아무리 괴 물이라 하여도 나의 공격에도 상처하나 입지 않다니…….' 그의 몸은 소름으로 뒤덮였으며, 그의 사고는 공허와 허무의 세계에서 놀고 있 었다. 그러나 그는 무인이었기에 순간적으로 위험 신호를 감지했고, 눈을 들어 그 위험인자를 노려보았다. 쿠요르켄의 날카로운 뿔이 낮게 깔리며 그의 얼굴을 터트릴 듯이 쇄도했다. 그 러나 그레크스는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공중에서 몸을 튼 뒤, 발을 몇 번 놀려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중에서 몸을 몇 번 틀었다 착지한 상 태에서 막바로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기에 자연적으로 자세가 흐트러질 수밖 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놓칠 리 없는 쿠요르켄이 나무 조각과도 같은 그레크 스의 몸을 사정없이 그 육중한 몸으로 들이박았다. 퍽! 그레크스는 골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충격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고통은 갈빗대가 몇 대나 나가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격통이었다. 온 몸을 엄습하는 격통은 갑자기 그를 덮쳤고, 그 고통에 그는 정신을 나락에 빠 뜨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 그는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죽기 싫었고, 그의 의지를 읽은 하늘도 아직은 그를 데려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날아가던 그레크스를, 정황을 살피고 있던 프레데릭이 붙잡았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그를 데려다가 눕혔고, 진탕된 내장과 기(氣)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한편 한 명이 줄자 합동 공격은 조금만 건드려도 허물어질 모래성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이 멀지 않았을 때, 에리필이 나섰다. 중급 몬스터 20마리를 상대하고 있던 세 사람은 갑작스레 두 명의 전력이 빠지자 더욱 강력해진 포위공격에 몸을 떨었다. 비록 지금까지 치른 전투를 통해 4마리의 중급 몬스터를 황천으로 보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레이터가 무채색의 눈동자를 밝게 빛내며 투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크크크, 대형 몬스터라는 메인 요리를 포기해야할 것 같군." 그와 동시였다. 지금껏 휘두르고 있던 대검에 은색의 기운들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칠지만 자신에 찬 레이터의 음성에 의해 터지듯이 주위로 쏘아져 나갔다. "스카이 갤럭시 레인!" 하늘의 신이 노하여 내린 은빛의 비가 지상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빗줄기 하나하 나가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16마리의 중급 몬스터들에게 쇄도해 나갔고, 그 결말 은 잔혹하지만 명쾌했다. 거친 충격음과 사나운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몸이 은빛의 선에 의해 난자당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지 중급 몬스터들이 느끼기로는 마치 레이저와 같은 빛줄기들이 자신의 몸을 태운다고 느낀 순간,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비명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하나씩 바닥으로 쓰러지는 몬스터들은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극도의 공포가 주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씩 평온이라는 죽음의 안식처로 떠났다. 세 사람의 주위에는 더 이상 중급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선홍빛 살점의 대부분이 타 있거나 속이 뒤집힐 정도의 악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레이터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유채색의 웃음이 걸렸다. 그러나 유채색의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과도한 기(氣)를 한번에 사용하여 탈진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닥에 주저앉 았다. 기절은 하지 않았지만, 과도한 기(氣)의 사용은 그만큼 그를 정신적, 육체 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무채색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저들과의 즐거운 전투는 당신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눈짓으로 다른 전장을 향하여 떠나라고 말했다. 레이터의 갑작스런 공격과 그가 만든 작품에 대형 몬스터들은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 다. 그러나 다른 일행들은 비록 대형 몬스터들의 저돌적인 공세가 부담스러웠지만, 마음만은 사기충천했기에 검에 기(氣)를 잔뜩 불어 넣어 에너지 소드를 휘두르며 맞 상대 해 나갔다. 전장을 감도는 분위기는 인간 연합측으로 기우는 듯했다. 이는 전력에서 빠졌던 프레 데릭이 그레크스를 어느 정도 치료한 뒤, 전장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르디 스와 카이슨 또한 전투에 뛰어들었기에 그들의 사기는 가히 하늘을 뚫을 듯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 점심시간을 틈타 하나 올립니다. 다음 수업에 들어가러 갑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7 회] 45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6. 헌트는 막대한 에너지가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잠시 후,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광경이 슬쩍 돌린 시선에 잡혔다. 헌트는 너무도 아름다운 빛의 비에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나 만족의 미소 를 짓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평원이 떠나가라 울리는 비명과 사지육 신이 터지고, 녹아버리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스산 한 미소가 걸렸다. 순간 헌트의 십자흉터가 붉게 물들고 있었고, 그와 함께 그의 몸에서 붉은 오로라가 폭사되어 나와 막강한 기세를 주위로 뿜어내었다. "크하하하, 얼마만의 유흥인가!" 헌트는 시원스런 광소를 터트리며 주먹을 말아 쥔 뒤, 힘껏 내뻗었다. 이 한 동작은 매우 자연스럽고 빨랐다. 그렇지만 그의 주먹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어김없이 요네사네의 여섯 팔 중 하나에 막혔다. 그리고 요네사네는 나머지 다섯 팔을 교묘히 휘둘러 헌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헌트는 다섯 개의 팔이 자신을 향해 몰아쳐오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비릿한 웃음을 지 었던 이유를 설명하듯 거센 외침이 토해졌다. "블러드 블레이드!" 헌트의 오른팔이 붉게 물드는 것 같더니 그것은 순식간에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굉음을 터트리며 헌트의 오른팔에서 요네사네의 팔을 점령해나갔 다. 치지직! 살이 타는 소음과 역겨운 냄새는 인간의 청각과 후각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헌트는 여기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지 비릿한 웃음에 한층 더 잔혹한 미소를 더했다. 이에 요네사네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헌트에게 붙잡힌 팔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헌트라는 사내를 끝까지 만만하게 본 명백한 그의 실수였다. 헌트는 그림처럼 몸을 움직여 요네사네의 팔을 놓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팔을 꿰뚫듯 요네사네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와 중에도 매캐한 살이 타는 내음은 계 속되었고, 잠시 뒤, 요네사네는 그의 자랑스런 여섯 팔 중 하나를 잃어야 했다. 그렇다고 헌트가 다섯 팔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터져버린 요네사네의 팔의 접합 부분이었던 몸체에서 끈적끈적한 보랏빛 피들이 떨어지려는 찰나 헌트는 다섯 팔의 가공할 힘을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헌트는 충격을 받 는 와중에도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가슴이 진탕되고 내장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 았건만, 헌트는 가공할 괴력으로 자신의 몸보다도 큰 다른 한 손을 꺾어 버렸다. "쿠오오오!" 또 다시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요네사네는 상대를 잘못 만나 한손은 사라지고 한손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덜렁 덜렁거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네 손이 고통에 보상받기라도 하려는지 흉포하 게 움직였다. 그러나 거기에 맞아줄 헌트가 아니었다. 헌트는 이것이 과연 직선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몸놀림인가? 하는 물음을 던질 정도 로 빠르고 신속하게 몸을 놀려 사방에 그의 잔상을 남기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 렇게 허공과 대지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던 헌트가 어느 순간 땅을 박차고 10여 라키르(미터)까지 몸을 띄웠다. 이미 헌트의 주먹에는 경이로울 정도로 많은 양의 기(氣)가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먹에서는 강렬한 스파크가 터지고 있었고, 붉은 기운들이 소용돌이의 회전을 능가하는 속도로 돌고 있었다. 그는 요네사네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꾸준히 기(氣)를 모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헌트라는 사내가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요네사네는 그의 여섯 팔을 이용한 막강한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것이 돌연 네 개의 팔로 줄어들었으니. 그의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던 철벽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헌트는 그의 성격대로 힘으로 승부를 걸었다. 헌트의 주먹에 모여 있던 붉은 기운들이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대기의 공기를 빨아들인 그의 주먹은 태풍의 눈처럼 잠잠했지만, 그 주위에는 사납게 날뛰는 대기와 강렬한 스파크들이 뒤섞여 혼돈의 상태를 만들고 있었다. 츠츠츠! 그렇게 붉은 기운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것도 잠시, 그것들이 점차 용의 형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붉은 용은 헌트의 팔에서부터 시작해 그의 몸을 타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것은 금세라도 우뢰를 동반한 비를 내리며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연신 꿈 틀대고 있었다. 헌트의 몸이 요네사네의 머리높이만큼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그의 평소 지론대로 온 몸을 급격히 회전시켰고, 그에 따라 붉은 용이 그에 몸에서 빠져 나와 헌트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헌트는 천천히 주먹을 뻗고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타격점에 이른 그의 주먹이 쫘악 펴진 것은 눈 한번 깜빡일정도의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드래곤 피니쉬!" 굵직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가 울리며 대기를 진동시켰고, 붉은 용 주변에 있던 강 렬한 스파크가 파지직 거리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스파크가 붉은 용에 잡 아먹혔을 때, 붉은 용은 공간을 격하고 요네사네 앞에 도착해 있었다. 네 개의 팔이 붉은 용의 진로를 잠시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 말로 아주 잠시 였다. 금이 가기 시작한 철벽은 강렬한 파열음을 일으키며 터져나갔고, 그것은 대형 몬 스터의 최후를 알리는 괴성을 의미하 는 것이었다. 10여 라키르(미터)가 넘는 대형 몬스터 요네사네는 공포와 당혹의 눈빛으로 붉은 용을 쳐다보았지만, 인성이 없는 붉은 용은 서서히 그의 몸을 잡아먹고 있었다. 한 마디로 요네사네는 붉은 용에게 일용한 양식이 된 것이다. 그렇게 불신과 분노를 가지고 요네 사네는 인간계에서 소멸되었다. 간만에 포식을 한 붉은 용은 잠시간 용트림을 하더니 서서히 그 절대적인 위용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헌트는 이전에 에리필과 대결할 때도 쓰지 않은 이 기술을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하였 다. 사실 이 기법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쓸 수 있는 스피릿 트랜스라는 기법 으로 에너지 소드와는 차원이 다른 고차원의 기법이었다. 그렇다 보니 제 아무리 헌트 라 할지라도 이 기술을 시전하면 탈진할 수밖에 없었다. 헌트는 만족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당장에 뛰어나가 좀 더 전투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행히도 그의 몸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헌트는 어쩔 수 없이 개구쟁이처럼 내부에서 날뛰고 있는 기(氣)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 여기는 수원역 앞에 있는 피시방입니다. 쩝... 입석이라도 타고 내려갈려고 했지만, 제 바로 앞에서 3시 17분 표가 동나버리더군요. 할 수 없이 전 6시 46분 입석으로 대구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을 올리라는 하늘의 계시인 거 같습니다. 쩌업.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8 회] 46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7. 주위는 인간 측의 우세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기존에 있던 합동 공격에 프레데릭이 합류한 대형 몬스터는 이제 막 숨을 고하고 있었다. 프레데릭의 몸놀림은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는 데, 그렇다 보니 그는 한 곳에도 생채기 비슷한 것도 나지 않은 상태였 다. 쿠요르켄은 자신의 뜻대로 전투가 진행되지 않자, 분노가 극에 이른 듯 사나운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의 괴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뒤늦게 합류한 프레데릭의 엄청난 전투력으로 인해 얻은 자신감 때문이리라. 그렇게 용기백배해 있는 연합측은 기회를 보다 프레데릭의 신호에 맞춰 다 섯 사람이 쿠요르켄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순간이지만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프레데릭이 몸을 날려 쿠요르켄의 몸에 올라탔고, 기(氣)가 잔뜩 주입된 검을 검은 뿔 밑에 있는 작은 틈에 박아 넣었다. 거기다 그는 검에 주입된 기(氣)를 쿠요르켄의 몸 안으로 터뜨리듯이 쏘아 보냈다. 쿠요르켄은 극심한 고통에 지옥에나 존재할 괴성을 지르며 온 몸을 사납게 흔들다 몸을 잘게 떨더니 갑자기 그 몸동작마저도 멈추었다. 잠시 후, 검은 철갑이 뭔가에 의해 터지기 직전까지 팽창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싸움은 서서히 막을 고하고 있었다. 한 마리를 죽인 무인들은 다른 일행을 돕는 식으로 전력을 높인 연합측은 시간이 갈수록 전투의 승리가 자신들 쪽 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전투가 그러하듯 상대의 목숨만 빼앗고, 끝나는 법은 거의 없었 다. 특히 소단위가 아닌 대단위로 치루는 전투일 경우에는 죽음이란 마물이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진리에 가장 가까운 전투의 잔혹함일 지도 모른다. 프라데마크는 올해 사십 세살로 폴큐레이티 시의 경비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공적으로는 매우 철저하고 냉정해보였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 었다. 그것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사람 좋은 호인인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라고 하여도 죽음의 신이 내린 형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아내의 품이 아닌 요네사네의 끔찍할 정도로 고 통스런 품안에서 죽었다. 우악스런 요네사네의 팔들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에 프라데마크는 혼신 의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 했음은 물론이요,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에너지 소드를 날려 그를 요네사네의 품에서 빼내려 했다. 그러나 요네사네의 여섯 팔은 견고했으며, 결국 프라데마크는 무지막지한 여섯 팔의 압력에 몸의 힘 이 빠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곧 온 몸이 찌그러지는 달갑지 않은 경험을 해야 만 했다. 결국 그의 몸은 시체를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터져버렸 던 것이다. 그밖에 퀄레이엔은 쿠요르켄의 검은 뿔에 꽂혀 죽었고, 아틀레스는 쿠요르켄 의 발에 밟혀 죽었다. 이렇게 죽음과 피를 부르는 전투는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 되 었을 때, 그 피리비린내는 절정에 이른다. 쿠요르켄의 경이로운 몸통이 공간을 부수며 카이슨에게로 쇄도했다. 그러나 카 이슨은 날랜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하며 에너지 소드를 날렸다. 이에 쿠요르켄의 붉은 눈동자가 더욱 흉포하게 변했고, 이후 그는 끈덕지게 카이슨을 노렸다. 처 음엔 실실 웃으며 피하던 카이슨이었지만, 쿠요르켄의 공격에 점점 몰리는 자신 을 보게 된다. 게다가 무식한 쿠요르켄은 다른 사람의 공격은 급소 공격이외에 는 일체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카이슨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쿠요르켄의 이러한 저돌적인 모습은 이러한 말을 하는 듯했다. "난 한 놈씩만 죽인다." 쿠요르켄의 행동에서 그의 생각을 읽은 카이슨은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천천히 이동하던 쿠요르켄이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이에 카이슨은 이때 다 싶어 강력한 에너지 소드를 만들어 비어진 그의 복부를 노리려 했다. 하 지만 약삭빠른 쿠요르켄이 몸을 빙그르 돌려 그의 몸에 박혀 있는 날카로운 창들 을 꼿꼿이 만들었다. 이는 카이슨을 노린 것으로 순간적으로 그의 발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순간의 망설임으로 인해 카이슨은 날카로운 창에 꿰뚫림과 동시 에 거대한 몸체에 압사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카이슨이 순간적으로 몸을 이동하려 했지만, 그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는 쿠요르켄의 그림자 아래였다. 그것을 직감했는지 카이슨은 깊은 숨을 들이 쉼과 동시에 미련 없이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삶을 포기한 것인가! 그가 눈을 감는 것 과 동시에 쿠요르켄의 육중한 몸체가 카이슨을 깔아뭉개 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에 세르디스는 머리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리고 그는 엘리트 세르디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쿠요르켄에게 에너지 소드 다발을 날렸다. "이 개놈의 새끼야! 내 검에 뒈져라!" 세르디스의 에너지 소드들이 사방을 점하며 빛살보다도 빠른 속도로 쿠요르켄의 몸 을 두들겼다. 이에 쿠요르켄도 충격을 받았는지 뿌연 먼지 속에서 뒤로 비칠비칠 물 러서는 것이 보였다. 세르디스는 뿌옇게 먼지가 피어올라 형체만 보이는 쿠요르켄에게 그답지 않게 욕설 을 뱉어내며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엄청난 분노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는 다 시 한번 자신이 끌어 모을 수 있는 기(氣)란 기(氣)는 모조리 끌어 모아 모조리 검 에 주입해 눈이 부실정도로 강렬한 빛을 토하는 에너지 소드를 만들어내었다. 세르디스는 분노로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최고 기술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서서히 황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가 검을 천천히 돌리자 그것들이 사납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황금빛의 기운들 이 수많은 에너지 소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네 녀석의 죽음으로 그분의 마지막을 대신하라!" ~~~~~~~~~~~~~~~~~~~~~~~~~~~~~~~~~~~~~~~~~~~~~~~~~~~~~~~~~~~~~~~~~~~~~~~~~~~~~ 이제 짜장면 먹고, 기차타러 갈랍니다. 흐흐흐 근데 두시간 정도 했는데, 3500원 나오네요. 쩝...왜 이리 비싸지. 이 피시방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49 회] 47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8. 세르디스가 절정에 이른 기운을 터트려버리려는 순간, 그의 모든 신경을 얼려버리는 음성이 울렸다. "이봐! 죽긴 누가 죽었다는 거야?" "어?" 너무도 친숙한 목소리에 황금빛 에너지 소드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붉게 충혈 된 눈에 한 방울 맺힌 눈물을 땅으로 떨어뜨리며 뒤돌아보는 세르디스. 그의 구겨져 있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카이슨님! 살아계셨군요." 그는 웃으며 카이슨을 끌어안았다. "이, 이봐. 이거 왜 이래? 난 남자는 취미 없다고." 빙그레 웃음 짓는 카이슨이 세르디스의 등을 두들겼다. 잠시 뒤, 얼굴을 카이슨의 가슴에 파묻고 있던 세르디스가 고개를 들며 의문을 떠올 렸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었죠?" "크크, 내 별명이 뭔지 잊어 먹었나 보군." 카이슨이 다시 한번 묘한 미소로 운을 떼자 그제야 세르디스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부딪치며 말했다. "환영귀!" "크크, 그래 귀신도 속인다는 환영술과 이동법의 대가가 바로 나란 말이지." "그런데 자기 스스로 그런 말 하는 거 부끄럽지 않습니까?" 세르디스는 여유를 되찾자, 카이슨의 능글맞은 미소에 일침을 가했다. 그렇게 그들이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카이슨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쿠요르켄이 작지 않은 충격에 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렬한 살기를 담은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에 쫄 정도로 담력이 약한 인물은 이 자리에 없었기에 그의 째림은 오히려 카이슨의 의욕만 불태웠다. "오호, 저것 봐라. 감히 날 째려봐? 넌 이제 죽었어!" 카이슨은 비록 기(氣) 소모가 심하지만 큰 기술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세르 디스에게 지시 사항을 알려 준 뒤, 그 기술을 시전 했다. 카이슨의 몸이 서서히 분리 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순식간에 넷으로 불어난 카이슨은 쿠요르켄의 네 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쿠요르켄은 가소롭다는 듯 이 바라보았고, 지척으로 다가온 네 명의 카이슨을 간단한 휘두름으로 물리쳤다. 그때였다. 네 개의 분신 중 하나의 분신이 다시 한번 나누어지며 하나가 둘이 되었고, 순간의 틈을 얻은 카이슨이 예사롭지 않은 에너지 소드를 휘두르며 쿠요르켄의 굵직한 다리를 스쳐지나 갔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세르디스의 황금빛 에너지 소드가 반대편 다리를 후려쳤다. "쿠오오!" 쿠요르켄은 나약한 존재라고 여겼던 인간들의 공격에 큰 고통을 느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며 그들을 밟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쿠요르켄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묵직한 하 중이 상처 입은 다리에 무리를 주어 다시 한번 구슬픈 비명을 지른다. "쿠호오!" 그 순간 합동 공격으로 대형 몬스터 한 마리를 처치하고 호흡을 고르던 에리필에게 고통스 러워하는 쿠요르켄의 모습이 잡힌 것은 필연이리라! "후웁!" 크게 호흡을 고르던 에리필의 몸이 안개가 흩어지듯 흔들렸고, 어느 순간 그의 몸은 쿠요 르켄의 면전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옥의 푸른 겁화를 연상시키는 푸르른 기운이 담긴 검을 쿠요르켄의 안면에 터트린다. 쾅! "끼야오!" 쿠요르켄의 최후를 알리는 비명은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높고도 컸다. 그리고 그 비명이 서 서히 잦아들 무렵, 에리필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땅에 착지하며 쿠요르켄를 바라보았다. 쿠요르켄은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붉은 눈을 천천히 움직이고 있 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이한 동공이 그 움직임을 멈추며 육중한 몸체가 땅과 충돌을 일 으킨 다. 쿠쿵! 거센 땅의 울림은 인위적인 적막을 만들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이슨과 세르디스가 에리필에게로 다가왔다. "절묘한 타이밍!" 카이슨의 너스레에 에리필은 미소 지었다. "괜찮은가? 아까 보니 꽤 고전 하는 거 같던데." "하하, 무슨 소릴!" 에리필은 카이슨의 말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검을 내저어 보랏빛 피를 땅으로 털어냈다. 그 리고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전장을 주시했다. 그러다 에리필은 마지막 남은 요네사네가 발광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가 요네사네를 발견했을 때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한 사내의 생명이 사그라들고 있는 순간이었다. 순간 인정 없는 분노의 감정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 웠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지금껏 감추어 두었던 비전의 기법을 요네사네에게 사용하게 만든 다. "드래곤 스크류!" ~~~~~~~~~~~~~~~~~~~~~~~~~~~~~~~~~~~~~~~~~~~~~ 한동안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여긴 피시방입니다. 또 다시 인터넷이 안되는 궁극이....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0 회] 48화.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 9. 검집에 도로 검을 집어넣었던 에리필이 천천히 검을 뽑아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은 날카로운 검의 날이 아니었다. 그것은 푸르른 용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투명하게 빛을 발하는 푸르름 안에 얼핏 한광을 뿜고 있는 검이 보였다. 검집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검은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에리필이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순간 검보다 그리 크지 않았던 푸른 용이 몇십 배나 커지며 그 위용을 세상에 공개 한다. 푸른 용이 서서히 커질수록 광휘로운 광채 역시 더울 강렬하게 세상에 뿌린다. 그리고 30 라키르(미터)까지 커진 푸른 용이 자신의 힘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에리필이 손에서 검을 쏘아 보냈다. 푸른 용의 중심에는 검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검이 가히 회오리와도 같은 엄청난 회전력을 푸른 용에게 전달했다. 격렬한 스파크가 몰아치고 회전은 더욱 빨라진다. 잠시 후, 푸른 용의 중심에 있던 검이 사라졌 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들린다. 한번의 심장울림에 반응하여 대기에서는 강렬한 스파크가 터지고, 푸른 용의 주변에는 검의 주변에 있던 회오리가 옮겨져 대기를 미친 듯이 들끓게 만든다. 요네사네는 갑자기 나타난 푸른 용이 신경에 거슬려 그것을 찌그러뜨리려 여섯 팔을 푸른 용의 몸에 박아 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그의 오판이었다. 움켜쥐려던 요네사네의 손은 푸른 용을 건드리자마자 그 엄청난 위엄과 강렬한 기운에 튕겨버렸고, 이내 녹아버렸다. 그렇게 요네사네의 여섯 팔은 이 세상에서 소멸했다. 그리고 공포로 일그러져 있는 요네사네의 본체는 푸른 용의 주변에 있던 회오리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고, 푸른 용의 본체와 부딪힌 그의 몸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이에 요네사네는 경악의 비명을 질렀지만, 패배자의 울부짖음에 손을 들어줄 만큼 이 세상의 신은 너그럽지 않았다. "쿠르륵!" 요네사네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토해낸 소리였다. 푸른 용은 요네사네를 이 세상에서 소멸시킨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듯, 한참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엄연히 정해져 있었기에 아쉽지만 그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세상의 근원이자 모든 것인 대우주라는 곳으로. 잠시 후, 그는 아쉬움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찬란하면서도 화려한 푸른빛을 허공에 터트렸다. 순간 하늘은 본래 보다도 더 푸른빛에 평온한 미소를 지었고, 그 빛이 사라지자, 푸른 용은 본래의 예검으로 돌아와 있었다. 검은 주인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원위로 떨어졌는데, 이는 에리필의 새하얗게 변한 안색을 통해 그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생명이란 존귀한 것일 진데,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덧없이 죽는 것은 그 존귀함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일까?' 에리필의 핏기 없는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해 몸에 무리가 가서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야!' 잠시간 감상적으로 변했던 에리필이 고개를 털며, 모두가 그러했듯이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앉는 순간 더욱 찡그러졌다. 이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전투의 현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에리필 옆에서 멍하니 서 있던 카이슨이 그 참혹함에 치를 떨며 뭐라 중얼거리다 그것도 지치는지 주저앉듯이 에리필 옆에 앉았다. "지옥이 따로 없군!" 보랏빛 피와 큼지막한 살점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고, 매캐한 냄새들이 진동했다. 그리고 끈적끈적한 진액들이 도처에 묻어나 있어 절로 토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게 만들었는데, 이 현장이 전투의 무상함과 잔혹함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보랏빛 피 위에 붉은 선혈이 숨어들었고, 큼지막한 살점 속에 연약한 살점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살아 숨쉬는 고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살아 있는 자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자네들은 우리의 가족들을 지켰다네.' 속에서 올라오는 언어의 조각들은 다를지언정 그것들이 뜻하는 바다는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조각들은 하나씩 이어져 이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전투가 벌어졌던 페르디난 평원의 뒤집혀지지 않은 땅을 찾기 어려웠고, 풀들은 여기저기 밟혀 그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과도한 마찰과 에너지 방출은 마른 풀들을 장작대신 사용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화려한 불꽃들을 여기저기에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불길마저도 잠재울 만한 열기가 살아있는 시체들에게서 피어올랐다. 세르디스가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우리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이 시작이었을까? 모두의 입에서 힘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의지를 느꼈음인가 세르디스의 입가에 조각 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가 또 다시 외쳤다.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음성은 절규와도 같았으며, 그 말을 따라 외치는 그들의 음성에도 그러한 감정의 조각이 묻어 있었다.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시간이라는 망각의 존재가 이 전투를 잊을지언정, 그들의 가슴속에는 영원히 살아 숨 쉴 전투가……. 뭔가 허무한 듯하면서도, 후련한 그러나 뭔가를 그리워하며 갈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있던 사람들을 세르디스가 현실세계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서문 처소로 이끌었다. 이곳에서 말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거니와 그들의 전우들을 차디찬 평원에 눕혀놓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전우들의 시신을 앉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세르디스는 서문에 도착하자마자 포고문을 붙이고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들에게 선포했다. '폴큐레이티 시를 위협하던 몬스터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는 전투 뒤처리를 경비병들에게 시켰다. "페르디난 평원에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를 태워버리십시오. 군무청에 가면 화약을 줄 테니 그것을 받아서 처리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르디스는 수많은 말보다도 뜨거운 마음으로 죽은 이들을 애도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감사를 표했다. 그것은 그의 진심이기도 했으니, 살아남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세르디스의 눈빛은 더없이 따뜻했다. 잠시 후, 세르디스가 포상은 다음 날 쯤에 전달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폴큐레이티 시 당국에서 전하는 고마움의 표시라 했다. 그러나 헌트는 시의 고마움을 받기 싫었나 보다. "나는 그런 형식엔 관심 없다. 대신 약속한 것들이나 잘 챙겨라." 그의 말에 프레데릭 또한 동조하며 나섰다. "나 역시 관례적인 절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네. 더군다나 나는 이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뿌듯하니 포상도 필요 없네." 프레데릭은 헌트와는 다른 이유로 세르디스의 말을 거절했다. 그는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밝혀져 간만에 가지는 자유가 부담스런 관심으로 인해 거짓자유로 돌아갈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세르디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떠한 지 궁금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다른 사람들은 죽은 전우들을 생각해서인지 크게 나서진 않았으나, 싫다는 뜻 또한 표하지 않았다. 이에 세르디스는 속으로 안도했으나, 겉으로는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단지 안타깝다는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행사 때 참여하지 않아도 좋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이렇게 길고도 험난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드뎌 폴큐레이티 시의 전투가 끝이났습니다. 푸하하하 이제 기다렸던 진이 나올 이야기네요...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1 회] 49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1. 치열하고 처절했던 전투도 어제가 되어버린 날, 폴큐레이티 시 전역은 온통 축제 분위기로 달구어져 있었다. 그리고 암울하고, 삭막했던 시의 분위기도 점차 활기차게 변하고 있어 이제야 무역 도시 폴큐레이티 시로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다행히도 폴큐레이티 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한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시내에 있는 광장에 어제의 영웅들을 칭송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헌트와 프레데릭 그리고 어제의 전투에서 숭고하게 전사한 이들을 제외한 모든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행사 처음은 폴큐레이티 시를 운영하는 시장의 길고도 지루한 연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서로 숭고하게 전사한 이들의 추모식이 이어졌다. 슬픔과 엄숙함이 순간 광장을 뒤덮었다. 특히 유가족들의 슬픈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유가족들 모두에게 상당한 포상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함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엄숙한 추모식이 끝난 뒤, 폴큐레이티 시의 영웅들의 소개가 있었다. 그러나 헌트는 그의 지난 행적을 고려해 그의 이름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것은 에리필이 특별히 부탁한 것이기도 했다. 그 뒤, 행사의 마지막은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흥겨운 축제로 이어졌다. "언제 집에 갈 거지?"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일행에게 묻는 헌트였다. "글쎄, 일단 자네 무구부터 받고 가야 될 거 같은데. 세르디스 말로는 최소 삼일은 걸린다고 하더군." "삼일?" 에리필은 헌트의 툭 쏘는 말에 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헌트의 퉁퉁 부은 볼을 풀어주기 위해 어지간히 노력해야만했다. "삼일도 세르디스가 엄청 신경 쓴 거라네. 수도에서 이곳까지 마법진을 연달아 사용하여 가져오는 최소한의 시간이 삼일이라고 하더군. 그러니 그 정도는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그러나 에리필의 설득에도 헌트는 막무가내였다. "내 무구는 세르디스 보고 가져오라고 하면 되잖아?" "그는 바쁘다네." 이번에는 카이슨이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헌트답지 않은 장황한 말에 그들의 생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헌트다. 그리고 이 사실은 어제 같이 싸웠던 사람들 중에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일 거다. 어쩌면 지금쯤에는 이 시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소문이란 귀찮을 정도로 빠르고, 무서우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흉악한 살인마였다는데 있다. 만에 하나 내가 여기 오래 있음으로 인해 예전의 은원이나 괜한 공명심으로 인해 허접한 날파리들이 나에게 달라붙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는 물론이요, 우리 일행이 귀찮은 것들에게 심히 짜증날 정도로 시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헌트야 그런 날파리 같은 존재들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단지 그에게는 조악한 이유라도 필요했을 뿐이다. 그에겐 지금 진을 만나, 단련시킬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에리필이 그를 알고 지낸지가 몇 년인데, 헌트의 속마음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그는 숨어 있는 그 이면을 보았으면서도 못 본 척 하며 따라야 했다. 이는 그간 헌트와 지내며 터득한 처세술이었고, 한편으론 그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진이 슬슬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알겠네. 그럼 그건 내가 세르디스에게 말해 두겠네." 에리필은 세르디스에게 헌트가 말한 변명을 들어 자신들이 떠나야 함을 이야기 했고, 그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인지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헌트님의 무구는 제가 갖다 드리겠습니다." 세르디스는 다시 한번 그 진이라는 소년도 볼 겸,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들을 찾아뵐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황급히 말했다. 에리필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며 작별을 고했다. "후후, 그래. 그럼 조만간 또 보겠군. 그럼 다음에 보세." "잘 가십시오. 제가 밖에까지 배웅해 드려야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이해한다는 듯 에리필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세르디스는 그의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얼마 후, 에리필과 두 사람은 폴큐레이티 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뜨거운 땀방울이 매끄러운 몸매를 따라 흘러내린다. 대략 170 키르(센티미터)가 조금 못되는 키를 가진 사내는 역동하는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내의 근육은 더욱 단단해지고, 휘두르는 검의 위력은 사방의 모든 생명체를 질식시켜 버릴 것처럼 자못 그 위세가 대단하였다. 기울어져 있던 태양이 어느덧 사내의 머리 위에 자리 잡자, 사내는 광휘로운 검의 춤사위를 마치고 참으로 자연스런 동작으로 자신의 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스르릉! 맑고도 청명한 음향이 공터에 울리며 사내의 수련이 끝났음을 알렸다. "아, 심심해. 혼자 하는 수련은 역시 재미없어." 사내의 음성은 의외로 낭랑했다. 그리고 그 음성은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진이었던 것이다. 진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습관적으로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중 얼거렸다. "심심해심심해. 에잇. 아저씨들과 사부님은 도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 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리다 갑자기 한 소년을 떠올리며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 "아, 맞다. 퓨레틴의 얼굴이나 볼까나!" 진은 공터에 던져 놓은 검정색 티를 주워 입은 뒤 마을로 향했다. "룰루랄라룰루랄라." 진은 흥겨운 흥얼거림으로 통통 튕기듯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마을까지의 거리가 꽤 되었지 만, 진은 전혀 걱정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귄 퓨레틴이란 또래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그는 매우 흥분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걷기를 얼마 후, 진은 금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드뎌....쿨럭 진이 나오네요. 하하하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2 회] 50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2. 진은 마을에 들어오자 마치 고향에 들어온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고, 친구를 찾으려 옮기는 걸음 또한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며 정겨운 거리를 거닐고 있을 때, 친근하지만 짓궂은 음성이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시간이 많은가 보구나, 진아." 베이커는 능글맞은 웃음을 입가에 걸며 진에게 농을 걸었다. 그러나 진은 그의 농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뒤돌아보는 즉시 할말만 내뱉었다. "아저씨 아들은 어디 갔어요?" 베이커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진에게 더 이상의 농은 죄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는 입으로는 계속해서 툴툴거렸지만, 아들의 행방은 정확히 가르쳐 주었다. "퓨레틴은 지금 아사야 선생님 댁에 공부하러 갔지." "아사야 선생님 댁요?" 진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이에 베이커는 예의 두둑하게 부어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진은 아사야 선생님을 모르는 가 보구나?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사야 선생님은 말이지. 우리 같이 작은 마을에 까막눈이 없도록 해 주신 분이란다." 진은 그의 말을 들으며 아사야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 내렸다. "고마우신 분이시군요." "그렇지." 베이커는 자신의 말을 정확히 이해한 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진은 그의 미소를 뒤로하고 궁금증을 토로했다. "아저씨, 그런데 그 아사야 선생님 댁은 어디에 있죠?" "아, 그렇구나. 아사야 선생님 댁은 세모 지붕에 굴뚝이 있는 집이란다." 진은 베이커의 조악한 설명에도 갸웃하지 않고 고마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마을은 워낙 규모가 작아 거리가 하나뿐이었고, 그 거리 옆에 있는 집들이 마을에 존재하는 집 수와 같 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진은 베이커에게 꾸벅 인사하며 퓨레틴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퓨레틴 보고 일찍 들어오라고 전해주려무나." "알겠어요. 그래도 좀 늦을 지도 몰라요. 헤헤." 진이 헤프게 웃으며 말하자,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던 베이커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가라는 시늉을 해보았다. 이에 다시 한번 인사를 하며 몸을 돌리는 진이었다. 진은 거리를 거닐며 집들을 살폈다. "세모 지붕 굴뚝! 세모 지붕 굴뚝!" 흥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14세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길을 해맨지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진은 그가 찾는 세모 지붕에 굴뚝이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앗, 찾았다." 기뻐하며 문 앞으로 다가간 진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얼굴 때문에 집안의 상황부터 살폈다. 만약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수업시간이라면 얼마나 무안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했다. 이는 비록 악동으로 유명했던 개구쟁이 진이었지만, 리오스라는 혹독한 교육자에 의해 세뇌된 행동의 발로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 떠올랐던 얼굴이 리오스임에야 그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을 이용하여 집안의 소음을 도청했다. 잠시 뒤, 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나무문 특유의 마찰음이 울리며 그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눈에 잡았다. "하하, 안녕!"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무안함을 달랬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허무한 것일 뿐. 그들의 시선은 한결 같이 어리둥절함을 담고 있었다. 이에 진은 급히 그의 친구 퓨레틴을 찾았고, 이내 구원의 손길을 뻗어 줄 친구를 찾을 수 있었다. "퓨레틴 오랜만이야." 진은 그도 모르게 반가움에 큰 소리로 말했다. 이에 주위에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더욱 황당함으로 변해버렸다. "어, 어. 안녕!" 퓨레틴은 황당함을 애써 참으며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어색한 분위기를 일신시키기 위해 진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친구는 진이라고 해. 나이는 나와 같은 14세고, 저기 산 위에서 살고 있어." 퓨레틴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에게 다가가며 그를 소개했고, 그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경계의 시선을 친근한 시선으로 바꿀 것을 결심했다. "하하, 안녕. 나는 올슈레이 진이라고 해. 퓨레틴의 말처럼 산 위에서 사부님과 함께 살며 무술을 배우고 있어." 또 다시 헤프게 웃으며 말하는 진은 그의 의도와 전혀 다른 상황을 목격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무술이란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시선이 그의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쫓았으며, 곧바로 완전 경계령을 내린 시선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양측 모두 침묵을 고수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며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중년인이 들어왔다. "얘들아,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아사야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급히 밖으로 나가며 문을 꽉 닫았다. 그제야 아이들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도 갑작스레 한 아저씨가 와서 아사야 선생님을 데려간 것도 그렇고 지금의 선생님 모습도 그들에겐 매우 낯선 것이었던 것이 다. 아이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그럴 때 한 아이가 나섰다. 그 아이는 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많은 17살 먹은 소년이었다. "야, 우리 밖으로 나가자. 선생님도 그렇고 아까 그 아저씨도 그렇고 뭔가 일이 생겼음이 틀림 없어." 그가 가슴을 내밀며 확실하다는 투로 말하자 아이들은 소년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불안감보다 호기심이 강한 나이 때의 소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서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퓨레틴이었다. "안 돼! 아사야 선생님 말씀대로 밖으로 나가면 안 돼." "하하, 퓨레틴은 겁쟁이구나." 퓨레틴은 주근깨 소년의 놀림에 얼굴이 벌게지며 오기가 발동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난 겁쟁이 따위가 아니야." 그렇지만 노련한 놀림쟁이 주근깨 소년은 얄미울 정도로 끈덕지게 퓨레티을 놀렸다. "그 말이 그 말이지. 그냥 무서우면 무섭다고 해." "아니라니깐!" 두 사람이 옥신각신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하자 진이 나서서 말싸움을 중단시키려 했다. 그러나 진의 행동은 커다란 괴성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미 그 괴성이 진이 수행하려 한 것을 이루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소리지?" "이,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어." 주근깨 소년의 말에 그 옆에 서 있던 소년이 덜덜 떨며 대답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호기심을 뒤덮어 버리는 공포에 몸을 떨며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들의 머리엔 공통적으로 하나의 존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몬스터!' ~~~~~~~~~~~~~~~~~~~~~~~~~~~~~~~~~~~~~~~~~~~~~~~~~~~~~ 수업이 드뎌 끝났습니다. 휴우... 으음... 제 소설을 읽으시는 독자님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저는 돌킨식의 판타지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판타지를 쓰게 된 이유가 저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고, 또 그러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제 소설은 기존에 나왔던 몬스터들과는 다른 이름이며 외형도 조금씩 은 다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드래곤을 좋아하지 않기에, 제 소설에서는 드래곤은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동방의 용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무공에 관한 것도 기존에 있던 것과는 다른 것도 몇 개 있을 겁니다. 어쨌든 여러 모로 부족한 글입니다. 결론은 이거네요. 하하하... 이상한 산출법이긴 하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 소설을 읽으시면서 '어라? 왜 내가 아는 존재들이 안 나오지?' 하는 생각들 보다는 '오~~~ 요번에 이런 녀석이 나오네.' 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3 회] 51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3. 그러나 방 안에 있는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투기를 일으키는 아이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투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앗, 진아. 어디가?" "저런, 바보 같은 녀석이." 진이 열고 나간 문 너머로 몬스터의 모습이 언뜻 보이자 아이들은 기겁하며 문을 세차게 닫았다. 밖으로 나온 진은 생전 두 번째 보는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예전에 기억하고 있던 여섯 살 때의 몬스터가 처음이었고, 지금이 두 번째였던 것이다. 제국의 영토는 워낙 광대하기에 인간들이 아닌 몬스터들이 모여 사는 지역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 지역이란 것은 극히 일부이고 좁은 지역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인간들이 살고 있는 영토에서 몬스터들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마을에 몬스터들 여럿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비록 하급 몬스터라지만 그들만으로도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 기에는 충분했다. 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눌렀다. 사람보다 훨씬 큰 키인 3 라키르(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는 흉몰스런 외모와 검은 털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몬스터가 하급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바이라인지는 이때의 진은 알지 못했다. 작은 산골 마을에 침입한 바이라의 수는 정확히 5마리였다. 그들은 흉악한 본성 그대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자비한 살수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있는 어른들이란 어른들은 처와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죽자 살자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날카로운 검이 아니라, 곡괭이나 식칼, 도끼 등 보기에도 무기력해 보이는 무기들뿐이었 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공포의 대명사인 몬스터들도 그들의 굳은 결의를 꺾어 버리기엔 모자람이 있었던 것이다. '가족은 내가 지킨다.' 바이라의 무식하게 두꺼운 팔이 허공을 갈랐고, 그것은 괴수의 공격을 막으려는 곡괭이를 뚫 고, 무기를 들고 있던 사람까지 무기력하게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파유란은 가슴을 뚫을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입 밖으로 뜨거운 피를 토했다. 아마도 내장이 상했음이리라. 공중으로 떠오른 파유란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다시 한번 신음을 토했지만,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 컥, 네, 네깟 놈들에게 나의 처와 자식들을 빼앗기지 않겠다. 에이, 퉷!" 파유란은 입안에 고여 있는 피를 뱉어내며, 비틀거리면서도 바이라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파유란이 바이라에게 달려가는 중 그는 그의 친구인 치레카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공중으로 튕겨지는 것을 목도했다. 그리고 파유란은 치레카의 비명을 뒤로하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며 앞으로 전진 했다. 그러나 그의 무기인 곡괭이는 쓸모없이 바닥에 팽개쳐져 있었고, 그에게 남은 힘이라곤 뿌리도 제대로 박히지 않은 잡초 정도나 뽑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욕만 앞서는 그의 몸짓은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모습처럼 안타까웠다. 파유란은 힘이 빠진 느릿한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은 바이라의 허벅지를 노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파유란의 주먹이 바이라의 허벅지에 도달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파유란을 발견한 바이라의 굳건한 다리가 그를 노리고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겨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눈을 감고 있었기에 바이라의 다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주먹을 뻗을 수 있었다. "안 돼!" 뒤로 튕겨졌던 치레카가 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치레카에겐 파유란을 구할 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파유란의 숭고한 죽음을 끝까지 지켜봐주는 것이 다였다. 그때였다. 치레카 앞을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그것은 순식간에 파유란의 앞까지 달려가 바이라의 굵은 다리를 손쉽게 잘라버렸다. "크악!" 바이라는 괴성을 지르며 그를 절름발이로 만든 인물을 노려보았다. 파유란은 갑작스런 비명에 눈을 뜨려 했지만, 그의 눈꺼풀은 너무도 무거웠다. 언뜻 보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자의 순고한 모습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죽기보다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터진 비명은 호기심과 두려움을 주었고, 그는 안간힘을 다해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서 있는 사내의 든든한 등을. ~~~~~~~~~~~~~~~~~~~~~~~~~~~~~~~~~~~~~~~~~~~~~~~~~~ 어제 너무 무리한 운동을 해서, 온 몸이 아파네요. 쿨럭!!! 지금 수업 들어가야 해서, 요번 화는 좀 짧습니다. 수업 마치고, 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4 회] 52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4.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파유란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무너지는 몸을 겨우겨우 붙들며 허리를 꺾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구한 사람이 14세 소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단지 자신을 구해준 무인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이 의아할 뿐이었다. 진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난생 처음 검으로 살아 있는 것을 베어 버린 순간. 그것이 비록 사악한 몬스터라 하지만 진의 사고는 보랏빛 선혈이 공중에 분산되며 섬뜩한 파육음과 손맛이 주는 한 가지 사실로 인해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그런 진의 상태를 짐작하지 못한 파유란이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저의 목숨을… 피하십시오!" 파유란은 말을 하다 상처 입은 바이라의 흉포한 공격을 보며 외쳤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진은 회피하려 했지만 이미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진은 팔을 십자형태로 만들어 충격을 최소화하려 했다. 퍼억! 진은 바이라의 팔에 얻어맞자 방어한 팔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충격에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쿵! 몸을 동그랗게 말아 땅으로 떨어진 진의 입가에는 떨어질 때의 충격과 가드를 뚫고 그의 내장을 뒤흔든 바이라의 공격 때문에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생겼다. "컥, 젠장. 안 봐도 될 피만 봤잖아." 진은 입가를 쓱 닦자 묻어나는 피를 보며, 검으로 상대를 위해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몸의 통증도 잊은 채, 바이라를 향하여 돌격했다. 이런 진의 모습이야 말로 그간 헌트에게 구타당하며 머리에 각인된 '받으면 말로 갚는다.'는 경구가 실천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얍, 죽어!" 진은 바이라의 주먹을 슬쩍 피하며 검을 휘둘러 허리를 양단해 버렸다. 이미 한 발이 없는 상태였기에 움직임이 어색하고, 느렸던 것이다. 진은 허리가 양단되어 보랏빛 피분수를 뿜고 있는 하반신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처음 검을 배울 때부터, 이런 일은 예견되어 있었기에 진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다른 바이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유란은 생명의 은인인 진에게 감사의 말을 하려다 얼굴이 매우 동안인 것을 알았다. "음, 나이에 비해 얼굴이 매우 동안인 분이시군." 파유란은 설마 진의 나이가 14살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파유란이 진의 뒤를 존경의 시선으로 뒤쫓고 있을 때, 치레카가 등 뒤로 다가오며 파유란의 정신을 패닉으로 만들 소리를 태연히 했다. "아, 저 아이는 에리필 씨의 제자잖아. 도저히 우리 꼬마들 또래라곤 생각할 수 없는 실력이야." 파유란은 치레카의 말을 듣는 순간, 이제껏 보내던 존경의 시선은 짙은 암회색이 담긴 멍한 시선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유란의 시선은 여전히 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진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시선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진은 검과 몸에 걸린 중력의 술을 해제한 뒤였기에 그의 몸놀림은 그야 말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는 진의 빠른 몸놀림은 몬스터들의 묵직한 공격을 쉽게 피하게 만들었고, 단련된 눈빛은 그들의 허점을 잡아채었다. 그리고 화려하고 재빠른 검솜씨는 허점을 놓치지 않고 바이라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바이라가 아무리 하급 몬스터라 하지만 네 마리라는 숫자는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진의 몸을 짓눌렀고, 그것은 그의 몸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내게 만들었다. 휘이익! 화려한 검이 유려한 곡선을 타고 바이라의 몸을 스치자 바이라 한 마리가 쓰러졌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난 다른 바이라가 진의 뒤를 노리고 돌진했고, 진은 몸을 슬쩍 피하면서 검을 돌림과 동시에 바이라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몸을 돌릴 때, 바이라의 주먹이 그의 옆구리를 스친지라, 완전치 못한 검을 휘둘렀다. 그 결과 그의 검이 바이라의 허리에 끼여 버리게 되었다. "크오오!" 바이라는 3분의 1가량 벌어진 허리의 통증과 분노에 괴성을 지르며 진의 머리를 터트리기 위해 주먹을 아래로 찍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검을 포기하고 뒤로 몸을 빼내는 진이었다. 쾅! 땅이 파이며 비산하는 돌가루들 사이로 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고, 이내 바이라의 옆에 나타난 진은 회전력을 최대치로 높인 발기술을 사용했다. 퍽! "쿠오오!" 진의 발은 벌어진 바이라의 허리에 꽂혔고, 그 힘의 여파로 검을 밀어내며 바이라의 몸을 양단시켜버렸다. "헉헉헉!"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진은 보랏빛 피에 절은 검을 주어 바닥에다 털었다. 그렇게 검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털어내던 진이 그의 등 뒤로 다가오는 바이라의 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바이라는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한 투기로 온 몸을 휘감고 있는 다크 블루빛 소년이 마치 잔혹한 악마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처음에 흉포하게 날뛰던 그도 지금에는 몸을 잔뜩 움츠렸고, 진의 눈치만 살피며 뒤로 물러서기에 바빴다. 그 모습에 진은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도륙했던 바이라와 자신이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쓸데없는 자책과 동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압, 너의 죽음으로 죄 값을 치러라!" 진은 거친 외침을 토하며 쾌검의 묘를 이용하여 검을 휘둘렀다. 번쩍! 하얀 검광의 잔상이 남고, 비스듬하게 양단되는 바이라의 몸체는 거친 마찰음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쿵! "후우, 끝났다." 진은 한숨을 돌리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콰쾅! ~~~~~~~~~~~~~~~~~~~~~~~~~~~~~~~~~~~~~~~~~~~~~~~~~~~~ 도서관 전산실이 끝나기 10여분 전... 겨우 끝냈습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즐감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5 회] 53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5. 귀청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순간 진은 알 수 없는 공포심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겁을 집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지 진이 힘겹게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덜덜덜덜! 진의 턱이 빠르게 떨렸다. 그리고 그의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어, 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황당한 것이 진 자신도 자신이 왜 공포에 떠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진은 멀찍이서 달려오는 몬스터를 보며 잊었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고 있는 마법사 한 명이 마법을 열심히 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가진 실력은 그리 높지 않은지 몬스터들의 발길을 잠시 멈칫거리게 하는 것이 다였다. 진은 몬스터와의 거리가 자꾸만 가까워지자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버렸고, 언제부터인지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렇게 진은 공포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편 진이 바이라들을 물리친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저 몬스터들을 진이 물리쳐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도 분명 진은 겁에 질려있는 모습이었다. 순간 그들의 가슴에 걱정과 불안감이 엄습해 그들도 모르게 몸을 잘게 떨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 중 한명이 진을 향해 외쳤다. "우리 마을을 구해주십시오." 그는 진의 나이가 매우 어리며, 에리필의 제자라는 것 또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존대어를 썼다. 그러나 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다급해진 그는 진의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몬스터들과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그의 속마음은 자꾸만 타들어가고 있었다. "당신만이 우리 마을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마을의 모든 아녀자들과 사랑스런 아이들이 모두 몰살당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그의 간절한 마음이 진의 가슴에 전해졌음인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던 진의 눈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저앉았던 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의 귀를 때리는 몬스터의 괴성은 자꾸만 그를 악몽이었던 여섯 살의 그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진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자기 자신의 나약함에 치를 떨며 스스로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기비하만 한다는 것은 사치라 생각했다. 몬스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를 좁혀오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은 의식적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당당한 제스처를 취하며 몸을 돌렸고, 그 순간 그의 몸은 몬스터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미약하게 부들거리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모두 세 마리였다. 그러나 그들의 키는 예전에 진이 보았던 몬스터보다도 훨씬 커 4.5 라키르(미터)에 육박했고, 날카롭던 손톱은 더욱 예리하게 갈려져 있어 섬뜩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진은 몰랐지만, 이들은 하급 몬스터 중 최강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베거슨트였다. 그런데 예전에 진이 만났던 3 라키르(미터)짜리는 아직 덜 자란 베거슨트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사 베거슨트였다. 그러나 어렸을 적, 공포에 떨던 진에게는 이 몬스터가 그 몬스터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고, 단지 시커먼 존재의 붉은 입속과 날카롭게 빛나는 하얀 이빨과 손톱만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렇지만 진은 또한 마음속에서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몬스터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몬스터라는 사실을. 그 당시 진은 너무도 어렸고, 경황이 없었기에 공포에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그 당시 진의 정신이 엄청난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은 어린 마음 깊은 곳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를 보자, 봉인해두었던 마음의 상처가 벌어지며 그의 정신을 잡아먹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진은 에리필과 헌트 그리고 카이슨 밑에서 육체만 수련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학의 무리를 접하며 알게 모르게 그의 정신을 단단히 만들며, 좀 더 높은 정신영역으로 올라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몬스터를 향해 다가설 수 있었다. 진은 한 발, 한 발 다가설 때 마다 몸속에 은밀히 심어져 있는 무의식적인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고,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잘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다. 또 다시 공포라는 마수에게 몸을 맡긴 진은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는 눈동자를 의식적으로 떠올렸다. 그러자 자신 하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는 책임감에 절로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짐은 오히려 진에게 절대적인 사명감이 되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두려움의 포승줄을 풀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런 그를 힐끗 바라 본 아사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여긴 위험하니 얼른 집 안으로 숨게나." 아사야의 진심 어린 염려는 진에게 사명감과는 또 다른 힘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용기백배해 베거슨트들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걱정하지마세요. 다칠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진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베거슨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아무리 사명감에 투철하더라도 여전히 후들거리고 있었고, 사지를 속박할 만큼 강렬한 불안감이 온 몸을 엄습했다. 하지만 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진은 묵은 끈을 끊어버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투지를 더욱 불태워 공포와 불안, 두려움의 속박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베거슨트들은 진의 앞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들은 몬스터 전사라는 칭호답게 날랜 몸놀림을 보이며 진을 공격했다. "허억!" ~~~~~~~~~~~~~~~~~~~~~~~~~~~~~~~~~~~~~~~~~~~~~~~~~~~~~~~ 요즘 제 몸이 제 몸이 아닙니다. 어제 동아리 소모임에서 운동을 하고, 오늘 새벽 6시 10쯤에 기상해서, 축구를 했습니다. 기숙사 3층과 4층끼리 붙는 거라서 열외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틀간 무리한 운동의 피로와 잠을 잘못자서 삐긋한 목때문에 무쟈게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비까지 와서 힘든 축구였죠. 다행히도 스코어는 2:2 만약 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다 축구 끝내고 바로 9시 수업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수업듣고 왔습니다. 흑흑흑... p.s 아마도 기숙사를 나갈 때, 제 체중이 상당히 줄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 궁극이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6 회] 54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6. 진은 그들의 빠른 몸놀림에 경악하며 몸을 뒹굴어 날카로운 손톱을 피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베거슨트 한 마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진의 머리를 콕 찍어 버리려고, 호선을 그으며 손톱을 내리 그었다. 푹! 진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자, 베거슨트의 검은 손톱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눈을 따갑게 했다. 이에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옆으로 몸을 굴려 땅을 박차고 일어난 진이 자세를 채 잡기도 전에, 다른 베거슨트 한 마리가 그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젠장!" 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베거슨트의 손톱을 검으로 흘려냈다. 까가가강! 검과 손톱의 마찰은 금속과 금속의 마찰처럼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톱과 맞부딪혀있는 검을 틀어 베거슨트의 팔을 튕겨버렸다. "후우!" 거친 호흡을 고르던 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베거슨트 중에서 왼편에 있는 베거슨트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켜 뒤를 노리는 베거슨트의 하체를 공격해 그의 돌격을 막았다. 그러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베거슨트와 충돌을 일으킬 때 마다 진은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기에 그는 되도록 정면충돌은 피하면서, 틈틈이 공격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들의 외피가 워낙에 두꺼워, 별 힘이 담겨 있지 않은 기습공격에는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진은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불안한 시간이 흘러가는 어느 순간, 진은 베거슨트들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반쯤 숙인 상태로 공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라는 의문이 떠오를 정도로 그들의 공격자세는 어딘가 어색했다. 그리고 그는 베거슨트들이 팔을 휘둘러 공격할 때, 비정상적으로 허리에 많은 틈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챘다. 번쩍! 혼신을 다한 일격! 그러나 한 줄기 섬광이 사라지며 드러나는 현상은 너무도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진은 베거슨트의 허리를 베는 순간 그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검이 베거슨트의 두툼한 허리 틈새에 끼여 버렸다. 순간 당황한 진은 어쩔 줄 몰라 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베거슨트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진의 머리를 터트리려 했다. 그러나 반사 신경이 뛰어난 진은 위험 인자를 느끼자마자 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베거슨트의 공격이 워낙 시기적절하다보니 그의 공격을 완전히 피해내지 못하고, 등 근육이 그의 손톱 에 긁혔다. "크흑!" 진은 섬뜩한 충격에 정신이 없었다. 등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은 가히 상상을 불허했다. 그러나 헌트와의 실전대련을 통해 상당한 맷집과 인내심을 가지게 된 진은 흩으려지려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입술이 터지는 것도 모르고 이빨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등허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단순히 참는다고 하여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었고, 치료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내리고 있었다. 진은 아찔한 등의 통증을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검을 빼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잠시 후, 그가 기(氣)를 집중하여 검을 회전시키자, 베거슨트의 허리가 베어지며 그의 검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는 베거슨트의 다음 공격에 대비하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진은 자신이 다급히 몸을 날려 거리를 두려는 행동에 순간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허리의 상처도, 공격에도 신경 쓰지 않는 베거슨트가 피 묻은 손톱만 맛있게 핥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순간 자신이 바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멍하게 서 있는 진의 귓가로 켈켈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그는 등에 난 상처도 잊을 만큼 분노했으며, 강한 오기가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기가 강해질수록 그의 이성은 더없이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 다. '젠장, 얄미운 녀석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녀석들은 생각보다 강해. 음, 저 녀석들을 처치하려면 일격, 일격이 강렬한 것이어야 해.' 진은 이 순간을 타개할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서도 등 뒤의 상처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지 슬쩍 손을 대 보았다. 따끔! 몸이 절로 움찔거렸지만, 거기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득 헌트의 말이 떠올랐다. "크크, 싸움을 하면서 상처를 얻는 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지. 나의 피와 상대의 피가 섞인다고 생각해 봐라. 그리고 그 흘리는 피들 위에 서게 되는 인물이 나라고 생각해 봐라. 즐겁지 않니?" 헌트를 떠올리던 진은 '아저씨는 분명 변태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저씨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순간 웃음부터 새어 나왔다. '크크 잘 차려진 밥상이 구나 할 거야.' 진은 습관처럼 짓는 미소를 입가에 만들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이미 불안도, 걱정도, 등의 상처도 그리고 예전의 묵은 끈도 관심 밖의 일이 되어 버렸다. 대신 그의 머리는 헌트처럼 순수하게 전투를 할 수 있다는데서 오는, 쾌락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하, 자! 두 번째 라운드다." ~~~~~~~~~~~~~~~~~~~~~~~~~~~~~~~~~~~~~~~~~~~~~~~~~~~~ 크흑...건강이 최곱니다. 여러분! 무리한 운동 하지 마세요. 흑흑흑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7 회] 55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7. 낭랑한 웃음을 터트리던 진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었던 베거슨트에게 달려들었다. 켈켈 웃던 베거슨트가 웃음을 뚝 그치며 흉맹한 안광을 빛냈다. 쉬리릭! 재빠른 몸놀림을 보이는 진을 잡기 위해 베거슨트의 손톱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나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진은 그의 공격을 모두 피했고, 그의 손톱은 애꿎은 대기만 갈라댔다. 베거슨트 한 마리와 엉켜있던 진의 주위로 베거슨트 두 마리가 쾌속하게 접근했다. 그들이 전 투에 가담하자, 진 또한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없어서, 정면충돌도 일어났다. 콰쾅! 작지 않은 충돌음이 터지고, 뒤로 날아가는 진. 그 뒤를 쫒는 베거슨트 두 마리가 그의 얼굴과 하체를 노렸다. 특히 하체를 노리며 달려드는 베거슨트는 배가 바닥에 데일만큼 낮은 자세였는데, 창공의 매가 땅으로 내려온 듯했다. 순간 진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는 베거슨트들의 합격에서 미세한 시간차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진의 몸이 날았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얼굴을 노리던 베거슨트의 손톱이 그의 얼굴을 꿰뚫을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고개를 틀며, 몸을 빙그르 회전시키는 진이 검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허공을 할퀸 베거슨트의 팔을 발로 차며 그 반동력을 이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쇄도했다. 팽! 진의 검은 저공비행으로 돌진하는 베거슨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베거슨트가 한 손으로 검을 쳐냈다. 그러나 검에 실린 기운이 만만치 않아, 순간적으로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 순간 베거슨트의 팔을 발로 차고, 가속도를 붙인 진의 몸이 낮게 나는 베거슨트에게 육박했다. "크르릉!" 눈앞에 적이 나타나자 베거슨트는 본능적으로 울음을 토했다. 그러나 그의 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의 다리가 베거슨트의 머리통을 발로 내리찍었다. "쿠에엑!" 콰과과과! 날아오던 속도에 엄청난 힘이 방향을 인위적으로 바꾸자 베거슨트는 골이 띵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몸은 지면을 갈며 미끄러졌다. 진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땅을 박차고 뛰어 올라 허공에 떠 있는 그의 검을 잡았다. 욱씬! 무리한 동작을 연속으로 펼친 진은 등 근육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씨익 한번 웃으며 무식하게 돌진하는 적을 맞이했다. 진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섬광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쾌검을 구사하고 있었다. 번쩍!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얀 섬광은 베거슨트의 다리를 잘랐고, 진은 무너지는 그의 몸을 쫓아 검을 찔러 넣었다. "쾌애액!" 괴이한 비명이 터트리며 잠시 몸을 떨던 베거슨트 한 마리가 축 늘어졌다. 그에 분노하였음인가 진에게 한방 먹었던 두 마리의 베거슨트가 다리를 교차하며 진을 노렸다. 파파파팍! 그들의 다리가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광풍이 그의 몸을 후려쳤다. 그러나 진은 눈 하나 깜빡 하지 않고, 그들의 허점을 찾기 위해 눈을 빛냈다. "후읍!" 깊게 숨을 들이키던 진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였고, 느릿하나, 묵직한 검이 그들의 다리와 부딪혔다. 퍽! 끼리릭! 묵직한 십자 발차기에 진은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기합성을 토하며 버텨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힘에 의해 뒤에서 힘을 실어주던 베거슨트가 뒤로 튕겼다. 그 순간 그는 베거슨트와 맞붙어 있는 검을 대각선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그는 왼손으로 검을 밀어 올려 올라가는 속도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꺄아악!" 베거슨트는 몸의 삼분지 이가 비스듬하게 잘려 덜렁덜렁 거리게 되자 그 사이로 보랏빛 피와 내장으로 추정되는 기관들이 주르륵 쏟아지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잠시 후,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을 토하는 것을 끝으로 베거슨트 역시 죽음이란 사후 세계로 인도 되어졌다. 진은 자신의 힘으로 묵은 끈을 끊는다는 사실에 큼직한 흥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묘한 쾌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진이 아주 잠시 감상에 젖어있을 때, 뒤로 튕겼던 베거슨트가 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진의 검은 베거슨트의 몸에 끼여 있는 상태였고, 그것을 잡고 있는 진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 상태에서 베거슨트의 무식한 돌격을 허용한다면 진의 몸은 아마도 산산조각 나버릴 것이 분명했다. 5 라키르(미터)에 이르는 베거슨트의 육중한 몸이 진의 앞까지 도달했을 때까지도 진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때 어디에서 날아온 파이어 볼이 베거슨트의 몸을 움찔거리게 만들어 속도를 많이 늦추게 만들었다. 그제야 진은 베거슨트의 돌격을 눈치 챌 수 있었고, 전투 중에 한눈을 판 자신의 경솔함에 혀를 찼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흘러갔고, 결국 진은 그의 공격을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푸욱! "크아악!" 진의 오른쪽 다리를 관통한 베거슨트의 손톱은 붉은 핏방울을 머금고 있었다. 뚝! 뚝! 손톱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피는 진의 비명이 커질수록 그 양이 더욱 많아졌다. 이에 베 거슨트가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파이어 볼!" 쾅! 아사야가 날린 파이어 볼이 베거슨트의 얼굴에서 터졌다. 이에 화가 날대로 난, 베거슨트가 흉 포한 괴성을 지르며 진의 몸을 후려쳤다. "끼야오!" 퍽! 진의 몸은 끊어진 연처럼 공중에 붕 떠올랐고, 그의 오른 다리는 심하게 찢겨져 엄청난 피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몸이 힘없이 바닥과 충돌을 일으켰다. 쿵! 진은 낙법을 칠 정신도 없었을 뿐더러, 튕겨졌다 땅에 떨어진 시간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충격은 대단했다. "크윽, 갈빗대 몇 대가 나갔나봐! 으……." 진의 등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이번 충격으로 부서졌는지 갈빗대가 있는 부분에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이 흘러나와 그를 괴롭혔다. 게다가 찢겨진 오른 다리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기에 일어나기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크흑! 젠장, 너무 아파!" 진의 눈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가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거기에 바닥에 떨어질 때, 머리도 부딪혔는지 그의 얼굴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은 생전 처음 겪는 심각한 부상에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당황스러운 감정이 더했다. 그때, 진은 자신을 골로 보낼 목적으로 달려오는 베거슨트를 볼 수 있었다. "큭, 내가 달려갈 수고를 덜어 주는군. 헉헉헉!" ~~~~~~~~~~~~~~~~~~~~~~~~~~~~~~~~~~~~~~~~~~~~~~~~ 안녕하세요. 궁극이입니다. 새벽에 올리는 궁극이. 사실 토, 일은 올리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저의 학교 전산실은 토, 일은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죠. 전에도 말했지만, 저희 기숙사에 인터넷이 안됩니다. 크흑 그렇기에 토, 일은 못올리죠. 그러나 오늘 하나라도 올리기 위해, 새벽을 도모하여 피시방으로 왔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피시방에서 기숙사까지 1시간 이상을 걸어야 합니다. 크흑. 지금 가면, 아마 새벽 5시 30분 쯤에야 도착할 거 같습니다. 흑흑흑, 그럼 전 자러 갑니다. 하튼 토, 일에 올릴 수 없는 날이 더 많으니, 저 미워하지 마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8 회] 56화. 긴 하루, 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 8. 오기인가? 아님 농담인가? 그러나 오른 다리를 쫙 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 진심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일어선 진은 살기에 가까운 안광으로 달려오는 베거슨트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진은 앞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에 신경이 쓰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에게 꽂히는 걱정 어린 시선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그에겐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은 예전에 에리필이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의 기억이었다. "진아,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상당히 강해보이지?" "예, 정말 강해보이네요." 진의 말을 들은 에리필이 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보았던 몬스터들은 사실 그다지 강한 존재들은 아니란다. 이들은 바로 하급 몬스터들이기 때문이지." "하급 몬스터이기 때문이라뇨?" 진이 귀엽게 묻자 에리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후후, 중급 몬스터와 하급 몬스터를 나눈 이면에는 그들의 능력 차이도 있지만, 또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있단다." "그게 뭔데요?" 진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묻자, 에리필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아! 이걸 예로 들어 설명하면 되겠구나. 이 몬스터는 베거슨트라는 하급 몬스터란다. 사람들은 베거슨트를 일컬어 최강의 하급 몬스터라고 부른단다. 그만큼 이들은 강하단다. 하지만 베거슨트를 자세히 보면 말이지. 검은 털 사이에 숨어 있는 붉은 단추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것을 성인 남성의 힘 정도만 가격해도 베거슨트는 오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단다." "에이, 설마." 진의 회의에 찬 말에 에리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정리했다. "이러한 약점들이 하급 몬스터들의 약점이란다." 진은 그 당시 에리필이 말해 주었던 몬스터가 눈앞에 있는 몬스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자신은 베거슨트와의 묵은 끈을 끊어야 했다. 이러한 복잡적인 상황 덕분에 진은 엉망이 되어 버린 몸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단 한번의 검을 날리기에도 힘들 정도로 망가졌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이번 승부에 모든 것을 걸었다. 진은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오는 베거슨트를 미동도 하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베거슨트는 진이 드디어 삶의 미련을 버렸다고 지레짐작하고,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5 라키르(미터), 4 라키르(미터), 3 라키르(미터). 진은 바로 눈앞에까지 도달한 베거슨트가 뿜고 있는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 한 가운데를 살폈다. 그러나 그가 베거슨트의 약점을 찾고 있을 때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으며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 그리고 베거슨트의 공격범위내로 거리가 좁혀지자 그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허공에 번뜩임 한 줄기를 그렸다. 진은 슬쩍 고개를 돌려 그의 공격을 피한다고 했지만 얼굴에 작은 상처를 내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얼굴에 상처가 났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지 이 절박한 순간에도 눈에 불을 켜며 붉은 단추 같은 것을 찾기 바빴다. 베거슨트는 일격이 실패하자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도무지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붉은 단추가 검은 털 사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진의 눈이 번쩍였다. 그와 함께 그가 왼발로 땅을 박찼고, 거의 동시에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의 주먹은 정확히 붉은 단추에 꽂혔다. 퍼억! 쩌쩌쩡! 짧은 타격음과 함께 뭔가가 깨지지는 듯한 음향이 울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듣기에도 오한이 오싹할 괴성이 울렸다. "키오오!" 진은 바닥에 착지하다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고개를 들어 베거슨트의 얼굴을 살펴보는 진이었다. 까마득히 위에 있는 그의 얼굴에 있는 오공에서 보랏빛 피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섬뜩하여 진은 손바닥을 이용하여 몸을 끌어 뒤로 이동했다. 잠시 후, 거대한 거체가 긴 그림자를 만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간 온 마을은 정적에 휩싸였고, 잠시 뒤, 정적은 화려한 함성의 예고편으로 전락했다. "와아아아!" "베거슨트를 죽였다." "마을을 지켰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제각기 다른 형태로 감격에 몸을 떠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즐거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함성이 어찌나 큰지 집안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이들이 잠에서 깨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진은 그들의 함성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곧이어 진의 뒤와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진의 주변으로 다가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자신들의 가족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좋아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그 기쁜 환호성 아래에서 구슬피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몇 몇 인정 있는 사람들은 흥분된 마음을 금세 가라앉히고, 가장을 잃은 그들의 슬픔을 같이 나누었다. 진은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버티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턱! "이런, 이런. 길거리에서 자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을 했건만. 쯧쯧." 다행히도 진의 머리는 싸늘한 바닥과 부딪히지 않아도 되었다. 그의 머리는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사내의 팔에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크게 기울어져 있던 태양이 붉게 변했다. 그리고 붉은 빛이 진을 안고 있는 사내와 그 뒤의 두 사람을 비췄다. 그들은 다름 아닌 에리필과 헌트 그리고 카이슨이었다. 에리필들은 멀리서부터 들리는 굉음에 무언가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서둘러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을 무렵엔 베거슨트의 거대한 몸체가 바 닥으로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절한 진은 이들이 왔음을 알지 못했다. 에리필은 서둘러 진의 어긋난 갈빗대를 맞추었다. 그리고 아사야를 찾았다. 아사야는 사람들 틈새에 있었는데, 에리필이 부르자 서둘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아사야 오랜만이야." "어, 그렇군. 잘 지냈나?" 아사야는 겸연쩍은 미소를 흘리며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그건 그렇고. 내 제자 놈이나 치료해주게. 자네, 마법 실력은 몰라도 힐링 능력은 수준급이잖는가." 에리필의 말에 아사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마법 실력은 초급 마법사급밖에 되지 않지만 힐링 능력만큼은 상급 마법사급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신기해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그 연유를 물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남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겠는가! 그렇다 보니 아사야는 본인은 원치 않지만 힐링 마법사란 별명으로 마법사 세계를 떠돌아 다녀야 했다. 그런 과거가 떠오르자 아사야는 괜스레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챈 에리필이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예의 푸근한 미소를 보냈다. 그제야 아사야도 마음이 진정되는지 미소를 입가에 만들며 진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빛과 물의 신이시여! 어긋난 순리를 원래대로 돌려주십시오. 힐링!" 아사야는 등의 상처와 완전히 찢겨진 다리, 그리고 부러진 갈비뼈 위주로 힐링을 쏟아 부었다. 그의 손에서 하늘빛 물과,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즐거워하면서도, 혹은 슬퍼하면서도 이 신기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아사야들을 빙 둘러쌓다. 게다가 이들은 진이야말로 마을의 구원자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연적으로 그들의 관심은 진의 생사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퓨레틴이 보였고, 주근깨 소년도 보였다. 그 외 여러 아이들이 진과 아사야를 걱정스런 표정과 신기하다는 표정을 섞은 기묘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헌트는 잠시 걱정스런 표정을 짓다 이내 딱딱한 표정으로 돌아와 예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쳇, 그깟 전투로 기절하다니 아직 수련이 부족해. 진, 이 녀석에게는 좀 더 강도 높은 수련이 필요하겠어!" ~~~~~~~~~~~~~~~~~~~~~~~~~~~~~~~~~~~~` 컴터가 고장났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컴맹이라서. 글구 생돈 1000원을 더 썼습니다. 피시방 A드라이브가 안되서. 그래서 지금 다른 피시방 와서.. 올립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P.S 참고로 저랑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이 오늘입니다. 추카추카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59 회] 57화. 비교전 평온한 일상 1. "그깟 전투로 한달이나 수련을 중지하다니. 약골인 녀석 같으니." 헌트는 기(氣)수련에 빠져 있는 진을 흘낏 쳐다보며 투덜댔다. 이에 에리필은 한달전에 멧돼지처럼 날뛰던 헌트를 떠올렸다. "하하, 아무리 수련이 중요해도 몸이 먼저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사야의 힐링이 있었다고 하지만 바로 완치된다는 말은 아니었어. 더군다나 아직 몸이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네의 그 엄청나다 못해 무식하기까지 한 수련을 무리하게 진행하다보면, 그것은 진에게 독이 되면 되었지 득이 되진 않을 거라 생각하네." 에리필은 그밖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헌트를 막았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흘낏 바라본 헌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방 안에 모인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헌트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는지 에리필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세르디스란 녀석은 내 무구를 가져올 생각이 있는 거야?" 헌트는 진의 문제 때문에 지금껏 관심 밖으로 소외 시켰던 것을 우연히 기억했기에 그의 추궁은 대단히 매서웠다. 그러나 에리필은 헌트의 험악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별로 바쁜 일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내가 세르디스에게 시간 날 때 가져오라고 말 했지. 아마 그 녀석 지금 좀 바쁠 거야." "뭐야? 그게 왜 안 바쁜 일이지?" 헌트가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지만, 에리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일이 그렇게 바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받아 오던지. 참고로 그곳에서 서두른 사람은 내가 아니고 자네야." "맞아."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슨이 가세했다. 이에 헌트의 퉁방울만한 눈이 부릅떠지며 카이슨을 향했다. 그렇다고 카이슨이 공포에 부들부들 떨 위인이냐 하면 '아니올 시다.'였다. 오히려 그는 한쪽 눈을 깜빡이며 혀를 쏙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이에 분통이 터진 헌트가 분노를 터트리려는 순간 진의 낭랑한 음성이 후끈하게 달아오른 방 안을 울렸다. "안녕들 하셨어요." 진의 음성엔 힘이 충만해 있었다. 한달이나 쉬면서 행한 기(氣)수련은 그에게 이전 보다 강한 힘을 주었다.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없기에 평소보다 훨씬 과한 기(氣)수련이었다. 이에 지겨움을 느낀 진이 잠시라도 농땡이를 칠라치면 어느새 헌트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헌트는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氣)수련만 하기가 지겨우면 나랑 대련이라도 할 테냐?" 이 말에 진은 기겁하며 정신을 더욱 집중하여 기(氣)수련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진은 인사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의 사부인 에리필의 얼굴이 두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순간 그의 눈은 얼마 전, 자신이 던진 질문에 처연한 표정을 짓는 사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근데 제가 왜 이스트 언어를 배워야 하죠?" "으음… 나중에 이야기 해 주겠다." 사부의 표정이 처연한 표정에서 조금 굳어졌다. 그러나 진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사부는 언제나 나중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알아야겠어요. 제가 왜 이스트 언어를 배워야 하는지를……." "…… 지금은 다 말해줄 순 없다. 다만 사부와 그리고 아저씨들의 오욕의 시간을 네가 지워주었으면 하는 구나." "무슨 말이에요?" 사부는 그의 뚱한 표정에도 그저 웃기만 했다. 뭔가가 지나간 듯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진은 비로소 자신이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긴장된 분위기라는 것을. 진이 씨익 웃었다. 자신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하하, 분위기가 이거 왜 이래요? 혹시 저 몰래 맛있는 거라도 드신 거 아니에요?" "험험, 그럴 리가 있느냐. 허허, 안색을 보니 이제 부상도 완치 된 듯한데……." 어느새 진에게 다가온 헌트가 무안한지 진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가 슬며시 웃음 지었다. 천하의 헌트도 진에게만은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했다. 거짓된 웃음 속에 숨겨진 사악한 미소를. "맞아요. 아저씨 말씀처럼 완치 된 것 같아요. 오히려 전 보다 힘이 넘치는 게 마치 날아갈 것 같아요." 진은 지금이라도 당장 하늘로 날아갈 듯한 몸짓을 보였다. 이에 헌트의 숨겨진 미소가 거짓웃음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그가 나직이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완치 된 기념으로 실전 대련을 한 번 해야 되겠구나." 진은 헌트의 말에 기겁했다. 평소에 헌트와 하는 대련도 매우 힘들고 위험천만한 것이지만, 그의 입에서 실전 대련이란 말이 나왔을 때는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에리필과 종종 하는 대련이 바로 실전 대련인 것이다. 피를 토하며 내장이 뒤집어지고, 살이 베이며 까딱 잘못하다 어디하나 사라질 수도 있는 무서운 싸움인 것이다. 이것을 실전 대련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로 정성들여 포장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진은 사부의 처연한 표정에 가슴 아파할 여유가 없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하하, 아저씨는 농담도 참…" 진은 현실을 인정치 못해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헌트라는 인물은 싸움이라는 말만 나오면 매우 단호해지는 인물이었기에 진의 정신 상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 사전에 농담이란 없다. 자! 나가자." 헌트는 진의 목덜미를 잡고 문 밖으로 끌고 나갔다. 진의 다리는 이미 풀려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고, 목 위에 달려 있는 얼굴은 바람에 나부끼듯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거 같군요. 날씨가 춥습니다. 오늘 강원도 지방에 얼음이 언다고 하네요. 추워요~~~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냥 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는지라 정신이 없습니다. 흑흑흑 참, 컴터 고쳤습니다. 접촉 불량이라던데... 그래도 인터넷은 안됩니다. 와이? 학교 기숙사에서 인터넷 사용하기 무쟈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상 잡설이었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0 회] 58화. 비교적 평온한 일상 2. 공터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견 무기를 가진 이가 매우 유리하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이는 두 사람의 표정을 비교해 봐도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진의 얼굴은 완전 울상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대머리 중년인인 헌트는 오들오들 떠는 토끼를 바라보는 사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진은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흥분되기도 했다. 자신보다도 월등히 강한 상대가 주는 긴장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는 헌트와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헌트도 그것을 느꼈는지, 피식 웃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싸늘한 웃음 고리가 걸렸다. 그리고 그는 시작 전 매일 하는 소리를 반복했다. "준비는 되어있겠지?" "예! 준비 완료입니다." 진은 지난 한달 간, 부상 때문에 중력의 술을 풀어 놓고 있었기에 귀찮은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단지 준비라고 한다면 그의 마음 상태를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완료된 지 오래였다. 울상이던 얼굴은 이미 상기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헌트는 진의 얼굴을 보며 내심으론 흐뭇했지만, 강렬하기 그지없는 일갈을 내질렀다. 그것이 전투의 시작이었다. "간다!" 헌트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잔상을 만들어, 잔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그러나 진은 눈앞에 있는 헌트의 잔상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 설마 뒤에 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끼잉! 진의 머리에 갑자기 위험 신호가 잡히고 그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여 앞으로 달려갔다. 진이 앞으로 내달리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는 헌트의 무자비한 공격에 굉음을 일으키며 터져나갔다. "이것이 폭의 기법이다. 이것이 일류 즉 그레이트 급이란 단계에 오르게 되면 비로소 쓸 수 있 는 기술이다." 헌트는 기술을 한 번씩 쓸 때마다 진에게 설명해주었다. 간혹, 어쩌다 보니 그의 공격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대개 기술을 몸에 새기는 쪽으로 전투가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헌트가 기(氣)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었기에 비록 몸은 괴로웠지만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헌트는 지금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한달 여전에 겪었던 전투는 그의 몸을 뜨겁게 달구어 놓 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진에게 풀어버리려던 그의 회심에 찬 계획은 진의 부상이란 어이없는 상황에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러니 헌트가 이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겠는가! 지금의 헌트는 마치 아주 단 사탕을 조심조심 혀로 햝는 꼬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렇지만 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더욱 혹독한 수련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진의 몸은 멍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한방 한방이 뼛속까지 울려 정신이 아찔했던 것이다. 퍼억! 간결하지만 강력한 타격음이 울리고 그 뒤를 갈라지는 신음이 따랐다. 그리고 사람과 땅의 충돌음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하지만 평소 때처럼 이어지는 헌트의 조언은 따라오지 않았다. 헌트는 이미 진이 기절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헌트는 하늘을 보았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웃음 짓고 있다. 이에 헌트도 메마른 얼굴에 웃음 한 조각을 입가에 만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차가운 땅에 몸을 누인 진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미소가 헌트의 입가에 걸렸다. 목숨이 오가는 전투에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삶을 요구한다. 그리고 진은 그러한 전투를 통해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성숙이라는 말은 아무리 봐도 미화된 말인 뿐, 그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전투를 통해 진은 스스로의 힘으로 악연의 끈을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앞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의 눈앞에 피와 살육이라는 추악한 장애물이 있다 하여도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아련한 과거에서 오는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마냥 돌아가는 일상 속에 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헌트와 갖는 실전대련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편한 수업을 들으라면 카이슨과의 이동기법을 배우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유용한 시간을 대라고 한다면 단연 에리필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헌트에게 시달리다 들어오는 진의 몰골은 형편없었다. 어찌된 게 실력이 늘면 늘수록 더욱 두들겨 맞고 오니, 에리필의 마음은 찢어지다 못해 가루조차 남지 못하고, 녹아버렸다. 그러나 이 말을 진이 듣는다면, 그는 콧방귀를 뀌며 단박에 반박할 것이다. '헹! 사부가?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우리 사부가 평소에는 좋아 보여도 검만 들면 사람이 백팔십도로 변한다고.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검을 들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가를 것 같은 기세를 견뎌보라고. 근데 그런 사부가 그런 말을 했다고? 웃기는 소리 그만하고 발 닦고 잠이나 자!' 물론 에리필의 걱정도 진의 잡소리도 서로에게 전해질리 만무하지만, 두 사람이 가지는 생각 또한 진실이었으니, 황당하면서도 진솔한 것이 마음속에 품어둔 진심의 조각들이리라. 에리필은 타박상에 잘 듣는 약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얼추 약을 다 발랐다고 생각한 에리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그의 말에 진이 싫은 표정을 지었으나, 이미 말을 꺼낸 에리필로서는 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느긋하나 달변의 말솜씨로 진을 맞은편 의자에 앉게 했다. "내 이야기가 듣기 싫은가 보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네가 내 검을 그리도 상대하고 싶어 하니 어찌 사부된……." "자, 잠깐만요. 누가 듣기 싫대요? 괜히 사람 이상하게 내몬다니까." 진은 궁시렁대며 자리에 앉았고, 빙그레 미소 짓는 에리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너와 내가 현재 올라와 있는 경지와 앞으로 올라서야 할 경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마." 에리필이 말을 끊으며 진을 바라보자,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을 대할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으니, 그의 이야기는 달이 높디높은 창공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시점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한 데……. 그가 제시한 경지에 관한 나눔은 일곱 개의 쿤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주로 이스트 지역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제국에서 경지를 나누는 것 또한 이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다른 점이라는 것은 경지의 범위와 이름 정도라 하겠다. 그리고 범위 또한 실상 하나의 경지를 여러 개로 세분화한 것일 뿐이라서 뼈대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몇 개의 쿤을 열었느냐에 따라 경지가 나눠지다 보니, 경지 또한 일곱 단계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첫 번째 쿤인 륜은 단전 아래에 있으며, 이것을 연 자들의 경지를 초홍지라 불렀고, 두 번째 쿤인 샤오는 명치부분에 있으며 이를 연 자들은 수주아라는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바로 제국에서는 마스터 바로 아래의 경지를 뜻하는데, 초홍지의 최고 경지가 검풍이나 권력이라 한다면, 수주아는 에너지 소드라는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쿤인 쥬므는 가슴골에 있으며, 이것을 열게 되면 황화광이라는 경지에 오르게 되며, 그는 그 순간부터 절대 무인이라 불린다. 이 경지를 제국에선 마스터라고 부른다. 그리고 네 번째 쿤인 뮤슈는 쇄골 사이에 있으며, 이 쿤을 열게 되면 초영공이라는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지에 오른 자들은 한 세대에 많아봐야 열을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제국에선 이들을 마스터의 상급, 최상급이라 부른다. 이렇게 마스터를 세분화한 것은 마스터라는 경지 자체가 워낙 거대하게 퍼져있고, 제국과 이스트의 경지에 대한 나눔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쿤인 테츠는 인중에 있으며, 여기서부터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경지로서 파무광이라 불렀고, 제국에선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경지는 그야 말로 꿈의 경지로서 한 세대에 많아봐야 한명을 넘지 않는다고 하나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여섯 번째 쿤은 뮤라고 불리며, 미간에 있다. 그리고 이 경지는 육신이라는 탈을 쓰고 신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하여 신무안이라고 불린다. 이 경지를 제국에서 찾자면 딱히 없으나, 그랜드 마스터라는 지고 무상한 경지의 끝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쿤인 흐나는 정수리부분에 있으며, 신과 합일하여 육신의 허물을 벗고 하늘로 오른다고 한다. 이 경지를 천혜화라 부르나, 제국에선 딱히 어떤 경지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이스트에서도 천혜화에 도달한 자는 전무한 형편이다 보니 여기에 관한 실체는 누구도 본적이 없다. 단지 하늘로 오르며 허물어진 육신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 없다. 이러한 내용을 에리필은 그 딴에는 재밌게 설명해준다고 열심히 말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진의 눈동자는 자꾸만 감겼다. 잠시 후, 에리필이 일곱 쿤들의 예화에 대해 말하려는 찰나, 쿵하는 소음이 울렸다. "그리고 이러한 쿤들은 색깔로도 대변되는…… 어라? 자네……." 에리필은 황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곤히 자고 있는 진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에리필이 진을 안아 침대에 눕힌 것은 하늘에 떠있는 달이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서서히 하늘 아래로 사라지려고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음… 으음……." 에리필이 이불을 덮어주자 손을 허공에 저으며, 뒤척이는 진의 모습에 에리필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입가에 흘리며 그의 옆에 누웠다. "우리들의 치욕을 풀어주려면 최소한 파무광의 경지에는 올라야 할 텐데……." 그의 씁쓸한 중얼거림을 들었음인가? 진이 또 다시 뒤척이며 다리를 에리필의 가슴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또 하루의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 그야 말로 평온한 일상이군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1 회] 59화. 비교적 평온한 일상 3. "하압!" 한 번의 기합에 이어 한 번의 하얀 궤적이 뒤따른다. "이얏!" 짧고도 강렬한 기합소리는 검의 궤도조차 위축되게 만들어 기이한 곡선을 만든다. 진은 쉬 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잡생각 없이 오직 검만을 바라보며 행하는 기계적인 반복 수련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그의 검은 일견 당차보였고, 매서워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세를 타고, 대기마저 그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진의 모습을 세 사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미소라고 하여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 세 사내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되는데, 특히 헌트의 미소는 어딘가 모르게 짓궂은 면이 있었다. "크크, 요즘 들어 진 녀석, 톡톡 튕기는 맛이 각별하단 말이야." 누가 들으면, 원시부족의 식인족으로 오해할 만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헌트를 보며 두 사람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헌트는 그들의 시선을 깔끔히 무시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의 음흉한 미소를 띄운 채. 진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검을 휘두른다는 생각을 잊어 버렸다. 그것은 실제로는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진의 검이 몇 번 정도 허공을 긋고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이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무의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한 가지 느낌은 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본능이라 말해야 하는가! 자신이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확신.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진은 색다른 느낌에 몸을 잘게 떨었다. 두려워서 떠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매우 흥분하여 몸이 절로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떨림도 잠시, 진은 귓가를 울리는 물소리와 알 수 없는 해류의 흐름과 같은 줄기들이 몸을 관통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진은 검의 파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쐐애액! 평소와 다름없이 휘둘렀는데, 위력은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부터 예전의 그가 낼 수 있는 날카로움이 아니었다. 진은 의아했다. 그래서 검 휘두르기를 멈추려 했다. 그러나 그때, 멀찍이서 진의 수련을 보고 있던 세 사부는 진의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급히 외쳤다. "계속 휘둘러라." "멈추지 마라." "쉬지 마라." 그들의 음성은 터지듯이 진의 귓가를 울렸고, 멈추어가던 검은 본래의 궤도로 돌아왔다. 진은 또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한 번이 다르고 또 한 번이 달랐다. 검을 수련함에 있어 일정한 속도와 힘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은 그 방침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의 위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으니, 진은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기를 한 시간여! 진의 검에서 강한 바람이 빠져나와 바닥을 강타했다. 쾅! 진은 황당함에 경악했다. 자신의 검에서 검풍이 발현된 것이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과 파헤쳐진 땅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외경을 돌파했다.' 진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아까의 기이한 경험은 '깨달음의 순간이었다.'라는 것을. 세 사내는 진의 검에서 검풍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기쁨에 겨워 서둘러 몸을 날렸다. "축하한다. 외경을 돌파했구나." "이제 일류 즉 넌 그레이트 급에 도달했다." "하하, 녀석 대단하구나." 세 사내는 하나같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때는 세 사람의 속마음 모두 똑같았다. 진은 어리둥절해 있다 사부와 아저씨들의 환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감사합니다. 사부님과 아저씨들 덕분이에요." 진의 음성은 몹시 격앙되어 있었고, 약간의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세 사람은 대견하다는 듯 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형, 나 드디어 형이 말이 말한 일류가 되었어!' 진은 그렇게 감격의 시간을 그의 형 리오스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감격의 시간도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에리필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진에게 말했다. "진아, 지금의 감각을 몸에 새겨라. 그러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야 한다. 지금 당 장!" "예!" 진은 힘차게 대답하며 검 휘두르기를 시작했다. 잠시 쉬었음에도 진의 검은 검풍을 무리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진은 특히 외경이 열리는 감각 을 잊어먹지 않으려 정신을 집중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단전에서 기(氣)가 끓어 올라오고 그것은 내경 즉 륜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기(氣)들은 습관처럼 검을 들고 있는 손으로 모이게 되고, 충만히 모이게 된 기(氣)는 부드럽게 열리는 외경을 통해 밖으로 뿜어져 나간다. 진은 이 일련의 과정들을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해 수련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검풍을 뿜어낼 때, 매우 불안정하고 기(氣)의 유실량도 많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수련에 진도 차츰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필이 놀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녀석! 기(氣)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비상식적으로 빠르단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단시간 에 이만큼이나 강해지다니!" 에리필의 감탄에 헌트와 카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표정으로 진의 수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진은 과도한 기(氣)사용으로 인한 탈진상태에 빠져버렸다. "어, 이런!"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세 사내는 검풍이 일어나다 말고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쓰러지는 진 역시 그들의 시야에 잡혔다. 결국 그들은 서둘러 진을 붙잡았고, 쓰러진 진은 이틀 동안 침대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때, 카이슨이 헌트에게 한 말이 있었는데, 그의 솔직담백한 감평은 에리필의 입 꼬리를 심하게 흔들었다. "녀석, 완전 헌트화가 되어가고 있구먼." "크크크, 크하하하." 결국 참다못한 에리필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안 그래도 험악한 헌트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는 바였기에 반박할 순 없었다. 단지 진정한 피해자라 말할 수 있는 진은 기절해 있었기에 반박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었다. ~~~~~~~~~~~~~~~~~~~~~~~~~~~~~~~~~~~~~~~~~~~~~~~~~~~~~~~ 일주일에 반은 몸이 쑤십니다. 크흑...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맙시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2 회] 60화. 비교적 평온한 일상 4. "검에서 바람만 줄기차게 뽑아낸다고 해서 다 검풍이라 말할 순 없다. 진정한 검풍은 너의 기(氣)를 외부로 방출될 때, 최대한도로 유실량을 줄여야한다는 것. 즉 검과 너를 이어주는 유대감을 더욱 돈독히 가지는 것을 말함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단한 수련만이 해결해 줄 문제이니 쉬지 말고 수련에 매진해야 할 것이야." 에리필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진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진이 일으키는 검풍과 경지에 오른 자신의 검풍을 비교하여 무엇이 부족하고 잘못되었는지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의 솜씨가 일취월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헌트와 카이슨은 에리필과 진의 수련을 멀찍이서 입맛만 다시며 구경하고 있었다. 현재 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검풍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트의 무식한 수련도 카이슨의 재미난 수련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진을 에리필에게 빼앗긴 것이다. 에리필은 진을 지도하는 틈틈이 뒤를 힐끔거렸고, 그때마다 놀이 기구를 독차지한 꼬마의 득의만만한 표정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예리한 감각을 지닌 것이 죄(罪)인 듯, 불행히도 두 사람은 그들의 속을 송두리 채 뒤집는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장면은 그들 가슴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질투의 감정을 분노의 불길로 타오르게 만들었다. 이에 그들의 얼굴은 마치 잘 익은 홍시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인물들이 아니었다. '아니꼽지만 지금은 휴화산이어야만 해. 그것이 진을 위하는 길이니깐!' 그렇기에 그들은 하루 빨리 진의 검풍 수련이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두 사람의 뜨거운 기도가 하늘에 통했음인가! 한 달 하고도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진은 완전치는 않지만 검풍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을 습득했다. 진이 에리필에게 배운 것들을 요약하자면 이러한데… 출(出) 폭(爆) 흡(吸) 에리필은 진에게 이 세 가지를 가르쳤다. "검을 이용한 기(氣)의 효율적인 활용이야말로 검풍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니 검풍은 물론이요, 그 위 단계인 에너지 소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출(出) "출(出)이란 흔히 검을 휘두를 때, 뿜어져 나오는 바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기법이 지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검풍의 강함만으로 태산을 날려버리고, 예리함으로 금강석을 거울처럼 매끈한 단면을 남기며 자를 수 있을 것이다." 폭(爆) "폭(爆)이란 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氣)를 자신의 의지 아래 터뜨리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고도의 집중력으로 기(氣)의 자연스런 흐름을 막아 일순간에 터뜨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장풍이라 말하는 기법이 이와 유사한 원리 아래 쓰인다." 흡(吸) "흡(吸)이란 굴뚝의 끝부분에 공기가 빠르게 지나가면, 압력이 낮아져 연기가 빨려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로 검의 속도를 아주 빠르게 회전을 시키면 시킬수록, 검의 회전 반경 내의 압력이 급격히 낮아져 주위의 모든 것들이 흡입되는 기법으로, 용권풍을 상상하면 이 기법의 원리를 쉽게 이해하리라… 이 흡(吸)의 기법에 출(出)의 기법을 적용하면 중심부는 거의 진공상태가 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력으로 주위의 나무나 바위 등 모든 사물들을 송두리 채 흡입한다. 그리고 여기에 폭(爆)의 원리를 도입하면 흡입되어진 모든 것들을 일순간에 가루로 폭파시켜 버릴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은 기의 운용과 강함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출(出), 폭(爆), 흡(吸) 이 세 가지 기법은 사실상 초상승 검도의 입문에 필수적인 것으로, 초상승 공격기법의 모든 것들이 이것들에서 변용이 되므로, 눈을 감고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도록 하여라." 에리필은 끝으로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검풍에 관한 수업을 정리했다. 이 후의 수련은 끝없는 반복 훈련을 통해 몸이 절로 느끼고, 절로 움직이는 자율신경의 극대화를 만드는 것이므로 모든 성취도는 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어딘가에 몰두하면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마는 진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수련에 열중하였다. 그러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자리에 앉던 중 문득 예전에 했던 에리필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네가 외경을 돌파하게 되면 술법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겠다." 진은 에리필이 했던 약속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 전에 외경을 돌파하면 술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진의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요구에 에리필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미 한 달 하고도 보름 전부터 준비해왔던 것들을 진의 앞에 꺼내놓으며 술법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이 말을 언제 할지 몹시 궁금했단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묻는 널 보고 사실은 조금 놀랬단다. 내가 생각하기론 외경을 돌파하자마자 술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를 줄 알았거든. 어쨌든 약속을 했고, 너는 그것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술법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그러나 술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술법이라는 게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에리필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말 템포를 좀 느릿하게 만들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네가 술법을 익힐 수 있는 지 테스트 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만약 네가 술법을 익힐 수 있다면 어떤 속성의 술법을 익힐 수 있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자, 진아 웃통을 벗어 보거라." 진은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해 본적이 있기에 군말 없이 옷을 벗었다. ~~~~~~~~~~~~~~~~~~~~~~~~~~~~~~~~~~~~~~~~~~~~~~~~~~~~ 쿨럭, 오늘은 낮잠을 잤습니다. 피곤해서요. 여러분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마세요. 쿨럭, 자, 이제부터 진이 술법을 배우려 하네요. 근데 과연 진이 술법을 배울 수 있는 체질일까요? 히히, 그럼 여러분 즐감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3 회] 61화. 진! 술법을 배우다. 1. 에리필은 거무죽죽한 액체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러면서 날카로운 단도를 진에게 주며 그의 피를 여기에 담아 라고 말했고, 진은 그의 말에 따랐다. 퐁! 붉은 피가 거무죽죽한 액체에 떨어지며 파문을 일으켰고, 그 파장은 그릇의 중심에서부터 가장자리까지 넓게 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잔잔한 파문의 물결이 사라지자 붉은 피는 거무죽죽한 액체에 완전히 용해되어 어느 곳에서도 그 선연한 붉은 빛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에리필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경건한 예식을 치르듯 모든 절차를 밟아 나갔다. 에리필은 손을 들어 그릇에 담긴 액체 위에 나선형을 꼬듯 원을 그렸고, 신기하게도 거무죽죽한 액체는 그릇을 떠나 공중으로 나선형을 만들며 띄워졌다. 잠시 후, 에리필은 경건한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근원인 술의 주인들이여 지금 그대들의 힘을 원하는 자에게 술의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옵소서." 에리필은 주문을 외우며 손을 기형학적으로 허공에 그었다. 그러자 나선형을 이루던 거무죽죽한 액체들이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에리필의 주문이 끝나고, 그의 손짓도 마지막 점을 허공에 찍자 마법진이 완성되는 것처럼 공명음이 방 안을 울렸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에리필이 공명음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 낮지만 강렬한 외침을 토했다. "제라이퍼즈!" 파앗! 에리필의 음성이 세상에 나오는 것과 동시에 기형학적인 문양을 이루고 있던 거무죽죽한 액체들이 순식간에 황금빛을 토했다. 에리필은 황금빛을 찬란히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문양을 향해 미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문양은 천천히 진의 심장을 향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진은 움찔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그의 놀람은 더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단다." 에리필이 잔잔한 음성으로 말하자, 그에 힘을 얻어 진은 금세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렇게 더딘 시간이 정시를 알리자 황금빛 문양은 심장이 있는 진의 왼쪽 가슴에 박혔다가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친 회전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진의 왼쪽 가슴엔 둥근 원 안에 별 모양이 새겨졌다. 진은 갑작스런 회전에 기겁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신기한 표정으로 그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듯 황금빛 문양을 바라보던 진이 고개를 들어 에리필에게 물었다. "저, 사부님. 혹시 이 문양에서 별의 오각을 뜻하는 것은 물, 철, 땅, 불, 나무를 뜻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별의 한 가운데 있는 오각형은 중력을 뜻하는 거구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 에리필은 잠시 멈칫거리며 감탄의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여기서 또 칭찬을 한다면 기껏 자만심을 죽이고 있는 진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말이 맞다. 그렇다면 별과 원 사이에 있는 문양들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느냐?" 진은 에리필의 되물음에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당당히 말했다. "아뇨. 짐작도 안 가는데요." 너무도 당당함에 에리필은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애써 무안한 감정을 숨기며, 차분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음성에서 당혹이라는 감정을 발견하기란 매우 쉬웠다. "험험, 그러냐? 알겠다. 그럼 거기에 관한 것은 내가 설명하마. 원과 별 사이의 문양이 뜻하는 것은 바로 특수속성을 말함이다. 특수속성이란 오행의 기운과 중력의 기운 외에 우주를 떠도는 다른 기운 내지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것은 특이하게도 일정수준 이상 오를 때까지 그 성질 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왜 그런데요?" 진의 의문에 에리필은 고개를 내 저으며 설명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대신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무속성이라는 것이 아마 그 이유에 대한 답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무속성이라는 가설은 처음엔 단순히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다가 점점 자신에 맞는 우주를 찾아간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이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우주의 기운을 자신의 몸에 맞게 적응 시키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힘이 아닐지 하는 것이 그 가설이 내세우고 있는 주장이지. 하여튼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고,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그대로 따라 해라." "제. 수트라 인즈라! 라. 바츄겐 인즈라! 이. 사요바 인즈라! 퍼. 고레즈 인즈라! 즈. 마파요 인즈라! 모든 것이 합일 될 지니 제라이퍼즈!" 진은 에리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의 말이 끝남을 보고, 조용히 호흡을 정리 한 뒤 외치기 시작했다. "제. 수트라 인즈라! 라. 바츄겐 인즈라! 이. 사요바 인즈라! 퍼. 고레즈 인즈라! 즈. 마파요 인즈라! 모든 것이 합일 될 지니 제라이퍼즈!" 윙! 번쩍! 파문이 일어나듯 진의 왼쪽 가슴에서부터 공명음이 일어나 방 안 끝까지 밀려났다. 그리고 칠황의 빛이 파문을 따라가듯 그 아름다운 빛줄기들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진은 잔잔하지만 극단적인 쾌감이 전신을 쉴 새 없이 두들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고, 진은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에 자신이 인세가 아닌 선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웅! 낮지만 굵은 공명음이 다시 한번 울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칠황의 빛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듯 갑자기 팟 하는 소리를 내며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은 영롱한 보석의 결정체들로 방 안에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아…" 진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에 두 눈을 빼앗겼다. 그러나 에리필은 깊숙하게 가라 앉아 있는 심유한 눈빛으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리필은 진의 감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의 심유한 눈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의 왼쪽 가슴에 고정된 상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진아, 너는 술법을 익힐 수 있는 몸이구나. 그리고 너의 속성은 아주 드물다고 하는 특수속성이다." 에리필의 음성엔 낮게 깔린 감탄이 숨겨져 있었다. 그만큼 특수속성이란 것은 특이하고도 드문 것이었다. 물론 특수속성이라고 하여 더 강한 힘을 사용하거나 더욱 강력한 술의 령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는 개인차요, 능력차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특이하기에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특수속성도 많이 있기에 만에 하나 기존에 있던 령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령을 얻게 되면 그 주인인 진에겐 큰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에리필의 말에 진은 그의 왼쪽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별과 원 사이에 있는 모든 문양에서 형용치 못할 빛들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진은 조심스런 손길로 왼쪽 가슴을 쓸어 보았다. 우웅! ~~~~~~~~~~~~~~~~~~~~~~~~~~~~~~~~~~~~~~~~~~~~~~~~~~~~~~~~ 개인적으로 정령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하하!!!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4 회] 62화. 진! 술법을 배우다. 2. 진의 손길에 공명하는지 빛들이 춤을 추며 대기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춤을 추는 빛도 황금빛 문양을 자랑하던 술의 문양도 진의 왼쪽 가슴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에리필의 술법 강의가 시작되었다. "술법이란 우주에 떠도는 기운 즉 우주를 지탱하는 령을 부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법이다. 여기에는 물, 철, 땅, 불, 나무의 오행과 중력 그리고 특수속성으로 나뉜다. 그리고 다루는 속성과 령은 틀릴 지라도 수련하는 방법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우주의 기운을 심장에 저장시킨다. 그리고 심장에 저장시키는 기운은 자신의 속성에 맞게 알아서 저장되기 때문에 여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런데 말이다. 우주의 기운을 심장에 저장한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란다. 왜냐하면 우주의 기운이란 것이 어느 한곳에 정착하기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심장의 자리에 우주의 기운을 정착시키는 첫 번째 단계가 매우 어렵단다. 그러나 한 번 정착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또한 술법의 묘미지." 에리필은 술법에 관한 수련에 대해 간단히 말한 뒤, 진이 이것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확인한 후 이야기를 계속했다. "앞서 술법의 전반적인 수련에 관해 말했고, 지금부터는 술법을 사용함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지식인 술의 령에 대해 말하겠다. 술의 령이란, 간단히 말해 정령이라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령은 주인의 능력에 따라 진화하는데, 오직 하나의 령 하고만 계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화의 단계는 심장에 저장되는 기운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령과의 계약은 어느 순간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자신의 속성인 령이 정신적 세계로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자신이 그 이름을 불러주면 계약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령의 진화 또한 정신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시기는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좋겠지. 바쇼레이 소환!" 에리필은 허공에 손을 몇 번 그으며 말했다. 잠시 후, 은은한 빛의 향기가 허공에 퍼지며 한 존재가 방 안에 나타났다. 그 존재의 키는 진과 비슷했으며,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은은한 빛을 내고 있어 턱시도의 색상까진 정확히 알 순 없었다. "바쇼레이 오랜만이야." 에리필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러자 바쇼레이도 따라 인사했다. 그런데 그의 인사라는 것이 우리처럼 진성으로 내는 것이 아닌 말끝마다 공명으로 웅웅 울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명음이라도 뜻은 명확히 전달되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마스터." "그래, 너도 잘 지냈어?" "술의 세계는 이곳과의 시간과 다르기에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스터께서 대답을 듣기 원하신다면 잘 지냈습니다." 조금은 딱딱한 말투지만 에리필은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말투에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우를 만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바쇼레이를 불러낸 이유를 잊진 않았다. "진아, 바쇼레이는 중력의 령이란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진화 중에서 세 번째 진화한 모습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바쇼레이란다." "그렇다면 원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진은 흥미로운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렇지. 처음에 바쇼레이를 불러내었을 때는 말이지." 에리필은 말을 하며 과거의 기억으로 빠져 들어갔다. 12살 난 꼬마 에리필은 검보다는 술법이 훨씬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술법을 익힐 때 간간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빛의 향연은 어린 그의 마음에 커다란 동경으로 다가왔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우주의 기운을 심장에 저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변하며 자신의 키에 삼분지 일정도 되는 턱시도를 입은 귀여운 꼬마가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바쇼레이라고 해요. 술의 세계에 있는데, 당신의 음성이 들렸어요. 저와 계약하길 원하나요?" 꼬마 에리필은 멍해 있다가 그의 말에 술법 선생님이 해줬던 말이 떠올라 서둘러 소리 질렀다. "나, 나는 바쇼레이 너와 계약하고 싶어." 꼬마 에리필의 음성이 새하얀 공간에 퍼지고 그것이 바쇼레이에게로 날아갔다. 그러자 바쇼레이가 레이디에게나 인사할 법한 동작을 취하며 주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당신은 지금부터 나의 마스터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에리필은 자신과 함께 커 나가는 바쇼레이를 보며 친구에 대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에리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은 신기한 듯이 바쇼레이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자신과 거의 비슷한 키에 수려한 용모와 은은한 후광을 입어 위엄을 세우고 있지만, 예전에는 엄청 작은 꼬맹이였다는 것이 사뭇 신기했다. 그리고 그 어린 령이 지금처럼 턱시도를 입고 레이디에게나 하는 듯한 인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귀엽다고 생각했다. 진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에리필은 바쇼레이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내 제자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 너하고 안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잖아." 에리필은 바쇼레이를 상대할 때만은 예전 12살 난 꼬마로 돌아간 듯했다. "그렇군요. 마스터. 안녕하십니까?"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있던 진을 향해 바쇼레이의 공명음이 울렸다. "어? 아, 안녕하세요. 바쇼레이 아저씨." 진은 사부의 친구 격인 바쇼레이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한다고 했는데, 바쇼레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터. 마스터의 제자는 저에게 아저씨라고 하는군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세계에선 아저씨라는 말이 없는 데 말입니다." 에리필은 무엇 때문에 그가 갸웃거리는지 몰라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절로 나왔다. "풋, 푸하하하하." "하하하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도 그의 표정과 말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방 안에는 한 존재와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웃음소리가 집 밖까지 울릴 정도로 크게 웃고 있었고, 한 존재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었다. ~~~~~~~~~~~~~~~~~~~~~~~~~~~~~~~~~~~~~~~~~~~~~~~~~~~~~~~~ 죄송합니다. 후우, 토, 일 올려보려고 했지만, 피시방까지 걸어갈 엄두를 못냈습니다. 크흑...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5 회] 63화. 진! 술법을 배우다. 3. 다음날부터 진은 술법을 수련하였다. 그러나 수련에 앞서 에리필은 진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술법을 수련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진 않겠다. 그러나 술법을 수련한다고 하여 다른 수련을 게을리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나는 물론이요, 헌트, 카이슨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 술법을 수련하되 네가 시간을 내서 틈틈이 익히겠다는 것을 나와 약속해주겠니?" "예." 대답은 했으나, 처음에 진은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는 은근히 불만을 가지기까지 했다. 자신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후, 진은 자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 술법을 익히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진은 술법에는 완벽한 초보였다. 그렇다 보니 그는 의욕만 앞설 뿐, 실지로 거둔 성취는 미미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갈수록 답답함을 느꼈다. 진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진은 여기서부터 막혔다. 자신이 익히고 있는 기(氣)와 우주의 기운인 마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안달이 났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렇게 마나를 느끼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두 달의 시간을 보내자 진은 비로소 마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진이 처음으로 마나를 느낀 감각은 마치 기름같이 물과 섞이지 않는 액체였다. 그리고 마나는 온 대기에 넓게 퍼져 있어 어디서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보름여의 시간이 지난 후, 진은 대기에 존재하는 마나의 양이 어느 곳에서나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곳은 마나가 적게 모여 있고, 어떤 곳은 밀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데는 카이슨이 지나가면서 "한곳에서만 마나를 느끼는 것은 한 가지 생각만 하게 만들 뿐이야."라고 한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진은 마나를 느끼고부터 자신이 명당자리라고 지정해놓은 봉우리에 올라앉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진은 마나를 심장에 저장하는 것이 단전에 기(氣)를 저장시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나를 저장시키는 것은 어떤 의미론 단전에 기(氣)를 저장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진은 기(氣)를 단전에 저장시키는 것만 팠었지만 현재 진이 행하는 술법 수련은 다른 수련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의 양이 틀리 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진은 훨씬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술법 수련을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진은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수련에 매진했던 것이다. 마나가 심장에 잠시 들어와 있다 밖으로 빠져나가기를 몇 천 번. 그러나 진은 포기하지 않고 마나를 심장에 저장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렇게 수련하다 보니 기(氣)를 단전에 저장하는 것처럼 조금씩이지만 마나를 심장에 저장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심장에 마나를 밀어 넣던 어느 날, 진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쉴 새 없이 마나를 심장에 몰아넣던 어느 순간, 진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마나를 불어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화 상태까지 심장에 채워진 마나가 터질 듯이 '웅웅'거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나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왼쪽 가슴에 새겨진 황금빛 문양을 다시 한번 세상에 드러내게 만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광포한 해류의 흐름처럼 제멋대로 날뛰며 회전하던 마나가 차츰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심장에 자신의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진은 뛸 듯이 기뻐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개에 놀랐고, 반가웠다. 이제야 마나를 심장에 저장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광포한 마나의 발광도, 황금빛 문양도 사라지고 잔잔한 고요가 봉우리를 찾아왔다. 고요가 지루했음인가! 개구쟁이 바람이 다가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진을 살살 간지럼 태운다. 순간 진의 눈이 강렬한 빛을 내며 뜨여졌다. 그리고 폐부에 있는 탁한 기운들을 모두 뱉어내기라도 하듯 크게 심호흡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크하하하, 드디어 마나가 심장에 정착했다." 그 날 이후, 진은 더욱 신나게 술법 수련에 몰입할 수 있었다. 모으는 족족 심장에 정착하는 마나가 신기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모을 수 있는 양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진이 정령을 볼 날은 아직도 많이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진의 일상을 깰 인물이 에리필의 오두막을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방문한다. "안녕하셨습니까?" 세르디스는 기운도 좋은지 등에 커다란 봇짐을 메고 언덕을 올라오다 헌트를 보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헌트는 대련을 빙자한 실전의 쾌감을 진을 통해 톡톡히 맛보고 있는 상태였고, 그들의 대련을 방해하는 이 때문에,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이 더욱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상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한 미소만 입가에 만들 뿐이다. 헌트는 잠시 중단된 대련이 불쾌했는지 세르디스를 노려보았다. 헌트의 눈빛은 칼만 들지 않았지, 상대를 몇 백번 도륙해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그에 세르디스도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두뇌를 소유한 유능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해답은 아주 간단했지만,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하, 제가 두 분의 대련을 구경해도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예의 화사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는 세르디스를 보며 헌트는 잠깐 꿍얼댈 뿐, 아까의 사나운 눈빛은 거두었다. '휴우, 다행이다.' 세르디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잡아 앉았다. ~~~~~~~~~~~~~~~~~~~~~~~~~~~~~~~~~~~~~~~~~~~~~~~~~~~~~~~ 뒤이어 하나 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6 회] 64화. 진, 세상으로 나가다. 1. 진은 힐끔힐끔 세르디스를 훔쳐보다 갑작스런 헌트의 공격에 혼비백산해 정신없이 방어하기 바빴다. 세르디스는 두 사람의 대결을 보고 많이 놀라고 있었다. 전에 에리필이 했던 말에 의하면 일년은 지나야 이그젝터 예비생 즉 외경을 돌파한 그레이트 급에 도달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이미 원숙에 이른 검풍을 날리고 있지 않은가! 세르디스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련은 계속되었고, 차츰 그 열기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크크, 도대체 너의 실력은 늘 기미를 보이지 않는구나." 헌트의 놀림에 진은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흥, 거짓말 하지 말라 구요. 절 상대하는 아저씨의 주먹과 발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흥흥, 그리고 아저씨가 모르는 비장의 무기가 저한텐 있다 구요." 진은 헌트의 공격을 피하며 촉새처럼 빠르게 내뱉었다. "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크크, 좋다. 그럼 너의 알량한 비장의 무기라는 것 좀 보자. 하지만 네가 이제까지 말했던 비장의 무기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치졸하기 짝이 없는 검놀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라." "흥, 두고 보시라구요." 진은 헌트의 은근한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자세를 취했다. 검을 상단의 자세로 잡고 있던 진이 미끄러지듯 헌트에게 돌진했다. 이에 헌트는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고, 이때 진의 발이 쉴 새 없이 움직이더니 돌연 두 사람으로 분리 되었다. 이것은 잔상도 환영도 아닌 엄연한 분신술이었다. 헌트는 갑자기 두 사람의 진이 다른 자세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술의 주인마저도 격파했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그의 공격을 맞아들였다. 진은 이번 공격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완전히 마스터 한 것은 아니지만, 이 공격이 얼마나 놀라운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겪어 본 진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많았고, 진 또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 다. 진은 기묘한 기(氣)의 운용과 몸놀림을 이용하여 분신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금만 삐끗해도 기법이 기이하게 변형되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진은 검풍을 만들기 위해 검에 밀어 넣은 기(氣)에 대해 생각하다 미묘한 밸런스를 깨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또한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실수도 때론 성공의 키로 변하여 행운의 여신의 손을 흔들도록 만드는데, 이번에는 그 손을 진에게 흔들어 주는 듯했다. 두 개로 분리된 진의 몸이 갑자기 흔들렸다. 그렇다 보니 미묘하게 잔상이 남아 일순 진의 몸이 여러 명의 진으로 분리되어 양 방향에서 무수히 많은 검을 날리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우연적 요소로 인해 패하기엔 헌트는 수많은 사선을 뛰어넘어 노련미를 갖춘 능구렁이였다. 헌트의 몸이 번쩍였고, 진의 혼신을 다한 공격은 반응 없는 땅만 후려쳤다. 쾅! 커다란 굉음이 터지며 뿌연 먼지가 사정없이 피어올랐다. 이에 시야가 가려진 진은 감각을 높여 헌트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진의 감각에 잡힐 정도로 헌트의 실력은 낮지 않았다. 귀가 멍할 정도로 크게 울렸던 굉음도 고요 속으로 사라지고, 뿌옇게 피어올랐던 먼지와 파편들도 땅으로 모두 가라앉았을 때에야 진은 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퍽! 모든 장애물들이 사라지고, 환한 세상이 도래하자 진은 헌트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헌트를 말이다. 순간 복부를 뚫을 듯한 강렬한 충격을 받은 진의 허리가 꺾였다. 그리고 진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며 정신의 끈을 놓았다. 툭! 앞으로 쓰러지는 진을 헌트가 가볍게 받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잠시 만요." 헌트가 걸음을 옮기자 세르디스가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그러나 헌트는 고개를 잠시 돌렸을 뿐, 오두막으로 옮기는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가, 같이 갑시다." 헌트의 뜻밖의 행동에 세르디스는 당혹해 하며 급히 그의 뒤를 뒤쫓아 갔다. ~~~~~~~~~~~~~~~~~~~~~~~~~~~~~~~~~~~~~~~~~~~~~~~~~~~~~~ 소제목이 바뀌는 관계로 부득이하게 두 개로 나눠서 올렸습니다. 후후후, 그럼 즐감 하시고요. 모두들 행복하게 사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7 회] 65화. 진, 세상으로 나가다. 2. "오랜만이군." "그렇군요. 에리필님 카이슨님, 그리고 헌트님. 그동안 폴큐레이티 시의 뒤처리를 하며 거기에 자잘한 업무 몇 가지를 해결하고 오다 보니 시일이 좀 많이 걸리더군요. 마음은 빨리 오고 싶은데, 이거 참, 죄송하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네요." 세르디스는 자신을 낮추며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서 은근한 기품과 위엄이 흘러나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를 본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에리필과 카이슨은 그의 성취가 예전 보다 더욱 상승되었다는 것에 놀라워했고, 헌트는 밥 맛 없는 녀석이란 생각을 했다. 그들이 그런 생각들을 할 때, 세르디스가 등에 메고 있던 봇짐을 내려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전에 말씀하셨던 헌트님의 무구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무구가 그 유명한 헤르디온의 무구 중 마지막 제 7 무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헤르디온의 무구를 소유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거장의 무구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군요." 세르디스가 헤르디온의 무구라는 말을 꺼내자 헌트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세르디스는 미처 헌트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그의 놀람을 솔직하게 드러내었다. 이에 헌트는 자꾸만 떠오르려는 예전의 기억을 억누르려 했으나, 그럴수록 기억 속 영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한 세대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 당시 헌트는 무술을 사랑하고, 열심을 다해 무술을 익히는 열혈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는 무기라는 것은 반칙과도 같은 것이라 여기며 자신의 몸을 갈고 닦는 데 모든 노력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한 사람을 만났다. 헤르디온과의 만남은 어쩌면 너무도 어이없을 정도로 우연적인 만남인지도 모른다. 강가를 거닐고 있던 헌트는 길 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습관적으로 찼다. 그렇게 몇 십 개의 돌멩이를 차고 있는 데, 갑자기 길 밑, 푸른 풀들로 이루어진 강기슭에서 비명소리가 울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깜짝 놀란 헌트는 재빨리 강기슭을 타고 내려갔고, 곧이어 비명소리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헌트가 헤르디온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솔직한 첫 소감은 '참으로 불쌍한 영감이구나.'였다. 그만큼 그의 몰골은 형편없었고, 게다가 헌트의 발길질에 날아간 돌에 맞아 커다란 혹을 머리에 달고 있었기에 더욱 불쌍해 보였던 것이다. 헤르디온은 머리에 난 혹을 어루만지며 아파하다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거구의 청년을 보며 한 가지 기발한 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곧 바로 실행했다. "아악!" 헤르디온은 머리에 강한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풀밭위로 쓰러졌다. 이에 놀란 헌트는 헤르디온을 업고 허겁지겁 마을로 가 병원을 찾았다. 하늘의 도우심인지 헤르디온의 음흉한 속셈이 하늘도 속였는지, 마을에는 커다란 병원이 있었다. 그러나 헌트가 어찌 알았을까? 이 병원의 주인이 헤르디온과는 절친한 친구라는 사실을. 헤르디온을 업고 들어오는 헌트를 보며, 간호사는 곧 바로 원장에게 알렸다. 그리고 헤르디온의 친구인 원장은 그가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원장은 모든 사람을 물리쳤다. 물론 헌트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때만 해도 헌트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청년이었기에 병실 내를 흐르는 음흉한 기류를 감지하지 못했다. 모두가 밖으로 나가자 헤르디온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장난 끼 짙은 눈빛을 보내며 친구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원장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의 뜻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헌트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찬 돌멩이에 맞은 늙은이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1년 정도 요양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인은 하루 벌어 겨우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이라는 사실이 그의 연약한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노인을 1년 동안 편히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노인이 하던 일을 1년 동안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 결정 중에 헌트의 의견은 눈곱만큼도 들어가지 않았다. 헤르디온의 막무가내 식 옹고집이 헌트를 무인에서 한순간에 대장간 지기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만큼 헤르디온의 고집은 대단한 것이었고, 상황이 묘하게 헌트가 대장간 지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흘러가고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헌트는 헤르디온에게 대장간 일에 대해 배우며 종종 오는 손님들에게 농기구나 무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작은 대장간이 그러하듯 손님들이 요구하는 거야 질 낮은 농기구나 무기들뿐이었고, 헌트는 헤르디온이 가난한 대장간 지기라는 사실을 진실인 양 믿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헌트는 이른 새벽에 뭔가를 두드리는 둔탁하지만 강렬한 소리에 깨어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헌트는 놀람과 배신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헤르디온은 제국 최고의 장인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대단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박하게 생긴 청년을 만났고, 장난 끼가 발동한 그는 헌트를 하인처럼 부려먹을 꾀를 생각해냈다. 그러나 천생이 장인인 그는 쉬는 것이 오히려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야심한 시각을 도모하여 그의 주무대로 이동해 쇠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헌트에게 들켰던 것이고. "다, 당신은 절대로 가난뱅이 장인 따위가 아니야!" 헌트는 몹시도 격앙되어 그의 음성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헤르디온은 갑작스레 들려온 거센 외침에 작업을 멈추고, 음성의 주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아까운 장난감이 날아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토했다. "휴우, 그렇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난뱅이 장인이 아니다. 나는 대륙 최고의 장인이라 불리는 도베이르 헤르디온이라 한다." 이제까지 약하고 외로운 노인은 사라지고, 절대자의 위엄과 권위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헌트는 그런 그의 변화에 기겁하며 뒤로 두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항변하듯 외쳤다. "도대체 이런 장난을 치신 이유가 뭡니까?" "장난?" 헤르디온은 이유야 어찌됐든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고자세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너는 내가 장난 따위나 할 사람으로 보이냐? 제국 최고의 장인이라는 칭호는 그렇게 가볍지 않은 것이라는 걸 모르는 가 보군. 쯧쯧, 역시나 햇병아리 일 뿐인가!" 갑자기 혀를 차는 헤르디온을 보며 헌트는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간간히 머리에 떠올랐지만, 그것은 헤르디온의 기묘한 분위기에 저만치 날아가 버리곤 했다. "그, 그렇담 저를 속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 ~~~~~~~~~~~~~~~~~~~~~~~~~~~~~~~~~~~~~~~~~~~~~~~~~~~~~~~~ 푸하하하, 헌트의 또 다른 과거입니다. 예전에 순수무인이었던 헌트~~~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8 회] 66화. 진, 세상으로 나가다. 3. 헌트가 혼돈 속에서 던진 질문에 헤르디온은 옳거니 하며 준비했던 대답을 쏜살같이 뱉어냈다. "너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구요? 무엇 때문에 절 시험하신 거죠?" 헌트는 이상하게 추궁이 아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묻는 학생으로 돌아가 버린 자신을 발견했지만, 이미 돌이키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네가 근래에 보기 드문 순수한 무인이기 때문이다. 너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냐?" 헤르디온의 질문에 헌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헤르디온은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걸며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무기를 쓰지 않지?" 오히려 되묻는 헤르디온을 보며 헌트는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말했다. 이제 헌트의 마음에는 추궁이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조차 헌트의 사고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한 무기란 몸을 극도로 단련하여 그것이 무기를 능가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군.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나 헤르디온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아둔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아둔한 생각이라뇨. 그런 발언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헌트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험악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러나 헤르디온은 헌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여유 있는 자세를 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진정하게. 흥분은 건강에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걸 모르는가? 자, 내 말을 듣고 난 뒤, 발악을 하든 달려들든 하란 말일세. 자, 두 귀를 열어놓고 똑똑히 들어보라 구. 무기라는 것은 어찌 보면 필요악일 수도 있지. 요즘 것들은 좋은 무기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거든. 그래서는 진정한 무인이 되기 힘든데도 말이야. 그렇지만 똑바른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무기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오히려 뛰어난 무기는 본인에게 힘을 주고, 무인에게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자신감 또한 준다고 생각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헤르디온은 교묘한 화술로 헌트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에 헌트가 흔들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물론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익히고 있는 무술에는 무기라는 것이 필요 없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헤르디온은 헌트의 대답을 들으며 갑자기 도전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세차게 치는 것을 느꼈다. "자네는 몸을 이용한 체술, 즉 권각술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무기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있네." "예?" 헌트는 헤르디온의 황당한 소리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체술은 몸을 이용하는 무술입니다. 그런데 어찌 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아냐, 아냐. 자네는 무기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헤르디온은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헌트의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식혔다. "음, 검, 도, 창 이런 것들을 무기라 하지 않습니까?" "자네 생각은 매우 편협한 생각이네." 헤르디온은 딱 끊어 헌트의 생각을 부정했다. 이에 헌트가 반박하려 하자, 헤르디온이 재빨리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무기란 말일세. 전쟁이나 전투에 사용되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할 수 있네. 그리고 체술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건틀릿 같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가?" 헌트는 헤르디온의 말을 들으며 그의 생각이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건틀릿 따위는 이미 외경을 돌파하고, 기(氣)를 마음먹은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신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피식 웃으며 그의 생각을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헤르디온이 조금 빨랐다. "물론 건틀릿 같은 조악한 무기는 진정한 무인들에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에게 어울리는 무기를 하나 만들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헌트는 일순 얼어버렸다. 헤르디온의 말은 그만큼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헌트는 농담인가 싶어 헤르디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진지했고, 농담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제국 최고의 장인인 사람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기를 만들어 준다는데, 그것이 어떤 무기일지 그것이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 헌트가 아무 말이 없자, 헤르디온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싫은가?" 헌트는 워낙에 큰 충격에 멍해 있다 헤르디온의 충격 발언 철회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을 듣고 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워낙에 갑작스런 제의라서… 그런데 저에겐 헤르디온님의 무기를 살 돈이 없습니다." 헌트가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헤르디온은 기분 좋게 웃으며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내뱉었다. "무기가 완성될 때까지 자네가 지금처럼 내 대장간을 지켜주면 된다네. 그리고 한 가지! 내가 만드는 무기는 제국 최강의 성능을 지니고 있을 걸세. 그러니 그에 걸 맞는 능력을 갈고 닦을 것을 약속해줘야겠네." "옛, 약속하겠습니다." 헌트는 감동에 겨워 눈시울을 붉히며 힘껏 외쳤다. 다음날부터 헤르디온의 연단이 시작되었다. 헤르디온은 검이나 아머슈트에 대단한 조예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헌트처럼 체술을 익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무기를 만들어 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장난을 수습하려고 말을 꺼낸 것이 일생의 작품을 만드는 동기가 되어 버렸다. 시작이야 어찌됐든 헤르디온은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뜨거운 화롯불에 혼을 불어 넣어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헌트는 헤르디온의 무기에 어울리는 주인이 되기 위해 수련에 열중했다. 사실상 헤르디온의 대장간을 방문하는 손님이라고는 한 달에 손가락을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헌트는 수련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헤르디온의 마지막 작품인 제 7무구가 탄생되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헌트를 위해 만들어진 무구였다. 그리고 헌트는 그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곁에 있을 것을 자처했다. 하지만 헤르디온은 단박에 거절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했다. "내가 이것을 만든 목적은 네가 이 무구를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작품이 너의 손에서 빛을 발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내 옆에 있는 다면 나의 소망은 어찌 되겠느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69 회] 67화. 진, 세상으로 나가다. 4. 근 6년 동안 같이 살면서 이미 더할 수 없이 정을 쌓은 두 사람은 부자지간처럼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별은 더욱 슬펐던 것인지 모른다. 헌트는 헤르디온의 말에 따라 세상을 질타했다. 그의 실력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다다라 있었고, 헤르디온의 무구는 그의 능력을 배가시켜 주었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이 제국 전역을 울렸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헤르디온의 대장간을 찾아간다. 그의 뜻대로 살았다는 것에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찾아간 그였다. 그런데 그를 반겨줄 사람은 도무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이상한 불길함을 받은 그가 대장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그가 세상에서 소멸되더라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낙인을 찍게 만드는 장면을. 헌트는 처음엔 헤르디온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워낙에 장난을 좋아하는 노인네였으니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붉은 피가 굳어져 검게 변색된 모습은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헌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는 헤르디온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헌트의 오열은 단순한 오열로 끝나지 않았다. 헌트는 헤르디온을 안치 시킨 뒤, 범인을 찾기 위해 제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헌트는 자신의 몸이 분노로 들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헤르디온을 죽인 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족들과 즐겁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성을 잃은 헌트가 집안으로 들어가 범인만 빼놓고 모든 가족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헌트는 그 남자를 향해 말했다. "어떤가! 너의 가족들이 네 눈앞에서 죽는 기분이?" 헌트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거두지 않고 남자의 사지를 하나씩 잘라나갔다.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헌트는 오히려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남자를 보며, 만족의 웃음을 그렸다. 그리고 헌트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며 그의 목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그 이후, 헌트는 세상이 싫어지고, 오열하는 남자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기위해 피와 전투의 삶에 그의 몸을 맡겼다. 헌트는 기억하기 싫은 것까지 떠올리자 인상을 찡그리며 괴로워했다. 그의 모습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세르디스는 서둘러 헤르디온의 제 7무구를 꺼내어 헌트에게 주었다. 무구는 한 쌍의 장갑과 한 쌍의 장화같이 생긴 신발이었다. 그리고 아머슈트 중 몸통만 가릴 수 있는 나시 같은 티 한 장을 꺼내었다. 헌트는 감회가 새로웠다. 그의 눈에 언뜻 엷은 습막이 맺혔다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헌트는 조심스런 동작으로 그것들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헌트가 나가고 기묘한 분위기가 방 안을 지배하고 있을 때, 세르디스가 그의 금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역시 헤르디온님과 헌트님이 절친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글쎄, 그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말하지 않았네. 하지만 헌트가 그의 무구에 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은 아마도 그의 진심이 아니었을 거야." 에리필은 창문을 통해 비쳐지는 헌트의 등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카이슨과 세르디스도 창 밖을 보았고, 헌트의 등이 너무도 슬퍼 보여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따스한 눈빛으로 말없이 헌트를 배웅해주었다. 헌트의 모습이 언덕 밑으로 사라져 그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되자, 세르디스가 여기 온 다른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여기 온 목적은 헌트님의 무구를 돌려주기 위함도 있지만, 의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뢰?" 카이슨이 세르디스의 말이 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론 에리필님께서는 현재 호송자(escorter)로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분을 호송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분이라? 지체가 높은 집안의 사람인가 보군." 에리필이 운을 띄우자 세르디스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모든 것을 순식간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에리필님 말씀대로입니다. 이번에 호송하시게 될 인물은 다름 아닌 현 황제 폐하의 동생이신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 경의 따님이신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 양이십니다. 사실 이건 일급 기밀로 분류된 사항이지만 그분이 에리필님의 실력과 인품을 믿는 다고 하셨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 경이라면 황족 중에서도 무력 면에서는 최강이라는 평을 듣고 계신 분이 아닌가! 그런데 그분이 어찌하여 나 같은 일개 촌민을 알고 계신단 말인가?" "하하, 모르시겠습니까? 하기야 저도 그분께서 말씀해주기 전까진 생각도 못했었지 만요. 프레데릭이라고 하시면 아시겠습니까?" 에리필은 프레데릭이란 이름을 되 내이고 있었는데,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슨이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아, 그 갈색 머리에 갈색 콧수염을 기르고 계시던 분!" 세르디스는 미소를 지으며 카이슨을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그분이 바로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 경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혼자서 여행 중이셨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곳에 갔을 때, 우연히 그분을 뵐 수 있었고 마침 그분도 저를 기억하고 계셔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세르디스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감격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이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에리필을 소개한 것은 아마도 자네였을 걸로 아는데…" "그, 그건…" 세르디스는 카이슨이 정곡을 찌르자 우물쭈물하며 얼굴을 붉혔다. "음, 하지만 내게는 진이라는 제자가 있다는 걸 자네도 알 텐데, 굳이 나를 추천할 필요가 있나?" 에리필은 그의 붉어진 얼굴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에리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사랑스런 제자인 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설혹 황제를 호송한다고 해도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귀여운 후배인 세르디스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일부러 우회하여 물었다. "물론 에리필님께서 진이라는 소년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수련이 현재 에리필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일을 추진시켰던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세르디스의 뜬금없는 말에 에리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하지만 세르디스는 이미 준비해둔 말이 있었기에 당혹해 하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분명 수련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에리필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세상은 강한 무력만 가지고 살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헌트님과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으로 경험을 쌓는다 하지만 실지 경험이란 것은 그런 곳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아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 일정에 에리필님의 제자인 진도 같이 데려가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여 이 일을 꾸민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 진의 상태를 보니 아직까지 에너지 소드를 다루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수련만 하는 것보단 세상을 여행하며 폭넓은 견문을 넓히는 것이 그의 깨달음에도 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세르디스는 긴 말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그리고 그는 에리필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아무리 그럴 듯하게 말을 한다고 하여도 본인이 싫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리필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옆에 있던 카이슨 역시 심사숙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세르디스는 입술이 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깨내 놓았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에리필은 곤히 자고 있는 진을 바라보았다. 진의 얼굴은 무럭무럭 자란 키완 다르게 아직도 많이 앳되 보였다. '진을 가르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그것은 진이 그의 부모와 떨어진지도 2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이고.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리고 진의 부모님은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아! 내가 왜 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까?' 에리필은 생각의 나열이 계속될수록 세르디스의 의견에 동의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두텁게 잠겨 있던 에리필의 입이 드디어 오랜 잠을 깨고 열렸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함세. 그런데 일정은 어떻게 되지?" ~~~~~~~~~~~~~~~~~~~~~~~~~~~~~~~~~~~~~~~~~~~~~~~~~~~~~~~~ 휴우, 모두들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저는 아침 수업 하나를 마치고, 다음 수업이 휴강인지라 이렇게 짬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크크, 근데 오늘 3시부터 전산실 소독을 한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밤에 올리진 못할 거 같군요. 그럼 모두들 즐감하시고~~~행복한 하루 되세요^^ 고 있지 않은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0 회] 68화. 진, 세상으로 나가다. 5. 생각을 정리한 에리필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일사천리로 진행해나갔다. "그 말씀은 제 의뢰를 아니 그분의 의뢰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입니까?" 세르디스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고, 에리필은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일정. 그러니깐 샤넬리 양과 만나는 날은 6개월 후 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세르디스는 일정과 계획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샤넬리에게 왜 호송자(escorter)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샤넬리 양은 메소레다르님의 아들 중 태양 신 벨님을 섬기는 성직자이십니다. 아직은 견습 성직자이시고, 6개월 후에는 견습 성직자가 거치는 순례자의 걸음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호송자(escorter)가 필요한 것입니다. 본래 데이릭 경께서는 군부의 인물로 가드를 삼으시려고 했는데, 샤넬리 양이 딱딱한 군부의 인물들이 싫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데이릭 경께서는 군부의 인물이 아니면서도 믿을 수 있고, 강한 인물을 찾다 보니 에리필님이 적임자로 선택되신 겁니다." 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오랜만에 만난 세 남자는 밤을 도모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세르디스는 아침이 되자마자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산을 내려갔다. 세르디스가 산을 내려가고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습관적으로 아침마다 방문하는 헌트의 손에는 어제 세르디스가 가져왔던 것과 비슷한 봇짐이 들려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근데 아저씨 손에 들려 있는 봇짐은 뭐예요?" 진은 아침 인사를 하다 봇짐을 발견하고 물었다. 그러나 헌트는 그의 스타일대로 여타의 설명 보다 확실한 의사전달로 그의 뜻을 표명했다. "받아라." "예? 아, 고맙습니다." 진은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짐작도 못한 채, 단순한 선물인 줄 알고 고맙게 받았다. 그러나 옆에 있던 두 사람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자네, 정말 저것을 진에게 줄 생각인가?" 카이슨이 놀라 물었다. 그러나 헌트는 단지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네 뜻이 그렇다면 내가 왈가불가 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 카이슨은 그의 뜻이 확고함을 눈치 채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요?" 진은 봇짐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며 헌트에게 물었다. 이에 헌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와 진에게 무구를 입히기 시작했다. 한 쌍의 장갑은 진에게 너무나 컸다. 그런데 그것을 진의 손에 끼우자 저절로 수축하여 딱 맞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언제 무구를 끼웠나 싶게 그것은 살색으로 변해 언뜻 보면 착용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한 쌍의 장화와 비슷한 것을 진의 발에 착용하자 그것 역시 장갑과 똑같은 효능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아머슈트인 나시 티와 비슷한 것을 진의 몸에 착용했 다. 이것은 몸의 색깔과 똑같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가벼워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진의 몸에 헤르디온의 제 7무구를 착용시킨 헌트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헌트는 무뚝뚝하지만 그 나름대로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이것은 너의 것이다. 이 무구의 이름은 헤르디온의 제 7무구라 한다. 그리고 너는 이것 을 한시라도 몸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을 테지만." 헌트는 진에게 헤르디온의 제 7무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에리필과 카이슨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헌트의 얼굴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느꼈음인가! 헌트가 무감정한 음성으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왜 그리 쳐다보지? 안 어울리는 짓거리들은 그만해." 더 이상의 연민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헌트는 관심 꺼달라는 뜻으로 말했고, 그 정도의 말뜻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 두 사람은 시선을 거두며 자리에 앉았다. 진은 신기한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무안해하며 덩달아 자리에 앉았다. "진아, 헌트 아저씨께 감사하다고 말해라. 그리고 너는 이 물건을 너의 목숨처럼 아껴야 할 것이다." 에리필은 진을 보며 말했다. 진은 그의 음성이 딱딱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담고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헌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아저씨 말처럼 저 이 무구를 절대 몸에서 떼지 않을게요." 헌트는 귀찮은 짓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의 인사가 싫지 않은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리고 이 무구는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신 명심할 것은 무구에 의존하는 마음은 버리도록 해라. 그것이 이 무구를 만드신 분의 진정한 뜻이기도 하니까…." 헌트는 말을 하다 헤르디온이 이 무구를 자신에게 만들어 주던 당시가 떠올라 그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자신의 손보다는 앞날이 창창한 진의 손에 무구가 채워지는 것이 헤르디온을 위하는 길이라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숙연한 공기가 방 안을 감돌았고, 잠시 동안 추모의 분위기가 그들의 머리를 숙이도록 만들었다. 추모와 숙연의 분위기가 바람을 타고 방 밖으로 사라질 무렵, 에리필은 준비했던 말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 카이슨은 어제 같이 있었기에 알고 있겠지만, 헌트와 진은 모르는 이야기일 거야." 에리필이 분위기를 잡으며 서두를 꺼내자 두 사람은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제 온 세르디스가 의뢰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어. 한 사람을 호송하는 일인데, 이 일을 위해 진과 나는 잠시 동안 여기를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아." 에리필의 말이 끝나자 예상했던 대로 헌트가 크게 반박하며 나섰다. "그게 무슨 말이지? 진의 수련은 어떻게 되고." "물론 진의 수련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야. 하지만 헌트 자네도 알 거야. 진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육체적인 수련보다 정신적인 깨달음이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 진은 세상을 경험하고 폭넓은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어. 그리고 진도 같이 호송자(escorter)가 되어 일을 하다 보면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에리필은 준비해두었던 말을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 굴복할 헌트라면 애시 당초 헌트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흥, 그런 이유정도라면 나는 진을 데리고 세상으로 나간다는 네 말에 반대한다. 아직 진은 우리에게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우습군." 헌트는 평소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반대했을 테지만, 지금 헌트가 주장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헌트라 하여도 에리필이 내놓을 마지막 카드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물론 자네 생각과 같아. 하지만 내가 진을 데리고 세상으로 나가려는 진정한 이유는 2년 동안 부모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네." 일순 헌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도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아직 진은 너무도 어렸고, 종종 보여주는 우울한 표정은 가족을 그리워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진은 갑자기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에리필이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크게 기뻐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을 그리워하다 지쳐 잠 들 때가 많았던 것이다. 헌트는 진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의 고집은 그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진을 너무도 좋아했다. "그렇군. 내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여행에 나를 동참시켜 다오." 에리필은 헌트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세상을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는 인물이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르디스는 헌트의 이런 반응도 염두 해 두어 에리필에게 해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고대로 입 밖으로 뱉어내는 에리필이었다. "안타깝지만, 자네는 갈 수 없어. 블랙리스트에서 제외시켰지만, 자네를 좀 더 시켜보자는 그곳의 결정 때문이라네." "흥! 그곳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설사 그곳의 7천이 온다고 하여도 나의 의지를 꺾을 순 없다." 에리필은 세르디스의 말했던 대로 헌트가 반응하자, 속으로 웃으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알고 있네. 하지만 모든 것은 진을 위해서야. 자네의 과거를 생각해봐. 비록 힘겨운 전투였다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곳에서는 자네의 죄를 사해주겠다고 했네. 이건 분명 파격적인 일이네." "으음…" 헌트는 에리필의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벌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한 가지 약속은 해야 할 거야. 진이 여행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수련한다는 사실 말이다. 만약 진이 돌아왔을 때, 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너라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거다." "알겠다. 약속하마." 에리필은 헌트가 농담 따위를 할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진심을 담아 약속했다. 그의 이런 진심이 전해졌음인가? 헌트가 진을 보며 말했다. "알겠느냐, 진아?" 헌트의 음성은 분명 자식을 외지로 보내는 어버이의 착잡한 음색을 닮아있었다. 그러나 진은 헌트의 물음에 똑 소리 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마세요. 여행에서 돌아왔을 땐, 아마 아저씨하고 붙어도 일방적으로 얻어터지진 않을 거예요." "좋다. 그 말 기억하고 있으마." 헌트도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긴장된 공기를 일신시키려는지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세상을 향한 진의 첫 도전 은 많은 사람의 염려와 걱정, 그리고 믿음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오랜만에 뵙는 거 같네요. 죄송합니다. 커헉... 오늘 올라와서 9시 수업 들어가고, 체육대회 예선전을 하고, 글을 올리는 겁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피곤해 죽겠습니다. 역시 새벽에 입석을 타고 오는 짓은 미친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네요. 하하하...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1 회] [공지]수정했슴다. 긴 하루,마음의 매듭을 푸는 하루인가요. 그 편에서 베거슨트와 만나는 거부터 끝까지. 그의 심리상태에 관한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크게 수정한 건 아니고요. 앙제님의 의견을 바탕으로 수정했습니다. 커헉... 지금은 저희학교 예대 체육대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살짝 빠져나왔죠. 근데,, 커헉.. 디스켓을 잘못가져와버렸습니다. 이럴 수가!!!! 그래서 지금 당장 못올릴 거 같군요. 참, 이런 공지를 올린 이유 중 하나가...때구님마저도 글이 안올라온다고 하여서...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는... 그럼... 좀 있다 올리겠습니다. 근데 오후에는 제가 나갈 축구와 이어달리기가 있다보니...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p.s 어제 너무도 피로한 나머지 15시간을 자버렸습니다. 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2 회] 69화. 죽음의 자장가 토리우 1. 역사학 교수인 토리우는 고지식한 수업을 하기로 유명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으니, "최고의 교육법은 바로 읽는 것이다."였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신념은 학생들에게 조금도 전달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그를 '죽음의 자장가!'라 부르겠는가! 토리우는 오늘도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서, 교실로 들어갔다. 토리우가 들어오자 학생들은 똥 밟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토리우는 그런 학생들의 표정에 은근히 쾌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느긋한 걸음으로 강단까지 갔다. 토리우는 수업할 페이지를 펼친 후, 검은 뿔테 안에 숨겨진 작은 실눈으로 학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은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라이어스님의 -신대륙의 출현과 그로 인한 여파-에 관해 공부해보겠다." 토리우가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창가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칫, 공부는 무슨. 또 책만 읽을 거면서." 학생은 작게 말한다고 했으나 토리우는 생각 이상으로 귀가 밝았다. "역시 모.범.생. 답게 바슈라는 내 수업의 방향을 잘 알고 있구나. 그런 의미에서 바슈라가 읽어볼까?" 그의 말에 바슈라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자신은 힘없는 학생일 뿐인데. 그러나 바슈라는 그만의 항의인 듯, 천천히 일어나 건성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험험, 아주 옛날, 사람들이 고대라고 부르길 주저 않는 오랜 옛날에 세상은 커다란 두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거대한 두 대륙은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바다에 떠 있었다. 그러나 그 거리는 너무 상당해 두 대륙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큰 파란 공백이 그 사이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시리도록 검푸르게 일렁이는 공백을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대륙 속에서 자신들만의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지가 개벽하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며 하늘에선 세찬 폭우와 우뢰를 동반한 천둥이 쉴 새 없이 하늘을 할퀴었다. 영문도 모른 채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고, 심지어 내륙의 깊은 곳까지 그 피해가 확산되어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일은 더욱더 거세져 두려운 마신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수십일 동안 마치 ꡐ파멸의 신ꡑ 인양 무서운 공포를 몰고 왔던 폭우와 해일이 어느 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뜨거운 태양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사람들은 이제 자연의 재앙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였을지 모른다. 그 지긋지긋하며 저주스러운 재앙이 그들에게 또 다시 찾아 온다는 것은 그들에겐 죽음이상의 무서운 공포였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인간의 속성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자의적이며 아전인수 격인 사고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평온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에 기인한 명백한 오판이었다. 그것은 끝이 아니고 단지 뼈아픈 역사의 한 장을 여는 서막에 불과함을 그들은 그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차츰 그 본래의 위력을 잃고 잔잔하며 평온한 흐름으로 변했던 해일이 갑자기 분노한 마신의 형상으로 온 하늘을 뒤덮을 만한 파천의 힘으로 다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 발생한 해일들의 광란은 한낱 어린아이들의 치기어린 장난이었으며, 본편을 예고하는 전조에 불과했다. 드디어 전무후무하고 경천동지할 초거대 해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대륙을 강타하기 시작했고, 하늘에선 모든 것을 결판이라도 내려는 듯이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후의 날에 벌어질 심판의 의미를 내포한 채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상승작용에 의한 피해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미증유의 것이었다. 그렇게 근 한 달간이나 계속되어진 초거대 해일들과 세찬 폭우들의 광란,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 준 피해는 필설로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복구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 버렸다. 두 대륙의 중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도시가 물에 가라앉는가 하면 강력한 해일의 압력으로 인해 건물들과 함께 수많은 생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껏 가꾸어 놓았던 경작지들은 무지막지하게 돌진하는 그들에게 너무나 힘없이 휩쓸려 가 버렸다. 이렇게 찬란한 문명도 자연의 재앙이라는 마물에게 너무나 쉽게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꿈도 희망도 삶의 의욕도 해일과 더불어 휩쓸려 가 버렸다. 이제 그들에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정신적 공황과 자포자기 밖에 없으며,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적이며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 ꡒ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ꡓ고 그들은 생각했다. 아니 그 당시 그 상황에선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더욱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갈 뿐이었다. 본래 인간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 수없는 대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들의 응전이 오늘날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했고, 그 도전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을 버리고 하나로 똘똘 뭉쳐, 응집되고 단결된 힘으로 강력한 응전의 자세를 취한다는 이 사실은 그 시대에도 통용되었다. 수많은 국가로 나뉘어 각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국가지상주의(Nationalism)를 버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그들은 하나로 뭉치게 된 것이다. 상대는 바로 '우리의 힘으로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을 갖게 하는 주기를 파악하기 힘든 간헐적으로 침범하는 무시무시한 악마와 같은 해일과 폭우였던 것이다. 각 국가의 국왕들은 그러한 비관적인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어쨌든 대처할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이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선 하나가 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들은 상황이 다급한 만큼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빠른 속도로 복잡한 절차를 무시하고, 군신의 맹약을 서명 날인한 문서를 넘겨 각 대륙의 대왕을 옹립했다. 초거대 해일에게 대륙의 동쪽을 내주었던 바이얀 대륙엔 새롭게 정비된 제국을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가 다스리게 되었다.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는 바이얀 대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파이란 국의 국왕이었다. 대륙의 동쪽에 있던 수많은 나라의 국왕들은 이미 피폐해진 국력과 삶에 지치고 배고픔에 지친 힘없는 백성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부였기에 처음부터 대왕으로 옹립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서쪽의 국가들은 본래부터 그 국력이 파이란국 보다 한참 아래였기에 대왕으로 나서길 주저했다. 그러한 때 젊고 야심찬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가 앞장서서 모든 나라의 국왕들을 한자리에 초빙하여 "하나가 되어 응집된 힘으로 이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역설(力說)했다. 화려한 백금발을 휘날리며 강인한 눈빛과 패기만만한 음성으로 좌중을 휩쓰는 그의 모습은 마치 갈기를 한껏 뽐내며 위엄을 내세우는 사자의 모습과 같았다. 수많은 국가의 원수들은 그의 강인한 카리스마 앞에서 조금씩 견지를 굽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당시에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나라 또한 파이란 국가였기에 점차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를 대왕으로 옹립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힌다. 이러한 상황은 대륙의 서쪽지역의 대부분을 해일의 먹이로 준 한 쟈크 대륙에도 일어났다. 인간이란 족속은 흔히 공통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리의 수가 적을 때는 오히려 백가쟁명 식으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수의 무리가 모이게 되면 '찬성(贊成)과 반대(反對)' 그리고 가(可)와 부(否)즉 이분의 논리로 크게 갈려지게 마련이고, 결국은 현실과 명분을 좇아 결론을 내리게 된다. 위의 논리가 바로 두 대륙에서 증명되었다. 한 쟈크 대륙의 경우엔 처음부터 거대한 제국이 대륙을 휘어잡고 있었기에 하나되는 데는 많은 절차도 서류도 필요 없었다. 그냥 각 국의 종이 왕들의 군신의 맹약만 필요할 뿐, 그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바이얀 대륙보다 더욱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한 쟈크 대륙의 대왕으로 옹립된 이는 한 제국의 반 드워드란 인물이었다. 그는 본래 한 제국의 왕이 될 수 없는 첩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무력과 인망으로 그의 이복형인 반 루이스를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반드시 믿을 수만은 없지만 여하튼 이복형인 반 루이스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의 부족함을 깨닫고 반 드워드에게 왕위를 양보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긴 검은 머리를 단정히 묶은 학자풍의 외모를 풍기는 반 드워드는 연약한 겉모습 관 달리 막강한 무력의 소유자였다. 한 쟈크 대륙의 고대 무예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무술을 절정으로 익힌 이가 바로 반 드워드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미풍에 실려 오는 꽃향기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기에 누구나 다 그를 좋아했고, 한편으론 그의 외유내강의 강인한 성격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무(武)의 능력을 두려워했다. 그런 그였기에 대왕으로 추대되는 데 있어 누구하나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각 대륙에 속한 모든 나라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혼인과 귀화 같은 인적 교류와 특별히 그 나라에서만 생산되는 특산품과 생필품들을 교환하는 물적 교류, 그리고 학문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교류를 통하여, 하나의 단일 된 언어와 문화, 화폐 그리고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여러 국가를 통합하는데 반드시 구비되어야 할 모든 조건들이 이미 충족되어 있었기에, 강력한 통일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 각국의 기득권만 포기한다면 문제될 장애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두 대륙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대왕을 옹립하여,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두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들은 우선 해일로 인하여 거처할 곳을 잃은 백성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지급했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의 힘으로 맞설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을 주는 해일에 대항하기로 했다. 우선적으로 해일의 피해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을 내륙 깊은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술법사들과 능력자들을 모아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이 대단위 결계는 해일의 압도적인 거력을 막기 위해 시도된 대륙적인 사업의 효시가 된 것이다." 바슈라가 엄청난 속도로 여기까지 읽자 토리우가 손으로 그만 읽을 것을 명했다. 이에 바슈라는 살았다는 표정과 함께 일어날 때와는 반대로 냉큼 앉았다. ~~~~~~~~~~~~~~~~~~~~~~~~~~~~~~~~~~~~~~~~~~~~~~~~~~~~~~ 사실 요번편부터는 본래 - 프롤로그 -였던 것을 뒤로 돌린 것입니다. 이 부분이 좀 무겁기에 돌린 것인데...하하, 지루해하지 마시고. 읽어주시길... 제 소설의 고대에 관한 설정과 뒤에 이어질 스토리와도 연관되어 있거든요. 그럼 전 체육대회하러 쓩하러 갑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3 회] 70화. 죽음의 자장가 토리우 2. 토리우는 그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음흉해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음흉한 미소를 짓던 토리우가 설명에 들어갔다. "이 책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강대함 앞에서 뭉치는 습성이 있지.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이러한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고. 알겠나?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지 말이다. 인간은 시대가 거듭될수록 왜 발전할까? 이 답이 바로 역사에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냈는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선조들이 했던 실패들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단 말이다. 결국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말은 발전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란 말이다. 알겠나?" 토리우의 물음에 일동은 합창을 하듯 대답했다. "예!" 이에 만족의 웃음을 짓는 토리우가 작은 눈을 빛내며 희망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조금의 노력을 통해 강렬한 의지를 발산하는 희망자를 찾아냈다. "거기 자쿠레이가 다음을 읽어봐라." 토리우가 지목해도 자쿠레이는 도무지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정작 토리우에게 찍힌 자쿠레이보다도 그의 옆에 있는 사람들이 기겁하며 그를 깨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들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음인가? 달콤한 꿈나라에서 한평생 살 것만 같던 자쿠레이가 웅얼대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으음, 왜에?" 그가 실눈을 뜨며 옆 사람에게 짜증내자 금발의 귀엽게 생긴 소녀가 그의 귀에 소곤거렸다. "야, 너 죽음의 자장가한테 걸렸어." "뭐?" 자쿠레이는 너무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에 토리우가 예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났으니, 책은 자쿠레이가 읽어야겠네. 페이지는 옆에 있는 로이니가 가르쳐주고." 로이니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쿠레이에게 페이지를 가르쳐주었다. 잠시 후, 자쿠레이가 약간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냐, 음… 초, 초거대 해일은 자그마치 반년이 넘도록 두 대륙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총동원된 결계가 다행히도 해일의 위협을 근근이 막아내고 있었다. 수백 미터가 넘는 해일이 지면을 강타하는 힘은 상상을 불허했다. 그렇게 괴롭고 힘든 시간은 흘러가기만 했다. 악화된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한 채 의미 없는 시간은 속절없이 그렇게 계속 흘러가고만 있는 것이다. 해일의 위협 속에서 언제 깨질지 모를 결계를 부들부들 떨며 바라보기를 일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설상가상으로 이제 대륙의 처처에 지진까지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탁자위의 찻잔이 약간 흔들릴 정도의 약진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약진은 강진으로 변해갔다. 마치 대지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깡그리 삼키려는 듯 그 큰 입을 벌리고 있는 흉악한 악마를 연상케 하는, 그 강렬한 지진은 대륙의 곳곳에 균열을 만들었고, 상황은 점차 더욱더 악화되어, 대륙에 존재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서서히 삼키고 있었다. 대륙에는 이제 안전지대가 없었다. 사람들은 '또 이번엔 무어냐?' 탄식하며 절망에 몸을 떨었다. 해일에 겹쳐 또 지진이라니…… 이것은 두 대륙의 대왕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지의 술법사들이 나서서 막아보려 했지만 워낙 대단위로 퍼지는 지진이었기에 그들의 힘이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절망의 터널을 의미 없이 지나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애달픈 소망을 뒤로한 채 말이다. 온 하늘이 암흑으로 변했다. 시커먼 구름은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고, 그 구름들의 중심점에선 간간히 어둠을 뚫고서 한줄기 황금빛 선이 그어졌다. 이상하게도 폭우는 없었다. 해일도…지진도… 다만 소리 없는 황금빛 번개와 시커먼 구름들이 자리 잡은 암흑의 하늘만이 조용히 자리할 뿐이었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대다수 사람들은 암흑의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들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의 끝을 마무리했다. "저 현상들은 대체 무슨 재앙의 징조이며, 저것들은 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 신은 진정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 인간들을 영원히 버리는 것인가?" 이렇게 자학하며 자문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두 대륙의 두 대왕들 역시 자신들의 무능함을 탄식하며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 우리 인간들의 힘이란 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 한 번의 재앙도 이렇게 막기 어려운데, 이번엔 하늘이 우리에게 또 무엇을 내리려 함인가? 내가 언제 이런 무능함을 맛보았는가? 하늘을 오시하며 나의 날개를 천지에 펼쳤거늘, 하늘은 두 번의 재해와 어둠만으로 나를 이렇게 무너뜨리는구나." 폭풍전야는 생각 외로 오래갔다. 간간히 대륙을 흔드는 진동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극 샘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분명 무언가 천지가 개벽할 일이 조만간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될 것임을 믿었다.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아이러니컬한 믿음.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하늘을 보게 된다. 이 때까지의 고요와 침묵은 천지개벽의 전주곡이었다. 천둥신의 망치가 세상을 온통 뒤흔들었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거센 폭우와 용솟음치는 거대한 해일, 그리고 대지를 정신없이 흔드는 지진. 이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순간에 터져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이 지는 어느 날에 생긴 일이었다. 초거대 해일 뒤에 숨어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욱한 검은 안개가 느멀느멀 기어 나와 시각을 차단한다. 그리고 몇 번의 해일의 강력한 공격을 용케도 견디던 결계도 결국 그 한계를 드러내며 무너져 버렸고, 또 인간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한탄하며 사나운 해일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야 했다.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와 강렬하기가 인간의 상상을 한참 초월한 황금빛 번개는 인간의 감각을 정지시키고, 사고를 마비시켜 버렸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멍한 상태로 오들오들 떠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것이다. 이제는 끝이었다. 진정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인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막을 내리는 일만이 남았다. 그러나 조물주께서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 연민의 정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제 자연의 대재앙은 끝이 났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비규환의 절규도 이제는 없었고, 생지옥 같은 참혹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은 일순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렸고, 태고의 신비로운 적막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동전의 양면처럼 파괴의 기운의 다른 면인 허허로운 기운이 온 세상을 덮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전무후무한 초거대 해일도, 세차게 쏟아지던 폭우도, 천둥신의 노여움도, 강력한 지진도…….이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다만 대륙의 해안가에 알 수 없는 검은 안개의 장막만이 남아있는 것을 빼놓고는 말이다. 그리고 악몽 같은 사건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즈음 영원히 속살을 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검은 안개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옅어지고, 흐릿하게나마 호기심의 뒤편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난 뒤 남은 안개도 햇살의 따가운 눈총에 견디지 못하겠는지 슬그머니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태초의 혼돈(CHAOS)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남빛 바다의 공백을 메운, 아니 두 대륙을 연결시켜 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신천지가 그들의 눈앞에 분명한 현실로 다가왔다. 그들이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기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만들었던, 그 검은 안개 뒤의 신비로움이 마침내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마침내 지적욕구의 다른 이름인 호기심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인간들의 호기심이란?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참으로 위대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그토록 혹독한 시련을 겪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력이 남았는지 검은 안개 장막 너머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호기심이란 작용에 대한 반작용 역할을 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위대한 능력중의 하나인 제 육감각인 육감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검은 안개 너머엔 더 이상 파아란 공백이 있지 않을 것 같군. 모르긴 해도 아마 부피가 큰 마치 거대한 땅덩어리 같은 것이 떠 있을 거야."라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그 검은 안개의 장막이 하루 빨리 걷히기를 소원했다. 그들의 육감은 적중했다. 크기를 측량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땅덩어리가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던 것이다. 두 대륙을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큰 대륙이 탄생한 것이다. 이때까지 온 대륙을 폐허로 만들고, 인간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이끈 그 끔찍한 대재앙은 위대한 탄생에 반드시 수반되는 필연적인 자연의 현상이었던 것이다. 마치 생명의 탄생을 엄숙하게 만들며, 기쁨을 배가 시키는 해산의 고통이랄까? 어쨌든 두 대륙 사이에 근원을 알 수 없는 하나의 큰 대륙이 그렇게 많은 사연을 가지고 위대하게 탄생한 것이다. 어느 정도 피해 복구가 이루어졌을 즈음. 호기심이 왕성한 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이러한 일은 바이얀 대륙과 한 쟈크 대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순수한 연구를 위한 저명한 학자들과, 부(富)를 좇는 숱한 장삼이사들… 그들은 인간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전인미답의 처녀지를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는 의문. "바다에서 떠오른 대륙이 분명할 터인데, 땅에 염분기가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그들은 이 사실이 너무나 신비하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 의문에 대해 여러 가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확실한 물증이 있어 모든 사람이 주저 없이 동의할 수 있는 정설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신대륙의 거의 중간 지점에서 동진과 서진을 하던 두 대륙 사람들의 역사적인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다들 모험가였으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낭만의 사나이들이었고, 그리고 대자연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며, 호연지기를 키우는 그런 족속들이었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서로를 당황하게 하고 놀라게 한 것은 처음 보는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였다. 바이얀 대륙의 사람들에겐 다양한 머리색깔이 존재했지만 대부분 금발 아니면 갈색 계통의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고, 녹색계열의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보석안의 소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반하여 한 쟈크 대륙 사람들은 검은 색 일통의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에게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엔 서로의 외모의 특이함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어 그들은 똑같지는 않지만 전혀 다르지도 않은 언어체계에 놀라게 되고, 어설프지만 대화라는 것을 통해 서로의 출신 대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바다 너머에 또 다른 대륙이 존재한다니…….그리고 지금은 서로에게 갈 수 있다니…… 이것은 엄청난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까지." 토리우는 어느 정도 잠에서 깬 듯한 자쿠레이를 앉히며 또 다시 설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내가 뭘 설명하려는지 알겠지? 리오스군 자네가 말해보게." 지목당한 리오스는 앞서의 이들과는 다르게 모범적인 자세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토리우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학생답게 조리 있게 대답했다. "읽은 부분 안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중에 하나인 인간의 호기심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 책에서 말했듯이 인간이란 호기심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이야말로 인류를 살찌우는 자양분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극한상황에까지 몰렸다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호기심의 행동패턴만 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사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호기심으로 인해 두 문명이 교류하고, 발전했다는 것은 책에서도 말했으니 언급해봐야 입만 아프겠죠. 정리하자면 우리는 역사의 교훈에서 인간의 호기심이야말로 얼마나 큰 힘을 지닐 수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리오스는 결론을 토리우가 좋아하는 역사와 관련짓기로 마무리했다. 아니라 다를까 토리우는 입가에 함박만한 웃음을 걸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미소에 여러 사람이 맘 고생할까봐 슬며시 미소를 거두며 다음 학생을 지목했다. "리오스와 절친한 튜터군이 다음을 읽어보세요." 그는 자기 딴에는 귀여움을 떤다고 떨었으나, 학생들은 역겨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 아마 다음 화가 토리우의 마지막 등장일 거 같습니다. 커헉. 그러니 부디 참아주시길...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4 회] 71화. 죽음의 자장가 토리우 3. 튜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걸한 음성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장차 일대 변혁을 예고하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역사적인 첫 만남이 그저 그런 우연이란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의 대륙으로 돌아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전했을 때, 온 대륙이 발칵 뒤집을 정도로, 그 파문과 놀라움은 실로 대단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어렵다고 한다. 사랑도, 우정도, 일도, 학문도, 문화적 교류도……. 그리고 언어도. 첫 번째 만남 이후 두 대륙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두 대륙을 잇는 교통로를 만드는가 하면, 아예 중앙대륙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앙대륙은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천연의 보고이자 참으로 신비로운 곳이었기에, 사람들은 환상과 동경심으로 그 신대륙을 바라보았고, 꿈과 이상을 좇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향(UTOPIA)인 신대륙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래서 중앙대륙은 두 대륙에서 찾아오는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언제나 붐볐다. 언어, 경제, 정치, 역사, 법제, 철학 등 인문의 영역 뿐 아니라, 천문 지리를 연구하는 자연의 영역, 그리고 주술과 기(氣)로 대변되는 정신의 영역 등, 각 영역에 속한 전문학자들은 자신의 학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모여, '스칼라스궤어'라 명명한 토론의 광장을 만들었다. 이런 류의 토론의 광장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생겼고, 그 수가 짧은 시간에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났다. 그 곳에서는 철광석을 용광로에 용융시켜 순도가 높은 철을 뽑아내듯이, 많은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여, 지식의 독선과 오류와 모순과 같은 불순물을 제하여 버리고, 누구나 인정하고 공감하는 고품격과 고차원의 불변의 원리와 법칙들을 도출하여, 양 대륙의 인문, 자연 ,정신 등 각 영역에 발전적 방향으로 크게 기여하였다. 태생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생한 모든 것들이 큰 충돌 없이 조화의 틀 속에서 급속히, 그리고 쉽게 교류가 가능했던 것은, 아집과 독선이라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상대의 존재와 공생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단단하게 제련된 강철도 녹이 쓸 듯이, 본래 선한 뜻과 순수한 동기와 우정어린 파트너십과 이타적인 사랑으로 맺어진 강한 유대(紐帶)도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그 본래의 모습이 탈색되고, 느슨해지고, 삭아져, 결국 파탄으로 결말을 맺고 마는 것이 인간관계의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상례이다. 두 대륙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며 그리고 우정이란 지고의 가치가 저변에 깔린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부터 선(善)을 가장한 악(惡)의 또 한 모습인 '이기심'이란 존재가 매우 역동적인 힘으로 두 대륙 사람들의 마음에 찾아와, 각자의 제국만이 명분과 실리의 유일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참소하였고, 마침내 양 대륙 사람들은 헤게모니 쟁탈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는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양측은 서로 아주 강한 톤으로 자신들의 우수성을 강변하며, 상대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철저히 무시하고, 배격하며, 핍박하였다. 한편 다른 영역에서의 가치관과 전통과 형식의 차이는 '상황윤리'란 이름으로 어느 정도 수용이 되고, 타협이 되며, 양보가 가능하였지만, 각 대륙의 고유한 종교는 내재한 특성상 다른 영역과는 그 궤를 달리하기 때문에 타협의 대상이 아닌 파괴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믿는 종교적 신념은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지순의 가치라고 여기며, 스스로를 이데아의 동굴에 가두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패러다임의 틀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종교에서의 화합과 통일은 요원한 것이 되며, 평행선의 한 선만을 가지고 무한질주하는 보기에도 참으로 아슬아슬한 부조화의 곡예를 하는 것과 진배없다. 지극히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이 종교적 신념은 이기심이란 존재가 공략하기에 아주 용이한 최적의 표적이다. 이렇게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하여 시발된 감정의 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넓고 깊게 벌어져 드디어 삶의 모든 영역으로 까지 확장되었으며, 서로는 만나기만 하여도 사사건건 충돌하였다. 그 결과로 서로를 불신하고, 질시하며, 미워하는 마음이 정점에 이르렀으며, 이제는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한 회복 불능상태로 치닫고 말았다. 이렇게 의미 없는 싸움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동안 군부에서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매파들이 득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의 논리로 맞대응하며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진 백성들을 선동하고, 적개심을 고양시켜,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켰다." 튜터는 이쯤 읽었으면 되었겠지 하는 생각에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토리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토리우의 눈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고, 절로 숨이 콱콱 막히는 책 속에 박혀 있었다. 한 마디로 '계속 읽으라는'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던 것이다. 이에 튜터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읽어나갔다. "두 대륙의 대왕들은 이런 일련의 일촉즉발의 위기의 상황들을 예의주시하며, 반전시키고 호전시킬 묘안을 찾기에 골몰하였다. 사실 양 대륙의 대왕들은 공동의 적인 대자연의 재앙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옹립되었다. 그러나 주적인 자연의 재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금. 그렇게 강하게 연합된 통일제국의 결속력도 많이 느슨해졌다. 다수의 왕들은 통일제국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일부는 자치권을 최대한 부여하는 연방(聯邦)의 성격이 짙은 제국으로 바꾸기를 원했다. 어쨌든 권력의 독점을 위해 암투를 벌이고 있는 이러한 미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양 대륙의 대왕들의 입지는 자연스레 좁아졌고, 통치력도 크게 약화 되었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위험스러운 사태에 연이어 찾아올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대전쟁을 예견하고 있던 두 대왕들은 크게 근심하며,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마음을 정했다. 양 대륙의 대왕들의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수만리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초능력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서로의 마음을 읽은 양 대륙의 대왕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충직한 신하들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사로 보내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양 대륙의 군부의 실권자들은 그들을 중간에서 나포하였으며, 진짜 친서는 폐기시키고, 그들 손에 의하여 날조된 악의가 가득 찬 전쟁을 선포하는 내용이 담긴 가짜 친서를 양 대륙으로 보내었다. 그 가짜 친서가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양 대륙의 백성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졌고, 그 비등하게 된 여론으로 인하여, 조정의 공론 또한 전쟁을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양 대륙의 두 대왕들은 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갖은 노력을 다 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명임을 깨닫게 되었고, 두 대왕은 온 궁궐을 떨어 울리는 한 맺힌 절규를 장탄식에 실어 토하며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지도자가 필요하므로 두 대륙의 군부 실세들은 황실의 지친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실권 없는 명목상의 대왕으로 세웠다. 이렇게 하여 두 대륙간의 전쟁이 시작 되었고, 후에 사가들은 이 전쟁을 크샨트라 대전이라 명명하고, 명분과 피해규모와 전쟁기간에 있어 사상 유례가 없는 전쟁으로 정의했다. 사실, 크샨트라 대전은 자그마치 100여 년간이나 서로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엄청난 상처와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준 참으로 명분이 없는 전쟁이었다. 서로의 힘이 너무나 백중했기에 몇 대(代)를 대(代) 물림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그리고 명분이 크게 퇴색되어 버려,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며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는 이 전쟁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은 한마디로 말이 아니었다. 국토는 피폐해지고, 민심은 흉흉하며 인정은 메말라 먹을 것이 없어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민생고로 인하여 인륜과 도덕은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이며, 살인을 비롯한 강․절도 사건은 끊이지를 않고, 군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며 병영을 탈영하는 병사들…… 전쟁을 계속 수행해야 할 명분도 없고, 그렇다고 종전을 선언할 명분도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양 대륙의 대왕과 중신들은 결국 최후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크샨트라 대전의 막을 내리게 한 '평화의 언약'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문서 한 장이었다 . 두 제국의 후계자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두 대륙간의 결혼을 권장하며 독려하기 위하여, 이 정책에 따르는 선남선녀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많은 혜택을 주었다. 결국 명분 없는 두 대륙의 백년대전은 정략결혼이라는 고육지책에 의해 끝을 맺게 된다. 두 대륙은 10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전투부문에서 만큼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게 되었다. 전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의 개발과 개인적인 무의 능력이 실전을 통하여 비약적으로 발전을 보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ꡐ힘이 곧 정의이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ꡑ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이었기에 그 당시 사람들은 힘을 모든 덕목의 최고 정점에 두고, 숭배하였으며,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피나는 수련과 연구에 정진했다. 그 결과 경천동지할 놀라운 무예들이 속속 등장했다. 어쨌든 두 대륙은 우여곡절 끝에 하나가 되었고, 거대한 대륙은 초거대 제국의 발아래에 놓이게 된다." 참으로 길고 길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도 그 마지막을 장식한 이가 튜터였다. 튜터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목이 콱콱 막히는 듯했다. 만약 목이 쉰다면 다 저 재수 없는 토리우 새끼 때문이라 며 튜터는 가슴 속에 날카로운 칼을 갈았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그리고 토리우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책 한권을 옆구리에 끼우고 교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튜터가 목소리를 낮추며 리오스에게 말했다. "내 졸업하기 전에 저 새끼 안 죽이면 내가 인간이 아니다." 튜터의 호언장담에 리오스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 여러분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화부터 진의 이야기가 나오니... 이제부터 우리 모두 즐겨보자구요...하하... 그런 의미로 후속타 바로 들어갑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5 회] 72화. 푸근한 쉼터, 그것은 바로 고향 1. 뜨겁던 태양도 점점 사그라들며 붉은 황혼이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암시하는 가운데, 하늘 밑 땅 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에 참여한다. 그러나 획일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반동분자와도 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개구쟁이 내지는 놀기만 좋아하는 꼬마 녀석들이라고 부른다. "파트야 집에 돌아가자 꾸나." 푸근한 미소가 아름다운 삼십 대 초반의 부인이 한눈에 보아도 악동임에 틀림없는 아이를 불렀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 놀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던 부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은 파트가 좋아하는 바비큐인데, 늦게 가면 아마 푸트가 다 먹어 버릴 거야. 이를 어쩐담." 그녀는 입가에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아들이 그녀의 품으로 안기길 기다렸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고 있던 파트가 바비큐란 소릴 듣자마자, 쏜살같이 엄마에게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순식간에 엄마에게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빨리 가자. 푸트가 바비큐 먹기 전에 빨리 가자. 엉?" 그녀는 아들의 귀여운 모습에 싱그러운 미소를 그리며 집으로 향한 행렬에 동참했다. 진과 에리필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혼도 점차 사라지고, 어두컴컴한 밤이 온다고 말해주듯, 거리를 누비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부모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 었다. 진은 그들의 화목한 모습을 보며 한시라도 빨리 부모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의 이러한 마음은 에리필에게 강렬히 전해져 그들이 바이사카 시에 도착 예정일로 정해놓은 날보다 무려 열흘이나 앞당겨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똑똑! 진의 손은 마치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변화는 부모님을 만난다는 긴장과 기대감이라는 감정이 뒤섞여 가슴벅차오름이라는 이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진은 다시 한번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아까보다 훨씬 세게 두드린 진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이사 가신 거 아냐?' 그러나 그의 걱정은 뒤에서 들려온 친숙한 음성에 의해 단순한 기우였음이 판명되었다. "거기, 누구세요? 아!" 진은 꿈에서도 듣기 원했던 그 음성이 등 뒤에서 울리자 일순 굳어버렸다. 그러다 심호흡을 몇 번 한 진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리오네는 한 눈에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고 복받쳐 올라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진아!" 아리오네는 들고 있던 찬거리들을 바닥에 내던지며 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진도 그녀를 강하 게 끌어안았다. "정말 나의 사랑스런 아들 진이 맞니?" 아리오네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키와 비슷했는데, 지금은 훌쩍 커 버려 조금은 어색했다. "맞아요. 진이 맞아요. 흑흑흑." 진은 그녀의 눈에 맺혀 있는 습막을 보자 지금껏 참고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리오네의 눈에서도 맺혀있던 습막이 볼 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눈물 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기쁨과 격정에 못 이겨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 그들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울던 아리오네는 진을 달래며 정신을 수습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진의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중년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예전에 한 번 보았던 얼굴임에 틀림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저, 혹시 예전에 우리 아이들을 호송하셨던 분 아니신가요?" 에리필은 그녀가 자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자 매우 기꺼워하며 인사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때 그 호송자(escorter)입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진을 가르쳤던 사부이기도 합니다." "진의 사부가 되셨다는 이야기는 리오스의 편지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거 밖에서 이럴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오랜만에 아들을 봐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런 결례를 범했어요. 이해해주세요." 그녀는 귀부인들이 자랑하는 기품을 자연스레 몸 밖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에 에리필은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 드디어 진으로 돌아왔군요. 간만에 잡담을 주저리 늘어놓겠습니다. 오늘 밤을 샜습니다. 이유인 즉, 중간고사 대체용 리포트가 두 개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커헉.. 그리고 12시까지 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고 글을 올리려고 도서관 컴퓨터실에 왔는데, 이런...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눈물을 머금고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잤습니다. 흑흑흑 일어나니까 6시더군요. 선배랑 저녁 먹고, 부랴부랴 뛰어와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그러니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제 글에 리플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요. 토리우의 지겨운 수업을 잘 참아주신 여러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6 회] 73화. 푸근한 쉼터, 그것은 바로 고향 2. "호호호, 그랬었어요? 우리 진이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애였구나?" 아리오네는 에리필의 말을 듣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터트리는 교소는 여느 젊은 처자보다도 낭랑하고 맑은 음성이었다. 진은 에리필이 부끄러운 과거사를 꺼내어 아리오네에게 알리는 것이 못마땅했던지 볼을 부풀리며 흥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썹하나 까딱할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진이야 어떻게 하든 대화에 몰두했다. 물론 그 대화의 대부분이 진에 관한 이야기긴 했지만. 끼익! "여보, 나왔…" 문이 열리며 중후한 중년인의 음성이 방 안을 울렸다. 그러나 그의 인사는 끝을 맺지 못했다. 집 안에 낮선 남자가 그것도 두 사람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온은 경계의 눈빛으로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진의 눈가에 맺히는 하얀 수막을 보며 비로소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아니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여도 유리온은 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모습이 변한다 하여도 피로서 이어진 아버지와 자식간의 유대는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지, 진아!" 유리온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진을 불렀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진은 유려한 동작으로 의자에서 빠져나와 유리온의 가슴에 안겼다. 유리온은 묵직한 무게감에 아들이 컸음을 느꼈다. 순간 가슴 뿌듯함을 맛보는 유리온이었다. "하하, 녀석 잘 지냈냐?" "물론이죠. 제가 누구 아들인데요." 부자간의 대화는 정겹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를 보고 있을 만큼 질투의 여신 아리오네의 마음은 넓지 않았다. "여보, 진의 사부님이신 에리필 씨도 오셨어요.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되는 게 예의 아닌가요?" "아, 그렇구려. 하하, 내 정신 좀 보게." 유리온은 진의 등에서 손을 뗀 뒤, 뒷머리를 긁적이며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에리필에게 허리를 숙이며 진심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에리필씨에 대한 이야기는 리오스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미흡한 아들을 지도 해주 신 거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리온의 정중한 인사에 에리필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죠. 진과 같은 재능 있는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사부된 자에게는 흥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하, 이거 참. 하기야 원래 저 녀석이 싸움하나는 기막히게 잘 했죠." 유리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지한 모습을 버리고 팔불출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보기 흉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사랑이 철철 넘치는 가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에리필은 대화를 나누는 틈틈이 진의 가족을 간단히 평했다. '진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좋구나. 리오스도 그렇고, 진의 부모들도 그렇지 않은가!' 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다 아리오네의 손에 들려져 나오는 음식들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이야, 엄마의 맛깔 나는 음식이다. 도대체 얼마 만에 먹는 거지?" 순식간에 식탁위에 상을 차린 아리오네는 남정네들을 지긋이 째려보며 한 마디 했다. "대화도 좋지만, 우선 밥부터 먹고 하세요." "넷, 마님. 말씀대로 따르겠나이다." 유리온은 고전극의 말투를 따라하며 에리필에게 식사를 권했다. 진은 오랜 만에 맛보는 엄마의 음식에 감격하며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뜨거운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리오네의 음식에 푹 빠진 진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것도 중단한 채, 흐뭇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그만큼 진은 먹기 바빴다. "꺼억!" 진의 트림을 기점으로 하여 테이블 위에 있는 그릇들은 모두 빈 그릇들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테이블 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란 것이 다리 하나를 길게 뻗은 채, 포만감에 젖어 자기 배를 툭툭 두드리고 있어, 영락없이 먹보의 모습이었다. 잠시 후, 다시 한번 트림을 한 진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역시 엄마 음식이 최고예요. 나중에 내 색시가 될 사람은 엄마처럼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었 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네 엄마 요리 솜씨를 따르려면 일류 식당의 주방장 정도는 데려 와야 될 거다. 암." 진의 아부에 유리온까지 가세하자 아리오네는 간만에 행복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아들을 외지로 보내 놓은 부모 심정이 그러하듯 이들 부부도 사는 게 사 는 거 같지 않고, 또 왜 이리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지 시간의 신 클라크를 향해 불평을 터트리 곤 했었다. 그러다 오랜 만에 나타난 아들 녀석이 아부를 해 대는데 거기에 넘어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에리필은 세 사람의 표정에서 가식 없는 평온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와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그의 내심을 짐작하기라도 했는지, 유리온이 자신에게 다가와 두 손을 꼭 붙잡으며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무인이라면 남에게 자신의 무술을 함부로 사사하지 않는 다는 것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들을 이렇게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어 주신 거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리온 부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이 예전의 악동으로 이름을 떨칠 때완 천양지차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부모의 직감이랄까? 진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질은 그들이 알고 있던 그때의 것보다 훨씬 성숙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리필은 유리온의 인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물론 진을 가르친 노고에 대한 감사 인사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도 생각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자선 사업가가 아니었다. 진이 크면 에리필은 그에게 무슨 일을 시킬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입장이었기에 에리필은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하다 겸양을 떠는 것으로 그 자리를 모면했다. 이런저런 마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대화는 무르익어 밤이 깊어져도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동물은 낮과 밤을 지키는 착실한 동물이기에 그들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화도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도 몰랐네요. 자, 남은 이야기는 내일로 미뤄놓고, 밤의 은총을 즐기러 갑시다. 에리필님은 진과 같은 방에서 주무시면 될 겁니다." 유리온의 친절한 설명에 에리필도 밤 인사를 한 뒤, 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방은 예전에 진과 리오스가 함께 사용했던 방이었다. 방은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맛이 느껴져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으며, 누구의 집과 달리 매일 청소했는지 먼지 하나 없었다. 에리필은 간단히 씻고, 방으로 들어와 진에게 말했다. "여기서 너희 두 형제가 살았었구나." "……." 진은 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느릿하게 2층 침대 쪽으로 다가가 나무 결을 따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십초가 흘렀을까? 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형하고 여기서 매일 같이 자고, 같이 생활했던 곳이 이곳이에요. 정말 보고 싶어요. 아침에 형이 깨우면 간단히 씻고 내려가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 나가서 노는 것. 이것이 매우 당연한 일인 줄 알았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빠, 엄마가 있기에 형이 있기에 가족이 있기에 그런 행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거예요. 새삼 느끼는 거지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밖에서 활개 치면서도 집에서는 어린 양이 되는 이유는 부모님은 저의 목자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나운 늑대가 나타나도 저를 지켜주시는 목자. 부모님이 저를 지켜주실 것을 믿기에 저는 어린 양이 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전 그것을 부모님과 떨어져서야 알 수 있었… 흑흑흑." 진은 마지막 말을 맺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눈물은 만남과 반가움의 눈물이라기보다는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죄송스러움이 묻어나 있는 참회의 눈물이라 할 수 있었다. 에리필은 우는 진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진을 안고 있는 그의 몸은 그의 슬픔에 감염되어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사고는 부러움의 감정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다. '후우, 나도 결혼을 했다면 진과 같은 아이가 있었을 텐데. 비록 내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왠지 그들 부부가 부럽다는 마음만큼은 부정할 수 없구나.' 진은 한참을 울었다. 그렇지만 크게 울진 않았다. 크게 울면 밑에 있는 부모님이 눈치 챌 거라는 걸 진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나 이 모습이 더욱 가련해 보인다는 사실을 진은 모르고 있으리라. 진의 흐느낌도 조금씩 줄어들어 이제는 차분히 가라앉은 호흡만이 에리필의 가슴에 전해졌다. 에리필은 진이 진정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그래,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곁에 있는 것들에는 소중함을 부여하지 않는 특이한 족속이란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캰차크 부족에서는 일정 나이가 되면, 아들이든 딸이든 차별하지 않고, 모두 부모와 떨어져서 살게 된단다. 그리고 절대 삼년 안에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제한을 걸어두고 훈련을 시키는 거야.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캰차크 부족 사람들의 반 만 닮아도 세상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거라고 말한단다." 에리필은 말을 하다 진의 호흡이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느끼며 조용한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에리필은 진을 2층 침대 중 아래쪽에 눕히며, 못 다한 마지막 말을 들려줬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된다면 여기는 더 이상 현실 세계가 아닐 거라고 말한단다. 사실 캰차크 부족 자체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부족이거든…" ~~~~~~~~~~~~~~~~~~~~~~~~~~~~~~~~~~~~~~~~~~~~~~~~~~~~~~~~ 오늘 저희 아버지 생신입니다. 때마침 부모님의 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흐흐흐, 모두 저희 아버지를 축하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7 회] 74화. 푸근한 쉼터, 그것은 바로 고향 3. 진이 에리필의 가슴에서 울다 잠이 들 무렵, 밑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여보, 우리 진이 정말 많이 컸죠?" 아리오네는 옆에 누워있는 유리온을 보며 말했다. "정말 많이 컸지. 키도 마음도 모두가 무럭무럭 자란 거 같더군. 정말 그분에게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해요. 우리 손을 벗어나서 저렇게 자랐다고 생각하니…" 아리오네는 서글픈 기분이 들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모습을 유리온 역시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가정의 기둥이기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본래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밖으로 돌리라는 말이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거예요. 아, 그런데 정말 2 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예요." "후후, 밤마다 진이 보고 싶다고, 리오스가 보고 싶다는 당신 말 때문에 내가 잠 못 이룬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고 있어?" 유리온은 능글맞은 미소를 입가에 걸며 아리오네에게 말했고, 그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정말요? 죄송해요. 전…"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농담. 나 원 농담도 못 하겠네." 유리온은 이런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물을 만지듯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어머, 이이도 참. 우리 나이가 몇 인데." "허허, 사랑하는 아내를 안는데 나이가 웬 말일까?" 유리온과 아리오네는 침대 위에서 나이완 어울리지 않게 서로에게 장난을 쳤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리오네가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좀 있으면 또 떠나겠죠?" "누구? 아, 우리 진이?" 두 사람은 순간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또 다시 더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그들의 기분이 급강하한 것이다. 그렇게 반전된 분위기 위에서 누워있던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보내야 …" "보내야 …" 두 사람은 동시에 튀어나온 말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상대에 게 서로의 생각을 전했고, 그들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지며 침울한 분위기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해 집밖으로 쫓겨 나가버렸다.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가에 걸린 웃음을 채 수습하지도 못한 유리온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왕 보내줄 바에 기분 좋게 보내주어야겠지. 그리고 당신은 진이 여기 있을 동안만이라도 맛있는 음식들을 실컷 먹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할 거구. 한 동안 음식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말이지. 후후." "자신 있어요. 믿어보라 구요. 진이 밖에 나가더라도 엄마의 맛을 잊지 않도록 만들 거라 구요." 아리오네의 자신에 찬 모습을 보며 유리온이 따스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아리오네 역시 포근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진이 돌아온 첫날, 그들의 부모는 그가 떠날 그 순간까지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아마도 이때의 진은 그의 부모가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리라. 눈을 감고 호흡을 한다. 시원한 공기가 입과 코를 통하여 들어와 자연의 청량함을 온 몸에 전달해주고 다시 입과 코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두 눈을 감고 있던 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차츰 드러나는 익숙한 풍경들이 진의 망막에 잡히자 그는 고향에 돌아온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자, 돌아왔다." 진은 예전 에리필이 산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이 지금 자신의 기분과 같으리라고 생각하며 바이사카 시를 돌아다녔다. 바이사카 시의 모든 풍경들은 색이 바랜 종이처럼 무채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곳에 진의 눈빛이 지나가면 고유의 유채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바이사카 시가 진을 환영하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진은 일찍 일어나는 습관에 따라 잠에서 깨어나 기(氣)수련을 한 뒤, 그의 주무대였던 곳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배꼽시계가 아리오네의 아침 식사 시간을 알리자 나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끼익! 진을 뺀 나머지 세 사람은 아침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리오네가 승리의 브이 자를 그리며 말했다. "내 말이 맞죠. 진의 밥 먹는 시간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내 말이 맞죠. 호호, 오늘 설거지를 부탁해요." 진은 그녀의 난데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유리온이 울상을 짓는 걸 보고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아빠는 왜 엄마하고 내기를 해요. 내기해서 한 번도 이겨본 적도 없으면서요." 진은 자리에 앉으며 유리온의 단순함을 놀렸다. 그러나 진은 2 년 동안 집을 비워선지 유리온 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네가 여전히 밥만 축내는 동물인지 몰랐단 말이다. 어찌 2 년 동안 수학했으면서도 돼지처럼 밥시간은 잊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니?" 진은 그의 강렬한 반격에 잠시 정신을 놓쳤다. 그렇지만 진은 여기서 굴할 정도로 여린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뭐니 뭐니 해도 올슈레이 유리온의 피를 받고 태어난 불굴의 사나이가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불굴의 사나이라 자칭하는 그도 아리오네 식 특제 요리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으흠…" 진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정신을 혼미케 하는 마력적인 냄새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그의 시선은 냄새의 근원지로 빼앗겨버렸다. "흠흠, 뭐 그렇다고 해요. 흥, 난 엄마의 맛있는 요리나 마음껏 먹을 거예요." 진은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음식들을 입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기 시작했다. 유리온은 진이 어떤 수를 가지고 반격을 할지 기대하고 있다 역시나 자신의 아들은 돼지였다는 사실에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도 맛 나는 요리로 손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음, 진이가 돼지면, 그의 아비인 나는…… 역시 돼지인가! 커억!' ~~~~~~~~~~~~~~~~~~~~~~~~~~~~~~~~~~~~~~~~~~~~~~~~~~~~~~~~ 학교 식당에서 돈까스를 먹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밥이 리필되는데...제가 계속 돈까스도 밥을 리필해먹으니까, 아줌마 왈. "돈까스는 밥 리필 안돼~~~" 충격이었습니다. 췟!!!!!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8 회] 75화. 푸근한 쉼터, 그것은 바로 고향 4. 아침 식사는 유리온이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식사의 마무리는 역시나 진의 트림소리였다. "꺼억! 잘 먹었습니다." 진의 깔끔한 마무리로 아침의 일과 중 하나를 해치운 그의 가족과 에리필은 잠시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유리온이 일하러 나가고, 아리오네가 설거지를 시작하자, 진과 에리필은 소화도 시킬 겸, 뒤뜰로 나갔다. 에리필은 검집에서 검을 뽑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헌트와의 약속대로 수련을 쉬어서는 안 되겠지?" 그의 말에 진도 검을 뽑으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돌아갈 땐, 헌트 아저씨한테 본 때를 보여줘야죠." "헌트에게 본 때? 하하하, 그래. 헌트가 그 말을 들으면 정말 흐뭇해하겠구나." 에리필이 대소를 터트리며 허공에다가 검을 몇 번 휘두르자, 파란 하늘에 하얀 궤적이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진은 검에 걸려 있는 G와 몸에 걸려 있는 G를 해제했다. 이제는 일상의 하나가 되어 버린 중력을 해제하는 진을 보며 에리필이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진아 검사란 무엇인 거 같으냐?" 중력을 해제하고 몸 상태를 점검하던 진이 고개를 들어 에리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에리필의 물음에 즉각 대답했다. "검으로 각오를 세운 사람을 뜻합니다." 진은 이렇듯 목소리를 깔며 무리에 대해 묻는 에리필을 대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어려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는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헌트에게 배운 네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에리필이 실망했다는 투로 묻자, 진은 일시지간 당황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대답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에리필이 언급한 한 단어. 헌트! 그제야 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검사란 전투에 이기기 위해 검을 사용하는 자를 말합니다." 확신으로 가득 찬 진의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하던 에리필이 경직된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 고 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후후, 그렇다. 사실 기사 아카데미나 명망 있는 무가에서는 검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걸로 생각하는데, 사실 검은 싸움에 이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잊지 마라. 알겠느냐?" "예!" 진의 힘찬 대답에 자상한 웃음을 짓던 에리필이 검을 들어 가슴 앞에 세웠다. 순간 진은 자신 앞에 예리하게 갈린 검 한 자루가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대단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진이었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싸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방금 전에 대답해 놓고도 도구 따위에 두려워하느냐?" 에리필의 일갈에 정신을 차린 진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에리필을 노려보았다. 아니, 에리필이라는 탈을 쓴 커다란 검을 노려보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에리필의 호통이 도움이 된 것인지, 진은 커다란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백의 검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형의 검날이 자신을 노리며 날아오려는 듯하자, 흠칫하는 진이었다. "어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거, 검입니다." 에리필이 혀를 차자, 진이 우물쭈물하면서도 대답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워한단 말이냐?" 에리필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진을 나무랐다. 그러나 진은 검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검날들이 자신의 주위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신경 쓰여, 굵은 땀방울만 흘릴 뿐, 입을 열수가 없었다. 이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에리필이 언성을 낮추며 물었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그게 검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검날입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진의 말에 에리필이 흠칫했다. 그리고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허어, 저 아이가 벌써 기세 속에 숨은 검까지 볼 수 있는 경지에 올랐었나? 하하, 진정한 검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쇠로 만든 검을 도구라 했었는데, 저 아이는 이미 진정한 검을 보고 있었구나.' 에리필은 제자의 경지를 제대로 파악도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는 한껏 일으켰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진아, 네가 보았던 검날이 무엇인 거 같더냐?" "모르겠습니다." 에리필의 배려로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진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고개가 내 저어지며 힘없는 음성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에 에리필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보았던 검날이야말로 진정한 검이다. 그것은 기세 속에 숨은 검이며 기세 하나하나가 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검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올라야만 진정한 검사라 할 수 있으며, 진정한 검을 다루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말을 잠시 끊은 에리필은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수습해야하는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컬하다고 생각했다. 검의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설명한 것이었는데, 이미 제자는 검의 실체를 쫒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는 조금 전에 했던 말을 철회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부의 위신도 세워야 했던 것이다. "허엄, 조금 전에 검은 도구라 했다. 하지만 이 말은 검의 허상을 쫓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너는 검의 실체를 쫓고 있으니, 괜한 말을 한 거 같구나. 그러니 조금 전에 했던 내 말은 잊어라. 하지만 네가 들고 있는 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신 마음의 검을 키워야 할 것이야. 그것은 깨달음과 연관되어 있으며, 너의 몸이 검이 되고, 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검을 이룰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너의 기운으로 검을 이룰 수 있는 경지가 되면, 너는 검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너의 손에 들려 있는 검에 연연해하지 말고 너 자신이 검이 되고, 너의 기세가 수많은 검날이 되는 그 경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진은 에리필의 설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원론적인 무리를 이해하기에는 진의 경지가 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에리필이 자상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라. 단지 '네가 가야할 길이 이런 것이다.'라는 것만 기억해두면 된다. 그건 그렇고, 이제 몸이나 풀어볼까?" 에리필이 자세를 잡자, 멍하니 있던 진도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와라!" 진의 검끝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에리필의 입에서 단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이행하는 진이었다. 휘릭! 진은 땅을 박차자마자, 검을 돌리며 수많은 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진은 자신의 검역 안에 에리필이 들어오자, 쾌속하게 검을 질렀다. 그것은 바로 쾌의 기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좋은 수법!" 에리필이 감탄을 터트리며, 짧은 호선을 그렸다. 챙! 진의 검은 아쉬운 울음을 토하며 에리필의 검에 막혔다. 그러나 진은 공격을 포기하지 않고, 검 을 살짝 들었다 허벅지를 노리고 내리그었다. "오호!" 에리필은 진의 임기응변에 놀랐지만,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진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앗!" 진은 자신의 검이 도착하는 것보다 에리필의 검이 자신의 목을 뚫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는 검을 물리며,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진은 물러서는 즉시 자세를 낮추었다가 튕기듯 탄력을 받아 날아가며 그의 무릎에다가 검을 휘둘렀다. "녀석하고는." 에리필은 진의 오기가 절로 느껴져 헛웃음을 흘리며 공중에다 몸을 띄웠다. 순간 앞으로 전진 하던 진의 몸이 멈추며, 그의 다리가 땅을 힘차게 때렸다. 그리고 그의 검은 급작스럽게 각도가 꺾여 하늘을 꿰뚫듯이 쳐들려졌다. 에리필은 별 생각 없이 몸을 띄웠는데, 순식간에 자신이 검풍의 영역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예로 에리필의 옷이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나 에리필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에리필은 검풍의 결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밑으로 휘두르는 에리필의 일검. 순간 광풍과도 같은 진의 검풍이 흩어지며, 잔잔한 미풍이 에리필의 발아래를 흘러 다닌다. 이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에리필을 올려다보던 진은 엄청난 기세를 느끼고, 몸을 날렸다. 쾅! 진이 있던 자리가 터져나갔다. 그리고 비산하는 흙과 함께 땅바닥을 구르는 진은 벌떡 일어나며 에리필에게 외쳤다. "절 죽일 작정이세요?" 진이 토끼 눈을 하고 항의하자, 에리필이 유려한 동작으로 바닥에 착지하며 대답했다. "설마, 내가 사랑스런 제자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나는 단지 검풍은 바람만 뿜는다고 하여 모두다 검풍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던 거란다." 에리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진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뭔가를 생각하는지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진은 다시 검을 고쳐 잡으며 힘찬 음성을 토했다. "다시 한번 갈게요." 진이 검을 휘둘러 검풍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발 전진하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는 진은 일보, 일보마다 검을 휘둘러 검풍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게 십보를 내딛었을 때, 에리필은 아홉 번의 검풍을 쉽게 해소하고, 마지막 검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진이 검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검풍의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에리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그의 옆에서 억지로 감춘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후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검풍의 방향을 바꿀 뿐만 아니라, 뿜어지는 바람을 기세를 감 추는데 사용하다니. 역시 이 아인 천재 중의 천재야.' 에리필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의 공격을 막지 않았다. 쾅! "사, 사부님!" 진은 에리필이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자, 깜짝 놀라며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몸을 날리자마자, 옷을 툭툭 털며 걸어 나오는 에리필을 보게 된다. "괜찮으세요?" "허허, 그럼 괜찮고말고. 내가 너의 공격에 무슨 일이라도 당할 줄 알았느냐?" 에리필은 부쩍 자란 진이 흐뭇했지만, 그 감정을 감추며 말했다. 이에 당황한 진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아뇨. 그건 아닌데요. 사부님이 제 공격에 당한 것 같이 보여서요." "그럴 리가 없잖느냐. 그건 그렇고. 아침 수련은 여기까지 하고, 간만에 고향에 왔으니, 친구들을 만나야지." 에리필의 말에 진은 얼굴을 환하게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는 진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에리필이 낮게 중얼거렸는데, 그 음성에는 감출 수 없는 흐뭇함이 섞여 있었다. "저 아이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니, 그 끝이 어디일 지 궁금해지는구나." 에리필은 기(氣)의 막으로 막았지만, 은근히 쑤시는 왼쪽 어깨를 매만지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여긴 친구집입니다. 흐흐흐, 집에 가고 싶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79 회] 76화. 푸근한 쉼터, 그것은 바로 고향 5. 진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날듯이 거실로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때였다. 진의 예리하게 단련된 감각이 집 앞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인기척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남의 집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다니, 도대체 누구야?' 진은 친구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좋아졌던 기분이 집 앞에서 떠드는 몰상식한 인간들 때문에 짜증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밖으로 나가 한 소리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고, 그 뒤를 친숙한 음성이 문틈을 비집고 따라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 파츄산인데요. 진이 있어요?" 진은 그의 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자 언제 짜증났냐 싶을 만큼 환하게 미소 지으며 아리오네가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다… 들." 진은 반갑게 문을 열고 파츄산을 보다가 그 뒤에 서 있는 100여명의 소년들을 보며 굳어 버렸다. 어느 정도 많은 사람들이 집 앞에 있을 거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그도 몰랐던 것이다. 파츄산은 진의 모습을 보고 '짜식 감동했구나.'란 생각을 하며 집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빨리 말했다. "저, 오늘 진이 좀 빌릴게요." 파츄산의 표현이 재밌는지 아리오네가 호호 웃으며 승낙의 뜻을 표하자 그들은 진을 끌고 바이사카 시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물살이 빠지듯 100여 명의 사람들이 사라지자,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훤히 드러나는 바깥 풍경을 잠시 감상했고, 뒤늦게 들어온 에리필의 유쾌한 음성이 횅해진 거리를 울렸다. "하하, 진의 인기도 쓸만하군요. 그런데 그 많은 얘들 중에 왜 여자는 한 명도 없는 걸까요?" 바이사카 시의 사람들은 오랜 만에 보는 풍경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 '진이 돌아왔다더니 역시나군!' 진을 포함한 1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은 거리를 누비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대인원의 사람 들 중에는 진이 못 보던 아이들도 있었다. 일명 신규회원이라고 불리는 몇 명의 아이들은 파츄산과 다리오를 양 곁에 두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진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피나는 수련으로 얻은 예리한 감각을 가진 진은 그들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었고, 이내 그들이 못 보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근데 내가 여기 있을 때엔 보지 못했던 녀석들이 여럿 있네." 진이 파츄산을 향해 물었지만, 대답은 그가 아닌 다리오에게서 나왔다. "대장! 저 애들은 2년 전부터 꾸준히 들어온 신규회원입니다." "신규회원? 근데 나 대장 아니야. 그러니깐 대장이라고 부르지 마, 알았지?" 진은 대장이라는 말이 어색했다.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은 대장이라는 칭호가 낯간지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거리를 누비면서 진에게 그가 비운 2년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야깃거리도 차츰 떨어질 무렵, 그들은 진이 바이사카 시를 통합한 이후 근거지로 사용하고 있는 드요프 강변에 다다를 수 있었다. 2년이 지났지만, 드요프 강은 바이사카 시의 물줄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진은 그가 변한만큼 고향도 변했으리라 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2년의 시간은 몇몇 인물들을 듬직한 청년으로 만들어 놓았고, 코찔찔이 녀석들의 콧물을 마르게 해주었다. 그렇게 세월과 변화 그리고 시간도 빗겨가는 자연의 위대함에 넋을 놓고 감상에 빠져 있던 진은 파츄산의 기합소리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약속대로 우리 모두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겠지?" 진은 파츄산의 말을 들으며 떠나기 전에 한 약속을 기억 속 저편에서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걸렸다. "물론 기억하고 있지. 그리고 너희들 모두를 이길 만큼은 강해졌다고 자부해." 그의 당당한 음성을 들으며 파츄산과 아이들은 자부심과 묘한 반발심이 가슴 속에서 올라 옴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진의 한 마디로 인해 꽉 잠근 코크가 열리며 터지듯 그들 가슴 속에서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와랏!" ~~~~~~~~~~~~~~~~~~~~~~~~~~~~~~~~~~~~~~~~~~~~~~~~~~~~~ 후속타 들어갑니다. 아잣!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0 회] 77화. 푸근한 쉼터, 그것은 바로 고향 6. "이야얏." "얼마나 강해졌는지 볼까?" "크크크, 오늘도 한 번 죽어봐라." 제각기 다른 말들을 던지며 그들은 진에게 돌진했다. 신규회원 몇몇은 처음엔 주춤했지만 그들 도 군중심리에 휩싸여 앞으로 돌격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그들의 만용에 뼈저린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진의 몸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휙'하는 소리와 '퍽'이라는 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그리고 제각각의 신음을 토하며 쓰러지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바람처럼 자신들의 공격을 피하며 장난처럼 휘두르는 손과 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청난 사명감이라도 가진 이들처럼 물러서지 않고, 쓰러질 것을 알면서도 진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쓰러지면서도 진의 다리를 잡아, 그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했다. 그러나 여기에 당한다면 2년 동안 수학한 것이 아깝다고 말하는 듯, 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면서 방향을 바꾸어 다리를 잡아채는 아이의 죽기살기식 발악을 피하면서, 다른 아이의 공격마저도 피하는 놀라운 몸재간을 보여주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1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은 진의 몸을 한번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풀밭 위를 편안한 침실로 이용해야만 했다. 아닌게 아니라 한 번 쓰러진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풀밭위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는 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다했었다. 그러나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들은 한숨을 쉬며, 풀밭에 드러누워 진의 화려한 몸동작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어야만 했었다. 진은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모든 아이들을 풀밭에 눕혀 버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땀 한점 묻어나 있지 않았다. 모두가 풀밭위에 쓰러지자 진은 무안한지 그도 풀밭위에 앉아 버렸다. 그리고 모두가 풀린 다리를 수습할 동안 그가 보냈던 2년여의 시간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목소리를 높여 기뻐하기도 했으며, 황당해하기도 했다. 특히 몬스터와의 전투는 그들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만들어 그 안을 흥건한 땀으로 적시게 만들었다. 2년의 시간을 모두 말할 순 없었기에 간추리면서 말하던 진의 이야기도 30여분이 지나자 끝이 나고, 그 무렵 아이들의 풀린 다리도 모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자 파츄산과 다리오가 진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은 조금 굳어 있었는데, 진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이에 의아함이 도를 넘어 궁금증으로 넘어가자 진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뭔데? 설마 내가 너희들을 때려 눕혔다고 해서 이러는 거 아니지?" 진이 설마 하며 묻자 굳어 있던 두 사람 중 다리오가 입을 열어 그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물론 아닙니다. 사실 저희가 오늘과 같은 일을 벌인 것은 약속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진은 더욱 궁금증이 치밀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에 옆에서 얼굴을 굳히고 있던 파츄산이 말문을 열어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너, 스테판 알지?" "스테판?" "그래, 예전에 파요르 마을에 대장이었던 왜 있잖아, 너한테 지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진 녀석 말이야." 진은 그제서야 스테판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비록 딱 한 번 보았지만, 그와는 전력을 다해 승부했던 사이이기에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기억나. 근데 그 스테판이 왜?" 진이 여기까지 말하자 그 다음 말부터는 다리오가 이어 받았다. "한 3개월 전 쯤에 스테판이 바이사카 시에 돌아왔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여기 없지만. 그때 녀석이 와서 하는 말이 '진 그 꼬맹인 어딨냐? 예전에 실수로 진 싸움이지만,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이 몸이 상대하러 왔다.'였습니다. 그리고 대장이 여기 없다는 사실을 안 스테판은 화가 났는지 둘레만 4 라키르(미터)나 하는 나무를 일격에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는 말이 '그 녀석도 무술을 배우러 떠났다니 전해줘라. 나중에 만나면 네 몸을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이 말을 남긴 스테판은 바이사카 시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린 대장이 녀석을 이길 수 있을지 알기 위해 이런 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진은 다리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툭 내던진 말은 다리오를 당혹 스럽게 만들었다. "그래? 그렇담 네가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아? 나와 스테판 둘 중에 말이야." "예? 그, 그게…" 다리오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던 파츄산이 조력자로 나섰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스테판이야 원래 괴력으로 유명한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그 녀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두려울 정도야. 그리고 만약 녀석이 우리를 상대했다면 우리는 백에 백 모 두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다리오가 대답을 못 하지. 물론 네가 약하다는 건 아니 야. 하지만 붙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엔 스테판은 너무 강해." 파츄산은 나름대로 상황을 분석하여 그것을 토대로 진을 다독였다. 그가 알고 있는 진은 타고난 승부사라서 죽어도 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은 2년 동안 수련을 하면서, 인내라는 덕목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하기야 붙어 보지 않고는 누가 더 강한지 알 수 없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이 얼굴을 굳힐 필요는 없잖아." 진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물었다. 그러나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단지 그들의 입으로 듣고 싶을 뿐, 그게 그의 솔직한 바램이었다. "야,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못 봐서 그렇지. 그 녀석 주먹에 한 방만 맞아도 바로 골 로 간다고. 그런데 그런 녀석이 널 노린다니깐, 당연히 걱정되잖아." 파츄산은 자신들의 마음도 몰라주는 진이 야속해 흥분하여 외쳤다. 그러나 진의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렇담 내가 앞으로 너희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해 주지." "어떻……게?" 진의 말에 파츄산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박하려는데, 그의 말은 얼떨결에 완성되어 버렸다. 진은 말을 하며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지금의 그는 공중으로 20 라키르(미터)를 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진은 5 라키르(미터)정도만 떠올라서 하얀 궤적을 만들었다. 지상에 있던 아이들은 진이 검을 뽑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단지 뭔가 번쩍인다고 느끼는 순간 20 라키르(미터)정도 떨어진 나무가 박살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이는 진이 오늘 아침 '바람만 뿜는다고 하여 모두다 검풍은 아니다.'란 에리필의 조언을 참고하여 뿜어지는 바람으로 기세마저도 제어하는 검을 구사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나뭇조각들은 그들 마음에 자리 잡은 걱정거리들이 산산조각 났음을 의미했다. 진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바닥에 사뿐히 착지하자 아이들은 경악했던 시선을 돌려 그에게로 고정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와아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진에게로 쇄도해 그를 기(氣)의 힘이 아닌 수많은 아이들의 힘으로 띄웠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진은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가 쏠쏠하여 아이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만류한다고 하여 그만 둘 아이들도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의지에 배반을 하는 천인공노할 소리를 입밖에 내미는 한 인물에 의해 그들은 순간 굳어져, 떠올라 있던 진을 미처 받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받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정확하리라! "크하하하,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네." 쿵! "아효, 우씨 왜 놔?" 일련의 사태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위에서 밑을 향한 아이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못해 칼날을 세워놓은 듯 잔혹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얼간이 슈벵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외쳤다. "야, 밟아!" 이렇게 얼간이의 주도아래 진은 100 여명이 넘는 아이들의 발길질이라는 화려한 환대로 귀향식을 마칠 수 있었다. ~~~~~~~~~~~~~~~~~~~~~~~~~~~~~~~~~~~~~~~~~~~~~~~~~~~~~~~ 글을 쓰면서 제가 진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 저는 얼간이 슈벵크와 비슷할지도... 그러나 슈벵크가 비록 주인공 아니, 엑스트라에 가깝지만 왜 그리 사랑스러울까요? 단지 저와 닮았다는 이유 뿐일까요? 흐흐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1 회] 78화. 천재 드디어 비상하는가? 1. 화려한 귀향식을 치룬 진은 틈나는 대로 에리필과의 대련과 이론 수업을 통해, 점점 진정한 검사로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유리온 부부에게 잘하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마음 뿐, 예전 집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유리온 부부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동네 패거리들에게 몇 가지 권각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후, 그들은 진이 가르쳐준 대로 심신을 단련하여 '몸이 약한 녀석들, 바이사카 패거리에 들면 사나이로 태어난다.'라는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진은 고향의 포근함 안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평온함 속에서도 흘러갔다. "집에 돌아 온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야 된다니." 아리오네는 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지금도 목이 메이고, 눈물이 올라오려는데, 진을 본다면 십중팔구 울음을 터트릴 것았다. 그러나 유리온은 한 집안의 가장답게 진의 등을 탕탕 치며 남자다운 이별을 준비했다. "하하, 녀석 보게. 이제 몸은 완전 어른이네 그려. 하지만 진아, 다음에 돌아올 때는 너희 엄마 도 나처럼 네 등을 두드릴 정도로 늠름해져야 할 거다. 아님 이 아비가 발로 엉덩이를 뻥 차 줄 테니깐, 이 말 꼭 명심해라." "예, 아버지. 그리고 엄마, 제가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음에 올 땐 예쁜 색시 감도 데려올게요, 헤헤." 진은 일부러 호탕하게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러나 아리오네는 그런 진의 모습조차 억지로 하는 연기로 보였다. 그래서 그녀의 음성은 더욱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너무 무리 하진 말고.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만, 네 몸은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란 건 잊지 말아다오." 그녀의 음성은 간절하기까지 해, 주위 사람들마저 숙연하게 만들었다. "알겠어요. 엄마 말 명심할게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진의 목도 덩달아 메여 오자 그는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진이 아리오네와의 대화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유리온은 에리필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간절한 한 마디를 전했다. "부탁드립니다."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뜻은 에리필에게 확실히 전달되었 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심려 놓으시고, 앞으로 더욱 성장할 진의 모습을 기대하며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에리필은 제국의 궁중예법에 따라 정돈된 인사를 하며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진 역시 그의 부모에게 몸 건강하라고 말하며 능숙한 몸놀림으로 말 위에 올라탔다. "이럇!" 에리필과 진은 말 위에서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천천히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흑흑흑." 진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리오네는 뛰쳐나가며 울음을 터트렸다. 뒤늦게 다가온 유리온이 그녀를 붙잡고 위로했지만, 그녀의 울음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아리오네는 물기에 젖은 눈으로 진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유리온 역시 그녀를 위로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그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이란 동물은 사고의 원활한 과정을 거쳐 창의적인 부산물들을 세상에 내 놓지만, 그들이 새로운 것들이라 명명 짓는 것들은 또한 인류 전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지극히 획일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지금의 인류가 생각하는 바를 과거의 인류도 생각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파큘레이의 논문에서 증명 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사고가 먼 훗날 미래의 사고에 반영될 것이고,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고를 가진 인류가 번영할 것이라고 그의 저서 -인류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몫이다-의 말미에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사고를 보편성과 특이성으로 구분해 놓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화의 개별성은 인간 고유의 특이성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인류학 교수인 요쿠스는 열띤 강의를 잠시 멈추고, 그만의 독특한 제스처를 취하며 학생들에게 이 물음의 답을 요구했다. 그의 강의 스타일 상 자신이 한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강의 시간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20여명이 넘는 학생들은 그 사실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구원자에게 구원의 요청을 담은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리오스는 따가운 시선이 그의 미끈한 피부를 상하게 할까 두려운 나머지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다. "오호, 역시 리오스 군이군. 그래, 어디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을지 기대해보겠네." 요쿠스는 기대에 찬 시선으로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기대에 찬 시선도 리오스에겐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오는지를 그는 모르고 있으리라. 하지만 리오스는 무거운 부담감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가 준비한 대답을 착실히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 만족할 만한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특이성이란 보편성이란 토대위에 세워진 나름의 가공된 창조적 사고라 생각합니다. 즉, 인류의 문화가 번영되고, 그것은 나름의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차곡차곡 쌓여진 보편적 인류의 사고를 그 시대의 문화에 맞게 가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각 시대마다 추구하는 문화가 다르고, 그것은 또한 모순 된 말이긴 하지만, 거대한 인류라는 지류의 흐름위에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는 인간의 사고를 보편성이니 특이성이니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의 문화는 저번 세대와는 다르다 라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지어낸 말장난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리오스의 장황하다 못해 지나친 언변은 주위를 침묵 속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여기에 요쿠스도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요쿠스는 한참 동안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다 생각이 정리됐는지 문서를 읽듯 또박또박 한 마디 씩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의 궤변은 잘 들었네. 보편성과 특이성이라는 말 자체가 말장난이라. 허허, 내 인류학을 공부한지 몇 십 년이지만 자네처럼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 젊은이는 처음 보네. 그렇지만 일견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지. 하지만 자네의 생각에는 각 시대마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사고는 반영되지 않은 듯 하네. 물론 인류학을 강의하는 교수인 내가 말하기엔 좀 그런 문제지만 사실 인류의 발전은 몇몇 천재들의 획기적인 발상, 즉 사고의 특이성이 있기에 문화의 성장이란 것이 급류를 타듯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쿠스는 타고난 학자였다. 그래서 그는 비록 학생의 궤변이지만, 진지하게 받아 들여 리오스에 맞설 반론을 준비하여 흥미진진한 토론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처럼 토론을 즐길 만큼 학구파가 아니었다. "교수님의 생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그런 변수들은 제외하고 지극히 일반적인 사실들을 들어 말했을 뿐입니다." 리오스의 시시한 항복 선언은 그의 뜨겁게 달구어진 투지에 물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요쿠스는 나 실망했다는 표정을 잔뜩 지으며 다시 수업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의 신 클라크는 이것 또한 그의 의지대로 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맑고도 경쾌한 종소리가 쉬는 시간을 알려왔던 것이다. 이에 요쿠스는 다시 한번 한숨을 토하며 독특한 제스처로 수업을 마무리 했다.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리오스의 얼굴에 왠지 승자의 표정이 어려 있다고 요쿠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자위하며 리오스에게 격려의 한 마디를 던졌다. "리오스 군 요번 유적 탐사 팀에 합격했다는 좋은 소식이 들리던데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돌아오길 기대하겠네. 그리고 오늘 못 다한 우리의 즐거운 토론을 기대하겠네." 요쿠스는 리오스에게 자기 딴엔 화사하다고 짓는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화사한 미소를 받고 있는 리오스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쿠스와의 토론이 얼마나 지독시리 고통스러운지를. 요쿠스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레이슈어와 튜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위로의 한 마디씩을 던졌다. "크크, 이거 된 통 걸렸어, 리오스." "에휴, 불쌍한 리오스야 그러게 왜 요쿠스 교수를 건들긴 건드려." 그들의 위로인지 놀림인지 구분이 모호한 말에 리오스는 한숨을 흘리면서도 유적 탐사 팀의 미팅에 참여하기 위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 개인적으로 인류학과 고고학에 관심이 있지만, 현실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2 회] 79화. 천재 드디어 비상하는가? 2. 거대한 연회장 같은 넓은 방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별로 모여 있지 않았다. 대략 2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정된 의자에 앉아 열띤 회의를 이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유난히 젊고, 화려한 외모를 소유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리오스였다. "그러니깐 오는 15일 날을 출발일로 잡자는 말이군요. 그런데 이번 탐사는 아직 미확인 유적지라서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탐사 팀에 든든한 가드를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지레이션 씨의 길드에 소속된 가드에서 차출된 100여 명의 일급 가드들을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레이션 씨도 이번 탐사 팀에 합류하기로 했으니 안전 면에서는 안심하셔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역사학의 두더지인 드고르가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탐사에 관한 제반 업무를 간략히 말하자 조세판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한 음성으로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허허, 역시 드고르 씨가 일을 맡자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군요. 그건 그렇고 이번에 같이 유적지를 조사할 젊은 인재를 아직까지 소개하지 않았군요.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다 보니 이렇게 됩디다." 조세판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리오스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그의 음성이 연회장을 울렸다.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만 그래도 소개는 제대로 해야겠죠. 자, 우리의 젊은 인재 올슈레이 리오스 군입니다." 리오스는 명망 있다고 정평 난 인물들 앞에서 조세판이 자신을 너무 추켜세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가 얼마나 자신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가슴 속의 훈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리오스는 조세판의 소개에 절제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음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존경해 마지않는 여러 대선배님들과 같이 탐사 팀의 일원이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있을 탐사 일정 내내 아니 그 이후로도 대선배님들께 많은 것들을 배우길 원하니 부디 거절치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리오스는 20여개의 의자 위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임으로써 자신의 소개를 마쳤다. 리오스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조세판은 부연 설명으로 그에 대한 약력을 간단히 설명했다. "리오스 군은 얼마 전에 가드 조합에서 지정한 등급에서 당당히 일급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는 여러분들인 줄 압니다." "하하, 그것은 제가 보증하는 바니 믿으셔도 될 겁니다." 조세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호탕한 음성이 연회장을 크게 울렸다. 이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그 음성의 주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이 자신만만한 음성의 주인을. 키미 지레이션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장발을 휘날리며 연회장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십이 넘은 중년의 나이이지만 그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인물이었고,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천생이 탐험가의 기질을 타고난 사내였다. 그러나 그는 탐험가의 길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지키는 길로 들어섰고, 지금에 와서는 지레이션 하면 수많은 가드 길드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지레이션 가드의 총수로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리오스도 모두의 시선처럼 지레이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자신의 사부인 프린샤 시장을 보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의 기도를 리오스는 그도 모르는 새 읽어 버린 것이다. 지레이션은 리오스가 그의 갈무리 된 기도를 느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그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사실 리오스의 실력이라는 것에 놀랄 그는 아니었다. 지레이션은 리오스 보다 훨씬 강한 자들을 수없이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오스는 특별한 감각을 지닌 듯했다. 강자에 대한 직감적인 위기감이랄까? 리오스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무인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감각이기도 했다. 조세판은 어지럽게 흐트러지는 분위기를 느끼며 더 이상의 미팅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 듯 하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는 15일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과 기대감을 안고 보낼 하루하루겠어요." 조세판은 말을 하며 드고르에게 미팅을 마치라고 종용했다. "예, 그럼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총 마무리는 14일 날에 할 테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드고르는 착실하게 미팅을 마무리 지었고,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지레이션 역시 연회장을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리오스에게로 다가왔다. "내게 있어 이번 탐사의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자네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지레이션은 리오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리오스도 그의 멀어져가는 등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당신 역시 이번 탐사에 있어 저에게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숙였던 고개를 들며 드러나는 리오스의 강렬한 눈빛은 유적 탐사에 대한 기대감과 지레이션이라는 사내에 대한 흥미로움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 오늘 아침 수업을 하고, 인간 심리의 이해를 들으러 갔는데, 리포트만 내고 가라고 하더군요. 흐흐흐. 전 저번 주에 리포트를 제출했기에 가장 먼저 떠났다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3 회] 80화. 천재 드디어 비상하는가? 3. 이제는 너무도 친숙한 곳이 되어버린 카오시어스의 심장에서 리오스가 구슬땀을 흘리며 고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어느 때는 몇 십 라키르(미터)나 되는 파도가 바닥을 치는 것처럼 광포했지만, 또 어느 순간 살랑거리는 미풍이 꽃을 간질이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온유했다. 그렇게 리오스는 무아지경 상태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파바박! 사나운 바람이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하늘로 솟구치는 화려한 금발은 마치 황금물결을 연상시켰다. "하압!" 리오스가 당찬 기합을 지르며 몸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이 최고조로 올랐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의 다리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았다. 순간 사방은 화려한 검광에 차단되고, 바람마저도 들어오지 못할 만큼 그의 검은 사납고 매서웠다. "차앗!" 허공을 수놓던 은빛 선들이 희미해질 무렵, 리오스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시 한번 땅을 박차며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찔렀다. 파팟! 순간 그의 검에서 압축된 공기가 쏘아져 나가며, 10여 라키르(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마련된 프로이카 지방산 바위에 적중됐다. 그그그… 콰쾅! 리오스의 검에서 발출된 압축된 공기가 드릴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바위를 파고들다가, 프로이카 지방산 바위의 핵 지점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리오스는 사방으로 비산하는 파편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프로이카 지방의 돌은 단단하기로 유명하지. 그것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게 되면, 내 검술의 일 단계를 돌파했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프린샤가 했던 말이 떠올라 한숨을 내쉬던 리오스가 눈을 빛내며 다시 검자루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자세를 잡으며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아름답지만 짓궂은 악동의 기질이 담겨 있는 음성이 카오시어스의 삼장을 울렸다. "오호호, 뭐해?" 리오스는 한숨을 쉬며, 손에서 힘을 뺏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프린세리아를 바라보았다. 프린세리아의 윤기 나는 금발은 허리까지 오고 있었다. 처음 볼 당시, 미소년을 연상시켰던 그녀가 완연한 여인의 모습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리오스는 자신의 어머니인 아리오네가 종종 하던 말이 떠올라 미소 지었다. [여자는 말이야, 변신의 귀재야. 머리의 길이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며, 화장을 어떻게 하느냐,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천의 모습을 만들 수 있거든. 하기야 어느 정도 원판이 되어야지 변신도 가능하겠지? 원판이 안 되는 상태에서 꾸미는 것은 변장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호호호.] 리오스는 아리오네의 말을 떠올리면서 프린세리아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프린세리아는 변신을 한 거군. 그렇담 프린세리아의 원판도 어느 정도 된단 말이네, 허허.' 리오스가 자신만의 상념에 빠져 있자, 프린세리아는 괜히 심통이 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진 알 순 없지만, 실실 웃는 리오스가 얄미워 보였다. "칫, 뭐하는 거냐니까?" 프린세리아가 리오스의 귀에다 꽥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란 리오스가 뒤로 물러나며 귀를 감쌌다. "뭐하는 짓이야?" 리오스가 눈을 짐짓 부라리며 말했지만, 프린세리아의 눈은 이미 독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에 처음의 기세를 말며, 나름대로 변명을 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엔 꼬리를 말고, 고개를 푹 숙이는 리오스였다. "아, 미안. 어떤 생각에 빠져 있다보니… 잘 알잖… 미안." "호호호, 그렇게 나와야지. 근데 이때까지 검을 휘두른 거야?" 리오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프린세리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참 독하다.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리오스는 그녀가 혀까지 차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던 프린세리아가 리오스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이 바보야, 지금 새벽 1시가 넘었다고. 너 오후에 와서 지금까지 검을 휘두른 거잖아. 생긴 건 똑똑하게 생겨서 왜 바보 같은 행동만 하는 거야?" 리오스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는 그녀의 탄식에 강렬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뭐, 뭐야?…" 리오스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자 프린세리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떠듬거리며 뭔가를 말하려는 프린세리아를 제지하며 리오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 이야기 했었지? 나한테 동생이 하나 있다고." "으응."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내 동생은 지금 훌륭한 사부 밑에서 무술을 배우고 있어… 처음에는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요새 와서는 동생에게만큼은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 라. 그래서 지지 않기 위해 죽어라 수련하는 거야. 나는 동생처럼 무술만 죽어라 익힐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으면 그 시간으로 수련을 해야 하는 거야. " 프린세리아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리오스에게 더욱 다가가 그를 끌어안아 버렸다. "뭐, 뭐하는…" "가만 있어봐. 조금만 이렇게 있자." 당황한 리오스가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축축하게 젖은 프린세리아의 음성과 포근한 그녀의 품은 그에게서 말을 빼앗아 갔고, 뒤이어 날카롭게 빛나던 이성마저도 빼앗아 가버렸다. 리오스는 그녀의 품이 참으로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심장이 세차게 뛰어 그녀가 눈치챌까봐 걱정되었지만,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안해,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감미로운 향기가 그를 취하게 만들어, 리오스는 몽롱한 기분이 되었다. 프린세리아는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에 스스로도 매우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좋았다. 그렇게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리오스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 왔다. '서, 설마?' 그녀의 심장이 또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대 반, 두려움 반에 몸을 잘게 떨고 있을 때도, 리오스의 얼굴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쪽! 눈을 질끈 감고 있던 프린세리아는 입술이 아닌 이마에서 그의 입술을 느꼈고,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다. "어엇! 괜찮아?"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프린세리아를 붙잡은 리오스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 을 차린, 프린세리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두 사람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정적이 카오시오스의 심장을 짓누르고 있을 때, 프린세리아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요번에 유적 탐사를 떠난다고?" "응." 그녀는 리오스가 간단히 대답해버리자,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 고 그녀의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미소 짓던 리오스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숨을 내뱉듯이 말했다. "요번 탐사에 갔다 와서 이마가 아닌……." 리오스는 말을 끌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었다가 그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다 찍었다. "정말? 아, 그러니까…" 그녀는 손가락의 감촉을 음미하다, 반색하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말을 얼버무렸다. 이에 리오스는 알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런 동작으로 프린세리아를 끌어안았다. "어멋!" 프린세리아의 가슴이 또 다시 뛰기 시작하자, 리오스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귓가에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줘, 너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 "으응!" 물기 젖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프린세리아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 리오스가 고개를 젖혀 아치형 천장을 보았다. '사랑한다. 그리고 너와 함께 저 밖으로 나갈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줘.' ~~~~~~~~~~~~~~~~~~~~~~~~~~~~~~~~~~~~~~~~~~~~~~~~~~~~~~~~ 일단 다음화부터 또 다시 진입니다. 이제 세상 속에서 활보할 진...음..하튼 그렇게 되겠네요. 췟!!!! 왜 리오스가 싫은 거예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4 회] 81화. 캐슬 오브 마스터 1. 바이사카 시를 출발한 지도 어느덧, 열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오랜 여정 끝에 목적지 중 한곳인 전사의 도시 라디오카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라디오카 시에 도착할 무렵엔 따가운 햇살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햇살은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로 향하는 진과 에리필의 눈살도 어김없이 찡그리게 만들었다. 진은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목이 부러져라 뒤로 젖혀 '영웅의 탄생'이란 조각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도 보았던 거지만 새삼 이 조각상을 만든 인물들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할 뿐이야.' 진은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후후, 언제 보아도 이 조각상은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도록 만드는 기이한 마력이 있군!" 에리필도 진의 옆에서 '영웅의 탄생'이라 명명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조각상만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은 웅장한 정문을 뒤로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후문 쪽으로 이동했다.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후문은 딱히 지정된 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문이라 짐작되는 곳에는 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조화된 제복을 입은 경비대들이 있었고, 그들은 후문 을 통제하여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입장하도록 유도하고 눈빛이 강렬하고, 정제된 몸가짐을 한 경비대들은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질문 몇 가지만 한 뒤 안으로 통과시켰다. 기다란 줄의 말미에 선 진과 에리필은 간소한 절차에 급속도로 줄어드는 줄을 따라 마침내 경비대들 앞에 설 수 있었다. "등급을 가지고 있습니까?" 경비대원은 정중하지만 절도 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에리필이 오른손 손목에 걸려있는 팔찌를 내 보였고, 그것을 본 경비대원은 깜짝 놀라며 상기된 음성으로 말했다. "앗, 특 A급이시군요. 안으로 드시죠.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그는 놀라면서도 그가 맡은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이 아이와 나는 이번에 등급 테스트를 받기 위해 온 것이네." "그, 그렇습니까? 들어가시는 방법은 알고 있을 줄 압니다. 부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으시 길…." 경비대원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에 에리필은 화사한 미소를 답하며 그들을 지나 통로 안 으로 들어갔다. "사부님, 근데 특 A급이라는 등급이 대단한가 보죠? 저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아저씨가 기겁을 할 정도니 말이에요." 진은 사람 여남은 명이 횡렬로 걸어도 부족하지 않을 통로를 걸으면서 에리필에게 물었다. "음, 특 A급이 대단한가라? 이번에 네가 등급 테스트를 치루면 알게 될 테지. 뭐, 여기 등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장 낮은 단계인 C 등급부터 시작하여 LB, B, HB, LA, A, HA 그 다음이 바로 특 A 라는 등급이란다. 그리고 이건 내가 십여 년 전에 받은 등급이기도 하지. 그래서 이참에 나도 다시 한 번 테스트를 다시 치러볼까 하는 거구." 진은 에리필의 이야길 들으며 세부적으로 나눠진 등급 단계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특 A 급 위로는 등급이 없나요?" 진은 그렇지야 않겠죠 란 표정을 지으며 묻고 있었다. 그리고 에리필은 그의 말에 긍정의 뜻을 표했다. "물론 있지. 만약 그 위의 등급이 없다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등급을 가졌게? 그것도 십 여 년 전의 실력으로 말이지. 크크, 잘 들어둬라. 특 A 급 위로는 S 급이 있고, 그 다음이 SS 즉 더블 S란 등급이 있단다. 그리고 이 세상에 단 한 분만이 받고 있는 등급이 있는데 SSS 즉 트리플 S 급이라는 게 있지." "트리플 S 요? 세상에서 단 한분만 받고 있는 등급이라, 도대체 그분은 누구죠? 그리고 얼마만 큼 강한 가요?" 진은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불리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부가 최강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말투 속엔 반발심이 은연중 자리를 잡고 있었다. "후후, 그분은 그런 칭호를 받기에 충분한 분이시지. 너도 한번 본적이 있는 분이란다." "제가 봤다고요? 언제요?" "봤지. 물론 실물로 본 것은 아니지만, 2년 전 쯤에 이곳 일층에서 그분의 조각상을 봤지 않느 냐. 현존하는 최강의 무인 은발의 전사 에드윈 더 세필로스! 이 이름이 그분의 존귀한 성함이지. 그리고 그분의 강함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뭐라고 설명할 수 없겠구나." 에리필은 진에게 예전의 기억을 끄집어 낼 것을 종용했고,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기억의 숲을 헤매다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럴 리 없겠지 하면서도 가슴을 두드리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은발의 전사라… 꼭 그분과 닮았었어. 그렇다면 나를 구해주셨던 분이 최강의 무인이란 말인가! 아니 그럴 리 없어. 하지만 만약 그분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분과 동일인이라면…' 진은 생각의 끝자락에 이르러 비록 어림짐작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단어가 뇌리를 강하게 스쳐가자, 온 몸에 존재하는 피란 피는 죄다 위로 향했다. 그리하여 그의 얼굴은 홍시를 연상시키듯 붉게 물들었고, 그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진은 만면에 감격의 표정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진이 희열과 감격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걸어, 통로의 끝 워프의 방에 다다랐다. 통로의 끝에는 4개의 문이 존재했는데, 진과 에리필은 2 라고 쓰여 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은 사방이 마법진으로 도배되어진 사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들어와서야 마법진은 화려한 빛을 뿜었다. 진은 작열하는 백색의 광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그는 처음 보는 곳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경험한 것이 워프라는 것을 진은 잠시 후 알게 된다. "워프 한 기분이 어떻니?" "이게 워프인가요? 글쎄요. 좀 얼떨떨하네요. 빛이 공간을 잠식하는 순간 제가 서 있는 공간이 다른 공간이 되어 버리다니 역시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이 많아요." 진은 상기된 기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성은 흥분으로 인해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에리필은 진의 기분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그도 처음 워프를 경험한 뒤,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랬기에 에리필은 진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관심을 새로운 것들에게로 돌렸다. 그만큼 2 층의 세계는 진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 새로웠다. 진은 태어나서 지금껏 봐온 무인들의 수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이 그러했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검이나 자신의 무구를 차고 있었고, 그들은 또한 경장갑과 같은 활동하기 편한 갑옷들을 입고 있었다. 진은 특히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개량된 무기나 갑옷들을 착용하고 있는 인물들을 중점으로 살펴보았다. 그들이 강해 보여서라기보다는 그들의 옷이 너무나 독특해 충분한 눈요기 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은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고, 가슴 속에 잠시 재워두고 온 투지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진은 이 자리에 헌트가 있으면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크크크, 여기는 너의 대련 상대가 무한하게 쌓여 있구나. 좋아. 오늘부터 이 사람들 모두를 상대해라. 이기든 지든 말이다. 단 한 번 질 때마다 나와의 대련 수는 곱으로 올라갈 테니 이점 유 의 하고 전력을 다해 상대하도록!' 진은 그의 말하는 표정과 독특한 억양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킥킥 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에리필이었지만, 그는 진을 여기 데려온 목적을 상기하고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처는 워프 한 곳에서 얼마 떨어 있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수고하여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느 분이 테스트를 받으실 건가요?" 접수처 담당인 유리라는 아가씨는 그녀의 보랏빛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습관적으로 입에 배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렇다고 사무적인 딱딱하고, 퉁명스런 음성이란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 의 목소리는 매우 감미롭고 아름다워 대부분의 사람에게 절로 호감을 주었다. "두 사람 다 테스트를 볼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전에 테스트를 받아보신 경험은?" "저는 한 번 있고, 이 아이는 처음이죠." "그래요? 그렇담 여기 이 서류에 있는 특별 항목에 저번 테스트 때 받은 등급을 기재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리는 준비된 말들을 쏼쏼 쏟아낸 후, 두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잠시 후, 에리필은 모든 항목에 기재를 마친 두 장의 서류를 유리에게 내밀었다. 유리는 차근차근 빠진 사항이 없는지 확인하다 에리필의 특별 항목에 기재된 등급을 보자 그녀의 아름다운 파란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타 진이 봐왔던 사람들관 달리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음성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134번과 135번이고요. 참고로 에리필 씨가 135번이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기석에서 기다리시면 해당하는 번호를 부를 거예요." 그녀는 두 장의 번호가 찍혀 있는 카드를 주며 말했다. 진과 에리필은 각자 카드를 받고, 대기석으로 가 기다렸다. 유리는 그들이 대기석으로 가는 것을 보고, 반지로 위장한 통신 마법무구를 이용해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연락했다. "아가씨, 아가씨가 기다리는 강자가 왔어요. 번호는 134번 …" "알았어. 고마워 유리." 아가씨라 불린 여자는 유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성급하게 연락을 꺼버렸다. 이에 당황한 유리는 꺼진 반지에 대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의 맡은 임무를 완수하려고 하려는 듯 그녀의 음성은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 "135번이 진짜 강자입니다. 하지만 사실 A급 이상부터는 더 이상 대련 테스트란 것을 하지 않는 답니다. 아가씨…" ~~~~~~~~~~~~~~~~~~~~~~~~~~~~~~~~~~~~~~~~~~~~~~~~~~~~~~~ 성원의 보답이라는...오늘은 꽤 길죠..요새 들어 최고 분량이 아닐지... 참..드뎌 진이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 진과 놀아요~~~ 귀여운 마법사님 전에도 보셨다구요. 이젠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글구 도우님도 첨 뵙는 듯, 아닌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태초의 빛님 오랜만입니다. 커헉...매니아를 꿈꾸며님 한번에 읽으시다니..대단하십니다. 전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리....빨간늑대님 아우우웅!!!! 개인적으로 늑대 캐릭을 좋아합니다만....퀘스쳔님 혹시 야후 광고를 아시는지..아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단번에 리플이 많이 달리니 정신을 못차리겠네요. 컴터 셤치고, 바로 와서 수정해서 올리는 겁니다. 크하하하... 모두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진과 리오스 많이 사랑해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5 회] 82화. 캐슬 오브 마스터 2. 진과 에리필은 대기석이라고 지정된 곳에 잘 배열된 의자들 중에서 하나씩을 차지하였다. 그들은 기다리면서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투명 벽을 통하여 테스트를 구경하고 있었다. 테스트 장은 10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개가 압도적으로 강한 시험관이 응시자의 공격을 적당히 받다 몇 번의 공격을 통해 그의 전투력을 매기는 식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테스트를 치루는 각 방은 마치 이 세상의 공간과는 뭔가 다른 이질감을 주고 있어 진에게 기묘한 감흥을 주었다. "사부님. 저 테스트 장은 이곳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다른 공간을 보는 듯 해요." 진은 솔직한 심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그러자 에리필은 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물음에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네 말이 맞단다. 아무리 프로이카 지방의 돌이 단단하다고 해도 테스트를 하다 보면 건물에 무리가 갈 경우가 많지. 더군다나 진정한 강자에 대한 테스트라면 프로이카 지방의 돌이라도 얼마 견디지 못 할 거다. 그래서 테스트 장은 이곳과는 다른 공간 그렇지만 별개의 공간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밀접한 공간인 바로 아공간을 테스트 장으로 삼은 거지." 진은 처음 듣는 아공간이라는 용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식의 갈구에 대한 욕구를 풀려 했지만, 상황은 그가 하나의 지식이라도 얻어 똑똑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134번 올슈레이 진 씨는 3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아름다운 목소리가 음성 확장기에 의해 울려 퍼지자 진은 비어진 3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은근슬쩍 몸에 걸려 있는 중력을 해제하고 시험관을 기다렸다. 그러나 진이 3번 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도 시험관은 좀처럼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뜸을 들이길 몇 초,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지며 하얀 가면을 쓴 사람이 진의 앞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는 진보다 키가 좀 작아 보였고, 화려한 금발과 하얀 가면 그리고 검은 옷이 묘하게 어우러져 괴기스러운 느낌보다는 기묘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는 어딘가 모르게 몸의 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짐작일 뿐, 그의 몸은 화려한 아머슈트에 가려져 있었다. 사실상 진의 현재 실력으로는 가려진 몸의 곡선을 눈으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삐! 테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이 터지고, 진은 공격을 감행하려고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시작부터 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수세에 몰렸다. 수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하얀 가면을 쓴 시험관은 신호음과 함께 진의 뒤로 돌아가 허점을 노렸다. 그러나 진의 몸은 공격이라는 위험인자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그 자신도 의식하지 않은 채, 몸을 피하고 있었다. "어딜!" 진이 공격을 피하며 거리를 벌리려 하자 시험관은 허리에서부터 하얀 빗살을 만들어 진의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진은 그의 공격을 일검도 허용치 않고 있었다. 테스트를 할수록 진의 감각은 더욱더 예민해졌고, 그의 몸은 훨씬 민활해져 시험관의 공격을 종이 한 장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의 검에서 강력한 에너지 소드가 피어오르면서부터는 피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은색으로 그 화려한 광채를 세상에 뿌리는 에너지 소드는 그의 공격을 훨씬 더 매섭게 변화시켜놓았던 것이다. 이에 진은 손과 발이 어지러워지며 상대에게 점점 주도권을 빼앗겨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면 패하게 되리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제길! 난데없이 에너지 소드라니. 아저씨가 준 이 무구가 없었으면 벌써 전에 패했을 거야. 근데 무슨 검이 저리 빨라. 도저히 공격 할 수가 없잖아." 진은 위험한 상황이지만,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한편, 열심히 공격하고 있던 시험관은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뭐야. 특 A급이라더니. 지금 장난치는 거야? 근데, 특 A급이란 사람치곤 너무 젊어 보이는데. 아니 젊어 보인다기 보단 어려 보여. 이거 혹시 유리가 날 골탕 먹이려는 수작?' 에드윈 더 안젤리나는 검을 휘두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속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괘심함과 분노에 치를 떨게 만들었고, 이에 고생하는 것은 불쌍한 진이었다. 이때, 진도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모든 게 빠르니 상대하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상대는 에너지 소드를 뿜는 강자! 상식적으로 검풍이나 뿜어대는 자신이 에너지 소드를 사용하는 상대에게 이길 확률은 전무했다. 그러나 진은 그의 잔머리와 지금껏 무수히 쌓아올린 헌트와의 대련을 떠올리며 타개책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리고 신의 가호인지 그의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한 가지 계책이 있었다. 진의 머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과 그녀의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 화산이 폭발하듯 거센 불길을 일으키는 것은 동시였다. "에잇, 꺼져 버렷!" 안젤리나는 뾰족한 일갈을 터트리며 그녀의 은빛 에너지 소드 위에 지옥의 유황불을 일으켰다. 지옥의 유황불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주로 쓰는 기술인데, 본래 명칭은 지옥 겁화였다. 그리고 지옥 겁화가 절정에 이르면,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하얗게 변하며 어느 순간 대기 속에 그 뜨거움과 함께 화려한 몸짓을 숨겨 버렸다가 상대의 가슴에서 나타나 햐얀 불의 혀를 날름거린다고 했다. 그러면 상대는 순간적인 엄청난 고통에 심장마비로 즉사하거나, 정신력이 뛰어난 자라면 좀 더 버티다가 햐얀 혓바닥에 서서히 죽어간다고 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기술을 지금 안젤리나가 진에게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의 지옥 겁화는 절정에 이르지는 못한 듯, 대기 속으로 불꽃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신이랄까? 그녀의 지옥 겁화는 시퍼런 불꽃을 사정없이 키워 아공간을 뒤덮어 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진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했으며, 눈 깜짝 할 사이에 그것은 진의 전방을 완전히 차단한 채, 그 뜨거운 혓바닥을 이제 막 진에게로 내밀려 했다. 진의 전방은 모두 뜨겁디뜨거운 불꽃의 나라로 변해 버려, 이미 피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은 엄청난 열기에 얼굴이 타는 듯했다. 하지만 입술을 앙 다문 진은 그녀의 공격이 터짐과 동시에 이미 나름의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진의 몸은 스르르 소리를 내며 두 명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전 진이 우연히 발견한 몸의 잔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두 명의 진에게서 분절된 형태로 여러 명으로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가 달려가는 곳은 지옥 겁화가 그의 사나운 입술을 날름거리며 멋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진의 몸과 지옥 겁화의 뜨거운 열기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뜨거운 증기를 만들어 뭔가가 타는 소리를 만들었다. 이 반갑지 않은 소리를 들은 안젤리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이성이 급격히 냉각되는 것을 느끼고, 급히 지옥 겁화를 풀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앞에는 진의 잔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뼛조각 하나 세상에 남기지 못한 채, 허망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커다란 정신적 충격에 멍해 있던 안젤리나가 냉소를 지으며 검을 휘두른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안젤리나 뒤에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다크 블루빛 사내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진이었다. 쩌정! 안젤리나의 하얀 가면에 금이 가며 그 틈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젤리나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진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녀를 보호 해주고 있던 하얀 가면이 깨져 버렸다. 그리고 진은 그 도도하고도 오만해 보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어, 자, 잠깐." 진의 다급한 음성이 그녀를 붙들려 했지만, 그것은 어림없는 일. 그녀는 아공간에 나타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유령처럼 그의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진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그녀가 떠난 자리를 멍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3번 방에 부상자가 있으니 의료팀 부탁드려요." 음성 확장기에 의해 볼륨이 확대된 유리의 음성이 2 층을 울림과 동시에 의료팀은 3번 방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멍하게 있는 진의 몸을 이곳저곳 살펴보던 리더로 보이는 인물이 점잖게 말했다. "이보게 다음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네." 그의 음성은 낮지만 힘이 실려 있어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던 진을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진아, 괜찮으냐?" 테스트 장으로 급히 들어온 에리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몸 이곳저곳을 움직여 보였다. 비록 옷의 군데군데가 타거나 찢어져 볼품없었고, 다크 블루빛 머리칼이 조금 타서 매캐한 냄새를 만들어 내긴 했지만, 특별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 다. 테스트 장을 나온 진은 에리필에게 중얼거리듯이 그의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상대는 여자였어요. 그리고 저보다 나이도 얼마 많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전 그녀의 검을 피하는 게 고작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검을 거두지 않았다면 아무리 헤르디온의 무구가 뛰어나다고 해도 전 죽었겠죠. 결국 그녀의 자비가 절 살려준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깐 제 자신이 너무 처량해져요." 에리필은 그런 진을 보며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이번 일이 그에게 강한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속이야 어쨌든 그는 진을 위로하기 바빴다. "상대는 아주 강했다. 너도 알다시피 에너지 소드를 마음대로 구사한다는 건 그녀가 이미 로우스트 급을 넘었다는 말이야. 간단히 말해 두 번째 쿤을 연 수주아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란 말이지. 게다가 그녀는 아주 놀라운 검법의 기예까지 소유하고 있었어. 그러니 네가 진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리고 너도 몇 년 안에 저 정도의 경지에 도달할 테고, 그때 가서 오늘의 치욕을 설욕하면 되지 않겠느냐." 에리필의 말은 묘하게도 진의 가슴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짐작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진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였다. "사실 오늘 진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단지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진은 이 말을 하며 그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스쳐 지나갈 때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으리라. 그리고 에리필은 그런 진의 모습을 보며 한 명의 소년이 사랑에 눈을 떴다고 생각했다. ~~~~~~~~~~~~~~~~~~~~~~~~~~~~~~~~~~~~~~~~~~~~~~~~~~~~~~ 드....드,....뎌 히로인이 등장하는 것인가??? 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6 회] 83화. 캐슬 오브 마스터 3. 한편, 에드윈 더 안젤리나는 그의 오빠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너 생각이 있긴 한 거야? 오늘 네가 한 짓은 분명 상대가 조금이라도 약했으면 죽었을 대사건이야. 그리고 그건 우리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명예에 먹칠 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할아버지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거라고. 알고 있어? 이 바보야. 그리고 그 많은 검법 중에 하필 왜 지옥 겁화를 써? 그 기술은 할아버지가 제국 전역을 울리고 다니셨을 때, 자주 쓰셨던 검법이잖아." "아, 됐어. 그만해." 안젤리나는 에드윈 더 더스틴의 지겨운 설교를 참는 것도 여기까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에겐 이곳이 첫나들이인데, 그것을 망쳐버려 그녀는 지금 무한한 분노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더스틴이 아니었지만, 그는 엄연한 오빠라는 입장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그녀를 꾸중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안젤리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어쨌든, 네가 오늘 한 일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로 전해질 거야." "전하려면 전하라고 해." 안젤리나는 신경 쓸 거 전혀 없다는 투로 퉁명스레 대답한 후, 반지에 대고 잡아먹을 듯이 사납 게 외쳤다. 마치 발정 난 암사자의 으르렁거림처럼. "유리 너 죽을래? 왜 그딴 허접한 놈을 내게 붙여서 나를 곤욕스럽게 만든 거야?" 유리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도 안젤리나의 급한 성격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해야 했던가?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제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통신을 끄신 분은 아가씨입니다. 그리고 전 비록 통신기계가 꺼졌지만 제 맡은 임무를 끝까지 완수했습니다. 정 못 미더우시면, 반지에 저장된 음성 기억장치를 재생하여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 유리는 뒷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그녀는 이 말을 하면 아마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뒷말은 이러했는데. "사실 전 아가씨의 분부에 따라 강한 무인이 들어와 알리기는 했습니다만 그와 같은 강자들은 대개 별도의 테스트를 받기에 사실상 아가씨와 대련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젤리나는 남의 마음까지 읽어낼 재주는 없었다. 그래서 안젤리나는 유리가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더 이상 확인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그만큼 철저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유리의 기계 같은 철저함에 혀를 찼지만, 주위에 그녀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면 그녀를 그렇게 만든 인물이 누군데 하며 면박을 줄 것이다. 물론 속으로 말이다. 사실 에드윈 더 안젤리나 앞에서 대 놓고 면박을 줄 인물은 제국 전역을 뒤져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젤리나는 오늘 기분 완전 잡혔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다 마음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어 유리에게 물었다. "야, 오늘 나와 붙었던 그 녀석 이름이 뭐야?" 그녀의 물음에 유리는 사무적인 말투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름 올슈레이 진, 나이 15세 입니다." 안젤리나는 유리의 말을 입으로 되씹으며 집으로 향했고, 그녀의 다음 말은 열심히 뒤를 쫓고 있는 더스틴을 거쳐 그들이 있었던 공간에 잠시 맺혔다 허공으로 사라졌다. "후후, 나보다 2살 적은 애송이였단 말이지. 좋아, 네 녀석의 이름을 기억해주마. 하지만 굳이 내가 네 이름을 외울 필요성조차 없는 인물이 된다면 안 그래도 들어갈 데 없는 내 머리를 사용한 사용료를 받아 주겠어. 이자까지 쳐서 말이야." 진은 갑자기 엄습하는 한기에 온 몸을 떨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한기는 아주 잠시간 진의 몸에 있다 사라져 그를 얼떨떨하게 했다. 그때였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에리필을 호명하고 있었다. "135번 0번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음성 확장기에서 나온 소리는 진에게 의아함을 심어 주었다. 방은 1번부터 10번까지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장기에서는 에리필 보고 0번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을 데리고 접수처와는 정반대쪽에 있는 빈 공간으로 다 가갔다. 그 공간은 사람은 물론이고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차가운 냉기류와 무겁게 가라앉은 적막이 전부였다. 진과 에리필은 허허벌판 같은 공간의 끝, 어떤 벽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벽은 다른 벽들과는 달랐다. 우선 색깔부터 달랐는데, 다른 벽들은 베이지색 계통의 프로이카 산지의 돌을 가공하여 만들었는데 비(比)해, 이 벽만은 유독 칙칙한 검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검과 무기를 만드는 적철광 류의 광물로 이루어진 듯했다. 그러나 이 벽의 재질은 엄격히 말하면 금속도 돌도 아니었다. 살아 있는 유동성 고체, 이것이 이 벽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벽이 살아 움직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 벽을 이루는 물질이 무언가에 자극을 받으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을 한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 이 물질은 200여 년 전, 유명한 고고학자이자 화학자였던 아데메토스 마르쉬다스가 고대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것으로 고대인들은 이것을 헤비우스라 불렀다. 아직까지 헤비우스의 뜻에 대해 정확한 해석을 한 사람은 없지만, 학계에서는 살아 있는 물질이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에리필은 진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말하며 그도 조금 뒤로 물러서 벽과의 일정 거리를 만들었다. 그는 진과 자신의 거리가 충분한지를 가늠한 뒤, 간단한 심호흡을 통해 몸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최고의 기술을 이곳에서 펼쳐 보인다고 하여도, 저기 저 공간 너머에 있는 인간들은 보지 못할 것이다. 사실상 이 공간은 독특한 현혹 마법에 의해 존재하는 공간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어 놓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도록 해 놓은 것이다. 이는 위대한 무인이라 평해지는 인물들에게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가 주는 약소하지만 그들 나름의 배려였다. 에리필은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게 만들었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순간 알 수 없는 푸른 기운들이 마치 안개인양 아련히 피어올라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용의 형상이었다. 그 용은 마치 살아있는 듯 점차 선명한 형상으로 변화되었다. 그 순간, 용은 어마어마하게 큰 입을 쩍 벌리며 기세등등하게 헤비우스에게로 달려가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충격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파는 대단해 헤비우스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헤비우스는 고통스러운 듯 괴이한 비명소리를 내며 격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이한 열기를 만들어 냈고, 그 열기는 어떤 장치를 통해 한 곳으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에리필은 시종여일 고요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에리필에게도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은 잔뜩 흥분해 있어 에리필의 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놀람과 기쁨에 들떠 환호성을 지르며 두 손을 불끈 쥐었 다. "앗싸! 그러면 그렇지, 사부님이 누구신데. 아무튼 존경해요, 사부님! 그런데요 사부님… 그 푸른 용 있잖아요.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진은 존경심과 궁금증을 동시에 토하며, 에리필에게 팔을 들어 올리게 하였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에리필이 팔을 들자, 진은 자신의 손바닥으로 하이파이브 하며 자축했다. ~~~~~~~~~~~~~~~~~~~~~~~~~~~~~~~~~~~~~~~~~~~~~~~~~~~~~~~~ 토, 일 학교 전산실이 쉬는 관계로...크헉...그러나 한 편 올리려고 피시방에 갔더니, 에이 드라이브가 안 되더군요. 크헉...그러니 용서해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7 회] 84화. 캐슬 오브 마스터 4. 그들이 테스트를 마치고 나타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허공에서 사람이 나오는 듯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현혹 마법에 의한 현상이었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몇 경험 있는 무인들은 에리필이 상위 랭커들이 받는 독특한 테스트를 치루고 왔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진과 에리필은 접수처로 다가갔다. 그리고 놀란 토끼 눈처럼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바라보는 유리를 만날 수 있었다. "테스트 결과는 어떻게 됐죠?" 에리필은 힘든 기색이 역력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제서야 진도 그가 과도한 기(氣)를 사용하여 몹시 피곤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리는 에리필의 물음에 담긴 왠지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자신도 모르게 기합이 잔뜩 든 굳은 표정으로 또렷하게 말했다. "우선 방금 테스트를 마치신 에리필 씨는 이번에 S급에 랭크되셨습니다. 그런데 잠시 기다려야 할 거예요. S급의 팔찌는 총책임자이신 애드윈 더 도레이프님께서 갖고 계시거든요." 유리는 이미 사람을 보냈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지만 에리필은 아직 궁금한 게 남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테스트에서 나온 에너지 수치는 어떻게 됩니까?" "에너지 수치요? 잠시 만요." 유리는 양해를 구한 뒤, 어딘가로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들은 내용을 정확히 에리필에게로 전달했다. "그러니깐 에리필님의 에너지 수치는 26873 드라크 입니다. 참고로 S급의 최소 에너지 수치는 15000 드라크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여쭤보아도 될까요?"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유리는 이미 에리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는 업무 외에 이야기도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다름이 아니라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주인 되시는 애드윈 더 세필로스님의 에너지 수치는 어느 정도 되는지…" 유리는 뜻밖의 물음에 당황했다. 그렇지만 굳이 숨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확실히 아는 바는 아니지만, 제가 알기론 약 100000 드라크 이상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참, 그런데 진의 등급은 어떻게 됐죠?" 에리필은 자신의 문제로 미처 진을 챙기지 못한 것을 알자 미안함에 서둘러 유리에게 물었다. "아, 올슈레이 진 말이죠. 진은 HB급이에요." 유리는 진에게 HB라고 새겨진 팔찌를 주며 설명했다. 이에 진은 신기한 듯 팔찌를 만지다 오른손목에 채운 후,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는 진의 표정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은 뭐가 그리 궁금해 죽겠는지요?" 그녀는 평소완 전혀 다른, 마치 아이를 어를 때나 사용하는 어투로 말했다. "저기, 저도 궁금해요. 그 에너지 수치라는 거 말이에요. 근데 알 수 없겠죠? 저는 사부님처럼 그 이상한 벽에 검풍을 날리지도 않았으니까요." 진은 지레짐작하여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유리는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알 수 있다면 어떡하겠어요?" "예? 알 수 있어요?" 진의 눈은 금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변해 유리의 답변을 애타게 갈망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유리의 입을 통해 자신의 현 단계를 공인(公認)받기를 애타게 갈망했다는 게 맞으리라. 어찌됐든 진의 이런 천진하고 앳된 모습은 유리의 모성본능을 자극하였고, 유리는 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진의 모습은 젖 달라고 보채는 강아지 같아 보여 볼로 부비부비를 해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긴 엄연한 직장이고, 그런 문란한 행동을 보이기엔 그녀의 이성은 너무도 견고했다. 하지만 그녀의 철벽 이성을 뚫고 튀어 나온 본능이란 감정이 그녀의 손을 진의 손으로 이끌어 살며시 잡게 만들었다. 이에 전해지는 체취와 따스한 온기는 유리의 영과 육을 꿰뚫어 황홀경을 헤매게 만들었다. 단지 15세 소년을 통해 느낀 이 감정을 도대체 무엇이라 정의해야 하는지…? 그녀의 마음은 현재 진한 감동의 물결을 타고 소리 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 누나. 제 에너지 수치는 어느 정도 나왔는데요?" 진은 기다리다 지쳐 유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유리는 진의 음성을 듣자, 상념에서 깨어나 볼을 살짝 붉히며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그가 듣고 싶어 하던 정보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진이가 테스트를 받으면서 최고로 강한 에너지를 발휘했을 때의 수치인데, 864 드라크 야." "허억, 사부님과 30배나 차이 나잖아요. 히엥." 진은 울상을 지으며 토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순간 당혹해하며 진을 달래려 갖은 노력을 다 해 보았지만 만사휴의(萬事休矣)였다. 그때였다.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날카롭게 생긴 중년인이 나타나 유리에게 황금빛 팔찌를 내밀었다. "아, 벌핀치 씨 오셨어요. 이분이 바로 S급을 받으신 에리필님 이예요." 에리필은 벌핀치가 나타나자마자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자신 못지않은 강자임을 느꼈다. 그리고 벌핀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 그는 유리가 말하기도 전에 에리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에리필이 이번에 S급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도는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기도였던 것이다. 벌핀치는 에리필에게 강렬한 눈길을 보냈다. 이에 에리필 역시 그의 도전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 쳤다. 두 사람은 기세 싸움에 눌리지 않으려는 듯, 강렬한 스파크가 튀는 무시무시한 눈싸움을 전개했다. 그러나 절대로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벌핀치가 강렬한 눈길을 거두면서 그들의 첫 번째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축하하오. 당신은 S급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오." "당신이야말로." 에리필은 그의 억양 없는 말에 화답했다. 얼핏 벌핀치의 날카로운 얼굴에 부드러운 곡선 하나가 그어졌다고 진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타나는 순간 사라져 진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우린 다음에 또 만날 것 같군." 벌핀치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스르륵 사라지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에리필은 S급 랭크라는 것을 증명하는 팔찌를 유리에게 받아 손목에 채우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다음에 볼 때는 신나게 겨뤄보기를 바라오."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2층에는 갑작스레 등장한 S급 랭커를 신기(神奇)와 경이(驚異)를 담은 표정으로 힐끗힐끗 훔쳐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물론 HB급인 진에게 돌아갈 시선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진은 자신이 공인된 무인임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어깨를 펴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었다. 진의 이런 S급의 당당한 걸음걸이가 HB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팔찌와 크게 대비(對比)되어, 뭇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 후우... 학교 컴터실에 사람이 많은 관계로...크헉...이 시간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크흑....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8 회] 85화. 캐슬 오브 마스터 5. 에리필은 진의 거의 넝마가 되다시피 한 옷을 갈아입게 한 후, 가까운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 그 공격을 어떻게 피한 거니?" 에리필은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근처에 있는 음식점 중 닭고기 요리로 유명한 식당에서 닭다리 하나를 뜯으며 진에게 물었다. 진 역시 하나 남은 닭다리를 물어뜯으며 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소리가 가미된 기묘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우음, 카이슨 아저씨한테 배운 분신술과 그림자 술이라는 걸 응용한 거예요." "그림자 술?" "예, 종종 카이슨 아저씨가 땅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거 같은 거 말이에요. 하여튼 제가 그 무시무시한 불길에 휩싸이는 순간, 분리된 몸을 앞세우고, 본체는 그림자 술로 그 밑에 숨어버렸죠. 물론 헤르디온의 무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더라면 제 몸은 아마 녹아버렸을 거예요. 그건 그렇고 확실히 이 무구 대단해요. 게다가 이 무구는 싸우면 싸울수록 그 주인의 능력을 높여주는 공능이 있는 거 같아요." 진은 헤르디온의 무구를 쓰다듬으며 새삼 그 놀라운 위력에 감탄했다. 에리필은 그 모습을 보고 전에 헌트가 지나가듯 흘린 말이 떠올랐다. "아마 헤르디온 그 노인네는 최종적으로 이 무구가 나와 하나가 되길 바라셨던 거 같아." 헌트가 남긴 하나가 된다는 말과 진의 말이 하나로 용해되면서, 여울이 되고 소용돌이가 되어 에리필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사실 무인과 무구가 하나 된다는 것은 엄청난 경지의 깨달음을 통해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트는 이 무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에리필은 괜한 곳에 정신을 뺏긴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닭고기를 집으러 손을 뻗었다. "으힝?" 그러나 에리필의 손은 아쉽게도 빈 그릇 위를 한 번 휘젓고 도로 돌아와야 했다. 이미 진이 남은 닭고기를 다 먹어 버렸던 것이다. 에리필은 내심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제자와 닭고기 때문에 싸우기도 뭐 한 것이 바로 그놈의 채신머리란 녀석 때문이다. 에리필은 잠시 후, 디저트로 나온 과일 쉐이크를 진에게 주고 자신은 붉은 빛이 은은히 감도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와인은 달짝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에리필은 조금 전 그 맛을 다시 음미하기 위해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뒷맛을 음미하듯 눈을 지그시 감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진의 의견을 물었다. "진아, 아마도 출발은 내일이나 해야 되지 싶어서 그러는데 오늘 특별히 구경하고 싶은 곳이 있니?" 진은 과일 쉐이크를 맛있게 스푼으로 떠먹다 에리필의 물음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재빨 리 대답했다.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다른 층들도 들어가 보고 싶어요." "다른 층이라… 음…그래 좋다. 그것도 좋은 공부가 될 수 있겠지. 그럼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지식으로 몇 가지 설명하마.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3층과 4층은 너도 알고 있듯이 전사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사실 이곳은 어떻게 보면 전사들의 훈련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 실상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3층과 4층은 단지 문 역할만 하고 있지. 그리고 그들이 훈련하는 곳은 다른 공간이라 할 수 있어. 그렇다고 아공간 같은 곳은 아니야. 단지 이곳과는 다른 공간이기에 일반루트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을 뿐이지. 그리고 아마 내가 알기로는 3층은 아무 등급을 받은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있지만, 4층은 LA급 이상만 들어 갈 수 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5층은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설립 목적과 세워진 연도, 그리고 각 시대별로 최고의 전사들. 그리고 그들의 능력들. 가히 시공간을 뛰어넘어 제국의 전사들의 모든 것이 녹아있는 장소라 할 수 있지." 에리필은 와인을 다 비우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마쳤다. 진도 과일 쉐이크를 다 먹었는지 텅 빈 고깔 모양의 그릇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에리필은 피식 웃으며, 과일 쉐이크 하나를 더 주문했다. 잠시 후, 음식점을 나서는 진의 손에 과일 쉐이크가 들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3층인 전사의 영역에는 기형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 커다란 네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문에는 C, LB, B, HB 라고 새겨져 있어, 등급에 맞게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고 있었다. 진과 에리필은 3층의 HB 라고 새겨져 있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진의 손이 문에 대임과 동시에 그의 손에 있던 팔찌가 공명을 일으키듯 환한 빛을 뿜었고, 거대한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다. 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진과 에리필이 한 걸음 내딛고, 거대한 문이 닫히자 주위의 풍경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어둠은 사라지고,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진은 색다른 경험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지나쳐왔던 커다란 문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진의 눈에 순간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것을 읽은 에리필은 대수로울 것 없다는 말투로 진을 위로했다. "진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되돌아갈 수 있단다.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우리 몸에는 추적 마법과 회귀 마법이 걸려 있지. 따라서 간단한 주문만 외우면 우린 순식간에 문 앞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란다." 진은 그의 자상한 설명에 안도하며 눈앞에 그 웅장함과 괴기스러움을 맘껏 뽐내는 첨탑(尖塔)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은 으스스한 한기와 소름이 돋을 만큼 사악한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으며,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빛 일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실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극도의 공포스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에리필도 그 건물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기형학적인 건물은 지옥의 108 군주 중 우리 인간들에게 익히 그 악명을 떨치고 있는 13번째 군주인 자베이르 타샤시스트의 집을 흑마법사들의 문헌을 토대로 건축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물론 이곳은 현실과 가상의 공간 중 어느 한곳에도 포함되지 않은 이른 바 신공간이라 불리는 곳이지. 어쨌든 여기서 생긴 물리적 타격은 현실로 돌아갔을 때엔 전혀 데미지를 주지 않아. 그렇지만 여기서 죽음이란 것은 실제 세계에서도 죽음을 뜻하니깐 이점 만은 유념해야 될 거야. 그만큼 신공간이란 곳은 특이한 곳이지. 사실 이곳도 고대인들의 연구 결과와 현대의 마법력이 어우러져 이룬 위대한 산물이라 말할 수가 있지. 아무튼 이곳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불가사의(不可思議)라 할 수가 있단다." 진은 그의 설명을 들으며 머리가 아파 옴을 느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제대로 이해한 것이 있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영웅 소설에나 등장하는 악의 군주 자베이르 타샤시스트의 집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곳이 지옥이 아니기에 진짜 자베이르 타샤시스트가 살 리도 없겠지만, 진의 사고는 영웅 중독증에 빠져, 불쌍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전의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어서 가요. 불쌍한 공주가 지금 이 시간에도 자베이르 타샤시스트 놈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지 몰라요." 진은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진을 뒤따라가며 묵묵히 걷던 에리필은 문득 이 건물을 만든 인물의 의도가 궁금했다.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열혈 근성을 각성시켜 수련에 플러스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베이르 타샤시스트의 문은 악의 군주답게 해골로 그 문이 장식되어있었는데, 진이 해골을 밀자, 또 다시 팔찌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해골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에 의해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자베이르 타샤시스트의 거처인 108층 중 30층입니다. HB급이신 당신은 여기서부터 출발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하고 싶으시다면 리플레이라고 외쳐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몇 초 후에 공간의 문은 닫히게 됩니다.] 진과 에리필은 아직도 빛 무리가 은은하게 깔려 있는 공간에서 인공적인 음성을 들었다. 반사적으로 진은 화들짝 놀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에리필은 차분히 진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할래? 아님 이곳에서 시작하고 싶니? 참고로 우린 이곳에 수련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방문하러 왔다는 걸 잊지 말고." 진은 호들갑을 떨다 그의 진지한 음성에 나름의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여기서 하죠." 진의 천연덕스런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빛 무리도 사라지며 30층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0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방문자들의 공간과 저기 괴이하게 생긴 괴물이 점(占)하는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괴물은 어떤 선을 경계로 하여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침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결국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경계선을 넘어 들어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까의 예의 인공적인 음성이 울려 저 괴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30층의 주인은 자베이르 타샤시스트의 12사단 중 10사단의 주축을 이루는 케위크스 입니다. 케위크스는 키가 3 라키르(미터)에 이르고 있으며 그 전투력은 현존하는 중급 몬스터에 육박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래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라면 그들의 본래 전투력은 대형 몬스터 급에 해당할 테지만, 이곳이 인간계임을 감안하여 그들의 힘을 7분의 1로 줄였으니 이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아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인공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함께 들어온 조명은 괴물의 외모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기 조심하고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89 회] 86화. 캐슬 오브 마스터 6. 케위크스는 늑대의 모습을 최대한 사악하고 흉측하게 찌그려 놓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 날카로운 이빨은 붉은 조명을 받아 번득이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진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 그 기세가 자못 대단하였다. 게다가 그는 팔과 다리에 물갈퀴처럼 생긴 것들을 달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주 거슬렸다. 그리고 그의 등은 마치 꼽추처럼 구부러져 있었고, 혹이라 짐작되는 곳에는 원탑 모양의 뿔이 세워져 있었다. 진은 솔직히 앞에 서 있는 녀석과의 싸움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녹색의 끈적끈적한 액체들이 진의 비위를 몹시 거슬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은 역시나 단순했다. 에리필의 말 몇 마디에 호승심을 불태우며 전투태세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하리라. "상대하기 껄끄럽지. 역시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니에요. 저딴 녀석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고요. 어디 한 번 보실래요?" 진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케위크스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다 뭔가를 빠뜨린 듯 멈칫거리다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중력해제!" 그런 진을 보며 에리필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점점 성격이 헌트와 닮아가고 있는데, 이게 좋은 현상인가?" 에리필은 나름대로 고뇌에 빠져 보았지만 성급히 결론을 내릴 문제가 아닌지라 상념을 접고 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은 안전지대를 넘어 케위크스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치 겁 대가리를 상실한 듯한 모습으로 말 을 건넸다. "헤이, 친구. 오늘 기분이 몹시 꿉꿉한데 나에게 좀 얻어터져줘야겠어." 진은 상대가 기껏해야 몬스터이겠지 생각하며 놀렸다. 그러나 케위크스는 단순한 몬스터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지옥에서라면 누구도 겁내지 않는 용맹한 전사였던 것이다. "버릇없는 저 애송이가 내 상대란 말인가? 오늘 간만에 포식하게 생겼군."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은 음산했으며, 그 입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진은 의외의 상황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케위크스를 올려 보았다. 그러나 케위크스는 역시나 단순한 몬스터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눈빛으로 올려본다고 하여 봐줄 생각은 전혀 없다. 캬르르르!" 케위크스는 등골이 오싹할 괴성을 지르며 진에게 달려들었다. 케위크스는 순간적으로 공간을 파괴하며 진에게로 육박해 그의 몸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진은 그의 공격궤도를 미리 짐작하고 검을 휘둘렀다. 캉! 진의 검과 그의 이빨의 부딪힌 소리는 의외로 금속성이었다. 진은 지금의 공격이라면 그의 이빨 정도야 옥수수를 털어내 듯 매우 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검이 그의 이빨 사이에 끼여 버린 것이다. 진은 일련의 뜻밖에 사태에 당황하여 급히 검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이빨 사이에 박힌 검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당황에서 드러난 허점을 놓칠 케위크스가 아니었다. 그는 옴짝달싹 못하는 진의 몸에 강렬한 일격을 퍼부었고, 진은 얼떨결에 그것을 왼팔로 막았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진의 몸은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것도 진이 헤르디온의 무구를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본래 같으면 진의 왼팔은 무참히 찢어져 재기 불능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커억! 진은 뼛속까지 전해지는 충격에 신음을 토했다. 하지만 극도로 단련된 맷집으로 힘겹게 일어섬과 동시에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의외로 케위크스는 입에 물고 있는 검을 뒤쪽으로 뱉어낼 뿐, 아무런 공격태세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진은 일갈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이놈! 죽어라!" 진은 검이 없어도 충분히 강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론 검이 없는 것이 헤르디온의 무구를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득달같이 달려든 진은 손과 발을 이용하여 정신없이 공격했다. 상대는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 있는 괴수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수(人獸)간의 전투는 인간들간의 전투와는 전개방식이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진은 매 공격에 정신을 최대한 집중했고, 뜻밖의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모았다. 처음엔 흥분하여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헤르디온의 무구가 자신의 몸과 같이 호흡하려 함을 느꼈다. 알 수 없는 흥분과 희열이 사지로 전달되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던 모든 동작들이 참으로 자연스런 동작으로 이어졌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 할까… 그가 전개하는 공격과 수비는 각이 제대로 잡힌 완벽한 동작들이었다. 진은 기분이 좋아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케위크스는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달려든 상대를 손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것은 분명 오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몸은 따라가기 조차 벅찼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가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의 공격은 그의 딱딱한 각질에 의해 충격이 최소화되어 별 피해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그는 입을 이죽거리며 귀찮은 날 파리 같은 녀석을 어떻게 해치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은 생각에 머무르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주먹을 뻗을 테니 잘 부탁한다.' 진은 헤르디온의 무구가 말한다고 생각하며 그 느낌에 충실히 주먹을 뻗었다. 천천히 그러나 지금껏 연습한 것을 충실히 반영한 일권이 지금 진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케위크스는 진의 혼을 빼놓는 공격에 잠시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자신에게로 공간을 좁히며 다가오는 주먹을 발견했다. 그는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빠른 몸놀림은 주먹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고, 설혹 피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강인한 육체는 이딴 주먹에 당할 만큼 연약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주먹을 끝내 피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의 강인하다고 자부했던 육체도 끝내 버티지 못했다. 진의 주먹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음! 펑! 케위크스는 뻥 뚫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등에 박혀 있던 원형의 뿔도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그는 잠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쿵! 거대한 몸체가 땅위로 쓰러졌다. 진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그의 주먹과 쓰러진 케위크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의 감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평소처럼 주먹을 뻗었을 뿐이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헤르디온의 무구의 전언(傳言)대로 뻗었다는 것이지만……. 진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무구에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헤르디온의 무구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진은 실망했지만, 아까의 감각이 아직 몸에 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서둘러 에리필에게 달려가며 말했다. "사부님, 제 주먹을 한 번 받아주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먹을 뻗었다. 펑! 진의 주먹은 에리필의 검에 너무도 쉽게 막혔다. 이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만반의 준비로 맞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을 타고 올라오는 아찔한 충격에 경악했다. 지금의 주먹은 평소 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에리필은 지금이 고비라 생각하며 진에게 지금처럼 계속해서 주먹을 날리라고 말했다. 캉! 캉! 캉! … 진은 에리필의 말대로 지금의 이 감각을 몸에 심기 위해 계속해서 주먹을 뻗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시간! 진은 평소보다 훨씬 지친 모습으로 에리필 앞에 서 있었다. "더 이상은 못 뻗겠어요. 이상하게 일권, 일권을 뻗기가 전보다 훨씬 힘들어요." 진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에 에리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또, 성장했구나." 에리필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그러나 진은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긁적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다 이 녀석 덕분이에요." 진은 마치 헤르디온의 무구를 친구처럼 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진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기된 음성으로 말했다. "사부님, 저기 이 헤르디온의 무구에게 이름을 지어줘도 될 까요?" "…물론이지." 에리필은 진의 예기치 못한 발언에 잠시 멈칫했지만,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 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트의 말을. 조금 전 진의 말을. 진은 에리필의 입에서 승낙의 말이 떨어지자 매우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하나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 "엘뤼시온 어때요?" "엘뤼시온! 무슨 뜻이라도 있느냐?" 진은 에리필의 반문에 헤헤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예전에 봤던 영웅 소설 중에 타뮈리시 전기라는 게 있었는데요. 전 그 책에서 타뮈리시 보다 오히려 그의 친구이자 영원한 그의 방패가 되어 주었던 엘뤼시온을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 녀석이 저의 엘뤼시온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이름을 지은 거예요." 진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확실히 에리필에게도 엘뤼시온에게도 전해졌으리라. 진은 머리를 긁적이다 갑자기 들려온 예의 인공음성에 귀 기울였다. [30층을 통과하셨으니 31층으로 올라가십시오.] 진은 그제 서야 그들 반대편에 있는 열려진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라진 케위크스의 시체도 그 옆에 나뒹굴고 있는 그의 검도 볼 수 있었다. 진은 사라진 케위크스의 시체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에리필의 간단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여기는 실제 세계가 아니야. 그러니 케위크스도 실제로 여기 존재했던 것이 아니지. 나로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엄청난 마법력과 그들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런 대전 상대를 만들어 낸다고 하지, 아마. 그리고 이들은 인식된 언어와 행동으로 수련자들을 대한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실제 케위크스가 아까처럼 말을 할지 아님 다른 언어를 사용할지는 전혀 알 수가 없겠지." 진은 떨어진 검을 검집에 밀어 넣으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에리필은 열려진 문을 보며 진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래? 31층도 가 볼래?" 에리필은 진이 몇 층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래요. 솔직히 지금 너무 피곤해요." "알겠다. 돌아가자꾸나. 리턴!" 에리필이 진을 붙잡고 주문을 외우자 하얀 빛이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은 30층에서 사라졌다. 대신 인공음성이 허무하게 빈 공간을 울릴 뿐이었다. [31층 포기. 신공간의 문으로 돌아갔음.] ~~~~~~~~~~~~~~~~~~~~~~~~~~~~~~~~~~~~~~~~~~~~~~~~~~~~~~~ 오늘은 쪼메 깁니다. 크흑....중간에 짜를 수가 없어서....뭐, 독자분들이야 길면 더 좋겠죠? 흐흐흐... 그러나 올리는 작가는 그만큼의 분량을 써야되니...험험험...어쨌든 재밌게 봐주세요. 아,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신공간은 유레카라는 게임 만화에서 얻은 소재를 이용하여 쓴 겁니다. 만약 그런 게임이 나타나게 되면, 꼭 해볼겁니다. 크흐흐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0 회] 87화. 캐슬 오브 마스터 7. 라디오카 시는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의해 자연적으로 숙박업과 음식업이 성행하는 도시로 변했다. 진과 에리필은 그 많은 여관들 중에 '향기로운 나라'라는 낭만 끼 짙은 이름을 가진 여관에서 하룻밤을 거하게 되었다. "근데, 사부님. 우리 일정이 빡빡한가요?" 난데없는 물음에 에리필은 의아해했지만, 그는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아니, 그리 빡빡하진 않지. 그런데 왜?" "아뇨, 그냥. 제 실력이 어디까지 통하나 싶어서요." "어디에?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 말이냐?" 에리필은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모습을 본 에리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일정엔 여유가 있다. 그리고 진이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의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으흠, 좋아." "정말요?" "그럼, 사실 지금 네 실력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구나." 에리필은 자못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진은 침대 위에서 몇 번 폴짝인 후, 에리필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해요. 사부님. 그리고 한 번 기대해 보세요." "그래, 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말고." "예." 진은 에리필의 말을 뒤로 넘기며 기(氣)수련에 들어갔다. 에리필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그도 기(氣)수련에 들어갔다. 이렇게 라디오카 시에서의 하루도 지나가고 있었다. 진은 그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3층에 올랐다. 그러나 진은 첫날부터 난데없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진은 힘겨운 걸음이지만, 34층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34층까지 오른 것만도 대단한 거라고 유리가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였다. 35층의 주인인 아르고스는 그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진을 패배와 벽이라는 좌절과 절망의 사슬로 그를 꽁꽁 동여매었다. 그렇게 패배감을 안고 그는 돌아왔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전날의 패기만만한 기세는 주머니 속에 꾸깃꾸깃 구겨 넣었는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진을 보며 에리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떠난다면 진은 패배와 좌절의 늪에 빠져, 분명 그의 앞날이 그릇될 것임을 에리필은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재능 있는 무인들이 패배감과 자신감 상실로 이 세계를 떠났던가! 그래서 에리필은 단호한 결정을 내렸 다. 그는 진이 3층으로 오르기 전에 한 마디만 했다. "하루에 하나만 건져라." 진의 눈은 암울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간혹 패배에 따른 자괴감과 공포의 감정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은 아르고스가 나타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그의 육체는 물론이요, 혼까지 지배를 받는 듯 그의 눈은 초점이 흐려진 멍한 상태였다. 아르고스는 쉽게 말해 커다란 개였다. 그러나 말이 개지 그 크기만도 5 라키르(미터)가 넘었고, 그 눈은 푸른 광채를 발하고 있어 지옥의 사자와도 같은 음유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이빨은 1 라키르(미터)에 육박했고, 그의 발톱 역시 그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어, 접근했다가는 그의 예리한 무기에 의해 도륙되어 버릴 것 같았다. 진은 자신 없는 모습으로 아르고스 앞에 섰다. 진은 어제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순간을. 그 고통을. 그리고 그 잔혹한 푸른 안광을… 만약 에리필이 도중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는 십중팔구 죽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진은 두려움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허억, 허억." 진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온 몸을 축축하게 적시는 식은땀을 느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 이 눈앞에 있는 상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치욕이었다. 그렇게 자기 비하를 함으로써 또 한번 좌절에서 절망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아름답지만 거친 내용을 담은 음성이 35층을 울렸다. "야 너 죽을래? 사내자식이 잔뜩 쫄아 가지고 그게 뭐 하는 짓이야?" 진은 허공에서 터지듯이 나타난 독설에 부끄러움과 울분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서 그는 두 감정이 혼합된 기이한 음성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네 까짓 게 뭔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진은 허공에다가 그의 비참함을 토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소와 잔인한 말 뿐이었다. "흥, 최소한 나와 싸울 때는 그렇게 쫄지 않았어. 나의 지옥 겁화에도 기죽지 않고 돌진하던 그 기개는 도대체 어디다 버린 거야? 내가 너 같은 녀석의 이름을 기억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군." 진은 순간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혹감과 비참함이 그의 몸을 잔혹하게 난자했다. 진은 일그러진 얼굴로 고통스럽게 서 있었다. 허공에서도 더 이상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에리필은 진을 위해 나서기 보다는 기다렸다. 그것은 '진이라면 견뎌내겠지'하는 제자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끼어든 안젤리나의 자극이라면 그의 투쟁심을 부활시킬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험상궂게 일그러뜨린 얼굴 사이로 기이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진은 쥐어 짜내듯이 말했 다. "잘 들어라. 나는 오늘도 질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난 저 녀석을 이긴다. 그리고 내 이름을 기억한 거 후회하지 않게 해 주마." 진은 조용히 중력해제 주문을 외운 뒤, 떨리는 일보, 일보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아르고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진은 무슨 생각인지 검을 풀어 에리필에게로 던졌다. "무슨…" 에리필은 진의 돌연한 행동에 놀라 물었지만, 진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까 전 그가 한 말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만 건지겠습니다. 이얍!" 진은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와 아르고스의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진은 주로 왼손 공격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어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진의 몸은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의 옷은 이미 넝마가 된지 오래였고, 드러나는 살이란 살은 벌어진 상처를 가지고 있어 붉은 피가 샘솟듯 솟아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꼭 피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말대로 한 가지를 얻어 낸 것이다. 아르고스가 경이적인 속도로 진의 측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진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왼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틀 전 그가 오른손으로 펼쳐냈던 주먹과 똑같았다. 푹! 듣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돋게 하는 파육음은 진의 오른팔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신을 다한 왼손을 뻗었다. 그가 노린 곳은 자신의 팔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놈의 다리였다. 펑! 엄청난 폭발음과 떨어져 나가는 아르고스의 다리를 보며 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쓰러졌고, 그는 그 와중에도 중얼거렸다. "하루에 한 가지…" "키야오! 죽여 버리겠다." 아르고스는 자신의 다리 하나를 빼앗은 진에게 무한한 분노를 보내며 날카로운 이빨로 머리통을 터트리려했다. 그러나 그는 진의 몸에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서걱! 하얀 빛 무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진의 머리를 터트리기 일보직전인 아르고스의 이빨을 자르는 것과 동시에 그 빛들이 분산되어 그의 몸을 고기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에리필은 어느새 나타나 진을 안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아르고스의 육중한 몸이 분열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에리필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아마 애드윈 가의 아가씨 같은데, 어쨌든 고맙게 생각하오. 그럼." 에리필은 가벼운 묵례를 끝으로 현실 세계로 돌아가 버렸다. 모두가 떠나거나 죽어버리자 치열한 전투의 현장은 순식간에 침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러한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으니 그것은 새침한 목소리의 그녀 때문이었다. "흥, 별것도 아닌 게 폼만 잡고 있어. 그렇지 벌핀치?" "예, 그의 검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확실히 핀트가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 즐겁게 봐주세요~~~ 글구 때구님 언제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부족한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한분한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1 회] 88화. 캐슬 오브 마스터 8. 진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르고스에게 도전했다. 비록 결과는 처참했지만 진은 그에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4일 후, 진은 그의 무구인 엘뤼시온을 양손, 양발 모두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히 느꼈던 그 감각을 이제는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은 왠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몸도 예전의 제 몸 같지 않고, 정말 날아갈 거 같아요." 진은 컨디션이 좋은지 생글생글 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오늘도 검을 사용하지 않을 참이냐?" "아뇨, 오늘은 사용할 거예요. 사실 검을 쓰지 않은 것은 그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검을 사용하다 보면 엘뤼시온에게 가는 관심이 그만큼 적어질 테니까… 어쨌든 뭐 그랬어요." "넌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해 줄 말은 이것뿐이다." 진은 에리필의 격려를 받으며 또 다시 도전의 자리로 들어갔다. 아르고스는 여전히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으르렁거리다 갑자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곤욕스럽기도 한 것이 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진에게 아르고스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도 공포스런 존재도 아니었다. 단지 이겨야만 하는 적이자 상대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진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더없이 좋아 보였다. 안젤리나는 화면을 통해 비쳐지는 진의 얼굴이 순간 멋져 보이자, 되레 뾰족한 음성으로 투덜거렸다. "아침에 버터구이를 먹었나? 얼굴이 왜 저리 뺀질거려?" 옆에서 그녀를 보좌 하고 있던 벌핀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얼굴에 언뜻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미소가 워낙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벌핀치가 미소 지었다는 사실을 안젤리나는 꿈에도 모르리라… 진은 중력해제주문을 외운 뒤, 지금껏 뽑지 않았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검을 달래듯이 중얼거렸다. "미안. 대신 오늘은 신나게 놀아보자." 진은 시작부터 강력한 검풍을 날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지금껏 날렸던 검풍보다 몇 배나 강력했으며, 바람마저도 대부분 갈무리되어 쓸데없이 기운을 낭비하지 않게 되었는데, 한동안 검을 들지 않은 진이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발전했다는 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전투 자체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헌트의 가르침대로 말이다. 진의 몸은 확실히 가벼워져 있었다. 그리고 빨라져 있었다. 그것은 상대인 아르고스의 공격이 번번이 허탕을 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진의 몸이 특별히 빨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대의 예비 동작에서 다음 동작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이미 전투에 몰입해 있는 진은 그런 것을 알리도 없었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진은 전투를 치루며 처음으로 발과 검을 동시에, 팔과 다리를 동시에 쓰는 등 변칙적인 공격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게다가 일검, 일권, 일각이 모두 강력했기에 아르고스는 점차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아르고스의 날카롭던 무기들은 이미 무뎌져 무기 구실도 못했고, 그의 강인한 육체는 곳곳이 상처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최후의 발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르고스는 접근전은 불리하다고 여기며 뒤로 조금 물러섰다. 그러나 아르고스 뜻대로 두지 않겠다는 듯, 진은 그의 뒤를 찰거머리처럼 뒤쫓아 갔다. 순간 아르고스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몸을 돌렸다. 휘익! 진의 몸이 앞으로 쏘아짐과 동시에 아르고스는 경이적인 탄력으로 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는 진의 몸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의기양양해야할 아르고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뚫었긴 뚫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싸늘한 한기가 온 몸에 엄습했다. 그는 불안했다. 본능적인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조여 왔던 것이다. 아르고스는 증대되는 불안감에 몸을 훽 돌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순간 안심한 아르고스는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푸른 망막에 잡히는 인영. 그는 바로 진이었다. 서거걱! 진은 아르고스가 어떤 움직임도 보이기 전에 검으로 그의 몸을 양단해 버렸다. 쿵! 진은 몸이 두 부분으로 양단되어 버린 아르고스를 약간은 측은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허공에다 대고 외쳤다. "아마 지금 나의 싸움을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내 이름을 외웠다는 사실이 후회는커녕 잘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꼭 증명하겠다." 진은 검에 묻은 피들을 털어내며, 에리필에게로 향했다. 에리필은 그의 제자가 대견스러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진 또한 그의 사부와 똑같은 포즈를 취했다. 한편, 진의 다짐을 듣고 있던 안젤리나는 또 다시 콧대 센 본래의 그녀가 되어 중얼거렸다. "흥, 과연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그때까지 네 이름을 기억해줄 테니 영광으로 알라고. 그렇지 벌핀치?" "예, 그렇습니다. 성장이 기대되는 아이로군요." 두 사람의 대화는 또 다시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안젤리나는 이틀 동안 특수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특수화면은 더 이상 진의 모습을 비추지 않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 뒤에 서 있던 벌핀치가 예의 건조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는 오늘 아침 라디오카 시를 떠났다고 합니다. 뒤에 사람이라도 붙일까요?" 안제리나는 멍하게 앉아 있다 벌핀치의 목소리를 듣고 짜증스런 투로 쏘아 붙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리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그냥 할 일도 없고 하니깐 앉아 있을 뿐이야." 안젤리나는 그녀답지 않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벌핀치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무작정 앉아 있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사료됩니다만." 그는 은근히 그녀가 걱정되어 건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젤리나도 그의 날카로운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걱정의 기색을 느꼈을까?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한 사람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 감정은 그녀에게 너무도 어색한 감정이기에… ~~~~~~~~~~~~~~~~~~~~~~~~~~~~~~~~~~~~~~~~~~~~~~~~~~~~~~~~ 오늘은 2연참이네요...아잣!!!!!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2 회] 89화. 순례자의 걸음 1. 제국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에는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다수의 신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지방만큼 많은 신전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지방이 제국에서 생산하는 식량의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거대한 평원을 소유하고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에페이로스는 제국의 십대 도시 중 한곳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다른 십대 도시들 처럼 아카데미를 가지지도 않았으며,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가 힘든 그런 도시였다. 오히려 이곳만큼 평범하고, 소박한 옷차림을 즐겨하는 도시도 드물 정도로 에페이로스는 한마디로 검소와 간편함의 도시였다. 그러나 또한 이 도시만큼 부유한 도시도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에페이로스야 말로 제국의 곡창지대 위에 세워진 도시였기 때문이다. 농경은 인간들로 하여금 신을 찾게 만든다. 그것은 고래부터 이어온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래서 에페이로스에는 여러 종류의 신을 모신 신전이 존재한다. 그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전은 뭐니 뭐니 해도 태양신 벨과 물과 풍요의 신 아프로를 섬기는 신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신 벨의 교단이 있는 곳이 이곳 에페이로스이기도 해, 특히 성직자들만이 입는 푸른빛 로브에 태양이 그려져 있는 사제들을 많이 볼 수 있기도 하다. 에페이로스에는 태양신 벨을 모시는 신전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일반 백성들을 위해 도시 중심부에 세워 놓았고, 또 하나는 태양신 벨의 교단으로서 많은 성직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세워졌다. 그래서인지 태양신 벨의 교단은 산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곳에 세워져 외인들의 출입이 뜸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신령스러운 산이라 불리는 파스카니 산 아래에는 온통 푸른빛 로브에 태양 마크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태양신 벨의 교단이었다. 교단에는 크게 다섯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어 엄격히 구별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다섯 부류는 믿음과 연륜 그리고 엄격한 시험을 통해 나누어 지며, 그 누구도 구별된 생활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태양신 벨의 교단뿐만 아니라 모든 신전에서도 마치 계급과도 같은 신분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그 중 가장 말단 신분을 견습 성직자라 하고 그 위에 신분을 대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제 내지는 성직자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랍비라 하여 선생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람들이 있으며, 최상위에 대사제라 부르는 성직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과는 별개로 오직 신의 뜻을 전하는 대사제의 말에만 복종하는 성기사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들 사이에도 서열과 계급이 정해지지만 그것은 워낙 세부적인 사항이며, 각 신전들 마다 다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태양신 벨의 성기사 중 으뜸인 두 사람을 차카오니라 부르는 반면 물과 풍요의 신 아프로 신전에서는 최고의 성기사 일곱을 뽑아 배저키스트라 명명한다. 이렇게 신분을 나누어 생활하기에 그들이 사는 곳이 구분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신전의 가장 외곽에서부터 중심부로 들어올수록 그 신분이 높음을 뜻한다. 카드모스는 태양신 벨의 뜰을 의미하며, 여기에 견습 성직자들이 거한다. 그리고 잡일을 하는 신전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곳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다. "샤넬리 양은 참 온유하신 분 같아요." 발카니(랍비의 거처 내지는 수업 받는 곳)에서 카드모스로 가는 길에 유실리아가 말했다. "호호,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온유한 걸로 따지면 유실리아 양을 따를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샤넬리는 마치 아쿠아마린 가루를 머리에 뿌려 놓은 듯 은은한 푸르른 빛을 내는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걸을 때마다 찰랑거리면서 푸른빛 옷과 조화가 되어 너무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게다가 그녀는 이목구비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매우 조화로워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몇 년 후에 그녀가 완연한 숙녀가 되었을 때, 제국 최고의 미녀의 칭호는 바로 샤넬리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샤넬리는 유실리아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아, 가야할 시간이 되었네요. 아쉽지만 다음에 봐요." "그래요. 그런데 며칠 후에 견습 성직자의 순례자의 걸음이 있다고 들었어요. 태양신 벨님의 가호가 샤넬리 양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할게요." "고마워요. 그럼 전 이만 갈게요." 샤넬리는 고마움을 표시하며 서둘러 움직였다. 샤넬리가 급히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성기사들이 거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여러 번 와봤던 듯,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연못을 돌아 뒤뜰로 향했다. 뒤뜰에는 허리까지 기른 금발을 단정히 묶고, 세밀한 세공으로 아름다운 문양들을 새겨 넣은 금빛 갑옷을 입고 있는 삼십대의 미청년이 경건한 기도를 끝마치고 고풍스런 검을 뽑으려 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안 늦어서 다행이다." 샤넬리는 게니우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게니우스는 그녀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았지만 이미 그가 한 발 양보한 전례가 있어,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게니우스는 미리 준비해둔 검을 샤넬리에게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소에 하던 말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당신 같은 미인이 검을 든다는 사실을 벨님이 아신다면 아마 슬퍼하실 겁니다." "그런 입에 발린 소린 그만하고, 수업이나 빨리 진행하라고. 나는 며칠 후면 여길 떠나야 되는 몸이라서 시간이 없다니까." 샤넬리는 유실리아와 대화할 때완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에게 언제나 따라다니던 온유와 기품은 간데 온데 없이 사라졌으며, 대신에 왈가닥이라는 칭호가 너무나 어울리는 모습이 은근슬쩍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그런 사실을 주목하는 이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게니우스도 처음에 그녀의 이런 카멜레온의 모습에 크게 놀랬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니 그것도 나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자신이 신에게 온전히 몸을 바치기로 한 차카오니라 할지라도 그건 변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게니우스는 예전의 그녀와 첫 대면했을 때를 떠올리다 그녀가 계속해서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태양신 벨님을 섬기는 우리 성기사들은 그분의 뜨겁지만 따스함을 담은 검을 휘둘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기사로서 탈락이겠죠. 뜨거움과 따스함 이 상반된 기운을 검에 담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게니우스는 말을 마치고 간단히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간단한 휘두름에 주위의 공기는 대번에 데워져 버렸다. 그저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가 검을 회수할 때의 모습이다. 그가 검을 원위치로 돌리자 뜨거웠던 대기가 순식간에 푸근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것을 기계적인 똑바른 직선에 가까운 검놀림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절도와 패기 그리고 강함과 온유함. 그의 검은 그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었다. 잠시 후, 천천히 검을 휘두르던 그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무라는 것이다. 신을 찬양하기 위해 성기사들이 추는 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신을 보호해야하기에 그들의 춤사위에도 검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래서일까? 게니우스의 신무는 뭔가가 한껏 치솟아 있는 참으로 엑스터시한 춤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샤넬리는 명쾌하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신의 사도이자 신을 지키는 성기사라는 것을. 그가 왜 차카오니라 불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게니우스의 신무는 샤넬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천천히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될수록 엄청난 가속도를 붙이며 빨라졌다. 그에 따라 게니우스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또한 판이하게 달라졌다. 게니우스는 온전히 신무에 빠져 들었다. 자신을 낮추고, 온전한 마음을 신께 드리는 그 모습. 게니우스의 모습이 바로 이러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위력을 동반한 신무를 이 땅에 재현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그의 검안에 놓여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신의 뜻에 따라 처분이 결정되었고, 그것은 신무의 극의를 이루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참을 무아지경에서 헤맨 게니우스가 신무를 멈추었다. 그는 본 것이다. 완전히 변해 버린 뒤뜰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직 수련이 부족하군요. 힘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도 이 정도니." 그의 푸념에 샤넬리는 아연해하며 항의하듯 외쳤다. "남은 이렇게 만들고 싶어도 못 한다고. 지금 잘난 척 하는 거야?" 그녀가 이렇게 대들고 나서자 그는 감당하기 힘든 듯 뒤로 주춤 물러서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닙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듯 성기사는 뜨거움과 따스함을 검에 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검에는 뜨거움 즉 강함만 묻어났습니다. 위대한 차카오니이신 야카투스 사투르니아님의 마지막 신무는 이랬다고 합니다. 거센 바람이 사라지고 오히려 온유하더라. 이 말씀은 우리 성기사들이 목표로 하는 경지이기도 하죠. 하지만 당대의 차카오니인 저에게는 아직 그 경지는 요원하기만 할 뿐이죠." 그의 얼굴이 우울해지자 샤넬리는 괜히 긁어서 부스럼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본시 우울과는 담쌓은 그녀는 남이 우울해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게니우스를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직 게니우스에겐 시간이라는 선물이 있잖아. 그리고 사실 최연소 차카오니인 당신이 이렇게 우울해 한다면 다른 성기사들은 뭐라 하겠어?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예, 알겠습니다. 다시 시작하죠." 게니우스는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었다. 우울함이란 감정을 금세 소각시키고, 본레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자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것만 보아도 그의 수양이 결코 얕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수양이 낮다면 차카오니가 되지도 못했을 거지만 말이다. 게니우스는 샤넬리에게 신무의 골격은 이미 다 가르쳐 주었기에, 신무를 추다 틀린 점이 있으면 지적하는 식으로 수련은 계속되었다. 샤넬리가 신무를 춘 지 2시간 정도 흘렀을까? 그녀는 검을 게니우스에게 주며 말했다. "아, 이걸 배우려고 여기 들어온 건데. 순례자의 걸음 따위나 해야 되니… 에휴!" 그녀는 고위성직자들이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를 거침없이 입 밖으로 뱉어내고 있었다. 게니우스도 고위성직자답게 기겁하며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으나 확실히 말은 빠른 것이었다. "샤넬리 양, 당신이 아무리 신학에 관심 없고, 오직 이 신무에만 관심 있다고 하여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니우스는 짐짓 근엄한 모습으로 설교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이에 굴할 샤넬리가 아니었다. "저는 저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 한 거 뿐이예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베 하며 놀린 후, 사라졌고 게니우스는 멍하니 그녀의 잔영을 쫓으며 뼈저린 중얼거림을 남겼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가드 할 인물들의 고생이 눈에 선하구나!" ~~~~~~~~~~~~~~~~~~~~~~~~~~~~~~~~~~~~~~~~~~~~~~~~~~~~~~~~ 토, 일 인터넷이 안되는 관계로 올리지 못했군요. 음... 저번 주 토요일 날 기숙사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참가한 축구는 우승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다른 건 영...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3 회] 90화. 순례자의 걸음 2. "귀가 왜 이리 간지럽지? 누가 내 욕 하나?" 에리필은 귀가 너무도 간지러워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진도 때마침 귀가 간지러웠기에 동조하며 나섰다. "그런가 봐요. 저도 지금 귀가 몹시 간지럽거든요. 음… 누구지? 아, 맞다. 헌트 아저씨하고 카이슨 아저씨가 자기들만 놔두고 여행한다고 우릴 욕하나 봐요." 에리필은 그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 사람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쯧쯧…" 에리필은 무료한 여행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진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리라. 차카오니인 게니우스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리오스를 포함한 유적 탐사 팀은 장거리 여행엔 필수 교통수단인 비공선에 타기 위해 차례차례 질서를 지키며 탔다. 그리고 인원을 체크하던 비공선 가이드가 267명이라는 숫자를 말하자 드고르는 탈 사람은 모두 다 탔다고 말하며 비공선 안으로 들어갔다. 비공선은 제국 예하에 있는 것이 아닌 민간인이 운영하는 거대 기업이 벌이고 있는 사업인데, 대부분의 비공선은 조르단 상회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비공선 사업은 유지비를 빼더라도 짭짭한 수입처가 되기에 제국에서 황금알을 낳는 닭을 양보할 리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했는지 조르단 상회는 별 무리 없이 비공선의 소유권을 제국에게 양도받았으며, 지금은 조르단 상회의 주력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리오스는 처음 타보는 비공선이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눈이 지금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두 눈은 무술을 익힘으로써 비약적으로 좋아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안경도 쓰지 않고 있지 않은가! "어, 리오스 오랜만이군." 프린샤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아침인사 하듯 반갑게 대했다. 그러나 리오스의 이성은 지금 아침인사나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 오랜만이라뇨. 어제도 뵙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사, 사부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당황해 평소에 더듬지 않던 말까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프린샤는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완전히 도사였다. "허허, 뭐 잘못 먹었나? 갑자기 평소에 더듬지 않는 말을 더듬는 거 보니 몸이 안 좋은가 보이." 그는 시침 뚝 떼고 오히려 리오스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정신을 차린 리오스는 프린샤의 의도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사부님은 제 사부이기 전에 십대 도시 중 한곳의 시장이십니다. 그런 분이 갑자기 사라지신다면 우리 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그의 직무와 책임을 들어 그를 공격했다. 그러나 프린샤는 여전히 딴청만 피울 뿐이었다. "오, 드디어 뜨는구먼. 허허, 이거 오랜만에 비공선을 타서 그런지 설레기까지 하네 그려." "사부님!" 리오스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윽박을 질렀다. 그러자 오히려 프린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리오스! 내 말 잘 듣게. 나는 내 개인적인 재미를 위해 이곳에 탑승한 게 아니야.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 시가 자랑하는 유적 발굴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네." "그건 핑계일 뿐입니다." 프린샤가 권위와 자신의 책임을 슬쩍 도용하여 반박했지만, 리오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지만 프린샤에게는 비장의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실행되고 있었다. "그래, 핑계일 뿐이지.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야. 이미 비공선은 저 높은 상공에 떠올랐거든. 하하." 프린샤는 유쾌하게 웃어 제꼈다. 리오스는 이렇게 기분 좋은 프린샤를 본 적이 없어 더 이상 추궁하지도 못했다. 그가 아무리 뭐라고 하여도 이미 프린샤의 마음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오스는 그를 돌려보낼 것을 포기하고 다른 질문을 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이 하시겠다는데, 제가 무슨 힘이 있어 그걸 막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 시를 비우시고 온 것을 보면 나름의 대책은 세우시고 오신 것이겠죠? 그리고 여긴 어떻게 타셨 습니까? 그렇게 검문이 심했는데." 프린샤는 리오스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자 마음이 편해짐을 느끼며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 시의 모든 제반 업무는 대략 반년 정도는 내가 없어도 원활히 돌아가도록 해놓았고, 여기는 뒷구멍이라고 예전부터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장소가 있지. 크크" 프린샤는 공짜로 탔다는 것이 기쁜 것인지 아님 예전의 기억의 장소로 들어온 것이 기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오스는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어쨌든 저희 유적 탐사 팀에 합류하신 거 환영합니다." "그래, 고마워 리오스." 프린샤는 철없는 아이의 웃음을 입가에 걸며 그의 말에 화답했다. 한편, 돌연 종적을 감춘 시장을 찾기 위해, 허겁지겁 돌아다니는 부관의 앞에 도요이프 부인이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부인." "남편 편지예요." "예?" 부관은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편지에 눈을 돌렸고 잠시 뒤, 그는 절망의 목소리를 토했다. "프린샤 시장님. 이젠 안 그러시기로 하셨잖아요?" 처절하게 부르짖는 부관을 조용히 응시하던 도요이프 부인이 차분한 음성으로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지금 그이가 이 시에 있어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 가족인 제가 더 잘 알아요."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부관은 그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뒤늦게 실수를 눈치 챈 부관은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태연하게 반응해 그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뭘요. 사실을 말하는데 죄송할 게 뭐 있겠어요. 무엇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은 남편 자신 일거예요."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로 엄청난 말을 했고, 부관은 내심 그녀의 대담무쌍한 발언에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시장이 없이도 제국 십대 도시 중 하나인 메테르티아 시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성문으로 들어오는 두 인마가 있었다. 때는 새벽이슬이 촉촉이 잎사귀에 맺힐 때였다. 도시 자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였고, 그래서 그들을 검문할 병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진은 촉촉이 젖어드는 옷을 매만지며 에리필에게 말했다. "아, 역시 새벽을 도모하여 움직인 것은 미친 짓이었어요." "하하,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들 아니겠느냐." 에리필은 그의 푸념을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리고 사실 진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이동하는 것을 색다른 경험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푸념은 하지 않았다. 진과 에리필이 루카디스 시의 시내에 도착할 무렵엔 은은한 안개도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고고히 하늘 위에 자리 잡은 뒤였다. 진은 수련할 때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는데, 타지에서 안개 위를 걸으며 일출을 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다고 생각했다. "워어어, 다 왔구나." 에리필은 어느 건물 앞에 말을 세우며 말했고, 진도 그 옆에서 말을 세웠다. "자, 들어가자꾸나. 이제부터 너도 호송자(escorter)가 되는 거다." 에리필은 진을 데리고 호송자(escorter)길드로 들어갔다. 호송자(escorter)길드는 어느 도시나 외형이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진은 이곳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에리필을 따라 한 번 와본 경험 때문이리라. 패티는 이른 아침, 첫개시를 알리는 사람들이 들어오자 그녀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루의 운을 점 쳐 보았다. "호호,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녀는 풍채 좋은 에리필과 호감 가는 외모를 가진 진을 보며 친절하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운수는 사납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뢰하러 온 사람들이 아닌 단순히 가입과 등급을 갱신하러 온 사람들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그녀의 오판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그녀는 진정으로 운수 사나운 날을 만나게 된다. "예, 알겠어요. 서류 작성법은 아시죠?" 그녀는 아까완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취하며 두 장의 종이를 건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진은 순간 욱하는 마음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 자신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은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얼굴만 못 생긴 게 아니라 성격도 더러운 여자라고 생각하며 종이에 펜을 갈기듯이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두 장의 서류를 패티에게 넘겼다. 패티는 천천히 그들이 전해준 종이들을 읽기 시작했다. "예, 올슈레이 진 씨라고요. 그리고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등급에서 HB급을 받았군요. 그럼 진 씨는 B급입니다." 패티는 어려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자 은근히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 장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 "이름 팔로이 에리필. 에리필? 음,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요. 그리고 저번 등….급이 A급이셨군요. 게…다가 요번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 받은 등급이 S급 허억." 패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떠올라 얼굴을 들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리필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내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예? 무, 물론 S급이죠. 이럴 게 아니라. 잠시 만요. 지부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패티는 호들갑을 떨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신경 쓰지 마시오. 그냥 우리 서류를 총 길드로 올려주기만 하면 되오. 그럼." 에리필은 더 이상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패티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며 뭐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난 망했다. S급 호송자(escorter)를 그렇게 대했으니. 더군다나 지부장님에게 말하지도 못했잖아!"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땅을 치며 후회했다. 한편, 아침을 해결한 뒤, 루카디스 시를 떠나는 두 말의 주인들은 한창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한 거죠?" 진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이에 에리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그건 말이지. 호송자(escorter)길드에서 제정한 규칙 때문이야." "규칙요?" "그렇지. 다른 건 다 건너뛰고, 요지만 설명해 주마. 본래 S급 호송자(escorter)가 방문하거나 할 때면, 기본적으로 그 시를 책임지고 있는 지부장이 나서서 인사하러 나와야 돼. 그만큼 예우를 다한다는 뜻이지. 더군다나 그녀처럼 S급 호송자(escorter)에게 무례하게 대하다간 아마 해 고당할 수도 있지. 물론 그녀가 바른 대로 이야기 한다면 말이지." "바른 대로 이야기해요?" 진은 그의 말이 언뜻 이해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후후, 예를 들어볼까? 으음… 그래. 진아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걸 위에 사 람에게 말할 때, 부풀려 말하겠니? 아님 축소시켜 말하겠니?" "헤헤, 아마 축소시켜 말할 거 같아요." 에리필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게 인간의 한 단면적인 모습인거야. 그러니 아마도 그녀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겠지. 자신이 지부장을 모시러 가려하자 우리가 바쁜 일이 있다고 정중히 사양했다고. 그리고 그녀는 우리를 대할 때, 열과 성을 다했다고.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 확대시키고, 불리한 내용은 삭제 또는 수정하는 거지." "그, 그런 건가요?" 진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본 듯하여 기분이 우울해져 음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에리필은 습관적으로 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물론, 이렇게 분석하면 인간이란 참 추악한 존재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겠니? 그게 인간인 것을." 그의 음성에는 인류 전체에 대한 연민이 짙게 깔려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4 회] 91화. 순례자의 걸음 3. "……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의 순례자의 걸음이 지고하신 창조주 루미에님의 축복 속에 임하기를." 대사제 휘아킨은 모든 신전에서 행하는 의식 앞에 반드시 선행되는 창조주 루미에를 향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대사제 휘아킨이 자신이 믿고 있는 태양신 벨을 향한 경건한 의식을 행했다.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의 순례자의 걸음이 태양신 벨님의 보살핌 안에 이뤄지기를 그의 종 휘아킨이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뒤이어 대사제 휘아킨은 샤넬리의 머리에 축복의 안수를 내리며 그녀의 앞날에 태양신 벨의 가호가 임하기를 기도 드렸고, 샤넬리는 화사한 미소를 그에게 보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휘아킨님. 무사히 순례자의 걸음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태양신 벨님의 따님이신 샤넬리 양이라면 힘든 순례자의 걸음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휘아킨은 그녀의 미소에 보답이라도 하듯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 있는 수많은 랍비와 성직자들도 샤넬리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녀는 마음속과 달리 일일이 미소로 감사를 표했다. '이제 여기도 영영 안녕이네, 후후.' 인사와 인사들이 오간 후, 게니우스는 샤넬리가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샤넬리 양, 당신의 가드가 카드모스의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게니우스." 샤넬리는 그렇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게니우스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다음에 볼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해도,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당신을 능가하는 신무를 쳐 보일 거예요." "기대하죠.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 양." 그러나 이미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만성이 되어버린 게니우스는 오히려 태연하게 응수하고 있었다. "사부님, 샤넬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글쎄다. 나도 본 적이 없기에 뭐라 말할 수가 없구나." 진과 에리필은 샤넬리를 기다리기 위해 카드모스에 있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한 사람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부관을 통해 많이 들었어 요. 어느 분이 에리필 씨죠?" 샤넬리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그래서 그들은 샤넬리의 첫 모습이 매우 귀족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얼마 가지 않아 깨어질 가면이긴 하지만 말이다. "제가 에리필입니다. 그리고 이쪽이 제 제자인 진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올슈레이 진이라고 합니다." 에리필의 소개에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간단히 인사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샤넬리의 얼굴에 못 박히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그녀는 이제껏 본 여자 들 중 단연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아름다운 얼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푸른 머리칼에 단정한 이목구 비는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 위에 그려져 청순함과 우아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미를 선사했 다. 거기다 차분한 성직자의 푸른빛 로브가 그녀의 이미지를 더없이 포근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어 마치 천상의 미의 여신이 내려온 듯했다. 물론 희미하지만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안젤리나에게는 못 미치지만 진은 그녀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셔야 될 거 같아요. 짐도 챙겨야 되고, 여기 있는 친구들과 인사도 해야 되거든요."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양해를 구했고 신사 중에 신사인 에리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이죠. 볼 일 보고 오십시오. 저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샤넬리는 우아한 동작으로 인사를 한 후, 그들 앞에서 멀어졌다. 진은 사라지는 샤넬리를 보며 에리필에게 말했다.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네요." "그런 거 같구나. 하지만 사람이란 겪어보아야 알 수 있는 법! 진아, 꼭 샤넬리 양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그리고 그 가면 에 속아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보았다는 것도 잊지 말거라." 에리필은 조금이라도 진에게 세상의 혹독한 면을 가르쳐 주기 위해 틈만 나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진은 그런 그의 이야기를 하나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이 말이시죠?" "그래. 그렇지만 아는 것과 행할 수 있는 것은 천지차이니 네가 알고 있는 지식을 네가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에리필은 그의 자신만만한 말을 들으면서도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샤넬리는 생각보다 빨리 그들 앞에 나타나 순례자의 걸음을 떠나자고 재촉했다. 일행이 신전 밖으로 나갈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와 그녀를 환송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게니우스도 끼여 있었다. 게니우스는 멀어져 가는 샤넬리와 그의 가드들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샤넬리 양, 당신의 가드는 그리 쉬운 인물은 아닌 거 같군요." 그의 확언에 가까운 말은 멀지 않은 날에 샤넬리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알리 없는 그녀의 표정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더 없이 밝아 보였다. ~~~~~~~~~~~~~~~~~~~~~~~~~~~~~~~~~~~~~~~~~~~~~~~~~~~~~~~~~~ 음...하루 쉰 것 치곤 분량이 쫌 적네요. 그러나 다음 챕터랑 분량 상 맞지 않아서..부득이하게 이렇게 올립니다. 이점 양해해주세요...즐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5 회] 92화. 순례자의 걸음 4. 에페이로스 시의 어느 식당 앞에는 파라솔과 간이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아래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을 차지한 진 일행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끌고 있었다. 진은 따가운 시선 때문에 어색한 동작으로 밀크 쉐이크를 떠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샤넬리는 이런 시선들이 익숙한지 조금의 어색함 없이 애플파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 진은 불만이었다. 누구 때문에 이런 불편을 겪는데 하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며 계속해서 튀어나오려 했다. 그렇지만 진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마주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황송해야할 황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자신이 굽히고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은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툴툴거렸다. 그것이 그의 본심인지, 아님 자격지심을 감추려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샤넬리가 아찔할 정도로 매력적인 두 눈을 반짝이며 묻자, 진은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진은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빈정거리는 말투로 답했다. "아뇨, 그저 황족이라는 분의 고귀하신 얼굴을 잠시 바라봤을 뿐입니다." "호호호, 그래요?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리셨는지요?" 샤넬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지만, 워낙에 순식간에 이완되어 그녀의 이런 변화를 눈치 챈 사람은 에리필 뿐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목소리는 뼈있는 말관 달리, 사근사근했고, 부드러웠다. "결론이랄 거 까진 없습니다만, 단지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조금 해봤습니다." 그의 말에 샤넬리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반 정도 남은 애플파이를 우아한 동작으로 입 안에 집어넣었다. 한편, 진은 샤넬리와 대화하면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내미는 반감의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서 이질적인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그가 이죽거렸을 때,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서늘한 뭔가가 자신을 벨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느낌일 뿐이다. 결국 진은 께름칙한 감정을 머리를 흔들듯 가슴속에서 털어냈다. 그리고 그는 샤넬리와 같이 다니려면 이런 시선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자위했지만, 밀크 쉐이크를 떠먹는 동작은 여전히 어색했다. 에리필은 애플파이를 다 먹은 샤넬리가 냅킨으로 손과 입을 닦는 것을 보며 평소의 침착한 음 성으로 말했다. "샤넬리 양의 순례자의 걸음은 어느 곳을 경유해야 합니까?" 그의 말에 냅킨으로 입가를 톡톡 닦던 샤넬리가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력적인 미소를 냅킨으로 가린 뒤, 손을 내렸다. 그러나 그녀의 음모론적인 미소는 에리필의 경이적인 시각에 잡혔고, 진은 비록 그 미소를 보진 못했지만, 그녀의 분위기가 짧은 순간이지만 사이하게 변한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의 변화 때문인지, 샤넬리가 짐짓 경건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북에 벨님의 뜻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어느 도시까지 가실 생각이신지?" 에리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결국 그녀 마음대로 행선지를 정하도록 벨 교단에서 선심을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그녀의 아버지인 데이릭 경을 염두에 둔 일이겠지만 말이다. "음, 글쎄요. 저는 제국의 지붕이라는 타클라마가니아 산맥까지 가보고 싶은데요." "타클라마가니아 산맥 말입니까?" "그래요!" 에리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머리에 손을 얹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은 제국의 지붕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고도 험한 산맥이었다. 그러나 그곳이 또한 수려한 풍경을 가지고 있어, 과연 제국을 보호할 만 하다라는 말을 듣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이야기일 뿐. 일부 계층사람들에게는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은 군사적 요충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몬스터들의 고향이며, 수많은 몬스터들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군은 타클라마가니아 산맥 아래에다가 길고, 커다란 성벽을 쌓아 그들로부터 제국인들을 지키기 위해 방어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성벽 뒤에 있는 도시를 사람들은 실드리어라고 불렀다. 제국을 지키는 방패, 요새도시를 그들은 실드리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일반 제국인들은 모르는 사실이고, 단지 그곳은 험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기가 힘든 그래서 위험지대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샤넬리는 지금 그런 위험한 곳에 가길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데이릭 경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 상황이 난감한 것이다. 모른다면 설득이라도 하겠지만, 알고서 간다는 데, 그것도 저렇게 가증스런 천사의 얼굴을 하고서 말한다면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에리필은 문득 세르디스가 떠나기 전에 이번 호송에서 중요한 사항이라면서 신신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에리필님. 사실 샤넬리 양은 데이릭 경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드세고, 왈가닥 기질이 다분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게다가 무력 쓰기를 즐겨하니 호송 시 이점 유의하셔서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에리필은 세르디스에게 크게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지만 그곳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었다. "후우, 샤넬리 양. 샤넬리 양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가길 원하시는 겁니까?" 샤넬리는 정중하지만 항거하지 못할 힘이 실려 있는 에리필의 말을 들으며 그녀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에리필의 모습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인 데이릭 경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곧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수치심을 느끼며 도발적인 말투로 반박했다. "알고 있다면 어쩔 건데? 당신은 나를 지켜만 주면 돼! 더구나 황족인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떠드는 거 정말 못 봐주겠어.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역할인 나를 지키는 일에만 신경 써.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말야!" 샤넬리는 움츠러드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가면을 벗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반말과 나이를 무시하는 말투에 진은 분노를 느꼈다. '저 따위가 황족이면, 우리 라크리나 제국도 끝이군. 그리고 저 여자의 아름다움도 이제 보니, 추악함을 감추는 껍데기였을 뿐이야!' 진은 알게 모르게 샤넬리에게 호감을 품었던 자신의 마음이 배신당한 것과, 사부에게 막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치밀다 못해, 오히려 싸늘한 이성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는 또박또박 싸늘한 말투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조금 전에 결론을 물으셨죠? 그럼 지금 다시 답하죠. 황족은 추악한 껍데기를 쓴 자들입니다, 됐습니까?" 진이 그답지 않게 싸늘한 눈매로 그녀를 쏘아붙이자, 샤넬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제 16살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사내의 입에서 너무도 충격적인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황족 중에서도 최고의 권력과 무력을 손에 쥐고 있는 데이릭 경이 애지중지하는 외동딸이다. 그런 자신에게 이처럼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다니, 저 사내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샤넬리는 이런저런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다, 왜 자신이 이런 생각 따위를 해야 하는가 라고 내심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껏 억눌러놓았던 감정을 폭발시켰다. "너 미쳤냐? 너 따위 천민 따위가 황족인 나에게 그따위 저속한 말이나 지껄이다니." "시끄러워! 황족이면 다냐? 그리고 천민? 우린 엄연히 평민이야. 그리고 황족이 아무리 특별하 다 할지라도 우리 같은 백성이 있어야 황족이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너 따위가… 아, 몰라! 하여튼 너 같이 재수 없는 기집얘는 첨이다!" 초반에는 이성적으로 대처하던 진도 시간이 흐르자, 입에서 불을 뿜으며 막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의 말싸움은 누구 목소리가 큰지를 비교하듯 시간이 갈수록 높고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 때문에 맛있는 식사를 방해받았을 사람들은 의외로 인상하나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헉헉, 하여튼 너 사과해." 많은 말을 썩었는지, 진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상대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샤넬 리 역시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거기다 그녀는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기 싫다는 의지를 표명하듯 거칠게 반박했다. "내가 왜 사과해야 되지? 너와 네 사부는 고용된 몸이야. 그러니 고용주의 말에 따라야 되는 거 아냐? 더구나 나는 황…" "시끄러워! 황족이 어쨌다…" "그만해라 진아! 그리고 샤넬리 양 난 당신에게 고용된 몸이 아닙니다. 당신의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왔을 뿐입니다." 에리필은 그들이 또 다시 말싸움을 하려는 것을 보고 진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는 옆 테이블과 길 건너편에서 자신들을 동물원의 동물들 보듯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쾌했다. 그래서 그는 이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음식값을 지불하고 빠른 걸음으로 거리에서 멀어져갔다. "앗, 사부님. 같이 가요." 진은 그의 사부가 움직이자 그도 덩달아 일어났다. 그러나 샤넬리는 콧방귀만 뀔 뿐. 도통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했다. 호송인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호송자(escorter)라고 아버지에게 고해 받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에리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뭐 하십니까? 이곳은 황족인 당신이 고귀한 모습이 그려진 가면을 벗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도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있고 싶으신 겁니까?" 그제야 그녀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속닥 대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괴롭혀 더 이상 이곳에 앉아 있기 민망했다. 그래서 그녀는 속으로 오 만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에리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진은 쌤통이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놀렸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가면을 써 버려 진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면 속의 그녀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으니, 진의 앞날도 피곤의 연속이 될 것 같았다. '흥, 여기만 벗어나봐.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널 두들겨 패줄 테다.' 그녀는 확실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 오늘은 좀 긴 듯...험험험...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6 회] 93화. 순례자의 걸음 5. "도대체 어디까지 갈 거예요?"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았지만 샤넬리의 음성에는 가시가 박혀있었다. 그러나 에리필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샤넬리는 다른 꼬투리를 잡기 위해 생각하다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어 추궁하듯 말했다. "근데, 먼 길을 가야할 텐데 설마 이대로 걸어가는 건 아니겠죠?" 그녀가 빈정대듯 말했지만, 에리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서 걷고 있던 진은 쌩 하는 바람소리가 일만큼 고개를 빠르게 돌려 샤넬리를 쏘아보며 말했다. "흥, 말은 여기 와서 팔았지. 네가 어디로 갈지 모르니깐. 그리고 본래 순례자의 걸음은 말 같은 거 타지 않고 순수하게 제국의 땅을 자신의 두 발로 밟으면서 이동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넌 그런 것도 모르냐?" "뭐? 흥, 설마 내가 너 같은 무식한 놈도 알고 있는 사실을 몰라서 물었겠냐? 네 사부라는 사람 이 하도 말하지 않으니깐 물은 거다." "무식하다고? 이게…" 진은 그녀의 도발에 걸려 또 다시 말싸움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이를 제지하고 나선 것은 지금껏 침묵을 고수하고 있던 에리필이었다. "당신이 가면을 벗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려면 인적이 드문 곳이 나을 거 같아 지금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당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가요?" "흥, 누가 뭐래요?" 그 뒤, 샤넬리는 더 이상 트집 잡지 않고, 조용히 그들 뒤를 따랐다. 그리고 에페로이스 시가 자랑하는 고요의 숲에 다다라서야 에리필은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에 앉으란 말인가요?" 그녀는 짐짓 더러운 바닥에 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 없습니다." 샤넬리는 이상할 정도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에리필을 잠시 노려본 뒤, 바닥에 앉았다. "칫, 알았어요. 그리고 가면이라고 하지 마요. 그냥 이미지 관리 좀 한 거 가지고 가면이라니 듣기 불쾌해요." "알겠습니다. 시정하도록 하죠." 샤넬리는 에리필이 마치 몇 백 년 묵은 능구렁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알리요. 에리필은 그녀 보다 훨씬 성격 더러운 헌트와 십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같이 지내며 오히려 그의 성격마저 변화시켜버렸단 사실을. "그럼, 터놓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샤넬리 양은 그 위험한 곳을 무엇 때문에 가려고 하는 것입 니까?" "그것 때문에 가려는 거예요." "예?" 에리필은 순간 당황했다. 그녀의 말뜻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그리고 맞다 면 그녀가 제정신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위험하기 때문에 가고 싶은 거라고 말했어요. 사실 저는 태양신 벨님의 순례자의 걸음 같은 거 신경도 안 써요. 내 꿈이 성직자도 아니고, 그런 고행을 뭐 하러 해요. 사실 내가 그곳에 견 습 성직자로 들어간 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그걸 얻었으니 이제 그곳과는 안녕이죠, 뭐." 샤넬리는 엄청난 말을 너무도 태연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하며 푸른빛 로브를 벗기 시작했다. 진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여자가 옷을 벗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로브 사이로 드러나는 다른 옷이 눈에 보이자 두근거렸던 마음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진은 자신의 머리를 꾸짖었다. '네 이놈. 저 왈가닥을 보고 두근거리다니 네가 지금 제 정신이냐!' 진이 그렇게 자신을 꾸짖고 있을 때, 샤넬리는 로브를 차곡차곡 개어 배낭 안에 집어넣으며 다른 물건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그것은 검이었다. 이를 본 에리필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을 뿜었지만 그것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흠, 아까 말한 교단에 들어간 이유가 그 검과 관련 있는 겁니까?" 에리필은 냉철한 이성과 통찰력을 통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리고 물었다. 이에 샤넬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내가 그곳에 들어간 것은 태양신 벨님을 지키는 성기사들의 신무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뭐, 본래 계획보다 1년 정도 빨리 나왔지만, 이제 거기에 돌아갈 일은 없을 거예요." 에리필은 그녀의 황당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실을 데이릭 경도 알고 계십니까?" "아뇨, 당연히 모르죠. 아빠야 말괄량이 딸이 신전에 가서 좀 차분해져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실걸요, 아마도요. 호호." 그녀는 가증스럽게도 신이 내린 고운 목소리로 타락된 언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정신을 차린 에리필은 침착하게 대항했다. "그렇습니까? 그렇담 저희는 이 사실을 데이릭 경에게 알려야 되겠군요." "그, 그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샤넬리의 예쁜 아미가 찡그러졌다. 설마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그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동안 예쁜 아미를 찡그리다 뭔가가 떠올랐는지 화사한 미 소를 지었다. "흥, 내가 당신이 아빠에게 말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난 행방불명이 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만약 당신이 날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지 못한 방법이라 생각해. 아빠는 날 끔찍이 아끼시거든, 호호." 샤넬리는 갑자기 강압적인 말투를 구사하며 에리필을 사정없이 몰아쳤다. 진은 그녀가 또 다시 사부에게 반말을 하자 다시 한번 분노의 감정이 가슴에 똬리를 틀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가 나서려 하자 에리필이 만류했다. 그는 그런 사소한 일로 주위가 시끄러워 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만큼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이 그에게 불리했던 것이다. 에리필은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하지만 딱히 좋은 해결책이 없었다. 그렇게 에리필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예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사악한 두뇌의 소유자인 샤넬리는 은근한 목소리로 타협책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요. 나는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에 가는 것을 포기하겠어요. 그 대신 검은 삼각지대로 데려가 줘요." "검은 삼각지대 말입니까?" "그래요." 에리필은 침음성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가씨의 머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물론 검은 삼각지대는 타클라마가니아 보다는 위험부담이 적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그 나름의 위험과 추악함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 삼각지대는 쉽게 말해 빛과 어둠 중 어둠의 세계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이 무한정 어둠과 사악함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엄연히 제국 내에 존재했고, 검은 삼각지대를 이루는 존재들은 모두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더욱 위험지대라 할 수 있었다. 사회의 부랑자들, 추악한 인간들, 붉은 피를 즐기는 살인자들, 유혹의 여인들, 타락과 죄악의 온상지. 그곳은 이러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제국의 암묵적 합의 아래 치외 법권인 지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많은 범죄자들이 하루에도 몇 백 명씩 몰려가는 지역이었다. 물론 그곳에 들어가기도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 곳에 샤넬리는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후우, 물론 검은 삼각지대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겠죠?" "물론이죠." 그녀는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에리필에게 대답했다. 그런 모습이 에리필에게 통하지 않을 거 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습관적으로 예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데이릭 경이 아신다면 아마 저를 죽이려 하실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리필은 거의 반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한 가지 궁리를 했는데, 중간에 데이릭 경에게 연락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이 검을 보아도 알겠지만, 내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힘을 가지고 있어요." 샤넬리는 에리필이 자신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에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곳은 힘이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이 세상의 가장 더러운 것을 모아 놓은 이른 바 쓰레기 집단이기에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 따윈 안 해요. 어쨌든, 날 데려가겠다는 거잖아요?" 에리필은 그녀의 말에 한숨을 토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곳에 가려는 이유가 뭡니까?" 에리필은 짐작도 가지 않는 그녀의 생각이 궁금하여 물었다. 그러나 샤넬리의 대답은 역시나 그녀가 제정신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곳들을 간다고 생각하면 희열 같은 게 느껴져서요." 에리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한숨을 토할 수밖에 없었고, 샤넬리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못 마땅한지, 뚱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진이 있었다. 각기 독특한 기질로 뭉쳐진 이들 일행의 여행은 처음부터 확실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 오랜만에 이 시간에 올려보내요. 흐흐흐, 우짜다보니 이 시간에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흐흐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7 회] 94화. 샤넬리의 천적은 진 or 에리필 1. 에페로이스가 자랑하는 고요의 숲은 세 사람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러나 숲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새벽이슬이 잎사귀를 길게 휘게 만들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숲은 안간힘을 다해 잎사귀에 힘을 불어넣었지만, 잎사귀는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뜨려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새벽이슬이 진의 얼굴에 떨어져 그 차가움으로 노숙자를 깨웠다. 진은 일어나고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다시 자기에도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진은 요즘 등한시 했던 술법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진은 마나가 밀집되어 있는 곳을 찾다 이 숲 자체가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은 마나가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진은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자리를 틀고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진이 술법 수련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태양은 그 붉은 빛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고, 따가운 햇살에 에리필과 샤넬리는 모포 속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샤넬리는 야영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홀로 수련하고 있는 진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 뒤에서 에리필 역시 진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진은 몇 번의 깊은 호흡을 반복한 뒤, 두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매우 상쾌한 표정을 짓다 그를 응시하고 있는 두 쌍의 눈을 의식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일어나셨어요? 그냥 새벽이슬에 잠이 깨서 더 자기도 뭐해 수련 좀 했어요, 헤헤." 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나 샤넬리는 그 모습이 진짜 변명하는 것 같아 보여 왠지 추궁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쯧쯧, 꼭 약한 것들이 꼭두새벽부터 비밀훈련이니 하는 걸 한다니깐." 샤넬리는 진이라는 인간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해서 걸리자 그의 속을 뒤집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어떤 반응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다. "뭐라고? 이게 사람 좋아 보인다고 얕잡아 보기나 하고. 너 진짜 죽을래?" 진은 더 이상 샤넬리의 외모와 황족이라는 신문 때문에 말을 가리거나 조심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그녀의 인간성 자체에 실망했고, 황족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것 또한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한편 샤넬리는 황족이라는 고귀한 신분인 자신에게 이렇게 막 대하는 인물을 처음 보았기에 화보다는 오히려 생소한 경험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록 그녀의 표정은 짐짓 싸늘하게 굳어 있지만, 그것은 그녀가 만든 또 다른 가면일 뿐이다. "죽을래? 호호, 너한테 날 죽일 실력이 있다고 생각해?" 샤넬리는 말솜씨에 있어서는 확실히 진보다 고수였다. 비록 에리필에게는 안 되지만, 진 정도야 그녀에겐 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진의 얼굴은 벌겋게 변했으며 차가운 공기로 인해 걸걸하게 변한 목소리는 그가 얼마만큼 분노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허헛, 네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졌는지 어디 한번 보자. 그러나 검에는 눈이 없다는 사실 을 명심해라. 난 여자라고 봐주거나 하진 않아. 아니 정정하지. 여자에겐 봐주지만, 여자의 탈을 쓴 너 같은 인간에겐 내 검은 언제나 장님일 뿐이야." "푸하하, 장님? 바보!" 샤넬리는 그의 독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진을 놀렸다. 한편, 에리필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샤넬리가 황족이라는 사실이 걸렸지만, 샤넬리 본인이 거기에 특별히 신경 쓰는 거 같지는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 진에게만 특별히 봐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황녀인 샤넬리가 태도를 바꾸어 진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것을 피할 방도가 진과 자신에게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으나, 내심으론 이 싸움을 '말려야 하나 그냥 두고 보아야 하나'를 두고 크게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고민도 독이 잔뜩 오른 진의 눈을 보자, 눈 녹듯 스르르 녹아 사라져버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은 누가 말린다고 하여 투지를 꺾을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투지는 자신과 헌트가 가르쳤기 때문에 중간에 그의 투지를 꺾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편한 쪽으로 몰아가니, 에리필은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일지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이 느끼기론 그녀의 실력은 결코 진의 밑이 아니라 느꼈지만, 실제 전투력은 어느 정도 일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스르릉! 맑고도 청명한 검음이 울렸고, 뒤이어 청아한 검음이 따라 울렸다. "흥, 좋아.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보자고." "얼마든지." 진과 샤넬리는 걸 거치는 나무들을 피해 근처 공터로 갔다. 진은 결투의 시작에 앞서 늘 그랬듯이 중력해제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결투는 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나운 검풍이 샤넬리에게로 쇄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진은 그가 생각하기에도 강력한 검풍을 날렸다. 그러나 샤넬리는 마치 환상처럼 그것을 피했다. 콰콰콰! 샤넬리가 슬쩍 피함으로 검풍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공터 일부분을 뒤집어 버렸다. "와, 정말 강렬한데. 이거 검풍 치곤 너무 강한 거 아냐? 근데 말이야. 아무리 강한 거라도 맞 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괜히 기(氣)만 낭비하고. 하여튼 머리가 깡통인 네 싸움 스타일 이야 뻔한 거지, 뭐." 샤넬리는 연이어 공격하는 진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쉬지 않고 혀를 놀렸다. 그리고 그것이 진의 역린을 건드렸고, 더욱 파상적인 공격이 샤넬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처음에 진을 경시 했던 샤넬리도 그의 변칙적인 공격과 결투가 계속될수록 강해지는 모습에 진지하게 상대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제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흥, 여기만 벗어나봐.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널 두들겨 패줄 테다.' 너무도 또릿하게 남은 기억은 그녀에게 새삼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게 만들었다. "죽어라!" 샤넬리의 검은 날카로우면서도 매우 빨랐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천천히 그러나 완벽하게 진을 검의 그물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진은 검을 한번 씩 피할 때마다 그 다음의 검을 피하기가 어려움을 느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샤넬리는 쉴 새 없이 사방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어 상대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국 진은 더 이상 검을 피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정면승부밖에 없는가? 어쩔 수 없지. 힘으로 승부한다.' 진은 그렇게 마음먹으며 샤넬리의 검을 기다렸다. 그런데 샤넬리의 검이 갑자기 보랏빛 에너지 소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검의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힘에서도 검풍을 월등히 능가하는 에너지 소드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피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계획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氣)를 검에 불어넣었다. 휘이잉! 엄청난 기(氣)가 모인 탓에 검은 웅혼한 검명을 토했고, 그것은 진에게 작지만 자신감을 선물했다. "이얏,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진은 비명을 토하듯 외치며 샤넬리의 검에 맞섰다. 샤넬리는 이쯤하면 꼬랑지를 말고, 물러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있는 힘을 다해 돌격하는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검에야 말로 눈이 없었다. "그래, 어디 죽어봐라." 샤넬리 역시 기(氣)란 기(氣)는 모두 밀어 넣으며 보랏빛 에너지 소드를 더욱 영롱하게 만들었다. 쾅! "커억!" "꺄악!" 검과 검이 충돌하였지만, 이미 가진 바 힘이 달랐기에 진은 폭발적인 충격에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진만 피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진이 날아가는 반대편에는 강한 충격에 못 이겨 기절해 버린 샤넬리가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공터 옆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털썩! 진은 10여 라키르(미터)나 날아가 버렸지만, 마치 스켈레톤처럼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스켈레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승자의 미소 같은 것이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그는 본 것이다. 샤넬리가 쓰러져 있는 것을. 진은 발을 끌듯이 걸으며 샤넬리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에리필이 먼저 와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진은 한참 동안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기절한 그녀는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진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대신 걱정스런 기색이 역력한 음성으로 물었다. "사부님. 저 망아지는 괜찮은 건가요?" 에리필은 샤넬리의 몸 상태를 체크하다 제자의 우스깡스러운 말을 듣고, 내심으론 미소를 지 었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진을 보았다. 진은 걱정과 초조의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조금전에 그가 한 말과는 너무도 다른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에리필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염려마라. 그냥 충격에 놀라 기절한 것일 뿐이니. 그것보다 네 상태가 더 걱정이구나." 에리필은 샤넬리에게서 일어나 진을 살펴보려 했다. 그러나 진은 손을 내저으며 안심하라고 말했다. "괜찮아요. 엘뤼시온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주었어요. 그냥 요상만 좀 하면 될 거 같아요." 진은 그 말을 한 후,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기(氣)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요상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진은 들끓던 기(氣)를 진정시킨 후, 눈을 떴다. "히익! 뭐, 뭐야?" 진은 눈을 뜨자마자 난데없이 나타난 커다란 아쿠아마린 보석에 놀라 주춤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아쿠아마린 보석이라 생각한 것은 샤넬리의 푸르른 눈이었다. 그것을 안 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툭 뱉듯이 말했다. "뭐야? 환자 앞에 멍하게 서 있고, 실례잖아." 진은 그가 이렇게 말하면 샤넬리의 거친 항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샤넬리는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보듯 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었다. 이에 진은 자기가 무슨 동물원의 동물이냐고 항변하려는데, 그녀의 중얼거림이 한 발 앞섰다. "이상하단 말이야. 에너지 소드를 가진 내가 밀리다니. 알 수가 없어." 샤넬리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골몰해 있었다. 진은 그런 그녀를 놀려봐야 재미 도 없을 거 같아 에리필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더 없이 환해졌다. "역시 사부님이셔. 밥은 다 되었나요?" 진의 기쁜 외침에 에리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8 회] 95화. 샤넬리의 천적은 진 or 에리필 2. "어휴, 도대체 이 숲은 얼마나 더 가야 끝나는 거야?" 샤넬리는 그의 푸르른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대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 그렇게 상대하지 못해 안달 났던 진도 이미 그녀에게 만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에페로이스 시가 자랑하는 고요의 숲은 센티오카 시와 이어주는 교통로로 사용되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험하고, 며칠 동안 야영을 해야 되는 숲길보다는 편하고 안전한 사디오스 로드를 따라 센티오카 시로 들어간다. 사디오스 로드는 대로 주변에 여관과 음식점들을 즐비하게 늘어세웠는데, 이는 사서 고생할 필요 없다는 세태를 잘 이용한 금전적 감각이 뛰어난 상인들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낭만을 즐기고, 사색을 즐기길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 고요의 숲을 통해 센티오카 시로 들어서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비록 길이 조금 험해 사디오스 로드로 가는 것 보다 좀 더 시일이 걸리고, 불편하지만 그것은 간만에 느끼는 자연의 포근함을 감안한다면 아주 약소한 대가라 할 수 있다. 샤넬리도 그들의 무반응에 익숙해졌는지 혼자서 재잘거렸다. "아, 왜 사디오스 로드를 놔두고 왜 이런 아무 볼 것도 없는 숲길을 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진은 에리필과 나란히 걸으며 간만에 느끼는 포근함과 암청색 잎들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빛 빛줄기를 만끽하다 기분 좋은 고요를 깨뜨리는 소음에 참다못해 나섰다. "사디오스 로드를 통해 가면 넌 또 그 가면을 써야 되잖아. 사부님은 네가 가면을 계속 쓰고 있 으면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미에서 이 길로 가는 거라고." "가면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지? 근데 왜 계속 반말이야? 이래 뵈도 나는 엄연히 황족이라고." 샤네리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음… 그래서 황족대우 안 해줘서 기분 나쁘다는 거야?" "뭐, 난 깨여 있는 사람이라서, 황족이니 평민이니 이런 건 안 따져. 너 운 좋은 줄 알아. 본래 황족한테 함부로 대하면 몇 족이 화를 입는 줄 알아?" "아, 그러셔요? 죄송합니다. 존귀하신 황족 나으리를 몰라봐서요." "호호, 그러니까 이제부터 잘하란 말이야." 진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말하는 샤넬리를 보며 볼을 부풀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칫, 내숭 100단 같으니라고." "내…숭? 이게 또 시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네." "시, 시건방진 소…리? 허어, 아, 몰라. 그래, 나는 계속해서 시건방진 소리할 테니까, 앞으로 나한테 황족대우 받을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야!" 샤넬리는 심하게 입술을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다음 반격을 준비하지 않고, 입술을 잘게 떠는 것만으로 끝을 냈다. 이를 희대의 신기한 현상이라 믿은 진은 샤넬리의 얼굴에서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물이라도 찾으려는 듯이 요모조모 뜯어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래, 내가 저딴 녀석하고 똑같이 놀면 나도 저 녀석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할 뿐이야. 호호, 나는 황족이지만, 권위에 찬 녀석들 하고는 질부터 틀리거든. 그러니 대범하게, 그리고 깔끔히 무시해 버리는 거야. 호호, 아암. 난 저딴 무식한 녀석과는 질적으로 틀린 황족이라고.' 샤넬리는 기분 좋은 상상에 자연스럽게 예쁜 미소를 입가에 그렸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진은 갑자기 그녀가 아름다워 보여 그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젠장. 또 저 계집애가 예쁘다고 생각했네. 우씨, 짜증나.' 진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분한지 씩씩거리며 걸었고, 샤넬리는 그와 대조적으로 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는 미를 유감없이 고요와 낭만의 숲에 뿌렸다. 마치 햇빛에 녹아들어 더욱 영롱한 빛깔을 뿜는 보석의 결정체들처럼. 에리필은 고운 자연의 음색을 감상하다 뒤쪽에서 기이한 불협화음에 절로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시선을 뒤쪽으로 돌렸다. 잠시 뒤로 돌아봤던 에리필은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이번에는 진이 졌나 보구나.' 에리필은 조금 전 본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요 삼일 간 시끄러웠던 그들의 싸움을 조심히 그려보았다. 진과 샤넬리는 무력과 말싸움을 병행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말싸움에서 진이 이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진은 말싸움에서 진 것을 만회하려는 것인지 시간만 나면 샤넬리에게 싸움을 걸었고, 이제는 샤넬리도 거기에 재미를 들였는지 진이 시비를 걸지 않더라도 먼저 약을 올려 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싸움은 대개 말싸움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검을 뽑는 식이었다. 그리고 요 삼일 동안 전적은 진이 9전 3승 1무 5패로 밀리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점차 진은 샤넬리의 밥이 되고 있었다. 에리필은 재미난 상념에 빠져 있다 야영하기에 딱 좋은 장소를 발견하고 그리로 걸어갔다. 에리필은 수 백 년은 묵었을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나무가 워낙 커다래서 주위의 공간에는 그 나무 혼자 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 나무가 주위의 양분을 독식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진은 자신의 키보다도 열 배나 큰 나무를 바라보다 에리필에게 물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할 건가요?" "그래. 저녁은 조금 있다가 먹을 테니 옆에서 쉬던 가, 놀도록 해라." 에리필은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진은 남는 시간을 도모하여 수련에 매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 그럼, 오늘도 맛있는 저녁 기대 할게요." 진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한산한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하아, 시원하면서도 상쾌한 공기야!" 진은 자연의 대기를 모조리 마셔버리려고 하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는 땅 위에 있는 나뭇잎들을 턴 후, 자리에 앉아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곳의 마나는 묵직하면서도 잔잔히 흘러가고 있어. 마치 이 숲의 고요처럼 말이지.' 진은 이러한 느낌을 쫓으며 마나를 심장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나가 심장에 저장되는 속도는 천천히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느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저장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나는 차분했으며, 고요했다. 진은 착각이려니 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런데 점점 묵직해지는 심장의 감각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마나가 저장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진은 평소 느낌과 인식에 별 차별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 그가 생각하기로 그 둘은 전혀 별개의 것이고, 그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인식은 말하고 있었다. 마나는 천천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내 심장에 저장되고 있다고. 그러나 느낌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너의 인식을 뛰어넘는 속도로 저장되고 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인식과 느낌. 느림과 빠름. 그러한 생각의 조각들이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맹렬히 서로를 잡아먹을 듯 충돌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흔적도 없는 소멸. 이른 바, 무(無)의 세계가 진의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진은 무한한 감각과 인식을 뛰어 넘은 사고를 유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매우 포근했으며 따사로운 곳이었다. 진은 문득 이곳이 너무도 익숙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그가 존재했던 곳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진은 이곳에서 영원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부질없는 욕망이었다. 번쩍! 진은 눈을 떴다. 그런데 그가 있던 세계는 아니었다. 마치 몽환적인 안개 위에 떠있는 세계. 그리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시작과 끝이 없는 세계. 진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모든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귀가 아닌 그의 심장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오랜만이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99 회] 96화. 샤넬리의 천적은 진 or 에리필 3. 처음 듣는 음성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진은 그의 음성을 처음 듣는 데,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인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음성의 친근한 인사라니. 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대체 넌 누구지?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말투인데, 미안하지만 나는 너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 진의 음성이 이 기묘한 세계 안으로 뱉어질 때마다, 빛과 어둠은 파도를 만난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빛과 어둠이 진정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원래대로 돌아와 이 세계, 그 자체가 되었을 때 아까의 음성이 진의 심장에서 울렸다. [나는 너의 친구, 너의 방패. 지금은 그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지.] 진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을 찬찬히 뜯어보다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친구는 셀 수 없이 많아. 그렇지만 나의 방패는 단 하나! 그렇담 넌 엘뤼시온?" 진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나 그는 아까전과 같이 모든 것이 진정된 뒤에야 말했다. [엘뤼시온은 현재 거하고 있는 집일뿐, 엘뤼시온 자체가 나란 말은 아니야. 그러나 엘뤼시온 만큼 나의 능력을 제대로 뽑아낼 무구도 이 세상에 별로 존재하지 않아. 그 옛날 고대인들의 무구를 빼놓고는 말이야.] 진은 그의 말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조금 전에 했던 일과 연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너의 정체는 혹시 정령?" 그는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주위가 진정되자 음성을 남겼다. [그래. 나는 너의 정령! 본래 우리들 스페시픽 정령들은 주인의 능력이 일정 이상 오르지 않으면,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그렇단 말은 아직 내가 너를 볼 실력이 되지 않는단 말이야?" 진은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진의 음성의 여파가 잠잠해질 때, 그의 음성이 울렸다. [그렇지는 않아. 지금 네가 있는 이곳 자체가 바로 나니깐. 그러나 나는 네가 보는 것처럼 다른 정령들처럼 스피릿으로 되어 있지 않아. 대신 내가 스피릿으로 변할지 변화지 않을지는 주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돼. 그리고 내가 스피릿화가 되면 나는 너의 진정한 방패가 될 수 있을 거야.] 그의 음성은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체라는 이 세계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에 놀란 진은 다급하게 외쳤다. "알겠어, 나 잘 할께. 그런데 너의 이름은 뭐야?" 진은 점점 사라지는 친구를 향해 물었다. 그리고 거의 사라지기 직전에 처한 그는 심장의 펌프질 소리에 흘려 그의 뜻을 전했다. [나의 본래 이름은 메터리어. 그러나 이것은 내 종족의 이름. 그래서 나는 너의 엘뤼시온이야.] 그의 음성이 사라지고, 빛과 어둠의 세계는 화면이 밀려가듯 스르르 옆으로 밀려나갔다. 사르르르! 진은 바람의 간지러운 간질임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알 수 있었다. '돌아왔구나. 이곳에…' 진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태양이 지고, 은은한 달빛을 고요의 숲에 뿌리는 달이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켰던 진은 그의 팔과 다리, 몸통을 보호 하고 있는 엘뤼시온을 바라보았다. 비록 너무도 완벽히 신체와 융화된 헤르디온의 무구인지라,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진은 엘뤼시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친근한 음성으로 엘뤼시온에게 말했다. "엘뤼시온, 너였구나. 지금껏 나를 지켜준 것도. 나에게 힘이 되어준 것도." 진이 말하자 엘뤼시온이 낮게 웅웅 거렸다. 비록 의사전달은 안되지만, 그는 진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너와 이야기도 못하지만, 나중에 내가 꼭 강해져서 너를 스피릿으로 변화 시켜줄게." 진은 엘뤼시온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말하며, 에리필과 샤넬리에게로 갔다. "어라, 금방 끝났네." 샤넬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금방이라니? 내가 어느 정도 수련했는데?" 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에 샤넬리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아마도 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음, 대충 30분 정도." "30분? 정말, 그거 밖에 안 했어?" "그렇다니까. 그러니 내가 물은 거지." 샤넬리는 당연하다는 태도로 허리에 손까지 얹고서 말했다. 이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진은 아까 전 신비로운 경험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그 모든 경험이 30분 동안에 이루어진 거구나.' 수련시작에서부터 아까의 혼돈, 그리고 평온했던 세계… 진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알 수 없는 열기가 몸에서 끓어오르며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했다. 부들부들! 진의 몸이 격하게 떨리더니 갑자기 샤넬리를 보며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의 신무를 보여 줄 수 있어? 부탁해 샤넬리." 샤넬리는 갑작스레 부탁하는 진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놀려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가 워낙 진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것도 포기해버렸다. "알겠어. 근데 왜?" 샤넬리는 수련도 할 겸,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지만 진이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진은 그녀에게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아니 그 자신도 이러는 이유를 몰랐기에 샤넬리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알았어. 말하기 싫으면 관둬. 그리고 네가 보여 달라고 해서 신무를 추는 게 아냐! 그저 나도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해서 추는 거야. 오해 하지 말라고. 바보 씨!" "오해 안 해. 그러니 빨리…" 진은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에리필이 의심스런 눈빛으로 살펴보았지만, 진의 눈은 탁기 한 점 없이 맑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눈은 이제껏 보다 훨씬 밝은 빛으로 충만해 있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에리필의 눈은 한산한 공터로 나서는 두 사람을 뒤쫓고 있었다. "저번에도 이야기 했듯이 신무는 태양신 벨님을 지키는 성기사들의 검법이야." 그녀는 말을 하며 천천히 게니우스가 보여주었던 동작들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검은 게니우스만큼은 아니지만, 뜨거움과 따스함을 담고 있었다. '검은 검을 낳고, 뜨거움은 뜨거움을 낳고, 따스함은 따스함을 낳는다.' 그녀는 이 이치에 따라 충실히 검을 움직였다. 그리고 언제나 한 자리에서 검을 휘두를 거 같던 그녀의 다리가 사뿐히 움직이며 소리 없이 땅들을 이리저리 밟기 시작했다. 몸의 자태는 더없이 우아했고, 검은 그녀의 상반된 성격을 반영하듯 거칠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 속에 간간히 뜨거움과 따스함이 묻어났다. 천천히 그러나 일정한 보폭으로 움직이던 그녀의 움직임이 갑자기 큰 변화를 보였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몸은 매섭고 빠르게 움직였으며, 일정한 보폭은 방향과 보폭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몸에서 강렬한 폭풍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암시했다. 진은 전에 이 신무에 패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 경이적인 신무가 나와 전세를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샤넬리는 태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그녀가 있는 곳은 말 그대로 고요했다. 그러나 그녀 주위로는 거센 바람과 예리한 바람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그 누구의 접근도 거부하고 있었고, 만약 그 안으로 들어오려는 자가 있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처단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게니우스처럼 완벽한 신무를 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강력한 태풍을 얼마 유지 못한다는 소리기도 했다. 강력한 바람이 한 꺼풀씩 벗겨지며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샤넬리가 진에게로 다가왔다. "이 신무는 사실 공격의 뜻 보다는 태양신 벨님에게 아무도 다가갈 수 없다는 성기사들의 의지를 표현한 무예라고 들었어. 자, 이제 말해주실까? 그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내게 이걸 보여 달라고 한 이유 말이야. 만약 시답잖은 이유라면 아까 그 무시시한 바람의 칼날들이 너를 갈기갈기 찢을 거야, 호호호." 샤넬리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진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모든 마음을 빼앗겨 버린 듯한 모습. 지금 그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샤넬리는 진이 그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이익, 감히 날 무시해? 너, 너, 진짜 죽었어." 크게 분노한 샤넬리는 들고 있던 검으로 진을 베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졌다. 어느새, 나타난 에리필이 그녀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챙! "뭐, 뭐야? 지금 당신 제자라고 편애하는 거야? 당신도 봤을 거 아냐. 분명 난 할 만큼 했다고." 샤넬리는 이성이 분노에 잡아먹히자 또 다시 나이를 무시한 말을 에리필에게 쏟아 내었다. 하지만 에리필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설득력 있는 말투로 그의 생각을 설명했다. "편애가 아니오. 지금 샤넬리 양이 보아도 알겠지만, 진은 아마도 깨달음의 순간에 와 있는 거 같아보여서 말린 것이오. 샤넬리 양도 깨달음의 경지를 건넜지 않소?" "하지만, 난 저 녀석처럼 호들갑을 떨며 깨달음을 얻진 않았다고." 샤넬리는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들 듯이 말했다. "모두가 같은 깨달음을 얻지 않듯이 이러한 과정 또한 모두 틀린 법이오. 그러니 지금은 진을 그냥 놓아둡시다. 대신 진이 정신을 차리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하든 말리지 않겠소." 에리필은 그녀를 달래며 진 쪽을 힐끗 보았다. 진은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아까 그가 수련 했던 곳으로 가 명상에 잠겼다.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어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두 사람은 할 말마저 잃어버렸다. 샤넬리는 한동안 진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진정된 이성을 부여잡으며 나직이 말했다. "알겠어요. 아까, 말을 막 한거는 죄송해요. 하지만 녀석이 깨달음을 끝마치고, 깨어나면 제 마음대로 해도 가만있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돼요." 에리필은 샤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쩌면 그녀의 진정한 가면은 왈가닥 일 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깊은 두 눈에 알 수 없는 수심이 당찬 면모와 뒤섞여 어느새 수심은 깊은 마음의 호수 속으로 사라져 버려 당찬 모습이 기이할 정도로 부각된 모습, 이것이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의 가면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해 보며, 그는 다시 그의 사랑스런 제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은 여전히 명상에 잠겨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0 회] 97화. 샤넬리의 천적은 진 or 에리필 4. 서늘한 공기가 나무들을 비집고 들어와 아름다운 샤넬리의 푸르른 머리칼을 들었다 놓는다. 샤넬리도 짓궂은 바람의 장난이 싫지 않은지 예쁜 미소를 지을 뿐, 그녀가 갈고 있는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진 않았다. 진이 명상에 잠긴 지 5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샤넬리가 명상에 빠져 있는 진에게로 몇 번이나 검을 들고 달려들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도는 번번이 에리필에게 의해 제지되었고,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에리필은 도대체 어떤 깨달음을 얻기에 이리도 오랜 시간동안 명상에 잠겨 있나하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에리필에게 은근한 기대를 품게 했고, 그래서 그는 흥분 속에 침식도 잊고, 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관심과 사랑은 친부모 이상의 것이었다. 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검을 들고 신무를 추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무는 게니우스의 신무와도 샤넬리의 신무와도 전혀 틀렸다. 그만의 신무. 아니 신무라 말하기에도 애매한 검무를 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는 언제나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떤 때는 매섭고 강렬한 바람이. 어떤 때는 잔잔하고 푸근한 바람이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개의 전혀 다른 성질의 바람이 불 때는 예외 없이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오직 무(無)였다. 진은 검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무수한 신무를 추고 난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손에는 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무의 위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진은 더 이상 신무를 추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여전히 무(無)였다. 마치 화려한 신무를 출 때와 같은 위력이 그의 고요한 모습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눈을 감고 고요히 서 있던 진이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떠지는 그의 눈. 조금씩 눈이 떠질 때마다 그는 희미하지만 빛을 볼 수 있었다. 너무도 찬란하며 화려한 빛. 온전히 눈을 뜨고 바라보면 눈이 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주는 빛. 진은 그러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화악! 아무 것도 없었다. 진이 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얀 빛만이 존재했다. 진은 실망감에 고개를 돌리며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시야가 미치는 모든 공간이 어느새 빛을 잃고 어둠의 세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어둠에 잡아먹힐 거라고. 이에 진은 몸서리치는 섬뜩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비명. 그러나 너무도 놀라서일까? 아님 어둠이 소리마저 빼앗아가서일까? 진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에 진의 눈이 공포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려 발버둥쳤다. 하지만 어둠이 그의 모든 기력마저 빼앗아갔는지 진은 통나무처럼 뻣뻣이 굳어 있었다. 단지 공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움직임만 가능했다. 이런 것을 보면 분명 어둠은 상상을 초월한 변태임에 틀림없다. 진이 공포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실없는 소리를 할 때, 조그마한 빛의 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빛의 구는 주위의 어둠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의 구는 어둠 대신 빛을 세상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세상은 또 다시 빛의 세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빛의 세계 가운데 빛의 구는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영롱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사방을 에워싼 빛들이 무색할만큼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빛을. 진은 문득 이것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빛의 구를 잡기 위해 다가가 두 손으로 그것을 잡았다. 신기하게도 어둠이 사라지자 몸의 기능이 원상태로 돌아왔기에 빛의 구를 잡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웅! 진의 손이 빛의 구에 닿자 그것은 기묘한 공명음을 터트리며 그 모양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팟! "허억!" 진은 갑자기 전기가 나갈 때에나 날 법한 소리에 놀라 명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는 정신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오기 직전 희미하지만 절대적인 위엄을 뿜어내는 하얀 검을 볼 수 있었다. "진아!" 에리필은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다급한 음성을 토하며 달려갔다. "괜찮으냐?" 에리필은 그의 몸을 살피며 걱정스런 기색이 역력한 음성으로 물었다. 진은 이곳이 어디인지 처음엔 분간을 못하다 에리필의 염려의 눈길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렇게 나 걱정한다는 표정을 짓지 말라고요, 하하하." 진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은 괜찮은 거지?" 그때, 샤넬리가 다가가 안부를 묻자 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외라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걱정을? 하하, 별일이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아직 샤넬리라는 여인을 잘 모르기에 저지른 오판이었다. "다행이네. 자, 일어나. 약속대로 나한테 좀 맞아야겠어." "맞아? 내가? 너에게?" 진은 갑작스런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연달아 세 번이나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짜증이 나는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판사가 판결을 내리듯 말했다. "그냥 너는 나한테 맞기만 하면 돼." 샤넬리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5일 동안 갈아 잔뜩 날이 선 검을 진에게 휘둘렀다. 휘익! 진은 어이없는 말에 입은 정신적 쇼크를 제대로 치료도 못해보고 그녀의 검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워낙 가까이 있었고,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라 진은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왼쪽 팔을 살짝 베여 버렸다. 진이 자신의 왼팔을 슬쩍 보자, 샤넬리가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그깟 생채기가지고 어물쩡 넘어가려 하지 마!" 샤넬리는 말을 하며 보랏빛 에너지 소드를 뿜었다. 이를 본 진은 왼쪽 팔의 상처가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중력해제주문을 빠르게 외웠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검을 뽑아 하얀 에너지 소드를 만들었다. "헛, 에너지 소드? 그래, 너도 강해졌단 말이지." 샤넬리는 진의 하얀 에너지 소드를 잠시 노려보다 득달같이 검을 휘둘렀다. 진도 자신의 하얀 에너지 소드를 가지고 힘차게 맞섰다. 쾅! 보랏빛 섬광과 하얀 섬광이 부딪혔다. 그리고 두 개의 빛줄기는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보랏빛 섬광의 빛줄기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조금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크윽! 네 녀석이. 감히." 샤넬리는 이미 심하게 내부를 다쳤는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며 쥐어짜듯이 외치며 땅으로 쓰러지려 했다. 그러나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태연히 나타난 에리필이 그녀를 붙잡아 다행히도 그녀의 첫 키스를 땅바닥에 뺏기는 불상사는 모면하게 되었다. 한편, 진은 자신의 검에 맺혀 있는 하얀 에너지 소드를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왼팔에 난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너무도 아름답고 화려한 빛이 엄청난 힘을 뿜어내고 있어 그의 상처마저도 잊게 만들었던 것이다. 잠시 후, 진은 더 이상 에너지 소드를 유지하기에는 자신의 턱없이 부족한 기(氣)를 절실히 느꼈다. 진은 에너지 소드를 원래 상태로 기(氣)로 환원시킨 뒤, 왼팔의 상처를 지혈하며 에리필에게로 다가갔다. "샤넬리는 괜찮은 건가요?" 에리필은 두 사람과 같이 있게 되면서부터 이런 상황을 참 많이 겪는다 생각하며 말했다. "그래. 몸에는 이상이 없고, 진탕된 기(氣)는 내가 진정시켰으니 조금만 요양하면 될 거다. 그건 그렇고 축하한다. 무술을 익히고 3년 조금 못 되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에너지 소드를 능숙하게 사용하다니. 그리고 너는 아마도 두 번째 쿤인 샤오를 열었을 것이다. 그것은 깨달음과 연관된 쿤인데, 아마도 이것의 효용은 네가 앞으로 수련하면서 느낄 테니. 잡설은 여기까지로 하고 다시 한번 축하한다." 에리필은 진의 등을 툭툭 쳤다. 이에 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답게 답변했다. "벌써 3년이 흘렀네요. 이야, 이거 돌아가면 헌트 아저씨하고도 재밌는 한판 승부를 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드디어 두 번째 쿤인 샤오를 열었다니. 사실 전 륜 말고 다른 쿤은 구경도 못 해보는 줄 알았어요. 하하, 어쨌든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아, 맞다. 우리 돌아가기 전에 꼭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가서 다시 한번 등급 테스트 받아야 돼요." 진은 그곳에 가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 이를 훤히 짐작하고 있는 에리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하자구나. 하지만 아직 네가 가지고 있는 기(氣)로는 에너지 소드를 얼마 유지 못하는 거 같던데. 기껏해야 5분 정도? 그 정도 유지해서는 헌트에게 아작아작 밟힌 뿐이란 사실을 잊지 말거라." "헤헤, 그건 그거고요. 하여튼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네요. 그럼 오늘로서 10전 4승 1무인가?" 진은 그답게 5패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싹 지워버리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유쾌한 음성은 얼마 남지 않은 고요의 숲을 넘어 센티오카 시에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 샤넬리의 천적은 진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될까요?? 하하하, 며칠 후면 수능이군요. 엊그제 같은데...벌써 일년이라니....시간 참 빠르네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1 회] 98화. 조르단 아리온 1. "에휴, 어디 예쁜 여자 없나?" 아리온은 자신의 유들유들한 얼굴이 조금이라도 햇빛에 그슬릴까봐 그림자가 있는 곳만 밟아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가 살피는 것은 다름 아닌 여자였다. 그러나 현재 그의 레이더에 의하면 얼굴이 반반하다 싶으면, 몸매가… 몸매가 죽인다 싶으면, 얼굴이… 영 아니어서 그의 속은 점점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아리온은 그의 회색빛 머리칼을 멋있게 쓸어 올렸다. 물론 자신을 보고 있을 수많은 여자들의 선망의 시선을 기대하며 이미지 관리차원에서 행한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영 아니올시다 였다. 그는 내심으로 '예쁜 여자들은 오늘 다 집에서 잠만 자냐?' 라고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눈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지금도 '어디 예쁜 여자 없을까?' 하는 집요함으로 센티오카 시내를 훑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리온의 레이더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용량 초과라는 경고음을 내었다. "크윽! 이게 뭐야?" 아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본 것이다. 상상을 불허하는 엄청난 몸매에 살 속에 파묻혀 사라진 듯한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말이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고개를 재차 돌리던 아리온의 매혹적인 금안에 들어온 것은 참으로 엄청난 괴녀였던 것이다 . 순간 아리온의 화려한 금안은 진저리를 치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는 아리온의 반응에 상관없다는 듯 두껍게 쌓여진 지방층을 열심히 흔들며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은 눈을 살짝 찡그렸다. 아마도 윙크를 한 듯싶었다. '우에엑!' 아리온은 어제 먹은 것까지 올라오려 해서 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이미지 관리가 몸에 배인 사람이었기에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런 동작으로 몸을 돌린 아리온은 그가 평소 싫어하던 햇볕도 무시하고, 그림자가 있든 없든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도망가 버렸다. 최고 성능을 발휘하는 그의 레이더가 지금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큰 불행이 찾아 올 거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도망치면서도 아리온은 습관적으로 뒤를 힐끔거렸다. 다행히도 상상을 불허하는 거녀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휴우, 살았다. 앗, 젠장!" 아리온은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다 뜨거운 태양빛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의 티끌 한 점 없는 매끈한 피부가 상하잖아!' 아리온은 투덜대며 다시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한 일행과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꽤나 시끄러웠다. 아니 시끄러운 사람은 두 사람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조용히 그들의 소음을 참아내는 거 같아 보였다. 그러나 사실 아리온은 그들이 소음을 일으키든 안 일으키든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일행 중에 그의 레이더를 흥분시켜 폭주를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 중요할 뿐이다. "저기…" 아리온은 뒤로 돌아보며 샤넬리를 불렀다. 그러나 샤넬리는 평소처럼 진과 말싸움하기 바빠 아리온의 음성은 그의 대뇌에 전달되지 못해 그녀는 아리온의 말을 싹 무시했다. 하지만 이에 절망하며 속으로 한숨만 쉰다면 아리온이라는 이름을 이 세상에서 쓰윽 지워버릴 사람이 바로 조르단 아리온이기에, 그는 재빨리 그들 앞으로 뛰어가 샤넬리를 향해 정중한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레이디이신 당신을 만나 뵙게 되어 이 조르단 아리온 무한의 영광입니다." 아리온은 느끼한 대사들을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입 밖으로 쏟아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세 사람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샤넬리는 놀라움에 앞서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꺼져!" "예?" 샤넬리는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성을 못 느껴 자연스럽게 본성이 가미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나 아리온은 설마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이런 상스런 말이 튀어나왔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물으려 했다. 그러나 샤넬리의 입이 한발 빨랐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걸 보니 너 귀머거리냐?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은 뭐지? 하아, 좋아.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하니 내가 백번 참아 다시 한번 이야기 해 줄 테니 잘 들어라. 꺼져!" "아, 예. 꺼져 라고 하셨군요. 하하,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갑죠." 샤넬리의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듣고도 아리온은 안색하나 변화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물러섰다. 이 모습을 본 진은 물론이요, 말을 한 장본인인 샤넬리마저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아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에리필만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리온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한편, 그들의 표정을 은근히 즐기면서 센티오카 시내를 걸어가는 아리온은 속으로 그다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생각보다 성격이 강한 거 같지만, 나의 바다보다 넓은 포용력을 보고 반했겠지? 하하, 좋아. 다음에 만날 때는 나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 줘야겠어.' 아리온은 자기만의 착각에 빠져 그림자가 없는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 조아라 판타지란에 투쟁기라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흑흑흑...많이들 봐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2 회] 99화. 조르단 아리온 2. 센티오카 시내, 어느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퍼브 안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바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이 손님의 전부였다. "도련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나 원." "다 생각이 있으실 테니, 지금은 그저 지켜만 보자고." "하지만, 도련님은 우리에게 이상한 일이나 시키시지 않았습니까?" 셋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사람이 투덜거리듯이 말하자 일행의 리더인 듯한 사람이 나직이 꾸짖 었다. "우리의 일은 도련님이 시키시는 일을 처리하는 것과 도련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거다. 이것 외에 우리가 생각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둘째가 맡은 일을 다 처리하고 돌아올 것이니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남은 맥주를 비우고, 둘째를 마중 나가야겠지." 그는 입가에 미소를 만들며 시원한 흑맥주를 들이켰다. 그의 양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도 잠시 그를 바라보다 흑맥주를 들이켰다. 어느새 퍼브 안에는 세 잔의 빈 맥주잔만이 바에 올려져 있었다. "내가 네깟 놈한테 지다니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럼 다시 붙어 볼래? 난 언제든 상대해 줄 수 있어." 샤넬리가 불평을 터트리자 진은 능글맞은 웃음으로 상대했다. 그러나 샤넬리는 더 이상 진과 결투할 생각이 없었다. "넌 연약할 여자를 이긴 다는 것에서 쾌락 같은 걸 느끼는가 보구나? 변태!" "뭐, 연약한 여자? 그게 어디에 있는데? 그리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쯧쯧!" 진은 가당치도 않다는 투로 반박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샤넬리를 보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이런 그의 행동과 말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샤넬리는 팔꿈치로 그의 명치를 사정없이 찍어버렸다. "컥! 이런, 치사…" 진은 갑작스레 먹은 일격에 아침에 먹은 것이 게워 올라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원통어린 항의를 했지만, 샤넬리는 뉘 집 개가 짖냐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후우, 살았다. 야, 실력이 안 된다고 비겁하게 기습을 하냐?" "호호, 기습도 실력이라네. 그리고 네가 맞을 짓을 하니깐 맞는 거야." "맞을 짓?" 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샤넬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샤넬리는 당당한 태도로 진에게 또박또박 한 가지 예를 들어 그가 왜 맞아야 되는지를 설명했다. "아까 전에도 봤지? 어떤 남자가 나한테 반한 모습을. 그런 눈에 보이는 예를 경험하고도 내가 연약한 여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맞을 짓이란 말이다." 진은 그녀의 말을 괜히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참에 무시해 버리자 라는 생각에 멀찍이서 걷고 있는 에리필에게로 다가갔다. 뒤에서 시끄럽게 짖는 샤넬리를 버려두고 말이다. "너 그 행동에 의미는 뭐냐?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샤넬리가 입 꼬리를 위로 말며 이죽거렸지만, 진은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한편, 그들의 뒤를 은밀히 밟고 있는 흑의를 입은 사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문득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으리라. 지금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에리필이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나가시는 거죠?" 샤넬리는 호송자(escorter)인 에리필이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에리필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에리필은 모든 면에서 그녀를 능가하는 헌트와 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사람이 다. 그런 에리필이 샤넬리의 얕은 함정에 빠지겠는가? "예전에 알고 있던 친구가 이곳에 살고 있어서 간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볼까 싶어서요." 에리필이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샤넬리의 입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아쉽지만 물러날 수밖에 없다. 샤넬리가 손을 내저으며 알겠다는 표시를 하자 에리필은 깊게 묵례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샤넬리는 입맛을 다시며 보고 있었다. 둘째라고 불렸던 인물은 진의 일행이 묵는 여관을 확인하고, 약속장소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한 인물에 의해 제지당했다. "아까 그 애송이의 명을 받고 우리 뒤를 쫓아왔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에리필이 그의 뒤에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에리필은 태연히 말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뒤를 너무도 쉽게 뺏겼기 때문이다. 에리필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의 목숨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케이온은 축축하게 적은 등을 천천히 돌리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허허, 이거 왜 이러시나. 나는 장난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바른 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에리필은 능글맞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이 케이온에겐 더 없이 싸늘하고 차가워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전혀 없소." "위해? 하하, 자네 실력으로 나를 위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리고 자꾸 말을 돌리는데, 아까도 말했을 텐데. 나는 장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에리필은 천천히 그러나 선포하듯 말했다. 그러자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는지 케이온은 땀을 주르륵 흘리며 물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소?" 그의 말에 에리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에리필의 눈은 더욱 빛을 발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케이온의 눈은 그의 눈을 보지 않고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리필의 눈을 보고 있기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하 지만 그는 아무리 두렵다 하여도 표면적인 이야기만 했을 뿐, 자신의 일행들에게 피해가 되는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무리하게 묻지 않은 에리필의 낮게 깔린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자 에리필은 친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네. 하지만 자넨 여기서 좀 쉬고 있어야겠어." "무슨… 컥!" 에리필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복부에 한 방 먹여 그를 기절시켜버렸다. "미안하지만, 내가 일을 할 동안에 자네가 깨어 있으면 골치 아파질수도 있거든." ~~~~~~~~~~~~~~~~~~~~~~~~~~~~~~~~~~~~~~~~~~~~~~~~~~~~~~ 한 화에 무진장 짧은 챕터 여러개 따다닥 붙였네요...하하하...수능이 오늘입니다. 모두들.. 홧팅!!!!!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3 회] 100화. 조르단 아리온 3. 센티오카 시의 이그젝터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더는 낯선 방문인이 이곳을 어찌 알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는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나의 화원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카날리아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네." 뜬금없는 문답이었지만, 아이더는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혹에 찬 그의 언행은 친절을 다한 극진한 예우로 변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센티오카 시의 이그젝터로 활동하고 있는 바쥬오 아이더라고 합니다." "후후, 그런가? 나는 전 이그젝터였고, 팔로이 에리필이라고 하네." "아! 에리필님이셨군요." 아이더가 상기된 음성으로 묻자 에리필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를 아는가?" "예, 세르디스 선배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그의 말이 이해가 된 에리필은 '세르디스 그 녀석'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미 은퇴한 자신을 후배이자 현역 이그젝터가 알아봐 주니 그 감회가 새로웠던 것이 다. 하지만 그는 감회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해 달라고 이곳에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랬었군. 그건 그렇고 편지 한 장을 전해주었으면 해서 여기 들렀네." 아이더는 그의 말을 듣고,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침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누구에게 전해주어야 되는 편지입니까?" 에리필은 그가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 경에게 전해주면 될 걸세." 에리필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아이더에게 주었다. 편지를 받은 아이더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 편지가 전세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겠죠?" "전세? 무슨 전세 말인가." 에리필은 뜬금없는 말을 하는 아이더를 보며 오히려 되물었다. "예? 지금 카리아 왕국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제국군에서 온 편지 아닙니까?" 에리필은 그제야 아이더의 엄청난 사명을 진 듯한 행동도 말도 이해되었다. 에리필은 피식 웃으며 아이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 편지는 전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네. 그저 데이릭 경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야. 그렇 다고 하여 이 편지를 소홀히 관리해서는 안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데이릭 경에게 이 편지가 전달될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그는 '믿어주십시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더를 뒤로하고 센티오카 시의 이그젝트 지부를 나왔다. "친구는 만나 보셨나요?"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에리필은 2층으로 올라가다 내려오는 샤넬리에게 대답했다. 뒤를 보니 우거지상을 하고 내려오고 있는 진이 있었다. '후후, 결국 졌나 보군.' 에리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샤넬리를 따라 홀로 내려갔다. 1층은 여느 여관처럼 식당을 하고 있어 투숙객들의 식사나 피로를 풀 수 있는 술을 팔고 있었 다. 일행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저녁이 될만한 음식 몇 가지를 시켰다. 그렇게 음식을 기다 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아리온이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이거,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먹어야겠다는 강렬한 필이 꽂혀서 와봤더니. 역시나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계시군요. 하하, 역시 우연은 강렬한 염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말도 잘하는 아리온은 은근슬쩍 의자 하나를 차지하며 신나게 이야기 했다. 하지만 샤넬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하는 짓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 그의 말은 그녀의 가슴에 하나도 와 닿지 않는 듯했다. 진은 끈질기게 샤넬리에게 관심을 표하는 아리온이 신기하게 보였다. '저 사람은 도대체 샤넬리에게 왜 저리 아양을 떨고 있지? 물론 예쁘긴 하지만 여자다운 면이 하나도 없는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봐 놓고도 저런 태도가 가능하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 야.' 진은 간단히 그를 평하며, 샤넬리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합석을 허락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무례한 녀석이군." 샤넬리는 쌀쌀맞은 음성으로 차갑게 쏘아 붙였다. 그러나 아리온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응수했다. "무례한 녀석이지만, 밥은 먹어야겠죠. 또한 무례한 녀석일수록 아름다운 미녀와 같이 식사하길 원하죠." 아리온은 끝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샤넬리는 간만에 듣는 아부도 듣기 싫지만은 않은 지 더 이상 살벌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리온에게 요구했다. "아름다운 숙녀와 식사하는 영광을 줄 테니, 우리 음식값도 네가 내!" "당연한 이야깁니다." 아리온은 그녀의 말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하며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음식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샤넬리가 툭 내뱉듯 말했다. "난 음식을 남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너 혼자 저걸 다 먹을 수 있으면 다 시켜!" 아리온은 등 뒤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주문에서 몇 가지를 뺏다. 화려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진열되었지만, 샤넬리야 원래 이것 보다 훨씬 훌륭한 음식들을 매일 먹고 살았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리온 역시 식당의 질이 낮다며 투덜거리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레이디이신 당신의 이름은 꽃 보다 아름답겠지요." 아리온이 또 다시 느끼한 말들을 쏟아내자 샤넬리의 고운 아미가 찡그러졌다. "넌 그딴 버터 바른 말들 밖에 할 줄 모르냐?" "하하, 제가 할 줄 아는 말들에는 여러 가지 들이 있죠. 정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른 말을 사용하도록 하죠. 그런데 당신의 이름은 어떻게 되죠?" 아리온은 입가에 싱긋 웃음을 지으며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으려 했다. 샤넬리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을지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인심 쓴다는 투로 말했다. "샤넬리." "아, 샤넬리 양이셨군요. 하하, 제 이름은 아까 이야기 했었죠?" 아리온은 샤넬리라는 말을 되내이며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고 쌀쌀맞았다. "몰라. 기억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깐." 지금껏 유들유들한 멋을 풍기던 아리온이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라는 순간 일 뿐, 그는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단어 하나하나를 그녀의 머릿속에 박으려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제 이름은 조르단 아리온이라고 합니다." 아리온이 정중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으나 샤넬리는 관심 없다는 듯 음식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아리온은 실망하지 않았다. 식사도 끝났고, 더 이상 붙어 있을 명분이 없게 된 아리온은 아쉬운 얼굴을 하며 떠났다. 날이 밝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산 일행은 말을 타고 센티오카 시를 떠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샤넬리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요." 그의 음성은 지금껏 유들유들했던 멋을 벗고,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리온의 뒤에 조용히 시립해 있는 사인의 인물 중 한 명이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도련님, 이제 돌아가셔야지요. 주인님께서 걱정하십니다." 그의 음성은 충정으로 가득해 있어, 그가 얼마나 아리온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음성에서 그러한 충정을 느꼈음인가? 지금껏 샤넬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온이 뒤를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리온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아갑시다. 샤넬리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어 그녀의 앞에 설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뒷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인의 사내는 그의 뒤를 조용히 뒤따랐다. ~~~~~~~~~~~~~~~~~~~~~~~~~~~~~~~~~~~~~~~~~~~~~~~~~~~~~~ 진정한 의미의 100화입니다. 흐음... 수능이 끝났습니다. 드뎌... 그러나 수능을 능가하는 압박감이 기다리고 있으니, 수험생 여러분 끝까지 힘내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4 회] 101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실존하는가? 1. 바이얀 대륙과 제국 사이에는 깊고도 깊은 숲 유라시아드가 넓게 퍼져 있어 인간들의 발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래서 제국과 바이얀 대륙은 더욱 교류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재앙 유라시아드 숲은 그 옛날 지금의 제국이 세워져 있는 땅덩어리가 바다에서 떠올랐을 당시에만 해도 존재하지 않은 숲이라 했다. 그러던 것이 수 천 년이 지난 지금은 마치 땅 따먹기 하듯 제국과 바이얀 대륙을 구분시켜 놓았다. 마치 제국인들이 신성한 바이얀 대륙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아서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바이얀 대륙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는 제국 인이든 바이얀 대륙인이든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거처로 들어오는 인간들을 숲의 재물로 만들었다.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는 그 숲의 중심부에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숲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나무는 유라시아드 숲과 같은 나이를 먹고 있었는데, 간혹 사악한 기운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인간들 중에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유라시아드에 들어와 지금껏 살아서 나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유라시아드의 아버지는 그 거대한 몸집에 걸맞게 대지에 엄청난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리고 그 뿌리들 가운데, 어떤 노인이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형상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노인은 마치 뿌리들 하나하나에게로 부터 영양분을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노인은 언제까지나 뿌리들 가운데 웅크려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른다. 그리고 노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십년을 주기로 눈을 떴다. 눈을 뜬 노인은 이 세상의 모든 질서를 깨우친 현자의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 눈을 깜빡이며 한 서린 외침을 토해냈다. "이제 길어야 10년! 그 안에 고대인의 모든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어 불로장생에 이르는 열쇠 를 얻으리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또 다시 십년의 잠에 빠져 들어갔다. 리오스가 포함된 유적 탐사 팀은 제국의 동쪽 끝인 이스트 즉 한 쟈크 대륙과의 경계령에서 발 굴된 유적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거 놀라운데! 우리가 기대했던 초고대 문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 보전된 유적을 발견하다니. 그것도 초대 제국 시대의 것이야." 조세판은 유적지를 따라 들어가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리오스도 그의 옆에서 놀람을 표시하며 벽에 새겨진 벽화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 2500여년 전에 유행했던 제퓌로 양식 같네요." "그렇지. 제퓌로 양식의 특징은 가는 선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대개 그 처절했다고 전해지는 크산크라 대전을 그린 양식이지. 그리고 제퓌로 양식은 그 당시 유행한 추모의 신전에 그려졌지.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곳은 그 옛날의 추모의 신전일지도 모르겠네." 조세판은 기대된다는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흥분된 음성으로 말했다. 유적 탐사 팀은 세 파트로 나뉘어 유적지를 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오스와 조세판이 포함된 파트는 탐사 팀의 선두인 제 1 파트였다. "호오, 내 눈으로 그 유명한 제퓌로 양식을 다 보게 되다니. 역시 잘 따라온 거 같아." 프린샤의 흥분된 음성이 유적지를 울리자 조세판은 절로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시장이라는 사람이 시의 일은 내팽개치고 이런 곳에나 있다니, 시장이라면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해야 하거늘, 쯧쯧쯧." 조세판이 혀를 차며 꾸짖자 프린샤는 되레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격무에 치여 살다가 간만에 휴식 삼아 왔다고 생각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솔직히 천하의 도요이프 프린샤가 근 10년이라는 세월을 시의 발전을 위해 멸사봉공한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닙니까?" "끄응…" 그가 그렇게 말하자 조세판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닌 게 예전의 그는 정말 감당이 불가능한 역마살이 잔뜩 낀 인간이었던 것이다. "후우, 그래. 이미 돌아가기도 그른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조세판은 간단히 말을 맺고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움직임에 맞춰 탐사 팀의 총 가드 책임자인 지레이션과 가드들은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위험에 대비하며 조세판 일행의 전후좌우에서 그들을 포위하는 형태로 나아갔다. 그렇게 그들이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소름이 돋을 만큼 잔혹한 괴성이 유적 지를 울렸다. 캬오오! 순간 가드들은 학자들을 보호하는 진형으로 열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엄청난 포효를 지른 괴수가 이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몇 천년 동안 목욕이란 것을 해 본적이 없어서인지 그의 몸은 칠흑 같은 암흑색을 띠고 있었고, 털인지 비늘인지 모호한 날카로운 껍질이 그의 외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돌출된 입에서 연신 타액 같은 정체불명의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액체가 유적지 바닥에 떨어지자 '치이익' 이라는 타는 음과 함께 연기 같은 것이 올라왔다. 이것을 본 가드 중 한 사람이 바람 빠진 소리를 토했다. "도, 독이다. 모두 저 액체를 조심해!" 그의 긴장된 음성이 유적지를 울리자 느슨한 마음가짐으로 나아가던 고고학자들은 이내 안색을 굳히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한편, 조세판과 리오스 옆에 붙어있던 지레이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뛰어난 청각 을 소유한 프린샤가 그의 의문을 간단히 풀어주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군." "저 몬스터는 그 옛날 초대 제국 시대에 멸종되었다는 캬사이스 라는 몬스터입니다." 지레이션은 저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는 프린샤를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캬사이스라고요? 그런데 저 몬스터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 입니까?" "대략 중급 몬스터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젠장!" 그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하나의 생명이 죽지 않기 위해 처절히 발버둥치는 소리가 유적지를 울렸다. "크아악! 안돼, 나 죽기 싫어!" 처음 경고성을 터트렸던 가드의 몸은 갑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캬사이스의 독에 녹고 있었다. 그런데 캬사이스의 독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갑옷을 타고 흘러 들어와 맨살을 직접 태웠다. 캬사이스의 독은 정말 지독하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가드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고통과 공포로 점철된 최악의 죽음이었다. "한 발 늦었군." 지레이션은 이미 죽어 시체가 되어 버린 부하에게 다가가 그의 부릅떠진 눈을 감겨주었다. 그 리고 그는 앞에서 뭐가 좋은지 돌출된 입을 마구 흔들고 있는 캬사이스에게 그의 분노를 휘둘렀다. "네 놈은 나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그것은 너의 죽음으로 보상 받겠다." 지레이션은 낮지만 한 서린 외침을 토했다. 웅! 순식간에 그의 검을 감싸는 에너지 소드는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것은 터지듯 캬사이 스에게로 날아갔다. 붉은 빛의 에너지 덩어리는 순식간에 붉은 화염으로 변해 캬사이스의 독마저도 태워 버리며 그를 감싸 안아 버렸다. 뼈마디가 우그러들며 부서지는 둔탁한 소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함께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음향이 울렸다. 그러나 의외로 캬사이스는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태연히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무표정한 모습. 그것이 또한 너무도 기괴해 알지 못할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캬사이스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캬사이스는 그냥 죽지 않았다. 그는 죽기 직전 징그러운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인간의 언어로 저주를 걸 듯 중얼거렸다. "우리의 성전에 너희 인간들의 존재는 없다." 사형을 언도 하는 듯한 그의 말은 모두의 마음 한켠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었다. ~~~~~~~~~~~~~~~~~~~~~~~~~~~~~~~~~~~~~~~~~~~~~~~~~~~~~ 하아, 피곤해...지금 선배 따라 트레이닝장에서 운동을 하고 왔습니다. 무쟈게 힘들군요. 그러나 내 몸이 튼튼해진다고 생각하니 이 정도의 어려움은 이겨내야겠지요. 흑흑, 그러나 다리가 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5 회] 102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실존하는가? 2. 길다란 터널은 좁아지기도 했으며 다시 넓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터널의 넓이가 변할 때마다, 터널과 터널 간의 달라진 빛의 밝기가 순간적으로 탐사팀원들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의 틈을 노리고 몬스터들의 습격이 가해 졌다. 상황이 이런식으로 계속 전개되다 보니, 터널이 다시 넓어지려 하자, 팽팽한 긴장감이 장내를 지배했다. 그리고 뒤이어 거의 공식과도 같이 눈을 찌를 듯이 밝은 빛이 터져 나왔고,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프린샤의 검이 빛을 뿜었고, 그보다 조금 늦게 지레이션이 검을 휘둘렀다. 리오스는 그들의 몸이 움찔하는 순간 크게 외쳤다. "적이다!" 터널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외친 리오스는 이제는 제법 피를 머금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콰지직! 물체가 짓이겨질 때나 터지는 파육음이 터져 나왔고, 리오스는 자신의 검에 맞고 튕겨나간 존재를 쫓아 달려 나갔다. 1 라키르(미터)정도 되어 보이는 괴이한 생명체는 프린샤도 처음 보는 몬스터였는데, 리오스의 검에 맞아 상체의 반이 뭉개진 처참한 모습으로 보랏빛 피와 내장물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연신 쏟아내고 있었다. "끼에엑!" 몬스터는 리오스가 강렬한 기세로 돌진해 오자, 너무나 놀라 양팔을 허공에 저으며 비명을 질렀다.리오스는 싸늘한 눈을 빛내며 기(氣)를 잔뜩 주입시킨 검으로 그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그러나 미약하지만 몬스터가 몸을 꿈틀대자 마치 확인사살을 하듯, 몬스터의 육신을 검으로 난도질 했다. 리오스는 사선을 넘듯 치열하게 전개되어지는 전투에 몹시 흥분해 있었던 것이다. "아..악!" 학자 한명이 또 외마디 비명을 토하며 쓰러지자, 리오스는 싸늘하게 죽어버린 몬스터를 뒤로하고 쏜살 같이 달려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휘리릭! 리오스의 검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몬스터의 목을 댕강 잘라 버렸다. 그러나 몬스터는 목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날랜 동작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리오스는 몸을 조금 틀어 그의 돌격을 피한 뒤, 그의 두 다리를 잘라버렸다. "꾸에엑!" 몬스터는 두 다리가 없어 바닥에 누운 채 양 팔을 허공에다가 휘두르며 리오스의 공격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리오스의 성난 검은 그의 양 팔마저 잘라 버리고 이승을 하직 시켰다. 리오스가 두 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하고 고개를 돌리자 상황은 완전히 종료된 상태였다. 그들을 습격한 몬스터의 수는 모두 16마리였고, 그 중에 태반을 프린샤와 지레이션이 처리했다. 하지만 그들의 습격으로 탐사 팀은 이번에도 동료를 잃었다. 리오스는 검에 묻은 보랏빛 피를 바닥에 털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죽음도 시시해지는구나. 그것이 아군이든 적군의 죽음이든…" 리오스는 검을 휘둘러 어마어마하게 큰 마치 집채 같은 대형 거미를 토막 냈다. 그러나 대형 거미는 죽으면서도 하얀 줄을 리오스에게 쏘아 보내 그의 몸을 칭칭 감아 버렸다. "크아오!" 리오스 옆에 있던 대형 거미가 그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커다란 입을 벌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리오스는 하얀 이빨 사이로 보이는 검은 공간안으로 자신의 몸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몹시 두려웠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니 두렵지 않았다. 왜인가? 리오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그가 '큭큭' 웃기 시작했다. '나란 인간이 꽤나 잘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끝나버리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야!' "크하하하!" 리오스는 대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대형 거미의 입이 리오스의 머리부터 시작해 몸의 반을 덮어버렸다. 그러나 리오스는 여전히 검은 공간에다가 대소를 터트렸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상황을 받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푸직! 이제는 물어뜯어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대형 거미는 일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리오 스의 몸과 얼굴은 대형 거미의 끈적끈적한 타액에 덮였다. 이미 죽었으면 이런 더러운 느낌을 받지 않아도 좋은데, 리오스는 아직까지 숨쉬고 있었다. 파직! 리오스의 몸통을 삼킨 대형 거미의 머리에 작은 금이 생기더니, 이내 '파지직'이라는 소음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대형 거미의 입에서 나온 리오스는 대형 거미의 보랏빛 피로 목욕을 한듯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몸이 양단된 대형 거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은가?" 지레이션이 리오스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리오스는 고개만 '까딱'하고, 다른 대형 거미를 향해 달려갔다. 이 모습을 보고 지레이션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 모습을 보면 누가 몬스터인지 모르겠군." 리오스는 싸늘한 살기를 일으키며 대형 거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 대구에 내려왔습니다. 신검받으러 왔죠. 크크크크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6 회] 103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존재하는가? 3. 본래 103화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102화의 리오스가 싸우는 거 뒤에 내용도 다 지웠습니다. 이점 기억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탐사 팀은 예상치 못한 피해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 분야에서 전문가 답게 재빨리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만 해도 꽤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후속조의 피해 상황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을 겁니다." 드고르가 탐사 팀의 핵심인물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 은 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나갔다. "제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아시겠지만, 지금은 한발 물러설 때 인거 같습니다. 일단 식량도 여의치 않을뿐더러, 앞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들어간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드고르는 그답지 않는 어투로 자기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를 본 조세판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지만, 그는 허투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듯 금세 평정심을 되 찾았다. "험험, 그럼 후속조가 합류하는 즉시 뒤로 철수하여 인원과 물량을 재정비한 뒤, 다시 한번 일을 도모해야겠군요." 조세판은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연신 입맛을 다셨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드고르의 의견이 최선이었으며 당연한 것이었기에 두말 않고 따랐다. 탐사 팀은 후속조들이 속속 합류하자, 아쉽지만 무거운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드고르는 탐사 팀의 피해가 상상 이상이라는데, 울분을 느꼈다. 솔직히 조세판의 맹목적인 집착만 없었어도 탐사 팀은 예전에 철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세판은 이것이 그의 마지막 인생을 빛나게 해줄 좋은 기회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거 같았다. 그것이 드고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적으로 조세판을 바라보는 드고르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아직까지는 조세판에게 살의를 느끼지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럴 수가!" 탐사 팀의 학자 중 한명이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당혹성은 드고르의 심장을 싸늘하게 얼려버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불같은 적의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드고르의 싸늘한 물음에도 조세판은 입구가 막힌 동굴을 바라보며 혀만 차고 있었다. "이런이런!" "이런이런 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탐사 팀의 리더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조세판은 드고르가 자신을 계속해서 몰아붙이자 축 늘어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화를 낸다면 탐사 팀은 중심를 잃고,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 상황을 유심히 주시하고 있던 프린샤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가 중재자로 나섰다. "지금은 머리를 끓일 때가 아니라 차갑게 식혀야 될 때라 생각됩니다." 프린샤의 한 마디에 드고르는 잃었던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으로 인해 탐사 팀을 감도는 분위기가 매우 암울해졌음을 느꼈다. 이에 헛기침을 토하며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리오스는 프린샤의 한 마디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초대 제국시대의 유적지와 동굴을 연결하던 통로가 막혀버린 사실이 그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프린샤 시장님과 지레이션 씨의 무위라면 저 정도의 장해물은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탐사 팀의 학자 한명이 이렇게 묻자, 리오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 프린샤가 입을 열어 그에게 면박을 주었다. "글쎄요. 저와 지레이션 씨의 힘을 합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 바위덩어리들을 치우기 위해 우리가 힘을 가한다면 모르긴 해도 동굴이 폭삭 무너질 것입니다." "으흠." 학자는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힘과 동시 침음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프린샤의 관심은 그에게서 떠난 지 오래였다. '톡톡!' 프린샤는 동굴과 초대제국 시대의 유적지를 연결하던 통로를 상기하며 무너진 바위덩어리들을 두들겨보았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한숨. 그 한숨 소리가 어찌나 큰지 탐사 팀의 모든 사람이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오스 단 한 사람만 빼놓고 말이다. '사람들의 혼란을 막아야 할 입장인 사부님이 저런 행동을 하시다니, 이해할 수가 없구나. 혹, 무슨 꿍꿍이가 있으신 걸까?' 리오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프린샤를 보는 순간 몸을 돌리던 프린샤의 시선이 그의 시선과 허공에서 부딪혔다. '뭐, 뭐지? 대체 저 눈빛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당황한 리오스가 고개를 돌리자, 프린샤가 묘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인지라,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바위덩어리들과 엄청난 토사는 적어도 수십 라키르(미터)에 걸쳐 쌓여져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들어왔던 그 통로 전체가 붕괴된 거 같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저와 지레이션 씨가 힘을 합쳐도 뚫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일꾼으로 고용된 현지인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토하자, 프린샤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대개의 유적지가 그렇듯 들어오는 길이 있으면 나가는 길 또한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목적지에만 도달하면 나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조세판 교장 선생님?" 프린샤의 은근한 물음에 조세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드고르와 몇몇 학자들 그리고 지레이션의 인상은 크게 일그러졌다. 이제는 모 아니면 도인 것이다. 그러나 탐사에 대해 잘 모르는 현지 일꾼들은 프린샤의 말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몇 사람이 막아선다고 하여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프린샤 말마따나, 작은 동산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저 바위덩어리들과 토사를 인간의 힘으로 치운다는 것은 무리란 것을 너무나 잘알기에 그들은 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을 꾹꾹 눌렀다. 한편 리오스는 프린샤가 두들겼던 바위를 두들겨보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무너진 흔적 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빛났다. '사부님 왜 그러셨습니까?' 리오스는 속으로 이런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그를 부르는 탐사 팀 동료의 음성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모 아니면 도라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7 회] [공지] 꼭 읽어주세요 요번에 올라온 103화는 전에 꺼랑 다른 겁니다. 전에 102화 뒷부분과 103화를 지우고... 103화를 새로 썼으니 이 점 유의하시고, 안 읽으신 분들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좀 더 나은 글을 위하여 이런 방법을 썼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8 회] 104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존재하는가? 4. 다행히도 컴퓨터를 고쳤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전 103화와 다른 103화이며 전에 있 던 것은 지웠습니다. ~~~~~~~~~~~~~~~~~~~~~~~~~~~~~~~~~~~~~~~~~~~~~~~~~~~~~~ "헉, 헉!" 동굴 안을 후끈하게 달구는 거친 숨소리들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떠다닌다. 그와 함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탐사 팀을 엄습해, 체력이 약한 현지인들과 일부 학자들의 얼굴이 고통에 휩싸였다. "젠장!" 드고르는 무리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빨리 걸으면서도 연신 욕지거리를 입밖에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숨을 헐떡이며 걷고 있는 조세판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는 분명 살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드고르는 옆에서 속보로 걸으면서도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는 리오스의 눈빛에 순간 겁을 집어먹었다. '저 녀석은 날이 갈수록 서슬 퍼런 검이 되어가는 거 같군!' 드고르는 이곳에 와서 많이 변한 리오스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특히나 명철함 속에서도 밝은 빛을 발하던 눈빛이 스산한 살기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켠을 꽉 눌렀다. '하아,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우리 앞에 직면해 있으니 말이야….' 드고르는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쉬며 거의 달리듯이 걸음을 옮겼다. 탐사 팀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발걸음을 돌렸던 그 자리에 전보다 배나 빠른 속도로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간의 휴식을 가진 뒤, 이제부터는 미지의 모험이 될 음울한 빛을 토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탐사 팀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곳이 동굴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과연 어디일까? 우리 라크리나 제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은 없는데 말이야. 더군다나 내 지각능력에 이상이 온 것이 아니라면 이곳은 지하 수백 라키르(미터)정도 쯤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뭐, 얼마 전부터는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봐야 얼마 올라가지도 못했지 않은가. 어쨌든 이곳이 내 짐작대로 지하라면 허허벌판과도 같은 저 공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리오스는 좁은 동굴을 벗어나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검은 대지를 바라보며 명철한 이성으로 빛나는 눈을 찌푸렸다. "허허, 수많은 유적지를 탐험했지만, 음... 이렇게 기묘한 느낌을 받기는 이곳이 처음인 것 같군, 그래." 조세판은 어둠이 넘실거리는 듯한 공간을 쳐다보며 약간은 격앙된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뭔가 상식 너머에 있는 신비 속의 고대, 아님 그 이전 시대의 베일에 가려진 유적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조세판은 저 공간 너머에 분명 엄청난 유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편 드고르 역시 이제껏 불만에 차 있던 표정을 고치고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 일꾼들의 등에 매여 있는 식료품들을 보고, 현실을 인식했다. '어쨌든 저 공간 너머에 우리가 바라는 유적지가 있어야 될 텐데.' 드고르는 한숨을 내쉬며 또 다시 행군하는 탐사 팀에 동참했다. 지옥의 유황불처럼 넘실거리는 어둠은 탐사 팀의 움직임에 맞추어 춤을 추듯 일렁거렸다. 그 광경은 마치 남색 공간에 그림자의 소리 없는 춤사위를 보여주는 듯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둠의 일렁거림 속에는 날카로운 칼이 숨어 있었다. "크헉!" 저 멀리 퍼져 있던 어둠이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갑자기 날카로운 흉기로 탐사 팀의 맨 뒤를 강타했고, 주위를 엄중한 시선으로 살피던 가드 한 명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잔잔했던 어둠이 소용돌이치듯 탐사 팀을 둘러쌌다.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느껴라. 그리고 공격하라!" 지레이션의 외침은 허둥대던 가드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고, 누구 할 것 없이 눈을 감고 어둠의 움직임을 쫓으려 했다. 하지만 웬만한 실력가지고는 눈을 감고 움직임을 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어둠에 도사린 마물은 유유히 수십의 생명을 앗아갔다. "하압!" 지레이션의 검이 일렁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끼야악!'이라는 괴성과 함께 시커먼 생명체가 남색 공간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커먼 생명체는 신기하게도 구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표면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구멍은 인위적으로 만든 거 같지 않았다. 그것은 지레이션의 검에 의해 뚫려진 상처와 그 구멍들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레이션은 시커먼 구 모양의 생명체가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부하들의 비명은 남색 공간 위를 쉴 새 없이 때렸고, 그는 미련 없이 일검을 떨쳐 시커먼 구를 '쩌억' 양단해 버렸다. 한편 리오스는 이곳에 와서 오감이 몇 배나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최소한 그는 눈 뜨고 코 베이는 눈 뜬 장님이 아니었다. 리오스의 검은 날카로웠다. 그것은 그의 검이 검은 하늘에 은빛 선 한 줄기를 만들 때마다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과 '툭'하며 어떤 물체가 피를 토하며 나타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시커먼 생명체를 꿰뚫었다. 거기다 그들의 공격인 표면에 난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송곳들의 매서움마저도 리오스는 완전치는 않지만 피하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처음에 그를 대할 때 그에게 가졌던 편견을 말끔히 씻어 주게 했다. '온실 속의 천재!' 처음 사람들이 리오스를 대할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분명 얼마 전까지의 그는 온실은 아니지만, 울타리 안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생명을 걸고, 잔혹한 현실을 대한 그는 이제 '비정한 천재!'가 되었다. 리오스는 눈앞에 있는 어둠이 일렁거리며 대기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자마자 몸을 틀었다. 그리고 보랏빛 피에 절은 검을 고쳐 잡으며 앞으로 내달리며 위로 휘둘렀다. '퍼퍽!' 그의 검이 어둠과 충돌하자 베이는 소리가 아닌 뭔가가 곤죽에 맞아 터지는 소리가 터졌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열리며 남색 공간 위에 피 곤죽이 되어 버린 시커먼 육질과 보랏빛 피가 '우두둑', '퍼퍼퍽' 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리오스는 이미 또 다른 재물을 제단에 올리기 위해 몸을 날리고 있었는데,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그의 모습은 야성적인 면과 기사의 절제된 단정한 면이 절묘하게 어울려 있어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죽음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매력! 그것이 지금 리오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탐사 팀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단연 뛰어난 무위를 소유한 프린샤는 한 자리에 서서 사방으로 검을 떨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이 한 순간에 몇 십번의 변화를 보이면 검은 어둠에서 수십의 외마디 비명과 홍시가 퍽 하며 터진 듯한 형상이 어둠이 열리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프린샤의 검공이 패도적인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린샤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남색 공간의 호흡에 집중했다. "흐읍! 하앗!" 프린샤의 두 눈이 번쩍 뜨여지며 탐사 팀을 뒤덮고 있는 어둠을 향해 수백, 수천의 황금빛 선들이 영활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합창을 하듯 동시에 비명이 남색 공간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열리며 코를 찌르는 듯한 비린내가 확 풍겼고, 남색 공간이 시커먼 생명체들의 죽음을 슬퍼해주듯 건더기가 있는 눈물을 흘렸다. 이 엄청난 상황에 모두는 소리를 잊었다. 이는 그들이 받은 충격이 그들의 상식을 넘어섰다는 것을 뜻했다. 잠시 후, 정적은 의외로 남색 공간이 터트린 한숨이 바람이 되어 탐사 팀의 마비된 후각을 되살려 깨뜨렸다. "아욱, 냄새!" 남색 공간을 흔드는 바람에 날려 온 피비린내에 현지 일꾼 한명이 코를 잡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옷이나 몸 곳곳에 시커먼 생명체의 피나 터져버린 살점들이 묻어 있어 옷을 벗고, 깨끗이 씻지 않는다면 악취라 할 만큼 지독한 피비린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최소한 이 자리라도 피하고 싶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이 조세판에게 전해져서일까? 조세판이 고령의 나이답지 않게 커다란 음성으로 말했다. "자리를 수습한 뒤, 이 자리를 벗어납시다." 그의 말에 속에 있던 것을 게워내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동료의 시신을 묻을 생각도 하지 않고,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리오스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 동물들 보다 뛰어난 것은 이성뿐이라고 배웠던 모든 지식들이 참으로 허망하게 여겨졌다. 현실속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지식은 죽어 지식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내가 배웠던 수많은 책들은 쓰레기들이었나?' 이렇게 절박한 상황속에서도,비록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지적 산책을 해보는 리오스였다. ~~~~~~~~~~~~~~~~~~~~~~~~~~~~~~~~~~~~~~~~~~~~~~~~~~~~~ 투쟁기 투쟁기 투쟁기!!!!! 도 많이 봐주세요. 작가의 처절한 발버둥입니다. 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09 회] 105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존재하는가? 5, 도망치듯 동료의 시신을 서둘러 매장하고 남색 공간을 질주한 탐사 팀이 멈춰선 것은 하루가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군중들의 광기와 무리하게 움직인 여파로 인해 그 다음날 하루 동안은 몸조리 하는데 다 쓰며, 현재 상황을 살펴보았다. "본래 350명이었던 우리 탐사 팀이 탐사 22일 째인 오늘 172명이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이제껏 무수히 많은 유적지를 탐사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것도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으니,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몇 명이나 살아남아 있을지 걱정이 드는군요." 열변을 토하는 드고르를 보며 탐사 팀의 핵심 인물들은 얼굴을 굳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드고르는 멀찍이 떨어져서 피로한 몸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탐사 팀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최소한 자신과 같은 탐사 팀의 핵심 인물들은 물품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입는 것 등 아무 불편이 없었다. 이 사실이 부끄러우면서도 화가 나는 드고르였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집권층에 있는 인간들은 살아남는단 말인가? 결국 죽는 것은 밑에 있는 인간들인가? 후후, 내가 집권층이란 말이지?' 드고르는 속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탐사 팀의 분위기만 흉흉하게 만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살아남는 것에만 신경 쓰자. 현재 집권층인 나는 살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다.' 회의를 주도했던 드고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세판은 의례적으로 회의를 마무리했고, 그들은 각자 돌아가 쉬었다. 지레이션은 반으로 줄어든 자신의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앗, 대장님!" 부대장인 수반이 몸을 일으키며 그를 반기자, 지레이션이 착잡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몸은 괜찮은가?" 지레이션이 왼쪽 소매가 덜렁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묻자, 수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뭐, 이런 일을 하다보면 이미 예정된 일이지 않습니까? 하하!" 수반은 2 라키르(미터)에 이르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를 본 지레이션은 이런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저토록 환한 미소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속으로 던져보았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부하들 때문에 더 이상의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살아남은 부하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다. 이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맛본 지레이션은 모두를 강건한 팔로 끌어안아 주며 진정이 담긴 한 마디를 전했다. '모두 다 살아 나가자!' 탐사 팀의 주축인 학자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행군이 시작되면, 인상을 팍팍 쓰고 투덜대며 따라간다. 그러다 그들은 다리가 아프다는 둥, 발바닥이 까졌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다대며 행군의 속도를 늦췄다. 솔직히 그들이 그들 뒤에서 힘겹게 따라오는 현지 일꾼들의 등에 메여 있는 짐들을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어쩌면 그들은 인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평 덕분에 현지 일꾼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쉴 수 있었다. 이러한 아이러니컬한 상황 속에서 탐사 팀은 남색 공간의 끝을 향해 전진했다. 어느 순간부터 남색 공간이 일렁거렸다. 이에 탐사 팀 사람들은 저번의 그 시커먼 생명체를 떠올리며 조심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일그러진 남색 공간은 그들에게서 방향감과 거리감을 빼앗아 갔다. 이에 지고한 경지에 오른 프린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금세 평정을 되찾았은채, 흘러가는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방향감과 거리감을 잃은 채, 자신들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남색 공간에 뿌연 연기가 사라지듯 옆으로 퍼지며 빛은 빛이나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빛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이에 탐사 팀 이곳저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는데, 순수하게 빛의 화려함에 대한 감탄보다는 살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터트린 감탄사 같았다. 처음에 빛을 보았을 때는 눈이 시릴 듯 따가웠지만, 얼마 있지 않아 곧 적응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빛으로 된 문을. ~~~~~~~~~~~~~~~~~~~~~~~~~~~~~~~~~~~~~~~~~~~~~~~~~~~~~ 좀 짧죠...후속타 바로 들어갑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0 회] 106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존재하는가? 6. 빛으로 된 문을 통과한 그들은 얼마 있지 않아, 그 문을 지옥의 문이라 명명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지옥의 문 뒤에 엄청난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 음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무엇도 없었고, 잔혹한 괴수도,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허허벌판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무채색의 공간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길만 존재할 뿐이었다. 얼마 전에 지나왔던 광활한 남색 공간처럼. 길은 넓으면서도 길었다. 그런데 절벽을 타는 듯한 오르막과 수직 하강을 하는 듯한 내리막이 중간 중간에 끼여 있다보니 행군은 자연 위험과 친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군 내내 똑같은 배경을 벗 삼아 걷다보니 앞으로 나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이들의 의욕과 자신감을 빼앗아가 일행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모두의 얼굴은 오랜 행군의 힘겨움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보기 불쌍할 정도로 홀쭉해져 있었고, 오랜 시간동안 깎지 않아 자연 덥수룩해진 수염은 흡사 산적이라 말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모습들은 그들이 얼마나 힘든 여정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탐사를 시작한지 근 한달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누구 하나 불평을 터트리지 않았다. 두렵고 힘들었지만, 그들은 하나의 의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고통과 힘겨움을 느낀 자들만이 공유하는 동류애가 생성되어 가능해진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고, 괴롭지만 그들은 의지와 동류애라는 방패를 가지고 꿋꿋이 나아갔다. 그러나 흔히 세상일이란 의지만으로 헤쳐 나가기가 불가능한 것이 다반사이다. 그들이 지옥의 문을 들어온 지 20여일이 흘렀을 때, 그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침해당했다. "크윽, 도저히 배가 고파 걸을 수가 없어!" 학자 한 명이 걷다가 제자리에 푹 쓰러지며 울부짖듯이 외쳤다. 이에 모두의 시선은 모든 물품들을 관리하고 있는 드고르에게 향했고, 그는 다시 조세판에게로 싸늘한 시선을 돌렸다. 조세판은 생각했다. '남은 식량도 최대한 아껴야 한다. 본래 우리가 가져왔던 식량은 두 달 치 정도였다. 중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두 달 이상을 버틸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나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허리띠를 동여매야 한다.' 조세판은 이번 탐사가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듯했다. 리더라는 입장에서 겪는 고뇌. 그것은 그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었다. "후우, 프린샤 시장이 저 분을 좀 부축해고, 식사는 원래대로 3시간 후에 하겠습니다." 조세판은 마법의 시계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들어 올려보였다. 모두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너무도 냉혹했다. 그들의 눈빛에 잠시 불만의 빛이 나타났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고 그들은 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걷고 또 걸었다. 이제껏 이렇게 많이 걸어보았던 적이 과연 있었는가?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는데 열중했다. 아니 열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근 한 달 반 동안 반복해온 것을 몸이 절로 실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빛은 분명 죽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렸다. 그들은 대개 현지 일꾼들이나 학자들이었는데, 대개 영양부족과 심한 피로감, 그리고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죽었다. 부상자는 거의 태반이었다. 그렇게 죽음이 너무 다반사로 일어나다 보니, 살아남은 자는 70 여명을 겨우 넘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친우들의 죽음에 슬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이 죽음으로 자신이 조금 더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그들을 더욱 자기 비하로 몰아붙여 좌절에서 절망의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몇 남지 않은 현지 일꾼 중에 다사는 이러한 절망감이 심해 결국 미쳐버린 인물이었다. 그는 행군 내내 뭐라 뭐라 중얼거렸는데, 그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헤헤, 난 살아남았어. 류오가 죽은 덕분에 내가 산거야. 나는 죽지 않아. 모두가 죽으면 나는 살 거야. 헤헤, 난 아무런 잘못도 없어. 그들이 죽길 바란 건 내가 아냐. 그런데 그들이 죽었을 뿐이야. 그들은 날 살리기 위해 죽은 거야. 나는 그들 보고 죽으라고 한 적 없어. 정말 없다고. 믿어줘. 내가 그런 게 아냐. 내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란 말이야. 으아아악!" 다사는 지치지도 않는지 쉴 새 없이 이렇게 중얼거리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는 분명 일행에게 큰 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버릴 수도 없는 짐이기에 이래저래 힘겨운 행군이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조세판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원혼이 자신의 주위를 배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음습한 한기와 사방에서 찌르는 듯한 시선들의 느낌. 그것은 분명 여기서 죽은 이들의 원통어린 시선일 거라 그는 생각했다. 조세판은 어느 때부터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걷고 있는 세 사람의 청각에 조세판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게. 나도 자네들을 따라 갈 테니." 그의 말을 들으며 리오스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세판은 지금 분명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오스가 생각하기에 조세판의 죽음은 아직 이른 것이었다. 사실 리오스는 현재 조세판이 죽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그 역시 정신적으로 많이 황폐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리오스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그가 도중에 죽음으로 인해 일어날 혼란일 뿐이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잉? 리오스 군이군. 허허, 무슨 말인가?" 조세판은 마치 아까까지 중얼거렸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이 그가 의도하는 바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지만 리오스에게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리오스는 한숨만 내쉬며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다시 20일을 더 걸어갔다. 이제는 식량도 모두 떨어졌다. 남아 있는 것은 물 뿐이었다. 그러나 물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그들의 체력도, 심력도 바닥이 난지 오래였다. 그렇다 보니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이성이라는 족쇄를 푸는 키워드였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우리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저 늙은이 때문이야." 갑자기 가드 한 명이 검을 뽑고 조세판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그의 이성은 한 줌의 재로 타들어간 듯싶었다. 지레이션은 자신의 부하이자 동료가 미쳐 날뛰는 것을 앉아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죽음이라는 자비를 내렸다. "최대한 편안한 죽음으로 너에 대한 예우를 다하겠다." 지레이션의 검이 불을 뿜었고, 그것은 순식간에 그의 목을 허공에 띄워버렸다. 지레이션은 검을 회수한 뒤, 한 발 앞서서 외쳤다. "모두가 같이 굶주리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같이 고통 받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하나 특별대우를 받고 있지도 않다." 잠시 말을 끊은 지레이션은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비장감이 드는 어투로 말을 했다. "우리는 타의에 의해 여기 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책임 또한 자신이 져야 한다. 최소한 스스로 인간이라고 믿는다면 말이다." 지레이션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자신을 포함한 살아남은 46명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한편, 조세판은 갑작스레 터진 일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적지에 대한 집착으로 겨우겨우 부서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아직 죽으면 안돼! 나의 보물이 저 곳에 있어. 사랑스런 그 옛날 유적지들이 저 곳에 있어!' 조세판이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조금이라도 생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드고르가 소리 없이 다가와, 저승사자의 흉악한 눈빛을 빛내며 살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은 네가 죽였어! 너의 집착이, 너의 탐욕이 3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너 때문이야!" "헉헉, 아냐. 난 아냐. 내 잘못이 아냐. 미안해. 잘못했어. 제발… 컥!" 드고르가 그의 귀에서 입을 떼자 조세판이 고개를 흔들며 연신 부인과 사과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래가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그 모습을 드고르가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또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리오스가 착잡한 시선으로 죽은 자와 죽인 자를 바라보았다. '적을 만드는 자,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에 오른 자라는 말이 기억나는구나!' 리오스는 예전에 책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리며 씁쓸한 고소를 짓다 조세판에게 다가가는 프린샤에게 시선을 돌렸다. 프린샤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형식 차 조세판에게 다가가 그의 코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흔들며 건조하면서도 메마른 음성으로 그의 죽음을 알렸다. "죽으셨습니다." 프린샤의 단조로운 음성이 울리고 대략 몇 초 정도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그들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조세판의 시신을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죽음은 땅에 묻을 가치도 없는 싸구려가 되어버린 것이다. 최소한 그들에겐 말이다. 리오스는 앞으로 걸어가며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무엇에 놀란 듯한 그의 표정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죽음은 그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 리오스는 심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여기에 들어 온지도 두 달 하고도 몇일이 더 지났을 뿐인데도 그 사이에 자신은 크게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으로 말이다. 프린샤는 리오스가 잠시 조세판의 시신을 바라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 말했다. "그의 죽음이 슬프냐?" "……." 리오스는 그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굳이 대답하자면 슬프지 않다 이겠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니고,왠지 자신을 추악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누가 죽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잊지 마라. 너의 죽음을 위해 흘려주는 다른 사람들의 눈물은 모두 네가 뿌린 것들이 돌아오는 것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프린샤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평소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너무도 자주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그렇기에 프린샤의 진정한 모습이 지금의 모습일 거라고 조심스레 짐작해보는 리오스였다. 프린샤는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말이 아니었던지 리오스의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 요번화는 상당히 길죠? 챕터를 짜르지 않으면서 올리려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본의 아니게 너무 많이 쉰 것을 이것으로나마 사죄가 될런지... 하하, 글구 오늘 오후 쯤에 리오스편 마지막화가 올라갑니다. 물론 다음에도 리오스가 나오긴 하지만 한동안 나오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럼... 전 다음 수업 준비와 점심을 먹으러~~ 쓔쓩~~~~~~~~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1 회] 107화. 초고대 유적은 과연 존재하는가? 7. 조세판이 죽은 것도 어느덧 과거가 되고 다시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시 이십 여 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들 대부분은 학자들과 현지 일꾼들이었는데, 그들은 불쌍하게도 밖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사(餓死)라는 이름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움직인 일행은 마침내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따라 움직인 끝에 꿈에서도 그리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아…" 순간 리오스는 할 말을 잃었다. "대단하군. 이 뒤에 초고대 문명이 진정 살아 숨쉬고 있다는 말인가?" 지레이션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그는 최후의 생존자 중 학자로서는 단 두명 뿐인 드고르와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거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문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감격과 흥분을 만끽하며,다음 일정에 대해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피비내린가 마비된 후각을 간질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지레이션은 문득 이상한 감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두 학자와 지레이션을 제외하고는 근처 길가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프린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정교하면서도 날카로웠고 또한 잔혹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간단히 이십여 명의 사람을 도륙해버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목을 싹뚝 잘라버리는 순간 지레이션이 뭔가를 느끼고 뒤를 돌아본 것이다. 그것은 거의 눈 한번 깜빡일 정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기에 지레이션도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지레이션은 많은 사람을 도륙했음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검을 들고 걸어오는 프린샤가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두렵고, 잔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간격은 좁혀 지고 있었다. 프린샤는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검을 들고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지레이션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후후, 당신도 알 텐데. 당신은 내 상대가 아니야." 프린샤가 빈정대듯 놀리며 말했지만 지레이션은 오히려 그의 그런 여유가 더욱 무서웠다. 그는 알고 있었다.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만으로도 이미 자신은 그의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죽지 않으려면 발악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 지레이션은 리오스가 프린샤의 제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위협을 가했다. "네 놈도 저 녀석과 같은 편이겠지?" 리오스는 갑자기 자신의 목에 검을 들이대는 지레이션의 행동에 크게 놀랐지만, 그는 태연히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지레이션이 아닌 프린샤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사부님, 저 많은 사람들을 죽이신 것처럼 저도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후후, 네가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 프린샤는 당연하다는 듯이 제자를 죽이겠다고 선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의 답변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렇지만 지금은 화를 터트릴 때가 아니라, 시간을 끌어야 할 때였다. "그렇다면 저 안에는 사부님만이 가져야 되는 무엇인가가 있겠군요." "하하하, 역시 네 머리의 명철함에는 못 당하겠구나. 그렇다. 뭐 곧 죽을 몸이니 간단히 설명해주지. 저 안에는 초고대인들이 신이 되려고 만든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신의 능력에 버금가는 힘이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가질 것이다." "역시 그랬었군요. 어쩐지 이 문에 새겨진 문양들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리오스는 시간을 끌기 위해 말을 질질 끌며 그가 묻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프린샤는 느긋한 마음으로 물었다. "예사롭지 않은 문양이라? 그래, 죽기 전에 네가 알아낸 것들이나 실컷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지." 프린샤는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이라 도망치더라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리오스는 프린샤에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학자라는 족속이 어떤 인간들인지 잘 아시는 사부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제가 알아낸 것들을 말하겠습니다. 이 커다란 문의 제일 하단에는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지옥의 군병들이 새겨져 있고, 그 위가 바로 신의 아들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중요합니다. 문의 제일 상단에는 다름 아닌 창조신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는 아무도 없어야 되는 것이 옳은 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초고대인들은 창조신이 되려는 것 같습니다." 리오스는 말을 하며 프린샤 몰래 지레이션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다. 그리고 지레이션은 더욱 눈빛을 낮게 깔며 기회를 노렸다. 그때였다. 지금껏 눈치를 살피고 있던 드고르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이를 눈치 챈 프린샤가 한 줄기 빛을 그의 심장으로 쏘아 보냈다. "컥! 죽을 수는…" 드고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너무도 많은 감정을 눈동자에다 떠올렸다. 특히나 그의 눈동자는 후회와 자책의 감정을 많이 담고 있었는데, 조세판의 죽음은 그가 죽어서도 후회할 문제였다. 그렇게 그는 죽어서도 맘 편히 죽지 못하고, 후회하며 죽어갔다. 리오스는 문에 기대며 스르륵 쓰러지는 드고르를 힐끔 보며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리오스는 빠르게 주문을 외쳤고, 지레이션은 혼신을 다한 일격을 프린샤에게 날렸다. "파이라미게이션!" 지레이션에게서 쏘아져 나간 붉은 화염이 프린샤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프린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파앗! 붉은 화염과 황금빛 검의 그물이 부딪히자 강렬한 스파크와 사방으로 비산하는 불꽃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튀어 올랐다. 그리고 내부를 울리는 지레이션의 기운에 은근히 놀라는 프린샤는 놀라운 속도로 기운을 배가시켰다. "크윽. 좀 더 빨리… 버티기도 힘들구나." 지레이션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최후 비기인 파이라미게이션을 생명을 걸고 펼치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렇다 보니, 까닥 잘못하다간 파이라미의 불꽃이 자신을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가 속으로 조바심을 내면서도 마지막 기운까지 짜내고 있을 때, 맑은 음성이 격전장을 울렸다. "열려라! 쟈네이로," 리오스의 마지막 말이 공간을 울리자 지금껏 지옥의 군병을 나타내고 있는 조각이 열리며 시커먼 공간이 아가리를 벌리듯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리오스가 뛰어들었고, 펑하는 소음과 함께 지레이션도 그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프린샤는 갑자기 지레이션의 파이라미 불꽃이 한 순간 커지며 그를 덮치자 검을 떨쳐 삼엄한 황금빛 망을 만들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하여 지레이션이 몸을 날린 것이다. 프린샤는 자신이 애송이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아낸 녀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억울하지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한 너그러운 포기 이면에는 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후, 이 문을 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 합!" 프린샤는 문을 밀지 않고 기(氣)를 이용해 당기기 시작했다. 그그그그! 문이 열리며 기이한 마찰음이 일어나고, 그것은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이 열림을 의미했다. ~~~~~~~~~~~~~~~~~~~~~~~~~~~~~~~~~~~~~~~~~~~~~~~~~~ 리오스편이 끝났습니다. 거기 환호하는 사람들, 흑흑 미워요!!!! 어찌됐든 이제부터 진이 나옵니다. 흐흐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2 회] 108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1.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뚫어놓은 듯했다. 그리고 지금 그 구멍을 통하여 신령스런 빛이 내려와 빛의 기둥을 만들어냈다. 그 빛의 기둥은 의식에 사용되는 제단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빛이 너무도 찬란하게 빛나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모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상태였다. 우웅! 빛의 기둥은 현세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지며 묵직한 공명음을 토했다. 잠시 후,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단 아래에서 신령스런 빛을 보던 사내가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사람처럼 절제되고, 정돈된 몸가짐으로 제단 위로 오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제단 위로 올라가는 인물의 두 눈이 너무도 깊게 가라앉아 있어 누구라도 그의 눈을 바라본다면 심유한 그의 눈빛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칼은 그의 성정처럼 새하얬으며, 그것이 흰색 로브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가 계단 하나하나를 오를 때마다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달리 묵직하고도, 장중한 힘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힘이 항거키 어려운 위엄으로 작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허리를 절로 숙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기세는 너무도 온유해 진심으로 탄복케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단상 위에 있는 제단에 올랐다. 노인은 제단에 만들어진 반구의 투명한 물체를 바라보다 그곳에 손을 대었다. 잠시 후, 한없이 온유한 기운을 풍기던 그의 몸에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나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에 놀란 사람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몸을 떨었다. 노인은 어느새 본래의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쉬임없이 흔들리고 있어 그가 얼마나 고뇌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는 엎드려 몸을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심신이 평온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미에님의 예정된 신탁이 내려졌다." 노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복잡 미묘했다. "마지막 문이 열렸다. 이제 우리는 그것들을 봉인하기 위해 세상에 나가야 한다. 그들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자들은 오로지 우리들뿐이니." 노인의 마지막 말은 씁쓸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인지 노인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죄송스런 빛이 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의 얼굴은 환해졌다. "너희들은 혼돈의 싹을 자르고 와야 된다. 아니, 싹은 벌써 거목으로 자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목이든 싹이든 너희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자! 이제 너희를 속박하던 것은 사라졌다. 모두 떠나라. 세상으로 떠나라. 그리고 그들을 처단하라." 노인의 말은 나직하고, 부드러웠으나 그의 말엔 힘이 넘쳤다. 노인의 음성에 담겨 있는 힘에 감탄했음인가? 그들은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실내에는 노인만이 남아 있었다. 찬란했던 빛의 기둥이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꿈결에 지나간 일처럼 실내는 너무도 무겁고, 답답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 노인의 작은 중얼거림이 '웅웅!' 실내를 한바퀴 맴돌다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이 루미에님의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시험이길……." 센티오카 시를 출발한 진은 그리 빠른 이동이 아니었기에 말 위에서 이번에 연 샤오라는 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샤오가 열리면서 에너지 소드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론은 에리필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고, 며칠 간의 반복 훈련을 통해 그 흐름을 대충이나마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샤오는 륜과 마찬가지로 기(氣)를 외부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기(氣)의 힘을 몸 밖으로 온전히 방출시킬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것은 기(氣)의 힘을 일부만 몸 밖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검풍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경지를 의미했다. 그렇지만 아직 진은 외경을 이용한 검풍을 날리는데 익숙해 있었고, 그렇다보니 에너지 소드를 발현시킬 때 반드시 거쳐야 되는 샤오를 이용하는 것이 아직은 서툴렀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과 많은 반복훈련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리 걱정하진 않았다. 진은 단전에서부터 기(氣)를 끌어올려 에너지 소드를 발현시키는 것을 연습하다 에리필이 한숨짓는 것을 발견하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 아니다." 에리필이 도둑질하다 들킨 아이처럼 깜짝 놀라며 당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알 수 없는 의혹을 불러일으켜 진은 추궁하듯 말했다. "에이, 평소완 전혀 다른 모습인데요. 혹시 저 도시에 애인이라도 숨겨 두고 있는 거 아니에요?" "뭐?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애인이 어디 있다고. 녀석이 이제 사부를 가지고 놀리려고 해?" 에리필은 당황하다 그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꾸짖듯이 말했다. "어? 정말 이상하네. 농담이었어요. 화나셨어요?" "아니다." "죄송해요. 정말 농담이었어요." "아, 아니야. 내가 오히려 미안하구나. 언성을 높여서 미안하구나." 진이 계속해서 용서를 빌자 에리필은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리필은 진에게 거듭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 투덜거렸다. '녀석 보기보다 눈치가 빠르군.' 마더리스 시는 센티오카 시에서 검은 삼각지대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되는 도시였다. 도시가 비록 십대 도시처럼 크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도시로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타지에서 와 아예 눌러앉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마더리스 시는 도시 크기에 비해 인구수가 많은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야,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담?" 진은 엄청난 인파 때문에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가며 중얼거렸다. 대로가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길이 비좁게 느 껴졌던 것이다. 말을 끌고 간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은지 샤넬리가 얼굴을 굳히며 짜증스런 말투로 말했다. "빨리 여관이나 잡아요. 이게 뭐예요? 사람들이 말에 채일 까봐 조심조심해야 되고. 아, 짜증나." 샤넬리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에리필을 채근했다. 에리필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비록 이곳이 자신에게 매우 친근한 도시이긴 했지만, 이런 식의 환영은 전혀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일행은 얼마가지 않아 여관을 잡을 수 있었다. 여관을 잡자마자 샤넬리는 키를 받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질려 버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가 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도 있었다. "하여튼 저 싸가지 하고는. 얼굴만 예쁘면 뭐해? 마음이 고와야지. 흥, 저런 애는 음식도 지지리도 못 할 거야." 진은 단언한다는 듯이 2층으로 올라가는 샤넬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2층으로 올라가던 샤넬리가 '팩'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리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야, 너, 내가 한 음식 먹어봤어? 그리고 흥, 꼭 못생긴 것들이 마음 어쩌고 한다더니. 네가 꼭 그 짝이구나. 하여튼 못 생긴 것들이란…" 샤넬리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미련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은 왠지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씩씩댔지만 이미 샤넬리는 방으로 들어간 뒤였기에 닭 쫓던 개처럼 멍한 시선으로 2층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에리필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고뇌의 음영이 짙게 그려지고 있었다. ==================================================================================== 드뎌 진이 나왔군요. 쳇!!!!!!! 참...삼룡넷에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3 회] 109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2. "야, 우리 밖으로 나가자!" "왜? 사람들 많다고 방에 박힌 사람은 너였잖아." 진은 샤넬리가 볼을 부풀리며 때를 쓰자, 얼굴이 화끈 거려 일부러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샤넬리는 어지간히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 홍조 띤 얼굴을 진의 얼굴에다가 갔다 붙이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나가자. 어어!" 예상치 못한 대담한 행동에 진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심하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며 에리필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사부님, 어떻게 하죠?" 진은 그의 영원한 우방이자, 정신적 지주인 에리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의외로 낯빛을 굳힌 채, 힘없는 음성으로 답했다. "네가 샤넬리 양을 데리고 나갔다 오너라." "예! 사부님 어디 아프세요? 사부님답지 않게 왜 이러세요?" 진은 에리필이 샤넬리의 안전을 생각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더리스 시 같은 큰 도시는 치안유지가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도시에 자신들의 상대가 될 만한 자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에리필의 모습은 처음보았다. 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에리필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는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갔다 와! 귀찮게 하지 말고." "……." 진은 그의 말에 정말 놀랐다. 그런 그를 가만히 눈치만 살피고 있던 샤넬리가 데리고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 시끌뻑적했던 방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무거운 공기의 중심에 앉아 있던 에리필이 후회의 감정이 담긴 한숨을 쉬었다. 마더리스 시는 도시의 중추인 시내뿐만 아니라 여타의 길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래서 이곳에서 마차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진은 샤넬리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그의 마음은 납덩어리를 매단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사부님이 왜 그러셨을까? 마더러스 시에 오기 전부터 이상했었어. 혹시 장난 삼아 했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진의 몸은 샤넬리가 이끄는 곳으로 움직였지만, 그의 사고는 광활한 정신적 영역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망상의 세계였다. 샤넬리는 여기저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다니다, 굳어 있는 진의 얼굴을 보고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왜 이러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봤지만, 자답은 불가능했다. 사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일찌기 그녀가 경험해 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샤넬리는 사람들 틈 속에다 은근슬쩍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는 짐짓 쾌활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진을 끌고 다녔다. 한편, 마더러스 시의 암흑가를 주름잡고 있는 스캐더는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넓게 뻗어 있는 대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는 광경은 언제보아도 유쾌했다. 그렇기에 그는 할일도 없이 매일 대로를 걸어다녔다. 그런 그가 눈에 확 띄는 미녀를 발견했다. 아니, 단순히 미녀라고 하기에는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고귀했다. 특히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그 모습은 그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빨리 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신사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그런 저질스런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책망했다. 물론 자기 기준에서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스캐더는 불한당 중에서도 악질 불한당이었다. 스캐더는 우선 그녀의 옆에 있는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애송이를 처리하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은 망상의 공간에서 유영하다,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시선들을 느꼈다. 그런데 그 시선이란 것이 어찌나 끈적끈적하고, 역겨운지 자신이 아닌 샤넬리를 보고 있음에도 절로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기분도 꿀꿀한데, 저놈들에게나 화풀이 해야겠다.' 진은 한눈에 보아도 그들이 건달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 놓고 그들을 아작내기로 마음먹고, 으슥한 골목을 찾아 이동했다. 한편 샤넬리는 아까 전부터 자신의 몸을 훑고 있는 역겨운 시선을 느꼈었다. 그러나 장소가 마땅치 않아,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진이 그들을 유인하자, 조금 후의 광경을 떠올리며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그 희열은 진을 끌어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번져갔다. 순간 짜릿한 희열은 급작스레 식었고,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샤넬리는 심하게 도리질 했다. '미쳤어. 미쳤어!' 진은 으슥한 골목이면서도 제법 넓은 공간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그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한 장소를 마침내 찾았다. "으음, 여기가 좋겠군." 진은 몸을 돌려 뒤따라 오는 스캐더 패거리를 보았다. 그들은 목에 힘을 잔뜩 주며, 골목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한채,좋아라 쫓아오는 불나방같은 녀석들 같으니." 샤넬리는 독기가 잔뜩 오른 눈빛으로 스캐더 패거리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걸음을 멈추자, 막 입을 열려는 진에 앞서 샤넬리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모두 죽어버려!" 그녀의 외침이 허공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샤넬리는 그들 앞에 도착했고,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검광이 스캐더 패거리들에게 쇄도했다. "허억! 뭐, 큭!" 눈깜짝 할 사이에 자신들 앞에 나타난 샤넬리를 보고, 경악에 찬 신음을 토했다. 이어서 그들은 팔과 가슴에 상처를 입고, 짚단이 쓰러지듯 허망하게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거의 같은 시간, 샤넬리의 발길질에 입 안에 있는 십여개의 옥수수를 내뱉으며, 피를 왈칵 토하는 사내가 있었다. "이런, 잘못 골랐다." 그녀의 실력에 놀란 스캐더는 벽에 바짝 붙어 그녀와 거리를 최대한 떨어지려 애섰다. 그리고 그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그녀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스캐더는 멍한 표정으로 그의 부하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광경을 속절없이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샤넬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암사자를 연상시키듯 강하면서도 그 움직임 속에 묘한 매력을 풍겼다. 그러나 그 매력에 취한 자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몸 곳곳에 결코 작지 않은 상처를 입고서야 말이다. "아아, 개운해!" 샤넬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섬뜩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몰론 말 자체는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녀 앞에 펼쳐진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벌어진 상처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사내들. 샤넬리는 지금 그 모습을 보고 개운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이, 악독한 년!" 스캐더는 어쩌자고 저런 사갈같은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는고! 자책하며 상처입은 맹수가 으르릉 거리듯 외쳤다. 하지만 샤네리는 그의 외침에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지금껏 벽에 바짝 붙어 덜덜 떨던 사내가 갑자기 고함을 지른다고 하여 무서워할 샤넬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은 그의 눈빛에서 진득한 살기를 보았다.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진을 엄습했다. 스캐더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류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것은 분명 샤넬리나 진에 비하면 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지는 실력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의 생명을 딱 한번은 구해줄 무기를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것을 제작하면서, 상상이상의 거액을 투자해야했지만, 목숨보다 돈이 귀할 리가 없다. 스캐더는 자신의 검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샤넬리가 보기에 그 동작은 너무나 엉성할 뿐 아니라, 느려터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검이 자신 앞에 이를 때까지 움직이지 않다가 번개가 무색할만큼 빠른 검을 터트렸다. 파슈슝! "크흑!" 샤네리는 스캐더를 베었음에도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녀의 망막에 잡힌 것은 수십 조각으로 나뉜 검의 파편들이었다. 스캐더는 쩍 갈라진 가슴을 부여잡은 채,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네 년도 죽을…"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를 스쳐 그림자 하나가 샤넬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파파팍! "으음!" 눈이 부실정도로 환한 검광이 골목 안을 밝혔다. 그러나 그 사이로 미약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샤넬리는 눈 앞에까지 쇄도한 검의 조각들을 멍하니 보며 이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 데 그때, 그림자 하나가 자신 앞을 가로 막아서며 화려한 검광을 뿜어내었다. 하지만 그림자의 빠른 검으로도 수많은 검날을 모두 쳐내지는 못한 듯, 그림자의 왼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괘, 괜찮아?" 샤넬리는 자신 앞을 막은 그림자가 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진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뭉클함이 가슴을 흔들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우, 울지마." 진은 헤르디온의 무구가 방어할 수 없는 왼쪽 팔뚝에 상처를 입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샤넬리가 눈물을 보이자 너무도 당황해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한번 터진 눈물은 강둑에 난 작은 구멍이 넓어지듯 더 많은 눈물을 부를 뿐, 쉽사리 멈출 것 같지 않았다. "하아,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리는 샤넬리를 보고, 진은 그저 그녀의 등을 다독일 뿐이다. 그 모습을 스캐더는 똥씹은 표정으로 바라보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선지 이내 의식을 잃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4 회] 110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3. 에리필은 아이들끼리 밖에 내보낸 게 끝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얼마 있지 않아, 에리필은 진과 샤넬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진의 왼쪽 팔이 붉은 천으로 감싸여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 천이 본래 붉은 색이 아니라면. "진아!" 에리필은 진의 이름을 부르며, 황급히 다가가 진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도 진의 상처는 피부가 약간 베였을 뿐, 다른 곳은 별 이상이 없었다. 에리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자신을 자책했다. '과거에 회한에 얽매여, 눈앞의 현실을 무시하다니. 나는 과연 사부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이렇게 자책하며 에리필의 안색이 변하자, 진은 팔을 보이며 쾌활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부님 이깟 상처 헌터 아저씨하고 비무할 때 생긴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런 상처야 사부님의 특제 약을 바르기만 하면 바로 나을 거에요." 진의 쾌활한 음성에 에리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 많이 컸구나!' 에리필은 장성한 아들을 보듯 흐뭇한 표정으로 진을 보다가 그의 옆에 있는 샤넬리의 눈이 부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을 대충이나마 짐작했던 것이다. '허허, 키만 큰 줄 알았더니, 이제 남자가 다 되었군.' 에리필은 진과 샤넬리를 번갈아 바라보다 여관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관까지 가는 길에는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그 많은 인파 사이로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노인이 에리필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저, 저기 에리필 도련님 아니십니까?" "응?" 에리필은 친숙한 음성이 귓전을 울리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물기로 축축이 젖어있는 친근한 노안(老眼)을. "프, 프레디드!" "오, 정말 에리필 도련님이 맞군요. 신이시여!" 프레디드의 노안(老眼)에서 두 줄기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리필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며칠간 이런 원하지 않는 상황이 일어날까 몹시 조바심을 냈었다. 그래서 마더리스 시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걱정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 자신의 기억속에서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던 이들과의 만남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에리필은 그의 노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가문을 버렸다. 그런 그를 보고 노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진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치기어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굳은 표정을 한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에리필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한동안 궁금증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프레디드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에리필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에리필에게 어떠한 고문보다도 더한 심적 부담을 주었다. 그것을 느꼈음인가? 프레디드는 그 옛날 어린 에리필에게 그랬던 그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다. "도련님은 여전히 데헤미그 가문의 장손이십니다." 진은 그의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랬다. 이제껏 에리필의 성이 팔로이라고 알고 있었던 진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노인이 데헤미그 가문의 장손이라니. 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에리필은 진의 혼란스런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었기에 무심히 넘겼다. 그리고 그는 프레디드를 바라보며 극도로 절제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데헤미그라는 성을 쓰고 있지 않네. 팔로이 에리필, 이것이 내 이름이야." 에리필은 쥐어 짜내듯이 말을 뱉으며, 홱 하고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등을 향해 프레디드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아뇨. 도련님은 여전히 데헤미그 가문의 장손이십니다." 프레디드는 목례를 하며 또 한번 말했다. "다시 뵙겠습니다. 데헤미그 에리필 도련님." 진은 에리필과 프레디드를 번갈아 바라보다, 그의 사부를 쫓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샤넬리가 뒤따랐고. 멀어져가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프레디드는 그의 뒤에 서있는 거한에게 엄중한 명령을 내렸다. "도련님이 거처하시는 곳을 알아내게." "알겠습니다." 거한은 프레디드의 명을 받고 에리필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레디드 역시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걸어갔다. 똑똑! 갈색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러나 누군지 짐작하기에 에리필은 섣불리 문을 열 수 없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끈질긴 사람인 듯 했다. 그리고 그는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듯, 문을 두드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채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간의 적막이 무생물인 문을 사이에 두고 두 공간을 지배했다. 똑… 끼익! 인내심이 강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었는지 문을 막 열려는 순간, 갈색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은 처음 보는 사람임이 분명한데도 매우 낯익은 얼굴에 의아해하다, 에리필과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형님!" 웨이브진 갈색 머리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인은 에리필과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에리필의 시선은 복잡 미묘했는데, 그것은 현재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디오리스!" 에리필은 한참을 뜸들인 끝에 동생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에리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디오리스는 한걸음에 달려가 침상에 앉아 있는 에리필을 와락 끌어안았다. 에리필은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반갑기는 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난 죄책감에 마음이 몹시 착잡했다. 그러나 동생의 따스한 체온이 전달되자, 응어리지고 맺혀 있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에리필의 체한 듯 답답한 마음이 한 번 풀어지기 시작하자, 그것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빈 마음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뭔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안락과 평온함이란 감정이었다. 그는 이 감정을 어딘가에서 느낀 듯 했다. 그렇다. 진의 집에 갔을 때 그가 부러워했던 감정이 지금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더욱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문가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프레디드의 눈가에 물기가 또 다시 맺혔다. 진도 이렇게 뜨거운 감정을 드러내는 에리필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진은 원래부터 있어야 할 자리에 조각이 제대로 세워졌다고 생각했다. 에리필의 눈가에도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디오리스의 눈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된지 오래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20여년 만의 해후를 감격스럽게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리필은 눈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훔친후, 동생을 밀어내며 물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가문을 버리게 만든 아버지는 이미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기에 에리필은 어머니에 대해 물었다. 디오리스도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어머니야 여전히 정정하시죠." "그렇겠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 그래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자식은 어떻게 되지?" "하하, 아들, 딸 이렇게 하나씩 두었습니다." 디오리스는 자식 이야기가 나오자 언제 울었느냐는 듯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입이 벌어지는 것은 어느 부모가 틀리겠는냐 마는. 아무튼 에리필은 그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누굴 탓하겠는가.' "귀엽겠구먼. 아들, 딸이라 나이는 어떻게 되지?" "올해로 큰 딸이 16살이 되고, 아들 녀석은 14살이 됩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이제 제법 컸다고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말은 비록 그렇게 했지만, 그 말속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 묻어 있었다. 에리필은 디오리스의 말을 묵묵히 듣다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럼 리스리아 양이 내 제수씨가 되는 건가? 네가 그렇게 죽어라 쫓아다녔던 그 레이디 말이야." 디오리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만 본다면 영락없는 진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처럼 귀엽지 않았다. 어렸을 때야 모르겠지만 현재의 그는 데헤미그 가문을 이끄는 근엄한 가주였던 것이다. 디오리스는 잠시 헛기침을 토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듣기론 형님은 이그젝터를 그만두시고 호송자(escorter)일를 하시고 있다던데……." 비록 근 이십 여 년 동안을 떨어져 살았지만, 동생은 그의 소식을 듣고 있었나 보다. 하기야 에리필 역시 가문에서 나왔다지만 가문의 소식을 듣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됐지. 그리고 호송자(escorter)도 제법 해 볼만 해. 지금도 사실 누구를 호송하고 있는 중이야." "그래요? 그랬었군요." 디오리스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왜 호송자(escorter)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에리필의 성격상 말하기 싫으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에리필은 이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자,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을 멀뚱히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진을 볼 수 있었다. "하하, 내 정신 좀 보게. 자, 소개하지. 내 제자인 진이라 해." 에리필은 진을 한손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디오리스도 그제야 다크 블루빛 머리칼의 잘생긴 소년을 볼 수 있었다. 그도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진은 에리필의 소개에 허리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슈레이 진이라고 합니다." "형님의 제자라고? 하하, 반갑네. 나는 데헤미그 디오리스라고 하네." 디오리스는 진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런 그가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물었다. "그런데 진은 몇 살이죠?" "그건 왜?" "제 자식들과 비슷한 또래 같아서요. 나중에 좋은 친구로 지내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진의 나이는 올해로 16살이네." "하하, 잘됐네요. 제 자식들과 나이도 비슷하고." 디오리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다,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문뜩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이미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하얗게 탈색되었다. "혀, 형님. 근데 지금 서둘러 집으로 가야될 거 같습니다." "왜 그러는데?" 에리필은 의아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나 조금 뒤, 그 역시 허둥지둥 서두르게 된다. "어머니께서도 형님이 오신걸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고요. 그러 니…" "헛! 뭐해? 빨리 가지 않고…" 에리필은 진에게 샤넬리를 데리고 나오라며 말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진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샤넬리를 데리고 대기 하고 있는 마차에 올라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5 회] [공지]궁극의 마스터!!! 안녕하세요. 궁극의 마스터를 쓰는 황보세준입니다. 이번 공지는 그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 하려고요. 우선 얼마전부터 삼룡넷에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말했던 것처럼 컴퓨터가 고장나서 저장했던 파일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복구했지요. 현재 제가 인터넷에다 글을 올리는 방법은 전산실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전산실은 오후 8시에 끝이 나지요. 그렇다 보니, 대개 8시 이후에는 잘 올라가지 않습니다. 혹시나 과방에 가서 올릴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죠. 그리고 토, 일은 확실히 글을 올리기 힘듭니다. 전산실이 문을 닫거든요. 그래서 토, 일을 기다리시는 분들, 어쩌다 피시방가서 올릴 수도 있지만, 피시방이 먼 관계로 힘들죠. 마지막으로 기말고사 시즌입니다. 흑흑흑... 여러분 과제의 압박과 리포트, 시험의 압박에서 승리하시길...그럼 후속타로 111화 올립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6 회] 111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4. 데헤미그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마차는 많은 인파 속에서도 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것은 이 마차가 마더리스 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존경해마지 않는 가문의 마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데헤미그 가문의 마차가 지나칠 때면 옆으로 비켜서 탁 트인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을 본 진은 놀랍고도 신기해했다. 이 혼잡한 대로에서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줄이야. 그것도 자신이 타고 있는 마차가 말이다. 그렇게 마차는 진의 놀람을 뒤로 한 채, 주인들의 현재의 심경을 대변하는듯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던 마차는 거대한 저택 앞에 다다라서야 그 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끼익!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철문이 열렸다. 이미 기별을 넣었는지,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고, 마차는 맹렬한 기세로 또 다시 달렸다. 그렇게 그들이 1 수키르(킬로미터)나 되는 정원을 나는 듯이 달려 고풍스런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순간 디오리스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어었다. 이것을 목격한 진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500년이란 세월을 내려오면서 온갖 풍상을 인고하며 꿋꿋이 버틴 그 건물은 고풍스러운 멋으로 한껏 휘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고택(古宅)앞에,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강맹한 위엄을 뽐내는 노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헉, 어머니!" 밖에서는 존경받는 데헤미그 가의 주인도 어머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일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풍당당한 에리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어머니." 에리필은 머뭇거리며 제시네이를 불렀다. 진은 좀전에 본 감동적인 장면이 또 한번 재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데헤미그 가로 오면서 정신을 차린 샤넬리 역시 진과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왜 디오리스와 에리필이 왜? 얼어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오판을 내리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다. 백발을 날리며 다가온 그녀가 돌연 손을 뻗었고, 둔탁한 음이 터졌다. 퍽! "크윽!" 에리필은 여전히 엄청난 충격이라 생각하며, 신음을 터트리는 것과 동시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 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기지 않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평범하지 않은 사고의 소유자인 샤넬리 역시 크게 놀란 듯 했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사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한 대 맞은 에리필도 동의하는 바였다. 퍽퍽퍽퍽퍽퍽퍽! 제시네이는 웅크리고 있는 에리필에게 사정없이 주먹과 발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구타로 이어졌다. 잠시 후, 에리필이 휘청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의 구타는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은 옆에서 굳어있는 디오리스에게로 고정되었다. "저, 저요?" 제시네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디오리스는 최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한 번만 봐 주세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퍽! 언제 나타났는지 제시네이는 아들의 복부를 강하게 한 대 쳐올렸다. 그리고 쓰러지는 디오리스. 제시네이는 쓰러지는 디오리스를 보며 한 마디 했다. "내가 그딴 역겨운 표정 짓지 말라고 누누이 일렀건만. 쯧쯧쯧.. 가문의 문주이자, 중년에 이른 지금에도 그런 표정으로 동정심을 유발하려 하다니. 우리 가문의 앞날이 몹시 걱정스럽군" 제시네이는 혀를 차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얼어붙은 공기를 조금씩 뜯어내며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프레디드는 쓰러진 디오리스를 어깨에 걸친 뒤, 사람들을 안으로 인도했다. 일행의 제일 뒤에서 걷고 있던 진이 샤넬리에게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걱정된다." "뭐가?" 샤넬리는 마음속의 혼란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는지 맑게 빛나는 눈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은 그녀의 매혹적인 눈에 이제 많이 적응되었기에 무리없이 그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네가 저분처럼 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단 말이야." 맑게 빛나고 있던 그녀의 눈빛이 분노로 불을 뿜었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을 붉히는 샤넬리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진은 갸웃거렸다. 저택 안으로 들어온 진은 총관 프레디드의 소개로 세 사람과 인사할 수 있었다. "이 분이 디오리스님의 부인이신 데헤미그 부인이십니다." "호호,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의 음성은 중년의 나이답지 않게 맑고 고왔다. 물론 그녀의 외모 역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어 보였으며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올슈레이 진이라고 합니다."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라고 해요." "프치아이오? 설마…" "아마 짐작하시는 바가 맞을 거예요." 샤넬리는 다시 그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 하나, 행동 하나에도 품위와 기품이 묻어나 있어 누가 보더라도 고귀한 황실의 일원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진은 그녀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평소의 왈가닥인 모습이 더 좋았다. 순간 진은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자 고개를 흔들었다. '진아, 너 정말 미쳤구나!' 진이 망령된 생각이라며 자신을 나무라고 있을 때, 리스리아가 감탄을 터트리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했다. "데헤미그 리스리아가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 양을 만나 뵙게 되어 무한의 영광입니다." "비뉴이그 프레디드가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 양을 만나 뵙게 되어 무한의 영광입니다." 두 사람은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뒤이어 그의 아들, 딸도 고개를 숙이며 같은 인사를 했다. 샤넬리야 이런 인사에 익숙했지만, 진은 그녀가 이 정도의 인사를 받을 정도의 신분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었다. "자꾸 그러시면 제가 여기 있기 불편해져요. 저를 편하게 대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샤넬리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모습도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는다면 그리 나쁘진 않겠군. 허억, 이런 망할. 내가 왜 이러지?' 진은 자신의 가슴에 안겨 울고 있는 샤넬리를 본 뒤부터 그의 마음속에 있던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오기라 할지라도. 샤넬리의 거듭되는 요청에 그들은 결국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의 언사에는 조심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상대는 뭐라고 해도 황족이기 때문이다. 프레디드는 샤넬리에게 목례를 한 후, 디오리스의 아들, 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데헤미그 카렌 도련님은 디오리스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리고 데헤미그 모나코 아가씨는 디 오리스님의 따님이십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샤넬리는 웃으며 인사했고, 그들은 조금은 경직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거실에서 한 차례 수인사가 오고갈 때, 저택 2층의 한 방에서는 에리필과 디오리스가 제시네이 앞에서 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7 회] 112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5. 화려함보다는 정갈한 멋과 고풍스런 멋이 두드러지는 방에는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제시네이는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자신의 앞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두 아들을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한 번 닫힌 입술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에리필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전에 했던 행동을 똑같이 답습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가 속으로 아무리 후회와 불평을 늘어놓아도 제시네이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이 답답했는지 디오리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어머니 오랜 만에 형님이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만 화를 푸시죠." "입을 한 번만 더 놀리면 창고에 가둬버리겠다." "히익!" 제시네이는 등받이 의자에 기대서 툭 내뱉듯 말했지만, 디오리스는 그녀가 한 번 한다면 하는 사람인 줄 알기에 기겁하며 입을 닫았다. 그렇게 또 다시 무거운 적막의 시간이 고풍스런 방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제시네이는 2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길 었다. 그리고 그 긴긴 시간 동안 자식이란 놈은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에리필의 소식이라는 것도 다 디오리스가 가져온 소식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에리필이 매우 괘심했다. 그녀가 앉고 있는 등받이 의자가 가늘게 떨렸다. 순간 온 방안이 그녀의 떨림에 공명하듯 흔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도 잠시, 그녀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음성으로 물 었다. "그래, 어디 불효막심한 자식 놈의 이야기나 한 번 들어보자." "……." 그러나 에리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의 머리는 이미 하얗게 비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심경을 이해했는지 제시네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기야 집 나간 자식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화만 날 테지. 그래 하나만 묻자.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삶을 후회하지 않느냐?" 에리필은 그녀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삶이 매우 성공적인 삶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실패한 인생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겐 진이라는 또 다른 생명이 있었다. 에리필은 진을 떠올리자 복잡하게 어지럽혀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자신 있게 말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 너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는 그 순간까지도 내내 후회를 하셨는데…" 제시네이의 음성이 왠지 힘없고, 늙은 노파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에리필은 제시네이의 서글픈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는 언제나 위풍당당했고, 강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역시 고집쟁이지만, 자신이 한 일에는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내 후회를 하셨다니. 에리필은 심장이 도려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는 울부짖고 싶었다. '이건 정말 아니야.'라고 말이다. 제시네이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에리필을 보며 회상하듯 말했다. "여기였지. 네가 마지막으로 너희 아버지와 싸우고 집 밖으로 나간 것이. 우리는 길어야 1, 2년 안에 돌아올 줄 알았다. 네가 아무리 아버지의 고집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말이지. 그런데 그 시간이 20년이나 걸릴 줄이야. 하늘에 있는 너희 아버지도 이건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제시네이는 아련한 시선을 20여 년 전의 과거로 돌리고 있었다. 멍하게 서 있던 에리필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20여 년 전에도 이방은 고풍스러웠고, 이 방의 주인의 성격을 닮아선지 어딘가 꽉 막혀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에리필은 그러한 답답함에 짜증이 치미는지 가슴을 치며 말했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에리필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막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래서 그의 음성은 격했고, 반항 끼가 짙었다. "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에요. 이그젝터에 들어간다는 건 가문으로서도 명예로운 일이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왜 반대하시기만 하고……." "너는 우리 가문을 이끌 장손이다. 그런 네가 이그젝터라고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을 나는 허락할 수 없다." 아버지는 완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이 더욱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에리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건장한 그의 몸은 격한 감정 때문에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 그는 쥐어짜듯이 뒤틀린 음성을 토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입니다. 아버지가 그걸 아십니까?" "그딴 건 모른다. 알 필요도 없지. 단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네가 가문을 잘 이끄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보람으로 삼으면 돼." 에리필은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보람된 일이란 말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 는 일이다. 에리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아버지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그의 언사는 더욱 거칠어졌고, 그의 행동 또한 상당히 격해졌다. 에리필은 아버지 앞에 놓여 있는 탁상을 탕 치며 대들 듯이 말했다. "아버지의 삶이 아니라 제 삶이라 이겁니다. 저는 그딴 곳에서 보람을 얻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에리필은 두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짝! 아버지는 괘심한 아들의 행동에 분을 이기지 못해 뺨을 때렸다. 에리필은 얼얼한 뺨의 통증보다도 아버지가 자신을 때렸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그의 얼굴에 너무도 뚜렷이 드러나 아버지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자식을 때린 손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리필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리고 그는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는데, 그의 눈은 더없이 싸늘해져 있어 도저히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눈빛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 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리필은 인사를 하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그러나 슬픈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었다. 가슴 아픈 과거의 기억을 헤매고 있는 에리필을 향해 제시네이의 음성이 울렸다. "그 당시 뺨을 맞고 나간 네가 돌아오지 않자. 너희 아버지는 자신의 오른손을 저주했단다. 내가 왜 그랬느냐고 절규까지 했었지." 에리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절규를 터트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것은 상당히 괴로운 경험이었다. 굳이 그리지 않아도 되는데 그도 모르게 머릿속에 그려낸 모습은 도려낸 심장위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극도의 고통을 주어 에리필은 그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에리필의 입술이 터지며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의 피눈물이며, 그 의 아버지가 흘렸을 눈물이리라. 그렇게 에리필은 고통스러워했다. 제시네이는 마치 에리필이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 듯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 아버지는 평생을 데헤미그 가문을 위해서 산 사람이다. 그렇기에 너도 가문을 위해 살았으면 했던 거다. 너는 누가 뭐라 해도 데헤미그 가문의 장손이니깐. 그렇지만 너는 내 피를 물려받아선지 밖으로 나가길 좋아하고, 의협심이 강했어. 결국 단순한 성격차이일 뿐이었지. 너희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조금만 양보했더라면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만요. 그만하세요!" 에리필은 괴로운지 귀를 틀어막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눈물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목 메인 음성으로 말했다. "도대체 이런 말을 저에게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잖아요. 그럼 그걸로 된거잖……." 짝! 에리필이 거의 반 미친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제시네이가 예전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그녀는 차분한 음성으로 에리필에게 말했다. "또 뛰쳐나갈 거니?" "……." 에리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이 집을 뛰쳐나가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하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다시 자책과 후회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에리필을 보던 제시네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라. 보여줄 것이 있으니." "어머니… 설마 그것을 보여주시려는…" 디오리스는 깜짝 놀라며 만류하려 했지만 그녀의 눈빛이 워낙에 매서워 말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었다. 에리필은 뭐에 홀린 듯이 그녀 뒤를 따랐다. 그리고 디오리스 역시 그들을 뒤따랐다. 걱정으로 가득 찬 표정을 하고서. 제시네이는 1 층으로 내려와 후문으로 향했다. 그들이 내려오자, 숨 막히는 공기가 실내를 지배했고, 밑에서 이야기꽃을 한창 피우고 있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제시네이는 후문 뒤에 세워진 볼록한 봉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너희 아버지 무덤이다." 에리필은 복잡한 시선으로 그것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러다 그는 무덤이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 저기…" "그래, 저건 완벽한 무덤이 아니지. 너희 아버지가 저 안에 안치되지 않았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렇담 아버지는 어디 계시는데요." 에리필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의 답은 어딘가를 들렸다가 온 디오리스가 가르쳐주었다. "받으십시오." "이게 뭐냐?" "아버지 유골입니다." 에리필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의 놀람은 조금 뒤, 뜨거운 격정으로 바뀌어버린다. "너희 아버지 유언이다. 나의 유골을 재로 만들어 두었다가 나중에 에리필이 오면 무덤 안에 안치시켜주었으면 한다." 제시네이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는 아들을 기다리며 십 몇 년간을 무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리필은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 그가 추궁하듯 거칠게 말했다. "그런 유언이 있었다면 저를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도 그래.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불렀어야지. 아버지의 유골이 십 몇 년 동안 무덤에도 못 들어가고…크윽!" 기어코 에리필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아버지라는 사람은 죽고 나서도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후회와 자책이라는 짐을 씌워야 마음이 풀린단 말인가. "그것도 아버지의 유언이십니다. 자신 때문에 굳이 부를 필요 없다고. 나중에 스스로 찾아오면 그때 알려주라고 하셨습…흑흑." 디오리스도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에리필은 동생이 들고 있는 아버지의 유골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피눈물이 고여 있는 듯한 눈으로 손에 들려 있는 유골을 그리워하는 님을 보듯 바라보았다. 에리필의 눈은 아버지의 유골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가 다쳤을 때는 함께 슬퍼하고 걱정해주던 아버지. 자신이 술법을 익히게 되었을 때, 함께 기뻐해주던 아버지. 검을 가르쳐주는 사부이자 친구인 아버지. 고집쟁이지만 언제나 당당했고 후회를 모르는 아버지…. 그리고 그가 떠나고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워했을 아버지……. 아버지의 고통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하리라. 에리필의 눈에서도 결국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 때문에 급속도로 약해진 아버지를 생각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목을 메여오게 했다. "흑흑흑…. 아버지… 아버지……." 결국 에리필은 아버지의 유골을 끌어안고 바닥에 주저앉으며 대성통곡했다. "으아아아아…….아버지!" 하늘도 그의 심정을 아는지 맑던 날씨도 차츰 시커먼 구름들에 밀려났다. ==================================================================================== 글을 쓰면서 왠지 기분이 다운되더군요, 눈시울도 붉어지고요. 글구 오늘은 매우 글이 기네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8 회] 113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6. 쏴아아아! 세찬 바람과 소나기는 다행히도 에리필이 아버지의 유골을 안치시킨 후에야 내렸다. 하늘도 에리필의 마음을 아는지 같이 슬퍼해주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아무리 그를 위로해 주려해도 에리필은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예전에 자기가 쓰던 방에 들어가 두문불출 했었다. 진은 2층을 잠시 쳐다보다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후우, 사부님께서 빨리 힘을 내셔야 할 텐데." "그래, 그래야지 하루라도 빨리 검은 삼각지대로 갈 수 있잖아." "너 정말? 하아, 말을 말자. 너랑 말해봐야 나만 피곤해질 뿐이야." 진은 뭐라 말하려다 손을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샤넬리는 혼란스럽게 했던 그것을 어느 정도 수긍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진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이 너무도 시시해 다른 상대를 찾아 자리를 옮 겼다. 진은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는 옆에서 덩달아 한숨을 쉬는 사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샤넬리인 줄 알고 무시하려 했지만, 그녀의 사전에 한숨이라는 단어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진의 고개는 자동적으로 옆을 향했다. "어라 모나코네. 한숨은 왜 셔?" "그냥." 진은 같은 연배의 모나코를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모나코는 리스리아를 많이 닮아서인지 전형적인 미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데헤미그 가문 사람답게 갈색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대개 남자들은 금발의 머리칼을 미녀의 필수요소처럼 말하지만, 모나코의 갈색 머리칼은 은은한 윤기를 뿌리고 있어 그녀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샤넬리와 비교하자면 좀 떨어지는 외모라 할 수 있었지만, 데헤미그 모나코하면 이곳 마더리스 시에서는 알아주는 미녀였다. 진은 모나코가 우울해하자 그 연유가 궁금해 물었다. "그냥이 아닌데 뭐. 한숨은 너 같은 미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후후, 진은 농담도 잘 한다니까." 모나코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진의 가슴을 살짝 치며 말했다. '하하, 센티오카 시에서 본 그 사람을 좀 따라해 본 건데. 근데 이러니까 이거 은근히 여자들이 좋아하네. 좋았어. 이거 종종 써먹어야겠어.' 진은 아리온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농담이 아냐. 하여튼 무슨 고민 있어?" 진이 집요하게 파고들자 모나코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는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고민은 아니고. 아버지 문제 때문이야. 아버지는 할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방에 들어가셔서 막 우시거든. 그럴 때마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서 한숨을 쉰 거야." "그렇구나. 나도 사부님께서 방에 들어가셔서 나오지 않으니, 절로 한숨이 나오는데…" 진은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했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인 두 사람은 그 후로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에 빠져있던 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사부님은 어렸을 때, 어떤 분이셨어?" "큰아버지?" "응." 모나코는 진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곧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재빨리 많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큰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영리하신 분이라고 들었어. 그래서 우리 가문을 이끌 천재가 탄생했다고 말들이 많았었데. 그리고 고집도 세서, 한 번 한다고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라도 해냈다고 해. 예전에 자기보다 세 살이나 많은 사람한테 맞은 후에 스스로 복수하겠다고 맹세한 후, 정확히 37일 만에 그 사내를 흠씬 패주었다고 들었어." "헤에, 진짜? 지금 모습만 본다면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 "그렇지.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신 건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쫓아다닐 때, 아버지의 작전 참모관이 바로 큰아버지였다는 거야. 그리고 말도 못할 정도로 악동이라고 들었어. 아, 맞다. 그리 고 큰아버지의 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다고 들었어."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사부님도 예전에는 나와 같은 악동이었다니, 이거 놀라운데?" 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연신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가 물이 오를 대로 잔뜩 오르자, 괜스레 기분이 상한 샤넬리가 마치 건달들이나 뱉어내는 말투를 사용하며 다가왔다. "이야, 보기 좋은데?" "호호호, 샤넬리 양은 참 재밌는 분이시네요." "내게 존칭 붙이지 말라니까." 샤넬리는 투덜대면서도 모나코 옆에 앉았다. 그러나 모나코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안돼요. 이것도 최대한 노력한 거라고요. 어떻게 황실의 일원에게 말을 놓을 수가 있겠어요." "아, 알았어. 근데 진 이 녀석은 말을 놓는 것도 모자라, 나에게 시비를 걸거든. 그래도 나는 마음이 넓어서 다 용서해주잖아. 그러니 너도 좀 더 노력해봐." 샤넬리의 말에 진이 픽하며 웃었다. 그러나 모나코는 웃지 않고, 진을 나무랐다. 그 모습이 너무도 진지했기에 진은 웃지 못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모나코의 설교가 30분 정 도 이어지자, 샤넬리는 좀이 쑤시고, 귀가 간지러웠다. 이어 모나코의 말을 절묘하게 가로채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호호, 괜찮아." "예, 샤넬리 양." 샤넬리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모나코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모나코만은 쉽게 대할 수 없음에 그녀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 졌다. 그러다 그녀는 모나코의 너무도 순수한 눈을 보게 되었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도 순수해서, 함부로 대하면 그것이 망가질 것만 같은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야.' 샤네리는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그럴 듯하자,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이다 은근슬쩍 자리를 이동하는 카렌을 보았다. "녀석, 어딜 빠져나가려고." 샤넬리는 카렌의 팔을 잡으며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히잉, 싫어. 나 진 형에게 갈 거야." "어쭈, 너 이렇게 아름다운 누나보다 저 못생긴 진 녀석이 좋단 말이야?" "응." 샤넬리는 갈색 머리칼의 귀여운 카렌을 끌어당기며 협박하듯 말했지만, 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에 샤넬리는 허무하기도 하고 황당해 그만 그의 손을 놓고 말았다. "형!" "어, 그래." 자신보다 두 살밖에 적지 않은데도 카렌은 매우 어려 보였다. 일단 키 차이만 자그마치 25 키르 (센티미터)나 나니 그런 느낌은 더했다. 진은 티 한점 없는 하얀 얼굴에 갈색의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귀여운 카렌을 안아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그는 샤넬리를 향해 승리의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녀는 주먹을 들어올리며 일부러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런 장난기 섞인 협박에 위협을 느낄 진이 아니었다. 카렌은 진과 샤넬리를 갈색 눈으로 왔다갔다 바라보다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진 형과 샤넬리 누나는 사이가 무척 좋은가봐?" "뭐라고?" "무, 무슨 그런 말을." 두 사람은 카렌의 기습적인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잠시간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녀석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들이 흥분해 외쳤건만 의외로 카렌의 반응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뭘 그리 흥분하고 그래. 아니면 말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아, 그래." "흥분 안했어." 진과 샤넬리는 괜한 일에 열을 올렸다고 생각했는지 무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카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그런 카렌을 모나코가 지그시 째려보고 있었다. "카렌, 우리 집에 온 손님을 놀려서는 안돼." 모나코는 차분하나 엄중한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그제야 진과 샤넬리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카렌에게 달려들었다. 진은 달려들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볼 살을 주욱 당기면 되었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어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샤넬리 역시 달려와 카렌의 이곳저곳을 꼬집기 시작했 다. "아아악, 잘못했어. 형, 누나 잘못했어. 으아악!" 카렌의 구슬픈 비명이 데헤미그 저택의 1층에서 한동안 울려 퍼졌음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19 회] 114화. 흉터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7. 불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 안을 착 가라앉은 독특한 음색의 호흡이 방안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한 사람만이 방 안에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데, 호흡이 고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스르르! 그가 얼굴을 돌리며 침대보와 얼굴이 마찰하여 일어난 소리는 적막과 같은 방 안에서 유일하게 나는 소리였다. 그는 몸을 뒤척여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많은 눈물을 흘려선지 약간 부어있었고, 아직도 옅은 물기가 남아있었다. "후우…" 그의 가슴이 한 번 부풀어 올랐다가 한숨이라는 이름의 답답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는 아련한 시선을 들어 자기만의 사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제 와서 용서를 빌어봤자 늦었겠지만 잘못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닌데… 하지만 하나만 알아주십시오. 저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말이 맞겠죠. 이제 더 이상 울지 않겠습니다. 간혹,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슬프겠지만, 참아내겠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저는 데헤미그 가문의 장손이니까요.' 에리필은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엄하지만 언제나 웃고 계셨다. '그래, 아버지는 나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을 주려고 노력하셨어.' 에리필은 기억 속 아버지의 웃음에서 그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에리필의 입가에도 기억 속 아버지의 웃음과 비슷한 미소가 걸렸다. 에리필은 자리를 털고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그의 갈색 머리칼을 들었다 놓았다. 그리고 서늘한 밤바람이 그의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20여 년 동안 내가 마셨던 공기다. 시원하다. 그리고 평온하다.' 그의 마음에 세워져 있던 벽은 사라졌다. 그리고 흉터 위를 새 살이 덮었다.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는 흉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돌아왔다, 나의 고향에!' 평온해진 마음에다 중얼거린 그는 영원한 고향이자 안식처인 집에 돌아왔는 것을 실감했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밤을 보낸 에리필은 20년이란 시간을 격하고, 20년 전과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태양은 고고히 하늘에 떠 있었다. 밝고도 활기찬 태양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를 부어 주 고 있었고, 에리필 역시 그의 기운을 받았다. "하아, 태양이 이렇게 따사로운 것이었던가?" 에리필은 정원을 거닐며 내려쬐는 태양빛을 받아 들였다. 예전에 아버지와 같이 매일 한 바퀴씩 정원을 돌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는 뭐가 그리도 좋았던지 언제나 웃고 있었던 거 같았다. 물론 현재의 자신도 언제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것은 잃어버린 미소를 찾기 위한 인위적인 행동일 뿐이며, 어쩌면 샤넬리에게 말했던 가면을 자신이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었다. 바람이 불어온다. 예전의 그 바람이다. 태양이 내려쬔다. 예전의 그 태양이다. 정원 길을 걷는다. 예전의 그 길이다. 에리필은 잃어버렸던 웃음을 하나씩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정원을 다 돈 뒤, 문을 열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이에요." 에리필은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디오리스는 그의 미소를 보고 순간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의 음성은 잘게 떨렸다. "형!" "왜 그러냐?" 에리필은 그가 갑자기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디오리스는 고개를 저을 뿐. "싱거운 녀석 같으니라고." 에리필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를 스쳐 2 층으로 올라갔다. 진도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껏 지은 미소도 충분히 매력적이었건만 들어오면서 그가 지은 미소는 황홀할 정도였다. 그것은 샤넬리나 거실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했다. 디오리스는 2층으로 올라가는 그의 형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형이 돌아왔어." "무슨 소리예요. 아주버니는 어제 돌아오셨잖아요." 리스리아가 이상한 소리 다 한다며 면박을 줬지만, 디오리스는 그녀의 말을 귀 밖으로 흘려버리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형이 돌아왔어……." 에리필은 그의 집에서 삼일을 더 있었다. 계획보다 며칠이나 늦어졌건만, 샤넬리는 의외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즐겁고 보람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라는 마물은 그들을 또 다시 세상으로 내몰았다. "어머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라. 대신 일 끝내고 다시 들려야 된다. 마지막으로 너희 아버지한테 인사나 드리고 가거라." "알겠습니다." 에리필은 그녀 말대로 저택 후미에 있는 그의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시는 무덤 앞에 섰다. "아버지 또 다시 집을 나서야 될 거 같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곧 돌아올 테니까. 아셨죠? 저번처럼 몇 십 년을 밖에서 보내진 않을게요. 약속해요." 에리필은 마치 눈앞에 아버지가 서 있기라도 하듯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묵념를 끝으로 무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에리필이 몇 걸음 걷다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음성이 뒤에 있는 무덤 안에서 편히 쉬고 있을 아버지에게로 전해졌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하기야 지금은 여기 계시지만 제가 여행을 떠나면 아버지는 하늘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계실 테니 헤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에리필은 다시 저택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그의 가족들과 프레디드 그리고 가문의 식속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정말 가보겠습니다." "그래, 대신 이걸 가져가려무나." 제시네이는 하나의 검을 그에게 건넸다. 에리필은 그녀가 주는 검을 멍청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깜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어떻게 이것을 제가?" 그가 사양하자 그녀 옆에 있던 디오리스가 나섰다. "아냐. 이건 형 꺼야. 데헤미그 가문을 상징하는 데헤미그 블레이드는 형을 위해 준비된 검이야." "하지만 이건 현 가주인 네가 가져야 하는…" 에리필이 극구 사양했지만 디오리스와 제시네이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에리필은 조심스런 동작으로 그것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시네이는 에리필이 오른쪽 허리에 검을 차는 것을 보고 호통을 내질렀다. "이 검은 장식용이 아니다. 이 검은 우리 데헤미그 가문의 자랑스런 투검이다. 싸우기 위한 검. 그런데 너는 그런 검을 기껏 전시물로 만들 생각이냐!" 그녀의 말에 에리필은 결국 검을 풀어 왼쪽 허리에 찰 수밖에 없었다. 제시네이는 에리필이 완전히 검을 찬 뒤에야 안색을 풀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작별의 인사를 했다. "잘 가라. 그리고 진이라고 했던가?" "예. 말씀하세요." "그래, 부족한 내 아들이지만 잘 보살펴 주었으면 하네." 그녀는 진을 그의 제자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동료로 보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진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네이는 진의 옆에 서 있는 샤넬리에게도 인사했다. "샤넬리 양.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서 대접이 소홀했던 거 용서해주길 바래요. 그리고 남은 여행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제시네이는 예전의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여인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비슷한 기질을 가진 샤넬리 역시 그녀에게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데헤미그 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훌륭한 여행을 해 나갈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호호호, 오죽하겠어요. 그럼 나중에 샤넬리 양의 모험담을 기대하지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어린 미소를 보냈다. 일행은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특히 카렌이 진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떼를 써서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대로 기분 좋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여관에 매워두었던 말은 이미 저택으로 옮겨진지 오래였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말위에 올라 탄 채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데헤미그 가문의 철문을 뒤로하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모나코는 멀어지는 일행 중 진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딸의 심경을 눈치 챈 리스리아가 그녀를 안으며 격려의 말을 던졌다. "그는 여기 다시 올 거야." 리스리아의 말에 모나코의 고개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듯이 힘차게 끄덕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0 회] 115화. 검은 삼각지대 1. 제국의 수도 가에아는 풍요롭고, 화려한 도시다. 그래서 가에아의 중심부에 세워진 건물들은 황궁을 위시하여 모두들 어마어마할 정도로 거대했고, 화려의 극치를 달렸다. 그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건물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다섯 개의 성이 마치 황궁 코린토스를 보좌하는 형태로 세워져 있다. 그 다섯 성들은 그 규모나 화려한 면에서도 황궁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들의 권세 또한 황제를 제외하면 무소불위라 할 수 있을 정도니 그들에겐 이 혼탁한 세상이야 말로 낙원이리라. 오행진을 그리듯 황궁 코린토스를 보좌하고 있는 성 중에 하나인 레우카스 성의 주인은 다른 네 성의 주인과는 달리 권력에는 뜻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황족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황족은 권력에 눈이 멀고, 추악한 인간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신분이니까. 레우카스 성은 마치 소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성안에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마치 여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풍경이 성안에서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자유롭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들은 엄연히 황족의 소유 안에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천민과 같이 천대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가에아에서도 어깨를 펴고 돌아다니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제국의 주인과 같은 혈통을 지녔기에.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하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주인이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세상에 나가서 자기 힘으로 살아보고 싶다면 이야기해라. 나는 언제든 너희들을 보내줄 준비가 되어있다.'이니까. 그렇다보니 그들은 얽매임이라는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의적이라는 능동적인 힘을 얻었다. 레우카스 성은 웅장한 성벽 너머에 총 열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 열개는 성의 식솔들과 황족의 친위 부대인 란티스 기사단이 사용하고, 나머지 두 개만이 황족이 거하는 성이었다. 두 개의 건물은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다. 고풍스런 진흙 빛 벽에 넝쿨들이 타고 올라가 건물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원뿔형의 지붕은 마치 날카로운 창을 연상케 했다. 그러한 생각은 이 성의 주인이 황실에서도 가장 강한 무력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단단히 한몫 했을 것이다. 두 개의 건물은 주인의 성향을 따라 초대 제국 시대에 창으로 이름을 떨쳤던 두 기사의 이름을 땄다.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 이오라니였고, 왼편에 있는 건물이 미레이라 불렸다. 문헌에 따르면 이오라니는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미레이는 언제나 전장을 떠돌아다니며 무훈을 세우기 바빴다고 한다. 그래서 이오라니는 그와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미레이에서는 손님을 맞는 응접실이나 제반 업무를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금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은 미레이의 2층에서 한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이를 짐작치 못할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흰색인지 은색인지 구분이 모호한 머리칼이 그랬고, 오랜 연륜과 풍부한 경험이 담겨있는 깊은 눈과 달리 그의 얼굴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탱탱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렌드린탈 공작의 생각은 되도록 빨리 제위 식을 올려야 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 생각은 렌드린탈 공작님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분의 공작님도 같은 생각이라 들었습니다." "흐음…" 데이릭은 그의 말을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형님의 나이도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으니… 무엇보다도 황태자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국의 주인은 엄연히 현 황제폐하의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그 분에게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말할 수 없소." 남자는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히 대답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저희 공작님께서 이런 말씀을 꺼내신 가장 큰 이유가 얼마 전에 황제폐 하께서 공작님에게 제위 식을 준비하라는 언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랬었나? 그렇군." 그제야 데이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위에 관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이야기가 이미 나왔었다면 굳이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 싶은데. 황제폐하의 뜻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저희 공작님은 황실의 일원이신 데이릭 경께서 제위에 관한 일을 맡아주셔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황태자의 숙부 되시는 데이릭 경께서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저희 공작님 밑 다른 세 분 공작님들의 생각이십니다." "허허, 그것 참." 데이릭은 괜한 일에 자신을 끌어들인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런 복잡한 절차가 싫어 권력에서 물러난 인물인데, 도리어 그 일을 맡아 달라니. 언제나 속박되지 않는 자유를 꿈꾸는 데이릭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요구였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황실의 일이기 때문이다. 데이릭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공작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데이릭 경께서 허락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저희 공작님께서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목례를 한 후, 문가로 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다급한 기색을 한 기사가 들어왔다. 기사는 손님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움찔했지만, 그가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데이릭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 말했다. 남자는 그들의 대화에 관심 없는지 소리 없이 문밖으로 나갔다. "뭐라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지금 샤넬리 아가씨가 가려는 곳은 순례자의 걸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검은 삼각 지대라 합니다. 여기 보십시오. 에리필 씨가 보내온 편지입니다." 데이릭은 편지를 뺏듯이 받아 훑어 나갔다. 편지를 다 읽은 그는 탄식을 터트렸다. "역시 그 애가 견습 성직자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어. 후우, 검은 삼각지 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아니, 얼마나 추악한 곳인데!" 데이릭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그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나직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명령했다. "지금 당장 검은 삼각지대로 가 샤넬리를 데려와라. 편지에 의하면 판티오티 시를 경유해서 간다고 했으니 검은 삼각지대의 서쪽 길에서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력을 사용해도 좋으니. 꼭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떠나겠습니다." 기사는 허리를 숙이며 그 자리를 떠났다. 기사가 자리를 떠나는 그 시각, 은발의 남자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1 회] 116화. 검은 삼각지대 2. 진 일행은 판티오티 시에서 과(過)하다 싶을 정도의 많은 물자를 준비했다. 진은 굳이 이렇게 많이 살 필요가 있느냐고 불평했지만, 에리필은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의 불평은 판티오티 시를 떠나고 한달정도 지나자 입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보이는 것이라곤 황량한 벌판과 끝없이 이어지는 길. 간혹 가다 희미하게 보이는 산정도가 전부였다.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진은 판티오티 시를 떠난후, 사람 비슷한 것은 구경도 못했다. 게다가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아이러니 하게도 잘 닦인 길 정도가 다였다. 그렇다고 한 달간의 여정이 답답하거나 무료한 것만은 아니었다. 황량한 벌판을 바라볼 때마다, 진은 자신의 내면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사색적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내면을 바라보다 보니 이제껏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완전히 자기의 것이 아니었음도 알게 되었다. 진의 사고는 인식의 공간에 흩어져 있는 깨달음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조금씩 붙혀나갔다. 그리고 간혹, 스쳐 지나치는 산들이 대자연이 주는 포근한 기운을 호흡하여,푸르고 푸른 녹빛을 발현함도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의 하나하나가 진의 메마른 내면을 풍성함으로 채워 주었다. 이런 것들 모두가 진의 사고가 그 영역을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샤넬리는 진의 분위기가 자못 진지해지자,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진이 그녀를 쳐다볼 때면, 언제나 툴툴대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진이 또 다시 사색에 빠지면 샤넬리는 어김없이 진을 쳐다봤다. 특히 그녀의 아쿠아마린빛 눈은 묘할 정도로 기묘한 빛을 띠며 깊게 가라앉아 있는 진의 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마치 정신이라는 대해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으려는 진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다 "뭐해?" 진은 광활한 정신의 세계를 유영하다 따가운 시선을 느껴 짜증 섞인 한 마디를 토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샤넬리는 오히려 호들갑을 떨며 되레 성을 내었다. "내가 뭘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래." 그러나 진은 그저 그렇게만 말을 한 후,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짜증은 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의 세계를 유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샤넬리는 자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화는 그전에 내었던 화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인 것 같았다. 그것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단은 꺼두었다고 생각했던 불이 또 다시 활활 피어 올라 그녀의 마음을 태웠던 것이다. "후우…" 짐작은 가지만,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한숨이 그녀의 가슴을 절로 울리며 나왔다. '내가 한숨을 쉬다니… 이게 다 진 녀석 때문인 건가?' 그녀는 문득 울화가 치밀었다. 진 때문에 자신이 한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용납도 이해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칫, 깡통머리." 샤넬리는 예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녀의 음성은 진의 사고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샤넬리 역시 진의 반응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던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마 마음이 좀 풀렸나 보다. 샤넬리가 진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미세하여, 변화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샤넬리 자신도 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눈치를 채고 있지만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이러한 마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는 모르지만……. 진 일행은 이제는 식상해진 무대 위에서 연극하는 배우처럼,지리한 배경을 벗삼아 묵묵히 이동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판티오티 시를 떠난 지 두 달 가까이 되었을 무렵에 그들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거대한 벽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멀리 떨어져 있어 검은 잔영만이 그 크기와 위용을 대략적으로만 보여 주고 있었지만, 하여튼 전방에 있는 그 벽은 위압적인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샤넬리는 여전히 사색 속에 빠져있는 진을 잠시 훔쳐보다 에리필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건 뭐죠?" "저곳이 바로 검은 삼각지대입니다." 에리필은 무감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지금쯤이면 데이릭 경이 보낸 사람이 자신들을 제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냥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저 안으로 데려 가버려.'라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데이릭 경의 진노하는 모습이 떠오르자 그런 생각들은 슬그머니 머릿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샤넬리는 잠시 몽롱한 눈빛으로 검은 잔영을 쳐다보다 그런 그의 걱정들을 비웃듯 기대된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곳이 바로 검은 삼각지대군요. 그런데 설마 저 검은 벽을 보고 검은 삼각지대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죠?" 에리필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만약 데이릭 경이 보낸 사람이 자신들보다 늦게 도착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자위했다. 그만큼 샤넬리의 들뜬 모습은 아무도 말리기 어려워 보였던 것이다. 에리필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 그녀의 아쿠아마린빛 눈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헛기침을 몇 번 터트린 후 입을 열었다. "당연합니다. 검은 삼각지대는 저 벽같이 보이는 브라이언트 산 뒤에 있습니다. 참고로 브라이언트 산은 심한 분지 지형으로 되어 있어 그 산의 중심부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이 검은 삼각지대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속설로는 브라이언트 산은 신의 분노를 산 산이며, 신의 주먹이 산의 머리부분만 땅 밑에 눌러버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검은 삼각지대라 불리는 거죠?" 샤넬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그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의문을 제기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브라이언트 산은 대체로 짙은 침엽수로 이루어져 있고, 그 빛깔이 칙칙한 청녹색 계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멀리서 보게 되면 영락없는 검은 색으로 보이게 되죠.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검은 삼각지대로 오기 위해서는 단 세 군데 길 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온 판티오티 시를 경유하는 방법과 라제니 시를 경유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히오하 시에서 오는 길. 그런데 이 세 군데 길들을 위에서 보면 마치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 검은 삼각지대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샤넬리는 에리필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밝고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이 이때껏 그녀의 모습 중 가장 빛나 보이는 순간이었다. 진은 자신만의 정신적 세계에 빠져있다 에리필의 설명 속으로 그도 모르게 끌려들어갔다. 그러다 그는 샤넬리의 아름다운 얼굴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만큼 그녀가 짓고 있는 지금의 표정은 참으로 귀여우면서도 매혹적인 것이었다. 샤넬리는 상큼한 기분에 젖어있다가,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를 승리감에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헉!" 그는 그녀의 마력적인 웃음에 기겁하며 말 위에서 중심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쿵! "괜찮아?" 샤넬리는 깜짝 놀라며 말에서 뛰어내려 진을 살폈다. 그리고 별 이상이 없음을 알게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하며 은근한 목소리 말했다. "야, 너 내 웃음보고 놀라 말에서 떨어졌지? 호호, 그건 내 웃음이 그만큼 매력적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안그렇니?" 샤넬리는 뒷말을 느릿한 어조로 바꾸며 은근한 투로 말했다. 그리고 만약 부정이라도 한다면 당장에 달려들 기세였다. 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녀의 웃음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어중간한 상태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 "어이 형씨,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샤넬리는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는 진에게 바짝 다가서며 위협조로 말했다. 그제야 진은 샤넬리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래? 그럼 내 질문에 대답을 했어야지?" 샤넬리는 얼굴을 기괴하게 찡그렸다. 그녀 딴에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듯했지만, 진이 보기에는 오히려 우습기도 하고 귀여워 보였다. "푸웃…크크크."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진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샤넬리는 자신의 위협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웃어? 이게 정말." 샤넬리는 정말 분했는지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뽑으려 했다. 그것을 본 진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검을 뽑으려는 그녀의 손을 잡아버렸다. "이거 못 놔?" 갑자기 잡힌 손 때문에 샤넬리는 은근히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진은 그가 손을 놓으면 정말로 한판 벌일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손을 꽉 잡은 채 놓아 주지 않았다. 한편 진은 현재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손이 정말 작고 부드럽네. 이런 손으로 그렇게 무시무시한 에너지 소드를 뿜어서 날 괴롭혔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확실히 이 녀석도 여자긴 여잔 가봐.'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그도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두 사람은 강렬한 전기가 두 사람의 손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에 놀란 두 사람은 후다닥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지금껏 가만히 있던 에리필이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 요상한 분위기를 봐줘야 하는지, 쯧쯧." 에리필은 면박을 주며 말 머리를 돌렸다. 그의 말이 두 사람의 가슴을 또 다시 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을 나타내기에는, 아직 둘의 감정은 여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침묵으로 무언의 항변을 하며, 말 위에 올라 에리필을 따라갔다. 진은 말을 타고 이동하다, 조금전 자신이 잡았던 그녀의 손을 몽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작고도 부드러운 여자 손이었어.' 술에 취한 듯한 그의 음성은 가슴 속에서만 울리는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 인간지사 새옹지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2 회] 117화. 검은 삼각지대 3.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있은 지, 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들은 검은 잔영으로만 볼 수 있었던 브라이언트 산의 한 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브라이언트 산은 여타의 산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방 모두가 90도에 가까운 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산을 타고 검은 삼각지대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미친 망상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만큼 브라이언트 산은 험했다. 마치 병풍으로 검은 삼각지대를 두른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엄연히 나무가 있고, 자연의 아들들이 살아가는 산이 분명했다. 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형학적인 모습으로 자라나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분명 산을 이루는 요소들이 틀림없었다. 진 일행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늘 내로 검은 삼각지대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에리필 또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기에 오히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검은 삼각지대를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한 시간정도 나아갔을까? 진은 호흡하는 유일한 흔적인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거리의 거렁뱅이처럼 그들의 꼴은 우습지도 않았지만, 언뜻 보아도 그들의 눈은 독기로 똘똘 뭉쳐 있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진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무시하며 그만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들과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진 일행과 일단의 거렁뱅이 무리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것이 지척의 거리가 되자 뒹굴고 있던 무리들이 느릿한 몸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여타의 말도 없이 검이나 그밖에 여러 무기들을 뽑아 들었다. 채챙! 그르릉! 그들의 무기 뽑는 소리는 거칠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상념에 빠져있던 진도 깨어나 그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게 되었다. "산적인가?" 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중얼거렸다. 여행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산적들을 상대해왔던 진이다. 그러니 두려울 리도 걱정될 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이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는 검은 삼각지대 근처였던 것이다. 진은 상념에서 깨어난 김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에 있는 산적들 이외에도 그 뒤에도 여러 무리들이 길가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 또한 이들과 같은 부류로 여긴 진은 '오늘 좀 피곤 해 지겠다.'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진은 강해져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들을 죽일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달려들었다. "돈을 내 놔라." 라는 형식적인 물음도 그들에겐 필요 없었다. 죽이고 난 뒤에 몸을 뒤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진은 하루살이 같이 달려드는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느릿한 한숨과는 달리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달려드는 폼으로 보아 에너지 소드를 사용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진은 말 위에서 뛰어내려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사람의 적도 상대할 수 없었다. 말 위에서 검을 뽑아든 에리필은 의미 없는 동작처럼 허공에다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가 검을 검집으로 밀어 넣는 것과 동시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한 소음이 대기가 갈라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잠시 후,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로 대치되었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폼으로 달려들던 스무 명 가량의 사내들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처음에는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처부위는 벌어졌고, 그 속에서는 막대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꾸만 생기는 상처와 계속해서 벌어지고 나가떨어지는 살점들을 공포로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 다. 그리고 곧 이어,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들의 눈은 엄청난 통증에 검은자가 눈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이제껏 질렀던 비명 중 최고의 것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모든 감각 이 '너는 곧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지르는 비명은 죽음에 대한 반항이요, 죽음을 인정치 않으려는 필사적인 마음이 움직인 결과였다. 그리고 그러한 필사적인 마음은 순식간에 성대가 상할 만큼 목을 혹사하여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말은 길었지만 잔혹한 난도질에 한 사람씩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단지 그들의 처절한 죽음이 시간의 흐름마저도 움찔할 정도로 지독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여길 뿐이었다. 진과 샤넬리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들의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죽은 자들의 감정이 그들에게 고스란히 이입되어 두려움으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 사람 모두 이번처럼 잔혹한 죽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접하는 당혹감과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믿었던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진한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샤넬리보다 진에게 더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진은 에리필이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자위하며 속에서 끓고 있는 배신감을 누르고 있었다. 샤넬리는 너무도 잔혹한 죽음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은 자연히 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서 있는 진이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샤넬리는 진을 이렇게 분노하게 만드는 에리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보자 고래고래 소리 지르려고 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에리필은 착잡하면서도 공허한 눈으로 죽은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하나 성한 시체가 없었다. 그들은 사지 중 하나는 반드시 육체에서 이탈해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몸은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심하게 난도질당해 있었다. 죽어서도 편히 죽지 못할 만큼 그들의 죽음은 참혹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자신의 손으로 했다는 사실이 에리필에겐 너무나 괴로웠다. 샤넬리는 차라리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버리는 그래서 그러한 쾌락에 빠져있는 눈이라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에리필은 누가 먼저 그에게 채찍을 휘두르기 전에 자기 스스로 자책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채찍에 살점이 뜯겨 나가는 사람은 당연히 에리필 자신이었지만. 진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들을 간신히 제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간 사색에 빠져 내면의 세계를 개척한 데서 온 힘이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진은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에리필을 바라보다 무감정한 음성으로 물었다. "저들을 저리 죽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명 이유가 있을 줄 압니다." 자책의 채찍에 살점이 뜯겨 나가 고통에 허덕이던 에리필은 중간에서 채찍을 잡아채는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공허한 눈으로 그 음성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진은 에리필의 자학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는 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저들을 저리도 잔혹하게 죽이신 겁니까?" 진은 마치 죄인에게 심문하듯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에리필은 여전히 공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한 가닥의 음성이 공허한 하늘을 울렸다. "검은 삼각지대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저들은 우리를 위해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습니다." 진은 그의 조잡한 변명이 듣기 싫어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단호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러나 진의 거친 항변에도 에리필은 여전히 공허한 기색을 유지하며 입술을 몇 번 들썩거려 그가 원하는 뜻을 전했다. "여기는 검은 삼각지대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 우리는 그러한 곳에 왔다." "……." 진은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기색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틀림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에리필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검은 삼각지대는 위험한 곳이란 말인가? 진은 갑자기 싸늘한 한기가 그의 몸을 마비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그의 얼굴 또한 창백히 굳어졌다. 에리필은 그런 진의 얼굴을 스치듯 바라보다 피로 얼룩진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이미 많은 피를 묻힌 내 손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몇 명 더 죽였다고 번민이나 하다니. 이번 일은 이미 이곳에 오기로 한 시점에서부터 예정된 일이었지 않은가?' "후우…" 에리필은 자책과 번민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지 깊은 호흡을 통한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는 착잡한 기색은 여전했지만, 예전의 얼굴로 돌아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3 회] 118화. 검은 삼각지대 4. 에리필은 창백하게 굳어있는 진과 샤넬리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다 엄격한 눈으로 돌리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검은 삼각지대의 길가에 있는 자들은 방문자를 시험하는 일종의 인간 검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방문자를 격살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지. 뒤에 있는 또 다른 인간의 검에 의해서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죽기 아니면 식으로 덤비는 거다. 하지만 여기서 검은 삼각지대의 사람들이 시험하는 것은 딱 하나. '방문자가 이곳에 어울리는 인물인가?'이다 그들은 이것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첫 인간의 검들을 죽이냐 죽이지 않느냐로 결정하지.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하지만 만약 죽이지 않는다면 방문자는 모든 인간의 검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지. 그들의 검엔 자비가 없으니까. 오직 자신의 죽음 아니면 상대의 죽음만 부르는 검이 바로 그들이지. 그리고 만약 첫 인간의 검을 죽이지 않는 자는 특별관리대상에 들어가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는 처지가 된다." 에리필의 장황한 말을 듣고 있던 샤넬리는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죽음보다도 그녀는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별관리대상자가 되면 백 프로 죽는 건가요?" 에리필은 그녀의 음성을 듣자 갑자기 알 수 없는 분노가 조용히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자책과 번민에 빠지게 만든 잔혹한 살인은 그녀가 여기 오자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리필은 그러한 기색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물음에 차분히 대답해 주었다. "백 프로 죽진 않습니다. 특별관리대상자가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면 검은 삼각지대에서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실력자는 전 제국을 통틀어도 몇 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테스트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요? 그렇담 우리는 검은 삼각지대를 마음대로 오가는 권리를 그들에게서 받은 것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 권리를 받기 위해 살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요?" 샤넬리가 궁금한 듯이 묻자 에리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들은 마약에 찌들어 있는 몸입니다." "마약이라……." 샤넬리는 고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에 진 역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의 말을 인정할 수 없는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리 마약에 찌들어 있다 하지만, 저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저 안에 들어가기 위해 얻으려는 그 권리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권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살아 있는 인간을 죽여도 된단 말입니까?" 진의 말에 샤넬리는 괜스레 가슴이 무거워졌다. 결국 에리필이 사람을 죽인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자신의 고집 때문이다. 에리필은 자신에게도 무수히 던졌고, 예전 그가 그의 일행에게 던졌던 말을 진이 하자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에리필은 십 몇 년 전에 자신을 데리고 이곳에 왔던 그의 마음이 지금 자신의 심정과 같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리필은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진에게 전했다. "그들이 시험하는 것은 검은 삼각지대에 어울리는 인물인가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인간의 검을 한 번만 겪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다수의 방문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검은 삼각지대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검이라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방문자를 검은 삼각지대에 어울리는 인물로 만드는데 사용되는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검은 이미 구제할 수 없도록 망가진 몸을 가졌기에 그들은 한점 부끄럼 없이 인간의 검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진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그가 진한 연민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에리필이 무심히 말하는 듯했지만, 그의 눈은 연민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진은 그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격한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분노는 에리필이 아닌 검은 삼각지대를 향한 것이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죠? 제국군들은 이런 이들을 왜 가만히 놓아두는 거죠?" 에리필은 예전에 그가 토했던 울분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진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다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간단히 설명해 주마. 그들은 제국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황실을 비롯한 권력층이나 상위계층의 인간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토벌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검은 삼각지대는 엄청난 힘을 소유한 곳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래. 사실 저들을 그대로 방치해두는 이유 중 하나가 권력 다툼의 암투 속에 저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권력자들은 알아버린 거다. 저들의 어마어마한 힘을." 진은 그의 말을 듣고 신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힘이기에 제국의 최고 권력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몸을 움츠린단 말인가? 진은 자신에게 되물어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에리필은 진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고 있었다. 십 여 년 전의 자신과 비슷할 것을 알기 때문이 다. 그렇기에 그는 말없이 진의 등을 토닥였다. 한편 샤넬리는 자신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오자고 떼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이 있어도 더 강한 자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되는 세계. 그곳이 검은 삼각지대였고, 그곳에는 어떠한 자비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어렴풋이나마 알아 버렸다. 그렇기에 그녀의 안색 또한 좋지 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한 번 보자라는 호기어린 마음도 생겨났다. 그렇게 일행들은 각자의 생각들을 가지고 인간의 검들을 지나쳐 검은 삼각지대 안으로 들어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4 회] 119화. 검은 삼각지대 5. 음영이 짙은 실내에는 고요한 침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은 아무도 없기에 일어난 자연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위적인 상황으로서 거대한 테이블 주위에 앉아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기에 일어난 일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은 아홉 마리의 위풍당당한 용이 새겨진 테이블 주위를 지루하도록 오랫동안 휘감고 있었다. 마치 아홉 마리 용의 입에 여의주를 박아 넣어 그들이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러나 오색영롱한 빛을 내고 있는 여의주의 마력도 이들에겐 별 효력이 없는지 지루하도록 이어진 침묵은 테이블 상단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 의해 깨어졌다. "전 이그젝터였던 에리필이 이곳에 왔다는 군." 그의 중후한 음성은 그가 있던 자리를 기점으로 하여 테이블 주위를 한바퀴 돌아 음영이 짙은 실내 전체로 번져갔다. 그의 말이 꽂히듯 여덟 명의 사람들에게 날아들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침묵을 깨고 그 찬란한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 녀석은 전에도 한 번 왔던 아이인 걸로 아는데?" 성직자들이나 쓰는 관 같은 모자를 쓴 인물이 말하자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 나이치곤 꽤 괜찮은 실력을 가졌던 걸로 기억하는군." "크크크, 여기로 숨어든 범인을 잡으러 따라올 정도로 무모한 녀석이었지." "그래도 직접 만나보니까 꽤 괜찮은 인물이었어. 제국의 개 치고는 말이지." 마지막으로 말한 인물은 화려한 금발을 아름답게 기른 미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껏 말했던 인물들의 외모는 기껏해야 20대 후반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40이 넘는 에리필을 보고 아이라고 말하니 정말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했던 억울함을 모두 풀어버리려는 듯 그들은 많은 말들을 쉴 새 없이 쫑알대었다. 그렇게 한 차례씩 말이 돌아가자 상석에 앉아 있던 인물이 입을 떼었다. "사실 그 에리필이라는 녀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온 인물이 우리에게 꽤나 신경 쓰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인물이 누군데 네가 이토록 신경 쓰는 거지?" 한눈에 보아도 호걸로 보이는 거한이 걸걸한 음성으로 묻자 상석의 인물이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현 황족 중 최강의 무력을 소유한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의 딸 프치아이오 론 샤넬리라는 여자다." 그의 설명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상대는 제국의 4대 공작가와 함께 최고의 권력과 무력을 소유한 가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샤넬리의 방문이 달가울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이곳에서 어떤 위해를 당한다면, 그의 분노가 이곳을 덮칠 것은 보나마나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힘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귀찮고, 피할 수 있는 싸움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평온함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모두는 잠시 조용한 침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고요한 자태로 초록빛 머리칼을 쓰다듬던 한 여인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거겠지?" 그녀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를 본 여인은 매혹적인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야. 내가 그들을 보살펴주면 되는 일이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반영한 말을 포동포동한 외모를 소유한 인물이 전했다. "꽤나 심심했나 보군. 크크크, 인간계 최강의 공격인 헬 급 마법이 옆에 터져도 고요한 자태를 유지하는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그의 말에 여론은 동조했고, 곧 그녀는 여론의 장난감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농담과 조롱 속에서도 그녀의 자태는 한결 같이 고요했고, 아름다웠다. 이에 그들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툴툴대며 놀리는 것을 중지했다. 상석의 황금색 장포를 걸친 인물은 심유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눈을 응시하던 심유한 눈이 반개하면서 선포하는 듯한 절대적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유리미 너의 유희를 허락한다." "고마워, 반드라스." 진은 긴장된 마음으로 음습한 분위기인 좁디좁은 통로를 지나 검은 삼각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가 생각했던 거완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이곳이 정말 검은 삼각지대인가요?" 진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에리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진은 아까 전 자신이 본 것이 환영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주위를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평온해 보여 어느 평범한 시골마을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행색이 평범했고, 그들의 외모 역시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험악하지 않았다. 그리고 건물들 역시 평범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진은 여기가 그 악명 높은 검은 삼각지대 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진의 그런 생각은 더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도 어느 지점을 지나는 순간 확 바뀌어 버렸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나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 어디를 봐도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그들의 허리춤에는 하나같이 살인으로 더러워진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리 한복판에서 검을 뽑아 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 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거리 한켠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사람이 있어도 누 구하나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는 곳. 시체가 길가에 아무렇게 뒹굴고 있어도 수습하는 사람이 없는 곳. 진은 지금 이런 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진정한 검은 삼각지대라고 진은 생 각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사부님, 이곳이 바로 진정한 검은 삼각지대겠죠?" 에리필은 진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연민의 시선을 보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진에게 자상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 네가 봤던 곳은 분명 검은 삼각지대 중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역시 검은 삼각지대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지. 그렇지만 이곳이 진정한 검은 삼각지대라 말할 순 없다. 왜냐하면 여기는 검은 삼각지대의 최하층 주민들이 사는 곳 중의 한곳이기 때문이다." "최하층 주민요?" "그래." "이곳과 같은 무법지대가 이곳에서는 고작 최하층으로밖에 취급받지 못하나요?" 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러나 에리필의 대답은 그의 얼굴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단순히 싸움으로 인해 죽는 것은 여기선 오히려 편안한 죽음이라 부른다. 온갖 추악한 것들 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비참한 죽음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검은 삼각지대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그런 비참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 스스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최하층 주민들이 되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있 지." "도, 도대체 비참한 죽음이라는 것이 뭐죠?" 에리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진은 자신의 상식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괜한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다. "비참한 죽음이라… 간단히 말해 쾌락의 극에서 절망의 극으로 떨어지는 죽음을 비참한 죽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백번 말하는 것보다 네가 직접 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거다." 에리필은 더 이상의 질문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다가 몇 번의 시비가 붙긴 했지만, 별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진 일행은 검은 삼각지대 안으로 들어갔다. 최하층이라 명명된 지역을 지나 간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허허벌판과도 같은 평야를 말없이 걷고 있었다. 그렇게 무심히 걸음을 옮기던 진의 눈에 희미하지만 지평선과 맞닿은 듯한 성벽이 잡혔다. 그것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리고 매우 길게 뻗어 있었다.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지평선과 같이. 그것은 성벽 안의 도시가 상상을 불허할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곳이 사부님이 말한 진정한 검은 삼각지대인가? 도시 안에 저렇게 엄청난 성벽이 존재하다니.' 진은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리며 걸음을 옮겼다. 에리필이 말한 것처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해에 다가서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샤넬리는 조금은 실망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는 성벽을 보게 되고, 그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샤넬리는 알 수 없는 짜릿한 흥분의 감격에 도취되어 그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곳이 내가 가려고 했던 검은 삼각지대야." 몽롱한 그녀의 음성은 인간사에 존재하는 모든 추악함과 비참한 죽음이 만연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답지 않게 순수하고 들뜬 목소리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5 회] 120화. 검은 삼각지대 6. 족히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성문을 지나 들어간 검은 삼각지대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곳은 매우 화려하고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매우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 어떤 쾌락에 의한 만족의 웃음이 걸려 있었다. 진은 마치 제국의 십대 도시인 메테르티아 시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그곳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일 거라 생각했다. 거리는 화려한 조명들로 인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에는 어두컴컴한 배경에 점점이 박혀 있는 별과 고고히 떠 있는 초생 달의 조용한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하늘 아래는 이처럼 밝고 활기찬 열띤 회담들이 열리고 있었다. 마치 신이 정한 밤의 규율을 거스르려는 듯이 그들은 밤의 화려함을 즐기고 있었다. 샤넬리는 침중한 안색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들의 얼굴은 한결 같은 모습을 하고 있군요.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도 인간이 모인 곳이라면 한 가지 고민거리정도는 얼굴에 그리고 있어야 할 텐데, 아니 꼭 그게 아니더라도 웃는 낯짝이 하나같이 똑같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인간인 이상 자기만의 독특한 미소가 있을 테니 말이죠. 그리고 저들의 웃음에는 생기가 없어요.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에게 하나같이 인위적인 미소를 그린 것 같이 말이죠." 샤넬리는 아름다운 미안을 살포시 찡그리며 단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에리필을 쳐다보았다. 에리필은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샤넬리 양의 통찰력은 대단하군요. 그렇습니다. 이곳은 하나같이 똑같은 쾌락을 사람들에게 주어서 이지를 상실한 인간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쾌락으로는 마약을 들 수 있습니다." "마약이라고요? 아무리 마약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표정을 저렇게 똑같이 만들 수는 없지 않나요?" "그거야 그렇죠. 그렇지만 이곳도 검은 삼각지대 중 한 곳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저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른 곳엔 존재하겠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워낙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된 것 뿐이죠. 그리고 이곳은 비참한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제공된 마지막 쾌락입니다." 에리필은 화려한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에 취해, 마약에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에리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리가 워낙 밝아 인지하지 못했지만, 벌써 밤도 새벽을 향해 한참을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에 출발해야겠군요. 여독도 풀 겸 말이죠."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동의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은 화려한 건물들이 줄을 지고 서 있는 곳 중 한곳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방 두 개." 싹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청년이 에리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뜸 열쇠 두 개를 건네주었다. 숙박료에 관한 언급은 하지도 않았고, 열쇠를 준 뒤 그 청년은 진 일행에게 일절 신경 쓰지 않았 다. "저, 사부님. 숙박료는 후불제인가 보죠?" 진은 다른 손님에게 싹싹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청년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이곳에서 돈이 유통되는 곳은 라그니슈 뿐이다." "라그니슈요?" "그래. 우리가 내일 갈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곳이야 말로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몸을 숨기는 곳이기도 하며, 검은 삼각지대를 이끄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 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3층으로 올라가는 에리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 다. 간만에 포근한 침대 위에서 잠을 자다보니 이제껏 긴장했던 몸과 마음 모두 나른해지고, 그로인해 말 그대로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진은 해가 뜨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라그니슈로 가기 위해 여관을 나왔다. 그런데 여관을 나서는 동안에 진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어제 그 친절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있던 청년도 보지 못했다. 밖은 어젯밤의 화려한 축제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휑했다. 그런데 휑한 길가 곳곳에 바닥을 뒹굴며 심하게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얼굴은 어제의 만족된 웃음과는 천지차이로 일그러져 있었고, 땀들이 비오 듯 얼굴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온 몸을 심하게 뒤틀며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는데, 마치 지옥의 유부에서나 흘러나올법한 괴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이 더욱 처절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누구하나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상실된 이지가 풀리며 돌아온 이성은 혼자서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해 더욱 악다구니를 쓰는 지도 모른다. 진과 샤넬리는 그들의 처절한 모습에 연민의 감정과 보호본능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과의 거리는 불과 몇 발자국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괜찮아요?" 샤넬리는 검은 머리칼을 쥐어뜯고 있는 청년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던졌다. 그러자 머리칼을 쥐어뜯던 청년이 순간 멈칫거렸다. 그리고 잠시 따사한 웃음으로 샤넬리를 바라보았다. 툭!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이 하나 있었으니, 감겨진 두 눈을 비집고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것은 인간성마저 잊고,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자책 그리고 그런 자신을 위로해주는 샤넬리를 향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샤넬리의 눈에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왜 우는지 그녀 자신도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저 마냥 슬펐다. '비참한 죽음이라… 간단히 말해 쾌락의 극에서 절망의 극으로 떨어지는 죽음을 비참한 죽음이라…' 샤넬리는 에리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그 말을 할 때, 왜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었는지. 그 기분을, 그 마음을 그녀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그것이 전혀 달가운 것이 아닐지라도. 그리고 진 역시 에리필이 했던 말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의 앞에서 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그닥다그닥! 검은 머리칼의 사내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도 거의 다 말랐을 때, 수레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가 휑한 거리에 나는 유일한 소리라서 매우 기괴스러웠다. 진은 아직도 슬픈 기색이 역력한 샤넬리에게서 시선을 거둬, 기괴한 소리의 출처로 고개를 돌렸다. 진이 한 대의 수레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았을 때, 그의 눈은 경악으로 치떠졌고, 그것은 이내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수레는 천천히 거리를 돌아다니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이든, 편안한 안식처로 떠난 사 람이든 가리지 않고, 수레에 던져 넣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행동은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그것이 진의 마음에 불을 질러버렸다. "네 이놈들!" 진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의 행동은 매우 우발적이면서도 충동적인 것이라서 옆에 있던 에리필도 말릴 새가 없었다. 검을 뽑아들어 에너지 소드를 일으킨 진은 그들에게 엄청난 속도로 쇄도했다. 그러나 그런 진을 보고도 그들은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진의 하얀 에너지 소드가 그의 몸을 반쪽으로 가를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진은 그런 그들의 무덤덤한 반응에 오히려 아연실색해 밝게 빛을 발하던 하얀 에너지 소드를 풀어버렸다. 수레를 몰기 위해 마부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과 수레에 시신을 던져 넣던 한 사람은 죽은 동료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 있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또 하나의 쓰레기가 더 생겨 귀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행동을 통해 확인되었다. 시체를 수레에 던지던 한 명이 반쪽 난 동료를 수레 안에 던져 넣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다른 시신이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수레 안에 던져 넣었다. 진은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수레를 막을 수 없었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분노도 지금에 와서는 허무한 물길에 싸늘히 식어버렸다. 첫 살인에서 오는 충격도 그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그가 죽인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상실한 존재들이었다. 진은 복잡한 머리사이로 하나의 의문을 던졌다. '도대체 저들과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진은 돌아오지 않는 해답을 기다리며 멍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수레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샤넬리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을 보고, 매우 놀랐지만 그보다 진이 입은 정신적 충격이 너무 심해 보여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진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기나 한 것처럼 텅 빈 동공으로 멀어져가는 수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퍽! "크억, 뭐야?" "돌아왔구나." 진의 상태가 걱정되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샤넬리를 잠시 옆으로 물러서게 한 에리필이 그의 뒤통수를 강렬히 후려쳐버렸다. 그리고 진은 에리필의 의도대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샤넬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나 진은 그런 그녀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샤넬리가 많이 변했구나 라고 생각하는 진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던 에리필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보다시피 이 모습이 검은 삼각지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떠한 사람들은 검은 삼각지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이곳 검은 삼각지대를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에리필은 말을 하며 휑한 거리를 지나갔다. 진과 샤넬리 역시 착잡한 시선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샤넬리의 입에서 답답한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그녀의 꽉 막힌 가슴과 터질 듯한 머리를 반영한 행동이었다. '여기 오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어. 이런 슬픈 모습들을 볼 바에야 차라리 얌전히 집에 있는 것이 나았을 거야.' 마음속을 울리는 답답한 중얼거림은 돌아올 수 없는 강물처럼 이미 급류를 타고 하류로 향하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6 회] 121화. 라그니슈 1. 라그니슈는 성벽과 같은 인공물로 구획을 나누지 않았다. 라그니슈의 최외각지대는 검을 가슴에 품고 바닥에 앉아 있거나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자들을 예리한 눈초리로 살펴보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강한 상대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남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진 일행 역시 그들의 예리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샤넬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바지춤으로 손을 집어넣어 손을 움직이며 괴상한 미소를 짓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진 일행에게 달려드는 인물은 없었다. 그것은 에리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기세 때문이었는데, 누구라도 달려들 기미만 보이면 그의 싸늘한 검이 불을 뿜을 것을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은 그들의 앉아 있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들의 모습이 주는 색다른 사실을 보고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들은 처음 본 사람들과 달리 평범한 모습도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보았던 사람들처럼 마냥 싸움에 도취된 인간들도 아니다. 그리고 성벽 안에서 본 이지를 상실한 인간들처럼 이성이 날아간 인간들도 아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이성이 존재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성정이 꽤나 난폭해 보이긴 하지만.' 진은 그런 생각을 하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사부님. 저들도 꽤나 싸움을 좋아해 보이는 데요. 전에 성벽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그 살인이 일어나고 했던 거리와 이곳 사람들과 뭐가 틀린 건가요? 여기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비참한 죽음과도 상관없는 지역 같은데 말이에요." 에리필은 한껏 위압적인 기세를 뿜어내다 진의 질문을 받고, 언뜻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그도 여기 온 적은 있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생각했던 바를 이야기 해주려 하는데, 아름다운 음성의 소유자에게 그 자리를 빼앗겨버렸다. "그건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요." "선택요?" 진은 고혹적인 음성에 매료된 듯 그도 모르게 되물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신록의 향기를 모아 세공한 듯한 초록빛 눈은 웨이브진 초록빛 머리칼과 함께 싱그러운 미녀의 모습을 만들었다. 새초롬한 입술은 말을 할 때마다 들썩거렸고, 설명하는 내내 그녀의 제스처는 한 폭의 춤사위를 보는 듯한 유려한 멋과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요. 이곳의 최하층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려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곳 라그니슈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주무르고 싶어 하는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사실은 에리필도 모르는 이야기였기에, 그도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이 둘의 차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그리고 그들에 대한 대우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최하층에 사는 사람들은 평온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검은 삼각지대의 최하층에 살기 때문에 나인 드래고니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가 자신들을 죽이려든다면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범죄자들이 이곳 라그 니슈로 들어오려 합니다." 신비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여인이 설명을 잠시 중단하고, 호흡을 고르자 이때다 싶어 진이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라그니슈로 들어가면 어떤 적도 막아준다는 이야긴가요?" 여인은 진을 보며 살포시 미소 지으며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맞을 거예요. 제국의 권력층과 이곳은 암묵적인 계약을 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현상금 사냥꾼이나, 복수를 위해 원수를 쫓아오는 이들이 간혹, 있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이들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하죠. 그렇다보니 사실 최하층지역에 산다고 하여 목숨에 위협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이야기죠. 라그니슈와 최하층지역에 사는 것은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선택이라 이야기했죠? 그런데 이 선택에는 힘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라그니슈에서는 힘이 있는 자에 한해 세상을 주무를 자격을 주는 것이죠." 에리필은 여인의 이야기를 듣다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이그젝터였던 자신이 이곳까지 쫓아와 죄인을 잡아갔지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상을 주무른다는 이야기 역시 인정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그의 말을 들은 여인은 잠시 교성을 토했다. 그리고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타이르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음, 그 당시 당신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이 문제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대답해 줄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어떻게 세상을 주무르냐 면요. 아주…… 잘 주물러요." 여인의 말에 세 사람은 갑자기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자세한 것은 말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녀의 이야기로 몇 가지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샤넬리가 요모조모 따져가며 싸늘한 음성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신은 보기보다 나이가 많나 보군요. 에리필 씨가 이곳에 방문한지는 꽤 오래전 일이라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죠. 그건 그렇고 우리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이유가 뭐죠? 그리고 검은 삼각지대를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걸로 아는데, 당신은 구체적인 사항까지 알고 있는 듯해요. 이로 보아 당신은 아마도 이곳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을 거 같네요. 당신 말마따나 세상을 주무르는 사람 중 하나인가요? 그리고 앞서 보았던 불쌍한 사람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인가요?" 여인은 샤넬리가 싸늘한 살기까지 일으켰음에도,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여전히 고혹적인 자태를 뽐냈다. 그것이 샤넬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외모도 그렇거니와 뭔가가 있어 보이는 찜찜한 구석도 그랬고, 앞서 본 불쌍한 사람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듯해서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이 몽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기분 나빴다. 자신도 그것이 왜 기분 나빠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분에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여인은 샤넬리의 눈이 더욱 싸늘해지자 더 웃지 않고,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아요. 저는 나인 드래고니아 중에 하나인 챠오이 유미라 해요. 하지만 당신이 말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들이 원해서 그리 된 것입니다. 결코 강제로 만든 것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왜 당신들에게 친절을 베푸느냐 하면 바로 샤넬리 양 당신 때문이에요." "흥, 강제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저 때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죠?" 샤넬리는 고아한 자태로 서 있는 유미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미는 샤넬리가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없이 평소 말투대로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그들은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서, 쾌락을 찾았고, 우리는 그것을 제공한 것일 뿐이죠. 그리고 내가 여기 나타난 이유는 당신이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의 딸이기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황족이라서 그러는 건가요?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마치 짐짝 다루듯 하는 것도, 그리고 인간의 검이라는 소모품을 만든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요." 샤넬리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강한 분노에 더욱 유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진 역시 정신을 차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유미를 노려보았다. 에리필만이 비교적 냉철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유미는 그들의 싸늘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의 검이라…… 제가 말 안했던가요? 그들은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그리로 간 것이랍니다. 자세한 것은 말해줄 수 없지만, 그들은 규율을 어겼지만, 한번의 기회를 더 얻기 위해 어떻게 보면 자의로 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미의 말에 모두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이곳 검은 삼각지대는 그들 나름의 규율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는 자의라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기에 한없이 분노하고 있던 진도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유미는 그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아까 전에 말했던 샤넬리 양 때문이라는 말을 정정해야겠군요. 제가 당신 앞에 나타난 것은 당신이 황족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 나인 드래고니아는 평범한 황족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답니다. 다만 당신의 아버지는 권력 면이나 보유하고 있는 힘으로 보나 제국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기에 우리가 편의를 봐 드리는 것이에요." "흠, 그래요? 그렇다면 나의 안전을 당신이 책임진단 말이네요. 하지만 난 당신의 보호를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당신이 없어도 나의 호송자(escorter)들이라면 충분히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샤넬리는 유미라는 존재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나 유미는 샤넬리 보다 확실히 노련했다. "음, 그것도 그래요. 웬만한 일은 옆에 계시는 에리필 씨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만약에 사태까지 대비해야 돼요. 만약 당신이 여기서 어떤 위해라도 당하면 당신의 아버지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우린 피할 수 있는 화를 받아들일 만큼 순진한 족속들이 아니라서 말이죠." 유미는 말을 하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는 굉장히 매력적인 것이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샤넬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말싸움은 유미 쪽의 승리로 넘어간 듯싶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진이 툭 내뱉듯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요. 정말 나이가 많아요?" 순간 유미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솔직히 자신의 나이를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심유한 눈은 마치 뭔가를 갈망하는 듯이 강렬히 타오르고 있었기에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호호, 숙녀에게 나이를 물어 보는 것은 실례라구요." 유미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일행들을 라그니슈 안으로 안내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7 회] 122화. 라그니슈 2. 라그니슈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구역들은 자로 잰 듯 정확히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구역은 한 곳을 감싸는 형태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한 곳이 바로 나인 드래고니아의 거처였다. 네 개의 구역은 각기 쾌락의 나라, 무의 나라, 평온의 나라, 살육의 나라로 불렸다. 쾌락의 나라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쾌락을 맛볼 수 있는 곳인데, 대개 성욕을 마음껏 풀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곳에는 환락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수 만 가지의 마약들을 복용할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의 마약은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 라그니슈 밖의 마약과는 달리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무의 나라는 힘이 법인 곳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비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만큼은 검은 삼각지대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살인이 금지되고 있다. 만약 실수라도 살인을 하게 되면 그는 강제로 강력한 마약을 복용하게 되고, 결국 밖의 사람들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한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스스로 인간의 검이 될 것이다. 평온의 나라는 검은 삼각지대 중 유일한 안식처다. 고향과 같은 따스함을 맛볼 수 있고, 대자연의 포근함에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경멸의 눈초리와 끈임 없이 쫓김을 당한 이들은 대개 이곳에 정착한다. 마지막으로 살육의 나라는 라그니슈 중 유일하게 이방인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세 곳과 나인 드래고니아의 거처는 이방인에게는 금지구역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에리필이 들어왔던 곳도 살육의 나라였다. 살육의 나라는 온갖 추악한 죽음들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서는 약한 자들은 어김없이 피의 광기에 취한 도살꾼들의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겨질 수밖에 없었다. 유미의 안내를 받으며 살육의 나라로 들어간 진 일행은 거리 곳곳에 핏자국 또는 피가 모여 웅덩이가 생긴 곳들을 심심치 않게 보아야했다. 진은 150 키르(센티미터)정도 되는 왜소한 체구를 지닌 이가 얼굴에 기다란 검자국이 난 사내에게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걸어가는 폼이 기괴하여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가간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얼굴에 검상이 난 사내에게 무어라 그러자 그는 곧 일갈을 터트리며 옆에 세워 놓은 검을 뽑았다. "재수 없는 놈!" 그는 멀찍이서 걸어가는 진 일행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고함을 지르며 왜소한 사내를 향해 검을 뿌렸다. 핑! 검은 대기를 잘게 울리며 왜소한 사내를 양단할 듯 거친 기세로 쏘아졌다. 그러나 그의 검은 애꿎게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엥?" 그는 그의 검이 상대를 잃어버리자 의외의 상황에 놀라 괴이한 신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생애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왜소한 사내는 검이 날아오자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검의 주인의 어깨를 밟고서 그의 양 관자놀이에 기다란 침을 박아 넣었다. 푸욱! 살이 파이며 나는 파육음은 듣는 이의 가슴을 싸늘히 얼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살인을 자행하면서 광기에 젖은 괴소를 터트리는 왜소한 사내가 더욱 오싹했다. 푹푹푹푹! 쿵! 왜소한 사내는 마치 피의 현란함에 매료된 듯한 몽롱한 눈으로 싸늘히 굳어 버린 사내를 바라보다 기다란 침을 두 눈에 박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온 몸 곳곳을 박았다 빼기를 반복했다. 최초의 공격에 상대는 이미 죽었음에도 왜소한 사내는 마치 신들린 듯 박고 빼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몸이 차가운 붉은 선혈로 뒤덮여도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사내의 눈동자는 두 번째 일격에 처참하게 터져 붉은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붉은 눈물이 차디찬 땅 위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도 바닥을 향해 쓰러졌다. "켈켈켈켈!" 그는 한 번씩 박을 때마다 괴소를 터트렸는데, 그것이 너무나 섬뜩했다. 그리고 더 이상 박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왜소한 사내가 온 몸이 피에 젖은 것도 모른 채, 기괴한 걸음으로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일부러 시선을 피했고, 그것을 즐기는 듯한 왜소한 사내는 갈지자를 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진은 이곳에 와서 절로 욕지거리가 나오는 광경을 몇 번 보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온 몸이 분노로 달구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진은 순수하게 분노했다. 그것은 죽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 버린 천인공노한 인간에 대한 분노였다. "이런 망할 놈의 자식 같으니." 진은 그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것을 들었음인가? 왜소한 사내가 진을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진은 당장에라도 저 재수 없는 상판에다가 주먹을 박아 넣었으면 하는 충동을 그 짧은 순간에 몇 십번이나 느꼈다. 왜소한 사내는 진이 어떤 생각을 하든 말든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마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진에게 말했다. "크크크, 나의 존귀한 침이 너의 싸구려 몸뚱아리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영광을 주지." 진은 그제야 아까 전 그 사내가 왜 화를 벌컥 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검을 뽑아 들었다. "켈켈켈, 좋아. 아주 좋아." 왜소한 사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괴소를 터트리며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의 분노를 격발하는 역할을 했다. "너도 어디 한 번 죽어 봐라." 진은 그의 사나운 말관 달리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왜소한 사내는 진의 검이 날아들자 또 다시 경이적인 빠르기로 뛰어올라 그의 어깨 위에 올라서려 했다. 그러나 그는 진의 실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어딜!" 진은 흘러가던 검의 방향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뛰어올라 그의 뒤를 잡았다. 순간 당황한 왜소한 사내였지만, 그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켈켈 되었다. 쉬웅! 진의 검이 그의 몸을 양단하려는 순간, 공기가 찢어지며 무언가가 날아왔다. 진은 순간적으로 검으로 그것을 쳐냈고, 곧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왜소한 사내가 무기로 쓰던 침이 었던 것이다. 진이 자신의 침을 쳐내자 왜소한 사내는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에도 두 사람은 공중에 떠 있었고, 그것은 부자유스런 공간 위에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왜소한 사내보다 월등히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던 진은 어렵지 않게 그를 향해 검을 날렸다. 순간이지만 왜소한 사내는 검이 여러 개로 늘어난 듯한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퍽! 진의 검이 왜소한 사내에게 적중되었음에도 살이 파이는 파육음은 나지 않았다. 단지 시원한 격타음이 왜소한 사내의 안면에서 울려 퍼졌을 뿐이다. 쿵! 진은 공중에서 기절한 채로 땅에 떨어진 왜소한 사내에겐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에리필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다. 굳이 저딴 녀석의 더러운 피를 네 검에 묻힐 필요는 없지."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죽이지 않더라도 저 사람은 곧 죽을 거예요." 진은 말을 하며 왜소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왜소한 사내의 시선을 피했던 몇 몇 사람들이 다가와 기절해 있는 그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지 왜소한 사내는 자기가 죽였던 사내보다 더욱 처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진은 그 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은 이들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순수한 사람이었으므로 이러한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 마음에 들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 낼 시험 때문에 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8 회] 123화. 라그니슈 3. 라그니슈를 정확히 5분지 1로 나눈 살육의 나라는 생각보다 그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그래서 살육의 나라를 얼추 한 바퀴 도는 데만도 반나절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진 일행은 살육에 미친 인간들을 상대해줘야 했고, 샤넬리와 에리필 그리고 유미 모두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했다. 그런데 유미의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과 생각 외로 잔혹한 손속은 그녀의 고운 자태와는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살인을 하는 그 순간에도 그녀의 자태는 확실히 아름다웠으니. 누가 들으면 미친놈의 헛소리로 치부하겠지만 일행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유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샤넬리마저 그런 생각을 했으니, 다른 사람이야 말하나 마나한 일이었다. "이제 날도 어두워지는데, 어디 잘 곳이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에리필은 조심스런 말투로 유미에게 말했다. 유미는 누가 뭐라 해도 검은 삼각지대의 핵심인 나인 드래고니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인 드래고니아라는 존재도 유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이라 나인 드래고니아가 조직 자체를 말하는 건지 아님 몇 몇 사람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에서만큼은 유미의 말을 듣는 것이 낫다는 사실이다. 에리필 자신이 살육의 나라에서 있었던 시간도 하루가 못 되는 짧은 시간이었으므로 그가 여기서 딱히 할 일도, 할 필요도 없었다. 유미는 걸음을 옮기다 에리필의 음성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 자는 것은 좋은 생각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에리필은 그녀에게 꼬박꼬박 존대어를 쓰고 있었다. 그가 왜 자신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이에게 존대어를 쓰는지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렇게 해야 된다고 느꼈다. 사실 에리필 정도 되는 경지에 오르면 그러한 본능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실수를 적게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아는 에리필은 본능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밤이 되면 붉은 달빛이 더욱 활개 치는 곳이니까요." "붉은 달빛이라…" 에리필은 유미의 말을 작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유미는 에리필의 '당신이라면 무언가 대책이 있을 것이요.'라는 표정을 재미있게 여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에 덩달아 에리필 역시 짧게 웃음 지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두 가지요?" 그들의 대화에 흥미를 보이고 있던 진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유미는 그런 진을 향해 화사한 미소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죠. 한 가지는 여기서 그냥 자는 것입니다. 대신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시간을 정해 보초를 세워두는 방법이죠. 그리고 다른 방법은 이곳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곳을 넘는다? 그게 무슨 뜻이죠?" 샤넬리는 이곳이 살육의 나라라는 것도 몰랐다. 사실 유미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은 분명 이방인이니까. 그래서 오늘 하루 돈 곳이 라그니슈의 모든 것이라 샤넬리는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쏟아져 나온 유미의 말은 자신의 생각 이상의 것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유미는 샤넬리를 향해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샤넬리가 그녀의 미소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유미는 고집스럽도록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이곳을 넘는다는 이야깁니다." "누가 넘는다는 말인지 몰라서 묻는 건 줄 알아요? 내 말은 그게 무얼 뜻 하냐 이 말이에요." "호호호, 이방인인 당신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죠. 그런데 어느 방법을 택하시겠어요?" 나비처럼 하늘하늘 거리는 옷이 그녀가 잘게 웃으며 몸을 떨자 덩달아 춤을 추듯 허공에 수를 놓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부아가 치밀어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샤넬리가 노려보고 있었다. 살육의 현장은 그녀가 만든 작은 춤사위에 아주 잠시 인세가 아닌 선계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 믿을 만큼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화려한 빛은 번쩍임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 다. 유미는 조용히 웃음을 거둬들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제야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아챈 일행은 잠시 머리를 굴렸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이곳 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으로 갔으면 좋겠네요." 진이 기대된다는 음성으로 이야기하자 에리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시했고, 샤넬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호!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놓았답니다." 그녀는 말을 하며 삼 층짜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일행들도 들어갔다. 삼 층짜리 건물은 용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2층과 3층을 이어주는 계단만이 제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일행은 삼 층에 올라와 오른편으로 꺾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십 걸음을 옮겼을까? 일행은 회색빛 벽에 검은 얼룩이 진 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미는 말없이 벽을 잠시 바라보다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암회색 벽은 사라지고, 어두컴컴한 공간이 나타났다. 유미는 뒤를 향해 말하며 어둠의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또 다른 라그니슈로 가 보실까요?" 시커먼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어둠의 공간을 잠시 노려보던 샤넬리가 유미 다음으로 몸을 날렸고, 진, 에리필 순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 모두가 시커먼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회색 벽은 본래의 색을 찾았다. 그렇게 살육의 나라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유리미가 공간의 문을 연 것 같군." 포동포동한 얼굴에 귀엽게 생긴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사내가 이야기했다. 장내에 있던 칠 인은 그가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입은 주인과는 상관없이 근질근질 거린가 보다. 화려한 금발에 그에 걸맞는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한 여인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이거 혹시 에리필에게 반한 거 아냐?" "그건 너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칼이 관리되지 않아 조금 지저분해보였지만, 그것이 나름의 매력을 풍기는 사내가 툭 쏘듯 면박을 주자 금발의 여인은 대번에 달려들 듯 외치며 쓸모없는 말싸움을 시작했다. 그들의 말싸움을 잠시 지켜보던 거한이 상석의 인물에게 말했다. "저들에게 라그니슈를 보여줘도 되는 건가?" "……." 그의 묵직한 음성이 실내를 울려도 상석의 인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반개한 눈이 떠지며 무겁게 닫힌 그의 입술이 열렸다. "나인 드래고니아인 그녀가 행동한 이상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할 수 없다. 설혹 상대가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의 음성은 낮게 울리고 있었지만, 강렬한 힘이 실려 있어 좌중은 그의 기세 아래 조용한 침묵을 맞이했다. ==================================================================================== 다행히도 낼 시험이 없어서...아니 오늘이라고 해야겠군요. 더구나 아침 수업이 휴강인지라... 마음 놓고, 과제를 한 뒤,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흑흑...그러나 아직 과제의 라스트 씬과 파워 포인트가 남았으니...그건 내일 아니, 한숨 자고 해야겠네요....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29 회] [공지] 연재에 대해... 험험.. 요즘 시험기간이라...셤공부와 과제의 압박으로 인해 글을 올리기가 힘이 드네요, 그렇다 보니 아마도 화요일 쯤이나 되어야 올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곳이 바로 나인 드래고니아의 거처였다. ?개의 구역은 각기 쾌락의 나라, 무의 나라, 평온의 나라, 살육의 나라로 불렸다. 챰蔓?마스터 [129 회] 날 짜 2003-12-06 조회수 1451 추천수 5 선작수 1220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 이전 이후 >>> [공지] 연재에 대해... 험험.. 요즘 시험기간이라...셤공부와 과제의 압박으로 인해 글을 올리기가 힘이 드네요, 그렇다 보니 아마도 화요일 쯤이나 되어야 올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0 회] 124화. 라그니슈 4. 공간의 문을 통해 그들이 도착한 곳은 기묘한 방식으로 쌓아올려진 건물 안이었다. 그 건물의 용도는 다름 아닌 식사와 숙박을 할 수 있는 여관의 그것과 같았다. 일행은 자신들이 조금 전에 서 있었던 회색빛 벽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잠시지만 실망의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특히 실망과 불만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샤넬리가 유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촉새가 쪼는 것보다 더 빨리 말을 토해냈다. "이게 뭐야? 뭔가 있는 줄 알았더니, 똑같은 곳에 우릴 데려와? 그래 놓고, 뭐 이곳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흥, 당신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웃기지도 않아, 정말." 샤넬리의 독설에도 유미는 태연자약했고, 얼굴에 은근한 미소까지 곁들이며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샤넬리의 말이 모두 끝나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다 끝나셨나요? 그럼, 밑으로 내려가죠. 제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훨씬 낳을 테니." 유미는 샤넬리를 스쳐지나가며 밑으로 내려갔다. 진과 에리필은 샤넬리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걱정스런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유미의 뒤를 따랐다. 한편 벽 앞에 혼자 남게 된 샤넬리는 울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자그마한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언제나 여유 있는 척, 고고한 척하는 네년의 가면을 내가 벗겨줄 테다."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만큼 무섭다는데, 샤넬리의 한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온 일행은 유미의 태연자약했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여, 여긴 아까 그곳이 아니군요." 진이 놀랍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유미가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늦게 내려온 샤넬리도 뭐라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계단은 그들이 올라왔던 것보다 이층이나 밑에 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던 건물 안에는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숨소리와 대화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샤넬리는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들이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일행의 리더 격으로 올라선 유미의 다음 행동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미는 카운터로 가서 키 두개를 받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키를 건네받으며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에리필이 유미에게 물었다. "이곳에서도 돈이 유통되는 가 보죠?" "그래요. 이곳도 엄연히 라그니슈를 이루는 곳 중 하나니까요. 전에 에리필 씨가 잠시 있었던 살육의 나라에서부터 돈이 유통된다고 보면 될 거예요. 라그니슈의 첫 관문이 바로 살육의 나라니까요." "제가 갔었던 곳이 살육의 나라로 불리는 가 보죠?" 유미는 에리필의 물음에 작은 고개짓으로 답하며 그에게 키를 건네주었다. "많은 것이 궁금하겠지만, 우선은 잠부터 자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아마도 내일은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할 테니 말이에요." 에리필은 키를 받으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4층에 있는 여러 방 중 하나의 방문을 열며 유미가 말하자 진과 에리필도 밤 인사를 건네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샤넬리는 들어가기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유미가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려 어두컴컴한 복도에 혼자 서 있게 되자 마지못해 들어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태양이 하늘을 차지한지도 이미 오랜 옛날이 되어 버린 늦은 오전, 일행은 그때서야 부스스한 몰골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유미를 제외한 모두가 피곤한 하루를 보냈기에 그들의 늦잠은 이미 예정된 수순의 결과였던 것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태양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푸근한 공기가 전신을 어루만져주어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러기에 거리를 누비는 진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경쾌했다. 유미의 인도 아래 움직인 일행은 여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광장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길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커다란 분수가 광장 한 가운데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진은 시원한 분수를 보게 되자 그도 모르게 그리로 걸음이 옮겨졌다. 진은 대리석 계단을 밟고 올라가 잘 발달된 상체를 드러내고 있는 조각상 뒤로 뿜어져 올라오는 분수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일행은 슬그머니 사라진 진을 한동안 찾다 멍한 모습으로 분수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휴우, 천성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에리필은 자기 합리화로 마음을 다스리며 진에게 다가갔다. 그의 뒤로 유미와 샤넬리가 따랐음은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이었다. "보기 좋으냐?" "예?" 진은 정신없이 조각상과 분수를 바라보다 친근한 음성에 상념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에 에리필은 다시 한번 소리죽여 한숨을 토했고, 그가 한숨을 다 토하자 유미 와 샤넬리도 분수대 앞에 도착했다. "하하, 조, 좋네요." 진은 그제야 돌아가는 분위기와 자신이 행한 행동을 상기하며 어색한 미소를 곁들이며 떠듬떠듬 대답했다. 순간 샤넬리의 손이 검집으로 갔지만,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진은 계속해서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아, 저런 어리벙벙한 녀석을 일일이 상대하다간 나만 피곤해질 뿐이야.' 샤넬리는 삼분의 일 쯤 뽑혀진 검을 밀어 넣으며 조용히 뇌까렸고, 이 모습을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유미가 바라보고 있었다. 어지럽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유미가 조각상과 분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조각상은 뇌신 발케니아를 조각한 거라고 들었어요. 수많은 신들 중에 뇌신 발케니아만이 신전이 없다 하지만 사실 그건 틀린 이야기죠. 여기만 해도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이 있으니 말이에요."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이라 처음 듣는 이야긴데, 근거 있는 이야긴 가요?" 샤넬리는 조용히 중얼거리다 유미를 쏘아보며 말했고,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대신 가늘고 아름다운 손가락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 끝을 쫓은 세 사람은 순간 입을 크게 벌렸다. "저곳이 정말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인가요?" "그래요." 유미는 번개 문양과 거대한 망치가 조각되어진 건물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모두는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뇌신 발케니아라고 하면 거대한 망치와 그로 인해 생기는 번개를 생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은 열 명의 장정이 손으로 감싸야 잡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기둥 스무 몇 개가 떠받치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둥 위에는 삼각형 모양의 지붕이 세워져 있었고, 그 지붕 위에 거대한 망치가 무언가를 때리므로 번개가 생기는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은 대리석 계단 108개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계단 하나하나 마다 각기 다른 뜻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진 일행은 잠시간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을 말없이 쳐다보다 거의 동시에 유미를 바라보았다. 유미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짐작했다는 듯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이 첫 번째로 가야할 곳이 바로 저곳이에요. 왜냐하면 저곳에서 능력인증을 받지 못하면 다른 곳은 들어가지도 못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곳이라 하면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어제 물어 보려다 시간이 늦어 묻지 못했는데…" 에리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유미가 그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답했다. "검은 삼각지대의 중추인 라그니슈는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살육의 나라를 포함하고 있어요. 그리고 살육의 나라에서 만 하루를 보내게 되면 안내자가 나타나 한 가지를 물어 보죠. 또 다른 세계로 가고 싶은가 라고요. 하여튼 그 질문에 긍정의 의사를 표하면 이곳 무의 나라에 있는 여러 여관 중 한곳으로 이동하게 되죠. 그리고 여기 무의 나라에서 능력을 인증 받게 되구요. 진정한 무의 나라는 뇌신 발케니아 신전의 뒤에 있고, 이곳에서 살고 싶으면 능력인증을 꼭 받아야 되기에 모든 사람들은 그 시험에 응하게 되죠. 만에 하나 나인 드래고니아가 세운 규율을 어기게 되면 그에겐 비참한 최후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죠." 그녀의 비참한 최후라는 말에 세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떠올랐고, 그런 말을 음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유미에게 생긴 반발이 복합적으로 섞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유미는 그들의 태도에는 일체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세 사람에게 전했다. "어쨌든 능력인증을 받게 되면 네 가지 선택권이 주어져요. 이곳 무의 나라에 남던가 아니면 쾌락의 나라로 갈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평온의 나라로 가던지. 이도 아니면 살육의 나라로 가던지 말이에요. 그리고 능력인증을 통해 낙오자로 판명되면 그들은 타의로 살육의 나라로 쫓겨나게 되요. 살육의 나라로 쫓겨난 이들은 두 가지를 할 수 있어요. 라그니슈 밖으로 도망가던지 아니면 죽음을 맞이하던지 말이에요. 대개 그들은 라그니슈 밖에 있는 마약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도망갑니다만 그들에겐 순간의 쾌락 이후 비참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어쨌든 라그니슈는 이곳 무의 나라와 쾌락의 나라, 평온의 나라, 살육의 나라 그리고 나인 드래고니아의 거처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녀의 장황한 설명에 세 사람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녀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샤넬리도 이 순간만큼은 그녀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그녀가 말을 하면서 뿜어대는 이질적인 기운은 독특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진과 에리필도 갑작스레 변한 그녀의 기질에 당황했다. 특히 에리필은 그녀의 몸에서 은근히 뿜어지는 기운 안에 숨겨져 있는 흉포함까지 감지하였기에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에리필은 아직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더욱 신경 쓰다 그녀의 이런 흉포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유미가 예전에 그를 도와주었던 한 여인의 존재를 언급하는 바로 보아 아마도 그녀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 생각되었기에 적대감은 들지 않았다. 얼어붙은 공기가 한동안 계속되자 유미가 은근히 끌어올렸던 기운을 풀었다. 그리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어색한 공기는 뭔가요? 설마 능력인증에서 낙오자로 판명될까봐 걱정되는 건 아니겠죠?" 그녀의 눈에 빤히 보이는 도발에 걸린 사람은 다름 아닌 샤넬리였다. "뭐라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누굴 호구로 아네." 샤넬리는 씩씩대며 유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샤넬리를 흥미로운 동물을 보 듯 바라보던 유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게 말해 불같은 성격이지만, 솔직히 말해 정말 단순한 성격이시군요." 그녀의 말에 샤넬리가 불을 토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이야기였다. ==================================================================================== 방금 전에 라스트 과제를 끝냈습니다. 커헉...이 과제 때문에 사일 동안 날밤을 새다니...쩝... 어쨌든 한동안 올리지 못해 오늘은 분량이 좀 많습니다. 간만에 스크롤의 압박을 경험하시기를.... 그럼 저는 쿠울 하러 가야겠네요....아마두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1 회] 125화. 라그니슈 5. 길길이 날뛰는 샤넬리를 겨우 진정시킨 일행은 뇌신 발케니아의 신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108개의 계단을 밟고 육중한 멋이 풍기는 기둥들 사이로 들어갔다. 듬직한 기둥들을 지나치며 진 일행이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기화이초들이 피어있는 정원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은 기다란 대리석 길 주변에서부터 그 만개한 꽃들을 피어올리고 있었는데, 진 일행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터트렸다. 다채로운 색상을 뽐내는 꽃길을 지나쳐 그들이 도달한 곳은 사방이 훤히 뚫려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돌로 된 테이블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무료한 표정을 지으며 간간이 하품을 토했는데, 그의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하품할 때마다 기분이 상하는지 인상을 구겼다. 그는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몇 초 있더니 심드렁한 음성으로 말했다. "통과, 다음." 그가 이렇게 말하자 인상을 구기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그리고 그는 돌로 된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이러한 괴이한 장면은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 그의 입에서 한탄인지 감탄인지 모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탈락,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실력으로 살육의 나라에서 하루를 견딜 수 있는 거지?" 그의 중얼거림은 작았으나 손을 내밀고 있던 사람의 귀에는 들리고도 남을 만큼 큰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음에도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몸을 돌리는 그의 얼굴은 은은한 붉은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는데, 그는 마치 거짓말하다 들킨 사람처럼 잔뜩 움츠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살육의 나라를 떠도는 흉포한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살육의 나라에 들어가자마자 알아봐두었던 한 곳에 숨어 하루를 버텼다. 방법이야 어찌됐든 하루를 버텼으니 그는 무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일천한 실력은 여기에선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돌로 된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의 실력을 귀신같이 알아 맞춘 것이 다.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그는 진 일행을 스쳐지나갈 때, 절망의 중얼거림을 속으로 뇌까렸다. '검은 삼각지대의 첫 번째 관문인 인간의 검도 일행을 잘 만난 덕분에 통과할 수 있었고, 살육의 나라도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더 이상의 행운은 나에게 웃지 않나 보군.' 그가 고개를 숙이며 걷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흑의를 입은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흑의를 입은 사내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흑의를 입은 사내의 말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진은 몇 명의 사람들이 절망의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을 지나쳐가는 모습을 보며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에겐 그들을 도와줄 힘이 없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에 쓰라린 가슴을 어루만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저들은 모두 세상에서 죄를 짓고, 이곳으로 도망친 악인들이잖아. 그런 이들을 위해 내가 왜 가슴 아파 하는 거지?' 진은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이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순간 헷갈렸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그의 일행들이 알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샤넬리를 보는 순간 그의 생각은 순식간에 수정되었다. '저 녀석이라면 백이면 백 멍청이라고 할 거야. 아니 그냥 멍청이라고만 하면 다행이게. 분명 상상도 할 수 없는 험한 말로 나를 골릴게 틀림없어.' 진은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는 샤넬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꼈음인가? 샤넬리가 고개를 돌려 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은 그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젠장, 또 저 말괄량이가 예쁘다고 생각했잖아. 이런 바보. 네 머리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 야?' 진은 자신의 머리를 저주하는 것도 모자라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란디아는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대가 손을 내밀진 않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자 너무도 황당해 멍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바보라고 규정한 사내 뒤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은 경악에 커다랗게 떠졌고, 얇은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려 들썩들썩 거렸다. 그때, 그의 가슴에서 어떤 소리가 울려 격앙된 그의 감정을 다스리게 만들었 다. [조용해라. 내 정체를 여기서 말해 무엇 하겠단 말이냐. 너는 그저 네 할 일이나 해라.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이 세 사람들의 전투력을 정확히 측정해라. 너의 천감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지.] 그녀의 말에 란디아는 일어서려던 엉덩이를 돌에 붙이며 진에게 말했다. "무엇하는가? 어서 손을 내밀게." 란디아는 그의 퉁방울만한 눈을 부라렸다. 그제야 진은 잃어버린 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여기." 진은 민망한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란디아는 진의 손을 조용히 잡아갔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테스트할 때 보다 훨씬 오랫동안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손을 잡고 있는 그의 표정은 음란한 생각을 하는 인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시종일관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모습과도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참동안 손을 잡고 무언가를 측정하던 란디아가 진의 손을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통과, 다음." 그는 말을 하며 유미에게 조용히 심음을 날렸다. [이 자의 실력은 이곳에서도 일급의 중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알겠다. 다음 사람도 수고해라.] [알겠습니다.] 란디아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고개를 끄덕이며 샤넬리를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샤넬리의 손을 놓아주며 란디아가 말했다. "통과, 다음." [아까 전 그자보다는 실력이 좀 떨어집니다만 일급의 초급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젊은 자들이 이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니 놀랍다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관심가지고 있는 자들이니 그거야 당연한 결과겠지. 그보다 다음의 사내는 앞서 사람들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그러니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거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란디아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에리필의 손을 잡아갔다. 그리고 그는 그의 큰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의 천감을 최대한 개방했다. 잠시 뒤, 란디아는 속으로 경악의 신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란디아가 놀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에리필까지도 말이다. "통과, 다음." [정말 놀랍습니다. 이 자의 실력은 저와 같은 특급입니다. 아마도 저희 72 드래고니아와 비슷하거나 약간 떨어지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36 드래고니아보다는 약하단 말이겠군.] [그건 당연합니다. 36 드래고니아님들은 저희들보다도 최소 두 배는 강하신 분들입니다.] [그런가? 하여튼 수고했어.] [별 말씀을.] 그는 심음을 날리며 유미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역시 이미 준비된 말이었다. "통과, 다음." [역시 유리미님의 실력은 저의 천감으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고한 경지이군요.] [아부하고는. 수고해.] 란디아는 그녀가 사라지며 남긴 심음을 음미하며 남은 사람들을 계산했다. '하나, 둘, 셋, …… , 헉 스물 넷? 젠장 나도 저분 뒤를 따라갈려 했더니. 안되겠군.' [유트란?] [네, 란디아님.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업무는 여기까지다. 나머진 네가 책임져.] [네에? 무, 무슨 말씀이신지.] [시끄러! 그건 네가 알거 없고. 하여튼 내 업무는 여기까지야.] 심음을 남기던 란디아가 돌로 된 테이블 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느긋한 걸음걸이를 자랑하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인물이 툴툴대며 돌로 된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는 란디아가 사라진 자리를 힐끔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여튼, 72 드래고니아님들은 자기 편한 대로만 한다니까. 그러니 그 밑에 있는 우리들이 고생하는 거 아니겠어?' 그의 항의 아닌 항의가 란디아의 귀로 전해지지 못했음은 당연했고, 그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그의 중얼거림이 란디아의 귀로 들어갔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의 몸이 상당히 고통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동안 너무도 바빴습니다. 아마도 한동안 더 바쁠 거 같습니다. 이런...자세한 것은 위에 공지로 남기겠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2 회] [공지]출판과 연재, 삭제에 대해... 안녕하세요. 궁극의 마스터를 쓰고 있는 황보세준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출판에 따른 삭제 때문에 이렇게 공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달, 그러니까 12월 20일 88화 캐슬 오브 마스터 마지막까지 삭제하겠습니다. 그곳까지가 2권 까지거든요. 그리고 일주일 후, 12월 27일에 3권 분량까지 다 삭제하겠습니다. 아직 3권 나머지 분량을 못올렸는데요, 요새 원고 수정때문인지라. 대략 8화에서 10화 좀 넘으면 11화 정도 남았 을 거라고 짐작해보네요. 예... 어쨌든 일정은 이러하니...아직 다 못읽었는데, 삭제해버리는 일 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3 회] 126화. 라그니슈 6. 잘 닦인 대리석 바닥을 걷다 진이 돌연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는 진의 얼굴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만난 사람처럼 찡그려져 있었다. "그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실력을 테스트한 걸까요?" "그건, 그 사람이 천감이라는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이에요." "십만 명에 한 명 타고날까 하는 그 천감을 말하는 겁니까?" 에리필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고, 그녀는 예쁜 까딱거림으로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렇군요. 어쩐지 그가 제 손을 잡을 때, 마치 저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니. 그러한 능력은 천감 밖에 없죠." 에리필은 여전히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에리필을 뒤로하고, 샤넬리가 유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어디 갈 거죠?" "어디가고 싶으신 데요?" 유미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되물었고, 샤넬리는 그녀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샤넬리가 마력적인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말했다. "나인 드래고니아의 거처. 그곳에 가고 싶어요. 당연히 되겠죠?" 샤넬리의 말에 이제껏 여유롭던 유미의 태도가 돌변하며 날이 잘선 검의 기운을 뿜기 시작했 다.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그녀의 음성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지기 싫어하는, 특히 유미에게만은 묘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샤넬리는 배에 힘을 주며 외치듯 말했다. "저는 꼭 그곳에 가고 싶은데요." 유미는 샤넬리가 물러서지 않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뿜었던 기운이라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기절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진의 안색은 창백히 변 해 있었고, 에리필 마저도 굳은 안색을 하고 있었다. "휴우, 하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에요. 사실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었어요." 샤넬리는 그녀가 기운을 풀자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쉬며 말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번 했으니. 다시 한번 더 하면 되잖아요." "그거와 이건 전혀 다른 문제에요. 그리고 나인 드래고니아의 거처는 드래고니아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성지에요. 외인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성지 말이에요." "흥, 성지는 무슨. 데려가기 싫으니까 그러는 거지, 뭐." 샤넬리는 유미가 계속해서 거절하자 심통이 났는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유미는 말을 하며 자신의 기운을 개방했다. 잔잔하게 흐르던 바람은 사납게 변했으며, 온유했던 그녀의 기운은 더없이 싸늘해졌다. 그런 그녀의 끈적끈적한 기운이 마치 거미줄처럼 모두 를 조여 와 점차 호흡이 가빠졌다. 휘이잉!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머리칼을 바라보던 샤넬리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지기 싫다는 마음은 비록 쥐어짜낸 것이지만, 입 밖으로 음 성을 토하게 만들었다. "힘이면 다 인줄 알아?" 샤넬리의 말이 대기에 퍼지는 것과 동시에 사납게 날뛰던 바람은 제자리를 찾아갔고, 강대한 그녀의 기운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의 처지도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그녀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샤넬리는 더 이상 입을 뗄 수 없었다. 이는 유미의 경이적인 능력이 은연중에 샤넬리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가 대기를 조용히 지나가자 도저히 못 참겠는지 진이 나서서 깊게 가라앉은 공기를 휘저었다. "아, 이런 어색한 분위기 정말 싫어. 하여튼 간에 샤넬리가 끼면 꼭 일이 이렇게 변한다니까." "뭐야?" 진의 말에 샤넬리가 눈을 부라리자 그는 애교만점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딱딱한 그녀의 주먹뿐이었다. 퍽! 잠시 뒤, 진은 시퍼렇게 변한 왼쪽 눈을 어루만지며 툴툴거렸다. 이에 샤넬리는 조금은 미안했던지 툭 내뱉듯이 물었다. "많이 아파?" "그래, 많이 아프다. 왜? 적게 아플까봐 걱정 되냐?" "칫, 하여튼 말하는 거 하고는." 샤넬리는 진의 면박에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녀도 자신이 잘못한 건 아는지 뭐라 반박하진 않았다. 그렇게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다가왔고, 이 적막을 깨기 위해 이번에는 에리필이 나섰 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이곳 무의 나라와 쾌락의 나라, 그리고 평온의 나라 정도군요. 뭐, 살 육의 나라도 갈 수도 있겠지만 거긴 별로 가고 싶지 않으니 제외하고. 그렇다면 유미님은 이곳 중에서 어디를 갔으면 하시는지." "글쎄요. 사실 평온의 나라는 여느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가도 볼 것도 없을 거 같고요. 쾌락의 나라는 아직 성인이 아닌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으니 거기도 여의치 않을 거 같네요. 결국 갈만한 데라고는 무의 나라 정도겠네요." 에리필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유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과 샤넬리에게 말했다. "유미님의 말씀처럼 무의 나라를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니?" "저는 사부님 생각과 같아요." "쾌락의 나라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요." 샤넬리는 끝까지 반기를 들며 맞섰지만, 여론의 힘엔 그 대항도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행은 무의 나라를 구경하기로 결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편 그들이 떠난 텅 빈 자리에 한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그리고 그는 멀어져가는 진 일행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의 나라를 구경한다고. 그렇담 갈 곳은 이미 정해졌군." 그의 말이 대기에 유포되었을 땐, 이미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진 후였다. "힘이라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팔씨름을 한 번 붙어봅시다. 팔씨름 한 번 하는데 단돈 100그실. 그러나 팔씨름에서 이기면 500그실을 딸 수 있습니다. 대신 기(氣)와 같은 편법을 쓰지 말고 순수 육체만 가지고 겨루어야 한단 말씀!" 우람한 가슴을 탕탕 치며 말하는 사내는 주위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자극 받은 한 사람이 은화 하나를 내밀며, 팔을 걷어붙였다. "하하, 거 성격한번 시원해서 좋구먼." 사내는 보기 좋게 그을린 팔을 준비된 테이블 위에 올리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그의 경이로운 팔뚝을 보는 사내의 얼굴은 괜한 일을 벌인 사람의 그것과 같이 후회의 감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도대체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사내는 물러서지 않고 거한의 손을 맞잡았 다. 두 사람의 손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꽉 움켜졌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눈에는 작고 야들야들한 여인의 손을 스리슬쩍 잡아채는 한 남자의 우람한 손만이 부각될 뿐이었다. "준비 되었습니까?"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의 주인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인의 손처럼 야들야들한 손의 주인이 신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내는 친절히도 상대에게 먼저 힘을 써볼 것을 권유했고, 그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 되었다. "으럅!" 사내는 힘찬 기합성과 함께 상대의 팔을 테이블 위에다 박아버리기 위해 온 힘을 팔에 불어넣었다. 그러나 상대의 손은 처음 시작한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약이 바싹 오른 사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안간힘을 다했다. 기묘한 신음소리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까지 안간힘을 다해도 상대의 손은 그 자리, 그곳을 고수하고 있었다. 고개를 아예 팔에 같다 붙이다시피 힘을 주던 사내는 순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순간 자존심에 금이 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상대는 능글맞은 미소에 지겹다는 듯 작은 하품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지금껏 억눌러 놓았던 분을 터트리게 만드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감히!" 상당히 격노했는지 그의 음성에는 살기마저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손에 막대한 기(氣)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드드! 엄청난 기(氣)의 힘이 팔에 모이며 그 진동이 테이블에게까지 전해졌고,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거한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이러시면 안 되죠. 손님!" 그는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되자 기(氣)가 잔뜩 주입된 상대의 거 력에 잠시 자리를 이탈했던 손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상대의 손을 테이블 위로 꽂아버렸다. 쾅! 엄청난 타격음이 울리며 기(氣)를 불어넣었던 사내는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충격에도 테이블은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 다음 사람 없습니까? 이기면 500그실. 져도 100그실 밖에 손해 보지 않습니다." 사내는 손을 탁탁 털며 주위를 향해 외쳤다. 이 모습을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던 진 일행은 허둥지둥 사라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는 도망치듯 사라지면서도 연신 뒤를 힐끔거렸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면서도 불쌍한지 보는 이의 마음에 안쓰러운 감정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진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기(氣)까지 쓰고, 저런 꼴사나운 모습으로 지니 나라도 도망가겠다." 진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다시 거한의 사내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거한의 사내에게 관심을 표하며 한동안 지켜보고 있는 사이 멋모르고 덤벼들던 몇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꼴사나운 결말을 맞이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결과만 나오니 주 위에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한 둘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 일행도 슬슬 지겨워져 '이제 가 볼까.'라는 생각에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거한의 사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거기 계신 듬직한 두 분도 한 번 해 보시죠." 그의 말에 두 사내는 인상을 찡그렸고, 두 여인은 흥미롭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으음, 진아 아무래도 젊은 네가 하는 것이…" "무슨 말씀이세요. 저보다 훨씬 강하신 사부님이 하시는 것이…" 두 사내는 두 여인들 앞에서 빼기도 뭐해서 서로에게 양보했지만, 두 여인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두 분 다 해 보세요. 재밌을 거 같아요." "맞아요. 기대 되요." 이때만큼은 한 마음이 된 유미와 샤넬리는 맞장구까지 치며 진과 에리필을 곤욕스럽게 했다. 결국 두 사내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사지로 몸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쾅! 쾅! 경쾌하면서도 호쾌한 소리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울렸고, 두 사내는 울상을 지으며 두 여인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한다는 변명이…….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어." "정직하게 기(氣)는 쓰지 않았어." 이런 그들의 변명은 분명 상대를 제대로 보고 했어야 했다. "질 줄 알고는 있었지만, 1초 만에 넘어간다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되네요." "하여튼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두 사내는 그녀들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묵묵히 뒤만 따랐다. 그들의 뒤로 호쾌한 사내의 음성이 아련하게 울렸다. 두 사내의 심금을 울리는 아련한 소리가. "싸요, 싸. 이기면 500그실. 져도 100그실. 손해 볼 거 전혀 없다니까요." '씨이, 도대체 어떤 손해를 보지 않는단 말이야? 한없이 쪽팔리기만 하구만.' '하여튼 여자들의 부추김에 놀아나는 나도 참…' 두 사내의 상처 난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의 음성은 쉬지 않고 거리를 울리고 있었다. 여러 사내의 마음을 울리듯이. ==================================================================================== 한숨 자고 일어나서 올린 겁니다. 이제 점심겸 아침을 먹는다는....간식겸까지 되겠군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4 회] 127화. 라그니슈 7. 검은 삼각지대의 라그니슈는 세상에서 악인이라 불린 사람들 중에서도 강한 힘을 가진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 중에서도 살육과 폭력의 광기에 미치지 않은 진정한 강자들이 거하는 곳이 바로 이곳 무의 나라다. 무의 나라는 으슥한 골목이나 한산한 공터 주위에는 어김없이 일대 일이든 일대 다수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바로 무의 나라기 때문에 이들의 싸움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지나가던 사람이 이유도 없이 벌어진 싸움판에 뛰어드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나 일대 다수의 싸움은 이곳 무의 나라가 걸어둔 법인 '살인하지 말라.'를 종종 어기게 만들었다. 그래서 무의 나라에서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못해 욕구불만에 빠진 이들에게 그들의 힘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무의 나라의 성지라 불리는 천무의 탑이다. 천무의 탑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여 년 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 탑이 세워진 배경에는 라그니슈 전역을 뒤흔든 '피의 항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의 항쟁'은 드래고니아의 강대한 힘에 의해 살육의 광기를 타의에 의해 억누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신세에 회의감과 그로 인한 뒤틀린 반발심에 의해 일어난 싸움이었다. 그러나 강제에 들고 일어난 이들은 어이없게도 그들의 힘을 드래고니아에게로 돌리지 않고, 라그니슈 밖에 살고 있는 힘없는 검은 삼각지대인들에게 사용하여 결국 광기에 젖은 살육의 문을 열었다. 그들은 지금껏 억눌러왔던 피의 쾌감에 전율하며 미친 듯이 사람들을 갈가리 찢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전신에 진한 쾌감의 전류를 일으키는 혈해와 혈향이 자신들의 피로 만들어지게 될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들이 일으킨 '피의 항쟁'은 드래고니아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역이었고, 그들은 곧 반역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등장하자 상황은 급속도로 역전되었고, 결국 '피의 항쟁'은 덧없이 흘린 피로 슬픔의 눈물을 대신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을 맞이했다. 뜨거운 선혈들이 고여 이루어진 호수 앞에서 드래고니아들은 자신들의 강압 정책에 회의를 느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랜 세월동안 검은 삼각지대를 지배하고 있는 자신들의 신념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천무의 탑이라는 곳을 세워 싸움을 갈망하는 그들의 욕구를 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진 일행은 천무의 탑 앞에서 유미의 자상한 설명을 들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행은 탑의 외벽에 은은한 붉은 빛이 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꺼리 낌 없이 말하는 진을 보며 유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후후,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네요. 이건 여담이지만, '피의 항쟁' 당시 피 흘리며 죽었던 이들이 항상 이 탑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해서 천무의 탑의 외벽이 붉은 빛을 띤다는 이야기가 전해내 려 오고 있지요." "하하, 설마요." 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유미에게 손을 저어 보이며 '농담 하지 마세요.'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유미는 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 토막씩 또박 또박 끊으며 말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말처럼 탑 주위를 떠도는 원혼을 본 이들이 꽤 된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말을 끝맺은 뒤, 진에게 등을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발을 떼는 그녀의 입가가 미묘하게 말렸는데, 이를 알리 없는 진은 그녀의 뒤에서 걸음을 옮기며 얼굴에 난 잔털이란 잔털은 모두 곤두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은 그런 몸의 변화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껴 손으로 얼굴을 쓸다시피 매만지며, 당차게 외쳤다. "누가 그딴 귀신 따위가 무섭다고 그래요. 하하하, 세 살짜리 꼬맹이도 그런 귀신들은 무서워하지 않겠다." 휘이잉! 그때 갑자기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진의 몸을 감싸고 지나갔고, 순간 그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힐끗 훔쳐본 샤넬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우리 일행 망신은 진이 다 준다니까." 그녀의 중얼거림은 한기가 섞인 바람과 함께 사라졌고, 그들은 천무의 탑을 상징하는 거대한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천무의 탑은 그 문부터 웅장한 느낌을 주었는데, 강인한 기사의 방패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이곳이 무를 숭상하는 곳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무의 탑은 '누구의 방문도 환영한다.'는 것을 말해주듯 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진 일행은 어렵지 않게 거대한 문을 통과해 천무의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 일행은 유미의 뒤를 따르며 천무의 탑 안으로 들어갔는데, 얼마쯤 걷다 커다란 문이 눈앞에 보이자 유미가 걸음을 멈추며 뒤돌아보았다. 그녀는 개구쟁이들이 짓는 짓궂은 미소를 입가에 만들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녀의 입이 열리며 장난 끼 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네?" "무슨?" 진과 에리필은 난데없는 그녀의 질문에 놀란 듯 되물었고, 샤넬리 역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미는 그런 이들의 당혹해하는 표정을 잠시 음미하다 이것도 곧 싫증났는지 새침한 목소리 로 말하기 시작했다. "천무의 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전투 즉 싸움 밖에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 싸움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지위와 부를 제공해주는 도구이기도 해요. 그러나 여기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은 라그니슈에 이름을 새긴 사람뿐이에요." "그렇단 말은 우리가 그 싸움이라는 것을 하려면 이곳 라그니슈에 이름을 새긴 후,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요?" 샤넬리의 물음에 유미는 장난스런 미소를 지을 뿐,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반응을 샤넬리의 급한 성격이 용납할리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얼굴은 마치 활화산의 분화구가 붉은 분노를 터트리기 일보직전의 모습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노련한 유미는 그녀의 분화구가 불을 뿜기 직전인 절묘한 타이밍에 입을 열어 그녀의 분노가 어정쩡한 상태에서 굳어지게 만들었다. "본래 라그니슈에 이름을 새긴다는 말은 샤넬리 양의 말처럼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맞아요. 일정 이상의 지위 내지는 특별 임무를 받지 않는 한 세상에 나갈 방법이 전무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죠. 그렇기에 아마도 세 분은 라그니슈에 이름을 새기지 않겠죠?" 유미는 말을 잠시 끊고, 에리필과 일행을 둘러보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를 본 유미는 화려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기에 저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았어요." "그게 뭐죠?" 진은 그녀의 말이 한 문장을 이룬 후, 잠시 쉬는 짧은 틈을 노려 외치듯 물었고 유미는 잠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그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사실 이건 편법이긴 하지만 편법도 좋은 방법이라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겠죠. 호호, 방법은 간단해요. 드래고니아에게 한 가지 맹세만 하면 되거든요." "흥, 보나마나 자신들의 이윤을 위한 맹세겠지." 샤넬리는 유미를 쏘아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러나 유미는 한기를 풀풀 날리는 샤넬리의 눈빛을 태연히 받아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들어보시고 결정하세요. 드래고니아 즉 검은 삼각지대에서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크게 불리할 건 없으리라 보는데요." 유미의 은근한 물음에 샤넬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자신들에게 돌아갈 피해는 없 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리필은 천무의 탑이라는 곳에 호기심을 느끼긴 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현재 그가 여기 들어온 이유는 샤넬리를 지키기 위해 따라들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유미의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미님의 말씀대로라면 저희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고 천무의 탑에 들어갈 수는 있겠군요. 하지만 천무의 탑에 들어가면 전투라는 것을 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샤넬리 양 역시 위험한 전투를 치러야 하니 그녀를 호위하는 입장으로서 결코 반길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흥, 제 실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시나요? 저는 충분히 강하다고요." "그건 샤넬리 양 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 안에는 샤넬리 양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 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겨룬다고 하여 다 죽거나 다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저랑 진이 이때까지 싸운 때는 말리지 않았으면서 왜 지금에 와서야 말리는 거죠?" "후우,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틀립니다. 그때는 그 싸움을 중재할 수 있는 제가 바로 옆에 있었기에 허용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격투장 위에서 일대 일로 싸우기에 제가 도와줄 수가 없는 겁니다." 에리필은 그녀가 너무도 완강히 나오자 사정조로 바꾸며 그녀를 설득시키려 했다. 그러나 샤넬리는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바꾸지 않는 완강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진심이 깃들인 설득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유미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무의 탑에 들어간다고 해서 굳이 싸울 필요는 없어요. 음, 본래 이 문을 통과하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지만, 제가 옆에 있으니 싸움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렇다면야…"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유미의 말에 에리필이 적당한 타협점을 발견하고 그녀의 말에 따르려는 순간, 샤넬리가 완강한 기색으로 말했다. 순간 에리필은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샤넬리에게 대놓고 말하기도 뭐해 그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허무의 공간에다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후우, 계획이 계속 틀어지고 있구나. 본래 대로 라면 살육의 나라에서 돌아갔어야 되는데, 저 유미라는 여인 때문에 우린 검은 삼각지대에 너무나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구나. 하아, 지금 이 순간 세르디스 녀석이 이렇게 얄미울 수가 없구나.' 에리필은 가슴이 답답해져 괜히 세르디스만 원망했다. 물론 그의 원망이 저 멀리 떨어진 세르디스에게 전해질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토해내고 싶은 게 에리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에리필과 샤넬리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또 다시 유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샤넬리 양이 격투를 한다는 것이 불안한 거 십분 이해해요. 하지만 여기 천무의 탑의 격투만큼 안전을 보장하는 곳도 드물 거예요. 여기선 실수라도 사람을 해치게 되면 가차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거든요. 그렇기에 여기만큼 안정을 보장하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 "아, 정말 그렇게 못 믿겠어요?" "하아, 알겠습니다.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 같으면 제가 도중에 뛰어들어서라도 시합을 멈출 것입니다." "호호, 그러시던가요. 그렇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에리필이 찜찜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지만 샤넬리의 '맹세의 언약'을 외우라는 채근에 하는 수 없이 외웠다. 세 사람 모두 '맹세의 언약'을 외우자 유미가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천무의 탑을 구경하러 가 볼까요?" 그녀는 커다란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일행 역시 그녀를 따라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 연속 삼연참을 기대하시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5 회] 128화. 천무의 탑 1. "우와, 마치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온 거 같아요." 진이 옆을 지나치는 로브를 입은 사내와 허리에 검을 찬 사내를 힐끔거리며 말하자 에리필이 포근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 일행은 일보 일보를 걸을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강렬한 투기를 지녔다는데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진 일행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며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그렇게 걷길 대략 30여분이 흘렀을까? 그들은 널따란 길 대부분을 막고 있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돌출된 직육면체 돌덩이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느 무도대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합장의 모습과 흡사했으며, 그 위에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은 이곳이 여느 격투장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시합장 주위에는 편하게 시합을 관전할 수 있도록 곳곳에 의자들이 구비되어 있기도 했다. "저곳이 바로 격투장인가 보죠?" 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유미가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이곳은 천무의 탑에서도 가장 낮은 랭크를 받은 자들이 전투를 치르는 곳이에요. 여러분들이 전투를 치를 만한 곳이 아니란 말이죠." "그렇단 말은 자신의 실력에 맞는 곳을 스스로 골라 전투를 치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에리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유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렇진 않아요. 본래 이곳에 들어오면 무조건적으로 이곳에서 전투를 치러야 되고, 3승을 거두게 되면 다음 격투장에서 전투를 치를 자격을 줘요." "그렇다면 어찌됐든 우리도 저곳에서 전투를 치러야 된다는 이야기네요." 샤넬리가 내키진 않는다는 듯 이야기하자 유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이미 편법이란 것을 쓴 이상 끝까지 편법으로 나갈 생각이에요. 그리고 제겐 이런 편법을 가능케 하는 권한이 있죠." 그녀는 말을 하며 격투장을 지나갔다. 중간에 잠시 검문이 있었지만 그녀의 팔찌를 보여주자 혼비백산하며 극도의 예를 표하며 지나가게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일행은 여섯 개의 격투장을 지나갔고, 뒤에 갈수록 격투장의 규모나 외형이 앞서의 것보다 뛰어남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덟 번째 격투장을 눈앞에 두었을 때, 문득 이상함을 느낀 진이 유미를 향해 물었 다. "그런데 이 탑이 이렇게 넓고, 길었나요? 그리고 이 탑의 높이로 보면 최소 몇 십층은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다른 층으로 올라갈 방법은 보이지도 않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유미는 진의 궁금증에 왠지 모를 승리감을 맛보았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사실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맛보게 하여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내면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주었다. "그건 이 탑의 특이성 때문이에요. 사실 아까 이야기해주었어야 하는데,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듯해서 말하지 않았거든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은 가로와 세로가 뒤바뀌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쉽게 말해 우린 지금 앞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지금 우리 몸은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게 가능한 이야긴가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미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진실을 말하는 자의 그것처럼 확고했으며 자신만만했다. "호호, 사실 믿기 힘든 이야기임엔 틀림없어요. 하지만 제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마법 때문이죠." "마법요?" "그래요. 마법 말이에요. 아직 진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으니 간단히 설명해 줄게요. 마법이라는 것은 공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아, 조금 전에 말했던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수련 공간도 이와 같은 마법의 힘에 의해 만들어졌죠." 진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예전에 가 보았던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를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진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미에게 말했다. 그런 그의 음성에는 수긍하기는 하겠지만, 인정하긴 힘들다는 성질의 감정이 녹아 있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군요.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그 마법이라는 힘이 제가 익히는 기(氣)의 힘보다 더 강하다는 말인가요?" 진의 침중한 음성에 에리필은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져 있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하, 녀석하고는. 얼굴이나 좀 펴 거라.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마법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란다. 사실 마법사랑 기(氣)를 사용하는 무인의 대결은 순수한 실력으로 판가름 날 뿐. 마법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 그 울상인 얼굴부터 어떻게 좀 해라." "어이구, 하여튼 가지가지 한다니까. 어떻게 무식해도 이렇게까지 무식할 수가 있는 거냐? 휴우, 아무리 마법사가 무인에 비해 적은 숫자라 하여도 마법사란 존재가 그렇게까지 희귀한 존재는 아닌데 말이야." 샤넬리의 타박에 진의 얼굴은 은은한 붉은 색으로 변색되었다. '칫, 그런 거 좀 모를 수도 있는 거지. 그렇다고 무식하다고 하냐. 흥, 그래서 넌 자기보다 무식한 나보다도 약하냐? 음, 이런 말 하면 분명 또 무식한 것들이 힘만 자랑한다고 하겠지. 휴우, 이럴 때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불쌍하구나. 결국 무식한 게 죄란 말인가?' 진의 얼굴은 은은한 붉은 색을 띠면서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는데, 대뜸 반박부터 하며 나설 줄 알았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모두의 시선은 그의 얼굴로 집중되었다. 결국 진의 화려한 얼굴변화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볼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진의 얼굴 근육이 좌충우돌하며 움직이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모두의 시선은 허공을 찾아 움직였고, 유미의 입술은 자연스레 민망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참에 마법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드릴게요. 뭐, 알아두면 최소한 무식하단 소리는 듣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의 말이 진의 가슴에 상처를 냈는지 그는 가슴을 잡고 비틀거리는 시늉을 취했다. 이에 유미는 진이 마음을 진정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편안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여기 천무의 탑에 걸린 마법 정도를 걸려면 최소 마스터 급에 도달한 마법사 세, 네 명은 필요해요. 그렇다면 이 마스터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실력을 말하는 걸까요? 음, 순수한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아마 지금의 에리필씨 정도의 실력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에리필은 유미의 말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말은 에리필을 추켜 세워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기껏 해봐야 최상급 마법사와 비슷하거나 조금 상회하는 정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미는 그런 에리필의 기색을 모른 척하고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진을 향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마법사의 실력은 어떻게 분류되는가 하면 말이죠. 바로 초급 마법사, 중급 마법사, 상급 마법사, 최상급 마법사, 마스터, 초 마스터로 분류돼요. 쉽게 예를 들어보면 지금 진과 샤넬리 양의 실력이라면 중급 마법사 보다는 강하고, 상급 마법사보다는 약하거나 비슷한 정도일 거예요." 유미의 상세한 설명에 진은 속으로 고마워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유미는 모호한 미소만 지을 뿐. 어떠한 답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대답 듣기를 포기한 진은 다른 한 사람이 생각나 그에 관해 물었다. "그렇다면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주인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무인이신 에드윈 더 세필로스님은 마법사로 분류하자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계신건가요?" "그 물음의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 같은데요. 에드윈 더 세필로스님은 초 마스터인 마법사보다 더 강하세요. 백년 내에 유일한 초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해키에스 지로브는 비록 흑마법사였지만, 그는 분명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염원하는 초 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랐었거든요. 그러나 그는 그 강대한 힘을 악용해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에드윈 더 세필로스님이 검을 들고 일어나 그를 파멸의 길로 인도했죠." "그…렇군요. 하여튼 그 분의 힘은 절대적인 강함 그 자체군요." 진이 몽롱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듯 말하자 유미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녀의 속내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렇죠. 누가 뭐라 해도 에드윈 더 세필로스님은 현…존하는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분이시니 까요." 유미의 떨떠름한 끝말이 대기를 울리자 약속이나 한 듯 어색한 침묵이 다가왔고, 일행은 그 어색함이 이상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제 8 격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6 회] 129화. 천무의 탑 2. 제 8 격투장은 앞서 본 일곱 개의 격투장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우선 돔 형식의 커다란 건물은 관중들이 시합을 구경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놓았고, 이곳부터는 돔 형식의 건물에 무의 나라와 이밖에 쾌락의 나라와 평온의 나라 곳곳에 있는 워프 존을 통하여 들어올 수 있도록 해놓았다. 비록 한 번 입장하는데 3000그실이라는 돈이 들긴 하지만, 한 번 입장하면 하루 종일 시합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 8 격투장 이후부터는 관중석이 언제나 만원이었다. 그리고 제 8 격투장부터는 선수 대기실도 있고, 의료시설이나 그 밖에 선수를 보호하는 차원에 관한 여러 가지 배려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천무의 탑에는 총 12 개의 격투장이 있는데, 제 8 격투장에서 시합을 할 수 있는 자들은 암묵적으로 드래고니아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드래고니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승부 결과에 따라 드래고니아의 서열이 매겨지기에 그들은 모든 시합에 목숨을 걸고 승부를 건다. 그러나 그들은 드래고니아의 감시자들의 눈을 의식해 순수한 힘을 겨룰 뿐, 상대를 죽일 목적으로 검을 휘두르진 않는다. 그렇지만 절정에 달한 무인들의 싸움은 언제나 죽음을 마주보며 그 힘을 겨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드래고니아에서 파견된 이들 여럿이 현장을 살펴보고, 그가 무죄인지 유죄를 결정하기에 드래고니아가 내세운 '살인하지 말라.'란 규율을 범해도 되는 특권을 종종 받는다. 물론 이러한 특권은 드래고니아에서 주는 것이지, 본래부터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실수를 가장한 살인은 가차 없이 비참한 죽음이라는 응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싸움들이 매일의 일상이 되어버린 제 8 격투장의 접수처에 진과 샤넬리가 접수를 하기 위해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내민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서류를 다 작성한 진과 샤넬리는 번쩍이는 금테를 매만지는 사내에게 서류를 내밀었고, 그는 쭉 짖어진 눈으로 서류를 잠시 훑어보다 사무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진 씨는 제 9 시합에 나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미스 샤넬리는 제 10 시합에 나가시면 됩니다." 그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두 장의 종이를 진과 샤넬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격투장 쪽을 바라보았다. 진과 샤넬리는 접수처의 사내가 자신들에겐 볼 일 없다는 듯한 행동을 보이자 잠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 그들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격투장 위를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던 접수처 사내가 그들의 뒤를 힐끔 훔쳐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리미님이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라 기대되는군. 그런데 왜 여자 쪽은 실력이 약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신건지." 한편 유미와 에리필은 숨 막히는 공방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다 진과 샤넬리가 다가오자 반갑게 맞이하며 몇 번째 경기냐고 물었다. "저는 아홉번째 시합이고, 샤넬리는 그 다음 시합이에요." 진의 말에 유미가 아름다운 미소로 화답하며 기분 좋은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시합이 제 8 시합이니까, 진은 그 다음 시합에 나가면 되겠네요." "그래요? 잘됐네요.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는데." 유미는 진의 말을 넘겨들으며 절정에 다다른 제 8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격투장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근육질 위에 수많은 상처들이 나 있는 몸통을 훤히 드러낸 한 사내의 대검이 대기를 파괴하며 날렵하게 생긴 중년인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중년인은 그리 길지 않은 단검 두 자루를 교묘히 이용하여 그의 공격을 슬쩍 흘렸다. 그렇지만 대검을 휘두르는 사내의 힘이 워낙 대단했기에 그는 완전히 힘을 흘리지 못하고, 그만 잠시 중심이 흔들려 버렸다. 그리고 대검의 사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대검을 마치 수수깡을 휘두르듯 장난치 듯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대검에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거력이 담겨 있었다. 그 증거로 대검 주위에 은은한 푸른빛이 어려 있었다. 이를 본 중년인은 순간 당혹에 찬 음성을 토하며 몸을 비틀려 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중년인은 단검 두 자루에 짧은 시간에 주입시킬 수 있는 최대의 기(氣)를 밀어 넣어 그에 대검에 맞섰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주입할 수 있는 기(氣)의 양이라는 것은 보잘것없는 정도였다. 쾅! "크학!" 대검의 거력 앞에 중년인의 단검 두 자루는 산산이 부서졌고, 그 또한 엄청난 충격에 뒤로 튕겨나갔다. 쿵! 그는 바닥에 떨어질 때, 낙법 한 번 치지 못하고 다시 한번 내부가 뒤집히는 고통을 겪었다.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입으로 피를 토하자 의료처의 사람들이 튀어나와 그를 데리고 나갔다. 제 8 격투장의 한 가운데는 대검을 바닥에 끌고 있는 사내 혼자만의 세계였다. 그리고 잠시 후, 돔 경기장 전체를 울릴 정도로 커다란 음성이 울렸다. "제 8 시합은 대검의 전사 톰 크레인의 승리입니다." "와아아아!" "역시 이곳의 전사는 너밖에 없다." "암, 크레인의 대검은 모든 것을 파괴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마이크(음성 증폭기)를 들고 나온 사회자가 시합장 밑에서 걸어 나와 톰 크레인의 손을 들어올리자 모두는 미친 듯이 환호하며 열광의 외침을 토했다. 지금까지의 숨 막히는 적막과 침묵의 세계가 마치 거짓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환호는 광기에 젖은 사람들이 터트리는 열렬함 속에 계속되었다. 톰 크레인이 그들의 환호에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하자 돔 경기장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잠시 후, 톰 크레인이 격투장 밑으로 내려가고, 관중들의 흥분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판단한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자, 뜨겁게 달아오른 흥분은 다음 시합을 위해 남겨 두시고, 우리 모두 다음 대전자들을 알아볼까요?" 그가 운을 떼자 '두두두두두'란 소리가 돔 경기장 곳곳을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도 은은한 여운만을 남기게 될 때, 사회자의 입이 열렸다. "소개하겠습니다. 홍염의 전사 파트론 드르슈와 미소년 검객 올슈레이 진을 소개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경기장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드르슈!'란 이름으로 울렸다. 한편 이러한 응원 열세인 상황에서 시합에 임해야 하는 진은 샤넬리의 바가지에 귀를 틀어막으며 격투장 위로 올라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네가 미소년이 될 수 있는데?" 샤넬리의 잔혹한 일침은 격투장 위에 올라간 진의 등을 후려쳤고, 그의 중심을 흩트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으로 그녀의 일침을 짐짓 여유 있게 받아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진의 행동이 샤넬리의 부아를 돋우었지만, 이미 그는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상태였기에 그녀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진은 앞에 선 사내의 엄청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피부로 느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진은 그의 눈을 노려보며 눈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만큼 웃긴 이유는 그들의 신장의 차이 때문이다. 진은 175 키르(센티미터)에 이르는 그 나이 때 소년들 보다는 키가 큰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상대인 홍염의 전사 파트론 드르슈는 자그마치 그 키가 2 라키그(미터)하고도 35 키르(센티미터)에 달해 있었다. 간단히 말해 그들의 신장 차는 자그마치 60 키르(센티미터)라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진은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목을 뒤로 꺾어 상대를 올려다 봐야 했고, 그완 반대로 파트론 드르슈는 목의 뒤 근육이 땡 길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회자는 그들의 눈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 눈싸움도 절정에 다다랐다고 판단하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많이 기다렸습니다. 제가 많은 말 해봐야 지루하기만 할 테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땡! 사회자가 말을 하고, 격투장 밑으로 내려가자 가슴을 맑게 해주는 종소리가 울려 시합의 시작을 알렸다. 파트론 드르슈는 종소리가 울렸음에도 무료한 표정을 지으며 진을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떠한 공격모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에서 얕보는 기색이 역력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허, 나 원 참. 전투의 성지에 이런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가 나올 줄이야." 진은 그의 무시하는 말투에 심히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그는 에리필과 약속했던 것을 어기고, 눈앞에 있는 상대를 박살내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력주문해제!" 진이 외치자 그의 몸과 검에서 황금색 빛이 터졌다 사라졌다. 이를 신기한 동물 보듯 쳐다보던 파트론 드르슈에게 진이 일갈을 터트렸다. "아무리 썩은 눈깔이라도 이걸 보면 자신의 눈깔이 진정한 썩은 동태 눈까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지?" 진은 말을 하며 유려한 동작으로 검을 뽑아내 대번에 하얀 에너지 소드를 만들어 냈다. 검신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빛은 고고한 아름다움과 몽환적인 이미지까지 주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드르슈 역시 몽롱한 시선으로 진의 검에 맺혀 있는 하얀빛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던 드르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송이라고 말한 거 취소하지. 대신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상대해주겠네." 드르슈는 허리를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가 가볍게 쇠사슬을 털자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그그! 쇠사슬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기괴한 소음이 울렸는데 그것이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쇠사슬을 몇 번 털던 드르슈가 인심 쓴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왜 홍염의 전사라 불리는 지 보여주지." 화르륵!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7 회] 130화. 천무의 탑 3.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길이가 5 라키르(미터)정도 되는 쇠사슬 주변이 온통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이를 본 진은 속으로 매우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외쳤다. "하하하, 난 이거보다도 훨씬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진은 말을 하며 예전에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 본 그녀를 떠올렸다. 그렇게 그가 추억의 기억을 더듬는 사이, 관중들은 말만 주고받는 두 사내의 모습에 화가 난 듯 거칠게 야유를 보냈다. "너희들 사귀냐? 남자 둘이 무슨 말을 그리 오래하냐?" "빨리 해라. 싸움을 보러 왔지 연애질 보러 온 거 아니다." 진과 드르슈는 그들의 야유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관중석에 대고 욕을 할 정도로 수양이 모자라진 않았다. 드르슈와 진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졌 고, '팍'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췄다.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공중이었는데, 드르슈가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인 쇠사슬을 나선형처럼 쏘아 보냈다. 그리고 진은 기(氣)를 잔뜩 주입한 하얀 에너지 소드를 쇠사슬 끝을 향해 찔러 넣었다. 쾅! 회오리처럼 엄청난 회전력을 동반한 쇠사슬과 진의 에너지 소드가 부딪히는 순간 굉음이 터졌다. 그 여파로 성난 기(氣)의 파도가 두 사람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노려 쇠사슬에 붙은 불길이 순간적으로 진에게 쇄도했다. 그의 공격은 마치 암기 공격의 기습과 같은 묘를 담고 있었는데, 거기다 불길은 진의 몸을 잡아먹을 듯이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불길은 애꿎은 대기만 태웠다. 이를 보고 놀란 드르슈는 회심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것보다 상대의 위치를 놓쳤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집중하여 진을 찾기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드르슈가 온 몸의 감각을 깨워 진의 행방을 찾고 있을 때도 그의 몸은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비록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짧은 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진의 행방을 찾던 드르슈가 순간 흠칫하며 다급히 위를 올려다보았고, 그는 위에서 쏟아져내려오는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를 보았다. 순간 다급해진 그는 쇠사슬로 몸을 감싸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다. 결국 미완의 방어막을 친 드르슈는 하얀 에너지 덩어리에 몸을 맞고 엄청난 속도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격투장이 패이며 일어난 자욱한 먼지와 굉음은 그가 심한 충격을 받았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드르슈는 패인 격투장 위에 마냥 누워서 쉴 수만은 없었다. 어느 새 나타난 진이 하얀빛의 곡선을 만들어 그를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쾅! 드르슈는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굴렸다. 그리고 곧 이어 그의 귀를 멍하게 만드는 굉 음이 그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순간 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샘솟듯 솟아나왔다. 그러나 그는 재차 공격을 날리는 진 때문에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다. 드르슈는 바닥을 세 번이나 더 구른 끝에야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호흡을 다 고른 그는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 옴을 느꼈다. 아까의 공격에 가슴을 다친 듯했다. 그러나 그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연히 행동하며 공격에 나섰다. 생명을 부여받은 듯 쇠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진이 움직일 방위란 방위는 모조리 차단하며 공간을 좁혀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진을 작은 감옥에 가둬 놓은 형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진은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는지 실실 웃고 있었다. 이를 본 드르슈는 이를 악 물고 쥐어짜듯이 외쳤다. "지옥의 분쇄!" 그가 강렬한 외침을 토하자 쇠사슬은 순식간에 불을 머금었고, 그것은 하나씩 분리되어 수많은 쇠꼬챙이가 되어 진의 몸을 관통했다. 수백 개의 쇠꼬챙이가 진의 몸을 뚫고 지나갔고, 이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드르슈였다. 그는 진이 이처럼 허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지 몰랐던 것이다. 비록 이 기술이 자신의 최강 기술임엔 틀림없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지언정 저렇게 무기력하게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순간 그는 어디에서 보고 있을 드래고니아에서 파견된 감시원의 시선을 찾았다. 그러다 그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앞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앞에는 온 몸에 구멍이 나있고, 여기저기 탄 흔적이 역력한 시체 한 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는 속았다는 느낌에 재빨리 뒤를 돌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못 했다. 싸늘한 예기가 이미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기에. 드르슈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죽지 않았구나.' 하지만 또한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쓰라린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고, 자신은 패배했다. "휴우, …졌다." 그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던 예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느끼며 뒤돌아보았다. 상대는 어디 한 군데 다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과도한 기(氣)를 사용함에 따라 조금 지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완벽히 졌다.'란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힘차게 들어올렸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진은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기는 했지만, 기분 나쁘진 않은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관중석에서 돔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진은 허리를 숙이며 그들의 환호에 답했다. 진은 시합을 끝내고 에리필에게 다가가 용서를 구했다. "죄송해요. 약속을 어겨서." "괜찮다. 상대가 강했으니. 하지만 중력해제주문을 풀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상대라는 사실임엔 변함없다. 좀 더 시간이 오래 걸렸을 테지만 말이지." 에리필은 그의 생각을 간단히 말하며 진의 등을 툭툭 쳤다. 그렇게 진의 시합이 끝나고, 샤넬리가 호명되었다. 샤넬리가 호명되자 에리필은 그녀를 보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 무리하지 마십시오. 위험한 거 같으면 항복하시고요. 솔직히 전 샤넬리 양이 이러한 격투를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에리필이 그녀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자 격투장 위에서 사회자가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 다. 그 덕분에 샤넬리는 은근슬쩍 에리필의 설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 걱정마시구요. 아, 저를 찾네요. 그럼 바빠서 이만." 샤넬리는 격투장에 올라가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진에게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뭐, 조금 하더라." 그녀다운 말이었기에 진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임으로 격려의 뜻을 표했다. 샤넬리의 상대는 회색빛 로브를 입은 마법사였다. 진은 마법사와의 전투는 예전에 마을에 내려가서 본 이후, 처음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유미는 샤넬리와 마법사의 전투를 지켜보며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사람 실력을 숨기고 있는 듯해요." 그녀의 말에 에리필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한 시선으로 격투장 위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실력이 그녀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확실해. 차라리 이렇게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시합이 더 안전할 수도 있겠지.' 에리필은 이미 벌어진 시합을 도중에 중단하기도 뭐해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그리고 한편 유미는 자신이 명한 바를 성실히 이행하지 못한 접수처 사내에게 심음을 날렸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약한 자를 붙이라고 했을 텐데.] 그는 갑작스런 그녀의 호통에 깜짝 놀라며 변명을 늘어뜨려 놓았다. [분명 그가 제출한 서류에는 실력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도 그렇게 실력이 높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그렇게 실력이 높습니까?] [아니 됐다.] 유미는 그의 물음을 단박에 잘라내며 격투장 위로 시선을 돌렸다. 한편 진은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말한 실력의 차이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것이 불만스러워 두 눈을 부릅뜨고 격투장 위의 두 사람의 전투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샤넬리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마법사의 공격을 쉽게 피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검은 예전 그녀가 추던 신무의 뜨거움과 따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상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넬리는 상대가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접근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눈에 작은 틈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놓칠 샤넬리가 아니었다. 샤넬리는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마법사를 향해 쇄도했고, 그녀의 보랏빛 에너지 소드가 마법사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이를 본 마법사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데빌 핸드!" 우웅!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8 회] 131화. 천무의 탑 4. 순간 그의 주변에 거대한 에너지가 모여 들었고, 간단한 동작으로 샤넬리의 검을 잡아가는 그의 손은 강력한 괴수의 손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는 당황해하는 샤넬리의 심장을 향해 괴수의 손으로 변해버린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는 본래 의도인 심장을 부수는 목적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를 노리고 날아오는 에너지 덩어리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귀찮군!" 그는 샤넬리의 검을 잡고 있던 손을 펼쳐 에너지 덩어리가 근처에 오기도 전에 튕겨버렸고, 반대 쪽 손의 날을 세워 그녀의 심장을 노리며 엄청난 속도로 찔러 넣었다. 그러나 순간의 자유를 얻은 샤넬리가 몸을 틀었고, 그는 심장 대신 가슴 한 가운데를 뚫어 버렸다. "커억!" 무너지듯 주저앉는 샤넬리는 마법사의 손에 가슴이 걸려 바닥에 쓰러지지도 못했다. 그것이 더욱 끔찍한 고통을 주었기에 그녀는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마법사는 그녀의 비명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다른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잘라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의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어느 새, 나타난 유미가 샤넬리의 가슴에 박아놓은 그의 손을 잘라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그의 사지를 잔인할 정도로 잘라버린 뒤에 마법사들의 마나통로인 등 뒤를 박살내 버렸다. 유미의 행동은 뒤늦게 반응한 자신의 행동을 질책하듯 신속 철저했으며, 그녀가 샤네리의 상세를 살펴보고 있을 때는 이미 마법사는 철저할 정도로 망가진 폐인이 되어 버린 후였다. 뒤늦게 쫓아온 진과 에리필은 걱정스런 눈으로 샤넬리를 쳐다보았다. 특히 진은 자신이 도중에 마법사의 행동을 제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구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샤넬리를 돌보는 유미의 손을 긴장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는 샤넬리의 몸을 살펴보며 속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한 시력으로 유미의 얼굴을 바라보던 샤넬리가 씁쓸한 음색으로 말했는데, 그녀에겐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하는 것이 고통이었지만, 말하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공포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말하는 것은 두려움에 대항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 죽는 …건…가요?" "……." 유미는 샤넬리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답답했는지 뒤에 있던 진이 따지듯 외쳤다. "왜 말을 못해요? 샤넬리가 죽을 리가 없잖아요!" 그의 음성에는 진한 물기가 섞여 있었다. 이를 느낀 샤넬리는 보이지 않는 눈을 돌려 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아 … 미…안해." 그녀의 음성에도 축축한 물기가 섞여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미 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가 되었다. "란디아 너는 지금 당장 나인 드래고니아들을 모두 이곳에 불러라. 책임은 내가 진다." "네!" 란디아는 언제 나타났는지 그녀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명령에 따라 천감을 최대한 열어 유미를 제외한 나인 드래고니아들에게 연락을 보냈다. 유미는 란디아를 잠시 바라보다 일행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보낼 것을 명령했고, 또한 마법사가 죽지 못하도록 치료하라고도 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껏 억눌러놓았던 기운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환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 밑에 굉장히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터지듯이 섬광을 일으킨 후,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빛이 사라지고 평온의 기운이 대기를 감쌀 때, 그녀는 상당히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며 샤넬리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전과 다름없이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이마 부위에 고대 이전의 언어로 무엇인가가 써져 있다는 것이다. 유미가 작고 햐얀 손으로 샤넬리의 뻥 뚫린 가슴을 쓰다듬자 빠른 속도로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가슴은 흉터 하나 없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샤넬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유미 역시 밝은 안색이 아니었다. 유미는 그녀의 손을 샤넬리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왔으면 빨리 도와줘. 이건 부탁이야."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녀 뒤에 모습을 드러낸 8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뻗어 기운을 보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그들의 엄청난 기운이 한 곳에 집중되자 순간적으로 대기가 들끓는 소리를 냈다. 이를 느낀 유미는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고마워!" 유미는 감사의 뜻을 표하며 그들이 보내 준 기운을 샤넬리의 가슴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샤넬리의 몸에 들어간 그들의 기운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자 반드라스가 냉철한 음성으로 말했다. "더 이상은 욕심이다. 그녀는 우리의 기운을 이 이상 받을 수 없다." 유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유미의 마음속에 '하지만 …'이란 단어가 맴돌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간 대법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기에 그녀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유미가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샤넬리의 가슴에 모여 있던 기운들은 여러 문자들의 형상을 띄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도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그들 뒤에서 상처를 치료 받고 있던 마법사가 돌연 광기에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 "크하하하, 게스헤이 드 렌드린탈 공작님이야말로 이 땅의 주인이 되실 분. 그분을 위해 죽는 것은 나의 영광이다." 그는 미친 듯이 외치다 돌연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잠시 후, 으슬으슬한 침묵을 잡아먹을 듯 굉음이 터졌다. 굉음은 그의 몸이 터지면서 일어난 소린데, 그 폭발의 영향으로 주위에 있던 의 료처의 몇몇 사람들이 비명횡사하긴 했지만, 유미 주변에는 절대적인 강자들이 포진해있었기에 가벼운 손짓으로 폭발의 충격파를 튕겨버렸다. 옆에서 커다란 폭발이 발생하면 대법을 걸 때, 심각한 방해가 될 수도 있으나 유미는 일절 신 경 쓰지 않고, 대법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합!" 유미가 샤넬리의 가슴을 누르며 기합을 외치자 이제껏 고통스러워하던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 기며 평온한 잠에 빠졌다. 이 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유미가 고개를 돌려 진과 에리필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샤넬리 양은 영원한 잠에 빠지게 돼요. 그리고 이 잠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에만 기생하는 흡열의 열매뿐이에요. 지금은 샤넬리 양의 몸에 들어가 있는 악마의 기생충인 바쟈크를 잠재워 놓았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그녀는 가사상태에 빠지게 된 거예요." "그, 그게 정말 입니까?" 경악에 찬 목소리로 물은 사내는 사람들을 헤치며 유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유미는 처음 보는 그가 이 일에 경악하는 것도, 여기에 있는 이유도 몰라 멀뚱히 그를 쳐다만 보았다. 그는 은빛 아머슈트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의 뒤엔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11명의 사내와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누구냐?'라는 표정에도 막무가내로 물었다. "흡열의 열매 말고는 아가씨를 살릴 방도가 정녕 없단 말입니까?" 에리필은 그의 말 속에서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흥분해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어두운 표정이지만 정중한 음성으로 인사했다. "저는 샤넬리 양의 호위를 맡았던 에리필입니다." "당신이……!" 그는 다짜고짜 에리필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에리필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호송자(escorter)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진은 그렇지 못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사내가 자신의 사부의 멱살을 잡고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샤넬리의 일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 그의 무례한 행동은 진의 분노를 사기 알맞았다. 진이 그에게 달려들려 하자 에리필이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러나 그는 사부의 명을 따르기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가슴의 아릿한 통증을 참을 수 없었다. 진은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의 원인이야 어찌됐든 이 역겨운 기분을 지금 당장 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진이 에리필의 손을 뿌리치며 검을 뽑으려는 순간, 온 세상이 황금색 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황금색 빛은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진 역시 검을 뽑으려던 그 상태에서 멍한 상태로 굳어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멍한 상태가 되었을 때, 반드라스가 입을 열었다. "이성을 되찾는 게 시급한 일인 것 같습니다." 황금색 빛을 만들어낸 장본인답게 그의 음성은 텅 빈 머릿속에 들어가 절대적인 명령으로 심어졌다. 그리고 에리필의 멱살을 잡고 있던 적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사내가 멱살을 풀어 주며 멍한 동공이 냉철한 이성으로 채워질 때까지 멍청히 서 있었다. 환상과도 같은 황금의 세계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흥분과 분노, 슬픔과 공허한 감정에 빠져 있던 모두는 냉철한 이성을 빛내며 서로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샤넬리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미가 반드라스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그는 할일을 했을 뿐이라는 태도를 내비치며 숙연한 대화를 나누는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몇 마디 대화를 통해 샤넬리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르니와 그의 동료들은 망연자실했고, 비록 그녀가 기약 없는 잠에 빠졌다 하지만 차디찬 땅바닥에 누워있게 만들 수 없어 제 8 격투장에 마련되어 있는 의료처의 침대 위로 옮겼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39 회] 132화. 천무의 탑 5.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한 가르니는 의식을 잃고 끝없는 잠에 빠져 있는 샤넬리를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답답한 가슴을 치며 유미에게 물었다.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에만 존재하는 흡열의 열매말고는 아가씨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는 겁니까?" "아쉽게도 그래요." 유미는 이미 몇 번이나 같은 대답을 했는지 간단히 대답했다. 이에 가르니는 적갈색 머리칼을 쥐어뜯을 듯 움켜잡으며 절망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 일을 어떻게 한담. 주군에겐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탄식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절망적이었고, 그의 얼굴은 갑작스레 많은 심력을 소모한 자처럼 핼쑥해져 있었다. 그런 그가 퀭한 눈이지만 다시 한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흔들 뿐,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공기가 실내를 감싸고 있을 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가르니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분노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그 놈은 렌드린탈 공작의 심부름으로 주군께 찾아왔던 놈입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그 놈은 그때 아가씨의 소식을 들었겠죠. 우리가 여기 오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의 공격을 몇 번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었죠. 아마도 그 놈의 동료였을 겁니다." 가르니는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치가 떨리는지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꽉 물었다. 가르니가 샤넬리를 공격한 마법사의 시체 중 유일하게 해손 되지 않은 얼굴을 보았을 때, 그는 무언가 집히는 바가 있는지 온 몸을 분노에 떨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시체의 머리통을 발로 밟아 터트려 버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그는 한참이나 욕을 뱉으며 광분에 치를 떨었었다. 조금 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가르니가 또 다시 분노에 전율하다 이미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샤넬리를 보며 한숨을 토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우, 이렇게 흥분해봐야 아가씨가 낫는 것도 아닌데. 하아 어찌됐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군요. 지금 이 상황을 주군께 알리고, 그 흡열의 열매라는 것을 찾으러 가는 길 밖에. 여기 통신 연락이 됩니까?" 가르니의 착잡한 물음에 유미가 긍정의 뜻을 표했고, 잠시 후, 중년인 마법사가 통신용 수정구를 들고 나타났다. 우우웅! 중년인 마법사는 가르니가 가르쳐 준 좌표에다 통신을 걸었고, 얼마 후, 기묘한 공명음이 몇 번 울리다가 수정구 안에 한 사람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는 갈색 머리에 갈색 콧털을 멋들어지게 기르고 있었는데, 딸의 소식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가르니는 데이릭의 초췌한 얼굴을 보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든 데이릭이 다그치듯 물었다.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내 딸 샤넬리는 물론 무사히 데리고 있겠지?" "그게 … 죄송합니다." 가르니는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그의 음성에 목이 메여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며 쥐어짜듯이 말했고, 순간 데이릭은 온 몸을 꿰뚫는 강렬한 충격에 그만 다리가 풀린 듯 휘청거렸 다. "…… 농담하지 말고. 자네 농담도 별로 안 좋아하지 않은가? 이보게 사랑스러운 내 딸… 샤넬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 가르나 말해보게!" "…… 면목 없습니다. 아가씨는 지금 가사 상태에 빠지셨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에만 자생하는 흡열의 열매를 먹여야 한다고 합니다." 수정구는 한참동안 정지된 화면을 보여주듯 똑같은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있던 데이릭이 인상을 구기며 가르나에게 노성을 토했다. "무얼 했나? 내가 시킨 명령하나 완수하지 못하다니. 아니 그전에 우리 샤넬리를 호위했던 그 에리필이라는 자는 도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그의 격한 분노는 공간을 격하고, 가르나와 에리필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리고 에리필이 수정구에 얼굴을 내밀자 데이릭은 그의 위치에 걸맞지 않게 매우 흥분했다. "난 자네라는 사람을 믿고, 내 딸을 맡겼어. 그런데 결과가 뭔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샤넬리가. 이럴 수는 없단 말이야. 오… 샤넬리야. 변명은 필요 없네. 일단 내가 그곳으로 가겠네. 그때 보지." 데이릭은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껐다. 그는 당장이라도 딸에게 달려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결심하자마자 성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을 모아 공간이동으로 검은 삼각지대로 향했다. 검은 삼각지대의 관문인 인간의 검이 펼쳐져 있는 공간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데이릭과 그의 휘하 마법사들이었는데, 그가 얼마나 서둘렀는지 13명의 마법사들이 모두 진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인간의 검을 지나갈 때도 관문은 발동되지 않았는데, 이미 드래고니아에서 그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 것을 명했기 때문에 데이릭 일행은 검은 삼각지대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급한 걸음으로 검은 삼각지대 안으로 들어가는 데이릭 일행을 스치듯 지나치는 평범한 외모의 사내는 그들과 멀리 떨어지자 음산한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크크크, 최소 10년은 혼돈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분이 오시기 전까지 제국의 힘을 최대한 갈아먹는 것!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임무다, 크큭!" 바삐 걸음을 옮겼기 때문인지, 이미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가가 없어선지 데이릭은 그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유유히 검은 삼각지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검은 삼각지대의 외곽 부근에서부터 데이릭 일행을 기다린 유미를 포함한 진 일행과 가르나 일행은 격노한 상태의 데이릭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에리필을 본 데이릭은 다짜고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나 에리필은 묵묵히 데이릭의 주먹을 맞았고, 그의 얼굴엔 오히려 씁쓸한 표정이 한층 두터워졌다. "하아, 자넬 때려봐야 내 딸이 가사상태에서 깨어나는 것도 아닌데. 우선 내 딸 샤넬리부터 봐야겠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데이릭을 데리고 일행은 샤넬리가 누워있는 제 8 격투장의 의료처로 갔다. 샤넬리는 기분 좋은 꿈을 꾸는지 평온한 기색에 아름다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었다. 그런 딸의 모습에 데이릭의 두 눈이 붉게 충혈 되며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는 한참을 서글피 울었는데,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딸이 이렇게 된 이유가 뭔가? 사실상 검은 삼각지대는 그렇게 무법지대만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그는 수많은 감정들을 일시에 쏟아낸 사람처럼 딱딱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가르나가 했다. 가르나는 특히 렌드린탈 공작의 사자로 왔던 그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강조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고 있는 데이릭에게 유미가 미심쩍은 그때 그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데이릭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 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문제는 함정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가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 그건 그렇고, 흡열의 열매라 했나? 딸을 살릴 방법이 전무한 것은 아니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후후후."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다 연인의 품에 안긴 여인의 표정을 짓고 있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무겁게 닫힌 입이 에리필을 향해 열렸다. "샤넬리는 여행하면서 즐거워했었나?" "…… 즐거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만든 가면은 쓰지 않았습니다." 에리필은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잠시 움찔하다 솔직히 대답했고, 데이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르나와 그의 일행들에게 명했다. "집에 돌아간다." "넷! 알겠습니다." 그들은 힘차게 대답했고, 데이릭은 에리필을 향해 말했다. "대금은 어느 길드에 가든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놓겠네." "대금이라뇨? 됐습……." 에리필이 깜짝 놀라 손을 저으며 사양하려하자 데이릭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유미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당신을 비롯한 나인 드래고니아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해주길 바라오." "별 말씀을요. 부디 샤넬리 양이 쾌차하길 바라겠어요." 데이릭은 그녀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샤넬리를 안아 들었고, 의료처를 나가려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앞을 막고 있는 한 사내 때문에 쉽사리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뭐지?" "저도 갈 거예요." "진아!" 갑작스런 진의 선포에 가까운 말에 에리필은 깜짝 놀랐고, 데이릭은 피식 웃었다. "하하하,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는 죽음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그런 곳에 같이 가겠다고? 우리 샤넬리를 생각해서 그러는 마음만 받아둘 테니, 혹여나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딸을 위해 목숨을 걸려는 진의 모습이 데이릭의 무거운 마음을 그나마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는 진을 데리고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진의 울부짖는 음성에 돌려질 수밖에 없었다. "왜요? 흑흑. 제가 약해서요? 큭, 그래요. 저는 분명 약해요. 샤넬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전 아무런 도움도 못 돼주었어요. 크윽.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정말로 제가 그 애를 위해서 어떤 힘이라도 돼주고 싶어요. 비록 제 힘이 약하긴 하지만, 저 단시간에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그러니 그 위험하다는 숲에 들어가서 샤넬리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그 흡열의 열매라는 걸 찾는데 절 꼭 데려가주세요." "진아!" 에리필은 데이릭 앞에서 '안 된다.'라고 말할 수도 없어 단지 안타까운 음성으로 진의 이름만 부를 뿐이었다. 그러나 진의 마음은 이미 확고히 다져진 상태였다. 결국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에리필도 마음이 걸려 데이릭에게 부탁했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사실 진이 약하다고 했지만, 족히 미디스트 급의 실력자입니다. 그리고 제 힘 역시 무시할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 저희 두 사람을 그 일행에 끼워주십시오." 데이릭은 에리필까지 간곡히 나오자 더 이상 그들을 물리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데이릭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강자라도 더 모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에리필과 그의 제자에게 강요하려면 할 수도 있었지만, 구차하다는 느낌이 들어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그들이 먼저 자청하니 오히려 그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씁쓸함이 남긴 했지만. 데이릭이 승낙하고, 그들 일행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진과 에리필은 홀로 남은 유미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했다. "감사했습니다." "저 같이 가면 안 돼요? 같이 가면 분명 큰 힘이 될 거에요." "진아!" 진이 무리한 부탁을 한다고 생각한 에리필이 그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자 유미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이곳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몸이에요." "…… 그래요? 아쉽지만 하는 수 없죠. 뭐, 샤넬리가 다 낫거든 여기 데려올게요." "그래요. 우린 또 볼 거예요. 잘 가요!" 진과 에리필은 유미에게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고,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들을 따라 서둘러 따라갔다. "우린 또 만나게 될 거예요. 반드시!" 이제는 희미한 음영만 비쳐지는 진의 등을 향해 유미가 확고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유희는 끝났다. 유리미!" 어느새 나타난 8인 중 반드라스가 말하자 유리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처음부터 유희를 하지 않았어. 반드라스!" 그녀의 반짝이는 눈과 아름다운 음성은 사라진 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40 회] 133화. 재앙의 숲 1. 레우카스 성에 도착한 데이릭과 진들은 우선적으로 샤넬리를 폭신한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뒤늦게 딸의 소식을 듣고 나타난 프치아이오 부인이 가사상태에 빠진 샤넬리를 안고 엉엉 울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는데, 그녀는 하나 뿐인 외동딸의 상태가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지 슬픔을 못 이기고 기어코 혼절해 버렸다. 진과 에리필은 데이릭의 배려에 이오라니에 있는 수많은 방 중에서도 넓고도 아늑한 방에 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레우카스 성에서 보내는 첫날 진은 자신을 단시간에 더욱 단련시켜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에리필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레 무리한 수련을 한다고 하여 실력이 팍 하고 오르진 않기에 그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진의 마음은 어떤 설득에도 돌려지지 않았고, 게다가 그가 울부짖듯이 부르짖는 말에 에리필은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제 힘이 그렇게 미약한 지 처음 알았어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샤넬리의 가슴이 뚫리며 흐르 는 붉은 피와 고통스러워하는 샤넬리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히 떠올라요. 그렇기에 차라리 몸이 고통스러운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체를 혹독하게 몰아붙이면 그런 악몽과도 같은 기억들에 의해 고통스러워 할 여유도 없을 테니까요." 결국 그의 말에 에리필은 그가 원하는 대로 2G(30kg)의 힘 위에 8G를 더해 총 10G(150kg)의 힘을 몸 위에 걸었다. 그렇게 그는 자기 자신을 학대했다. 한편 데이릭은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흡열의 열매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찾았다. 그리고 최소 에너지 소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 즉 로우스트 급 이상의 무인들과 뛰어난 능력의 술법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일의 위험성을 먼저 말해준 상태였기에 사람들은 그리 많이 모이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릭은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황실에다 쓸만한 무인을 붙여줄 것을 요청했고, 그와 친분이 있는 여러 곳에 이와 같은 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렌드린탈 공작에게 그의 심복에 관해 추궁하기도 했다. 그러나 렌드린탈 공작은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따지고 들었다. 이는 평소 침착하기로 유명한 렌드린탈 공작의 모습과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이었기에 데이릭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샤넬리를 살리는 일이 먼저였다. 그렇기에 데이릭은 들끓는 복수심을 억눌렀다. 또한 샤넬리에게 필요한 흡열의 열매를 구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데 최선을 다하다 보니, 렌드린탈의 문제는 절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데이릭이 정신없을 정도로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프치아이오 부인은 진에게 샤넬리가 여행 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관해 듣거나 어렸을 때의 그녀 모습을 그에게 이야기해줌으로써 추억의 시간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은 부인과의 대화 이후의 시간에는 오로지 몸을 혹사하는 수련을 반복했다. 아무리 진이라 하여도 기(氣)를 사용하지 않고 10G(150kg)의 힘을 버틴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몸을 움직이는 데만 해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어야 했다. 그렇게 혹독하게 몸을 혹사시킨 것치고는 별 성과 없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유라시아드 숲으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샤넬리의 병을 고치기 위해 구성된 일행은 무인 125명과 마법사 32명, 술법사 7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진과 에리필이 들어가 있음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무인들은 최소 로우스트 급 이상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마법사는 최소 중급 마법사에서 최고 마스터에 이르는 호화로운 멤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데이릭이 원하는 능력의 술법사들은 좀체 모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조르단 상회의 비공선을 타고 제국의 서쪽 유리시아드 숲으로 향했다. "뭐, 샤넬리 양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고?" "그렇습니다, 도련님. 샤넬리 양의 병을 고칠 수 있는 흡열의 열매가 있는 유라시아드 숲까지 이동하는데 저희 조르단 상회의 비공선을 이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아리온은 부하의 보고를 들으며 깜짝 놀라면서도 묵묵히 보고만 하는 그가 괜히 얄미워졌다. 그렇기에 아리온이 그에게 대하는 말투는 쌀쌀맞았다. "그 흡열의 열매라는 것은 꼭 유라시아드 숲에서만 구할 수 있는 건가?" 아리온의 음성에서 싸늘함을 느꼈음인가? 그는 최대한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흡열의 열매는 유라시아드 숲에서만 구할 수 있다 합니다. 솔직히 유라시아드 숲에서 살아나온 사람도 드물 뿐 아니라, 흡열의 열매라는 것을 필요로 한 사람도 없었기에 이제껏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없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아리온이 길게 탄식을 토하자 부하는 몇 번을 머뭇거리다가 그의 고뇌어린 표정을 보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련님! 제가 알기로 주인님께서는 유라시아드 숲을 그린 지도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온갖 기괴한 약초가 있는 지점이나, 위험 요소들을 체크해 놓았기에 흡열의 열매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사료됩니다." "정말인가?" "제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아리온은 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지나갔다. "고마워. 지금 당장 아버지께 가 봐야겠어." "왜, 안 된다는 거죠?" "이 지도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아리온은 너무도 완강하게 나오는 아버지 조르단 라젠티오의 기세에 밀려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조르단 라젠티오는 조르단 상회를 불과 20년 만에 제국 삼대 상회 안에 들게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60이 다 되가는데, 뒤늦게 얻은 아들 아리온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었었던 그가 이번에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리온은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거대한 벽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답답함과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라젠티오는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얼마만한 배신감을 느낄지도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록 부자지간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거쳐야 되는 연출이라고 굳게 믿는 라젠티오였기에 짐짓 딴 체를 부리다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지도가 필요한 거냐?" 아리온은 라젠티오가 갑작스레 관심을 가지는 듯하자 그의 내심은 짐작도 못한 채,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심정으로 애걸했다. "아버지 제가 사랑하는 여자가 몹쓸 병에 걸렸는데,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드 숲에만 자생하는 흡열의 열매가 필요하다 합니다. 그러니 아버지, 제발 그 지도를 제게 주십시오." "음, 이 아비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이야긴 하지 않았지 않느냐?" 라젠티오는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찰나 간에 사라졌으며, 도리어 짐짓 몰랐다는 투로 말해 아리온을 당혹케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송구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잠시 감상하다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 여자를 정말 사랑하느냐? 이제껏 네가 호감을 준 여자들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러나 너는 그 여자들에게 사랑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기로는 말이지. 그런데 지금 너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냔 말이다." 라젠티오가 시험하듯 묻자 아리온은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힘차게 대답했다. "책임질 수 있습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그녀가 저를 사랑하지 않지만, 기필코 제 사람으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라젠티오는 그의 말에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는 안색을 곧바로 풀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짝사랑이란 말이냐? 크크크, 네가 짝사랑도 다 하고. 좋다! 얼마나 대단한 여자기에 네가 이렇게 목을 매다는지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아리온은 아버지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그는 지도를 얻기 위해서라도 쉬지 않고 입을 열어야 했다. "그녀는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 경의 딸인 샤넬리입니다." "최강의 황족인 데이릭 경의 딸인 샤넬리 양이라 했느냐?" "네, 그렇습니다." 아리온은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 라젠티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잠시 후, 라젠티오가 광소를 터트렸다. 이것이 그가 준비한 마지막 연출인 것이다. "크하하하,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겠구나. 좋다. 하지만 지도 전체를 줄 수는 없다. 대신 흡열의 열매가 있는 부분을 사람을 통해 그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그리 알고 네가 하는 일에나 신경을 써라. 모든 일은 이 아비가 할 터이니 말이다." "아,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리온은 그의 말에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감격에 젖은 음성으로 감사했고, 그는 그런 아들을 물리쳤다. 아리온이 나가고, 실내에 혼자 남게 된 라젠티오가 예의 보랏빛 눈을 빛내며 말했는데, 이는 그가 탐욕의 감정을 일으킬 때마다 나타나는 괴현상이었다. "이제는 권력을 얻어야 할 차롄가?" 그의 보랏빛 눈은 차가운 광망을 허공에 쏘아내고 있었고, 그의 눈빛이 스치는 곳은 싸늘한 한기에 전염된 듯 적막한 공기를 현세에 뿌려대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42 회] 134화. 재앙의 숲 2. 조르단 상회 측에서 건네준 지도를 받고 데이릭은 조르단 상회 측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충분한 보상을 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일행들은 우연히 지도를 입수하게 된 것을 좋은 징조라 말하면서, 불안한 공기를 털어내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은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에 가기 전까지 괜한 긴장으로 인해 심력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친분을 도모한 대화로 무거운 공기를 일신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행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인지 그들과의 거리를 일정 이상 유지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진과 에리필이었다. 진과 에리필은 비공선 내에 있는 10개의 휴게실 중 하나를 통째로 빌리기라도 한 듯,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특히 에리필은 이번 기회에 상승 기예인 에너드 소드를 다루는 법이나 그 이상의 경지에 관한 이야기를 진에게 들려주었다. “기(氣)라는 것은 상승 경지에 도달할수록 무형에서 유형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현재 네가 시전 할 수 있는 에너지 소드야 말로 기(氣)가 무형에서 유형으로 변형된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기(氣)의 양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게 되면 에너지 소드를 뛰어넘는 것을 시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일정 수준의 기(氣)의 양의 최소기준을 1 루시라 한다. 그렇다면 이 1 루시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기(氣)의 양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이 궁금할 것이다.” 에리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진은 팔굽혀 펴기를 하다 고개를 돌리며 무언으로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후후, 그만 재촉하려무나. 그럼, 하던 일이나 계속하면서 이 사부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여라. 1 루시는 단전에 모여 있는 반지름이 3 키르(센티미터)인 구로 이루어진 기(氣)의 덩어리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 구는 절대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깨달음을 얻지 않는 한 변화하지 않는 단전의 크기이기도 하다.” “깨달음이라 하면 종종 수련하면서 얻었었는데요. 그리고 샤오라는 쿤을 열 때도 무언가를 깨달았었는데요. 사부님이 말한 깨달음이라는 건 이러한 깨달음과는 다른 건가요?” 진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팔굽혀 펴기 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물었다. 이에 에리필은 입가에 안도의 미소를 그렸다. 그의 미소는, 밝진 않지만 그리 어둡지만도 않은 진의 표정과 목소리 때문에 그려질 수 있었는데, 샤넬리가 쓰러지고 난 뒤, 진은 근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죽은 자의 얼굴과 음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언제나 자책하는 마음으로 자학적인 수련을 하는 진을 보며 가슴 아팠던 에리필이었는데, 요즘에 와선 눈에 띄진 않지만 그의 분위기가 조금씩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에리필은 모처럼 포근한 미소를 그리며 사랑스런 제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글쎄다.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시기적절하게 찾아온다고 하더구나. 그렇기에 대부분의 무인들이 얻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 순간의 경지를 뛰어넘도록 도와주되 극단적인 수직상승적인 경지로 올라갈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진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팔은 힘겹게 굽혀졌다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를 잠시 보던 에리필은 애초에 하려고 했던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1 루시라는 힘은 일반 무인이 죽어라 수련해도 얻기 힘들 만큼 막대한 기(氣)의 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1 루시라는 기(氣)의 양은 에너지 소드의 발전 형태인 기(氣)를 형상화시킬 수 있는 최소조건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적어도 1 루시 이상의 기(氣)의 양을 보유하고 있어야 되고, 기(氣)를 형상화시키는데 필요한 강렬한 의념과, 외부로 기(氣)를 재배열시키는 것과 그 운용법을 숙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리고 여기서 강렬한 의념과 외부로 기(氣)를 재배열시키는 것은 아까 말한 깨달음을 얻지 않고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최소 1 루시 이상의 기(氣)를 보유하고 기(氣)를 형상화 시킬 수 있는, 한 마디로 스피릿 트랜스를 시전 할 수 있는 이를 우리는 마스터라고 한단다.” 에리필이 조금은 상기된 음성으로 말을 하자 지금껏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이 팔을 굽히던 동작 그 상태를 유지하며 그 역시 상기된 음성으로 말했다. “혹시 사부님께서 도달하신 경지가 바로 그 마스터의 경지가 아닌가요?” 에리필은 그의 물음에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다 그가 너무도 궁금해 하자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내비치며 대답했다. “허허, 녀석하고는. 그렇게 좋으냐? 이 사부가 마스터란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당연하죠. 그런데 전에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 환상처럼 보여주신 푸른 용이 바로 그 스피릿 트랜스라는 건가요?” 진이 굽혔던 팔을 떼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자 에리필은 그의 입가에 더욱 환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그렇단다. 아직 불안정 하지만 그것이 나의 스피릿 트랜스다. 그리고 혹시 네가 오해할 수도 있으니 다시 언급해야할 이야기가 있구나.” “그게 뭔데요?” 음울한 기분을 일시에 날려버린 만큼 충격적인 사실에 진의 얼굴은 평소의 음울한 안색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과 다름없는 밝고 활기 찬 소년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진의 모습이 에리필에게는 너무나 감사했고, 소중했다. 그렇기에 그는 단 하나 뿐인 제자의 밝은 모습이 혹여나 사라질까 염려해 재빨리 대답했다. “이것은 상승의 경지에 대한 실력과 기(氣)의 보유량에 관한 것인데, 사실 스피릿 트랜스를 시전 할 수 있는 마스터라는 경지는 1 루시라는 기(氣)로는 도달할 수 없단다. 그래서인지 대개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氣)의 양을 1 루시라 부른단다. 그리고 현재 마스터의 초급에 도달해 있는 이 사부의 기(氣)의 보유량은 약 2 루시가 조금 못 되는 경지란다. 2 루시는 대략 반지름이 5 키르(센티미터)인 구를 생각하면 될 거야. 그리고 아까 말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자연적으로 1.5 루시라는 기(氣)를 보유하게 되는데, 그것은 깨달음 뒤에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복연이라 생각하면 될 거다. 어쨌든 말이 1 루시 이상의 기(氣)만 있으면 스피릿 트랜스를 시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1 루시의 기(氣)만 있으면 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 할 수 있단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지. 진아?” 에리필은 설명의 순서가 뒤바뀐 것을 깨닫고 혹시나 진이 잘못 이해할까봐 재빨리 앞에 설명했어야 할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에리필의 설명을 모두 이해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에리필이 진에게 마스터 이후의 경지와 그에 관한 적절한 예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에리필이 주로 말한 것은 실질적인 마스터 이후의 경지에 대한 힘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스터라는 경지도 다른 경지에서 나누듯이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 개념은 밑의 경지에서 다루고 있는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것이다. 간단한 예로 마스터의 초급과 중급의 차이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만한 것이었는데, 그 예로 마스터 바로 밑의 경지인 익스퍼트 급과 에너지 소드를 막 다루기 시작한 로우스트 급의 차이보다 더욱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로우스트 급이나 익스퍼트 급안에서 나누던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은 상위 경지에서 보면 그저 그런 줄긋기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마스터 이후의 경지는 절대의 경지를 추구하는 경지답게 그 영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마스터의 초급은 1.5 루시에서 3 루시까지고, 중급은 4 루시에서 6 루시까지다. 그리고 이쯤 되는 경지에 도달한 무인의 단전은 인간의 신체 장기와는 달리 그 초월성을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그것은 실제 단전이라 짐작되는 곳을 파괴당해도 그에겐 장기손상이외의 피해는 입지 않는 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마스터의 상급인 7 루시부터 10 루시까지에 도달하게 되면 생성되게 되는 아단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단전은 분명 인간의 단전 부위에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은 또한 그것과는 다르면서도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겹쳐진 공간에 단전이 생성되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러한 아단전은 마스터의 최상급인 11 루시에서 15 루시까지를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커지고, 초월적인 단전인 아단전은 지고의 깨달음이 없이는 더 이상 확장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불가능이라 말하지만 아단전을 막고 있는 벽을 깨기만 하면 절대의 경지인 그랜드 마스터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는 더 이상 루시 라는 기(氣)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야 말로 절대적인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는 에드윈 더 세필로스만이 현존하는 유일의 그랜드 마스터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드러난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것이 더 많으니 어찌 그만이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진은 에리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더 강함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고, 한편으로는 그가 그 순간에 그랜드 마스터라는 절대의 힘을 가졌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진은 그도 모르는 사이 악몽 같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진은 마법사와 샤넬리의 싸움에 정신없이 몰입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무겁게 누르 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기분 나쁜 감정은 마법사의 손이 변하면서 의미가 모호한 웃음을 입가에 그리는 순간 터지듯이 분출되었다. 진은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요즘 익히고 있는 기(氣)의 탄의 묘를 이용하여 검에 응집된 기(氣)를 마법사에게 쏘아 보냈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날아가는 기(氣)의 덩어리를 본 진은 뒤늦게 경악에 찬 후회를 토했다. 그러나 그 후회는 섬뜩한 파육음에 의해 산산이 조각났다. 푹! 섬뜩한 소음이 터지며, 허공으로 비산하는 핏방울들을 바라보는 진의 두 눈은 크게 부릅떠졌다. 그리고 튕켜나가는 자신의 에너지 덩어리. 그와 함께 그는 분노와 경악에 찬 비명을 토했다. “으아아아악!” 진이 비명을 지르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에리필이 있었고,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것을 알아차린 진은 무거운 입술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무거운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합의 아래 만들어진 침묵이기는 하였으나 그 침묵을 만든 두 사람의 심리 상태는 판이하게 달랐다. 적막의 세상을 도래하도록 일조를 한 에리필은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들썩이는 입술을 꽉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음울한 안색을 짓고 있는 진은 의식적으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단 하나 무력을 높이겠다는 생각만을 머릿속에 키우며. 잠시 후, 적막은 느릿한 동작으로 몸을 숙이는 진에 의해 깨졌다. 그리고 진은 아까 전부터 계속해왔던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한편 에리필은 착잡한 안색으로 진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 휴게실을 나왔다. 지금의 진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공선에서 보내는 수많은 하루 중 다음 날을 기대하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비공선이라는 교통수단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국의 수도 가에아에서 제국의 극동지역과 웨스트의 경계지역에 자리 잡은 유라시아드 숲까지 가는 데는 아무리 서둘러도 20여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20 여일이라는 시간은 진이 10 G(150kg)가 걸려 있는 상태에서 전보다 조금 더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의 입장에서 느끼는 자유였고, 범인보다도 굼뜬 그의 동작은 모든 이의 가슴마저 답답하게 할 정도로 느리고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 한 달 하고도 20 여일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낸 관계로 진의 굼뜬 모습이 얼마만한 노력 위에 가능해진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에 관해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일행에게 방해만 되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었는데, 여기에는 데이릭의 호의와 그의 주변에 있는 절대적인 기도를 뿜어내고 있는 에리필 때문이기도 했다. 에리필은 이번 일행 중에서도 단 4 명뿐인 마스터 중에 한 명이기에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일행이 느끼기엔 가히 절대라 할 만 했다. 125명의 무인 중 단 네 명만이 마스터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런 물음을 던질 이는 백이면 백 무예에 무지한 인간이거나 정신에 이상이 있는 자일 것이다. 그만큼 마스터라는 경지는 무예를 익히는 자들이 꿈에도 염원하는 경지였고, 그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힘이 실로 엄청났기에 그런 이들이 하나도 아닌 넷이나 있다는 말은 말 그대로 엄청난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행 중 이렇게 경외의 대상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에는 황족 최강의 전사라 불리는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과 제국의 8 대 무가 중 슈렌트 가를 이끄는 현 가주의 동생이자 그의 절친한 친우인 슈렌트 드 파슈발이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3 대 기사단 중 서큐리스 기사단의 부단장인 볼케노 드 쿠니케와 진의 사부이자 호송자(escorter) 등급이 S급에 랭크되어 있는 에리필. 이렇게 네 명이 일행을 암중으로 이끌고 있는 마스터들이었다. 조르단 상회의 비공선은 기존에 약속했던 유라시아드 숲에서 10 수키르(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행을 내려주겠다는 계약을 스스로 위반하며 숲의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흡열의 열매가 있는 곳과 최단거리 지점의 입구에 내려주었고, 이는 데이릭 일행이 조르단 상회 측이 보여주는 호의를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조르단 상회의 비공선은 데이릭 일행을 뒤로하고,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5 수키르(킬로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착륙해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편 데이릭은 지도상에 표시된 대로 갔다만 온다면 하루도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된 대로 흘러간다고만 볼 순 없었고, 여기는 그 악명 높은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소 삼일이라는 시간을 정해두고,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야숙을 했다. 근 160 여명이 넘는 대인원은 유라시아드 숲을 마주보며 아무리 청해도 쉽사리 오지 않는 잠을 인내심을 가지고 청하기 바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들을 감싼 어둠의 기운이 찬란한 태양의 여명에 밀려났고, 척박한 땅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160 여명의 사람들을 깨우는 따가운 햇살이 무수한 조각으로 부서지며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으음!” 일행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햇살의 간지럼에 이기지 못하고 두 눈을 비비는 진이었다. 진은 눈을 비비다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의 찬란함에 넋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그의 눈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늘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태양의 궤적을 따르고 있을 때, 160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떠날 채비가 되었을 때, 진은 따뜻한 손길을 느껴 그의 다크 블루빛 눈동자에 새겨진 붉은 태양을 눈 한번 껌뻑임으로 지워버리며 손의 임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자구나. 그리고 이제 저 안에 들어가게 되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지금까지 몸과 검에 걸어두었던 주문은 해제하도록 하자.” “그렇게 해야겠죠.” 진은 에리필의 말에 중력해제주문을 간단히 외우며 몸에 걸린 10G(150kg)과 검에 걸린 중력의 힘이 사라지는 것을 음미하듯 즐겼다. 그리고 그는 잠시 동안 모든 감각을 갑작스레 변해버린 몸의 상태에 적응시키도록 신경을 썼다. 잠시 후, 진이 팔과 다리를 털며 목을 옆으로 몇 번 꺾어 보더니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준비가 다된 것 같구나.” 에리필은 예의 포근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다 잠시 말을 끊고, 진을 심유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찰나의 공백이 무색하게 에리필의 진중한 음성이 울렸다. “진아! 한 가지만 약속하자.” “뭘 말이에요?” 진이 가볍게 되묻자 에리필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내 옆에서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해 다오.” “…….” 진은 일순 에리필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잠시 동안 아무 말 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그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심을 알아차린 이상 진이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절대 사부님 옆에서 떨어지지 않겠어요!” 그의 결의에 찬 음성은 일견 전장터로 나서는 혈기왕성한 장군의 그것과 같았지만, 그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의 약속이었고, 이를 알고 있는 에리필은 만족의 웃음을 입가에 띠우고 일행의 뒤를 따랐다. ==================================================================================== 여기까지 3권 분량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도 잠시간의 휴식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글을 못 올릴 거 같습니다. 이는 4권 처음부터 재앙의 숲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해서요. 어쨌든 한동안 글을 못 올릴 거 같습니다. 이점 용서해주시요.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4권 스타트를 끊으려고 하니,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43 회] 135화. 재앙의 숲 3. [4권 시작] 재앙의 숲, 혹은 죽음의 숲이라 불리는 유라시아드는 천하를 공포로 떨게 만든 것과는 달리 신록의 향기로운 내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온 숲을 뒤덮고 있는 그 향기는 너무도 달콤했으나 또한 그것이 너무도 극단적인지라 마력적인 마약의 효능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번뜩이는 두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는 일행들에게서 냉철한 이성의 빛을 빼앗아가는 것만 보아도 쉬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일행들의 눈은 점차 잠에 취한 듯 몽롱해졌다. 그러나 정작 일행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일행을 이끌고 있는 데이릭의 마음에도 포근함이라는 탈을 쓴, 단단한 포승줄이 찾아왔는데, 마스터 상급이라는 엄청난 경지도,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한 절박한 어버이의 심정마저도 그것의 침투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게 숲의 아름다움에 홀린 듯, 반나절을 걷던 어느 순간 모두의 태만해진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숲의 재앙은 갑작스레 홀연히 나타나 그들 진영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 듬직하게 곧은 모습으로 하늘로 뻗어 있는 신록의 잎들은 찬란한 태양의 부서짐에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촘촘히 그러나 듬성듬성 자기들만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는 이름 모를 꽃과 풀들은 바람의 살랑임에 하늘거리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흔들림에 마음이 흔들린 모두는 괜스레 마음이 뒤숭숭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이빨로 변하여 자신들을 유린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이 죽음의 숲, 유라시아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작은 위험이 들이닥쳐도 모두에게 알려야 되는 척후조는 그들 본연의 임무도 망각한 채,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한 걸음을 옮기며 숲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숲의 방문객들에게 인사라도 하듯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던 나무가 마치 머리를 털 듯 기둥과도 같은 갈색의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이 혼란의 시작이었다. 척후조의 임무를 망각한 아슈케는 편안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는데, 엄청난 기세로 쇄도하는 나무는 생각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가 생애에서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아슈케의 갑작스런 죽음에 척후조의 인물들은 비록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검을 뽑아 등을 맞대어 공격에 대비했다. 쇄액! 아슈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굵다란 나무가 바닥을 쓸 듯, 밑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척후조는 어렵지 않게 나무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에서 하나씩 깨어난 나무들이 느릿하게 움직여 척후조를 공격하자, 그들은 점차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압!” 척후조의 조장인 베인트는 허공에다가 삼엄한 에너지 소드의 막을 만들어 수십의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방을 뒤덮고 있던 갈색 줄기들이 조금이나마 느슨해졌다. 그것을 본 베인트가 한 사내의 등을 툭 치며 황급히 말했다. “자칸, 어서 가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많은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러나 이미 말을 맞추어두었던지라 자칸은 베인트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베인트는 자신이 만든 틈으로 자칸이 뛰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들이 그것을 메우는 것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진 않았다. 비록 힘이 들긴 하지만,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무들의 공격은 비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대처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인트를 비롯한 척후조의 사람들은 진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이지만, 뒤로 이동했다. 그렇게 그들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는 순간 삼엄한 막을 형성하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일제히 공간을 좁히며 그들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렵지 않게 나뭇가지들을 잘라냈다. 그 순간 그들이 서 있던 땅이 푹 꺼졌고, 그들 또한 나뭇가지들 때문에 움직임이 여의치 않아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땅의 아가리로 떨어졌다. 얼마 뒤, 벌어졌던 땅은 흔적도 메워졌고, 결국 그들은 갈라졌던 땅이 합쳐지며 발생한 거력에 손도 쓰지 못하고 압사당해 버렸다. 한편 본진에게 구원요청을 하러 떠난 자칸은 얼마 이동하지도 못하고, 척후조의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 없이 벌린 검은 아가리에 잡아 먹혀버렸다. 척후조의 죽음은 비록 본진에게 전해지지 않았지만, 저 앞에서 기운의 증폭을 감지한 데이릭의 입에서 외마디 외침이 토해졌다. “앞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 모두는 속도를 최대로 높인다!” 그의 외침은 모두의 태만했던 마음을 순식간에 긴장으로 조여 매게 만들었고, 그들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며 몸을 날렸다. 그렇게 그들이 척후조가 죽임을 당했던 곳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는 숲이 농간을 부려, 치열했던 전장을 깨끗이 정리해버렸기 때문이다. 본진의 마지막이 척후조가 죽임을 당했던 곳을 지나가는 순간, 데이릭이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급히 뒤로 돌아보며 외쳤다. “적이다!” 아니라 다를까 그의 외침과 동시에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던 나무가 쏜살같이 그들을 향해 쇄도했고, 그와 동시에 땅이 뒤집히며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주위에 아름답게만 보였던 꽃과 풀들이 잔인한 이빨을 드러내며 그들의 사냥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또한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던 나무들이 마치 발이라도 달린 듯, 움직이며 그들을 짓밟으려는 심산으로 다가왔다. “땅이 뒤집힌다. 모두는 조심하도록!” 몇 안 되는 술법사들 중, 대지의 술법사가 놀라 외쳤지만, 그의 경고는 제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무참히 허무의 외침으로 짓밟혀 버렸다. 뒤집힌 땅은 제 의지를 가졌는지 들끓던 땅을 사람높이보다 높게 뽑아 올려 경악해 하는 인물들을 뒤덮어 대지로 돌아갔다. 이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가리로 사람들을 집어넣는 것보다 더한 위험이었고, 이로 인해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기습에 놀랐던 일행들은 모두가 보기 드문 놀라운 무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검을 뽑아 제대로 상대하고 있었다. 특히 데이릭을 포함한 네 명의 마스터는 검에 에너지 소드를 넘치듯 뿜어내며 숲의 자식들을 철저히 부수고 있었다. 이들의 검에 걸리는 것은 사납게 덤비는 대지든, 늠름한 위상을 뽐내던 나무든 하나도 가리지 않고, 철저히 부서 버렸다. 이에 힘을 얻었음인가? 30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뒤집혀지고, 푹 파인 대지를 순식간에 메우었고, 거기에 술법사들의 미약한 힘이 보태졌다. 그리고 마법과 술법을 이용해 향긋한 꽃내음 대신 잔악한 독을 뿌리는 꽃들을 태워버리기도 했다. 한 번 기세를 타자 거리낄 게 없어진 일행은 인간이 아닌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검을 휘두르는 상대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나 동물이 아니기에 그들의 검에 의해 파괴되는 것들에게서는 어떠한 비명소리도 또한 피와 같은 분비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점차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과 함께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공포를 느꼈다. 한편 진은 에리필의 옆에서 검을 휘두르며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의 몸놀림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경악의 신음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빨랐다. 진이야 평소 카이슨에게서 사사받은 바 있고, 중력의 힘이라는 수단으로 육체의 힘을 끌어올리는 수련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한달하고도 이십 여일이라는 시간동안 불가능하다고 보였던 수련을 통해 그는 가일층 빨라졌고 강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 그의 뒤뚱대는 모습이나 불안정한 몸놀림에 익숙해있던 일행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고, 그것은 그의 옆에서 검을 휘두르며 힐끔힐끔 보던 에리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상 이상의 성과군. 비록 진이 미디스트 급의 기(氣)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순수 실력은 하이스트 급에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겠어.’ 에리필은 속으로 흐뭇한 심정이 들어 입가에 웃음이 그려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전투를 이끌고 있는 데이릭 또한 상당히 놀라워하며 진에 대해 기존에 가졌던 생각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 어쨌든 전투는 끝날 기미를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더 이상 여기서 시간과 힘을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한 데이릭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치며 앞장 서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는 연습한 대로 진형을 갖추고, 마법사와 술법사들은 안쪽으로 들어가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도록 하라!” 그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진형을 갖춘 일행은 원형의 진형을 유지하며 데이릭의 이동에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 역시 에리필과 함께 데이릭 옆에서 열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이들의 행군은 전력질주는 아니지만, 범인이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빨랐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앞을 막는 숲의 적들을 상대하며 목표물인 흡열의 열매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쉬지 않고 달리던 일행은 데이릭이 지도를 살펴보기 위해 멈춰 섬에 따라 자연적으로 진형을 구축해 주위의 어떤 공격에도 방비할 수 있도록 사위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마법사와 술법사들 같은 경우에는 땅이 뒤집히며 날뛰는 갑작스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록(lock) 마법이나 술법사들이 가진 속성에 따라 각기 다른 술을 걸었다. 거기에 에리필이 중력의 술을 펼쳐 인위적으로 대지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한 동안 대지는 들끓는 소리만 냈을 뿐, 얼마 전처럼 그들을 잡아먹진 못했다. 지도를 살펴보던 데이릭이 고개를 들어 그의 부하인 가르니에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인원을 체크하라고 명했다. 잠시 후, 가르니가 침중한 표정으로 다가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포함해 무인 93명과 마법사 26명, 술법사 5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데이릭은 가르니의 말에 절로 침중한 신음성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인 32명과 마법사 6명, 술법사 2명으로 총 50명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전체 전력의 3분의 1이 죽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그가 받은 충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죽어간 이들에게 잠시간 애도를 표한 뒤, 결연한 음성으로 장내를 향해 말했다. “현재 지도상으로 우리 위치를 살펴본 봐.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대략 1 시간 정도를 아까와 같은 속도로 이동하면 흡열의 열매가 자생하는 지역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현재 우리는 전력의 3분의 1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물론 전력이라는 측면을 떠나 그들의 죽음을 애도해주어야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살아서 그들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용납하지 않겠다.” 데이릭이 돌려서 말했지만, 말뜻은 간단했다. 요는 ‘모두 살아남아라.’라는 말이었다. 그가 이와 같이 완곡한 표현을 사용한 이면에는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을 사지로 이끈 것이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그는 대놓고 살아남으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속내를 알고 있는지, 모두는 침중한 표정으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기라도 하듯 빙 둘러보던 데이릭이 강렬한 의지가 깃들은 외침을 토하며 선두를 이끌었다. “가자! 고지가 멀지 않았다.” ‘미안하다. 내 딸의 목숨만 귀중한 것은 아닐진대. 그러나 이럴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달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니 나를 욕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라!’ 그의 속내의 중얼거림은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그의 가슴속에 아련히 피어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를 모두는 느꼈고, 그들의 얼굴은 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올랐다. 그렇게 그들은 밀림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는 이미 그 사나운 마수를 데이릭 일행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또한 그것은 이제껏 점잖은 공격을 해오던 그들이 숲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들을 말살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처음의 아름답던 숲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던 길이 끊어진지도 오래다. 앞은 허리높이까지 자란 이름 모를 풀로 뒤덮였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끈끈한 줄로 연결한 듯한 거미줄이 사방을 에워쌌으며, 이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기괴하게 생긴 동물들이 일행을 호시탐탐노리며 달려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이릭이 말했던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난지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호기롭게 출발한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야생의 숨결이 숨쉬고 있는 밀림으로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밀림은 일행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그들에게 위험의 촉수를 시도 때도 없이 날렸다. 그렇기에 그들은 작은 위험에도 조심해야했고, 앞을 막아서고 있는 풀 한 포기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걸음은 자연 느려지게 되고, 크고 작은 전투로 인해 그들의 숨결은 점차 흐트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 유일한 아군이었던 빛이 사라지며, 숲의 원군으로 돌아선 어둠은 너무도 빠르고, 순식간에 그들을 뒤덮었다. 최소 로우스트 급 이상으로 구성된 일행에겐 어둠이라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지에 도달한 무인들이라 할지라도 갑작스레 내려온 어둠과 그 틈을 노려 미세한 벌레들이 뿜어내는 독을 막아 낸다는 것은 상당히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견치 못한 공격과 준비치 못한 절묘한 상황이 어우러져 나타난 피해일 뿐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마법사들이 재빨리 마법을 캐스팅해 라이트 마법을 시현했고, 이내 그들은 비록 잠시간이었지만 어둠이 주었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트 마법을 통해 주위의 상황을 알게 된 일행은 절로 침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온통 적들뿐이잖아.” 실력에 비해 마음이 심약한 사내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탓할 수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상황은 온통 적뿐이었고, 말 그대로 포위당한 형세였기 때문이었다. 적들이라 말해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대신 나무를 타며 쉴 새 없이 혀를 날름거리는 비상식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뱀이 있는가 하면, 또한 비상식적으로 큰 거미가 그들이 쳐 논 거미줄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또한 나무 위에 그러한 존재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 사이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집채만 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개의 형상을 한 괴물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작은 벌레들은 소리 없이 다가가 독이 묻은 침을 쏘아대었기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거기다 그들 주위에 있는 풀들이 마치 두 다리가 달린 것처럼 움직여 한 걸음을 전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크진 않지만 잔가지들이 많은 나무들은 마치 그 많은 가지들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일행들을 몰아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도망갈 구석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까닥 잘못하다간 전멸을 면하기 어려운 형국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데이릭은 상황의 어려움을 피부로 실감하면서도 멀지 않은 곳에 흡열의 열매가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들을 상대할 것인가? 아님 저들을 무시하고, 흡열의 열매를 구하는데, 신경을 쓸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전력을 나누어 몇 사람을 보내 흡열의 열매를 구하도록 할 것인가?’ 데이릭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렸다. 그러나 그는 얼마 있지 않아,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는 듯하던 숲의 자식들이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뱀의 형상을 하고 있되, 그것은 이미 뱀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이 데이릭 일행을 노리고 그 긴 몸을 끌며 다가왔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몸통을 자랑하는 거미들이 입에서 허연 줄들을 쏘아 보냈다. 이들만 해도 충분히 힘에 부치는 상대인데, 여기에 집채만 한 동물이 쏜살같이 일행들에게 쇄도했으며, 이제는 악령의 숲이라 불러도 충분한 유라시아드에 존 재하는 식물들이 의지를 가진 듯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며 호흡을 가다듬던 무인과 마법사들, 그리고 술법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나운 기(氣)와 마나의 폭풍을 그들에게 뿌려대었다. “죽어라!” “크아앙!” 인간의 외침에 화답하듯 강렬히 부르짖는 맹수들의 외침!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단순한 맹수가 아니었다. 화려한 빛들이 무작위의 상대를 향해 몰아친다. 그리고 거기에 걸리는 것은 어김없이 숲의 자식들이었다. “라그나 프레스트!” 일행의 중앙에서 강렬한 빛의 기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기둥은 30 라키르(미터)정도 솟았다가 일행이 점하고 있는 일정 공간 너머에 광폭한 빛들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콰콰쾅! 꽈지직! “크아악!” 화려한 빛줄기 속에 잔인한 살상력을 가진 마법이 터짐과 동시에 괴수들의 비명과 식물들의 말없는 죽음이 이어졌다. 이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는 무리한 마나를 사용했기에 전신이 노곤해져 있었으나 그는 다른 마법을 시현하기 위해 캐스팅을 준비했다. 그런 그의 강인한 의지를 이어받은 20명이 조금 안 되는 마법사들이 일시에 그 화려한 마법의 쇼를 열기 시작했다. “볼케이노!” “슈팅 라스티노!” “아쿠아 롤러!” “쿠웨스트 워!” 거의 연달아 터지는 마법은 아무리 유라시아드의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에겐 끝임 없이 공급되는 전력이 있었고, 일행에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기(氣)와 마나의 부족이 멀지 않은 시간 안에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틈나는 대로 체력과 기(氣), 그리고 마나를 보충해야 했다. 그렇게 피를 말리는 전투는 어둠을 뚫고 여명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더 이상 라이트 마법이 필요 없어져 쓸데없는 곳에 마나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분명 그들 일행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온 천하를 밝게 드리우는 태양은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일행에게 보여주었다. 그들 일행이 원형진을 만들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공간은 방원 50여 라키르(미터)가 채 못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는 공간 외의 모든 공간은 예전에 숲의 자식들로 덮여 있었다. 그렇기에 근처에 자생하는 흡열의 열매를 따러 가볼까 생각했던 데이릭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어 숲의 자식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벽의 절대적인 견고함을 뼈저리게 느껴 그러한 생각은 포기한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 더 이상 이렇게 버틸 수만도 없었다. 그렇기에 데이릭은 모종의 결단을 내렸다. “파슈발과 쿠니케 씨 그리고 에리필 씨는 단 한번의 승부를 걸기 위해 최상의 몸으로 만들어 놓으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불과 1 수키르(킬로미터)정도 되는 곳에 있는 흡열의 열매를 따기 위해 힘으로 그들이 세워놓은 벽을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뿐! 스피릿 트랜스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는 자신이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기(氣)를 단전에 모으십시오. 최대한 빨리!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 네 사람이 기(氣)를 보충하는 사이 적들의 공격을 막도록 하시고, 테이리 씨는 지금부터 공간 마법진을 만드십시오.” 데이릭은 말을 마치고 가부좌를 틀어 기(氣)를 보충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세 명의 마스터도 가부좌를 틀며 기(氣)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행의 최강 전력이라 말할 수 있는 네 명의 마스터가 모두 기(氣)를 모으고 있는 사이에도 숲의 자식들은 거센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을 그들과 겨룬 바 있는 일행은 능률적인 공세와 방어를 취하며 그들의 공격을 막았다. 숲의 자식들의 공격은 확실히 거세고 매서운 것이었지만, 이미 땅과 하늘, 그리고 사방의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응하는 일행에게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쩔 수 없이 고갈되어 가는 기(氣)와 마나 그리고 체력이 그들의 유일한 문제라 할 수 있었다. 네 명의 마스터가 없으니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라와 있는 가르니와 마스터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최상급 마법사인 메시브게 테이리가 일행을 이끌게 되었다. 그와 함께 경이로운 스피드와 체력을 자랑하고 있는 진이 원형진에 구멍이 생긴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막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 일행 사이에서 진의 위치가 급부상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물론 현재 진의 실력보다 강한 사람들은 일행 중에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진이 보여주는 엄청난 운동량과 실전능력은 그들이 보아도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공간 마법진을 그린다고 여유가 없는 테이리 대신 가르니가 우선적으로 일행 중 가장 강력한 전력이라 말할 수 있는 익스퍼트 급 십여 명에게 외곽의 중요지를 지키라 명했고, 그들 사이사이에 일행 중 실력이 가장 낮은 로우스트 급과 미디스트 급의 사람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원형진 한 가운데서 마법사들을 지키면서 틈이 생기면 메워주는 역할에는 하이스트 급의 무인들이 선발되었다. 한편 마법사의 수도 많이 줄어들어 이제는 테이리를 포함하여 11명만이 살아남았다. 7명의 술법사들은 이미 전멸한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원거리와 하늘과 땅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마법사들의 존재는 더욱 소중해졌고, 어느새 술법사들의 존재는 그들의 머리에서 잊혀졌다. 그것은 잔인한 일이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잔인성마저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견디고 또 견디다보니 이제는 거의 습관적으로 검을 휘두르게 되고, 마법을 발현시키고 있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의식이 무의식에게 밀리고, 자아가 죽어가는 현상으로 결국 피로와 자신들이 보유한 힘이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가르니는 장내의 침잠되어가는 분위기를 느끼며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면서도 그의 시선은 간간이 네 명의 마스터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시선이 원형진의 중간을 훑다가 무수히 많이 벌어진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겼다. 그러나 그는 인상을 찡그려야 되는 상황에 맞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주군! 깨어나셨군요.” 그의 음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데이릭의 뒤를 따라 세 명의 마스터도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는 검을 휘두르면서 또는 마법을 시현하면서 그들의 시선을 원형진 한 가운데로 돌렸다. 그런 그들의 몸은 이미 무수히 많은 상처로 뒤덮여 있었건만, 그들의 얼굴은 한없이 밝았다. 한편 진은 채찍처럼 휘어들어오는 나뭇가지를 자른 뒤, 외형적으로는 분명 곰이지만, 그보다 몇 배나 큰 괴수가 한 사내의 검을 우그러뜨리는 것을 보는 순간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검에다가 하얀 구를 만들어 괴수의 면상에다가 날렸다. 쾅! “쿠에엑!” 얼굴에 강한 충격을 받은 괴수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지축을 흔들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만들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진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검놀림으로 괴수의 양쪽 다리를 잘라내었다. 쿵! 두 다리를 잃은 괴수는 비스듬하게 잘려나가는 다리를 따라 지면으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진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사내가 누워서 신음을 토하는 괴수를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았다. 진은 장내를 살피면서 자신이 투입되어야 할 곳을 찾다, 사부가 깨어났음을 알았다. 그 순간 그는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입가에 환한 미소를 그렸다. “젠장!” 진은 자신에게 미소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반발적인 의식의 영향으로 그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구겨졌고, 이내 혼자만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란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이야. 음… 그런데 나의 자아는 이미 샤넬리의 그 사건 때 부서지지 않았나? 솔직히 지금 내가 구제불능이란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안 그래도 내가 구제불능인 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도 난 왜 이리 비참해지는 것일까?’ 진은 떠오르는 의문에 답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늑대같이 생긴 괴수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시뻘겋지도 푸르지도 않은 묘한 피가 그의 얼굴에 뿌려졌다. “크음.” 신음을 터트리던 진은 여유가 생기자 또 다른 의문을 머릿속에 제기하며 침잠되어갔다. ‘나는 죽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여겼지. 솔직히 말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정작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이런 생각을 했었지. 더구나 나름대로 강해졌다고 기고만장해있던 내게 샤넬리의 죽음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어.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여기 와서 내가 한 것은 뭐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거밖에 더 있었나? 그래, 샤넬리를 구할 수 있는 그 약초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검을 휘둘렀다고 합리화를 시킬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오로지 자기 합리화일 뿐이야. 나는 샤넬리를 위해서도, 사부님을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검을 휘둘렀었어. 또한 사부님이 깨어나자, 죽을 위험에서 한 걸음 물러 났구나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는 내 자신을 보았어. 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추악하고 더러운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내가 정말 추악한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으며, 샤넬리가 그렇게 된 게 내 잘못인가?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 아닌가? 하아,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알 수가 없어.’ 진은 멍하니 있다 기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와 함께 살과 뼈를 부수며 느껴지는 손맛, 그리고 얼굴을 뒤덮는 후끈한 열기와 뜨뜻한 피! 순간 진은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아니, 차라리 욕지거리를 내뱉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참음으로써 진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혼란의 자아가 고개를 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크큭, 솔직히 여기 따라오지 말 걸 하며 후회도 했다. 지금도 내 몸은 검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살기 위해서. 크윽, 그렇게 살고 싶다면 왜 이곳에 왔단 말인가? 내 자신이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야! 도대체 왜!’ 진은 깊고도 어두운 혼란의 사고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며 허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이유가 지금껏 자신이 행한 고행과 행동이 무엇을 위해서냐고 물으면 명쾌히 대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현재 진은 오로지 자신을 핍박하는 입장이 되어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진은 근 17년이라는 세월동안 키워온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비단 진만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아는 자기가 보낸 세월 동안에 축척되고, 쌓여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진의 사고를 장악하고 있는 혼란의 자아를 억누르기 위해 튀어나오는 본연의 자아를 사실상 평범한 일상에서 의식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런 진의 자아가 지금 혼란의 자아에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몰아세울 필요는 없어. 너는 네 자신이 그때 그 당시의 아픔에 같이 아파했었고, 슬퍼했었어. 그리고 그것은 너를 고행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했지. 그것은 아직 네가 아니 내가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샤넬리에게 정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어. 그리고 지금과 같이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울 거야. 인간이란 존재는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을 멸할 수도 있는 존재거든. 한 마디로 인간은 자기가 있으므로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존재란 말이지. 이는 비단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야. 어쩌면 인류라는 커다란 집단이 이러한 본능적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지도 몰라.’ 진의 자아가 그에게 말하자 그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과 함께 깨질 것 같이 아팠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며 그 심한 통증도 서서히 사라짐을 느꼈다. 그러나 혼란의 자아는 진이 자신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흥, 너의 말은 다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 그렇다면 네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은 죽여도 된단 말인가? 그리고 네가 행한 모순덩어리 행동과 사고, 그리고 감정의 표출은 네가 더 이상 정상적인 인간일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어. 흥……!’ ‘아니야. 그건 단지 극단적인 사고와 여물지 않은 감정 표출의 발로일 뿐이야. 그러니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어. 너는 아직 다 자라나지 않은 작은 순이야. 그러니 커다랗고, 듬직하게 자란 나무들을 부러워하기는 하되,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고 자책이나 절망을 할 필요는 없단 말이야. 저 데이릭 경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는 이미 다 자란 나무야. 그런 그도 자신의 딸이 다 죽게 되자 그는 어떻게 했지? 어떻게 보면 그의 딸을 살리겠다는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더 죽을 거야. 그렇지만 그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야. 그의 입장에서는 그의 행동이 타당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야. 그러니…….’ ‘흥,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혼란의 자아가 진의 자아에 반박하려 나서려 할 때, 멍하게 서 있는 진을 노리고 달려드는 괴수를 죽인 에리필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진아, 어디 심하게 다친 거니?” 에리필은 온 몸이 자잘한 상처와 끈적끈적한 피로 뒤덮인 진의 몸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 았다. 진은 멍한 눈으로 에리필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에리필의 따스한 눈빛이 절망의 굴레를 찢어버리며 그를 따스한 빛의 세계로 인도했다. 진은 순간 너무나 따뜻한 느낌에 온 몸이 전율함을 느꼈다. 그와 함께 점차 사라지는 혼란의 자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 수 있었다. 혼란의 자아는 비록 잠시 사라질 뿐, 자신의 내면에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란 사실을. 그것은 명료하게 내리지 못한 문제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아서 해답을 여는 키가 없으면 영원토록 그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은 한결 가벼워진 머리와 하나의 실타래가 풀리며 덩어리진 실타래들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 기분 좋은 웃음을 입가에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만에 그의 입에서 예전의 밝은 음성이 튀어나왔다. “괜찮아요, 사부님. 단지 불쌍할 정도로 연약한 제 자신의 껍질을 벗었을 뿐이에요.” “그랬느냐? 그래, 어쨌든 몸에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구나.” 에리필은 진이 하는 말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부르는 데이릭에게 다가갔다. 물론 그의 옆에 진이 따랐음은 당연한 이야기다. 데이릭은 네 명의 마스터가 모두 모이자 침중한 음성으로 그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파슈발이 선뜻 나서며 말했다. “그렇담 첫 번째로 저들의 문을 여는 것은 내가 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일직선의 길을 뚫는 데는 내가 가장 적합할 걸세.” 데이릭은 사자를 연상키는 파슈발의 금발이 피에 절어 있는 것을 씁쓸한 표정으로 보았다. “하하, 그 똥 씹은 표정은 뭔가? 설마 내가 못 미더워서 그러는가?” 데이릭은 무거운 분위기를 일신시키기 위해 농을 거는 파슈발이 고마웠다. 그래서 그는 힘들지만,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만들며 말했다. “슈렌트 가문의 자랑스런 마스터를 누군들 무시할 수 있겠나?” “허허, 꼴에 부탁하는 입장이라고 자신보다 약하다고는 하지 않는군. 하하!” 파슈발이 데이릭의 등을 두들기며 말하자, 데이릭의 입가가 자연스레 말려 올라갔다. “하기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네의 무식한 성격을 닮은 스피릿 트랜스만 아니었다면, 선두로 서는 것을 악착같이 말렸을 거네.” 파슈발은 데이릭의 짓궂은 표정을 보고,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쿠니케가 서큐리스 기사단의 부단장답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분의 우정은 이곳을 벗어나서 다져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험험.” 쿠니케의 핀잔에 데이릭은 애꿎은 헛기침만 했다. 그리고 그는 2 라키르(미터) 35 키르(센티미터)라는 거대한 육체를 가진 쿠니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죄송하구려. 잠시 상황의 심각함을 잊어먹었다오. 어쨌든 파슈발이 문을 열고, 전속력으로 달리다 다음 벽이 나타나는 순간 쿠니케 씨가 그 벽을 허물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쿠니케가 예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데이릭이 쓴웃음을 지으며 에리필을 보았다. 에리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로소 모든 준비가 끝났다. 파슈발이 문을 열기 전, 마법사들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그들과 흡열의 열매 사이에 있는 숲의 자식들에게로 쏘아졌다. 콰콰쾅! 쿵쿵쿵! “크아악!” “크르륵!” 경천동지할 폭음과 자욱한 먼지사이로 네 명의 마스터가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숲의 자식들이 엄중한 막을 채 형성하기도 전에 그들을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100 라키르(미터)정도를 달리자, 숲의 자식들은 어느새 수백 겹의 막을 형성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슈발!” 데이릭의 짧은 외침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파슈발의 검에서 화려한 스피릿 트랜스가 터져 나왔다. “바케라이팅!” 거센 외침과 함께 그의 검에서 붉은 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부서 버리고 앞으로 쇄도했다. 콰콰쾅! 파슈발은 스피릿 트랜스를 뿜으면서 돌격했다. 이는 그가 마스터 상급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다다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리필이나 헌트 같이 마스터 초급, 중급에 있는 자들은 그만한 기(氣)도 없을 뿐더러, 깨달음의 그릇도 현저히 작았다. 마스터 중급과 상급 사이에는 또 다른 쿤을 열지 않으면 넘을 수 없기에 그만한 실력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에리필은 파슈발의 그런 모습을 보며 속으로 매우 놀랐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모여 있는 마스터들이 자신보다 강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기에 쉽게 평상심으로 돌아와 전속력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그들은 근 600 라키르(미터)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슈발의 뒤를 이어 쿠니케의 대검이 휘둘러지며 황금빛 그물이 숲의 자식들을 향해 던져졌다. “아그루시드!” 쿠니케의 황금빛 그물은 마치 일시에 모든 것을 가둬버리고, 그 강인한 기운으로 순식간에 대지를 잔혹한 파멸로 이끄는 전율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4인의 마스터는 쿠니케가 뚫어놓은 900 라키르(미터)까지 돌진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에리필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옆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한 사내 때문에 깜짝 놀라 순간 집중하고 있던 기(氣)를 흩트려버릴 뻔 했다. 하지만 평소 단련한 수양덕분에 그는 잠시간 흔들렸던 평정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옆에 사내를 잠시 째려보며 조금 있다 보자는 뜻을 전하며 그의 비전을 펼쳤다. “드래곤 스크류!” 에리필의 예검이 그의 손에서 떠났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거대한 푸른 용을 현세에 만들어 그 놀라운 권능을 그의 앞에 서 있는 미물에 불과한 숲의 자식들에게 뿜어냈다. 푸른 용은 그 아름다운 위용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의 앞을 막고 있는 미물들 때문에 마음대로 승천하지도 못하고, 100 라키르(미터)정도를 전진했다 현세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푸른 용이 지나간 자리는 그가 직접 지나가지 않았음에도 그 주변 모두가 초토화되어 버렸다. 데이릭을 비롯한 파슈발과 쿠니케는 의외라는 눈빛을 던지며 그의 경이적인 검공에 놀라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탄탄하게 뚫린 대로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흡열의 열매를 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 뒤를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고 있는 숲의 자식들이 있기는 했다. 흡열의 열매는 마치 커다란 눈동자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한 줄기에 하나씩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흡열의 열매는 커다란 눈동자같이 생긴 열매를 끔벅이고 있어, 누가 보면 거대한 괴수의 눈알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데이릭은 이러한 흡열의 열매의 기괴함에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대신 그는 이미 들었던 바대로 흡열의 열매를 뿌리 그대로 뽑아냈다. 만약 뿌리 그대로 뽑지 않고, 열매만 취하면, 그 즉시 열매는 생기를 잃고, 쭈글쭈글해져 그 약효를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흡열의 열매 하나를 더 뽑았다. 그렇게 그가 일을 마무리 하고 돌아서는 순간, 흡열의 열매가 서식하고 있는 지역이 들끓기 시작했다. 에리필은 순간 땅의 저주가 일어나는 줄 알고, 중력의 술을 풀어 인위적인 힘으로 그것들을 억눌렀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움찔하는 듯 하더니 더욱 강력한 힘으로 에리필의 중력의 술을 깨고, 그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했다. 흡열의 열매는 놈의 무수한 눈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수백의 눈을 번뜩이는 파마란트 파마란트는 이곳 재앙의 숲 유라시아드의 동남쪽을 맡고 있는 괴수였고, 간만에 깊은 잠에 빠져있던 그를 깨운 데이릭에게 무한한 분노를 보내고 있었다. 파마란트는 그 키가 족히 100여 라키르(미터)가 넘어 도저히 상대한다는 생각자체가 어림없는 짓이라는 것을 말해주듯 가히 절대적인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빠르게 눈을 맞추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서 그 진한 묘미를 찾는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러한 옛말은 데이릭 일행에겐 하등 도움 되지 않는 말이었고, 오히려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 증오와 하염없는 저주의 언어로 전락되었다. 데이릭 일행이 재빨리 도망친다고 도망쳤지만, 파마란트가 한 발짝 걸음을 떼자 그들의 걸음은 헛된 몸부림으로 증명되었다. 그렇다 보니 모두의 얼굴에는 허탈한 심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가히 벽이라 할 말한 파마란트의 두 다리일 뿐. 어느새 거리를 따라잡은 파마란트는 그들이 가는 길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가고 싶어도 빙 둘러 가야 되는데, 숲의 자식들로 인해 시커먼 물결들이 출렁이고 있어 그것도 여의치 않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목숨 위에 겨우 건진 흡열의 열매를 얻은 데이릭은 비록 그것이 무모한 도전이라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 도전할 각오였다. 순간 그의 눈에 그러한 기회가 붙잡혔다. 파마란트 뒤로는 어느새 숲의 자식들로 꽉 채워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숲의 자식들이 파마란트를 붙들고 있는 형세였고, 그 모습은 숲의 자식들이 그를 꽉 붙들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데이릭은 이 상황을 기회라 여겼고, 자신들을 짓밟기 위해 파마란트가 발을 떼는 순간을 노렸다. “크라스트 바주카!” 그의 검에서 한 줄기라고 말하기에는 거대한 빛줄기가 거대한 탄환의 형상을 만들며 땅을 버티고 서 있는 파마란트의 다리로 날아들었다. 콰앙! 파마란트는 굳이 피할 생각이 없었는지 데이릭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주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데이릭이 인간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아니 절대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것은 몰랐다. 더군다나 데이릭은 마스터의 상급의 극에서 최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의 강함은 실로 절대적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전력을 다한 이상 상대는 최소한 바닥에 엉덩이를 부딪쳐야 옳았다. 쿵! 콰지직! 순간 한 존재가 넘어지는 것치고는 거창한 파육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 터졌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데이릭이 노린 것이었다. 데이릭 일행은 파마란트 밑에 깔린 숲의 자식들이 혼란에 빠진 것을 보자마자 그들을 스쳐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똥줄이 빠져라 달리던 그들은 조금만 있으면 원형진이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파마란트를 너무도 무시한 생각에서 기인한 오판이었다. 쿵! 쿵! 쿵! 단 세 번의 거대한 울림이 그의 간단한 손동작에 의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세 번의 울림은 그들이 딛고 있는 대지를 터트릴 듯 자극시켰고, 그것은 데이릭 일행이 달리는데 상당한 방해요소로 작용했다. 그리고 결국 대량의 기(氣)를 소모한지 얼마 되지 않은 데이릭이 쩍 벌어진 땅에 그만 다리가 끼이는 사태가 터져버렸다. “젠장! 이제 다와 가는데!” 데이릭은 다리를 빼기 위해 검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나 너무도 급해서일까? 생각보다 과한 힘이 실린 일검에 조금씩 갈라지고 있던 대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벌어졌다. 한편 일행의 뒤를 맡으며 쫓아오던 진이 시커먼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데이릭의 손을 간신히 붙잡았다. 이때의 데이릭은 이미 많은 힘을 소모한지라, 땅을 차고 뛰어오를 힘조차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데이릭은 지금까지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그 끝자락에 샤넬리의 모습에서 진의 모습으로 오버랩 되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데이릭은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그리고 그는 눈앞에서 땀을 닦으며 그를 부축하며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진에게 진한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이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거대한 그림자에 가리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진은 데이릭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그도 재빨리 몸을 날렸다. 쿵! 콰지직! 크르릉! 순간적으로 수십 가지 소음이 울렸고, 그것은 엄청난 땅의 균열과 숲의 자식들의 파멸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몸을 피한 진과 데이릭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진이 몸을 날린 공간은 파마란트에 의해 생긴 깊게 균열된 틈 사이였다. 그러나 진은 그 급작스런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이제는 절벽이라 할만한 대지 속에 재빨리 검을 박아 넣었다. 한편 그에게 구함을 받은 데이릭은 균열이 일어나면서 솟아오른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었다. 에리필은 전력을 다해 앞을 달리다 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 들어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무지막지한 파마란트의 발에 깔려 죽게 생긴 진과 데이릭을. 그러나 사실상 에리필의 눈에는 데이릭은 들어오지도 않았고, 오로지 진만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전력을 다해 몸을 날리자, 옆에서 달리고 있던 파슈발이 긴박한 순간에도 불구하고 잠시 멈추고 뒤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데이릭이 잡히었다. 에리필은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어둠으로 몸을 날리는 진을 보는 순간, 심하게 뛰고 있던 심장이 급박한 반전을 보이며 딱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몸에 있는 모든 피가 머리로 몰리는 것을 느꼈다. “진아!”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에리필은 진이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말은 길었지만,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진은 사부가 자신을 구하러왔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이는 사방이 적이고, 자신의 목숨을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 갔던 길을 도로 돌아와 제자를 구하려는 사부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아, 어서 내 손을 붙잡아라.” 에리필은 다급한 음성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사실 이 정도의 높이라면 진이 마음만 먹는 다면 쉽게 올라올 수 있는 높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은 오랫동안 전투를 치르다 손에 무리가 간 상태였고, 워낙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 (氣)를 운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검을 딱딱한 벽에 박았기에 그의 몸이 받은 충격은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이런 상태였지만, 진은 순간의 재치를 발휘해 검을 잡고 있던 손은 그대로 놓아두고 몸의 순수 반동을 이용해 한 바퀴 돌아 검의 손잡이 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본 에리필은 진의 몸에 생긴 이상은 짐작도 못하고, 무조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올라오기만을 바랐다. 진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위로 뛰어오르려 했다. 그 순간, 파마란트의 분노가 대지를 두들겼다. 쿵! 대지를 뚫고 전해지는 충격은 검을 박아놓았던 지반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의 검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주르륵 내려갔다. 진은 그가 원래 올라가려고 했던 그 힘과 아래로 내려가는 힘 사이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잠시 허공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하다 이내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작지만 그가 위로 오르기 위해 발을 구르는 동작이 검에 영향을 주어 그는 기존에 있던 곳보다 10 여 라키르(미터)나 더 내려와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에리필의 두 눈은 찢어질 듯 크게 떠졌고, 심장이 터질 듯이 답답해졌다. 다행히도 진이 무사해 에리필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는 있었다. 그 순간, 하늘이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그러나 에리필의 신경은 진에게로만 향해 있었기에 이런 상황변화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은 분명 볼 수 있었다. 자신과 사부를 파멸로 몰고 가려는 파마란트의 잔악한 손속을. “사부님 피하세요!” 진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에리필은 연신 진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사부님, 제발요. 위를 보세요!” 진의 다급한 음성에 에리필은 힐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을 뒤덮는 어둠이 점차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돌려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진아 어서 뛰어올라 내 손을 잡아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젠장, 지반이 약해져 차고 오를 수가 없단 말입니다. 사부님, 어찌 제 맘을 이리도 몰라주십니까?’ 진은 대놓고 말하면 에리필이 아파할까,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속에다 외쳤다. 그리고 그와 중에도 파마란트는 잔혹한 손속을 들이밀고 있었다. “사부님! 제발요! 전, 안 돼요!” 진은 조금 있으면 둘 다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에리필은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절벽을 타고 내려올 기세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에리필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진이 결연한 눈빛으로 허리를 숙였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에리필은 몸의 반을 절벽에 걸은 상태에서 멈칫거렸다. “진아, 왜 그러느냐?” 그의 물음은 너무도 간절했고, 다급했다. 그러나 그를 향한 진의 미소는 너무도 느긋했으니, 이 얼마나 대비의 극치가 되는 장면인가? 하지만 그러한 순간은 아주 잠시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진은 사부에게 마지막 도리를 하게 될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은 어두컴컴한 절벽사이에서도 고고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진은 숨을 골랐다. 곧이어 그는 발밑에 있는 검을 잡기 위해 몸을 공중에 띄웠고, 그의 몸은 느릿하나마 밑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진아, 무슨 짓이냐!” 에리필이 놀라 몸을 던졌으나, 그의 몸은 어느새 나타난 파슈발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왜 이러시오! 이거 놓으시오!” 진은 뛰어내리려는 에리필을 보고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파슈발의 등장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는 검을 잡은 상태에서 하강하면서도 파슈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진아!” 에리필은 진의 돌연한 행동에 미쳐 날뛰었지만, 파슈발의 수도에 뒷덜미를 가격 당하자, 여지없이 의식을 잃어야 했다. “하아, 대단한 소년이구나! 이거 나도 놀 수많은 없겠는데!” 파슈발은 떨어져 내리는 파마란트의 발을 잠시 노려보았다가 번개가 무색할 만큼 빠른 쾌검을 선 보였다. 쾅! “크에엑!” 파마란트는 자신의 발바닥을 아프게 하는 존재가 미웠다. 그래서 그는 허공에서 멈칫거렸던 다리를 억지로 밑으로 내리눌렀다. “이런, 이제 힘이 다한 건가?” 허탈한 음성을 흘리며 파마란트의 커다란 발바닥을 올려다보던 파슈발은 엄청난 에너지가 파마란트의 다리에 꽂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났는지 쿠니케가 에리필을 어깨에 메며 파슈발을 재촉했다. “어서 갑시다.” 파슈발은 그의 채근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들쳐 메고 있던 데이릭을 추스르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떠나기 전, 진이 떨어진 절벽쪽으로 허리를 숙여 예의 표했다. 진은 다시 한번 파슈발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에리필과 다른 사람들이 무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과 에리필, 그리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존재를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 빚을 갚아 볼까?” 진은 예전에 그가 자주 짓던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손에 붙들려 있는 검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 검을 자신에게 사 준, 사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사부님, 감사했었습니다.” 진정이 단긴 음성을 남김과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하얀 궤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진의 검은 파마란트의 발바닥에 박혀버려 파마란트는 이제껏 느꼈던 통증과는 또 다른 고통을 느껴야 했다. “꺄오오!” 그의 비명은 신체의 남다름과 동일하게 우뢰와도 같이 거칠었으며, 천둥과도 같이 광폭했다. 그리고 진은 그 비명을 음미하며 어두컴컴한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진이 저 무저갱과도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파마란트는 그 분노를 어디다 풀지 몰 라 괴성을 터트렸다. “끼야약!” 그것은 파마란트가 분노하여 외치는 소리였고, 자신의 눈을 인간들에게 줄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퍽퍽! 인간의 청각으로는 들을 수도 없을 만큼 미세한 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쳐 구한 흡열의 열매는 그렇게 허망할 정도로 쉽게 그리고 은밀한 소멸을 맞이했다. 그러나 급히 도망치는 파슈발과 쿠니케는 불행하게도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파마란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수많은 숲의 자식들을 물리친 일행은 방금 전에야 완성할 수 있었던 공간 마법진 위에 섰다. 그리고 잠시 후, 5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은 화려한 빛이 터짐과 동시에 이곳 유라시아드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치열했던 전투와 시체들만이 화려한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대조적으로 부각되며 황량한 유라시아드 숲에 덩그러니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 한동안 연재를 못한 거에 사과겸, 아마도 또 다시 한동안 연재를 못할 것을 미리 사죄할겸 해서 간만에 엄청난 스크롤의 압박을 선사합니다. 쿨럭!!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45 회] 136화. 반인반령 1. [4권 시작] 죄송합니다. 편집 관계로 저번 재앙의 숲이 3권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편부터 진짜 4권의 시작이 됩니다. 쿨럭!! 책이 나왔습니다. 음...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연재는 아마도 매일 연재는 불가능할 거 같습니다. 더구나 1월 달에 일은 왜 그리 많은지 그렇기 때문에 연재 주기는 아무도 불규칙 할 거 같습니다. 이점 먼저 양해를 구하며, 2연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쌔애액! 칼날 같은 바람이 아찔한 소음을 일으킨다. 그러한 소음은 진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온 몸을 때리는 바람의 감촉은 진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거물이기도 했다. ‘후후, 어둠이 이렇게 포근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멀지 않았나 보군.’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지는 오래였다. 물론 여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부의 사랑을 보았기에 죽어도 여한은 없을 듯했다. 진이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자 그의 눈앞에 영사기의 필름을 돌려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그의 17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도 아니었건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아빠, 엄마! 아니 마지막이니까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야겠지. 더 이상 볼 수도 부를 수도 없는…… 그리운 사람들. 지금쯤 형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 이제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형의 손길도 느낄 수 없겠지. 하아, 사부님은…… 그리고 우리 일행은 무사히 돌아갔을까? 만약 무사히 돌아갔다면 샤넬리는 예전의 말괄량이로 돌아올 거야. 뭐,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자신에게 보랏빛 에너지 소드를 들이밀며 덤벼들던 샤넬리의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희미하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한 여인이 샤넬리를 밀어내며 그 자리를 대신 꿰찼다. ‘후후, 그때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 했던 약속은 결국 못 지키게 되었네. 결국 그녀에게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 건가?’ 그녀를 생각하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하염없는 안타까움에 슬펐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서 그녀의 모습이 커질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샤넬리가 아쿠아마린빛 눈을 크게 뜨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여인의 환영에 정신 못 차리던 진이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혹시 나에게 카사노바 기질이 있었던가?” 황당하지만 부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칼날 같은 바람이 그의 얼굴을 하얗게 탈색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크고도 듬직했던 한 사내를 떠올렸다. ‘크고도 강하셨던 그분! 은발이 너무도 잘 어울리셨던 그 분을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내가 이만큼 강해졌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몬스터에게 쫓겨 눈물, 콧물 질질 짜던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 쿵! “커헉!” 온 몸을 짓누르는 압력과 귀가 멍할 정도로 거센 바람의 몰아침에도 견디며 삶의 끈을 근근이 붙잡고 있던 진은 절벽이라 할만한 가파른 곳에 어울리지 않는 돌출된 부분에 부딪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차라리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 진에게는 더욱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진의 몸은 무저갱의 끝을 향하여 떨어지고 있었다. 웅웅웅! 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인가? 스페시픽 정령이며, 메터리어 정령인 그는 진의 무구인 엘뤼시온에서 안타까운 공명음을 토했다. 그렇게 그의 정령은 구슬피 울었다. 뿌욱, 퐁! 뿌욱, 퐁! 그때였다. 신록의 푸르른 빛을 띠고 있는 두 존재가 단단한 절벽과도 같은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들이 나타나자 어둠은 자연적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는데 그것은 라이트 마법을 펼친 것보다도 환한 빛이 그들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른 팔뚝만한 크기였는데 그들의 등 뒤에 나있는 날개는 그들 몸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그들은 자그마한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과 낮은 코,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입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형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매우 귀여운 이미지를 풍겼다. 마치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숲의 요정이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가느다란 줄을 연결하여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있었는데, 그 줄의 가운데에 자그마한 주머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요정들의 필수 아이템인 요정의 가루일 것이다. 웅웅웅! 요정들이 진의 주위만 계속해서 돌기만 하자 엘뤼시온이 소리를 버럭 지르듯 크게 공명음을 토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요정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고개를 조아린 후, 낙하하고 있는 진의 몸 밑으로 들어가 떨어지는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요정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지 마침내 영원토록 떨어질 것만 같았던 진의 몸이 공중에서 멈췄다. 진의 몸이 공중에서 멈추자 만족했는지 엘뤼시온이 공명음을 토하며 그들의 노력을 치하했다. [수고했다.] 요정들은 엘뤼시온의 칭찬에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다 한 요정이 그에게 말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정령의 왕족인 당신을 돕는 다는 것은 저희 숲의 일족에겐 영광이에 요. 그런데 여기 계속 있다가는 유라시아드에게 저희가 있는 곳을 알려주게 되니, 일단 저희들의 거처로 가시죠.] [음, 그런데 보다시피 나의 주인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너희들의 거처로 갈 수 없을 텐데.] 스페시픽 정령이자 메터리어라는 이름을 가졌던 엘뤼시온은 원래는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주인이자 힘의 근원이 되는 진의 힘이 미약해졌기에 그런 다양한 감정을 표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제 아무리 정령의 왕족인 엘뤼시온이라도 주인에게 얽매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공명음은 그저 무감정한 음성인 똑같은 톤으로 울렸다. 요정들은 엘뤼시온의 물음에 잠시 그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다 다시 꺄르륵 웃었다. 그리고 요정 중 하나가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목에 걸려 있는 주머니를 짤랑짤랑 흔들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 주머니 안에 있는 가루를 뿌리면 인간이라도 저희들의 거처로 갈 수 있어요.] [그런가? 어쨌든 고맙다.] 엘뤼시온이 감사를 표하자 요정들은 다시 한번 간드러지는 웃음을 토했다. 잠시 후, 요정 하나가 자신의 주머니를 열어 허공에 뿌렸고 그것은 마치 생명이 깃들어 있는 냥 움직였다. 황금빛 결정체들은 진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 곧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번쩍! 황금빛 가루들이 진의 몸에 들어가자 순간 무채색의 섬광이 터졌다. [자, 이제 되었어요. 그럼 저희들의 거처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부탁하겠다.] 요정들은 진에게 정확히는 엘뤼시온에게 허리를 숙인 뒤, 물리적인 장벽을 뚫고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그들은 땅속의 지반을 어떠한 제지도 없이 자연스럽게 통과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지반을 통과하고 있는데 진의 등에서 황금색 빛이 터졌다 사라졌다. [응? 중력의 정령?] 요정들은 진의 몸에서 중력의 정령의 냄새를 맡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진의 몸에 걸려 있는 중력의 술은 진 자신에게만 G의 힘이 작용되는데, 요정들 역시 정령의 한 부류이기에 그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엘뤼시온은 요정들의 놀람에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주인의 몸엔 본래 중력의 술이 걸려 있었다. 물론 이 술법은 단순히 수련을 위한 것이 다.] 그의 말을 들은 후, 몇 번을 망설이던 요정이 말했다. [저,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뿌린 요정의 가루로 인해 중력의 술이 조금 이상하게 변한 거 같아요.] [어떻게 말인가?] [그러니까, 본래 요정의 가루를 인간에게 뿌리게 되면 그는 반인반령이 되기에 저희 요정들과 같이 가만히 있어도 대자연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죠.] 엘뤼시온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며 말했다. [그렇담 주인에게 좋은 일이지 않느냐?] [하아, 그런데 문제는 요정의 가루가 그의 몸에 걸려있는 술법까지 변형시켰다는 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그의 몸에 걸려있는 중력의 술이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죠. 즉, 중력의 술 자체가 하나의 정령이 되어버렸다는 거예요. 솔직히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요.] 요정은 심히 걱정된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너무도 귀여웠다. 한편, 엘뤼시온은 요정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그는 생각이 정리됐는지 대수로울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중력의 술이 정령이 되어버렸다? 자의식을 가진다는 뜻인데. 어찌됐든 본래 주인의 몸에 걸려있는 중력의 술은 주인에게 선의를 가진 자가 시술했기에 큰 탈은 없을 것이다.] 요정들은 엘뤼시온의 “걱정할 필요 없다.”는 직접적인 말을 듣고 적잖이 안심하며 그들의 거처로 가는 걸음을 빨리했다. 본래 숲에 사는 요정들은 심성이 여리고 겁이 많기에 그들은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잘 놀랜다. 대신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돌아오는데 그것은 그들의 ‘모든 일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성향 때문이다. 요정들이 진과 엘뤼시온을 데리고 간 곳은 유라시아드에서도 남동쪽의 끝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엘뤼시온이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숲의 요정들은 본래 숲의 기운이 가장 많이 모이는 중앙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지 않느냐?] 그의 말에 요정 둘은 작은 입을 뻐끔거리며 처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른 숲은 어떨지 몰라도 이곳 유라시아드에서는 저희 같은 숲의 요정들은 숲의 외곽지대에서 살 수밖에 없어요.] [왜 그렇지?] 엘뤼시온이 묻자 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렸다. 그는 진과 엘뤼시온을 데리고 온 정령보다도 두 배는 커보였다. 그러나 얼굴은 똑같이 커다란 눈에 낮은 코, 그리고 희미한 입술을 가지고 있어 너무도 귀여웠다. 하지만 그의 덩치로 보나 주위에 있는 수많은 요정들을 제쳐놓고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우두머리 쯤 되어보였다. [그것은 바로 유라시아드를 지배하는 악한 사념 때문입니다.] [악한 사념?] [그렇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악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의 숲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도 다 그놈 때문입니다.] 그는 대개 요정들이 화를 잘 내지 않는 다는 편견을 뒤집고 성난 음성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뤼시온은 여기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그가 다음 말을 하도록 재촉했다. [저희도 그놈에 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놈 때문에 저희 숲의 요정들이 터전을 잃고 이렇게 변두리로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뭐, 그건 됐고.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겠어!] 요정은 엘뤼시온의 무시하는 처사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예를 갖추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희 요정들의 춤은 사람을 치유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짝짝! 제 목: 궁극의 마스터 [146 회] 137화. 반인반령 2. 요정은 박수 두 번을 치며 말했다. [포레아 춤을 추기 시작한다.] 대장 요정의 말에 아늑한 공간을 떠다니고 있던 요정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커다란 날개를 예쁘게 팔락이며 진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그런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성이었고 그들이 추는 춤은 그들의 귀여운 외모에 걸맞게 아기자기했다. 요정들의 춤 포레아 춤은 그들의 신인 포레아를 찬양하는 몸짓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작고 앙증맞은 손은 하늘을 향해 뻗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춤과 노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몸에서 연녹빛 오로라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연녹빛 오로라는 마치 허공에 음표를 그리듯 자기만의 박자를 가지고 떠다니는 느낌을 주었고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연녹빛 음표는 어느새 사라지고 오로지 아름다운 결정체들이 진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쏴아아! 순간 맑고도 청명한 음향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빛이 현세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포레아 춤이 끝나자 엘뤼시온이 대장 요정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노고는 있지 않겠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엘뤼시온의 말을 받은 요정은 감격했는지 온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존귀하신 정령의 왕족인 그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큰 결례라고 여겼는지 재빨리 대답한다. [저의 이름은 포레아 윌리암입니다.] [윌리암! 너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윌리암은 그의 말에 다시 한번 감격했다. 사실 이름을 기억한다는 단순한 말에 윌리암이 이처럼 감격한 이유는 요정과 정령들 사이에서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약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령의 왕족인 스페시픽 정령의 약속은 백이면 백, 요정들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윌리암이 이처럼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윌리암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사실 너희들이 내 주인에게 그 귀한 요정의 가루를 뿌려준 것도 내가 하루 빨리 힘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 아니었느냐.] 엘뤼시온의 말에 윌리암을 비롯하여 그를 데려왔던 요정 둘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실지 그들의 얼굴이 붉게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단지 그들이 거짓말하다 들킨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말이 정확하리라. [솔직히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행한 것은 맞지만 저희들이 어찌 감히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단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을 뿐입니다.] 그들은 요정답게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고 엘뤼시온은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주인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음, 역시 너희들의 포레아 춤의 치유력은 대단하구나. 어쨌든 고맙다. 그리고 내가 알고 기로는 아무리 요정의 가루를 뿌렸다 하더라도 인간의 몸으로는 너희들의 거처에서 하루 이상 살 수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나가보겠다.] 엘뤼시온이 돌아가겠다고 하자, 윌리암은 그의 은혜에 하나라도 보답하고 심정이 앞서 급히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저의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그 큰 은혜에 작지만 하나라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은혜는 무슨. 아마도 내가 힘을 찾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저희들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은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요. 어쨌든 이대로는 보낼 수 없습니다.] 윌리암은 단호하게 말하며 주위에 있는 요정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요정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는데 윌리암의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고 그것을 가져오기 위해 서둘러 이동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그것을 낑낑대며 들고 오는 요정들이 보였다. 그것은 커다란 나무뿌리 중 한 가닥이었다. [이것이 뭐지?] 엘뤼시온의 물음에 윌리암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이것은 유라시아드를 지배하고 있는 사념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기로 이 뿌리에는 비록 악한 사념의 것이긴 하지만 놀라운 지식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인 그에게 이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엘뤼시온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의문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러나 그의 억양은 고저장단 없이 일정했다. [그런데 저 뿌리를 어떻게 한단 말이지?] [사실 이 뿌리는 엄청난 지식을 담고 있는 통 일뿐입니다. 저희들이 알아본 바로는 이 뿌리의 끝을 인간의 관자놀이 부분에 갖다대면 자동적으로 지식이 전송됩니다.] 윌리암의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언변을 들으며 엘뤼시온은 결국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요정들은 기뻐하며 뿌리의 끝을 진의 관자놀이에 갖다 되었다. 위윙! 그 길이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긴 뿌리의 끝이 진의 관자놀이에 대이자 그것은 마치 환상인 듯 사라졌다 반대편 관자놀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공기가 떨릴 때 나는 기음이 터졌다. 그렇게 진의 머리로 지식들이 전송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유라시아드 전체가 광포한 분노에 떨었다. 그리고 이를 느낀 윌리암은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다 진의 관자놀이를 뚫고 지나간 뿌리를 그의 머리에서 뽑아냈다. 그러자 광포하게 들끓던 대지의 분노도 사그라들었다. [휴우, 다행이다.] 윌리암이 안도의 한숨을 토하자 엘뤼시온이 기이한 말투로 의사를 전달했다. 여전히 그의 음성은 일정했으나 그의 감정은 고스란히 요정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에 윌리암이 고개를 조아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놈이 저희가 놈의 지식을 빼돌리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괜찮다. 어쨌든,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할 거 같구나.] 엘뤼시온이 나갈 의사를 펴자 윌리암도 더 이상 그를 막지 못했다. 대신 윌리암은 엘뤼시온과 진을 데려왔던 요정 둘을 시켜 이들을 유라시아드 밖으로 인도할 것을 명했다. 이에 엘뤼시온과 진은 요정들의 안내를 받으며 무사히 유라시아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듯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화려한 빛을 온 세상에 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이 까마득한 밤이라 할지라도 그리 어둡지만도 으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시나 밤은 밤이었기에 명멸하는 별들이 비춰주는 빛으로는 태고적부터 지켜온 어둠을 완전히 물리칠 순 없었다. 두 요정들에 의해 유라시아드를 벗어날 수 있었던 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자 힘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엘뤼시온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거의 본능적으로 걸음을 옮기는 진의 눈은 맑고도 따스했던 빛을 잃고 칙칙한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떠한 이성도 남아있지 않았다. 텅 빈 동공 위에 의미 없이 키워놓은 듯한 멍한 눈. 그것은 이지를 상실한 백치의 눈과 닮아 있었다. 진은 걷고 또 걸었다. 그에게는 걷는 사실 하나만이 삶의 맹목적인 목적이기라도 한 듯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 놓는 것이 매우 힘에 부친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고 있었다. 엘뤼시온은 진의 육체를 누르고 있는 G라는 힘, 즉 중력의 술이 제멋대로 발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이러한 중력의 술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진의 힘겨운 걸음을 말없이 지켜보는 게 다였다. 물론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진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요원한 일이기는 했지만. 진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무작정 걸으면서도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하루에 세 번 반복하는 기(氣)수련을 빼먹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려는 무의식적인 사고와 이제껏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 수련했었던 것이 이제는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몸이 기억하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았다. 그렇게 진은 자신이 의식하지도 않는 사이에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한편 진이 조금씩 강해질수록 거기에 보조를 맞추듯 그를 누르고 있는 G라는 힘도 강해졌다. 이것은 반인반령이 되어 버린 진의 육체가 자연적으로 자연의 힘, 즉 마나를 엄청난 속도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진의 걸음은 날이 갈수록 무겁고 지쳐갔다. 그러나 진은 오늘도 어김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편 비공선 안은 전쟁에 패한 패잔병들의 암울함과 짙은 패배주의에 강렬한 허무의식이 곁들여져 그야 말로 살아 있어도 죽은 자들의 의미 없는 호흡으로 대기가 간간히 떨리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처음 기절했다 깨어난 에리필은 자신의 옆에 진이 없음을 알고 대경실색해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진을 찾았다. 하지만 이내 진이 자신을 구하고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한 에리필은 절규했고,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에리필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는 파슈발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렁거렸다. “왜 나를 살렸는가? 무엇 때문에 나를 살렸는가?” 에리필이 아무리 울부짖어도 파슈발은 그저 죽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볼 뿐,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람은 울부짖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죽은 듯,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광인의 모습을 보여주던 에리필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데이릭에게 달려들었다. “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의 그 아집만 아니었어도…….” 살기를 피워내며 데이릭을 노려보는 에리필의 기세에도 모두는 죽은 눈동자로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허나 신랄한 외침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데이릭은 결코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었다. 텅 비어있던 데이릭의 눈동자가 피에 젖은 듯, 칙칙한 광기로 채워졌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는 에리필을 향해 그 사나운 광기를 터트렸다. “네가 내게……. 크크크, 누가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너 같은 후안무치한 놈에겐 죽음도 과분하다마는 내 특별히 너를 죽여주마!” 데이릭이 광기에 젖은 목소리를 토함과 동시에 그의 검이 차가운 소음을 일으키며 뽑혔다. 이에 질세라 에리필도 검을 뽑아들고 데이릭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주위에서 암울한 눈빛에 그저 무료한 표정으로 이 둘의 대치상태를 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칙칙한 분위기를 뿜어냄으로써 간적적인 분노를 표출함에 따라 그들의 사납게 뿜어지던 기세도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에리필과 데이릭이 멈칫거리는 순간, 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이들은 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에 오른 파슈발과 쿠니케와 마스터 마법사인 테이리였다. 그들은 광기에 젖은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동료들을 잃은 것에 매우 슬퍼합니다. 이는 비단 에리필 씨, 당신만이 특별하게 느끼는 슬픔이 아니란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거기에 우리는 흡열의 열매를 구한다는 목적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흡열의 열매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으로 간신히 억눌러 놓았던 슬픔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우리들의 가슴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입니다. 휴우, 어쨌든 진정하십시오. 우리가 여기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리는 것만큼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서로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세 사람의 대표로 이야기했던, 아니 살아남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변한 테이리가 말을 끝맺으며 에리필과 데이릭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광포하게 날뛰던 광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이 세상 어떠한 가슴으로도 감쌀 수 없는 슬픔이 두 사람의 눈가에 채워졌다. 잠시 후, 그들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어떠한 소리도 뜨거운 눈물과 함께 나지 않았다. 두 남자는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마지막 생존자들의 눈에도 어느새, 뜨겁고 슬픈 눈물들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들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마치 작은 소리라도 내서 운다면 유라시아드에서 장렬히 전사한 이들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는 듯, 그들은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슬픔을 강한 의지로 억눌러 설령 목이 매 일지라도 어떠한 신음소리도 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맹세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공선 안은 쉬 임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내들로 인해 축축이 젖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그들의 몸에 있는 수분이란 수분이 모두 눈물로 승화할 때까지 계속될 듯 했다. 138화. 지옥은 인간 안에 있다. 칙칙한 어두움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순간 이질적인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와 함께 이 세상과는 명백히 이질적인 생명체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프린샤의 살수에서 벗어난 리오스와 지레이션이었다. 그들은 살았다는 안도감을 맛보기도 전에 몸과 정신을 흩트리는 칙칙한 대기와 사위를 짓누르는 어둠의 무게감을 느꼈다. “여, 여긴 어디지?” 지레이션의 잘게 떨리는 목소리에 리오스가 조금은 담담한 신색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위는 둘러보나마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밖에 없었지만. “아마도 이곳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옥일 것입니다.” “지옥? 우, 우린 죽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지옥에 왔단 말인가?” 지레이션이 두려운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리오스가 안색을 굳히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작은 몸동작에 지레이션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곳의 시간과 그들이 살던 곳의 시간관념이 같은지는 모르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한 리오스가 말했다. “이곳이 지옥이긴 하지만, 우리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아직 희망을 포기해선 안 될 것입니다.” 리오스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자 지레이션이 침중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서운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는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수많은 음유시인들이 말하는 지옥처럼 음산했으며 싸늘한 대기와 인간이라면 견디기 힘든 무거운 무게감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리오스와 지레이션이 호흡할 수 있는 산소가 이곳에도 미약하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곳의 대기는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마기 내지는 악기라는 악한 기운들이 산소와 뒤섞여 있어 인간인 리오스와 지레이션에게는 지독한 독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대기에 유포되어 있는 악한 기운 역시 우주를 구성하는 기운이라는 점이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고에 존재한 인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신의 또 다른 피조물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데서 기인한 성향인 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인간인 리오스와 지레이션에게도 어찌 보면 이곳의 악한 기운이 마냥 독으로만 작용하진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차후에 알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냥 칙칙한 암흑과도 같은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지옥의 풍경들이 어느 순간 희미하지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이들이 이미 이곳의 기운을 어느 정도 흡수했다는 말이기도 했기에 그들 몸속에는 독이라 할 수 있는 기운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인간이란 미지의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은 특히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 자신의 무력감과 함께 활개 치는 상상력에 의해 극도의 공포와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리오스와 지레이션 역시 느꼈던 바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어쨌든 미약하지만 시야가 확보되자 그들 속에 느멀느멀 기어 올라오는 공포심을 조금이나마 억누를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의 환경이 황폐한 사막의 싸늘함과 황량함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지옥이라 불리는 이곳의 환경이 지독할 정도로 취약했다. 메마른 땅에 간간히 돌출된 듯한 바위들은 모두 검은 색조를 뛰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식물이라 여겨지는 것들의 앙상한 가지는 그리 높지 않은 높이에 뻗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미 생기라는 것을 가지지 못한 듯, 축 처져있단 느낌을 뿌리칠 수 없었다. 리오스와 지레이션은 시야가 확보되자 더 이상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간단히 시선을 맞추고 머나먼 그리고 험난한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리오스는 처음 지옥에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프린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비록 그가 자신을 가르친 사부라 할지라도 이미 그는 인륜을 저버린 패악 무도한 인간이었기에 리오스가 복수의 칼날을 가는데 있어 한점 송구함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굳은 다짐도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한참이나 초월한 허기 앞에서는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질 뿐이었다. ‘제발 무엇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속에서 중얼거리는 탄식은 리오스와 지레이션 모두의 가슴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처음 이동할 때만 하여도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화라고 하는 것을 나누었던 두 사람이었다. 허나 그것도 입을 열 힘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걷기도 힘든 판에 말해 봐야 무엇 하겠는가? 에너지만 낭비하는 그런 행위는 그들에겐 이미 사치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두 사내는 상대의 눈에 섬뜩한 광채가 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그들이 보는 상대의 눈은 자신의 마음을 투영시켜주는 매체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은연중 자신들의 생각하는 바가 서로의 눈을 통해 전달됨을 깨닫게 되었다. 리오스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추악한 생각을 하는 자신은 이미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기준마저 망각해버린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나는 지금 내 옆의 사람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이런 내 자신이 정말 싫구나!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 나를 내몬 프린샤는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다!’ 리오스는 자신을 이러한 비참한 상황으로까지 내몬 프린샤를 다시 한번 저주했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리오스가 걸음을 멈추며 지레이션을 불렀다. “지레이션님!” “……?” 지레에션은 그 역시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생각에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다 리오스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으나 뭐라 말하진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자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지 그 스스로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레이션의 시선에서 자신과 같은 짙은 고뇌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속으로 다짐한 뒤,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허기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지레이션님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리오스가 자신의 심정을 정확히 들추자 지레이션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리오스도 언급했듯이 우리라고 했다. 이는 리오스 역시 그러한 생각을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 하니 지레이션은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는 이런 말을 꺼내기 위해 무척이나 고심했을 리오스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알고 있는 리오스라면 이런 말을 꺼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레이션은 양심을 쉬 임없이 찌르고 있지만, 이미 표면화되어 버린 문제에 대해 말했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자네가 말한 대로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했다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마음 한편에선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네. 하지만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나 역시 자네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 바가 아니고,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꺼낸 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지금 심정으론 추악하다 못해 인륜마저 저버린 그런 생각을 실행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말이네. 이는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무사의 혼마저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네.” 리오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마음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이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시는 바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런 말을 꺼낸다고 하여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레이션님도 말했다시피 최소한의 것은 지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무사의 혼, 최소한 인간이길 바라는 마음. 이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저는 한 가지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무사의 혼과 최소한 인간이길 바라는 마음을 지킨다라…… 그것이 무엇인가?” 지레이션은 리오스의 말을 곰곰이 씹으며 말했다. 물론 그 역시 어렴풋이나마 리오스가 하려는 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순간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하는 의문을 던져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싶게 자신의 쭈그러든 양심을 후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더 살고 싶기에!’ 그렇다. 너무도 간단명료한 답이지만 이는 태고부터 가장 중요시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나 불로장생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어느 순간부터 생의 아쉬움마저도 떨쳐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잠재된 의식은 삶의 대한 열망으로 추악한 상상을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레이션의 양심을 괴롭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속내의 고뇌도 리오스의 한 마디로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우리는 최소한 인간의 모습으로 죽을 것을 제안합니다.” 순간 뿌연 안개에 휩싸인 자신의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짐작하는 것과 그것을 사실로 인지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는 지레이션의 내면을 통해서도 또 한번 증명되었다. 지레이션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맑아진 머리를 잠시 음미하다 리오스에게 말했다. “좋네! 방법은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으로 하면 되겠지?” 지레이션은 밝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도 리오스의 냉정할 정도로 똑 부러지는 말에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아뇨. 물론 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상황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할 만큼 나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지레이션은 그의 말에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태연한 기색을 그대로 유지하며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만약 우리는 서로에게 죽음의 안식을 주기 위해 검을 휘두르다 이런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노려 네가 상대를 죽이고, 그를 먹으면 너는 조금이지만 더 살 수 있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란 그만큼 나약하고 추악한 존재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한 가지 제안을 하는 바입니다.” 지레이션은 비로소 자신이 순간 기분이 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오스는 지금 두 사람 모두 인간이 아님을 가정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임을 부정당한 자가 느끼는 비참함이 주는 불쾌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럴 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슬그머니 들자 그는 리오스의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느끼는 불쾌감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자연적으로 그의 음성은 싸늘해졌다. “내 그 말에 반박은 하지 않겠네. 하지만 그 방법 말고 또 다른 방법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리오스는 천생이 그러한 듯, 여전히 태연한 기색이었다. 그런 그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물론 이것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최소한 우리가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순간부로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다.” “헤어진다?” 놀라 되묻는 지레이션을 보며 리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보던 지레이션이 미심쩍은 듯 물었다. “하지만 헤어진 척 하면서 뒤로 돌아가 상대의 등에 검을 박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리오스는 그의 천인공노할 물음에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긍정의 뜻을 표했다. 이에 지레이션이 기이한 시선으로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기다렸다는 듯이 리오스가 말했다. “사실 지금 실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저희 두 사람 중 죽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꺼낸 제 저의는 이미 저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용히 저의 최후를 제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말을 꺼낸 상태에서 지레이션님이 제 뒤를 칠 것이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후후, 자네가 내 뒤를 치지 않는 다는 보장은 어디 있나?” 지레이션이 농담조로 말했다. 이에 그의 뜻을 읽은 리오스도 마주 웃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웃음은 어딘가 처연한 웃음이었고 씁쓸한 웃음이었다. 한참 동안 서로를 향해 웃음을 던지고 있던 지레이션이 안색을 바로하며 말했다. “이미 말이 나왔으니 이참에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낫겠지. 나는 동쪽으로 가겠네.” 지레이션이 자신의 오른편에 나 있는 길을 향해 말하자 리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담 저는 서쪽으로 가겠습니다.” 리오스는 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곳을 가리켰는데 사실 이곳 지옥에서 길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저 밟고 걸을 수 있으면 그것이 길인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리오스와 지레이션은 끈끈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껴안았다. 미약하지만 서로의 호흡이 볼을 타고 전해졌다. 그리고 서로의 뜨거운 가슴과 힘차게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이에 조용히 그러나 강인한 팔로 리오스를 끌어안고 있던 지레이션이 나직하지만 의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자신의 최후는 그야 말로 최후의 순간이라 생각할 때 맞이하게. 그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겠다는 의지를 잊지 말게!” 서로의 체온에서 삶의 의지를 느꼈음인가? 지레이션의 말은 리오스에 대한 정으로 뜨거웠다. 이에 리오스는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리오스도 조용하지만 열기에 띤 음성을 전했다. “지레이션님의 말씀, 가슴에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그리고 지레이션님 역시 삶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두 사내는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다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밀어냈고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땅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사람은 동쪽으로 한 사람은 서쪽으로. 그리고 서쪽으로 향하는 한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를 이렇게 까지 망가뜨린 프린샤 내 너를 죽이기 전까진 죽어도 죽지 않겠다.” 그의 음성은 낮지만 강렬했으며 삶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지레이션과 헤어진 뒤로, 리오스는 무언가 달라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는 스스로를 몰아쳐 배수의 진을 친, 자신의 각오에 최소한 공평한 하늘이라면 길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듯이 그의 일신한 각오와 믿음도 절망적인 환경 앞에는 또 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리오스가 길을 잡은 서쪽은 전과 다름없이 황폐했다. 아니 황폐하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상황을 미화시킨 한 마디일지도 모른다. 서쪽의 길은 허허벌판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식물 비슷한 것은 눈에 뛰지도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간혹 가다 보이는 돌출된 검은 바위 뿐. 생기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는 이곳과는 전혀 무관한 것인 듯 그의 앞에는 지겹도록 보아온 검은 대지만이 펼쳐져 있었다. “커헉, 우욱, 윽… 으음!” 갑작스레 가슴과 배가 아파왔다. 그리고 어느새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리오스가 토할 것도 없는데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통증이 가시자 타액이 묻은 입을 닦은 리오스가 자조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크크크… 크하하하하!” 그의 광소는 이미 그가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허리춤을 차고 있는 검을 뽑았다. 검은 차갑고도 날카로웠다. 수많은 전투를 치루면서 이미 날이 많이 상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이 이 순간만큼은 매우 날카로워보였다. 그것이 잠시 후,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기 때문일까? “푸웃!” 이번에는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검을 자신의 왼쪽 가슴을 향해 세웠다. 칼끝이 리오스의 심장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리고 리오스가 두 눈을 감았고 칼끝은 어떠한 힘에 이끌리듯 그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칼끝이 리오스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 때였다. ‘재수 없는 면상이다!’ 리오스는 그 순간 프린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뜨겁게 타오르는 복수의 다짐이 그의 검을 중도에 멈추게 했다. 그의 검 끝은 리오스의 왼쪽 가슴 근육을 찌른 상태였다. 하지만 때마침 검을 멈춘 리오스는 경미한 부상으로 이 상황을 멈출 수 있었다. 뚝뚝뚝! 검 끝을 타고 핏방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리오스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는 나의 다짐을 스스로 어길 뻔했다. 아직 나는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에게 복수를 하고 죽을 것이다.’ 리오스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왼쪽 가슴에 난 상처를 돌보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걸음을. 리오스의 얼굴은 예전에 영준했던 모습을 잃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앙상한 뼈마디에 건조한 가죽을 붙여놓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죽어서도 계속해서 걷고 또 걸을 듯했다. 리오스는 많이 감퇴되었지만 자신의 감각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건조해진 가죽을 말아 묘한 미소를 지었다. ‘생명체가 다가오고 있다.’ 생각이 일자 자리에서 우뚝 선 그는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의 짐작대로라면 아마도 지금 달려오고 있는 생명체는 자신을 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리오스의 앞에 기괴하게 생긴 생명체가 나타났다. 그 생명체는 1라키르 라는 매우 작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 매우 컸는데 어떻게 보면 둥근 물체 두 개를 엎어 놓은 듯했다. 거기에 머리와 몸통이라 생각되는 부분 옆에 각기 세 개씩의 팔이 달려 있었고 그 밑에는 여섯 개의 달이 달려 있었다. 이러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생명체는 슈케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슈케르는 수많은 지옥 어디에나 살고 있는 생명체로 유명했다. 하지만 슈케르는 유명세에 비해 자신들의 약한 힘을 알고 있기에 주로 지옥의 외곽지역에 살고 있었으며 언제나 개인행동을 취했다. 이는 지옥에 사는 대개의 생명체들이 개별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그리 특이한 사항은 아니었다. 리오스는 상대가 슈케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거니와 그가 강한지 약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슈케르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비록 인간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그리 강렬하진 않았기에 한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리오스였다. 리오스는 허리춤에 차있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슈케르는 달려왔던 기세 그대로 상대를 덮치려다 상대에게서 뿜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자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슈케르는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생각에 여섯 개의 팔을 휘두르며 자신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는 슈케르라는 종족 특성상 스스로에게 자기 암시를 거는 행동이었는데 겁이 많은 슈케르다 보니 이런 방법까지 동원되는 것이 다. 하지만 슈케르가 모르는 것이 있는데 리오스에게서 풍기는 마기는 본래 그가 수련하여 갈고 닦은 마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알리 없는 슈케르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도취되어 더욱 신나게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리오스는 슈케르가 팔을 휘두를수록 자신의 이성이 더욱 차가워지고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은 많은 동작을 취하기에는 근육을 움직여주는 힘이 턱없이 부족하단 사실을. 그렇기에 리오스는 승패가 어찌되든 승부는 단 일합에 결정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격에 나의 삶을 건다. 성공하면 나는 살 것이고 복수에 한 발 다가서는 것이다.’ 리오스는 ‘복수’라는 한 마디에 목숨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더욱 결의를 굳혔다. 그리고 그는 팔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슈케르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슈케르의 여섯 다리가 갑자기 움직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리오스의 앞까지 다가왔다. 이에 깜짝 놀란 리오스였지만 그의 눈은 계속해서 슈케르를 쫓고 있었기에 순간의 놀람은 쉽게 다스릴 수 있었다. 마음이 진정되는 순간, 리오스의 눈이 한광을 뿜어냈다. 슈케르는 그의 여섯 팔을 각기 다른 방위를 점하고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섯 팔이 리오스를 격타하려는 순간, 여섯 팔 사이로 작은 틈이 생겼다. 이를 본 리오스가 지체하지 않고 검을 찔러 넣었다. 푹! 투두두둑! 리오스의 검은 슈케르의 여섯 팔을 비집고 들어가 그의 몸에서도 유난히 돌출된 부위에 박혀있었다. 그러나 검의 주인은 검을 잡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그는 검을 슈케르의 몸통에 박는 순간 여섯 팔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두들겨 맞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리오스의 검이 슈케르의 몸에 박히는 순간, 슈케르의 생명은 이미 유부로 날아가 그의 공격에는 그다지 많은 힘이 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미 기력이란 기력은 모두 쏟아 부은 리오스인지라 툭 건드리는 순간 저만치 날아가 버린 것이다 리오스는 검을 슈케르의 가슴 부분에 박는 순간 아찔한 충격을 느끼며 의식의 끈을 놓았다. 그렇게 그가 의식을 잃고 얼마나 지났을까?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던 리오스가 몇 번 꿈틀대더니 좀비처럼 힘없이 일어났다. ‘나는 살아있는 것인가?’ 의식을 차리지 마자 그가 처음 던진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후들거리지만 다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순간 가슴에서부터 알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쳐 올라와 광소를 터트리게 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리오스가 힘이 다했는지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슈케르에게 다가왔다. 슈케르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이를 확인한 리오스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의 약점은 돌출된 가슴이었어. 후후, 인간 중에도 새가슴이라고 있듯이, 그 부분이 유난히 약한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돌출된단 말이지.’ 리오스는 자신의 짐작이 맞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리오스는 착잡한 시선으로 슈케르를 보았다. 그러다 그는 그의 가슴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았다. 촤악! 검이 뽑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랏빛 선혈이 터져 나왔다.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리오스는 순간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그에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맺혔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난 살아야 된다. 그리고 살려면 먹고 마셔야 된다.’ 리오스는 쏟아지는 보랏빛 선혈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입과 얼굴 그리고 온 몸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었다 생각한 리오스가 검을 휘둘러 슈케르의 전신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 몸통을 자른 리오스는 문득 커다란 머리통을 보았다. 그러다 슈케르의 눈, 코, 입을 보게 되고, 아무리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지만 이것까지는 먹을 수 없다 생각한 리오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통을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리오스는 슈케르의 잔털을 모두 제거하고 가죽은 손질을 해, 다듬었다. 그리고 내장과 단순하기 그지없는 기관들을 살과 분리한 리오스는 슈케르의 몸에서 나온 살점들을 모았다. 1라키르 밖에 되지 않지만 그에게서 나온 살점들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리오스는 손질한 가죽위에 모아놓은 살점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주문을 걸며 살점 하나를 집어 들어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순간 헛구역질이 나와 억지로 밀어 넣은 살점이 밖으로 나오려했다. ‘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리오스는 밖으로 나오려는 살점을 입 안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살점을 식도 안으로 밀어 넣자 순간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듯, 또 다른 살점을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살점들이 많아질수록 리오스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두 줄기 강도 불어났고 그 강들은 하류로 흘러가듯 딱딱한 그의 얼굴을 타고 내려가 검은 대지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계속해서 슈케르의 살점들을 입 안으로 우겨 넣고 있었다. 리오스와 헤어져 동쪽으로 이동한 지레이션은 알리 없겠지만 사실상 그가 걷고 있는 곳은 생명체가 전무하다는 지옥의 최외곽 지역 너머였다. 이를 알리 없는 지레이션이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생명의 여신이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걸음을 옮길 것만 같았던 지레이션이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섰다. 다리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주먹을 쥐고 굳어진 다리를 세차게 쳤다. 하지만 그 주먹에 담긴 힘이란 것이 아주 미약했기에 그가 몇 번을 주먹으로 다리를 치든 굳어진 다리는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의 주먹질로 이를 확인한 지레이션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레이션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그의 허리춤을 차지하고 있는 검집 채로 풀어 땅에 뉘였다. 지레이션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옆에 눕혀 놓은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검집에서 뽑힌 검이 일으킨 소리는 맑고도 시원스러웠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검을 바라보았다. ‘내 너로 인해, 세상에서 내 자신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너를 사용하여 세상과 나의 인연을 끊겠다.’ 지레이션은 따스한 얼굴로 늘씬하게 잘생긴 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검날에 한 사람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리오스! 너는 지금 살아 있는가? 만약 살아있다면 우리의 복수를 해다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오스도 자신과 같은 길을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자신이 리오스보다 좀 더 버텼다는 자기 위안이었다.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지레이션은 죽기 전, 모든 은원은 청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마음은 더없이 편안했으며 깨끗했다.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다. 지레이션이 검을 거꾸로 쥐어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을 편안히 감으며 낮으나 진심이 깃들여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나로 인해 죽은 이들 그리고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싸우다 죽은 이들이여! 이제 나도 자네들에게 갈 터이니, 우리 모두 웃으며 만나길 바란다.” 지레이션은 말을 끝맺고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자처럼 검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푹! 검은 지레이션의 복부를 뚫고서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뜨거운 선혈이 그의 무복을 적셨고 어느새 검은 대지를 축축이 적셨다. 감았던 지레이션의 두 눈이 고통스러운지 잘게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으니. 한 많은 그의 생명이 땅에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싸늘한 대기가 순간 요동치는 듯했다. 하지만 석고상처럼 굳어 있는 지레이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레이션은 이곳 지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누가 알고 있으랴! 무사의 혼을 가진 그가 매우 평온한 안식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이지를 상실한 텅 비어 버린 뇌리에 단 하나의 맹목적인 지령이 절대적인 명령으로 새겨졌다. 그러나 아무리 이지를 상실하였다고 하여도 진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었고 인간이라면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음식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금은 차갑지만 싱그러운 바람이 듬직한 산의 장벽에 막혀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그것은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 위로 지나가 마을 사람들은 지금이 겨울 초입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리 두껍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절로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푸근하고 따뜻했다. 진은 조금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진의 모습을 보면 언덕을 오른 다기 보다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라 할 수 있어 대번에 달려가 부축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거의 기다 시피 언덕에 오른 진은 멍하게 변해버린 동공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을 무채색의 눈빛으로 응시했다. 물론 마을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그림같이 아름다워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보니 누구나 넋을 잃고 언덕 위에 서서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지금 마을을 바라보는 진의 눈빛에는 그러한 감정의 편린은 한 조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상 진이 무채색의 눈빛으로 마을을 바라보는 것은 조금 전에 언덕을 오르기 위해 많은 힘을 소모한 것을 보충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서있던 진이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황금빛 풀들이 길가에 펼쳐져 있는 길을 터벅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배고파!” 진은 원통형의 머리위에 고깔모자를 씌운 듯한 집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집을 이루는 색상이 너무도 아름답고 은은해 보는 사람의 고개가 감탄으로 은연중에 끄덕여질 정도였다. 거기다 집 앞에 있는 정원은 그리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진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시원한 청량함을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대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 집의 정원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채색 시선이 신기하게 생긴 집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진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 이에 그는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진은 이지를 상실했음에도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다는 사실이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은 비록 자신의 의지대로 사고를 할 수는 없다할 지라도 신기하게 생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왠지 모를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드러난 이러한 이성적인 모습도 진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끼게 되자 언제나 그랬듯 무단으로 남의 집을 침입하기 위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러한 행동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것이기에 진의 모습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신기하게 생긴 집의 원통 한 면이 열리며 노인 한 명이 나타났다. 진은 자기 앞에 나타난 노인을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가려다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것을 듣고 순간 멈추었다. “젊음이, 배가 고픈가 보이.” 진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 배고프다.” 노인은 진의 말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진을 안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진은 무단침입을 하지 않고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행운은 백에 한번 있을까 할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리오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살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괜한 실소가 새어나왔다. “훗훗, 지옥의 마물을 식량으로 삼아야 하는 인간은 아마 나 뿐이겠지. 아니지. 지레이션님이 있었지.” 리오스는 자신이 느끼는 이러한 비참함을 지레이션도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지레이션은 이미 평온한 안식을 맞이한 상태였고 리오스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이러한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리오스는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대지 저편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선홍색 살점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잡아먹히느냐 너희들이 나에게 잡아먹히느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죽을 생각이 없다.” 슈케르의 가죽 안에 담겨 있는 살점들도 이제 반도 남지 않았을 때, 리오스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기는 이곳의 대기에 유포되어 있고, 내가 호흡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슈케르의 가죽 안에 남은 식량이 대략 하루 치 식량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리오스는 또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지 마기는 인간인 내 몸엔 분명 독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과 같은 마기가 이 이름 모를 괴수를 먹으므로 그 독성이 중화되고, 아울러 몸속에 흩어져 있는 마기들이 기와 뒤섞여 단전을 채워준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리오스는 안도감과 함께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이 괴수를 먹지 않았으면 자신은 아사로 죽기 전에 지독한 마기에 한줌 독수로 녹았을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오스는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몸에 이곳의 마기에 대한 면역체계가 조금이지만 생겼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식량이자 해독약이라 할 수 있는 이 이름 모를 괴수를 복용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이었다. 리오스는 혹시나 하면서도 이런 물음도 던져 보았다. ‘만약 내가 복용한 이 괴수 말고, 다른 괴수는 이곳의 마기를 중화시켜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두려워졌다. 하지만 리오스는 그것은 정말 백만 분의 일의 확률보다도 낮은 가정이라 자위하며 꿋꿋이 걸음을 옮겼다. 무엇보다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이 미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리오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언제부터인지 틈날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도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였다. 리오스는 슈케르가 남긴 식량도 다 떨어지자 서서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인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이름 모를 괴수가 눈에 띄었다. 이에 리오스는 신께 가슴 깊이 감사하며 그 괴수를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리오스는 상대를 골라도 너무도 잘못 골랐다. 잉굴리틴은 보기에는 약해보이지만, 이곳 지옥의 외곽에서만큼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강자였다. 그런데 뭣 모르는 리오스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고 리오스는 무사의 혼도 살아남아야 지킬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뜨려 놓으며 뭐가 빠져라 죽어라 도망쳤다. 그 이후, 리오스는 가능하면 슈케르를 노려 사냥을 했고 잉굴리틴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쳤다. 그런 일이 있다보니 리오스는 언제부터인지 검을 휘두르며 스스로를 단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가 생긴 것 또한 현재 그가 있는 곳이 비록 외곽이지만, 엄연히 지옥이라 불리기 충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신이 창조한 우주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뛰어넘어 차원과 차원의 경계가 때론 모호하거나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그런 우주다 보니 그 끝은 창조신만이 알고 있을 만큼 광활, 그 자체였다. 그렇다 보니 이곳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지옥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 지옥의 유래는 태초에 창조신 루미에의 자리를 넘보다 벌을 받은 최강의 피조물, 메테우스가 사는 곳을 우리는 지옥이라 했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지옥이 있다. 비록 그곳에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 최고의 역작이라 불리는 메테우스가 살고 있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차원과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공간이 아닌 그곳은 지옥이 분명했다. 그러나 또한 그것들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 수많은 지옥은 하나라 할 수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존재들은 서로의 연결점을 알지도 그것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메테우스가 살지 않음에도 우리는 왜 그곳을 지옥이라 부를까? 물론 우주라는 포괄적인 시야에서 보면 수많은 지옥이 실상은 하나기 때문에 라는 해답을 내놓을 수는 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창조신의 절대적인 시야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답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판이한 두 기운의 관계에서밖에 얻을 수 없다. 생성과 소멸의 법칙은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무시하고 또 다른 기운의 역학적 법칙에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악한 기운과 선한 기운 즉, 창조신 루미에와 그의 아들들이 사용하는 기운으로 나뉜다. 그러나 실상 이 두 개의 기운은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예외로 치면 그것들은 동시대 같은 공간을 지나가며 때론 겹쳐지거나 때론 스쳐지나가는 등, 우리의 눈에는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둘의 방향은 정반대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 너머의 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의 규칙성과 방향성을 두 개의 기운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기운의 방향성을 따지고 보면 지옥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지옥은 악한 기운이 흘러가는 방향에 놓여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더욱 정확히 알아보자면 지옥은 공간이면서도 공간이 아닌 차원과 차원의 경계에 생성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주를 구성하는 두 개의 기운들의 특성상 그것들이 온전한 방향을 가지고 지나가는 곳은 이미 그곳은 공간이면서도 공간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지옥이라는 곳은 인간들의 시간과 공간의 법칙성을 벗어나는 곳이 된다. 그리고 선한 기운의 통로인 곳에는 당연하게도 창조신 루미에와 그의 아들들이 사는 천계가 있고 그곳 역시 시간과 공간의 법칙성을 벗어나 있는 곳이다. 거기다 악한 기운과 선한 기운이 어쩔 수 없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는 두 기운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영계와 환수계, 그리고 무한계 역시 인간들의 사고가 전혀 미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리오스는 하루에 5시간은 이동하고 나머지 시간은 수련과 기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는 이곳의 생명체를 복용하면 마기가 중화되어 몸에 해롭지 않게 된다는 사실 알게 되었기에 마기를 단전에 축적하는데 안간힘을 다했다. 거기다 그는 조금 더 많은 마기를 몸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리오스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이 정말 말로만 들었던 지옥이 맞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검은 대지 위에 검은 바위와 척박하고 삭막한 환경들로 인하여 ‘그저 검은 사막에 왔구나.’ 라고 가볍게 생각 했던 리오스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괴이한 모습의 바위가 어둠의 빛에 더욱 짙은 음영을 만들어 내곤 하였는데 그것이 그에게 있어 그렇게 귀기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검은 대지가 흔들리다 쩍 갈라지며 불쑥 솟아올라 오는 지옥의 식물들은 그 칠흑 같은 어둠의 기운을 먹고 자란 때문인지 불길한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어 리오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거기다 지금껏 지옥의 식물들에게 식탐이 있는지 모르고 그 옆을 무심히 지나가다 큰 곤욕을 치를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예전 지옥에 떨어지기 전보다 몇 배나 강해져 있었고 험난한 사선을 셀 수 없이 지나왔기에 그의 몸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팽팽히 당겨진 활처럼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리오스는 족히 3 라키르에 이르는 식물의 굵직한 줄기가 은밀하게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을 느끼는 순간, 검을 뽑아 단박에 줄기들을 베었다. 그리고 그는 괴로워하는 지옥의 식물인 포이즈미보다 높이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포이즈미도 만만치 않아, 주축을 이루는 줄기가 벌어지며 커다란 입의 형상이 만들어지자마자 끈적끈적한 액체를 리오스를 향해 쏘아 보냈다. 리오스는 광범위하게 퍼지며 쏘아지는 타액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긴 몰라도 저기엔 치명적인 독이 있을 것이 뻔했다. 이를 알고 있는 리오스는 전이라면 생각도 못했을 자신의 발등을 찍으며 공중에서 다시 한번 도약하는 것을 무리 없이 시전 했다. 이에 포이즈미의 애꿎은 타액은 리오스의 발밑을 지나갔다. 이를 본 포이즈미는 당황해 다시 한번 타액을 뿜으려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퍼버벅! 보통 식물이라면 단순히 서걱하는 울림으로 끝을 맺었을 테지만 포이즈미는 그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매우 단단했다. 그렇기에 리오스의 검에 일격을 먹은 포이즈미는 ‘쩌적’하는 소음을 일으킴과 동시에 사방으로 내용물들을 뿌려 순간 검은 대지를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리오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포이즈미의 내용물들이 검은 대지 위를 어지럽히자 ‘치직’하는 타는 소음이 일더니 잠시 후, 한줌의 재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이에 리오스는 다시 한번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리오스는 지옥의 식물만 보면 도망갔는데 그가 지옥의 식물들을 피해 달아나면서 하는 중얼거림은 매번 같았다. “젠장! 먹지도 못할 거 죽여 봐야 힘만 아깝잖아. 어휴, 저거 독만 없으면 충분히 먹을 만 한데.” 리오스의 이런 한탄은 그가 이곳 지옥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141화. 삶 그 이상의 것. 1. 리오스는 고민했다. ‘도망갈까? 아님 싸워볼까?’ 리오스는 멀찍이서 달려오고 있는 상대를 보았다. 상대는 키가 2라키르 정도였는데 이곳 지옥에서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기에 덩치로 인해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자신의 몸이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해볼만 하다고도 생각했다. 이는 비약적으로 강해진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그의 마음은 좋게 말하면 용기가 가상했고 실제로는 간덩이가 팅팅 불어 배 밖으로 넘쳐흐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상대는 거리를 좁히며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리오스는 더욱 가까워진 거리로 인해 상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예전 뭣 모르고 덤비다 죽을 뻔한 뒤로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도망갔기에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라 할 수 있었다. 잉굴리틴은 사족 보행이었다. 쉽게 말해 개 과라 할 수 있었는데 언뜻 보면 순수한 혈통을 지닌 개중에 개라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오판으로서 그 오판으로 인해 아까운 목숨을 거저 헌납한 이들이(물론 대개가 지옥의 생명체들이었지만) 얼마나 많았던가? 더군다나 잉굴리틴은 평소모습일 때는 마기도 별로 뿜지 않기에 그리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양의 탈을 쓴 늑대의 술수라는 것을 리오스는 알고 있었다. 리오스는 자신의 앞에서 내숭을 떠는 잉굴리틴의 모습에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잉굴리틴의 모습을 살펴보며 검을 뽑았다. 이에 잉굴리틴은 붉은 눈을 빛내며 반겼다. 잠시 후, 나름대로 귀여운 외모를 지녔다고 자부하는 잉굴리틴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드드득! 기괴한 마찰음이 울리며 2라키르에 이르던 잉굴리틴은 순간 두 배로 커져 있었고 등에는 검은 날개 한 쌍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잉굴리틴의 가녀렸던 네 발은 강인한 다리로 바뀌어있었고 그 다리 아래는 보기에도 섬뜩한 발톱이 은은한 흑광을 뿜고 있었다. 그것에 의해 가슴 살점이 날아갔던 리오스는 잘게 몸을 떨었다. 리오스는 잉굴리틴의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처음 저 녀석이 변신할 때, 섣불리 덤볐다가 이상한 방어막에 튕겨나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사실 지금 실력이라면 기습하지 않고도 충분히 일전을 결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리오스였기에 비교적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잉굴리틴의 변신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잉굴리틴은 상대가 도망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자 더욱 기분이 좋아져 괴성을 질렀다. “키야오!” 그의 괴성은 흡사 살쾡이의 그것과 비슷했는데, 괴성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움은 살쾡이의 울부짖음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리오스는 그의 괴성에 기껏 억눌러 놓았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 까짓 ‘어디 한번 해보자’라는 도전정신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았다. 리오스의 기질은 이곳 지옥에 와서 많이 변해 있었는데 냉철했던 이성보다는 직감을 우선시하며 무엇보다도 일단 몸으로 부딪혀 보는 적극적인 스타일로 변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저돌적인 행동은 일견 충동적인 감정에 기인한 단세포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리오스는 이러한 과감한 결단력과 저돌적인 행동력이 이곳에서 살아남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리오스의 모습은 진과 판박이로 닮아 있었다. 마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시위 하는 듯이 말이다. 심호흡을 몇 번하던 리오스가 검을 고쳐 잡으며 잉굴리틴에게 달려들었다. 변화된 근자의 모습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그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한 마디를 쏟아냈다. “오냐! 너 죽고 나 살자!” 진이 좋아할 법한 말이다. 순결하고도 투명한 창문은 태양의 열정적인 구애 중 강렬한 빛의 파편들을 차단하고 자상하고도 포근한 빛줄기들만을 자신의 주인이 누워있는 침실로 인도했다. 은은하면서도 따사로운 황금빛줄기들은 고상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방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은근슬쩍 빛줄기들을 터트렸다. 순간 하얀 벽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침대 안을 가리는 하얀 비단 천과 그 밑에 달린 레이스도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태양의 자식들인 빛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도 이 방의 주인은 침대 위에 누워 두 눈을 꼬옥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오기로라도 자신들을 인정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한 빛들이 다시 한번 그 화려하고도 장엄한 빛의 축제를 벌이려는 순간,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외부인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빛들은 놀라 어쩔 줄 몰라 했으나, 곧 정신을 차린 그들은 더 이상 여기 머무르면 안 되겠다 싶어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데이릭은 침중한 안색으로 방안으로 들어오다 마치 빛줄기들이 줄을 맞춰 창문 너머에 있는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황금빛 기둥으로 이 방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장관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 자신의 눈이 잠시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데이릭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데이릭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자신은 사랑하는 아이의 아비요,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걸 수 있다는 점이다. “태양신 벨님이 나의 딸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구나!” 그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중얼거림을 입밖에 흘리며 레이스가 달린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침대를 가리고 있는 하얀 비단을 걷어내고 침대 위에 새근새근 아기처럼 자고 있는 자신의 딸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샤넬리야!” 데이릭이 딸의 이름을 불러도 샤넬리는 잠이 그리도 좋은지 행복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이를 본 데이릭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데이릭은 허리를 숙인 상태로 샤넬리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눈에서 보석처럼 고결한 눈물 한 방울이 샤넬리의 얼굴에 떨어졌다. 이에 놀란 데이릭이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떨어진 눈물을 황급히 닦아주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눈물은 그녀의 얼굴과 부딪치는 순간 터져버렸기에 그의 손은 터져버린 눈물을 손가락에 옮기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구했던 흡열의 열매가 터져버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과 같이. 데이릭은 딸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는 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와 함께 그는 한탄의 외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사랑스런 딸, 샤넬리를 왜 이 좁은 방안에만 가둬둬야 합니까? 신이시여, 말씀해보십시오. 이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제국의 모든 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도 충분한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내 딸이 이렇게 기약 없는 잠에 빠져있다는 것이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데이릭의 외침은 처절한 절규였고 한 맺힌 울부짖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여 샤넬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의 외침은 이내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중얼거림을 흐느낌에 녹였다. “흑흑흑, 제, 제발 제 딸아이를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전, 크흑, 어떻게 되어도 좋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시고 제 딸의 목숨을 대신 내려주십시오. 흑흑, 그러니 제발, 제발 간절히 원하는바오니 저의 딸 샤넬리를 이 저주받은 병에서 구원해주십시오. 흑흑.” 딸의 손을 잡으며 울면서 기도하는 데이릭의 모습은 일견 숭고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데이릭이 원하는 것은 지금 보이는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누군가 알아달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그의 기도가 하늘에 전달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하늘에 존재하는 분이 신이라 한다면 자신의 딸을 반드시 구원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는 그렇게 절박한 믿음을 가지고 신께 기도드리고 있었다. 본래 이곳은 오래 묵은 술의 깊은 맛처럼 은은하면서도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햇살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자리 잡아 이곳에 있으면 절로 한숨을 쉬게 만드는 장소로 변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던 많은 사람들은 웬만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술을 먹게 되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헌트와 카이슨은 오늘도 진과 에리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그들의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청량제와도 같은 것이었기에 두 사람 다 누구하나 지겨운 기색이 전혀 없이 했던 말을 또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대화는 진의 경이적인 성장속도로 넘어가게 되었고 두 사람은 하나라도 더 말하기 위해 싸우듯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절정을 향해 치달려가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끼익! 문을 여는 사람의 심리를 반영하듯 나무문이 힘겹게 열렸다. 그와 함께 한 사람이 햇살을 등지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따사로운 햇살이 부담스럽다는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실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벌겋게 변해 있는 얼굴을 대변하듯 술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헌트와 카이슨은 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에리필을 보고 그야 말로 그 황당함에 넋이 나가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황당해하던 말든 에리필은 익숙한 동작으로 원목으로 된 바에 일렬로 고정되어 있는 의자 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헌트와 카이슨은 기이한 시선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다 뒤에 따라오는 꼬리가 없음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은 술에 빠져 죽으려는 듯, 벌컥벌컥 들이붓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안색이 창백한 상태로 그 한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불안한 침묵을 깨고, 카이슨이 말했다. “이, 이보게. 진은 어디 있는가?” “…….” 카이슨이 물었으나 에리필은 묵묵부답. 그저 술만 들이붓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분통이 터진 헌트가 에리필의 멱살을 잡고 그의 몸을 공중에 띄웠다. 그러나 에리필은 자신의 몸이 공중에 뜨든 말든 술병 주둥이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이를 본, 헌트가 잠시 멈칫거렸으나 그는 사나운 일갈을 터트리며 에리필을 추궁했다. “야, 이 개자식아! 진은 어디 있냔 말이다!” 헌트의 고함에 정신을 차렸음인가? 술병을 입에서 떼어낸 에리필이 헌트의 눈을 쳐다보았다. 헌트는 그의 눈을 보고 예전에 그와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에리필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에리필은…. ‘이 녀석은 살았으나 죽어 있다. 녀석의 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헌트는 그의 눈을 보고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자신의 몸을 훑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헌트가 불안에 떨 때, 시커멓게 죽어있는 입술이 들썩였다. “죽었다.” 에리필은 그 말을 끝으로 또 다시 술병을 입에 박아버렸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있던 헌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순간 이성을 잃은 헌트가 에리필을 던졌다. 이에 에리필의 입에 박혀있던 술병이 바닥과 부딪히는 충격으로 깨지며 에리필의 얼굴과 입안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그러나 헌트는 그것도 모자라 쓰러져 있는 에리필의 몸을 발로 차고 또 찼다. 하지만 에리필은 작은 신음만 토할 뿐, 헌트의 발길을 고스란히 맞았다. 헌트는 거짓말하는 에리필이 죽도록 미웠다. 왜 자신에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에리필은 자신에게 맞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며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카이슨은 에리필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사고가 백지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카이슨은 정신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헌트의 강렬한 살기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카이슨은 헌트가 에리필을 걷어차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카이슨은 헌트가 진심으로 에리필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의 이마에 나 있는 십자흉터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카이슨은 엄청난 속도로 몸을 날려 헌트를 넘어뜨렸다. 평소 때의 헌트라면 이 정도의 태클은 웃으며 피할 것인데 그의 이성은 이미 예전에 날아가 버린 상태인지라 카이슨의 접근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바닥에는 세 사람이 엉킨 듯 누워있었다. 간단히 술 한 잔 하러왔던 사람들은 헌트의 살벌한 기세에 놀라 황급히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 보니 실내는 단 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바닥의 차가움에 어느 정도 이성을 차린 헌트가 에리필을 향해 말했다. “이 개잡종 같은 새끼야! 이 세상에는 해선 안 되는 거짓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냐?” 헌트는 쓰러져 있는 에리필의 멱살을 잡아 올려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너 이 썩을 놈아! 진이 죽었다는 거짓말은 이 세상에서 내가 들어본 거짓말 중, 두 번째로 지독한 거짓말이다. 너 그거 알고 있냐?” 헌트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에리필도 울고 있었고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카이슨도 울고 있었다. 세 사람은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자신들 세 사람만의 술집이 되었지만, 세 사람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 했다. 카이슨이 비어버린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술은 목구멍을 태워버릴 듯이 뜨거웠으며 지독할 정도로 역겨웠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시 술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그렇게 몇 순배가 돌자 헌트가 몽롱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난 아직도 진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카이슨이 헌트의 말에 긍정을 표하며 말하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에리필을 보았다. 에리필은 몽롱한 눈빛으로 진의 흔적을 찾다 진이 자신을 구하며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진은… 아마도 죽었으리라. 하지만 에리필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진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진실인 냥 그의 가슴에 절대적인 믿음으로 새겨졌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술을 많이 마실수록 신앙과도 같은 절대적인 믿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고의 바다 속을 항해하던 에리필이 현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본 것은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는 뜨거운 눈망울들이었다. 이에 에리필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가르친 진이라면 반드시 살아 있을 것이다.” 에리필의 한 마디에 헌트와 카이슨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헌트가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지금보다 더 나를 갈고 닦을 것이다. 아마 그 녀석은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대련을 요청할 테니 말이다.” “그래, 이렇게 살 수만은 없지. 그렇담 나는 달리기 연습이나 좀 더 해볼까?” “후후, 좋아. 그런데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봐. 진이 돌아왔을 때는 아마 우리 세 사람이 같이 덤벼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에리필의 말에 헌트가 기분이 좋은지 나무로 된 바를 탁탁 치며 흥얼거렸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황급히 한 마디 했다. “술 먹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니 오늘 코가 삐 뚫어지도록 마셔보자!” 헌트의 말에 두 사내는 ‘좋아라.’하며 술병을 따랐다. 다음날부터 그 술집에서 세 사내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에리필이 농담조로 했던 말이 자신들 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 이야기를 꺼냈던 장본인인 에리필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각자의 가슴에 아물지 않을 쓰라린 상처를 내놓고 말이다. 142화. 삶 그 이상의 것. 2. 온 몸이 혈인으로 변해 버린 리오스는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는지 연신 툴툴거리고 있었다. “역시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어!” 그러나 그는 말과는 달리 냉철하게 빛나는 눈으로 잉굴리틴의 찢겨진 한쪽 날개와 텅 빈 왼쪽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겉보기에는 전투능력을 상실한 듯했다. 그리고 잉굴리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마무리로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리오스를 빨아들였다. 그의 뜻은 손 안 대고 꿀꺽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리오스의 눈이 빛을 발했고 오히려 땅을 박차며 날아간 그가 공중에서 몸을 틀어 잉굴리틴의 날개 한쪽을 찢는 것과 동시에 몸을 틀어 붉게 빛나는 잉굴리틴의 왼쪽 눈을 꿰뚫어 버렸다. “캬아오!” 분노의 괴성을 지른 잉굴리틴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그러나 리오스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리오스는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발톱에 등 뒤가 축축이 젖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잉굴리틴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나 잉굴리틴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를 자신에게 겁먹은 것으로 판단한 리오스가 야릇하게 웃었다. 간만에 느껴보는 쾌감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야릇한 미소를 짓던 리오스의 눈에 상처가 점점 아무는 잉굴리틴의 날개와 텅 빈 동공에 붉은 기운들이 뭉쳐지는 것이 보였다. “젠장! 다음부터 저 놈과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이번에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의 몸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잉굴리틴에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크르릉!” 잉굴리틴은 부나방처럼 날아오는 리오스를 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시뻘건 눈을 빛냈다. “너 죽고 나 살자!” 검을 휘두르며 외치는 리오스는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그 순간 그는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검을 돌려 엄중한 방어막을 쳤다. 곧이어 그의 예감이 맞았다는 듯이 그의 검을 때리는 소음이 쉴 새 울렸다. 채챙챙챙! “크윽!” 그러나 잉굴리틴의 날개 끝에서 날아간 무수히 많은 침들을 막을 수는 없었기에 양 허벅지와 왼쪽 옆구리가 침에 꿰뚫려 버렸다. 그리고 힘없이 바닥과 충돌한 리오스는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잉굴리틴을 피하기 위해 등을 움직여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렇게 벌어진 간격은 잉굴리틴이 몇 걸음 걷자 금방 좁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한쪽 밖에 남지 않은 붉은 눈이 광기로 번들거리는 순간 뭔가가 번뜩였고 리오스의 손에 있던 검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켈켈켈!” 망연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리오스를 보며 괴소를 짓던 잉굴리틴이 앞발을 휘둘렀다. 푸욱! “크악!” 잉굴리틴의 앞발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살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졌고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리오스의 비명이 암울한 지옥에 울렸다. 하지만 잉굴리틴은 그의 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앞발을 몇 번이나 더 휘둘렀다. 이에 리오스는 혼절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혼절할 수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그때가 네놈의 제삿날이다.’ 리오스는 두 다리의 살점들이 지저분하게 파헤쳐져 허연 뼈가 훤히 드러나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이를 악물고 기회를 기다렸다. 얼핏 봐도 그의 얼굴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선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고 너무도 세게 깨물어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리오스는 혼절하지 않고 단 한번의 기회를 기다렸다. 잉굴리틴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만족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아직 완전히 재생되지 않은 왼쪽 눈의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에 새삼 자신이 원한 진정한 복수를 깨닫게 된 잉굴리틴이 심판의 단죄를 내리기 위해 리오스의 몸을 밟고 그의 머리쪽으로 다가갔다. “큭!” 리오스는 잉굴리틴의 엄청난 무게에 몸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그의 눈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싸늘한 한광을 뿌려대고 있었다. 잉굴리틴이 리오스의 눈을 뜯어먹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리오스가 허리춤에 숨겨두었던 마수의 뼈를 빼냄과 동시에 그것을 고개를 숙인다고 낮아져 있는 잉굴리틴의 목 아랫부분에 박아 넣었다. 푹! “끼……르륵!” 잉굴리틴은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다 그것도 목을 뚫고 나온 이물질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운 신음만 토했다. 이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리오스가 준비해두었던 다른 마수의 뼈를 아까 전 박았던 뼈 옆에 박았다. 그러나 잉굴리틴은 강하게 몸만 떨 뿐, 어떠한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잠시 후, 잉굴리틴의 거체가 쓰러졌다. 쿵! “컥!” 리오스는 승리감에서부터 오는 쾌감에 몸을 떨다 육중한 무게에 몸이 짓이겨지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도 이겼다는 살았다는데서 오는 쾌감을 능가하진 못했다. “으으아아앗!” 잉굴리틴의 몸에 눌린 리오스가 안간힘을 다해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다리는 너무도 심하게 망가져 버린 것이다. 순간 승리감을 뒤엎는 공포가 그의 사고를 지배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약하기 짝이 없는 슈케르만 만나도 나는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이 이는 순간 만신창이가 된 몸은 어느새 검이 있는 대로 향했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어온 리오스가 검을 휘둘러 잉굴리틴의 몸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잉굴리틴의 몸체를 분해하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리오스 앞에는 제법 많은 살점들이 놓여있었고, 현재 그는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보랏빛 피로 범벅이 되어있는 살점들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리오스의 몸에 어느 순간부터 변화의 바람이 감싸기 시작했다. 잔혹한 손속에 파헤쳐진 살과 그 사이에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뼈들에게서 더 이상 하얀 빛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날아간 살점들이 있던 자리에 새살이 돋기 시작했으며 날카로운 침에 꿰뚫린 상처도 씻은 듯이 아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은은한 흑빛을 띠고 있어 은연중 리오스의 몸이 마기에 침범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새살이 돋고 찢어진 근육들이 재조직되는 모습은 흔히 말해 몬스터들의 놀라운 재생능력과 비슷해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놀라운 상황의 가운데에 있는 리오스는 이러한 경험을 몇 번 이나 겪었는지 놀라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니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그의 눈에 서려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리오스는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완전 분해한 잉굴리틴을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동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리오스가 다리를 심하게 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와 잉굴리틴의 치열했던 사투의 흔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흔적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그것을 알고 있는 리오스가 암흑 속으로 사라지며 중얼거렸다. “완전한 확신이 서지 않고서는 두 번 다시 그놈과 싸우지 않겠다.” 그의 말은 이번 전투에 대한 반성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 이면은 반드시 잉굴리틴을 상대로 느긋한 승리를 거두겠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리오스는 단전 안에 있는 마기가 간혹 가다 흉포하게 날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리오스는 진땀을 빼며 그것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다행히도 망아지처럼 날뛰는 마기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마기와 마수를 복용함으로써 치유되는 리오스의 신체는 날이 갈수록 묵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묵빛의 피부는 때때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해 리오스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고 온몸이 가렵고 끊어지는 듯한 통증에 리오스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씻은 듯이 사라져 온 몸을 적시고 있는 땀만 아니라면 그 고통이 실제로 자신을 엄습했었는지에 대해 회의를 품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의 반복은 리오스를 미지의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적으로 리오스는 육체적인 것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나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고통과 안식은 낮과 밤처럼 일정한 주기를 정해두고 리오스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 이 고통은 매번 찾아올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그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곳 지옥에 낮이라는 것이 존재할리 없지만 리오스는 안식을 주는 이 순간이 포근한 햇살이 내려쬐는 낮의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새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순간의 소중함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는 리오스였다. 리오스는 온 몸을 훑는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 지나가자 차디찬 어둠의 대지에 누워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비록 어둡고 무거운 바람이지만 리오스의 지친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리오스는 그러한 바람의 보살핌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팔다리가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시작하자 그의 입가는 고통에 찌든 일그러진 미소를 만들었다. 리오스는 몸을 갈기갈기 찢을 듯한 고통에 몸을 내어 놓는 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싸웠다. 처절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오늘도 시작하는 것이다. 어둠의 대지 위에 보랏빛 피가 고여 작은 호수를 이루고 그 위에 잔인할 정도로 파헤쳐진 잉굴리틴의 시체가 엎어져 있었다. 리오스는 죽어 버린 잉굴리틴을 힐끔거리다 착잡한 시선으로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보았다. 쩍 벌어진 상처는 상대가 그 흉악한 잉굴리틴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리 크지 않은 상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바라보는 리오스의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벌어진 살점 사이를 바라볼 것만 같던 리오스가 어두컴컴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와 함께 그의 뺨을 타고 슬픈 이슬방울들이 어둠의 대지 위로 떨어졌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건가?” 리오스는 말을 하며 팔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는데 벌어진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리오스가 손으로 상처부위를 꾹 눌렀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벌어진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물어져 있었다. 이에 리오스가 손을 떼며 자조적인 웃음을 토했다. “킥킥킥, 내 몸도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군.” 리오스는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그러던 그가 웃음을 뚝 그침과 동시에 정색을 하며 자신의 피 묻은 손을 얼굴에 닦았다. 그러며 그는 또 한번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이것이, 이것이 정녕 인간의 피란 말인가?” 리오스는 보라색으로 칠해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고 얼굴에 칠해진 피가 엉켜 붙으며 그 끈적끈적함을 느끼자 오한에 든 사람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리오스의 두 눈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광소가 터져 나왔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일견 기이해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너무도 불쌍하고 처량해보였다. 그렇게 리오스는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리오스는 다음날부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다 지치면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고 울며 괴로워하다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 또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어둠의 대지 위를 나는 듯이 달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간혹 가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이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리오스는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고 오로지 달리는 것에 맞추었다. 마기를 중화시켜주는 마수들을 복용하는 시간도 아까워 최소한의 시간만을 할애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시간을 이용하여 리오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거침없이 지옥을 달리는 리오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잔혹한 지옥의 마수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옥의 마수들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인과도 같아 매번 볼 때마다 반갑기까지 했다. 그리고 실상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는 리오스였기에 마수 따위가 두려울 리 없었다. 그러나 그런 리오스도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마기에 대한 것이었다. 무아지경으로 달리던 리오스의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리 근육은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리오스가 자신의 의지대로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 리오스는 차디찬 땅바닥을 구르며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큭! 젠장! 이 놈의 다리는, 이 놈의 몸뚱아리는 이제 주인도 몰라본단 말인가?” 리오스는 다리를 세게 치며 외쳤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마기에 잠식당해 있는 상태인지라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해버렸다. 이러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자 리오스는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의 몸이 그를 버리고 마기의 노예로 전락해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살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했으니 결국엔 자신은 죽을 운명인 것이다. 그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또한 아무 것도 해놓은 것도 없이 복수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그에겐 견딜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복수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아무리 복수의 불꽃을 태워도 자신의 생명만 갉아먹었기에 좀 더 건설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리오스는 생각하고 결심했다. ‘나, 올슈레이 리오스가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개죽음 따위나 당할 수는 없다. 난 무엇이라도 이루고 죽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죽을 수 없다.’ 이러한 결심은 그가 이 삭막한 지옥에서 목표라는 것을 찾게 만들었고 현재 그가 죽어라 달리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오스는 자신이 이곳 지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지옥의 군주라는 악마를 잡아봐?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영웅이 되어볼까?’ 리오스는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한 생각에 피식 웃었다. 잠시 후, 희미하게 걸렸던 미소가 사라지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리오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리오스는 현실적인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렸고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 무엇이 있을까? 사실 나는 고고학자가 되려했고 그로 인해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지.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곳 지옥은 고고학자라면 누구나 조사해보고 싶은 신천지라 할 수 있잖아! 그래, 나는 이제부터 이곳을 조사해보는 거야. 아니야. 나는 조사를 할 수 없어. 나에게는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후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리오스는 생각의 고리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해답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리오스는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고고학자로서 어울리는 일.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지옥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때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지옥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다면 나의 도전은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리오스는 자신의 최후를 고고학자로써 맞이하고 싶었고 뜨거운 가슴을 지닌 그는 지옥이라는 어마어마한 상대를 향해 도전의 칼날을 뽑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날카롭게 잘 갈린 칼날을 지옥의 심장에 꽂기 위해 오늘도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진다. 그러나 리오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고 그 누가 달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리오스는 다리를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리오스 본인은 자신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리오스의 감각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리오스는 몇 일전부터 마수도 먹지 못했다. 먹으면 먹는 족족 토해버리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다가온 엄청난 고통에 까무러친 다음부터 어떠한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신경이 죽거나 약해졌으리라.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리오스는 걷고 있었다. 리오스는 자신이 지옥의 외곽을 통과해 내역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그의 눈이 앞을 보면서도 수많은 정보들을 뇌에 전달하지 못하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몸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리오스는 굳어버린 입술을 힘겹게 벌려 투덜대었다. “젠장.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풍경을 언제까지 봐야하는 거지?” 리오스는 비록 그 잎이 검정색이지만 울창한 잎들을 가지고 있는 나무들을 보지 못했고 비록 물의 색깔이 칙칙한 빛을 띠고 있지만 엄연히 물이 고여 이룬 호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가 호수 옆을 지나가면서도 말이다. 리오스는 자신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단순한 평지인줄 알지만 실상 가파른 경사를 가진 산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리오스가 제정신이기만 해도 그는 지옥 안에 그가 살았던 인간계와 비슷한 곳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놀람과 감격을 누릴 운이 없었나 보다. 어느 때부터인지 리오스의 두 눈에서 보랏빛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입과 코 그리고 귀에서도 보랏빛 피가 토해지고 있었다. “컥, 커컥, 커헉!”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보랏빛 피를 흘리는 리오스의 모습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그의 몸은 본능에 의해 부들부들 떨면서도 다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걸음도 얼마 가지 못했다. 쿵! 리오스는 은밀한 숲의 덫인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지옥의 외곽과는 달리 조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쓰러진 리오스의 몸을 감싼다. 하지만 푹신한 땅에 고개를 처박고 누워있는 리오스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43화. 삶 그 이상의 것. 3. 추레한 몰골의 사내가 꼬르륵거리는 뱃속의 비명을 잠재우기 위해 거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시선과 욕지거리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사내는 배가 고팠다. 또한 잔뜩 부풀어 오른 단전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가슴이 쪼개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이지가 상실된 상태에서도 연신 신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반 폐인이 된 상태에서 비칠비칠 걸음을 옮기는 사내를 향해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가 침을 뱉었다. “야이 거지새끼야! 너 그 두둑한 배는 뭘로 만든 거냐? 너 같은 놈이 있으니깐 우리 같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거 아냐?” 이 일대에서 팬이라면 3살짜리 꼬맹이도 아는 건달패다. 그런 그가 가래 섞인 침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사내에게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좋았다. 팬이 갑자기 발을 날려 사내의 부풀어 오른 복부를 걷어 차 버린 것이다. “커헉!” 사내의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쩌쩍! 배를 맞았는데 가슴이 쪼개지는 것 같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배도 아파져왔다. 순간 사내의 두 손은 허겁지겁 배와 가슴을 감쌌다. 이런 사내의 모습이 팬의 심기를 건드렸다. “쓰발! 네 몸의 뱃속에 들어 있는 거 다 토하게 만들지 못하면 내 이름을 갈겠다.” 팬은 말을 마치며 사내의 배와 가슴을 집중적으로 걷어찼다. 그러나 사내가 목숨을 걸고 막고 있어 그의 발은 사내의 팔에 번번이 막혔다. 욱신!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사내는 끝까지 팔을 내리지 않았다. 팬의 발이 자신의 얼굴을 노려도 말이다. “퉷! 재수 옴 붙은 날이군. 거지새끼치고는 꽤 근성이 있어 봐 준다.” 끝내 자신이 지쳤다고 말하지 않는 팬이었으나 사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물론 사내의 이성은 그런 사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팬이 사라지자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도 차츰 사라졌다. 얼마나 흘렀을까? 붉은 석양이 사내의 피와 떼로 얼룩진 얼굴을 비쳐주었고 그가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사내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으나 힘을 내기 위해 안면근육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선 사내가 이제는 감각마저 없는 팔을 풀어 부풀어 오른 배와 아릿한 통증의 근원인 가슴을 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는 사내. 허나 그 미소는 이내 고통과 싸우는 자의 처절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변해버렸다. “끄으윽! 사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신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고 그는 비칠비칠 대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열 걸음 걷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또 걷는 사내의 모습은 분명 안쓰러워보였지만 배와 가슴을 감싸면서까지 뭔가를 지키려는 그의 모습은 일견 숭고해보이기까지 했다. 사내는 마을을 벗어나 옆 마을과 이어져 있는 소로를 걷고 있었다. 그렇게 영원토록 걷기만 할 거 같은 사내가 커다란 나무를 지나칠 때, 어떠한 힘에 의해 스르륵 쓰러졌다. 사내는 이유야 어찌됐든 넘어졌으니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는 본능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힘에 결박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그의 가슴에서 뭔가가 울렸다. [인간임에도 우리의 동지인 자여! 무엇이 당신을 속박하고 있는가?] 인자한 음성은 인간들이 내는 소리와는 달랐지만 분명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또한 그 음성은 사내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대에게 주어진 고통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기를…….] 음성이 사라지는 순간 커다란 나무에서 뭔가가 빠져나왔다. 그것은 숲의 정령이었는데 성인 평균 키에 육박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말이리라. 정령은 눈 한번 깜빡거릴 짧은 순간에 일어서려고 발버둥치는 사내 앞에 섰다. 그리고 그가 손을 휘두르자 정령의 몸 주위를 배회하고 있던 초록색 빛깔들이 은은한 여운을 남기며 사내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내는 느끼지 못했지만 미약하게 발버둥치는 그 힘마저 사라졌다. 잠시 뒤, 그는 간만에 평온한 얼굴로 잠에 빠져 들어갔다. 사내의 몸 안에 정령의 기운이 스며든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기품이 느껴지는 음성이 정령의 가슴에서 울렸다.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나, 매우 고맙다.] 파장이 흩어지며 가슴에 잔잔한 여운만 남자 정령이 한 존재를 떠올리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울리는 음성. [그대는 누구인가? 내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몸을 떨고 있던 정령은 까무러칠 뻔 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겠단다. 음성의 주인이 자신이 짐작한 존재가 맞는다면 이는 정령인 그에겐 무한한 영광이었다. 혼란에 빠져있던 정령이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황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령이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 [저는 나무의 정령인 우리피라고 합니다.] [우리피, 내 너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이는 정령의 왕족인 메테리어의 이름에 걸고 하는 맹세다.] 엘뤼시온의 약속에 너무도 감격한 우리피는 격앙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상태를 짐작하며 엘뤼시온이 말했다. [나의 주인에게 모처럼의 안식을 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너의 기운과의 교감에 의해 너와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고맙게 생각하는 바이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 내 너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그런 너이기에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무슨 부탁이신지 모르나,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고맙다. 현재 내 주인은 인간들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경지를 넘어서려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 주인은 의식이 없고 주인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다음 경지로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인을 방치해둘 수도 없는 것이 다음 경지로 넘어가지 않으면 주인의 몸은 엄청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피는 그의 말을 이해는 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물었다. 그리고 엘뤼시온이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지금 내 주인이 넘어가야 할 경지라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우주와 인간을 연결해주는 통로를 열어야 올라갈 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열어야 할 통로는 가슴에 있는 것인 거 같다. 내가 보기에 본래 이 통로는 어떠한 깨달음과 명경지수처럼 맑은 마음가짐, 그리고 바로잡힌 육체와 일정수준 이상의 기를 요하는 거 같다. 우리야 본래 그런 통로가 없어도 우주와 연결되어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으니 이러한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거 같다. 어찌됐든 지금 주인은 기와 깨달음은 준비되어 있으나 건강한 육체와 명경지수처럼 맑은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차라리 어느 거 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두 개가 준비되어 있기에 자연적으로 통로는 열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 사실상 그 통로를 열기 전에 주인이 망가질 것이다. 그래서 너는 주인의 몸이 붕괴되기 전에 그 통로를 힘으로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네가 도와주어야 한다.] 엘뤼시온은 뒤이어 세부사항을 설명했고 우리피가 긍정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대화를 지나가던 무인이 있어 들었다면 경을 치며 만류했을 것이다. 쿤을 여는데 있어 외부에서 돕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대화를 나눈 존재는 인간이 아닌 정령이다. 결국 진의 운명은 두 정령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는 말이다. 두 정령은 확고한 믿음이라도 있는지 인간들처럼 많은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해야 된다는 설명이 일방적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들 정령은 인간과는 달리 우주와 막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그들이 우주와 올바른 연결됨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피는 엘뤼시온이 말해준대로 힘을 개방했다. 그리고 그 기운을 진의 가슴골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의 가슴골에 들어간 그의 기운이 일정한 방향성과 규칙에 따라 어딘가로 빠져나갔다. 몸의 외부가 아닌 좀 더 근원적인 우주로 말이다. 그렇게 그는 우주와 3번째 쿤인 쥬므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우리피는 매우 미세한 굵기로 쥬므와 우주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기운을 가지고 쥬므를 뚫기 시작하자 뒤이어 막대한 기운이 미세하게 뚫린 구멍을 통해 그것들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뚫어놓은 구멍들이 혼탁한 기운들에 막히지 않도록 깨달음이라는 벽이 구멍을 뒤덮었다. 쥬므를 뚫기 위해 기운을 보내던 우리피는 우주를 향한 원활한 항해를 위해 그의 자아가 쥬므 안으로 직접 들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장한 체격의 초록빛 우리피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허나 이를 알리 없는 그는 광활한 우주에 취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막대한 기운과 깨달음의 장벽이 따르고 있었다. 엘뤼시온은 우리피의 존재자체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우리피에게 여행을 멈출 것을 명령했다. 그가 우리피에게 바란 것은 맑은 마음과 튼튼한 육체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벌어지는 미세한 구멍만을 원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피는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렸다. [이제 그만 하고 돌아와라. 더 이상 가다가는 우주의 늪에 빠져 너의 존재성마저 잃게 된다. 어서 돌아와라!] 엘뤼시온의 다급한 말은 불행히도 우리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우주라는 황홀 한 술에 잔뜩 취해 있는 상태인 것이다. 우리피는 쥬므를 다 연결하자 마치 파노라마처럼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첫 번째 쿤인 륜을 느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샤오를 느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쥬므 마저 느꼈다. 세 개의 쿤을 한 번씩 다 느끼고 나자 조금씩 삐걱대던 것들이 우리피의 기운에 의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피의 본체가 좀 더 옅어졌다. 우리피는 원활하게 돌아가는 세 개의 쿤을 음미하다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들어온 이곳이 끝없는 공간에 황량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끊어진 다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우리피는 이 이상의 다리를 건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 뒤에 멈춰서 있는 기와 깨달음의 장벽을 느꼈기 때문이다. 뭔가에 취해 무아지경으로 달려왔던 우리피의 이성이 차츰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그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정령이라 하나, 완전히 연결된 인간이 볼 수 있는 우주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극히 좁은 우주만을 볼 따름이다. 그렇기에 그가 수용할 수 있는 우주는 진이 연 쥬므 이상의 것은 될 수 없었고 여기서 욕심내어 안으로 들어간다면 존재자체가 말살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그는 노도처럼 질주해오는 성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느꼈다 싶은 순간 성난 기운은 우리피를 덮쳤고 그것은 세 개의 쿤을 통해 진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세 개의 쿤을 지나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는 기운은 진의 몸에 새겨져 있는 츄요를 돌았고 그 기운에 의해 츄요는 본래의 그것보다 훨씬 넓어졌으며 탄탄해졌다. 그렇게 츄요를 세 번 돌던 광폭한 기운이 엄청난 기세로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 단전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운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으며 이제는 그 기운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의 단전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충만감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한편 기의 홍수에 휩쓸린 우리피는 이미 자아자체가 타격을 입어 돌아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것은 진의 앞에 서 있는 그의 실체가 빠른 속도로 희미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피는 점점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피 어서 나와라! 더 이상 있다가는 너의 존재자체가 우주에 잡아먹혀 버린다.] 엘뤼시온의 걱정스런 말에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미소만 지을 뿐, 엘뤼시온에게 말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의 음성이 들렸지만 말이다. 우리피는 천년이 넘는 시간을 회고했다. 그러나 딱히 이것이다 하는 기억은 없었다. 단지 대자연과 호흡하며 우주를 느끼는 것이 인생의 다였던 거 같다. 그것이 정령의 삶이라는 것을 알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그 의문에 답을 내놓을 삶은 그에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없었으나 다른 이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렇게 살았으면 한다는… 그래, 지금 내가 있는 이 몸의 주인은 비록 인간이지만 나와 동지요, 친구다. 그리고 그에게 이것을 부탁하자.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그가 내가 세워놓은 우주와 통하는 다리를 지나갈 때, 내가 남긴 메시지를 보고 그렇게 살아주었으면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 정령들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강한 사념은 흐트러지는 정신을 다 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가 세운 다리의 끝 바로 옆에 누웠다. 잠시 후, 그는 의식의 끈을 놓았고 그의 몸은 그가 세운 다리와 연결되어 좀 더 우주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잠시 뒤, 좀 더 확장된 다리가 불러일으킨 미약한 기운이 느릿한 속도로 쿤이라는 다리를 지나다 이채로움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 기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쿤을 지나 진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기운은 알고 있을까? 그가 본 초록빛 쿤의 다리가 본래의 회색빛 쿤의 다리를 보는 것보다 몇 백 억분의 일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144화. 삶 그 이상의 것. 4. 오랜 옛날 한 악마가 에쉬리온을 자신의 종으로 삼기위해 멋모르고 다가가다 크게 낭패를 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에 그 악마가 다른 악마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고 귀여운 것은 내 것이 되었을 거야.” 그의 말에 동료 악마들은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그 악마가 방심하지 않았더라도 에쉬리온을 잡아들일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성의 안쪽에 사는 상급 악마 라면 또 몰라도 말이다. 이렇게 강함의 대명사인 악마들도 한 수 접어주는 에쉬리온은 의외로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순백의 하얀 털에 빨간 눈동자 곧게 뻗은 허리, 유려하게 뻗은 꼬리가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것. 여기에 대부분의 악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만큼 에쉬리온은 꼭 안아 볼에 비벼주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내성과 외성 모두에서 쉽게 볼 수 없다는 에쉬리온이 어둠을 뚫고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검은 나무들 사이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위를 살피는 에쉬리온의 모습은 매우 귀여웠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던 에쉬리온은 주위에 적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느긋한 자세로 나무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에쉬리온의 걸음은 어딘가 모르게 배부른 귀족의 걸음과 비슷했다. 허나 귀족들의 걸음과는 엄연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간단히 그 느낌의 차이를 말하자면 귀족들의 걸음걸이는 역겨울 정도로 재수 없는데 비해 에쉬리온의 걸음은 철없는 꼬마들이 가슴을 펴고 걷는 것과 같이 귀엽고 절로 실소를 머금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걷던 에쉬리온이 잠시 코를 킁킁대더니 그 큼지막한 붉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더 이상 그곳에서 에쉬리온을 볼 수 없었다. 암흑으로 뒤덮인 세상에 하얀 빛줄기 하나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 하얀 빛줄기는 너무도 빨라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신 하얀 빛이 지나간 자리에 잠시지만 잔상과도 같은 빛줄기들이 그려져 있어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 줄 따름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던 에쉬리온이 어느 이름 모를 산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에쉬리온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코를 킁킁대던 에쉬리온이 유려한 몸동작으로 방향을 선회해 산의 중턱쯤에 착지했다. 에쉬리온은 손바닥만한 귀를 쫑긋 세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신이 찾는 이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쉬리온이 예의 귀족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욱!” 에쉬리온이 붉은 눈을 빛내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보랏빛 생명체 하나가 있었다. 보랏빛 생명체는 거의 숨이 넘어간 듯, 가슴의 기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에쉬리온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몇 번 코를 킁킁대더니 혓바닥으로 보랏빛 생명체를 핥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쉬리온은 정성을 다해 보랏빛 생명체를 핥았다. 그런데 에쉬리온의 혓바닥이 닿은 부분이 많아질수록 죽은 듯이 누워있던 보랏빛 생명체의 몸에 생기가 차기 시작했다. 이는 에쉬리온이 희귀종족이라 불리는 또 다른 이유로 인함이었다. 에쉬리온 또한 희귀종족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치유력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악마들이 에쉬리온을 가지려고 기를 쓰고 덤비는 진정한 이유였다. 에쉬리온의 혓바닥에서 분비되는 침은 어떠한 상처도 치료해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침은 환자의 숨이 끊어지지만 않으면 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보랏빛 생명체는 삶의 귀환을 서두르고 있었다. 에쉬리온은 온 몸을 다 핥은 뒤, 보랏빛 생명체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에쉬리온의 혀가 지나가자 보랏빛 생명체는 사라지고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는 리오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에쉬리온은 리오스의 심장에 귀를 갖다대었다. 그리고 그는 강하진 않지만 분명히 약동하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만족한 에쉬리온이 고개를 뒤로 꺾으며 울음을 토했다. “꾸오오오!” 에쉬리온의 울음소리는 가는 듯 하면서도 은근히 길게 퍼져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울음소리가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질 무렵, 이름 모를 산의 중턱에서는 더 이상 리오스와 에쉬리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리오스는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살아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고 입과 코는 쉴 새 없이 공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새삼 고맙고 감사했다.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리오스의 눈은 어느새 맑고 생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에 대해 살펴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곳은 확실할 순 없지만 분명 실내 같았다. 이는 고개를 위로 올리기만 하면 시커멓지만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경험과는 색다른 경험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리오스의 생각은 어둠의 공간을 가로막은 인공의 손길이 가해진 벽들을 봄으로써 확신으로 변했다. 실내는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한 느낌을 주는 실내 안에는 분명 리오스만이 있을 뿐이었다. 리오스는 자신의 느낌을 믿었기에 확신했다. 하지만 그러한 확신은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어떤 생명체에 의해 철저하게 구겨져 땅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허억? 뭐…뭐냐?” 리오스는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하지만 이내 실소를 머금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리오스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그리며 자신의 앞에 쭈그려 앉는 생명체를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어떻게 해서 살았으며 이곳이 어딘지에 대한 물음은 머릿속 한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에쉬리온은 자신이 구한 생명체가 마음에 드는지 ‘캐르릉’거리며 리오스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그런데 지금 에쉬리온의 모습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리오스는 작살에 심장이 꿰뚫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리오스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귓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는 아직까지도 은은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주인 이외에 인간을 보다니, 반가워.] 이 괴상한 생명체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오스는 무척이나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리오스는 자신이 몸이 약해져 환청을 들은 거라 합리화했다. 그러며 그는 에쉬리온을 보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 중얼거렸다. “하하하, 그럴 리가 없지. 저 쪼그만 동물이 나에게 말을 걸었을 리가 없지.” 리오스의 표정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표정은 잠시 뒤, 경악으로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다. [잘못 듣지 않았어. 난 분명 너에게 말했다고. 음… 분명 주인의 언어는 이런 거였는데.] 리오스는 지금의 공용어와는 조금 다른 그러나 분명 공용어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괴상한 동물에게 놀라다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무리 없이 이 괴상한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삶으로써 그는 침착함과 냉철함을 몸에 익혔다. 그래서 그는 놀라자마자 자신이 놀란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이 언어는 그 옛날 고대시대 때 사용했던 언어야. 그러니까 가만 보자. 음…… 그래! 이 언어는 바로 바이얀 대륙의 언어야!’ 리오스는 예전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대언어를 배웠던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그가 눈을 감으며 감탄을 음미하고 있을 때, 에쉬리온이 또 다시 울음을 토했다. 하지만 그의 울음소리를 듣는 리오스는 가슴을 통해 전해지는 바이얀 대륙의 언어를 느낄 수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또 다시 자려고 하는 건가?] 리오스는 가슴을 타고 전해지는 그의 말을 느끼며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아니. 난 자지 않아. 그런데 여긴 어디지? 그리고 넌 어떤 존재기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리오스는 쏜살같이 말을 내뱉은 뒤, 에쉬리온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에쉬리온은 리오스가 자지 않는다고 하자 매우 기뻐하며 그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나는 샤이니스야. 이 이름은 주인이 지어준거야. 그리고 여긴 인간들이 말하는 지옥이고, 이곳은 나와 주인이 살던 집이야. 그리고 나는……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마수라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지옥의 외곽에 사는 마수 따위와는 질적으로부터 달라. 난 마수들의 제왕인 아케이트이며, 아케이트 중에서도 희귀종족인 에쉬리온이야.] 리오스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샤이니스의 말에 정신이 없었다. 그가 샤이니스에게 들은 말 중에서 자신이 아는 사실이라고는 이곳이 지옥이라는 거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철한 두뇌를 소유한 리오스는 샤이니스의 말을 이내 이해했다. “그렇다면 네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은 너의 주인 때문이겠구나. 그런데 그 주인이라는 인간은 어디에 있지?” [주인은 영계에 갔어. 인간들의 말로는 죽었다는 말이 맞을 거야.] 샤이니스는 울음을 토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바이얀 언어로 변환되어 리오스의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마음만은 리오스의 가슴에 전해졌으니 언어를 초월한 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리오스는 숙연해진 분위기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무언가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 “혹시 나를 구한 게 너냐?” 샤이니스는 갑작스런 리오스의 말에 커다란 붉은 눈을 깜박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리오스는 무릎을 꿇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다.” 리오스는 상대가 마수 중의 마수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 리오스의 모습에 샤이니스는 가슴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속에 있는 말을 전했다. [너에게서 주인의 냄새가 났어. 그래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네가 있는 곳까지 달려간 거야. 그리고 죽어가는 너를 볼 수 있었지. 하지만 주인과 같은 종족인 널 죽게 할 수 없었어. 그것은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야.] 리오스는 비로소 자신이 어떻게 구함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세한 이야기를 묻진 않았다. 방법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따스한 눈으로 샤이니스를 바라보았다. 샤이니스 또한 귀여운 눈망울을 굴리며 리오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리오스가 따스한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런데 너의 주인은 어떤 분이셨는지 물어봐도 될까?” 리오스는 생명의 은인인 샤이니스의 주인을 분이라 칭했다. 이에 샤이니스는 기분이 더욱 좋아져 리오스의 무릎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나의 주인은 인간계에 있을 때, 아주 높은 곳에 있었다고 했어. 주인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인간들이 말하는 대왕이나 황제 쯤 되는 자리에 앉아있었을 거야. 어쨌든 주인은 아주 강하고 착한 인간이었어. 나는 주인이 내가 본 처음 인간이었지만 매우 따뜻한 인간이라는 걸 알 수 ……] 리오스는 샤이니스의 말을 들으며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실례인 줄 알면서도 샤이니스의 말 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혹시 그분의 이름이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라 하지 않았어?” 샤이니스는 갑자기 말을 끊은 리오스를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그가 궁금해 하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주인의 이름은 몰라. 주인이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주인에게 관심 있어?] “그래. 만약 너의 주인이 내가 짐작하는 그분이 맞는다면 나는 고고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니, 관심이 없을 리가 없지.” 리오스는 상기된 얼굴로 샤이니스를 보고 있었다. 이에 샤이니스는 왠지 모를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리오스를 향해 던지는 그의 말은 따스함을 담고 있었다. [주인은 말했어. 자신이 죽은 뒤, 자신과 같은 인간이 이곳에 오게 된다면 자신의 안식처로 데려오라고 말이야.] 리오스는 샤이니스의 말에 크게 기뻐했고 감격했다. 그만큼 샤이니스의 말은 고고학자로서 날개를 펼치려던 리오스의 가슴을 세차게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말을 하는 리오스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정말?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두말 할 것도 없이 고마울 따름이지.” 리오스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샤이니스의 얼굴을 적셨다. 그렇게 감동과 기쁨의 공감대를 형성한 두 존재는 서로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감정의 교류를 하던 두 존재 중 샤이니스가 흐름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주인에게 데려다 줄께.] 리오스는 샤이니스의 뒤를 따르며 연신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그렇게 두 존재는 조그만 초가집을 떠나 집 뒤에 있는 산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145화. 삶 그 이상의 것. 5. 샤이니스의 뒤를 따르며 주위를 둘러보는 리오스의 눈은 커다랗게 떠져 있었다. 산과 물은 검은빛을 띠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인간계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숲길을 따라 곧게 뻗어 있는 나무도 여태껏 그가 보아왔던 사나운 마수들의 포장과는 전혀 달랐다. 리오스의 커진 눈에 감격이 차오르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고 감동은 눈물을 불렀다. 샤이니스는 발을 퉁기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타다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찬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눈물은 여러 가지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던가?’ 지옥의 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 외성의 어느 이름 모를 산 역시 그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산의 정상은 오랜만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정상을 오르는 리오스는 이미 마른 눈물이지만 손으로 닦으며 몸과 마음을 정돈했다. 잠시 후, 그는 샤이니스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평상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평상은 보기 드물게 매우 컸는데, 족히 평방 50 라키르(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평상의 가운데에는 돌출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위에 한 노인이 정좌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노인은 머리가 백발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피부도 탱탱하고 탄력이 있어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만인을 굴복시키는 제왕의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 다가서던 리오스는 그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에 다시 한번 더 감탄한 리오스는 고개를 조아린 채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샤이니스는 노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편해 보일 수 없었다. 그러나 평상에 올라서도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리오스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 막히는 위압감과 뼛골을 울리는 강렬한 기세에 기는 무릎이 절로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리오스는 고고학자로서의 사명감을 상기하며 후들거리는 무릎을 누른 상태로 기어가 마침내 노인의 앞에까지 갈 수 있었다. 리오스는 고개를 들어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조각되어 있는 모형과 매우 흡사했다. 이에 리오스는 크게 기뻐했지만 예의를 잃지 않고 고개를 평상에 박으며 절을 했다. 그 순간, 평방 50 라키르(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평상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고 평상에는 전에 없던 글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글들은 의지를 가진 듯, 허공에 떠올라 빙그르르 돌다 절을 하고 있는 리오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러한 괴사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이 일이 끝났을 무렵에는 환한 빛은 제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리오스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머리를 가득 채우자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통증은 그가 이제껏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할 뿐이라 리오스는 웃으며 견뎠다. “으음!” 리오스는 머리에서 뭔가가 팍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참을 수 있는 통증과는 상관없이 그의 의식을 수면의 욕에 빠뜨리는 소리였다. 쿵! 리오스가 바닥으로 쓰러지자 그를 보고 있던 샤이니스가 울음을 토했다. 그런 그의 울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주인에게 예를 다한 인간은 주인의 안배에 의해 나의 주인이 될 것이다.] 언제나 샤이니스와 교감하던 리오스였지만 지금만큼은 그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의식의 끈을 놓고 있으므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사위를 짓누르고 있으나 숨 막히는 압박감은 없었다. 오히려 이곳의 어둠은 심신을 포근하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온 몸을 맡기고 달콤한 잠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들었다. 이에 리오스는 이곳이 지옥이 아닐 거라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보았다. 리오스는 자신을 인도하는 듯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 길은 인간의 언어로 조각된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어의 조각들에서 뿜어지는 빛에 의해 길을 잃을 염려를 덜어주었다. 리오스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소리 없이 생기는 빛의 길이 신기하면서도 호기심이 들어 이 길의 끝을 밟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리오스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리오스는 시간도 잊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걸음을 옮길수록 알 수 없는 충만감에 머리가 뿌듯해지는 느낌을 받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오스가 밟고 간 언어의 조각들은 그의 발이 지나가는 순간 사라지며 리오스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알리 없는 리오스는 뭔가에 홀린 듯, 앞만 보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리오스는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빛의 길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리오스는 밑을 보아도 환한 빛을 뿜어대던 길이 보이지 않자 이곳이 길의 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리오스는 자리에 무릎을 꿇는 것과 동시에 머리를 박으며 인사했다. “저는 올슈레이 리오스라고 합니다. 저를 이곳까지 인도하신 분을 뵙기를 간절히 청하는 바입니다.” 리오스의 인사가 마음에 들었음인가? 무릎 꿇고 머리를 박고 있는 리오스의 앞에 홀연히 무언가가 나타났다. 리오스는 갑작스레 몸을 타고 흐르는 전류에 몸을 떨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머리를 들어 앞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눈이 부셔 곧바로 고개를 박았다. 그러면서도 입을 열어 자신의 궁금증을 풀려는 리오스였다. “호, 혹시 당신이 미얀하이머 폰 드쟈크 대왕님이십니까?” 그러나 광휘로운 빛을 토해내고 있는 인물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에 리오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은 부신데 따갑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리오스는 빛 안에 인물을 볼 수 있었다. 사방에 백색 광채를 뿌리는 인물은 얼마 전에 보았던 노인의 모습과 흡사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눈앞에 있는 인물은 사자의 갈퀴와도 같은 백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기세 또한 노인보다 몇 배나 강렬해 절로 부복하게 만드는 위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리오스는 감탄어린 눈으로 대왕을 바라보다 그 눈빛 또한 몽롱하게 젖어들며 몽환의 세계로 들어갔다. 자욱한 안개가 낀 듯, 사방은 하얀 기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하얀 기체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공간을 부유하며 생명체마냥 움직이고 있었다. 리오스는 꿈의 달콤함에 취한 듯, 몽롱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하얀 기체들이 꿈틀댐과 동시에 그의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본인과 연이 닿은 자여! 내 그대에게 죽음을 이겨내고 지옥의 내역에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그대는 필시 강인한 의지력을 가졌을 것이고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것들을 이겨냈을 것이다. 그래서 내 그대에게 작지만 한 가지 선물을 전하려 한다.] 의지를 가진 듯한 안개들의 움직임이 커질수록 리오스의 머리를 울리는 소리는 또렷해졌다. 그러다 안개들이 숨죽이자 리오스의 머리를 울리는 소리도 자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짧은 고요를 깨며 활발한 몸짓으로 공간을 부유하는 안개들에 의해 리오스는 머리를 울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음미할 수 있었다. [그대는 살기 위해 마기를 받아들였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을 갈아먹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대는 마기에 몸이 잡아먹히는 사태까지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지금 살아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본인은 그대에게 마기의 저주에서 풀려나게 해 줄 것이다. 그와 함께 그대는 엄청난 힘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힘으로 그대가 무엇을 하든 자유다. 본인은 이미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며 이미 인간에게 회의를 느꼈기에 그대가 인간들에게 복수를 한다고 해서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곳 지옥에 떨어졌다면 필시 무슨 곡절을 겪었을 테니 말이다.] 리오스는 머리를 울리는 말을 들으며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고 복받치는 감정에 의해 그의 목울대는 심할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격앙된 감정에 홍수처럼 강렬한 감동의 파도가 엄습해 그의 머리를 세차게 두드림과 동시에 그 여운은 뜨거워진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그대가 걸었던 빛의 길은 내가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지식들이 녹아 만들어진 길이다. 그리고 그대가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그대는 내가 가졌던 지식들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아직은 그대의 것은 아니다. 허나 지금부터 그대는 그 지식들을 하나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그대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리오스는 자신을 감싸는 포근한 안개의 기분을 느끼며 잘게 몸을 떨었다. 오랜 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히 정보의 홍수라 할 만큼 수많은 지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제 내 그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본인은 본인의 길을 떠나겠다. 그럼 본인과 연이 닿은 자여! 그대의 생이 끝날 때까지 그대가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길 바란다. 잠시지만 만나서 반가웠다.] 리오스는 터져버릴 것만 같은 머리의 통증 때문에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다 이내 혼절해버렸다. 그리고 혼절해버린 리오스를 감싸고 있던 안개들이 그의 주위를 빙그르르 돌다 조금씩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리오스는 그도 모르는 사이 고고학자라면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이별을 견디기 위한 잔잔한 여운의 향기가 아닐까? 에쉬리온은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리오스를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리오스를 바라보고 있던 에쉬리온의 붉은 눈가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으음… 여긴……” 깨어난 리오스의 얼굴은 창백한 상태였다. 그는 머리가 띵한지 고개를 흔들며 일어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에쉬리온이 맑은 울음을 토했다. [나의 새로운 주인이 된 걸 축하해!] 리오스는 에쉬리온의 난데없는 말에도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그는 에쉬리온에게서 시선을 돌려 눈앞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을 보는 그의 눈은 절친한 친인을 보는 것처럼 따뜻했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길을 열어주신 것 또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리오스는 노인에게 절을 한 뒤,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리오스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당신의 힘, 저의 영달을 위해 사사로이 쓰지 않겠습니다.” 리오스는 말을 하며 노인의 앞에 앉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무겁게 닫혀 있는 그의 입술이 열렸다. “당신은 저에게 있던 독을 가져가시고 새로운 것을 채워주시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이 주시는 것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리오스는 말을 끝맺으며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의 손은 놀랍게도 노인의 복부를 뚫고 지나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리오스의 팔이 팔뚝까지 박혀있는데도 불구하고 노인의 등 뒤로 나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다른 공간으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리오스는 따뜻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차가운 듯 하면서도 뜨거웠다. 또한 잠잠히 있는 거 같으면서도 광포하게 날뛰었다. 한 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마치 그의 동생 진처럼. 처음 그것은 리오스의 손길이 닿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그러나 점차 리오스의 손길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쓰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리오스는 그것들과 친해질수록 자신의 텅 빈 단전을 채워주는 순수한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감당키 힘든 속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고 쾌감이었다. 에쉬리온은 리오스에게서 주인과 닮아가는 기세를 느꼈다.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쉬지 않고 울음을 토했다. 지옥의 하늘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리오스에게서 뿜어져 올라오는 오로라는 그 어둠마저 물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146화. 진 검을 얻다. 1. 제국의 황제가 붕어하셨다. 그러나 황제의 죽음에 진심으로 울어줄 이 몇이나 될 것인가? 그것이 거짓 울음이라도 나오기만 했다면 황제의 삶은 값어치가 있었을 것이다. 허나 누구 하나 우는 이가 없다. 중년인이 다 되어 황제가 된 프치아이오 론 제르디스의 눈 역시 조금도 젖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황제는 가고 다음 황제가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프치아이오 론 제르디스는 젊었을 적에는 호쾌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즐겨했다. 허나 황태자의 자리에 너무나 오래 있게 되자 점차 성격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게스헤이 드 렌드린탈과 가까워지면서 그 성격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그가 황제가 되면서 터졌다. 제국의 주변에는 다섯 개의 왕국이 있다. 동의 샤킨트 왕국, 서의 카리아 왕국, 남의 만트 왕국, 북의 주르단 왕국, 그리고 사막의 나라 차칸타 왕국. 이렇게 다섯 개의 왕국은 제국에 복속하는 관계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선황이 일으킨 카리아 왕국과의 전쟁으로 그 평화가 깨졌다. 그리고 지금 프치아이오 론 제르디스가 게스헤이 드 렌드린탈의 속삼임에 빠져 남의 만트 왕국을 침공했다. 이로써 제국은 동시에 두 왕국과의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황제는 피곤한 듯, 침대에 누워 집무를 보고 있었다. 그 앞에 렌드린탈 공작이 고개를 조아리며 뭔가를 보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숙여진 그의 얼굴 사이로 사이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현재 서의 카리아 왕국과의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계획한 대로 남는 병력을 북의 주르단 왕국을 치십시오. 초대 제국 시대 이후, 제국이라고 불리나 진정한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 대업을 주군께서 이루셔야 할 때입니다.” 렌드린탈 공작은 황제에게 주군이라는 말을 은연중에 강조하며 자신의 충성심을 알렸다. 허나 이미 황제의 눈은 총명을 잃어버렸고 만사가 귀찮은 지 렌드린탈 공작의 열변에도 그저 손을 저으며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럼 신, 주군의 뜻을 받들어 이행하겠습니다.” 렌드린탈 공작은 뒷걸음으로 물러나 황제의 거처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크하하하, 일이 계획한 대로 돌아가는 구나!” “예, 그렇습니다.” 대소를 터트린 사내 앞에 렌드린탈 공작이 예를 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런데 은발인지 회색인지 모호한 머릿칼을 가진 사내 앞에 있는 렌드린탈 공작의 눈은 초점이 풀려 있어 마치 생명 없는 인형을 보는 듯했다. “크크크, 그래그래. 걱정이었던 데이릭이 자신의 거처에 박혀 나오지 않으니 우리의 계획을 방해할 이는 이제 없다. 자! 세상을 혼란에 빠뜨려라! 우리의 진정한 주군인 해키에스 지로브님께서 나오실 그날까지 세상은 혼란에 빠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주군은 하얀 로브를 입고 세상을 구원할 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크큭, 크하하하.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니겠느냐! 크하하하!” 렌드린탈 공작의 집무처에서 터져 나오는 광소에는 한이 맺혀 있었다. 가히 성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높다란 담벼락을 가지고 있는 장원이 그 웅장함을 드러내어 만인을 굽어보는 듯하다. 게다가 이 장원이 얼마나 넓은지 그 담벼락만 해도 족히 수십 수키르(킬로미터)에 이르러 이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장원의 모든 지리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장원은 수천이 넘는 전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장원의 심처에 있는 단아한 전각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제국새끼를 그냥 놓아주는 게 아니었어. 화룡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와!” 비단결 같이 고운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자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험한 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 중, 눈 꼬리부분이 미미하게 올라가 있어 그녀의 성깔이 보통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매력적인 입술은 오만하게 말려 올라가 있어 그녀가 권세를 부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런 그녀의 부름이라 그랬을까? 화려하게 조각된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하린 아가씨!” 화룡은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어딘가 정돈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학자로 오인할 용모지만 사실 그는 수주아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하린의 앞에 조금은 불안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하린은 화룡의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화룡에겐 사악한 미소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가능하다면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허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 그것을 알기에 화룡은 그녀가 모시는 하린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화룡은 여러 경험으로 미루어 하린이 이렇게 물어봐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중간에 말끝을 흐렸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린이 말했다. “당연히 일이 있으니까, 부른 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고. 며칠 전에 그 거멓지도, 파랗지도 않은 머리칼을 가진 제국새끼 기억나?”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 자는 왜?” 화룡은 그녀와의 대화에서 습관처럼 굳어진 질문을 던지는 화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완숙의 경지에 이른 화룡의 입심에 하린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기는 당연한 거 아니겠어? 나의 기분을 불쾌하게 했으니.” “아, 그렇군요. 그럼 잡아 올까요?” 화룡은 하린의 눈치를 한번 살핀 뒤, 업무용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원하는 물음을 던졌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속도로 수명을 깎아먹는 일이다. 허나 하린의 호위무사 7년차인 화룡은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터득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마음속에서 잘근잘근 씹기! ‘젠장. 자신 앞에서 거지가 밥을 얻어먹는다고,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면서. 뭐? 오일이나 지난 일가지고 다시 잡아오라고? 하여튼, 이 아가씨의 머릿속은 뭐가 들었는지. 얼굴이 아무리 예쁘면 뭐 하나. 성격이 지랄 같으니. 그러니 아직까지 들어오는 혼사가 없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따지면 성격이 비단결 같이 고운 하연 아가씨가 백배 낫지. 뭐, 성격만 따지면 말이지…….’ 화룡이 기분 좋게 마음속에다가 화풀이를 하고 있을 때, 하린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역시 화룡만큼 내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니까. 그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내가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그자를 꼭 내 앞에 데려와야 해! 내가 직접 그 자의 죄를 벌 할 테니 말이야. 호호호!” 하린은 작고 가녀린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모습은 분명 매력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화룡에게는 가진 자의 역겹고 추악한 웃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속마음을 다 표현할 만큼 화룡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기에 예를 다한 인사를 마치고 전각을 빠져나왔다. 얼마 후, 천무장원에서 일단의 무사들이 빠져나갔다. 청명한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들이 부서져 기분 좋은 눈부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다시피 산을 타고 있는 괴인은 이러한 자연의 축복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늘 한번 보지 않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괴인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은 듯, 얼굴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입가에는 마른 피가 딱지처럼 붙어있어 절로 연민의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괴인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한 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걸음조차 불편해 보이는데도 그는 끈질기게 산을 타기만 했다. 산에 숨겨놓은 귀중한 보물이라도 찾는 듯한 맹목적인 모습이 그에게서 엿보였다. 그러나 괴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걷고만 있기에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괴인은 산의 정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냇가에서 올라온 수증기들이 만들어놓은 안개 속으로 그는 사라지고 있었다. 귓가를 울리는 리듬감 있는 소리는 소로를 따라 흐르는 냇가의 물소리다. 그리고 그 소로는 기이하게도 원을 그리듯이 나 있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괴인은 오랫동안 머리 한번 감지 않은 듯 회백색의 잔 비늘이 머리칼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러한 그가 서 있는 곳은 충만한 생기를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는 커다란 나무 앞이었다. 청녹색 잎들이 가지가지마다 붙어 있어 싱그러움과 함께 답답한 폐부를 시원하게 뚫어줄 것만 같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신령함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나무에서는 신령한 기운과는 미묘하게 다른 요사스런 기운이 흘러나왔다. 요사스런 기운, 즉 요기는 나무의 두꺼운 몸통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짙은 갈색빛이 유난히 듬직한 몸통은 외형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기이할 정도로 끈적끈적한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괴인은 멍한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걸음을 옮겨 나무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괴인은 힘겨운 동작으로 손을 올렸다. 잠시 후, 괴인의 손은 두꺼운 몸통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지를 상실해, 광기와도 같은 맹목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 있던 괴인의 눈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켰다. 혼잡하고 탁했던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그 안에는 따사롭고 맑은 기운으로 채워져 깊고도 그윽한 눈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런 괴인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커다랗던 나무는 반대로 싱그러운 잎들을 잃어버리고 자유롭게 펼쳐진 가지들이 힘을 잃고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괴인과 나무의 변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무의 두꺼운 몸통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진은 오랜 시간의 벽을 깨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47화. 진 검을 얻다. 2. 진은 꿈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사람처럼 조금은 멍한 상태였다. 그런 그가 정신을 차리며 가장 먼저 떠오른 영상은 멀어져가는 사부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 사부님의 얼굴은 울상이었지. 크크, 언제나 근엄하면서도 친근한 그 분이 울상을 짓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는 것이겠지? 그런데 사부님은 무사하셨을까? 훗, 이미 죽은 자가 산자를 걱정한다는 것도 웃기군.’ 진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샤넬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샤넬리… 만약 사부님과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갔다면 그녀는 소생했겠지.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진 가봐. 대신 내생에 연이 된다면 그때는 조금은 다른 연을 엮어나갔으면 해.’ 진이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어느 순간, 그는 몇 가지 이상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죽어서도 머리칼은 기는 건가? 죽어서도 통증을 느낄 수 있는가? 온 몸을 짓누르는 이 무지막지한 압력은 또 무엇인가?’ 진은 눈앞을 다 가리는 머리칼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는 쿡쿡 쑤시는 통증과 몸을 짓누르는 압력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든 진은 신기한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호오! 죽어도 머리는 기는 구나? 그리고 이 무지막지한 압력과 쿡쿡 쑤시는 통증으로 죽은 자를 괴롭히는 곳. 허억! 내가 지옥에 온 건가?’ 순간 진의 전신에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그러나 온 몸을 엄습했던 소름은 돋는 순간 사라졌다. “에이, 지옥에 빛이 있을 리가 없잖아. 어, 어라? 빛… 나무… 물… 흙… 바람… 하늘…… 왜 이것들이 여기에 있지?” 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죽었기에 자신이 살던 인간계와는 다른 곳, 지옥이나 천국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은 자신이 살았던 인간계와 너무도 흡사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허나 그러한 기대감은 세찬 부정의 고개 짓으로 이내 가라앉아버려 뚱한 표정을 짓기에 이르렀다. [나의 친구, 나의 주인이여!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을 축하해.] “으잉?” 진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움찔거렸다. 그러나 재차 들려오는 소리에 안도와 함께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의문은 엘뤼시온의 차근한 설명에 의해 저절로 풀렸다. [나는 너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너의 생각을 곧바로 읽을 수 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넌 죽지 않았어!] 뒤이어 엘뤼시온은 진이 어떻게 해서 살아났으며 그의 현재 몸 상태나 근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진은 엘뤼시온의 설명을 들으며 처음에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엘뤼시온의 설명을 중간에 끊지 않았다. 엘뤼시온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진은 감회가 새로운 듯,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내가 살아있단 말인가? 그런데 엘뤼시온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랜 시간동안 나는 내가 아닌 상태로 살아왔단 말인데…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진은 자신의 비참한 몰골이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아 얼추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인, 자신의 이성이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진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은 불안감을 감싸고 있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엘뤼시온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긴 시간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어, 엘뤼시온?” 진이 머뭇거림 끝에 물었으나 엘뤼시온은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대신 엘뤼시온은 진에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했다. [그 이야기는 틈틈이 해줄 수 있으니 우선 중력의 술과 너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검에 대한 것부터 해결해야 할 거야.] “으음… 알았어. 대신 꼭 이야기 해줘야 해.” 진은 보이지도 않는 엘뤼시온에게 주먹까지 쥐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몸에 걸려있는 중력의 술에 관한 것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음… 아까 느끼기로는 대략 10G(150kg)가 좀 넘는 거 같았는데, 지금 보니 20G(300kg)가 넘는 거 같아. 엘뤼시온에게 말은 들었지만, 정말 내 몸에 걸려 있는 중력의 술이 정령이 되어 버린 건가? 그것도 내가 요정의 가루 때문에 반인반령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고?’ 진은 이미 자신의 의지에 의해 해제되지 않는 중력의 술을 느끼며 엘뤼시온이 말해준대로 정령이 되어 버린 중력의 술에 의념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의 몸에서 정령이 되어 버린 중력의 술이여! 만약 그대가 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공급되는 마나를 끊어버릴 것이다.] 진은 엘뤼시온의 말대로 강하게 나갔다. 이는 요정의 가루에 의해 정령이 되어 버려 기고만장해 있는 중력의 술을 손쉽게 다루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급한 음성이 진의 마음에 전달되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진은 조금은 치기어린 음성에 은근슬쩍 미소를 지으며 의념을 전달했다. [길게 말할 필요 없이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몇몇 정령을 제외하고 정령이 계약자도 없이 인간계에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는 그대와 계약을 맺자는 겁니다.] 정령이 되어 버린 중력의 술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실상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중력의 술은 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사실 당신과 저 사이는 이미 계약이 필요 없는 관계입니다. 절차라 한다면 제가 만든 의지의 벽만 허물면 됩니다.] 중력의 술은 의념을 전달하며 의지의 벽을 허물었다. 이에 진은 머리 속을 감도는 청량함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진이 중력의 술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당신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이름을 지으려 하는데 원하는 이름이라도 있습니까?] [이름말입니까? 음… 그렇다면 루스카가 좋을 거 같습니다.] [루스카라… 알겠습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루스카입니다. 그런데 루스카는 현신을 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스카의 말에 진은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신하라고 의념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의 뜻을 받들어 루스카가 진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루스카의 키는 181 키르에 이르는 진과 비슷했다. 거기다 훤칠한 미남형에 깔끔한 턱시도를 입고 있어 여자들의 가슴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터져 나와 그가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루스카를 진이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루스카는 동물 보듯 쳐다보는 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의 허둥대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진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아, 이제 얼굴도 봤으니 말을 놓을 거야. 솔직히 나한테는 그런 촌티 나는 말투는 어울리지 않거든.” 루스카는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루스카의 마음이 의념이 되어 진에게로 전달되었다. 현신을 하여도 정령은 대기를 통해 말을 전달할 순 없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 그런데 너는 본래 중력의 술이었다가 정령이 되었잖아. 그렇다면 다른 중력의 정령들과는 다른 거야?” [다르진 않습니다. 본래 정령이라는 존재는 성장하는 존재기 때문에, 처음 시작이야 어떻든지 간에 성장만 하면 다른 정령들과 다를 일은 없을 겁니다.] 진은 루스카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가슴 속에다 흘렸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술법이 정령이 되는 것 자체가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에 정령이 되어 버린 루스카 역시 불안정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진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임이 판명되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질문으로 바뀌어 루스카에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본래 너의 본체라 할 수 있는 비쇼레이와 너, 둘 중에 누가 더 강해?” [음… 아마도 제가 더 강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령들이 그러하듯 현신해서 전투를 하지 않기에 저희 정령들끼리 직접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런데 너는 정령이 된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루스카는 순간 당혹스러워졌다. 자신의 주인은 짓궂은 질문을 하는 게 취미인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할 의무가 있는 종속된 존재였다. [지금은 루스카라는 정령이 되었지만 본래는 비쇼레이님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대기의 분포되어 있는 마나이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해 술을 이루는 기운자체에 정령들의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대기에 퍼져 있는 마나들은 수많은 정령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기억들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식의 표면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술을 이루는 기운들 즉 마나의 대부분은 그것들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저는 매우 특이한 경우란 말이죠.] “아, 알겠어. 뭐… 그건 그렇다고 쳐. 그리고 다음부터 내가 의지를 보내면 네가 알아서 내 몸에 걸려있는 중력을 조절해. 알겠지?” 루스카는 주인의 황당한 말에도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래, 근데 네가 현신함으로써 내 몸에서 급격히 마나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예? 무슨 말씀이신지…] 루스카는 진의 심중을 파악하지 못해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는 진의 차가운 비수와도 같은 말에 상처를 입고 처량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진짜 말귀 못 알아먹네. 들어가라고. 몰라? 들어가 있으라고.” 루스카가 사라지자 진이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루스카를 향해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야, 중력을 10G(150kg)로 낮춰.] [알겠습니다. 주인님] 루스카의 대답과 함께 진의 몸에 걸려있는 중력이 낮아졌다. 이에 진은 족쇄에서 풀려난 죄수처럼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10G(150kg)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는 진이였다. 진은 하늘을 비상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분 좋은 상상도 엘뤼시온의 채근에 수십 수키르 밖으로 사라졌다. 진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혈액 안에 검이 들어와 있다고 했었지? 그리고 나는 이 검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던가? 허, 참.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고작 검을 찾기 위해 나는 그 긴 시간을 버렸단 말이잖아. 그래. 얼마나 대단한 검인지 한번 보자.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대신할 만한 검인지 봐야겠어.’ 진은 엘뤼시온이 말했던 ‘의념을 보내면 검이 나타날 것이다.’란 말에 따라 의념을 보냈다. 그리고 의념을 보내는 순간 그의 오른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잡혀있었다. “으잉?” 너무도 간단한 절차에 어이가 없는 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관심이 가기도 했다. 진은 손 안에 잡혀있는 검의 손잡이의 감촉만 아니라면 검을 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너무도 가볍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는 검에서 뿜어지는 은은한 빛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놀랐다는 감정이 무색하게 금세 진정되는 것이다. 이에 그는 진지한 마음으로 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검은 예전에 그가 사용했던 예도와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검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드래고니아?” 진은 처음 보는 문자임에도 자연스럽게 읽어내는 자신의 모습에 또 한번 놀랬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져 한편으로 당황스럽기도 했다. 진은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해 보았다. 그런데 검은 어느 순간 자신이 휘두르려고 했던 위치에 가 있었다. 그것은 파공성도 없었고 궤적도 없었다. 마치 공간을 이동하고 나타나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순간 진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너무도 내 마음을 잘 아는 검이다. 내가 움직이려는 곳에 스스로 가버린다. 더구나 작은 힘에도 내가 낼 수 있는 속도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다니. 이것은 마검이다!’ 진은 어느 정도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검의 위력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엘뤼시온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보전송이 갑자기 중단된 충격에 순간적으로 이지를 상실하게 된 네가 왜 이 검을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많은 정보들 중 이곳의 정보가 가장 중요하고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만큼 너의 몸속에 있는 검은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엘뤼시온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이 검은 예사로운 검이 아니었다. 이제껏 나왔던 명검들은 이 검으로 인해 평가절하를 당해야만 했다. 드래고니아라는 검은 검과 그 검의 소유주의 정신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생명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자신의 본능은 이 검에는 이것 말고도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은 말도 잊고 생각도 잊고 그저 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바라만 보고 있던 진이 한숨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아직은 내게 이 검은 너무도 위험한 물건이야. 그러나 내가 이 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진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그는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돌아가라!” 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의 손에 작은 글씨로 드래고니아라는 고대문자가 새겨졌다. 진은 말없이 손에 새겨진 문자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어느새 그의 몸은 천천히 옮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서. 진은 냇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렇게 흥분되는 가슴을 누르며 걷던 진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허억! 이, 이게 누구야?” 진은 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혼비백산했다. 처음에 그는 냇물에 비친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순간 엘뤼시온에게 잃어버렸던 시간들에 대해 물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심각히 하는 진이었다. “하아, 저게 나란 말이지. 후우, 이 모습으로 나갔다간 괴물취급 받을게 뻔해. 산을 내려가는 거 보다 이게 더 시급한 문제일 줄이야. 나 원 참.” 진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옷이라고 걸치고 있는 이것은 말이 옷이지 이미 넝마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더러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저기 찢어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서 진은 시원한 냇물에 몸을 씻으면서 내려가면 옷이라도 한 벌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돈 한 푼 없잖아. 에휴, 결국 나의 잃어버린 시간은 거렁뱅이의 시간이었던 건가?’ 진은 수중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을 수도 있고 없다가도 생길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진은 참으로 낙천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수욕을 다 마친 진은 비록 넝마 중에 최상의 넝마가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유일한 옷을 빨기 시작했다. 넝마는 자신의 몸처럼 몇 번 씻는다고 해서 깨끗해지지 않았다. 이에 절로 실소가 입가에 맺혔다. 하지만 그는 이왕지사 ‘조금이라도 인간다워지자.’고 마음먹었기에 씻은 거를 빨고 또 빨았다. 진은 평평한 바위위에 그의 옷과 함께 누워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로 소독도 할 겸 옷도 말릴 겸해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간만에 포근한 햇살을 음미하던 진은 훌쩍 커버린 자신의 몸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시간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너무도 정확히 흘러가는 구나.’ 그는 그답지 않게 조금은 사색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사색 아닌 사색에 빠져있던 진은 그도 모르는 새 잠이 들어버렸다. 따사로운 햇살을 비추던 태양도 산 아래로 숨어버리고 교교한 달빛을 비춰주는 밤이 왔다. 그렇게 잃어버린 2년여의 세월을 보상받기 위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으음…” 진은 얼굴을 적시는 가는 빗방울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후, 진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들을 손으로 만졌다. 물로 화한 비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비를 맞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 진은 감성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픽하며 웃었으나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기분 좋은 비라 하여도 누워서 맞기에는 꿉꿉했던 것이다. 진은 문득 비를 맞으며 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모든 것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진은 루스카에게 몸에 걸려있는 모든 중력을 해제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 그는 곧 몸의 무게감을 느끼지 못해 당혹감과 함께 감당키 힘든 기쁨을 느꼈다. ‘잃어버린 시간이 그렇게까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진은 자신이 얼마나 빨라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그가 이제껏 신경 쓰지 않았던 단전에 있는 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땅을 박차게 하였다. 진의 몸은 공중을 날고 있었다. 아니 대기를 뚫고 날아가고 있다는 말이 정확하리라. 진은 땅을 박차는 순간 자신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것에 경악했다. 그리고 그의 경악은 한번의 도약이 근 60 라키르를 날아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이르렀을 때, 경악은 황당함을 넘어 두려움까지 낳게 만들었다. 진은 뒤를 돌아보며 소름이 돋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뭐야, 이건? 내가 지금 이만큼이나 날았다는 말이야?” 너무도 황당해 자신조차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 이 상황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내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거지? 아무리 몸이 가벼워지고 빨라졌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어!’ 진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에게 대답해줄 의무도 이유도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차가운 빗방울들이 진의 전신을 쉬 임없이 때리자 진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진은 생각을 정리한 후, 차분하게 자신의 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기껏 가다듬었던 마음이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렸다. ‘단전에 있는 기가, 정말 나의 단전에 있는 기인가?’ 자신조차 믿기지 않는 이 상황에 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게 다였다. 그러나 이 자문자체가 본래부터 정해진 답을 가지고 한 물음이었기에, 그 행위자체에서 얻 을 수 있는 것이라곤 감당키 힘든 진실에 의해 놀란 정신을 진정시키는 것뿐이었다. 바닥을 때리는 소리와 냇물과 부딪히며 일으키는 소리는 잠시간의 공황상태에 빠진 진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그것은 진이 어느 정도 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우! 내 단전에 모여 있는 기가 1 루시를 훨씬 상회하다니. 이건 세 번째 쿤인 쥬므를 열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긴데, 내가 쥬므를 열었단 말인가? 내가, 내가 아니었던 그 시간동안에 말이야! 알 수가 없어.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하아, 분명 내게 좋은 일이긴 하다마는 왠지 찜찜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진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깨달음의 쿤인 샤오를 열었을 때, 얻었던 깨달음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의 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진의 수준으로는 커다란 그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기다 무의식중에서도 행한 기수련은 쥬므를 여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단전을 가득 채우는 기와 깨달음은 도리어 그에게 화가 되었고 그것이 그를 붕괴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다. 그 절대 절명의 순간 그를 살린 것은 엘뤼시온과 우리피였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인해 그는 쥬므를 연 것이고. 이를 알리 없는 진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꼬르륵! 진이 나름대로 분위기를 잡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몸은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식(食)의 욕구의 갈급함을 말하고 있었다. 이에 진은 멋쩍어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아, 이놈의 몸은 하여튼 주인이 진지한 척만 하면 이렇게 초를 친다니까!’ 진은 분위기 파악 못하는 몸을 속으로 욕하며 먹을 것을 찾아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지 진의 몸놀림은 많이 어색했다. 아마도 변화된 자신의 몸에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148화. 한 쟈크 대륙. 1. 파아앗! 발을 구를 때마다 팍 하며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저만치 떨어진 곳에 나타나는 진의 모습은 마치 순간이동을 보는 듯했다. 그런 진의 어깨에는 200kg이 넘어 보이는 멧돼지 두 마리가 걸쳐져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 정도 무게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가히 광란의 질주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속도로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깊은 계곡을 빠져 나온 진이 당황한 눈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저, 저 사람. 머리색깔이…’ 진은 처음 보는 머리색깔에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진을 보는 사람 역시 느끼는 감정이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검은 머리의 중년인이 뭐라 뭐라 말했다. 하지만 진은 그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그는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스트 언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 안녕…해. 난 진이다.” 진은 자기 딴에는 예의를 다해 말했으나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칠공은 무례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진을 살펴보던 칠공의 눈이 빛을 발했다. “이곳 사람이 아닌 거 같군. 말이 상당히 어색한 거 보면. 어쨌든 난 칠공이라고 하네. 그런데 자네는 무인인가?” 칠공은 진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진은 칠공의 물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진이다. 그런데 여긴 어딘가?” 여전히 반말로 이야기하는 진이었다. 하지만 칠공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그것보다 그는 이 이방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여긴 한 쟈크 대륙을 지탱하는 일곱 기둥 중, 한 기둥인 천무장원이 있는 한진성이라네. 그런데 자네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가? 보아하니 라크리나 제국 사람인 거 같은데.” “한 자크 대륙? 여기가 혹시 이스트란 말인가? 이럴 수가!” 진은 여전히 칠공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는 진이 칠공의 말에서 자신이 아는 단어들만 조합해 나름대로 해석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한 칠공은 쓴웃음을 지으며 진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래. 여기가 너희 제국인들이 말하는 이스트라는 곳이지. 후우, 물어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 같고. 응? 근데 그건 뭔가?” 칠공이 진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멧돼지를 보며 놀라 물었다. 그러나 진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칠공이 진의 어깨 위를 가리키며 말하자 진이 ‘아!’하며 말했다. “이건 멧돼지다. 나 돈이 없어서, 이걸로 돈을 마련해야 한다.” “음… 자네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걸 팔려고 하나?” 칠공이 물었으나 진은 다크 블루빛 눈을 껌뻑이며 멍하니 바라 볼 뿐이다. 이에 칠공은 한숨만 나왔다. “휴우, 자네 나 같이 좋은 사람 만난 것을 감사해야 할 거야. 근데 어느 정도 말은 할 줄 아는 거 같은데 듣는 건 잘 못하는군. 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에구, 내 신세야.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우리 아버지 성품을 닮은 내 업보라 생각해야지. 누굴 탓하겠나.” 칠공은 진을 앞에 두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래봐야 진이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하기야 칠공 역시 진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칠공이 진에게 다가가 한 마디 했다. 이것은 진도 아는 단어였다. “날 따라오게.” “고맙다.” 진은 칠공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의 옆에서 걸음을 옮겼다. 어깨에는 커다란 멧돼지 두 마리를 메고선 말이다. 한진성은 한 쟈크 대륙에서 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칠성 중 한곳이다. 그만큼 한진성은 거대했다. 쉽게 말해 제국의 십대 도시보다도 더 컸다. 그리고 이곳 한진성은 천무장원이라는 철옹성의 지배 아래 돌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한진성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천무장원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것이다. 처음 진과 칠공이 한진성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신기한 눈으로 진과 그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멧돼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한진성 전역으로 퍼져나가 진이 오기도 전에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것이 처음엔 화가 나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러한 시선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점가를 지나던 칠공이 돌연 진을 데리고 한진성의 외곽에 있는 어느 상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옵쇼. 응? 칠공 아저씨네. 에이, 난 또 손님인 줄 알았네.” 작은 실눈에 둥근 얼굴을 한 청년이 칠공과 진이 들어오자 인사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칠공을 알아보며 손을 내젓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를 본 칠공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여튼, 수철이 네 녀석은 그래서 안돼. 네 눈에는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장식물로 보이냐?” 칠공에게 면박을 받은 수철은 그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안색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진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들이 모여 있는 만물상입니다. 그러니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시면 지체 말고 말해주세요. 즉각 대령할 테니까요.” 오랜 점원생활로 만들어진 수철의 웃음은 분명 호감이 가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수철을 바라보는 칠공은 분명 혀를 차고 있었다. “하여튼 그래서 너는 안돼!” “또 뭐요?” 수철은 또 다시 칠공이 뭐라 말하려 하자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눈 없는 핀잔뿐이었다. “뭐요? 이놈 보게. 어른한테 말하는 거 보게. 하여튼 넌 이래서 안돼. 네 눈에는 저 멧돼지가 장식품으로 보이냐?” “멧돼지가 어디… 허억!” 수철은 진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산만한 멧돼지에 놀라 뒤로 물러서다 엉덩방아를 찍었다. 이를 본 칠공이 낄낄거리며 좋아하자 벌게진 얼굴을 한 수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렬한 째림을 보냈다. 이에 칠공이 헛기침을 토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허공을 배회하는 칠공의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진은 칠공과 걸어오면서 한 쟈크 대륙의 언어로 대화하는 데 많이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칠공과 수철의 대화의 3분지 2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과 칠공이 웃는 것을 본 수철은 이 자리에 더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중팔이 아저씨! 손님 왔어요.” “네놈이 알아서 처리해. 나 바빠!” 수철이 애타게 불렀건만 안에 있는 중팔은 바쁘다는 핑계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굴할 수철이 아니었다. “우씨. 아저씨! 누가 산만한 멧돼지 팔러왔는데 내 맘대로 살 거예요. 너무 많이 줬다고 뒤에서 뭐라 하지 마세요. 흥!” “뭐야!” 중팔은 수철의 도발에 응하듯 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화난 음성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이는 허둥대는 모습과는 극적대치를 이루어 진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진을 살펴보는 중팔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장난 끼로 가득했다. 그러며 뭔가를 기대하는 듯이 습관적으로 염소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중팔이 수철을 향해 말했다. 그와 동시에 칠공은 중팔의 전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두고 보자.” [네 말대로 보통 실력은 아닌 거 같군. 흐흐흐, 역시 너는 내 심심한 말년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칠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팔에게 말했다. 그러나 중팔은 그의 말보다는 그가 보내는 전음이 더 구미가 당겼다. “중팔이, 이 멧돼지 사게. 이 친구가 급히 돈을 구하거든.” [사부님 취미를 이곳 한진성 사람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자는 비록 겨뤄보진 않았지만 황화광의 고수인 거 같습니다.] 중팔은 칠공의 말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수철을 바라보며 말했고 칠공은 중팔의 전음을 들을 수 있었다. “수철아, 은전 10냥 줘라.” [그렇게 보이는 군. 제국인의 방문과 그가 황화광의 고수라는 게 내 구미에 딱이야.] 수철은 중팔의 말대로 은전 10냥을 진에게 건넸다. 은전 10냥이면 이곳 한 쟈크 대륙 사람들이 한달은 살 수 있는 돈이기에 큰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진이 잡아온 멧돼지가 상당히 비싼 값에 팔릴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사는 이윤이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은 수철이 전해주는 은전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중팔이 진에게 물었다. “제국 사람인 거 같은데,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응. 그런데 나도 잘 몰라. 어떻게 오다 보니까.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어.” 진은 중팔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기에 반말이나마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중팔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칠공의 표정이 야릇해지며 짧은 순간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사부님 이 자는 우리말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존댓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자가 어느 정도 우리말을 알고 있기에, 대화가 가능하다는 거 정도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중팔이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는 깊고도 심유한 눈으로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가? 믿지 못할 이야기군. 하지만 자네의 눈은 진실을 말하는 듯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군.”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중팔은 수철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힐끔 보면서 진에게 말했다. “뭔가?” 진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했는지 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곳은 당신들처럼 고수들만 있는 곳인가?” “뭐?” 중팔은 못들은 듯 되물었지만 진의 눈빛은 무언의 재촉이 되어 그의 대답을 구하고 있었다. 잠시 후, 중팔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어떻게 나와 칠공이 고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진은 중팔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엘뤼시온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 다, 나보다 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기를 숨긴다 하여도 정령인 엘뤼시온을 속일 수는 없는 법! 그렇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해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저들에게서 악의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말이야.’ 생각을 정리한 진이 입을 열었다.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감이다. 상대가 고수라는. 그런 감이 왔다.” 진은 자신의 어설픈 변명에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믿는 듯했다. 사실 진과 두 사람 정도의 고수들이 오른 경지는 그야말로 감이라는 육감 말고는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특히 칠공과 중팔 같이 자신의 기를 숨기는 경우에는 더욱 알기 힘든 것이다. 칠공은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중팔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음을 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있어 더욱 좋다고 생각했다. “뭐,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네. 그런데 나이도 얼마 되지 않는데 벌써 황화광에 올랐다니. 놀랍군. 사부가 누구인가?” 진은 자신의 변명이 통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다 자신의 사부를 묻자 가슴이 찡해졌다. 사부는 자신이 죽을 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하는 걱정이 진의 가슴을 메여와 한달음에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는 한 쟈크 대륙이었다. 그렇다 보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현실이 진을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중팔은 진이 갑자기 침울해지자 흠칫했다. 그래서 자신이 이 젊은 청년의 아픈 부분을 건드 렸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허나 본디 자신의 관심 밖의 일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성격답게 또 다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물음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진의 입이 한발 먼저 열렸다. “에리필. 팔로우 에리필이 나의 사부다. 아니 데헤미그 에리필이라고 해야겠지.” 중팔과 칠공은 순간 흠칫 놀랬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대소를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칠공이 중팔의 옆으로 다가와 진을 바라보는 형태로 섰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진이 성난 외침을 토했다. “왜 비웃지? 나의 사부의 이름이 그렇게도 우스운가? 아무리 나보다 강하다 해도 나의 사부를 욕하는 자는 용서하지 못한다.” 진이 살기를 피우며 말하자 주위는 싸늘한 한기로 차갑게 굳어갔다. 이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중팔이었다. ‘호오, 이놈 보게. 제법 살기다운 살기를 뿌릴 줄 아는구먼. 사선을 넘나들며 얻은 살기가 분명한데 저놈의 과거가 궁금해지는군. 근데, 큭큭 저 놈은 자신의 사부와 나의 관계를 모르 나 보지? 크크, 하기야 안다면 대번에 칼부터 휘둘렀을 테지.’ 중팔은 진의 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사고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칠공은 조금은 굳은 신색으로 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진과 칠공은 서로를 노려보는 상태로 살기와 투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치 상태는 중팔의 간단한 손짓에 의해 허물어졌다. “흠!” “음!” 진은 네 발짝 칠공은 한 발짝 물러섰다. 이를 본 중팔의 눈에 기광이 스쳐 지나갔다. ‘호오, 사부보다 제자가 훨 낫구먼. 그 당시 그 녀석들은 이 녀석만큼은 못되었지.’ 중팔은 진과 에리필들을 잠시 비교하다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진을 보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사부를 욕한 게 아니다. 단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떠올라 웃었던 거다. 내가 왜 모르는 사람을 비웃겠느냐? 그럴 이유가 전혀 없잖느냐.” 중팔의 말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진은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아까 전, 자신과 칠공의 대치 상태를 한 순간에 허물어뜨린 중팔의 능력에 진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진은 속에서 불만이 올라왔지만 그것을 억누르며 침착히 말했다. “알겠다. 비웃은 거 아니란 거 믿어주겠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내 사부를 욕되는 행동은 용서치 않겠다. 그것이 설령 너라도!” 진의 손끝은 중팔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에 픽하고 웃는 중팔이었다. 그것보다 중팔은 진을 데리고 놀고 싶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장난감은 그의 흥미를 충분히 끌고 있었다. 진의 사부들인 에리필과 헌트, 그리고 카이슨보다도 말이다. 중팔이 이 맹랑한 진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상점 앞에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무리의 리더인 듯한 사내가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화룡이었다. “이렇게 쉽게 찾다니. 운이 좋군.” 진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 줄 모르고 화룡의 말을 무시했다. 중팔과 칠공은 나타난 인물들이 천무장원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더구나 그들이 찾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진이라는 제국인인데… 그들의 태도로 보아 좋은 뜻으로 찾아 온 것은 아닌 듯했다. 이에 한숨을 쉬며 혀를 차는 두 노인이었다. 화룡은 자신을 무시하는 제국인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진이 하린에게 당할 것이 불쌍해 진의 무례함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번처럼 패지 않을 테니, 순순히 따라 오너라.” 진과 중팔, 그리고 칠공은 화룡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화룡은 진의 표정이 겁을 먹은 것으로 오인하여 다시 한번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뒤를 향해 간단히 말했다. “이자를 포박하라.” “알겠습니다.” 십여 명의 황색 무복을 입은 무사들 중 화룡의 명에 의해 세 명의 무사가 진에게 다가갔다. 이를 본 중팔이 개구쟁이들이 짓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칠공에게 전음을 보내 이 사태를 지켜보라고 명했다. 진은 자신을 포박하려는 자나 아까 전에 말했던 자의 행동 모두 심히 불쾌했다. 그래서 그는 중팔에 의해 손상된 자존심을 살림 겸 그들에 의해 더러워진 기분도 회복시킬 겸해서 그들을 제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세 명의 무사 중 한명이 진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그의 동작에는 한점의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 역시 그들의 동료가 진을 포박하는 것에 한점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 듯했다. 그들이 알고 있기로는 진은 무술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여유는 진의 가벼운 손짓에 날아가는 무사의 비명처럼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크악!” 진에 의해 날아간 무사는 반대편 상점 안으로 사라졌다. 이에 흠칫하는 무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그들은 진을 찾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버둥이 가관으로 변할수록 진의 손속은 점점 매서워지고 있었다. 진은 특별한 기예를 동원하지 않고도 무사들을 한명씩 제압했다. 그것은 천무장원의 무사들이 진의 모습을 눈으로 쫓지도 못한다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 모두는 검풍을 사용할 줄 아는 실력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가 바로 진이었기에 그들은 순간적으로 약자의 위치로 전락해버렸다. 중팔은 진의 경이로운 몸놀림에 감탄을 터트렸다. 그의 옆에 있는 칠공 역시 놀람의 시선으로 진의 몸을 쫓기에 바빴다. 그러나 화룡과 천무장원의 무사들은 진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진의 공격에 두려워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눈 몇 번 깜빡이는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와 함께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인간이 만든 바람이 한 바퀴 지나간 뒤, 드러나는 광경에 화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몸 멀쩡히 서 있는 이는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화룡은 이 순간 하린이 죽도록 미웠다. 그리고 눈이 있어도 고수를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후려파고 싶었다. 물론 상대가 손속에 정을 두었기에 무사들이 죽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을 이끌고 온, 자신과 천무장원의 명예는 이 낯선 이방인에 의해 형편없이 구겨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낯선 이방인 아니 거렁뱅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인에게 무한한 분노를 느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상대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는 화룡이었다. 화룡은 뒷짐을 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을 바라보았다. 진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하여 얼마 전까지 싸움을 했던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진에 대한 공포가 가슴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은 자랑스런 천무장원의 호위단의 일원이다. 죽어도 물러설 수 없다는 기백과 용기를 가지고 주군과 주요 인물들을 경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다. 화룡은 자신이 호위단임을 상기하자 그의 몸을 그물처럼 조여 오고 있던 공포와 두려움이 씻은 듯이 사라짐을 느꼈다. 이에 힘을 얻은 화룡이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비록 너의 적수는 아니지만, 나는 자랑스런 천무장원의 호위단의 일원이다. 간다!” 화룡의 검이 원을 그리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검이 원의 마지막 점을 찍자 날카로운 여덟 개의 검날이 나타났다. 그것은 눈이 부실정로도 화려한 빛을 뿜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폭풍 같은 기세를 토해내며 화룡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화룡의 주위를 돌던 빛의 검에 모여 있던 기운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화룡이 기합을 지르며 그것들을 진에게로 쏘아 보냈다. 여덟 개의 빛의 검 모두에는 무시하지 못할 만큼 거력이 숨겨져 있었다. 또한 그것들은 각 방위를 차단하며 엄청난 속도로 진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무시를 당했다 여긴 화룡의 눈빛이 한광을 내뿜었고 생명력의 근원이라는 잠력까지 끌어올려 그의 공격을 한층 더 사납게 만들었다. “죽어라!” 그러나 진은 여전히 그 자리 그곳에 서있었다. 잠시 후, 그의 몸과 에너지 소드의 여덟 날이 부딪히려는 순간, 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엘뤼시온, 부탁해!” 콰쾅! 진의 몸과 빛의 검들이 부딪히자 엄청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소용돌이처럼 사나운 기의 여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화룡은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자욱한 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먼지는 두텁고 뿌옇다. 그러나 경악으로 치켜진 두 사람의 눈은 먼지 따위는 그들의 시야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중팔은 당연히 진이 기의 장벽으로 방어를 하리라 생각했다. 황화광에 오른 고수라면 그 정도의 방어능력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그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온 몸에서 기를 회수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감싸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그에게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진은 기 말고도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중팔과 칠공의 가슴을 세차게 뛰게 만든 이유였다. ‘저 녀석은 역시 나의 장난감이 되기에 충분해. 크크크.’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이라니. 에리필이 저런 괴물을 길러 내다니. 그야말로 청출어람이 군.’ 진은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자욱한 먼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진은 옷을 털며 화룡에게 다가갔다. 화룡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노력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려버리는 진이었다. “야, 그만 쓰러져.” 진이 말을 하며 화룡을 툭 건드리자 화룡은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버렸다. 그 모습을 진은 웃음까지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사악해 보일 수 없었다. 진은 바닥에 누워있는 화룡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는 화룡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까, 상당히 건방졌다. 뭘 믿고 그렇게 설쳤나?” 여전히 반말로 쏘아붙이는 진의 말에 화룡은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 자에게는 살인 따윈 숨쉬는 것처럼 쉬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왜 전에는 자신들에게 그리도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았나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런 물음은 던질 수도 던지고 쉽지도 않았다. 괜한 호기심 때문에 목이 날아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화룡은 자신이 만든 진의 허상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다. 이를 같잖은 오기로 버틴다고 판단한 진은 그의 목을 꽉 누르며 말했다. “야, 아까 전 시건방진 놈은 어디 갔나? 그런데 누구 사주를 받고 내게 덤빈 거냐? 설마 그 같잖은 실력가지고 내게 덤빈 건 아닐 테고.” “…….” “야!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진은 화룡이 말을 하지 않자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진이 화룡의 가슴을 한대 치려는 순간, 칠공의 음성이 울렸다. “험험, 자네가 목을 잡고 있으니 말을 하지 못하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사실 저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네를 잡아오라고 한 자를 알고 있네.” “네가?” “그래, 근데 자네 저 아이의 목부터 놓아주고 이야기 하지.” 진은 잠시 화룡을 바라보다 툭 던지듯이 물었다 “왜 그래야 되지?” 진의 물음에 칠공이 중팔을 바라보았다. 중팔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에 칠공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나와 저 아이는 같은 출신이니까.” “네가 이 놈과 같은 편이라고?” “뭐,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지. 참고로 나는 현역에서 물러난 몸인 지라 저 아이들이 날 못 알아본 거라 할 수 있지.” 진은 칠공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는 습관적으로 중팔을 살폈다. 중팔은 의미가 모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에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는 진이었다.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공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진이 말했다. “저 놈에게 사주한 자를 알고 있다고 했겠다. 말해라.” 진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중팔이 웃으며 말했다. “말하기에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 내가 직접 데려다 주지.” 진은 중팔의 말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중팔과 칠공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중팔과 칠공이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진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알겠다. 안내해라. 그리고 그 녀석을 내 앞에 대령해라.” 중팔은 진의 말투에 또 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후후, 아마 네 말대로 대령할 수 있을 거다. 자, 간만에 집에 돌아가 볼까나.” 중팔이 말을 하며 앞장을 섰다. 그 뒤를 칠공과 진이 따랐다. 세 사람이 장내를 떠나자, 화룡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멀어져 가는 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49화. 한 쟈크 대륙. 2. 천무장원은 가히 성과 같다. 그래서 그런지 천무장원의 정문은 활짝 열려있음에도 안으로 들어갈 엄두는 고사하고 근처를 지나가는 것만도 상당한 용기를 요구했다. 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문과 형형한 안광으로 사방을 주시하는 무사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세 사람도 이들의 강렬한 눈빛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정문 근처까지 다가갔다가 은근슬쩍 옆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진은 커다란 문을 놓아두고 왜 돌아서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팔이 자기 입으로 집에 돌아간다고 말했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진이었다. 그러나 진은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목적지에 데려다 줄 것이 분명했고 사실 그보다도 다른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진은 루스카에게 의념을 보냈다. [루스카 정말 저들이 사부님과 관련이 있는 인물인거야?] [확실한 건 아니지만 비쇼레이님의 기억으로는 저들과 에리필님이 어떠한 인연을 맺은 거 같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악연으로 말입니다.] [음… 악연이란 말이지? 하기야 사부님의 이름을 말했을 때, 저들이 크게 웃었다는 것부터 의심이 가. 그리고 혹시 사부님이 내게 이스트 언어를 배우게 한 것도 저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그것까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악연인 건 확실합니다. 저들에게서 아주 기분 나쁜 냄새가 나거든요.] [그래? 하아, 결국 내가 알아내야 한단 말인데. 도대체 무슨 관계였을까? 그런데 저 두 사람은 내가 봤었던 그 어떤 인물들보다도 강해. 아니 유리미와 그의 동료들보다는 강한 거 같진 않지만… 아 맞다. 드래고니아! 유리미 씨가 자신들보고 나인 드래고니아라고 했었잖아! 그리고 내 검도 드래고니아고.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 같은데…….] 진은 또 다른 의문에 염두를 굴렸지만 그 생각은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루스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은 천무장원의 후미진 곳에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이 있었다. 중팔은 멍하니 걷고 있는 진을 불렀다. “이봐, 이리로 들어가자고.” “여기?” “당연하지. 이 근처에 여기 말고 문이 어딨냐?” 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중팔은 어깨를 으쓱하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칠공 역시 익숙한 동작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보고 있던 진은 순간 ‘개구멍’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픽하고 웃었다. 그러나 중팔은 진이 웃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뭐해? 빨리 들어와!” 진은 자라목을 내밀 듯 문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중팔이 그리 나쁜 인간은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진의 착각이었다. 천무장원은 구룡탑이라고 하여 전대 고수들이 칩거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천무장원과는 엄연히 분리된 곳이며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 또한 천무장원과 연관되길 싫어한다. 그들 대부분이 남은 여생을 평온 속에서 보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소박한 바램마저도 48 대 장주이자, 전전대 장주였던 진중선은 용납하지 못했다. 그는 장주였던 당시나, 은퇴한 뒤인 지금에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모든 구룡탑 고수들이 증오해하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망각해선 안 된다.” 분명 옳은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구룡탑 고수들 모두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중선 앞에서 이 말을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는 구룡탑 고수는 없겠지만. 진중선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어떠한 의무감이라도 있는지 평안한 노후를 보내려는 구룡탑 고수들에게 툭하면 일을 시켰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대단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시키는 일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일을 시키는 타이밍이 너무도 절묘해 짜증과 귀찮음을 동시에 느끼기 일쑤였다. 하지만 누구도 진중선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반항은 진중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에. 그 결말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 했기에. 그들은 반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예전에 진중선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비운의 주인공이 된, 사공민은 근 반년 동안 그의 장난감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반년 후, 사공민은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해,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겠다.”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천무장원을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진중선을 호박씨 깐 내용을.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내가 그 인간 그림자라도 밟으면 내 성을 갈겠다!” 이 이야기가 진중선의 귀에 들어갔는지는 밝혀진 바 없지만 사공민이 실성한 채, 한진성 외곽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발견 당시 그는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며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고 한다. “똥은 무서워서 피합니다. 똥은 더럽지 않습니다. 제 성은 똥입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합니다. 똥은 더럽지 않습니다. 제 성은 똥입니다.” 이밖에도 욱하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대든 수많은 구룡탑 고수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이러한 산 현장을 목격한 구룡탑 고수들이 어찌 진중선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진중선의 일곱 제자 중 막내인 백현영은 사부의 명을 받들어 한진성 밖에 있는 수곡산에 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는 사부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고 충심으로 그는 그것을 사부에게 대령했다. 그의 예상대로 사부는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생각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의 충심은 벽돌로 뒤통수가 깨져도 용서받지 못할 대죄인, 구룡탑 고수들이 맞이한 잠시 간의 평온을 깨버린 것이다. 구룡탑 노고수들은 진중선이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는 순간, 싸늘한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진중선의 거처인 구룡탑 구층으로 몸을 날렸다. 진중선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백현영이 보였다. 하던 일도 도중에 멈추고, 올라왔던 그들은 습관처럼 자신이 몇 번째로 도착했는지를 헤아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사부님 오셨…” 뒤늦은 것을 만회하려고 큰소리를 지르며 올라오던 유민수가 뒤돌아보는 사형제 및 사숙들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다리가 풀린 듯,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리는 사부를 볼 수 있었다. 유민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진중선 앞에 다가가 익숙한 동작으로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땅에 짚어 등허리가 평평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진중선 역시 익숙한 동작으로 유민수의 등 에 앉았다. “크윽!” “어허, 의자가 말을 하면 쓰나?” 유민수는 허리를 누르는 무시무시한 압력 때문에 절로 신음이 나오려 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어 그것을 참아냈다. 그 모습을 유민수의 사형제 및, 사숙들이 대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백의 유민수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도 싫증이 나자 진중선이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앞에 도열해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순간 모두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그것도 잠시 진중선과 매우 닮은 노인이 한발 나서며 인사했다. “아버님, 한진성의 인심을 친히 몸으로 느끼겠다고 떠나 신지가 한 달이 조금 못되었습니다. 본래 계획으로는 최소 1년인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건강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니신지…” 진중선의 눈에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예의 장난 끼로 똘똘 뭉친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가 나직이 중얼거린다고 하여 장내에 있는 사람 중 그의 말을 듣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오, 내가 아프기라도 바랐다는 얼굴이네, 모.두.들. 말이야. 이거 섭섭한데? 내가 내 집에 들어오는 것도 눈치 봐야 하는 건가?” 그의 말에 모두는 긴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중선의 시선과 맞추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의 안간힘은 언제나 똥줄만 빠질 뿐, 시원한 결과를 준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험, 진상아!” “옛! 사형!” 진중선이 은근히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소진상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진중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보고 소진상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사실은 장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진중선은 소진상을 불러놓고는 그의 아들이자 전대 장주였던 진욱에게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될지 모르겠단 말이야. 욱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진중선의 말에 진욱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잠시요, 대답은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누구나 아버님께서 그 분야에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같이 우매한 자가 아버님의 고상한 취미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팔십 고령답지 않게 아부성 발언에 매우 익숙했다. 그것은 그가 철들면서부터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 바로 아부가 구 할인 이 화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 화법을 배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쓰는 일상의 언어가 바로 이 화법이었기 때문이다. 진중선은 아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요번 장난감은 좀 색다른 맛이 있는 거 같단 말이야. 그래서 나 역시 좀 색다른 방법으로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단 말이고. 음… 너도 별 수 없단 말인가……?” 언제나 그랬지만, 그가 말끝을 흐리면 모두가 긴장했다. 긴장과 초조의 시간은 말없이 흘러가고 진중선의 얼굴이 굳어질수록 그들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런 찜찜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비연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번 그랬지만, 장난감이 사부님을 싫어하게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무표정한 얼굴에 2 라키르에 육박하는 그가 토한 말은 삽시간에 구룡탑 고수들의 마음을 얼려버렸다. 그러나 비연은 처음과 동일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얼굴 표정 또한 한결 같이 무표정이었다. 그런 비연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진중선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중선의 둘째 제자인 비연은 그의 마수를 피해간 몇 되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전대 인물 중에 그의 마수를 피해간 사람은 비연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진중선의 악명이 높아질수록 비연의 이름도 천무장원 안에서 높아졌으며 거기다 그의 강력한 무력이 뒷받침 되어 무신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게 되었다. 어찌됐든 그의 말을 음미하고 있던 진중선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남긴 나직한 한 마디는 진의 인생에 커다란 굴곡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흐흐흐, 그놈에겐 난 원수지…….” 구층 높이의 커다란 탑 앞에서 멀뚱히 서 있던 진은 헐레벌떡 뛰어나온 백현영의 안내를 받으며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은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이에 입을 ‘헤’벌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진이었다. 이런 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현영이 입을 열었다. “저기에 갈아입을 옷이 있으니 갈아입고 기다리게. 여기서 기다리면 사람이 올 거네. 그럼 조금 있다 보지.” “그래, 잘 가!” 백현영을 배웅한 진은 빛처럼 하얀 무복과 자신의 몸에 걸쳐져 있는 넝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는 잠시간의 갈등을 했다. 그러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은전 한 냥을 탁상위에 올려놓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과연 옷이 날개라는 말이 맞았다. 제국과는 다른 디자인인 하얀 무복은 언뜻 보기에는 불편해보였다. 하지만 입고 있는 진이 느끼기로는 제국의 무복보다 기능성이 훨씬 뛰어난 것 같았다. 진은 시험 삼아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리고 그는 역시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은 진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는 몽롱한 표정으로 변해 여기 온 목적도 잊고 온갖 신기한 물건들에 시선을 뺏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커다란 전각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진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휴우, 솔직히 누가 나를 데려오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신경 쓰이는 건 아니야. 단지 저들과 사부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지. 하지만 만약 저들과 사부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어쩌지? 나는 저들에겐 가시와도 같은 존재일 텐데. 아니 그것보다도 나는 저들에겐 가시의 역할도 할 수 없는 매우 미약한 존재일 뿐이잖아, 휴 우!’ 진은 사고의 바다 속에서 항해를 하다 자기 비하에서 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은 마스터의 경지이자 황화광의 경지에 좀 더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위험을 느끼는 본능이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든 것이다. 어느새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트는 진은 이내 명상에 빠졌다. 잠시 후, 그는 기수련이라는 황홀한 바다를 떠다기 시작했다. 온 몸에 뻗어 있는 츄요가 좀 더 아늑해졌고 포근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단전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의 양과 속도도 이제껏 그가 생각했던 이상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기를 끌어올 때, 미약하지만 저 먼 우주의 존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그야 말로 신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그저 멍하게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 두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아지경 상태에서 단전에 기를 가득 채운 뒤, 눈을 뜨자 강렬한 섬광이 그의 눈에서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섬광은 눈앞에 있는 벽에 꽂혔다. 정면의 벽을 차지하고 있는 벽화는 무인 한 명이 검을 들고 12가지 동작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그림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봐도 자연스러웠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봐도 역시나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신기했던지 진은 뚫어지게 춤을 추는 무인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진의 눈은 그림들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곧이어 그의 몸까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진은 벽화의 무인이 되어 춤을 추고 있었다. 그의 손에 꽉 붙들려 있는 한 자루 검과 함께……. 공간이 갈라지며 새겨지는 하얀 선이 아름답게 허공을 수놓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가 나타나면 그 뒤를 이어 다른 하나가 선의 끝에서 나타나 또 다른 선의 시작점이 된다. 그렇게 열두 번의 선이 하나가 되면 하나의 원이 완성된다. 그러나 그 원은 어딘가 완전하지 못해 보여 그의 검술이 아직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은 도합 열두 개의 원을 만들어낸 뒤에야 검을 몸속으로 돌려보냈다. “허억! 허억! 허억! 왜 이리 힘이 드는 거지?” 진의 몸은 땀에 푹 절여 있었고 그의 호흡은 매우 거칠었다. 그리고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휘두른 검일진대, 너무나 힘이 들어.’ 그는 단전에 있는 모든 기를 격발시킨 뒤에나 오는 허탈감과 피로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는 확인차원에서 그의 단전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모호한 표정을 짓는 진이었다. ‘난 원을 만듦에 있어서 좁쌀만큼의 기도 사용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없었던 거야. 만약 내가 기를 이용하여 벽화의 검술을 펼쳤다면 그것이 벽화의 검술일까?’ 조심스레 물어보지만 자신 없이 고개가 흔들린다. 그것은 진에게 알 수 없는 패배감을 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고 있을 때, 백현영이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으음? 아, 그냥…….” 깜짝 놀랐는지 말을 흐리는 진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백현영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백현영이 속으로 툴툴거렸다. ‘저 녀석은 사사건건 반말이야.’ 그러나 속으로 생각한 거와는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없이 부드러웠고 말 돌리는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그렇군. 뭐, 어쨌든 자네를 찾던 사람과 만나게 해주겠네. 마음의 준비는 다 되었는가?” “준비랄 거 까지 있겠어? 안내나 해.” 진은 백현영을 앞세우며 걸음을 옮겼다. 몸을 돌려 앞서 걷는 그의 얼굴에 연민의 감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단지 착각이었을까? 150화. 사부의 원수를 만나다. 1. “흥!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주제에…… 뭣 때문에 왔지?” 하린은 냉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화룡을 쏘아보던 그녀는 찬바람이 쌩하게 불정도로 한기를 풀풀 날리며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그녀는 화룡의 작은 중얼거림에 걸음을 멈추며 부들부들 떨었다. “상상이상의 고수였습니다.” “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 제국 거지가 어디를 봐서 상상이상의 고수라는 거지?” 화룡은 그녀의 차가운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일은 분명 현실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나 그자는 분명 저와는 다른 경지의 고수였습니다.” “그래서? 그자가 황화광의 고수라도 된단 말이야? 아님 초영공의 고수라도 된단 말이야?” 하린이 그의 가슴을 밀치며 묻자 화룡은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그를 구원하는 소리가 전각을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사조님께서 하린 아가씨를 모시고 오라십니다. 화룡 자네도 말이지.” 하린은 발작하려는 순간, 누가 중간에 끼어들어 무척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은 아버지의 사제이자 그녀에겐 의숙부였다. 더구나 그가 하는 말은 결코 허투루 흘릴 말이 아니었다. “즈, 증조할아버지께서요? 저 잘못한 거 없는데요?” “그분의 뜻을 어찌 저 같은 범부가 알겠습니까?” “백숙부님께서 범부라면 우리 천무장원에서 범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린이 아름다운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말하자 백영이 친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구룡탑에 거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범부일 뿐입니다.” “호호호, 그런데 백할아버지는 잘 계신가요?” 그녀가 백현영에 대해 묻자 백영이 씁쓸하게 웃다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사조님을 기다리게 만든다면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서 구룡탑 구층으로 가보시죠.” 백영이 재촉하자 하린이 뭔가를 깨달은 듯, 황급히 내달렸다. 그녀의 몸은 어느새 만발한 꽃과 기화이초들로 가득 차 있는 정원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등을 눈으로 쫒던 화룡이 백영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백장로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랜만이군. 내가 어린 자네를 가르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헌앙한 청년으로 자랐다니… 역시 세월은 무심히도 흘러가는구먼.” 백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자 화룡이 씁쓸하게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을 본 거 같은 기분입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에 그 정도의 고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처연한 음성에 백영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힘을 내게. 자네는 충분히 뛰어나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이 기회를 계기로 수련에 매진하게. 자네가 수련에 힘쓸 수 있도록 신경 쓰겠네.” 백영의 따뜻한 말에 화룡이 감동을 받았는지 눈시울을 붉힌다. 순간 훈훈한 공기가 전각을 감쌌으나 백영의 한 마디에 싸늘하게 냉각된다. “자네는 사조님을 뵌 적이 없을 게야. 그래서 내 한마디만 충고하겠네. 몸조심하게.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자면 지금 당장 출발하는 게 심신에 좋을 걸세.” 평소에 농담을 잘하지 않는 백영이 진지하게 말하자 화룡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잠시 후, 그의 몸은 하린이 달렸던 정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내달리는 그의 뒷모습을 연민의 시선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화룡은 모르고 있으리라. 하이얀타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한 빛깔을 낸다하여 그 어떤 보석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하이얀타 나무의 강도는 금강석을 능가하여 그것을 가공한 조각품은 수치를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 진중선은 자신의 보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만지면 닳을까봐 조심스런 그 의 손길에 하이얀타 나무가 은은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청정한 마 음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 “증조할아버지 저 찾으셨어요?” “…….” 하린은 세차게 뛰는 심장의 박동을 참지 못하고 그녀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순간 싸늘한 분위기가 주위를 지배했다. 그러나 긴장으로 굳어있는 그녀에겐 그러한 것들을 감지할 여유가 없었다. 대신 입을 쩌억 벌리며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두 눈을 치켜뜨는 모습들에 의아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제야 순간적으로 멈추어있던 혈액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며 주위의 분위기를 감지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제가 무슨 실수라도……?” 그러나 그녀의 음성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실내를 울릴 뿐이었다. “…….” 하린은 익숙지 않은 정적에 몸을 떨다 불현듯 진중선의 얼굴과 그의 악명이 떠올라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짜내려는데……. “저…….” “도대체 어떤 놈이야?” 대기가 터질 만큼 커다란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잘라 먹자 하린은 ‘헉’하는 다급한 신음을 토했다. 쾅! 순간 계단과 마주보고 있는 방문이 튕겨나가며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고 모두는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불안한 눈초리로 방바닥을 훑었다. “어떤 놈이 고상한 나의 취미를 방해했느냐니까?” 그가 한 발을 떼며 외치자 모두는 고개를 들어 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연한 귀결인 듯, 진중선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그녀에게 꽂힌다. “히익!” 간이 크고 안하무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그녀였지만 상대는 진중선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툭! 묵직한 느낌에 하린이 뒤돌아보려 했으나 진중선의 서늘한 시선에 몸을 움츠리며 고개도 움직이지 못했다. “왔는가?” “그래, 왔다.” 이스트 언어에 익숙지 않은 진은 말끝마다 반말이었고 구룡탑 구층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경악의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싸한 정적이 자리를 잡았으나 진중선과 진의 뒤에 서 있는 백현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발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자리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은 꼭 있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린데… 허허, 네 놈의 간덩이가 얼마나 큰지 한번 봐야겠구나!” 노성을 지르며 진을 노려보는 인물은 의외로 덩치가 작았다. 160 키르를 겨우 넘기는 키에 세모꼴의 얼굴에 어설프게 나있는 수염이 얍삽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더없이 위압적이었다. “너는 뭐야?” 진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노성을 발하자 발끈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지천우가 기운을 일으켰다. 지천우의 장포가 펄럭거리는가 싶더니 그 기운이 하린을 지나쳐 진을 향해 쏘아졌다. “음…….” 진은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지천우의 기운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인지라 당혹스러움과 함께 묵직한 충격을 받았다. 지천우는 상대가 미약한 신음 소리만 토할 뿐, 한발도 물러서지 않자 놀라는 한편 오기가 발동해 기운을 최대치로 개방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이 어디였는가를 기억해야 했다. 퍽! “커헉!” 지천우는 뭐가 번쩍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진을 스쳐 계단으로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는 몸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계단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투두두둑! 그의 머리와 계단의 모서리가 부딪히며 일어나는 소리가 섬뜩한 비수가 되어 모두의 가슴을 후벼 팠다. “험험, 제 좀 치워라!” 진중선은 꼴사납게 처박혀 있는 지천우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를 치우라고 명했다. 그리고 그의 명에 따라 지천우는 그의 사형의 등에 업혀 밑으로 내려갔다. 장내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진중선이 진을 보며 말했다. “제자 놈이 성격이 급해서 그러니 이해하게.” “괜찮아. 근데 저 사람 괜찮은 거야?” 진이 또 다시 반말을 하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발작하지 못한 것은 지천우의 결말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하린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궁금해 옆으로 물러서며 흘낏 훔쳐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성을 토했다. 이국적인 외모에 늘씬한 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는 일견 유약해 보이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묘한 매력으로 그녀에게 다가왔으니, 하린의 가슴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진중선은 하린이 계속해서 진을 훔쳐보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속한 대로 자네를 데려오라고 했던 사람을 소개해주겠네. 하린아!” 진중선이 부르자 하린은 깜짝 놀라며 그를 보았다가 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지혜로운 여인답게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데려오라고 했던 사람은 다크 블루빛 머리칼의 제국 거지였는데…… 그렇다면 저 사람이 그 거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도 황당한 추론이었기에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화룡에 의해 그녀의 바람은 잔혹하게 깨졌다. “하린 아가씨의 호위무사인 화룡,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허억! 이럴 수가! 저 자는… 그리 고 두 분은…….” 화룡이 허리를 굽혔다 펴며 진을 보고 뒤로 몇 발짝 물러서다 백현영과 진중선을 보며 경악했다. ‘저 두 사람이 여기엔 왜? 여기엔 천무장원의 주축이셨던 분들이 은거하시는 곳인데…….’ 허억! 화룡은 두 사람의 신분을 눈치 채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조금 전 두 분을 몰라뵙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의 모습이 재밌는지 대소를 터트리는 진중선이 손을 흔들자 화룡의 몸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화룡은 황공하여 무릎을 꿇으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엔 똑바른 자세로 서 있는 자신을 보았다. “저 여자가 나를 데려오라고 했던 자란 말인가?” 진이 대뜸 묻자 진중선이 화룡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자, 난 약속을 지켰네. 저 아이를 자네가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겠네.” 그의 말에 하린은 그녀의 짐작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며 기이한 시선으로 진을 보았다. ‘그 거지가 저렇게 멋진 사내라니. 하하,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진은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자 그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성! ‘이제껏 내가 보았던 여인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여자구나.’ 진은 캐슬 오브 마스터에서 보았던 여인과, 샤넬리 그리고 하린의 아름다움을 잠시 비교해보았으나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단지 캐슬 오브 마스터에서 본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강렬한지라 그녀에게 좀 더 후한 점수를 주는 진이었다. “전에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던 것이 당신인가요?” 상념에 빠져 있던 진은 영혼마저 옭아맬 정도로 매력적인 음성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뜻을 이해한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던 그 시간에 저 여인에게 실수를 했나 보구나. 이렇게 되면 그녀에게 뭐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내가 어떤 실수를 했기에 나를 잡아오라고 했을까?’ 진은 두렵지만 잃어버린 시간 동안에 있었던 일이 궁금해졌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엘뤼시온의 음성이 가슴에서 울렸다. [저 여인에게 특별한 실수를 하진 않았어. 단지 그녀 앞에서 네가 밥을 얻어먹으려고 했을 뿐. 그리고 너는 그녀의 부하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지.] 엘뤼시온의 간단명료한 설명에 진은 괜스레 화가 났다. 비록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에게 맞았다는 것과 남에게 빌어먹었다는 사실이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도 느끼지 못한 사이 온 힘을 개방했다. 우우웅! 황화경에 오른 그는 기를 저장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을 뿐, 아니라 정신을 차린 뒤부터는 그 기운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허투루 받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쌔애액! 칼날 같이 변한 대기가 미친 듯이 방안을 휘저었고 반경 10 라키르를 강력한 압력으로 눌렀다. 이는 중력의 정력인 루스카가 그의 분노에 힘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하린과 화룡은 숨이 턱턱 막혀 옴을 느꼈으며 그들의 몸을 벨만큼 날카로운 대기의 날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대 고수와 전전대 고수들 역시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진중선은 자신의 장난감이 될 진이 그의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에 흐뭇해했다. 그러나 자신 앞에서 힘자랑 하는 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순간적으로 기운을 터트렸다가 갈무리했다. “갈!” 그의 커다란 외침에 들끓던 대기가 잠잠해지며 숨 막히는 압력 역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진은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기운을 가볍게 흩어내는 진중선의 힘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장내가 진정되자 진중선은 유민수를 바라보았고 그는 울상을 지으며 바닥에 손을 짚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등에 앉은 진중선이 느릿하게 말했다. “자네가 저 아이를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겠네만 저 아이는 저래 뵈도 나의 증손녀거든. 쉽게 말해 자네가 무작정 화를 낼 상황이 아니란 말이지.” “뭐라고? 저 여자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네가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인가?” “나는 모르지. 그래, 그럼 어디 그 일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도록 할까?” 진중선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진과 하린은 동시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진중선이 뭐라 말하려 하자 진이 한발 앞서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문제는 개인적으로 처리할 거다. 너에게 말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흠…….” 그는 선수를 뺏겼다는 사실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그답지 않게 추궁하지 않았다. 이는 그에게 진이 얼마만큼 소중한 장난감인지를 반증해주는 것이었다. “허허허, 그래, 그렇게 하지. 그런데 내 자네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해주려 하는데. 바로 자네 사부의 이야기를 말이지.” “사부? 음….” 진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허허, 무언의 재촉이 더 무섭구먼. 음……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진은 진중선이 말을 질질 끌자 괜스레 불쾌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끈적끈적한 액체처럼 그의 몸을 감싸는 듯했다. 진중선은 진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서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해 본론으로 넘어갔다. “간단히 말함세. 나는 자네 사부의 철천지원수라 할 수 있지.” “원수? 왜?” 진은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원수라는 말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저 자가 사부님의 철천지원수라는 걸까?’ 진중선은 마치 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느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자네 사부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은 장본인이지. 그리고 제국인인 자네가 이스트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것도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는 그의 뜻이 아닐까?” 그의 말에 진은 분노보다도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이처럼 예민한 사항을 너무도 쉽게 밝히 는 그의 저의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저 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저 자의 말처럼 내가 이스트 언어를 배운 것이 복수를 위함인가? 사부님의 알 수 없는 그 말들이 이것을 뜻한 것인가?’ 수많은 물음이 그의 머릿속에 던져졌다. 하지만 시원스런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답답한 심정을 풀어버리려는 듯, 꽥 소리를 질렀다. “젠장!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 “크크크, 자네에게 원하는 것은 없네. 단지 나는 자네가 사부의 복수를 할 기회를 주려는 거네.” “칫!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너를 이길 리가 없잖아.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는 안다.” 진은 비록 몸과 마음이 성장했다지만 치기만은 여전했다. 이를 보고 진중선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진이 귀여웠던 것이다. “허허허, 나를 상대로 복수를 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 한일이지. 그래서 내기를 했으면 한다.” “내기?” “그래. 내가 지명하는 상대와 싸워서 이기면 자네 사부에게서 빼앗았던 소중한 것들을 돌려주겠다.” 진은 자신에게 유리한 제의를 내놓는 진중선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중선이 결코 좋은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게 유리한 내기군. 하지만 내가 지면 어떻게 할 거라는 것 정도는 말해주어야 공평한 거 아닌가?” 진이 가슴을 펴며 말하자 진중선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별거 아니네. 자네가 지면 자네 사부가 빼앗겼던 것들을 빼앗기면 되네. 아… 무공을 전폐시킨다거나 육체를 손상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네.” 진은 잠시간 걱정했던 자신의 모습에 툴툴 웃으며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는 누구지?” 진의 당찬 물음에 진중선이 그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제자 백현영이라네.” 151화. 사부의 원수를 만나다. 2.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대연무장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옷자락은 구룡탑 뒤편에 있는 가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백현영은 찝찝한 시선으로 진을 노려보다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자네는 무투가인가?” “그렇지는 않다.” 진의 당당한 말에 백현영은 어이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하하! 나를 무시하는 건가?” 순간 그에게서 강대한 기운이 서릿발처럼 뿜어져 나왔다. 진은 본능적으로 기운을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상대의 기운에 맞서지는 않았다. 그도 무인이었기에 백현영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던 것이다. ‘드래고니아라는 검을 사용하기에는 내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검을 빌려 쓰기도 싫으니. 다 드래고니아라는 검 때문이다.’ 백현영은 진이 계속해서 침묵을 고수하자 무시당했다고 여겨 냉랭하게 말했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사라면 검을 사용해야지. 참! 자네의 몸에 검이 없는 것을 보니 자네는 진정한 검사가 아니구먼!” 그의 비꼬는 말투에 구룡탑 노고수들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현영이가 화가 나긴 났나 보구나.” 진중선이 읊조리듯 조용조용히 말하자 노고수들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진중선이었다. 한편 백현영의 말투에 기분이 팍 상한 진은 오히려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검사나 무투가로 무인을 나누는 고정관념이야 말로 스스로 만든 벽이라는 것을 모르는군.” “…뭣이?” 노골적인 비꼼에 어안이 벙벙해진 백현영은 잠시간 멍한 상태로 있다 성난 외침을 토했다. 그러나 진은 그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싸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의 말에 백현영도 깨닫는 바가 있었던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오라!” 백현영의 나직한 외침을 마다할리 없는 진이 몸을 날렸다. 스륵! 바닥을 끄는 듯한 소리가 났고 진의 몸이 백현영의 뒤에서 나타났다. 순간 그의 다리가 대기를 가르며 백현영의 허리를 꺾어버릴 듯이 쇄도했다. 그러나 진의 다리는 흐릿하게 사라지는 백현영의 잔상만 갈랐다. 이에 진은 재빨리 몸을 틀어 손등으로 후려쳤다. 쾅! 파지직! 백현영의 주먹과 진의 손등이 부딪치며 터진 소리와 스파크가 대기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부딪치는 순간, 사라졌다. 펑! 펑! 펑! 자리를 바꿔가며 터지는 충격음은 갈수록 커져갔고 그들의 몸놀림 또한 더욱 빨라져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파바바박!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상대에게 공격을 가하던 두 사람이 순간적으로 멈춰서며 빠르게 발을 놀렸고 머리, 허리, 하체 부위에서 서로의 발이 충돌을 일으켰다. 쉬지 않고 터지는 충격음과 기운의 파장은 대연무장을 쓸어버렸고 그 여파가 노고수들에게까지 미쳤다. 한편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던 하린은 입을 쩌억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때, 그 거지가 백 할아버지와 대등하게 싸우다니…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았을까? 나를 놀린 건가? 아님, 무슨 사정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녀는 혹시나 하며 옆을 바라보았다. 옆에는 화룡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이에 한숨을 내쉬는 하린은 낙담한 표정으로 대연무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백현영의 뒤꿈치가 진의 정수리를 노렸다. 그러나 진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그의 공격을 피했고 몸을 틀어 발끝으로 백현영의 아킬레스건을 찍어갔다. 이에 기이한 각도로 다리를 트는 백현영은 축이 되는 발을 튕구는 순간 허리를 회전시키며 손등으로 진의 얼굴을 후려 쳤다. 쐐애액! 퍽! 그러나 그의 공격은 진의 팔뚝에 막혔고 회심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백현영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뒤로 스르륵 물러섰다. “후우!” 깊게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기운을 다스리는 백현영은 속으로 매우 놀라워하고 있었다. ‘순간속도나 순발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군. 저 나이 때, 저 정도 성취라니 궁극이라는 천혜화의 경지도 꿈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백현영은 진이라는 어린 청년에게 감탄했고 싸우면서 쌓이는 정에 훈훈한 마음마저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결투 중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겨야 했다. 자신이 사부의 장난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때, 진중선의 전음이 들렸다. [장난이 지나치면 건강에 해로울 것이야.] 백현영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진중선의 사악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더욱 섬뜩했다. 그렇기에 그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한발 앞서 진의 공격이 그를 노리고 쇄도했다. 진은 한발을 앞으로 내밀며 주먹을 뻗었다. 그런데 그의 주먹 뻗는 모습이 헌트와 너무도 흡사해 백현영과 진중선은 의아함을 느꼈다. 허나 백현영은 사방 10 라키르가 그의 권력 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순식간에 자리를 수십 번 바꾸며 권력의 연결고리에다 주먹을 꽂으며 그의 공격을 파훼했다. 팟팟팟팟팟! 대연무장 위, 수십 곳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터졌다. 불꽃이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림처럼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진의 입가에 선명한 핏자국이 생겼다. 한편 남색 무복을 입고 있던 백현영의 소맷자락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팔뚝에 핏빛 선 여럿이 보였다. 백현영은 팔뚝에 난 상처가 따끔했지만 무표정을 가장하며 차가운 별을 연상시키는 눈빛을 진에게 쏘아 보냈다. 이에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화답하는 진이었다. 그러나 진의 내면은 겉과 달리 경악으로 심하게 날뛰고 있었다. ‘뭔가에 놀란 거 같기에 엘뤼시온의 힘과 헌트 아저씨의 기법을 이용하여 기습공격을 시도했건만 그냥 피하는 것도 아니고 권력의 맥을 하나하나 다 끊어버리다니. 저게 인간인가?’ 진은 입가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닦아내며 자신이 놀랐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는 투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두두둑!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에 대연무장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휩싸였다. 번쩍! 하얀 섬광과 남색 섬광이 부딪혔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만난 두 사람의 손과 발이 쉴 새 없이 엇갈렸다. 잠시 후, 엄청난 격타음이 잔잔해지자 미세한 틈을 발견한 진이 백현영의 턱을 노리며 팔꿈치로 올려쳤다. 그러나 백현영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팔꿈치의 옆면을 정권으로 쳤다. 퍽! 순간 팔꿈치에 엄청난 충격을 느낀 진은 다른 손으로 팔꿈치를 감싸 쥐며 옆으로 3 라키르나 미끄러져 후속 공격에 대비하려 했다. 그러나 상대는 순수 무투가인 백현영이었다. 옆으로 몸을 이동하는 진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한 백현영은 진의 등 뒤에 나타나 손날을 날카롭게 만들어 그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위험신호를 감지한 진은 고개를 숙이는 순간 허리를 틀며 그 반동으로 뒤차기를 시도했다. 팍! “크윽!” 진은 발바닥을 관통해 하체 전체로 퍼지는 충격에 다리를 감싸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이 자신을 그리도 아프게 했는지 궁금하여 뒤로 돌아보았다. 진은 하얀 손을 볼 수 있었다. 에너지 소드처럼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색의 손처럼 자연스러운 하얀 손이었다. 그의 변화된 손을 보며, 하린이 놀란 외침을 토했다. “천무파황수!” 그녀의 외침에 화룡은 경외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백현영의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천무장원의 오대 기예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초영공의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그 궁극의 기법을…….’ 천무장원의 오대 기예는 검법, 권법, 장법, 수법, 각법으로 나뉘어 지며 그 중에서 수법인 천무파황수 같은 경우에는 경지가 높아질수록 손이 하얗게 변한다고 했다. 그리고 천무파황수의 극의에 이르게 되면 손이 살색으로 돌아와 아무런 기세도 담기지 않은 평범한 수법으로 보이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극의에 이른 천무파황수에 부딪치는 모든 것은 그 은밀함에 속아 소리 없이 소멸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천무장원에서 극의에 이른 천무파황수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진중선 뿐이었다. 양 손이 하얗게 변한 백현영은 진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고 진이 피식하며 웃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며 바닥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훗, 강자의 여유냐?” 저린 다리에 힘을 주며 툴툴거리는 진을 보는 백현영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하얗게 변한 손을 까닥거렸다. “좋아, 간다!” 저릿한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시자 진이 힘차게 외치며 돌진하려 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공명음이 머리를 울렸다. 두우웅! 공명음은 그의 시각을 흔들었고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간 진의 몸이 비틀거렸다. 한편 백현영과 노고수들은 공세를 취하려던 진이 비틀거리자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허공에다 선을 그으며 하얀 원을 만드는 진의 손동작에 ‘혹시?’하는 생각으로 변했다. 진은 불쾌한 소음을 쫒아내려 손을 젓고 있었다. 분명 그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손동작은 조금 전, 화폭에서 보았던 검무의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진의 손동작에 따라 열두 개의 선이 하나의 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섯 개의 원을 만들자, 백현영이 긴장하며 기운을 개방시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남색 장포가 사정없이 하늘로 날려 올라갔고 반백의 머리칼 또한 사자의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이제야 승부를 지으려는가 보군. 그런데 저 녀석의 손동작은 분명…….” 진중선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이 열두 개의 원을 만들었고 그 순간 일그러졌던 세상이 제 자리를 찾으며 환한 빛의 세계로 인도되어졌다. 콰아아아! 진이 만든 열두 개의 원이 회전하기 시작하며 대기를 마찰시켰다가 터트렸다. 그 순간, 강렬한 스파크가 불꽃과 함께 원들의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원들이 회전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고 열두 개의 원은 하나의 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흡!” 백현영은 천무무상권 상에 있는 파(破)의 기법을 시현하려는 순간 기껏 모아놓았던 기가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아단전을 개척한 마스터 상급이자 초영공의 고수였다. “이얍!” 그의 의지가 담겨 있는 일갈에 아단전에 저장되어 있는 기가 외부로 방출되며 터졌다. 순간 그를 감싸고 있던 구가 일그러졌다. 그러나 구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일그러졌던 부분은 금세 원상복구 되었다. 하지만 백현영은 쉬지 않고 우주에서 기를 끌어와 아단전에서 외부로 바로 터트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그러졌다 복구되기를 수십 차례! 그들은 어느새 반원의 기막 안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운이 계속해서 충돌하자 기막의 가장자리에서 스파크가 터지다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순간 주위에서 관전하던 하린과 화룡이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천무장원의 모든 것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기막으로 주위를 차단하라!” 진중선의 명령이 아니었더라도 노고수들은 기막으로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진중선의 말이 떨어졌기에 형식적으로나마 그의 말을 듣는 것이 되었다. “하압!” 동시에 터지는 기합성에 거대한 반구의 기막이 형성되었다. 그 순간, 공기를 빨아들이던 것을 멈추고 강력한 충격파를 보내던 기파와 반구의 기막이 충돌을 일으켰다. 콰쾅! 쾅! 쾅쾅쾅! 그그그그그! 파팡! 기막과 기막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키던 충격파가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다 허공으로 튕겼다. 그리고 튕겨진 기운은 대연무장 뒤에 있는 가산에 떨어졌다. 쿠왕! 쾅쾅쾅! 자욱한 먼지가 가산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먼지가 가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대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얼마 있지 않아, 대연무장은 자욱한 먼지에 뒤덮였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구나!” 진중선의 눈을 먼지 따위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노고수들은 그의 명에 따라 먼지를 밀어냈다. 그리고 드러나는 대연무장. 다크 블루빛 머리칼의 청년이 차디찬 대연무장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진 사내를 바라보고 있는 넝마를 입고 있는 반백의 노인. 짝! 짝짝짝짝! 진중선이 박수를 한번 치자 모두가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박수를 치던 노고수들은 진중선의 한 마디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초영공의 고수가 황화광의 고수를 상대한 것치고는 꼴이 말이 아니구나.” 그의 말에 백현영이 굽혔던 무릎을 펴며 말했다. “그의 전투력은 황화광에서도 수준급입니다. 하지만 제가 상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그의 수법은 황화광의 경지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그 수법을 대성했다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저 청년일 것입니다.” 그의 말에 묘한 미소를 짓던 진중선이 툭 뱉든 한 마디를 던지며 대연무장을 떠났다. “그건 수법이 아니라 검법이다.” 152화. 천무장원. 1. 현재 구룡탑에 거하는 노고수들은 24명이었다. 그 안에는 48대 장주인 진중선을 포함하여 그의 사제들인 8선과 4호법이 있었다. 그리고 49대 장주인 진욱을 포함한 진중선의 일곱 제자와 전대 4호법이 구룡탑에 살고 있었다. 구룡탑은 철저히 서열에 따라 층수를 나누었는데 구룡탑의 최고 서열이자 천무장원의 살아있는 실세인 진중선이 구층에 살고 그의 사제들인 8선이 7층을 사용했다. 그리고 장주를 호위한다는 숨은 고수들인 전전대 4호법이 6층에 살고 있다. 그런데 8층을 비워두고 7층을 8선이 사용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진중선 때문이다. “8층에 사는 사람은 나와 같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겠다.” 간단명료한 그의 말에 8선은 7층으로 내려갔고 덩달아 4호법 또한 밑층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3, 4, 5층을 사용하는 전대 고수들은 전전대 고수들이 층을 나눈 방법을 고대로 따라했다. 그렇다면 구룡탑 노고수들이 살지 않는 1, 2층은 어떤 용도로 사용될까? 구룡탑 1층과 2층은 각 성을 책임지는 장원에서 오는 노고수들을 접대하는 곳이다. 특히 1층 같은 경우에는 온갖 기화이초들을 모아 놓아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렇기에 외부인사들을 접대하지 않더라도 구룡탑의 노고수들이 자주 찾아가는 곳이 구룡탑의 1층이다. 구룡탑 1층에 진중선을 제외한 23명의 노고수들이 인공 폭포수 근처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매끈하게 잘 닦여진 바위들 위에 앉아 있었는데 정연하게 정돈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편한 대로 앉아 있었다. 이제껏 입어왔던 가식이라는 옷을 벗어 버린 듯 모습이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은 더 없이 편안해보였다. “현영아 그 아이가 비록 그 나이 때 치고는 강하다 하지만 사형이 그리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뭐더냐?” 구룡탑의 서열 2위이자, 8선의 1좌를 차지하고 있는 사공우가 좌중을 압도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백현영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사공사숙, 전에 에리필이라는 제국인이 우리 천무장원에 왔던 거 기억하십니까?” “에리필?” “예!” “으음… 에리필이라… 아!” 기억이 났는지 사공우가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가 재빨리 말했다. “예전에 흉악한 범죄자를 쫒아 왔다고 했던 그 애송이를 말하는 건가? 내가 알기론 그 아이의 동료들이 몇 명 있었던 거 같은데… 뭐, 결국 그 흉악한 범죄자라는 놈과 그놈들 모두 사형의 장난감이 되었지 않느냐?” “후후, 맞습니다.”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치는 백현영의 태도에 사공우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는 백현영을 채근했다. 백현영은 못이기는 척 하면서도 청산유수처럼 좔좔 쏟아냈다. “사부님은 그 아이에게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건이라는 것이 저를 이기면 그 아이의 사부가 빼앗겼던 것을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사공우와 인공 폭포수 근처에 있던 노고수들이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여 사공우가 말했다. “아, 아까 했던 말이 바로 그 말이었군.” “예, 그렇습니다.” 백현영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사공우가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미심쩍은 뭔가가 가슴을 답답하게 해 순간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그거로는 사형이 관심을 가졌다는 특수한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구나.” 백현영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려는 순간, 잔잔한 음성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내가 어디 한번 맞춰볼까? 내가 보기엔 사형은 그 아이에게 세 가지를 원하고 있어. 하나는 제국인이라는 색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전에 괴롭혔던 자의 제자라는 것이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그가 한 쟈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투는 반말 비슷하게 되는데 사형은 그것에 묘한 쾌감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아 보여. 자신에게 반말을 사용한 자라고는 사부님과 사숙들이 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어쨌든 사형은 그에게서 오래전에 잊어버린 향기를 맡으려는 건지도 모르지. 뭐, 단순한 변태기질이 발동했을 수도 있지만.” 우권영은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혹시나 주위에 진중선이 있는지 살폈다. 이에 노고수들 또한 긴장한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권영은 8선의 2좌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좌에 오른 인물이다. 1좌에 오른 사공우가 검좌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8선의 실질적인 리더는 우권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말에는 자연적으로 무게가 실렸다. 백현영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자신이 할 이야기를 다하자 묘한 심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 그랬냐 싶게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사숙의 말 대롭니다. 그렇지만 사부님께서 어떻게 그 아이를 장난감으로 만들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뭐, 약속을 빌미로 뺏는 다는 것은 가장 하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부님이시니 다른 방법이 있을 거 같지만 저로서는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그래, 사형의 생각을 누가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만약에 사형의 생각을 알아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일걸세.” 8선의 마지막좌인 비좌를 맞고 있는 유은이 투덜거렸다. 이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잠시 후, 유은의 귓가로 은밀한 전음이 전해졌다. 그것은 그를 혼비백산케 하기에 충분했다. [아…아버님, 저기 사…부님….] “뭐?” 유은이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깜짝 놀라 일어나자 유민수가 바위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자신이 아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은이 순박한 얼굴을 일부러 험상궂게 만들어 노려보았다. 허나 유민수는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 약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쉬지 않고 웃었다. 진이 깨어난 것은 3일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잃고 있었던 3일 동안 그는 천무장원에서 매우 유명한 인사가 되어 있었다. 전대 장로인 백현영과 막상막하의 승부를 벌였다는 젊은 제국인. 그는 많아 봐야 20대 중반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공포의 존재인 진중선 앞에서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고 했다. 거기다 잘생긴 외모에 다크 블루빛 머리칼과 눈은 천무장원의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가 누워있는 전각 주변에는 천무장원의 여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3일 째 되던 날, 하린이 나타남으로 인해 진이 누워있는 전각은 깨끗이 정리되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지만, 하얀 커튼에 걸러졌다. 그러나 커튼도 완전히 빛을 막지 못해 은은한 조명처럼 따뜻한 빛이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내의 얼굴을 비췄다. “으음!” 눈이 부실만큼 따가운 햇살도 아니건만 사내는 신음하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어멋!” 하연은 차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고 있는 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은 누가 오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여인인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는 짐짓 무표정을 가장하며 고개를 돌렸다. “뭘 그리 놀라지?” 진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컬컬했다. 이에 하연은 서둘러 차를 들고 진에게 다가갔다. “목이 마르시죠?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하연의 목소리는 비대한 몸과 달리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보다 맑고도 고왔다. 진은 그녀의 손에 들려져 있는 차를 잠시 바라보다 그녀의 눈을 보았다. ‘눈빛 하나는 제국제일이군.’ “고맙다.” 진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 모습을 푸근한 미소로 바라보던 하연은 그가 차를 다 마시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3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한 진을 위해 먹을 것을 가져 왔다. “보양죽이에요. 이것도 뜨거우니 호호 불어서 드세요.” 진은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죽을 먹었다. 그러나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먹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하연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이에 진이 죽을 먹다 고개를 들어 말했다. “다리 아프지 않아? 저기 안든가, 아님 집으로 돌아가.” 하연은 진의 능숙하지 못한 회화에 따뜻함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미소 한점을 만들었다. “아니에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드세요. 저는 서 있는 것이 더 편하답니다.” “그래?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 진은 무뚝뚝하게 말을 던지며 다시 죽을 먹는데 최선을 다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이 죽을 다 먹자 하연은 자연스런 동작으로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진이 하연의 등을 향해 말했다. “이름이 뭐야?” 하연이 뒤로 돌아 대답했다. “제 이름은 진하연이랍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그녀는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진은 그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사라지고도 멍하니 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은 포근한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밖으로 나가 뛰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에는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후우!” 답답한 한숨을 내쉬던 그는 밖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진하린이었다. 진은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볼을 통통하게 만들어 밖을 서성이는 그녀가 귀여웠다. 그렇게 진이 멍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순간적으로 하린의 눈과 허공에서 부딪혔다. “아!” 하린은 탄성을 지르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는 창밖에서 사라졌다. 진은 역광을 받고 들어오는 여인을 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빛인지 태양빛이 황홀한 빛을 빌려줘서인지 여하튼 그녀는 빛났다. 수백, 수천만 명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마냥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 뭐지?” 진은 그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이에 하린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내심의 두근거림을 억누르고 진에게 더욱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저, 저… 미안해요.” “뭐가 말이지?” “저, 그러니까… 에잇! 알면서 시치미 때지 마요.” 그녀가 흥분하여 외치자 진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뭐, 뭐예요?…… 그래요. 당신을 거지로 오인하고 부하들에게 때리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식당에서 불쾌감을 준 것은 당신의 잘못 아닌가요?” 진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냉랭한 음성이 그녀의 고막을 때렸다. “그래서? 그 말을 하러 온 건가? 거지 몰골로 식당을 기웃거린 내가 잘못했다는 이 말을 하러 온 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당황한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뭐라 말하려 했으나 모든 말은 우물거리다 입안으로 도로 쏙 들어갔다. 하린이 고개를 푹 숙이자 진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으음. 그게 아니다.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으음. 그러니까…….” “풋! 푸하하하!” 진이 안절부절 못하며 땀을 뻘뻘 흘리자 하린이 대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그 웃음이란 게 절세미인의 웃음치고는 꽤나 터프했다. 아니 대장군의 호방한 웃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린은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와 진의 옆에 앉았다. 하린이 진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에 당황한 진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것이 재미있는지 하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의 눈을 쳐다보려 애썼다. 하지만 쓸데없는 것에 불이 붙은 진이 열심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도를 무위로 돌렸다. 한참이나 기이한 놀이에 심취해있던 두 사람은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그 놀이에 빠져 있었다. “뭐하는 거죠?” “아앗!” “엇!” 연속해서 터지는 대화 아닌 대화는 하연의 놀란 음성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마지막 신음소리는 엉겁결에 하린을 안아 버린 진이 낸 소리였다. 세 사람은 그림처럼 굳어 있었다. 그에 덩달아 장내 또한 쥐 죽은 듯한 정적을 유지했다. “험, 험험!” 진이 헛기침을 하자 하린이 깜짝 놀라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하연과 진을 쳐다 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하린아!” 뒤늦게 하연이 그녀를 불렀으나 그녀는 이미 멀리 떠난 뒤였다. “사부님, 그 아이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백현영의 물음에 진중선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는 미소만 지을 뿐, 그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에 호기심이 들었지만 백현영은 입 밖으로 그것을 토해내진 않았다. 그렇게 두 사제가 차를 마시며 자연이 주는 푸근함을 맛보고 있을 때, 진중선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 재미를 주는 것이 진정한 장난감이다.” “예?” 뜬금없는 말에 백현영이 물음을 토했으나 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이에 백현영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맑고도 시원스러웠다. 차분하면서도 검소한 그러나 어딘가 품위가 있어 보이는 방안에 두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여인의 외모가 너무도 차이나 하녀와 주인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하녀차림의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언니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편안한 느낌과 지혜롭게 빛나는 눈을 제외하고는 평범하게 생긴 사람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반면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아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여인의 외모는 그야 말로 눈이 부셔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빛나고 있었다. “언니언니, 그 사람 정말 멋지지 않아?” 하늘색 바탕 위에 연녹색 줄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하린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하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 근데 있잖아. 나, 내일 그 사람과 오빠 보기로 했어.” “성민오빠 말하는 거니?” 하연이 ‘왜?’ 라는 표정을 짓자, 하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말했었잖아. 우리들 배필은 오빠가 가장 먼저 심사해주겠다고.” “아! 호호, 너 정말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하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하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하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첫 눈에 반했다는 말이 있긴 있는 가봐. 그런데 하나 걸리는 게…….” “호호, 네가 그 사람을 거지로 오인하고 호위대 무사들을 시켜 손봐주었다는 그거 말이지?” 하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하연이 풋 하며 웃음을 터트렸자 하린이 볼을 통통하게 만들어 그녀를 노려보았다. “알았어, 알았어. 무섭게 노려보지 마. 휴우, 근데 그 사람도 그거 알아?” “뭐?” “호호호, 글쎄 그게 뭘까?” 하연이 말꼬리를 늘이면서 그녀의 호기심을 부추기자 하린이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말 이럴 거야? 언니 죽고, 나 살아 볼까?” 하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걷어 올리자 하연이 눈을 빛내며 재빨리 말했다. “이런 거 말이야. 그 사람이 너의 이런 성격을 알고 있냐고.” “으음…… 아, 몰라. 나 그 사람한테는 이런 성격 안 보여줄 거야. 아니 이제부터 성격을 바꿀 거야. 그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도.” 하린이 주먹을 꽉 쥐며 다짐 하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첫사랑이라는 것은 정말로 있는 거 같아.’ 오랜 만에 산보를 하고 돌아온 진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다고 했는데 그게 뭘까? 목숨이나 무공을 전폐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뭘까?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 생각해보자. 내게 소중한 것들을…’ 진은 그의 부모와 형, 그리고 에리필과 두 아저씨를 떠올렸다. 그리고 샤넬리도 떠올렸으며, 검은 삼각지대의 유리미도 생각이 났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던 진은 캐슬 오브 마스터에서 본 여인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도 빠르게 사라졌으, 그의 고개는 사정없이 도리질치고 있었다. ‘아냐, 아냐. 그가 아무리 강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내게서 빼앗지는 못할 거야.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거야. 그들은 이스트가 아닌 제국에 사니까. 그렇다면 뭘까? 내게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 후우, 알 수가 없구나. 결국 직접 부딪혀 보아야만 알 수 있단 말인가?’ 진은 한숨을 쉬며 침대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렇게 누워있다 요 오일 간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얻은 속도는 경이적일 정도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나의 육체적 능력은 마스터라는 경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졌다. 왜 졌을까? 분명 그 자는 나보다 높은 경지일 것이다. 그러나 빠름으로 따진다면 분명 내가 우위에 있었다.’ 진은 갑작스레 변화된 자신의 신체능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는 그러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 빠름이 곧 강함이라는 공식이 그의 머리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구나. 다른 생각이나 해야겠다.” 진은 한숨을 내쉬며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잠시 후, 그는 사부와 아저씨들과의 수련을 떠올리게 되었다. ‘후후, 사부님과 아저씨들이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최선을 다해서 진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다.] 사부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고막을 터트릴 듯한 커다란 음성이 그의 마음을 때려 사부의 음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고도 네가 사내라 할 수 있냐? 지는 것은 곧 죽음이다.] 헌트의 사납게 빛나는 눈이 자신을 노려보는 듯했다. 잠시 후, 그는 장난 끼 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라 할 수 있지. 하하,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멋진 말 아냐?]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 카이슨이 보이는 듯했다. 그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그는 이제껏 망각했던 무리를 기억하게 되었다. [강함은 빠르고 느린 거로 판가름되지 않는다. 강한 사람에게서 나온 빠름이 진정으로 강한 것이고 강한 사람에게서 나온 느림이 진정으로 강한 것이다. 쾌, 중, 둔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순간 안개 속을 어지러이 헤매던 진은 주위가 환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묵직한 뭔가가 머리를 누르던 것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진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무리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포용했다. [진아, 너에게 가르치는 이동기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뭔지 아느냐?] 눈을 감고 있는 진의 귀로 카이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진은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나 또한 밟아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제압하고… 빛의 빠름 또한 제압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궁극의 이동기법이라 생각한다.] 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슴을 복받치게 하는 뜨거운 뭔가가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결국 그것이 진의 감성을 건드렸다.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던 진이 눈을 뜬 것은 시커먼 하늘 위에 회색빛 구름들이 춤을 출 때였다. 진은 문득 밖에 나가 한바탕 춤사위라도 벌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는 밖으로 나와 있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진은 놀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한 듯한 사람처럼 담담하기까지 했다. 진의 담담한 눈빛이 하늘을 향했다. 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오늘처럼 별이 가깝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을까? 그의 눈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진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잡혀 있었다.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어찌나 광휘로운지 눈이 시릴 정도였다. 그러나 진이 검에 기를 주입하자 찬란한 빛은 소리 없이 검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던 진이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검 한 자루에 마음을 담고 검 한 자루에 혼을 담는다. 진의 검이 분명 그러했다. 가볍게 휘두르는 듯했지만 검이 품고 있는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그 힘은 강력한 의지 아래 절제됐기에 훈훈한 미풍만이 그가 추는 검무를 따랐다. 미끄러지듯 땅을 밟으며 사선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정수리를 쪼갤 듯이 검을 휘두르나 그 검은 너무나 느리다. 느릿하게 내려오던 검이 명치 어림에 도착하자 번개가 이 땅에 현신하여 사방을 쪼개고 있다. 느리고 빠르고 무변과 다변이 섞여 있는 검무. 그것이 진이 추는 검무였다. 진은 샤넬리가 추었던 신무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신무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고 우주의 광대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진은 자신만의 신무를 추고 있다. 진의 몸은 마치 유령의 움직임처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땅을 차는 소리도 없었으며 몸을 움직일 때, 나는 파공음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놀림은 이제껏 보여주었던 몸놀림을 상회하는 것이었으니, 은(隱)과 쾌(快)의 절묘한 만남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진이 휘두르고 있는 검은 본래부터 무음이었으니 마치 유령이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만의 신무를 추던 진은 드래고니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드래고니아를 제어할 자신은 없었다. 지금의 검무는 자신이 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드래고니아의 이끌림에 따르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은 심하게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검과 자신의 혼이 서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무는 절정에 올라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리 많지 않은 기를 사용했지만 종반에 가서는 단전에 있는 모든 기를 이용하여 검무를 추었다. 그러나 그의 주위는 훈훈한 미풍만이 불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검에는 에너지 소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검은 에너지 소드를 만들 필요도 없으며 그러한 불필요한 형상을 만들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진의 검이 허공에서 서른 두 번의 변화를 보였다. 그 순간 그를 감싸는 타원형의 검막이 생겼다. 검막은 견고한 느낌이라기보다는 흘러가는 느낌을 주었다. 모든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진은 더 이상 자만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든 검막 속에서 검무를 계속 추었다. 신기하게도 검막은 그가 움직임에도 깨지지 않았으며 큰 힘이 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진 자신이 이 검막을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드래고니아가 이끄는 대로 했을 뿐이다. 진의 검이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그 순간 그를 감싸고 있던 무색의 검막이 검끝으로 모이더니 하늘로 쏘아져 나갔다. 순간 하늘을 나는 백호 한 마리를 진은 본 듯했다. 그러나 백호는 이미 하늘로 날아간 뒤였다. 진은 멍한 표정으로 백호가 사라진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순간 그의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부딪혀 이겨내겠다.] 검무를 추고 돌아온 진은 기수련에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눈을 뜨자 한 여인의 맑게 빛나는 눈을 대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진이 무심한 말투로 묻자 하린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제가 뭣 때문에 왔을 까요?” 그녀의 이런 반응을 예상 못한 진이 신음을 삼키자 하린이 픽하며 웃으며 진의 소매를 끌어 당겼다. “뭐해요? 빨리 가요. 오빠한테 다 말해놓았으니까요.” 하린의 채근에 진이 못이기는 척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문을 나서 화원을 걸어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화원의 바깥쪽에 있는 큰 나무에서 고개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화원을 넘어 반듯하게 잘 닦인 길을 걸어가는 두 선남선녀를 쫓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매우 슬퍼보였는데 기어코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우리 하린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그러나 가슴이 이리도 아픈 것은 무엇 때문일까?” 두툼하게 살이 찐 손으로 가슴을 누르는 그녀는 다름 아닌 진하연이었다. 153화. 천무장원. 2. 어제 저녁, 동생이 찾아와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남자라고 했다. 그렇기에 그는 몹시도 궁금해 했다. 그래서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동생과 그녀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민은 뼛속까지 무인인지라 기다리는 내내 기름을 먹인 천으로 검을 닦고 있었다. 흠칫! “앗!” 성민은 검을 닦다 말고 거대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어떻게 보면 너무도 허허로워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갈무리 되어 있기에 더욱 거대한 느낌을 주는 기운을. 구룡탑의 노고수들에게서나 느끼는 기운을 그는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도 모르게 검을 닦고 있던 손을 당겼고 그의 검지는 붉은 핏방울을 머금게 되었다. ‘이 기운은? 설마 하린이가 데리고 온다는 남자가 이 기운의 주인인 것일까?’ 그는 흐르는 피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길 양 옆에 촘촘히 박혀 있는 소나무 사이를 바라보았다. “으음…….” 그의 청각은 멀리서 들려오는 동생의 음성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는 이 기운의 주인이 동생이 말한 남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린이가 반한 남자의 나이가 설마……?’ 성민의 마음은 엄청난 충격에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구룡탑 고수들이 입이 아프도록 칭찬했던 그이건만. “성민은 어린 나이치고 금강석과도 같은 튼튼한 벽을 마음에 세워두고 있다. 그래서 성민이는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아이다. 거기다 성민이는 천성이 온유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이다.” 구룡탑의 구렁이들의 입에서 이 정도의 말까지 들었던 그였건만 현재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소나무 숲을 막 나서는 두 남녀의 모습에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남자는 제국인이었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과 이국적인 외모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엄청난 기운을 갈무리 하고 있는 주인공이 너무도 어려 보여 서였다. 사실 진의 외모는 족히 2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황화광의 경지에 오른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그러니 진성민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린이 반한 남자가 최소한 늙은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룩한 경지가 수주아의 극까지 도달했기에 그의 속내는 놀람과 부러움 그리고 그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질시의 감정들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듯 회전하고 있었다. 성민은 회색빛 대리석으로 만든 인공 분수대로 다가오는 한 쌍의 남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들이 성민의 앞에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어도 말이다. 하린은 자신들이 왔는데도 멍하니 있는 성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괜스레 화가 났다. 지금 성민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자신은 차치하더라도 그녀가 좋아하는 진에게는 큰 실례인 것이다. 이에 하린이 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허리를 숙여 성민의 귀에다 처음에는 소곤거릴 정도로 말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매우 큰소리로 말했다. “오빠… 뭐해!” “어엇? 앗! 이런, 괜찮니?” 깜짝 놀란 성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다 어깨로 하린의 턱을 박아버렸다. 순간 하린은 화창한 낮에 별을 보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거에 하린이 감격할 리 없었다. 대신 그녀는 진의 시선을 신경 쓰며 애써 아프지 않은 척 했다. 그리고 그녀는 성민의 옆에 서며 진의 시선을 피해 그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었다. ‘으아아아!’ 무인의 집안에서 자란 그녀였기에 여느 여자의 꼬집는 강도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나 불쌍한 성민은 엄청난 고통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의 동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소리 내면 난 죽음이다. 이러다 예전처럼 오빠 대접도 못 받는 거 아냐?’ 성민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오빠 대접도 해주지 않았던 사악한 막내 동생을 떠올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성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에 만족했는지 하린이 그의 옆구리에서 손을 땠다. 대신 그녀의 팔꿈치가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크윽!’ 역시나 아팠다. 툭 치는 듯했지만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민은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성민은 옆구리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인상하나 구기지 않으며 진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하린이의 오빠인 진성민이라고 합니다.” 성민은 한 문장이 끝날 때, 45도 정도를 숙였고 다음 문장을 끝낼 때, 거의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이런 성민의 모습이 신기했던지 진은 말똥말똥하게 눈으로 그의 행동을 쳐다만 봤다. 이에 성민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는 한 쟈크 대륙에서도 귀빈을 영접할 때에나 사용하는 인사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눈만 멀건이 뜬 채, 바라만 보고 있으니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하린은 성민의 안색을 보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눈치를 주려는데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기한 인사법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새로운 문화에 정신이 빠져서 그러니 네가 이해해라.” 그 딴에는 사과한다고 했는데 성민은 반말이나 찍찍 갈기는 진이 안하무인으로 보였다. 문득 안하무인이라는 점에서 하린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빠, 진 씨는 제국인이잖아. 그러니 오빠가 이해해.” “…… 후우. 그래, 알겠다.” 성민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아랑곳할 하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성민은 하린의 뜻에 따랐다. 그것이 심신에 좋으니까. 그러나 성민은 자랑스러운 천무장원의 소장주였다. “하지만 한 마디만 해야겠다.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이 악의로 그런 것은 아니라 본다. 하지만 또한 그는 자신이 예의에 어긋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 같다.” 성민의 말은 하린도 인정하는 바였기에 아무런 반박도 못했다. 구룡탑의 고수들도 그리고 자신과 하연도 그의 말투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진은 이스트 언어를 오랫동안 배워왔기에 웬만한 한 쟈크 대륙인보다도 많은 어휘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문화에서부터 오는 언어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상대에 따라 존칭을 붙이는 것에 그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존칭을 붙이지 않아도 문장과 뜻은 성립되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진은 자신이 예의에 어긋난 말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르쳐 달라.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어떤 예의를 지키지 않았는지를…….” 진이 고개를 숙이며 가르침을 청하자 성민은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속 좁은 옹졸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의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발길을 돌렸다. “자…잠깐만요.” 하린의 당황한 음성이 그의 뒤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은 남을 만나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다.” 진은 자기 딴에는 조심한다고 했으나 그게 쉬우면 누구나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것이다. 그만큼 외국어는 힘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은 자신이 이방인이며, 외국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진은 힘없이 소나무 사이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나무 길은 햇볕을 받지 못해 짙은 음영으로 얼룩져 있었다. 진의 음울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색채. 그렇게 진이 멀찍이 사라질 때, 성민이 배에 힘을 주며 큰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제대로 인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때는 제국인과 한 쟈크인이 아닌 진이라는 사내와 성민이라는 사내가 만나는 것으로 합시다.” 성민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진의 입가로도 그와 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성민의 옆에 있던 하린은 진의 미소를 보지 못했고 대신 너무도 화가 나 그의 명치를 팔꿈치로 찍어 버렸다. 이에 그의 허리는 순간적으로 꺾여져 버렸다. 그렇게 성민이 배를 감싸 쥐며 캑캑거리고 있을 때, 하린이 혀를 내밀며 한 손으로 눈 밑살을 밑으로 당겼다. “메에롱! 칫, 이 바보야!” 하린이 가운데 손가락만 펴서, 성민에게 날렸다. 그리고 그녀는 진의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진 씨! 같이 가요!” 순식간에 분수대에서 사라진 하린의 뒷모습을 보는 성민은 허리를 펴고 있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밝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나는 최고의 처남을 얻을 지도 모르겠군.” 화림각이라고 불리는 전각에 돌아온 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음울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백현영이 화림각을 방문했다. 그는 화림각으로 들어오자마자 불쑥 이야기부터 꺼냈다. “사부님의 지시 사항을 알리겠소. 지금부터 정확히 한 달 뒤, 해 뜨는 즉시, 구룡탑 구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소.” “그게 무슨 말이…냐?” 자기 나름대로 노력은 하나, 아직도 어색했다. 그러나 백현영은 그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대신 그는 며칠 전보다 헌앙해진 진의 기도에 매우 놀랐다. ‘나와의 대결 이후, 어떠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가? 초영공의 경지까지 도달한 거 같진 않지만 그와 대결하면 필승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겠구나.’ 백현영은 은근히 감탄하는 한편, 진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여기를 떠나면 안 된다는 말이요.” “내가 죄수인가? 마음대로 떠나지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진은 사부의 원수라는 진중선의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백현영까지도 좋 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당신은 약속을 했고 나와의 승부에서 졌소. 그런 당신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 진은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대신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진이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 사부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사부가 잃은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흐음…” 백현영은 갈등했다. ‘말해줘야 하나, 말해 주지 않아야 하나.’라는 상반된 의견 가운데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애타게 갈망하는 진의 눈을 보게 된 그는 처음의 사무적인 태도를 버리고 격전을 벌였던 상대를 대하는 투로 말했다. “자네의 문제는 나도 모르겠네. 다만 자네 사부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헌트라는 사내는 쉽게 말해, 사부의 장난감이 되었네. 아니 그들의 무혼을 짓밟았다고 해야 옳겠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무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힘이 아닌 혼이지. 그들은 그것을 사부에게 부정당한 거라네.” 진은 헌트도 진중선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어쩌면 카이슨도 연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에리필이 이스트에 말할 때 짓던 씁쓸한 표정과 자신이 강해질 때마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 이해되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거 같았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알겠다. 한 달을 기다리지.” 진의 축객령에 백현영이 화림각을 나섰다. 백현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진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되어 버린 진은 흑흑거리면서도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사부님!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사부님과 아저씨들이 빼앗겼던 무혼을 돌려받겠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진은 침식을 잊고 무공수련에 몰두했다. 진은 루스카에게 명령해 한동안 해제했었던 중력을 몸에 걸었다. 그의 몸에 걸린 중력은 자그마치 40G(600kg)나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하연에게 한 쟈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의로 한 쟈크 대륙에 한동안 머물 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을 때까지. 한편, 진은 하린을 만나지 않았다. 이유인즉, 하린이 진중선의 증손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연을 물리치진 않았다. 하연이 하린의 언니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하린은 그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거기다 그의 무관심에 보내는 하루하루는 사는 게 사는 거 같지가 않았다. 한편 그녀는 화가 나기도 했다. ‘자신이 누구인데!’하는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그녀의 자존심이 작금의 사태를 용납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는 한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절로 처량해짐을 느꼈다. 쿵! 쿵! 쿵! 하린은 반복적인 땅의 울림을 느끼고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언니인 하연을 볼 수 있었다. 하연은 보름 전보다 1.5배나 불어나 있었다. 살이 찐다는 개념을 넘어서 물이 불 듯,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그녀의 몸은 ‘과연 저게 인간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연 자신도 자신의 이런 변화가 미치도록 싫었다. “언…니.” 하린의 안타까운 음성에 하연이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에 하린은 자신의 고민이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하연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흑, 언니가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야? 아무리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이럴 바에야 차리리… 흑흑흑.” 기어코 울음보를 터트린 하린은 그녀의 몸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고목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의 모습과 비슷한지라 동생을 바라보는 하연의 시선은 더없이 씁쓸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도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 자매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울기를 한참이나 지났을까? 하연이 동생을 밀어내며 침상에 가서 않았다. 부지끈! 침상도 그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쪽이 부서졌다. 이에 다시 한번 눈물을 글썽인 하연은 동생의 시선을 의식하고 애써 웃음 지었다. “하린아.” 작지만 더없이 따스한 음성에 이끌려 하린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착한 하린이는 언니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신의 손을 쓰다듬고 있는 두툼한 손을 뿌리치며 하린이 발작 하듯 외쳤다. 그러나 하연은 화를 내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해야 했다. 비록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기에. 하연은 지혜롭게 빛나는 눈으로 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린아, 너는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니?” “무슨 소리야? 우리 천무장원에서 가장 지혜로운 여인이 언니라는 사실은 한 쟈크 대륙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 하린은 일부러 과장된 음성으로 말했다. 이를 웃음으로 화답해주는 하연이었다. 잠시 후, 하연이 잠시 간의 정적을 무너뜨리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고마워. 네가 그렇게까지 나를 인정해주니. 어쨌든 네가 생각듯이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어?” “아니.” “나는 말이야. 내가 죽는 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살 거야. 그리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야. 믿을 수 있지?” “응!” 하린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펴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아직도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하연은 가슴이 아팠다. 말은 그럴 듯 하게 했으나 사실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하린을 안았다. “언니는 할 수 있을 거야!” 하린의 머릿속은 진의 대한 문제를 어느새 한켠으로 옮겨놓은 뒤였다. 진은 하린을 떠올릴 때마다 힘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그녀를 피해야 한다는 현실이 싫었다. 진은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상대를 만났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부를 괴롭힌 자의 혈육이었다. 그래서 만날 수가 없었다. 사부를 배신하는 행동인 거 같기에.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이 비록 괴로운 결정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진은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기필코 빼앗겼던 것들을 되찾으리라!’ 진의 각오는 그의 수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한 동작, 한 동작에 이 마음을 새기다 보니 매 동작이 예사로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힘이 실려 점차 진의 공격 성향이 패도적으로 변해갔다. 한편, 진은 하연에게 한 쟈크어를 배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하연에게 한 쟈크어를 배운지 보름이 지났을 무렵, 그는 한 쟈크인처럼 능숙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연은 진의 성취에 놀라워하며 그를 치켜세워주었다. “대단해요. 진 씨는 어학에 재능이 있나 봐요. 특히 순간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였어요. 하기야, 진 씨의 나이 때에 황화광의 고수가 되려면 그 정도의 집중력은 당연한거겠죠?” 진은 하연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기쁨을 감추었다. 그러나 그도 속으론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잘해주는 하연이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녀의 몸이 너무나 비대해져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그의 걱정을 읽었음인가? 하연이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 씨, 이때까지 당신을 모실 수 있어서 기뻤어요.” “무슨 말이죠? 혹시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요?” 능숙한 한 쟈크어를 구사하는 진의 모습에 하연은 그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목적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부터 다른 사람이 진 씨를 모실 거예요. 그리고 건강에는 이상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왜 다른 사람이 나를 모시는 건가요? 하연 씨는 잘못한 것도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의 진정이 담긴 말에 하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너무나 살이 쪄 목살만 접힐 뿐, 고개를 숙일 순 없었다. 하연이 슬픈 눈으로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추해보이지 않나요? 이렇게 뒤룩뒤룩 살이 찐 내가 보기 싫지 않나요? 이것 보세요. 이제는 걷기도 힘이 들어요. 차라리 당신을 위해서라도 예쁘고 참한 여자가 모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하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음성은 절규하듯 처절했다. 이에 진은 가슴에 뭔가가 응어리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답답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초 후였다. “나는 한동안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살아왔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러한 기억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죠. 나의 친구의 도움으로. 그 기억들을 한 가지씩 얻은 뒤, 다짐한 게 있는데, 그게 뭔지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하연이 물기 어린 눈으로 진을 잠시 응시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아닌 나일 때, 나는 거지처럼 살았었죠. 그리고 거지의 몰골을 하고 있었던 나를 괴롭혔던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지혜로운 당신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죠?” 진의 말에 하연의 눈이 빛을 토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는 올려지지도 않는 손을 억지로 올려 눈물을 닦았다. “고마워요. 당신의 말이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 하린이를 미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미워하는 것은 우리 증조할아버지잖아요. 그러니 하린이를 일부러 피하진 마세요.” 그녀의 말에 진은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역시 당신이 그녀의 언니였군요. 짐작은 했었어요. 하지만 일부러 인정하지 않았지요. 한 쟈크 대륙에서 유일한 내 편을 잃기 싫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아까 전에 말은 그럴 듯하게 했지만 저는 잘못 생각했었어요. 외모로 사람을 따지는 거나 복수의 대상을 확대해석해서 무고한 사람까지 미워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요? 그렇지만 전 다르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었어요. 하린 씨에게 말해주세요. 이제는 피하지 않겠다고요.” 진은 말을 하면서도 순간 자신이 하린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녀가 예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 고이 모셔둔 캐슬 오브 마스터의 그녀와 예전처럼 팔팔한 모습으로 날뛰고 있을 샤넬리에 대한 감정도 ‘그녀들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휴우, 아니에요. 그 말은 전해주지 마세요. 어쩌면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녀의 외모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그 이유만이라면 기껏 다짐한 의미가 퇴색되어 버릴 거 같네요.” 진이 한숨을 토하며 힘없이 중얼거리자 하연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그를 달래었다. “제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외모를 보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 씨가 거지 몰골로 있을 때, 천대했던 사람들이 악인이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자신을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고마워요. 역시 내 편은 하연 씨 밖에 없어요.” 진이 그녀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표하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진은 그녀의 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다만 얼른 손을 빼는 하연의 태도에 머쓱해졌을 뿐이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몸을 돌려 화림각을 나서던 하연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돌연한 행동에 진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하연의 격앙된 음성이 진의 귀를 때렸다. “…… 다음에 만났을 때, 우리 지금 보다 더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겠죠?” “그래요.” 진은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조금은 긴장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물음은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걸게 만들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때의 내 모습이 지금과 다르다고 해도 지금처럼 날 대해줄 수 있겠어요?” “…하연! 우린 지금부터 친구야. 나는 너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도 내 편이라는 사실에 한점의 의심도 하지 않아. 네가 그 망할 영감탱이의 증손녀라는 것을 알았어도 난 너를 친구로 인정했잖아?” ‘고마워요, 진!’ 하연의 육중한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천천히 화림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서있었던 자리는 뜨거운 눈물이 내를 이룬 상태였다. “삼백 육십 여덟! 삼백 육십 아홉!…….” 드래고니아가 그의 외침에 따라 허공을 긋는다. 그렇게 500번을 휘두르자 진이 조용히 호흡을 골랐다. 잠시 후, 진은 40G(600kg)라는 엄청난 중력을 해제했다. “후웁, 차앗!” 당찬 기합성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는 진의 몸은 순식간에 30여 라키르나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는 수십 번의 검을 휘두르며 발을 수백 번이나 이동해 수십 수백의 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뱀의 교묘한 몸놀림처럼 찔러 들어가는 와중에도 수십 번의 변화를 보였다. 게다가 급작스럽게 꺾이고 꺾이기를 반복하는 그의 검은 육체가 여간 튼튼하지 않고서는 시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사방팔방으로 검을 휘두르던 진이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매우 느릿하게 돌았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가 되었다. 잠시 뒤, 진의 경이적인 회전력에 대기도 빨려들었다가 그와 동화돼 수백, 수천의 바람의 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진은 이미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진은 순간순간 눈을 빛내며 검을 찔러 넣었는데 예측을 불허하는 각도와 속도였다. 콰콰콰콰! 진이 딛고 있던 땅이 엄청난 회전력과 바람에 의해 뒤집혀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5 라키르 정도 떠오른 진은 쉬지 않고 몸을 회전시켜 경이적인 회전력을 얻어냈다. 그렇게 속도를 배가 시키던 진이 검을 쫘악 뻗었다. 그렇다 보니 진의 모습은 스파이크를 부착한 팽이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츠츠츠츠츠! 대기도 엄청난 마찰력에 불을 뿜었고 진의 검에 갈가리 찢겨져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다. 거기다 진을 감싸고 있는 바람은 광풍이 되어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에너지 소드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바람 한 조각, 한 조각들은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입을 거력을 담고 있었다. 허나 바람의 끈들은 하늘로 말려 올라가 그 피해를 대지 아래로 확산시키지 않았다. 잠시 후, 진의 몸이 갑작스레 공중에서 멈췄다. “크흠…” 진은 근육이 뒤틀리는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드래고니아가 말해주는 소리에 따라 검을 휘둘러야 했다. 미쳐 날뛰는 광풍들이 자신에게서 떠나가기 전에 말이다. 순식간에 서른 두 번의 검의 변화를 보인 진은 자신의 몸을 뒤덮는 기막으로 미쳐 날뛰는 광풍을 감쌌다. 그 범위가 대략 20여 라키르나 되었으니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기의 양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막이 자신들의 진로를 막아서자 광풍은 화가 났다. 그래서 그들은 막을 찢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가려 했다. 그 순간, 광풍은 자신들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결코 항거하지 못할 거대한 힘의 이끌림에 의해. 광풍과 막을 이루던 기운이 드래고니아의 끝에 모였다. 그러나 그 막대한 기운과 광풍은 드 래고니아의 끝에 모이는 순간, 잔잔한 미풍으로 변해버렸다. 우우웅! 드래고니아는 오랜 시간의 벽을 깨고 그의 몸에 새겨진 기법을 사용한다는 기쁨에 감격의 울음을 토했다. 그 순간, 기운은 백호의 형상으로 변했고 광풍이 백호를 호위하듯 그를 감쌌다. 마스터의 경지나 되어서야 펼칠 수 있는 스피릿 트랜스가 진의 검에서 펼쳐졌다. 마스터가 되어도 각고의 수련을 통해서나 얻을 수 있는 스피릿 트랜스가 그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검에서 펼쳐진 스피릿 트랜스는 다른 마스터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츠츠츠츠! 백호를 감싸고 있던 광풍이 백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호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그것은 야수가 포효하는 모습이었다. “크르릉!” 실지 스피릿 트랜스니 환상검이니 하는 기법은 기를 형상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진이 펼친 스피릿 트랜스는 포효하고 있었다. 파지직! 백호의 입 주위로 강렬한 스파크가 피어올랐고 나선형의 회오리가 백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나선형의 회오리가 만든 길을 순간 이동하듯 저 길 끝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진은 손의 진한 감촉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사라진 백호를 따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어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후우… 백호천광무라… 이 검법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구나. 그러나 너무도 잘 어울려.” 진은 드래고니아를 돌려보내며 낮게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가 화림각으로 몸을 돌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검법이라면, 백현영 그 노인을 이길 수 있을까?” ‘이 시간 이 맘 때쯤이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반복된 생활습관과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 진은 맞은편 의자가 비어져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낀다. ‘휴우, 그녀의 빈 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구나. 그녀도 없는데 이참에 여길 나가버릴까?’ 진은 하연을 떠올리자 쓸쓸했다. 이곳에서 유일한 내 편이 지금은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리자 괜히 하린이 생각나 씁쓸하기도 했다. ‘아직은 아냐.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그녀의 외모가 아닌 그녀의 모든 것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그때 고백할 거야.’ 진은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며 팔베개를 했다. ‘하연, 하린. 그녀들과 나는 어쩌면 질긴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154화. 빙루를 찾아서. 1. 진중선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하연이를 살릴 방법이 없단 말이냐?” “……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의선 기찬혁이 비꼬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진중선은 그의 음성에 담겨 있는 감정의 편린을 감지하지 못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런 진중선이 얄미워서일까? 기찬혁이 툭 내뱉듯 말했다. “천골입니다.” “뭣? 처, 천골 말이냐?” “그렇습니다.” 간단명료하게 대답하는 기찬혁의 입가가 기이하게 말려 올라갔다. 거기에는 짐짓 혼란스러워하는 진중선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하아, 천골이라…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이냐! 어서 말해라. 천골에 있는 무엇이 우리 하연이를 살릴 수 있는지.” 진중선의 외침에 기찬혁은 도리어 화가 났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진중선의 상처는 이미 완치된 상태였다. “하아, 정말 기억이 안 나시는 겁니까?” “뭘 말이냐?” 기찬혁의 음성에서 분노를 감지한 진중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이 기찬혁을 폭발하게 했다. “좋습니다. 바로 빙루입니다. 그래도 모르시겠습니까?” “빙…루?” 진중선은 머리가 뱅 도는 듯했다. 그리고 잊어왔던 아니 의식적으로 잊은 기억들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추악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괴로웠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휴우, 사형은 십여 년 전에 금강장원과의 전쟁에서 머리를 다치셨죠. 그리고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사형은 전쟁이 있기 이년 전까지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리셨습니다. 저는 2년 전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연이의 병을 완치시키려면 빙루가 필요하다고요.” “그래. 그랬었지. 잊고 있었어. 아니 일부러 잊은 거야. 천골에 올라갈 수는 있으나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니깐. 크흑!” 진중선은 괴로워했다. 자신이 착한 인간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막돼먹은 인간인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그리고 좀 더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크하하하! 떠나겠다. 빙루를 찾기 위해 천골로 떠나겠다.” 진중성은 광소를 터트리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보는 기찬혁의 시선은 방금 전과 달리 따스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염려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허나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둬야 하기에. 진은 이른 새벽부터 기수련을 시작해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그가 정신을 차린 뒤부터 일어난 현상인데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으며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익숙해져 마치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질적인 기운에 흠칫 놀랐고 그의 감각을 마비시킬 만큼 절대적인 기운에 여행을 접고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깨어났군!” “무슨 일이지?” 진은 진중선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기에 그의 음성은 자연적으로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진중선은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 그의 괴팍한 기질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이에 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중선이라는 인물은 저런 표정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왜, 왔냐고 물었다. 그래, 나를 장난감으로 만들기 위해 온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무인의 혼을 짓밟으러 온 건가?” 진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행동은 분명 상대를 도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중성은 못 본 사이에 십년이나 늙은 얼굴이었고 눈앞에 있는 진을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이에 진은 알 수 없는 감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진중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노망이라도 나셨나? 왜 그런 얼굴을 내 앞에 들이미는 거지?” “네, 이놈!” 진중선의 몸에서 추상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에 진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진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물러선 만큼 앞으로 걸어갔다. “크크, 이제야 빌어먹을 늙은이답군.” 진의 조소에 진중선의 노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하연의 간절한 음성을 기억하며 끓어오르는 노화를 가라앉혔다. [증조할아버지, 진 씨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끊어질 듯 가는 하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순간 진중선의 노안이 더욱 초췌해졌다. 그리고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제까지 내가 했던 말은 모두 잊어라. 이 말을 하러 왔다.” “뭐, 뭐라고? 좋다. 네가 한 말은 잊겠다. 그러나 네가 범한 과오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내가 너의 목을 따 사부와 아저씨들이 고통 받았던 시간들을 보상받겠다.” 진은 말을 하는 내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진중선을 노려보았다. 진중선은 자신이 떠나는 길이 살아서 돌아올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표정을 고치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해봐라. 애송아!” 진중선은 몸을 돌려 방을 나왔다. 그러며 드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구나. 저 녀석이 우리 하연이의 배필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다니… 크크, 하지만 저 녀석은 확실히 인물이야. 인물!’ 구룡탑의 노고수들이 처음으로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홀로 천골로 떠나려는 진중선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그 결과 천골로 향하는 일행이 대폭 늘어나 버렸다. 다음 날 새벽, 천무장원을 나서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새벽안개를 은밀하게 뚫고 천무장원을 나서는 그들은 총 12명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12명이라는 숫자에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눈이 있고 사람 볼 줄 아는 자가 이들 면면을 살펴본다면 턱이 빠질 만큼 놀랄 것이다. 이들 중 단 하나만 나서도 소장원 하나쯤은 하루 안에 박살나기 때문이다. 그들이 번화가를 벗어나자, 진중선이 나직하나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전력으로 천골까지 간다. 기한은 4일, 그 이상의 시간은 허락하지 않겠다.” “옛,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동시에 그들은 허공으로 몸을 띄워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갔다. 진은 진중선이 말했던 한달이 다 되자 각오를 다진 뒤 구룡탑 구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구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해 그가 찾는 진중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심통이 난 진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망할 늙은이야! 사람을 불러놓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그의 외침이 구룡탑을 타고 ‘웅웅’거린지 얼마 있지 않아, 백현영이 헐레벌떡 구층으로 올라왔다. “이를 어쩌나 사부님은 출타하신 상태라네.” “출타라고요?” “그렇다네.” 진은 그의 대답에 안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하여튼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늙은이라니깐!” 진의 투덜거림에 이제껏 미안한 표정을 짓던 백현영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말조심하게. 자네가 무얼 안다고… 휴우, 아니네. 자네에게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지.” 진은 말을 하다 마는 백현영의 태도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와 함께 얼마 전에 본 진중선의 석연치 않은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무엇을 모른다는 말이죠? 말해주십시오.” 진의 채근에도 백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하연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천골로 가셨다. 나와 함께 갈 생각이 있는가?” “…….” 진은 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친구!’ 진은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린, 그녀를 보지 않고 떠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아님 보고 떠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후우, 그런데 그녀는 나를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그녀가 여기 오지 않은지도 꽤 되었잖아.’ “하아!” 진이 상체를 일으키며 한숨을 내셨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강해졌으니 이것이 사랑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진이었다. 결국 진은 그녀를 보기 위해 그녀의 거처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린의 거처는 작은 호숫가를 앞에 두고 듬직한 나무들이 뒤를 봐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진이 곧게 자란 나무 위에 올라가 천호각 3층을 보고 있었다. 천호각 3층에 하린이 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하린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진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가 침대에 얼굴을 묻자 진이 고개를 옆으로 틀어 그녀의 얼굴을 보려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입술이 들썩이면서 나는 소리가 진의 뛰어난 청각에 잡혔다. “언니, 미안해. 지금 언니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텐데, 나는 이상하게도 진 씨가 생각나. 그것이 너무 미안해, 언니.” 나뭇가지를 밟고 있던 진의 몸이 흔들렸다. 순간 하린이 번개같이 창문가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미 진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듯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155화. 빙루를 찾아서. 2. 한 쟈크인들은 특이하게도 국가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 성향이 국가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무를 숭상했다. 그렇다 보니 자신들의 성에 있는 장원의 힘에 따라 그 성의 우열을 매기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그들 나름의 집단을 이루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 금강장원이 몰락했다. 그리고 금강장원의 영향력 아래 돌아가던 광중성이 칠성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5년 전 중장원으로 있던 뇌풍장원이 엄청난 속도로 세력을 넓히면서 대장원의 자리를 꿰차게 되자 광중성이 잃었던 칠성의 자리를 되찾았다. 말은 쉬운 듯했다. 그러나 언제나 이인자로 지내던 뇌풍장원이 아니 실력은 이인자이나 그 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뇌풍장원이 대장원으로 올라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여기에 광중성 사람들의 열렬한 지원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는 이야기다. 그들 역시 자리를 뺏기고 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뇌풍장원을 보며 말한다. 이것은 기적이라고. 그리고 그 기적을 이룩한 이에게 한 쟈크인들은 경외감이 깃들인 음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뇌풍신검 풍철산!” 그렇다. 그가 오늘의 뇌풍장원을 있게 만든 당사자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낯빛을 굳히고 있다. “정녕 그러셔야 되겠습니까?” 풍철산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풍철산의 굳은 얼굴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결연하다. “하아, 이제 막 우리 뇌풍장원이 잃었던 자리를 되찾았는데…… 정말 너무 하십시다, 장주!” 노인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을 참지 못해서일까? 꽉 쥔 주먹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풍철산도 노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라고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잃었던 자리를 찾았으니 잃었던 물건을 찾아야 할 때이다. ‘내 영달을 쫓기 위해 선조의 한을 풀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가야 할 때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풍철산이 결연한 빛을 눈에서 뿜어내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노인의 손을 꼬옥 잡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소진이를 잘 부탁하네.” “장…주….” “하하하! 누가 보면 꼭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대하는 군.” 짐짓 호탕한 음성으로 말하지만 그의 얼굴에 어쩔 수 없는 씁쓸한 고소가 걸린다. 이를 보는 노인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노인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장주는 그런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인은 가슴에다 공허한 메아리만 만들 뿐이었다. ‘가보가 무엇이기에… 그 천골에 가신단 말입니까?’ 잠시 멈췄던 눈물이 또 다시 흘러내린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 순 없었다. 나이 값 못한다고 핀잔 들을 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만들었다. 뜨거운 눈물이 입 안으로 들어와 짭짭한 느낌을 주었지만 노인은 끝까지 웃었다. 눈앞에서 장주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북궁소소는 해맑은 웃음이 예쁜 아이다. 그러나 몇 년 전 동생인 북궁민이 자리에 눕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동생은 여전히 병상에서 병마와 씨름하고 있고 명의라고 불리는 자들은 고개만 흔들 뿐이다. 처음에는 일부러 웃지 않았다. 자신이 웃으면 괴로워하고 있는 동생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웃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웃을 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몇 년 만에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도련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다며?” “몰랐어? 그 천골인가 뭔가 하는데 있는 빙루만 있으면 된다고 하던데?” “그래?” 동생의 병간호를 해주는 시녀들이 하는 말에 북궁소소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 뒤에 이어지던 시녀들의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며칠 후, 북해장원이 발칵 뒤집혔다. 북궁소소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후, 대대적인 수색대가 파견되었지만 그녀를 찾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의 행선지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데. 그것이 꽤나 머리 아프게 했다. “이 아이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크흑!” 백아성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북해장원의 장주인 북궁천이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이제는 아들도 모자라 딸까지 그의 속을 썩이는 것이다. 더구나 북궁소소가 실력이라도 약하면 파견한 녀석들이 잡기라도 할 테지만 그녀는 그 나이 때에서는 수위를 다투는 실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중도에 잡을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자신이 지금 출발해도 그녀를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아… 제기랄!” 한숨을 쉬던 북궁천이 그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소소 때문에 장주가 많이 괴로운 가 보구려.” “하, 할아버님!” 북궁천은 전전대 장주인 북궁신이 나타나자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북궁신은 일어서려는 그를 간단한 손동작으로 만류했다. “허허, 예를 차릴 필요 없네. 몇 마디 말만 하고 바로 나가볼 테니깐.” 북궁천은 자리에서 안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로 있다 북궁신이 미소 짓자 그제야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소소를 데려오겠네.” “네에? 아무리 할아버님이라도 천골에 오르기 전에 소소를 데려온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소소가 떠난 지 적어도 칠일은 되었지 않습니까?” 지극히 논리적인 그의 말에 북궁신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인 북궁신이 얼굴을 찡그리자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 지옥의 야차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이에 질겁한 북궁천이 자리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였다. “허허, 장주는 나이를 헛먹었구려. 설마 이 나이가 되어 내가 장주를 때리기야 하겠소?” 얼굴을 펴며 너털웃음 짓는 북궁신의 말에 바닥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던 북궁천이 속으로 투덜댔다. ‘불과 일년 전에도 패셨으면서. 에고 내 신세야!’ 그의 속내를 알길 없는 북궁신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내 갔다 오리라. 그리고 천골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내 사제들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하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허억!” 할 말을 다 마친 북궁신이 몸을 돌려 대전을 빠져나가려 할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북궁천이 입을 열려했다. 그러나 그는 대전 문밖에서 북궁신을 조심스레 훔쳐보는 노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최소한 노인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며 얼굴을 쓰다듬었다. ‘휴우, 대들지 않기를 잘한 건가? 최소한 아버지처럼 맞진 않았으니깐 말이지.’ 그의 눈에 북궁신이 나오자마자 다리를 붙잡고 떼를 쓰는 그의 아버지 북궁소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 북궁신의 발에 차여 뒤로 나뒹굴어지는 북궁소의 모습 또한 보였다. 다시 한번 한숨을 쉬는 북궁천이었다. 백현영은 진에게 미안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골에는 들어가는 길은 있어도 나오는 길은 없다.- 이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 끝내 미안했다. 앞날이 창창한 청년을 사지로 끌고 가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그는 살아 돌아올 자신이 있었다. 천골이 제 아무리 사지라 할지라도 초영공에 오른 자신이라면, 먼저 떠난 자신들 일행의 능력이라면 없는 길이라도 만들어서 돌아올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진을 꼬드겨 천골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진은 자신이 천골로 가는데 중요한 명분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데리고 가야 했다. 천골행 명단에서 자신은 서열에서 밀려버렸기 때문이다. ‘하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한 쟈크인 치고 천골에 대한 기묘한 충동을 느끼지 않는 이는 없으니깐.’ 그는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시키며 천산을 올려다보는 진에게 말했다. “천산은 대장원인 태백장원이 있는 운현성과 진초성 사이에 있는 산이라네. 그리고 보다시피 천산의 높이는 해발 6000망(2미터)이 넘는데 봉우리만도 일천여개가 된다고 하네. 한 마 디로 어마어마한 산이지.” 그의 말에 진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감탄을 터트렸다. 그의 순박한 모습에 백현영은 가슴이 뜨끔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만약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나를 용서하지 말게.’ 가슴속에다 던진 말은 그 자리에 남겨두고 백현영과 진은 천산을 타고 있었다. 휘이잉! 싸늘한 바람이 나선형의 절벽을 타고 매섭게 산 아래로 내려간다. 바람은 산을 오르는 이들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고 그들의 중심을 쉴 새 없이 흔든다. 거기다 비탈길은 한 사람이 올라갈 너비밖에 되지 않으며 한발만 삐끗해도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니 모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산을 타는 이들은 절로 조심을 기할 수밖에 없다. 진과 백현영이 해발 5000 라키르를 올라가자 자연적으로 산의 중심부로 들어서게 되었고 이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미친바람처럼 사방에서 불어대는 매서운 한기와 거울보다 더 매끄러운 빙판길, 그리고 눈 덮인 산은 그들의 체력을 뺏어갔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천산은 하얀 죽음의 덫을 놓아두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네. 아무리 나와 자네가 강하다 할지라도 자연의 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네. 그러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네. 우선 큰 소리로 말하지 말게. 좌우에 있는 봉우리가 울려 눈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네. 이곳 천산의 눈사태를 여느 산의 눈사태와 비교하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네. 그리고 바닥을 조심하게. 대부분은 두꺼운 빙판으로 되어 있지만 어떤 곳은 절벽 위에 얇은 얼음과 그 위에 조금의 눈이 덮여 있기에 그야 말로 천연의 덫이라 할 수 있네.” 백현영의 조금은 지겨운 설명에 진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앞은 은백의 세상이었다. 은근한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가루들은 만지면 스르륵 녹을 것 같았으며 그 위에 몸을 뒹굴면 반짝이는 가루들이 그와 함께 춤을 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백현영의 표정이 워낙에 진지한지라 진은 그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앞서 올라왔던 길도 그가 설명했던 것보다 훨씬 험했기 때문이다. 진은 그의 말대로 조심조심하며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몇 발짝 옮기자 조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매서운 한풍에 방한복을 입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보는 진이었다. 그때였다. 콰지직! “허억!” 진은 아무 생각 없이 내딛은 발에 의해 은빛대지가 무너지며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는 것을 보며 그도 소리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순간 등줄기를 타는 소름에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리고 그는 예전에 떨어졌던 절벽을 상기하며 얼굴을 굳혔다. 그 순간, 천지가 뒤흔들렸다. 쿠아아앙! 진은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눈앞에서 은백의 파도가 사나운 기세로 그들을 향해 몰아치는 것을 목도했다. 백현영은 다급히 말하며 몸을 돌려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는 멍하니 있는 진에게 외쳤다. “젠장! 큰 소리 내지 말라니깐! 뭐하나? 빨리 뛰지 않고?” “예? 허억! 진은 바로 눈앞에까지 도착한 은백의 파도에 기겁하며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얼마 후, 자신들이 올라왔던 길로 쏟아지는 은백의 물결을 진과 백현영은 거친 호흡은 아랑곳 않고 망연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잠시 뒤, 산사태가 잠잠해지자 눈앞에는 전과는 다른 지형이 형성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발 말썽피우지 말게.” “…….” 눈을 부라리며 말하는 그에게 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과 백현영이 해발 8000 라키르를 올라섰을 때는, 어둑한 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어둠 따위는 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매서운 한풍과 거센 눈발에 그들의 진군속도는 자연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은산에 족적을 남기며 산을 올랐다. 얼마 있지 않아 지워질 족적이지만. 천혜봉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천혜봉에 가까워질수록 매서운 눈바람이 점점 잔잔해졌다. 그렇다고 하여 화원을 거니는 미풍처럼 푸근한 바람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이 천혜봉을 눈앞에 두고 천산이 펼쳐놓은 마지막 관문을 맞이했다. “여기가 바로 파빙호라네.” 백현영의 말에 진이 감탄을 터트렸다. “우아, 이렇게 높은 곳에 이 정도로 커다란 호수가 있다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가 없을 정도네요.” “하하하, 이런 게 바로 자연의 신비 아니겠나? 그렇지만 파빙호를 건너지 못하면 천혜봉에는 오를 수가 없네. 뭐, 그거야 파빙호 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저 천혜봉을 본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하.” 백현영의 넋두리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그는 당장에라도 파빙호를 건너려 했다. 이에 기겁한 백현영이 그를 만류하며 재빨리 말했다. “자네가 파빙호가 절야빙이라고 불리는 이유만 알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네.” “무슨 말이죠?” “허허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뭐라고요?” 진이 발끈하자 백현영이 손을 내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어쨌든 이곳 파빙호는 절야빙이라고 불린다네. 그 이유는 밤에 뿜어대는 한기가 워낙에 대단한지라 그때 건너다가는 쉽게 말해 절단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 이걸 보게.” 백현영이 이해를 돋기 위해 방한복 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파빙호에다 던졌다. 치지직! 동전은 파빙호의 수면에 닿는 즉시 연기를 일으키며 얼음에 뒤덮였다. 이에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린 진은 자신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행동을 하려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진은 새삼 자연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자연에 비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익히 들어온 이야기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니 새롭게 다가왔다. 뭐라고 해야 할까? 머리로 이해했었던 것이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고 하면 맞을 듯했다. 이러한 생각은 진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사색에 빠져있게 만들었다. “자, 그럼 어디 출발해볼까?” 해가 중천에 자리 잡자 백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기색을 보인 진이 뒤늦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애란 말이야. 허허.’ 백현영은 진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백현영이 진을 보며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비록 해가 떴다고 하나 파빙호를 만만히 봐서는 안 되네.” 그의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던 진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도움닫기를 하여 번개 같이 몸을 날렸다. 진은 한번의 도약에 근 80 라키르를 날았다. 그리고 발끝으로 파빙호의 수면을 찍는 순간, 그의 몸은 80 라키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게 그의 몸은 날듯이 파빙호를 질주했다. 이에 한발 늦게 출발했던 백현영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러나 그는 초영공의 고수답게 놀란 것과는 상관없이 물 찬 제비처럼 파빙호를 질주하고 있었다. 천산의 제 일봉인 천혜봉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매우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이곳에 이 세상이면서도 이 세상이 아닌 골짜기로 통하는 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은 뚝 끊겼다. 천혜봉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단이 있고 사방으로 뻗은 계단은 그 단을 향해 모아졌다. 그리고 단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붉은빛 비석이 원을 그리며 열두 곳을 점하고 있다. 마치 단 위에서 마력적인 빛을 뿜어내는 광구의 유혹으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천혜봉을 오르자마자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사이한 빛을 토하는 커다란 구슬이었다. “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거 같아요.” 진의 감탄사에 백현영이 뭐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겨 붉은 비석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그들의 동공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빛깔을 내고 있는 광구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그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광구가 보내는 마음의 소리에 손을 뻗어 그것을 만졌다. ‘물컹’하는 느낌을 받는 순간, 그들은 광구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또 다시 밤이 찾아오자, 절야빙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천혜봉은 싸늘한 정적을 맞이했다. 156화. 천골에는... 1. “이거 참.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야?” 진중선은 허허벌판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대지를 보며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대지를 뒤덮고 있는 하얀 기체들을 손으로 걷어내며 성난 음성으로 외쳤다. “젠장! 또 이 안개 같은 것들은 또 뭐냐? 걸치적거리잖아!” 진중선이 짜증을 내자 그와 같이 온 11명의 노고수들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눈은 자연적으로 지좌 우권영을 찾았다. “험험, 이 하얀 기체는 말입니다.” 그가 입을 떼자 모두는 기대에 찬 시선으로 우권영을 바라보았다. 아울러 진중선 마저 열기를 담은 눈길을 보내자 당황한 우권영이 등 뒤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제가 본 고문서에서는 이 기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제 3의 기운이라고요. 그리 고 이 제 3의 기운이라는 것은 고대 이전에 존재했던 신의 종족이 사용했다는 기운일지도 모른다는 필자의 짧은 소견이 적혀 있었습니다.” “호오 신의 종족?” 뜻밖에 진중선이 관심을 보이자 우권영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렇다 보니 그는 사족까지 곁들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신의 종족이란 말에 흥미를 느낀 저는 그가 저술한 다른 문헌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 책은 한 쟈크 대륙에서 이단시되어 사장되어 버린 책이었습니다. 이에 이상함을 느꼈으나 그 책을 읽자 왜 사장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허, 말이 길어지는 구나!” 진중선의 눈에 어려 있던 열기가 터지기 직전의 화산이 뿜는 열기로 변질되었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우권영이 요점만 간단히 말했다. “그 책은 신의 종족이 살던 시대를 초고대라고 했으며 우리 한 쟈크 대륙인이 그 신의 종족의 노예였을 거라고 서술했습니다.” “어디 감히! 커헉!” 성격 급한 지천우가 눈치 없이 나섰다. 그러나 그는 진중선의 쓰다듬음에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계속해!” 우권영이 멈칫하자 진중선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에 황급히 입을 여는 우권영이었다. “어쨌든 그 신의 종족은 엄청난 문명을 이룩했을 것이며 제 3의 기운이라는 신의 기운을 이용하여 이 땅의 지배자로 군림했을 거라고 합니다.” 우권영이 말을 끝맺자 진중선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잔잔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게 다냐?” “…예.” “박어!” 진중선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던진 한 마디에 우권영은 어느새 머리를 박고 있었다. 제 아무리 명성이 높은 지좌 우권영이라 할지라도 진중선의 명은 지엄한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이래서야 나 원.” 진의 말에 백현영 역시 암담했다. 자신이 천골을 너무 쉽게 본 듯했다. 천골에 오르기만 하면 진중선 일행을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천골은 처음에 보면 넓게 펼쳐져 있는 대지와 같다. 그러나 몇 발짝 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길이 나타난다. 넓게 펼쳐져 있던 대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이다. 아무튼 길이 나타나자 진과 백현영은 ‘옳다구나!’하며 길을 따라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현실에 황당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눈을 밝혀야 했다. 쉽게 말해 이곳 천골은 복잡한 미로와도 같다. 벽은 없으나 그 어떤 미로보다 복잡한 미로가 바로 천골이었다. 두 사내는 미로와도 같은 천골을 만 하루 동안 헤맸다. 그러나 자신들이 원하는 길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그들은 낙담한 상태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진과 백현영은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미로를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벽 같지도 않은 벽에 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웅! 갑자기 공명음이 터지며 진의 손에 드래고니아가 나타났다. “허억, 이건 뭔가?” 진과 드래고니아를 번갈아 보며 놀란 음성으로 묻는 백현영이었다. 하지만 지금 진은 드래고니아가 전하는 사실에 놀라 백현영의 물음에 답해줄 여력이 없었다. 잠시 후, 진이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랬었구나!” “무슨 말인가? 그리고 이 검은 또 뭔가?” 백현영은 단 둘 뿐이지만 자기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그보다 한참이나 어린 진이 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다. 솔직히 70이 넘은 나이에 괜한 호승심이 발동했다고 할 수도 있으나 백현영은 이미 진을 자신과 같은 반열의 무인으로 인정하였기에 그와 진 사이의 나이는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혼자만의 생각이긴 했지만. 진은 잠시 그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의 기세가 기이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허둥대며 말했다. “아, 이거 말입니까? 음… 죄송합니다. 저 역시 이 검이 어떤 검인지 잘 모르는지라 뭐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드래고니아, 이 검의 이름입니다. 드래고니아가 말하기를 이곳의 벽과 같은 곳을 깨뜨려야만 다음 길이 나온다고 하네요.” “하하, 그렇단 말인가? 우리가 이때가지 헤맸던 것이 참으로 허무해지는구먼.” 백현영은 드래고니아라는 검에 대해 궁금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노련한 그는 진이라는 사내가 말해줄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말해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이 것을 깨뜨리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마침 제가 검을 들고 있으니 제가 벽을 깨뜨리겠습니다.” 진의 말에 백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의 눈은 시종일관 드래고니아에 못 박혀 있었다. “하압!” 진이 기합을 토하며 벽 같지도 않은 벽에 드래고니아를 휘둘렀다. 쾅! 찌이잉! 드래고니아와 충돌한 부분에서부터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그들을 막고 있던 공간이 깨졌다. “아~” 백현영이 입을 벌리며 감탄을 터트렸다. 벽을 깨드리기 전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느낌이 달랐다. 그가 감탄하며 벽 너머로 한발을 내딛는 순간, 드래고니아에서 다시 한번 공명음이 터졌다. 우웅! “음…” 한발 앞서 있던 백현영이 뒤로 돌아보며 진을 보았다. 진은 잠시 드래고니아를 보다 백현영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하하, 왠지 드래고니아가 우리를 어딘 가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군요. 그 끝에 빙루가 있을 지, 일행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의 말에 백현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깨어진 공간 뒤는 이전처럼 길만 있는 삭막한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는 시내도 있었고 나무도 풀도 있었다. 그런데 진은 이상하게도 시내를 따라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옆의 둔덕을 탔다. 이에 백현영은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물어도 진 역시 모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샛길로 새어 걸었을까? 이제는 하얀 수증기를 뿜는 시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듬성듬성 보이던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처음에 봤던 허허벌판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느낌이 달랐다. 처음의 그곳은 칙칙한 죽음이 가득 찬 곳이라면 이곳은 분명 미약하나마 생기가 느껴졌다. 백현영이 이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그는 엄청난 기운이 자신들 쪽으로 쇄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느끼자마자 기운의 정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헉! 피하게!” 말은 그렇게 했으나 피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에 기운을 느끼자마자 모으고 있던 기를 터트리며 새파란 빛을 뿜는 구에 맞섰다. 쾅! 백현영은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비록 순간의 기지로 정체 모를 구를 옆으로 돌리기는 했으나 내장이 상한 듯했다. “우웩!” 목까지 차올랐던 피를 기어코 토하는 백현영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며 하체에서 힘이 풀렸다. 그 순간 그의 안색이 창백히 굳어졌다. ‘저 새파란 구를 쏘아 보낸 자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헉!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먼 곳에서 공격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이 지경이 되었다. 비록 기습적인 공격이라 온 힘을 다하진 못했다 하나… 이 자 강자다!’ 백현영이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공격을 했던 자가 눈앞에 도착했다. 백현영은 자신이 상대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한 발자국을 움직이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낭패가! 허허!”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그는 그의 앞을 막아서는 듬직한 등을 보았다. ‘이 녀석이 나를 위해? 허허허!’ 백현영은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또한 이상하게도 진이라면 ‘안심을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진이 힘차게 외쳤다. “이 녀석은 제가 맡겠습니다.” 진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눈은 무심했다. 또한 차가웠다. 만약 빙루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사내의 눈이 빙루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진이었다. 사내는 진이 노려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자신의 거처를 침범한 자를 공격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저러한 살기어린 눈빛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쿠아아!” 괴수의 포효가 저러할 듯했다. 그와 함께 진의 눈앞에서 사내가 사라졌다. “어딜!” 진은 대각선으로 치달리며 드래고니아를 휘둘렀다. 예상했던 대로 상대는 그의 왼쪽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찌이잉! 드래고니아와 사내가 들고 있던 기형검이 부딪히기 직전 귓가를 진동시키는 공명음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은 드래고니와 기형검이 격돌하면서 터진 공명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쩌쩌정! 커다란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수천 배 증폭되어 공간을 울렸다. 순간 진과 사내는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 소리가 백현영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 보니 백현영은 두 사내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귀를 틀어막고 있던 진과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두 사내의 눈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피처럼 붉은 빛이 그들의 동공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의 입에서 음산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드래고니아의 주인… 승부를…” “내야 한다. 힘의 서열이 곧 그분의 뜻이기에.” 사내의 말을 끊으며 뒷말을 잇는 진의 음성 또한 음산했다. 백현영은 이 기괴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그의 놀람은 두 사내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것에 잠시간 중단되어야 했다. 쾅! 드래고니아들의 충돌에 주위에 있던 하얀 기체들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또한 사내와 충돌한 진은 충돌 즉시 10여 라키르나 튕겨나갔다. 하지만 사내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뒤로 밀렸을 뿐이다. 평소의 진이라면 엄청난 실력 차에 망연자실했을지도 모르나 붉은 눈으로 변해버린 진은 이에 아랑곳 않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사내에게 검을 휘둘렀다. 쾅! 쾅! 쾅! 뒤로 튕겨졌다가 다시 돌진하는 식으로 공격하는 진의 막무가내 전법에 백현영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드는 생각에 백현영은 소름이 돋았다. ‘이제는 나와 맞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을 만큼 강해진 그가 이리도 일방적으로 밀리다니. 그렇다면 저 사내는 도대체 얼마만큼 강하단 말인가?’ 그러나 백현영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진은 기는 조금도 운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붉은 눈이 되는 순간부터 드래고니아가 가지고 있는 기운만을 가지고 전투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싸움은 백현영의 예상과는 달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부딪히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진이 튕겨나가는 거리가 좁아지고 있었다. 전투를 시작한 지 1시간이 넘어서자 이제는 1,2 라키르 정도밖에 튕겨나가지 않는 것이다. “쿠아오!” “쿠아오!” 진의 입에서도 괴수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에 화답하듯 사내도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두 사내는 지근에 붙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조금의 제약도 없는 듯했다. 도저히 찌를 수 없는 곳에 몸을 기이하게 틀며 찌르는 가 하면 그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검을 베는 그들이 백현영의 눈에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눈 한번 깜빡할 순간에 수십합을 섞어버리니 백현영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더구나 두 사내는 전투를 치루는 과정에서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두 사내의 주위에 있던 하얀 기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순간 사내와 진은 약속이나 한 듯 상대를 향해 휘두르던 검을 멈추었다. 잠시 후, 어디서 공급되었는지 대기가 하얀 기체들로 가득 차자 두 사내는 검을 섞기 시작했다. 진은 수많은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로 인해 혈인이라 말해도 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사내 역시 마찬가지긴 했지만 진보다는 조금 나았다. 허나 그것은 비교대상자체가 진이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봤을 때, 사내 역시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두 사내는 처음에는 상대를 죽일 듯이 검을 휘둘렀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 대기는 살기에 젖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격돌한 지 하루가 지나자 그들은 상대를 향해 공격하는 것인지 홀로 검무를 추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의 일검 일검이 예전의 일검과는 또 다른 경지로 넘어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진은 자신이 만든 정신세계에서 검무를 추고 있었다. 그 검무는 천무장원에 있을 때 추었던 검무였으며 드래고니아가 가르쳐주었던 검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검무가 변했다. 예전에 검무를 출 때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추는 검무라면 몇 날 며칠 동안 추라고 해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자신의 검무가 더 이상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현재 자신이 비상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진은 탄식을 터트리며 눈을 떴다. 눈앞에는 혈인이 되다시피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지금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지금 웃고 있음이 느껴졌다. “크큭, 크하하하하!” “푸하하하하!” 두 사내는 서로를 향해 대소를 터트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두 사내는 약속이나 한 듯 웃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검끝을 상대를 향하게 했다. “많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승부를 가려야 하겠지?” 진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제 최후의 격돌만이 남았을 뿐이다. 진은 드래고니아의 이끌림에 의해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아니 회전시키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몸은 수천, 수만의 바람 안에 들어가 있었다. 또한 전에는 32번의 검의 변화를 허공에다가 만들었다면 지금은 128번의 검의 변화를 허공에다가 만들었다. 그리고 각 방위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기막을 형성해 광포한 바람을 가둬 들였다. 그런데 그 기막이란 것이 예전에 만들었던 20 라키르를 훨씬 능가하는 100여 라키르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만큼 단기간에 진의 성취가 높아진 것이다. 광풍은 알 수 없는 막이 자신들의 진로를 막아서자 화가 나 더욱 발광했다. 하지만 진은 이러한 광풍의 반발에 익숙해 있었던 지라 어렵지 않게 광풍을 제어해 그 기운을 드래고니아의 끝에다 모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광풍은 드래고니아의 끝에 모이는 순간 잔잔한 미풍으로 변해버렸다. 우우웅! 드래고니아가 울음을 토하며 진의 기를 끌어왔다. 그리고 그 기운은 점차 백호의 형상으로 변했고 또 다시 본연의 미친바람으로 돌아와 백호를 호위하듯 그 주변에서 휘몰아쳤다. 츠츠츠츠! 백호를 감싸고 있던 광풍이 백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호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그것은 야수가 포효하는 모습이었다. “크르릉!” 파지직! 백호의 입 주위로 강렬한 스파크가 피어올랐고 나선형의 회오리가 백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나선형의 회오리가 만든 길을 따라갔다. 사내의 검은 쉴 새 없이 허공에다가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검끝이 점했던 곳들이 연결되면서 거대한 불사조가 완성되었다. 불사조는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사내의 검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부채질하자 허공에 떠 있던 불사조가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 말은 길었으나 두 사내가 기술을 마친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죽하면 초영공의 고수인 백현영의 눈에 그들이 검을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두 영물이 충돌을 일으키겠는가! 백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나선형의 회오리가 불사조의 날개 짓에 허공에서 공회전을 하다 하늘로 말려 올라갔다. 그 순간 공간을 격한 백호와 불사조의 충돌이 뜨겁게 달구어진 대기에다 불씨를 놓았다. 쿠쾅쾅! 백호천광무와 불사천열무가 충돌을 일으키자 방경 1 수키르에 이르는 모든 땅거죽이 뒤집어지며 하늘로 떠올랐다. 백현영은 그들이 전투를 치루는 것을 보며 일치감치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에 별 피해를 보진 않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려 하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곧 기로 충격파를 차단하여 떠오르는 몸을 대지에 꼿꼿이 박을 수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부산물들이 땅으로 내려왔으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바짝 마른 대기에 강력한 에너지들이 충돌하자 스파크가 터지며 탈 것도 없는데 불씨들이 허공에서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에 턱이 빠질 뻔한 백현영은 이내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자욱해진 대지를 샅샅이 살폈다. 진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백현영은 너무도 걱정이 되어 격전장이었던 것으로 몸을 이동하려 했다. 그 순간 파지직 하는 스파크가 격전장 전역에서 터지며 다시 한번 불꽃이 허공을 떠다녔다. 이에 또 한번 놀란 백현영이 멈칫하는 순간 땅들이 가루가 되면서 뿌옇게 변해버린 대기를 뚫고 한 사내가 나왔다. 그는 바로 진이었다. 진은 자신과 싸웠던 사내를 안고 있었다. 이에 백현영은 기쁘기도 했으나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가 자신이 알고 있던 진이 맞는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이를 눈치 챘는지 진이 뒷머리를 긁지는 못하고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자네가 맞군.” “그렇죠? 하하.” 진의 멋쩍은 웃음에 백현영이 기어코 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그의 웃음은 뿌옇게 변해버린 대기와 불의 요정처럼 허공을 배회하는 불꽃들을 일시에 해소할 만큼 시원스런 것이었다. 157화. 천골에는... 2. “호오, 이런 곳이 있었군.” 진은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올라가다 울창한 숲 너머의 선경에 눈을 빛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러나 진의 이런 반응에도 사내는 묵묵부답. 자신의 거처로 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쏴아아아아! 귀청이 얼얼할 정도로 굉음을 내는 폭포는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잔잔한 호수를 때리는 힘은 수백 라키르가 넘는 폭포의 광포함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폭포의 광포한 힘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욱한 수증기 아래에 감추어져 운무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잠룡을 연상시켰다. 사내는 폭포를 향해 다가가다 호수의 끝 쪽에 다다랐다. 그리고 사내는 무릎을 굽혀 바닥이 보이는 맑은 호수 물을 떠다 입안에다 털어 넣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단순히 갈증을 풀려는 의도보다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해 옆에 있던 진과 백현영도 괜스레 엄숙해졌다. 퐁퐁퐁! 다시 한번 물을 뜬 사내가 물을 마시다 말고 나머지 반을 호수에다가 도로 뿌렸다. 그리고 사내의 한 발짝 내딛자 발끝이 호수를 갈랐고 호수의 반대편인 폭포마저도 양쪽으로 갈라졌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듯한 그 모습에 놀란 진과 백현영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러나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갈라진 호수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수의 반쯤을 지나갔을 때, 사내가 뒤돌아보았다. ‘어서 따라와!’ 사내의 눈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진과 백현영이 천천히 호수바닥을 밟았다. 그런데 호수바닥은 생각 외로 축축하지도 않았으며 늪처럼 푹 빠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진과 백현영은 별 어려움 없이 호수를 건너 반쯤 갈라진 폭포 사이로 들어갔다. “우와! 대단한데?” 어두컴컴할 줄 알았던 동굴이 의외로 환하자 진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를 살펴보는 그의 눈동자는 강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끝내 환한 빛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고 동굴 끝에 도착했다. 그 뒤를 백현영이 눈을 빛내며 뒤따르고 있었다. 동굴 끝에는 방 하나 정도의 굴이 파여 있었다. 그 안에는 간단한 생활도구랑 침대, 그리고 낡고 오래된 듯한 책상 하나가 있었다. 책상 위에는 먼지를 듬뿍 먹은 책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사내가 그 책을 건네면서 간단히 말했다. “보시죠!” “이걸 보라고?” 진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 쿨럭, 쿨럭…!” 책을 털며 말하던 진은 책 위를 점령하고 있던 먼지에 기침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책을 덮고 있던 먼지가 허공과 바닥으로 날아가자 진은 누런 책의 표지를 대할 수 있었다. “선우가…” 뒤에 쓴 글은 일부러 지웠는지 도무지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진은 미련 없이 책장을 넘겼다. 진은 처음에는 이 낯선 사내의 정체에 대해 알아볼 겸해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에는 의외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책에 몰입하여 옆에서 사내와 백현영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이 책을 발견하게 될 자는 둘 중의 하나 일거라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 선우가에서 보낸 사람이거나 또 하나는 내가 발견한 고대 이전의 검을 소유한 자 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아마도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린이가 외인을 이곳에 안내할 리 없으니 말이다.” 진은 뒷내용이 궁금하여 서둘러 다음 장을 넘겼다. 그렇게 몇 장을 읽다 보니 진은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비록 진이 한 쟈크 대륙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보낸 얼마간의 시간은 금강장원이 얼마나 강대한 세력이었는가를 가르쳐주고도 남았다. “아내와 천골에 들어온 지 몇 십 년이 흘렀다. 이곳에서 우리 린이는 태어났다. 그렇다 보니 우리 린이는 기를 익히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에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천골을 감돌고 있는 특이한 기운 때문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하늘의 복인지 린이는 이곳의 기운을 힘으로 승화시킬 무구를 얻었다. 이것은 선우가 인간들에게도 말해주지 않은 사실이다.” 다음 장을 넘긴 진은 누런 백지를 보았다. 잠시 숨을 돌린 진은 뒷장을 넘기며 또 다시 책에 몰입했다. “우리 선우가의 초대장주인 선우인은 위대한 군왕 반 드워드의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선우인은 반 드워드가 사라지자 흉심을 드러내어 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부렸다. 물론 세상에는 선우인이 사라진 반 드워드를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당시 권력을 휘어잡고 있던 선우가의 사람들이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쨌든 선우인은 잠시나마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 권력은 십년이 채 못 갔다. 선우인이 권력에 눈이 먼 자들에게 죽고 난 뒤, 우리 선우가의 세력은 눈에 뛰게 줄어들었고 우리는 음지로 숨어들었다. …… 중략 금강장원은 대장원이 된 뒤에도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서 들었는지 반 드워드의 유품이 천골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결국 그로 인해 나와 같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계약을 맺은 한 사람과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간들이 희생되었다. 나와 같은 불쌍한 인간들은 선우가에서도 한 세대에 한 명밖에 타고나지 않는 거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한명이 왜 도대체 나여야 하냔 말이다. 제기랄!” 책은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내의 절규로 끝을 맺는 듯했다. 그렇게 책을 덮으려는 순간 선우린이 진의 손을 붙잡으며 뒤표지 앞면을 가리켰다. “아!”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복잡한 심사가 느껴지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그 녀석들이 이곳에 있다. 어째서 그들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들은 광중성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짧은 네 문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사해주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잠시 멍하니 있던 진이 백현영에게 책을 건넸다. 백현영은 솔직한 마음으로 궁금했던 차라 급히 읽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그의 표정은 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이럴 수가!” 글을 쓴 사람과 똑같은 고백을 하는 백현영은 머리가 아득해져 옴을 느꼈다. 그와 함께 진중선 일행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그러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상기하자 픽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들을 걱정하기 전에 자신들의 안위나 걱정해야 했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비사가 바로 여기에 있었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진이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군요. 글을 읽다 보니 느낀 건데 이 분은 왜 천골에서 나가지 않으셨을까요?” 그의 말에 백현영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는 지금 동시에 두 가지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몇 십 년이나 살았던 사람조차 천골에서 나갈 방도를 찾지 못했단 말인가? 허허, 그렇담 나는 영락없이 이 자리에서 이 녀석에게 맞아 죽어야겠군.’ 그는 마음이 차분해지자 도리어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자신의 당혹스러움보다도 의혹에 찬 진의 시선이 그는 더 부담스러웠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있네.” 백현영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속였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의외로 진은 담담했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자네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 않은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백현영에게 진이 담담한 미소를 보냈다. “물론 죽이고 싶도록 밉습니다. 하지만 뭐,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니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의외로 삶에 초탈한 모습을 보이는 진이 백현영 자신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때,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우린이 입을 열었다. “이 책에 적진 않으셨지만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천골을 나갈 수 있는 문을 찾으셨습니다. 물론 선우가의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능력자와 계약한 자는 능력자가 밝히지 않은 사실까지 끄집어 내갈 수 있단 것을 말입니다. 그것을 아버지께서는 모르셨던 것입니다.” 선우린의 말에 백현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의외로 진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에 의아함이 생긴 백현영이 물었다. “자네는 기쁘지도 않은가?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닌 거는 알지만 너무 무덤덤한 거 같네 그려.” “하하하, 그런가요? 그렇지만 이것 또한 짐작했던 바라서.” “뭐라고?” 백현영은 진의 말에 크게 놀랬다. 만약 진이 한 말에 타당한 이유가 성립된다면 그는 진을 또 다른 눈으로 봐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하,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금강장원이 천골로 들어왔으니 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 아!” 진의 말에 그도 깨닫는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질렀다. “그렇군. 그들의 야욕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이야기군.” 백현영의 말에 진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옆에서 선우린이 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선우린은 백현영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엇! 왜 이래?” 진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절을 하는 선우린의 행동에 기겁하며 그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선우린은 요지부동. 도무지 움직일 줄 몰랐다. 결국 그를 일으키는 것을 포기한 진이 자신도 절을 하려했다. 그때, 선우린의 입에서 단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아직도 고개를 땅에 박은 상태였다. “우리는 승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졌습니다. 본래 드래고니아를 가진 자들은 그 업보를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서열을 확실히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형님의 지금 경지라면 드래고니아가 말을 해주었을 거라 봅니다. 또한 형님의 실력이 갑작스레 늘어난 이유도 말입니다.” 그의 말에 진은 어중간한 상태로 서 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나도 모르게 그 많은 것들을 다 알게 되어 버렸어. 한 마디로 재수 옴 붙었어, 정말. 하아, 난 어디에 얽매이는 거 정말 싫은데.” “그렇지만 해야 합니다, 형님!” 진이 투덜대자 선우린이 진지한 어조로 맞받아쳤다. 이에 한숨만 나오는 진이었다. “하아 알겠어. 근데 말이야. 그 형님 소리 안 하면 안돼?” “절대 불가입니다, 형님!” 진은 그의 목소리에 어려 있는 단호함과 외골수적인 성향을 읽었다. 진은 머리가 절로 아파졌다. 아마도 꼬박꼬박 ‘형님!’ 소리 들으며 눈앞에 사내에게 끌려 다니는 상상을 했으리라. 진은 화제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말이야. 솔직히 말해 고니아(하얀 영혼)의 양으로 따지나 기술의 숙련도로 보나 네가 우위에 있었잖아. 그런데 너는 지고 내가 이겼어. 왜 그런지 알아?” 진의 말에 선우린의 고개가 살며시 들려졌다. 순간 진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 모습이 조각 같이 생긴 사내와는 뭔가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어울렸기 때문이다. 진은 그의 호기심 어린 눈을 잠시 음미하다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카이슨이 그랬듯 본전도 뽑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괜히 말을 끌다 본전도 못 찾은 이야기는 에리필과 헌트에게 세뇌당할 만큼 많이 들었던 그였다. 문득 제국에 있는 사부와 아저씨들이 보고 싶어졌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잠시 멍하니 벌린 입에서 음성을 만들어냈다. “그건 말이지. 너는 기를 익히지 못했고 나는 기를 익혔다는 아주 간단한 차이야.” 그의 말에 선우린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도 선우린은 세상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그에게 세상이라고 해봐야 이곳 천골이 다였던 것이다. 그리고 봤던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댐이 막혀 있다 터져버린 그의 호기심은 몇 날 밤을 새어도 모자를 듯했 다. 그렇게 밤은 절정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호오, 그렇다면 네 말은 고니아를 이용하여 천골에 누가 들어와 있으며 어디에 있는지 까지 알 수 있단 말이야?” 진은 선우린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어느새 대화에 참여한 백현영 또한 선우린의 말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부와 사숙, 사형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부담스런 시선을 받기 무안해서일까? 선우린은 눈처럼 새하얀 얼굴을 붉혔다. 이에 진과 백현영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선우린이 입을 열리려하자 그들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그의 입만 주시했다. “험험, 어쨌든 형님 말씀처럼 가능합니다. 그러나 처음 위치를 찾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립니다. 한번 찾게 되면 쫒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요. 참고로 말해 형님도 노력만 조금 하신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고니아를 드래고니아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련이기도 하고 말이죠.” 선우린의 말에 진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요는 자신도 동참하란 말인데 동생이라고 자처하는 녀석의 입심치고는 꽤나 매서웠다. 그러나 진은 사실상 언제나 동생의 입장에 처해있었기에 이런 선우린의 모습까지도 다 좋아보였다. 그러는 한편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형, 리오스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러나 아직은 억눌러놓아야 할 때였다. 나중에 이곳의 일을 모두 마친 뒤, 보고 싶은 사람들을 실컷 보러갈 것이다. 그렇게 다짐을 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진과 선우린은 주위의 고니아들을 흡수하는 한편 감각을 고니아에 실어 확장하고 있었다. 진 역시 이 수련법을 3일 째 정도하자 꽤 익숙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드래고니아에 전보다 훨씬 많은 고니아들이 찬 것이 느껴졌다. 내심 뿌득했지만 자신 옆에 있는 선우린에 비하면 아직은 많이 모자랐다. 그렇기에 그는 자만하지 않고 드래고니아에다 차곡차곡 고니아를 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선우린이 눈을 뜨며 말했다. “형님께서 말씀하신 일행을 찾은 듯 합니다.” “정말인가?” 어느새 나타난 백현영이 선우린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진 역시 이미 그의 말을 들은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우린을 쳐다보았다. 선우린은 또 다시 이런 상황이 되자 얼굴을 붉히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이동 속도로 보아 반나절이면 조우할 거 같습니다.” “오오오! 정말 대단해.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런 거 하나도 못 느끼겠던데…….” 진의 말에 선우린이 눈을 좁게 만들어 째려보았다. 그와 함께 그는 진에게 일타를 가했다. “형님께서 고니아를 축적하는 데만 신경 쓰지 않으셨더라도 충분히 발견하시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의 말에 가슴이 뜨끔한 진은 괜스레 선우린의 외모를 걸고 넘어졌다. “너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누가 보면 너 여자로 봐!” “…형님!” 잠시 이해를 못했던 선우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달려들자 진은 혀를 쏙 내밀며 도망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입을 쉴 새 없이 놀렸다. “에고, 형님 때리는 동생이 웬말이란 말입니까? 아이고. 아버님, 어머님. 린이를 이렇게 키워놓으시고 저에게 덜컥 맡겨놓으시면 어떻… 커헉!” 결국 선우린의 철퇴에 눈두덩이를 한 대 맞은 진은 과장된 포즈를 취하며 뒤로 넘어갔다. 커다란 봉분 앞에 선우린과 진, 그리고 백현영이 서 있었다. 선우린은 이미 한바탕 울음을 터트렸는지 눈에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덩달아 진도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 눈시울을 적셨다. 백현영만이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담담한 신색으로 떠올리는 듯했다. 숙연한 분위기가 장내를 감돌자 진은 손등으로 눈을 쓰윽 문지른 뒤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린이를 맡았습니다.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린이의 좋은 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 저에게 형이 한명 있거든요. 그래서 린이는 저보다 훨씬 좋은 형을 덤으로 얻을 거예요, 헤헤.” 마지막은 그답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를 보는 선우린은 가슴이 뜨거워져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하늘에 계실 부모님을 향해 이 감동을 여과 없이 전했다. ‘걱정하지마세요. 저 여전히 사랑 받고 있어요.’ 선우린의 안내로 길을 떠난 진 일행은 거의 나는 듯이 달렸다. 그리고 진중선 일행과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백현영은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 비록 명을 거역하였지만 천골을 나가는 길과 린에게 들은 금강장원의 무리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빙루가 어디 있다는 사실까지! 어린 시절 간간히 들었던 칭찬을 들을 지도…….’ 그는 70대의 노인답지 않게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흥분은 진중선과 비슷한 허허로운 기운을 감지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얼마쯤 더 달렸을까? 희미하나마 십여 명의 일행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그리고 백현영은 그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사부님!” <4권 끝> ======================================================================================================================= <5권 시작> 금강장원 1. 북해장원에서 홀연히 사라진 북궁소소가 하얀 기체를 만들어내는 시내를 따라 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빙루가 있을 거야. 민아 조금만 찾아!” 동생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빙루를 찾기 위해 그 험한 천산을 올랐으며 천골에서도 갖은 고생을 다한 그녀였지만 앞을 보며 내달리는 그녀의 눈은 열망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달렸을까? 그녀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엄청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그녀의 몸이 흠칫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바람을 부수며 날고 있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이곳이 천골이기에. 그러나 초영공을 뛰어넘어 파무광에 오른 그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는 이 사실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 혼란에 빠져있던 풍철산은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인영을 볼 수 있었다. ‘허허, 내가 천골이 아닌 다른 곳에 올랐단 말인가?’ 처음엔 너무도 황당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의 눈이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시내를 오르고 있는 여인의 등이 그의 눈에 잡혔기 때문이다. ‘후후, 부끄럽구나! 어린 아이의 각오보다도 못한 나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럽구나.’ 그는 자신을 스쳐지나갈 때 보았던 그녀의 눈에 어려 있는 굳은 의지를 떠올렸다. 그 안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아무리 많이 봐줘도 이십대 초를 넘기지 않을 나이의 여인보다 자신이 더 나약했던 것이다. “푸하하하하!” 그의 뛰어난 안력으로도 여인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가 시원스런 대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는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신물은 본래의 주인에게로!” 확고한 의지로 가득 찬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황금색 펜던트가 영롱한 빛을 토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는 이 벅찬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입 밖으로 터트렸다. ‘크흑. 내가 왜 그랬을까?’ 입을 열자마자 뭔가가 뇌리에 떠올랐는지 백현영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사부님이 어떤 분인지 잊었다니.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백현영은 속으로 자책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의 심정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진과 린은 갑작스레 멈춘 백현영을 의아한 얼굴로 보았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저기 멀뚱히 자신들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비록 진중선 일행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백현영의 방금 전 행동이라면 달려가 안겨도 그 벅참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백현영의 얼굴은 땀으로 목욕한거처럼 젖어있었으니 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진은 뭔가를 떠올린 듯 눈을 빛냈다. “험험,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진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민망한 것이 여전히 이해를 못한 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몸을 날려야 했다. 백 마디 말보다 눈으로 한번 보여주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참교육자라 생각하며 몸을 날렸다. 그 뒤에 야릇한 미소를 짓는 진과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린이 뒤따랐다. 북궁신은 전신을 두들기는 감각에 깜짝 놀랐다. 도무지 추측할 순 없으나 엄청난 기운을 가진 존재가 그의 감각을 두들긴 것이다. 그와 동시에 몇 개의 이질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존재와 초영공에 오른 듯한 존재가 느껴졌다. 순간 ‘이곳이 천골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에 실소를 흘렸다. 그때였다.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존재들 중에서 누군가 ‘사부님!’이라고 외쳤다. 순간 북궁신과 그의 사제들의 고개가 목소리의 출처로 돌려졌다.‘뭐지? 왜 오다가 갑자기 멈추는 거지?’ 궁신의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잠시간 멈칫거렸던 존재들이 한 사내를 필두로 달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기다려보면 알겠지!” 나직하나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음성에 북궁신의 사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억!” 백현영은 그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그와 동시에 그는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푸웃!” 뒤따라오던 진의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린이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다행히도 백현영은 시뻘건 얼굴로 북궁신 일행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형님, 사람이 너무 감격하면 말을 하지 못한다던데 지금이 그 상황인가요?”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었던지 린이 진에게 물었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푸하하하하!” ‘더 이상의 인내는 자신에겐 무리다.’라고 말하듯 진이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백현영의 얼굴은 시뻘게지다 못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일련의 상황을 모두 지켜본 북궁신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험험, 진중선 그 친구도 이곳 천골에 와 있나?” 노련한 북궁신은 헛기침을 터트리며 화제를 돌렸다. 백현영은 그의 물음에 속으로 백번, 천번 감사하며 서둘러 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그렇군. 그 친구는 어찌하여 이곳에 왔을꼬?” 하얀 수염을 신선처럼 길게 늘어뜨린 북궁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은근히 묻자 백현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것은…….” 백현영이 말하기 곤란하다는 의사를 표하자 북궁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말하기 힘든 예민한 사항이 있지. 허허허, 나이를 먹으니 괜한 궁금증만 생겨서 그러니 이해하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북궁신의 배려에 백현영이 감사의 뜻을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와 함께 잠시간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 정적은 북궁신의 또 다른 궁금증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깨졌다. “험험, 그건 그렇고…” “말씀하시지요.” “고맙네. 험험, 내가 궁금한 것은 다름 아닌 자네 뒤에 있는 두 젊은이에 관한 거라네.” 북궁신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저들의 나이는 많아봐야 이십 대 후반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이런 무지막지한 기운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그는 자신의 지위와 체신 때문에 이 황당한 사태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그 덕분일까? 시종일관 북궁신에게 고정되어 있는 진의 시선에는 그가 고고한 신선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진은 자신들 이야기가 나오자 묵묵히 듣고 있던 방관자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이 궁금하신지요?”진이 한 발자국 옮기며 묻자 북궁신이 감탄을 터트렸다. “놀랍구나! 제국인이 우리말을 이처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나로써도 무시하지 못할 강자가 이처럼 젊다니. 과연 세상은 넓구나!” 평소 칭찬에 인색한 북궁신이 극찬을 하자 그의 사제들의 얼굴에 놀람의 감정이 나타났다. 그리고 백현영 역시 그의 칭찬에 깜짝 놀랐다. 다만 린만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감사합니다. 허나 어르신의 경지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일 뿐입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오만하게 비춰진다네. 그리고 자네 옆에 있는…….” “아! 이 친구는 저의 의제인 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진이라고 합니다.” 미처 자신을 소개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진이 서둘러 자신과 린을 소개했다. 그러나 린이 선우라는 성을 버린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라 은근슬쩍 그의 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알리 없는 북궁신은 앞에 있는 사내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살필 뿐이었다. 잠시 뒤, 린을 관찰하던 북궁신의 시선이 그의 드래고니아에 닿는 순간 빛을 뿜었다. “호오, 그 검은 예사롭지 않은 물건인 거 같군. 조금 전에 느꼈던 기운이 저 검에서 나오다니 놀라울 따름이야. 더구나 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그의 말에 린과 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허나 순식간에 평정심을 찾은 진이 입가에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세상에는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진실이 더욱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린이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숨겨진 진실일수록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는 겁니다.” “감히!” 진의 말에 북궁신의 뒤에 있던 인물 중 유난히 얼굴이 붉은 공손탁이 화를 내며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북궁신이 손으로 제지함으로써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허허허, 이번에도 늙은이가 괜한 호기심 때문에 실수했다고 생각하게.” 잔잔하나 힘이 실려 있는 북궁신의 음성에 진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비록 북궁신이 사과의 말을 한다고 하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절대 강자나 가질 법한 대해와도 같은 포용력이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제가 도리어 어르신의 심기를 언짢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이 그답지 않게 성숙한 언변을 구사하며 뒤로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백현영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입을 연 백현영이 북궁신에게 전한 말은 다름 아닌 금강장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말은 그리 길진 않았으나 그 말의 여파는 결코 노록치 않았다. “이런 비사가 있을 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침음을 토하던 북궁신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급한 얼굴로 진 일행에게 인사했다. “미안하네. 우린 바빠서 이만!” “예?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무슨 일인가?” 북궁신은 혹시나 북궁소소가 금강장원의 무리들과 조우할까봐 걱정이 되어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백현영이 제동을 거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현영도 이런 그의 기색을 느꼈지만 이 말만큼은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천골을 나가는 방법입니다!” “뭣이라?” 백현영은 그가 반응을 보이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천골을 나가는 방법은 이 친구들만이 찾을 수 있는지라 저 역시 말로 설명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북궁신은 백현영의 말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은 결국 자신들과 동행해야 된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북궁소소를 구할 수 없지 않은가! ‘음…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장 길을 떠난다고 하여 소소를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느 것이 더 나은 방법인가? 허허허, 안 되겠구나. 이 참에 모든 걸 말하자. 숨긴다고 될 것도 아닌데.’ 생각을 정리한 북궁신이 침중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내 증손녀를 찾으러 왔네. 그리고 그 증손녀는 빙루를 찾으…….” “빙루!” 북궁신은 순간 자신의 말을 중간에 자르는 백현영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이어지는 백현영의 말에 환호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저희도 빙루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증손녀분이라면 이 친구들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금강장원 2. “흐음… 거참 일이 우습게 돌아가는 군요.” 이국적인 외모에 은발을 멋들어지게 기른 사내가 눈앞에 부복해 있는 노인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찾아오는 숨 막히는 정적! 그것은 은발의 사내의 몸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기세가 만들어낸 정적이었다. ‘허허허, 이 분은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져야 만족하신단 말인가? 몇 년 전에 뵈었을 때만 해도 나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듯 하더니 이제는 나를 훌쩍 뛰어넘으셨구나.’ 금강장원의 전전대 장주였던 선우찬은 놀랍도록 변모한 사내의 기도에 감탄을 터트렸다. 아울러 십여 년 전, 육대 대장원의 연합 공격에 붕괴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그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 빛이 된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선우찬은 한 쟈크 대륙에서도 단 일곱 명만이 도달했다는 신무안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그것도 다른 육대 장원의 전전대 장주들이 신무안의 사다라에 몸을 담고 있을 당시에 그는 사다라를 넘어 아카아에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신무안은 다른 경지들과 달리 경지의 세분화를 심안의 확장능력으로 나눈다. 그 중에 인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경지를 사다라라 한다. 그 다음 경지가 바로 아카아인데, 아카아는 사물을 뛰어넘어 인간과 연결되어 있는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아카아에 도달한 자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성장 속도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코스카는 태고의 기운을 볼 수 있는 눈을 말함이다. 여기서 태고의 법칙을 깨닫는 자, 궁극이라는 천혜화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선우찬이 아카아에 오르긴 했지만 육대 장원의 전전대 장주들 역시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때 신비의 사내가 홀연히 나타나 육대 장원의 장주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그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의 눈을 가졌다는 자신마저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완벽한 환술이 자신들 앞에 펼쳐진 것이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금강장원의 주력부대가 무참히 쓰러졌다. 그러나 금강장원의 주력부대는 오히려 두 눈 멀쩡히 뜨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멍하니 있자 신비의 사내가 조금은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을 차린 선우찬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켜 천골을 떠올렸고 이내 그곳으로 출발했다. 그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흔적을 지우며 이동했기에 그들을 쫓는 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십 몇 년이 흐른 지금, 천골에 반갑지 않은 방문객들이 찾아온 것이다. “후후후,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예전에 그 일을 떠올렸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때의 일이라… 후회하십니까?”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선우찬은 알고 있었다. 그가 무슨 의도로 묻는지를. “아닙니다. 태양은 언제나 일곱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우찬은 여전히 고개를 조아린 상태에서 말했다. 그러는 한편 자신은 눈앞에 있는 사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사내야 말로 진정한 태양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후후,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구나.’ 바닥을 향해 씁쓸한 고소를 지은 선우찬은 나직하나 힘 있는 음성을 듣고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젓는 선우찬. “아직도 그 태양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까?” “태양을 담기엔 제 그릇이 너무도 작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태양이 지금 제 눈앞에 있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으나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는 선우찬의 음성에 사내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명령이 떨어졌다. “천골의 이곳은 아직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존명!” 선우찬의 힘찬 음성이 대전을 울렸다. 진과 린은 북궁신의 부탁 때문에 가는 길을 멈추고 북궁소소를 찾기 위해 온 정신을 개방한 상태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 때, 린이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말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어르신께서 말한 기운과 흡사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정말인가?” 린의 말에 북궁신이 반색하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노안을 들이밀며 진심이 깃든 한 마디를 전했다. “고맙네!” 찌잉! 린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이것이 감동이라는 것일까? 어색하고 익숙지 않지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이 벅찬 감정은 입을 열어 시원하게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희열을 느끼게 했다. 진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린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사실 그는 이번에도 린을 믿고 고니아를 축적하는 데만 신경 썼었다. 그래서 조금은 미안한 상태였는데 가만 보니 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사람다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은 그것이 기분 좋았다. “하하하하! 이젠 찾아가는 일만 남았군요.” 시원스런 진의 말에 북궁신과 그의 사제들 그리고 백현영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린 역시 아직은 어색하지만 밝은 미소를 지었다. 시내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내에서 올라오는 하얀 기체의 양은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는 꺼져가는 동생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었기에 그깟 두려움 쯤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그녀는 하얀 기체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몸을 옭아맨다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몸 상태를 점검해보면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아, 빙루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이미 북해장원에 있는 고서를 통해 빙루의 대략적인 모습을 알고 있는 북궁소소는 눈에 불을 켜며 은빛 나무를 찾았다. 빙루는 땅의 음기로 자라는 빙천목의 열매다. 빙천목은 정제된 극음의 기운만을 섭취하는데 그녀가 살고 있는 북해장원에도 빙천목이 자랄만한 정제된 극음의 기운은 없다. 그만큼 빙천목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 할 수 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움직이던 북궁소소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가득 채우던 열망의 기운 위로 스산한 한기가 맺혔다. “누구냐!” 눈빛만큼이나 싸늘한 음성이 그녀의 작고 예쁜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에너지 소드 다발이 그녀를 노리고 쇄도했다. 쌔애액! 공기를 할퀴며 날아가는 에너지 소드에도 그녀는 별반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이 더욱 싸늘해지며 한 올의 숨을 들이마셨다. “흥!” 코웃음과 함께 번쩍하는 섬광이 터져 나왔다. “크흑!” 나무 사이에서 미약하지만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순간에도 북궁소소는 쉴 새 없이 몸을 놀리며 극쾌의 쾌검을 선보이고 있었다. “으음…” 전방과 측방에서 쇄도하는 에너지 소드를 와해시킨 그녀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느끼고 흠칫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은 땅을 차고 있었고 공중에서 몸을 반 바퀴 비트는 것과 동시에 검을 찔러 넣었다. “커헉!” 북궁소소의 검이 사내의 왼쪽 가슴을 찌르는 순간 한 생명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생명의 고귀함은 자신의 가족 이외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궁소소를 둘러싼 일단의 무리들은 그녀의 실력이 예상외로 높다는 것에 놀란 듯했다. 단 한번의 공격에 생각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허허허, 어린 계집애치고는 꽤 높은 성취를 이루었구나.” 대기가 파르르 떨릴 만큼 사내의 음성에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이것을 북궁소소 또한 느꼈기에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띄게 굳어갔다. “나를 핍박하는 이유가 뭐죠?” 사내를 잠시 노려보던 북궁소소가 일말의 희망을 담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에 있는 사내와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는 그녀의 이런 기대를 무참히 깨뜨렸다. “그런 건 알 필요가 없다.” 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그의 몸에서 칼날 같은 기세가 쏘아져 나왔다. 북궁소소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내에게 검을 휘두를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휘두르는 순간 자신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칼날에 도륙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순간 등 뒤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녀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좋아요.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하진 않겠어요.” 말을 마친 북궁소소가 검을 높이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서릿발 같은 기세가 그녀의 몸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한편 그녀의 자세를 보고 있는 사내의 눈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저 자세는… 설마 저 아이가 북해장원의 아이란 말인가? 더구나 저 정도의 기세라면 북해장원의 어린 아이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실력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사내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르륵!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다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앗! 잔상!” 북궁소소는 기운을 끌어 모으다 너무도 놀라 호흡을 끊을 뻔 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을 뒤덮고 있는 커다란 에너지 소드는 여전히 빛을 뿜고 있었다.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그녀의 눈처럼 말이다. 풍철산은 가문의 숙원을 풀어줄 물건을 찾기 위해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사실 풍출산의 가문은 두 개의 가문이 합쳐져 만들어진 가문이었다. 번개의 기운을 상징하는 뇌 씨 가문과 바람의 기운을 상징하는 풍 씨 가문. 이 두 가문은 하나의 숙원 아래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숙원이 달성될 때까지 은자가문으로 살 것을 다짐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숙원은 희미해지고 세상을 질타할 마음만 커져갔다. 그리고 기어코 사건이 터졌다. 본래 두 가문의 숙원은 자신들의 가문을 상징하는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여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기운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온전히 그 힘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시도된 것이 두 기운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엔 장인에 재능을 가지고 있던 뇌 씨 가문의 힘이 컸다. 어찌됐든 두 가문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 검 한 자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검 손잡이 가운데 에 펜던트가 들어갈 수 있는 홈을 만들어 기운을 증폭시킬 수 있는 기능까지 만들었다. 그 결과 검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검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바람의 능력에 한해서일 뿐이었다. 그것은 검의 능력을 반에 반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바람과 번개의 능력을 상충시켜 파천의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검이 결국엔 미완으로 남아 있게 되자 점차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나왔다. 더구나 한쪽에선 이 파천풍뇌검으로 세상 위에 우뚝 서자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본래 의미가 퇴색되어버리는 것이 두려워진 뇌 씨 가문의 장주가 펜던트는 놓아두고 검을 들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의도는 나중에라도 이 검이 완성된다면 펜던트로 찾아내어 오랜 숙원을 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두워진 눈으로 모든 사물을 대하던 풍 씨 가문의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장인의 피를 유지하기 위해 이어져 온 뇌 씨 가문의 장주였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뇌 씨 가문의 후예들이 몸을 일으켰다. 결국 두 가문이 충돌하고 그 결과 양패구상에 이르렀다. 그리고 검을 들고 사라 진 뇌을민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아! 그때 그 분이 파천풍뇌검을 들고 사라지지 않으셨다면 필시 우리 가문은 세상을 질타했을 것이다. 하기야 생각은 생각일 뿐. 거기에 미련을 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다만 그분들의 후예로써 이제는 보고 싶구나. 우리 가문의 오랜 숙원을!” 그가 엄숙한 음성으로 독백하고 있을 때, 그의 예민한 감각이 뭔가를 감지했다. “흠… 이곳에 또 다른 인간이 있었단 말인가? 헛! 누군지 몰라도 여러 명에게 합공을 당하고 있구나. 이럴 게 아니구나!” 잔잔한 그의 음성이 허공에서 흩어질 무렵, 그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한편 진중선 일행은 여전히 미로에 갇혀 있어 하얀 기체를 만드는 시내는 구경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십여 일이 흘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미로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우권영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미로에 대해 생각하고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하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권영은 알고 있을까?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너무도 단순하다는 사실을. “제기랄! 도대체 이 놈의 길은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 거야?” 성질 급하기로 유명한 지천우가 또 다시 막혀 버린 벽 같지도 않은 벽을 노려보며 씩씩대었다. 아무리 봐도 저 너머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막상 가면 부딪혀 막히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지천우가 주먹을 휘둘렀다. “젠장!” 욕지거리와 함께 뻗어진 주먹. 그 결과. 벽이 부서졌다. 이 황당한 사태에 진중선 마저도 지천우의 대갈통을 때리기 위해 들었던 손을 멈칫거렸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함께 잔잔한 음성이 우권영의 고막을 울렸다. “권영아~” “옛!” “박아~” “옛!” 온화한 음성에도 불구하고 우권영은 재빨리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지천우는 간만에 진중선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렇게 그들도 하얀 기체를 만들어내는 시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으음…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린의 한 마디에 좌중은 싸늘한 정적을 맞이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은 전투가 벌어진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한발 늦었단 말인가? 허허허.” 북궁신의 자조적인 웃음에 린이 고개를 흔들었다. “방금 전에는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지만, 여기 와 보니 알겠습니다. 그들은 저 또한 감지할 수 없는 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 듯합니다.”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북궁신은 이미 린의 경이적인 능력을 본 지라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믿지 않는 다면 자신이 여기 온 이유가 퇴색되어 버리기에 그의 눈은 기대에 차 있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마찬 가지로 흔적을 숨긴 첫 지점만 찾아내면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곳에서 저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 뿐입니다.” “그곳이 어딘가?” 북궁신이 다급하게 물음에도 불구하고 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허허,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나를 발견할 줄이야!” 음성이 울린 뒤, 바람이 흩어지며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풍철산이었다. “당신은… 그들과는 다르군요.” 린의 뜬금없는 말에 풍철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부연설명을 하려는 린을 제지하고 북궁신이 으르렁거렸다. “네 놈이 우리 소소를 데려갔느냐?” “소소? 저기 누구신진 모르겠으나 초면에 실례를 하는 듯합니다만.” “뭐라? 네 놈이!” 북궁신이 기운을 개방하자 이제껏 여유로운 자세로 서 있던 풍철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드는 생각! ‘이자 강자다!’ 그러나 움츠러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더욱 허허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으음… 예사 녀석이 아니로구나!” “고맙습니다.” 풍철산이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하자 북궁신과 일행 모두는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를 인정치 않으려는 북궁신을 제지하고 이번에는 진이 나섰다. 이미 진은 린에게 대충의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르신, 제 동생의 말에 의하면 이 분은 소소 아가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그만 화를 푸십시오.” 북궁신은 진의 말에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흠… 미안하네. 증손녀와 관계된 일인지라.” “아! 하하,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정말 천골이 맞긴 맞나요? 제가 알고 있는 천골과는 많이 다른 듯 합니다.” 그의 말에 북궁신이 야릇한 미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험험, 그건 그렇고. 한번 올라오면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천골에 올라온 걸 보면 자네도 말 못할 사연이 있나 보군.” “…….” “하하하, 너무 긴장하지 말게. 내 그걸 말하라는 게 아닐세. 단지 자네와 계약을 하나 했으면 해서 말이야.” “무슨 계약 말입니까?” 풍철산은 눈앞에 있는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방금 전 ‘한번 올라오면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라는 말을 할 때 짓는 회심의 미소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그 내기가 방금 전 그 미소와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험험, 내 보기에 자네는 다섯 번째 쿤을 연 거 같군.” “그렇습니다만. 그거랑 어르신이 말한 계약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있지. 있고말고. 계약 내용이 천골에 있을 동안만 그 힘을 우리에게 빌려달라는 거거든.” 북궁신의 말에 풍철산의 얼굴이 굳어갔다. 그와 함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개방시켰다. 대기가 바람에 의해 사납게 날뛰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번개를 무색케 할만한 방전 현상이 일어났다. “음…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화를 내도 괜찮다고 생각하네만.” 북궁신이 은근히 기운을 개방하자 풍철산은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이에 그는 속으로 매우 놀랐으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며 기운을 회수했다. “그래. 어쨌든 자네가 우리에게 힘을 빌려준다면 우리는 자네에게 천골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네.” “네에?” 풍철산의 자유로운 기도가 잠시간 흔들렸다. 제 아무리 자유를 추구하고 숙원을 위해 목숨마저 포기했다고 하나 그 역시 인간이니 삶에 무관심할 순 없었다. 그러니 지금 그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말 중에 거짓은 하나도 없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북궁신이라면 믿겠는가? 한 쟈크 대륙에서 천혜화에 가장 가깝다는 칠신이라는 칭호를 받는 이 늙은이가 한 말이라면 믿을 용의가 있는가?” “음…….” 풍철산은 북궁신의 말에 신음을 토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눈앞에 있는 인물이 칠신 중에 하나였다니. 믿을 수 없어도 그의 뒤에 도열해 있는 열두 명의 노인을 보는 순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열두 명의 사신이 따라다닌다는 극음의 신 북궁신! “이런 곳에서 극음의 신이라 불리시는 분을 뵐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저는 뇌풍장원이라는 조그마한 장원을 이끄는 풍철산이라 합니다.” 풍철산의 인사는 얼핏 보면 자신을 낮추는 듯하나 그 음성에는 숨길 수 없는 당당함이 있었다. 이를 느끼지 못할 북궁신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때 백현영이 한 발자국 내딛으며 말했다. “뇌풍신검 풍철산님이셨군요. 저는 백현영이라 합니다.” “아! 무적권 백현영님이셨군요. 하하, 이곳이 정말 천골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쟁쟁한 분들을 이런 곳에서 뵐 줄이야.” 풍철산은 눈을 빛내며 백현영을 살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대화에 끼어들었던 진과 그 옆에 있는 린에게도 시선을 보냈다. ‘으음…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 없구나. 더구나 앞에 있는 두 젊은이는 그 실력을 짐작할 수가 없구나.’ 풍철산이 잠시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북궁신과 백현영이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북궁신이 입을 열었다. “간단히 설명하지. 우리 소소를 잡아간 곳은 자네도 익히 알고 있는 금강장원의 무리 같네.” “뭐라고요?” 그의 놀람을 뒤로하고 북궁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풍철산의 안색은 더욱더 굳어갔다. “하아, 그런 비사가! 그렇다면 어르신의 증손녀를 구하기가 쉽지 않겠군요.” “그렇지. 더구나 소소를 죽이지 않고 데려갔다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거나, 또 다른 목적 때문에 그런 듯 싶네.” 풍철산은 그의 말을 듣는 와중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굳은 신념이 담겨 있는 눈을 가진 여인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길 해 봐야 상황이 나아질 리도 없으니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강장원의 무리들이 이곳에 있다면 우리만의 힘으로는 무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십 여 년 전, 금강의 신 선우찬은 나머지 육신을 능가하는 힘을 보였네. 그리고 그 전투 후,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지. 만약 그가 살아서 이곳 천골에 있다면 정말 힘든 전투가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천무의 신 진중선의 힘을 빌리려 하네.” “어헛! 설마 그분도 이곳에 오신 겁니까?” “그렇네!” “하하하, 이거 갈수록 놀라기만 하는군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미력하나마 제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 풍철산의 눈은 간만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 금강장원 3.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의 의사는 무시되고 광폭한 흐름에 끌려 다니는 것에 진은 회의가 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옳은가?’ 진은 자기 자신에게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허나 구하는 답은 보이지 않고 가슴만 더욱 답답해졌다. 진도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이 자신에겐 무의미 하다는 것을. 비록 린에게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금강장원이지만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그로 인해 남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은 무서웠다. 예전에 살인을 해 보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 상황 또한 매우 특수했다. ‘하아~ 사부님, 어떻게 해야 되나요?’ 가슴속에다 한숨을 토했지만 그 한숨은 도리어 답답함으로 뭉쳐져 한 사람을 찾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찾는 사람은 너무도 먼 곳에 있었다. “젠장!” 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진중선 일행을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린도 눈을 뜨며 진을 바라보았다. 린의 눈에는 걱정과 의아함이 묻어나 있었다. “으읍, 하아~ 아니다. 별일 아니야.” 진은 그의 눈이 부담스러웠다. 냉철한 듯 하나 그 속에는 너무도 여린 순수함이 있었다. 진은 그 마음이 더렵혀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복수를 하고 난 후, 저 눈은 무엇으로 가득 찰까?’ 두려운 미래를 그리 듯 진은 조심스레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허나 그가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것일까? 내 손이 더렵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린이 복수의 피로 더렵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그도 아니면 내가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제각기 놀고 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커다란 고리에 연결되면서부터 진의 머리를 괴롭히던 혼란은 더 이상 혼란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린의 형이다. 형이라면……!’ 진은 자신의 형, 리오스를 떠올렸다. 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잔잔하나 환한 미소. 그때에는 몰랐다. 그 미소의 의미를. 허나 지금은 알 수 있다. -형의 미소는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이제 자신이 미소를 지어야 할 차례다. “린아~” “예, 형님!” 진의 부름에 린이 즉각 대답했다. “후후, 이 형이 너를 많이 걱정시켰나 보구나.” “아, 아닙니다.” 린은 당황스러웠다. 진이 자신에게 짓는 미소나 ‘이 형이…’라는 말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듣는 마음이 이러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당황스러워 하면 이 형이 무안해지잖아, 하하하!” 진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는 린의 모습에 그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는 곧 웃음을 멈추고 리오스가 짓던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물며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에겐 형이 한 명 있어.” 이렇게 말을 꺼낸 진은 자신과 형이 보낸 시간을 간략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형의 미소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해줬지. 마을에서도 내놓은 악동인 나를 감싸줄 수 있는 미소.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어. 그리고 방금 전에야 알 수 있었지. 내가 왜 형의 미소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흐음, 녀석 여자 여럿 울리겠는데?’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는 생각이었지만 린의 눈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천하의 명장이 세공한 보석이라도 린의 눈보다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린의 눈은 깊은 호수를 연상시키듯 심유했으며 그 끝에 황금빛 광채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는 이가 있다면 그 신비로움에 눈이 몽롱해지리라. 그러나 아직까지 그의 눈에 감춰진 황금빛 광채를 발견한 이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험험,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하하, 그래 왜 형의 미소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나 하면은… 그것은 형이 언제나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이었어.” 진은 린의 눈에 끌려들어가는 자신의 실책에 헛기침을 토하며 말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는 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린이 나직하나 힘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형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형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저입니다. 그러기에 형님의 뜻에 따르려 합니다.” “하하, 그 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동생이라면 좀 동생다워야 제 맛이지 않겠어?” “괜찮습니다. 저는 형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흠… 정말이야? 내가 너에게 부모님 복수를 하지 않고 그냥 떠나자고 하면 그냥 떠날 수 있어? 금강장원의 무리들을 그냥 놓아두고 떠날 수 있어?” 진의 갑작스런 말에 린이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안색을 고치고 태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복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허나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시더군요. 복수는 꿈에도 꾸지 말라고. 그냥 조용히 살라고.” “그래서? 너는 그 말에 승복하는 거냐?” 진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 격한 음성으로 외쳤다. 자신에게도 부모님이 있다. 그러나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자신은 미쳐버릴 것이다. 거기다 부모님의 죽음에 관계되는 자가 있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진은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일으켰다. 순간 대기가 놀라 날뛰었다. 이때의 진은 의지만으로 기와 고니아를 발동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엘뤼시온이 그가 뜻을 일으키기만 하면 기운을 개방했다. 진이 일으킨 살기에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 긴장했다. 그러다 살기의 근원지가 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오죽하면 극음의 신이라 불리는 북궁신마저 입을 떠억 벌리겠는가! ‘저 정도의 능력이라면 나에 못지않겠구나!’ 북궁신이 이러할진대 그들의 사제들은 말 하나 마나였다. “저 녀석은 괴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사신의 첫째인 북리단의 음성에 둘째인 장무린이 답했다. “괴물이라면 옆에 있는 저 녀석도 만만치 않겠어요.” 장무린의 말마따나 땅을 뒤집고 대기를 날뛰게 만드는 엄청난 충격파 속에서도 린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고 기운을 개방하고 있는 진의 곁에 있으면서도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고 있는 나머지 사신들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괴물은 괴물하고만 노는 가 봅니다.” 사신의 막내인 유백한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백현영은 진의 실력이 또 다시 상승한 것을 보며 경악에 눈을 뒤집힐 뻔했다. ‘얼마 전, 저 둘이 싸웠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도대체 저 성장속도는 뭐란 말인가?’ 백현영은 자신의 실력에 회의가 들었다. 초영공에서도 상급에 있는 자신의 실력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자신보다 약한 인물은 없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에도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이곳에 모여 있는 일행은 쟁쟁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진과 린에게 무한한 감탄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형님!” 잠자코 진을 지켜보던 린이 나직하게 외쳤다. 그의 나직한 외침은 자기가 만든 세계에 침잠해 있던 진을 끄집어내는 힘을 발휘했다. “흠, 이런!” 진은 경관이 완전히 변해버린 주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한편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직 수양이 부족하구나. 하지만 부모님을 떠올리고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받고 자란 진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를 짐작할 리 없는 다른 일행이 보기에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보게 무엇 때문에 그리 대노했나?” 북궁신이 짐짓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물었다. 그러나 그의 속은 놀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이 녀석이라면 궁극이라는 천혜화도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이런 생각이 그의 가슴을 가쁘게 만들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진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북궁신 역시 그것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던지라 은근슬쩍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했다. “그건 그렇고. 진중선 그 친구는 언제쯤이면 찾을 수 있겠는가?” 북궁신의 물음에 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껏 혼란에 빠진 머리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 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을 느껴서일까? 안색을 굳히고 있던 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흠, 알겠네. 좀 더 수고해주게나.” 북궁신은 이 말을 하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사실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진과 린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또한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알아버렸다. 진과 린이 이번 전투에 대한 생각을. 순간 다급해졌지만 그들은 북궁신의 제지로 참아야 했다. 북궁신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에 간절한 바람을 담아 허공에다 띄워 올렸다. ‘그들의 마음이 돌려지기를.’ 풍철산이 떠났다. 그는 3일을 기약하고 떠났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천골에 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을 찾으러 떠난 듯했다. 그렇기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린과 백현영도 떠났다. 진중선 일행을 데려오기 위해서다. 여기에 진은 참석하지 않았다. 비록 진중선이 보기 싫다고는 하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얻어야 정보가 있었던 것이다. 진은 생각에 잠기었다. 아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그는 흔들리지 않을 다짐을 했다. ‘형제의 원수는 나의 원수다. 그리고 그 원수가 패악 무도한 놈들이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진은 북궁신과 있으면서 금강장원이 저지른 과오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신이 겪은 일도 아닌데 화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진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북궁신의 말이 상당 부분 과장되었다는 것을. 허나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그것의 10분의 1만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금강장원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집단이다. 금강장원은 일인자가 되기 위해 인간으로써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다. 그것은 바로 인체실험이었다. 그 사실이 세상에 전해진 것은 인체실험을 당하던 1394호라는 인물이 실험실을 빠져나가면서이다. 그로 인해 세상은 경악했다. 비록 절대 고수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되나 수주아 급의 고수들은 능히 이길 수 있는 실험체들을 금강장원에서 대량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밝혀지면서 대노한 육대 대장원은 황화광 이상의 고수들을 모아 금강장원을 쳐들어갔다. 육대 대장원에서 모인 황화광 이상의 수는 근 200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고 돌아간 황화광 이상의 고수는 150여명이 조금 넘었다. 그러고도 금강장원의 핵심인물들은 몇 죽이지 못했다. 진은 북궁신의 씁쓸한 얼굴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좀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니아를 흡수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 161화 전투 1.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실내. 그곳에 한 사내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있다. 사내는 습관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의 머리칼은 어둠을 밝히는 성스러운 은빛이다. 그 머리칼이 지금 두터운 손에 의해 잔물결을 일으키며 퍼졌다. “흐음… 부딪혀야 하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음성은 없다. “또 다시 피해야 하나?” 듣는 이마저 숨이 턱 막히는 음성이 낮게 울렸다. 그러나 이번 역시 돌아오는 음성은 없다. 사내는 어둠이 주는 고요와 자신이 만든 적막을 즐겼다.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자유는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끼익! “일차 관문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젭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사내의 앞에 부복한 선우찬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내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찾아오는 정적. 결국 선우찬의 입이 먼저 열렸다. “처음엔 그저 그런 고수들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차 관문에 들어오면서부터 느꼈던 그들의 기운은 24천의 아래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사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이에 의아함이 생길 법도 하건만 선우찬의 얼굴은 ‘역시’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느낀 것을 사내가 느끼지 못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는 모두 24명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세 명은 24천을 능가하는 자들입니다.” 사내의 말에 선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느끼기로도 그랬기 때문이다. 금강장원의 24천은 선우찬의 사형제들로서 나이만 해도 100여 살이 넘은 노괴물들이다. 거기다 그들 모두 파무광의 경지에 올랐기에 가히 일인군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24천을 능가하는 존재들이 네 명이나 되니 그로서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는 것은 생각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과의 전투로 입을 피해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우찬이 사내의 말을 기다리며 머리를 굴리고 있자 사내가 피식 웃으며 듣기 좋은 저음으로 말했다. “2,3차 관문을 해제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노구의 선우찬의 힘찬 음성에 사내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내. 순간 작지 않은 실내가 그의 기운에 터져나가는 듯했다. 그 가운데에 사내가 있었다. ‘그들도 주군의 신위를 본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선우찬의 내심을 알았을까? 사내가 그의 등등 툭툭 치며 말했다. “그들을 맞으러 나가볼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방금 전의 고뇌는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젠장! 저 놈들은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으나 주먹과 다리는 쉬지 않고 놀렸다. 퍽! “크윽!” 붉은 에너지 소드가 흔들렸다가 사라졌다. 진의 주먹에 옆구리를 맞은 것이 꽤 충격이 큰 듯했다. “제발 좀 쓰러져라!” 몸을 구부린 상태에서도 얼굴을 들어 노려보는 사내의 눈에 진이 질렸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진은 다른 상대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제엔장! 쿨럭!” 부들부들 몸을 떨던 사내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헉헉헉! 쓰벌. 죽이지도 않을 거면서 왜 쓰러뜨리고 지랄이야!” 몸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거친 말과 달리 그의 음성에는 미약한 살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쓰벌, 하늘은 왜 이리 맑은 거야?”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진은 붉은 에너지 소드를 사용하는 사내와의 싸움을 생각하며 상기된 얼굴을 식히려 애썼다. ‘내가 얼마만큼 강해진 걸까?’ 예전 같으면 자신이 에너지 소드를 만들어 싸워도 피가 튀는 결투를 해야 겨우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분명 이스트에 오기 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의 자신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은 한 사람씩 쓰러뜨리고 있었다. 진은 싸우는 와중에 틈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정도의 여유를 부릴 자격이 그에겐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주먹과 다리를 놀리는 백현영이 보였다. 백현영의 주먹은 상대의 에너지 소드를 흩어 버리며 상대의 목숨까지 빼앗고 있었다. 이에 얼굴이 찡그려졌으나 뭐라 말할 순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을 보았다. 역시나 피가 튀고 사지가 허공을 날아다니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인륜을 저버린 자들은 이 뒤에 있지 않은가? 이들에게 그 죄를 물어 돌아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진은 눈에 불을 켜며 살인을 하는 일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실력차. 그런 실력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손에는 자비가 없다. 그것이 끝내 서글퍼졌다. “젠장!” 기분이 상하자 자기도 모르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진의 주먹에서 붉은빛 광선이 쏘아졌다. 쾅! “뭐냐?” 진중선은 자신의 공격을 막는 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러나 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 보고 있다. “뭐냐?” 의아하기도 했지만 화가 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었다. 하지만 이번 역시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아,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지만 까부는 것도 한번이다.” 말을 하며 몸을 돌리는 진중선은 공포에 몸을 떠는 사내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손을 갈고리처럼 말아 사내의 가슴에다 박아갔다. 쾅! “네 이놈!” 진중선은 화가 났다. 이번에도 자신의 행사를 방해하는 이 녀석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죽고 싶은 것이냐? 내가 아무리 너를 예뻐해 준다고 하여 너무 기어오르는 구나.” “시끄럽다.” “뭐야?” 진과 진중선이 대치 상태를 이루자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일행들은 손을 잠시 멈추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참다못한 지천우가 한 소리 외치며 진에게 쇄도했다. 진중선은 지천우가 몸을 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녀석은 혼 좀 나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래고니아!” 지천우를 힐끗 보며 낮게 중얼거린 진은 손의 감촉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혼 좀 나봐라!” 순식간에 공간을 격하며 진의 앞에 나타난 지천우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드래고니아와 부딪히는 순간 튕겨나갔으며 그 틈을 파고든 진의 왼손이 그의 가슴을 살짝 밀었다. 탁! “헛!” 지천우는 자신의 몸이 뒤로 날아가는 느끼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힘이 자신의 몸을 속박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풀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날아가던 지천우가 자신의 뒤에 진중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안돼!” “루카스 이제 됐다.” 진은 중력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순간 지천우는 몸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돼…크헉!” 지천우는 재빨리 몸을 움직이려 했다. 허나 그것은 마음 뿐. 그의 몸은 또 다시 타의에 의해 앞으로 날아갔다. 등판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받으며. 진중선은 바닥에 구르는 지천우를 일별한 뒤, 진을 쳐다보며 무감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현영이에게 들었다. 허나 조금 실력이 늘었다고 하여 나에게도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과대망상일 뿐이다.” “길고 짧은 건 재워봐야 안다고 했지.” 진의 반격에 진중선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골짜기 입구가 떠나가라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간만에 시원하게 웃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진중선은 진이라는 녀석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실력 차는 확실히 보여줘야 했다. 그때였다. “자네와 이 젊은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네. 그것보다 우리는 저들의 뒤를 쫓아야 할 듯 싶네만.” 북궁신의 말에 진중선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한 이미 골짜기 안으로 퇴각한 금강장원의 무리들을 생각하며 입을 다셨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음습한 분위기에 절로 긴장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일행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이면 분명 초소 하나라도 보여야 되는데 이 적막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권영의 나직한 말에 12사신의 셋째인 조대민이 화답했다. “그렇지. 아무리 봐도 이곳만큼 초소를 세우기에 정확한 곳은 없을 텐데.” “내 말이 그 말이네.” 우권영의 말에 조대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순간 그들의 입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권영과 조대민은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에서 머리 역할을 하고 있기에 자연적으로 볼 일이 많았다. 거기다 두 사람은 성격도 잘 맞아 어느새 둘도 없는 지기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기에 눈빛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험험, 자네가 말하게.” “알겠네.” 조대민이 슬쩍 양보하자 우권영이 씩 웃었다. 우권영과 조대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일행은 우권영이 할 말이 있는 듯하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리고 조용하나 힘 있는 우권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와 이 친구의 생각이 맞다면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음… 그 말은 그들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겠군. 그렇다면 우리 소소를 구하기 위해 떠난 그 젊은이와 나의 사제들의 위치도 발각된 게 아닐까?”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 린이의 능력을 보셨지 않습니까? 더구나 이곳은 천골입니다. 천골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린이입니다.” 신뢰가 가득 찬 진의 눈과 그의 음성은 북궁신에게 믿음이라는 단어를 선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북궁신. 그의 입에서 따스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나 역시 믿는다네.” 한편 북궁소소를 구출하기 위해 뒤로 돌아간 린은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뒤를 세 명의 노인이 따르고 있었다. “이보게 젊은이, 지금 우리의 행사가 그들에게 포착되지는 않았겠지?” 12사신 중 일곱째인 사백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나 린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사백민이 뭐라 화내려 할 때, 그를 말리는 손이 있었다. 그 손의 임자는 12사신 중 넷째인 비소천이었다. “그만 하게.” “사형, 왜 그러십니까?” “그의 눈을 봐라. 저런 눈의 사람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아. 그는 처음에 출발할 때 말했다.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고.” “으음… 하지만…” “그만 하게.” “…….” 비소천이 다시 한번 말하자 사백민은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한번 화가 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사람이 비소천임을 알기 때문이다. 허나 자신도 이제는 나이가 일백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나 지금 반항하고 있다.’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비소천이 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사백민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그를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울렸다. “하하하, 이제 그만 봐주시죠. 저 젊은이도 우리가 오지 않으니 저 앞에서 멀뚱히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아, 불의 화신이라는 한지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비소천은 한숨을 내쉬며 린에게로 몸을 날렸다. 이를 멍하니 보고 있던 사백민이 몸을 돌려 한지민에게 인사했다. “역시 천무장원의 호법을 맡으실만한 합니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한지민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별 말씀을. 그래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군요, 하하.” 한지민과 사백민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몸을 날렸다. 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린은 그들이 몸을 날리자마자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 주변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이 그들의 걸음에 맞춰 이동했다. 골짜기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졌다. 그렇게 좀 더 걸어가자 어느 순간 길은 다시 좁아졌다. 그들은 순간 위를 올려다봤다. 이런 때 위에서 바위나 화살로 공격을 당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의 공격은 없었다. “흐음… 상당하군.” 뜬금없는 북궁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그들 역시 전방을 장악하고 있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모두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북궁신이 걸음을 옮기며 묻자 그 뒤를 따르며 진중선이 답했다. “25명.” “나 역시 그렇게 느끼고는 있으나 뭔가 불안하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 해.” “으음…” 진중선 역시 침음을 토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 부딪혀볼 수밖에. 그들은 골짜기를 나오자마자 전방에 서 있는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커다란 분지라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랜만이군.” 눈싸움으로는 결판을 못 가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우찬이 한 발 나서며 말했다. 그에 맞춰 진중선과 북궁신이 약속이나 한 듯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역시 살아 있었군.” “그 놈의 역겨운 얼굴도 여전하군.” 동시에 터져 나온 말이었으나 선우찬은 진중선의 말을 더욱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저 더러운 성질하고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선우찬은 속으로 혀를 찼으나 겉으로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가?” “허어, 정말 몰라서 묻는가?” 북궁신이 노기 어린 표정으로 묻자 선우찬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 여자 아이 때문에 왔나 보군. 거참, 늙으면 죽어야 된다더니.” “크크크, 내가 대신 죽여줄까?” 진중선이 괴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나 능구렁이로 따진다면 진중선 보다 몇 단 높은 선우찬이었다. 그러 그가 다시 한번 손뼉을 쳤다. 순간 반대편에 있는 좁은 길에서 그림자가 희끗하더니 선우찬의 앞에 나타났다. “여기 대령했습니다.” 북궁소소를 안고 있는 선우빈은 그녀를 일부러 물건 취급했다. 이에 대노한 북궁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상황을 냉철히 살펴야 할 위치에 있었다. “흐읍, 하아~ 그래. 네 놈 말대로 나는 그 아이를 찾으러 왔다.” “크큭, 아이를 찾으러 왔다? 그런 사람치고는 태도가 너무 뻣뻣한데?” 마지막 말에 힘주는 선우찬을 보며 북궁신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솔직히 말해 선우찬이 북궁소소를 가지고 협박할지는 몰랐다. 예전의 그는 최소한 인질로 위세를 부리지 않았다. 허나 시간과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처럼 선우찬 역시 변한 듯했다. “…그래. 내가 어떻…….” “이봐, 늙은이! 네가 그 패악무도한 일의 주모자냐?” 북궁신은 눈을 질끈 감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보다 진의 목소리가 훨씬 컸으며 선우찬의 귀를 거슬렀다. “허허허, 이 새파란 놈이… 머리만 파란 게 아니었구나, 하하.” 제 딴에는 무안함을 감추려고 한 말이었으나 듣고 있는 자들은 선우찬이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너 불쌍한 놈이었구나.” 진이 연민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선우찬은 괜스레 화가 났다. 진이 자신을 격동시키려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네 이놈, 좋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네 놈의 버릇부터 고쳐주마.” “아, 아버님.” 선우빈이 만류했으나 선우찬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가 누구 버릇을 고칠 지는 두고 봐야 알 일! 자, 간다!” 힘차게 외친 진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에공...약속한 3일을 초과해서 올립니다. 이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사정이란 게 생겨서리....쿨럭... 어쨌든 그랬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다음화가 진의 전투인데....쿨럭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심히 걱정되지만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도 적지 않습니다. 쿨럭...어쩄든 화이팅입니다. 162화 전투 2. 어린 녀석이라고 얕보았던 선우찬은 순식간에 공간을 격하며 자신에게 쇄도한 진에게 일순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절대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신무안에 오른 고수였다. “허허허!” 느긋하게 너털웃음을 터트린 것과는 달리 그의 손은 검을 잡고 있었고 드래고니아가 그의 몸통을 가르기 위해 빛을 뿜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에서도 빛이 만들어졌다. 쾅! 강력한 두 기운의 충돌에 그들을 중심으로 기파가 미쳐 날뛰었다. 콰아아! 바람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그들의 검과 검에서 터져 나온 바람이 미친 괴수가 되어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쓸어갔다. “으음…” 두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던 선우빈은 기막으로 전신을 보호했으나 충돌의 여파를 완전히 막진 못했다. 그러나 그 역시 만만치 않은 고수인지라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괜찮은가?” 24천의 일좌를 맡고 있는 선우관의 염려 섞인 물음에 선우빈은 쓴웃음만 지었다. “허허, 사형과 일검을 맞부딪히고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다니. 대단한 아이로구나!” 그의 감탄에 쓴웃음을 짓던 선우빈이 검을 맞댄 상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입만 산 놈은 아니었구나.” 선우찬은 비록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고는 하나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진에게 감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드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늘은 우리 한 쟈크인보다도 제국인들에게 더 자애로운 거 같구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굳이 여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 순간 자신이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만 알고 있으면 하늘도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선우찬인지라 이내 안색을 고치며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한편 진은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충격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거 같아 물러서지 않았다. ‘으랏차차!’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 모아 드래고니아에 주입했다. 허나 결과는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팔과 자꾸만 더부룩해지는 가슴뿐. 이에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진이라도 한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쳇!” 진은 짧게 투덜거리며 탄의 기법으로 기운을 순간적으로 터트리며 그 반동으로 뒤로 물러섰다. 물론 선우찬이 마음만 먹었으면 그의 수작은 무위에 그쳤을 것이다. 허나 선우찬은 보고 싶었다. 이 어린 친구가 자신을 얼마나 재밌게 해 줄 것인지를. “허허, 벌써 꼬랑지를 마는 것인가? 아까 전의 패기만만한 친구는 어디 갔는가?” 선우찬의 말에 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얼얼한 팔을 원상태로 돌리는 것이 급선무다. 잠시 후, 원래 상태로 돌아온 팔을 보며 진이 씩 웃었다. 그리고 분열되는 진. 선우찬은 어린 친구가 보여주는 재롱이 너무도 유쾌했다. 이번에는 수십 명으로 분열된 어린 친구가 자신을 포위한 상태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것이다. 진은 카이슨에게 배운 분신술을 극도로 운용하여 수십의 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거리를 좁히면서 한 가지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수십의 드래고니아가 열두 개의 선을 그렸으며 그것은 하나의 원을 이루기 시작했다. 파지직! 포위망을 좁혀오는 진들의 몸에서 스파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완전치 못한 원들이 점차 완벽한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번쩍! 수십의 진 중에서 열두 곳의 진에게서 강렬한 빛의 서기가 강림했다. 그 순간 수십의 진이 모래가 허물어지듯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은 맹렬히 회전하는 열두 개의 원. “차압!” 힘찬 기합에 선우찬은 고개를 위로 올렸다. 거기에 드래고니아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휘두르는 진이 있었다. 우웅! 드래고니아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자 선우찬을 포위하고 있던 열두 개의 원들이 주욱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팍 하며 사라졌다. “호오~” 원들이 사라지는 순간 진의 검에서 엄청난 기운을 감지한 선우찬은 아무렇게나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법을 조금이라도 견식해본 자라면 알 것이다. 지금 선우찬이 펼치고 있는 검법의 무서움을. 지금 선우찬이 펼치고 있는 것은 그를 금강의 신으로 만들어 준 금강현신이라는 검법이었다. 파천의 힘으로도 부술 수 없다는 금강현신이 지금 그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오오! 잠시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바람의 괴수들이 또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람의 괴수들마저 극도로 미쳐갈 때, 금강의 신 선우찬이 웅혼한 외침을 토했다. “금강현신!”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다. 어느새 선우찬의 앞을 든든하게 지키는 금강으로 만들어진 거인이 서 있는 것이다. “허억!” 진은 순간 놀랐지만 이미 막바지에 이른 이름 모를 검법에 정신을 집중했다. “하압!” 기세에 밀린 것을 만회하려 당차게 기합을 지른 진이 마지막 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맹렬하게 회전하는 구가 나타났다. 허나 그것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금강천하!” 진의 검법이 발현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선우찬 역시 그의 검법을 발현시켰다. 우오오오! 금강의 거인이 손을 내뻗었다. 순간 대기가 터지며 허공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쾅! 쾅! 쾅! 쾅! 격한 소음을 일으키며 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이 모든 일의 근원지는 바로 거인의 손 안이었다. 그곳에 방금 전 사라졌던 구가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구는 거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사력을 다해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인의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구는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큭, 쿨럭!” 바닥에 착지한 상태에서 검끝으로 선우찬을 가리키고 있던 진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내장이 뒤집히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거인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구가 팍 하며 터지자 그 충격으로 피를 토했던 것이다. “으윽!” 진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중심을 잡을 수 없어 비틀거렸다. 이를 보는 선우찬은 희미해진 거인의 상태에 놀라는 한편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쩝, 이것이 너의 한계인가?” 진심인지 비꼬는 것인지 구분하기 미묘한 말을 흘려낸 선우찬은 여전히 비틀거리는 진에게 실망한 듯, 뒤돌아서며 짧게 말했다. “됐다. 너의 목숨은 내가 뺏을 가치도 없구나.” 신기하게도 진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의 마지막 말은 들을 수 있었다. 순간 그의 다크 블루빛 눈이 빛을 뿜어냈다. “잠…큭, 깐. 잠시만 기다…려라. 나의 최고 비전…을 보여주겠다!” 말하기 힘들어 간혹 끊기나 진의 의지는 선우찬에게 확실히 전달되었다. 다행히도 선우찬은 진정한 무인에겐 그만한 대접을 해주는 무인이었다. “좋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한 시간.” “호오, 그래?” “아버님, 저 놈의 장단에 맞춰주실 필요는…….” 선우빈은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며 힘들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나았다. 결과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시끄럽다. 흐음… 좋다. 너에게 한 시간의 시간을 주겠다. 그럼 잠시 후에 보자.” 선우찬은 말을 맺으며 자신들 무리에게로 걸어가 어느새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한편, 진은 취객의 걸음처럼 비틀거리며 걷다 그것도 힘들어지자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바닥에 앉아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백호천광무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백호천광무를 성공해 본적도 없다. 하아, 믿을 건 이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괜히 말을 꺼낸 것인가?’ 괜한 일을 했다는 사실에 점점 불안해지는 진은 이번마저도 실패하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러자 죽음의 공포와 물밀듯이 몰려왔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백호천광무를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린이 말했듯이 나에겐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 진은 얼마 전, 린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형님께서는 엄청난 양의 고니아를 갑작스럽게 받아들이셨기에 몸이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고니아는 드래고니아 안에 있지만 형님께서 사용하는 기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만 해도 드래고니아에 있는 고니아로 몸의 기능을 각성시켜 형님께 뒤지지 않는 몸놀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저와 고니아는 드래고니아라는 매개체를 차치하더라도 적응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형님은 아닙니다. 저와 결투를 할 때에는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형님께서 지금 백호천광무를 사용하지 못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린의 말에 돌파구가 있을까 하여 떠올려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뭔가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니아 역시 기운이고 그 기운으로 내 몸을 각성시킬 수 있다면 가장 빠른 방법은…….’ 진은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개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리한 방법이라도 시도해보아야 했다. 그러는 한편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에게 무한한 욕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는 진이었다. ‘머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툭 하면 욱하고 욱하면 일을 저지르니. 내가 살아남게 된다면 다음부터는 절대 경솔히 행동하지 않겠다.’ 장담할 순 없지만 일단 속으로 다짐을 해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 진이 서둘러 정신을 집중했다. 드래고니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드래고니아는 자신의 보금자리인 진의 몸속, 정확히 말해 진의 혈액에 들어와 있었다. 진은 우선적으로 드래고니아를 혈액과 분리시켜 챠요로 이동시키는데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은 별 어려움 없이 성공했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토한 진은 챠요를 타고 이동해 드래고니아를 단전으로 이동시켰으며 곧바로 첫 번째 쿤인 륜으로 밀어 넣었다. 우우웅웅웅! 처음 드래고니아를 륜에 밀어 넣자 막대한 반발력이 드래고니아에게서 나왔다. 이에 다시 한번 피를 토한 진이지만 이판사판으로 막 나가는 그인지라 막무가내로 륜 안으로 드래고니아를 밀어 넣었다. 웅! 웅! 웅! 우웅! 팍! 몇 번 반항의 울음을 토하던 드래고니아는 진의 무식함에 두 손을 들고 륜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륜은 드래고니아에 있는 고니아 역시 기라고 인식하며 그 안에 있는 기운들을 끌어 모아 전신에 있는 챠요에다 이동시켰다. 고오오오오! 이때부터 진의 몸속은 엄청난 양의 고니아에 의해 재구성을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얼핏 희열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설마 이 정도로 잘 될지는 나 역시 몰랐다. 고니아의 엄청난 기운에 의해 네 번째 쿤인 뮤슈를 연 것은 물론이요, 다섯 번째 쿤인 테츠까지 열어버리다니. 허나 아직도 고니아를 내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벅찬 심정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한편 어쩔 수 없는 불안감 역시 가슴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허나 불확실하다고 해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사부 중 한분인 헌트에게 매우 실례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크크크, 뻔히 이길 줄 알고 싸우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이지. 강한 자와 싸우는 것. 나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이야 말로 싸움이 주는 극치의 쾌락이라 할 수 있지.” 헌트의 맨질맨질한 머리 위에 붉은 십자가가 상기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이에 씩 웃으며 고개를 돌린 진은 선우찬에게 뚜벅뚜벅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당신의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흐음…” ‘무슨 기연이라도 만난 것인가? 어린 친구의 눈이 더욱더 심유해졌어. 느껴지는 기로는… 오호, 파무광의 경지에 올랐구먼. 앗차, 어린 친구는 제국인이니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러줘야 하나? 하하.’ 선우찬은 어린 친구의 성장에 자신이 더욱 기뻐했다. 여기에는 어린 친구, 즉 진이 파무광에 올랐어도 이길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른 신무안과 파무광은 질적으로 틀리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친구에게 기와는 다른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듯 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을 축하하네. 그렇지만 아직은 많이 어색할 거야.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결투가 되지 않겠지. 우선 새롭게 변화된 몸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자! 즐겁게 한바탕 어우러져 보자고. 하하하!” 오랜 만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선우찬이 살기를 담지 않은 검을 휘둘렀다. 이에 진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그들의 검무가 시작되었다. 진과 선우찬은 검을 부딪치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진은 혼란스러워졌다. ‘검은 정직하다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 그렇다면 올곧게 걷는 검처럼 이 사람 역시 올곧은 사람일까?’ 이런 물음들이 선우찬과 어울리는 내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시원하게 땀을 흘리며 검을 부딪치니 쓸데없는 근심이 되어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허억, 허억, 허억!” 허리를 숙이며 숨을 고르는 진을 보며 선우찬이 씩 웃었다. 그리고 그 역시 호흡을 골랐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선우찬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쯤하면 변화된 경지에 몸이 익었을 거라 생각되네만.” “과분할 정도였습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 적에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우리의 결투에 사사로운 감정은 개입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선우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다크 블루빛 눈을 보았다. 그리고 짧은 한 마디. “고맙군.” 이 말을 끝으로 두 사람에게서 대화가 사라졌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기법을 펼친 두 사람은 힘차게 외쳤다. “백호천광무!” “지옥겁화!” 커다란 백호가 입을 벌리는 순간 대기가 찢어지며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정없이 대기를 할퀴는 나선형의 회오리가 뿜어져나갔다. 그 뒤를 위풍도 당당하게 하얀 호랑이가 따라갔다. 한편 모든 기를 운용하여 기술을 펼친 선우찬은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꽃이 어느 순간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선우찬이 허공에다가 마지막 점을 찍었고 그 결과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이 대기 속에 그 모습을 감췄다. 하얀 호랑이가 포효하며 파괴되어진 공간을 격하며 날아가다 흠칫거리는 순간 재빨리 방향을 틀어 날카로운 이빨로 허공을 물었다.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기파가 터져 나와 드넓은 대지를 질타했다. 그 결과 이미 멀찍이 대피해 있던 고수들이 허겁지겁 물러서는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어찌됐든 반경 수 수키르가 이번 격돌로 뒤집히고 부서졌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하얀 불꽃을 물어뜯으려는 하얀 호랑이와 반대로 하얀 호랑이를 태워버리려는 하얀 불꽃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크흑! 제기랄!” 진은 또 다시 내장이 뒤집히려 하자, 미칠 거 같았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선우찬을 힐끗 보았다. 그 역시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았으나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계다. 더 이상 버티기는 무리다.’ 진의 몸은 땀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반대편인 선우찬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에게는 진에게 없는 여유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끄읍, 핫!” 진은 사력을 다해 마지막 남은 기운을 쏟아 보냈다. 그러자 하얀 호랑이가 하얀 불꽃을 일그러뜨리며 터트리기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러나 선우찬의 매서운 기합에 하얀 호랑이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하얀 호랑이가 감당하기에는 하얀 불꽃의 기세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제엔장! 조금이라도 틈이 생긴다면…….’ 진은 하늘에 대고 간절히 빌었지만 그런다고 들어줄 하늘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허공에다 검끝을 고정시킨 선우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선우찬은 이 당혹스러운 사태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제아무리 신무안의 고수라도 체력과 기력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태에서 중력의 정령 루카스를 물리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망할!” 그답지 않게 상소리가 나왔다. 허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허공을 향하고 있어야 할 그의 검끝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진의 꺼져가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가라!” 뒤로 넘어갈 듯 하던 하얀 호랑이, 즉 백호가 포효를 하며 하얀 불꽃을 힘껏 깨물었다. 콰쾅! 순간 천지가 개벽한 듯한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하얀 호랑이 역시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사라졌다. 좌중은 경악에 빠져 있었다. 누구나 최강의 무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선우찬이 제국의 젊은 무인에게 당했다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같은 일행인 진중선 등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멈춘 듯 정지화면을 보여주던 좌중은 선우빈의 외침에 순리에 따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아버지!” 이미 가루가 되어 그 시신조차 찾지 못하지만 선우빈은 그 가루를 움켜잡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서럽게 울다 섬뜩한 눈빛으로 기절한 진을 일별한 뒤, 진중선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선우빈의 한 맺힌 절규가 잔혹하게 뒤집혀진 대지를 울렸다.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은 말아라!” 163화. 전투 3. 모든 것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간다. 소소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선우찬이 어이없게 죽은 것도. 어떻게 해야 한다 말인가?’ 북궁신은 침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들은 혼란을 조장하고 그 틈에 소소를 데려오는 작전을 짰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고 거기다 이렇게 건곤일척을 벌이게 될 줄이야. 특히 진이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선우찬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압도적인 인원수로 몰아붙이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허허허, 내 운도 여기까진가?’ 자신과 진중선이 제아무리 신무안의 고수라 할지라도 눈앞에 있는 자들 역시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다. 더구나 백여 명의 고수들 중에 가장 낮은 성취를 보이는 자가 황화광의 고수니, 아무리 봐도 죽음의 낫은 자신들 쪽에 드리워져 있는 듯 했다. 북궁신은 무의식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진중선 역시 그를 보고 있었다.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 두 노인은 씩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두 노인. 그들의 눈에서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가볼까?” 진중선의 조금은 장난스런 물음에 북궁신이 피식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죽음은 더 이상 공포가 될 수 없었다. “크하하하하, 누가 더 많이 죽였는지 저승에서 이야기 해 봄세.” “푸훗, 이래서 자네가 마음에 든 다니깐.” 말을 마치자마자 두 노인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북궁신은 날아가는 순간에 진을 돌아보며 입술을 들썩였다. 그리고 그는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며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헉!” 선우빈은 그들이 먼저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 못한 듯 놀란 기색을 보이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이에 금강장원의 고수들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뭐라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대신 선우빈의 빈 자리를 금강장원의 최고수들인 24천이 앞으로 나서며 메웠다. “제 발로 죽으러 오는 구나.” 으르렁거리는 듯한 선우관의 말과 함께 24천의 고수들이 일시에 모든 기운을 쏟아냈다. “금강천뢰!” 24인의 기운이 뭉쳐 하늘로 쏘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시커먼 구름 사이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은 순간, 찰나의 순간에 수백의 번개가 되어 진중선과 북궁신에게 떨어졌다. 번개는 강력한 스파크를 뿜고 있었다. 이로 보아 번개 하나하나에 무시 못 할 거력이 담겨있음이 분명했다. 콰쾅쾅쾅쾅쾅쾅! 그들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하여도 수백 라키르를 동시에 터트리는 번개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달리는 속도를 조금 줄이며 온 몸에 기막을 둘렀다. 그 순간 대단위로 퍼져 있던 번개들이 범위를 좁히며 내려 꽂혔다. 쾅쾅쾅쾅쾅! 쉴 새 없이 기막을 때리는 번개 때문에 진중선과 북궁신은 속이 뒤엉키며 기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가? 최고의 무인이라는 칠신의 일인들이 아닌가! 비록 피가 역류하여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꿋꿋이 견디며 전진했다. 조금만 더 가면 자신들 영역이기에. 사실 금강천뢰는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일 수 없었다. 설혹 선우찬이 펼치더라도 이 정도의 위력을 낼 순 없었다. 24천은 십여 년 전의 일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선우찬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기법을 완성했다. 이를 알리 없는 진중선과 북궁신은 처음 금강천뢰와 부딪히는 순간 온 몸이 부서지는 통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입술을 깨물며 전진해 기어코 그들의 영역 안에 들어갔다. 진중선의 손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찍어갔다. 또한 북궁신 역시 엄청난 속도로 양 손을 돌리기 시작했다. “천무강림!” “극음난무!” 화룡정점이라 했던가? 두 노인은 모든 일을 마친 듯 평온한 표정으로 두 손을 쫙 뻗었다. 그 순간 그들을 때리던 번개가 힘없이 녹아갔다. 콰르릉! 쩌저적! 진중선의 손에서 대기를 들끓는 소리라면 북궁신의 손에서 나는 소리는 대기가 얼다 못해 깨지는 소리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서 황금빛 광채와 하얀 안개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24천은 내심 놀랐다. 자신들의 공격을 견디는 것부터 시작해 이런 엄청난 반격을 가해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새삼 신무안이라는 경지에 경외감을 갖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눈앞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금강뇌벽!” 최고의 합진 방어술을 펼치는 찰나, 그들은 천천히 오는 듯하던 기운이 공간을 격하고 그들 바로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이에 당혹감을 느낀 그들은 완전치 못한 금강뇌벽으로 천무강림과 극음난무를 맞아들여야 했다. 황금빛 광채는 그들 앞에 나타나는 순간 수만 개의 황금수가 되어 그들을 후려쳤다. 또한 하얀 안개는 수만의 채찍이 되어 일순 모든 공간을 하얗게 수놓아버렸다. 그들이라고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 뒤에 있는 80여 명에 이르는 고수들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도 모든 기운을 일으켜 24천을 보호하려 했고 24천 역시 불안정하지만 금강뇌벽으로 수만 개의 황금수와 하얀 채찍의 공격을 막아갔다. 그러나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자들은 다름 아닌 칠신의 두 명이었다. 쩌저적! 쾅쾅쾅! 황금빛 번개가 하얀 채찍에 의해 어는 것과 동시에 찢어졌다. 뒤이어 수만 개의 황금수에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24천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완절 소멸해버렸다. 금강장원의 무리들은 놀라다 못해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러나 진중선과 북궁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많이 저승길 동무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미 내부는 엉망진창이라 얼마 못 버틸 것은 자명한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울컥 피를 토하면서도 기를 끌어 올려 멍청히 있는 자들의 목을 따려했다. 허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거기까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잔뜩 끌어 모은 기들이 흩어졌다. 순간 황당함과 경악이 극에 달했지만 그들은 이내 평정심을 찾고 자신들 앞을 막고 있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을 보면 눈을 먼저 보게 된다. 그런데 사내는 그의 은빛 머리칼을 보게 만들었다. 사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눈이 갔을 뿐이다. 그리고 눈을 보았다. 순간 진중선과 북궁신은 벼락에 맞은 듯 몸을 떨었다. 방금 전 수백의 번개를 맞고도 불굴의 의지로 버텼던 그들이 사내의 눈을 보는 순간 광풍에 꺾인 연약한 나무로 전락해버렸다. ‘흐음… 저 자는 인간이란 말인가?’ ‘설마 천혜화에 오른 건가?’ 그들은 담담한 기도와는 달리 광포한 기운으로 가득 찬 그의 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를 읽었다. 자신들이 멀쩡했다고 해도 저 자를 상대할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자신들 역시 예전 선우찬과 겨룰 때의 그들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그들의 내심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멍하니 서 있는 선우빈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툭툭 쳤다. 그러자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선우빈이었다. 사내 역시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신처럼 따르는 자. 자신에게 꿈을 맡긴 자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금제를 가한 자에게 무한한 분노를 느꼈다. 선우찬을 죽인 자보다 그에게 더한 분노를 느꼈다. -너의 힘은 어둠의 힘! 음기가 충만한 보름 외에는 쓸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건 금제다. 이는 선우찬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금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래서 혼자서 안아야 할 문제였다. 그랬기에 그는 이제껏 그 금제를 풀기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었다. 허나 불행히도 금제는 여전히 금제로 남아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금제를 풀 수 있을 거 같은데,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하늘은 나에게 얼마나 더 고통을 주려 하는가? 그래 좋다! 하늘이 고통을 준다면 받겠다. 그러나 하늘은 나의 행사에 아무런 간섭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오오오오! 사내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사되었다. 그리고 이미 광기를 드러내고 있는 사내의 눈이 벌겋게 변했다. 순간 눈앞의 두 노인이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두 노인. 어이없을 정도로 허망한 죽음이 칠신의 두 명을 맞이한 것이다. 순간 모두는 입을 벌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는 순간 자신도 죽음을 맞을 거 같은 두려움이 자연스레 정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노고수들은 진중선과 북궁신의 시신을 안아들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시신을 보는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직 두려울 뿐이다. 시신을 안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분해서인가? 아니다. 두려운 것이다. 모두는 은발의 사내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낸 노고수 한 명이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웃고 있었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가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으…”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목은 허공에 띄워졌을 뿐이다. 이에 놀란 노고수들이 일제히 사내를 보았다. 그 순간 사내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서걱! 그의 손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멍하니 있는 12사신 중 한명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그가 사라졌다. “크헉!” 실력이 높은 자는 비명이라도 질렀다. 허나 초영공의 고수들마저 자신이 왜 죽는지 알지 못하고 죽어갔다. 단지 죽은 자들의 눈에 흐릿한 모습으로 은발의 사신이 투영되고 있을 뿐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천무장원과 북해장원의 고수들 전원이 싸늘한 시신으로 대지 위에 누워 있었다. 그 중에 백현영의 공포로 일그러진 시신이 보였다. 사내는 자신 앞에 더 이상의 적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 순간, 사내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인세의 어떤 고통으로도 만들 수 없는 표정이 사내의 얼굴에 나타났다. 청수한 인상의 사내가 흉악한 악신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꺼어, 꺼어, 컥!” 머리를 움켜잡고 발광을 하던 사내는 이번에는 호흡이 가쁜지 목을 잡고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사내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털썩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를 지켜보는 금강장원의 무리들은 넋을 놓은 상태였다. 선우찬은 언제나 말했었다. 이 사내가 우리들의 주인이라고. 그러나 비교적 젊은 층의 무인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 사내의 엄청난 무위를 보는 순간 와장창 깨졌다. 그리고 허둥지둥 사내를 운반하는 금강장원의 고수들. 광인의 모습을 보여주던 사내의 모습에서 정신을 차린 선우빈은 눈을 돌려 진을 찾았다. 그러나 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북궁소소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혹시나 해서 시체들 틈에 있는 건 아닌지 싶어 시체들 하나하나를 다 뒤졌다. 그러나 진과 북궁소소를 찾을 순 없었다. “크아악! 도대체 어떤 놈이냐? 내 기필코 찾아내리라!” 선우빈의 한 서린 절규에 주위의 고수들은 혀를 차기만 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앞세우는 선우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린 등은 북궁소소를 찾기 위해 뒤로 돌아 들어갔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북궁소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린은 낯설지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처음에는 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느껴보니 또 달랐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린은 세 사람을 남겨 두고 의구심을 풀기 위해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은밀히 잠입했다. 눈앞의 현실은 너무도 냉혹했다. 그로써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자신이 알고, 들어온 바로는 최고의 무인이라는 칠신의 두 명이 허무하게 당한 것이다. 그리고 시작 되는 살육. 린은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사람의 존재를 떠올렸다. 진! 자신의 의형이 되는 진을 떠올린 것이다. 린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안력을 돋우어 진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진은 살육이 자행되는 곳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홀로 쓰러져 있었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쉰 린은 고니아로 자신의 몸을 감추며 은밀하게 진에게로 다가갔다. 진을 안아드는 순간, 린은 미약한 중얼거림을 들었다. “북궁소소를 어르신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저기에…” 한 곳을 가리킨 진은 다시 기절했다. 린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북궁소소라는 여인은 자신이라 할지라도 데려가기 힘든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많은 고수들이 넋을 놓고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다. 린은 잠시 망설이다 진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의형의 부탁을 그로서는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린은 진을 땅에 내려놓은 뒤, 북궁소소에게 접근했다.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리 무방비 상태로 있다 하나 그들 역시 무시 할 수 없는 고수들. 그렇기에 린은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동했다.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눈을 번뜩일 때마다 린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그렇게 북궁소소에게 다가간 린은 그녀를 안아들어 진이 있는 곳까지 무사히 이동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란 게 그녀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린은 진과 북궁소소를 안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소, 소소가 아닌가? 어떻게 찾았는가?” 비소천이 놀라 물었으나 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왔던 길로 몸을 날렸다. 그를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진 않았다. 아니, 솔직한 말로 그들 역시 앞 쪽에서 벌어지는 기운의 충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 역시 인간. 좀 더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인 법이다. 거기다 명분도 있었다. 혼란을 틈타 북궁소소를 데려 오는 일. 이제 그녀를 찾았으니 돌아가는 일만이 남았다. 물론 그들은 노고수들이 일방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아무리 자기 목숨이 소중해도 혼자 살기 위해 도망가진 않았으리라. 그렇기에 그들은 조금 꺼림칙하지만 몸을 날릴 수 있었다. 북궁소소를 구했다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그들이 최후의 생존자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 독점연재의 첫 화군요. 164화. 파천풍뇌검 1. “네 말이… 사실이냐?” “예.” 떨리는 진의 목소리에 찬물을 엎는 린의 간단명료한 답. 두 사람 사이에서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진 역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들려오는 섬뜩한 파육음과 단말마의 비명.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진이었다. 그리고 흐릿한 시각으로 보았던 은발의 머릿결. 순간 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와 불안감. 그것이 진을 엄습한 것이다. 린은 진의 돌연한 모습에 놀라 그를 붙잡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그를 붙잡는 린을 튕겨내는 진이었다. “혀, 형님! 진정하십시오.” 린의 다급한 말에도 진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더구나 너무도 역겨워 토해버리고 싶은 이 더러운 느낌은 무어란 말인가! 진은 그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놔! 놔아! 으아아악!” 광기어린 진의 모습에 시체처럼 멍하니 있던 노인 세 명이 그의 주위로 다가왔다. 그리고 텅 빈 동공으로 진을 바라보는 세 노인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죽었다.” “…….” 순간 거짓말처럼 진의 몸이 딱 멈췄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 그 눈물은 뜨겁고도 뜨거웠다. 그렇게 한참동안 진은 울었다. 그리고 울다 지쳤는지 잠에 빠져들었다. 진이 잠이 들자 세 노인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어딘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리라. 린은 낮게 한숨을 토하며 멀어져가는 세 노인을 바라보았다. 3일전 그날이 떠올라 린은 생애 처음으로 느꼈던 가슴이 찌릿한 감정을 또 다시 느꼈다. “다시 한번 말해 보게. 늙으니 귀가 이상해졌나 보이, 허허.” 비소천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이를 보고 린은 가슴이 따끔해졌다. “모두 전사하셨습니다.” “…… 허허. 허허허. 그 말을 지금 나 보고 믿으란 말인가?” 비소천의 눈은 아까와 달리 열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지민과 사백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 또 다시 가슴이 따끔거린 린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감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다.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불신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린은 괜스레 기분이 나빠져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분노했다. “네 이놈.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배웠느냐?” “거짓말이 아닙니다.” 한지민의 위협에도 린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반박했다. 순간 세 노인의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 아니다. 너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백민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으나 그는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죽었다는 것을. “이 녀석아. 왜 울고 지랄이냐? 누가 죽었다… 큭, 고.” 비소천이 사백민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으나 그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한지민이 보였다. 린은 이 자리가 매우 거북스러웠다. 자신의 가슴이 미칠 듯이 아파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진 않았다. 돌아가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랄까?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기에 가슴이 아프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 준비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린은 지금 상당히 거북스런 상태였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중간에 북궁소소가 깨어나기도 했다. 그녀 역시 사실을 전해 듣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슬픔은 세 노인보다도 더했다. 자신 때문에 모두가 죽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가 정신을 차리는데 하루가 지났다. 하루가 지났어도 그녀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나올 눈물이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 슬퍼하는 거 같았다. 그것이 린으로서는 의아했지만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또 다시 하루가 지나 3일째, 린은 자신의 거처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비록 고니아로 자신들의 기척을 감추고 있다 하나 소리까지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멀찍이서 또 다른 기운들이 감지됐기에 린의 마음은 점차 다급해졌다. 결국 린은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들을 반강제로 끌고 갔다. 그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풍철산은 기약한 3일을 하루 앞두게 되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펜던트는 계속해서 빛을 뿜고 있고 기약한 날짜에 맞추려면 지금 움직여야 하니, 어떻게 한 담?’ 속으로 물음을 던져보았으나 정해진 답은 하나였다. “파천풍뇌검은 일을 끝낸 뒤, 찾아도 그만이지, 하하하.”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풍철산은 약속한 장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어라? 이 길은 처음 보는 길인데?’ 풍철산은 분명 왔던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길은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파무광에 오른 고수인 그가 이런 실수를 할리는 없는데.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풍철산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했다. 그가 한곳에 서서 가만히 있자 황금색 펜던트가 또 다시 빛을 토했다. 자세히 보니 그 펜던트는 검 모양이었고 검신에서 황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풍철산의 눈이 멍하니 풀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풍철산은 천골에 몇 되지 않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걷기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풍철산은 정산에 도달했다. 산의 정상은 어디나 호연지기를 불러일으킬만하다. 그런데 천골의 산만은 예외다. 정상에서 산 아래를 아무리 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천골의 산의 정상은 너무도 외로운 곳이었다. 풍철산은 정상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경건한 모습으로 발을 옮기는데 여전히 풀려 있는 눈과 그 경건함이 부딪혀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풍철산은 정상에 있는 호수로 다가갔다. 호수의 물은 지상에 있는 물과 다르지 않았다. 풍철산은 잠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 모양의 펜던트를 호수에다 던졌다. 퐁! 펜던트가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수의 거대함에 작은 파문만을 남기며 호수 속으로 가라앉아갔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풍철산은 여전히 멍한 상태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어둑한 지 오래였고 은은한 뇌성이 귓가를 간질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철산은 무표정한 얼굴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호수의 물이 허공으로 점점 떠오른다. 은은한 뇌성이 점점 광포하게 변한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 사이로 황금빛 선이 강렬하게 새겨진다. 또한 광포한 바람이 사위를 휩쓸고 있다. 그럼에도 가랑비조차 내리지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둠에 가려졌던 태양이 희끗한 모습을 보인다. 허공에 떠 있던 호수는 뿌연 안개가 되어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진 뒤였다. 그리고 드러나는 움푹하게 패인 대지. 그 가운데에 검 한 자루가 고고한 모습으로 떠 있다. 태양이 하늘에 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어둑하다. 번개도 여전치 거칠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연이 숨죽였다. 광포하게 날뛰던 바람마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죽어있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사위는 쥐죽은 듯 멈춰있다. 단지 찬란한 빛을 토하는 태양과 여전히 어둠을 선사하는 시커먼 구름 떼들의 대치상태가 계속될 뿐이다. 그것도 잠시, 먹장구름들이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수천, 수만의 번개가 작렬했다. 콰콰쾅! 번쩍! 사위는 순식간에 광휘의 세계로 변했고 그 아름다움은 태양마저 살짝 눈을 감을 정도였다. 허나 풍철산은 여전히 호수를, 아니 허공에 고고한 모습으로 떠 있는 검을 넋을 잃고 보고 있을 뿐이다. 콰콰쾅! 번쩍! 번개는 쉴 새 없이 검을 두들겼다. 아니, 검을 어루만져주고 있다는 말이 정확하리라. 제아무리 광포한 번개라 할지라도 검에 이르기만 하면 온순한 양으로 변하니. 또한 광포하게 사위를 휩쓸던 바람이 검의 주변에만 가면 잔잔한 미풍으로 변하니. 대자연도 파천풍뇌검 앞에는 고개를 숙이는 가 보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이 지나갔다. 태양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은근슬쩍 밤을 맞이했고 또 다시 태양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내밀 때는 이미 번개와 바람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태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주위를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검을 들고 서 있는 한 인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 어쩌다보니 오늘 2연참을 하게 되었군요. 이제 저는 자려고 합니다. 쿨럭, 아마도 지금 자면 오후 늦게나 읽어나겠죠. 그리고 저는 또 글을 쓸겁니다. 이러다보면 또 다시 헬스클럽을 못 갈듯.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뿌린 대로 거둬야 되니.... 165화. 파천풍뇌검. 2. 목소리가 들린다. 아늑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몸서리쳐지는 어둠. 허나 두렵지는 않다. 미등의 희미한 불빛이 따스함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니. 풍철산은 숨 막히는 어둠 위에 시커먼 그림자를 보고 있다. 그 그림자가 지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귀로 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자는 지금 말하고 있다. 시키먼 그림자가 후련한 모습으로 서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뒤 돌아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풍철산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은 어둠에 속박되어 있으나 그 그림자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어둠이 무서워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 홀로 있는 고독감이란, 아니 근원적인 두려움이 그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무섭다. 두렵다. 미칠 거 같다. 풍철산의 사고를 장악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두려우며 두렵지 않은지. 눈앞의 어둠은 그저 어둠일 뿐이다. 몸서리쳐지지도. 숨 막히지도. 두렵지도 않다. 어둠은 그저 어둠일 뿐이다. 너무도 단순한 사실. 풍철산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미몽에서 벗어났다. 태고적 어둠 위에 황금빛 번개가 춤을 춘다. 그러나 외롭지 않다. 그에게는 포근하기도, 또한 광포하기도 한 바람이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풍철산은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빛 속에 있었으며 그 누구도 속박할 수 없는 바람과 함께했다. 이제 그들에게도 친구가 생긴 것이다. 풍철산이라는. 황금빛 선은 광포했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세상을 파괴할 듯한 거력은 천상의 선녀가 추는 춤과 같았다. 그 흐름이란… 하늘의 뜻을 담고 있다. 지금 풍철산은 하늘의 뜻을 보고 있다. 바람은 자유롭다. 또한 바람은 다른 것들을 속박할 수 있다. 풍철산은 바람의 자유로움을 배웠다. 또한 속박하는 힘도 배웠다. 그러나 그는 바람이 아니다. 단지 바람의 친구일 뿐이다. 태고적 어둠을 잔잔한 뇌성이 흔든다. 찰나의 순간에 어둠은 어둠이 아니게 되며 뇌신의 일필휘지가 그 위를 움직인다. 마치 어둠이 하얀 종이가 되며, 번쩍하며 나타나는 번개가 문성의 문장이 되는 듯하다. 어둠 위를 가득 채운 뇌신의 문장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황금빛 문장은 어느 순간부터 풍철산의 것이 되었다. 하늘의 뜻은 순리다. 그리고 흐른다. 순리는 어둠을 본래의 어둠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어 둠은 외롭지 않았다. 그에겐 아직 바람이라는 친구가 있으니. 바람은 여유롭다. 자유로우니 여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람은 바보가 아니다. 비록 그가 가진 여유라는 특성상 번개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하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을 잊어 먹는 바보는 아니다. 바람이 움직인다. 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바람은 움직인다. 바람은 풍철산의 것이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순리니까. 그리고 지금 그것이 이루어졌다. 풍철산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그의 내면에는 너무도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전하려 한다. 그의 내면에서 번개와 바람이 부딪힌다. 이제껏 그렇게 다정해보이던 그들이 생사대적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서로를 잡아먹으려 한다. 그러나 풍철산은 놀라지 않았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번개와 바람의 부딪힘이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풍철산의 뇌리에 한 단어가 새겨졌다. 파천풍뇌황! 그리고 그가 눈을 떴다. 반구를 뒤집은 대지 위에 한 사내가 춤을 추고 있다. 또한 바람과 번개도 춤을 춘다. 사내의 춤사위에 반구의 대지는 어느새 평평해졌다. 그러나 사내의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위는 어둡다. 그러나 하늘 위는 어둡지 않다. 고고하게 떠 있는 보름달이 하늘 위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내의 춤사위는 계속되어지고 있다. 어둡다. 실내를 뒤덮고 있는 분위기 또한 무겁다. 마치 억겁의 어둠처럼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한숨을 토했다. 연이어 터지는 한숨. 그것 또한 무겁다. 그들은 침대를 보고 있다. 아니다. 침대 위 괴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사내를 그들은 보고 있다.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초리로. 사내는 고개를 들면 밖을 볼 수 있는 창문 아래에 누워 있다. 그러나 사내는 밖을 볼 수 없다. 그의 눈은 굳게 닫혀 있기 때문이다. 창문 밖이 점차 환해졌다. 요사한 빛을 토하는 보름달 때문이다. 그리고 사내의 눈이 떠졌다. 모두는 놀란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너무도 감격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그들에게 일별도 하지 않았다.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문을 향해 다가갔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다. 사내가 나갔다. 이번에도 사내는 그들에게 일별도 하지 않았다. 실내에 있던 수십의 사람들이 부복하여 머리를 땅에 박고 있다. 사내가 나간 문 쪽을 향해. 사내의 태도는 신경도 쓰는 않는 투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창문 밖 하늘에 요사한 빛을 토하는 보름달이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떠 있다. 그러나 보름달은 알고 있을까? 그가 등장함으로써 한 사내의 금제가 잠시나마 풀렸음을. 그리고 그것이 그를 살렸음을.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노란 빛을 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는 보름달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신경과민인가?’ 가볍게 고개를 턴 풍철산은 손안의 감촉이 말해주는 현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춤을 보았다. ‘분명 내 검은 저기에 있다. 그렇다면 내 손에 있는 이 검은…….’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재빨리 고개를 돌린 풍철산은 묵빛을 띠고 있는 검 한 자루를 볼 수 있었다. 파천풍뇌검! 뇌리를 꿰뚫는 한 단어.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임에 틀림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그림자가 했던 말을 시간과 공간을 격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황량한 바람이 풍철산을 스쳐갔지만 오히려 그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후후후, 천리하고 하셨지. 내가 여기 온 것도 이 검을 갖게 된 것도 다 천리라 하셨지.” 잔잔한 음성을 흘리는 풍철산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너무도 깊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유한 눈빛이 그랬고 가만히 있어서 절대자의 기도가 느껴지는 것도 그랬다. 지금의 그는 칠신이라는 진중선과 북궁신의 기도를 능가할 정도였다. 그와 비견될 자를 꼽는다면 은발의 사내 정도. 그때였다. 산 밑에서 광소성이 울렸다. “크하하하하! 내가 왔다.” 소리는 분명 저 밑에서 울렸다. 그러나 순간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찰나의 순간에 광소성의 주인은 풍철산의 앞에 서 있었다. 풍철산은 말없이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그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리를 역행하는 자군.” 풍철산의 말에 사내가 흠칫했다. 순간 사내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고오오! 사내가 한번 노하자 대기가 놀라 날뛰었다. 그러나 풍철산의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예전의 그라면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부끄럽긴 한가 보군.” 풍철산의 담담한 목소리에 사내가 다시 한번 흠칫했다. 그리고 놀란 음성으로 사내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러는 너는 누구인가?” “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대답도 알겠군.” 풍철산의 느긋한 음성에 사내는 당혹감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금제가 풀린 자신 앞에서 이렇게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있긴 있었다. 단 한 사람. 자신이 증오마지 않는 사람이 있긴 하다. ‘젠장! 왜 그 놈을 떠올려야 하지? 그래, 모든 건 다 이 놈 때문이다!’ 사내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풍철산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그의 몸이 사라졌다. 은은한 은빛을 허공에다가 남기고. 꽈지직! 사내와 풍철산이 부딪히자 평평하게 골라졌던 대지가 나무가 쪼개지듯 갈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 격돌에 산이 수십 라키르나 낮아졌다. 쿠르릉! 엄청나다 못해 경이적인 그들의 기운에 하늘도 놀라 경악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귀는 상대방에게만 집중되어 있을 뿐. 여타 다른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쾅! 쾅! 쾅! 찰나의 순간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세 번 연속으로 터졌다. 그런데 굉음이 터진 장소가 각기 너무도 멀리 떨어진 장소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재미있군.” 사내의 갑작스런 말에 풍철산의 몸이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파천풍뇌검을 휘둘렀다. 콰콰콰! 번쩍! 대기가 파열되는 기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수만 개의 황금빛 쇠꼬챙이가 사내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사내는 놀란 기색은 전혀 없고 흥미로운 눈으로 풍철산을 바라볼 뿐이다. 파파파파! 콰콰콰쾅쾅! 바람의 호위를 받으며 전진하던 수만 개의 황금빛 쇠꼬챙이가 사내의 1 라키르 앞에서 기음을 토하다 강대한 힘에 튕긴 듯 하늘 아래 대지에다 그 거력을 쏟아냈다. “으음.” 풍철산은 그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말을 잊은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사내가 빙긋이 웃었다. “그게 다 인가?” 사람을 밑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 그것이 풍철산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떠한 일로도 무너뜨릴 수 없을 거라 장담한 그의 평정이 지금 깨어진 것이다. ‘우리 가문을 무시하는 저 태도. 부셔버리겠다!’ 순간이동을 하듯 사내 앞에 나타난 풍철산의 검이 사내의 허리를 자를 듯했다. 그러나 그의 검은 사내의 허상만 갈랐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쪼개는 예기에 대항하기 위해 급히 몸을 틀어 피해야 했다 따끔! 분명 검은 피했으나 검세에 담긴 검은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도 풍철산은 지혈할 여유도 없었다. 사내의 검이 그물이 되어 그의 몸을 덮쳐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 단순한 기합일지라도 풍철산 같은 고수가 지르자 대기가 일순 주춤했다. 사내가 친 그물이 느슨해지자 풍철산은 재빨리 몸을 놀리는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쌔애액! 칼날 같은 바람이 사내의 몸을 토막 내기 위해 날아갔다. 그러나 풍철산은 이 공격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찰나의 시간을 벌기 위해 행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철산의 소박한 바람도 사내의 몸이 흩어지며 어느새 자신의 뒤에 나타난 것을 느낀 순간 산산이 깨졌다. 번쩍! 사내의 검이 섬광을 뿜었다. 순간 풍철산의 안색이 굳어갔다. 자신의 왼쪽 어깨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풍철산은 이를 악물었다. 신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어 그것마저도 막았다. 사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긴 죽어도 싫었기 때문이다. “아까운 피부터 막지?” 사내가 능글거리며 말했다. 순간 풍철산은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크큭! 크크크. 하늘이 준 힘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무력하다니.” 자조적인 음성으로 중얼거리던 풍철산의 눈이 어느 순간 변했다. 뭔가를 결심한 자의 눈빛. 순간 능글거리던 사내의 눈빛도 심각하게 변했다. 이번 한 수에 모든 것을 거리란 것을 사내는 은연중에 알아차린 것이다. 숨 막히는 정적. 사내와 풍철산이 있는 공간 모두가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뜨리는 외침! “파천풍뇌황!” “지옥멸겁!” 파천풍뇌검에서 뇌신의 창이 솟아났으며 그를 호위하듯 거대한 회오리가 대기를 빨아들이며 커져갔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인 번개와 광포한 회오리가 그가 휘두르는 검에 따라 사내에게 쇄도했다. 한편 거창한 외침과는 달리 사내의 검은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이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던 중간에 이르자 대기를 짓밟으며 전진하던 회오리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이잉! 공간이 일그러지는 기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찌그러진 회오리가 검은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커헉!” 풍철산은 엄청난 충격에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뇌신의 창! 바로 그것이었다. 회오리가 사라졌어도 뇌신의 창은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그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황금빛 번개가 사내를 꿰뚫으려했다. 지이잉! 또 다시 공간이 일그러지는 기음이 울렸다. 그러나 혼신의 힘이 담긴 풍철산의 마지막 공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듯한 검은 공간이 뇌신의 창을 빨아들였으나 황금빛 번개는 어둠마저도 눈을 가릴 만큼 강렬한 빛을 토하며 버텼다. 그렇게 검은 공간과 뇌신의 창의 밀고 당기는 대치 상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과아아아앙! 검은 공간이 크게 일렁거렸다. 그리고 뇌신의 창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풍철산은 황금빛 번개가 사라진 공간을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를 보았다. 사내 역시 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자신 만큼은 아닐 것이다. 자신은 자신의 모든 것, 아니 가문의 모든 것이 무너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야 했다. 그것이 현실이니깐! “크큭, 크하하하하!” 광소가 터져 나왔다. 잘려나간 어깨 죽지가 터져 나와 엄청난 피가 쏟아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웃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을 향해 웃고 싶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사내가 다가오는 듯했다. 아니다. 사내는 멀어져가고 있다.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걸어가고 있으니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을 왜 안 죽이는지 묻고 싶었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빌어…먹을…!” 쿵! 차디찬 대지에 풍철산의 몸이 부딪혔다. 휘이잉! 황량한 바람이 풍철산을 스쳐지나갔다. 풍철산은 바람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줄 수 없었다. 그는 철저히 부서졌으니. 은발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멀어져가는 사내에 의해서 철저히 패했으니.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눈물이 나는지 감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휘이잉! 황량한 바람도 이런 풍철산이 안쓰러운지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그의 눈 곁을 맴돌았다. 그때였다. 그림자 하나가 풍철산 앞에 나타났다. 이에 화들짝 놀란 바람이 저만치 물러섰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손을 부산히 움직여 풍철산의 상처를 돌보았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한 그는 시선을 돌려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사내를 쫓았다. “지금이 기회인데…….” 그의 음성에서 심한 갈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상 미루어 짐작하여 우를 저지르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사내가 내려간 방향을 일별한 뒤, 풍철산을 안아들고 몸을 날렸다. 하늘은 뜨거운 태양을 맞이하고 있었다. =============================================================================== 하아, 골이 띵하군요. 별로 길지도 않는 전투씬인데... 왜 이리 머리 아프게 하는지 정말 힘이 드는군요. 에공... 166화. 천골을 나가다 1. “크흠… 여긴 어디지? 으윽!” 풍철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온 몸을 해부하는 듯한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털썩! 온 몸에 힘이 없는데다 예기치 못한 고통에 풍철산은 침대에 도로 쓰러졌다. 허나 그는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 몸을 일으키려했다. “헙! 으응?” 짧게 기합을 지르며 양 팔에 힘을 주는데 뭔가가 허전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몸을 받치고 있는 팔을 보았다. “허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한쪽 팔이 어깨 죽지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은 외팔이가 된 것이다. 이를 인식하는 순간 정체 모를 사내와 싸운 것이 생각났 다. ‘졌다! 철저하게 졌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문은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철저하게 졌다.’ 그때 상황 하나하나가 그림을 그리듯 머릿속에 떠올라 미칠 거 같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더욱 비참해질 것을 알기에 풍철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는 뜨겁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편 온 얼굴을 눈물로 적시는 풍철산을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풍철산에게 몇 번이나 다가가려 몸을 움찔거렸었다. 허나 그는 그에게 다가가 위로의 한 마디도 던질 수 없었다. 풍철산의 눈물이 마음을 무겁게 하여 걸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내는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쏴아아아아! 평소와 달리 폭포의 굉음은 시원스런 느낌을 주었다. 마치 이 답답함을 자신을 통해서 풀어버리라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폭포를 가를 수 있었지만 거센 압력을 견디며 폭포를 뚫고 나왔다. 사내는 호수 끝에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눈에서 찰나의 순간에 황금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사라졌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짓는 사내. 그의 이름은 바로 린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두문불출했던 풍철산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한쪽 소매가 펄럭이는 모습으로. “하하하,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누가 죽기라도 했습니까?” “…….” 그는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말한 것이었는데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제는 어느 정도 아물었다고 생각한 어깨의 상처가 쑤셔왔다. “크흑!” 얼굴을 찡그린 풍철산은 그가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그려지는 극단적인 그림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사람들을 보았다. “…….” 그러나 그들은 그의 시선을 피할 뿐만 아니라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아닌가? 북궁소소라고 짐작되는 여인은 눈시울이 벌겋게 변하기까지 했다.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시죠?”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풍철산은 순간 자신의 입을 저주했다. 왜 입을 연 것인가? 차라리 묻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은 피할 수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힘이 부치는데 거기다 기름을 붓는 것인가? 그것도 자기 스스로가. 이런 풍철산의 내심을 반영하듯 그의 눈은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린은 풍철산의 눈을 애써 무시했다. “생각하시는 대로 다른 분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아니야!” 린의 말에 풍철산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니야…….” 이번에는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이 정도 소리를 듣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풍철산은 아직 아물지도 않은 마음의 상처에 커다란 상처를 하나 더 새겼다. 분명 자신이 새긴 상처였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지만 않았더라면 이 자리가 이렇게까지 휑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분명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며 자신에게도 사정이 있었지만 풍철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그런 사내였다. 결국 또 다시 마음에 큰 타격을 입은 풍철산은 자신이 일주일간 두문불출했던 동굴로 들어갔다. 축 처진 그의 등 뒤를 린의 시선이 따르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린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호수를 세차게 때리는 폭포수는 처음에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그 광포한 힘을 과시하나 결국엔 언제 그랬냐 싶게 잔잔한 호수에 동화된다. 사람의 감정 또한 어떤 충돌에 의해 극단적으로 튀어 오르기 쉬우나 그것도 순간일 뿐. 크고 작고, 짧고 좀 더 오래라는 차이를 차치한다면 결국엔 잔잔한 호수에 동화되는 것처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인간과 다른 자연물과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자연물은 그저 흐르는 대로 순리에 맞게 살아간다. 허나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살아가는 체만 할 뿐, 그 가슴에는 충돌의 앙금을 언제나 새겨놓는다. 언제고 그 앙금을 씻어버릴 그날을 기다리며 애써 그날의 감정을 애써 묻어둔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법이다. 풍철산이 두문불출한지 이틀째, 진이 몸을 일으켰다. “복수하려면 살아야 한다. 살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진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몸소 실천했다. 진이 수련한다고 하자 린은 놀라 만류했었다. 아직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의 진취적인 모습이 세상 다 살은 듯한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을 변하시키는 듯하자 린 역시 진의 수련에 동참했다. 그들의 수련에 세 번째로 동참한 사람은 의외로 북궁소소였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적어도 주책 떤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땀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했고 들끓는 감정을 수련으로 억눌렀다. 풍철산이 그들의 수련에 동참한 것은 그가 동굴에 들어간 지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빙루를 찾으러 가야 해요!” 수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두는 북궁소소의 말에 급살에 맞은 듯 몸을 떨었다.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풍철산과 린, 그리고 말을 한 북궁소소 뿐. 특히나 진의 내심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자신이 여기 올라온 진정한 이유. 그는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하연 그녀까지도. 진은 하연이 생각나자 덩달아 하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라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 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떠오른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진의 이런 내심이야 어찌됐든 북궁소소가 의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내려가야 함이 옳겠지만 빙루는 꼭 가지고 내려가야 해요.” “험험, 빙루가 어디 있는지는 내가 알고 있소.” “정말인가요?” 린의 말에 북궁소소가 반색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런 린을 보며 진이 씩 웃었다. 그리고 미소를 싹 고치고 말하는 진이었다. “그렇다면 잘 됐군요. 사실 우리 역시 빙루를 구해야 하는데, 이참에 린과 소소 양이 같이 갔다 오면 되겠군요. 린의 이야길 들어보니 하루 안에 갔다 올 수 있다는데 굳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더구나 우르르 몰려다닐수록 린이 우리의 기운을 고니아로 감추어야 하기에 그만큼 부담도 커지니, 이 방법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진의 장광설에 세 노인과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는 풍철산이었다. 얼마 후, 북궁소소와 린은 빙루가 있다는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북궁소소와 나란히 달리는 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걸까? “짜식! 잘해 봐라. 하하!” 떠나기 전 진이 해준 말이었다. 아마도 이 때문이듯 하다. ================================================================================ 에공... 어제 새벽부터 글 쓸려고... 컴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어제 새벽엔 앉아만 있었습니다. 글이 안 써져서요. 오늘 역시 오후부터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각..다음날 새벽 6시경... 3페이지 정도네요. 쿨럭... 이번만큼 글이 안 써지는기도 처음인 듯... 조급해져서일까요? 에공...모르겠습니다. 하튼... 분량이 적어도 용서해주세요. ㅋㅋㅋㅋ 참고로... 소제목...참 마음에 안 드네요. 그렇지만 이미 머리가 다운된 상태라... 어쩔 수 없다는... 167화. 천골을 나가다. 2. 처음 빙천목을 보는 사람은 이것이 생명이 있는 나무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다. 그 이유는 빙천목이 여타의 다른 나무들과 달리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이것이 빙루인가요?” 북궁소소가 냉기를 뿜어내는 하얀 결정체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린이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것이 빙루가 맞나요?” 너무도 쉽게 찾았다는 사실에 북궁소소는 린을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린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순간 북궁소소는 그녀도 모르게 빙루로 시선을 돌렸다. 그를 보고 있자니 얼굴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러지?’ 그녀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 보았으나 가슴만 떨려올 뿐이었다. 그와 함께 처음 그를 보았을 때가 생각나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북궁소소는 몇 날 며칠동안 울기만 했다. 그런 그녀를 린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실 린은 몰랐겠지만 북궁소소는 슬픈 감정에 북 받쳐 울음을 터트릴 때도 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었다. 그의 시선에 담겨 있는 따스함과 염려의 빛을 북궁소소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번 나누지 않았어도 그녀는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느꼈다. 한편 린은 그녀가 미소를 짓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슬픈 얼굴만 보아오다가 갑작스런 미소에 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내 가슴이 미쳤나?’ 쿵쾅 쿵쾅거리는 가슴의 뜀박질에 린이 느끼는 당혹감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 산을 찾아 고개를 돌렸었다. 그러나 보고 싶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를. ‘돌리면 안 될까? 아냐, 이게 무슨 추태냐! 하지만…….’ 린의 마음속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에 의해 점차 혼란에 빠져 들어갔다. 그때였다. 귓속을 황홀하게 해주는 그녀의 음성이 들렸다. “저, 그럼 빙루를 수습할게요.” 너무도 작아 주의해서 듣지 않는다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 그러나 린의 귀에는 어떠한 소리보다도 커다랗게 들렸다. “그, 그렇게 하시죠.” 린은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는 린. 북궁소소는 이런 린을 힐끗 바라 본 뒤, 빙루를 수습하기 위해 빙천목을 향해 올라갔다. 빙천목은 언덕 정상에 있었다. 다행히도 언덕은 그리 높지 않아 오르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빙루는 눈이 부실 만큼 환했다. 그리고 깨끗했다. 이 세상의 어떠한 보석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 빙루의 모습이었다. “아! 너무도 아름다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말에 린은 자신의 의사를 거역하는 몸을 볼 수 있었다. “어디?”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은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험험, 아름답다고 하기에…” 북궁소소가 그를 바라보자 그가 한 변명이었다. “픗! 호호호호!” “왜, 왜 그러시오!” 북궁소소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리자 당황한 린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린은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주먹 하나를 두고 얼굴을 마주보는 형태로 만들었다. 순간 또 다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제발 좀 주인 말 좀 들어라!’ 린은 좀처럼 진정 되지 않는 가슴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그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음인가? 가슴의 떨림이 진정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하려 했다. 그 순간……. “허억!”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선을 피하는 것뿐.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린은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아주 짧은 순간 그녀와 눈을 맞추며 커다란 음성으로 말했다. 곧바로 시선을 돌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했다. “웃지 마시오!” 상황과 표정의 불일치가 주는 유쾌함은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지금 린이 하는 행동이 딱 그 짝이었다. “푸훗! 호호호호호!” “우, 웃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나름대로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그 나름대로 표현하는 린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 북궁소소의 입 꼬리는 교묘하게 말려 올라갈 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슬쩍 돌려 그와 눈을 맞추며 한 마디 했다. “제 손을 언제까지 잡고 있을 것이죠?” “아! 미, 미안하오.” 허둥대며 손을 놓는 린을 보며 그녀는 몸을 돌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빙천목으로 다가가 빙루 두 개를 따 가져온 자루 안에 담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분명 경건해보여야 정상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웃음을 참느라 벌겋게 변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동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빙루의 가치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돌아오자 일행은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곧바로 느꼈다.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진이었다. “린아, 소소양과 너와의 분위기가 흡사 고양이 앞에 쥐를 생각하게 하는 구나.” “…….” 린은 그의 말이 뜻하는 바를 몰랐다. 그래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험험, 설마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 크험,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네가 소소양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거 같다는 이야기지.” “형님!” 이제야 그의 말을 이해한 린이 버럭 고함을 질렀지만 진은 혀를 쯧쯧 차며 도리어 그의 어깨까지 토닥여주었다. “이해해.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여자 이기는 남자 없다고 하셨거든.” “형님!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짜식, 뭘 빼고 그러냐? 이래 뵈도 내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고. 하튼 잘 해봐라.”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몸을 돌리는 진이었다. 그의 등 뒤로 린의 간절한 부름이 있었지만 진은 살포시 무시해줬다. “형님!” 천골을 내려갈 수 있는 문 앞에 선 일행은 근처에 아무도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자네 말대로군.” 한지민이 린을 보며 말하자 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제가 그들이라면 여기서 기다렸다가 우리들을 몰살시켰을 텐데 말입니다.” 풍철산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하자 덩달아 일행들의 안색도 굳어갔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자신들을 놓아주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괜한데 머리 쓰지 말자고요.”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흩어버리려는 듯 진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제야 모두의 안색도 펴졌다. 진의 말마따나 이런 고민은 심력낭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정말로 제국으로 갈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비소천의 물음에 진이 웃음을 멈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자네들의 힘이 꼭 필요하네. 약속한 대로 내년 여름 전에는 꼭 와줘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모두의 시선은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린과 북궁소소에게로 옮겨졌다. “꼭 와야 해요.” “걱정 마시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궁소소와 린의 표정은 한층 가벼워져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일행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편 두 사람을 보는 진의 머리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험험, 제수씨 린이 녀석은 내가 꼭 데려갈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십쇼.” “어머! 제, 제수씨라뇨.” 그의 말에 북궁소소가 깜짝 놀라며 말했으나 그리 싫지 않은 투였다. 젊은이들의 풋풋한 모습에 네 노인은 그저 흐뭇한 미소만 지었다. 그 중에 북해장원의 두 늙은이는 린의 능력을 알기에 찢어져라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허허허!” 한지민의 농에 두 노인은 도리어 대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부러우십니까?” “하하하하, 당연한 이야기를.” 그들의 태도에 당황스러운 것은 북궁소소와 린이었다. 방금 전 물었던 한지민은 도리어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가 태연했던 이유를 직접 입 밖으로 뱉어냈다. “허허허, 부럽기는요. 우리야 이 친구가 있는데 뭘요.” 한지민은 진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진에게로 꽂혔다. “어라? 왜 저를 끌어들이십니까?” “하하하, 하린이가 보고 싶으면 천무장원으로 빨리 돌아오게.” “끄응…!” 한지민은 말을 끝맺자마자 시커먼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천무장원을 떠올렸다. 함축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는 한지민의 말에 진은 일행의 뜨거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결국 진은 린을 이끌고 시커먼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사부와 살았던 그곳을 떠올리며. 진이 사라지자 모두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마냥 입맛만 다실 수는 없어 그 들도 시커먼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각자가 원하는 장소를 떠올리며. 그렇게 천골은 또 다시 무인의 골짜기가 되었다. ================================================================================ 하하하, 오랜만이네요. 드디어 천골을 나가게 되었네요. 쿨럭... 168화. 세상을 향해 1. 폐가 터질 듯이 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그리고 음미해 본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두려운 눈망울로 사방을 둘러본다. 역시나 변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감동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작은 오두막집을 바라본다. 사부가 그 안에서 나올 것만 같다. 하아~ 감사함과 설렘에 한숨이 나온다. “형님!” 한참이나 오두막집만을 바라보고 있는 진을 향해 린이 말했다. “어? 아! 그래. 린아, 저기가 바로 나의 제 2의 고향이다.” 진은 사부인 에리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린에게 전했다. 이런 그의 마음이 전해졌음인가? 아님, 천골이 아닌 처음 보는 세상이 주는 가슴 벅참 때문인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뜻 모를 소리를 했다. “이, 이곳이군요.” “그래!” “멋진 곳입니다…….” “고맙다, 하하하!” 진은 린이 말을 흐리며 속으로 ‘세상은’이라는 말을 중얼거린 것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가 신이 아닌 이상에는 남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진은 린을 데리고 문 앞까지 다가갔다. “흐읍!” 이 문을 나설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일까? 이 문을 나선 후의 기억들을 찬찬히 정리해보는 진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린을 보며 한번 씩 웃어 보인 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문이 열림과 동시에 정겹기 그지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웃어 보는 진이었다. “흐음! 사부님 다녀왔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긴장과 설렘이 숨어 있었다. 그의 인사가 허무한 메아리로 울릴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걱정에 부채질 하듯 무거운 적막만이 그를 맞아줬다. 순간 생각하기 싫은 불안감이 그의 몸을 엄습했다. “사, 사부님! 진이 돌아왔어요.” 석상처럼 한 자리에 굳은 채 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집 안을 살폈다. “사, 사부님!” 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사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털썩! 온 몸에 힘이 빠져 서 있을 힘도 없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짐작케 해주듯 적지 않은 먼지가 바닥에서 피어올랐다. “크흑! 사부님!” 목이 메인 듯한 컬컬한 목소리가 오두막집 안을 울렸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있는 진이 안쓰러웠지만 린은 뭔가를 떠올리고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탁상 위에 있는 한 장의 봉투를 찾을 수 있었다. “형님, 이것 좀 보십시오.” “…….” “형님!” “……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다오.” 린의 계속되는 부름에 진은 힘없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순간 린 역시 숙연해져 입을 다물었으나 그의 이성은 자꾸만 이 봉투를 진에게 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진의 심정이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소와 같은 심정이겠지.’ 소소를 생각하자 진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이를 인식한 린은 급히 안색을 고치며 묵묵히 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 그래, 뭔가 한번 보자.” 진은 그를 배려해준 린이 고마웠다. 그렇다 보니 린을 부르는 그의 음성에는 따뜻함이 넘쳐났다. 물론 억제된 슬픔 역시 숨길 수 없었지만. “여기 있습니다.” 린은 진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조금의 허둥댐도 없이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위를 덮고 있던 먼지들이 보이지 않음을 보니 린이 닦은 듯 했다. 그러나 진은 이러한 세심한 배려에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래.” 짧게 답하고 진은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 “사, 사부님!” 봉투 위에는 단 세 마디지만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 진에게.- 진은 한참이나 봉투 위의 글자를 음미했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허겁지겁 봉투 안의 종이를 읽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 그와 함께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감사합니다.” 뜻 모를 소리지만 그를 보고 있는 린은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형님의 사부님께서 살아계신 가 보구나.’ 제국 공용어를 알지 못하는 린이었지만 그 정도는 추리할 수 있었다. 진의 반응이 너무도 뜨거웠기 때문이다. “린아, 사, 사부님께서 살아계신단다.” “잘됐습니다, 형님.” “고맙다.” “제가 한 게 뭐 있습니까?” 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이 달려들어 그를 끌어안았다. 린은 순간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점차 그의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감성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린은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지금에는 감당할 수 없는 홍수가 되어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순간 진을 끌어안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하하하, 녀석 하고는.” 진은 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그와 키가 비슷하지만 진의 행동에는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이 린을 떼어내며 말했다. “린아, 사부님을 뵈러 가자꾸나.” 그의 말에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린이었다. “형님, 그런데 그 편지 안에는 무슨 내용이 있었습니까?” “하하하, 그게 궁금하더냐?” “예!” 진은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린은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에 짧게 한숨을 내쉰 진이 안타깝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린아, 너는 다 좋은데 매사에 너무 진지해.” “아! 그렇습니까?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에휴~ 됐다. 됐어.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지.” 진이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린은 그 모습을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진은 이 의동생이 무슨 말로 자신을 재밌게 해 줄지 궁금해졌다. “험험, 말은 가슴에 담아두면 화가 된단다.” 진은 예전 리오스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 올렸다. 그러나 린은 그의 행동과 말의 치장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단지 말의 내용만이 그의 귀를 울릴 뿐이었다. “그, 그렇겠죠? 으음. 그런데 제 외모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건가요?” “뭐?” “그러니깐 제가 못생긴 편이냐 말입니다.” 진은 순간 린의 면상에다 주먹을 박아주고 싶었다. 자신도 꽤 잘생긴 편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린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고 인정하는 바였는데 그런 놈이 못생겼냐 하며 물으니, 것도 진지하다 못해 심각한 목소리로 물으니 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진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한숨을 또 다시 토하며 입을 열었다. “하아, 아무리 사람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나 자신의 외모조차 인지하지 못하다니. 에고, 내 신세야. 야, 네 눈 상당히 부담스럽다.” 아닌 게 아니라 린은 그 심유한 눈을 슬피 만들어 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진이 어찌 화를 내겠는가? 더구나 남자인 진이 이러할진대 여자들이 린을 본다면……. 진은 순간 수천만의 여자들이 린을 놓고 손톱을 휘둘러 아수라장이 되는 것을 상상했다. 또한 린을 가운데 놓아두고 독기 어린 눈으로 상대편 여자들을 노려보는 무시무시한 상황까지 상상했다. “허억!” 진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도 끔찍한 상상에 경악성을 토했다. 그리고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형님, 안색이 좋지 않으십시다.” “어? 아, 그래. 이건 다 너 때문이다.” “예? 제가 뭘 말입니까?” “젠장! 못생긴 놈들은 다 죽으란 말이냐? 하튼 너 네가 못 생겼다느니 하는 말 죽어도 하지 마라. 그리고 그 요상한 표정을 다른 여자들한테 보이지도 말고. 만약 네가 다른 여자들에게 무심한 표정 아닌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면 천하대란이 일어날 것이야!!!” 진은 끝으로 ‘무심한 표정 역시 제국을 피바다로 만들 여지가 충분하지만.’이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린의 입이 열리려하자 허겁지겁 입을 여는 진이었다. “네가 궁금한 게 뭔지 안다. 험험, 너는 못 생기지 않았다고. 아니, 너 무지막지하게 잘 생겼어. 됐지?” “아! 감사합니다.” 끝까지 진지한 자세를 유지하는 린을 보며 진은 경의어린 표정어린 바라보았다. 그러나 구태여 입을 열어 그의 모습에 대해 말해주고 싶진 않았다. 말을 하면 앞서 느꼈던 비참함을 또 다시 느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진은 그의 비책인 화제 돌리기를 펼쳤다. “아까 편지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냐고 물었지?” “예? 아, 예.” 진은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린의 반응이 그의 예상과 달라 꽤나 당황했다. 그러나 린의 내심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얼굴이 못 생긴 편이 아니라니 다행이구나. 하기야 소소도 나를 좋아하니 이제 와서 외모를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다행히도 진은 독심술을 익히지 못했다. 덕분에 린은 진에게 한대 맞는 인재(人災)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음, 편지에는 말은 말이 적혀 있었지. 그러나 너를 위해 쉽게 요약하자면 데이릭 경에게 오라는 말이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셨지.” “그렇군요.” 린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궁금한 것도 많을 텐데 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이 진의 눈에는 좋게 비취지 않았다. 사람은 사람다운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게 진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너는 궁금하지도 않냐? 내가 말한 데이릭이라는 사람이 궁금하지도 않으며, 우리 사부님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냐? 하다못해 이곳 프라오카야 시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도 않냐?” 순식간에 몇 개의 질문을 던진 진을 경이적인 표정으로 바라보는 린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의구심도 없었다. “끄응,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가 보구나? 세상에 처음 나온 녀석이.” 린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이 화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 할 수가 없구나. 형님이 왜 화를 내시는 걸까? 나의 무엇이 형님을 화나게 했을까? 무엇이…… 아! 형님께서는 서운하신 거구나.’ 린은 진의 힘없는 얼굴을 보자 온 몸이 전류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형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세상에 처음 나온 저이다 보니 처음 접하는 것들은 최소한 제가 느끼는 것들로 채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형님을 무 시하는 뜻은 결단코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진은 린의 말에서 숭고한 뜻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속내가 비쳐진 거 같아 부 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진은 천생이 쾌활한 것을 좋아하는지라 짐짓 웃음을 터트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는 린은 진의 등을 바라보는 한편 프라오카야 시를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잊지 않은 것처럼. ================================================================================ 오랜만인 듯 하군요. 죄송합니다. 이제는 매일 연재를 위해 또 다시 달려보려 합니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쿨럭! 169화. 세상을 향해. 2. 반년 전, 서의 카리아 왕국이 멸망했다. 그리고 한 달 전, 남의 만트 왕국까지 멸망했다. 단 한 사람의 생존자도 허용치 않는 무자비한 살육이 두 왕국을 강타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북의 주르단 왕국이 풍전등화의 위기 아래 놓여 있다. “왕이시여, 우리에게 남은 길은 동의 샤킨트 왕국과 사막의 차칸타 왕국과의 동맹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인이 되어 버린 제국의 황제 제르디스에게 항복한다면 두 왕국의 혼령들이 우리 주르단 왕국을 용서치 않을 겁니다.” 두 공작의 음성에는 결단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케이스탈린 실 에란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묵직한 음성을 토했다. “본왕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바요. 또한 제국의 힘이 제 아무리 강대하다고 하나, 연달아 치른 전쟁 때문에 국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오. 더구나 제국 내에서도 내란이 일어나는 듯하니 하늘은 우리 주르단 왕국을 버리지 않으신 듯 하오.” 말을 잠시 끊은 에란티스는 두 공작과 그의 세 아들을 신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다섯 사내는 허리를 숙이며 감읍했다. “하하하, 내 그대들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 구려. 좋소! 그대들 생각이 곧 본왕의 생각이요. 즉각 실행하길 바라오.” 에란티스의 말에 실내에 있는 모두가 허리를 숙였다. 사방을 휩쓴 화염은 본연의 임무를 다한 듯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불길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하여 기뻐할 사람은 적어도 이 마을에는 없었다. 기뻐해야 할 사람들은 이미 붉은 마화에 생명을 빼앗기고 검게 그을린 비참한 모습으로 거리를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팟! 파팟! 허공에서 불꽃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작은 스파크가 터졌다. 그와 함께 마을 안으로 두 사내가 들어섰다. 그들은 바로 프라오카야 시를 떠난 진과 린이었다. 진과 린은 마을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신음을 토했다. 참혹한 현장을 목도한 인간들이 보 이는 반응을 그들도 보인 것이다. 잠시 후, 반대편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와 함께 인성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악취가 두 사내의 코로 들어갔다. “우웁! 우웨엑!” 돌연 진이 허리를 꺾으며 토악질을 했다. 이에 깜짝 놀란 린이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한편 진은 린이 자신의 등을 두들겨 주지 말았으면 했다. 갑자기 끊어질 듯 배가 아파져왔고 목 또한 알 수 없는 고통에 아파왔기 때문이다. “그, 그만!” 진이 한 손을 휘저으며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린은 순간 무안해졌다. 허나 이러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염려와 감정만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던 어느 순간 린은 아무 것도 아닌 사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왜 형님과 같이 토하지 않는 걸까? 아니! 어째서 나는 토할 수 없는 건가?’ 린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분명 환경의 차이로 인해 많은 것이 다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린의 생각은 대부분의 ‘자기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과는 반대되는 특이한 것이었다. 어쨌든 린이 이러한 고민에 빠져 심적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진은 서서히 정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크흠! 커억, 퉷!” 진은 입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물질을 모아 침으로 뱉어냈다. 그 느낌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형님, 이제 좀 괜찮으신 겁니까?” 침 뱉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린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순간 진은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맙다. 그리고 아까는 미안했다.” “아닙니다, 형님.” 린은 진의 말에 황송해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진은 의형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하하하, 녀석 하고는.” 진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쳐 주고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신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죽기 전 얼마만한 고통이 그들을 엄습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눈을 확 뒤집어 놓는 모습이 있었는데 어머니인듯한 시체 하나가 어린 꼬마 시체를 감싸 안은 모습이 잡혔던 것이다. 순간 진은 미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분노했다. 드드드드! “형님, 진정하십시오.” 대지가 진의 기운에 들끓기 시작하자 린이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을 열었다. 순간 진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섬뜩한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흐음, 그래. 흥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내가 분노한다고 하여 죽은 그들이 살아 돌아 오지는 않으니깐.” “…….” 린은 그의 말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음성에서 억눌린 슬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진이 입을 열었을 때에야 말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을 일단 안치시켜드리자.” “예!” 진과 린은 기운을 개방하여 시체들을 하나씩 모았다. 그리고 커다란 구덩이를 파 그곳에다 시체들을 안치시켰다. “후우, 우리에게 시간이 없으니 이런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구나.” 진이 탄식하자 린은 뭐라 말하려 입을 들썩였다. 그러나 진의 입이 또 다시 열리려 하자 린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모든 참사가 단 한 사람이 벌인 거 같다. 더구나 그는 단 한번의 공격에 의해 만든 거 같다.” “허나 저나 형님보다는 많이 떨어지는 상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린을 보며 진은 그의 냉철한 이성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뜨거운 투지를 본 느낌이었다. 순간 피식 하는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또 다른 생각에 의해 소리 없이 사라졌다. ‘린 역시 천생이 무인이구나. 그런데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 걸까? 황제파의 소행인 것인가? 아님 제 3의 세력이?’ 염두를 굴려 봐도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였다. “하아, 더 생각해 봐야 뭐하랴. 머리만 아파지는데.” “형님, 머리가 아프십니까?” 린의 걱정 어린 물음에 진은 실소를 흘렸다. “푸훗!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너무 진지한 게 탈이야.” “아! 예, 시정… 아니….” “하하하, 됐다. 됐어. 그건 그렇고 우리가 더 살펴본다고 하여 범인을 잡을 수도 없으니 그만 떠나도록 하자. 지금의 내겐 뜬 구름 같은 이 일보다 사부님의 안위가 더욱 걱정되니 말이다.” 진의 음성은 숨길 수 없는 사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를 느낀 린은 진의 사부인 에리필에게 알 수 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도 진이 이렇게 걱정해줄까 하는 물음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들은 바람이 되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알리요. 범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사내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신의 감각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피해라.’ 자신의 감각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 다가오는 기운의 주인들이 자신보다 강하다 할지라도 자신이 숨기로 작정하면 찾지 못할 거라는 오기가 생긴 것이다. 얼마 후, 사내는 다음부터는 절대로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되었다. 그들의 감각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심력 소모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시체들을 모으기 위해 기운을 개방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 당시 그들의 신경이 시체들 쪽에만 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후우, 그들의 신경이 분산되지 않았으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갈 뻔 했다.” 그들이 떠나고도 한참이나 숨죽이고 있던 사내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진과 린의 보이지도 않는 등을 쫓으며 말했다. “그들이 향한 방향으로 보아 가에아 쪽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데이릭의 우군이란 말인가? 하아, 사부님의 예전 능력보다 강대한 존재들이 나선다면 계획에 차질이 크겠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사내의 탄식에 사그라들었던 불꽃이 허공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사내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걸리자 불꽃은 팟 하는 소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후후후, 그들이 제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흐르기 시작한 혼란을 막을 수는 없겠지. 비록 황제 측을 제압한다 할지라도 세 왕국은 어찌 막겠는가! 또한 나와 우리 형제들이 일으킬 살겁을 그들은 무슨 수로 막아낼 것인가?” 사내는 어느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쉬지 않고 이어졌으며 점차 격앙되어졌다. “흐흐흐, 우리들은 드러나 있지 않으나 그들은 드러나 있으니 이 혼란은 나의 사부님이자 위대한 초마스터이신 해키에스 지로브님만이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내의 눈에는 미래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의 사부인 지로브가 세상의 구원자로 나서서 모든 혼란을 종료시키고 세상을 희롱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크나큰 희열인지 사내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 어둠속에 있던 것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느낌이네요. 음... 요번 화를 쓰면서 머리가 정말 터져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쓰고 지우기를 수십번,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170화. 사부를 만나다. 1. “커헉, 주…죽어라!” 칼이 복부를 뚫었지만 사내는 핏발선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순간 상대의 목이 허공에 띄워졌다. 그와 함께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사내의 몸이 쓰러졌다. 콰앙! 쓰러지는 사내 옆에서 마법이 터졌다. 덕분에 사내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겨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검과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은 이런 끔찍한 모습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눈을 돌리는 순간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를 상대의 병기에 목숨이 날아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젠장! 저 놈들은 지치지도 않냐?” 비포르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힐끔 보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중얼거림이 끝나는 순간 상대편 기사 한명의 목숨이 사그라들었다. “쓰발, 목욕 좀 하고 살자고!” 비포르는 자신이 베어버린 상대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고스란히 맞았다. 상대편 기사를 베는 순간 양 옆과 뒤에서 검이 찔러 들어와 몸을 피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새끼들아, 제발 좀 뒤져주면 안되겠냐?” 자신의 몸을 꿰뚫기 위해 쇄도하는 검을 보면서도 비포르는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그러는 순간에도 그의 검은 쉬지 않고 허공에다 피로 물들 수를 놓고 있었다. 위이잉! 순간 그의 검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바로 에너지 소드인 것이다. 서걱! 그의 에너지 소드는 기사들의 검을 베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몸까지 베어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을 벤 그의 에너지 소드는 마지막 사내의 검과 충돌하기 직전, 갑자기 희미해지다 팍 하는 소음을 일으키며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비포르는 상대의 얼굴에 떠오르는 득의만만한 웃음을 보았다. “커헉, 쓰…벌!” 상대의 검에서 섬광이 뻗어 나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비포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가슴이 뻥 뚫려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포르가 본 세상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크크크, 죽였다. 커헉!” 푸욱! 푹! 푹! 푹! 비포르를 죽인 사내는 어이없게도 검풍도 펼치지 못하는 사내에게 죽었다. 더구나 한번의 공격에 죽었는데도 세 번이나 더 칼질을 당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의 죽고 죽이는 전투는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최고 수뇌부들의 암묵적인 합의 아래에. 한편 이 모든 전투를 산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자신이 보았고 경험한 전투 중에 가장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단 말인가? 상대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등 뒤에다 칼을 박는 것이 인간들의 전투란 말인가? 아니, 전쟁이란 말이 맞겠구나.’ 진은 그들의 전투, 아니 전쟁을 보며 점차 자신감을 잃어갔다. 만약 자신에게 저렇게 싸우라 한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과 같은 고수는 저들과 같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 솔직한 말로 자신이 저 정도 밀집된 공간에다 모든 기운을 개방한 백호천광무를 시전 한다면 적어도 만 명 이상은 죽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그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사부를 만나고 데이릭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필요를 자신이 찾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얻게 될까봐 그는 두려웠다. 그래서 방금 전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레우카스 성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형님, 삶에 대한 욕구는 그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어? 하아, 나도 처음 알았다. 전쟁의 무서움을. 전쟁을 하는 인간들이 얼마만큼 무서워질 수 있는지를.” 두 사람은 자신이 느낀 바를 전한 뒤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해봐야 가슴만 답답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전투가 끝나고도 산 위에서 만 하루 동안 전쟁이 남기 폐해를 지켜보았다. “후우, 그래도 가야겠지?” “저는 형님이 가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고맙다. 허나 나 역시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 손에 의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릴 것이며 그들의 인생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지워야 될지 묻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대답해 줄 수 없다마는 나는 나와 관계된 자들을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각오하겠다.” 진은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로 보아 하루 동안 많은 심력을 소모한 듯 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고뇌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 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잠시 후, 그들은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겹겹이 쌓여 있는 평야를 지나 레우카스 성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입이 열릴 때마다 긴장해야 했던 나나들. 그러나 그녀의 입이 굳게 닫혀 있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했던 나날들. 그리고 지금,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자고 있다. 처음 진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샤넬리를 보며 잠꾸러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뜨고도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보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보긴 들어봤나 보구나. 그런데 말이야. 설마 그 말을 진짜로 믿는 건 아니겠지?” 진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었다. 불안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쾌활하게 말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변함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을 뿐이다. “야, 야! 야! 일어나란 말이야! 내가 왔다고! 너 흡열의 열매 먹었을 거 아냐! 왜 계속 자고 있냐고. 너 그러면 안 되잖아!” 진의 커다란 고함 소리에도 샤넬리는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진 역시 샤넬리의 상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꿈나라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후우, 너는 모르겠지? 네가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을 때도 현재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진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샤넬리 역시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도 현재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느덧 그녀는 한 사람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뒤흔들 정도의 미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아,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할 수 없구나.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내가 너를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해 줄 테니깐.” 말을 하는 내내 진의 손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너무도 부드럽고 매끄러워 조심스런 손길로 만지는 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순간 샤넬리의 얼굴도 조금이지만 붉게 달아올랐다. 진의 체온 때문인지 아님 꿈나라에서 진을 만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레이는 데이릭이 업무를 보는 건물이다. 그리고 지금, 미레이의 심처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제 전투에서 약 3500명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이 수치가 말해주듯 매번 전투를 치를 때 마다 사상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전쟁이 계속된다면 제국은 더 이상 제국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 이그젝터였던 세르디스의 보고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그리고 보고를 올리고 있는 세르디스 역시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전쟁이 계속된다면 반황제파라고 불리는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은 전멸뿐이기 때문이다. “흐음, 결국엔 수뇌부들의 싸움으로 전쟁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인데.” 데이릭이 갈색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하자 그의 오랜 친우인 파슈발이 탄식 섞인 음성으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닌 바에야 그런 위험을 감수할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더욱이 그들의 중추세력이 사대 공작가이다 보니 수뇌부들의 싸움은 이루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국의 8대 무가 중 폰트라님의 슈렌트 가문과 저희 세젼트 가문 외 나머지 여섯 가문은 여전히 황제파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여섯 가문의 태도로 보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하나 황제의 명이라면 따를 공산이 큽니다. 더구나 제국의 3대 기사단 중 산트라스 기사단과 라크리나 기사단은 보시다시피 황제의 명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수뇌부들의 싸움으로 이끈다고 하여 우리들에게 승산이 있을까요?” 세젼트 가문의 가주인 세젼트 드 자이로의 말에 실내에 있는 서른여섯 명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실내의 분위기가 점차 무거워지자 평소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아르헨이 짐짓 쾌활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하하, 자이로님의 말씀이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암울한 상황 또한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수뇌부들의 싸움은 최소 마스터 이상의 고수들이 벌이는 싸움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성격 급하고 안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해 아직까지도 부인에게 면박을 당한다는 로마코가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르헨은 그가 입을 열자 오히려 반기며 고개까지 끄덕 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 말의 요지는 모든 이그젝터 위에 찬란히 빛나던 칠성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순간 모두의 입에서 ‘아!’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가문의 수만 생각했을 뿐, 가장 중요한 고수들의 수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칠성 자신들조차도 말이다. 분위기가 점차 밝아지자 아르헨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는 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험험, 그럼 일단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시다.” 데이릭이 자리를 뜨자 모두들 하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에리필과 헌트, 그리고 카이슨 역시 자신들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의 전투를 이기기만 하면 일단 숨통은 트인 단 말이겠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될 거네.” 카이슨의 물음에 에리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 세 사람은 묵묵히 자기만의 사색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카이슨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아있겠지?”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깟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고 죽을 놈이면 내가 가르치지도 않았어.” “그래, 나 역시 진이를 나약하게 가르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세 사람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나갔다. 그때였다. “사부님! 아저씨!” 꿈에라도 간절히 듣기 원했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순간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환청이었다고 말하듯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세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때였다. 공간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그 안에 두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두 사내 중, 한 사내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누구… 설마?” 처음 에리필은 적인지 알고 긴장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볼수록 낯이 익었고 무엇보다도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오로지 한 이름만 생각났다. “진아! 진이가 맞지?” “맞아요. 진이가 맞아요. 흑흑흑!” 대답하는 진도 울고 물어본 에리필도 울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두 사제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헌트와 카이슨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들은 속에 담아 둔 수많은 말들을 하기 위해 입을 들썩였다. 허나 나와야 할 말들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도무지 밖으로 튀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네 사내는 말하기를 포기하고 서로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욱 주었다. 때론 많은 말보다 단순한 행동 하나가 더 많은 뜻을 전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 좀 짧긴 하지만 어쨌든 올렸습니다. 쿨럭... 새벽 7시 20~30분 사이 코피가 터졌습니다. 어제 좀 피곤하기도 했거니아 지금까지 잠도 안자고 글을 쓰다보니 결국 몸에 무리가, 아니 코에 무리가 간 거 같습니다. 쿨럭...이런이런... 현재 코피가 터진 것을 부모님께 숨기고 있습니다. ㅎㅎㅎ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하는 말을 들을 것을 알기에... 쿨럭... 171화. 사부를 만나다. 2 “정말 장하구나!”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에리필의 흐뭇한 음성에 진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개미 소리보다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순간 기회를 살피고 있던 헌트가 이때다 하며 나섰다. “크하하하,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우리 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평소 직선적이고도 간단명료한 말을 선호하던 헌트가 그답지 않게 선인의 말까지 빌려와 그를 칭찬했다. 순간 카이슨의 얼굴이 한발 늦었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쳇, 내가 그 말 하려고 했었는데…….” 투덜대며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 카이슨이었다. 한편 이들 네 사람의 정겨운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린은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기분은 또 뭐지? 화가 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괜스레 눈물까지 나려하는구나. 이런이런,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린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일순 당혹스러웠다. 이때, 눈치 하면 어디를 내놓아도 맨 앞자리에 서는 에리필이 따스한 눈빛으로 린을 보며 말했다. “진아, 저 분을 우리에게 소개시켜줘야 하지 않겠니?” “아! 사부님과 아저씨들을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린아, 어서 인사드려라. 내가 말했던 사부님과 아저씨들이다.” 진은 자신의 실책을 인식하고 서둘러 말했다. 그제야 린은 가슴 속을 꽉 누르고 있던 뭔가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진 형님의 의제인 린이라 합니다.” “의제?” 린의 인사에 세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그들에겐 진은 어디까지나 어린 아이에 불과했고 도리어 지금 인사하고 있는 린이 훨씬 성숙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흐음… 진아 저 분 말이 사실이냐?” 카이슨이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자 진의 볼이 괜스레 통통하게 불거져 나왔다. “흥, 그 눈빛들은 뭐죠? 설마 믿지 못하신다는 건 아니겠죠?” 진이 강렬한 눈빛으로 한차례 쏘아보자 그들은 헛기침을 토하며 그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예전이나 지금에나 수련 시간 외의 진은 그들 위에 존재하는 상전이었던 것이다. “오오, 살아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다행!” 진을 알아본 데이릭이 처음 한 말이었다. 더욱이 그는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진을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에게서 샤넬리의 지난날을 본 모양이었다. “안녕하셨어요? 피치 못한 일이 생겨 지금에야 찾아뵙네요.” 진은 그의 환대에 절로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론 샤넬리가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도 해, 데이릭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그래. 그런데 못 본 사이에 기도가 헌앙해졌구나. 이제는 나조차도 상대가 안 될 정도야, 허허허.” 진은 데이릭의 음성에서 조금의 시기 어린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성취를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진은 나이에 맞지 않은 높은 성취를 얻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었다. 물론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의 시선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구나 한 쟈크 대륙에서의 그는 분명 이방인이었기에 그들의 질투와 시기는 더했을 지도 몰랐다. 이를 알고 있는 진이었기에 그들의 시선을 탓할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거구나.’ 진은 그들의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 가슴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기분 좋은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는 일. 진은 일부러 쾌활한 음성을 내었다. “하하하, 설마 그 정도까지야 되겠어요? 운이 좋아 실력이 좀 늘었을 뿐이에요.” “아니네. 솔직히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을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자부하네. 그런 내 눈이 말하고 있네. 자네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듯 한데…….” “그랜드 마스터?” 데이릭의 말에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데이릭의 말을 부정했다. “내 자네의 눈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네만 그랜드 마스터라니. 제국 내에서도 단 한분 밖에 오르지 못한 그랜드 마스터를 이 어린 아이가 어찌 이룰 수 있단 말인가!” 파슈발의 회의에 찬 음성에 데이릭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좋네. 그럼 내 자네들에게 증명해주겠네. 그럴 수 있겠지?” 자신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데이릭의 행동에 진은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다. 또한 진 역시 많은 경험을 통해 이참에 자신의 위치를 굳히지 않으면 활동하기 어렵다는 알고 있어 그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들은 데이릭의 인도아래 레우카스 성이 자랑하는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거울처럼 잘 닦여져 있는 대연무장 위에 한 사람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서른일곱 쌍의 눈이 있었다. ‘흐음, 어떤 걸 보여줘야 저들이 나를 인정해줄까? 백호천광무를 시전 한다면 이곳은 한 순간에 박살나버릴 테니 그럴 수도 없고. 거참! 이것도 문제구나.’ 멋진 모습으로 서 있었으나 사실상 진은 이 자리가 꽤나 거북스러웠다. 차라리 넓은 평야에서 무술을 보여줬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는데 하며 속으로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의 눈이 반짝였다. “험험,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제 힘을 다 발휘하기란 어려운 일이니 대신 간단한 대련으로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흥, 이제 와서 뒤로 물러서다니. 자신 없으면 내려오게.” 칠성 중 하나인 발칸트의 외침에 진의 눈가가 실룩거렸다. 그러다 그의 외양이 천무장원의 지천우와 비슷한 것을 보고 순간 킥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이! 지금 비웃는 건가?” “하하하, 아닙니다. 그저 제가 아는 분과 매우 닮으셔서 웃음이 나온 거 뿐이니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정, 제 실력에 의문이 드신다면 직접 확인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진은 지천우와 외양 뿐, 아니라 경지까지 비슷해 보이는 발칸트에게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성격까지 지천우와 판박이인 듯 그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몸을 날려 대연무장 위에 착지했다. “좋네. 내 나이 어린 친구와 손을 섞는 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자네가 원하니 친히 그 실력을 시험해보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이 이죽거리며 대답하자 발칸트는 뭐라 말하려다 끙 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해도 말로는 이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인의 가치는 말이 아닌 검이 말해주네. 자, 오게!” 발칸트가 쇠꼬챙이 같은 검을 빼어 들며 말하자 진이 한 손을 저어 찬란한 빛깔을 허공에다 만들어 냈다. 잠시 후, 찬란한 빛깔이 마치 환상처럼 사라지며 드래고니아가 진의 손에 나타났다. “오오!” 그의 화려한 연출에 반황제파의 수뇌부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에 진이 씩 웃으며 득의양양한 시선으로 발칸트를 바라보았다. “이이! 크흠, 자네가 오기 싫다면 내가 가지!” 결국 분을 못 참은 발칸트가 진의 도발에 걸려 선공을 취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흥분했다 할지라도 그는 마스터 최상급의 무시 못 할 고수였다. 피잉! 얼핏 들으면 귀여운 듯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의 검은 어느새 진의 가슴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순간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그의 검을 놓치고 결과만을 목도했기 때문에 말리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던 것이다. “네 이놈!” 헌트가 대노하며 발칸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무섭게 쇄도하던 그의 몸은 연기가 흩어지듯 스르륵 사라지는 진의 모습에 허공에서 멈칫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귀를 두들기는 진의 낭랑한 음성. “하하하, 헌트 아저씨는 그 급한 성격부터 고쳐야 할 거예요.” 진의 음성이 들리기는 했지만 그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발칸트가 신음했다. 드래고니아의 끝이 그의 목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순간 모두의 입이 벌어졌으나 그들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음성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경악에 찬 침묵도 헌트의 시원스런 대소에 의해 깨졌다. “으하하하!” “으음, 믿을 수가 없구나. 저것은 분명 사술이요.” 발칸트와 같은 칠성인 데일리스가 붉은 머리칼을 흔들며 말했다. 이에 헌트가 그의 면전까지 돌진해 비아냥거렸다. “흥! 눈에 보이는 엄연한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이 당신네들 논리지!” “뭐, 뭐라? 네, 네놈이…….” 데일리스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실지 헌트 따위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범죄자요. 자신은 그런 범죄자를 잡는 입장이지 않았는가? 물론 그의 폴큐레이티 시의 공로를 인정해 죄를 사면해주었다 하나 데일리스의 눈에는 헌트는 여전히 범죄자였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감히 비아냥거리다니.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그를 말리는 쉘렌타이 때문에 일단은 참기로 했다. “데일리스가 말을 실수한 것은 인정하는 바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의 실력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요.” “흥, 그랜드 마스터를 바라본다는 당신네 동료를 아이처럼 다룬 진인데, 그것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헌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쉘렌타이를 바라보았으나 그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순간 헌트도 그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평소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헌트인지라 커다란 두 눈에 힘을 꽉 줘 그의 심유한 눈에 대항했다. “끄응!” 허나 칠성의 수좌를 맡고 있는 쉘렌타이와 헌트의 차이는 명명백백했다. 그 역시 강해졌다 하나 아직은 쉘렌타이의 적수가 못되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헌트에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이것으로도 만족하실 수 없다니. 그럼 어쩔 수 없군요.” “흥, 그럼 그렇지. 너 같은 놈은 꼬리를 말고 이 자리를 내려가는 게…… 끄응.” 드래고니아가 치워지자 기가 산 발칸트가 외쳤다. 허나 그의 외침은 진이 강렬히 한번 쳐다보자 중간에 신음으로 바뀌어버렸다. “험험, 일단 이 자리를 내려갈 사람은 제가 아니라 어르신인 거 같군요. 이번에 제가 보여줄 것은 꽤나 위험한 거라서요.” 히죽 웃으며 말하는 진이 얄미웠지만 이미 기가 꺾인 발칸트였기에 그의 말에 토를 달 순 없었다. 결국 대연무장 위는 또 다시 진만의 공간이 되었다. “자, 그럼 여러분들이 원하는 눈에 보이는 뭔가를 보여주겠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기술의 여파가 상당한지라 그 여파는 각자 알아서 해소하십시오.” 진의 음성이 사뭇 진지해지자 모두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본 에리필과 카이슨, 그리고 헌트의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진은 그들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지만 정신을 가다듬으며 백호천광무를 준비했다. 고오오오! 반개하고 있던 진이 눈을 뜨자 대기가 놀라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백호 한 마리와 그를 호위하고 있는 광풍이 대연무장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으헛!” 모두가 신음을 토하며 강력한 기운에 대항했다. 그 순간 그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진의 말과는 달리 백호와 광풍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여파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는지라 모두의 얼굴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허나 그들의 눈은 대연무장을 한 바퀴 돌고 진의 머리 바로 위에서 고고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백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잠시 후, 근엄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백호가 입을 벌리며 대기가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을 토했다. “캬오오오!” 순간 모두는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놀라 날뛰는 그들의 감각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백호는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차례 눈길을 준 후, 광풍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승천했다. “자, 어떠신지요? 만족하셨나요?” “…….”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예의상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조금은 힘든 모습으로 대연무장을 내려왔다. ‘쳇, 백호천광무는 모든 기운을 격발시켜야 되는데, 이것을 최대한 억제해서 펼치다니. 나도 미쳤구나! 크흑, 힘들어!’ 진의 이런 생각을 알았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도 이 자리에 서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만으로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그 이상의 충격을 준다면…… 그들의 이성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반응이야 어찌됐든 이로써 진의 입지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되었다. ================================================================================= 일단 한화 올리네요. 쿨럭... 오늘 목표 분량은...대략 3연참인데...가능할런지...일단 이거 올리고...또 다시 집필 모드로 들어가긴 합니다만...에공...자신이 없네요...쿨럭.. 172화. 제국전쟁. 1 아침 해가 떴다. 시체들로 가득했던 전장은 이미 깔끔히 치워져 있어 찬란한 태양을 맞이하기에 조금도 꺼림칙함이 없는 듯했다. 허나 조금 뒤, 또 다시 시체들로 가득 찰 평야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일단의 무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반황제파의 수뇌부들이었다. 그들은 조금의 호위 병력도 대동하지 않고 황제파 군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잠시 후, 황제파 군영에서 한 사람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도저히 오십대로 보이지 않는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보고 백면혈 바쇼타라 불렀다. 바쇼타는 산트라스 기사단의 단장으로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강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 날카로운 눈으로 반황제파의 수뇌부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진과 린에게 닿는 순간 얼음보다도 차가운 한기가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으음, 처음 보는 분이 두 분이나 되는군요. 아주 재미있군요.” 바쇼타의 입가가 살며시 말리자 그의 평범한 얼굴이 음산하게 변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진이 린에게 귓속말을 했다. “쩝, 정말 마음에 안 드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 분위기 말이야. 무슨 강간범 같은 분위기잖아.” “강간범요? 그게 뭐죠?” “아~ 미안하다.” 귓속말치고는 커다란 음성이었다. 분명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말임에 틀림없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바쇼타지만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강간이라는 말이기에 그의 얼굴은 순 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할 때면 어김없이 피를 보게 된다고. 또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참을 수 없는 쾌락을 느낄 때면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고. 그때가 바로 그가 강간을 할 때인 것이다. 이것은 제국의 여러 무력단체에서 알게 모르게 쉬쉬 되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거기다 바쇼타 자신이 강간을 강간으로 인정치 않으니, 다른 이들이 그에게 강간을 했냐고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다 자신의 귀중한 목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거기 두 분 참 재미있군요. 강간범이라… 크크크, 저는 남자도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크크 크.” “미친 강간범이었군.” 일부러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바쇼타의 얼굴이 진의 단 두 마디에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금세 얼굴을 펴고 더욱 음침한 목소리로 말해 수뇌부들의 얼굴에 닭살이 돋게 만들었다. “크크크, 재미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간덩이도 크신 분이었군요. 크큭, 좋습니다. 무슨 용무 가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있다 저와 재미 좀 볼까요?” “무슨 재미? 난 싫은데. 거참, 난 여자가 좋지, 너 같은 남잔 절대 사절이라고.” “크크큭, 싫어도 해야 할 겁니다.” 바쇼타는 진을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안색을 고치고 데이릭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떼거지로 몰려오신 겁니까?” “푸훗, 그 기대하는 눈빛은 뭡니까? 설마 그 재미 보는 데 나를 끌어들이려는 거는 아니겠죠?” “크하하하!” “푸훗, 하하하!” 데이릭의 말에 수뇌부 일동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이제껏 한껏 억눌렀던 바쇼타의 분노가 터졌다. “갈! 네 놈들을 모두 갈아마시겠다.” 바쇼타의 검이 데이릭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데이릭의 얼굴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이에 의아함이 생겼지만 곧 죽을 이의 생각까지 신경 쓸 그가 아니었다. 쾅! 막대한 기운을 머금고 있던 바쇼타의 검이 뭔가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린 바쇼타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은 불신과 황당함으로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듯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좋다. 좋아. 역시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어!” 뭐가 그리도 좋은지 데이릭의 앞을 막아선 진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바쇼타였다. 그리고 이런 그의 행동에 음모론적인 미소를 짓는 진이었다. “단순히 미친 강간범인 줄 알았더니만. 검 좀 휘두를 줄 아는 미친 강간범이었군.” “크크크, 너 정도의 녀석이라면 마음대로 입을 놀려도 좋다. 나에게 재미를 줄 놈이기에.” 바쇼타는 말을 마치며 또 다시 격돌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했다. 그 순간 진이 그의 움직임을 제지해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잠시간 굳어 있어야 했다. “잠깐!” “뭐, 뭐냐?” “아~ 다른 게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싸움하면 내기가 있어야 재밌지.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안 그래?” “음, 난 내기 같은 건 안한다.” “키킥, 자신 없나보구나? 하기야 한번 부딪혀 봤으니 알겠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헛소리마라! 좋다. 내기를 하자.” “흐흐흐, 별 거 아냐. 그냥 지는 놈 편이 이긴 놈 편 아래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깐, 그 뭐시냐. 너희 황제파와 우리 반황제파를 걸고 일전을 겨루자는 거지.”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진의 도발에 걸려들었던 바쇼타는 상황의 중대함을 알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나 진 은 그를 놓아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정, 자신 없으면 그만 두던지. 하기야 네 실력가지고 어디 황제파에서 힘 한번 써보겠냐? 나와 달리 말이지. 키킥!” “……끄응, 조금만 시간을 다오. 가서 상의해 보고 오겠다.” 신음을 토한 바쇼타가 몸을 돌려 황제파 군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를 지켜보는 수뇌부들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걸리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안의 바쇼타와 실제의 바쇼타가 그리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 다른 군영보다 몇 배나 커다랗고 화려한 군막 안은 여느 황궁 부럽지 않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희낙락대고 있는 네 명의 중년인들. “사린트 드 바쇼타 단장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십니다.” 군막 밖, 기사의 우렁찬 외침에 네 공작은 언제 그랬냐 싶게 자세를 고쳐 잡고 근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들어오라 하시게.” 렌드린탈의 근엄한 음성 뒤에 기사의 진중한 대답이 따랐고 장막이 열리며 바쇼타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쇼타 단장 무슨 일이신가?” 문(文)으로 명성을 떨친 고반나 가문의 가주인 에슬리 공작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바쇼타에게는 에슬리의 웃음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할 말이 있어 왔습니다.” “음, 할 말이라… 반황제파 무리들을 처단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인가?” 글로틴 드 저스틴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바쇼타는 여타의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네 명의 공작들도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군.” 헬렌도 드 플렌티드가 허옇게 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바쇼타가 눈을 빛내며 반황제파와 황제파의 싸움을 한번에 마무리 지을 계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느 정도 과대 포장해 승산은 자신들 쪽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자들은 다름 아닌 사대 공작가의 가주들이었다. “흐음, 자네 이야기는 잘 들었네. 그리고 승산 역시 우리 쪽에 있다 하니. 분명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겠군……. 하지만 말이네. 그들이 약속을 지킨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자네,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그들이 승산 없는 싸움을 하겠는가?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믿을 수가 없네. 더욱이 우리가 이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항복한다는 것은 더더욱 믿을 수 없네. 그들이 항복하는 즉시 그들의 행로가 저승길로 바뀔 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을 그들이 모를 거 같은가?” 렌드린탈의 장광설에 바쇼타는 역시나 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들은 무인의 자부심이 그들의 권력에 움직이는 싸구려로 보는 구나. 하아, 내가 이곳에서 무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단 말인가!’ 바쇼타는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가 들었다. 그렇다 보니 그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시 후, 군막을 나선 바쇼타의 귀에 네 공작의 음담패설이 들렸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낼 힘조차 없었다. ‘저들은 원래 저런 인간들이다’라고 생각하니 되레 저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바쇼타였다. 산트라스 기사단은 제국의 수도 가에아를 수호하는 기사단이다. 또한 그들은 3대 기사단 중 정예기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사단으로 유명했다. 그 이유인즉, 3대 기사단 중 그 수가 가장 많은 기사단이 바로 산트라스 기사단이기 때문이다. 산트라스 기사단은 네 명의 공작이 거하는 군막 우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산트라스 기사단 총원인 5000명에서 사망자를 제외한 4697명이 일사불란하게 한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일정한 보폭으로 걷던 사내가 돌연 멈추며 입을 열었다. “후회하지 않는가?” “후회하지 않습니다.” “고맙다.” 사내는 4697명의 단합된 음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시 걸음을 옮기는 사내. 그 걸음의 끝에 바로 반황제파의 수뇌부들이 있었다. ================================================================================ 바쇼타 꽤 중요한 인물인 거 같네요. 쿨럭...아마도 다음화는 바쇼타와 진의 대결...일듯... 173화. 제국전쟁. 2 “그가 올까요?” “당연히!” 진은 데이릭의 저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머리 아픈 일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진인지라 방금 전에 제기했던 의문은 깡그리 잊어먹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다시 드는 의문. “저, 원래 계획 역시 그를 흥분시켜 대결하는 거였나요?” “흠, 그랬었지. 하지만 조금 전 그를 보니 까딱 잘못했다가는 우리가 큰 낭패를 볼 뻔 했더구나.” “하하하, 역시 사람 보는 눈이 대단하시네요. 제가 보기로는 그는 파무광 즉 그랜드 마스터 초입에 오른 인물이었어요.” 진의 말에 데이릭이 ‘아!’하며 탄성을 질렀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진이 있으니깐. 데이릭이 새삼 진을 흐뭇한 눈으로 보자 순간 당황한 진이 이리저리 회피하다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 그런데 말이죠. 그가 4대 공작의 승인을 얻어낼 수 있을 까요?” “…어? 아! 하하하, 그건 불가능하지. 4대 공작은 결코 만만하지 않거든.” “그러면 어떻게 하죠?” 진이 걱정스런 음성으로 묻자 데이릭이 기분 좋은 대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이번 계획의 원래 목적은 이간질이다. 그리고 분열이지. 내 장담하지. 바쇼타는 분명 온다. 그가 지휘하고 있는 산트라스 기사단과 함께!” 그의 자신만만한 음성에 진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데이릭 이 한 말을 곰곰이 씹어보던 진이 기괴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렇단 말은 그를 우리편으로 회유하자는 말인가요?” 진의 말에 데이릭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진의 얼굴은 ‘나 불만 있소.’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흥! 그 미친 강간범하고는 상대하기도 싫어요!” “풋, 푸하하하. 진아,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나 보구나. 그는 강간범 따위가 아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분명 제게는 그래 말해주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말을 막 할 수 있었던 거고요.” 진은 데이릭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 저녁, 그가 본 바쇼타의 이력은 매우 치밀하고도 정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정보가 제국의 모든 정보를 총괄한다는 인텔리트에서 나온 것이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모든 정보가 거짓이었다니……. 순간 어이없기도 하고 화가 나는 진이었다. 이런 그의 내면을 훤히 짐작하고 있는 데이릭은 계획보다 조금 빨리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이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바쇼타는 말이지…….” 이렇게 말을 시작한 데이릭은 장장 십여 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바쇼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을 듣는 내내 진의 얼굴은 슬픔에 잠기었고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네가 이럴 줄 알고 내가 말하지 않은 거다. 사실상 그가 강간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뒤부터 가에아에서 강간범 및 범죄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지. 또한 강간을 하는 자들을 만날 경우 즉각 처단하고 피해자인 여자를 위해 최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이유야, 이미 말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데이릭의 말에 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드는 생각에 또 다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우리 엄마가 그런 일을 겪으셨다면 나는 과연 그처럼 살 수 있을까?’ 진은 바쇼타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에게 자신은 비방하고 모욕적인 언사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이 들자 모든 일의 원흉인 데이릭에게 무한한 분노가 생겼다. 그러나 데이릭은 노련한 능구렁이인지라 진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하하, 미안하구나.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흥! 이건 저를 기만한 거예요.” “음, 미안하구나. 이 말밖에 할 말이 없구나.” 데이릭은 구차한 변명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진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변명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허나 그가 아무리 능구렁이라 할지라도 진의 폭탄선언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이번 결투… 하지 않겠어요!” “뭐? 그러면 누가 그를 상대하겠느냐?” 말은 그렇게 했으나 데이릭의 침중한 음성, 그리고 주위의 흔들리는 시선들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쥐꼬리만한 자존심과 바쇼타에게 한 게 있어 뒤집히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반황제파의 수뇌부들 중에 바쇼타를 상대할 인물이 누가 있는지를.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이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후우! 정녕 없는 건가? 결국 내가 나서야…… 아! 그래! 그 녀석이 있었 지!’ 진은 이마를 탁치며 린을 보았다. 진의 시선을 느낀 린이 움찔거렸지만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모론적인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있어요. 제 의제인 린이 그를 상대하면 돼요.” 데이릭은 진을 속였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남아 있어 억지로 그를 떠다밀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진의 말마따나 데이릭은 린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이에 탄식을 터트리며 진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려는 데이릭이었다. “으음, 저 린이라는 아이는…으음, 알 수가 없구나. 나로서도 알 수 없어. 그러니 자네…….” 데이릭의 말은 진에 의해 끊겼다. 이에 데이릭이 입맛을 다셨지만 그의 말을 듣다 보니 풀리지 않던 무언가가 풀린 듯해 점차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린은 기와는 다른 힘을 사용해요. 그렇기 때문에 데이릭 경이 린의 경지를 짐작치 못하는 걸 거예요. 흐음, 쉽게 말해 린은 저와 비슷한 경지의 고수입니다.” 두둥! 진의 말은 그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폭탄선언이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잘생긴 저 청년 또한 그랜드 마스터 급의 고수라는 말이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들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다. 일전에 진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진이 만족어린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좋아! 그럼 린으로 하겠어요.” 반강제로 얻어낸 결론이지만 누구하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공경지에 관한 이해만큼은 이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 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일단의 무리가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산트라스 기사단이었다. 편견이란 무섭다. 그것은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고 눈에 빤히 보이는 것까지 가리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진은 자신이 얼마나 우매하였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 강간범이라 생각했을 때와 지금 그의 모습은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할 일대 종사! 바쇼타의 기도가 그러했다. 전에는 보지 못한, 편견에 의해 가려졌던 그의 진정한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훗!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인의 눈으로 바라봐주니 기분은 좋군.” 진의 사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굳어 있던 바쇼타의 얼굴도 점차 펴졌다. “대결을 하기 전에 한 마디 해둘 것이 있소.” 진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바쇼타가 몸을 돌려 데이릭을 보았다. 그리고 데이릭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본 바쇼타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결투의 결과를 떠나 나를 포함한 산트라스 기사단 전원이 반황제파에 귀 순하겠소.” “저, 정말이오?” 데이릭은 귀로 듣고도 믿지 못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나 그의 물음은 공연한 것일 뿐. “무인의 혼을 싸구려로 취급하는 그들에게 목숨을 바치기는 우리들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소. 이 말이면 되겠소?” “좋소! 우리들은 그대들을 환영하는 바요.” 데이릭 역시 무인인지라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귀순 아래 어떤 음모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은 마음 속 한켠에다 밀어 넣어버렸다. “당신은 그들과 다르군.” 데이릭의 눈에서 진심을 읽은 바쇼타가 언뜻 감탄어린 감정을 흘려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갈무리되어졌다. “그리고 이번 결투의 승패에 따라 내 지위가 저 친구 위가 될지 아래가 될지를 결정해주었으면 하오.” “그, 그건…….” 한껏 기뻐하던 데이릭은 바쇼타의 말이 의미하는 바에 당황스러워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때, 지금껏 가만히 있던 진이 나섰다. “그건 안 될 말이에요. 나와의 승부로 지위를 얻겠다라. 그건 나의 의제를 이긴 뒤에나 했으면 하는 말이네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그깟 지위보다는 강자와의 싸움에 더 굶주려 있지 않나요?” 진의 오만한 말투에 일순 화가 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뭔가 말하려던 바쇼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말 대로네. 그래, 그 의제라는 친구는 저 검은 머리 청년인가?” “당연한 이야기는 입만 아플 뿐이죠.” 진의 말에 만족 어린 미소를 짓는 바쇼타였다. 저 친구를 이기면 진과도 싸울 수 있기에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는 그였던 것이다. 검붉게 물든 평야 위에 두 사내가 서 있었다. 휘이잉! 어디선가 바람 한점이 불어와 두 사내의 몸을 쓰다듬고 사라졌다. 그 순간! 두 사내가 약속이나 한 듯 그 모습을 감췄다. 쾅!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던 가운데에서 굉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그 주변에 있던 풀들이 뿌리 채 뽑혀 허공에 비산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검붉게 물든 풀들이 피에 의해 눅눅하게 변해버린 흙들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순간 사라졌다. 콰쾅! “좋아! 아주 좋아!” 심상치 않은 굉음 뒤에 바쇼타의 만족 어린 음성이 따랐다. 그리고 곧이어 엄청난 굉음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인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들의 눈으로도 희끗한 무언가가 유령처럼 움직이는 것만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한 차례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섬광! 그것은 눈이 부실만큼 밝아서 멀찍이 물러서 있던 그들의 눈마저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크크큭!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흥분인가! 자, 간다!” 격앙된 음성으로 외친 바쇼타가 유령처럼 풀잎 위를 미끄러져나가 검을 사선으로 올려쳤다. 그 순간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서 한 사내가 떨어져 내렸다. 그는 다름 아닌 린이었다. “흐음!” 린은 자신의 움직임을 감지한 바쇼타가 인간 같지 않아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는 고니아로 자신의 몸을 감싸 그 기운을 숨겼었다. 그런데 바쇼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허나 린은 놀랄지언정 당황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비록 인간 같지 않은 감각을 지니고 있다 하나 실력은 자신의 아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린은 자신의 몸통을 베어오는 바쇼타의 검과는 상관없이 허공에서 수백 번이나 몸을 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의 옷자락 이곳저곳이 베어져 있었다. “호오! 놀랍군, 놀라워! 일순간에 만번을 베는 나의 검을 피하다니. 그것도 최소한의 몸놀림으로 모조리 피하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쇼타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감탄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린은 그의 극찬에도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는 것으로 그 예우를 다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바쇼타가 돌연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정말 마음에 드는구먼. 내 오십 평생에 자네처럼 영혼까지 무인은 사람은 처음 보네.” 바쇼타는 린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답지 않게 전투 중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이 시간이 영원처럼 이어졌으면 하는 게 그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전투는 승자와 패자를 분명히 가리게 만드는 잔혹한 싸움이다. 이를 알고 있는 바쇼타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은 뒤, 두 눈을 빛내며 짧게 말했다. “가네!” 말과 함께 바쇼타의 몸이 360도 모든 방위에서 나타났다. 아울러 그의 몸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검이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 하늘과 땅을 차단하고 모든 방위까지 점한 바쇼타의 검은 여느 환검과는 달리 일검 일검이 엄청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이에 수뇌부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아까운 인재 하나가 덧없이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간 잊고 있었다. 바쇼타의 검을 쳐다보고 있는 자가 누구의 의제인지를! 번쩍! 린의 검이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말살시킬 존재가 이 땅에 나타났다. 그것은 불의 제왕인 주작이었다. 주작천열무! 4대 업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궁극의 기예 중 하나가 이 자리에 현신한 것이다. 파스슥! 린의 몸을 노리던 수만의 검은 붉게 타오르는 주작의 날개 짓에 의해 사라졌다. 그것은 분명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당사자인 바쇼타는 억겁의 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쿠헉! 쿨럭!” 바쇼타는 지옥의 겁화를 연상시키는 붉은 눈이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심신에 막대한 충격을 받았다. 주작은 바쇼타가 무릎을 꿇고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지자 광기를 머금고 있던 눈을 풀었다. “쿠오오!” 드래고니아가 허공에서 춤을 추자 거대한 주작이 괴성을 지르며 하늘로 올라갔다. 잠시 후, 린이 기절한 바쇼타를 업고 산트라스 기사단 쪽으로 움직였다. 그제야 넋을 놓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하며 정신을 차렸다. “받으십시오!” 린은 산트라스 기사단 중 가장 기도가 뛰어나 보이는 중년인에게 바쇼타를 건넸다. 중년인은 바쇼타를 받자마자 그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도 바쇼타는 단지 기절했을 뿐이었다. 이에 안도의 한숨의 쉬는 중년인, 아니 산트라스 기사단의 부단장인 필렌트였다. 한편 진은 린의 상세가 걱정되었다. 주작천열무 역시 모든 기운을 개방해 멸이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린은 그 의지를 거슬렀던 것이다. “괜찮냐?” 린이 돌아오자 진이 따스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에 창백한 안색에 환한 미소를 짓는 린이었다. ================================================================= 어찌됐든 간에 한 편 더 업이네요. 쿨럭!!! 174화. 진 또 다시 대장이 되다. 1 4대 공작의 군막 안. 한 기사가 긴장된 모습으로 네 명의 공작 앞에 서 있었다. “흠, 자네 농담이 지나친 거 같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기사를 바라보던 네 명의 공작 중, 렌드린탈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대번에 목을 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순간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허허허, 우리가 자네를 죽이기라도 할 거 같은가? 두려워 말게.” 에슬리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를 다독였지만 기사의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졌다. 네 명의 공작은 기사가 당황스러워 할수록 즐거웠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시작된 뒤부터 자신들의 즐거움을 채워줄 취미를 빼앗겼던 것이다. 그러던 때에 눈에 띄게 두려워하는 기사의 모습은 그들에게 야릇한 쾌감을 선물했다. “험험, 그만들 하시고. 저 기사의 말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기사는 저스틴이 중재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의 몸을 훑고 있는 공작들의 시선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기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오자마자 올렸던 보고를 다시 읊기 시작했다. “산트라스 기사단 단장인 바쇼타 경과 그 예하 4697명의 기사들이 투항했습니다.” “…… 그 말에 목숨을 걸 수 있나?” 플렌티드의 불쾌하다는 듯한 음성에 기사는 속으로 오만 욕을 했다. 아울러 이 보고를 자신에게 맡긴 루카안에게 살의까지 품었다. 그러나 그는 플렌티드의 말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해야만 했다. 그는 절대 권한을 가진 공작이기 때문이다.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라? 무엇이 그렇다는 말인가?” “예? 그, 그게 제, 제 목을 걸 수 있다는…….” 추궁하듯 몰아붙이는 플렌티드의 물음에 기사는 너무도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렌드리탈에 의해 중간에 잘려버렸다. “흥! 황제 폐하의 성은을 입은 자가 반란군에게 투항이나 하다니! 여봐라!” 렌드린탈이 노한 외침을 토하자 밖에서 기사 한 명이 허둥대며 들어왔다. “부, 부르셨습니까?” 안의 분위기가 어떠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던 기사인지라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게이츠 경에게 가서 배신자들의 가족들을 처단하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렌드린탈의 명에 잔뜩 기합이 든 음성으로 대답하는 기사였다. 바쇼타와 산트라스 기사단이 레우카스 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칼바이츠의 긴급요청에 의해 회의가 열렸다. “그들은 분명 산트라스 기사단의 가족들을 위해할 것입니다.”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자 칼바이츠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전 준비 없이 있던 수뇌부들은 그의 엄청난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4대 공작은 자존심이 강한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바쇼타 경과 산트라스 기사단원들이 어떤 눈으로 보일 까요?” 잠시 말을 끊고 좌중을 둘러보는 칼바이츠는 그들의 굳게 닫힌 입을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배신자! 그것도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대역죄인으로 보일 겁니다.” “흥! 고고한 무인의 혼은 싸구려로 취급하는 자들이 자존심만 높으니 제국도 갈 때까지 갔구나.”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바쇼타가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이에 대부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허나 데이릭은 오히려 인상을 굳히고 있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제국의 주인인 황제와 같은 핏줄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래서 우리가 일어선 것이 아닙니까? 썩어빠진 제국을 뒤엎기 위해 데이릭 경을 필두로 손을 걷어붙인 것이 아닙니까?” 칼바이츠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흥분했던 바쇼타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칼바이츠는 그가 자리에 앉자 잠시 끊긴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정도로 호인이 아닙니다. 허나 바쇼타 경과 산트라스 기산단원들은 우리 진영 안에 있으니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가족들을 헤치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지금 당장 말입니다.” “허어! 그렇겠군요.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데이릭이 일의 긴급함을 알고 묻자 칼바이츠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처럼 구체적인 계획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허허허, 이그젝트의 일곱 별 중 지혜를 뜻하는 아르티나다운 고견이십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것보다 지금은 시각을 다투니 지금 당장 계획을 실행해야합니다.” 데이릭의 감탄에 칼바이츠가 고개를 흔들며 자못 긴박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웃음 짓던 데이릭도 안색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너희들도 그 놈의 부인 때문에 이곳을 지원했지?” “험험, 두말하면 잔소리를. 르팡니 녀석의 집으로 가는 놈들 면면을 보라고.”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는 키노의 말에 맨 처음 입을 열었던 방카가 ‘키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닌 게 아니라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이들 중 깨끗한 소문을 가지고 있는 놈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하여튼 다들 보는 눈을 있어가지고. 어쨌든 죽이기 전에 그년에게 진정한 쾌락을 맛보여주자고. 지 년이 제아무리 명기라도 우리 다섯 사람을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 우리는 칼이 아닌 다른 무기로 깨끗이 죽이는 게 아닌가? 크큭!” 방카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끼익! 너무도 쉽게 문이 열리자 방카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맺혔다. 그러나 그는 미소를 짓다 말고 얼굴을 잔뜩 굳힐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 크흑!” 미처 말을 다하지도 못하고 그의 목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안으로 들어왔던 4명의 기사들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비명횡사했다. “후우, 녀석들이 방심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꽤나 고생할 뻔 했다.”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하는 사내는 다름 아닌 르팡니였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났는지 일곱의 기사가 시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모두들 고맙소이다.” “별 말씀을.” 시체를 처리하는 부하들을 바라보던 아메르는 르팡니의 인사에 짧게 답했다. 이에 잠시 무안해진 르팡느였으나 자신의 품으로 안기는 가족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가족들은 옆집에 피신해있었던 것이다. 부식액으로 시체를 모두 처리하자 아메르가 예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돌아갑시다.” “커헉!” “하, 함정이다!” 배신자의 가족들을 처치하려다 오히려 자신들이 당하자 그들은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했다. 그들이 어디서 정보를 얻어 이런 함정들을 준비해두었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상대의 검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모두 퇴각하라!”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검을 튕겨내며 힘차게 외쳤으나 그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제외한 4명의 동료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쓰벌! 뭐, 이런 엿 같은 일이!” 노르딘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8명의 기사를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때,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던 자 중 한명이 검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투항하겠는가?” 무감정한 음성이었으나, 노르딘에게는 구원의 목소리보다도 감미로웠다. “조, 좋소.” 황제에게 빚진 것도 없는데 하며 서둘러 대답한 노르딘은 중년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산 것이다. 황성 코린토스를 수호하는 라크리나 기사단은 단원을 뽑을 때, 실력보다는 가문의 이름에 우선권을 둔다. 그렇다 보니 제국의 3대 기사단 중, 라크리나 기사단의 무력이 다른 기사단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리고 라크리나 기사단의 단장인 애니원 드 게이츠 역시 다른 기사단의 단장들보다 실력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가문이 제국 8대 무가의 수장에 있지 않았다면 그가 단장을 역임할 확률은 제로일 거라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쾅! 빠지직! 허나 그 역시 무술을 익힌 무인인지라 단박에 탁자를 부서뜨렸다. “제기랄! 쓰벌 일이 뭐 이딴 식으로 으악! 개 같은 경우가…….” 반으로 갈라진 탁자를 발로 찬 게이츠는 그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쉬지 않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 동안 광분을 했을까?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몸을 눕히는 게이츠였다. “후우, 그래. 피해는 어떻게 되지?” “전멸입니다.” “뭐, 뭐라? 만 오천 명 모두 전멸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허어!” 게이츠는 비참한 결과보다도 그것을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보고하는 필란도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필란도의 가문 역시 만만치 않은 가문인지라 뭐라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뭐,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괜히 덤벼봐야 저번처럼 나만 손해지.’ 게이츠는 예전에 지위를 믿고 행패를 부리다 필란도에게 철저하게 깨진 기억이 떠올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크흠, 알겠네. 자네는 이만 물러가게.” “그럼.” 고개만 까닥하고 물러서는 필란도에게 또 다시 화가 났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라고 자위했다. 그리고 그의 기운이 멀찍이서도 느껴지지 않자 게이츠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네 놈은 전쟁 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니, 기고만장한 것도 여기 까지다. 크큭!” 잠시간 ‘전멸’이라는 단어를 잊고 있는 게이츠였다. 한편 진은 데이릭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뜬금없이 자신 밑으로 오천 명이 넘는 기사를 배치시켰기 때문이다. ‘크흠, 내가 누구를 이끌어 본 것은 골목 대장할 때 한 게 다인데. 휴우, 거 기다 그들은 투항한 자들이라 했잖아? 그들을 어떻게 관리한단 말이야? 아아아! 데이릭 경은 왜 이런 일을 나에게 떠맡겨서는 젠장!’ 염두를 굴려 봐도 피할 방도가 없었다. 급조된 이 부대를 맡을 사람이 자신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젠장! 다른 사람들은 뭐 한다고 그래 바쁘담?’ 스스로에게 묻기는 그리 물었으나 수뇌부들이 얼마나 바쁜지는 이미 눈으 로 봤기에 투덜거릴 수는 있어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진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일을 물릴 수 없으니 차라리 좋게 생각하자는 게 진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 내 밑으로 부하가 생기면 나도 좀 더 폼 나지 않겠어?’ 유치한 생각이긴 하나 그만큼 좋은 명분도 없었다. 권력과 명예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분이 바로 ‘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자 속이 다 후련해졌다. ‘진작 이 생각을 했으면 머리 아플 필요도 없었을 텐데. 쩝, 아쉽군.’ 입맛을 쩝쩝 다시던 진이 돌연 린을 보았다. 이에 적잖이 당황한 린이었지만 예의 바른 청년답게 점잖게 말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응! 같이 가자!” “예?” 그의 말뜻을 이해 못한 린이 되묻자 진은 뭔가를 말하려다 그의 팔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그의 귓가에다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가 보면 알아!” 아니한 만 못한 말이었다. ================================================================== 후암...잠이 솔솔 오네요. 175화. 진 또 다시 대장이 되다. 2 “모두 나와!” 새로 증축한 8층 건물 앞에서 목청껏 소리 지른 진은 꾸역꾸역 나오는 사내들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여자들도 몇 명 있긴 있었다. 그러나 진은 약자와 여자에게는 관대한지라 칙칙한 사내들과 그녀들을 동류로 만들 수 없어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에서 제외시켰다. “흠! 모두들 나왔는가?”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답지 않게 오히려 미소까지 짓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뭐 좋아. 나오지 않은 녀석들은 나중에 따로 처벌하면 되니깐.” 나직한 음성이었으나 그들은 진의 음성을 듣는 즉시 몸을 떨었다. 진은 말을 하는 내내 그 엄청난 기운을 개방시켰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수십이 넘는 사내들이 동료의 안위를 걱정하여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진은 고니아로 건물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좋아, 좋아. 우선 간단히 내 소개부터 하겠다. 나는 오늘부로 제군들의 대장이 된 올슈레이 진이라 한다. 그리고 이쪽은 제군들의 부대장인 린이라 한다.” 진은 은근슬쩍 린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린은 조금도 기분 나빠 하지 않 고 도리어 감격해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진과 린이 오천 명이 넘는 기사들에게 인사를 했음에도 누구하나 박수를 치지 않았다. 이에 진은 방금 전까지 생각했던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제군들은 분명 투항했다. 그것은 곧,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에게 검 을 돌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와 다름없다. 내가 지금 잘못 알고 있나?” “…….” 조금은 냉정한 진의 말에 그들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는 동작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런 용기 따위는 애시 당초부터 없었다. 만약 그들에게 용기가 있었다면 진즉에 장렬히 전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본인들부터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오천 명이 넘는 기사들 대다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은 일그러지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약해졌다. 허나 지금은 강하게 나가야 할 때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없기 때문이다. “대답을 하지 않는 다는 말은 내 말을 인정치 않는 다는 말인가? 좋다. 내 제군들 모두를 죽여주겠다. 따라와라. 제군들의 무덤으로 안내하겠다.” 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기습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피로 물든 평야. 진과 린, 그리고 오천 명이 넘는 일단의 무리가 풀잎을 밟고 서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나오다니. 의외로군.” 빈정거리는 듯한 진의 말투에 한 여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흥,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지도 모르다니. 그 우매함이 너와 네 부하의 목숨을 빼앗는 원흉이라는 것을 두고두고 기억하여 후회해라.” 군중들 사이에서 나온 여인은 싸늘하나 아름다웠던 목소리만큼이나 매우 뛰어난 미인이었다.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장인의 손을 거친 듯, 섬세하기 그지없었고 그 모든 것들이 놀라울 정도로 조화로웠다. 진은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잠시 눈을 빼앗겼다. 그러다 자신의 실책을 인식하고 실소를 머금었다. “그대는 누군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진은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눈앞에 있는 미녀는 샤넬리와 비교해서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본래는 너 따위 인물에게 가르쳐 줄 이름이 아니지만 곧 죽을 놈이기에 가르쳐주겠다. 나는 라크리나 기사단의 천부장인 사타노스 드 셀리나라 한다.” “오호, 대단한 신분이군. 그런데 사타노스라면 제국의 8대 무가 중 한곳으로 아는데 맞는가?” “잘 알고 있군.” 진은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허나 그는 겉으로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잘난 가문도 곧 죽을 이에게는 아무 힘도 못 주지.” “흥,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죽을 사람은 내가 아닌 바로 너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손을 올리자 오천 명이 넘는 기사들이 진과 린을 에워쌌다. 그러나 진은 그들의 행동이 우습기만 했다. “후훗! 린아, 저들을 한번 놀라게 해주어라. 그리고 저번처럼 기운을 억지 로 억제하지 말고 아무도 없는 벌판에다 터트려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진은 포위망을 좁혀오는 그들을 보면서 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린. 린의 손에는 어느새 드래고니아가 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검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주작천열무! 그들의 바로 위, 붉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주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나타난 주작은 바쇼타와 싸울 때의 주작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 크기가 못해도 삼백여 라키르가 넘을 듯 하니, 주작을 바라보는 군웅들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붉은 불꽃을 터트리며 대기를 태우던 주작이 드래고니아의 움직임에 따라 허공을 배회했다. 주작이 가는 곳은 어디 할 것 없이 기파에 의해 대기가 흔들렸고 강력한 스파크가 시도 때도 없이 터졌다. 군웅들은 정신이 없었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주작이 언제 덮칠지 알 수 없어 그 공포는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 대부분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허나 모두가 수치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셀리나 역시 그 중에 하나였는데 그녀는 기파의 충격을 견디지 못해 피를 토하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다리는 꼿꼿이 버티고 있었다. 비록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린은 진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고 드래고니아를 한 바퀴 돌렸다가 수 수키르 떨어진 곳에 검끝을 겨누었다. 콰콰콰콰! 주작이 날개짓을 한번하자 대기가 들끓었다. 그리고 어느새 수 수키르를 격해 날아간 주작이 검붉은 대지와 충돌을 일으켰다. 콰쾅쾅쾅쾅! 드드드드드! 쩌저적! 콰지직! 수 수키르나 떨어져 있음에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굉음과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그들을 쉽사리 넘어뜨리는 지진. 그리고 거미줄처럼 쫘악 갈라지는 평야.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온 몸을 헤집는 공포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짝짝! 박수소리가 난지 한참 뒤,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나타나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오천이 넘는 기사들을 레우카스 성으로 운반했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진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이틀 후, 자못 기세가 대단했던 그들은 올슈레이 기사단의 충실한 단원이 되었다. “하하하, 오늘도 좋은 아침이야. 그런데 다들 왜 그런 얼굴들을 하고 있지? 어제 보여준 게 좀 약했나?” 설레설레. 그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고개를 흔드는 올슈레이 기사단의 모습은 진의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왕 시작한 거 올슈레이 기사단을 최고의 기사단으로 만들자!’ 그들의 모습에 감동한 진이 속으로 한 다짐이었다. 허나 그들이 어찌 알리요. 그들이 살기 위해 한 행동이 그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릴 것을. “좋아! 아주 좋아. 그런 의미로 오늘은 조직편성을 한 뒤, 간단한 수련으로 일과를 마무리 하겠다. 대부분이 기사들이니 내가 부르는 경지를 숙지하고 있을 것으로 믿겠다. 첫 번째! 마스터!” 휘이잉! 힘차게 외친 진은 아무도 나오지 않고 바람만 왔다 갔다 하자 적잖이 실망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마스터라는 경지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자위했다. “그럼 익스퍼트!”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3명의 사내와 1명의 여자가 나온 것이다. 이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거기 있는 셀리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 말할 필요 없고 나머지 세 사람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하게.” 그의 말에 셀리나는 이틀 전, 그날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으나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는 진을 빼놓고는. 세 사내 중 마른 체형의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진의 눈빛을 받고 서둘러 자신을 했다. “저는 플라민 슈렌라 합니다. 소속은 카미슈오 가문의…….” “됐어. 과거 따위는 지금 이 순간부터 잊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름 뿐. 알겠나?” 그의 말에 슈렌을 포함한 올슈레이 기사단 전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번째로 진의 눈빛을 받은 자는 상당히 왜소한 체형에 얼굴까지 여자 같이 생긴 청년이었다. 그러나 목울대가 볼록 나온 것으로 보아 사내임에 틀 림없었다. “저는 자란 드 빌리입니다.” “다음!” 마지막으로 호명을 받은 사내는 키가 2 라키르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중년인이었다. “저는 다지비 제트로입니다.” “넷은 천이라고 써 있는 깃발 아래에서 대기하도록!” “옛! 알겠습니다.” 넷이서 동시에 대답했으나 마치 한 사람이 대답하는 것 같았다. 이에 슬며시 미소 지은 진은 이내 안색을 고쳤다. “하이스트!” 이렇게 시작된 진의 선별작업은 반나절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5328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경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때, 진은 한숨을 쉬지 않 을 수 없었다. ‘솔직히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익스퍼트가 4명, 하이스트가 15명, 미 디스트가 20명, 로우스트가 23명밖에 나오지 않다지. 정말 한심하구나.’ 진은 최고의 기사단으로 만들려는 꿈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머지 5266명 모두 검풍은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포부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본래 계획보다 좀 더 강도 높은 수련을 시킬 수밖에.’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한 진은 린에 의해 조직이 편성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에 어제 저녁, 조직편성에 대해 가르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만족의 웃음 짓는 진이었다. 얼마 후, 절제된 동작으로 뒤돌아선 린이 조직편성의 결과를 보고했다. “천부장으로는 슈렌, 빌리, 제트로, 셀리나와 하이스트 급 중에 가장 실력이 높은 미시엘이며, 백부장으로는…….” “아, 그건 오늘 저녁에 내가 확인할게. 그럼 됐지?” “예!” 린은 그도 모르게 기합이 잔뜩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은 그에게서 서류 뭉치를 받아들고 깃발 아래에 모여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음모론적인 미소를 지었다. 순간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은 물론이요, 린까지 당황했다. “하하하, 뭘 그리 긴장하지? 그럼, 내 포부를 잠깐 말하고 수련에 들어가겠다.”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은 ‘이제 와서 수련은 무슨’하는 생각을 했지만 토를 달 순 없었다. 어제 본 백호와 광풍이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 포부를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 올슈레이 기사단이 제국 최고의 기사단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나 역시 한 바 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수련을 제군들에게도 시킬 것이다. 장담하건대 내가 말한 대로만 한다면 얼마 후, 자신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꾀를 피워 조금의 실력도 늘지 않은 자가 있다면 본보기로 어제 본 백호의 입 안으로 던질 것이니. 그리 알도록!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그들은 진이 말한 수련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그가 했던 수련이라면 자신들을 확실히 강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꿔 오고 바래오던 일이 아닌가? 이는 놀기 좋아하고 같잖은 권력을 믿고 의시 대는 전 라크리나 기사단조차 은연중의 바람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마지막 말은 무서웠지만. “대답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 그럼 지금부터…….” 진은 설명을 하며 높은 경지에 오른 천부장부터 중력의 술을 걸어 경지에 맞게 중력의 술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중력의 술은 예전 에리필이 진에게 걸었던 술법과는 그 방법이 사뭇 달랐다. 그는 그저 자연에 떠도는 기운을 흡사한 뒤, 그것을 중력의 술로 변형시켜 피시술자에게 술법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올슈레이 기사단은 예전과 다른 자신의 몸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진의 경고대로 기를 끌어올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진은 무의식중마저도 지배하는 악마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후우, 좋아. 오늘은 시간도 늦었으니 팔방베기를 오십 번씩만 한다. 도 합 사백 번이니 몰랐다고 하는 사람이나, 꾀를 부리는 자가 나와 부대장의 눈에 잡힐 시 단체로 백번씩 더한다.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과는 달리 진의 과제를 그날 안에 완수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그들은 밤을 새고 날이 밝아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고행은 시작되었다. ================================================================== 휴우, 벌써 아침이네요. 잠시 놀다 글을 쓰고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떠있네요. 쿨럭!!!! 176화. 진 또 다시 대장이 되다. 3 요즘 네 명의 공작은 사는 게 사는 거 같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바쇼타와 산트라스 기사단이, 그 다음에는 정예병력 오천이 넘는 기사들이 반란군에 항복한 것이다. “으윽, 기사면 기사답게 명예롭게 뒤질 것이지 왜 항복해서 지랄하는 거야? 아이고 두야!” 렌드린탈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신경질적인 음성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의 말에 퉁명스레 반박하는 에슬리였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플리민 평야를 박살내버린 두 존재네. 게이츠 경에게 물어본 바,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더군. 알겠나? 플리민 평야를 덮쳤던 그 힘이 우리가 있는 이곳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끄응, 몰살이겠군. 다른 녀석들이 죽는 거야 상관없다지만 고귀한 우리 목숨까지 그냥 골로 갈 수 있겠어. 으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프렌티드가 심각한 음성으로 묻자 에슬리가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성으로 철수해야 할 거 같네. 최소한 성에는 온갖 방어 마법이 걸려 있어 그들도 우리를 어쩌지는 못할 걸세.” “그렇단 말은 전쟁을 포기하잔 말인가?” 저스틴의 놀란 음성에 에슬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닐세. 작전상 후퇴일 뿐. 전쟁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닐세. 그리고 우리에게는 지방에서 파견할 방패막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들이 다 모일 시간을 벌자는 말일세. 아울러 그 시간 동안 두 존재의 신상 명세는 물론이요, 약점까지 파악해야지. 그들 역시 인간일 테니 분명 약점이 있을 거야.” “으음, 말은 뻔지르르해도 결국엔 이번 전쟁을 포기하잔 말이군. 그런데 투항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렌드린탈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에 에슬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허나 그는 속마음을 숨기는 데 익숙한지라 짐짓 한숨을 쉬며 그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후우, 작전에서 죽은 자들 대부분은 일반 병사였고 투항한 자들은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니. 그들이 속한 곳과 가문에다 따져야 옳으나 지금은 아니네. 일단은 묵인해 줄 수밖에……. 배신자들로 인하여 그들은 더욱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네.” 그의 말에 세 명의 공작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의 피는 얼마든지 흘려도 조금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얼마 후, 플라민 평야 한곳을 까맣게 덮고 있던 군막들이 거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썰물 빠지듯 플라민 평야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끼익! “다들 모이셨습니까?” “데이릭 경을 뵙습니다.” 데이릭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나를 황제로 추대하려하는구나!’ 은근히 압력을 가하던 그들이 이제는 드러내놓고 활동하려는 듯했다. 이에 씁쓸한 고소를 짓는 데이릭이었다. “모두들 앉으십시오.” “말씀에 따르겠나이다.”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 보니 진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박자 늦게 앉았다. “흠, 모두들 들었다시피 그들의 모든 병력이 황궁으로 철수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많은 그간에 못했던 일들을 처리해야합니다. 자,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의논해보도록 합시다. 칼바이츠 경,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소신의 짧은 생각을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소신이라뇨.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데이릭은 미소 짓는 칼바이츠를 보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순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허나 그 일은 그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이었다. “감당하기 어렵다뇨. 다음 대 황제가 되실 분이 약한 소리를 하시면 안 됩니다. 어쨌든 소신의 생각으로는 가장 시급한 일은 즉위식입니다.” “허나, 그것은……” 데이릭이 뭐라 말하려 했으나 그의 말은 그의 절친한 친우인 파슈발에 의해 끊겼다. “맞습니다. 이미 현 황제의 세 아들은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었습니다. 더구나 나머지 황족들은 그 세력이 너무 미미합니다. 그러니 다음 대 황제는 데이릭 경이 되셔야 합니다.” “그, 그건 중요하지 않소. 지금 역시 충분한 명분이 있지 않소?” “아닙니다. 만약 우리에게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면 나머지 6대 무가나 지방 세력들이 수수방관하고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방 세력들이 황제, 아니 네 명의 공작의 명을 받들고 가에아로 올라오고 있다 합니다. 이런 판국인데 우리에게 무슨 명분이 있다는 것입니까? 황족이신 데이릭 경께서 단순히 우리에게 가담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승계 1위인 데이릭 경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시는 것 이외의 명분은 더 이상 저희에겐 없습니다.” 칼바이츠는 데이릭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이에 데이릭이 손을 내저으며 뭔가를 말하려할 때, 세르디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황제는 공작들의 꼭두각시 인형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욕이란 욕은 황가인 프치아이오 가(家)가 들어먹고 있습니다. 데이릭 경께서 진정으로 제국을 사랑하시고 프치아이오 가(家)를 사랑하신다면 황제의 자리에 오르셔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루미에의 지팡이까지 있지 않습니까?” 세르디스의 말에 데이릭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의 황제는 광인이 되었고 황가에 누만 끼치고 있었다. 거기다 창조주 루미에의 지팡이가 자신들에게 있으니 정통성 역시 자신에게 있지 않은가! 그 옛날 초대 제국 시대 때부터 내려온 황가의 보물! 루미에의 지팡이. 몇 년 전, 선황이 맡겼던 보자기 안에 있던 물건. 그것이 바로 루미에의 지팡이였던 것이다. 데이릭은 깊은 고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모든 소리가 소음으로 듣겼다. 이에 짜증이 난, 데이릭이 탁자를 탕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조용하시오……. 나,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오.” 돌연한 그의 행동에 긴장했던 수뇌부들은 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데이릭은 그들의 이런 모습조차 보기 싫어 몸을 돌려 회의장을 나갔다. 삼일 후, 데이릭이 황제에 즉위했다. 그러나 황제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기뻐 보이지 않았다. 진은 데이릭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한 곳에 속박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허나 어찌하겠는가! 가장 좋은 방법이 이것이니. 이후, 삼일 동안 레우카스 성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아울러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이 황제의 즉위했다는 것을 제국 전역에다 알렸다. 이때, 가장 고생한 것은 다름 아닌 마법사들이었다. 즉위식이 끝난 후, 수백의 마법사들이 탈진하여 쓰러진 일은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다. 그리고 즉위식 덕분에 환호를 지르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올슈레이 기사단이었다. 그들은 즉위식 덕분에 삼일 간, 수련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허나 꿈처럼 달콤했던 삼일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모두 집합!” 늘어지게 자고 있던 올슈레이 기사단은 건물 전체가 웅웅 울릴 정도로 커다란 외침에 깜짝 놀랐다. 쿵! “어이쿠!” 너무도 놀라 침대에서 떨어진 사내는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방금 전 들었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상기하고 허겁지겁 옷을 입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래봐야 뒤뚱 뒤뚱 어색한 걸음이었지만. 이른 새벽이다 보니 모두는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정렬해 있었다. 이들을 쭈욱 둘러보는 진의 입가에는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좋아. 삼일 간, 재밌게들 놀았을 테니. 아침 식사 전까지 팔방베기를 200번씩 한다. 낙오자는 아침 밥이 없을 테니. 알아서 기도록. 실시!” “아아앙!” 진의 말에 곳곳에서 아양을 떠는 듯한 음성이 울렸다. 순간 진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좋다. 300번씩!” “아, 읍!” 한 사내가 뭔가를 말하려다 옆에 있는 사내의 손에 의해 입이 막혔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의 청력은 인간의 것을 벗어난 것이었다. “좋다. 350번씩!” “…….” 이번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에 만족어린 미소를 지은 진은 린을 데리고 평평한 바위 위로 올라가 명상에 잠겼다. 허나 그 누구도 꾀를 피울 생각은 못했다. 저렇게 눈을 감고 있어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귀신 같이 맞추는 것을 경험한 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잔혹한 결말까지도. 그렇게 그들은 아침밥을 사수하기 위해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야 했다. 한달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러나 올슈레이 기사단은 한달이라는 시간이 몇 년보다도 길다고 느꼈다. “아이고, 쑤시지 않는 곳이 없구나.” 제트로는 과묵한 인상과는 달리 유쾌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네 명의 천부장은 잔뜩 굳어 있던 안색을 슬며시 풀며 웃음 지었다. “하하하, 내일 일이 걱정되긴 할 거야. 하지만 대장도 인간인데 이 늙은이가 끼어있는 우리 그룹을 매몰차게 대하겠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그를 보며 그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대소를 터트렸다. “푸웃, 푸하하하!” 고단한 몸과는 달리 그들의 목은 생생한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목소리가 이토록 낭랑할 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키킥! 그 덩치에 그런 표정 짓는 것은 반칙이라고요.” 눈가에 눈물까지 매단 셀리나가 제트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제트로는 두 손을 들어 ‘내가 뭘!’하는 포즈를 취했다. 덕분에 모두는 바닥을 치며 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이들의 격의 없는 모습은 분명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셀리나만 해도 가문의 힘을 믿고 얼마나 오만했던가? 그랬던 그녀가 평민 출신인 제트로에게 농담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녀뿐만 아니라 연무장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그들 모습은 분명 예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류애는 그 어떤 것보다 친밀하게 만들어준다.- 삼백년 전, 현자 아므루 드 린타이의 말을 새삼 실감하는 그들이었다. “크큭, 하여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악마 같이 강한 대장처럼 될 수 있다는데 이보다 더한 일도 못하겠어?” 농담조로 말했지만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내일부터 시행할 수련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진은 공명음을 토하며 갑자기 나타난 드래고니아 때문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웅웅웅! “응? 이게 왜 지 맘대로 튀어 나온 거야?” 진은 제국의 문화를 공부하고 있는 린과 고고한 빛을 토하고 있는 드래고니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린의 손에도 드래고니아가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웅웅웅웅! 그때, 드래고니아의 공명음이 실내를 울렸다. 그와 함께 이제껏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진기한 경험을 하는 진과 린이었다. “으음, 오고 있군.” “그런 거 같군요.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발견한 거 같습니다.” “그래, 드래고니아의 네 주인이 모일 때, 4업을 해결할 수 있다 하니 잘된 일이기는 하다마는. 지금처럼 어수선한 시기에 4업까지 감당해야 하니 솔직히 부담이 되는구나.” 진은 솔직히 이 일이 부담스러웠다. 자신은 제국과 한 쟈크 대륙에 관한 문제만으로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거기다 이제는 4업까지 맡아야 한다니. 그 무게감에 압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괜히 린에게 화풀이 하는 진이었다. 177화. 격변의 시대. 1 “헉! 이, 이게 뭐지? 나도 모르는 지식들이 떠오르는 거지? 크흑!” 사내는 알지 못했던 지식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머리를 누군가가 가지고 노는 듯해 치욕감마저 느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사내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이 모든 사실들을 믿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믿는 것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결연한 사명감까지 띠우고 있었다. “가에아라…….” 그의 음성이 잔잔한 여운을 남길 무렵, 그는 그곳에 없었다. 나뭇잎들이 햇살을 머금었는지 금색 빛깔을 뿌려대고 있었다. 휘이잉! 맑은 하늘과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매서운 바람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반짝이는 잎들을 들었다 놓았다. 그리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팔랑거리며 햇살을 머금었다 머금지 않았다를 반복해 매우 신비로운 자태를 연출했다. 나뭇잎들은 한 여인의 얼굴 위에 하나둘씩 쌓였다. 여인의 얼굴은 꿈에 볼까 두려운 용모였는데 굳게 닫힌 눈이 떠지면 찬란한 태양도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뒤, 실현되었다. 번쩍! 감겨 있던 눈이 떠지며 섬뜩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여인은 정신을 차리고도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리는 여인이었다. “호호호, 안 그래도 무료했는데 잘 됐어! 이제, 이곳도 안녕인가?” 짐짓 서운한 투로 말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감정의 찌꺼기조차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뭐? 그년이 떠났다고?” “그렇구 말구요. 내 목도 걸 수 있다니깐요. 그년이 떠나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니깐 그러네. 나 못 믿수?” 투박한 손으로 가슴을 탕탕치는 사내는 척보아도 산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한 여인이 떠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흐흐흐, 으하하하하하! 이제 자유다!” 호피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는데 그의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이날, 슬리카나 산맥에 거주하는 수천이 넘는 산적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음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고고한 빛을 뿌려대는 달이 서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야심한 시각. 황제의 방문이 고요를 깨고 열렸다. 끼익! “어서 오시오, 칼바이츠 경.” 데이릭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그를 맞아들였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허허허, 그 황제 폐하라는 소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구려.” 데이릭의 너스레에 칼바이츠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역시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 자유 안에 갇혀 있었던 제황의 기품. 그것은 흉내 낸다고 하여 나오는 것이 아니지.’ 그는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이런 그의 내심은 얼굴에 까지 드러나 환한 표정으로 데이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오.” “아, 아닙니다.” 별 뜻 없는 한 마디에 깜짝 놀라 허둥대던 칼바이츠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깊은 눈으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음, 어제 저녁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그것이 꽤나 중요한 것인가 보오.” “그렇습니다. 사실 전쟁을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아뢰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호오, 그런가?” 데이릭은 그의 말에 구미가 당겼다. 전쟁을 빨리 끝낼수록 아까운 목숨들이 적게 죽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칼바이츠는 데이릭이 흥미를 보이자 재빨리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그전에 신이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사옵니다.” “말해보시오.” “전쟁의 승패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데이릭은 칼바이츠의 물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힘이지!” 데이릭은 타고나기를 힘의 위대함을 따르는 사람인지라 대답 역시 그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를 짐작하고 있던 칼바이츠는 자신의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대답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놀리고 있습니다.” “흠, 그게 무슨 말인가?” 데이릭은 그의 말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말하기 꺼려지는, 그러나 필승을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칼바이츠의 머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데이릭의 눈은 망설이고 있는 칼바이츠를 채근하고 있었다. “…… 신의 말이 폐하를 노여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의 목을 걸고 말하겠습니다.” “허허허, 말 하나 하는데 목을 걸 필요가 어디 있나?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말하게.” 토닥이듯 허공에다 손을 까닥거리는 데이릭의 행동에 칼바이츠는 긴장했던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킨 칼바이츠가 입을 열었다. “올슈레이 진과 린을 활용해야 합니다.” “…… 뭐라?” 쾅! 꽈지직! 처음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니 그 말뜻을 쉬이 알 수 있었고 크게 노한 데이릭이 응접실 탁자를 내리쳤다. 칼바이츠는 자신을 가리키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데이릭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그의 모습은 진심으로 목을 걸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황제이기 때문이다. “…… 후우. 짐이 뭐라 대답할 거 같소?” 침착하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칼바이츠가 몸을 떨었다. 방금 전처럼 분노하는 것이 눈에 보이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억눌린 분노가 터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웠다. “묻지 않소? 짐이 뭐라 대답할 거 같소?” “그, 그게…….” 칼바이츠는 그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던 황제의 심기만 건드릴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 하아, 미안하오. 솔직히 말해서 짐 역시 그런 생각을 해봤었소. 그 렇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것이오. 알겠소? 짐의 이 마음을. 진과 린은 내 딸아이 또래라오. 그런 자식과도 같은 아이들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야겠소? 짐은 그럴 수 없소. 이 말은 없었던 일로 하시오.” “…… 알겠습니다. 그럼 신은 물러가겠습니다.” 칼바이츠는 의외로 쉽게 물러섰다. 그러나 그의 내심을 데이릭이 알았다면 당장에 그를 찢어 죽였으리라. ‘그들을 움직일 열쇠가 공작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방관만 해야겠군. 이것은 황제가 자초한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같을 건데 그것을 모르는 황제와 공작들이 불쌍하구나. 특히 그 열쇠가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도 모르고 좋아할 공작들이 너무도 불쌍하구나.’ 문을 조용히 닫으며 나오는 칼바이츠의 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허나 데이릭은 그 눈빛을 볼 수 없었다. 사이하게 빛나는 그 눈을. ================================================================= 이번 화는 좀 짧은 거 같네요. 그렇지만 여기서 끝내야 하기에...어쩔 수 없다는...쿨럭. 178화. 격변의 시대. 2 “점심을 만드나? 밥 먹는데 뭘 그리 정성을 쏟지? 밥은 그저 꾸역꾸역 입에 넣기만 하면 되지 않나? 1분 주겠다. 1분 후, 인원체크에서 한명의 낙오자라도 나올 시, 그 결과는 책임 못 진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식당을 나서는 진을 보며 올슈레이 기사단은 속으로 오만 욕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은 쉬 임없이 움직였고 그들의 입 역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1분 뒤, 올슈레이 기사단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은 대충 눈으로 훑어보는 것으로 인원체크를 대신했다. “어제 예고한 대로 점심 식사 후에는 특별 훈련을 실시하겠다. 이 훈련의 장점은 소화를 장려한다는 것에 있으니 모두들 환영할 것으로 믿는다.” 그 누구도 인정치 않았으나 그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제군들 모두가 환영하는 군. 좋아, 아주 좋아. 이제야 기사단다운 모습을 보이는 군.” 뭐가 그리도 좋은지 눈을 반개한 상태로 연신 감탄을 터트리던 진은 옆에서 린이 헛기침 몇 번으로 주의를 주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험험, 어쨌든 이 수련의 요지는 실전 및 변화된 몸에 적응하는 훈련이다.” 진은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그들의 몸에 걸려 있는 중력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한번의 훑어봄으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었다. 올슈레이 기사단은 갑자기 중력이 해제되자 몸의 감각이 너무도 달라 처음엔 당황했다. 그러나 진의 눈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재빨리 파악하고 감각을 찾기 위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분이 흘렀을까?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진의 입이 열렸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이해하기 편할 테니. 우선 천부장 다섯 앞으로!” 진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섯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의 재빠른 동작에 만족 어린 미소를 짓던 진이 그들 하나하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덤벼라!” “…….” 허나 이번에는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라? 왜 안 덤비지? 그렇담 내가 가지, 뭐.”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진의 몸이 뚜렷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구타나 다름없는 소리가 울렸다. 일분 후, 천부장 다섯은 연무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여자인 셀리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나마 진이 얼굴은 건드리지 않아 꽃보다 아름다운 그 얼굴은 유지할 수 있었다. 진은 그들을 일변한 뒤, 얼어 있는 올슈레이 기사단을 향해 말했다. “이런 거다. 알겠나? 다음 1조부터 10조까지 백부장 앞으로!” 그렇게 그들을 향한 구타가 시작되었다. 예전 헌트가 진에게 행한 것보다 몇 배나 험한 구타가……. 올슈레이 기사단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한 듯이 린을 꼽는다. 진이 아닌 바로 린을 그들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 “오늘 배울 진법은 아틸란트 진법이다. 이 진법의 효용은 다수가 소수의 적을 상대할 때, 나타난다. 이 진법이 왜 아틸란트라 불리냐 하면은…… …… 이론은 대충 이 정도다. 본래는 응용까지 설명해야 하나 그렇게 하면 수련할 시간이 없어지는 관계로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럼, 백부장의 지위 아래 훈련을 시작한다.” 한 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설명을 했으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한다는 그의 말은 올슈레이 기사단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거기다 얼마나 까다로운지 처음 가르쳐주면서 조금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그 부대는 피를 토할 정도로 혹독한 코스를 굴러야 했다. 그러니 두려워할 수밖에. “거기 33조 들어가는 순서가 틀리잖아.” 이로써 오늘은 33조가 죽음의 코스를 돌아야 했다. 레우카스 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평온해 보였으나 수뇌부들 및 중요인물들은 몸이 열이라도 부족할 판이었다. 그들은 암묵적인 휴전 상태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그 세력을 넓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휴전한 지, 3달이 지났을 무렵 그들의 세력은 공작들의 세력에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레우카스 성은 인산인해로 터져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진은 데이릭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제안을 했다. “올슈레이 기사단은 이참에 훈련 겸, 몬스터들도 좀 죽일 겸해서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을 갔다 오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었지만 데이릭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진의 이런 태도가 보기 좋았다. 자신이 비록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데이릭이라는 사람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모두 다르게 대하니,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서운 한 그였던 것이다. “으음,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예,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조만간 저와 린은 한 쟈크 대륙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쪽 전력에 큰 손실이 입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니 저와 린이 없더라도 큰 힘이 되어줄 부대를 만들어 놓고 떠나려는 것입니다. 뭐, 또 다른 이유를 대자면 빈방을 좀 만들어두려고요. 아참, 이번 일정에 린은 제외시켰으니 제 의제를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좋습니다.” “빈방? 부려먹어? 크큭! 하하하, 자네다운 말일세. 좋네. 그럼 언제 떠날 생각인가?” 데이릭은 진의 엉뚱한 말에 간만에 웃음을 터트렸다. 진은 그의 시원스런 웃음에 절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늘 밤에 떠날 생각입니다.” “왕이시여,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삼만 정예병과 백여 명의 마법사들은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르단 왕국을 수호하는 주르단 기사단 단장인 티아느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에란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글라민 공작에게 물었다. “동맹국인 샤킨트 왕국과 차칸타 왕국은 어떻다 하오?” “두 왕국 역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으로 아옵니다. 일차로 정예병과 마법사들을 출병하고 이차로 일반 병사들을 투입시키는 저희와 같은 작전을 준비했다 하옵니다.” “으음, 그렇다면 그들이 먼저 출발해야겠구려. 거리상 우리 주르단 왕국이 가장 가까우니.” 에란티스의 말에 글라민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두 왕국의 정예병들은 삼일 전에 출병했다 합니다. 그러니 우리 왕국이 내일 쯤 출발한다면 속도는 얼추 맞아떨어질 것입니다.” “좋소. 내일 본왕이 친히 그들을 격려해 줄 것이오!”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그의 말에 대전에 있던 모든 신하들이 감읍했다. 흑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폴큐레이티 시 상공에 떠 있었다. 그들의 수는 백여 명에 이르렀는데 대기를 진동시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늘 부로 폴큐레이티 시는 지도에서 사라진다.” 붉은 장미가 세 송이가 그려져 있는 로브를 입은 사내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손에서 엄청난 수의 마법이 폴큐레이티 시로 떨어졌다. 콰쾅쾅! 쾅! 쾅! 쾅! 화염이 치솟고 그 속에서 아우성치는 시민들. 무공을 익힌 자들도 불시에 당한 공격에 미처 대비하지도 못하고 고혼이 되었다. 부를 상징하는 높다란 건물들은 사람들을 압사시키는 도구로 전락했고 공기를 정화시키던 나무들은 제단의 장작이 되었다. “엄마! 살려줘!” “으아악!” 죽어가며 남기는 말들 중, 세 마디가 넘는 것이 드물었고 대부분은 단말마의 비명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게 폴큐레이티 시는 죽음의 사신에게 유린당했다. 화르르륵! 무역 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폴큐레이티 시는 무자비한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데이릭은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에 분노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백성들까지 몰살시키다니. 그놈들이 누구인지 밝혔나?” “그, 그게 생존자가 없어서…….” 세르디스는 불같이 화를 내는 데이릭의 기도에 눌려 식은땀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데이릭의 분노가 대단하다는 말이다. 그때, 다급한 걸음 소리 뒤,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방금 올라온 보고입니다. 폴큐레이티 시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의 촌부가 범인들을 목격했다 합니다.” “뭐라? 그래, 그들이 누구인가?” 인텔리트의 수장인 바르미는 데이릭의 물음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대답했다. “흑의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라 합니다. 그 수가 백여 명에 이른다 합니다. 이로 보아 저희 인텔리트에서는 해키에스 지로브의 남은 잔당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으음, 지보르라 그 당시 그들 세력의 힘은 황실마저 위협할 정도였지.” 데이릭은 예전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대했었는지를 떠올리며 잠시 몸을 떨었다. 그만큼 그들의 힘이 대단했다는 말이다. “후우, 한 곳만 신경 쓰기에도 벅찬데 또 다른 적이라니. 하늘도 무심하구나!” 데이릭은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는 하늘이 싫었다. 허나 직면한 현실을 피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는 세르디스에게 명을 내렸다. “모든 마법사들에게 명하게. 제국 전역을 대상으로 마나의 기운을 감지하라고. 특히 어둠의 마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알겠나?” “신, 분부에 따르겠사옵니다.” 감읍하며 뒷걸음질로 대전을 물러나는 세르디스였다. ================================================================= 다음화는 아마도 올슈레이 기사단의 활약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쿨럭! 179화. 소 뒷걸음에 쥐 잡는 격. 1 올슈레이 기사단은 제국의 방패라 불리는 실드리어를 무사히 통과하여 탈클라마가니아 산맥에 들어갔다. 만약 데이릭들이 휴전 상태 중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실드리어에서 한판 크게 벌여져 했을 것이다. 이런 세세한 사정을 알리 없는 진은 그들에게 손까지 흔들어주며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에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에 오니 괜스레 샤넬리가 생각이 나는구나. 그때, 샤넬리가 오고 싶었다고 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드넓은 대지를 둘러보며 진은 샤넬리라는 감회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오천 쌍이 넘는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을 하며 짐짓 태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은 우선 첫날이니, 개인당 하급 몬스터 하나와 부대당 중급 몬스터 하나다. 또한 백부장들은 필히 중급 몬스터 하나를 잡아야 하며, 천부장들은 합심하여 대형 몬스터 하나를 잡아와라. 또한 단 한명이라도 죽을 시, 그 책임은 부대 및 그 상급자들까지 질 것이니. 자신의 목숨보다 동료의 목숨을 소중히 해라.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그들은 진의 마지막 말에 크게 감동하여 힘차게 대답했다. 이에 배시시 미소 짓는 진의 모습에 경솔한 자신의 머리를 그 모르게 쥐어박는 올슈레이 기사단이었다. 허나 그들이 제아무리 조심스레 행동한다 하나 진의 눈을 벗어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험험, 하여튼 모두 무사 귀환해라. 해가 지는 시각까지 모두 돌아와라!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그들 입가에는 작으나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악마 같은 그에게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의 몬스터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다. 올슈레이 기사단에서 한 부대는 열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유인 즉, 숫자를 세기 편하고 린이 공부한 진법서에서 열명으로 이루어진 진법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허나 이런 간단하다 못해 허무한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진과 린, 단 둘 뿐이기 때문이다. 486부대는 린의 지옥의 코스를 가장 많이 경험한 부대였다. 그렇다 보니 진법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체력은 다른 부대원들을 월등히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 정작 본인들만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조심조심하며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을 이동하고 있었는데 다른 부대들은 벌써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에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낀 그들은 처음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눈에 불을 켜고 몬스터들을 찾았다. 그리고 하늘의 보살핌인지 그들의 눈에 몬스터 하나가 잡혔다. 몬스터는 뭘 믿고 있는지는 몰라도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덩치도 그리 크지 않은 것이 겁 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486부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붙어보기 전까지는. “크아악!” 그들이 접근하자 괴성을 지르며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몬스터 때문에 486부대는 혼비백산하며 이제껏 배웠던 진법은 깡그리 잊어먹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합격을 어거지로 펼쳤다. 그런 조작한 합격술이 중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급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율리안트에게 먹힐 리 없었다. “크흑!” 부대원 하나가 율리안트의 날카로운 손톱에 어깨를 베였다. 그것도 동료가 그의 몸을 밀치지 않았다면 목이 날아가고도 남았다. 이에 어깨를 부여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내였다. 허나 그에게는 한숨을 쉴 여유조차 없었다. 이미 피 맛을 본 율리안트가 그 사내를 놓아줄 리 없기 때문이다. 번쩍! 섬광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그러나 진의 무식한 공격에 익숙했던 사내의 눈에는 그리 빠른 속도로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인식하자 갑자기 용기백배해져 율리안트의 공격을 피하며 힘차게 외쳤다. “점마 조져!” 제국 남쪽의 사투리를 유감없이 발휘한 사내의 말에 486부대가 자극을 받았다. 486부대에서도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그가 피할 정도의 공격이라면 자신들도 피할 수 있고, 아울러 이길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생각을 전환하자 486부대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율리안트도 그 이름을 풀 먹어서 딴 게 아니라서 만만치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전투는 자연 혈투가 되었다. “헉헉헉! 저놈 진짜 안 죽네! 좋다. 네가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십대 일의 불공평한 대결은 더욱더 피를 튀기고 있었다. “크큭, 별 것도 아닌 것이 괜히 힘만 빼게 했네.” “그래도 다음부터는 저놈은 건드리지 말자.” “그 생각에 동감, 한 표!” 486부대원들은 율리안트의 머리를 주머니에 담아 넣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 한 그들은 목표치인 하급 몬스터 열 마리를 잡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움직였다. 한편 다른 부대들을 살펴보자면 486부대처럼 이렇게 처절한 몰골을 하고 있는 부대는 없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올슈레이 기사단의 열등반이었던 것이다. 본인들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진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사라지는 486부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린이 신신당부하여 지켜보긴 했지만 전투를 지켜보는 내내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던가? 또한 몇 번이나 손을 멈칫거려야 했던가? 그만큼 그들의 전투는 엉망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들의 훈훈한 정이라도 느낄 수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은 린을 대신해 그들을 지옥의 코스로 인도했을 것이다. “블레이드 플라워!” 셀리나의 검에서 수십의 꽃송이가 생겨나 골룸의 머리 위로 하늘하늘 날아갔다. 그런데 미녀의 우아한 걸음걸이처럼 느릿한 꽃송이를 골룸은 만지지도 못했다. 골룸의 팔이 꽃송이를 짓뭉개려는 순간 스르륵 움직여 그의 공격을 피했던 것이다. 이렇듯 골룸의 시각을 빼앗은 셀리나 덕분에 네 사내는 마음껏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볼티노 포세이드!” “아트란 캐논!” “미티어 쏘닉!” “골드 스타!” 각자 자신의 최강 기술을 대형 몬스터인 골룸을 향해 펼쳤다. 그 결과 골룸의 팔 하나와 복부 쪽에 커다란 상처를 냈다. 이에 득의양양한 그들은 잠시간 방심을 했다. “캬오오!” 골룸은 무릎의 반도 오지 않는 것들이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자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눈앞의 꽃송이들을 무시하고 무식하게 돌진했다. 팡팡팡팡팡! 적지 않은 기운을 가진 꽃송이와 부딪히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골룸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미시엘의 면전에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큰 기술을 사용하여 피할 힘이 없는 그를 향해 그 커다란 주먹을 내리 꽂았다. “안돼!” 그의 옆에 있던 슈렌이 몸을 날려 그를 밀쳐냈지만 여전히 골룸의 권역 안이었다. 이에 두 눈을 질끈 감는 슈렌과 미시엘. 그리고 고함을 지르며 허겁지겁 몸을 날리는 빌리와 제트로. 셀리나는 꽃송이와 골룸이 부딪힐 때의 충격에 피를 토하고 있어 미처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눈은 무척이나 다급한 빛을 띠다 그것마저 질끈 감긴 눈 아래에 감춰졌다. 파즉! 엄청난 충돌음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살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르륵! 감긴 눈 사이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을 뜰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녀 역시 이미 많은 피를 검에 묻혔지만 그들의 처참한 시체를 볼 용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친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전투 중에 눈을 감는 것은 ‘나 죽여 주쇼.’라는 말과 다름없다는 걸 모르나?” “아!” 그 음성의 주인은 다름 아닌 진이었다. 셀리나는 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잡히는 그것은… 한쪽 남은 팔마저 사라져 고통에 괴로워하는 골룸이었다. ‘그렇다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타오르는 기대감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슈렌과 미시엘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고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눈물을 쓰윽 닦는 셀리나. “하하, 역시 이곳에 오길 잘한 거 같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거 같던 사람이 눈물을 바가지로 쏟다니.” “뭐라고요?” 진의 농담에 짐짓 화를 내는 그녀였으나 그녀의 입가에 걸려 있는 것은 분 명 미소였다. “캬오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기자 골룸은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괴성을 질렀다. 그것이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호오, 아직도 안 죽었네? 으음, 그래. 내 오늘,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뭐, 별로 가슴에 와 닿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진의 몸은 골룸의 눈앞에 있었다. “일단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 싶으면 그의 시각을 뺏어라!”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골룸의 커다란 눈 두개가 터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진의 음성. “두 번째, 회심의 기술은 최적의 기회가 아닐 때면 사용하지 마라. 뭐, 이건 보여줄 수 없을 거 같긴 하다마는. 쩝!” 진은 팔이 없어 몸을 흔들어 그 반동으로 머리로 공격하는 골룸의 공격을 공중에서 피하며 말했다. 그러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진 그는 이제 그만 끝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라!” 펑!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골룸의 커다란 머리가 터졌다. 순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 끝에 허연 뇌수가 잠시간 둥둥 떠 있었다. 쿵! 콰지직! 투두툭툭! 골룸의 무게가 상상을 불허하는지라 그의 몸이 바닥과 충돌하는 순간 땅 이 쩌억 갈라졌다. 그리고 분홍색 살점들과 피들이 쓰러진 그의 몸 위로 떨어졌다. 이에 ‘휘이’하며 놀란 표정을 짓는 진이었다. 한편 천부장 다섯은 이 자리에 진이 나타났다는 사실도 놀랐지만 대형 몬스터를 아이 다루듯 대하는 모습에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셀리나는 곧 죽어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낮게 투덜거렸다. 그녀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그래 봐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귀에는 모조리 들어갔지만. “흥, 그래도 악마 보다는 약해!” 잠깐씩 귀여운 셀리나였다. 올슈레이 기사단은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몬스터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리고 열 하루째 되는 오늘, 37개의 검 무덤 앞에 정렬해 있었다. “동료 37명의 검을 타클라마가니아 산맥에 묻었다.” 평소 그답지 않게 진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닫는 진. 그는 하염없이 37개의 검 무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희들은 올슈레이 기사단이다. 비록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잊는다 할지라도 내 마음속의 명단에는 너희들의 이름이 올려져 있다.’ 진은 그들 하나하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올슈레이 기사단의 눈은 앞에 서 있는 진의 발아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흘린 눈물로 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올슈레이 기사단이었다. “으음…….” 올슈레이 기사단 37명과의 대화가 끝낸 진은 고개를 드려다 그의 감각을 두들기는 기운들에 흠칫했다. ‘남하하고 있다. 그 수가 적어도 삼만! 그 살기가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음, 일단 확인부터 해봐야겠다.’ 생각을 정리한 진은 몸을 틀어 힘찬 음성으로 말했다. “약 100여 수키르 떨어진 곳에서 엄청난 수의 대군이 남하하고 있다.”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 역시 뭔가를 짐작한 표정으로 진을 보고 있었다. 그때, 슈렌이 진을 향해 말했다. “대장님 우리 제국인들은 손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씩 웃는 슈렌을 보며 진 역시 씩 웃어주었다. “그럼, 손님을 마중하러 가볼까?” “옛!” 그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올슈레이 기사단이었다. 180화. 소 뒷걸음에 쥐 잡는 격. 2 척! “모두 제자리에!” 갑자기 손을 들고 긴장된 음성으로 외친 바블뤼시의 시선은 동쪽을 향해 있었다. “단장님, 무슨 일이라도?” 주르단 기사단의 부단장인 아놀드가 그의 옆에 다가와서 물었다. 허나 바블뤼시의 두터운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두 눈은 시간이 갈수록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 온다. 모두 전투 진형으로!” 갑작스런 말에 아주 잠시 웅성거렸지만 그들은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맨 앞 열에는 창수들이 이열에는 궁수들이 삼열은 마법사들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 순식간에 진형을 만든 그들을 일변한 바블뤼시는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분진!” 다다다다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촘촘히 붙어 있던 각 분대들이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으음, 이걸로 될까?” 바블뤼시는 자신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평소 그를 존경하던 아놀드 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도대체 어떤 적이 길래, 단장님께서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우리는 주르단 왕국의 11대 기사단 모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누가 우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제국의 3대 기사단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블뤼시는 오십 줄에 든 아놀드의 열띤 웅변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허나 그 웃음도 자신의 감각을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게 만드는 존재 때문에 소리 없이 사라져야 했다. “자네에게는 뭔가가 감지되지 않나?”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한 표정의 아놀드를 본 바블뤼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나에게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몇 개 짐작 가는 바가 없진 않았으나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라 섣불리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후웁! 우리의 걸음을 멈춘 고인은 그만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말했던 바블뤼시였다. 그런데 한 사내가 허공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그. 그는 바로 진이었다. 진과 올슈레이 기사단은 몇 시간 전 쯤에 이름 모를 숲에 도착하여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숲과 수 수키르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주르단 왕국! 진은 그들의 갑옷에 그려져 있는 문장을 보았던 것이다. 이는 린의 공로인데 하기 싫다는 제국 정세에 관한 공부를 그가 시켰던 것이다. 어찌됐든 잠시 놀랐던 진은 그들의 목적을 상기하며 홀로 적진을 향해 뛰 어들었다. 진은 린에게 배웠던 고니아의 은신의 기법을 사용하여 그들 근처에 있었 다. 그리고 다른 자들에게 가는 기운은 모두 차단하고 단장으로 보이는 바블뤼시에게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 이유인 즉, 그가 가장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 동맹 삼국의 일좌를 주르단 왕국이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른 두 왕국은 그랜드 마스터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일좌를 양보할 수밖에.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는데 제국에서는 주변 왕국에 그랜드 마스터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하기야 한 쟈크 대륙에 수십이 넘는 그랜드 마스터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몰랐던 그들이었으니깐. 뭐, 그들 태반이 진중선과 북궁신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어쨌든 외국 정세에 둔감한 제국이었다. 진은 이런 사실에 혀를 찼다. 그때였다. 그를 부르는 바블뤼시의 음성이 들렸다. 이에 옳거니 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진이었다. 절제된 동작과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간 진은 약 3 라키르 정도 떨어진 곳에 우뚝 멈춰서며 그를 보았다. 바블뤼시는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벼락에 맞은 듯 온 몸을 떨었다. 처음 그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젊은 모습에 무시하는 마음과 긴장했던 자신을 자책했던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자신의 감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하기야 이 대군 앞에 홀로 모습을 드러내는 배짱은 엄청난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내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그의 눈을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린 바블뤼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귀, 귀하는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겁니까?” “돌아가라!” 단 한 마디였다. 허나 그 말의 속뜻을 모를 만큼 우둔한 바블뤼시가 아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제국이었다. “으음,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자가 반말을 하는데도 바블뤼시는 끝끝내 상대를 존대했다. 이는 무인으로서의 그의 자세가 얼마나 곧은 지를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나이를 떠나 높은 경지를 존경할 수 있는 마음. 시기나 질투 어린 마음은 조금도 없고 오로지 부러움과 열망으로 가득 찬 눈빛. 이것은 아 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도 그것을 알기에 그에게 짐짓 무뚝뚝하게 대하면서도 그가 돌아가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손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이라도 삼 만이라는 정예병은 솔직히 부담되었다. 허나 부담은 될 지언 정, 패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손에 무고한 피를 묻히기 싫었을 뿐이다. “돌아가라.” 이번에는 좀 더 기운을 돋워 말했다. 이에 바블뤼시의 눈이 잠시간 흔들렸다. 허나 그는 왕의 성은을 입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어쩔 수 없지.”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그 순간 바블뤼시는 그의 모습을 놓쳤다. “으윽!” “허억!” “크윽!” 어느새 진은 그들 안으로 뛰어들어 하나씩 쓰러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 치 수백 명의 진이 기사들을 상대하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진의 몸놀림은 경이적이었다. 이에 놀란 바블뤼시가 그를 쫓으려 했으나 진은 그를 피하며 기사들을 쓰러뜨렸다. 그와 함께 환상인 듯, 수백의 진이 그들 사위를 종횡 무진했다. 사방에서 검이 찔러 들어온다. 공간이 좁아 휘두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은 자신 있었다. 그들의 검끝은 무쇠라도 뚫을 수 있기에. 탕탕탕탕탕! 철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터졌다. 검을 떨어뜨린 기사들은 손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허나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진에게는 이 상황이 기회 이상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퍽퍽퍽퍽퍽퍽퍽…! 한 사람 당 한대씩, 짚단처럼 무너지는 기사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현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쓰러지자 어느 정도 공간이 생겼다. 그와 함께 그들 뒤에 있던 기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에너지 소드를 날렸다. 훙훙훙훙! 진의 손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마자세로 대지를 굳게 밟고 있던 다리 가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수십 명의 기사들이 혼신을 다한 에너지 소드가 진의 손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웅웅웅웅! 파지직파지직! 수십 명의 기운이 진의 손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점이 되었다 싶은 순간 진의 양 손이 펼쳐졌다. “타핫!” 기합과 함께 날아간 기운은 쇄도해오던 바블뤼시에게로 향했다. 바블뤼시는 그 기운이 비록 대단하다고는 하나 자신이 못 막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쾅! 바블뤼시의 손에서 뻗어져간 기운과 충돌하는 순간 기사들의 기운 속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튀어나와 바블뤼시의 기운을 와해시켰다. 바로 진의 고니아가 그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크흑! 이, 이게 뭐지?” 쾅! 깜짝 놀란 바블뤼시는 다시 한번 기운을 쏟아내서야 고아아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 이상의 피해였다. “힐링!” 그의 입가에 피가 맺혀 있자 놀란 마법사 다섯이 그에게 힐링을 걸었다. 바블뤼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려다 진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의 힐링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도 주르단 왕국의 3만 정예병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제기랄! 한 대라도 맞아라!” 악을 쓰며 창을 찌른 기사는 자신의 창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자 경악했다. 그리고 틀어진 방향 끝에 동료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비명을 지른 그는 뻗었던 창을 급히 회수했다. 그 순간 ‘퍽!’하는 울림이 복부에서 터져 나오며 그는 의식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와 함께 그의 동료도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끝이 없구나.” 진은 잠시 한숨을 돌리며 염두를 굴렸다.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구나. 이들 하나하나가 우리 올슈레이기 기사단에 뒤지지 않으니. 더구나 중간 중간에 꽤 강한 자들이 있어 정말 쉽지 않을 거 같구나.’ 진은 얼마 전, 마스터 급의 고수가 자신을 향해 덤벼와 애를 먹어야 했다. 큰 기술 한방이면 쉽게 처리할 수 있었으나 그럴 수도 없어 꽤나 고생해야 했던 것이다. 그 당시 그와 함께 덤빈 자들은 에너지 소드도 못 뽑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고심에 빠져있을 때, 마스터 급의 고수로 보이는 기운을 가진 고수 다섯이 그를 둘러쌓다. 잠깐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포위당해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그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다섯 고수를 빼놓고는. “흐음, 불행 중 다행인가?” 고개를 끄덕인 진이 드래고니아를 소환해 허공에다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벽화에 있던 검법이었다. 진은 순식간에 열두 개의 원을 그려냈다. 열두 개의 원은 하나의 구가 되고, 그것은 곧 다섯 개의 원으로 나뉘어졌다가 사라졌다. 쾅! “크흑!” “커헉!” 주르단 왕국의 기사단장들인 그들은 검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쓰러졌 다. 그리고 낮게 웃음을 터트리는 진. “후후후, 루카스 녀석 제법이군.” 진이 그들의 움직임을 둔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력의 술을 루카스가 건 것이었다. 이에 평소 신경 쓰지 않았던 루카스가 색다르게 보이는 진이었다. [별 말씀을.] 가슴을 울리는 루카스의 음성에 낭랑한 웃음을 터트린 진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으으윽!” “커헉!” “끄르륵!” 한번 기세가 오른 진은 루카스를 적절히 이용하여 전보다 쉽게 기사들을 상대해 나갔다. 진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는 마법사로 따진다면 마스터에 육박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펼치는 중력의 술이 허투루 받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할 리 없었다. 게다가 지금도 마나는 자신의 심장에다 차곡차곡 저장되니, 반인반령의 무한한 공능은 진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또 다른 힘을 주고 있었다. “물러서라!” 바블뤼시는 내상이 모두 치료되었다는 마법사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외쳤다. 그리고 그의 명에 따라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기사들. 순간 진은 재미가 없어졌다. ‘칫, 흥이 깨져버렸군. 이제 좀 일대 다수와의 전투의 이치를 깨닫는 가 했더니.’ 진은 그들과의 전투로 인해 ‘큰 기술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싸움하는 틈틈이 체력을 비축하고 어떻게 하면 전투를 하면서도 기를 좀 더 빨리 채울 수 있는 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한 때에 바블뤼시의 후퇴 명령은 그를 짜증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블뤼시는 진도 손을 멈추고 자신을 보고 있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명령을 내렸을 때, 진이 그들의 뒤를 쳤다면 또 다시 난전으로 빠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아, 단 한 사람에게 전력의 3분의 1일 쓰러졌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니. 후우, 그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후후.’ 바블뤼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리고 그것은 묘한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만 피하고 나와 정정당당히 일대 일 대결을 벌입시다.” ‘흥, 처음부터 그 말을 하지 그랬어?’ 진의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느끼지 못했을 리 없는 바블뤼시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험험, 당신은 내가 올라가본 적도 없는 경지에 오른 무인이요. 그러니 조금 힘을 뺀 것 정도로 결투를 피하지 않을 것으로 믿소.” “싫은데! 내일 또 올 테니 그리 알아!”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진의 모습은 그 자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멍한 표정으로 기절해 쓰러져 있는 기사들과 진이 있었던 자리를 쳐다보는 바블뤼시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사람은 종종 현실을 회피하기도 한다. 181화. 소 뒷걸질에 쥐 잡는 격. 3 그날 밤, 주르단 왕국의 고수들이란 고수들의 두 팔이 부러졌다. 이에 백여 명의 마법사들이 쉴 새 없이 힐링을 난발해 결국 마법사들은 탈진해 쓰러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러진 팔은 전투를 벌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다음날 아침, 일단의 무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약속한 대로 왔다. 오늘은 내 부하들도 같이 왔으니 신나게 어우러져 보자구.”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진을 보며 바블뤼시 및 기사단 수뇌부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허나 진은 그들의 불편한 심기는 싹 무시하고 올슈레이 기사단을 향해 말했다. “어제 말한 대로 살인은 하지 마라. 내 말을 무시하는 자 그 결과는 책임 못 진다.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올슈레이 기사단은 그의 말에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그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바블뤼시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차라리 그가 말했던 대로 회군했어야 했는가?’ 그의 상념은 얼마 가지 못했다.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올슈레이 기사단의 모습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좋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가자!” ‘두 팔이 부러졌으나 두 다리는 살아 있으니 싸울 수는 있다. 이왕 시작한 거 무인답게 장렬히 전사하자!’ 내심으로 한 다짐을 주르단 왕국의 수뇌부들도 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올슈레이 기사단을 맞아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어느새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진이 서 있었다. “허억!” 퍼퍼퍽퍽퍽! 섬광이 터진다 싶은 순간 바블뤼시는 별을 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진의 몸이 뚜렷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크헉!” 십여 명의 고수들은 눈 몇 번 깜짝일 짧은 순간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이에 두 손을 탁탁 털며 난전으로 변해버린 전장을 주시하는 진이었다. “자! 수련의 결과를 한번 볼까?” 느긋한 그의 음성과는 달리 전장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야앗!” 호들갑스런 기합은 486부대 쪽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실력은 이전의 그들과는 달랐다. 눈에 띄게 빨라진 몸놀림과 적절한 힘의 운용, 진법의 효용을 최대한 살려 그들의 그물망에 상대를 집어넣는 등 486부대는 탈태환골 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의 눈에는 여전히 미진한 구석이 보였다. “힘으로 상대하지 마라. 너희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 잊어먹지 마 라!” 올슈레이 기사단은 치열한 전투를 치루는 가운데서도 진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오는 것이 신기했다. 허나 놀라지는 않았다. 이 정도가지고 놀란다면 그들은 애시 당초 진을 ‘악마 같은 존재’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진의 한 마디에 올슈레이 기사단의 움직임이 변했다. 에너지 소드가 날카로운 이빨로 그들을 공격하려하면 슬쩍 뒤로 물러서고 옆에 있는 동료가 검을 찔러 넣어 상대의 검이 살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힘에서 앞서는 그들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전투를 벌일 때만 해도 삼만 대 오천의 대결이었다. 허나 시간이 갈 수록 주르단 왕국의 전력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제의 전투로 인해 부상자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올슈레이 기사단은 전투를 치르면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실 력이 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늘었을 줄이야. 최소 두 배는 강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허나 그들의 힘이 그렇게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빨라졌으며 기본에 충실해져 허식을 버렸기에 전투력이 높아졌을 뿐이었다. 물론 진과의 대련을 통해 눈이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만. 처음 진은 그들을 보았을 때, 너무도 놀랐었다. 그들의 검술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들의 검술이 단순히 춤사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긴 했지만 대다수가 폼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에 진은 그들에게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그 결과 허식에 빠져 있던 그들의 나쁜 습관이 어느 정도 고쳐진 것이다. 진의 말이 있었다고는 해도 목숨을 걸고 싸우다 보니 올슈레이 기사단은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죽여야 할 때가 있었다. 사실 상대는 자신들의 목을 원하고 자신들은 상대를 죽이지 않는 다는 것이 불만스럽기는 했으나 진의 말이라서 따랐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전쟁이 주는 광기가 그들을 서서히 미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진은 그들의 검에서 살기가 짙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대경한 진이 모든 기운을 북돋아 외쳤다. “모두 그만!” 대기가 쩌렁쩌렁하게 울렸지만 모두는 살인의 광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피 맛을 본 그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으으으, 백호천광무!” 진은 너무도 분노해 모든 기운을 개방해 백호천광무를 시전 했다. 그리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백호가 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순간 올슈레이 기사단도, 주르단 왕국 측도 두려움에 떨며 검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살인에 미친 너희들을 내 모두 죽여 버리겠다.” 진의 음성은 분노로 인해 상당히 격해져 있었다. 이에 백호천광무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던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였다. 셀리나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진에게 말했다. “흥, 툭하면 그 백호를 불러내는데, 그러면 우리가 두려워 할 줄 알았어요?” 순간 진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대소를 터트리던 진이 돌연 웃음을 멈추고 검을 휘둘렀다. 이에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던 셀리나도 두 눈을 감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허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호는 광풍과 함께 승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흠, 주르단 왕국의 기사들은 들으라! 나 올슈레이 진은 너희들과의 싸 움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제국 역시 너희와의 싸움을 원치 않는다. 카리아 왕국과 만트 왕국의 일은 나 역시 애석하게 생각하는 바다. 허나 그것은 미친 황제와 네 명의 공작이 저지른 과오다. 나를 비롯한 우리 올슈레이 기사단은 이번에 즉위하신 황제 폐하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가서 전하라!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 황제 폐하는 주르단 왕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신다고!” 진의 장광설에 기사들의 시선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바블뤼시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은 바블뤼시는 대세의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으음, 일단은 물러나겠소. 허나 제국이 우리의 우방이라는 것은 믿지 못하겠소.” “지금 너희들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한가?” 싸늘한 진의 말에 바블뤼시 및 주르단 왕국의 기사들이 몸을 떨었다. 그의 말투로 미루어보아 지금에라도 그들을 몰살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알겠소. 우선은 돌아가 당신의 말대로 아뢰겠소.” 그렇게 그들은 떠나갔다. 그리고 떠나는 그들을 보던 진은 어느새 다가온 셀리나의 시선을 느끼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번만 더 그 호랑이 새끼로 겁 줘 봐요, 가만있지 않을 테니.” 4업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호천광무의 가치가 하락하는 순간이었다. '자고 나니 유명해져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감하는 진과 올슈레이 기사단이었다. 누구에게서부터 소문이 났는지도 몰라도, 진과 올 슈레이 기사단은 일약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그들이 레우카스 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뇌부들 및 모든 병사들의 귀에 들어갔다. 과연 발보다 빠른 소문이었다. “허허허, 진이가 대단한 일을 해냈으니 짐이 후한 상을 내려야겠구나, 허허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데이릭의 말에 린이 감읍했다. 이런 린의 모습을 보며 데이릭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진이가 너를 짐 곁에 붙여줘서 큰 도움이 되었단다. 짐은 너에게 도 후한 상을 내리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허허허, 그래그래. 안 그래도 바쁠 터인데 이제 그만 일을 보도록 하거라.” 데이릭의 축객령에 린이 인사를 하며 뒷걸음질로 대전을 물러났다. 밖으로 나온 린은 이번에 자신의 밑으로 배치된 부관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여기에서 자신을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묻자 부관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도 가슴이 찔끔해졌다. 그러나 자신은 그저 보고를 올리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라는 것을 상기하며 열리지 않는 입을 열었다. “두 분이 부대장님을 뵙길 청합니다.” “흐음, 또 여자이던가?” 린은 그동안 성에 있는 여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방문 하는 것 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허나 그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린이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린은 수많은 여성들의 애정 공세 때문에 꽤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자신에게는 소소만 있기에 다른 여성들의 뜨거운 눈길은 부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분은 여성분이긴 한데, 그 얼굴이… 좀…, 하여튼 그렇습니다.” “으음, 혹시 두 사람의 관계가 남매로 보이지 않던가?” 린은 전에 한 여인이 오빠를 데리고 와, 그를 협박했던 기억이 떠올라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생각이 빗나간 듯 했다. “그런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 맞다. 그 여인이 부대장님께 이 말을 하시면 아실 거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 말인가?” “드래고니아!” 부관의 말을 듣는 순간 린의 몸은 대기실을 향해 나는 듯이 달리고 있었다. ================================================================ 간만에 일찍 일어나, 아침부터 지금까지 글만 쓰고 있었네요. ㅎㅎㅎ 이제 점심을 먹어야죠. 에공... 어제 14시간이나 잤는데 왜 이리 잠이 오는지.. 182화. 판도라의 상자. 1 애드윈 더 안젤리나의 하루의 일과 중 빠뜨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과는 다름 아닌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가는 것이다. 오늘도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 온 안젤리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니터는 그녀가 원하는 화면을 비쳐주지 않았다. “하아, 정말 심심하구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안젤리나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이에 그녀 뒤에 조용히 시립해 있던 벌핀치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안젤리나의 한숨소리가 또 다시 들렸다. “휴우… 그 망할 놈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냐?” 벌핀치는 그녀가 말한 ‘그 망할 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미 약속을 지켰음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녀에게 이 사실을 말해줄 순 없었다. 오랜 시간 그녀를 지켜본 결과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할지 알기에. 한숨만 쉬던 안젤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함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금발이 물결이 일렁이듯 움직였다. 안젤리나의 고운 자태에 벌핀치는 눈이 어지러워졌다. 매번 보는 모습이지만 딸 같은 나이의 그녀이지만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던 벌핀치는 그녀의 등이 저만치서 보이자 서둘러 그녀 뒤를 따라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의 당당했던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것에 괜스레 마음이 아파졌다. 이에 또 다시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그 녀석의 소식은 아직 없겠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는 그녀의 음성에는 힘이 없었다. 이에 대답할 말이 언뜻 떠오르지 않은 벌핀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안젤리나의 등을 말없이 보며 걷고 있던 벌핀치의 눈이 단호한 빛을 띠었다. “레우카스 성에 있습니다.” “…… 뭐라고요?” 처음 대수롭지 않게 그의 말을 듣던 안젤리나는 혹시나 하며 뒤돌아서며 되물었다. 그리고 애타는 듯한 눈으로 그의 눈을 보았다. “레우카스 성에 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게 된 안젤리나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군요.” 이번에도 핀트가 어긋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었다. 올슈레이 기사단과 함께 레우카스 성으로 돌아온 진은 뜻밖의 손님을 맞 았다. “스테판이라 하오.” “아르미라고 해요.” 린과 함께 있던 두 남녀가 그에게 대뜸 자신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에 엉겁결에 인사를 하는 진이었다. “진이라 합니다.” “호호호, 알고 있어요. 올슈레이 진, 요즘 제국을 들썩이는 이름을 그 누 가 모르겠어요?” 아르미의 칭찬에 진은 민망해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다 방금 전, 소개했 던 거한의 눈빛이 어딘가 본 듯 하여 다시 한번 그를 올려다봤다. 스테판의 키가 자그마치 2 라키르 20키르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흐흐흐, 아직도 기억이 안나나?” “으음, 우리가 구면인가요? 눈빛이 낯설지는 않은데, 기억이 음…….” 진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다 방금 전에 들었던 그의 이름이 생각났다. “아! 스테판! 파요르 마을의 대장이었던 스테판이구나. 물론 나한테 져서 마을에서 도망치고 나중에 내가 없을 때 와서 우리 애들 겁주고 간 그놈이구나!” 진은 그가 누구인줄 알자 반가움을 가장한 빈정댐으로 그를 놀렸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스테판은 금세 얼굴이 벌게져 진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린이 나타나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쾅! 가볍게 때린 듯 했으나 그 힘에 밀린 스테판은 방 끝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이에 놀란 진이 커다랗게 터진 눈으로 린을 가리키며 입을 뻐끔거렸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허나 우리는 위계질서가 철저해야 합니다. 사 실 형님께서 안 계실 때, 그들과 서열을 가리기 위해 대결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스테판이 막내고, 아미르과 세 번째, 그리고 제가 두 번째가 되었습니다.” 진은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표정으로 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스테판이 비실비실 대며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씩 웃었다. “전에 나만 보면 터트린 나무처럼 만들어 줄 거라더니 아직 멀었구나?” “네 놈이!” “스테판! 그만 해라!” “끄응…….” 불 같이 화를 내려던 스테판은 린의 말에 신음 비슷한 것을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린만 없었다면 하는 생각을 수십 번 했지만 이미 승복한 자의 말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런 사정을 명시한 뒤에 한 승부였기에 스테판은 비록 억울할 지언 정,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스테판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싸움이 끝난 뒤, 린이 자신과 아미르에게 해준 말을 깡그리 잊어 먹은 스테판이었다. “내가 린 형님에게는 졌다 하지만 저 녀석과는 붙어보지도 않았지 않습니 까? 그런데 승복하란 말은 너무도 억울한 처사입니다.” 스테판의 울분이 섞인 말에 린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행동을 어째서 기를 쓰고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휴우, 전에도 말했지만 형님은 나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강하시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저 녀석과 한 번 붙어봐야겠습니다.” 린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진을 인정치 않는 스테판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개방되는 기운. 고오오오! 허나 그의 기운은 한 사람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형님!” “괜찮다. 사실 나도 저 녀석과 한번쯤 붙어보고 싶었다. 참, 그런데 아미르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너도 나랑 붙고 싶냐?” 그의 말에 아미르가 교소를 터트리며 대답했다. “호호호, 아뇨. 저는 린 오라버니의 말을 믿어요. 그리고 진 오라버니의 기도를 보니 저 같은 건 상대도 되지 않을 거예요.” 기괴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음성은 참으로 고왔다. 이는 진 역시 했던 생각이지만 그는 하연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이를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외모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부정해서도 얽매여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그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아미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별반 반응 없는 진을 보며 ‘특이한 사람이 또 있네.’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과 같이 있는 세 남자가 외모에 특별히 구애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을 안 그녀였다. 이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 스테판은 진이 대결할 의사를 보이자 기가 살아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단 한번 공격하겠다. 그것을 막는 다면 내가 진 것으로 하지.” “흥! 대도 않는 말은 하지도 마라. 네가 공격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끝내 버릴 테니.” 오만한 진의 말에 스테판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런 스테판을 한손으로 제지한 진이 말했다. “일단 이번 공격을 막아 봐라.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니깐.” “오냐, 와라!” 스테판은 대답을 하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가만히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를 잡자 마치 철옹성을 대하는 듯했다. 이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진이었지만 결과가 변활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진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런데 스테판이 ‘어이쿠!’하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진은 손을 내린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는데 말이다. “이, 이게 무슨 사술이냐?” 가슴을 부여잡으며 일어난 스테판이 진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자신이 보 고 있는 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가 말한 진은 자신 앞에 있었다. “헉! 귀신이다!” 너무도 깜짝 놀라 살아 있는 진에게 귀신이라고 말한 스테판의 행동에 진이 씩 웃었다. “어쨌든 넌 진 거다. 나중에 내 실력을 확실히 볼 수 있을 때가 있을 거다.” 스테판에게 짤막히 말한 진은 린을 보며 말했다. “봤냐?” “희미했지만 보긴 봤습니다.” “쩝, 그동안 내 실력이 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너 역시 늘었나 보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아미르였다.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테판을 힐끔 보면서 린은 소리 없이 웃었다. “우리가 많은 말을 나누어봤자 4업의 실체를 모르는 이상 탁상공론일 뿐 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4업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를 대비해 힘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흥, 진… 형…님이나 린 형님은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나와 아미르 누님은 어떻게 합니까? 솔직히 아무리 수련을 한다 해도 그것에는 한계가 있 기 마련입니다.” 스테판의 말에 아미르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자신들 실력이 고니아의 힘 덕분에 마스터 초급에 육박한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했다. “맞아요. 솔직히 드래고니아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늘긴 했지만 또한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만 오라버니들의 실력에 가까워지려면 빨라도 몇 년은 족히 걸릴 거예요. 그것도 오라버니들이 잠깐씩 보여준 실력을 고려한 거니, 진신실력에 가까워지려면 십년 이상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4업은 그전에 터질 게 분명하잖아요.” 린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웃음 지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쁨을 느끼는 린이었다. “그 문제는 곧 해결될 거다. 형님!” 아미르에게서 시선을 돌린 린이 진을 보며 말했다. “천골에 가잔 말이냐?” 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고니아를 흡수하다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골에 있는 기운이 본래 드래고니아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드래고니아는 본래 하나의 드래고니아에서 분리된 것이라 합니다. 그 옛날, 드래고니아의 주인은 천골에 있는 모든 기운을 드래고니아에 담아 사용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가 벌인 일의 업이 바로 4업이고요.” “으음, 처음 듣는 이야기구나. 역시 고니아의 이해도는 네가 훨씬 뛰어나구나.” 사실 진은 그의 경험을 미루어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린은 고니아를 통해 그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이다. 더구나 그보다 더 많은 사실들을 고니아를 통해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이로 미루어 보아……. “네 말을 들어보니 알겠구나. 우리가 고니아를 흡수하는 양이 많아질수록 4업의 베일이 벗겨진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천골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한 반년도 다 되어가니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으음, 그렇구나. 내 폐하께 말하겠다.” 진의 대답에 린이 미소 지었다. 얼마 후면 소소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3화. 판도라의 상자. 2 화려하나 무거운 적막이 흐르는 방안, 중년의 두 부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두려운 눈으로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끼익! 짐짓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온 렌드린탈은 그들 부부가 두려움에 떨고 있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허둥대며 다가와 따스한 음성으로 그들 부부를 안심시키려 했다.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자제분이 바른 길로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두 분을 모셔온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 부부는 그의 말에도 굳은 안색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경계심 어린 눈으로 렌드린탈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다시 한번 그들을 달래보려는 렌드린탈. “듣자하니 자제분께서는 효성이 지극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모셔온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다른 뜻은 일체 없습니다.” 조금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의 말을 들으며 유리온과 아리오네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오히려 마음마저 편안해졌다. 대도 안하는 말을 지껄이는 그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으음, 오늘은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아드님과 두 분을 위한 길인지.”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는 다는 것을 느낀 렌드린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렌드린탈이 나가자 잔뜩 긴장했던 그들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려 몸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아~” 신음을 토하며 손으로 이마를 짚은 아리오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여보, 우리 어떻해요?” “…….”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물음에도 유리온은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 역시 너무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후우, 정말 모르겠소. 허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진이의 짐이 되 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답답한 한숨을 토해낸 유리온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아리오네도 눈물을 닦으며 짐짓 결연한 눈으로 말했다. 허나 아리오네의 눈을 보는 유리온은 그녀의 눈이 너무도 애처로워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맞아요. 우리가 비록 시골에 살고 있다 하나, 알건 다 알아요. 지금의 황제는 네 명의 공작의 꼭두각시일 뿐이에요. 그런 그들을 타파하기 위해 일어선 진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흐윽! 흑흑흑!” 말을 끝낸 그녀는 기어코 눈물을 터트렸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새어나오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안은 유리온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사실, 우리는 진이가 못 건너갈 강을 건넜다고 알았지 않았소? 그런 아들이 살아 돌아와 제국을 위해, 백성을 위해 검을 들고 있소. 우리는 진을 그렇게 가르쳤지 않았소? 의로운 일에 뜻을 굽히지 말라고. 이제 우리 그 마지막 가르침을 주도록 합시다.” 그의 말에 아리오네의 몸이 떨렸다. 그리고 그녀의 떨림은 고스란히 유리온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가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는 유리온의 귀에 아리오네의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해요. 우리 진을 위해 그렇게 해요.” 그날 두 부부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렌드린탈은 매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뭐라? 그가 그 녀석을 설득하겠다고 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유리온 부부를 감시하고 있던 기사의 대답에 렌드린탈은 하늘이 자신을 돕는 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가 잠시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여 좋던 기분이 잡쳤다. “이 경사스러운 날에 그 표정은 뭔가?”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 자가 한 가지 조건을 내건 것이 마음에 걸려서…….” “조건이라… 그래, 그가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가?” 렌드린탈은 이미 진이라는 괴물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그는 잠시 불길한 느낌을 받았던 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했습니다.” “흥, 그게 뭐 어때서 그런가? 원래 그럴 계획이었으니 다른 말은 하지 말게.” 렌드린탈은 기사의 공연한 말에 도리어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불긴한 예감은 단지 기우였다고 생각하는 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이…….” “됐네! 일단 그들에게 통보하고 떠날 채비나 하게.” 렌드린탈은 기사의 말을 자르며 손을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그의 말은 들어보나 마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읽은 기사는 뭔가를 말하려다 나오려던 말을 입 안으로 삼키며 방안을 나왔다. ‘뭔가를 결심한 자의 그것이었습니다.’ 만약 뒷말을 들었다면 렌드린탈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허나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일을 되돌리기에는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올슈레이 기사단을 훈련시키던 진은 헐레벌떡 달려온 칼바이츠를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불행히도 맞아 떨어져 진은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네의 부모님이 공작의 손에 잡히셨다네.” “…….” “지금, 아버님이 자네를 보기 위해 플라민 평야로 나오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네. 어찌 하겠는가?” 칼바이츠는 연민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진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주십시오.” “미안하네. 우리도 미처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네.” 그의 말에 칼바이츠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울러 그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연무장을 울리는 진의 광소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미 분노하다 못해 이성을 잃어버린 진이 자신의 모든 기운을 개방하여 장내에 있던 모두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어야 했다. 허나 아무도 진을 말릴 수 없었다. 그의 슬픔이 너무도 커, 감히 다가서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뚝! 진이 돌연 광소를 멈추었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칼바이츠를 응시했다. “미, 미안하네.” “…… 갑시다. 아버지를 뵈러!” 진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 짤막히 말한 뒤, 연무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린과 올슈레이 기사단이었다. ‘미안하네. 허나 자네와 폐하가 자초한 일이었다네.’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린 칼바이츠였다. “아, 아버지!” 못 본 새 조금 늙긴 했지만 그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인 유리온이었다. “지, 진아!”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순 없으나 다크 블루빛 머리칼만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려 안 그래도 보이지 않는 진이 흐릿하게 보였다. 쓰윽! 눈물을 손등으로 닦은 유리온은 어느새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진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때였다. 렌드린탈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린 것은. “부자상봉이 보기 좋긴 하나,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는 듯 합니다.” 그와 함께 그의 앞을 가로막는 기사들. 순간 진은 그들을 단번에 쳐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허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리온의 몸에 검을 겨누고 있는 그들이 신경 쓰여 그럴 수도 없었다. 그들은 바로 땅 아래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허나 유리온은 자신에게 죽음의 덫이 펼쳐져 있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기사들이 자신을 막고 있어도 그들을 밀치며 앞으로 다가가려했다. 챙! 그와 동시에 유리온은 차가운 검의 감촉을 느껴야 했다. “네 놈들이!” 순간 진이 분노하여 기운을 개방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박자 빨리 렌드린탈의 말이 이어졌다. “이러면 안 되지. 우리 중 단 한명이라도 다친다면 성 안에 계실 어머님의 생사는 장담 하지 못하네.” “크윽!” 그의 말에 신음을 토한 진은 금세 기운을 억눌렀다. 그러나 렌드린탈의 뼈와 살을 분쇄해버리고 싶은 분노는 억제하지 못해 그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하하, 우린 이런 말을 하러 온 게 아니라네. 오해 하지 말게. 단 한 가지! 자네가 우리 편에 투항만 하면 되네. 아! 정정하지. 자네와 함께 자네의 의제도 함께 투항하라는 것일세. 그러면 부모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걸세.” “뭐, 뭐라고?” 진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모님보다 데이릭들이 더 소중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자신에게 소중하다 해도 부모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케 해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었다. 적어도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렌드린탈은 진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자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유리온이 한 마디만 해주면 진과 린이라는 괴물들이 자신의 편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에 렌드린탈은 눈짓으로 유리온이 할 일을 가르쳐주었다.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한편, 유리온은 진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한편, 못난 녀석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것이 부정이 아닐까? 아무리 못났어도 잘나 보이고, 아무리 잘났어도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 지금 유리온은 진의 여린 마음이 못마땅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그래도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나 하는 욕심이 생기는 유리온이었다. “험험!”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유리온은 렌드린탈의 헛기침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짓는 유리온이었다. ‘이 불쌍한 사람아! 조금 후에도 그 얼굴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구나. 내가 그것을 볼 순 없겠지만.’ 속으로 혀를 쯧쯧 찬, 유리온은 따스한 음성으로 진을 불렀다. “진아!” “… 왜요, 아빠?” 진은 그도 모르게 예전 유리온이 불렀을 때처럼 대답했다. 이에 콧잔등이 시큼해지는 유리온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감상에 빠져있을 순 없었다. 먼저 가 있는 아내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진아, 아빠는 말이다. 네가 매일 싸움질을 하고 다녀도 속으론 자랑스러웠단다. 설혹 사람들이 너를 주먹 쓰는 패거리의 대장이라고 나쁘게 봤을 지라도 아빠는 자랑스러워했을 거란다. 왜 그런지 아니?” 진은 유리온의 말에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내저었다. 이에 잠시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는 유리온이었다. “후훗,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 아니? 예전 나에게 혼날 때 짓는 침울한 표정이란다. 험험, 어쨌든 말을 이어서 그때 아빠는 네가 무엇을 했든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싸움을 했든 무엇을 했든 집에 돌아온 너의 표정에는 비록 죄송스러워하는 기색은 있을지라도 자신이 한 일에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진 않았거든. 그리고 오늘… 너의 표정을 보니, 아빠는 자랑스러…….” “자, 잠깐!” 말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다급해진 렌드린탈이 말을 끊으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유리온의 뜻은 이미 진에게 전해진 뒤였기 때문이다. “후후후,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욘 없소.” 초연한 얼굴로 빈정대는 유리온을 보며 렌드린탈이 금세 얼굴을 고치며 코웃음을 쳤다. “흥, 너는 그리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네 자식 놈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거다.” 말을 하며 손을 높이 치켜들자 유리온의 목에 검을 대고 있던 기사가 더욱 검을 들이대 그의 목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래도 투항하지 않을 거냐?” 유리온을 잠시 일변한 렌드린탈이 진을 보며 말했다. 이에 진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유리온의 잔잔한 음성이 들렸다. 그런데 왜 이리 심장이 뛰는 걸까? 진은 알 수 없 는 불안감을 느꼈다. “진아, 네 엄마는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나보다 먼저 갔으니 말이다. 알겠 니? 진아, 오늘 가르쳐준 거 잊어먹지 말거라. 네 마음에 부끄럽지 않은…크흑, 행동은, 윽! 하…지… 말거라. 크흑!” “아버지!” 진은 그의 말에 눈물을 흘리다 자꾸만 조여 오는 검에 스스로 목을 들이민 유리온의 행동에 대경실색했다. 그리고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던 자들과 땅 밑에 있던 자들을 일격에 쳐 죽인 진이 목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유리온을 안아들었다. “아, 아빠! 정신 차려요. 죽으면 안돼요. 나, 나 두고 어, 엄마도 두고 어디 가요? 그리고 혀, 형은요. 아빠 가면 안돼요. 크흑!” “지, 진… 쿨럭!… 아!” “아, 아빠! 저 여기 있어요.” 두 눈을 감고 있던 유리온이 힘겹게 눈을 뜨며 말하자 진은 그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게 얼굴을 갖다대었다. 그러나 유리온의 음성은 그런 그를 아프게 했다. “진…아, 안 보이…쿨럭!…구나!” “저 여기 있잖아요! 왜 안 보인다는 거예요? 그동안 못 봤다고 지금 장난치는 거죠? 예? 말 좀 해보세요.” 진은 말을 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유리온의 몸에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흐음, 조금 낫구나. 진아, 이제 아빠는 엄마한테 갈 거야. 그러니 저들에게 발목 잡힐 필요가 없단다. 알겠지? 그리고 무고한 살생은 하지 마라. 나중에 네가 아빠, 엄마를 만났을 때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 안 되잖니? 그렇지?” “…예. 그럴게요.” “그래. 우리 진이 착하지? 이리 온…….” 유리온은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움직여 진을 안으려 했다. 이에 진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가슴에 안겼다. 그리고 느껴지는 유리온의 심장소리. 그것은 너무도 미약했고 곧 끊어질 듯했다. 두…근 두……근 두……. 유리온의 심장이 멈추고도 진은 그에게서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 죽었습니다. 이거 쓰면서 괜히 침울해지더군요. 뭐, 이 스토리를 짤 때부터 침울해지긴 했지만요. 에공... 기분이 상당히 다운되어 있습니다. 휴우... 아버지, 어머니... 평소에는 소중하다는 것을 못 느끼면서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떠오르고 생각이 나네요. 에공... 혹시 오해하실 까봐... 언급하지만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건강하게 살아계십니다. 괜한 오해 하실까봐... 음, 아마 2화 뒤, 퇴고작업을 할 거 같습니다. 2연참 후, 5권의 완료라고 할까요? 에공... 왜 이리 말이 꼬이지? 크흠, 하튼 그렇습니다. 제가 마감을 어긴 상태인지라... 삭제가 빨리 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빨리들 보세요. 못 보신 상태에서 삭제되어버리면 억울하잖아요~~ 삭제 공지는 공지 사항 란에 올리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좋은 하루되세요. 184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기 싫을 때 만남. 1 진이 그의 품을 떠난 것은 달이 지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였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묻는 린을 보며 진이 힘없이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린에게 붙들려 있는 렌드린탈에게 고정되었다. 고오오오! 바람도 불지 않는데 그의 장포와 머리칼이 허공으로 곤두섰다. 그리고 그가 서 있는 대지가 균열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그러다 유리온을 떠올린 진은 대경하며 기운을 급히 회수했다. “아, 아빠!” 진은 유리온이 걱정되어 뒤로 돌아 서둘러 다가갔다. 다행히도 유리온의 시신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쉰 진은 몸을 일으켜 렌드린탈에게 다가갔다. “제, 지불 쌀류쥬셉죠.” 이미 린에게 심하게 당했는지 입안이 터져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살고 싶다는 의지가 그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것이 진을 분노케 했다. 번쩍! “크아악!” 섬광이 이는 순간 렌드린탈의 오른팔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서부터 쏟아지는 피를 보며 진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놈은 고작 그 정도 고통 가지고 그렇게 괴로워하나? 나는 네 놈보다 수백, 수천 배 고통스럽다. 그러나 참고 있다. 왜 인지 알고 있나?” 렌드린탈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진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그의 모습이 너무도 역겨워 당장에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시신이 되어버린 유리온과 한 약속이 있기에 참았다. 그리고 렌드린탈은 일단은 살아있어야 했다. 유리온을 외롭게 만들 수 없기에. “네 놈을 당장에 죽이고 싶다마는… 오늘은 참겠다.” 렌드린탈에게서 시선을 돌린 진은 린을 보며 말했다. “나의 어머…니의 시신과 저 놈을 바꾸자고 해라!” “…… 알겠습니다.” 린은 의외의 명령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부복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행동에 장내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자신이 진과 같은 힘을 가졌고 진과 같은 상황에 빠졌다면 저렇게 참고 있지 만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진을 모욕하는 행위임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다. 다음 날, 진은 유리온과 아리오네를 커다란 관 안에 같이 눕혔다. 그리고 그 관을 등에 맨 진이 레우카스 성을 나섰다. “형님!” 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 때문이다. “형님!” 어느새 그의 앞을 막은 린이 진의 눈을 보았다. 허나 진의 눈은 린의 눈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왜 이러십니까? 형님답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린의 외침에도 진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힘없는 음성이 린의 고막을 울렸다. “지금의 내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기 싫다. 그것뿐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휴우,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떠나실 겁니까? 제국과 한 쟈크 대륙은요? 또한 4업은요?” “…….” 진은 그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맡은 막중한 임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에 부모를 잃은 사람이 자신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잣대로 한 인간의 고통을 평가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평가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미안하다.” 이 말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자신을 속이지도 기만하지도 않는 말은 오로지 이것뿐이기에. “제게 미안할 필요는 없습니다, 형님.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닙니다.” 린은 처음으로 진에게 크게 외쳤다. 그만큼 그의 감정이 격해져 있다는 말이다. 진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린에게 미안했다. 의제인 린을 이토록 괴롭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고 싶지도 않았고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린의 모습에 미안하기도 하면서 고맙기도 한 것이 아닌가? “크흑! 흑흑흑, 흑흑흑, 으아아악! 제기랄! 으아아악! 흐흑흑!” 결국 눈물을 터트린 진은 속의 울분을 참지 못해 고함을 질러댔다. 이를 지켜보는 린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두 사내가 얼마나 울었을까? 시뻘겋게 변한 눈을 쓰윽 닦으며 진이 말했다. “린아, 나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를 거야.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지 말고, 내가 죽어서 아버지 어머니를 보았을 때,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지 말라는 유언을 따를 거야. 허나 지금 내가 이곳에 있으면 난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지금은 비록 억누르고 있다지만 나도 억제하지 못해 무고한 자들까지 막 쓸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야. 너도 내가 그러는 건 원하지 않잖아? 그렇지?” 진은 린의 팔을 붙잡으며 호소했다. 더 이상 그를 비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했다. 오늘 아침, 에리필들에게 말할 때, 얼마나 미안했던가? 데이릭에게 말할 때는 얼마나 죄송스러웠던가? 그리고……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게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허나 그것들을 모두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겁자라는 오인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살인마라는 오명보다는 나으니깐! 이런 진의 마음을 느낀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바이사카 시!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있을 생각이야!”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진을 보며 린은 가슴이 아팠지만 애써 참았다. 슬픈 얼굴을 하면 진이 마음 아파 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도 짐짓 밝은 음성으로 그를 환송했다. 집으로 돌아온 진은 뒤뜰에다 유리온과 아리오네를 묻었다. 그리고 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그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부터, 진은 어디를 매일 갔다 오는지 고주망태가 다 되어 돌아와 두 봉분 앞에서 한참을 울다 잠이 들곤 했다. “에헤라, 디야~ 세상사리 머 있나? 모두 잊기 위해 살지~ 머 있나? 에헤라, 디야~ 세상사리 뭐 있나?” 오늘은 노래까지 부르며 뒤뜰로 가던 진은 거므스레한 뭔가가 봉분 앞에 있자 눈을 비비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으응? 누구셔요?" "……." 허나 음영에 묻힌 그림자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이에 술이 잔뜩 취한 진이 손가락을 휘저으며 말했다. “여긴 우리 집이야~ 나 잘 거니깐, 저리 가!” 이번에는 아까 전보다 발음이 명확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서 술도 잠시 깬 듯했다. 그러나 그림자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진의 걸음은 갈지자를 갈겨써도 보이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그렇다 보니 4 라키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1분여나 걸려서 도착한 진이었다. 그때였다. 진은 하늘에 있는 별이 아닌 눈앞에 존재하는 별을 보았다. 퍽! “어이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진을 보며 그림자가 실망한 음성으로 말했다. “흥, 이름만 얻었으면 뭐해? 여전히 겁쟁이인 주제에!” 그림자의 이름은 다름 아닌 애드윈 더 안젤리나였다. =============================================================== 이번화는 좀 짧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짜를 수밖에 없는지라...쿨럭...어쨌든 다음화, 즉 185화가 5권 마지막 화가 되는군요. 휴우, 근 며칠간 죽는 줄 알았습니다. 쿨럭~!!!! 185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기 싫을 때 만남.2 “음냐~” 쓰러진 채로 잠이 든 진을 잠시 내려다보던 안젤리나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자는 그의 모습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안젤리나는 무의식중에 가녀린 손을 뻗어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매만졌다. 순간 안젤리나는 자신의 행동에 얼굴이 벌게졌다. 허나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진을 보니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한참동안 진을 쳐다보던 안젤리나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을 보며 자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녀의 말에서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골이 깨질 듯한 고통에 신음을 토하며 일어난 진은 새근새근 거리는 숨소리에 의아해하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헉!” 너무도 놀라 신음을 토했지만 아직 술이 덜 깼다고 생각한 진은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봤다. “허억!” 다시 한번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이것은 술이 덜 깬 게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이 여자는 누구지? 어라? 낯이 많이 익은데…….’ 진은 그의 눈을 확 사로잡는 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얼굴이 매우 낯이 익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에 봤던 안젤리나의 얼굴을 진이 기억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 더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젤리나의 외모도 더욱더 성숙해져 그때의 풋풋함이 고고한 기품 안에 가려져 있었기에 진이 그녀를 알아 볼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으음…” 안젤리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자 진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자신이 왜 놀라야 하냐?’하는 생각을 하는 진이었다. 그때, 또 다시 머리가 쑤셔왔다. 그리고 속도 쓰려왔다. “으음, 술 먹을 때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이 숙취라는 것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구나!” 진은 이제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해장국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 저절로 터득한 자연스런 이치였다. 어찌됐든 진은 해장국을 끓이려 집안으로 들어가려했다. 그러다 정체 모를 그녀 즉, 안젤리나가 떠올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쩝, 이 여자가 누구든 간에 이렇게 두고 갈 수는 없지. 더구나 여긴 우리 집 뒤뜰이잖아.’ 마음을 먹은 진은 안젤리나의 팔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이, 이봐요!” “음?” 진이 가볍게 쳤는데도 안젤리나는 금세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놀라 엉덩방아까지 찍은 진은 앉은 상태로 기지개를 켜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으으으, 아~ 몸이 왜 이리 결리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풀던 안젤리나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진을 보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허억, 사람 여럿 죽일 미소다.’ 진은 그녀가 무엇을 원하든 간에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 무서움에 몸서리를 쳤다. 허나 이를 알리 없는 안젤리나는 무릎을 구부려 그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젠장, 하연이의 눈보다 더한 눈이 여기 있었잖아?’ 진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정도의 미녀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어서, 그것 도 왜 자신의 옆에서 잠을 잤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혹시, 나처럼 술에 취해 집을 잘못 찾은 건가?’ 생각이 들자 진의 코가 벌름벌름 거렸다. 술 냄새를 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안젤리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너 변태야? 그렇게 안 봤는데, 가지가지로 나를 실망시키는 구나.” 안젤리나의 말에 진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변태’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낯익었기 때문이다. 꿈에도 잊지 못할 그 목소리……. “캐슬 오브 마스터(catle of master)의?” “어라? 이제 알았어? 아, 맞다. 내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그러고 보니, 나는 너에 대해 아는데 넌 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게 같네. 아니 거의 없는 건가? 으음… 뭐, 지금부터 차차 알아나가면 될 테니, 지금은 간단히 내 이름만 소개할게. 난 애드윈 더 안젤리나라고 해.” 그렇게 그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진은 억지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눌러 앉은 안젤리나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네가 정신 차릴 때까지 같이 있을 테니깐. 그리 알아!” 허나 그녀는 그런 말과는 달리, 그가 술을 먹으러 나갈 때면 어김없이 따라가 그보다 많이 마시고 돌아왔다. 이에 진은 차츰 반 타의적으로 주량을 줄여나갔다. 이것이 안젤리나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실로 무서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진이 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 오늘은 내가 할 테니. 넌 들어가서 쉬어.” “아니!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도대체 어디 법도야? 난 그렇게 안 배웠으니깐 나를 몰상식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줘.” 말도 참 귀엽기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만……. 그녀가 만든 해장국 은 해장이 아닌 오장육부를 뒤집어엎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처음 멋모르고 후루룩 들이마셨던 진은 몇 번을 토했어도 그 독기에 오장육부가 제구실을 못했다. “으음… 오늘 이거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진이 해장국을 힐끔거리며 묻자 안젤리나가 헤헤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시골의 여느 촌부(村婦)와 분명 달랐다. 그녀들은 절대로 독약이나 다름없는 해장국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은 그녀의 반응에 낙담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국을 떠먹었다. 그리고 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다시 한번 국을 떠먹어 보았다. “우와! 이 해장국 정말 네가 끓인 거야?” “당연하지!” 진의 반응이 평소와 사뭇 달라 은근히 자신감이 붙은 안젤리나는 어깨까지 으쓱하며 내심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진의 한 마디에 그녀의 좋던 기분은 대번에 180도 변했다. “에이~ 옆집 아줌마한테 끓여달라고 한 거지?” “진 미워!” 목소리는 뾰족한 게 매우 귀여웠지만 그녀의 손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은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이었다. “허억! 미안, 미안!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쩝쩝! 우와~ 오늘 밥에는 돌 하나도 없어! 우와 생선의 비늘도 처리할 줄 알게 되었구나? 진짜 대단해~” 자세히 들어보면 분명 칭찬하는 말이 아닌데도 안젤리나는 그녀의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에 세세한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손은 쟁반을 진 쪽으로 옮겨놓고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허나 이를 바라보고 있는 진의 내심은 과연 어떠할까? ‘크흑, 새, 생선을? 흐음, 다음에는 꼭 내장은 빼내라고 해야겠군. 쩝!’ 속으론 투덜대면서도 맛있게 먹는 진이었다. 안젤리나는 진과 함께 있는 지금이 너무나 좋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마음속에서 키워온 진의 모습은 그녀가 생각했던 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하아~” 안젤리나는 이곳에 와서 웃음도 많아졌지만 한숨도 많아졌다. 멍한 모습으로 봉분을 바라보고 있는 진을 볼 때면 나오는 한숨이었다. 그리고 진 몰래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가 왜 저 녀석 때문에……,”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진이 아니라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진이 슬픔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랐다. 자신의 눈물 따위는 얼마든지 흘려도 좋았다. 허나 그의 아픔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이 안타까움을 도저히 견딜 수는 없었다. 그러다 그녀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왜 계속 기다리고만 있는 걸까?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를 나오면서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잖아? 그래, 이제는 기다리지 않겠어. 그의 슬픔을 내가 함께 해주겠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이런 다짐이 진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는 지금의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사막의 왕국 차칸타 왕국에서는 2만 5천의 정예병을 파병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쟈크 대륙과 제국의 경계령을 쭈욱 따라 올라가다 보면 황무지의 땅, 사막이 존재한다. 그러한 사막이 분명할진대, 어느 순간 모래가 갈라지며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그날은 달이 유난히 밝은 보름이었다. 거대한 성의 첨탑 위, 한 사내가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그의 머리칼은 달빛에 반사되어 누런 빛깔이 간간히 드러났지만 은빛의 고결함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크하하하하!”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갚은 듯,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던 사내의 눈에서 반짝이는 뭔가가 한 방울 떨어졌다. 그것은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던 달빛에 비쳐져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보였다. “다른 쪽 한 방울은 승리의 눈물로 사용될 것이다.” 돌연 웃음을 멈춘 사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감회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 놈은 내가 봉인을 풀었다는 사실을 모르리라!” 나직한 음성과는 달리 그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봉인이 풀렸다면 세 상은 피로 찢겨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 후아, 결국 5권이 끝났습니다. 에공... 슬슬 배가 고파지네요~~ㅎㅎㅎ 삭제 공지는 출판 일정에 맞춰서 올리겠습니다. 어찌됐든 빨리 바주세요~ㅎㅎㅎ 186화. 마신 리오스. 1. [6권 시작] 쏴아아! 지옥의 하늘은 평소와 달리 억수같이 퍼붓는 비로 인해 조금은 옅어져 있었다. 조금만 들이켜도 현기증 나는 마기도 시원스런 비에 녹아 대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콰콰쾅! 천지가 굉음을 토하고 선명한 황금빛 선이 일그러진 공간 사이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두 눈을 감고 편안한 모습으로 명상에 잠겨 있는 리오스는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서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는 에쉬리온 역시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꺄우욱!” 천지가 진동하는 가운데 가늘지만 힘 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굳게 닫힌 리오스의 눈이 떠졌다. 번쩍! 리오스의 눈에서 천지를 지배할 듯한 거력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미친 듯이 포효하던 하늘도 억수같이 퍼붓던 비도 주춤했다. 리오스는 잠시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와 함께 잠시간 멈칫했던 비가 역류하여 하늘로 올라갔고 천지는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비에 의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리오스는 이 모든 변화에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에 놀라 역행하는 자연을 보면서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에쉬리온.” 잔잔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리오스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의 발에 얼굴을 비벼대는 에쉬리온. 이에 잔뜩 무게를 잡고 있던 리오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가볼까?”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에쉬리온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전 주인의 기억과 그 이상의 힘을 가진 리오스가 무엇을 할지 이미 짐작하고 있던 에쉬리온이었던 것이다. “꺄우우!” 짧게 포효한 에쉬리온은 천천히 걸음을 떼는 리오스를 따라갔다. 드드드! 지옥의 내성, 그 중에서도 가장 심처인 곳의 문이 열리는 소리다. 그리고 대전 안으로 들어가는 리오스와 에쉬리온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성의 주인이자, 이곳의 유일한 마신인 르프미아가 정중한 음성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는 리오스와 그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 올라 고개를 파묻는 에쉬리온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마신이 된 유일한 존재여!” 리오스는 르프미아의 말에 잠시간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악마들의 왕인 마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달가울 리 없었던 것이다. 허나 이미 자신은 마신이 되었고 그것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도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인상을 찡그리는 것으로 그 불쾌함을 달랠 뿐이었다. “나는 리오스다.” “알겠습니다. 알타오 리오스여.” 공손한 태도로 말을 하는 르프미아는 내심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의 마기를 흡수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강해져 악마들의 왕인 마신이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이렇게 강대한 존재일지는 몰랐다. 마신에게도 분명 등급이 나뉘어져 있었다. 자신이 미틀란이라는 가장 낮은 단계에 있다면 리오스는 다섯 등급 중 세 번째인 알타오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르프미아의 태도가 공손할 수밖에. 이런 세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리오스는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 보다 약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기를 흡수하면서 변한 성격에 의해 약자에게 오만하게 변해 버린 리오스였기에 그의 존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 가지 묻겠다.” “말씀하십시오. 알타오 리오스여.” “내가 이곳 지옥으로 떨어진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 그의 말에 르프미아는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두 가지 대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르프미아의 내심은 알리 없는 리오스는 그를 채근했다. “말을 하라.” “으음, 우리 지옥의 시간으로는 삼만 수아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삼십만 년이 좀 넘게 흘렀습니다.” “뭐라? 삼십 만년이라고?” 리오스는 그의 말에 경악했다. 삼십만 년이라니! 자신은 찰나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삼십만 년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익히 알고 있는 리오스였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 었다. “으음… 그렇다면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가봐야 소용없는 일이겠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리오스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했다. 대전은 위가 뻥 뚫린 구조라 지옥의 하늘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리오스는 먼 하늘을 보며 자신이 살던 곳을 바라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리오스를 보며 르프미아는 염두를 굴렸다. ‘한 지옥에 마신은 한 명이면 족하다. 그리고 필시 이곳에 남겨질 자는 알 타오 리오스다. 허나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르프미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알타오 리오스여.” 이렇게 말을 연 르프미아는 리오스가 반색을 하며 관심을 보이자 입가에 품었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창조신 루미에가 창조한 우주를 관통하는 시간의 문이 있습니다. 그 시간의 문 안으로 들어 갈 수만 있다면 원하시는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 다. 알타오 리오스여.” “그 말이 정말인가?” “마신 미틀란 르프미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허나 시간의 문을 이용하는 데는 한 가지 전제가 붙습니다.” “그게 무언가?” 리오스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몰랐다면 단순히 체념하며 한동안 괴로워하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방법을 알고 있으니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시간의 문은 무한계의 권한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무한계의 허락 없이는 시간의 문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그 전제라는 것만 말하라.” 마신 알타오 답지 않게 급한 기색을 보이는 리오스를 보며 르프미아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무한계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알타오 리오스여. 그대가 시간의 문을 이용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 순간이 그대가 느낄 수 있는 마지막 행복일 것이다.’ 생각은 이렇게 했으나, 그의 입은 리오스의 물음에 친절히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 전제인 즉, 시간의 문의 수문장과 대결을 하여 이긴 자만이 시간의 문을 이용할 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 무한계라는 곳은 어디 있는가?” 리오스는 비록 알타오 리오스라는 마신이 되었지만 우주의 법칙을 알지 못했다. 아니, 이미 그의 사고는 우주의 한 영역이 되었지만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리오스의 모습에 르프미아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알타오 리오스여. 모든 것은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식만 하시면 모든 것이 알타오 리오스의 것이 될 것입니다.” 순간 리오스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이미 우주가 되어버린 리오스의 사고가 르프미아의 말에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마 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리오스가 눈을 뜨며 말했다. “내 안에 무한계가 있었군.” 실지 그의 안에 무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이미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리오스인지라 자신이라는 의미를 상위 영역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신으로서 어느 정도 각성한 리오스를 보며 르프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알타오 리오스여. 모든 것은 알타오 리오스 안에 있습니다.” 리오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우주를 보았고 신들이 사는 천계와 이곳 아닌 지옥도 보았다. 또한 영들이 모이는 영계와 온갖 환수들이 사는 환수계도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보기를 원했던 무한계를 찾았다. “찾았다!” 그가 그곳을 인지하고 가기를 원하는 순간 대전에서 에쉬리온과 리오스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르프미아가 나직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시간의 문은 그간 수천 수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명백히 비웃는 말투였으나, 마신이라도 우주의 법칙을 모두 알 수는 없었다. ================================================================ 드디어 올리네요. 후후후, 한 시간 차이로 약속을 어긴 것처럼 되어버렸네요. 흑흑흑, 어쨌든 드뎌 리오스가 나왔습니다. 자, 리오스의 활약을 지켜보자고요. p.s 이벤트 참여율이 너무도 저조합니다. 심히 가슴이 아픕니다. 크흑... 모두 이벤트 참여하셔서... 상품 타 가셔야죠!!!!!! 187화. 마신 리오스. 2. 무한계는 태초에 창조신 루미에가 창조한 에덴의 반대급부 되는 성질의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곳은 음유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만들어진 에덴과는 달리 칙칙한 회색 일변이었다. 무한계의 존재들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태초에 신이 창조한 존재들과 후세에 인간이었다가 신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 사는 곳이 바로 무한계였다. 그리고 태초에 존재했던 자들은 그 이후에 무한계로 들어온 자들을 이방인이라 무시하며 그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세상의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오스 역시 이곳 무한계에서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분명 무한계의 존재는 아니었으나 그가 무한계에 발을 들이대는 순간부터 그는 이방인이 되었다. “이방인이여, 여기는 그대가 살 곳이 아니다.” 허공에서 몸이 재구성되며 나타난 리오스와 에쉬리온이 회색빛 땅에 발을 대는 순간 들려온 음성이었다. “나는 시간의 문 때문에 왔을 뿐, 이곳에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으하하하하하!” 싸늘한 리오스의 말에 화답하는 것은 무한계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광소였다. 허나 리오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더욱 눈을 굳히며 말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허깨비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리오스 앞에 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 존재는 분명 존재했다. 허나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그 존재감이 없었다. 온통 회색빛 일색인 그 존재는 인간과 흡사하게 생겼으나 인간이라 말하기에는 뭔가 어색했다. 리오스는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도 눈빛만 굳힐 뿐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예리한 눈초리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고 은연중에 판단을 내렸다. 허나 이것은 분명 만회할 수 없는 오판이었다. “그대가 수문장인가?” “그대? 하하하하하! 광오하구나. 고작 알타오이면서도 나 탄스라에게 그대라 부르다니, 으하하하하!” 이미 본 미래지만 탄스라는 실제로 겪으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태초에 신이 창조한 아들들과 같이 창조된 이곳 무한계의 주인인 탄스라가 아니던가? 이 탄스라라는 이름 역시 창조신 루미에에게 받았으며 모든 지옥의 피조물의 어버이인 메테우스와 같은 급의 존재가 바로 탄스라가 아니었던가? 이런 자신에게 그대라 칭하다니. 그것도 고작 마신 중에서도 세 번째 서열인 알타오 따위가 말이다. 탄스라는 불같이 노했다. 리오스가 한 말은 분명 그 안에 있는 우주의 순리였지만 그는 분노했다. 이것 또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숨이 답답해졌다. 아울러 그의 몸이 파지직거리며 분해 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뭔가? 이토록 엄청난 존재감이라니. 아까 전과는 너무도 다른 항거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리오스는 자신이 실수한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허나 자신의 몸은 탄스라의 웃음소리에 분해 되고 있었다. “자, 잠깐!” 리오스는 쥐어짜내듯 소리쳤다. 이렇게 소리칠 힘도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살은 개죽음보다도 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뭔가?” 탄스라는 힘을 잠시간 억누르고 물었다. 이것 또한 순리이며 예정된 수순이었기에 그의 물음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비록 희미해지기는 했으나 존재 자체가 말살되지는 않은 리오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당신에게 매우 쉬운 일일 것입니다.” 공손한 리오스의 말투에 만족한 탄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 이름을 지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리오스를 보며 탄스라는 빙긋이 미소 지었다. “알타오 따위인 너의 생각 따위는 이미 나의 우주 안에 있다.” 간단한 말이지만 탄스라의 말은 엄청난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마신인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이에 몸에 힘이 쭈욱 빠진 리오스는 처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도 알겠군요.” “당연하지. 네가 이곳에 오는 것부터 나의 우주 안에 정해진 순리였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리오스는 그의 말에 체념했다. 이런 리오스를 보며 탄스라가 회색빛 얼굴에 작은 미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손을 한번 휘저었다. 웅웅웅웅! 순간 무한계가 진동하며 회색빛 문이 하늘에서 열렸다. 이를 멍하니 보고 있던 리오스는 탄스라를 보며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이것이 혹시 시간의 문입니까?” “그렇다.” 탄스라의 짧은 대답에 리오스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다 보니 그의 음성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마신이 되었지만 여전히 감성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저를 저 시간의 문으로…….” “그렇다.” 이번에도 짧은 대답이었지만 리오스의 몸은 희열에 떨고 있었다. 이런 리오스를 보며 탄스라가 뒤로 힐끔 시선을 주었다. 허나 금세 시선을 돌려 희열에 떨고 있는 리오스는 탄스라의 행동을 미처 보지 못했다. 리오스가 한참이나 말도 못하고 희열에 빠져있을 때, 탄스라가 근엄한 목 소리로 말했다. “허나 규칙은 규칙! 시간의 문을 이용하려면 수문장과 싸워 이겨야 한다.” “알겠습니다. 제가 살던 시대로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리오스는 그의 말에 힘차게 대답했다. 탄스라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손뼉을 한번 쳤다. 짝! 그와 동시에 무한계가 잠시 일렁거렸다. 그리고 탄스라 뒤에 부복한 자세로 있는 한 존재. 리오스는 탄스라가 부른 수문장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 보다 강해보였다. 허나 물러설 순 없었다. 한번 존재가 말살될 뻔했던 리오스에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리오스는 탄스라를 보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탄스라였다. 리오스는 세상을 한번에 멸할 수 있는 힘이 이렇게 미약한 것인지 미처 몰랐었다. 그리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존재를 보며 경외심이 들었다. “그게 다인가?” 그의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잔잔한 음성으로 물었다. 허나 리오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보았지만 상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를 한 발짝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름을 지우십시오.” 자신과 같은 하급 신들은 죽음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이름을 지우는 것 뿐. 그것으로 존재가 소멸되는 것이기에 리오스는 그렇게 말했었다. 헌데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리오스의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며 미소까지 짓는 것이 아닌가? 허나 리오스는 회색빛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기에 그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가서 나의 업을 처리해주기 바란다.” 쾅! 리오스는 머리가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존재는 정신을 잃은 리오스를 잠시 쳐다보다 탄스라에게 고개 숙였다. “탄스라시여, 제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것 가지고 뭘 그러나. 그보다 그에게 약속한 대로 금제를 가해 야 할 거 같은데…….” 탄스라의 말에 존재가 고개를 한번 숙인 뒤, 리오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리오스의 몸을 지그시 누른 뒤,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와 같은 존재들은 말이 곧 힘이었기에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너의 힘은 단 세 번만 사용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너의 이름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존재의 경건한 음성이 끝나자 리오스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라 시간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탄스라와 존재를 쳐다보던 에쉬리온이 사라진 리오스를 따라 몸을 날렸다. 허나 그들은 에쉬리온을 말리지 않았다. 리오스와 에쉬리온이 시간의 문 안으로 사라지자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탄스라가 존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업이 순리로 돌아갈 때, 너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탄스라시여.” 존재는 부복하며 탄스라에게 감사했다. ================================================================== 짧군요. 쿨럭 188화. 사랑스러운 여인. 1 얼핏 보면 진의 마음에 난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듯 했다. 허나 밤이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이를 알고 있는 안젤리나는 깊게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악몽에 시달리는 진의 괴성이 들렸다. “으아아악!” 휘익! 이불을 제치고 재빠른 동작으로 계단을 뛰어내린 안젤리나는 문을 열고 몸부림치는 진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괴성을 지르는 진을 안아 토닥였다. “괜찮아,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아.”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듯 안젤리나는 진을 달래며 땀범벅이가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 동안 달래었을까? 진은 그녀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기 시작했다. “휴우, 이제 자는 구나.” 한숨을 쉬며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쓰윽 닦은 안젤리나는 조심스런 동작으로 진을 침대에 눕혔다. 그러고 진을 보는데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푸웃! 어지간히도 무서웠나 보구나.” 안젤리나는 낮게 웃으며 손수건으로 그의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짐짓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뭐라고 할까?” 상상만 해도 우스웠다. 그러나 돌아서 문을 나오는 안젤리나의 얼굴은 어느새 연민의 빛을 띠고 있었다. “으아암! 잘 잤다.” 진은 한껏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다 또 다시 온 몸이 축축이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휴우, 오늘 아침도 내가 해야겠군.’ 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허나 잠에서 깨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꿈을 꿨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악몽에서 깨지 않았으면 안젤리나가 늦잠 자는 이유는 영원히 몰랐을 거야.’ 악몽이 기억나진 않지만 얼마 전 괴성을 지르다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토닥여주는 안젤리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의 놀람이란, 부끄러움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한없이 민망했다. 그래서 그는 잠에서 깼었지만 짐짓 잠든 척 했었다. “내일은 악몽을 꾸지 않길 바랄께.” 나가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자신이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안젤리나가 그것을 달래주었다는 것을. 그때부터였다. 자신이 안젤리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변한 것은. 사실 꿈에도 그리워했던 여인이 안젤리나였기에 처음 만났을 당시 그리 큰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남녀가 유별하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자신의 마음속에 안젤리나라는 여인이 너무도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분명 그랬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관심과 배려를 안 뒤부터는 이러한 벽이 없어져버렸다. 더 이상 벽을 세워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은 잠시 상념에 빠져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아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얼마 뒤, 아침밥 준비가 끝난 진이 이층 문을 똑똑 두들겼다. “밥 다 됐어! 일어나!” 전과 다름없이 짐짓 화난 말투였다.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허둥대는 소리. 아마도 오늘도 자신이 밥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당황한 듯했다. 이에 슬며시 미소를 지은 진은 밑으로 내려가 안젤리나를 기다렸다. 얼마 뒤, 허둥대며 나온 안젤리나가 진을 보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미안~ 어쩌다 보니 또 늦잠을 잤네. 내일은 꼭 내가 할게.” 순간 진은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이런 여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혀를 쏙 빼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안젤리나에게 투덜대는 진이었다. “흥, 말이라도 못하면…….” “피이~” 그의 투덜댐에 안젤리나는 볼을 통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새벽의 일은 말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진은 달려가 그녀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벼주고 싶었다. “험험, 밥이나 먹자. 음식은 식기 전에 먹어야 제 맛이 나거든.” 진은 자신이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생각에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렇게 그들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식사를 했다. “아빠 살려내!” “여보~” 피눈물을 흘리며 노려보는 아이와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는 여인이 보였 다. 그리고 그들 앞에 싸늘히 죽은 시신이 있었다. “이 살인마야!” 아이의 매몰찬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그러나 그 아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장막 같은 어둠이 밀려났다. 그리고 드러나는 모습. 자신의 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반으로 갈려진 시신.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여인의 울음도. 아이의 원독에 찬 표정도. “아니야!” 진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남에 따라 점차 잦아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노려보거나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예외도 없이 그들 앞에는 싸늘하게 죽어버린 시신이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니야!” 진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도망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첨벙! 어떤 액체를 밟았을 때 나는 소리였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내려가는 시선! “으아아아아악!” 그는 피로 이루어진 강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죽인 시신들에게서 흘러내린 피로 이루어진 강을 말이다. “으아아아악!” 진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는 허공에다가 손을 내저으며 ‘아니야, 내가 아니야!’라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그때였다. 심하게 떨고 있는 그의 손을 잡는 따스한 손이 있었다. 순간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췄다. “괜찮아,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푸훗, 진은 정말 울보구나?” 안젤리나가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때, 진은 꿈과 현실의 혼돈에서 깨어났다. “고마워!” “어머!” 잠에서 깨어난 진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안젤리나는 비록 경악성을 토하기는 했으나 진을 밀쳐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호흡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진의 손은 안젤리나의 금발을 쓰다듬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손짓이었다. 허나 갈수록 힘이 들어갔고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거로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분명 갈증이었다. “괜찮아…….” 안젤리나 역시 진의 손에서 열기를 느꼈었다. 그래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분명 갈증에 허덕이는 진에게 감로수와도 같은 음성이었다. “사…랑해.” 안젤리나의 귓가에다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 진은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기 시작했다. 안젤리나는 진의 한 마디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허나 그녀는 무술을 익힌 무인이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진의 숨결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고 더욱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에 안젤리나의 호흡도 점차 가 빠졌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입술을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허나 그의 얼굴은 점차 안젤리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은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갈증을 풀었다. 처음에는 너무도 부드럽고 달콤해 이 갈증이 풀어지는 듯했다. 허나 그것은 순간적인 감정일 뿐, 자신의 몸은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 뜨거움은 그의 이성을 재로 만들었다. 한편 안젤리나는 진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과 닿는 순간 다리가 풀렸다. 다 행히도 두 사람 다 침대에 앉아 있었기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온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자자…….” 그때, 안젤리나의 얼굴을 붉히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진의 누 르는 힘에 의해 천천히 침대 위로 쓰러졌다. 밤은 역시나 길었다. ================================================================= 제 글에서 최고의 애로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쿨럭... 189화. 사랑스러운 여인. 2 다음날, 진은 안젤리나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산책을 하고 있어도 떠오르는 것은 안젤리나의 눈부신 몸이었다. 찰싹! 머리를 흔들어도 떠오르자 진은 극약 처방으로 힘껏 뺨을 쳤다. 그러나 너무 세게 때린 탓인지, 고개가 팩 돌아가며 선혈이 바닥에 뿌려졌다. “크흑…” 뭐라 말은 못하겠으나 너무도 아파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뜨거웠던 전날 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휴우…….” 결국 진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안젤리나가 받아들일까?’ 자신을 합리화시키니 슬그머니 안젤리나의 태도가 걱정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안젤리나는 비록 사랑스럽기는 하나, 한 성깔 하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던 진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눈을 굳히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며 중얼거리는데 그것이 사람의 힘을 쫘악 빼는데 충분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한 거 같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안젤리나가 아침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어리둥절한 진은 의심어린 눈으로 음식들을 살펴보았다. ‘설마 저 안에 독을 넣지는 않았겠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지만 진은 어느 정도 진지했다. 허나 그런 생각도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안젤리나를 보는 순간 봄눈 녹듯이 스르륵 녹았다. “험험.” 자신이 생각해도 민망했던지 진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음식을 먹는 내내,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험험, 미안해!” 설거지를 다하고 나오는 안젤리나를 보며 진이 한 말이었다. 순간 안젤리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약간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어? 아, 아니. 그러니깐… 으음…….” 진이 그녀의 말에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안젤리나는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당황한 진이 그녀를 달래보려 애썼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울지 마… 미안하다니깐!” 진이 연신 미안하다고 하자 서럽게 울던 안젤리나가 홱 소리가 나게 고개를 돌리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흑흑, 그 말밖에 흐윽, 할 말이 없어? 흑흑흑!” “어? 으음…” 진은 그녀의 눈에서 어떤 기대감을 발견했다. 그리고 당혹스러웠다. 뭐라 고 말해야 될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안젤리나가 돌연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순간 다급해진 진은 평소 펼치지 않았던 무 공까지 펼치며 그녀 앞을 막았다. “잠깐!” “흐윽, 왜애~? 흑흑!” 안젤리나는 진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 순간 진은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안젤리나를 와락 안았다. “흐읍, 왜, 왜 이러는 거야?” 안젤리나는 진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를 밀치려 했지만 진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진심이 담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이 바보야!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란… 으웁!” 진의 말을 들은 안젤리나는 너무도 화가 나 그를 밀쳐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진의 입술에 막혀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앗! 미, 미안.” 진은 그녀의 눈물이 볼에 느껴지자 너무도 놀라 허리까지 숙이며 사과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안젤리나가 우는 눈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호, 그래. 일단 그 사과를 받아주겠어. 그런데 진짜 그밖에 할 말은 없어?” 웃음을 멈추고 진진한 음성으로 안젤리나가 묻자 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떠듬거리며 말했다. “있긴 있는데, 네가 화낼 거 같아서.” “화 안 낼게. 그러니깐 말해 봐.” 안젤리나는 그의 말에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그리고 그녀의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이 진의 입에 고정되었다. 진은 그녀의 눈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명언을 기억해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랑…… 그러니깐….” “나랑? 그러니깐?” 진이 입을 열자 기대어린 음성으로 따라하는 안젤리나였다. 그러나 진은 안젤리나가 자신의 말을 따라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말이다. “같이 살자고!” “……정말?” 이번에는 따라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기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진심어린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을 보았다. “고마워…….” “뭐?” “……고맙……!” 진은 그녀가 허락하는 뜻을 내비치자 마음이 풀어져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이에 안젤리나는 얼굴이 벌게져 되레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고함은 이번에도 진의 가슴에서 더 이상 퍼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진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나야 말로 고마워!” 안젤리나의 몸에서 또 다시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깐, 매일 같이 꾸었던 악몽이 그런 거였단 말이죠?” 진은 안젤리나의 물음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한편 슬며시 미소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 후부터 안젤리나의 말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마음은 알 수가 없어.’ 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허나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말투가 이상하다고 말했다가 호되게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그녀의 변화에 짐짓 모른 척 해주는 게 무사 안위함을 위해 좋은 거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진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네요. 당신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잖아요.” 역시나 적응이 되지 않지만 그녀 말투가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따뜻해져 상처 난 마음이 치유되는 듯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에 조용히 몸을 맡기던 진은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렇지. 내 손에 죽은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야. 그것보다도 이건 내 생각인데, 부모님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거 같아.” “부모님의 죽음이요?” “그래, 사실 내가 전장에서 몸을 뺀 이유는 부모님의 유언을 지키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해칠 수 없기 때문이었어.” “이해해요.” 안젤리나는 진의 따뜻한 마음씨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에 진도 그녀에게 조용히 미소 지어주었다. 허나 입을 멈추지는 않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야.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죽음일 거야.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들 하나를 죽이는 것은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그들도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니깐. 그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지는 않아. 하지만 그들이 죽음으로 인해 괴로워할, 슬퍼할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크흑! 흑흑흑!” 진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껏 고민했던 것들을 처음으로 입밖에 내뱉자 시원하면서도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안젤리나는 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해하지 않고 진을 안아주었다. “제가 옆에 있잖아요. 그냥 우리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 전쟁은 생각하지 말고요.” “그래, 전쟁 따위는 생각도 하지 말자!” 진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에 포근한 미소를 짓는 안젤리나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악몽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우리 함께 노력해요. 알았죠?” “그래…….”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안젤리나였다. “아버지, 어머니! 저 안젤리나와 평생을 같이 살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하늘에서도 봐주세요.” “아버님, 어머님. 많이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두 사람은 두 봉분 앞에서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별 탈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었다. 허나 진은 안젤리나의 눈에 어려 있는 슬픔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마음을 굳힌 진이 입을 열었다. “요새 힘이 없는 거 같은데,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예? 아니에요. 걱정은 무슨.” 말은 그렇게 했으나 안젤리나의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를 놓칠 리 없는 진은 그녀를 채근하려다 뭔가가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우리 부모님 앞에서만 결혼의 서약을 했었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진은 안젤리나가 괜스레 안쓰러워져 꼬옥 안아주었다. 이에 짐짓 밝은 표정을 짓는 안젤리나였다. 허나 그것이 진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고 그가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안젤리나는 여행용 복장을 입고 있는 진을 의아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장인, 장모님께 얼굴이라도 보여야 되지 않겠어? 그래도 명색이 사위인데…….” “당신…… 흐윽! 흑흑흑!” 결국 안젤리나는 벅찬 감동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진은 출발하기 전, 그녀를 달래기 위해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는데…… 참으로 모를 일이다. 190화. 진, 장인 장모님을 만나다. 1 샤킨트 왕국의 정예병을 이끌고 온 알타인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기사단 하나에 무너진 주르단 왕국의 정예병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차칸타 왕국의 정예병 때문이었다. “허허허,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알타인은 제국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했다. 기회라 여겼던 제국의 내란은 소강상태가 되어 각기 힘을 비축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다. 거기다 이유야 어찌됐든 동맹국들의 불참은 그를 힘겹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숨을 쉬며 한탄하는 것밖에 없었다. “단장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알타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그들을 실망시킬 대답이 나올 테니, 입을 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허나 침묵을 지키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후후후, 변변한 전투 한번 못 치러 보고 돌아가는 우리 신세가 참으로 우 습구나!’ 잠시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 알타인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회군한다!” 그의 씁쓸한 음성처럼 회군하는 샤킨트 왕국의 정예병의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프린샤가 돌아왔다. 그리고 메테르티아 시가 조금씩 변했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과 달리 신에게 선택한 위대한 존재들이다!” “와아아아아!” 음성 증폭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프린샤의 음성에 메테르티아 시민들이 광신도처럼 열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린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들은 광기어린 모습으로 반응했다. 그런 그들의 눈은 이지를 상실한 자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프린샤가 돌아온 지 석 달째 되는 날의 연설이었다. 메테르티아 시는 철저하게 통제 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막지 않았다. 허나 그들은 메테르티아 시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검은 흑의를 입은 자들에게 끌려가 얼마 뒤, 프린샤의 신실한 신자가 되었다. 이는 메테르티아 시의 절대 불변의 진리였다. 허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다. 메테르티아 시에서만큼은 황제보다도 더한 권력을 부리는 프린샤지만 그도 단 한 사람만은 그의 신자로 만들지 못했다. 이에 놀란 프린샤는 손수 그와 대면해 그를 자신의 포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끼익! 문이 열리며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프린샤가 들어왔다. 예전에는 호탕한 사내의 장쾌함이 느껴졌다면 지금에는 항거할 수 없는 위엄과 음산함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자인가?” “그렇사옵니다.” 프린샤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묻자 그는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치 지고 무상한 신에게 아뢰는 듯한 표정이었다. “으음, 이름이 무언가?” 프린샤는 짧게 신음을 토하며 소파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이에 사내가 고개를 들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끼이잉! 쇠가 마찰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프린샤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괘,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기사가 황급히 그를 부축하며 묻자 프린샤가 고개를 돌려 나직하나 마력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너의 믿음이 나를 기쁘게 하는 구나. 내 잊지 않겠다.” “가, 감사합니다.” “이만 물러가 있게.” “예!” 방을 나서는 기사의 표정은 마치 신에게 축복을 받은 자의 그것과 흡사했다. 허나 프린샤는 신도 아닐 뿐더러, 그에게 축복 따위도 내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사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프린샤는 호위기사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신기한지요?” 사내의 갑작스런 말에 프린샤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상대는 비록 묻고 있으나 그의 눈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자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으음… 정체를 밝혀라!” 잠시 신음을 토하던 프린샤는 유적지에서 얻은 힘인 지배의 마성을 사용했다. 허나 상대는 도리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에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낀 프린샤가 안색을 굳히며 그를 노려보았다. “하하하, 그 눈을 보아하니 나를 못 믿고 있군요.” “…….” 프린샤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처음 보는 자가 그것도 자신이 얻은 능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보고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는지 오히려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눈앞에 있는 자라면 알아서 가르쳐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내가 당신의 마성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나 역시 당신과 같은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쿵! 프린샤는 벽돌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 허나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자가 또 있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프린샤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한 듯, 사내는 미소를 짙게 만들며 입 을 열었다. “믿기 힘들 거라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눈을 본다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사내의 눈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이한 보랏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공명을 하듯 대기가 진동했고 프린샤의 눈도 어느새 보랏빛 광망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 아니!” 놀란 프린샤가 뒤로 주춤 물러서자, 사내가 앞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으으으으…….” 프린샤는 사내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사내의 눈은 세상 어떤 여인보다도 매력적이었으며 그 안에 투영되는 사실들은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얼마 뒤, 프린샤는 당혹에 찬 표정을 지으며 사내를 보게 되었다. 그는 알 게 된 것이다. 자신을 제외하더라도 선택된 존재가 세 명이나 더 있다는 사 실을. “후후후, 놀랍습니까? 하지만 이것가지고 놀란다면 우스울 따름입니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사내는 이런 프린샤가 너무도 재미있는 듯, 즐거운 표정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프린샤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힘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 나 말이요?” 사내는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자리에 프린샤와 사내 두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 것이다. 그러나 프린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능력의 성질이 다르기에 누가 낫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상대는 최소한 자신보다 그 능력에 정통해있었다. 그렇기에 프린샤는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본 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사내가 자신의 야망을 막으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내는 프린샤를 더 놀려봐야 더 이상의 재미는 얻지 못할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그는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속으로야 여전히 웃음지면서도. “나는 말이오. 조르단 라젠티오라 하오.” “이곳이 저희 집이에요.” 커다란 철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정원 뒤편에 있는 수십 개의 커다란 건물들. 안젤리나는 그것들을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안젤리나의 집안이 좋든 말든 그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진이 무덤덤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 다리가 후들거리고 목이 텁텁 막혀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 있다 안젤리나의 부모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후우, 들어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이것이 진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염두를 굴려 봐도 머리는 백지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하아~” “웬 한숨이에요?” 안젤리나는 뜬금없이 진이 한숨을 쉬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진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를 자신의 가문의 대단함에 위축되었다고 판단한 안젤리나가 걱정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세상의 이목은 신경 쓰지 않는 분들이세요.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들어가요.” 말을 마친 안젤리나가 들뜬 표정을 지었다. 조금 있다 보게 될 부모님의 반응이 사뭇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런 그녀를 바라보는 진의 얼굴은 도살장에 끌려가게 될 돼지의 그것과 같았다. ‘하아, 정말 뭐라고 말하지?’ 사고 친 남자만이 아는 고민이었다. ================================================================= 에공... 오늘 참으로 글이 안 써지더군요. 그래서 놀았습니다. 제가 주로 활동하는 시간대가 새벽이라서..새벽 내내 놀았습니다. 잠도 안 와서요. 결국 아침을 기다리는 독자분들을 떠올리며 안 써지는 걸 억지로 써서 한편이나마 올립니다. 분량이 적더라도 화내지 마세요~^^ 191화. 진, 장인 장모님을 만나다. 2 안젤리나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금세 퍼졌고 허둥지둥 달려오는 사내를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리나야!” “오빠!” 예전과 달리 오빠인 더스틴을 부르는 안젤리나의 목소리는 반가움이 물씬 풍겼다. 이에 허겁지겁 달려오던 더스틴이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왜, 왜 그래? 너 답지 않게… 설마 내가 부모님한테 일렀다고 이러는 건 아니지?” 더스틴은 불안했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도 다른 동생의 태도에 섬뜩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안젤리나는 심술 많고,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보복하는 무서운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더스틴은 그녀 옆에 한 남자가 있음과 그의 팔에 꼬옥 안겨 있는 안젤리나를 제대로 봤어야 했다. 사랑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말괄량이라도 길들일 수 있는 묘약임을 그도 모르지는 않을 테니. 더스틴의 뜻밖의 말에 안젤리나는 당황했다. 오빠가 한 말 때문에 진이 무슨 오해라도 할까봐 걱정되었다. 허나 진은 그의 말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대신 안젤리나가 그를 부를 때의 호칭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안젤리나의 오빠임을 알고 인사를 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처남. 올슈레이 진이라 합니다.” “…… 처, 처남? 내가 당신의 처남이라고?” 더스틴은 너무도 놀라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리고 그는 진의 팔에 안겨 꼭 붙어 있는 안젤리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순간 헛바람이 튀어나오려 했으나 가까스로 집어 삼켰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는 더스틴. 아니, 그는 혼란스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남자라면 발톱에 낀 때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여겼던 리나가 결혼을? 그 것도 저렇듯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다니. 이건 큰 사건이다!’ 머리가 원활하게 돌아가자 더스틴은 진과 안젤리나에게는 일별도 하지 않고 눈썹을 휘날리며 부모님의 거처인 후원으로 몸을 날렸다. 이런 그의 행동은 진정이 담긴 효심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 소식을 부모님이 준비하지 않고 맞이한다면…… 그건 재난이다.’ 더스틴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말이 뇌리에 떠올라 달리는 와중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했다. 더스틴은 은은한 내음이 감도는 후원을 지나 세속과 구별된 듯한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어머니!” 문을 쾅 열며 들어온 자신들의 아들을 보는 지다이와 실리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더스틴은 이렇게 성격이 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도 느긋하고 온유해 장차 대업을 맡길 인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평까지 받고 있던 더스틴이 숨을 몰아쉬며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 차를 마시다 말고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에 더스틴은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항이 사항인지라 그답지 않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리나가 돌아왔습니다.” “뭐라?” “정말이냐?” 그의 말에 두 부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말이 없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실리에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지다이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역시나 지다이는 화를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딸의 무책임한 가출! 그것은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지금 전국이 어떠한데 가출이라니. 그로 인해 자신들의 가슴이 얼마나 타들어갔는지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이 마음을 밖으로 표출할 순 없었다. 지다이 역 시 은연중에 실리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다이는 흔히 말하는 팔불출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리에가 싫어하는 일은 가급적이면 자제했다. 그것이 그의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다. 두 부부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은 더스틴에게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은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휴우~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조금 있으면 그들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아버님, 어머님! 지금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호칭까지 바꿔가며 말하는 아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사대적보다도 더 증오스러웠지만 그의 목소리에 있는 침중함을 발견하지 못 할 지다이가 아니었다. “그래, 무슨 일이기에 네가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지 한 번 들어보자꾸나.” 만약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그에 합당한 응징을 가하리라는 속뜻이 있지만 더스틴은 이런 그의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리나가, 리나가 말입니다.” “리나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실리에가 온 몸을 헤집는 불안감에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더스틴. 순간 실리에는 다리에서 힘이 풀려 휘청거렸고 그녀를 재빨리 안는 지다이였다. “리나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네 아버지, 어머니를 말려죽일 작정이냐?” 지다이 역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짜증 섞인 외침을 토했다. 이에 잠시간 움찔한 더스틴은 그의 채근에 서둘러 대답했다. “리나가, 리나가 남편을 데려왔다 합니다.” 쿵! 두 부부는 너무도 엄청난 충격에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지다이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더스틴은 지다이의 모습을 십분 이해했지만 뭐라 위로해줄 수 여유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기에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진과 안젤리나는 부모님의 거처인 후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땀범벅이가 된 얼굴을 하고 나타난 더스틴에 의해 걸음을 그녀의 방으로 돌려야 했다. “히유~” 방을 둘러본 진은 그 크기에도 놀랐지만 그 화려함에는 신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여자들이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도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데서 살다가 우리 집 같은데서 살아도 괜찮은 거야?” 진의 물음에 안젤리나는 괜히 화가 났다. 이 방의 장식은 자신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닌데도 은근히 비꼬는 말을 하자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순종적인 여인이 되리라 마음먹은 안젤리나는 억지로 얼굴을 펴며 웃음까지 흘리며 말했다. “호호호, 당신이 없는 집은 이 방보다 몇 백배 화려해도 사양할 거예요.” 안젤리나의 지혜로운 대답에 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괜한 자격지심에 한 말이 그녀의 맘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허나 계속해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쫑알대는 안젤리나를 보니 그런 걱정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진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녀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해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더스틴이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자고 하신다. 너의 남편이라는 자도 함께.” 남편이라는 말을 할 때, 더스틴은 살기를 끌어올렸다. 허나 더스틴의 살기 가지고는 진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기에 진은 웃음으로 살기를 넘겼다. 이런 진의 모습에 더스틴은 꽤나 놀랐지만 그를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는 용건만 말하고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진과 안젤리나가 두 손을 꼬옥 잡은 채로 따라가고 있었다. 지다이는 눈앞에 있는 젊은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철판도 뚫을 그의 눈빛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운을 일으켜 그에게 무형의 검날을 쏘아 보냈다. 파스스슥! 허나 무형의 검날은 그의 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미약한 소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이에 지다이는 젊은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지만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실리에는 안젤리나가 데리고 온 사내의 얼굴을 시종일관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실리에. 그녀 맘에 외모 하나만은 합격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의 눈이 너무도 진실해 보여 안젤리나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다고 생각하는 실리에였다. 진은 안젤리나의 부모님의 눈빛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평소 같으면 뭐라고 말했을 것이나 상대는 장인, 장모가 되는 사람들이기에 진은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연장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여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의 내심을 훤히 짐작하고 있는 안젤리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지다이와 실리에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고울 리 없었다. 결국 평소 안젤리나라면 꿈뻑 죽는 지다이가 헛기침을 몇 번 토하며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자네가 리나의 남편이란 자인가?” ================================================================= 오늘 겨우겨우 한편 올렸군요. 즐겁게 읽어주세요~~^^ 192화. 진, 장인 장모님을 만나다. 3 진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까짓 거 한번은 부딪혀야 할 일!’ 이렇게 생각은 다부지게 했다. 허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지다이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진의 모습에 참으로 황당했다. 이 진중한 모습을 좋게 본다면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침묵은 도리어 짜증만 나게 할 뿐이었다. “험험, 젊은 나이에 귀가 어두운 가 보이. 다시 한번 묻지. 자네가 리나의 남편이란 자인가?” 지다이의 음성은 한껏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눈만 껌뻑이며 지다이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갈!” 지다이는 화가 났다. ‘그렇습니다.’라는 간단한 말도 하지 못하는 배짱도 없는 녀석이 사랑스러운 딸의 남편이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의 심기가 분노의 색깔을 띠는 것과 동시에 무형의 칼날이 분노의 응징을 가하기 위해 진에게 쇄도했다. 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의 몸으로 쇄도하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진은 깜짝 놀라는 한편 한 손으로 급히 원을 그려 그 기운을 해소시켰다. “흐음…….” 지다이는 진의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실력은 마음에 들었다. 이런 그의 생각은 평소 강함을 존중하던 가치관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는 은근슬쩍 ‘역시 리나가 남자 볼 줄 아는 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좋지 않던 마음은 깡그리 잊어버렸다. “험험, 사위. 일단 자리에 앉게.” “예? 아,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이렇게 암묵적인 합의를 거친 두 사내는 서로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보기보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위였군.’ ‘장인어른도 나처럼 사고를 친 다음에 결혼하신 건가? 너무도 잘 이해해주시는 구나.’ 지다이와 진은 뜨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허나 지다이가 만약 진이 저지른 일을 알게 된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미소가 여전히 따뜻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시간이 화살에 꽂힌 듯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그 시간이 거북이걸음 보다 더디게 흐른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바로 애드윈 더 더스틴이었다. 더스틴은 자신의 매제가 될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아버지의 무 형의 공격을 해소하는 실력은 놀라웠지만 그 우유부단한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대뜸 자신이 안젤리나의 남편이라는 그 뻔뻔함이란, 도저히 묵인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위계질서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밟아줄 필요가 있어!’ 이러한 더스틴의 생각은 ‘생선 가게 주인이 자신에게 생선을 줄 것이다.’라는 고양이의 황당무계한 생각과 같은 맥락이지만 고양이를 탓할 수 없듯이 더스틴 역시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은 의외로 시원시원한 지다이 덕분에 난감했던 자리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풀릴 수는 없는 법. “한 시간 후, 건물 뒤에 있는 연무장에서 봅시다.” 더스틴의 목소리가 후련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진의 걸음을 멈칫거리게 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니 단호한 기색까지 보이지 않는가! ‘끄응, 리나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뜻인가?’ 진은 당혹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이보다 더 했겠지? 쩝.’ 각오를 할 수밖에 없는 진이었다. 진은 연무장으로 가는 내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투나 분위기 로 보아 자신을 손 볼 요량인 듯 해 더욱더 난감했다. ‘그냥 몇 대 맞아주고 말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것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기에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평소대로 늘씬 두들겨 패줄 수도 없는 일이고. 여하튼 난감한 노릇이었다. 연무장에 도착하니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더스틴을 볼 수 있었다. 이에 잠시 멈칫거렸지만 옮기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도망치지는 않았군.” 그의 비꼬는 말에 진은 순간 발끈했지만 그가 안젤리나의 오빠라는 것을 상기하며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고르며 떠나가려는 이성을 붙잡았다. “후웁, 후웁. 하아!” “하하하, 설마 지금 화를 삭이는 것인가?” 더스틴은 진의 ‘나 지금 참고 있다.’라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고울 리가 없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평소 온유한 그의 성격과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이지만 동생의 일생이 걸린 일이기에 이보다 더 격해질 수도 있는 그였다. “으음, 그냥 치십시오. 몇 대 맞아 줄 테니.” 결국 이성의 끈이 무너져 속내를 밝혔다. 하지만 평소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정중한 말투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가 나름의 예의는 지키는 거라 할 수 있었다. 그래 봐야 불같이 타오르는 더스틴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었지만. “뭐라? 갈! 네 놈이 죽으려 환장을 했구나!” 크게 분노한 더스틴이 진에게 쇄도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그러나 진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것이 더스틴을 더욱 분노케 했다. 퍼퍼퍼퍼퍽! 눈 깜짝할 순간에 몇 십대를 친 더스틴은 씩씩거리며 아직도 서 있는 진 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깔려 있었다. “너, 너 왜 반격을 가하지 않지?” “그 기분을 알고 있으니깐.” 진이 입가의 피를 쓰윽 닦으며 말하자 더스틴은 심한 허무함을 느꼈다. “허허허, 그래서 나한테 그냥 맞아주었다고? 그게 네놈 나름의 사죄하는 방법인가?” “후우… 미안하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은 그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이러한 무저항이 그를 얼마나 비참하게 할 것인지 알고 있기에 더욱더 미안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사과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사과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의 말에서 단호함을 읽은 더스틴은 그제야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래야 했다. 리나가 인정한 남자라면 최소한 이 정도의 기개는 있어야 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데. ‘강한 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처음의 그 모습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더스틴이었다. 안젤리나는 잔뜩 부어오른 얼굴로 들어온 진을 보며 깜짝 놀랐다. 누가 있어 진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들었고 자신의 낭군의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가 누구인지 꼭 밝혀내 복수하리라 다짐하는 안젤리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진에게 쉽사리 묻지 못했다. 그의 분위기가 그녀의 입을 무겁게 눌렀기 때문이다. “…… 이제 모든 게 다 끝났어.”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의 뜬금없는 말에 안젤리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그의 얼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불길함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진의 얼굴이 미소를 짓고 있어 알 수 없는 불안감은 곧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았다. “그냥.” 간단하고 별 뜻 없는 말이었지만 안젤리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의 마음이 편안한 듯 하니 그녀 마음도 절로 편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복수의 다짐을 잊지 않았다. 얼마 뒤, 더스틴의 방에서 울려 퍼진 비명은 철저한 방음시설에 의해 진의 귀에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더스틴의 얼굴이 자신보다 더하다는 것을 본 진은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젤리나의 집에서 보낸 며칠 간, 진은 가정의 포근함을 간만에 느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정의 포근함을 느낄수록 쓰라린 마음도 강해졌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그런데 형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형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 모르겠지.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찾아왔을 테니깐.’ 진은 리오스의 소식을 듣지 못했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으니 진으로서는 알 리가 없는 일이었다. 진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형의 안부가 궁금해졌고 전하고 싶지 않지만 부모님께서 타계하셨다는 것도 알려야 했다. 이런 생각에 절로 침울해졌지만 형은 장남이기에 이 사실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진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무렵, 안젤리나는 자신을 귀여워해주던 할아버지가 출타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허나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기에 이 일은 차후로 미뤄두었다. 얼마 뒤, 진은 안젤리나에게 이곳을 떠나자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리고 그의 걱정과 달리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진이 생각하기로는 떠나지 않으려 떼를 쓸 줄 알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웃으며 승낙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의 집을 떠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라고 왜 이별의 아쉬움을 느끼지 않겠는가마는 며칠간 진의 얼굴을 봐왔었기에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불편할 뻔한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 및 오빠의 마음까지는 배려해 줄 수 없었다. 덕분에 애드윈 부부는 ‘백날 딸 키워봐야 결혼하면 그만.’이라며 한탄했고 진과 안젤리나는 귀에 딱지가 붙을 때까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한편 안젤리나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애드윈 더 세필로스는 그의 듬직한 부하들과 함께 모래 바람이 심하게 부는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사막 위의 거대한 성을 볼 수 있었다. “길었던 그 시간 동안 준비했던 것이 이것이었던가? 하지만 너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해놓았던 금제가 풀리는 즉시 너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창노한 음성이나 그 안에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그 힘은 거센 파도가 되어 모래위의 성을 무너뜨릴 것이다. 애드윈 더 세필로스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 또 다시 정신 없는 스토리 전개가 될 듯...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가 않네요. 어쨌든 즐감하세요.^^ 참, 이벤트 참여율이 저조합니다. 크흑, 그것이 저를 슬프게 하네요. 모두들 이벤트 참여합시다!!!!! 거의 발악 수준이군요. 193화. 업을 수행하는 자, 막는 자. 1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를 내며 천산을 오르는 아미르를 보며 스테판은 괜스레 안쓰러워져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그녀 앞을 막아 칼날 같은 바람이 그녀를 위협하지 못하게 했다. 아미르는 바람이 너무도 차갑고 매서워 호흡하기가 불편했다. 헌데 어느 순간부터 숨쉬기가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바닥만 보고 걸음을 옮기던 시선을 들어 앞을 보았다. “아!” 절로 감탄성이 새어 나왔다. 철벽을 연상시키는 듯한 듬직한 등이 보였던 것이다. 순간 가슴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올라왔다. 그것은 곧 얼굴로 펴져 아미르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기 바빴다. 허나 이런 그녀의 노력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얼굴 때문에 헛수고로 돌아가 버렸다. 이러한 작은 해프닝은 아미르의 마음속에 각인되었고 그들은 린의 인도아래 천골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이다.” 짧게 말을 마친 린은 짐은 동굴에 놓아두고 아미르와 스테판을 데리고 넓디넓은 평원으로 나왔다. “와아~” 광활한 평원 위를 하얀 안개들이 생명이 있는 듯 움직이는 모습은 감탄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기경을 처음 접한 아미르와 스테판은 입이 찢어져라 벌어져 있는 것도 모르고 좋아하고 있었다. 린은 그들의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대뜸 드래고아니아를 소환해 공명을 일으켰다. 순간 아미르와 스테판의 손에도 드래고니아가 나타나며 강력한 공명음이 터졌다. 웅웅웅웅웅! 드래고니아의 세 주인이 모이자 공명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덕분에 두 눈을 감고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고니아들도 깜짝 놀라 저만치 물러가버렸다. 린은 아미르와 스테판의 눈이 붉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야 이미 한번 경험했고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기에 은근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얼마 뒤, 서로를 노려만 보던 아미르와 스테판에게서 기괴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드래고니아의 주인… 승부를…” “내야 한다. 힘의 서열이 곧 그분의 뜻이기에.”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몸이 공간을 격하고 나타나 서로에게 일격을 가했다. 쾅! 회피하는 동작 따위는 애시 당초에 없었다. 그들의 공격 일변은 상대의 몸을 후려치는 것이었고 회피하는 동작이 없으니 상대의 드래고니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쾅! 콰쾅! 콰콰쾅! 한번 충돌한 후, 잠시 멈칫거렸다가 또 다시 부딪히는 그들의 격돌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어졌고 파문이 번지듯 그 충돌의 여파가 퍼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파파파팍! 대기는 발길질에 차이 듯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기운에 의해 두들겨 맞았고 평원 위의 풀들은 완전히 뒤집힌 땅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그들의 공방은 불을 뿜고 주위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쉬리릭!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였다. 파괴적인 힘으로 상대를 몰아치던 그들의 검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미르의 검에서부터였다. 스테판의 드래고니아를 향해 뻗어가던 아미르의 드래고니아가 기괴할 정도로 심하게 각도가 꺾이며 그의 검을 타고 올라 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스테판의 눈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고 한번도 회피 동작을 취하지 않던 스테판의 몸이 거구답지 않게 민척한 몸놀림을 보이며 축이 되는 발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허리를 제쳐 아미르의 공격을 피했다. 피잉~! 아미르의 공격은 대기에 작은 점을 만들었고 그 안으로 공기가 말려들어갔다. 그 때문에 반격을 가하려던 스테판의 몸이 잠시간 주춤거렸다. 한편 린은 자신과 진의 전투와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그들의 모습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은 그 와중에도 숨 쉴 겨를도 없이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을 하면 받아쳐야 한다. 이것이 스테판이 가지고 있던 전투관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투관은 아미르와의 전투를 통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다. -공격이 실패한 그 순간이야 말로 일격을 가해야 할 때이다.- 비록 의식할 수는 없지만 몸이 받아들이고 있는 무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몸에 빠르게 녹아들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익힌 기예가 몸 자체를 수련하는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미르의 검은 날카롭고도 매서웠다. 그리고 틈이 없었다. 공격 후의 허점은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연환으로 이어졌으며 간혹 찰나의 순간에 틈이 생겨도 그녀는 공간에다 작은 블랙홀을 만들어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의 드래고니아는 어느 순 간부터 한번도 충돌음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대기를 할퀴는 그들의 기운 이 갈수록 거세져 충돌 한번 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대기를 두들기는 기운만으로도 상대의 몸에 어느 정도 충격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검이란 상대를 상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목적을 항시 잊지 않는 것이 무정한 검이었다. 그리고 아미르와 스테판의 드래고니아들도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콰콰콰! 파스슥! 스테판의 검이 수백 라키르의 파도가 덮치는 거력이라면 아미르의 검은 그 파도 속으로 소리 없이 파고들어가는 은밀함과 감추어진 강함이 있었다. 파지직! 우르릉! 검과 검이 부딪히기도 전에 강력한 스파크가 터졌고 그것은 상대의 검을 통해 그들의 몸을 감돌았다. 그와 함께 검에서 터져 나오는 뇌성이 마치 천신의 전투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파즈즉! 두 공격이 부딪혔다. 그러나 예상했던 강력한 충격음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가 녹는 듯한 소음이 터졌고 거력을 품고 있던 스테판의 검이 점차 와해되었다. 그리고 은밀함 속에 강함을 숨기고 있던 아미르의 검 역시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허나 그들의 검이 힘을 잃을수록 주위에 있던 고니아들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고니아들은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고오오오오! 드래고니아는 엄청난 속도로 고니아들이 들어오자 고성을 발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미친 광풍을 사방으로 뿌려대었다. “크르르!” “캬오오!” 푸욱! 검을 맞댄 상태로 서로를 노려보던 아미르와 스테판은 강력한 바람에 몸 이 날려가려하자 괴성을 지르며 땅에 발을 박아 넣어버렸다. 허나 바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매섭게 변해 그들의 얼굴을 때렸다. 츠측! 바람이 날카로워지면 명검보다도 날카로워 진다는 말이 있듯이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바람은 그들의 얼굴을 할퀴기 시작했다. 허나 스테판의 몸은 일반인과 차원을 달리하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어 얼굴에 조금의 상처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미르는 비록 단련했다고는 하나 스테판처럼 철면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심하게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얼굴이 바람에 베였다. 거기다 그 것도 모자라 바람은 그녀의 얼굴 한 겹을 벗겨버렸다. 펄럭! 파스슥! 벗겨진 피부는 허공에서 활짝 펴졌고 그와 동시에 그것은 대기를 지배하고 있던 거력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린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깜짝 놀랐다. 여자라면 얼굴에 목숨을 건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린이었다. 비록 못생긴 얼굴이라 하더라도 피부가 벗겨지진 않았기에 인간으로 봐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피부가 벗겨져 근육만 남 게 된다면……. 이런 생각이 들자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린은 이 모임 의 리더였다. 진이 빠졌기에 그 자리를 자신이 메워야 했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린은 우선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안력을 돋우어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린이었다. 린이 황당함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도 고니아들은 쉴 새 없이 그들의 드래고니아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고성도 바람도 사라져 그들 주위는 무풍지대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붉은 빛을 토해내던 그들의 눈이 원래대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스테판! “누구세요?” 퍼억! 황당무계한 스테판의 물음에 아미르의 아미가 찌푸려졌고 그녀의 주먹은 스테판의 복부를 뚫고 있었다. “커헉!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미르는 스테판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생각해 주먹을 올리다 선선한 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깜짝 놀란 아미르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보았고 한숨을 쉬었다. 쓰고 있 던 인피면구가 벗겨졌던 것이다. 한편 스테판은 ‘눈앞의 미인이 누구일까?’라는 화두를 가지고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가 상념에 빠져있을 때, 이미 정신을 회복한 린이 드래고아니에 목소리를 실어 전달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다. 너희들 머리에 각인된 기법을 상대를 향해 펼쳐라!” 드래고니아를 통해 전달된 린의 음성은 그들의 눈을 또 다시 붉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검이 맞부딪힐 때부터 머리 속에 떠오른 기법을 시전하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렸다. 파아앙! 그들이 기운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그 반동이 만만치 않아 튕겨나갔지만 이내 자세를 잡고 드래고니아에 심어진 기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스테판의 드래고니아는 4개의 드래고니아 중 가장 큰 2 라키르에 육박했는데 그것이 눈 한번 깜짝 할 순간에 반으로 줄어들었고 또 한번 깜짝할 순간에 두 개로 나뉘었다. 스테판은 잠시간 양 손에 잡혀 있는 드래고니아를 바라보다 자연스런 동작으로 허공에다가 수를 놓기 시작했다. 한 손은 뱀처럼 미끄러지듯 유려했으며 또 한 손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그러나 두 개의 드래고니아는 한 곳에다가 화룡점정을 했다. 고오오오! 커다란 거북이를 감싸고 있는 뱀의 형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아미르의 앞에도 위압적인 모습의 청룡이 나타났다. “현무천력무!” “청룡우뢰무!” 그들의 외침과 동시에 현무와 청룡이 빛이 되어 상대에게 쇄도했다. 콰콰콰콰쾅! 그들이 지나간 자리가 파공음을 일으키며 터지는 순간 두 신수가 충돌을 일으켰다. 고오오오오! 기운과 기운의 충돌! 사납게 날뛰는 광풍! 하늘은 우뢰와 비를 내렸다.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서로를 물어뜯기 위해 엉켜있는 청룡과 현무가 있었다. 청룡은 그 위압적인 기세로 뱀과 거북이로 이루어진 현무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에 연신 뒤로 주춤 물러서던 현무가 기습적인 공격을 가했다. “쿠에엑!” 거북이의 형상을 닮은 신수를 감고 있던 뱀의 형상을 닮은 신수가 독아를 빛내며 달려들어 청룡의 목을 물은 것이다. 거기다 그 굵기가 족히 십여 라키르나 할 몸으로 청룡의 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에 청룡은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현무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거북이 형상을 닮은 신수가 두툼한 손으로 청룡의 얼굴을 때려대기 시작했다. 퍽! 퍼퍽! 퍽! 연신 두들겨 맞고 있던 청룡의 아름다운 푸른 빛깔이 점차 연해졌다. 그때, 아미르의 드래고니아가 춤을 추었고 청룡은 그 춤에 이끌려 승천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승천무가 절정에 올랐을 때, 청룡의 두 눈에서 삼엄한 빛이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강력한 번개가 청룡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우르릉! 파직! 파직! 파지직! “쿠에엑!” 청룡의 몸을 감고 있던 뱀의 형상을 닮은 신수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청룡의 몸에서 떨어져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청룡의 몸을 때리던 거북이 형상을 닮은 신수 역시 청룡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청룡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말하듯 대기로 사라지는 뱀의 형상을 닮은 신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거북이 형상을 닮은 신수에게로 돌진했다. 그리고 현무 역시 질 수 없다는 의지를 발하며 물러섰던 거리를 좁히며 청룡에게로 쇄도했다. 콰쾅쾅쾅! 천지가 굉음을 터트리고 대지는 그 아래에 숨어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신수의 분노는 대지를 강타해 사방 수 수키르가 뒤집혀지고 불에 탔다. 린은 화염 안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조용히 응시하다 손을 휘저어 그들 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앞에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미르와 스테판이 있었다. 린은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다 굳은 결의가 담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 힘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그날, 우리는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 이번 화는 좀 긴 거 같네요. 휴우...드뎌 사신무가 다 나왔습니다. 에공...광참을 노렸으나...대략 머리가 다운된 상태인지라...쿨럭!!!! 194화. 업을 수행하는 자, 막는 자. 2 린은 두 사람의 수련을 지켜보다 어느 정도 발전한 모습에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 더 이상 있어봐야 할 일도 없어 산책도 할 겸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발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다 도착한 곳이 바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골짜기였다. “으음?” 린은 뒤집히고 쑥대밭이 되어 버린 골짜기 안에 조금 밖에 썩지 않은 시신들이 있음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부패하는 속도가 이렇게까지 느리다니. 천골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던가?’ 놀람과 의문이 들었다. 또한 금강장원의 무리들이 이 시신들에 아무런 손도 대지 않은 것이 의아해지기도 했다. 사실상 금강장원의 무리들이 떠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시신을 챙기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들이 시신들을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린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신들은 쑥대밭이 되어 버린 골짜기 안에 미약한 냄새를 풍기며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던 린이 정신을 차린 것은 얼마 뒤였다. 그는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신들을 한 곳에 모은 지 얼마의 시간이 되었을까? 린은 시신의 수가 맞지 않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둘, 셋…… 스물 하나! 이상하구나. 형님을 빼더라도 총 스물 세구의 시신이 있어야 하는데, 두 구의 시신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린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구의 시신이 없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싸늘하게 식은 시신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흐음, 진중선 어르신과 북궁신 어르신이 보이지 않는 구나. 혹시 그들이 두 분의 시신만을?” 계속해서 안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이 떠오르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더구나 북궁신은 자신이 사랑하는 소소의 증조할아버지이지 않은가! ‘소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린은 북궁소소에게 괜스레 미안해져 절로 가슴이 아팠다. 이러한 안타까움에 린은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이곳에 이들을 방치해두는 것은 죽은 이들도 원하지 않을 거라며 자위하며 떼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옮겼다. “형님, 이 시체들은 뭡니까?” 고니아로 스물 한 구의 시체들을 허공에다 띄운 상태로 다가오는 린을 보며 스테판이 수련을 멈추고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린은 그에게 뭐라 설명해주려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간단한 말로 그의 물음을 끊어버렸다. “모았던 고니아가 흩어지는 구나!” “헉!” 귀신 같이 알아 맞추는 린을 보며 스테판은 신음을 삼키며 흩어지는 고니아를 붙들기 위해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 모습을 보고 환골탈태한 아미르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으나 아쉽게도 스테판은 눈을 감고 있는지라 그 미소를 볼 수 없었다. 배당된 수련을 마친 두 사람은 눈을 맞춘 뒤, 고개를 끄덕여 서로의 뜻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미르의 강렬한 눈빛에 스테판은 매번 그렇지만 열리지 않는 입을 열어야했다. “저기 형님…….” “무슨 일이지?” “그, 그게…….” 스테판은 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묻자 순간 말문이 막혀 더듬거렸다. 이에 아미르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놈에게 평생을 맡겨야 하나?’ 아직 밝히지 않은 속내지만 그렇기에 더욱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를 알리 없는 스테판은 식은땀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여 아미르에게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볼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허나 심오한 여심을 알리 없는 두 사내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었다. 두 사내의 모습에서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한 사내는 더없이 편안해보였고 또 한 사내는 더없이 불편해 보인다는 것 정도. 결국 미래의 낭군님으로 찜해놓은 스테판을 구하기 위해 아미르가 입을 열었다. “스테판의 말은 우리 두 사람도 기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이제 내려갈 때가 되지 않았냐 하는 거죠.” “…….” 린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스테판에게서 시선을 돌려 예의 무심한 눈으로 아미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스테판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식은땀을 흘려야했다. 그렇게 무심한 눈을 던지고 있던 린이 돌연 시선을 돌리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멀었다.” 두 남녀는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방금 전처럼 식은땀을 흘리기는 싫으니깐!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모래 바람을 뚫고 나가던 세필로스 일행은 밟고 있는 모래를 뚫고 나오는 검을 미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피했다. 그리고 그들은 튀어나왔던 검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에너지 소드를 날려 일순 모래는 벌건 물감에 물들어버렸다. 모래 속에서 죽은 자들은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던 것이다. 휘애앵! 모래산을 옮길 정도로 강한 바람이 갑자기 그들을 덮쳤다. 이에 세필로스 일행은 몸을 돌려 바람을 등졌다. 이때 뒤에서 공격이라도 하면 크게 낭패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허나 그들은 이러한 위험에서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걱! 서거걱! “크아악!” “크헉!” 모래 바람에 몸을 실어 공격했던 수십의 인물들이 어느새 허공에다 쳐진 은사에 몸이 동강나 날카로운 검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무력한 살점과 붉은 피만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나 토막 난 몸에서 흘러내린 피들이 강력한 독일 줄이야! “허어억!” “으으윽!” 하늘에서 떨어지는 피의 찝찝함에 인상을 쓰던 그들은 피가 묻은 곳이 부글부글 끓으며 녹아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 세필로스의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적인 음성이 울렸다. “모두들 독이 퍼지지 못하게 하라!” 그의 말에 그들은 서둘러 독이 묻은 곳을 잘라내고 지혈했다. 그러나 얼굴 등 잘라낼 수 없는 곳에 독이 묻은 자들은 고통에 허덕이며 죽을 수밖에 없었다. 세필로스는 뜻하지 않은 죽음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잔혹한 손속에 치를 떨었다. “네 이놈! 내가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크게 분노한 세필로스는 살아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성으로 이동했다. 얼마 뒤, 그들은 굳게 닫혀 있는 성문 앞에 도착했다. “타일리! 네 놈의 금제가 풀린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를 피할 셈이냐?” 세필로스가 기운을 일으켜 목소리에 실자 대기가 요동쳤다. 그러나 타일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심히 분개한 세필로스가 검을 휘둘러 수십 겹을 겹쳐 만든 철문을 부서 버렸다. 쾅! 굉음이 터짐과 동시에 거대한 철문이 종이 구겨지듯 구겨져 성 안쪽으로 튕겨나갔다. 이에 성문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의 사람들이 그 철문에 죽임을 당했으나 세필로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 오늘 더러운 피로 목욕을 할 것이다.’ 평소 온유한 성격이나 화가 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세필로스였기에 지금의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필로스 일행은 뻥 뚫린 성문을 지나 커다란 대로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후후, 이 정도 인원으로 나를 막으려 했단 말인가? 타일리여 왜 이리 어 리석은가?” 자신들을 포위한 인물들을 훑어본 세필로스가 비웃음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들을 에워싼 인물들은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했다. 가히 압도적인 기도를 보이고 있는 세필로스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주위에 있는 백여 명의 사내들 역시 엄청난 기도를 보이고 있어 절로 숨이 막혀올 지경이었다. “후후, 일단은 이 자들부터 처리해야겠군.”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세필로스가 낮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대기를 요동치게 만드는 대소가 멀리서부터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하하!” 성의 끝에서 울린 대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세필로스 앞에 은발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 뒤, 일단의 무리가 그의 뒤에 시립했다. 은발의 사내는 그들을 잠시 일변한 뒤, 고개를 돌려 세필로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 은발의 사내의 정체가 밝혀졌군요. 본래 이 은발의 사내가 세필로스로 오해한다는 스토리였는데...쩝...설정이 많이 바껴서...어쩔 수 없네요. 195화. 업을 수행하는 자, 막는 자. 3 사막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참으로 힘든 환경을 가지고 있다.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낮과 오한이 들 정도로 매서운 한기를 날리는 밤. 극단적인 기온 차는 사람의 체력을 빠른 속도로 앗아가기에 일반 장정도 견디기 힘든 곳이 바로 사막이다. 하물며 심한 부상을 당한 사람이라면 사막은 더욱 잔인해진다. 휘위잉! “크헉!” 모래바람이 한번 불자 세필로스는 신음을 토했다. 갈라지고 찢어진 피부 안으로 모래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으헉!” 발이 푹푹 빠져 안 그래도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은데 엄청난 고통이 정신을 헤집어놓자 세필로스는 그만 중심을 잃고 가파른 모래산을 굴렀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 세필로스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푸욱! “헉헉헉! 쿨럭!” 경사가 완만해지고 평평해지자 세필로스는 더 이상 구르지 않고 뜨겁게 달궈진 모래에 몸이 파묻혔다. 그리고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신경 쓸수록 그의 몸은 자꾸만 나빠졌고 결국 내장이 섞인 피까지 토했다. 그가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토하다 보니 내장이 뒤섞인 피는 그의 얼굴 주변으로 퍼져 매우 역겨운 기분을 주었지만 지금의 세필로스에게 그러한 감정은 사치였다. 세필로스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온 몸을 태울 듯한 태양을 가리는 것이었다. 허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태양을 가린다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세필로스는 죽음의 막바지에 이르자 왠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동생인 타일리를 견제하던 30여 년의 시간이 허무해지기까지 해 헛웃음만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며칠 전 전투가 떠오르자 공허한 웃음은 싸늘하게 변했고 급기야 그의 몸이 두려움으로 떨기 시작했다. ‘그,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세필로스는 감겨오는 눈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전투를 떠올리며 스르륵 잠에 빠져 들어갔다. 세필로스는 그와 함께 온 백여 명의 마스터들을 보며 듬직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어이없게 죽은 이들이 눈에 밟히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지금, 비축해두었던 힘을 이번 한번에 터트리려 한다. “발동!” 세필로스가 한 손을 척 올리며 힘차게 외치자 그의 뒤에 있던 백여 명의 마스터들이 스피핏 트랜스를 시전 했다. 순간 빛이 터지고 다채로운 스피릿 트랜스가 암흑의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 기운을 터트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상대의 반격이 없었다. 이에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미 발동한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엄청난 기운에 죽어가는 적들을 보니 의문보다는 오히려 안도가 되었다. 빛의 힘을 가진 자신과 달리 암흑의 힘을 가지게 된 타일리가 무슨 짓을 할 지 몰랐기에 속으로 엄청 긴장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백여 명의 마스터가 한번에 힘을 터트린 스피릿 트랜스는 세필로스 자신이라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짓던 타일리 역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천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비명도 없었다. 워낙에 기습적인 공격이었고 모두가 숨을 들이마시려는 그 찰나의 순간의 틈을 끊었기에 그들은 일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다한 백여 명의 무인들의 스피릿 트랜스. 이것을 막을 자는 인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성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콰쾅쾅! 콰지직! “으아악!” “사, 살려줘!” 근처에 있던 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고 건물 안에, 혹은 뒤편에 있던 자들은 비명이라도 비르며 죽었다. 그리고 철저할 정도로 무너지는 암흑의 성이었다. 세필로스는 무척이나 허무했다. 내심 어느 정도 기대한 바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한 결말이라니. 시체조차 찾아보기 힘든 그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폐허로 변 해버린 성의 잔해만을 보는 세필로스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아, 수고했네. 모두들 돌아가세.” 세필로스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백여 명의 마스터들에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자신의 감각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으음, 이, 이건?’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반발심이 절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그것은 바로… 탑 안에 있던 두 힘 중, 암흑의 기운이었다. 본래 자신이 가진 기운과 하나였으나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많은 무리가 따른 그 힘. 세필로스가 그렇게 말렸으나 타일리는 그런 그를 뿌리치며 기어코 얻었던 암흑의 힘.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설마?” 세필로스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마스터들을 바라보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경악의 신음을 터트렸다. “으헉!” 방금 전까지 있었던 폐허로 변해버린 성이 없어진 것이다. 마스터들은 세필로스의 신음에 불길함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 역시 세필로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변했다. 그때였다.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더 반짝이는 은발을 가진 타일리가 나타났다. “타…일리!” 세필로스는 ‘아차!’ 싶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타일리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멍한 표정의 세필로스를 잠시 바라보던 타일리가 무심한 눈을 광기 어린 눈으로 바꾸며 말했다. “크크크, 금제 안에 또 다른 장치가 있었다는 것을 내가 몰랐으리라 생각했나, 잘난 형님?” “네, 네가!” 타일리의 말에 세필로스는 너무도 분해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러나 그의 분노는 타일리의 손짓에 나타나는 수십의 사람들 때문에 싸늘히 가라앉았다. 그들의 눈은 죽어 있는 자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분명 죽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 놀라울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있다!’ 비록 힘을 많이 쏟았으나 상대는 백여 명의 마스터들과 그랜드 마스터인 자신이다. 그런 상대에게 고작 수십의 인원으로 맞선다는 것은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타일리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세필로스는 불안했다. 세필로스는 더 이상 있다가는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잡아먹혀 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전의 용사이며 그 누구도 존경해 마지않는 자신이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 우스웠지만 그는 자신의 감각이 말해주는 것을 믿었다. ‘일격에 끝내야 한다.’ 이번에도 환상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방금 전, 자신이 속았던 환상 속의 타일리와 눈앞에 있는 타일리의 존재감은 너무도 달랐다. 그렇다 보니 환상에 속은 자신에게 너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못 알아봤을까?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을 수백 번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간다!’ 마음을 다잡자 눈빛부터 달라졌다. 그리고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이 굳어있던 몸을 최상의 것으로 바꾸어 주었다. “천지멸절!” 세필로스의 검이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듯 하더니 어느새 땅을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점한 그의 검이 이르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콰아앙! 하늘이 놀라 부르짖고 땅이 그 힘에 뒤집혔다. 그리고 타일리 등을 향해 뻗어가는 항거할 수 없는 힘. 그것은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기마저 숨죽일 정도로 거력을 품고 있었다. 세필로스가 천지멸절을 쓰기 직전, 꼭두각시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던 그들이 세필로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렬로 늘어선 그들이 천지멸절의 기운이 다가오는 순간 찰나의 간격을 두고 자신의 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콰쾅쾅쾅쾅쾅쾅쾅쾅쾅! 그들은 거의 동시에 자신의 몸을 터트렸다. 그리고 테일리를 향해 날아가던 천지멸절의 기운이 점차 해소되기 시작했다. 이에 당혹한 세필로스는 기운을 더욱 끌어올렸으나 지옥멸겁의 공간을 잡아먹는 힘이 세필로스의 천지멸절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크헉, 쿨럭!”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지옥멸겁의 기운을 세필로스는 감당할 수 없었다. 설마 저들이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몸을 터트려 기운을 해소시킬 줄이야! 이렇게 악독한 짓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세필로스였다. 이렇게 세필로스가 당혹해 할 때, 그의 앞을 막는 백여 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에서 비밀리에 육성된 마스터들이었다. 세필로스는 아주 짧은 순간 그들 모두에게서 삶의 초탈한 미소를 보았다. “안돼~!” 그러나 그들은 세필로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전진하며 남은 기력을 다해 스피릿 트랜스를 시전 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펑펑펑펑펑펑펑펑! 기운이 서로 부딪히며 대기를 진동시키는 마찰음이 터졌고 그것도 한계점에 달하자 대기도 그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타일리의 양 옆에 수많은 고수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손에서 스피릿 트랜스가 터져 나왔다. 순간 사막을 뜨겁게 달구는 태양도 기운의 충돌에서 터져 나온 빛에 눈을 감았다. 너무도 강렬한 빛이었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기운이 상상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불과 1 수키르 정도. 그렇기에 1 수키르 안의 모든 공간 안에 있던 사막은 사막이 아닌 지옥으로 변해버렸고 그 충돌의 여파로 그들 뒤의 사방 십여 수키르가 죽음의 대지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누구하나 여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는 순간 상상을 불허하는 기운에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소멸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악!” 백여 명의 마스터들과 세필로스의 얼굴은 보기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혈관이란 혈관은 모두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고 검을 들고 있는 그들의 팔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또한 그들은 기운의 여파를 완전히 해소할 여력이 없는지라 몸을 할퀴고 상처 입히는 무형의 칼날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모습은 완벽한 혈인으로 변해 있었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세필로스는 ‘이제 이렇게 죽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평소 무뚝뚝하나 믿을 만해 안젤리나의 호위를 맡겼던 벌핀치가 뒤로 슬쩍 물러나며 자신의 몸에 뭔가를 붙였다. 이에 이상함과 불길함을 느낀 세필로스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벌핀치를 필두로 모두가 힘찬 음성으로 외쳤다. “안녕히 가십시오!” “안…” 번쩍! “…돼!” 세필로스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내가? 왜?’ 깨어나자마자 드는 회의감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그렇게 자기비하에 빠져있던 세필로스는 전과 다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꼈다. ‘내 몸이 왜 이러지? 설마, 그들은 죽어서도 내게 힘을 전했단 말인가?’ 워프를 할 때, 기운에 녹아가는 그들을 보았다. 이에 눈물을 머금고 살아서 돌아가리라 다짐했지만 분노한 타일리가 공간을 때려 공간이 일그러지며 워프도 제대로 되지 못했고 심한 내상까지 입어버렸다. 더구나 자신이 떨어진 곳은 죽음의 사막이었다. 그래서 삶을 포기했었다. 그러한 그에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떠오르는 생각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일 수밖에. 그리고 그들의 복수를 하리라 다짐하는 세필로스였다. ‘내 자네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네!’ 세필로스가 그렇게 다짐하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내용과는 달리 무감정한 음성이라고 세필로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하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자네가 내 몸을 치료해주었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맙네. 이 은혜 꼭 잊지 않겠네.” “별 거 아니니 그리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붉은 머리의 청년의 말관 달리 사실 세필로스를 구한 약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옆에서 심통 난 표정을 짓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 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여인은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겼으며 얼굴선도 매우 갸름해 쉽게 볼 수 없는 미인임에 분명했다. 거기다 몸매 또한 잘 빠지고 볼륨감이 있어 시정잡배들이라면 침을 질질 흘리며 추파를 보낼 정도였다. 허나 그녀의 눈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오금이 저려 처음에 했던 생각을 접어야 할 것이다. 영롱한 붉은 빛깔을 이루는 사납고 광포한 그러면서도 그것을 절제하는 싸늘한 기운! 이 붉은 눈을 보고도 헛된 망상을 품는 자가 있다면 그 는 어떤 의미론 매우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녀라도 어려워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그녀의 오빠인 이 붉은 머리칼의 사내였다. 사내가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눈에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할 세필로스가 아니었다. “험험, 자네 이름이 뭔가?” “스라이드 레이터라고 합니다.” “호오, 무채색의 사냥꾼이라는 친구구만. 나는 믿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애드윈 더 세필로스라고 하네.” “예?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이시며 현존하는 최강의 무인이시라는 애드윈 더 세필로스님이시라고요?” 레이터는 너무도 놀라 목소리를 높여 처음으로 감정을 표시했다. 이에 씁쓸한 미소를 지은 세필로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터가 모래바닥에 무릎을 박으며 인사했다. “은공을 이제야 뵙습니다.” “…은공을 이제야 뵙습니다.” 그의 옆에 있던 여인은 한 박자 늦게 사내처럼 무릎을 꿇으며 인사했다. “은공이라니?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허허허, 은공이라 말해야 할 사람 은 바로 나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먼.” 세필로스는 이들 남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에서 조금의 거짓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우스개 소리로 넘길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노련한 언변으로 그들이 먼저 입을 열게 만들었다. “아~! 저희 부친께서는 삼십여 년 전, 르샨티우 대전에서 은공께 목숨을 구함 받았다고 저희는 들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은공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때 은공께서 저희 아버지를 구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르샨티우 대전이라…….” 세필로스는 당시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해키에스 지로브와 결전을 벌였던 르샨티우 대전을 떠올리며 감회에 빠졌다. 그 당시 자신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긴 했었다. 그러나 그들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사내의 붉은 머리칼과 낯익은 눈매, 그리고 방금 전에 들었던 ‘스라이드’라는 성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 아버님의 성함이 스라이드 레슈일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레이터가 감격한 음성으로 대답하자 세필로스가 미소 지었다. “그랬었군. 어쩐지 닮았다 했어. 워낙에 오래전 일이라 한 순간 떠올릴 수 없었지. 그래,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나?” “…… 돌아가셨습니다.” 세필로스는 레이터의 대답에 흠칫했다. 그리고 괜스레 이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만 같아 미안했다. “어쩌다가…….” “마을에 침입한 몬스터들을 물리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아~!” 세필로스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레이터가 무채색의 사냥꾼이라 불리는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험험, 그래 그랬었군. 안타까운 일이야. 그런데 옆에 있는…….” “아~ 레이카야 인사 드려라!” 슬픔에 잠겨 있던 레이터는 세필로스의 은근한 물음에 금세 정신을 차리고 레이카에게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스라이드 레이카라고 합니다.” “그래, 그래. 그 친구에게 이렇게 훌륭한 자식들이 있으니 하늘에서도 흐 뭇해할 거야.” 세필로스는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더 이상 말할 거리도 없어지자 일순 그들은 멀뚱히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 이 모습이 세필로스는 재밌었는지 웃음을 흘리다 뭔가가 떠올라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서 이야기하세. 나를 쫓는 자들과 조우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많은 말을 묻고 싶었지만 세필로스의 얼굴에 언뜻 다급한 기색이 어리는 것을 본 레이터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사막에는 자카드라는 희귀 몬스터가 목 없는 시체로 모래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마도 레이터와 레이카가 사막에 온 이유가 이 자카드 때문인 듯 했다. 그들과 몬스터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196화. 리오스는 죽었다. 1 “흐음, 그가 이곳으로 오고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의 이동경로를 보아도 목적지는 이곳이 분명한 듯 합니다. 아마도 그는 리오스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는 거 같습니다.” 올리테리어의 묵직한 저음은 언제나 신뢰감이 갔다. 프린샤 역시 그의 생각이 틀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한동안 억눌렀던 장난기가 발동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리오스의 실종소식은 이미 그의 부모에게 전달되었지 않은가?” “그, 그건…….” 순간 올리테리어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자신도 생각한 것을 프린샤가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물음에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겐 그런 권한은 부여되지 않았으니깐. 프린샤는 강철 인간이라고 불리는 올리테리어가 당황해하자 우습기도 하고 그를 더 이상 놀리기도 뭐해 재빨리 말했다. “뭐, 조심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지.” “그, 그렇습니다.” “하하하, 자네의 이런 모습을 카오시어스의 무인들이 본다면 아마도 매우 놀랄 걸세.” 프린샤의 농에 한껏 굳어있던 올리테리어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던 라젠티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왔을 때, 평소대로 처리할 것입니까?” “으음, 그건 좀 어려울 거 같군요.” 프린샤는 라젠티오의 말에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자신이 들어온 바로는 그는 현존하는 무인 중 최강급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아직 완전히 소화하지도 못한 마성으로 지배하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올리테리어 경의 말처럼 그가 자신의 형을 찾으러 이곳으로 오 는 것이 맞다면 분명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분한 음성이나 그 말에는 일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마력이 있었다. 이것은 프린샤의 지배의 마성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라젠티오 역시 자신의 말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한편 프린샤는 라젠티오의 말에 고심하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기론 그와 그의 부모가 만난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 그 안에 리오스의 소식을 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 일거고. ‘으음, 그렇단 말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리오스의 죽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인데.’ 일단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자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체계적인 계획이 라젠티오와 올리테리어에게 전해졌다. 메테르티아 시는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옷차림이 화려한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까지 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근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던데, 내가 변한 것만큼 이곳은 달라지 지 않았구나.’ 진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작 은 왕국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고작 8년이란 시간으로 무언가 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젤리나는 진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새어 나왔다. ‘후후후,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애라니깐!’ 제국 전역을 쩌렁쩌렁 울렸던 올슈레이 기사단 단장이라는 모습은 지금의 진에게서 찾아보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좋은 안젤리니였다. ‘이제 시아주버니만 만나게 되면 지치고 힘들어하던 진의 짐이 조금은 가 벼워지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진은 안젤리나가 기분이 좋아보이자 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허나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배고픔은 막을 수 없었다. “리나, 배 안고파?” “후후후, 그 말 들으니 안 고팠던 배가 절로 고파지네요.” “그, 그래?” 진은 안젤리나의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 따뜻한 그녀의 눈빛에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뒤, 꽤 커다란 식당을 발견한 진이 눈을 빛내며 그녀를 데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쇼! 손님은 두 분이십니까?” “메인 요리를 부탁합니다.” 진은 싹싹한 종업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안젤리나는 절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식당에만 들어가면 하는 말이 똑같은 진의 모습과 그가 왜 이렇게 식사를 시키는지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 말이지. 사부님이랑 형과 같이 다닐 때, 매번 음식을 못 골라서 종업원에게 부탁했거든. 그것도 한참이나 고민한 뒤 부탁을 했기에 매번 꾸중 듣기 일쑤였어. 심각할 정도로 우유분단하다고. 그렇다 보니 이제는 식당에만 가면 자연적으로 이렇게 주문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뭐, 메인 요리가 제일 먹을 만 하니깐 후회할 일도 없고, 하여튼 그랬어.” 안젤리나는 여행을 시작한 얼마 뒤, 진이 했던 말이 떠올라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웃, 호호호호!” “왜, 왜 그래?” 진은 그녀의 얼굴로 피가 모이다 그것이 한 순간 터지는 느낌을 받아 심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안젤리나는 그의 의아함을 풀어줄 마음이 없는 듯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별 일 아니에요.” 눈이 호사를 누릴 정도의 미인이 혀를 쏙 내밀며 이렇게 말하는데 어느 남자가 추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도 예외가 아닌지라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하는 진이었다. 얼마 뒤, 메인 요리가 나와 잠시간 어색했던 공기도 금세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진은 메인 요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오오오, 이 붉은 소스는 어떻게 만드는 거지 ? 달콤하면서도 새큼한 게 살짝 익힌 닭 하고 너무나 잘 어울려. 거기다 밥에다 소스를 비벼 먹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니 정말 맛있어!” “정말 그렇네요. 나중에 이렇게 한번 만들어봐야겠어요.” “윽! 설마 진짜로 해 볼 생각인 거야?” “왜요? 그러면 안 돼요?” “아니, 그건 아니고…….” 할 말이 궁색해진 진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묵묵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런 진의 모습에 안젤리나는 살포시 미소 지으면서도 남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고 보라고요. 여기 보다 훨씬 맛있는 닭고기를 만들어 보일 테니!’ 요즘 들어 식당에만 가면 이렇게 다짐하는 안젤리나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들 테이블을 제외한 모든 테이블에서 공통된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한 학자 무리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자네 들었나? 3일 후에 있을 추모식 말이야.” “당연하지. 그 당시 초고대 문명의 유적지라고 우리 고고학자들이 얼마나 들떴었나? 그곳을 탐사하기 위해 떠났던 수많은 고고학자들! 비록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 의기만은 우리 모두에게 전해지지 않았나?” “그래, 그런 그들을 추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지.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면 그 당시 고고학계에 신성으로 떠올랐던 올슈레이 리오스도 그 유적지에서 죽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진은 맛있게 음식을 먹다 한 학자의 말에 멈칫했다. 그리고 살을 바르던 나이프가 떨리기 시작했다. ‘올슈레이 리오스도 그 유적지에서 죽었다!’ 다른 말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말만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하하하, 올슈레이 리오스라? 세상에는 같은 이름,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그러나 같은 이름, 같은 성을 가진 자, 그리고 같은 직업, 특히나 고고학자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는 드물 것이다. 더구나 신성이라 떠받쳐질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라면 더더욱 더 드물 것이다. 콰지직! 손바닥으로 내려친 식탁은 아직 다 먹지도 못한 음식들과 함께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어느새 학자들 앞에 나타난 진이 붉게 변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올슈레이 리오스가 죽었다고 했는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나, 이미 감정이 실리다 보니 식당 안은 무겁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공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와들와들 떠는 식당 안의 사람들. 그것은 눈앞에 있는 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진정하세요.” 안젤리나는 영문은 알지 못하나 진이 학자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그를 끌어안으며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허나 진에게는 안젤리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말하라! 너희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나의 형은 가볍지 않다! 너희들이 거짓을 말했다고 어서 말하란 말이다!” 퍼펑펑! 꽈지직! “으아악!” “엄마!” 진이 분노하자 건물 자체가 강한 충격에 부서지고 터졌다. 그러나 그도 마지막 이성은 붙잡고 있었는지 사람들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미미한 경상은 입었을지언정 죽은 이는 없었다. “이건 당신의 모습이 아니에요. 제발 돌아오세요!” 안젤리나는 당혹스러웠지만 진을 더욱 힘껏 끌어안으며 간절한 염원을 담아 힘껏 외쳤다. 이런 그녀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붉게 변한 진의 눈이 점차 다크 블루빛으로 돌아왔다. “…… 하아! ……정말 죄송합니다.” 학자들은 진의 돌변한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진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깐. 그것보다 이들에게 아까 하려던 말을 계속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꽉 안았던 손을 풀며 옆으로 다가온 안젤리나가 한 말이었다. 진은 이런 안젤리나가 너무도 고마웠다.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모습. 그렇기에 그녀에게 사랑을 담은 미소를 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은 그녀에게 미소를 보낸 뒤, 학자들을 보며 말했다. “방금 전 일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추모식이 있다고 하더군요. 유적 탐사를 떠났던 고고학자들을 위한 추모식인 거 같은데, 그 중에 올슈레이 리오스라는 학자의 이름이 들어있던데……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마지막 말을 할 때의 진은 진실로 자신이 잘못 들은 거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런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진이었다. “제 생각으로는 잘못 듣지는 않은 신 거 같군요.” 멍하니 있던 학자들 중 한명이 이렇게 말하자 진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허나 진은 이를 믿기가 싫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 히 말했다. “그럼, 그 올슈레이 리오스라는 고고학자의 나이는 많겠죠? 유명하신 분이니 나이가 많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이십대 중반 정도 되었 을 것입니다. 그 당시 최연소 나이로 유적 탐사에 참여했다고 들었으니깐요.” 쿵! 진은 눈앞이 흐릿해지는 거 같았다. 그리고 뒤이어 말하는 고고학자의 말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순간 하늘이 뒤집히고 온통 암흑으로 뒤덮이는 듯했다. “진~!”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진을 붙잡으며 안젤리나가 외쳤다. 그러나 너무도 엄청난 충격에 진은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이제 마지막 남은 혈육인 형도 죽었다. 이러한 사실은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워하던 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에공...간만에 한편 올리네요.^^ 여기에 나오는 메인 요리...붉은 소스에 닭고기... 사실... 저희 어머니의 필살의 요리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요리이기도 하죠. 닭고기로 만드는 몇 가지 요리가 더 있긴 하지만... 쉽게 만들면서도 맛있는 것으로는 이 요리만한 게 없죠. ㅎㅎㅎ 197화. 리오스는 죽었다. 2.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들, 이 땅의 옛 기억을 찾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그들, 지금 267명의 숭고한 영혼을 가진 고고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며 후세에 그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초고대 문명의 유적을 찾게 되면 그것으로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도록 합시다.” 제단 위에서 경건한 음성으로 외치는 사내의 말에 메테르티아 시민들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감성이 예민한 여느 아녀자들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것도 식에 방해가 될까봐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인지라 더욱 안쓰러워보였다. 진은 멍한 모습으로 추모식을 지켜보았다. 그런 진을 안젤리나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얼마 뒤, 추모식도 거의 다 끝나가는 이때, 마지막 순서인 화염식이 시작되었다. 이는 정열적인 영혼을 가진 그들을 하나씩 호명하면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허공에 띄우는 의식이었다. “쿠히루 조세판!” 메테르티아 아카데미의 교장이었던 조세판을 시작으로 붉은 불꽃은 허공으로 띄워졌다. 그리고 불꽃은 공중에서 아름다울 정도로 밝게 빛을 내었다. 허나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이었는지라 아름답지만 비명횡사한 그들의 모습이 불꽃의 모습에 투영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메테르티아 시민들의 감성을 건드려 그때부터 광장은 때 아닌 눈물바다가 되어버렸 다. “피요르티 드로르!” 또 하나의 불꽃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이 사라졌다. “올슈레이 리오스!” 의식적이었는지는 모르나 제단에 있는 사내가 고깔을 뒤집어 놓은 듯한 통에서 불꽃을 끄집어내는 모습이 사뭇 달랐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역시 이전의 것과는 달랐다. 툭! 불꽃이 허공에 띄워졌다. 그리고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려 했다. 끼오오! 그때였다. 리오스의 이름을 부르며 던졌던 불꽃이 돌연 봉황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봉황은 얼마 가지 못하고 소명해버렸으니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터트린 리오스의 모습에 모두는 절로 숙연해졌다. “크흑, 혀엉! 으엉엉엉엉!” 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울음은 다른 사람들의 울음에 묻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모든 추모식이 끝나고 조용하나 나름의 활기를 뛰고 있는 축제가 열렸다. 축제의 주요 상품은 고고학에 관련된 상품이었고 그 업적이 뛰어났던 고고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목걸이는 그야 말로 인기 상품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오세요~” 진은 리오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목걸이를 샀다. 그리고 환한 미소로 환대하는 점원을 무표정한 얼굴로 힐끔 본 후, 올슈레이 리오스라는 글자를 손으로 매만졌다. ‘형, 정말 죽은 거야?’ 세심한 그의 손길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돌아갔다고?” “그렇습니다.” 올리테리어의 보고에 프린샤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자신은 세상을 뒤엎어 버릴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한 사람이 두려워 이렇게 움츠려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메테르티아 시민들을 자신의 꼭두각시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지배의 마성을 너무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은 자중할 때였던 것이다. 그가 그런 생각에 씁쓸해할 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조르단 라젠티오였다. “표정이 좋지 않으십시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젠티오의 말에 프린샤가 재빨리 안색을 고치며 말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젠티오가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 정도 되는 자를 수하로 만들 수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짐짓 ‘정말 안됐다.’는 표정을 짓는 라젠티오를 보며 프린샤는 속이 메스꺼워졌다. 비록 자신이 라젠티오와 손을 잡았다고는 하나 그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단지 업의 힘을 가진 자들은 힘의 종류를 떠나 그 힘의 숙련도에 따라 상대적 우위를 보이니 지금은 참을 뿐이었다. 이런 프린샤의 기색을 눈치 챘는지 라젠티오가 돌연 정색을 하며 말했다. “듣자 하니 소모한 지배의 마성을 채우려면 시간이 꽤 있어야 한다죠?” 프린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젠티오가 이어서 말했다. “그렇담 저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본 사업에 관심도 좀 두면서 쓸 때 없이 상대만 노려보는 그들을 좀 건드려주어야겠군요. 그래야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겠나요? 아~ 그리고 한 가지 오해하고 있을 까봐 이야기하는데 저는 황제의 자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이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쾌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말을 끝맺은 라젠티오는 프린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방을 나섰다. 그런 그를 프린샤는 섬뜩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놈이 나의 자리만 노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생할 것이다. 허나! 그 생각이 변한다면…… 상대가 그 누구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4대 공작가는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제국의 모든 상권을 움켜쥐고 있는 조르단 라젠티오였다. 그의 방문은 매우 은밀하여 눈을 빛내며 공작가를 살피는 데이릭 일파의 눈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은밀함이다 보니 4대 공작은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순간 당황스러워했다. 퉁! 커다란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자 꽤 큰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4명의 공작은 자연적으로 시선을 보따리로 몰렸다. 촤르르륵! 그런 그들의 시선을 즐기며 라젠티오가 묶었던 매듭을 풀었다. 그와 함께 보따리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황금들! 순간 4명의 공작의 눈은 탐욕으로 일렁거렸고 그 추악함은 섬뜩한 뭔가 를 느끼게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라젠티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추악한 욕망은 온 몸에 전기를 감전시키는 느낌보다 훨씬 짜릿해!’ 라젠티오는 자신의 생각이 변태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짐작도 못했다. 아니, 이런 자신의 변화를 그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만 해도 욕망의 속삭임을 자신의 힘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 속삼임에 자신마저 넘어가버렸으니. 결국 인간이란 욕망의 속삭임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라젠티오는 아무리 짜릿한 장면이라도 몇 초 정도 보니, 금세 식상해져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여기 온 목적이나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명의 공작의 눈은 여전히 탐욕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욕망이 최고로 날뛰고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욕망의 속삭임은 큰 힘을 발휘한다. -이까짓 돈은 데이릭 그놈들을 없애버리고 들어오는 돈에 비하면 솔직히 아무 것도 아니야!- -옆을 봐! 모두가 이 돈을 탐내고 있어! 그리고 너만의 제국을 차지하려 고 눈을 번득이고 있어! 그러니 항시 긴장을 잃지 말아야 할 거야!-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데이릭과 함께 이들을 모두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는 거야. 그러면 제국은 너의 것이고, 눈앞에 있는 황금의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배가 넘는 것이 너만의 것이 될 거야.- 욕망의 속삭임은 비슷한 내용을 조금씩 바꾸어서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욕망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 속삭임의 내용은 한결 같았다. -데이릭과 나머지 녀석들을 없애고, 네가 황제가 되어라!- 황제! 선택받은 존재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운무에 가려진 신룡 같은 존재!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황제는 이러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보고 그런 황제가 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4명의 공작의 생각은 하나 같이 같았다. 잠시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전쟁은 4명의 공작의 탐욕에 잔혹한 불꽃을 터트렸다. 전쟁의 시발점은 알틴 드 사트오 자작이 있는 아로니아 시에서 터졌다. “적의 공격이다!” 적을 살피던 보초병은 그 한마디를 하고 목이 댕강 잘려 죽었다. 그리고 흡사 인간의 물결을 보듯 많은 수의 군사들이 아로니아 시를 짓밟았다. “이 악마 같은 놈들, 크악!” 전쟁과는 무관하다면 무관할 수 있는 일반백성들은 그들의 잔혹한 손속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목을 닦고 차가운 칼날을 기다리는 것이 다였다. 아로니아 시는 금세 화염에 뒤덮였고 군사들은 전쟁이 주는 광기에 미쳐 눈을 희번득거리며 사냥감을 찾아다녔다. 잠시 후, 아로니아 시는 붉은 화염 속에 처절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추악한 짓이었다. 살인과 강간, 그리고 약탈! 전쟁의 패악이 아로니아 시에서 모두 드러난 것이다. “이, 이놈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 평화를 깨려고 하는 것이냐!” 사트오 자작은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일단의 군사들을 보며 노해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사트오의 말에 더욱 미소를 짙게 할 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쩝, 시끄럽군!” 군사들의 대장인 자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트오의 몸은 수많은 칼에 꼬치가 꿰이듯 찔려 죽었다. 그런 그의 눈은 불신과 안타까움,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 아로니아 시는 이렇게 파멸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쟁의 시작일 뿐이었다. ================================================================= 정모 때문에 서울을 갔다왔는데 대략 힘이 드네요. 으음, 기차 및, 버스 및 지하철 안에서 있었던 시간이 12시간 가까이 되는 거 같네요. 휴우, 하여튼 잠에서 깬 저는 새벽에 이렇게 한편 올립니다. 아마도 오늘 중으로 한, 두편 더 올릴 생각입니다. 물론 예정입니다. 쿨럭...오늘 사촌형이 백일 휴가 나오기 땜시!!!! 198화. 리오스 돌아오다. 1 리오스라고 새겨져 있는 목걸이만 쓰다듬던 진이 정신을 차린 것은 메테르티아 시를 나오고도 며칠이 지난 뒤였다. “여긴?” “정신이 들었군요. 여기는 온천으로 유명한 다지니오 시에요.” 진이 정신을 차린 듯 하자 안젤리나는 너무도 기뻐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를 은근슬쩍 말했다. 진도 다지니오 시가 온천으로 유명하며 산세가 수려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방향을 잡은 안젤리나의 마음을 절로 느낄 수 있어 초췌한 얼굴에 미소 한 줄기를 만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 뭐…뭘요.” 순간 안젤리나는 멍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기에 애써 감추려던 두근거림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내가 왜 이러지? 우린 결혼한 부부잖아.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져오는 걸까?’ 안젤리나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안젤리나가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는데 진과 그녀는 서로를 사모한 기간에 비해 연애기간은 극히 짧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지금이야말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얼굴을 붉힌다는 연애의 황금기인지도 몰랐다. 이러한 그녀의 속마음은 짐작도 못하고 진은 흐릿한 운무에 청남색 빛깔을 고고하게 띠고 있는 산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산세의 수려함은 내가 가보았던 다른 곳들보다 훨씬 뛰어나구나. 더구나 이 산을 바라보자면 속세를 떠나고만 싶은 탈속함을 느낄 수 있으며 홀로 있으면서도 외롭지 않으니 고고한 기운까지 느낄 수 있구나. 마치 나의 형 리오스처럼 말이야.’ 진은 또 다시 형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은 여생 동안 형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러한 방법밖에 없으니 그 미소 안에는 슬픈 눈망울이 담겨 있었다. 한편 진이 리오스를 그리워하며 모든 것에 리오스를 투영시키고 있을 때, 정작 리오스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시간과 공간의 왜곡지점을 수십 번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빛이 명멸하며 무채색의 공간이었던 것이 리오스 앞으로 쓰윽 다가왔다. 팍! 그 순간 의식을 잃고 있던 리오스가 두 눈을 떴고 갑작스레 다가오는 공간에 머리가 어질했지만 정신을 굳게 잡고 점차 유채색을 띠고 있는 공간과 뱅글뱅글 돌아가는 공간 속의 시간을 견뎌냈다. 파지직! 콰콰쾅! 리오스의 몸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돌기 시작했고 얼마 뒤, 하늘이 노한 음성을 토하듯 뇌성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리오스는 또 다시 의식을 잃었다. 쏴아아아! “으음…….” 얼마 뒤, 차가운 감촉과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리오스는 신음을 토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에 놀란 듯 화들짝 거리는 포즈를 취했다. “여기는? 서, 설마 내가 정말 돌아온 것인가? 크큭, 크하하하하하하! 내가 돌아왔구나!” 리오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또한 아주 오래 전에 자신을 괴롭혔던 마기도 미약한 정도밖에 없었다. 그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정말 돌아왔구나!” 광소를 터트리던 리오스는 어느새 이성을 되찾고 차분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하늘로 시선을 들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선은 가족들부터 찾아야겠구나.” “으잉?” 리오스는 한 시간 이내에 집에 도착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도 여기가 어딘지만 알고 가는 길만 안다면 숨 몇 번만 쉴 정도면 집에 도착할 수 있기에 한 시간도 매우 많이 잡은 시간이었다. 허나 인간계로 돌아온 지 반나절 째인 지금, 그는 자신이 떨어진 산도 다 내려가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일부러 기운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기운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총천연색인 자연은 그의 눈을 빼앗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고 리오스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가족의 정을 더욱 느끼고 싶었기에 기운을 일으켜 서둘러 산을 내려가려 했다. 허나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마신이 된 그의 기운은 마치 쇠사슬에 꽉꽉 묶인 듯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지?’ 리오스는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일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염두를 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에 각인된 음성이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너의 힘은 단 세 번만 사용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너의 이름이 세 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제기랄!” 음성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도 신비로운 소리에 잠시 멍해있던 리오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며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름이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말은 완벽한 소멸을 말하는 것인데, 너무도 악독한 금제를 가하였군요.’ 리오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했다. 그러나 마신이 되면서 더욱더 좋아진 머리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이곳에도 마기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지. 그들은 바로 흑마법사 불리는 인종이지.’ 그 다음 생각은 보나마나였다. 예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남의 기운을 강제로 뺏는 것은 마기에 익숙해져버려 아니, 마기의 원속성인 태초의 이기심을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그렇지 않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 도 타인의 것을 취할 리오스가 아니었다. 리오스는 짧은 시간 안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모든 계획이 완벽히 세워지자 리오스는 자리에 앉은 뒤, 낮은 소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소성은 마기를 익힌 자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매혹의 노래였다. 나르다는 동료 흑마법사들보다 실력이 뒤떨어져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계획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본거지에서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응? 무슨 소리지?’ 그렇게 그가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귓속으로 쏙 들어오는 낮은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말 같기도 했으며 노래 같기도 했다. 또한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가야 돼!’ 몽롱하게 변한 눈을 한 나르다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얼마 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흑마법사들은 나르다가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 하나에 신경을 쓰는 마법사는 없었다. 리오스는 자신의 옷 안에서 튀어나온 에쉬리온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에쉬리온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놀람은 반가움으로 반가움은 무한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정말 잘 왔다.” 리오스는 에쉬리온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품이 따뜻한지 얼굴을 부비는 에쉬리온이었다. 잠시 뒤, 에쉬리온과 나름의 의사소통을 한 리오스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은 철저하게도 너에게도 금제를 걸어놓았구나.” 씁쓸한 그의 음성에 에쉬리온이 낮은 소성을 발했다. 그의 울부짖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주인님과 같이 있다면야 그까짓 힘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고마워!” 에쉬리온의 말에 리오스가 밝게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나르다였다. “잘 왔다.” 그의 등장에 리오스가 처음 한 말이었다. 그리고 에쉬리온은 이미 들은 바가 있어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주인들 외의 인간은 처음이기에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오스는 에쉬리온의 이런 모습에 실소가 새어나왔다. ‘내가 지옥에 갔을 때, 몬스터들을 보았던 그 눈과 에쉬리온의 저 사람을 보는 눈은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거다.’ 어찌보면 씁쓸한 생각일 수도 있으나, 이미 종(種)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그는 단순히 실소만 흘릴 뿐이었다. “앉아라!” 리오스는 이내 상념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그리고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던 나르다가 그의 말에 조심스런 동작으로 자리에 앉았고 그의 등 뒤로 다가간 리오스는 마기가 느껴지는 등에다 손을 갖다대었다. 웅웅웅웅! 리오스의 손이 등에 대이자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새겨져 있는 마법진이 공명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옷이 터져나가며 밝게 빛나는 마법진을 볼 수 있었다. “시작해 볼까?” 마기를 잠시 음미하던 리오스는 황금빛 눈을 빛내며 의념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나르다의 몸 안에 있던 모든 마기가 리오스의 단전으로 쏙 들어갔다. “으음…… 아단전은 고사하고 단전을 이것밖에 못 채우다니 실망이 큰 걸.” 리오스는 정말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단전과 일반인들이 말하는 단전이란 개념 자체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에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가 얻은 기운이 그렇게까지 적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리오스는 마신이 되면서 온 몸이 단전화 되는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아단전은 우주 자체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단전을 가득 채운 다는 것은 인세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강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휴우, 어쩔 수 없지. 그런데 그것보다 이곳은 이렇게 혼탁한 마기밖에 없 는 건가? 우선은 정제나 해놓자. 그러면 최소한 몇 배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태고의 마기를 사용하던 리오스가 혼탁한 마기를 사용하려니 성에 찰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귀찮지만 마기를 정제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던 흑마법사들이 뭔가 이상을 발견한 것은 자신들의 동료 십여 명이 사라진 뒤였다. ================================================================= 또 다시 잠에서 깬 저는 허겁지겁 글을 써 한편 올립니다. 아마도 지금 점심을 먹고 사촌형을 만나러 가야할 듯 하기에 서둘러 올립니다. ㅎㅎㅎ 199화. 리오스 돌아오다. 2 피는 물보다 진하다. 또한 그 상실감은 온 몸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물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한 큰 타격을 준다. 그 상실감은 인세의 어떠한 포근함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안젤리나의 무한한 사랑과 온 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온천수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젤리나는 진이 온천을 하고 나온 뒤에도 여전히 멍한 상태로 있자 가슴이 절로 답답해졌다. 예전의 그녀라면 뒤통수를 한대 갈기면서 큰 소리로 호통을 쳤을 것이나 지금의 그녀는 진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하아~!” 안젤리나의 한숨은 대로를 걷는 행인들의 걸음마저 붙들 정도로 안타까운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녀의 한숨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앞만 보며 걸어갈 뿐이었다. 이것이 너무도 서운한 안젤리나였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그의 형보다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불쾌한 패배감마저 주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사고를 마비시키는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뒤, 그녀의 얼굴을 싸늘하게 만들며 불같이 화를 내는 것보다 더한 폭발을 일으켰다. “진!” “…….” “진!!” “…….” “진!!! 정말 이럴 거예요?” 두 번이나 불렀으나 대답을 하지 않자 결국 그녀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리며 크게 외쳤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 이 모습에 안젤리나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 당신에게 형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는 죽었어요. 알겠어요? 그는 이미 죽었다고요. 예전처럼 얼마나 고통을 받아야겠어요? 자신을 얼마나 상처 입혀야 분이 풀리겠어요? 그러면 속이 시원한가요? 옆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의 마음만 편해지면 그만인가요? 당신에게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었나요? 흐윽! 흑흑흑!” 처음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도 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이내 그녀의 이성을 잡아먹었고 순식간에 많은 말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안젤리나는 말을 할수록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은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만 멈춰! 제발!’ 그녀는 속으로 힘껏 외쳤다. 허나 이제는 그녀 스스로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너무도 서글퍼진 그녀는 짙은 회의감에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흑흑흑, 으엉엉엉엉!” 결국 다 큰 여인이 대로변 한가운데에서 엉엉 우는 괴사가 발생했다. 이에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진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리, 리나… 왜, 왜 우는 거야?” “뭐라고요? 왜 우느냐고요? 지금 말 다 한 거예요? 으엉엉엉엉!” 안젤리나는 순간적으로 울음을 딱 멈추고 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더욱더 당황한 진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이런 그의 노력덕분인지 안젤리나의 울음이 점차 줄어들었다. “끄윽, 끅. 이제 그러지 않을 거죠?” 안젤리나는 눈물이 맺혀있는 금안으로 진을 보며 절로 안아주고 싶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세상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있던 진도 패배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알았어. 이제 형의 일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게.” “약속하세요.” 안젤리나는 그의 말에 배시시 미소 지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진은 한숨을 쉬면서도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위잉! 진의 목에 걸려있는 리오스라고 새겨져있는 목걸이에서 빛이 터졌다. 그 순간, 진은 전진하던 새끼손가락을 도로 끌어당기며 뭔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형은 살아 있어!” “무, 무슨 말이에요!” 안젤리나는 진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녀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나 진은 이런 그녀에게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목걸이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형은 살아 있어! 이 목걸이가 지금 나에게 그걸 말해주고 있어.” “이, 이 그…….” 안젤리나는 진이 또 다시 병이 도졌구나 하며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나오려던 말이 입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진의 말이 사실인 것만 같은 강렬한 확신을 그녀도 받았던 것이다. “형은 살아 있어! 나는 형을 찾으러 갈 거야!” 진은 말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안젤리나는 진의 돌연한 행동에 너무도 황당했지만 그를 제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예요?” “우리들이 살았던 집!” 그리고 걸음을 빨리하는 진이었다. 리오스는 흑마법사들의 마기를 뺏기 위해 낮은 소성을 발하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 ‘분명 누군가 걸린 거 같기는 한데,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들은 뭐지?’ 비록 힘은 사라졌다고 하나 감각만큼은 특히나 마기에 대한 감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리오스였기에 유혹에 걸린 자를 따라 움직이는 백여 개의 마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오호라, 이제 보니 저네들 딴에는 함정을 파놓은 거구나! 크큭! 귀여운 녀석들.’ 리오스는 눈에 빤히 보이는 얄팍한 술수를 믿고 다가오는 흑마법사들의 재롱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냉정한 머리로 상황을 살펴본 결과 자신이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봉인된 힘을 사용한다면 그까짓 놈들이야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 있지만 나에게 부여된 기회는 단 세 번! 그 세 번을 이깟 놈들에게 사용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 더구나 저 녀석들은 나에게 힘을 줄 훌륭한 먹이감인데 그것들을 죽여 버리면 아까운 힘만 없애버리는 결과가 나오잖아!’ 그의 총명한 머리는 분명 이렇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주의 법칙을 꿰뚫은 리오스가 내린 결론은……! ‘작전상 후퇴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자기합리화를 시키는데 어찌 보면 매우 타당한 이유라 할 수 있었다. ‘인간계로 내려왔으니 그동안 못 보았던 가족들을 봐야 되지 않겠어?’ 마신이 된 후, 은근히 웃겨진 리오스였다. 한편 리오스가 사라져 외톨이가 되어버린 산은 백여 명의 무리를 갑작스레 맞아야했다. 그러나 산은 그들의 방문에 당혹스러울지언정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산은 너무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도 잠시, 뭔가 욕지거리를 뱉던 무리들의 손에서 갑자기 섬광이 터져 나오며 오랜 시간 가꾸어왔던 몸매가 형편없이 망가져버렸다. 산은 그들의 잔혹한 손속에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아직 수련이 모자란지라 자신의 의사를 그 사악한 무리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항의 한번 못해본 산이었다. 이런 산이 너무도 불쌍해서일까? 평소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바람이 산을 위로했다. 위이잉! -세상 사 새옹지마라 하잖아. 나중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새옹지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 합리화의 극치인 고사성어에 산은 크게 감동받았다. 그리고 뒤이어 전달되는 심술 맞은 바람의 의사는 갑자기 난입한 번개에 의해 전달되지 못했다. 위이잉! 우르릉! -뭐, 그 나중이라는 것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야. 히히히!- 산은 번개에게 감사해야 옳았다. “죽어랏!” “크아아아악!” 섬뜩한 외침과 그보다 섬뜩한 비명! 그리고 그것들이 뒤범벅이 되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피를 토하게 만드는 광기! 그 광기는 붉은 화염과 찢어지는 비명 속에서 쾌락에 몸을 떠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은 눈앞의 현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처절한 싸움! 이제껏 보아왔던 전쟁은 나름의 예의를 갖춘 전쟁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피가 난무하는 가운데 발악하는 아녀자를 강제로 끌고 가 강간하는 녀석들! 그것은 미친 놈들이 아니면 자행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순간 진은 눈앞에 보고 있는 현실을 자행하고 있는 자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느꼈다. 두근! 이제껏 아무렇지도 않았던 기운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지마! 제발, 부탁이야!’ 진은 자신의 손을 벗어난 기운들이 미쳐 모든 것들을 부수고 파괴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세 개의 기운은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화마까지 집어 삼키며 모든 것들을 휩쓸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툭! 진의 의식을 붙잡고 있던 끈이 끊어졌다. 그 순간, 망상에서 자행하던 파괴가 현실을 뒤덮었다. 고오오오오!! 파지지직직!! 쾅! 쾅쾅! 쾅쾅쾅! 진이 가지고 있는 세 개의 기운은 그가 만든 망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충돌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내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無)로 만들어버렸다. 콰콰쾅쾅쾅쾅쾅! “으아…….” “흐흐…….” “뭐, 뭐…….” 죽음을 맞이하던 자도, 강간을 하던 자도, 죽음을 만드는 자도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어…어.” 안젤리나는 너무도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진의 행동이 아니, 그의 무의식이 한 행동은 그녀를 경악으로 이끈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뒤늦게 찾아온 공포가 그토록 사랑스럽던 진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꺄아악! 가, 가까이 오지 마요!” “으으윽!” 진은 그녀의 비명에 정신을 차렸고 자신을 보고 뒷걸음질치는 그녀의 모습에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져 있는 참상! 그것은 안 그래도 불안정한 정신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나,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단 말인가? 그토록 죽음을 만들지 않으려 했던 내가 …… 사실은 그렇지 않았단 말인가? 나 역시 살인이 주는 쾌락을 사실은 원했단 말인가? 크큭, 크하하하하하!” 넋이 빠진 듯 자신의 손만 바라보며 한참을 중얼거리던 진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인식한 안젤리나가 진에게 다가가려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광소를 뚝 멈춘 진이 무표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뚝!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너무도 무정한 시선에 안젤리나는 몸을 움찔하며 더 이상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몇 발짝만 움직이면 되는 거리인데도 그 가운데 커다란 벽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안젤리나였던 것이다. 진은 안젤리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일언반구도 없이 몸을 날렸다. ‘가지 마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 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보여준 그의 눈빛이 너무도 그녀를 아프게 해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리 슬픈 눈을 짓는 거예요?’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가운데서도 진이 만든 거대한 화염은 사납게 일렁이고 있었다. ================================================================== 사촌형집에서 글을 써서 한편 올립니다.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아서요. 에공... 결국 잠은 집에서 자야할 듯 하군요. 이제 버스도 운행할 시간이고... 아무리 사촌형집이라도 밖에서 자는 것은 익숙지 않은 지라 이제 정리하고 집에 가야할 듯 합니다. 참고로 지금 시각은 새벽 5시 30분쯤입니다. 쿨럭!!!! 200화. 리오스 돌아오다. 3 “이, 이게 뭐지?” 리오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흥분되었던 마음이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그의 앞에 두 개의 봉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하하하하!”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불길한 생각이, 자신이 생각해도 헛웃음만 나오는 생각이 강하게 치고 올라왔다. “아니야! 아니라니깐!” 리오스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 이에 그의 품에 있던 에쉬리온이 깜짝 놀라 밖으로 튀어나왔다. 끼유욱! 에쉬리온은 주인의 심기가 불편한 듯 하자 얼굴을 그의 다리에 부비며 재롱을 피웠다. 하지만 리오스는 에쉬리온의 재롱을 받아 줄 여유가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그의 눈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강철보다 수천, 수만 배 강한 그의 정신은 그 충격에 휘어지다 못해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이다. 리오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집을 잘못 찾아왔기를 바라며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의 집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시간을 잘못 거슬러 올라 자신이 살던 곳보다 먼 미래에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아, 그래. 내가 시간을 잘못 타고 온 거였어. 바로 그거였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천수를 다 누리시고 돌아가신 걸 거야.” 리오스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오스가 집으로 돌아 온지도 삼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는 텅 비어 버린 집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 밖으로 나갔다. ‘후후후,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진이를 보기 위해 왔건만 모두가 떠나버렸구나. 신은 이럴 거면서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걸까?’ “하아~!” 허탈한 한숨이 리오스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바이사카 시를 돌아다녔다. “으응?” 그러다 리오스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너, 너!” 사내는 웬 낯선 자가 자신을 가리키며 ‘너, 너!’라고 하자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에게도 친절해야 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그인지라 살짝 굳었던 안색을 펴며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내의 정중한 물음에 리오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예전에 비해 목소리가 좀 더 굵직해졌지만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길한 짐작은 확신으로 변했다. “너…… 파츄산이지?” “으응?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십니까?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파츄산은 낯선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말을 하고 보자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였더라? 으음… 금발에 금안, 그리고 거짓말 같이 잘생긴 외모!’ 조각들이 모이면서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파츄산이 ‘아!’하며 탄성을 지를 때, 리오스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올슈레이 리오스! 설마 이 이름을 잊어먹은 건 아니겠지?” “리오스!” 파츄산은 그의 이름을 힘껏 부르며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씁쓸하게 웃는 리오스. 오랜 만에 만나 친구가 반갑긴 했으나 눈앞에 보이는 그의 나이로 보아 자신이 그리 먼 미래로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그, 그렇다면 부모님께서는 천수를 다 못 누리고 가셨단 말인가? 하아, 세상천지에 나같은 불효자가 어디 있을까? 부모님의 임종조차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자가!’ 리오스는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그러나 목은 꽉 막혀 있었고 괜스레 눈물만 흘러내렸다. 뜨겁고도 슬픈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파츄산은 끌어안은 리오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떨자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순간 뭔가가 뇌리에 떠오른 파츄산은 말없이 그를 다시 안아주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해주세요!’ 파츄산에게 안기다시피 고개를 파묻은 리오스는 그렇게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네 말은 진이가 그 안젤리나라는 여자하고 결혼을 했고 이곳에서 얼마 전까지 살았었단 말이지?” “그래.” “그리고 너는 물론이고 아버지, 어머니도 내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단 말이고.” “그래.” “하아~!” 리오스는 파츄산의 이야기를 들은 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오는 것은 한숨 뿐. 아니, 또 다시 눈물이 나오려 했으나 이 눈물은 부모님의 무덤 앞에서 흘릴 눈물이라 생각하여 애써 참았다. 파츄산은 리오스의 눈이 붉게 충혈 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지만 뭐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화제를 돌려 그의 심란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려 했다. “아마도 진이는 얼마 있다 돌아올 거야. 장인, 장모님을 찾아뵙고 온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돌아올 때가 되었지 암.” “그래?” “그래.” 파츄산은 리오스가 잠시나마 딴 곳에 정신을 쏟게 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리오스가 집으로 돌아 온지도 열흘이 지났을 무렵, 한 여인이 초췌한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진이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외치는 음성에 여인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각 같이 잘 생긴 미남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잠시 그를 쳐다본 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맞는데…….’ 자신이 집을 잘못 찾아 들어왔나 싶어 집을 확인했으나 자신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니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저기 누구세요?” 조심스레 묻는 여인을 보며 사내는 잠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보고 있는 여인의 시선에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험험, 올슈레이 리오스라고 합니다만 그쪽 이름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예에? 리오스라고요? 방금 그이의 형님이라는 리오스라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만.” “믿을 수 없어요!” 리오스는 눈앞에 있는 여인이 진의 아내인 안젤리나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진이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못 들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도 부모님이 죽고 힘들어하는 진이를 배려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여인의 태도는 마치 내가 죽은 존재처럼 대하는구나.’ 의구심이 깊어질수록 눈앞에 있는 여인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진 리오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살펴보며 물었다. “당신이 혹시 안젤리나 양입니까? 제 동생 진이의 아내가 된다는 안젤리나 말입니다.” “그, 그걸 어떻게…….” “하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초고대 유적지에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있다 말입니다. 그런데 진이는 어디 있습니까?” 안젤리나는 리오스의 말을 듣는 내내 의심을 떨칠 수 없어 ‘증거를 대보라.’라고 말하려다 그의 말 말미에 던진 물음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옴을 느꼈다. “그, 그이는…….” 말을 꺼내놓고 잇질 못하는 안젤리나를 보며 뭔가 사단이 났다는 것을 직감한 리오스는 실례인 줄 알면서도 그녀의 팔을 세게 잡으며 물었다. “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의 이번 물음에 안젤리나는 모든 의심을 지웠다. 그리고 진이 했던 ‘집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라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순수한 믿음을 가졌던 그와 잔혹한 폭군으로 변했던 그! 그러나 그 중에 진실은 순수한 믿음을 가졌던 그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안젤리나였던 것이다. 리오스는 안젤리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뭐라 채근하려다 이내 포기해버렸다. 그녀의 정신 상태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얼마 뒤, 안젤리나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자 이번에는 리오스가 아득해지는 정신에 몸을 비틀거려야 했다. “그이는 사라졌어요!” 투벅투벅투벅! 무거운 마음을 반영하듯 걸음 또한 매우 무거웠다. 퍽! 우당탕! 정신이 있는 건지 산을 올라가던 사내는 눈앞에 뻔히 보이는 나무에 부딪 혀서 뒤로 넘어가 한동안 산을 굴렀다. 그렇게 한참을 굴러가던 사내는 나무에 ‘쿵!’ 부딪히며 멈췄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사내의 모습은 마치 영혼이 죽어버린 자의 모습과 흡사했다. 사내의 걸음은 매우 느렸다. 그렇다 보니 해가 지고 달도 진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목적한 곳에 도착했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사내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사내의 몰골 역시 몇 년간 청소 한번 안 한 이 방보다 나을 것도 없어 어찌 보면 매우 잘 어울리는 듯도 했다. “돌아왔구나!” 멍하니 방 안을 둘러보던 사내의 입에서 조금도 기쁘지 않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보는 사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모든 것이!’ 사내는 과거를 유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를 거쳐 미래를 슬쩍 바라보았다. 자신에 손에 무참히 살육되는 죄 없는 목숨들! 그것이 바로 그의 앞에 놓여진 미래였다. “큭, 크큭큭! 크하하하하하!” 사내의 광소는 사람의 마음을 절로 아프게 했다. 하지만 생명 없는 먼지는 이런 그의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몸만 더욱 풀풀 날렸다. “후후후, 먼지들조차도 나를 반기지 않는 구나. 하기야 나조차도 이런 내가 싫은데 너희들이라고 나를 좋아할 리가 없지. 그래, 이곳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닌 거 같구나.” 사내는 비칠대는 걸음으로 방 안을 나왔다. 그리고 또 다시 힘겨운 걸음을 옮겼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지울 수는 없다. 그리고 잊고 싶었지만 지울 수 없는 이름, 올슈레이 진. 내 이름 역시 지울 수 없다. 그것을 나는 잊고 있었다. 지울 수 없음을 잊고 있었다.’ 진은 무엇이 옳으며 그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너무도 막막했 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을 곳은 사부님과 살았던 곳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도 바른 선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물론 자신에게도 집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돌아가 봐야 무덤 두 개만이 반겨줄 뿐이니 차라리 아니 가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보다 안젤리나를 볼 자신이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떻게 본 단 말인가? 그녀를 그렇게 공포에 떨게 만들었는데……. 더구나 이제 나에게는 진절머리가 났을 건데, 무슨 낯짝으로 찾아간단 말인가!’ 진은 하늘이 미웠다. 하나하나 찾아오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 거기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쌓이는 상처들! 그 모든 것들이 얽혀 미칠 것만 같았다. 사람이 싫어졌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한다고 했 던 여인의 배신어린 행동! 그것은 그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으아아아악!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죽음! 형의 죽음! 자신이 일으킨 살육! 안젤리나에 대한 미안함! 안젤리나에게 느낀 배신감!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뭔가에 의해 엮어진 듯한 느낌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율배반적인 생각에 미칠 것 같았고, 인륜을 저버린 행동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가족들의 죽음도 또 다시 상처가 터져 그를 괴롭혔다. “으아아아아악!” 지금 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자는 고통스러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은 견뎌낼 수 있을 정도만큼의 상처만 입히기에 사람은 그 상처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허나 고통은 견뎌낼 수 있을지언정, 그 상처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진 역시 그 고통에는 익숙해져 어느 정도 견뎌내고는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아~!” 진의 한숨은 그가 만든 오두막집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그렇게 쌓이기 시작한 한숨은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보고 싶구나!’ 보지 않으려 마음먹으니 더욱 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지만 진은 그런 자신이 싫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에 진은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하지만 그 아름다운 얼굴을 공포에 떨게 만들 수는 없어!” 보고 싶지만 그만큼 그녀를 지켜주고 싶기에 나갈 수 없는 그의 마음! 자신이 나가게 되면 또 다시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를 불안감! 그것이 두려운 진이었다. ================================================================= 드뎌 저도 200화군요. 후우, 특집이라고 말하기에는 뭣하지만 어쨌든 평소보다 조금 긴 거 같군요. 에공...주인공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냐 말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 같지만...이건 제 취미(사실무근입니다.)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만만치 않으며 상처가 아물때까지 기다릴 인생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대충...그러하다는... 아직 21살밖에 안 먹은 녀석이... 손대기에는 무리가 가는 소재지만... 어쨌든...그렇습니다. 에공... 그럼 저는 아침밥먹으러 갑니다. 201화. 풍운, 한 쟈크 대륙! 1 한 쟈크 대륙의 북동쪽, 시린 한기와 봄마다 날려 오는 사막의 모래바람들. 그러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태백장원이 있는 운현성의 사람들이었다. 운현성은 산이 많고 길도 험한 지형인지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성격이 거칠어졌고 풀무에 담아 연단한 철처럼 강인했다. 그런 그들이었지만 어둠을 타고 들어온 존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운형성을 칠성의 한곳으로 만든 태백장원 안, 달빛은 아스라이 피에 젖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떨어져나가는 살점과 피가 난무했다. “적의 기습이다! 으아아악!” 태백장원의 동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위사가 소리치자 잠에 빠져 있던 태백장원은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나 무장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러한 모습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고된 수련을 쌓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의 무리들은 막아서는 태백장원의 무사들을 무 베듯 휩쓸고 지나갔다. 기를 싫은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 그것은 제아무리 단련된 무사라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들은 외원을 넘어 내원으로 들어갔다. “어딜 감히!” 펑! 파죽지세로 돌진하던 무리들은 내원의 문 안에서 쏟아져 나온 엄청난 기운에 미처 몸을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았다. 그 순간 얻어맞은 그의 눈이 붉은 빛을 토했고 날아가는 몸에 더욱 힘을 실어 그들 뒤편에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태백장원의 하급무사들에게 날아갔다. 쾅쾅쾅! “으아아악!” “크아아아!” 그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서 폭음이 터지고 피가 섞인 자욱한 먼지가 흩날리자 순간 모두는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한곳으로 모이는 시선들. 그곳에는 온 몸이 형편없이 부서지고 터진 수십이 넘는 하급무사들의 시체가 있었다. 순간 그들의 몸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방금 자폭했던 자들에게서 멀어지려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이에 내원 안에 있던 고수가 잠시 멍해 있던 정신을 차리고 호통을 쳤다. “이놈들 뭐하는 짓들이냐! 너희들은 자랑스런 태백장원의 무사들이다!” 기가 실린 그의 외침은 신기하게도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그들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불끈 들어왔다. “맞아 사운혁 대장님의 말씀처럼 우린 할 수 있어! 저놈들이 인간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어!” “아자자자잣! 까짓 거 한번 해보자고!” 내원의 고수인 사원혁은 그들의 기합에 찬 외침에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왔는가?” “금강장원의 천륜을 어긴 실험체들이 바로 저들인가?” 뒤늦게 온 사내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이에 사운혁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같으이. 그리고 저들은 어떠한 충격을 받으면 자폭하도록 주입받은 거 같군.” “그렇담 그들이 충격을 느끼지 못하게 해야겠군.” 담담한 투로 말하는 사내의 말에 사운혁은 미소 지었다. 그의 옆에 서있는 이 친구야 말로 태백장원에서도 쾌검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이들 역시 그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그들은 바로 태백장원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들이었기에. “섬광검이라는 자네라면 충분할 걸세.” 섬광검 마소풍은 사운혁의 치켜세워줌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들이며 적들을 살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는 마소풍이었다. “황화광의 고수들만 해도 백여 명에 가까운 거 같군! 저들이 한번에 기운을 터트린다면 우린 끝장이야.” 마소풍의 냉철함도 백여 구의 실험체와 백여 명에 가까운 황화광을 보는 순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운혁은 그런 그를 보며 껄껄 웃었다. “껄껄껄, 그러니 더욱 잘되지 않았나? 저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그런 짓 은 못할 걸세. 잘못했다가는 저 실험체들이 모두 자폭해버리지 않겠는가?” 마소풍은 사운혁의 말을 듣고서야 어느 정도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성을 되찾자 또 다른 의문이 찾아왔다.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상 저들만 가지고 공격해도 우리 태 백장원은 무너지기 십상인데 굳이 힘겹게 제련한 실험체들을 소모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을 보았다. 그 들은 방금 전 같이 날뛰지도 않았고 그저 가만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그의 뒤에 있는 태백십일천을 보았다. 또 그 뒤에 서 있는 그의 제자들인 전대 고수들과 현 태백장원의 주축이라 말할 수 있는 수뇌 부들을 보았다. ‘당했다!’ 순간 머리를 강타하는 생각에 마소풍은 내원 안으로 질주하며 외쳤다. “저들은 모두 환영이다. 태백십일천 태백십이객, 그리고 운현팔검은 나 를 따르시오!” 전전대 호법원을 이끌었던 마소풍의 말에 사운혁 등은 ‘아차!’하는 표정 을 지으며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들은 환영이 주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들을 보며 이것이 환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운혁은 바람 같이 몸을 날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무사하기를…….” “외원의 소란은 역시 환영이었나?” 태백장원의 전전대 장주이자 위대한 칠신의 일인인 서명훈의 물음에 타일리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잘 알고 있군. 역시 칠신은 허명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 명성도 오늘부로 꺾일 테니 너무 태연한 척 말지, 그래?” “네 이놈이!” 타일리의 빈정거림에 전대 장주였던 서천이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려 했으나 서명훈이 제지했다. “아, 아버지!” “그만해라. 네 상대가 아니다.” 서명훈은 색깔이 다른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서천은 뭐라 말하려 했으나 이럴 때의 서명훈의 말에 거역한다는 것은 대죄를 짓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속으로 화를 삭였다. “호오, 그래도 자식 교육 하나만큼은 잘 시켰군, 그래.” 또 다시 이어지는 타일리의 빈정거림. 그의 눈에는 칠신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서명훈도 칠신이라는 허명에 상처를 입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고맙군 그래. 그런데 말이지. 목적이 뭔가?” 서명훈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타일리는 의외로 그의 물음에 쉽게 대 답해주었다. 허나 칠신인 서명훈은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목적? 그야 천하를 지배하는 거지.” “그게 다는 아닌 거 같은데…….” “호오, 역시 나이를 허투루 먹지는 않았군. 크킄, 그래 내 너에게만 말하지. 이 땅에 강하다고 깝죽대는 것들을 몰살시키는 게 나의 진정한 목적이다. 물론 천하를 지배는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천하는 나의 뒤에 있는 이들이 운영할 것이고.” “으음…….” 서명훈은 그의 말에 신음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가장 낮은 경지에 오른 자가 황화광의 고수다. 거기다 그런 고수들이 백여 명에 가까울 정도다. 이것만 해도 태백장원은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했는데 눈앞에 있는 은발의 사내는 그 경지를 볼 수 조차 없었다. 아마도 당년의 선우찬보다도 강해보이니 오늘은 길보다 흉이 클 거 같았다. “후우, 자네의 눈을 보니 더 이상 시간 끄는 것도 허락지 않을 거 같군.” “잘 알고 있군.” “그럼 가네.” 칠신의 일인이라는 서명훈은 자신 없지만 움직여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로 태백장원은 문을 닫아야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야 했다. 그것이 허명이지만 칠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었다. 파슥!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서명훈의 몸이 갑자기 땅 속으로 푹 꺼졌다. 그리 고 타일리가 밟고 있는 땅 아래에서 검 한 자루가 솟아올라왔다. “재밌군!” 타일리는 낮게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였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사방 곳곳의 땅이 뒤집히고 터져나갔다. 쾅쾅쾅쾅!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모습으로 서 있는 타일리와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서명훈을 볼 수 있었다. “잔재주는 여기까지 하지.” 타일리는 말을 끝맺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간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쇄도해왔다. 채챙챙챙챙챙챙! 무형의 기세가 수만의 검날이 되어 서명훈을 덮쳤고 그는 그 검날들을 막 기 위해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러다 그가 쳐낸 무형의 검날이 튕겨져 그의 친인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경악의 외침을 토했다. “모두 물러서라!” 쾅쾅쾅쾅쾅쾅쾅! 하나하나가 사방 수십 라키르를 푹 꺼지게 만들 위력이었다. 그리고 수만 에 가까운 검이 튕겨져 날아가 떨어지자 내원의 심처인 자숙정은 이내 폐허로 변해버렸다. “괜찮으냐?” 서명훈은 타일리가 잠시 검을 멈추자 그의 눈치를 살핀 뒤, 뒤로 주욱 미끄러져 친인들의 안위를 살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서명훈이었다. “후우, 너희들은 저 쪽으로 가 있어라.” “아버지!” “어서!” 푸른 빛과 붉은 빛이 감도는 그의 눈이 또 다시 빛을 토하자 서천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타일리가 낄낄 거렸다. “낄낄낄, 정말 눈꼴 시린 가족이군. 간만에 좀 즐겨보려 했으나 기분을 망 쳤군. 계획대로 한다!” 타일리가 손을 척 올리자, 지금껏 가만히 있던 금강장원의 고수들이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에 깜짝 놀란 서명훈 등도 기운을 끌어올려 그들의 힘에 대항하려 했다. “금강합벽진!” 백여 명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졌고 그들의 몸에서 끌어올려진 기운이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며 더 큰 기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저들이 저것을 완성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 마음이 급박해진 서명훈은 방금 전, 충돌로 날뛰는 기를 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태백장원의 정수인 태백유운검을 펼쳤다. 태백의 산세를 담는 듯한 검세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자유롭게 하늘을 떠도는 구름의 움직임이기도 했다. 그리고 상이한 두 기운은 서명훈의 화 려한 검놀림에 점차 하나가 되었다. “하압! 태백유운검!” 서명훈이 검을 일자로 내리긋자 태산이 떡하니 버티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강합벽진으로 생긴 기파가 자연스레 그것에 흘러나가거나 막혀 돌진하지 못했다. 잠시 후, 서명훈의 친인들 역시 자신들의 최후 기술을 써 그에게 힘이 보태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전진하는 태백과 유운이 힘! 서명훈 등은 혹시나 하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새 합류한 타일리의 기운에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자신들의 힘!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힘을 배가시켜나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딱! “꿈은 잘 꾸셨나?” 빙긋 웃으며 말하는 타일리를 보며 서명훈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 전 그가 상대한 것은 바로 환영이었던 것이다. “쿨럭! 네, 이놈! 무인의 혼은 어디로 팔아먹었단 말이냐!” 너무도 분해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한 서명훈이 입가를 쓰윽 닦으며 노한 외침을 토하자 타일리는 의외로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무인 따위가 아니다. 나는 너희들 같이 우민한 것들 위에 있는 무신 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가 몸을 날렸다. 그러나 서명훈을 비롯한 모두는 기력이 모두 다 한 상태인지라 힘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만 잘 가게.” 서걱!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서명훈은 뭔가가 다가온다고 느낀 순간 목이 허 공에 둥 떠올라 이 세상을 마감한 것이다. “아버지!” 서천은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크게 외쳤으나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렇게 살육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뒤늦게 쫓아온 태백장원의 고수들은 환영에 마음을 뺏겨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타일리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태백장원은 타일리 한 사람의 손에 서서히 파멸을 맞이했다. “후우, 하루에 환영을 세 번 쓰는 것은 나라도 무리가 따르는 군.” 몸에 무리가 가 내상을 입은 타일리는 입가에 묻은 피를 쓰윽 닦으며 중얼거렸지만 나름대로 만족의 미소를 짓는 그였다. 그리고 이날, 운형성과 그 근방에 있는 중소 장원들은 괴한들의 침입을 받아 죽임을 당하거나 근골이 좋거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들은 어딘가로 끌려가게 되었다. ================================================================= 궁하면 통한다고 하죠. 또 다시 찾아온 마감의 압박은 광참의 길로 저를 인도하네요. 쿨럭!!!! 202화. 풍운, 한 쟈크 대륙! 2 운현성이 금강장원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한 쟈크 대륙 전역으로 퍼졌고 이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던 나머지 육대 장원은 약속했던 대로 한 쟈크 대륙 중앙에 있는 금강장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현성이 금강장원의 손에 들어간 지 오일 째, 육대 장원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가 너무 안일했던 거 같소.” 신암성의 패자인 월하장원의 전전대 장주이자 칠인의 일인인 천월인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현 장주들과 실세들, 그리고 전대와 전전대의 고수들이 모두 모인 회의장에는 근 백오십 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험험, 후배가 한 마디 올리겠습니다.” 무거운 공기를 헤치며 나서는 자는 다름 아닌 뇌풍신검 풍철산이었다. 풍철산은 천골에서 내려온 후, 그 위세가 대단히 높아져 이제는 칠신이라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사실상 대 금강장원을 상대하기 위해 모인 이들 중에 가장 강한 자가 바로 풍철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두는 풍철산의 갑작스런 개입에도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풍철산은 이런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말은 해야겠기에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태백장원은 단 한 사람의 손에 무너진 거 같습니다. 바 로 은발마왕에 의해서 말이죠.”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칠신이 있는 태백장원을 한 사람이서 무너뜨린 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릴세.”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풍철산의 말에 바로 반박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청수한 외모에 신선 같은 풍모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칠신의 일인이자 청수장원의 전전대 장주였던 나혁진이었다. 풍철산은 나혁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에 나혁진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쏘아보았다. 은근히 기운까지 끌어올린 것을 보니 절대 물러설 거 같지 않았다. 이런 그의 기색을 느낀 풍철산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천골에서 전사하신 진중선 어르신과 북궁신 어르신, 그리고 천무장원과 북해장원의 고수들 역시 대부분 전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 한 사람의 소행이었습니다.” “서, 설마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 동해장원의 전전대 장주이자 칠신의 일이인 을지목의 떨리는 목소리에 풍철산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그런 소문이 나돌긴 했지만 우린 믿지 않았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다니!” 을지목의 중얼거림에 천무장원과 북해장원에서 나온 고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상 그들은 진중선, 북궁신들의 명성을 고려하여 사실을 약간 바꾸어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풍철산은 그러한 명성도 체면도 지금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물론 두 장원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험험, 잠시만 집중해주십시오.” 풍철산은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기운을 끌어올려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보게 되자 고개를 숙인 뒤, 말을 이었다. “까마득히 어린 후배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꼭 알고 계셔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식견 있는 이들은 풍철산이 무슨 말을 할지 어렴풋이 짐작해 얼굴이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풍철산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풍철산의 입은 그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리고 열리고 있었다. “제가 말했던 그가 바로 은발마왕입니다.” 두둥! 순간 좌중은 풍철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고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이, 이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천골에서 만행을 저지른 자가 바로 은발마왕입니다.” 나혁진의 그럴 리 없다는 말에 풍철산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철산의 말은 그들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했다.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얻은 힘은 신무안의 마지막 경지라는 코스카까지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런 저도 그와 붙어 철저하게 패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펄럭이는 소매죠.” “허억! 코스카!” “이럴 수가!” “하늘이여, 우리를 버리시는 겁니까?” 사람이 많다 보니 좌중이 시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에 안색을 찌푸린 노고수들은 회의를 파하고 전전대 고수들 및, 주축이 될 고수들로만 이루어진 회의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풍철산의 냉정한 상황 판단 아래, 대책 회의가 진행되었다. 애드윈 가문은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하여 귀환한 세필로스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그러다 세필로스의 상태가 갈수록 좋아지자 그들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버님의 상태에 신경이 곤두서있다 보니 이제 서야 인사하게 되는군. 고맙네. 아버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네.” 레이터는 애드윈 가문의 현 가주인 지다이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감사해하자 무척 당황했다. 애드윈 가문의 가주라면 캐슬 오브 마스터(castle of master)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토록 감사해하니 레이터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지다이는 레이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잠시 기분이 나빠졌으나 그의 멍한 눈을 보며 무엇 때문인지 짐작하고 낮게 웃음 지었다. “후후후, 그래. 스라이드 레이터라고 했나?” “예? 예, 그렇습니다.” 레이터의 힘찬 대답에 지다이가 미소 지으며 그의 옆에 있는 레이카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이쪽은 스라이드 레이카라고 했지?” “예…….” 레이카의 조용한 대답에 지다이는 매우 만족해했다. 싸늘한 눈빛과 달리 심성이 고운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매우 신선한 것이었고 옆에서 멍하니 레이카를 보고 있는 더스틴을 힐끔 본 지다이는 실소를 흘렸다. ‘이 녀석도 이제 장가갈 나이가 되었구나.’ “험험, 그래. 그럼 나는 아버지께 가 볼 테니, 젊은 사람들끼리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보게.” 지다이는 말을 하고 나서며 더스틴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더스틴을 보는데 더스틴은 아버지가 나가는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로지 레이카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가는 지다이였다. 그러나 지다이는 알까? 더스틴의 이러한 행동은 누구의 피를 강하게 물려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래, 그 젊은이들에게는 인사하고 왔는가?” “예, 아버님.” “잘했네. 그런데 아까 전부터 기다렸는데…… 우리 리나가 어디 가기라도 한 건가?” 세필로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안젤리나가 보이지 않아 몹시 섭섭한 상태였다. 평소 그와 그녀의 관계라면 자신이 돌아왔다는 말이 들리는 즉시 찾아왔어야 되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에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지다이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은 비록 마음에 들긴 하지만 어떤 놈팽이가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흥!” 괘심함이 과도했음인가? 아버지 앞에서 코웃음을 친 지다이는 금세 자신의 실책을 인식하고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버님, 그게 있잖습니까.” “듣기 싫네! 바지나 걷게! 내 비록 몸이 성치 않다지만 자네를 때릴 힘은 충분하니. 끄응!” 세필로스가 신음을 토하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지다이는 다급해져 서둘러 다가가 그를 눕히려 했다. 그러나 세필로스를 강제로 눕힐 수도 없는지라 미약한 힘이나 힘을 주고 있는 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가 난감해할 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아버님! 아까 리나가 어디 갔냐고 물으셨죠?” “응? 그래, 그렇게 물었었지.” 세필로스는 그가 사랑해마지 않는 안젤리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몸을 반쯤 일으키다 멈추고 대답했다. 이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지다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사실 아까 제가 코웃음 쳤던 것도 리나를 데려간 쾌심한 놈이 떠올라서 그랬던 겁니다.” “뭐라? 어떤 놈이 우리 리나를 데려갔단 말이냐? 그리고 너는 도대체 뭐했단 말이냐!” 세필로스의 호통에 지다이는 찔끔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바지를 걷어 올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은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게 아니오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냐!” “으음, 사실 리나에게 남편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에 남편이라는 자와 같이 왔었습니다.” “뭐어? 크흑!” 세필로스는 너무도 놀라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에 무리가 가 신음을 토했다. 이에 깜짝 놀란 지다이가 그를 살펴보려 하자 세필로스가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적막과도 같은 침묵을 유지했다. “후우, 그래. 리나도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지. 그래, 그는 어떤 자인가?” 지다이는 세필로스가 안정을 찾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껄껄 웃는 세필로스! “역시 리나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은 거 같군. 그런데 내가 직접 한번 보고 싶은데…….” 세필로스가 이렇게 운을 떼자 지다이가 씩 웃으며 재빨리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사람을 보내 데려오겠습니다.” 얼마 뒤, 애드윈 가문을 나서는 일단의 인물들이 있었다. ================================================================= 대략 머리가 다운 직전입니다. 휴우... 203화. 풍운, 한 쟈크 대륙! 3 애드윈 가문에서 보낸 사람들은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그들이 데리고 가야 했던 안젤리나는 이미 그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진이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까?” 리오스의 답답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물음에 안젤리나는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후우, 진이 녀석 도대체 어디를 간 거야?” 막상 집은 나섰지만 어디부터 찾아야 할 지 막막해 리오스는 괜스레 고함을 질렀다. 이에 깜짝 놀란 안젤리나였지만 그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기에 뭐라 말하지 않았다. ‘당신, 정말 어디에 있는 거예요?’ 텔레파시가 가능하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안젤리나였다. 리오스와 안젤리나는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달려가 그를 붙잡기 일쑤였다. 세상에 다크 블루빛 머리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닌지라 리오스와 안젤리나는 꽤 많은 사람을 당혹케 만들었다. “하아, 정말 어디에 있는 거야?” 리오스도 슬슬 지치는지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에 괜스레 미안해진 안젤리나는 리오스와 좀 떨어진 나무 밑에 가 앉아 생각에 잠겼다.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해요. 당신은 내가 당신과 하지 못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안해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정도로 나를 챙겨주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당신을 상처만 입혔네요.’ 안젤리나는 힘을 내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약해져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 행복했던 진과 함께 한 시간을 애써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우는 얼굴로 진을 만나게 되면 또 다시 진이 상처받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매우 즐거워보였어요. 어떻게 해서 강해지게 되었고,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앗!’ 행복했던 과거를 유영하던 안젤리나는 뇌리를 꿰뚫는 뭔가에 깜짝 놀랐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무, 무슨 일입니까?” 리오스는 멍하니 앉아 있다 안젤리나의 들뜬 음성에 그도 마음이 들떠 흥분된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생기가 넘치는 그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어딘지 알았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 리오스는 설마 하는 마음보다도 그녀의 말이 확실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이 어딥니까?” “바로 그이의 사부가 살던 곳이에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리오스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진이를 찾으러 갑시다.” “그래요.”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의 걸음은 전과 달리 힘이 넘치고 있었다. 금강장원으로 날아온 한 장의 서신! 그러나 너무도 가벼운 그 서신이 전한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흐음, 무슨 의도일까요?” 풍철산은 전전대 장주들과 초고수들로 이루어진 회의장에서 신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의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잔혹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때가 덜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열흘 후, 고센 평원에서 결전을 벌이자니! 도대체 알 수가 없군 그 래. 내가 그라면 차라리 각개 격파를 하는 게 훨씬 쉬울 텐데 말이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이 편안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을지목이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리자 모두의 고개가 은연중에 끄덕여졌다. 이에 더욱 답답해지는 그들이었다. 탁! 그때였다. 회의장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젊은 여인이 탁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고 순간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얼굴을 붉힌 그녀는 이내 안색을 고치며 당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에 모인 분들은 애시 당초 그들과 상대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니었나요? 그런데 오히려 기회가 오니 당황하시는 모습들은 어린 제가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니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침울한 분위기로 있는 다는 것은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 여인은 자기 할 만만 하고 회의장을 나갔다. 그리고 회의장을 나가는 그녀를 멍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노고수들이었다. 잠시 후,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대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웃음은 마치 전염이라도 되듯 모두에게로 옮겨져 회의장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크큭, 큭. 자네 정말 당찬 손녀를 두었군.” 칼을 세워놓은 듯이 예리한 기운을 풍기는 천월인이 진욱을 보며 말하자 진욱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색을 표했다. “그게 저 녀석은 저도 못 말리는 아이인지라 여러 선배님들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아니야, 아냐. 저 아이가 정말 좋은 말을 한 듯 하이. 그래, 저 아이의 이름이 무언가?” 천월인이 손사래를 치며 묻자 진욱은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진하린입니다.” “오호, 그래? 내 증손자랑 맺어주었으면 딱 좋겠구먼 그래. 허허허.” 천월인의 농에 진욱은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이때다 싶어 다른 노인들 역시 농을 걸기 시작했다. 이에 진욱은 더욱더 당황해 팔순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까지 붉혔다. 그리고 그의 이런 모습 덕분에 회의장 안은 금세 화기애애해졌고 진욱을 희생물 삼아 회의는 연신 좋은 분위기로 진행 되었다. 눈이 부신 두 미녀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두 미녀는 어딘가 모르게 닮은 것 같으면서도 분위기가 너무도 판이해 어찌 보면 자매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남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두 미녀 중,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가시 있는 붉은 장미를 연상시키는 미녀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조용한 음성과는 달리 그녀의 말은 질책을 담고 있었다. “회의장 안에 막무가내로 따라 들어가서는 말썽이나 피우다니, 할아버지 의 입장이 뭐가 되겠니?” “칫, 하지만 결과는 좋았잖아.” 가시 있는 미녀 같았던 여인이 볼을 통통하게 만들며 투덜대자 분위기가 백팔십도로 변해 한번에 다가가 끌어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엽게 변했다. 이에 같은 여자면서도 얼굴을 붉힌 여인이 괜스레 무안해져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분위기도 바꿀 겸 평소 하지 않던 농담을 했다. “너 그런 표정 짓지 마. 남자들이 이런 너를 보면 단번에 사랑에 빠질 거야. 호호호.” “흥! 언니야 말로 그렇게 웃지 말라고. 세상 모든 남자들이 눈이 삐지 않았다면 나보다 언니에게 먼저 청혼할 걸? 그리고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고.” 그녀의 말에 차를 마시려던 여인의 여인이 멈칫했다. 그리고 한없이 밝게 빛나던 여인의 눈에 슬픈 기운이 감돌았다. ‘하아, 그래. 그는 하린이의 남자였지. 그리고 나는 그의 친구 일 뿐이고.’ 하린은 하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만 마시자 그녀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린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말을 할 때, 하연의 눈에서 슬픈 그림자를 발견한 것을. ‘언니도 그를 좋아하는 걸까?’ 여자의 육감은 신비로울 정도로 예민한 것이었다. 열흘 후, 광활한 고센 평원에 비한다면 극히 적은 수가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발하는 기운은 드넓은 고센 평원을 집어삼키기에 충분했다. “왔군!” 풍철산은 반대편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주위에 있던 고수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얼마 뒤, 안력을 돋우지 않더라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 지루한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은발마왕이라 불리는 타일리였다. “오호, 낯익은 얼굴이 있군 그래.” “나 역시 그 얼굴을 잊지 않고 있소.” 풍철산은 타일리의 장난스런 말투에 심기가 상해 상당히 무뚝뚝한 음성으로 받아쳤다. 그러나 타일리는 그의 말투가 어떠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잘려나갔던 팔은 못 붙인 모양이야.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이, 후우~!” 타일리의 빈정거림에 크게 화를 내려던 풍철산은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타일리를 보며 말했다. “그때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일은 풀어야 할 일이오.” “풀어야 할 일? 크큭, 뭘 어떻게 푼다는 말이지? 그래, 네가 그 일을 풀겠단 말인가? 그 알량한 실력으로 말이야.” “흥! 그때와 지금의 나를 똑같이 보지 마시오!” 스르릉! 풍철산은 결국 참지 못하고 파천풍뇌검을 뽑아들었다. 이에 이제껏 무료한 얼굴을 하고 있던 타일리의 눈이 빛을 냈다. “그래, 무사는 자고로 검으로 말해야 한다고 했지.” “당신의 입에서 무사라는 말이 나올 자격은 없다고 생각되오.” “그렇지. 나는 무신이니깐.” 풍철산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 뭐라 말하려다 그의 말대로 무사는 검으로 말해야 하기에 묵묵히 검을 들어 검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호오, 아주 좋아!” 마치 천고의 보검을 세워놓은 듯한 그의 모습에 타일리는 진심으로 감탄 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금강장원의 무리들을 후퇴하게 만들었다. “우리 둘이 싸우려면 어느 정도 공간을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겠나?” 타일리는 지금 진심이었다. 물론 자신은 여전히 무신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자신의 실력에 근접한 자, 그리고 앞으로는 보기 힘들 그런 자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진지한 자세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말투는 여전히 장난스러웠지만. 풍철산 역시 그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보고 뒤로 돌아보며 정중한 음성 으로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찌됐든 그와 제가 싸우면 이곳 사방 수 수키르 안은 박살이 납니다. 그러니 수 수키르 뒤로 물러서서 저를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자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무인입니다. 강한 자가 싸우고 싶고 이기고 싶어 하는, 더구나 제 왼팔을 앗아간 그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 다. 제발 편의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노진혁은 더 말하려다 그의 태도가 너무도 진지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리 를 이끌고 뒤로 물러섰다. “고맙소.” “뭘~!” 풍철산은 자신에게 시간을 준 타일리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고 타일리는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에 피식 미소 지은 풍철산은 많은 말을 접어두고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일리 역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럼 가오!” “오라!” 짧은 말을 끝으로 공전절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에공... 하루가 가기 전에 5연참을 했군요. ㅋㅋㅋ 204화. 형제 상봉! 1 피에 젖은 손!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 ‘그게 바로 나다.’ 진은 자꾸만 떠오르는 상념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막힘없이 흐르던 기가 제각각 날뛰고 있었고 드래고니아의 고니아도 그의 몸 안으로 들어와 기와 함께 그의 몸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오직 자연의 기운인 마나만이 엘뤼시온의 인도 아래 그나마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웨엑! 젠장!” 결국 기운들의 충돌에 몸이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한 진은 입가를 쓰윽 닦으며 멍한 눈으로 다시 누웠다. ‘이러려고 그렇게 강해지려고 했던 걸까?’ 강함에 대한 회의에 진은 더욱더 서글퍼졌다. 모든 게 무의미해졌고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자신이 이렇게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체념으로 바뀌어 또 다시 암울한 사고 속으로 침잠되어 갔다. 진은 며칠 째,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있던 그의 몸도 많이 상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죽 이상의 역할로는 보이지 않는 피골이 상접한 얼굴은 그가 세상에 이름난 올슈레이 진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알고 있는 올슈레이 진은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패기만만했으나 어두컴컴한 방 안에 누워 있 는 이에게서는 도무지 그러한 자신감도, 패기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패배자가 되는 걸까?’ 자신이 생각해도 비관적인 생각만 하는 그였다. 처음엔 이런 자신에게 화라도 냈지만 이제는 화를 낼 기운도 없어 아예 자포하기 하는 진이었다. ‘이제 끝이다!’ 결국 스스로가 만든 패배라는 굴레에 몸을 담그는 진이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리오스와 안젤리나는 에리필들이 살았던 집 앞에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이 집은 폐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무리 느껴 봐도 저 집 안에서는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그, 그렇네요.” 안젤리나는 리오스의 침중한 음성에 그녀의 가슴도 절로 답답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마냥 앞에서만 있을 수는 없었다. 끼익! 후두둑! 문을 열자 자욱한 먼지가 내려앉았다. 이에 두 사람은 ‘콜록콜록’ 기침을 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리오스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쌓여 있는 먼지에 놀랐다. 그러다 몇몇 곳의 먼지가 다른 곳과 비교해 비교적 적게 쌓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군데군데 찍혀져 있는 발자국들도. “진이가 분명 이곳에 온 듯 하군요. 그렇단 말은 이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냉철한 이성과 그가 알고 있는 진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그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 집을 나서는 그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이렇게 죽는 건가?’ 진은 이제 한계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더 이상 버티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래도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이렇게 죽는 것도 좋겠지.’ 진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뭐라도 먹고 몸을 보신한다면 나을 것이지만 그럴 마음이 없었다. 자신은 살인자니깐. 하늘이 준 힘으로 살육에 미친 녀석이니깐. 진은 그렇게 자신을 자책했다. 이것이 여러 일이 겹쳐져 생긴 심마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진이었다. 그렇게 진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였다. 끼익! “…누, 누구?” 진은 이제는 시력도 희미해져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더더욱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단지 바닥을 울리는 소리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으윽, 흑흑흑흑!” 진은 의아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난데없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자신은 이제 곧 죽을 것이기에 사소한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때였다. 발자국 소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짝! 쿵! “크흑!” 누워있던 진은 얼굴을 때리는 엄청난 힘에 그 상태로 굴러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진은 누가 자신을 때리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네, 네 이놈!” 음성으로 미루어보아 그를 때리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남자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남자인 것은 별무 소용없었다. “네, 네가 내가 알고 있던 진이란 말이냐?” 이번에는 조금 더 명확하게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삶에 회의를 가지고 있던 그도 조금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내의 입에서 다름 아닌 자신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은 고개를 돌려 화를 내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하지만 자욱한 안개가 눈앞에 낀 듯 사내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단지 금발이라는 것과 훤칠한 키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누, 누구?” 그래서 진은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짝! 쿵! “크헉!” 또 다시 엄청난 충격에 날아가 벽에 처박힌 진이었다. 그리고 진의 인내심도, 아니 삶의 허무함이 조금 무너졌다. 웅웅웅! 비록 여전히 기와 고니아, 그리고 이제는 엘뤼시온의 의지마저 벗어난 마나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지만 투기가 일어난 진에 의해 순간적이지만 그의 제어아래 들어갔다. 그리고 벽에 처박혀 있던 진이 번개가 무색한 속도로 다가와 그를 때린 상대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펑! 주르륵! 쾅! 사내는 진의 주먹을 간신히 막을 수는 있었지만 그 힘을 해소할 수 없어 벽을 뚫고 밖에까지 튕겨나갔다. 그리고 집 앞 마당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향해 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그때였다. “크하하하하하하!” 사내의 입에서 시원스런 대소가 울려 퍼졌다. 그에 잠시간 이성을 잃고 있던 진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또 다시 인생 다 살은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턱! 그러나 진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어깨를 붙잡은 사내가 그의 몸을 돌려세웠기 때문이다. “잘 봐라. 내가 누구인 거 같으냐?” 사내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그렇게 해야만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 역시 그의 말에 따라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찌잉! 순간 머리가 아파져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아픔에 가슴을 터트리고 싶을 만큼 답답했다. “…….” 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자 그의 뒤에 있던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뭔가를 망설이 듯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다 결국 무언가 크게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그분은 바로 당신 형이에요.” “리나?” 진은 꿈에서도 잊지 못한 그녀의 음성을 듣고 뒤로 돌아보았다. 그녀가 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단지 그녀의 음성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것이라는 것만이 중요했다. 다행히도 아직은 세 기운이 그의 의지 아래에 있었기에 방금 전처럼 희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선명하게 그리고 뇌리에 박힐 정도로 자세히 보였다. “저, 정말 리나구나.” 진은 다가가 그녀를 안으려다 멈칫했다. 그녀는 자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크헉, 우에엑!”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인식하자 또 다시 심마가 발작했고 결국 그의 의지를 벗어난 세 기운이 그의 내부를 뒤집어 놓아 토혈을 하게 만들었다. “괘, 괜찮아요?” 이에 깜짝 놀란 안젤리나는 서둘러 그를 부축했고 진은 핏방울을 뚝뚝 흘리며 힘없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리나!” 그 말을 끝으로 진은 의식을 잃었다. ================================================================= 형제상봉~~~~~~~~~~~~두둥!!!!!!!!! 205화. 형제 상봉! 2 진이 만든 엉성하기 그지없는 오두막집 안, 안젤리나와 리오스는 온 몸이 부풀어 오른 진을 보며 속을 태우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흐흑!” 안젤리나 역시 무가에서 나란 여인이다 보니 진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심마에 의한 기의 폭주! 거기다 진은 기뿐만 아니라 다른 두 개의 기운까지 폭주하고 있으니 신이 아닌 이상 그를 소생시키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리오스는 진의 상태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본신의 힘을 사용한다면 진이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고민은 짧았다. 설혹 자신에게 단 한번의 기회가 남았다 하더라도 그는 망 설이지 않고 그 힘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영혼이 소멸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잠시 밖에 나가계십시오.” “흐흑! 그, 그이를 살릴 방법이 있는 건가요?” 안젤리나는 울먹이는 음성이었으나 기대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리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스. 또한 리오스는 그녀에게 한 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제가 기운을 개방하게 되면 이 일대는 엄청난 충격에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니 마을로 내려가 있으십시오. 그래야 저도 마음 편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그럴게요.” 안젤리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그러다 문밖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리오스를 바라보며 진심이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제발, 부탁드려요.” 무거운 안색을 하고 있던 리오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생겼다. “지금쯤이면 마을에 도착했겠지?” 리오스는 대충 시간을 보고 이제는 온 몸이 공이 튕기듯 퉁퉁 튕겨 오르는 진을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 심어져 있는 봉인을 풀기 시작했다. 화악! 리오스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존재감이 너무도 엄청나 그 근방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의 기운은 이곳과는 이질적인 마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기를 가진 자 중, 그 누구도 경배할 수밖에 없는 마신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우웅웅웅웅! 리오스는 간만에 느껴보는 충실한 느낌에 작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진의 몸에 손을 갖다대기 시작했다. 쿵쿵쿵! 진의 몸은 그의 손이 닿자마자 크게 발버둥치며 목재로 만들어진 침대 위를 심하게 울렸다. 그러나 리오스의 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리오스의 마기가 진의 몸에 주입되자 진은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마기를 주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신이 된 리오스는 진의 몸에서 날뛰고 있는 기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 개의 다른 기운! 그러나 합쳐지지 않은 그 기운들은 우주의 법칙을 꿰고 있는 리오스로서도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의 몸에 세 개의 다른 기운을 어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 렇게 거대한 기운을…….’ 리오스는 진이 심마에 빠진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세 개의 다른 기운! 그리고 하나의 기운만으로도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거대함! 그러나 그것들이 오히려 해가 되어 진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고 진의 정신이 나약해진 틈을 타 웅크렸던 발톱을 드러낸 것이리라! 리오스는 처음 진의 기운을 바로 잡아주려던 것에서 세 개의 기운을 하나 로 합쳐주어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신인 리오스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 후면 편안해질 거야.” 리오스는 눈에 있는 실핏줄이란 실핏줄이 모두 터져버려 피눈물을 흘리는 진을 보며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세 개의 날뛰는 기운들을 마기로 더욱 날뛰게 만들어 세 기운을 충돌케 만들었다. 쾅! 쾅! 쾅! “으아아아아아아악!” 진은 몸 안에서 기운이 터지자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츄요 등, 내부 장기들은 조금도 손상당하지 않았다. 리오스가 마기로 그것들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쾅쾅쾅쾅! 쩌쩌적! 세 개의 서로 다른 기운은 서로를 잡아먹기라도 하듯 충돌을 일으켰고 그럴수록 세 개의 기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껍질들을 벗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리오스가 하고 있는 것을 여느 무인이 듣는다면 미친 짓이라고 짐을 싸들고 따라와 말릴 것이다. 하지만 리오스는 바로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신이 된 존재였다. 파지직직직! 쿠오오오오! 콰아아~~앙! 대법도 막바지로 이르자 리오스는 본신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렇 다 보니 그와 진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사방 일대가 마기의 폭풍에 비명을 질렀고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리오스가 그 기운들을 최대한 제어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만약 리오스가 그의 기운을 그대로 폭발시켰다면 최소한 제국의 반 이상은 화염 아래에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쩌쩌적적! 휘위이잉! 껍질이 깨진 상태에서 또 다시 충돌을 일으켰지만 같은 속성을 가지게 된 세 개의 기운은 굉음을 토하지 않고 서로를 감싸 듯 빙글빙글 돌다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개의 기운은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새어나오며 피골이 상접했던 그의 몸이 껍질이 되어 벗겨져 나왔다. 그렇게 총 3번의 껍질을 벗은 진은 눈이 부실만큼 하얀 피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이런 진의 변화를 만약 지나가던 무인이 보았다면 경악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사실상 전설로 알려진 천혜화의 경지에 다다르면 껍질을 탈피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진이 천혜화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주의 법칙을 꿰뚫고 있는 리오스가 세 개의 기운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 신기를 담을 수 있는 몸을 그의 기운과 진의 기운으로 만들어주었을 뿐이었다. ‘모든 기운은 루미에님에게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이내 코스모스라는 태고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또한 코스모스는 루미에님의 창조에 발맞춰 마기와 신기로 나뉘게 되며 신의 아들들이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함에 더욱더 세분화되며 각 신의 껍질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근원은 태고의 마기와 신 기이니, 루미에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코스모스를 사용할 수 없으니 태고의 기운은 바로 마기와 신기다.’ 속으로 조용히 되뇌며 그의 생각을 정신을 잃은 진에게 전달하는 리오스였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제는 확신을 갖는 것밖에 남지 않은 건가?” 이마에 송골 맺혀 있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리던 리오스는 본신의 힘이 사 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봉인을 해제했을 때, 쓸 수 있는 힘의 한도를 알게 되었다. ‘그 목적을 이루게 되면 또 다시 봉인이 되는구나.’ 씁쓸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하는 리오스였다. 다음 날, 진은 자신을 괴롭히던 심마가 치유되었다는 것보다 그의 형 리오스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심마가 치유되니 이제껏 그를 괴롭혔던 자기비하는 씻은 듯이 사라져버려 안젤리나를 대함에 조금도 어색함이 없었다. 이제야 세상이 알던 올슈레이 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리오스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진의 몸은 이미 태고의 기운인 신기에 맞춰 재구성되어 자신과 마찬가지로 온 몸이 단전화 되었다. 하지만 그 기운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불안정한 의지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네가 강해지려는 이유가 뭐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그렇담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해 할 수밖에 없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 진은 리오스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처럼 자책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답할 말이 궁색해졌을 뿐이었다. “너에게 이미 한번 전한 바 있지만 너의 기운은 이미 하나의 신기로 합쳐 졌다. 이후, 네가 세 개의 다른 기운을 몸에 저장할 때, 너는 필히 신기로 바꿔서 저장해야 한다. 하지만 신기는 태고의 기운이다. 태고의 기운이란 루미에님의 의지 아래 만들어진 신외지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태고의 기 운인 신기를 다루려면 그 의지력은 상상을 초월해야 한다. 또한 그 의지력은 확신이 없는 자에게는 생기지 않는 것이니, 내가 너에게 몸을 단련하라 이른 것은 내가 물은 이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너의 몸을 단련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라함이다.” 조금은 딱딱한 말투였지만 진은 리오스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말에 따라 예전 에리필들과 수련했던 대로 몸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 형제 상봉은 요기까지~~다음화는 음하하하하!!!!! 206화. 결전! 1 “하압, 풍뇌질풍검!” “암흑력파!” 그그그그그! 경이롭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두 기운이 섬광이 되어 충돌했고 두 힘이 너무도 엇비슷한지라 허공에서 공회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야압!”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면서도 풍철산은 자신이 밀리고 있는 것을 느끼고 우렁찬 기합과 함께 기운을 배가시켰다. 그러자 황금빛 바람이 시커먼 안개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후훗, 제법 힘을 쓰는군.” 타일리는 자신을 압박하는 힘이 생각 이상이었으나 여유를 잃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 재미난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풍철산의 행동은 그의 심기를 아주 조금 불편케 했다. “그렇다면 나도 조금 신경 써서 상대해주지.” 말을 끝맺자마자 그의 검이 허공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검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시커먼 안개들이 치열하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있는 공중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올라갔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검은 안개는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황금빛 바람을 잡아 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새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황금빛 바람들이 점차 작아져 황금빛 섬광들이 번쩍이던 하늘이 오로지 시커먼 안개로 바뀌어버렸다. “컥, 우웨엑!” 풍철산은 풍뇌질풍검이 깨지자 그 충격에 내상을 당해 결국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몸을 바람이 감싸는 듯 하더니 그 자리에서 푹 꺼지듯 사라졌다. “호오!” 타일리는 감쪽같이 기척을 감추는 풍철산에게 꽤 놀란 듯 했다. 하지만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시커먼 안개를 회수하는 여유까지 보이며 자연스런 동작으로 오른쪽 하늘을 향해 검을 뻗었다. 쾅! 언제 나타났는지 그곳에 풍철산의 검이 있었다. 그러나 풍철산 역시 이미 짐작했다는 듯, 그의 검은 격돌하는 즉시 사라졌고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만이 그와 타일리가 격돌했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주었다. 쾅! 쾅! 쾅! 풍철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의 검만이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와 타일리를 공격했다 사라지기를 수차례! 타일리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으나 그의 주변은 이미 거대한 회오리 안에 잡아먹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공격의 횟수가 많아지고 점차 빨라지기를 또한 수차례! 광폭한 돌개바람 속에서 풍철산의 웅혼한 외침이 울렸다. “풍뇌용선검!” 번쩍! 하늘에서 한 줄기 번개가 돌개바람의 한 가운데로 떨어지고 그 순간 돌개 바람의 핵 부분에 시커먼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안으로 타일리를 빨아들이기 위해 엄청난 흡입력이 그의 몸을 하늘로 빨아올렸다. “크흠!” 타일리는 자신의 몸이 자꾸만 시커먼 공간으로 빨려 올라가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운을 끓어 올리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그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강렬한 스파크가 터지며 시커먼 공간으로 빨려 올라가던 그의 몸이 공중에서 딱 멈췄다. 그때, 맹렬하게 회전하는 돌개바람 속에서 황금빛 광선과 그들 틈 사이에 숨어 있는 무형의 칼날바람이 타일리를 노리고 쇄도했다. “이거 재밌는데!” 말은 느긋하게 했으나 그의 검은 바쁘게 움직였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한 순간에 수만 번을 움직이는 듯 그가 떠 있는 공중에 수만의 타일리가 각기 다른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환상처럼 새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너무도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기에 그 잔상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잔상이 생기고 그것이 반복하다보니 이러한 환상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타일리는 쉴 새 없이 덮치는 황금빛 광선과 그들 틈 사이에 숨어 있는 무형의 칼날바람을 무리 없이 상쇄했다. 또한 그러면서도 시커먼 공간의 흡입력에 대항하는 것을 소홀치 않았으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염두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번은 실로 만만치 않구나.’ 방금 전, 풍철산의 강렬한 눈빛처럼 이번 공격은 만만치 않았다. 사실 이 공격은 풍철산이 바람과 번개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상대를 몰아붙이기 위해 만든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가 풍뇌용선검을 만들 때, 염두 했던 사람이 바로 타일리였다. 이미 타일리와 한번 붙어본 적이 있던 풍철산은 그의 기운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풍뇌용선검은 그 기운을 한곳에다 쓸 수 없도록 만든 기술이다. 시커먼 공 간이 발하는 흡입력과 돌개바람에서 쏟아지는 황금빛 광선과 기척도 없이 몰아치는 칼날바람! 또한 황금빛 광선과 칼날바람은 돌개바람이 점차 가속도가 붙음에 따라 더욱 빨라지니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바로 타일리였다. 하지만 풍철산의 회심의 생각과는 달리 타일리는 비록 조금은 당혹스러웠 지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다급하지는 않았다. 그 예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으며 수만 개의 잔상을 만들고 있는 그의 몸은 갈수록 빨라지는 황금빛 광선과 무형의 칼날바람을 무리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타일리의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그런데 그것이 비록 생채기라 할지라도 수만의 황금빛 광선과 형체가 없는 칼날바람 때문에 상처가 생겨 꽤나 심기가 불편했다. “우오오오오오!” 검을 휘두르다 갑자기 고성을 토한 타일리는 초극의 기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휘위위윙윙! 파스스슥! 그의 몸에서 흑빛 광채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를 노리고 쇄도하는 황금빛 광선과 무형의 칼날바람이 무형의 막에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암흑의 빛이 천지가 차단된 돌개바람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캬오오오오!” 하늘을 향해 길게 늘어져 있는 암흑의 기둥이 중인들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괴성에 놀라 스르륵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인들은 괴성이 울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경악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저, 저게 정말 바로 그란 말인가?” 그들의 말처럼 하늘 위에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져 있었다. 사람이 바로 흑룡으로 변해 있으니 놀라지 않을 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그 흑룡이 지금 커다란 입을 열어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나 무신에게 대항하는 자, 그 결말을 잘 봐두어라!” 흑룡이 된 타일리가 붉은 눈을 빛내며 외치자 중인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칠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설마 천혜화에 오른 것인가?” 칠신의 일인인 나혁진은 각 경지에 도달했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흑룡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것인가? 그 놀람은 높은 경지에 오른 자일수록 심했다. 풍철산 역시 그가 오른 경지로 미루어 보아 무척 놀란 상태였다. 하지만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비록 그가 자신이 만든 돌개바람을 빠져나갔으며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고 하여도 그는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풍철산이 곧 돌개바람이며 시커먼 공간이며 황금빛 광선이니, 이를 짐작하는 사람은 중인 중 칠신 정도뿐이었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신무안의 코스카! 코스카의 경지야 말로 태고의 기운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그 자신이 자연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를 익히 들어온 칠신이었지만 절대적인 위엄을 보이고 있는 흑룡에게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이미 유형에서 또 다른 유형을 완벽히 이뤄낸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저들에게 목숨을 내주어야 하는 것인가?’ 칠신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으면 모를까 그가 발하는 기운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데 그가 본신의 힘을 발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때였다. 그들의 상념을 깨는 풍철산의 외침이 들렸다. “결말은 끝을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풍철산은 풍뇌용선검을 유지한 채, 흑룡인 타일리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타일리에게는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좋다. 내 친히 그 결말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커다란 흑룡의 입이 움직이며 인간의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은 꽤나 괴기스러웠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품는 자는 없었다. 단지 이 공전절후 한 결투의 끝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결말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했다. 풍철산은 처음 그를 붙잡아 두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 모든 기운을 터트려 그와 부딪히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흑룡의 위세가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나를 희생하여 모두에게 삶의 빛을 주겠다!’ 이렇게 다짐한 풍철산은 흑룡과 백여 라키르 정도의 거리를 두었을 때, 비장한 음성으로 외쳤다. “풍뇌용선검, 멸!” 동귀어진을 펼친 풍철산은 자신의 의식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바람과 번개가 명멸하는 환상을 보았고 그것은 분노의 화살이 되어 흑룡에게 쇄도했다. 구오오오오오! 하늘에서는 한 마리 흑룡이 불을 토하고 있었고 흑룡을 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번개와 칼날바람이 그의 전신을 뚫기 시작했다. 쾅쾅쾅쾅쾅쾅쾅쾅! 굉음이 터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흑룡의 단단한 껍질이 벗겨졌고 껍질이 벗겨진 곳에서 다시 한번 굉음이 터지자 이번에는 붉은 살점이 뜯기며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흑룡은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풍철산은 의식이 녹아내리는 가운데 흑룡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풍뇌용선검은 비록 자신이 만든 기술이지만 그의 친구들이 가르쳐준 비법이었다. 그들의 힘을 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법! 그러나 그는 그의 친구들도 모르게 마지막을 준비했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부터 그는 이 마지막을 예상했었는지도 모른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이 터지고 하늘 위에 존재하는 것은 무(無)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깨끗해진 하늘에 풍철산의 웃는 듯한 얼굴이 중인들의 눈에 잡혔다가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중인들은 한 쟈크 대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우르르릉! 쌔애애액! 쏴아아악! 그의 친구인 번개도 바람도 슬픈 지 마른하늘에 번개를 내려쳤고 바람과 번개는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그들의 또 다른 친구인 비까지 데려와 뜨겁게 달구어져 있는 고센 평원을 그들의 눈물로 식혀주었다. “허허허, 그는 진정 영웅이었소!” “그렇소. 앞으로 그는 뇌풍신검이 아닌, 한 쟈크 대륙 모든 무인들의 위에 서는 뇌풍신황이 될 것이오!” “옳소!” “뇌풍신황 풍철산은 한 쟈크 대륙의 영웅이오!” -와아아아아아아! 칠신의 두 명인 천월인과 을지목의 대화에 중인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함성을 질렀다. 그런 그들의 열기는 눈앞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강장원들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무신이나 다름없는 타일리가 당했으니 그 충격이 적을 리 없었다. “자! 저, 사악하기 그지없는 적도들을 물리칩시다!” 챙! 누구의 입에서부터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리고 누구 할 것 같이 검을 뽑아 들고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때였다. 콰앙! “으아아악!” “커헉, 내, 내 팔!” 금강장원의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선두에 선 십여 명의 무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흑색구에 본능적으로 기운을 쏘아 보내 부딪쳤으나 번쩍하는 빛이 터짐과 동시에 생명을 잃거나 크게 다쳐버렸다. 그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순간 그들의 들떴던 정신은 싸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 다. “누, 누구냐!” 천월인이 흑색구가 터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며 외치자 그곳에서 흑색 안개가 뭉치며 한 사람이 만들어졌다. “허억, 너, 너는 은발마왕!” “크흑, 살아 있었다니!” 중인들은 그가 살아있음에 놀라다 못해 경악했다. “하하하하, 내가 살아있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내가 그깟 애송이에 게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거 참 실망이 크군, 그래!” 그러며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흑색구를 만들어냈다. 타일리는 흑색구를 잠시 바라보았다 경악의 표정을 짓고 있는 중인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암흑파구라 하지. 그리고 그 표정들을 보아하니 해명을 원하는 듯 하니, 간단히 설명해주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환영술의 대가다. 너희들이 지어 준 또 다른 별호가 환영마존이라는 것을 잊은 건 아니겠지?” 중인들은 그의 말에 크게 통탄했다. 하지만 몇몇 높은 경지에 다다른 자들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분명 처음 싸울 때는 환영이 아닌 듯했다. 그렇단 말은 어디서부터가 환영이었단 말인가? 설마?’ 중인들 중, 염두를 굴리고 있던 천월인의 뇌리에 뭔가가 번쩍하며 스쳐지나갔다. “아까 전, 그 흑룡이 혹시 환영이었단 말이오?” 그의 말에 타일리는 히죽 웃으며 알쏭달쏭한 대답으로 대화를 마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우선, 아까 그놈 때문에 상당히 기분이 나빠졌으니 우선 이것으로 그 기분을 풀어야겠다.”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타일리는 흑색구를 중인들에게 던졌다. 처음 그의 손을 떠날 때만 해도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공 만했던 것이 중인들 면전에 다다랐을 때는 수백 배나 불어나 있었다. 이에 중인들은 바짝 긴장하며 기운을 끌어올려 흑색구를 터트리려 했다. 그때였다. 중인들 뒤편에서 주작 한 마리가 날아와 흑색구를 꿀꺽 삼키는 것이 아닌가?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타일리는 뭐가 그리도 분한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암흑파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흑색구를 터트리며 수만 개 의 흑색창으로 대지를 피로 물들이는 것인데, 저 놈은 혹시 그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지. 방금 전, 빛의 가려진 수만의 흑색창을 보았겠지. 그렇단 말은 저놈의 안력이 칠신의 위라는 말인가?’ 타일리는 어느새 자신 앞에 나타난 자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허공을 날아 그의 옆에 착지하는 두 사람을 보았다. ‘칠신을 능가하는 자가 세 명이라니! 더구나 저 가운데 있는 녀석은 풍철산의 아래가 아니다.’ 타일리는 그답지 않게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가 풍철산과의 전투로 작지 않은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사실 풍철산은 천월인의 말대로 전투 중, 환영술을 썼었다. 하지만 천월인의 생각대로 흑룡은 환영술을 부려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환영술을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철산의 동귀어진 수법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듯 했다. 그래서 공격을 받는 즉시 자연마저 속일 수 있는 환영술을 발휘해 몸을 빼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무신이라고 같잖지도 않은 자부심으로 버틴 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타일리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세 사람 중 가운데에 있던 헌헌한 미장부가 타일리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뒤돌아섰다. “잠시 인사 좀 나누겠소.” 그의 대책이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에 타일리나 중인들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금강장원을 섬멸하기 모인 이들 모두 잘 생기다 못해 천상의 남신이 재림한 듯한 청년의 모습에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허억, 내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보다니! 우리 마누라가 이 청년을 보면 큰일 나겠군.” “저, 저게 정말 인간의 얼굴이란 말인가?” “정말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군.” 그들 대부분이 엄청난 수양을 쌓았음에도 그들 속에 자리 잡은 감탄과 질투의 감정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니아와 이미 한 몸이 되어 버린 린은 점차 높은 경지로 올라가면서 그는 원하지 않았지만 더욱더 외모가 아름다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청년은 그들이 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을 뚫고 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몽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미안하오!” 그녀는 바로 청년의 유일한 여인인 북궁소소였다. 그리고 청년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린이었다. ================================================================ 전투씬은 언제나 힘든 작업입니다. 차라리 박투술을 그리라면 좀 편하겠는데, 휴우... 이넘들이 이제는 너무 강해서 그렇게 하면 성이 풀리지 않는 다고 하여 아우성치네요. 크흑, 큰일났습니다. 이제부터 거의 전투씬이 7할 이상을 차지할 듯 한데...으음, 물론 어떻게 진행될지는 더 머리를 굴려봐야 하기에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어쨌든 전투는 바야흐로...(?)계속 진행되네요^^ 쿨럭 207화. 결전. 2 타일리는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린의 태도에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허허허, 졸지에 이 내가 찬 밥 신세가 되어버렸군.” 그러며 또 다시 흑색구를 만든 타일리가 린들을 향해 그것을 날리려하자 지금껏 소소와 회포를 풀던 린이 고개를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 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은 타일리는 너무도 놀라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그 구는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수만의 창으로 변하는 대인 살상을 위한 공격이지.” “허억, 네, 네놈이 그것을 어떻게?” 타일리의 놀란 음성에 린은 피식 웃으며 그를 더욱더 당황스럽게 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의 강한 사념이 만들어낸 네 개의 힘! 그 중에 무력을 상징하는 빛과 암흑 중 암흑의 힘을 얻은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그리 놀랄 필요는 없소.” “…… 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타일리는 너무도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랄 법도 하건만 린은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크큭, 역시 너는 세상을 파괴하고 신이 되어 버린 ‘그’의 양심이 만들어낸 인격의 힘을 얻은 사방신 중의 한 명인가?” “…….” 린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로 미루어보아 자신들이 사방신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었기에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타일리 역시 그의 대답을 구하려는 물음이 아니었기에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크크큭, 정말로 아이러니컬하군. 한 사람에게서 이렇듯 강대한 힘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뭐, 나 역시 ‘그’라는 관념적인 기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가 누구며 어떤 의도로 이렇듯 편을 갈라놓듯이 업과 업을 막는 자로 나누었는지는 몰라도 너무도 재미있어. 크크큭!” 타일리는 진심으로 기뻤다. 솔직히 자신의 형인 세필로스를 제외하고는 자신을 막을 자가 없는 이 시대에 염증이 나던 참이었다. 그것도 세필로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두 번 다시 자신의 앞을 막을 수 없는 지금, 그 염증이 극에 다다라있던 참이었다. 얼마 전, 힘의 금제를 당했을 때만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금제를 풀고 세상을 지배하리라던 야욕도 점차 시들해졌다. 거기다 인간 중, 최강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풍철산 역시 죽어버린 지금, 자신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모조리 파괴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예전 ‘그’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한 때에 자신을 막기 위해 풍철산 급의 고수가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과 또 다른 사념의 욕망이 만들어낸 힘의 소유자들밖에 모르리라 장담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재미있소?” 린의 퉁명스런 물음에 타일리는 잠시 웃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다 ‘크큭’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암! 암, 재밌고말고. 그런데 사방신이라면 네 명이어야지 왜 세 명밖에 보이지 않나?” 타일리는 린과 스테판, 그리고 아미르를 훑어보며 말했다. 이에 린의 좀처럼 변화지 않던 얼굴이 잠시 찡그려졌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당신에게 말해줄 이유는 없소.” “그렇지. 크큭, 오늘 왜 이렇지? 정말 기분이 좋군 그래. 좋다. 너희 세 명 모두 덤벼라. 그 정도의 아량은 베풀어주지.”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오만 당신의 환영은 우리에게 통하지 않소.” “크큭, 같은 자의 힘을 얻은 이들에게 환영을 쓸 정도로 난 어리석지 않다네.” 타일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타일리의 환영은 엄밀히 말해 환영이라 할 수 없었다. 고도의 최면술과 상대의 적절한 상황을 만든 뒤, 그 뒤의 상황을 예상해 그 예상한 상황을 자신의 기운으로 만드는 고도의 수법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느 환영술과 달리 고도의 집중력과 기운이 소모되는 것이다. 거기다 타일리와 린들은 비록 그 힘의 성질은 같지 않다고는 하나 ‘그’의 힘을 얻었다 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사용하는 기운의 본류가 같다는 말이다. 여기서 본류가 같다는 말은 ‘그’가 가진 힘의 특이성에 따른 것인데, 그가 신이 되기 전 남긴 힘이 바로 영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에 환영의 묘가 다른 이들에게는 쉽게 발휘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린들에게 환영의 묘가 발휘될 확률은 극히 낮다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그가 환영을 펼칠 때, 미묘하게 변하는 파장을 그들은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같은 영혼의 힘을 사용하니 그것을 감지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혹, 그들 수련이 그 정도까지 다다라있지 못 할 수도 있지만 타일리로서는 안 그래도 시전하면 큰 무리가 따르는 환영을 연거푸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타일리는 순수한 힘만으로 상대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최고의 힘으로 상대를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그래야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이 마음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스테판과 아미르는 린의 경지가 또 다시 높아진 것을 알았다. 린이 자신들에게 매번 해준 이야기가 바로 성취가 높아질수록 ‘그’가 남긴 업에 관한 지식을 더욱더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사실을 알고 있는 린, 더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지식을 알고 있는 린의 성취속도에 그들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렇게 그들이 속으로 놀라고 있을 때, 린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승부를 건다. 그의 눈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뜻에 공명하듯 ‘웅웅웅’거리며 공명음을 토하는 드래고니아가 나타났다. “물러서십시오.” 칠신 및 나름대로 고수라 자부했던 중인들은 린의 외침에 뒤로 물러서면서도 왠지 서글퍼졌다. ‘우리들은 이미 한물 간 건가?’ 대체로 이곳에 있는 이들의 연령이 높았음으로 그들의 한탄은 더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린은 그들의 마음까지 배려해줄 여유가 없었다. 이미 흑룡으로 변신하고 있는 타일리의 위세가 너무도 압도적이었기에 그는 최대한 끌어 모은 기운으로 필살의 기법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고고고고고! 파파파파팍! 거대한 흑룡으로 변하는 타일리의 기세가 워낙에 대단한지라 대기는 용트림을 하듯 사정없이 울리고 있었고 대지 역시 무사하지 못하고 연신 패이고 터지고 있었다. “꺄오오오오오!”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위대함을 즐기고 있던 흑룡이 커다란 붉은 눈을 뜨 며 힘찬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대기가 파르르 떨림과 동시에 중인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떨어야 했다. ‘만만치 않군!’ “간다!” 생각은 그러했으나 물러서지 않는 린들이었다. 린의 외침에 최대한도로 기운을 모으고 있던 그들 세 사람의 드래고니아가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화룡점정을 끝마쳤을 때, 그들 입에서 웅혼한 외침이 토해졌다. “주작천열무!” “현무천력무!” “청룡우뢰무!” 세 사람의 드래고니아가 만들어낸 주작과 현무, 청룡은 만인을 압도하는 모습의 흑룡에게로 돌진했다. 흑룡은 천지마저도 파괴할 듯한 세 신수의 돌진에도 조금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콰아아~~~~~앙! 중인들은 뭔가가 번쩍한다고 느낀 순간 네 개의 서로 다른 색의 빛이 충돌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충돌의 엄청난 여파는 마치 수천 라키르의 높이의 파도가 땅을 후려쳐 옆으로 쫘악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인간으로써는 펼칠 수 없는 거력이 단 한번의 충돌로 만들어 진 것이다. “어, 어서 기막을 펼쳐라!” “뒤로 후퇴하라!” 중인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있자 칠신은 서둘러 장내를 정리하며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수 수키르나 물러섰을 때야 그들은 충돌의 여파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편을 보니 금강장원의 무리들 역시 더욱더 멀찍이 물러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이미 금강장원의 무리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모인 이들을 떠나 이 신인들의 전투를 관전하고 있는 것이다. 쾅쾅쾅쾅쾅쾅쾅쾅! 하늘을 날아다니며 부딪치는 네 신수는 이미 수백 번이나 상대의 틈을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그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주작천열무, 풍!” 아름답기까지 한 주작이 날개를 퍼덕이자 사방 수 수키르에 있던 공기가 주작의 품 안으로 말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 공기가 더 이상 압축될 수 없을 정도로 압축된 상태에 이르자 주작은 다시 한번 크게 날개를 움직였고 그 압축된 공기가 거대한 창이 되어 현무와 청룡과 뒤엉켜 싸우고 있는 흑룡에게로 쇄도했다. 퍼엉! 바람의 창은 잠시 굉음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며 흑룡의 단단한 갑주를 부수고 들어가 그의 몸에 꼽혔다. 콰직! 푸욱! “크아오!” 흑룡은 온 몸을 헤집어놓는 듯한 그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크게 분노한 흑룡이 붉은 눈을 빛내며 자욱한 암흑의 기운을 뿜어냈다. “크헉!” “아악!” 스테판과 아미르는 자신의 청룡과 현무가 암흑의 기운에 짓눌리자 그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이에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던 주작이 순식간에 공간을 좁히고 날아와 그들을 짓누르는 흑색 기운을 찢어발기고 물어뜯었 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형님” 아미르와 스테판은 너무도 참기 힘든 고통에 드래고니아를 들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린의 도움으로 현무와 청룡이 깨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그에게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살벌한 전투중인지라 그 이상의 표현은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수많은 생명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벌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전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흑룡은 린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렸다. 이번만 해도 그랬지만 회심의 공격 을 무너뜨리는 그가 정말로 얄미웠다. 그러나 앞서 두 사람과 달리 그의 주작은 마치 변신한 자신처럼 또 하나의 그가 되어 싸우고 있었기에 처리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특히나 변신한 자신처럼 주작 자체가 또 다른 기법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혹시 자신과 같은 경지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운은 분명 자신보다 약했다. 깨달음만으로 따진다면 비슷한 경지일지도 모르나 힘은 분명 자신이 앞섰다. 한편 스테판과 아미르는 자신들과 달리 신수를 부리는 상태에서 신수로 또 다른 기법을 사용하는 린이 너무도 부러웠다. 또한 그런 그의 발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에 절로 부끄러워졌다. 린은 그들의 이러한 마음을 짐작한 듯, 쉬지 않고 드래고니아로 주작을 조종하는 한편, 그들을 다독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금과 같은 단 한번의 실수로 승부가 결정 나는 살얼음판과 같은 전투에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철벽과도 같이 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없었으면 나는 진즉에 졌을 것이다. 그러니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스테판과 아미르는 그의 말에 적잖은 힘을 얻었다. 그렇다. 자신들은 강해졌다. 예전과 비교해본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들의 흔들렸던 마음을 굳게 바로 잡아주었다. 그렇다 보니 비록 힘은 드나 방금 전과 달리 그들 손에서 움직이고 있는 드래고니아의 움직임은 더없이 가볍고도 경쾌했다. 쾅쾅쾅쾅쾅쾅! 파지직! 지직! 파지직! 화르르르르르! 쉴 새 없이 터지는 굉음과 스파크로 가득 차 있는 대기! 그리고 그 스파크 들과 굉음이 만들어낸 에너지는 대기마저 불태우며 공중에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화르르르! 이미 생물이 살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린 고센 평원의 중앙부에 허공에서 떨어진 불꽃이 붙으며 불길이 거세어졌다. 이런 고센 평원의 중앙부는 마치 인세에 도래한 지옥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전투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한 시간을 넘어 세 시간을 다가가고 있었 다. 이것은 처음부터 강공으로 승부를 빨리 보려던 양측의 계산과도 다른 것이었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힘이 더욱더 강해진다.’ 네 사람 모두 느끼는 감정이었다. 타일리는 분명 일격 일격에 엄청난 기운을 쏟아 부었기에 이미 예전에 탈진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몸은 넘쳐나는 힘으로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사방신 중 세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색다른 느낌과 다른 점이라면 세 사람 모두 이러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설마, 그와도 공명을 일으키는 것인가?’ 린은 자신의 힘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강해지는 것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패하는 것은 분명 자신들일 것이다. 분명 부딪힘으로 인해서 얻는 힘은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쪽은 그 힘이 세 사람에게로 나뉘는 것에 비해 상대는 그것을 홀로 얻는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하아, 이럴 때 형님이 계셨다면…….’ 그랬다면 전투가 이렇게 길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 진만 있었어도 타일리를 이길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의 그만 해도 예전의 진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솔직히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없는 그를 바라는 것은 패배를 두려워하는데서 오는 헛된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더 비참해졌고 화가 났다. 린은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지만 상대가 끝내려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전투를 멈춰버리면 충돌의 여파로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기에 타일리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바라는 것이고 그는 이 어정쩡한 상황을 끝내야 했다. ‘이 이상 그가 강해지면 안 된다. 나중에 형님이 그를 상대할 것을 대비해야 한다.’ 린은 마음을 다잡고 단호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일부러 주작에게 보내는 힘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이런 그의 모습에 스테판과 아미르는 점차 어지러워지는 드래고니아의 움직임에 린을 보았다. 왜 힘을 줄이냐는 의미다. 이에 린은 잠시 한숨을 쉬고 그들에게 미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더 이상 그를 강해지게 할 순 없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포기해 야 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우리는 이미 그의 상대가 아니다. 미안하다.” 결국 포기하자는 말이다. 그들이 아무리 혼신을 다한 힘을 쏟아 부어도 그는 오히려 그 힘으로 강해질 뿐이니. 그렇게 되면 결국 죽 써서 개만 좋은 결과를 줄 뿐이다. 린은 그들을 보고 있기가 미안해져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때, 스테판과 아미르의 밝은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4업을 막을 수는 없지만, 누구를 위해 이러는지를 아니, 우리 모두 그에게 이 막중한 임무를 맡겨요.” “고맙다. 하지만 그에게 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너에게는 오라버니고, 우 리에게는 형님이 되시는 분이다.” “키킥, 오라버니는 농담도 몰라요?” 아미르는 아름다운 얼굴에 생긋한 미소를 지으며 ‘킥킥’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모두 초연한 표정을 짓고 기운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안 되오!” ================================================================== 후우, 어제 축구를 하다 오른 손목 인대가 늘어나버렸습니다. 지금, 기브스는 아니고, 붙였다 땠다를 할 수 있는 이상한 것으로 고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글 쓰기가 상당히 불편하군요. 에공... 그래도 연재는 광참은 아닐지라도...쉬지 않고 할 터이니...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p.s 이벤트 참여 합시다!!!!!!!! 후후후후후 208화. 결전. 3 칠신 중 한 명만 있어도 그 존재감은 만인을 굽어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러한 칠신이 세 명이나 모여 있다면……. 만인은 올려다보지도 못할 위엄에 파르르 몸을 떨어야 옳다. 그만큼 칠신이라는 별호가 가지고 있는 힘은 위대했다. 하지만 지금 칠신 중 세 명이나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센 평원 중앙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전절후 한 전투 때문이다. “칠신이라는 허명에 하늘 아래 최고라 자부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네.” 월하장원의 전전대 장주인 천월인의 한탄에 나혁진과 을지목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혁진의 중얼거림. “이제 칠신이라는 이름은 새롭게 고쳐져야 할 거 같군. 예전의 칠신 중 살아남은 이라고는 반도 안 되는 우리 세 사람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허허허.” 그의 허탈한 음성에 두 노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 마 전까지 밝게 빛나던 세 노인의 눈빛이 점차 암울하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인들의 전투라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전투를 말없이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투에 몰입해 있던 그들은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사방신이라 불렸던 세 사람이 힘을 서서히 줄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들을 엄습했다. ‘좋지 않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백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온 경험이 억측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저들은 지금 분명 일부러 지려 한다.’ 그들이 살아온 세월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순간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월인이 씩 웃으며 홀가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늙은 폐물인 줄 알았더니만 우리도 다 쓸 데가 있어서 지금까지 살았나 보이.” “그렇지. 우리도 슬슬 그 친구들을 따라가야 할 때가 되었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어찌 빠질 수 있겠나? 한시가 급한 것 같으니 우리 모두 서두르세.” 올지목의 말은 이은 나혁진이 몸을 날리며 말했다. 지옥의 불길을 향해 뛰어듦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모습에 크게 고무된 두 노인은 오히려 패기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날렸다. 린들은 갑작스런 외침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뒤로 슬쩍 돌아보니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세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저 분들은?’ 린은 얼마 전, 북궁소소가 소개시켜 준 세 노인을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타일리에게는 저들 모두와 함께 합공을 하여도 이길 확률이 극히 낮았다. 이미 그는 처음 자신과 부딪혔을 때보다 두 배나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괜한 걸음을 하시는 구나. 하지만 어떻게 하든 결과는 같은 건가?’ 린은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속으로 찬사를 보내는 그였다. 그가 이러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어느새 다가왔는지 세 노인은 린들에게 푸근한 미소를 던진 뒤, 모든 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아~!’ 린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저들의 의도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각성의 포용력 때문에 기운이 엉켜있지만 않았다면 물러설 수도 있겠건만 이미 각성의 시기는 그 끝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 엉켜있음을 풀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엉킴을 풀려는 세 노인의 모습에 그 반탄력을 생각하니 서둘러 다가가 말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이 자리에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강해진 그의 기운에 대항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방금 전이라면 기운을 회수하고 웃으며 죽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자신들과는 상관도 없는 세 사람이나 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린이었다. 린이 이렇게 복잡한 상념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세 노인은 허공에 아름답게 수놓은 검을 허공 한 곳에 찍었다. “월하낙벽무!” “청수역월무!” “동해파랑무!” 우렁찬 외침과는 달리 그들의 검은 스피릿 트랜스도 만들지 못했다. 단지 최대한 압축된 기운이 무형에서 유형으로 변해 검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높은 경지에 다다른 자들이 지금 세 노인이 만든 것을 본다면 절로 감탄을 터트릴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무언인지를, 그리고 그들이 만든 유형의 검막이 얼마나 대단 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형의 기운이 유형의 검막으로 변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리고 세 자루의 검들은 주인의 손을 떠나 네 신수가 격돌하고 있는 공중으로 날아갔다. “간다!” 천월인의 외침에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엉켜있는 기운의 결 중 가장 빈약한 곳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잠시 선회한 검들이 빛이 되어 그곳으로 날아갔다. 그그그그! 퍼퍼펑! 처음 검들은 무형의 막에 막혀 불꽃을 일으키며 전진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그때, 린들이 검들이 뚫고 있는 곳에 유포되어 있는 기운으로 그들을 저지하는 타일리의 기운을 덮쳤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아무런 제지를 받게 되지 않자 천월인들의 검은 폭음을 터트리며 쾌속하게 날아가 결 중 가장 약한 부분을 깨뜨렸다. 쩌적! 우우웅웅웅웅웅! 결과 충돌하는 순간 그들의 검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고 뭔가가 깨지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대기가 미친 듯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기의 울음이 극에 다다랐을 때, 굉음이 터지며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이 터졌다. 번쩍! “허억!” 천월인들은 이미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라 무방비 상태로 순식간에 고센 평원을 덮치는 빛을 고스란히 맞을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 앞을 막아서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린과 스테판, 그리고 아미르였다. “괜찮으십니까?” 린은 백광이 씻은 듯이 사라지자 천천히 눈을 뜬 뒤, 눈을 감싸고 신음을 토하는 세 노인에게 걱정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세 노인은 자신들이 살아있음에 놀랐고 시력을 잃지 않았음에 또 한번 놀랐다.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 살아 있는 건가?” 나혁진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린 역시 모르는 것을 설명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타일리와 린들의 상태는 각성을 맞이하는 시기였고 그때의 상태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수용하는 기운들로 가득 차 있어 어지간하면 상대를 해할 수 없었다. 물론 힘의 우위에 있는 자가 그것을 원한다면 포용하는 기운은 이내 피를 머금은 기운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타일리는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게 찾아온 기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천월인들이 각성을 가능케 하는 결의 엉킴을 억지로 깨뜨리려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사실상 엄청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각성의 시기를 유지하고 있는 막은 세 노인의 힘으로는 뚫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비록 린들이 도와주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결은 천월인들의 검을 감싸고 있는 기운들 역시 각성을 이루는 기운으로 간주하고 그것들을 포용해버렸고 뒤늦게 자신들과는 그 본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포용한 상태기에 반탄 시킬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 독이 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미 독에 중독 된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것은 각성의 시기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결이 깨지며 터진 백광만이 각성을 깨뜨린 데에 대한 화풀이라면 화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제기랄!” 타일리는 심히 기분이 나빴다. 각성의 시기가 깨지지 않았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도 두 배는 더 강해졌을 것을 은연중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각성의 시기가 이번에 강제적으로 깨짐으로 인해 두 번 다시는 각성을 맛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린 역시 각성이 깨지고 난 뒤에 자연적으로 알게 된 것인데 죽음을 맞이하려던 그들에게 우선은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 한 세 노인의 행동이 의외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크크크, 너희 쥐새끼 같은 놈들 때문에 대공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 죄를 어떻게 갚으려는가?” 타일리, 즉 흑룡은 붉은 눈을 더욱더 붉게 빛내며 음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나혁진이 비록 온 몸에 힘은 없으나 가슴을 내밀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힘차게 말했다. “흥! 도마뱀 주제에 말만 많구나!” “이놈이!” 크아아아! 흑룡이 분노하자 마치 대기도 분노한 듯 으르릉거렸다. 그러나 장내에 있 던 사람 중,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십여 수키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군이 빠른 속도로 고센 평원의 중앙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동을 본 금강장원의 무리 쪽도 서둘러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얼마 뒤, 그들은 이백 여 라키르를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타일리는 자신 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움직인 그들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다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뭐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그들로 인해 힘의 강도를 줄여야 하는 약점 아닌 약점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린들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손해를 보는 쪽은 분명 타일리였다. 이렇게 타일리가 염두를 굴리고 있을 때, 고센 평원의 북동쪽에서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두 개의 빛이 있었다. ‘저건 또 뭐지?’ 타일리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뒤, 두 개의 빛은 이내 사람의 모습으로 환신 했고 그들을 알고 있는 모두는 놀라 입을 떠억 벌렸다. “천무의 신!” “극음의 신!” 그들은 바로 죽었다고 알려진 진중선과 북궁신이었던 것이다. ================================================================= 진중선과 북궁신이 살아 있군요. 여기서 어라!! 뭔가 이상하다 하시는 분들.... 그 마음 십분 이해합니다. 크흐흐흐흐....그리고 그 의문은 다음화에서 풀어질 것이니... 여기에 관한 태클은 일단 보류를 해주시기를.... p.s 오늘 하루살이를 먹었습니다. 쿨럭...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라 불가항력의 상황이 있었다는....쩌업...참고로 하루살이 맛 없습니다. 209화. 결전. 4 진중선과 북궁신은 의식을 잃으며 ‘이렇게 죽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차디찬 땅 위에 누워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너무도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에 ‘사후의 세계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일어나세요!” 조용하나 힘 있는 음성에 그들은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떠요!” 굳게 감고 있던 두 눈이 너무도 아름다운 음성에 힘껏 떠졌다. 그리고 그들은 자욱한 검은 안개가 걷히며 밝은 후광을 안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다, 당신이 저승사자입니까?” 진중선은 저승사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일 줄은 몰랐기에 놀라 물었다. 그리고 북궁신 역시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역시 저승사자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저승사자하고는 상관도 없는 그녀였기에 그녀는 그들의 엉뚱한 물음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얼마 뒤, 간신히 이성을 찾은 여인이 약간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어디를 봐서 저승사자 같나요?” “…….” 진중선과 북궁신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신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할 말이 없었다. 자신들 눈에도 저승사자로 남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천상의 선녀이신가요?” 그래서 진중선은 이렇게 물었다. 자신들이 곧바로 천상으로 올라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여인의 외모를 가지고 유추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정답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에 여인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들은 죽지 않았어요.” “…… 예?” “무슨 말이신지?” 진중선과 북궁신은 그녀의 말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지라 놀라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빙긋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내가 정말 살았단 말인가? 내 심장이 천천히 멈춰가는 것을 느꼈는데도 내가 살았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이 여인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은 거 같으니, 어찌된 일이지?’ 진중선과 북궁신은 제각기 생각에 잠겼지만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보았다. “호호호, 당신들은 자신들이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나 보죠?” “그렇습니다.” 여인의 물음에 동시에 대답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말 잘 듣는 아이의 모습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두 노인은 이를 인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여인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박수 한 번을 치며 몽환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예전에 제가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으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시절 한 여인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 한 여인에 의해 기억이 조작되었지만 그들은 그 여인에 의해 어린 시절 있었던 일을 기억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아~!’하며 감탄을 토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 고 그들의 태도는 이내 공손하게 변했다. “저는 비록 잊었으나 제 몸에 심어져 있던 환생고는 때가 되어 저의 숨을 붙들어 준 거였군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진중선과 북궁신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살아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근 백여 년 전, 그들은 한 여인을 만났었다. 눈앞의 있는 여인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여인을 말이다. “이제 기억이 돌아왔으니 내가 왜 당신들을 살렸는지도 알고 있겠죠?” “업을 감당할 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궁신은 그녀의 말에 마치 모범해답을 말하듯 대답했다. 그러나 진중선은 비록 지워졌던 기억을 찾았지만 의문 나는 점이 있어 또 다르게 말했다. “그렇지만 업을 감당할 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여인은 그의 물음을 예상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그들은 이미 당신들과 인연을 맺고 있어요. 아마도 당신들의 후예와 연을 맺은 자 일 거예요.” 여인의 말에 진중선은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북궁신은 도무지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못 믿겠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알지만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 지 못하겠습니다.” “호호호. 하지만 이미 제가 예견한 대로 되지 않았나요? 백여 년 전에 한 말이 이렇게 실현되었잖아요.” “하지만 인간은 분명 한 번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주입한 환생고가 우리를 살렸다 하나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북궁신은 자신이 왜 이렇게 격하게 반박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그는 또 다시 화가 나려했다. “그렇지만 그때 제가 당신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본다면 제 예언이 틀리 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요.” 북궁신은 그녀가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것은 고마우나 이렇게 억지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백여 년 전, 그녀가 말해주었던 구절이 떠올랐고 이내 얼굴이 창백해졌다. -암흑의 빛이 사이한 빛을 토하는 순간 모든 것은 낙엽이 되어 바스라 질 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처했던 상황과 같았다. 그리고 진중선 역시 그 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창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여인을 쳐다보았다. “이제 믿을 수 있겠죠? 어쨌든 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물론 모든 것을 예언할 수는 없어요. 단지 이 업과 연관되어 있는 미래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에요.” “그렇단 말은 우리의 인생이 이 업이라는 것과 관련되어 미리 정해져 있었단 말입니까?” 진중선은 이미 인생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이미 살 만큼 살았지만 그래도 삶이 허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북궁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인은 이들이 갑자기 삶에 회의를 가지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뭐, 규칙을 깬 게 한두 번이 아니니 한 번 더 깬다고 해서 별 상관은 없겠지?’ 그녀는 이렇게 좋게 생각하며 먼 옛날의 이야기를 별 망설임 없이 해주었다. “당신들의 선조가 바로 이 업을 만든 그분과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이 바로 후세에 영향을 미쳐 당신들에게 전해졌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 이상은 저도 말할 수 없어요.” 그래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에는 양심이 찔렸는지 그녀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진중선과 북궁신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신기하게도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호호호,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요.” 여인은 이렇게 얼렁뚱땅 일을 마무리 짓고 곧바로 진중선과 북궁신에게 자신의 힘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깜짝 놀란 그들이었지만 이미 그녀의 엄청난 기운이 온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기에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입조차 열 수 없었다. 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중선과 북궁신은 비로소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여인이 전해준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폐관수련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다 이제야 반가운 얼굴들을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눈 듯 충실했다. 진중선과 북궁신은 사람들이 놀라는 것에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자신들은 이미 죽었어야 옳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기분 좋게 회포를 풀고 있는 두 사람에게 귀에 거슬리는 잡음이 잡혔다. “네, 네 놈들은 그때 죽었지 않느냐?” 두 노인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돌려 음성의 주인을 보았다. 가만 보니 낯이 익었다. “오호, 누구신가 했더니 말만 번지르르한 녀석이었구만.” 진중선은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만 내놓고 고함치는 선우빈을 보며 코웃음 쳤다. 그리고 뭔가 번쩍하는 순간 진중선은 이백 여 라키르를 격하고 나타나 선우빈의 목을 잡고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너무도 놀랐고 그가 발산하는 기운에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켁, 이, 케엑!” 선우빈은 뭐라 말하려 했으나 기도가 막혀 기침만 토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진중선의 입가에 맺히는 사악한 미소를 보는 순간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우드득! 진중선은 목이 꺾인 선우빈을 들고 금강장원의 무리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순간 금강장원의 무리들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도 강했지만 지금의 그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험체들은 오히려 적의를 드러내고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캬오오!”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북궁신이 손을 한번 흔들자 달려들던 십여 실험체가 뒤로 주욱 날아가며 온 몸이 쩌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금강장원의 무리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졌다. “모두 피하라!” “헉!” 실험체가 날아가던 곳에 있던 곳에서 헛바람 삼키는 소리와 함께 허둥지둥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콰콰쾅쾅쾅쾅! 온 몸에 금이 간 실험체는 엄청난 폭음을 내며 터졌다. 그와 함께 몇몇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허허허!” 북궁신은 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만 흘렸다. 저들에게 인간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묻지는 않았다. 물어봐야 뻔한 대답만 나올 것이고 모처럼 좋았던 기분이 상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궁신은 옆에서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진중선을 조용히 보았다. 그리고 진중선도 그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쳐다보았다. 끄덕! 미세한 움직임이나 두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그들은 바람에 흩어지듯,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헉!” “컥!” 금강장원에서 온 고수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스피릿 트랜스와 같은 큰 기술은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 사이를 헤집어 놓는 두 노인의 실력이 가공했다. 거기다 그들의 분투에 자극받은 중인들이 칼을 빼 들고 돌진했다. 숫자상으로는 금강장원 쪽이 많았다. 그들의 총 수는 실험체를 포함하여 이천에 육박했고 육대 장원 및 중소 장원의 연합측은 오백이 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고수였다. 이 중 근 이백에 가까운 고수가 황화광 이상의 고수이니 이들 전력은 가히 천지를 뒤엎을 만 했다. 단지 타일리의 위세가 너무도 대단한지라 마음이 위축되어 그 힘을 사용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파파파파팍! 번쩍! “으아악!” “컥!” 손발이 오가고 검광이 난무하는 가운데 비명과 피가 하늘을 감쌌다. 그리고 간간히 터지는 폭음! 실험체들이 터트리는 굉음이었다. 그리고 실험체들을 처리하는 것은 진중선과 북궁신이 전담이 되었다. 그들은 실험체들을 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리릭! 바람이 말려 올라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나타난 진중선이 기운을 실보다 더 가늘게 만들어 아래로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빛이 되어 실험체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쾅쾅쾅쾅! 단 한번의 공격에 수십의 실험체가 죽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하압!” 북궁신의 우렁찬 기합과 함께 허연 기운이 실험체들을 덮었다. 그리고 미처 터지기도 전에 얼어 붙어버렸다. 그렇게 실험체들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얼음조각이 되어버렸다. 한편 타일리는 갑작스레 나타난 두 노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죽었다고 알려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사방신 셋과 분수도 모르고 날뛴 세 노인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으응? 이게 왜 이러지?’ 그런데 자신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순간 당혹해진 타일리는 기운을 움직이기 위해 속으로 진땀을 빼야했다. 얼마 후, 어느 정도의 기운을 의지력 안에 둘 수 있었지만 흑룡인 상태로 큰 기술을 발휘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기운이었다. ‘허허허, 급하게 먹어서 채한 것인가?’ 이런 그의 생각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본래 각성의 시기로 얻은 기운은 그 각성의 시기가 지나면 순간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잠재능력이 얻을 수 있는 한계치까지 기운을 받아들였기에 그것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진이나, 린들 역시 겪었던 과정이었다. 하지만 타일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너무도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말이 밑에서 울려 퍼졌다. “은발마왕은 한 동안 힘을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저 자를 처단하십시오!” 비록 힘은 없으나 린의 음성을 듣지 못한 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들은 진중선과 북궁신이 전장에서 몸을 빼 그들에게로 달려오는 것이 타일리의 눈에 잡혔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여기서 죽으면 그야 말로 개죽음인데…….’ 그 순간, 하늘의 뜻인지 방금 전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다. ‘저 녀석이 내 상태를 알고 있다면 굳이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지 않 은가? 그렇단 말은 저 녀석들도 나처럼?’ 여기까지 생각이 진행되자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두 존재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선조의 업을 우리가 풀겠다!” 각기 커다란 외침을 토하며 흑룡에게 날아간 두 노인은 검을 날렸다. 그리고 그 검은 곧 빛이 되어 흑룡을 꿰뚫었다. 꽈지직! 퍼펑! 철갑보다도 더 단단했던 흑룡의 껍질이 검에 부딪히는 순간 찢어졌고 내부를 엉망으로 만든 검들이 흑룡의 머리를 터트리며 밖으로 나왔다. 부르르르르! 흑룡은 검이 밖으로 나오자 온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떨림이 극에 이르렀을 때, 펑 하며 터지며 그 안에 있던 내장들과 피들이 허공에 뿌려졌다. “와아아아아아아!” 장원연합측은 적의 수장인 흑룡이 죽자 함성을 질렀고 살아남은 금강장원의 무리들은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항복의 의사를 표시했다. 얼마 뒤, 살아남은 금강장원의 무리를 세어보니 오백이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장원연합측의 사상자는 불과 이십여 명밖에 되지 않으니 대승을 거뒀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린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기분 좋아야 함에도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허나 그도 북궁소소가 달려와 그의 품에 안기자 결국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불길함은 너무도 싱겁게 싸움이 끝나버렸기 때문으로 생각하자.’ 린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 길었던 결전도 끝이났네요.^^ 에공... 으음...여기 나온 그 여인이 누구냐 하면은...눈치 빠른 눈들은 이미 알고 계실거예요. 그리고 그녀의 정체는...다음화에서 밝히겠습니다. 두둥!!!!!! 210화. 도약. 1 “유리미, 또 밖에 나갔다 온 건가?” “앗! 하하하, 미안 반드라스,” 유리미는 마치 도둑질 하다 들킨 소년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이에 평소 근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반드라스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쳇, 역시 네 말이 맞았어. 반드라스는 유리미한테만 관대해!” 어느새 나타났는지 금발의 미녀가 투덜대자 그에 화답하듯 포동포동한 외모의 사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하하, 내 말이 맞지? 내기로 걸었던 목걸이나 내놔, 실리아!” 실리아는 두툼하다 못해 육중한 사내의 손을 실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휘파람을 부는 사내의 능청스러움에 실소를 흘리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어 사내의 손에 올려놓았다. “고마워~ 실리아!” “흥, 사내놈이 목걸이나 좋아하고. 이름처럼 계집애 같은 행동만 한다니 깐.” “내 이름이 어때서? 미리나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쁜데?” “아~ 그래, 그래.” 실리아는 미리나와 또 다시 설전을 벌이기 귀찮아 손을 내저었다. 이런 그들 모습에 잠시 멍하니 있던 반드라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며 유리미를 보며 추궁하듯 말했다. “너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는 마지막 그것만 건드리지 않는 이상 세상에 참여할 수 없어.”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 세상은 그 녀석 때문에 많이 혼란스럽다고.” 유리미는 너무도 고지식한 반드라스에게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 다. 이에 잠시 멍한 상태로 그녀를 보는 반드라스를 실리아가 놓치지 않고 놀렸다. “반드라스는 유리미가 그렇게 좋아?” “뭐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반드라스는 순식간에 귀까지 발갛게 변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어디론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남아 있는 추궁도 마저 다하지 못하고. 반드라스가 사라지자 유리미가 실리아의 손을 꼭 붙잡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마워~!” “뭘, 근데 미래에서 본 네 운명의 상대는 이번에 만나 본 거야?” 실리아의 말에 유리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실리아는 ‘쳇!’하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밖에 나간 거야?” “최대한 좋은 미래를 이끌기 위해서!” “쳇, 너는 매번 나갈 때마다 그 말만 하더라!” 실리아는 매번 같은 대답만 하는 유리미의 태도에 심술이 난 듯 말을 마치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뒤늦게 실리아가 사라진 것을 안 미리나가 목걸이를 황급히 호주머니에 넣고 그녀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유리미는 방 안 의자에 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에게 가장 좋은 미래는 그와 함께 하는 거야!” 이 말을 반드라스가 들었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매 우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리라! 장원연합측은 생포한 금강장원의 무리들의 무공을 폐쇄해 그들의 죄 값을 육체적 노동으로 치루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결정이 나자 하나 둘씩 본래 자신이 속해 있던 장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천무장원 역시 내일이면 떠나는 그날 저녁, 진중선과 북궁신이 린들을 찾아왔다. “자네들이 업을 감당하는 자들이었군.” 진중선의 느닷없는 말에 린은 적잖이 놀랐다. 이 사실은 자신과 업에 관련된 자들만이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후후후,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진중선은 며칠 동안 보았지만 모든 일에 평상심으로 대처하던 린이 놀라자 이것이 재미있어 말을 질질 끌었다. 그러나 북궁신은 린이 자신의 증손녀와 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린이 진중선의 장난감이 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자네는 나이도 많이 먹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놀리는 게 재밌나?” 진중선에게 이렇게 핀잔을 준 북궁신은 린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역시 자네들처럼 업과 연을 맺은 사람들이라네. 그것보다도 듣자 니 이 업이 네 개나 된다고 하던데…….” 북궁신의 말에 린은 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업에 관한 것을 더욱 많이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마냥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의 연인인 북궁소소의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북궁신이 물었기에 그 물음에 대답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업은 총 네 가지며, 저희들은 그것을 4업이라 부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은발마왕 같은 경우에는 무력을 상징하는 업을 가진 자이며, 그밖에 인간의 욕망 중 특히나 소유를 상징하는 업과 남을 지배하는 즉 만인 위에 서려는 지배를 상징하는 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업은 저도 정확히는 알진 못하나 지혜를 상징하는 업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지혜가 모든 업을 상징하는 마지막 날의 그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상황입니다. 분명 그밖에 다른 것이 있을 텐데도 말입니다.” “마지막 날? 그게 뭔가?” 진중선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실을 줄줄 읊는 린이 신기하기도 하면서도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흥미가 동해 물었다. 그러나 린은 이미 그것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음에도 묻는 진중선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존장의 예를 가슴에 새기고 있는 린이기에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저 역시 마지막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릅니다. 또한 마지막 날을 일으키는 그것 역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에 의해 발생할 마지막 날이 다가오게 되면 다른 업을 막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며 인류는 멸망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지혜를 상징하는 업이 누구에 의해 깨어졌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 그의 말에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업 하나를 해결했다고 하여 좋아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험험, 그건 그렇고 소소와는 언제 혼례를 올릴 생각인가?” 북궁신은 분위기도 바꿀 겸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돌린 화제가 린에게서 말을 뺏어갈 줄이야. 모두는 벌겋게 변한 린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형님이 얼굴을 하하하, 다 붉힐 때가 다 있네요. 하하하하!” 스테판은 뭐가 그리도 웃긴 지 눈물까지 흘리며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했는데 그것이 웃음 때문에 중간 중간에 끊겨 듣는 린의 얼굴을 더욱 붉히게 만들었다. 이에 모두는 더욱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장내가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리자 린은 짐짓 얼굴을 굳히며 한 사람씩 쳐다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렇게 신나게 웃던 그들이 웃음을 딱 멈추는 것이 아닌 가! “컥, 컥컥컥!” 급기야 스테판은 사래라도 걸렸는지 연신 ‘컥컥!’거렸다. 그리고 그의 등 을 툭툭 두들겨주는 아미르였다. 장내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린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일단 형님을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형님이라면 진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어르신.” 진중선의 물음에 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에 진중선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진중선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그 일행에 참여하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깐 그게…… 맞다! 우리 역시 업과 연을 맺고 있으니 업을 감당하기 위해 같이 다녀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은가? 신, 이 친구야!” 린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진중선은 허둥대며 당황하다 뭔가 떠올랐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린은 처음부터 그가 일행에 참여하든 말든 별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의 동행을 허락했다. 이에 왠지 손해 봤다는 생각을 하는 진중선이었다. 한편 북궁신은 괜히 자신을 끌어들이는 진중선이 얄미웠지만 그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기에 ‘끄응’하며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이 꽤나 재미있어 진중선이 웃음을 터트렸고 린들은 북궁신의 나이를 생각하여 웃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으나 ‘큭큭’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 대미는 북궁신이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다음 날, 진중선과 북궁신이 린을 따라 간다는 말에 천무장원과 북해장원의 고수들은 깜짝 놀라 만류하려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한지라 결국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승낙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린들이 진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된 하린과 하연이 그 일행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펼쳤고 화들짝 놀란 그녀들의 아버지인 천무장주 진우진이 그녀들을 말리려 했으나 진중선의 헛기침 한번에 무너져야 했다. 또한 북궁소소가 린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자 북해장주인 북궁천이 슬슬 북궁신의 눈치를 살폈다. 앞서 진우진의 결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라 다를까 섬뜩한 째림을 보내는 북궁신이었다. “헉, 잘 다녀오너라!” 그래서 북궁천은 한 쟈크 대륙을 울리는 북해장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처음 세 명이었던 인원이 여덟 명으로 늘어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마 뒤, 천무장원과 북해장원의 고수들은 제국으로 떠나는 일행에게 손 을 흔들어주어야 했다. 그것도 밝게 웃으며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발생할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 결국 그녀의 정체가 유리미였군요. 유리미 기억하실런지요? 유미라는 가명을 썼던 그 여인!!!!!!!!!!!!! 검은 삼각지대의 그 여인!!!!!!!!!! 이었군요. 쿨럭!!!! 이제 다음화부터 진이 나오겠네요. 후후후후 211화. 도약. 2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기운들은 본래 하나에서 시작되었고 종내에는 하나로 귀결된다.” 진은 리오스가 해주었던 말을 기억하며 신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태초의 기운은 모든 것 위에 존재하며 모든 기운은 그 아래에 복종한다.” 우웅! 신기의 위대함을 생각하자 그에 반응하듯 묵직한 느낌을 주는 신기가 잘게 공명음을 토했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으로 빠지는 신기였다. “하아~!” 진은 아무리 해도 신기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자 너무도 답답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잡념을 떨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기 시작했다. 휘리리! 번쩍! 하늘하늘 움직이던 검에서 검광이 쏟아져 나와 내려쬐는 햇빛을 쪼개었고 분산된 햇빛은 드래고니아를 타고 작은 반짝임을 만들었다 사라졌다. 그러나 진은 이에 만족치 않고 더욱더 빠르고 강하게 드래고니아를 휘둘렀다. 이런 진의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누구 할 것이 경악했을 것이다. 기나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그야 말로 순수한 육체적인 힘만으로 햇빛을 쪼갤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요 몇 달 간, 변화된 육체에다 스스로를 더욱 더 단련시켜 안 그래도 육체적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났는데 더욱 더 강해져 이제 그의 능력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신기를 길들이지 못해 아직까지도 애를 먹고 있었다. 근 세 시간 동안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린 진은 밑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기척을 느끼고 드래고니아를 돌려보내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뒤, 한 여인이 작은 통을 들고 산을 올라왔다. 진은 그녀도 반가웠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작은 통이 더욱 더 반가워 한껏 미소 지었다. “어서 와, 리나. 기다렸어!” 진은 그녀에게 다가 와 이렇듯 다정하게 말했다. 허나 안젤리나는 오히려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팔을 힘껏 꼬집었다. “아앗! 왜, 왜 그래?” “흥! 그 웃음 짓는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 뻔히 보이는데 제가 좋아하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진의 눈은 작은 통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산 위에서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두 오두막집 중 작은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과 안젤리나는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는 리오스를 보며 일순 멈칫했다. 매번 보는 거지만 명상을 할 때의 리오스는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번쩍! 명상에 잠겨 있던 리오스가 두 눈을 뜨며 두 줄기 섬광이 뻗어져 나왔다 사라졌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은 리오스는 두 내외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형, 어제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무슨 마술을 부린 거야?” 진은 비록 자신에 비하면 턱도 없이 약한 기운이지만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리오스의 기운에 놀라 물었다. 이에 리오스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고 진은 그런 형의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지라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형, 그런데 말이야 전에 말한 것처럼 우리랑 같이 사는 게 어때?” “허허허, 그러면 제수씨가 날 싫어한다니깐! 그렇죠, 제수씨?” “예? 아, 아니에요.” 안젤리나는 리오스의 짓궂은 질문에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요 몇 달 간 보아온 다부진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이기에 절로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웃음 짓자 더욱 더 얼굴을 붉히는 안젤리나였다. 잠시 후, 장내가 안정되자 진은 요즘 들어 그를 더욱 괴롭히는 신기에 대해 물었다. “형, 그런데 이 신기라는 거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리오스는 진의 물음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태초의 마기와 진이 가지고 있는 태초의 신기는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신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기나 마기나 태초의 기운이기에 기본 성질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우선 신기는 전에도 말했지만 엄청난 의지력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어. 예전에 기를 익힐 때는 그저 익숙해지기만 하면 되었지만 신기는 기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거든.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손톱만한 크기의 신기와 기가 있다 치면 그 위력은 당연히 신기가 더 강하다 할 수 있어, 쉽게 말해 동일한 질량의 기와 신기가 있다면 그 위력의 차이는 밀도의 차이라 생각하면 될 거야. 뭐, 신기와 기의 관계를 단순히 밀도의 차이로 치부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이야.” “…… 아! 그러니깐 무거운 것을 들려면 힘이 더 강해져야 하니깐, 무거운 신기를 움직이려면 힘 즉, 기운을 움직일 수 있는 의지력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지?” “어? 어,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될 거야.” 리오스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자신이 편한대로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진이 신기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단순한 사고야 말로 진의 최고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리오스였다. 진은 요즘 들어 의지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 달 동안이나 해온 명상과 육체적 단련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는 리오스가 진에게 해준 말 때문이었다. “의지력은 정신적 영역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 각이야. 의지력은 확신을 말하는 거야! 너 스스로부터 확신을 가지지 못했는데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 그것처럼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기운을 제어하고 발현시키는 의지력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억지로 하면 가능할 수도 있긴 하겠지……. 그래, 네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줄게. 만약 강한 상대와 네가 붙게 되었어. 그런데 넌 시작하기 전부터 상대에게 쫄아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난 절대 안 쫄아!” “그래, 그래. 그렇지만 그렇다고 생각해보자는 거야. 근데 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조금도 없냐? 형이 남이 말할 때 끊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니? 그리고 뒷내용을 듣지 않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사람을 매도하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진은 리오스의 말에 할 말이 없어져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이제야 형과 같이 사는 것이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바보 같이 ‘헤헤!’ 웃었고 리오스도 그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깐 네가 상대에게 쫄아 있는 상태에서 만약 싸움이 붙었다 치자. 그러면 이길 수 있을까? 만약 네가 쫄은 상대가 원래는 너보다 강하지 않은 상대였다 치더라도 네가 이길 수 있을까? 마음이 지고 들어간 상태에서 너의 본래 힘이, 너의 의지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 진은 마치 머릿속에서 뭔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껏 안개 속을 헤매던 느낌은 사라지고 넓게 뻥 뚫려 있는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예전 자신을 구해주었던 은발의 사내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라 감탄을 터트렸다. -첫째, 어깨를 펴라. 둘째, 가슴을 내밀어라. 셋째, 당당해져라. 아무리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 자세를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있다면, 비록 지더라도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상대의 능력에 두려움을 가지고 포기하는 나약한 정신력이란다. 알겠니? 예전 자신의 바이블로 삼으리라 했던 그 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말이었 다. 그리고 지금, 그때 은발의 사내가 해주었던 말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후후,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괜히 돌아가려 했구나.” 문득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진이 중얼거리자 리오스는 진이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확신! 즉, 절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서 그때, 너에게 네 마음을 다잡으라 했던 것이고. 어쨌든 그것을 위해서는 단련된 육체와 맑은 정신의 조화! 그것만이 의지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야. 그리고 네가 하는 일에 언제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그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거야.” 리오스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진 스스로가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그다운 배려였다. 진은 리오스가 해주었던 말이 문득 생각 나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해주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후후후, 나는 혼자가 아닌 거야!’ 이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그의 상처 난 마음을 크게 치유시켜주었고 의 지력을 키우는 수련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뭐라? 그놈들이 이제는 이곳까지 노린단 말인가?” “그것이 에리필 도련님이 이곳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에리필 도련님의 본가인 이곳을 무너뜨리려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술수인 거 같습니다.” 프레디드의 말에 디오리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을 했는지 프레디드에게 심각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들이 왔을 때,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의 총 군사는 대략 ·1만 명가량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작에 의 해 알아낸 바로는 이곳에 당도하는 것은 삼일 후일 것이며, 현재 우리 마더리스 시가 보유한 전력으로는 많이 버텨 봐야 삼일입니다. 마더리스 시에 있는 가문들의 기사와 시의 수비병들을 합치면 저희도 1만 명가량은 되나 그들은 정예병들이니…….” 디오리스는 생각보다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빠르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장 및 수비대장과 마더리스 시에 있는 모든 가문의 가주들에게 급히 모여 줄 것을 알려주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면 모두 다 참석할 걸세. 그리고 황성에 계시는 형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파르민 시와 아즈틱 시에도 협조를 요청하게.” “알겠습니다, 가주!” 프레디드는 가주인 디오리스의 말에 읍을 하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디오리스는 방을 나서는 프레디드를 보며 깍지를 낀 상태로 결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범의 아가리로 대가리를 밀어 넣으면 어떻게 되는 지 보여주겠다!” ================================================================= 드뎌 진이 나왔습니다. 쿨럭!! 212화. 도약 제국은 전란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양 세력의 전력이 엇비슷했기에 흘리는 피는 더욱더 많아졌다. 그러나 이렇듯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던 전쟁도 몇 명의 영웅이 등장함으로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처음 수도인 가에아에서 수뇌부들끼리 전쟁을 할 때의 영웅은 바로 올슈레이 진이었다. 그리고 1차 휴전 후, 2차 전쟁의 영웅은 바로 그의 사부들이 되었다. 특히나 올슈레이 기사단을 이끌고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에리필들은 미치광이인 4대 공작의 야욕을 무너뜨리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에리필들의 이름이 제국을 울리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본래 4대 공작가의 전력이었던 올슈레이 기사단은 이미 4대 공작 및 가문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한점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덕분에 민심을 잃은 4대 공작을 상대하는 올슈레이 기사단도 제국의 백성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황성이 된 레우카스 성은 많은 사람들이 기사 혹은 병사로 지원하기 위해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틈에 세작이 침투할 수도 있어 그들은 철저한 조사를 받고 난 뒤에야 레우카스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때에 다섯 명의 기사가 에리필을 만나러 왔다. “으음, 무엇 때문에 에리필 경을 만나시려는 겁니까?” 검문을 담당하는 기사 중 대장인 듯한 자가 다섯 명의 기사에게 예의를 깍듯이 차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고 만약 저들이 흑심을 품고 있다면 단칼에 베어버릴 의지를 은연중에 뿌리고 있었다. 이를 느끼지 못할 다섯 기사가 아니었기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들은 데헤미그 가문을 상징하는 검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는 에리필님의 가문인 데헤미그 가에서 왔습니다.” “으음,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대장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데헤미그 가문의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만약 이들이 작정하고 찾아온 자객일 수도 있기에 긴장을 풀지 않고 말끝을 흐렸다. 이에 다섯 기사는 화급을 다투는 일인데 이렇게 자신들 앞을 막고 있으니 적잖이 답답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 데헤미그 가문이 있는 마더러스 시를 4대 공작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벌써 쳐들어왔을 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화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다섯 기사 중 리더인 듯한 자가 자신들 일의 위급함을 말하자 수비대장 역시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이 그렇다니 에리필 경에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며 성의 남문의 경비를 맡고 있는 오백의 병사들 중 열명을 뽑아 그들 뒤를 따르게 했다. 혹여나 이들이 자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기에 수비대장은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비대장의 안내를 받아 안내된 곳은 바로 연무장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런데 무슨 일인가?” 에리필은 몇 번 인사를 했기에 수비대장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에 리필은 그에게 아는 체 하며 다가갔다. 이에 수비대장은 황송한 표정을 지었으나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를 상기하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이들이 에리필 경의 가문에서 급보를 가지고 왔다하여 이렇게 모셔왔습 니다.” 에리필은 그의 말에 바짝 얼어 있는 다섯 기사를 보았지만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섯 기사는 에리필을 먼발치에서나마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진과 샤넬리를 데리고 데히미그 저택에 왔을 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에리필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당황한 기사는 허둥대며 대답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예? 아, 지금 4대 공작의 군사들이 저희 마더러스 시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 말이 사실인가?” 에리필은 기사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큰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깜짝 놀 란 기사는 입만 뻐끔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험험, 미안하네. 그래, 자네들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사실인 것이 틀림없 는 것 같군. 우선 안으로 들어가지.” 에리필은 그들의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우선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전에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을 생각이지만 말이다. 커다란 대전 안, 용상에 앉아 있는 데이릭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에리필이었다. “황제 폐하, 신의 가문이 적도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출정에서 신의 이름을 빼 주시고 신이 가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명하여주시옵소서.” 에리필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데이릭은 근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경은 고개를 들라!” 그의 명에 에리필이 고개를 들자 데이릭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경의 일은 짐의 일이나 다름없소. 그러니 가문으로 돌아가는 일을 어찌 막을 수 있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에리필은 데이릭의 말에 크게 감격했다. 사실 자신은 이번 2차 전쟁 중, 어쩌면 가장 큰 전투가 될지도 모르는 전투에 출정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이릭은 그런 것은 싹 무시하고 그의 청을 들어준 것이다. 데이릭은 에리필이 감사의 뜻을 표하자 순간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 나 그것은 나타날 때보다도 빠르게 사라졌고 미소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음성이 대전을 울렸다. “그리고 또한 올슈레이 기사단에서 천명을 데리고 가 적도들을 필히 물리 치시오!” “폐, 폐하!” 에리필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하나만 빠져나오는 것만 해도 죄 송스러운데 데이릭은 그에게 천명의 올슈레이 기사단을 데려가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전쟁으로 올슈레이 기사단도 4000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의 말은 전력의 4분의 1을 데리고 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 하지만 황제 폐하, 그리하시면 발티안 시로 보내는 전력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허허허, 그것은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그러니 짐의 말을 따르시오.” “…… 폐하의 은혜에 어찌 보답하여야 할지…….” 에리필은 그렇게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예전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의 데이릭은 자신의 주군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신경 써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데이릭은 그가 감격하여 눈물을 글썽이자 친히 용상에서 일어나 붉은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내려와 에리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등을 톡톡 두들겨주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경이 짐의 은혜를 갚을 길은 승전보를 가지고 오는 것이오.” “신, 꼭 승전보를 가지고 오겠나이다!” 그의 말에 에리필은 크게 대답했다. 진은 어느 때부터인지 신기가 무겁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언제부터냐고 물으면 진 자신도 모르기에 대답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 신기가 무겁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물처럼 바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우우웅웅! 신기가 모처럼 기분 좋은 공명음을 토하자 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너도 기분이 좋은 가 보구나?” 진은 마치 친구에게 말을 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진은 분명 자신 의 친구가 된 신기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우웅웅웅! 신기도 기분이 좋은 지 다시 한번 공명음을 토했다. 그리고 그 공명음은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은 자신의 의식이 그어놓았던 한계의 선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뚝! 화아아아악! 그때부터였다. 무겁지는 않으나 의지에 반했던 신기가 무서울 정도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기의 광포함은 진이 ‘진정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진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를 충실하게 채워주는 자연의 가르침, 즉 깨달음은 그에게 무한한 충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에게 리오스가 그토록 말했던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다. ‘지금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진은 터질 듯한 자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웅! 간단히 생각하자 드래고니아가 공명음을 토하며 그의 손 안으로 들어오 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은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 검무는 이제껏 기운을 주입하지 않은 검무가 아니었다. 휘위위윙! 바람이 그의 검에 말려 올라갔다. 그러나 바람은 이내 검에서 뿜어져 나오 는 신기를 쫓기 시작했다. 번쩍! 검광이 번쩍였다. 그러나 검광은 드래고니아의 잔상이 만든 검광이었다. 잔상이 만든 검광! 한 마디로 검광 역시 드래고니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다는 말이었다. 스르륵! 팍! 검이 어느 곳으로 가고 싶다고 느껴지면 진의 몸은 안개처럼 사라졌고 그곳이 어디든 공간을 격하고 나타났다. 그의 몸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가고 있는 것이다. 휘리리리! 진의 검은 허공에서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었고 그것은 대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대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로 만들었다. 그렇게 진의 검무에는 음악이 있었고 멋진 춤사위가 있었다. 툭! 진은 허공을 날아다니며 검무를 추다 내면에서 울리는 음성을 듣고 바닥 에 착지했다. 그리고 그 내면의 음성에 따라 신기를 그 음성의 주인에게로 주었다. 우웅웅웅웅웅웅! 순간 진의 신기가 엄청난 공명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명음은 그가 서 있는 산을 수십 라키르나 내려앉게 만들었다. 콰콰콰콰콰! 땅은 들끓었고 천지는 진동을 했다. 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대기가 놀 라 방전을 일으켰고 점점 낮아지는 산의 높이에 진은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공명음이 절정에 달했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공명음이 울리며 진의 앞에 희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다 그것이 뚜렷한 영상으로 바뀌었다. 팍!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음이 들리고 그림자는 색을 얻었고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가 진에게 말했다. “오랜만이야!” ================================================================ 광참을 준비하고 있는 세준입니다. ㅎㅎㅎ 마지막에 오랜만이야 라고 말한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쿨럭!!! 아시는 분은 대구광역시 삐리리리리리로 가 아니고... 리플 달아주세요^^ 213화. 출도. 1 “누, 누구세요?” 진은 밝은 빛을 뿜어내는 존재를 멍하니 바라보다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마치 진 스스로 알아내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에 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살펴보았다. 그 존재는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금발에 요즘에는 보기 힘든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복장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옷차림이 그 존재와 너무도 잘 어울려 그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또한 그 존재는 진 자신이 보아온 어떤 남성보다도 더 잘생겼다. 그가 인정하는 린이나 리오스보다도 잘생겼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의 기억으로는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다 그가 풍기는 기운이 너무도 익숙하다는 사실을 진은 깨달았다. 존귀하고도 고귀한 느낌. 그러면서도 마치 친한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진은 그에게서 느낀 것이다. 그러다 진은 자신의 몸 안에 있던 신기의 3분의 2가 그에게서 옮겨진 것을 깨달았다. 순간 진은 뇌리에 한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엘뤼시온!’ 진은 설마 하면서도 조금 전 들었던 그의 음성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리고 예전 자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엘뤼시온의 음성과 눈앞에 있는 존재의 음성이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 엘뤼시온?” “그래, 만나서 반가워!” 진이 떠듬거리며 묻자 엘뤼시온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는 엘뤼시온이었다. “어, 어! 정말 엘뤼시온이야?” 진은 엘뤼시온이 끌어안자 당황했지만 그 느낌이 너무도 좋아 그를 밀쳐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 확신을 가지진 못했기에 물었다. 그리고 엘뤼시온의 당연하다는 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너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겠어? 루카스는 너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엘뤼시온 너 맞구나!” 진은 자신과 엘뤼시온, 그리고 루카스만이 아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자 그의 얼굴을 보며 외쳤다. 그리고 빙긋이 웃는 엘뤼시온을 볼 수 있었다. 진은 엘뤼시온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내부에서 울리는 음성만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제는 눈으로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진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산으로 올라오는 안젤리나의 기운을 느끼고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흘렀나 하는 생각을 하는 진이었다. “이 분은 누구세요?” 안젤리나는 산이 푹 꺼져 있고 그 주위가 폐허가 되어버린 것에 놀라 서둘러 올라왔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진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다. 이에 진은 씩 웃으며 안젤리나에게 엘뤼시온을 소개했고 안젤리나는 믿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진이 거짓말 할 이유도 없기에 억지로 이해하려 애썼다. 진은 안젤리나가 말이 없자 그녀가 가져 온 작은 통 안의 점심에 손을 댔다. 찰싹! “나보다 음식이 더 좋은 거예요?” 안젤리나는 본능적으로 작은 통에 손을 대는 진의 손을 쳤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척!’ 붙이며 눈을 홀기며 말했다. 이에 진은 벌겋게 변한 손을 ‘호호’ 불며 짐짓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푸웃, 알았어요. 어서 식사나 하세요.” 결국 안젤리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작은 통을 열어 음식을 꺼내주었고 진은 승자의 표정을 지으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엘뤼시온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기에 음식을 맛있게 먹는 두 내외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축하한다.” “하하하, 뭘!” 진은 리오스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 말은 겸양을 떨고 있으나 얼굴은 관리가 안 되는 듯 했다. 이런 진의 모습에 리오스는 역시나 단순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그의 속내는 철저한 관리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이쪽은?” 리오스는 엘뤼시온을 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엘뤼시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비록 힘은 봉인되었으나 우주의 법칙을 꿰고 있는 마신이기 때문이다. 엘뤼시온 역시 리오스의 존재감을 느꼈지만 그의 의지를 듣고 짐짓 모른 체 했다. -나의 정체를 진에게도 말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마신이시여! 이것이 두 사람의 의지가 나눈 대화였다. 그리고 겉으로의 대화는……. “형, 엘뤼시온은 정령이야.” “아~! 정령이었구나. 현신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데?” “별 말씀을.” 이렇듯 겉과 다른 대화를 두 존재는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리오스가 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확신을 가졌으니 다시 한번 물어볼게.” 이렇게 운을 뗀 리오스는 빙긋이 웃는 진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하여야 한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진은 그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그 사람 역시 해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킬 거야.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을 해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잊지는 않겠어.” “이제 밖으로 나갈 때가 된 건가?” 리오스는 진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가장 반긴 사람은 바로 안젤리나였다. “우선 우리 집부터 찾아가요. 사실 할아버지께서 이이를 보고 싶다고 했 거든요.” 안젤리나의 말을 들은 리오스는 진에게 어떻게 할 거냐는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두근두근 거리는 심정으로 진의 입을 바라보는 안젤리나였다. 진은 두 사람, 아니 엘뤼시온까지 합쳐서 두 사람과 한 존재의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을 했다. 시선들이 꽤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이미 대답을 준비해놓은 상태였기에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매끄럽게 말을 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가 하시던 대로 할 생각 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푸웃! 큭큭큭!” 안젤리나는 그의 속내를 알지 못해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리오스는 벌써부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것이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안젤리나는 진의 대답에 따라 행동해야 되기에 그의 말뜻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어 리오스의 웃음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무언의 채근을 계속했다. “아, 알았어. 그렇게 쳐다보면 무섭잖아. 아앗! 노, 농담이라니깐. 험험, 그러니깐 우리 아버지 지론은 아내의 말은 곧 법이니 나도 그것을 따르겠다는 말이야.” 진은 그녀가 중간에 주먹을 움켜쥐는 것을 보고 본래 의도와는 좀 다른 아부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다. 이에 안젤리나는 얼굴을 활짝 펴며 그에게 안겨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주위에 한 사람과 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얼굴을 붉히며 진에게서 떨어졌다. 이에 모두는 즐겁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웃음이 점차 잦아들었을 때, 엘뤼시온이 진에게 말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러 떠나야 해!” 뜬금없는 그의 말에 진은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하다는 시선으로 엘뤼시온을 바라보았다. “사실, 유라시아드에서 네 목숨을 구해준 요정들에게 유라시아드를 지배하고 있는 악한 사념을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했거든.” “아~!” 진은 그의 말에 엘뤼시온이 자신을 반인반령으로 만들어준 요정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약속은 나 때문에 한 거 맞지?” “으응.” 진의 물음에 엘뤼시온은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는 진. 그러나 진은 본래 생각이란 것을 즐겨하지 않기에 그가 생각에 빠지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럼, 나도 같이 갈 거야. 뭐, 지금의 내 힘이라면 그때, 그 녀석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악독한 흑마법사 때문에 잠에 빠진 내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곳에 가야해. 나도 그 녀석과 약속을 했었거든.” 엘뤼시온은 진이 샤넬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이 아는 것을 엘뤼시온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리오스는 진과 엘뤼시온의 이야기를 듣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엘뤼시온에게 의념을 보냈다. -진의 친구라는 자가 흑마법사에 의해 잠에 빠졌다는 데,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라. -그녀는 데빌핸드라는 흑마법에 의해 큰 상처를 입었고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어떤 존재들이 힘을 써주어 죽는 것은 면했지만 영원한 잠에 빠졌습니다. -그녀라? 그 친구라는 사람이 여자였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알겠다. 리오스는 그녀의 상태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그녀를 치료할 수 있음도 할 수 있었다. 흑마법이라면 그 사용하는 기운은 마기일 것이고 모든 마기는 그에게 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그녀의 잠을 깨울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진아!” “응? 왜, 형?” 진은 갑자기 리오스가 자신을 부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리오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환하게 변했다. “네 친구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마기를 뽑아내는 그런 류의 것이라면, 내가 네 친구를 치료할 수 있을 거 같다.” “정말?” “그래.” 진은 리오스가 그녀를 치료하는데 필요한 것과 샤넬리의 상태를 어떻게 아는지 순간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관심 밖으로 날아갔다. 그의 관심사는 리오스가 샤넬리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형, 그럼. 일단 우리 샤넬리에게로 가자.” 안젤리나는 진의 말에 순간 화를 낼 뻔했다. 샤넬리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고 그녀가 진의 마음에 어느 정도의 크기를 차지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샤넬리에게 질투가 났다. 하지만 안젤리나는 진이 그녀를 구하지 못한 것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도 들었기에 뭐라 말하려다 참았다. 리오스는 진의 철없는 행동에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혼한 녀석이 아내를 옆에 두고 다른 여인의 이야기를 이렇듯 관심을 두고 하는 것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말 할 수도 없기에 리오스는 상황을 정리하는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래, 그러나 우선은 제수씨의 집부터 먼저 가는 것으로 하고 그 다음에 네 친구의 집으로 가서 그녀를 치료해 준 뒤, 엘뤼시온의 약속을 처리하기로 하자.” “응! 그렇게 하자.” 진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리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이 모습을 바라보는 리오스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통을 느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진들은 안젤리나가 태어나고 자란 라디오카 시로 길을 떠났다. ================================================================= 무협 소설도 아닌데 출도라니......쿨럭!!!! 뭐, 내용상 무협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 상관은 없겠죠? ㅎㅎㅎ 214화. 출도. 2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공격에 대비하라!” 성 위에서 울려 퍼지는 에리필의 음성에 마법사들은 베리어를 치기 시작했고 궁수들을 보호하는 방패수들이 성 위를 방패로 가득 채웠다. 콰콰콰콰콰! 아니라 다를까 마법사들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이미 베리어를 쳐놓은 상태기에 상대편 마법사들의 공격은 무위로 그쳤다. 타다다다다다! 그리고 상대편 궁수들의 화살 역시 대부분 방패에 막히거나 그들을 넘어 가서 별 피해는 없었다. 쾅쾅쾅! 어느새 다가왔는지 일단의 기사들이 성문을 부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더러스 시의 성문은 단단하기로는 수도인 가에아에 비견될 정도라 기사들이 몇 번을 친다 하여도 쉽게 뚫릴 리 없었다. 허나 에리필은 성문의 내구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서둘러 명을 내렸다. “바위를 떨어뜨려라!” 성문 바로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미리 준비해놓은 바위를 굴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콰직! “으악!” 기사들은 설마 위에서 바위가 떨어질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엄청난 무게의 바위에 압사되어 온 몸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몇 몇 기사들은 서둘러 이동해 바위들을 피했다. “드래곤 스크류!” 그때, 에리필의 웅혼한 외침이 터졌고 푸른 용이 궁수들과 밀집된 병사들 을 향해 날아갔다. “으악!” “허억!” “후퇴하라!” 순간 다급한 비명과 음성이 터졌으나 그들은 마더러스 시에 가까이 다가온 죄로 푸른 용의 먹이감이 되었다. 에리필은 그들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사기를 잃은 병사들은 한동안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많은 전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부관에게 동문을 맡기고 남문을 향해 갈 수 있었다. 피융! 아니라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남문을 공격하는 적들이 만만치 않은 듯 남문에서 신호가 왔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준비한 상태인 에리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동문을 지키는 군사들 중 이백을 이끌고 남문으로 달려갔다. “피해상황은 어떤가?” 에리필은 남문에 도착하자마자 남문의 수비를 맡고 있는 셀리나에게 물었다. 셀리나는 올슈레이 기사단의 천부장 중 유일하게 에리필을 따라온 사람이었다. 다른 천부장들은 발티안 시로 갔지만 그녀는 스스로 지원하여 에리필을 따라온 것이다. 어쨌든 그녀가 맡고 있는 남문은 지금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마법사들의 베리어를 뚫은 상대의 마법사의 공격에 성의 일부가 무너졌고 그 아래에 깔려 신음을 토하는 병사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셀리나는 많은 전장을 다녔기에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처리하며 대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적의 군사나 강함은 이쪽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 마법사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거기다 기사들이 에너지 소드 를 날려 바위를 떨어뜨릴 기회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성문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녀의 말에 에리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운을 끓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드래곤 스크류를 성 밑에 있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향해 날렸다. “드래곤 스크류!” “베리어!” “디펜스 바로어!” 거대한 푸른 용이 날아오자 그들은 동문의 기사들과는 달리 서둘러 방어 마법과 검막을 펼쳤다. 그러나 에리필의 드래곤 스크류를 막기에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커헉!” “으악!” “제기랄!” 온갖 비명과 신음, 그리고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고 그들의 방어막은 푸른 용에 너무도 쉽게 갈기갈기 찢겨졌다. 그리고 먼지로 화하는 그들이었다. “헉헉헉, 그 다음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에리필은 연달아 두 번이나 스피릿 트랜스를 쓴 것과 마지막으로 쓴 스피릿 트랜스는 잠력까지 끌어올려 펼쳤기에 안색이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그리고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임시로 쳐진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고갈된 기를 보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전투는 에리필의 위용에 의해 쉽게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연이은 공격이 있었지만 곳곳에 남은 올슈레이 기사단의 에너지 소드에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물러나야 했다. 그날 저녁, 마더러스 시의 수뇌부들이 회의장에 모였다. 회의장은 남문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임시 군막이었는데 그 안에 있는 수뇌부들의 표정은 결코 좋지 못 했다. “1만이라고 생각했던 적의 군사는 결국 그들의 선발대일 뿐이었습니다. 5만에 육박하는 적을 3만 밖에 안 되는 우리가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황성에 지원군을 요청해야 합니다.” 파즈틱 시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알티안 가의 가주인 알티안 드 바르삭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에 마더러스 시를 지원하기 위해 온 아즈틱 시에서 온 프리지미 드 에카린이 화답하듯 이어 말했다. “만약 황성이든 다른 곳에서든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름도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도 에리필 경과 올슈레이 기사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의 솔직한 말에 회의장의 공기는 더욱더 무거워졌다. 그때, 수뇌부들 중 유일한 여성인 셀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솔직히 우리가 약세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들이 전쟁에 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밀리는 것은 사실이나 저들은 매번 전투 시에 많은 고수들을 잃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은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수들과 마법사들의 수가 우리보다 적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때, 성문을 열고 에리필 단장님과 저희 올슈레이 기사단이 적진을 한바탕 헤집어 놓는다면 숫자상의 우위는 사라지리라 봅니다. 더구나 발티안 시의 전투 역시 우리 쪽이 연신 승리를 거두고 있다하니 적의 지원은 더 이상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는 정예병들이 지원군으로 올 것입니다. 결국 시간을 끌수록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해진다는 말입니다.” 셀리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저번처럼 암울한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의 말이 갖는 희망에 속으로 전율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들 힘이 드실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견뎌내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에리필의 말은 회의장을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일 있을 전투 역시 견뎌내고 이겨내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뇌부들의 사기 상승은 곧바로 부하들에게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준 셀리나에게 에리필은 고마움을 느껴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셀리나는 그저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일행은 떠난 지 이십 여일 만에 라디오카 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안젤리나의 안내를 따라 그들은 애드윈 가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리나의 할아버지가 내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는 걸까?’ 진은 저택의 대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전부터 종종 생각해왔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을 구해준 은발의 사내를 떠올리는 진이었다. 사실 진은 자신을 구해준 분이 애드윈 더 세필로스라고 생각했었다. 그 외 모나 능력이 그분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발인 사람은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 외로 많았다. 그리고 하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도 생각 외로 많았다. 자신만 해도 하급 몬스터 수백 마리 쯤은 웃으며 처리할 수 있으니 한 마리쯤은 웬만큼 실력이 있으면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애드윈 더 세필로스, 즉 안젤리나의 할아버지일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이 깨달음을 얻을 때도 그분의 가르침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가? 그리고 그 외모는 얼마나 흡사했던가? 비록 조각상에 관한 외모였지만 진은 분명 그분이 안젤리나의 할아버지일거라 확신했다. 그가 얻은 깨달음에 조언을 해줄 존재는 세상에 몇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문이 열리자 더욱더 떨리는 진이었다. ‘그때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애드윈 가 안으로 들어가는 진은 저번 방문 때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그 물음은 너무도 쉽게 해결되었다. ‘그때는 리나의 부모님께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했었으니깐.’ 이런 생각이 들자 새삼 안젤리나가 더욱더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진이었다. 그러나 진은 곧 집을 떠나오기 전 리오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졌다. “너는 한 여인의 남편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아무리 정이 많고 포용력이 있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 그 말에 뭐라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더 미안해졌다. 자신은 안젤리나도 사랑하지만 샤넬리에 대한 감정이, 아니 다른 여인들에게 느꼈던 감정들이 거짓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당혹스런 진이었다. “무슨 생각을 해요? 우리 들어가요.” 진은 안젤리나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이러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을 구해준 분이 안젤리나의 할아버지인지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는 진이었다. ================================================================= 이제 6권도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군요. 215화. 출도. 3 그의 눈이 자신을 살펴보자 심장이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심하게 두방망이질 쳤다. 그리고 가슴은 뭔가가 박힌 듯 아릿한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단지 그가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으며 순간 사물이 일그러지며 현기증이 나 비틀거렸다. “괜찮은가?” “아, 괜찮습니다.” 진은 세필로스의 따뜻한 음성에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예전에 자신을 감싸주던 포근함이 시간을 격하고 느껴진 것이다. “험험, 그래. 자네가 우리 리나의 남편인가?” 세필로스는 눈앞에 있는 진과 그의 옆에 다소곳이 서 있는 안젤리나를 번갈아보았다 물었다. 그러나 그가 예상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순간 당황하는 세필로스였다. “…….” “리나야 이게 어찌된 일이냐?” 세필로스는 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안젤리나를 보며 물었다. 이에 당황한 것은 뭔가에 정신을 놓고 있던 진이었다. “…… 죄, 죄송합니다. 제가 리나의 남편이 맞습니다.” “흐음, 그렇다 하니 다행이군.” 세필로스의 음성은 비록 노기를 띠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기분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에 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이분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면목이 서지 않는구나.’ 진은 눈앞의 세필로스가 자신을 구해준 은발의 사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다 보니 평소와 다르게 긴장하고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에게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진이기에 지금의 상황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고오오오! 진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기세를 끌어올려 그의 온전 한 모습을 보였다. ‘허허허, 이러한 존재감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나!’ 세필로스는 갑자기 변한 진의 기도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는 평생의 반려 자를 제대로 고른 안젤리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에 안젤리나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졌고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기 싫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세필로스는 그녀의 고개가 숙여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허허허, 리나가 짝 하나는 정말 잘 골랐구나.” “할아버지 미워요!” 고개를 푹 숙였던 안젤리나가 살짝 고개를 들어 눈을 흘겼다. 그리고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에 세필로스는 모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허허허허허허!” 세필로스의 웃음소리는 시원하고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안젤리나가 갑자기 방을 뛰쳐나가 당황하고 있었던 진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하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뭐가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대답해주겠네.” 세필로스는 진이 이미 마음에 들었기에 그가 물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그가 아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뭐가 궁금한 가?” 진은 세필로스의 마치 친손자를 대하는 태도에 일순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를 더 이상 기다리게 만들 수 없어 힘겹게라도 입을 열었다. “저, 약 십오 년 전 쯤에 바이사카 시의 어느 산에서 다크 블루빛 머리칼의 꼬마를 몬스터에게서 구해주신 적이 없으십니까?” “…….” 세필로스는 그의 질문이 너무도 의외의 것인지라 일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한지라 우스개 소리로 넘어갈 수도 없어 십오 년 전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구해준 당돌한 꼬마를 기억할 수 있었다. “으음, 그랬던 거 같군.” 세필로스는 당시 죽을 뻔 한 것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강함 에 대해 물었던 아이에 대해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아이 때문에 이렇듯 아들 내외를 찾아오게 되었으며 안젤리나와 같은 귀여운 손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세필로스는 귀엽고도 당돌했던 아이를 잠시 떠올리다 현실로 돌아왔고 무릎 을 꿇고 있는 진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적잖이 당황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어서 일어나게!” 세필로스는 진의 돌연한 태도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 나 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세필로스는 무슨 영문인가 싶어 그를 다시 보았는데 진의 머리칼이 다크 블루빛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아이가 그때 그 아이였단 말인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추 시간을 계산해 볼 때, 그때 그 아이가 자랐으면 진의 나이와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세필로스였다. “설마, 자네가 그때 그 아이였단 말인가?” “…….” 세필로스의 떨리는 목소리에 진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이은 채근에 진도 굳게 다문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자네가 그때 그 아이가 맞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할아버님. 흐윽!” 진은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이런 그의 모습에 세필로스는 천장으로 시선을 옮기며 읊조리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허허허, 세상 참 좁구나. 그때 그 아이가 이렇듯 기개가 대단한 청년으로 자 랐다니.” 그의 음성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 감회어린 표정을 짓자 진은 더욱더 고개를 조아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세필로스는 이러한 진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비록 예전의 그 일을 자신은 잊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한 아이가 이렇듯 훌륭하게 자라났다는 사실이 세필로스를 크게 기쁘게 했다. “일어나게!” 세필로스는 손수 그를 일으켜 세우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 번만큼은 진도 사양할 수 없어 그의 손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일으켜 세우는 세필로스의 손이 너무도 따뜻해 진은 힘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수고했네.” 세필로스의 진심이 담긴 말에 진은 여기까지 오는 데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포근한 기운에 소리 없이 덮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상처받았고 흉터 남은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윽! 흑흑흑흑!” 그래서 진은 이렇듯 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진을 보며 세필로스는 말없이 그 를 끌어안아 주었고 진은 자신의 모든 가면을 벗고 그의 품에서 울었다. “으엉엉엉엉엉!” “흐윽, 흑흑흑!” 그리고 문 밖에서 진과 세필로스의 대화를 모두 들은 안젤리나는 울음소리를 참으려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아 결국 그녀도 소리를 내며 울게 되었다. 이에 세필로스가 한쪽 팔을 벌리며 포근한 미소를 보내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으엉엉엉엉엉!” 마치 합창을 하듯 울음을 터트리는 두 내외를 세필로스는 감회어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만이군 꼬마!” “정말 오랜만이군요. 하지만 이제 꼬마는 아닙니다.” 진은 처음 레이터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가 예전에 보았던 그인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더스틴의 소개로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그 당시 너무도 강렬한 인상에 외워두었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이터 역시 진의 인상이 강렬하여 기억하고 있어 이처럼 그가 먼저 말을 건넨 것이다. “흥, 나는 보이지도 않나 보지?” 진은 레이터 옆에 있는 여인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기에 더욱더 당혹스러운 진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이름까지 가르쳐주었는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여인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진에게 말하고 있었다. 순간 안젤리나는 본 능적으로 이 여인이 위험한 여인이라고 판별을 내렸다. 그래서 진의 앞을 막으며 여인을 보며 말했다. “우리 그이에게 무슨 볼 일이 있나요?” “넌 또 뭐지?” 안젤리나가 갑자기 개입하자 여인은 눈에 불을 켜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에 당황한 것은 더스틴과 레이터였다. 진은 영문을 몰라 여전히 눈만 껌뻑이고 있을 뿐, 여인들의 기세 싸움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카, 리나는 내 동생이야.” “무슨 말버릇이냐?” 더스틴과 레이터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레이카를 달래었다. 그러나 레이카는 ‘흥’하며 콧방귀만 뀔 뿐, 그들의 말은 귓전으로 흘렸다. “그래, 더스틴의 동생이 왜 우리 대화에 나서는 거지?” “호오, 우리라? 그렇지만 말이야. 우리 그이는 바로 내 남편이거든? 그러니 내가 나설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이 틀렸어?” 안젤리나는 레이카의 말에 진과 그녀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여 강하게 나갔다. 순간 레이카는 그녀의 엄청난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안젤리나와 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이, 이! 이년과 결혼 한 거야?” “어? 그렇긴 한데, 도대체 저를 언제 봤다고 이러시는 건지?” “이년이라고? 너 말 다 했어?” 안젤리나는 레이카의 머리카락을 당기며 말했다. 순간 모두는 그녀가 이렇게 나올지는 몰랐기에 심히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허나 레이카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잡히는 순간 안젤리나의 금발을 움켜쥐고 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래, 이년이라고 말했다 왜? 아악!” “뭐라고? 너 진짜 죽을래? 아악!” 미인 두 명이 서로의 머리를 붙잡고 싸우는 모습은 심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일의 원흉인 진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것은 몬스터 사냥꾼으로서 이름을 떨친 레이터도 다를 바 없었다. 더스틴이야 말하나 마나이고. 끼익! “뭐하는 짓들이냐?” 두 여인의 치열한 사투는 문을 열고 한 여인이 들어옴으로써 끝이 났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애드윈 가의 실세인 실리에였다. 실리에는 호통을 치고 들어와 두 여인의 손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두 여인을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고 꾸중했다. “리나, 너는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는 거냐? 그리고 레이카 너도 마찬 가지야. 내가 너를 친딸로 생각하는 거 알고 있지 않니? 그렇게 생각하면 리나는 너한테 언니나 다름없다는 말인데, 어디 언니의 머리를 잡고 늘어질 수가 있는 거니?” 두 여인은 실리에의 꾸중에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어느 정도 반성을 하자 실리에는 진에게로 그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자네, 내 밖에서 듣자하니 이 모든 일이 자네 때문에 생긴 거 같은데 남자가 어찌하여 처신을 그렇게 밖에 못하는 가?” “…….” 진은 자신이 왜 꾸중을 들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어른에게 말대꾸 할 수도 없어 입만 삐죽 내밀 수밖에 없었다. “후우, 어찌됐든 처신을 잘하게.” “예에.” 진은 억울했지만 그녀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겪기로는 애드윈 가 역시 자신의 집안처럼 여인의 파워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실리에는 자신의 볼 일은 끝났다는 듯이 들어왔을 때처럼 바라처럼 방을 나갔다. 순간 모두는 그녀가 남긴 정적에 몸을 떨어야 했다. “험험, 자네가 우리 레이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당시 나와 만났을 때, 자네와 겨뤘던 레카가 바로 우리 레이카라네.” 레이터는 무엇 때문에 오해가 생겼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했다. 그리고 진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아~!’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를 본 레이터는 그의 생각을 충분히 짐작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당시 레이카는 자연적인 남장을 하고 다녔었지. 그러니 자네가 기억하지 못할 수밖에.” “자연적인 남장? 크큭, 명언이십니다.” 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은근히 농담을 하는 레이터에게 감탄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레이카가 화를 내며 달려들었지만 이래 뵈도 진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고수인지라 그녀의 공격을 무리 없이 피해 다녔다. 이렇게 몇 년 만의 재회는 시끌벅적한 가운데에 진행되고 있었다. “듣자 하니 자네의 사부가 바로 에리필 경이라 하던데 맞나?”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진은 그의 갑작스런 말에 당황했다. 자신이 에리필의 제자라는 것은 몇몇 만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많은 사람들이 아는 듯했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 자네 사부와 자네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으니 범부인 나도 알게 되었지.” “으음…….” 진은 짐작했던 사실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유야 어찌됐든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되어 레이터를 쳐다보았다. 레이터는 진의 시선을 받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자네 사부가 에리필 경이 맞다면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 “그게 무슨?” “자네 사부의 가문이 있는 마더러스 시가 4대 공작의 군사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네. 그것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입니까?” 고오오오! 진은 그의 말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외치 듯 물었다. 그리고 그의 격해진 감정에 따라 신기가 발동해 순간 장내는 그의 거대한 기세 안에 갇혀버렸다. 덕분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레이카와 안젤리나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얼마 전까지 안젤리나의 아버지인 지다이와 대화를 나누다 돌아온 리오스 역시 얼굴을 굳혔다. “진아, 진정하거라.” “아~!” 리오스의 나직한 말에 진은 자신이 기운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기운을 거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신기는 순식간에 그의 몸 안으로 돌아왔다. “흐음, 정말 대단하군. 역시 그만한 명성을 얻을 만 하군. 어찌됐든 자네 사부가 지금 위급한 지경에 처했으니 찾아가봐야 하지 않겠나?” “당연한 이야깁니다. 리나, 아버님과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가야할 거 같아.” “예, 그렇게 해요.” 안젤리나는 이미 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 진이 곧 떠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의 음성. “그리고 이번 일은 나 혼자 다녀올게. 위험한 일에 당신을 끌어들이기는 싫어.” 안젤리나는 진이 혼자가리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는지 당황스런 표정을 지 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진의 힘을 믿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흥, 죽는 게 두려운 가 보지?”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이카가 안젤리나의 속을 긁는 말을 했다. 그러나 안젤리나는 살짝 굳어진 얼굴을 순식간에 고치며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설마요. 저는 누구누구처럼 왈가닥이 아니라 남편의 말에 순종 하는 여인일 뿐이에요.” 안젤리나의 회심의 찬 반격에 레이카는 ‘끄응’하며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진을 보려는데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사실 내가 해주었어야 할 말이었는데, 어쨌든 잘 갔다 오게.” “예.” 지다이는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헌앙해진 사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 였다. “리나를 혼자 두게 되면 용서하지 않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저를 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은 실리에의 말이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 것을 알기에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장인 장모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안젤리나와 더스틴, 그리고 스라이드 남매와 그의 형 리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이 입이 열려 하자 씩 웃어 보였고 그 웃음이 사라지기 전, 그의 모습은 그곳에서 사라졌다. “무사히 다녀오세요!” 애드윈 저택을 벗어나는 진의 귀에 안젤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피식 웃은 진은 더욱더 속도를 높여 마더러스 시를 향해 날아갔다. “잘 다녀와라!” “다녀올게요.” 안젤리나는 가족 모두가 이렇듯 쉽게 보내줄 줄은 몰라 감격했다. 그러나 그녀는 감격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와 같이 가기로 한 일행이 저기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 조심히 다녀와라.” 몸을 돌려 달려가는 그녀의 등에 실리에의 음성이 들렸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레이카들에게 달려갔다. “흥, 안 가는 척 하더니만 결국엔 가면서 그땐 왜 그랬던 거야?” 말에 올라타는 안젤리나를 보며 레이카가 퉁명스런 음성으로 말했지만 안 젤리나는 진심이 담아 말해 순간적으로 그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나랑 같이 가게 되면 속도가 많이 늦어지잖아. 그러니 나는 나대로 따로 가려고 생각했었지.” “뭐,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어.” 레이터와 리오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사실상 자신들도 진과 함께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그와 함께 한다면 도리어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따로 가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진의 힘이 되기 위해 서둘러 마더러스 시를 향해 이동했다. ================================================================= 여기까지가 6권까지입니다. 쿨럭!!!! 216화. 마더러스 시 전투. 1. [7권 시작] “헉헉헉, 제기랄!” 사내는 피에 절은 은발의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내는 욕지거리를 내뱉었음에도 뭐가 그리도 불만인 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한 쟈크 대륙 쪽을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기필코 돌아오겠다!”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듯 낮으나 한이 맺힌 음성을 토한 사내는 곧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사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몇 년 전, 루미에의 신탁을 받고 떠난 열두 명의 신의 전사들은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기척을 쫓던 중, 그 사람의 냄새가 거짓말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에 당황한 열두 명의 전사들은 각기 흩어져 한 쟈크 대륙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 년 뒤, 모두는 허탈한 표정으로 모여야 했다.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나는 악취를 맡을 수 있는 민의 코가 벌름벌름 거렸다. “그의 냄새가 나!” “뭐? 정말이야?” 일행의 리더인 창은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말에 반색하며 급히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에 놀랄 법도 하건만 민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피식 웃으며 고개까지 끄덕여주었다. 한편, 일행의 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현은 창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은 시선으로 민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우리에게 그리 이롭지는 않겠구나!’ 현은 염두를 굴리며 창과 쟌이 물음을 던지고 민이 대답하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거 같아?” “글쎄, 우리가 한 쟈크 대륙의 최남단에 있으니 그는 북쪽에 있겠지?” “으음, 북쪽 정확히 어디?” “글쎄, 북쪽이긴 한데 한 쟈크 대륙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냄새가 나는 듯 하면서도 계속해서 끊겨서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어.” 현은 쟌의 물음에 대한 민의 대답에 불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민이가 냄새가 끊긴 다고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그가 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말일 것이다. 민이 기척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현은 순간 불안해졌다. 자신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그렇게 걱정 반, 숨길 수 없는 기대 반을 가지고 북상을 하는데 한 가지 소문이 들려왔다. -운현성이 금강장원의 손에 들어갔다.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소문의 한 가운데에 있는 자가 신경 쓰였다. 한 쟈크 대륙의 북쪽인 운현성을 집어삼켰고 그 강대한 힘과 은발 때문에 은발마왕이라 불리는 자! 혹자들은 환영마존이라고 부르는 그! 아무리 생각해도 그밖에 다른 이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고센 평원으로 향했다. 그들이 고센 평원에 도착한 것은 싸움이 한창 벌어질 때였다. 그리고 그들 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흑룡이 바로 자신들이 찾던 그라는 것을. 그러나 지금 당장 나설 수도 없었다. 특히나 그와 싸우는 세 명의 힘은 자신들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특히나 검은 머리에 조각 같이 잘생긴 청년의 힘은 일행 중 가장 강하다는 창과 무가 합공해야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흑룡의 우세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 도와줄까 말까 하는데 현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저들은 알 수 없는 막에서 전투를 치루고 있기에 우리라 할지라도 힘이 들 것 같아. 그러니 틈이 생기면 그때 나서기로 하자.” 현의 말은 전장에서 수 수키르 떨어진 그들에게 조용히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 수키르나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공간을 격하고 갈 자신이 있었기에 그의 말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또 다시 전투를 지켜보았다. 세 명의 젊은 무인들이 위험에 처했다. 아니, 스스로가 위험을 자초한 듯 했다. 이에 몸을 날리려는 찰나, 세 명의 노인이 달려가 흑룡에게 공격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자신들보다 분명 강해 보이는 두 명의 노인이 나타나 밀렸던 전세를 뒤집었다. 순간, 그들은 언제 등장해야 할 지 몰라 현만을 보았다. 그러나 현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처음부터 개입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 분명한 힘의 개방에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현은 머리만 구르다 전투가 끝이 나는 것을 목도했다. 이에 평소 성격 급한 거로는 창에 뒤지지 않는 극이 냅다 고함을 질렀다. “제기랄! 이게 뭐야? 결국 죽 써서 개 줬잖아?” “그래서? 오히려 잘 되지 않았어? 우리는 아직 세 명이나 더 상대해야 하 잖아. 만약 우리가 그와 붙었다면…… 모두 이렇게 무사할 수 있을 거 같아?” “그 말은 현의 말이 맞는 거 같아.” 극의 노성에 차분히 반박하는 현, 그리고 현을 옹호하는 한. 마치 잘 짜여진 경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민은 그들이 싸우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를 본 창이 조심스레 물었다. “민아, 무슨 냄새가 잡혀?” 창은 한 개의 관문을 넘으면 또 다른 관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무겁게 닫힌 민의 입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열 명의 전사들 역시 마찬 가지였기에 이내 그들의 입은 민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 후, 민의 입이 열렸지만 그들의 얼굴은 오히려 전보다 못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어. 그리고 그는 지금, 북서쪽으로 이동중이야.” “…….” 모두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저토록 대단한 공격 역시 피하다니, 예언에 나오는 악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에게 감탄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리더인 창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서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가자!” 어찌 보면 좀 유치할 수도 있지만 창의 표정이 워낙에 진지한지라 모두는 두 말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것이 2달 전의 일이다. 한 달 전, 타일리는 모래바람을 뚫고 겨우겨우 사막에 세운 자신의 성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운형성에서 잡아온 고수들과 얼마 전, 세필로스가 데려왔던 그들을 실험체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잘 진행 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이제는 황화광의 고수들을 두려워할 실험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흐읍, 하압!” 타일리는 하루 중,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모두 연공하는데 사용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에게 복수할 힘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한달이 지난 오늘, 그는 예전의 힘을 찾은 것은 물론이요, 그때 각성의 시기로 인해 얻었던 힘까지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각성의 시기로 인해 얻은 힘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성에 돌아왔을 당시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한 달 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일리는 연공을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그러다 ‘삐잉’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에 그는 서둘러 대비를 해나갔다. 루미에의 신전에서 파견된 열두 명의 전사들은 사막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성을 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온 성이 마기로 가득 차 있다니.” 현의 중얼거림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중얼거림이 감탄이 아니었듯 그들의 끄덕임 역시 감탄에 의한 끄덕임이 아니었다. 그들의 중얼거림과 끄덕임은 이 성을 이 땅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지는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창은 크지는 않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는 신탁이 내려질 정도의 강자다. 그리고 그 힘은 이미 겪어본 대로 다. 더구나 그가 환영을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더욱더 힘들어지니. 민아, 네가 수고해주어야겠다.” “맡겨만 줘!” 자칫 무거워질 뻔한 분위기가 민의 장난스런 말 한 마디에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대며 성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민이 말하는 방향을 향해서. ================================================================== 간만에 이렇게 짧은 화를 올리네요. 쿨럭!!! 잠을 대략 12시간 잤습니다. 그렇게 잠이 모자르게 하지는 않았는데...순전 꿈이 재밌어서 오랫동안 잔 것입니다. 쿨럭!!! 전 꿈 꾸다 재밌으면 그 꿈에서 살려고 계속누워있거든요.^^ 어쨌든 7권을 시작했습니다. 으흠,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이 아무도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서 열었는데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게 만드네요.ㅡㅡ;; 217화. 마더러스 시 전투. 2. “드래곤 스크류!” 콰콰쾅 “으악!” “컥!” 푸른 용이 성 위에서 날아와 전장을 쓸자 수많은 생명들이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리고 성문이 열리며 올슈레이 기사단 천여 명이 피가 터지고 시체가 난무하는 전장을 향해 쇄도해나갔다. “전군 돌진하라!” 셀리나의 지휘아래 쏜살 같이 돌진하는 천여 명의 올슈레이 기사단은 전방에 포진되어 있는 1만의 적들을 베기 시작했다. “컥!” 올슈레이 기사단은 일당백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적들을 베고 또 베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는 언제나 동료 기사가 맡고 있어 그 틈을 노리려던 적들은 어김없이 목이 뚫리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하압!” 전장을 예리한 시선으로 살피며 검을 휘두르던 셀리나의 눈에 수십의 적에 둘러싸인 두 기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곧 몸을 날려 기가 잔뜩 담긴 에너지 소드를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 근방에 있는 적들의 몸통을 갈랐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기사는 온 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셀리나를 향해 웃어 보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에 셀리나는 평소 잘 웃지 않는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 그들에게 전했다. ‘난 꼭 살 거야!’ ‘꼭 돌아가서 자랑해야지!’ 셀리나는 모르겠지만 올슈레이 기사단에서의 그녀는 강인한 여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웃지 않아 모든 기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니 두 기사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저 녀석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자!” “그래, 누가 더 많이 죽이나 내기해 볼까?” 그들은 흩어진 그들 부대원들을 찾아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셀리나는 살기는 느낄 수 없으나 미세한 기운을 느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검을 휘둘렀다. 쾅! “크흑!” 셀리나는 예기치 못한 공격에 기를 얼마 실지 못해 약간의 손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녀는 위명이 쟁쟁한 올슈레이 기사단의 천부장이었다. “차압!”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진에 의해 단련되고 또 단련된 그녀의 육체와 감각은 적의 위치를 쉽게 찾아냈고 찾아내는가 싶은 순간 그녀는 비조가 되어 허공을 날았다. 쾅! 그러나 그녀보다 상대의 움직임이 한발 빨랐다. 또한 그녀의 검이 땅을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그녀를 향해 사방에서 음유한 에너지 소드가 날아왔다. 그러나 그 에너지 소드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녀는 오로지 감각으로만 피해야 했다. 그것도 공격이 실패한 상태에서 드러난 허점을 메우면서 말이다. “얍!” 쾅! 그녀는 땅을 후려쳤던 검을 들어 다시 한번 땅을 후려쳤다. 그리고 그 반 동으로 몸을 띄운 상태에서 몸을 옆으로 누이며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며 사방으로 에너지 소드를 날렸다. 그와 함께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폭발 음이 터졌고 그 폭발음은 자욱한 먼지를 불러일으켰다. 샤넬리는 허공에서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다 그 상태에서 발등을 한 번 차 앞으로 주욱 날아갔다. 그리고 먼지 틈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난 상대의 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그녀의 검은 상대의 눈을 뚫고도 모자라 그의 머리를 관통해버렸다. 그러나 상대는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이에 오히려 섬뜩해진 그녀는 검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의 뒤에는 바람마저 침묵시키는 검이 다가 오고 있었다. “헉!” 그녀는 검이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질 때야 알았다. 그래서 급히 몸을 틀었 으나 옷이 검에 걸려 찌익 찢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그녀의 엄청나게 발달된 감각과 육체적 능력이 아니었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자욱한 먼지가 땅에 내려앉았다. 그들이 서 있는 사방 몇 십 라키르는 마 치 무형의 막에 가려지기라도 한 듯, 투명한 옷을 입은 사내들 수십 명과 셀리나 뿐이었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는 이곳과는 마치 별개의 것이라는 듯, 그리고 전투를 치루는 그들 역시 자신들과 이곳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사방 수십 라키르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셀리나는 냉철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이곳이 마법으로 가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 동료의 위험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상대의 몸이 또 다시 대기에 녹아드는 것을 보고 그들이 입고 있는 슈트 역시 마법물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마법물품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고 있기에 한 순간 ‘내가 이렇게 가치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바로 앞에서 느껴진 검의 기척에 생각을 접고 몸을 틀어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수십 명의 적들과 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한편 올슈레이 기사단의 제 일 백부장인 하드만은 후퇴 명령을 내려야 할 셀리나가 보이지 않아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일사불란하게 후퇴하기 위해 모두가 일정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그녀가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휘리릭! “컥!” 하드만은 그녀를 찾으면서도 적들을 하나씩 베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 나 그도 올슈레이 기사단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맡은 임무는 에리필에 의해 혼란에 빠진 적들을 헤집어 놓고 오는 것인데 본래 예정인 삼십 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삼십 분이란 후방에 있던 적들이 투입되는 최소한의 예상시간이기 에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제아무리 올슈레이 기사단이라도 전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하드만은 더욱더 초조해졌다. 그것은 스피릿 트랜스를 쓰고 기를 보충한 에리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 위에서 그가 보기에 적들은 점차 퇴로를 막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후퇴명령을 내리지 않는 셀리나가 이상했다. 아니, 후퇴명령을 내려야 할 셀리나가 보이지 않는 것에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 꼈다. 에리필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셀리나가 보이지 않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다 보니 그는 기수련으로 기를 보충할 생각도 가지지 못했다. 고작 삼십분으로 채울 수 있는 기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셀리나,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난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에리필은 셀리나를 떠올리자 마음이 급해져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성 위에서 뛰어내렸다. 성의 높이는 자그마치 삼십 여 라키르나 되었지만 이 정도의 높이는 에리필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기에 그는 아무런 충격 없이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이런 그를 성 위에 있던 여러 기사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셀리나를 찾으러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장은 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도 처절했다. 그리고 수많은 적 들과 아군이 섞여 있어서 셀리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적들을 베었다. 그러는 한편, 그는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에게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번쩍! 은색의 섬광이 번뜩이면 어김없이 십여 명의 적들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적들은 이미 광기에 미쳐있기에 도리어 에리필과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거기다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기사의 말은 그들을 탐욕의 눈으로 번들거리게 만들었다. “적의 수장인 에리필을 죽이는 자, 3계급 특진과 황금 100냥을 하사하겠다!” “와아아아아아!” 그의 말에 그들은 올슈레이 기사단은 놓아두고 에리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수가 자그마치 수천일지니, 제아무리 에리필이라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은 에리필이 적에게 둘러싸이자 후퇴하던 것을 멈추 고 대장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려 적의 경계망을 뚫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리필이 포위당한 곳이 틀림없는 곳에서 적들이 펑펑 하는 소음과 함께 허공으로 날려올라가는 것과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음성 때문에 그들은 전진하던 것을 멈추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라! 이것은 명령이다!” 그의 명령에 후퇴하는 올슈레이 기사단은 더욱더 촘촘해지는 포위망을 보고 한숨을 쉴 수박에 없었다. 비록 자신들 대장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일 뿐이었다. 그도 인간이기에 얼마 뒤에는 분명 지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적의 수많은 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은 후퇴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가세한다고 하여 뭔가 변한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자신들은 이미 체력도 기도 평소의 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후방에 있던 적과 동문에 있던 적 모두가 이미 전장에 가세하여 그 수가 자그마치 4만이 넘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많은 적을 베었기에 줄어든 적이었음을 감안해보면 적의 수는 가히 엄청났다. 그에 비해 자신들은 수많은 전투로 죽고 죽어 2만이 채 못 되었다. 적들 역시 많은 수가 죽었지만 그들은 어디서부터 지원되는지 줄어도 얼마 뒤면 곧 보충되었기에 처음 가졌던 희망도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황성에서 지원이 오지 않는 이상 그들은 전면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하드만은 더욱 고민하고 있었다. ‘이렇게 언제 올 지도 모르는 지원을 기다리다 결국 죽을 것인가? 아님,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기사답게 죽을 것인가?’ 이미 성문 앞까지 다가와 성 위의 궁수들과 마법사들의 도움으로 적들을 막고 있던 하드만은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적들을 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강했던 그! 자신들의 우상이며 지금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포위망에 갇힌 에리필의 자랑거리이자 올슈레이 기사단 모두의 자랑거리인 그!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드만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우리는 진 대장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언인가?” “와아아아아아아!” 대답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함성을 지를 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뿐! 그렇게 그들은 전장을 향해 자신들 목숨을 불사르기 위해 몸을 날렸다. 자신들의 영원한 대장인 진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디오리스는 성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면 한 눈에 다 볼 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장을 한 눈에 내려다본 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에리필은 성 쪽으로 이동하려하나 인의 장막에 의해 자꾸만 성 쪽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인의 장막을 뚫으며 나가는 올슈레이 기사단은 그 수가 처음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어 절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제국 최강의 무력집단인 올슈레이 기사단도 압도적인 인원수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을 감당할 수 없듯이 말이다. 더구나 검을 휘두를 공간마저도 제대로 주지 않으니 올슈레이 기사단의 경이적인 몸놀림은 이곳에서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올슈레이 기사단의 수는 자꾸만 줄어가고 있었다. 또한 에리필이 있는 곳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이 아까 전부터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의 영역이 자꾸만 좁아지는 것도 보였다. 이는 그가 점차 힘이 부치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디오리스는 더 이상 고민할 수 없었다. “성문을 열고, 군사들은 적들을 주살하라!” 추상같은 명령! 이는 터지기 일보직전인 폭탄에 불을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니라 다를까, 그의 명령에 마더러스 시에 모여 있는 2만이 넘는 군사들이 ‘와아아아아아!’하며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얼마 뒤, 성문이 열리며 2만이 넘는 군사들이 올슈레이 기사단이 열었던 길을 따라 피의 길을 뚫기 시작했다. ================================================================= 후후후, 광참의 시작인 것일까???? 우리 모두 이벤트 참여합시다!!! 218화. 마더러스 시 전투 3 셀리나는 두려움과 싸우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공격이 비록 매섭고 허를 찌르기는 하나, 자신이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십 라키르 밖이 온통 적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두렵기 그지없었다. 투명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진이 풀리는 순간 저들의 셀 수도 없는 검들이 자신을 향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렇듯, 마음이 분산되자 그녀의 검은 점차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이 댕강 잘릴 뻔한 위험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 덕분에 단련되고 스스로가 더욱 단련한 육체와 감각 때문에 아직까지는 겨우겨우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한편, 공작가에서 보낸 살수들은 그녀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운신의 폭을 좁히는 상처를 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형제들이 셋이나 죽었다. 이로 인해 그들의 검은 점차 살기를 띠게 되었다. 살수의 검에는 살기가 담기면 안 되지만 짜증나는 이 상황과 형제들의 죽음은 그들에게 살기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이 여인이 에리필의 여자만 아니었다면…….’ 사실과는 조금 다른 정보지만 그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적의 수장인 에리필의 여인을 생포하여 그를 위협하려던 계획만 아니었다면 이 여인을 몇 번이나 죽였을 것이다. 살수들의 대장인 M은 검을 휘두르면서도 이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자신과 몇 십 년이나 동고동락했던 형제가 죽는 순간 그녀의 목을 따버릴 뻔 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수련을 받은 그였기에 이내 평상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은 없었다. M이 이러한 상념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 마법진을 통해 살수들에게 지령이 내려졌다. -죽여도 좋다. 에리필을 위협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지명에 살수들의 검이 변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셀리나는 밖의 상황을 살필 겨를 도 없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 생각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게 되었다. 셀리나는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목을 스치는 검도 스산한 한기가 온 몸을 헤집어놓는 공포에도 무감각해졌다. 마치 죽음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가 그녀에게서 풍겨져 나왔다. 이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살수들의 대장인 M이었다. 그녀의 검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공포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상처는 자꾸만 늘어났지만 그로 인해 자신들 역시 피해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M은 그녀의 변화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검을 부딪칠 때의 힘도 전과 다름없고 움직임 역시 느려졌으면 느려졌지 빨라지지는 않았는데 자신들이 밀리는 느낌이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웅웅웅! 어느 순간 그녀의 검에서 에너지 소드가 사라지고 검의 진동음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진동을 하는 검과 부딪히는 살수들의 검은 여지없이 튕겨져 나갔다. 이에 살수들은 순간 공격을 멈추고 멍하니 셀리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부린 수작에 그들은 적잖이 당황했기 때문이다. 검에서 시작된 진동은 이내 그녀의 손을 타고 올라 온 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치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떠는 셀리나였다. 이러한 기회를 살수들이 놓칠 리 없었다. 그녀의 술수를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이 이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번쩍! 허공에 은색빛이 교차하며 검은 공간을 갈랐다. 그와 함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이 분리된 다섯 구의 시체가 바닥에 투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은 이내 시체들에게서 흘러내린 피로 흥건해졌다. 이에 노성을 발하고 달려들려던 살수들이었지만 무심하게 변한 그녀의 눈빛에 움찔하며 주춤거릴 뿐,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였다.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바람이 터져 나와 그녀를 감싼 뒤,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허나 바람 속에 갇힌 그녀는 조금도 괴로 워 보이지 않았다. 번쩍! 또 다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이에 살수들은 지레 겁을 먹고 허겁지겁 몸을 날려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 빛은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온 단순한 빛일 뿐, 그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형의 검이 아니었다. 얼마 뒤, 그것을 알게 된 살수들은 얼굴을 붉히며 그녀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때, 그녀의 입이 열려 그들은 또 다시 움찔거려야 했다. “아아~! 상쾌해!” 순간 살수들은 자신들이 왜 이렇게 되었나 하는 회의감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셀리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방금 전처럼 놀라지도 물러서지도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줄은 그들은 정말 몰랐다. 쾅! “으악!” “커헉!” 에리필의 검에서 수십의 에너지 소드가 뻗어나갔으나 그것의 대부분은 기사들에게 막히고 고작 몇 개의 에너지 소드만이 실력이 약한 병사들의 목숨을 앗는데 사용되었다. 이에 적잖이 실망한 에리필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새까맣게 모여 있는 적들 뿐. ‘이곳에서 살겠다는 것은 만용이겠지? 후우, 그나저나 셀리나는 살아 있을까?’ 에리필은 위험을 앞두고도 셀리나를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 다. 다 늙어서 사랑에 빠지다니, 그것도 일방적인 사랑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실소에는 씁쓸함이 담겨져 있었다. ‘후우, 에너지 소드로 죽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이들은 내가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으니, 아무래도 그렇게 될 거 같구나. 이럴 바에야 잠력까지 다 끌어올려 드래곤 스크류로 여기 모여 있는 고수들을 죽이는 게 황제 폐하의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웃음 지었다. 이 웃음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고수들은 흠칫했다. 그의 웃음 속에서 섬뜩한 각오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말하듯, 에리필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안 돼요!” “으잉?” “컥!” “으악!” 낯익은 음성에 에리필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운을 터트리는 것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음성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쪽에 있던 병사들이 픽픽 쓰러지며 그 사이에서 피로 목욕을 한 듯한 여인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세, 셀리나!” “왜 그리 바보 같아요?” 셀리나는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에리필이 싫지 않아 흘겨보면서도 미소 지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에리필은 그도 모르게 그녀를 와락 끌어안아버렸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에리필은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몸을 밀어내는데 오히려 셀리나의 얼굴이 ‘쩝쩝!’ 입맛을 다시는 것이 아닌가! 이에 에리필이 잠시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쳐라!” 그의 음성은 군사들 속에서 울렸는데 이런 자들의 특성은 자신은 숨어서 다른 이들에게 일을 시킨 뒤, 그 공을 가로채는 한 마디로 재수 옴 붙는 족속인 것이다. 그러나 에리필은 그런 재수 옴 붙는 족속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자신들을 노리고 사방에서 검이 찔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타앗!” “야앗!” 에리필과 셀리나는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고 공중에 몸을 띄웠다. 그러나 그곳에도 검과 창, 그리고 에너지 소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처리할게요.” 셀리나는 자신이 이미 마스터가 되었고 그로 인해 자잘하게 입은 상처도 고갈된 기도 보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에리필을 찾기 위해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한다고 많이 피로하기는 했지만 에리필만큼은 아니었기에 자신이 나서기로 한 것이다. 쌔애앵! 마치 칼날 같은 바람이 전장을 뒤엎는 듯했다. 그 바람은 셀리나의 검에서 터져 나왔으며 바람은 형체도 없이 검과 에너지 소드들을 무력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바람은 끝이 없어 땅 위에 있는 적들을 훑고 지나가 그들의 목을 따버렸다. 척! 두 사람이 바닥에 착지했으나 그 소리는 하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인합격을 연습하기라도 한 듯, 빛과 그림자가 되어 포위망에서 날뛰었다. 하지만 그와 그녀를 상대하는 적도 약자가 아닌지라 그들은 얼마 있지 않아 수세로 몰리게 되었다. 쾅쾅쾅쾅! 그들이 수세에 몰려 방어도 제대로 못하고 있을 때, 굉음이 터지며 한쪽 포위망이 뚫렸다. 그리고 삼백여 명의 올슈레이 기사단이 나타났다. 올슈레이 기사단은 포위망을 뚫고 들어오자마자 에리필과 셀리나를 가운데에 두고 큰 원 작은 원, 두겹을 형성하여 그들을 보호했다. 에리필은 이들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자신들 앞을 막고 있는 올슈레이 기사단은 그야 말로 혈인이나 다름없었고 크고 작은 상처로 뒤덮여 있음에도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삼엄한 눈빛으로 적들을 쏘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 고맙다!” 에리필은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올슈레이 기사단이 온다고 하여도 자신들의 최후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셀리나도 올슈레이 기사단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 하나 에리필의 말에 입을 뗄 수 없었다. 입을 떼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흐흐흐, 쫓아다니며 죽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모두 쳐라!” 군사들 틈에서 얼굴을 내밀며 말하는 사내는 다름 아닌 적의 총사령관이었다. 에리필 역시 그의 얼굴을 전부터 몇 번 보았기에 금세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순간 에리필은 그에게 화가 나다 못해 미칠 것만 같았다. 상대는 자신과 비슷한 무예를 가진 자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나서지도 않고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도 저렇듯 당당한 것이다. 에리필은 이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쟈크미아, 내 너를 용서치 않겠다!” “컥! 이, 이럴 수……!” 쟈크미아의 명령에 움직이려던 적들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검과 하나가 되어 날아간 에리필의 검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서는 쟈크미아의 목을 꿰뚫었다. 그리고 이미 모든 기운을 다 쓴 에리필은 그의 목을 꿰뚫은 상태에서 그와 함께 넘어졌다. 적들은 총사령관이 죽었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에리필의 목에 걸려 있는 상금과 특진만이 생각날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금과 특진을 차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먼저 에리필의 몸을 가르기 위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에리필의 행동을 눈치 챈 셀리나와 올슈레이 기사단이 몸을 날리려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에리필은 상대의 검들도 셀리나들의 움직임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이것이 죽는 자들의 보는 최후의 장면인가?’ 몸을 움직일 수는 없으나 모든 것이 너무도 느리게 다가와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것, 이것이 삶의 마지막에 보는 화면인가 보다 생각하며 에리필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어차피 한번은 죽는 거, 안타까워하다 가면 아까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을 감았을 때에도 적들의 검은 그를 향해 빛을 머금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와 중에도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이는 잘 있겠지?’ ========================================================== 후후움, 3연참입니다. 크크크크, 아마도 오늘이 가기 전에 4연참을 할 듯...크크크크 219화. 마더러스 시 전투. 4 우르릉! 콰콰콰콰콰! 쏴아아아아! 고오오오오! “모두 멈춰라!” 기운을 일으키자 뇌성이 터졌고 대기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극에 달하자 하늘에 구멍이 뚫려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서 터져 나온 기파와 절대적인 음성! 모두는 그의 말대로 모든 행동을 멈췄다. 사실 사내의 음성에 심령마저 움직일 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뇌성이 터짐에 깜짝 놀란 그들은 하늘이 진동하고 엄청난 폭우에 정신이 들다 못해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이다. 거기다 절대적인 기운과 대기마저 부르르 떠는 음성! 그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사내는 폭우에도 조금도 몸이 젖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오로라 같이 터져 나오는 빛에 의해 비는 그의 몸 근처로도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걸음을 옮기자 병사들이 자리를 비켜주기 시작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인의 장막이 좌악 갈라지는 장면은 진귀하다 못해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든 희귀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장면을 만든 사내는 무심히 그들을 지나쳐가며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뚜벅뚜벅! 일정한 박자에 절제된 몸가짐! 비로 인해 축축하게 젖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걸어갈 땅은 엄청난 기운에 의해 이미 말라 있어 그가 걸을 때에는 기분 좋은 울림을 내는 땅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그가 포위망을 열며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에게로 다가갔다. 씨익! 그는 그들을 보며 기분 좋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사내를 보는 그들 역시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가 등장했을 때부터 계속되었던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뒤, 사내의 시원스런 음성에 깨어졌다. “잘 있었나?” “대, 대장님!” “흐윽, 흑흑흑!” 그의 말 한 마디에 삼백이 넘는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 땅에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당황한 것은 공작가의 군사들이었다. 그들이 대장이라 부른다면 분명 자신들에게는 적일 것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 대장이라 부르는 자는 이 세상에서 단 두 명! 그 중에 한 명이 저기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에리필이니, 그렇단 말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가 이 자리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설은 과거의 영광이 만들어낸 것이니, 그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자리에 있었다. 다크 블루빛 머리칼에 다크 블루빛 눈. 거기다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절대적인 기도! 털썩! 적들은 사기를 잃었다.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나는 순간, 자신들이 이길 확률은 전무했다. 일당백이 아닌, 일당 몇 만인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고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항복을 하는 수밖에! “지, 진아!” “사부님!” 에리필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진은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에리필을 부르는 그의 음성에는 애절함을 넘어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 심마에 사로잡혔던 그가 아니었다. “괜찮으세요?” 진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에리필을 보며 말했다. 이에 에리필은 실제로는 별로 괜찮지는 않지만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냐? 이 사부가 괜찮지 않으면 누가 괜찮다는 말이냐?” “하하하, 그렇네요.” “녀석하고는.” 두 사제는 몇 마디 말을 섞은 뒤에야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오나 서로를 끌어안은 두 사제의 주변에는 훈훈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잠시간 회포를 풀고 있는 와중에도 적들은 그를 기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바닥에 무기를 던지고 진흙탕이 되어 버린 바닥에 무릎을 꿇는 군사들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 올슈레이 기사단의 대장인 올슈레이 진 경이십니까?” 공작가의 부사령관인 치레인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그 의 말 때문에 진은 아주 약간 기분이 상했다. 오랜 만에 느껴보는 사부의 따뜻한 품을 그 때문에 더 이상 느끼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에리필에게서 떨어져 자신을 보는 진의 눈빛에 치레인은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제국에서 가장 강한 이가 올슈레이 진이라는 말이 과연 사실이구나.’ 치레인은 자신 역시 그렇게 약한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진의 앞에 서니 어른 앞에 어린 아이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치레인은 그의 상관인 쟈크미아가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공을 남에게 뺏기기 싫어 자신이 에리필을 상대하겠다고 함에도 오히려 말리는 자였기에 넌덜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적인 마음이고 자신과 쟈크미아는 엄연히 공작가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여기 있는 여러 병사들처럼 항복한다면 자신의 가문은 공작들에 의해 멸족당할 것임을 알기에 병사들처럼 항복할 수 없었다. 이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지 않은 오천 명의 기사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자신들이 항복한다면 그 여파를 자신들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차라리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 부러운 그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의 가문이 워낙에 대단한지라 공작가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부러울 수 없는 그들이었다. 물론 올슈레이 기사단에서도 가문이 좋지 않은 기사들이 꽤 되긴 했다. 허나 그들 대부분의 가문은 오히려 공작들이 신경 쓸 정도도 되지 않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가문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기에 오천 명의 기사들은 무릎을 꿇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오?” 치레인이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진의 퉁명스런 음성이 울렸다. 치레인은 그저 음성을 들었을 뿐인데도 뭐가 그리도 찔리는지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셈이오?” “어떻게 할 셈이냐니?” “시치미 떼지 마시오. 저들처럼 우리도 부하로 만들 생각 아니오?” 치레인은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진은 이들을 자신의 부하로 만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자신은 그저 사부가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왔을 뿐인데, 저들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시오.” “예에?” 치레인은 짧게 끊어지는 진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 이상한 소리가 나와 진이 다시 한번 말해주려하자 에리필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진아, 잠시만 내 이야기를 들어라.” “예, 말씀하세요.” 에리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막으로 진과 자신 주위를 차단했다. 자신들의 대화를 치레인이 들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진아, 저들을 부하로 삼거라.” “예?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진은 에리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부가 하는 일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진이었기에 공손하게 물었다.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다. 사실 저들을 너의 부하로 만들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저들이 명목상으로나마 너의 부하가 되면 공작가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니 그들의 힘이 줄어들지 않겠느냐? 그 말은 곧 피 흘릴 자들이 줄어든다는 말이고.” 진은 에리필의 말을 들으며 깨닫는 게 많았다. 사실 저들은 어찌 보면 동 료를 죽인 원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리필은 그러한 것은 사소한 것으로 돌리고 대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야 대의와는 상관이 없다지만 이제 전쟁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진이었기에 그의 말에 크게 감동받았다.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고맙다.” “제자에게 고맙다고 하는 사부가 어딨어요?” “하하하, 그런가?” 에리필이 기막을 없애자 마지막 대화는 치레인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대화를 유추할 수 없었다. 단지 에리필이 진에게 무언가를 부탁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인데 그것은 아까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말하시오.” 치레인은 진의 시선에 상념을 접고 물었다. 그리고 씨익 웃는 진을 볼 수 있었다. 순간 온 몸을 헤집어놓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것을 입으로 토로할 수도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 제 부하가 되세요.” “…… 그럴 수는 없소!” “그래요? 그럼, 실력 행사로 하도록 하죠.” 진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치레인은 몸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진의 몸이 움직인다고 싶은 순간 최대한의 기를 주입하여 검을 휘둘렀다. 비록 스피릿 트랜스는 아니나 접점의 충격은 그에 못지않은 일격이었다. 턱! 하지만 그의 검은 진의 손에 이내 잡히어버렸고 그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 기도 전에 진이 손목을 살짝 돌려 검에 회전을 주었다. 그 순간 치레인이 잡고 있던 검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검이 회전한다 싶은 순간 그의 팔이 회전하다 어깨가 탈골했으며 회전력이 아직도 남아 있어 그의 몸이 공중에서 뺑그르르 돌다 땅에 박혔다. 쿵! 땅에 박힌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진에게 항복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명했던 오천 명의 기사들도 움직이지 못했다. 진은 그들을 한차례 주욱 훑어본 뒤, 손을 탁탁 떨며 말했다. “자 이래도 더 하시겠어요? 참고로 공작들이 당신들 가문에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못하도록 해주겠어요.” 진은 이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올슈레이 기사단원을 만들 때,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들었고 봐왔기 때문이다. 투두두둑!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제아무리 공작가가 무서워도 마스터의 고수를 손쉽게 이기는 고수를 앞에 두고 배짱을 퉁길 수 있는 이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또한 그런 고수가 자신들 가문을 지켜준다는데 어느 누가 그를 따르지 않겠는가! 진은 무릎을 꿇고 항복의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그들을 다시 한번 한차례 훑어본 뒤, 에리필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이러면 됐죠?” 조용하나 그의 음성에는 마치 칭찬을 기대하는 어린 아이의 그것이 담겨 있었다. 이에 묘한 미소를 짓는 에리필이었다. =================================================================전투는 이렇게 마무리되는군요. 후후후....근데 팔이 너무 아프군요. 몇 시부터 썼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여섯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글 썼더니만 팔이 아프네요.^^ 220화. 나를 악마로 만든 것은 너희들이다! 1 “가, 감사합니다, 은공!” 디오리스는 에리필과 함께 돌아오는 진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이 에 당황한 것은 진과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었다. “은공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디오리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진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는 사부의 동생이니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예를 차릴 필요도 없을 뿐더러 예를 차릴수록 불편한 것은 자신이기에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디오리스는 진이 에리필의 제자인 그 진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은공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니 일어나겠습니다만 은공께서는 우리 마더러스 시를 구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은공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겠지요. 가시지요, 부족하겠지만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디오리스가 진지한 눈으로 진을 보며 말을 하자 에리필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옆에 있는 셀리나는 에리필처럼 수양이 깊지 못했다. 비록 생사의 위기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마스터가 되긴 했지만 수양은 그에 비할 바가 못 되었던 것이다. “푸웃!” “세, 셀리나!” “아~! 죄송해요. 하지만 디오리스님께서 저희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지으실 표정이 떠올라서요.” 셀리나는 에리필의 당혹스런 외침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디오리스의 눈은 이미 싸늘히 식어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에리필이 셀리나에게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기에 그 정도로 해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런 그의 억눌려져 있는 감정을 읽은 셀리나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웃음을 터트린 것은 이분이 바로 에리필 경의 제자인 올슈레이 진 경이시기 때문입니다.” “…….” 디오리스는 그녀의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진과 에리필을 보았다. 그리고 에리필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았고 진의 입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안녕하셨어요? 모나코와 카렌은 잘 있죠?” “아~! 정말 자네가 그때 그 소년이란 말인가?” “네, 하지만 이제는 소년은 아니죠.” 진은 그의 말에 대답하며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어렸을 때 모습인지라 디오리스는 당혹스러움에서 깨어나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신들을 구해준 은공은 격식을 차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친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는 진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홀가분한 심정으로 전사자들과 부상자, 그리고 항복한 자들 및 피해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떠날 수 있었다. 에리필과 셀리나 등도 도우겠다고 했지만 디오리스는 그들을 가문의 저택으로 가있으라 말했다. 명분상으로는 진을 어머니께 인사시키라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배려를 알아차리지 못할 그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뒤로하고 데헤미그 저택으로 향했다. 데헤미그 가문의 환대는 진을 어리둥절케 했다. 그리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디오리스가 다시 한번 진의 영웅담을 말하자 모두는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보게 되어 진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시선만 보낸다면 피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렌 같은 경우에는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 그러하듯 영웅을 존경하고 영웅이 되기를 소망하는데 그 영웅이 실제로 눈앞에 있으니 진을 가만히 놓아둘 리 없었던 것이다. 진은 처음 몇 시간은 카렌을 상대해줬었다. 하지만 파상적인 카렌의 질문은 그의 정신을 고갈시키기 충분했다. 그래서 진은 카렌에게 핑계를 댄 후, 카렌이 나타나기만 하면 도망 다녔다. 그렇게 그가 도망을 치다 후원 쪽으로 가는데 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에 뭔가가 떠올랐는지 씨익 웃으며 몸의 기척을 감추며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진이었다. “할 말이라는 게 뭔가요?” 여인의 음성은 얼핏 들으면 싸늘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자세히 들어보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내는 그러한 것을 잡아챌 정도로 여유가 있지 못했다. “그, 그게 말이지.” 사내는 떠듬떠듬 거렸지만 말이란 것을 하긴 했다. 하지만 정작 해야 할 말 근처는 가지도 못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여인은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터 이런 자리는 몇 번이나 마련되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엉뚱한 말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내의 모습에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차라리 자신이 남자가 되고 고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허나 그럴 수는 없었고 사내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도 알고 있으니 안타까워도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기다릴 뿐이었다. 사내는 전과 같은 패턴이 진행되자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매사를 자신감 있게 처리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연애문제는 젬병이니…….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녀와의 나이 차가 심할 정도로 많이 나긴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안 지금,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온 몸에 피칠을 하면서도 나를 구하러 온 여인을 그 누가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사내는 오늘 보여준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자 또 다시 감동이 온 몸을 헤집어놓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천천히 열리는 입. “나와 결혼해주십시오.” 사내의 중후한 목소리가 어둠이 짙게 깔린 후원을 울리자 여인은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며 작게 울음을 터트린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흐윽, 조, 좋아요.” 이 말들이 이렇게 하기 힘들었을까? 그들의 대화를 훔쳐들었던 진은 피식 웃으며 후원을 떠났다. 그러며 속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사부님 행복하셔야 해요!’ 3일 후, 리오스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 위기감을 느낀 사람은 다름 아닌 모나코였다. ‘어째서 진과 같이 다니는 여자들은 저토록 아름다울까?’ 그녀는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몇 년 전에 봤던 샤넬리 역시 자신보다 훨씬 아름다웠는데 이번에 찾아온 두 여인 역시 자신보다 훨씬 아름다웠던 것이다. 자신 역시 이곳 마더러스 시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라 불리는데 이 여인들 앞에 서니 이제껏 얻었던 자신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안젤리나와 레이카는 자신들을 살펴보는 모나코를 보며 그녀 역시 진을 사랑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여인의 본능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모나코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전쟁에 지친 마더러스 시가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에리필은 셀리나와 서로 사랑하며 전쟁이 끝난 뒤에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가장 놀란 것은 그의 어머니인 제시네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사랑이 단순한 불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고 두 사람을 축복해주었다. 한편 진은 카렌에게 몇 가지 기법을 가르쳐주는 한편 리오스와 심도 깊은 대화를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여인들 사이에서 암투 아닌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리오스는 워낙에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녀들의 싸움을 어느 정도 눈치 챘고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진은 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구나. 나처럼 한 여자에게만 정을 줄 수는 없는 건가?’ 리오스는 진에 대해 생각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프린세리아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너무도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녀를 만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각자의 문제에 몰두하며 보내기를 며칠! 두 여인은 모나코의 은근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예전 왈가닥 샤넬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두 여인은 공동의 적을 맞게 되어 어느 정도 친해진 상태였다. 그 적이 생각 외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외모만 본다면 자신들이 낫다고 생각되지만 사람의 좋아하는 감정은 단순히 외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두 여인은 어느새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었다. “이렇게 대화하는 것은 처음인 듯 하네요.” 모나코는 두 여인이 다가와 먼저 말을 하자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평온한 분위기로 두 여인을 맞아들였다. “그런 거 같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말의 내용만 보자면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그녀가 말하자 너무도 부드러웠고 절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려 했다. 이에 경직된 얼굴로 변한 두 여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레이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솔직하게 말해요. 진을 좋아하죠?” “…… 좋아해요.” 모나코는 그녀의 직선적인 물음에 당황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그녀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왔다는 것을 은연중에 눈치 챘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는 그녀로선 진심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그거 알고 있나요? 진은 바로 저의 남편이에요.” 안젤리나는 그녀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을 하자 당황해 순간 말을 더듬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말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당황한 것은 모나코와 레이카였다. 모나코는 진이 벌써 결혼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레이카는 이 말을 함으로써 자신 역시 모나코와 다를 바 없는 입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안젤리나는 이 말 하나로 자신은 진의 부인이니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는 뜻을 표명했던 것이다. “너, 너!” 레이카는 설마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몰라 손가락으로 안젤리나를 가리키며 흥분했다. 그러나 모나코는 금세 안색을 회복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진을 혼자서 차지할 생각인가요?” “…….” 이번에는 안젤리나가 할 말을 잃었다. 너무도 공손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이렇듯 직선적인 말을 하는 그녀가 어떤 의미론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레이카의 안색이 환해지며 모나코의 편에 섰다.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장면이며 여인들의 암투가 그 어떠한 전쟁보다도 치열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맞아! 너도 말했잖아. 진은 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그래서 모나코 양한테도 정을 줄까봐 두렵다고 했잖아? 그리고 진이 정을 준 여자가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 만약 그녀들과 만났을 때도 먼저 결혼했다고 그녀들과 진의 관계를 부정할 생각이야?” “…… 후우. 하지만 레이카 너와 모나코 양은 적어도 그이의 마음속에 있 는 여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 안젤리나는 그녀들의 공세에 순간 뒤로 밀렸지만 강력한 역공으로 그녀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하지만 천사 같이 착한 얼굴로 정곡을 잘 찌르는 모나코의 일격이 시작되었다. “진이 정을 많이 준다면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가능성은 있다는 말이군요.” “맞아! 그렇단 말이네.” 안젤리나는 모나코의 말에 맞장구치는 레이카가 더 얄미워보였다. 차마 모나코를 얄미워할 수는 없기에 레이카에게 괜히 화가 나는 안젤리나였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에 안젤리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화를 낼 수 없는 얼굴과 분위기. 그이라면 백이면 백 넘어갈 거야.’ 이후로도 많은 말이 오갔지만 결국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안젤리나는 괜히 진에게 화가 났다. “당신은 왜 그리 정이 많은 거예요!” “어? 내가 왜?” “흥!” 진은 카렌을 가르치다 갑자기 들이닥쳐 화를 내고 돌아가는 안젤리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를 리오스와 어린 카렌이 혀를 차며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들의 암투는 이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진은 특유의 무관심 덕분에 그녀들의 싸움을 알지 못했다. 거기에는 리오스와 카렌 등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진이 나서면 일이 더 틀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인들의 암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일행이 황성 레우카스 성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저도 갈래요.” “그래, 잘 갔다 오너라.” “안 돼요!” 모나코가 일행을 따라갈 의사를 밝히자 데헤미그 가문 사람들은 환영했고 안젤리나는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의 편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레이카도 어느새 모나코의 편에 섰기에 이제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난 그이의 아내란 말이야!’ 이런 생각이 그녀를 더욱 서글프게 했지만 그녀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역시나 사랑에 빠진 여자는 독한 듯 했다. ================================================================== 후우,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그런지...쩝...머리가 깨질 거 같네요. 그렇다 보니 글이 무진장 안 써져서...이렇듯 오래 걸렸다는....크흑...참고로 어제밤부터 잔 것은 대략 15~16시간 정도 잔 거 같군요. 쿨럭...그날 밤을 샜기 때문에...라는 변명을 해보는 황보세준이었습니다. 221화. 나를 악마로 만든 것은 너희들이다! 2 루아! 온 우주를 창조한 창조신 루미에가 피조물들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흘린 눈물! 신도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일반 신도들이 가지고 다니는 경전에는 “너무도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이여 내가 흘린 루아로 너희들을 축복할지어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허나 각 신전의 대사제들은 위에서부터 내려온 또 다른 경전을 통해 루아의 또 다른 뜻을 알고 있었다. 일반 신도들이 알고 있는 자애로운 루미에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그 경전을 통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루아를 흘리게 만드는 자, 지옥의 겁화에서 영원토록 눈물을 흘릴 지어 다. 사실 일반 신도들이 아는 구절과 대사제들이 아는 구절은 본래는 하나였다고 한다. 인간이 정한 선과 악이라는 것조차 초월한 존재가 바로 루미에이기 때문에 상반된 듯한 두 구절이 그의 앞에서는 상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믿고 있는 것은 선과 악을 구분 짓고 그것으로 나름의 가치와 정의를 세우는 인간들이었기에 루미에는 하나였던 구절을 두 개로 나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두 개의 구절로 나뉜 경위였다. 루아는 바로 루미에가 내리는 벌이다. 그리고 그것은 십이 루아에 의해 집행된다. 십이 루아! 루미에가 정한 법칙을 위배하는 자들을 루미에의 의지에 따라 처단하는 자들이 바로 십이 루아다. 그 십이 루아 모두가 지금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환영해주니 황송해서 이를 어쩌나?” 극이 이죽거리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바로 앞에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수십의 시커먼 그림자가 쏜살 같이 쇄도해 왔다. “어딧!” 극은 동료들이 나설까봐 슬쩍 한발 나서며 짧게 외쳤다. 십일 루아는 “그 놈의 급한 성격 또 나오네!”하며 혀를 찼지만 누구 하나 그를 도우려는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이에 극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얼마나 버티는 가 볼까?” 극은 말을 하며 자신의 허리를 노리고 쇄도해오는 검은 무시하고 상대를 향해 검을 뻗었다. 푸욱! 상대의 검은 아직 반도 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검은 이미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 회수되는가 싶더니 위쪽을 향해 이동했다. 휘리릭! 번쩍! 성의 없이 검을 휘두르는가 싶더니 밝은 섬광이 터졌고 그의 정수리를 쪼개려 공중에 떠 있던 상대는 유독 그에게만 시간이 멈춰진 듯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는 그 동작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러나 극의 검은 이미 다른 상대의 생명을 끊어놓고 있었다. 극의 검이 여섯 번째 목표물의 목을 댕강 자를 때 처음 그에게 심장이 꿰뚫린 자의 몸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허공에 떠있던 자가 폭발을 일으켰으며 극의 검이 쓰다듬어준 순서대로 폭음을 일으켰다. 그러나 폭발의 영향권 안에는 이미 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후방에 있던 자의 허리를 양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뒤, 아니 얼마 뒤라고 해봐야 불과 0.3초 정도 지났을 때 허리가 양단된 자의 몸이 부글부글 끓더니 그의 몸이 쩌적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 피들이 미처 다 나오기도 전에 폭발이 터지며 허공에 붉은 수를 그리던 피들이 기화되며 사방 4,5 라키르 안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그러나 극의 몸은 이미 그의 동료들 곁으로 가 있는 상태였다.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몸으로. “휴우, 이거 멀리서 보기는 했지만 너무 지독한데?” 극은 이들이 미처 자폭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극쾌의 검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폭발하는 것을 보고 안 그래도 모여 있는 눈, 코, 입을 더욱 한곳으로 모아 우스깡스런 모습이 되었지만 십이 루아 중 누구 하나 웃는 이가 없었다. 그들 앞에 펼쳐져 있는 지옥도에 그들은 분노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쓸어버려야겠군.” 나직하나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는 무의 말에 모두는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이미 바위가 되어 있었다. 이에 십일 루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그의 음성을 들은 것이기에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의 동료가 얼마나 말수가 적은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고개를 돌려 앞에 펼쳐져 있는 지옥도를 보려는데 창의 음성이 들렸다. “가자!” 창은 평소에는 말이 많으면서도 이럴 때만은 말이 짧아졌는데 이번의 짧고 굵은 말에는 약간은 의도가 깔려있는 듯했다. 허나 무의 경우처럼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동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에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낀 창은 우거지상을 했지만 일행은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십이 루아의 이동속도는 더뎠다. 그것은 일행을 이끌고 있는 민이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멈칫거렸기 때문이다. 결국 현이 민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이상한 거라도 감지한 거야?” 민은 현의 음성을 듣고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성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의 존재가 희미해졌어,” “그럼, 그는 이미 도망쳤다는 말이야?” 극은 그 급한 성격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민의 입이 다시 열리려는 것을 막으며 물었다. 이는 분명 상당히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그들 간에 보낸 시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동료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요, 각 개성을 존중하고 받아주는 자세가 그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이런 극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 하나 없었다. 어쨌든 민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가 도망쳤는지는 알 수 없어. 그의 냄새와 너무도 흡사한 냄새가 적어도 세 군데 이상에서 잡히고 있거든.” “으음…… 어떻게 하지, 현?” 민의 말에 한참이나 고민한 창이 한 말이었다. 이에 모두는 ‘역시!’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시선과 부딪히는 순간 거짓말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래 보여도 창은 십이 루아 중, 무력만 따진다면 무와 함께 1,2위를 다투는 강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강하다고 해서 시선을 피할 십일 루아 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두려운 것은 짧은 다리를 이용해 쉬지 않고 따라붙으며 촉새처럼 재잘대는 그의 성격이었다. 한 시가 날아갈 만한 폭발이 옆에서 터져도 꿈쩍도 하지 않을 무조차 학을 뗄 정도니 그들이 이러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들도 어찌됐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는 창의 시선을 피하다 다시 현에게로 돌렸다. 단순한 것으로 따져도 일등인 창의 관심을 돌리려면 현의 입이 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현이었기에 그의 입은 동료들의 시선을 받는 것과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아마도 민이 말한 세 군데 이상이라는 말은, 일단 세 군데서 감지되는 냄새가 그와 가장 유사하다는 의미겠지, 민아?” 현이 말을 하다 민을 보며 묻자 그의 고개가 서둘러 끄덕여졌다. 이를 본 현은 일행 중 유일하게 안경을 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듯 안경테를 살짝 들어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현과 같은 고수가 시력이 안 좋아 안경을 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기에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안경은 학자가 꿈이었던 현의 아이템임이 틀림없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 조로 나뉘어 민이 감지한 세 곳을 조사해보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세 조라면 한 조에 네 명이서 활동한다는 말인데 만약 우리가 조사할 세 곳 중 그가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그때, 전투를 미루어 보아 그는 창과 무를 포함한 우리들 반 이상인 여섯 명은 달려들어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거기다 그를 쓰러뜨리려면 우리들 모두가 덤벼야 할 정도로 강자인데 그런 그를 네 명으로 구성된 한조가 상대할 수 있을까?” 하얀 머리칼에 차가운 인상의 령의 말에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령, 네 말대로 그는 신탁이 내려질 만큼 강해. 더구나 그는 그 전투를 치루면서 엄청나게 강해졌지. 그런 그의 실력은 솔직히 말해 지금의 나로서는 추측할 수가 없어. 령, 네가 말한 대로 여섯 명이라면 그의 발을 붙잡을 수는 있을 거야. 물론 전투가 중반 정도 되었을 때 본 그의 전투력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그는 앞서도 말했듯이 그들과 전투를 치루면서 엄청난 속도로 강해졌어. 우리들 모두가 그에게 덤빈다고 해서 이긴다고 보장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지금의 그라면 우리는 절대지지 않아!” “무슨 말이야?” 령은 현이 씨익 웃으며 말을 중간에 끊자 감질이 오르는지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씨익 웃은 현이 안경테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는 분명 강해! 그런 그라면 우리들이 이 성에 오기 전부터 알았을 거야. 하지만 그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 그의 부하만 세 차례 보냈을 뿐이야. 그것도 허접한 쓰레기 같은 녀석들로만 말이야. 그것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래, 둘 중의 하나야. 아까 극의 말처럼 그가 이미 도망을 갔거나, 도망은 치지 않았으나 모종의 이유 때문에 우리들의 힘이 분산되기를 기다리는 것!” 령이 맞장구를 쳐주자 힘을 얻었는지 현의 말은 탄력을 받아 촉새가 되었을 때의 창의 속도에 버금가는 빠르기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는 다음 말을 잇기 위에 한 템포 쉬고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극이 때문에 탄력 받은 흐름이 깨어졌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모종의 이유라는 게 뭔 거 같아?” “…… 휴우, 그 모종의 이유라는 건 물론 내 짐작이지만 그가 부상을 당해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그리고 이것 역시 위에 생각과 비슷하지만 그는 그들과 전투를 치루면서 갑작스럽게 커다란 힘을 얻었지만 아직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 어쨌든 내 생각은 이래. 그리고 만약 그가 극이 네 말대로 도망을 갔다면 위에 말한 두 이유 중 하나 때문일 거야. 결국 그가 어떤 행동을 했든 그의 힘은 크게 약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이야.” “결국 네 말은 힘이 약해진 그라면 정신감응으로 위치를 가르쳐주고 나머 지 일행이 합류하는 시간 정도는 벌 수 있다는 말이지?” 지금껏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신이 현의 말을 조합해 결론을 내리자 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보다도 더 학자풍의 분위기를 풍기는 신, 그러나 정작 그는 이런 자신의 외모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쓴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누구는 그렇게 생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쳇!’ 현은 이미 수십 년 전에 타개하신 부모님이 괜스레 원망스러워졌지만 어찌하겠는가? 그의 말마따나 타고나기를 그리 타고난 것을. 그가 쓸데없는 상념에 빠지자 십일 루아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세 개조를 나누었고 그들은 민이 가르쳐준 곳으로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갔다. 물론 머리 따로 몸 따로나 현 역시 무가 이끄는 조에 속해서 번개가 무색할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 삼일만인가요? 으음, 일단 변명을 해야겠네요.^^ 하드가 터졌었습니다. 삼일전쯤일겁니다. 다음화를 쓰다가 날아갔죠. 쿨럭, 그리고 다음날 의욕상실로 뒹굴뒹굴, 그리고 어제 친구넘이 군대간다고 만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자려는데 독자님들이 눈에 밟혀서 차마 잘 수가 없어서....이렇게 글을 씁니다. 쿨럭!!! 이 정도의 변명이라면 용서가 될까요? 쿨럭!!! 222화. 나를 악마로 만든 것은 너희들이다! 3 성의 동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로 향하는 4인이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짧고 굵은 녀석 하나와 유약하나 범접키 힘든 고고함을 지닌 자 하나, 그리고 덩치가 산만한 자 하나와 마지막으로 호리호리한 몸매에 얼핏 보면 여자 같은 외모를 지닌 자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이 이리로 가면 되는 거 맞지?” 짧고 굵은 녀석, 한 마디로 말해 창이 코너를 돌며 앞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뒤에 따라 오던 신이 대답했다. “맞아.” 짧으나 명쾌한 한 마디에 창과 일행은 속도를 더 높였다. 얼마 뒤, 낮은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은 건물 앞에 도착한 4인은 허름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건물 안에서 새어나오는 음습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끈적끈적한 시선이 주는 불쾌감! 마치 누군가가 자신들을 해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평소 성격은 온유한 편이나 덩치에 걸맞게 한번 폭발하면 아무도 감당 못하는 칸이 괴성을 지르며 건물의 철문으로 쇄도했다. “크아악!” 콰아~앙! 괴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폭음이 터졌고 칸의 어깨에 부딪혀 우그러지고 튕겨져 나간 철문이 검은 음영 안에서 얼핏 보였다. 그리고 철문이 사라지자 음습한 기운은 더욱더 강해져 일행은 절로 불쾌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때, 여자가 아닐까 하는 외모를 가진 양이 앞으로 한발 나서며 허공에다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을 찍자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루아들 주위를 감싸는 막이 생겼다. 그제야 루아들을 엄습하던 불쾌한 기분이 사라졌다. “고마워!” 양은 창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어깨를 툭툭 두들기자 평소 수줍은 성격답게 얼굴을 붉히며 나왔던 발을 뒤로 물리며 일행의 제일 뒤로 돌아갔다. 이에 모두는 피식 웃으며 창을 필두로 안으로 들어갔다. “흐읍!” 온 몸을 해부하는 듯한 시선은 양이 펼친 막에 의해 차단되었지만 속에 있는 모두 게워낼 정도로 지독한 악취는 여과 없이 그들의 코로 들어왔다. 그리고 네 사람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이런 망할!” 칸은 성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기분이 좋지 못했는데 건물 안의 참상을 보는 순간 눈이 뒤집어졌다. 건물 안에는 인륜을 저버린 자들의 만행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 안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그러나 이 정도 어둠으로는 그들의 시야를 막을 수 없었고 팔 다리가 분해 되어 여기저기 위에 던져져 있고 필요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내장들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또한 안쪽 벽에는 팔, 다리, 혹은 배가 갈라지거나 머리가 없는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어 마치 이곳이 시체처리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험실 양쪽의 붉은 액체가 담긴 커다란 병을 보며 이곳이 단순한 시체처리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다란 병 안에는 배가 갈라져 있고 그 안에 폭탄 비슷한 것이 설치되어 있는 실험체들이 여럿 있었다. 거기다 더욱 역겨운 것은 붉은 액체가 바로 인간의 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거기다 비릿한 피와 함께 맡아지는 악취! 분명 피에다 무언가를 섞은 듯했다. 이러한 악취는 큰 병 안으로 공기를 투입하기 위해 연결된 가느다란 호수를 통해 전해졌다. “제기랄!” 칸은 피가 큰 병 안에 있는 피가 부글부글 끓으며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몬스터의 사지를 인간의 몸에 붙인 곳의 상처가 아무는 것도 보였다. 한 마디로 이들은 인간의 몸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뜯어 고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입만 아플 뿐! 고오오오! 누가 먼저할 것 없이 그들은 기운을 개방했다. 그때였다. 이층 천장이 무너지면서 백여 명의 실험체들이 그들을 노리고 떨어졌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껏 상대했던 인간형 실험체가 아니라 얼굴만 인간이지 몸은 영락없는 몬스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바닥으로 떨어지며 4인을 공격하는 그들의 속도가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실험체들이 상대하는 자는 루미에의 집행자인 루아들이었다. “내 오늘 천륜마저 저버린 너희들을 용서치 않겠다.” 창은 영웅소설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진지하게 말하며 허공에다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맨 처음 떨어졌던 실험체들의 몸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그들 사지를 차지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팔과 다리가 폭발을 동반한 채 마치 암기처럼 창들을 노렸다. 쾅쾅쾅쾅! 쌔애액! 폭발의 충격은 창의 검에서 뿜어진 기운을 해소시켰고 그들의 팔과 다리는 비수가 되어 창을 노렸다. 그리고 비수는 이내 창을 꿰뚫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수십의 팔과 다리에 꿰뚫린 창이 스르르 사라지며 그것들은 공연히 바닥만 뚫었기 때문이다. 실험체들은 창이 갑자기 사라졌음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묵묵히 공격만 하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바닥에 닿지 않은 관계로 머리에 심겨진 제 2의 전술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창이 한발 빨랐다. 번쩍! 섬광이 터졌다. 그리고 그 섬광은 이내 허공에 떠 있는 수십의 실험체들 을 덮어버렸고 스르륵 녹는 실험체들이 작열하는 빛 속에서 얼핏 보였다. 잠시 후, 소멸한 실험체들이 있던 허공에서 창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는 천천히 땅으로 착지했다. “이런 큰 기술이 아니면 저들이 자폭하는 것을 막지 못하겠더라.”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창은 열심히 떠들었다. 자기 딴에는 혼자서 처리한 것이 끝내 미안한 듯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적은 너무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담 이번에는 내가 나서야 될 거 같군.” 이러한 상황을 한눈에 꿰뚫고 있는 신이 한발 나서며 손을 하늘을 향해 들 었다. 그리고 두 손을 교차해가며 커다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의 손은 하늘을 향해 그저 펼쳐져 있었다. 엄청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손이 딱 멈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었고 너무도 빨라 움직이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의 손은 허공을 지배했고 그가 지배한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 더니 푸르른 구가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을 신은 천장을 향해 밀어 올렸다. 쿠쿠쿠쿠쿠쿠! “크악!” “컥!” 파파파파파팍! 쾅쾅쾅쾅쾅쾅! 푸른 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총 5층 건물이었던 곳이 1층을 제외한 모든 곳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기 위해 숨어 있던 3,4,5층에 있던 실험체들 수백은 단말마의 비명만 지르고 소멸해버렸다. 이렇듯 가공한 신의 능력이지만 모두의 얼굴은 당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연락이 없나요?” 양은 나이도 비슷하건만 매번 존댓말을 썼다. 그리고 이번에도 존댓말을 쓰며 창에게 물었다. 창은 양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으며 혹시 다른 곳들도 이곳과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뒤처리는 칸 네가 해!” “맡겨만 줘!” 이곳에 그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이곳을 그냥 방치할 생각이 없기에 창은 칸에게 명령했고 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나가고 칸이 뒤를 슬쩍 돌아보며 손을 한번 휘젓자 뚜껑이 날아간 건물이 폭삭 주저 앉아버리며 폭음을 터트렸다. 타일리는 이곳에 온 존재들이 생각 외로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잘해봐야 양패구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도망갈 것인가, 아님 자신의 성을 침입한 자들을 처단하고 장렬히 전사할 것인가? 이 둘을 가지고 타일리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자신의 성으로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으잉? 4명 뿐?’ 그랬다. 그가 느끼기로는 지금 성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은 단 4명뿐이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그는 감각을 열어 나머지 8명을 찾아봤다. 그리고 씨익 미소 짓는 타일리였다. ‘4명은 동편 실험실로 가고 있고 또 4명은 서편 실험실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몸을 일으키는 타일리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민아, 저기 보이는 큰 성이 아니었어?” 성은 십이 루아들 중 민과 가장 친한 사이답게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민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다 천천히 멈추었다. 그리고 현을 잠시 바라보았는데, 대개 이런 설명은 현이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은 자신들 대화에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이에 ‘충격이 심했구나!’하며 동정어린 표정을 지어준 민이 가히 성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건축물과 그 옆의 3층 건물을 번갈아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이곳의 주인이라면 저 성에 살아야 하는 곳이 맞을 거야. 하지만 저곳에서는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리 강렬하진 않았어. 오히려 그 옆 건물에서 강렬한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하여튼 그래.” “그래, 난 널 믿어.” “고마워.” 성은 민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수용했다. 사실 민의 말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물은 것인지라 깊게 파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민과 성의 대화가 끝나자 무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민과 성, 그리고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이 따랐다. 숨 몇 번 들이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들이 가고 있는 건물이 터짐과 동시에 그 안에서 거대한 흑룡이 튀어나왔다. 그그그그그! 흑룡의 등장에 대지가 들끓기 시작했고 일행은 경각심을 가지고 예리한 눈으로 흑룡을 노려보았다. “민의 예감이 맞았군.” 흑룡의 등장에 정신을 차린 것은 다름 아닌 현이었다. 그런 현을 보며 피식 웃던 무가 뭔가를 감지한 듯, 안색을 굳히며 그답지 않게 다급한 음성을 터트렸다. “온다!” 파팍! 파팍! 파르르! 흑룡의 입에서 검은 구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구는 공간을 건너뛰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거리를 좁히는데 그 속도가 가히 엄청났다. 그리고 4인의 루아들을 향해 날아오던 검은 구가 그들 앞에 육박했을 때, 무의 검이 움직이는 것에 맞추듯 검은 구가 심하게 흔들리다 ‘팍!’하는 소음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어딜!” 무는 잠시간 검은 구의 위치를 놓쳤지만 이내 감각을 끌어올려 좌측을 향해 검은 휘둘렀다. 서걱! 검은 구는 신기하게도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3인의 루아들은 놀라지 않 았다. 무의 검술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기에 놀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 그들은 검은 구가 그랬듯이 공간을 격하고 날아온 흑룡을 상대하 기 위해 기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그들 모두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대기가 심하게 날뛰었고 그들 주변의 땅이 ‘퍼퍽!’하는 소음을 일으키며 수 라키르나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으니 그들은 지금 허공에 떠있는 상태였다. “간다!” 무의 외침에 맞춰 루아들은 바로 앞까지 육박한 흑룡에게 전력을 다한 공 격을 퍼부었다. 무의 검은 강인했으며 현의 검은 정확했다. 또한 성의 검은 예리했으며 민의 검은 자유로웠다. 번쩍! 무,현,성,민 네 사람의 검이 하나가 되었고 그것은 빛이 되었다. 그 빛은 각자의 빛을 담고 있었고 루미에가 창조한 신의 아들들의 속성의 빛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빛이 되었다. 태양신 벨의 빛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빛이 아니라 바로 태고의 빛이자 어둠 과 하나였던 빛이 그들의 검에서 쏘아져나갔다. 무음! 무변!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들의 공격은 자연을 놀라게 하지 도 않았으며 자연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들의 적인 흑룡만 놀랄 뿐이었다. 한편 흑룡은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 모든 기운을 끌어 모아 지옥의 겁화로 그들을 태워 죽이려 했다. 그런데 그들의 공격이 의외로 위력적이자 흑룡은 적잖이 당황했다. 허나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삐이잉! 흑룡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검은 불꽃이 흑룡의 입을 거쳐 밖으로 터져나가며 루미에가 창조한 세계를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아울러 루미에의 뜻을 따르는 자들 역시 태워버리기 위해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태워버리며 쏘아져나갔다. 4인의 루아들이 만든 자연에 순응하는 공격! 흑룡이 만든 자연에 역행하는 공격! 두 개의 상반된 공격이 부딪혔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충격파도 나지 않았다. 이것은 4인의 루아들의 기운의 특이함 때문인데, 흑룡은 이를 괴이하게 여겼으나 이내 전투에 집중하고 모든 기운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오오! 순간 흑룡의 몸이 두 배 정도 더 커져 뒤에 있는 성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커다랗게 변한 몸만큼 4인의 루아들을 압박하는 검은 불꽃의 위력도 세졌다. 그때였다. “속았다!” 갑자기 무가 외치며 앞을 가리키고 있던 검을 회수해 좌측을 향해 찔러 넣었다. 푸욱! 그러나 자신의 검은 허공을 찔렀고 상대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은 이런 그의 모습에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무도 인간이며 심장이 찔렸으면 죽는 것이 당연한데 이런 그들의 태도는 무를 당혹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무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동료들의 표정이 아니라, 상대를 격살하는 것이기 때 문이다. 덥썩! 한 손은 심장을 가른 검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은 상대의 목을 자르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무는 그 순간 타일리의 비웃는 듯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제기랄! 이렇게 끝나는 건가?’ 무는 절망감에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무가 앞에 있는 사내가 아닌 우측에 있는 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베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성은 이내 스르륵 흩어졌다. 이에 놀란 무는 하얗게 탈색된 안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 “하.하.하!” ‘당했다. 당해도 이렇게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 상대가 환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방심했다.’ 무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을 보니 자신들을 위협했던 흑룡도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환상이며 무엇이 진실인가?’ 무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베었던 성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질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는 성은 이미 자신이 아는 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환상이었는지 그리고 언제 동료들을 쓰러뜨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왜 자신을 살려두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상념에 빠져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편 타일리는 본래 계획을 수정하여 성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다. 아니, 치료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렇게 부상당한 상태에서 그들이 쫓아와 조우하면 그에게 돌아올 것은 죽음 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은 듯이 달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어딘가 정상이 아닌 듯했다. 등의 상처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몸은 움직일 때마다 떨리고 있었다. 추워서 떠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고통스러워 그 고통을 참기 위해 떠는 듯 보였다. 그것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하는 그의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운신을 하기에도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앞으로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둠이 내려앉고 더 이상 흘릴 피도 없어졌을 무렵 타일리는 달리다 그만 쓰러져버렸다. 털썩! “크흑! 으아악!” 길가에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 밑이 공교롭게도 비탈길인지라 그는 넘어진 후, 이번에는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그렇다 보니 갈라진 등으로 흙 등이 들어가거나 삐죽 튀어나온 돌에 부딪혔다. 덕분에 그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헉헉헉!” 어느새 비탈길을 다 내려온 그는 대(大)자로 누워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는 놀란 가슴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환상까지 자를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을 이어가다 타일리는 마치 바위를 연상시키는 무를 떠올렸고 이내 진저리를 치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허나,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처음 보았을 때부터 시작해서 모든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처음 그의 인상은 분명 강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을 알고 힘으로 부딪힌다면 속전속결로 끝내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일리는 처음부터 환술을 썼었다. 하루에 단 세 번만 쓸 수 있는 환술! 그것을 타일리는 사용한 것이다. 그도 처음에는 환술에 속는 듯 했다. 환술로 만든 흑룡에 놀라 위력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접근했었다. 그런데 가자기 그가 자신 쪽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만약 여기서 피하다 기파가 흘러나가 버린다면 저들 역시 눈치를 챌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타일리는 또 다시 환술 위에 환술을 걸었다. 무의 심장을 검으로 찌르는 환술을! 그리고 타일리는 그 틈에 세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환술 위에 환술을 걸면 미약한 기파 정도는 감지할 수 없을 것임을 타일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 무가 돌연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그때 자신이 했던 생각은 이 녀석도 혹시 사방신들처럼 환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처음부터 간파했어야 옳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타일리는 그의 검에 베이기도 전, 환술로 또 다시 몸을 숨겼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 그의 검보다 자신의 환술이 빨랐으며 운신이 더 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술이 검에 베이며 등에 커다란 상처가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자꾸만 벌어지고 있었다. 환술에서 베어졌기에 현실에서는 고칠 수 없는 것인지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상처는 그의 능력으로도 아물지 않았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렇다. 죽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사방신 애송이들에게 복수도 못했고 얼마 전, 그놈들에게도 복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는 다면 개죽음도 이런 개죽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벌어진 상처는 아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언제 들어왔는지 검을 통해 들어온 신성한 기운에 그의 몸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싫었다. 그때였다. 우웅웅웅!· 무의 검에 담긴 신성한 기운이 타일리의 뇌로 들어갔고 그의 뇌를 감싸고 있던 암흑의 힘과 부딪히며 공명음을 일으켰다. “으아아아악!” 타일리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렇다 보니 누워있는 상태에서 머리를 감싸 쥐며 데굴데굴 굴렀다. 이번에는 머리를 울리는 고통이 너무도 대단한지라 등의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얼마 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타일리가 믿어지지 않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헉헉헉, 살아 있는 건가?” 타일리는 자신의 얼굴을 꼬집어보았다. 방금 전, 자신은 의식이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은 죽음으로 받아들여졌기에 자신이 살아있다는데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타일리는 정신을 수습하자 또 다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타일리는 살고 싶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 무슨 일을 해서라도 살고 싶었다! -살고 싶은가? 힘을 주겠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한 음성이 울렸다. 그런데 그 음성에는 삶과 힘에 대한 욕망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니라 다를까, 타일리의 눈이 몽롱해지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악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삶과 힘을 것이다. 푸슉! 타일리의 머리에서 울린 음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타일리의 몸이 그 자리 에서 사라졌다. 제국의 지붕 타클라마가니아 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한 벨카스트 산에 만들어진 공동 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검은 기체들이 뭉치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는 바로 타일리였다. 타일리는 천천히 공동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동의 끝에 있는 검은 호수를 말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형은 내가 이 힘을 얻는 것을 두려워했었지. 순수한 암흑의 힘을 얻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형은 나의 힘을 봉인하고, 내 기억도 조작했었지. 형은 자기가 나보다 강하다면 나를 말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깐. 그러나 형은 괜한 일을 한 거야. 형이 어떻게 하든 나는 이 힘을 얻을 것이고 그 힘으로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갈 거야. 그것이 내가 악마가 되는 길이라도 말이지.’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타일리는 심호흡을 한 후, 검은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검은 호수가 타일리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후일, 검은 호수는 타일리에게 집어삼켜질 것이다. 창은 매우 화가 났다. 타일리는 현의 예상처럼 셋 중 한곳에 있었다. 그런데 현의 예상이 틀렸다. 그는 네 사람으론 막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에게 이미 세 명이 죽었고 한 사람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창은 리더답게 상황을 정리하고 타일리가 있던 성을 이 땅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민이 죽었지만 그들은 추적하는 기술이 대단했기에 타일리의 흔적을 쫓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가 증발한 것이다. 사막을 거쳐 작은 동산아래까지 이어진 흔적이 갑자기 끊긴 것이다. 그리고 모두는 허무한 눈만 가지게 되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모두의 씁쓸한 가슴을 대신해서 풀어주듯 창이 대소를 터트렸다. 그런 그를 말없이 쳐다보던 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복수하겠다!” 죽은 민과 현, 그리고 성과 말하고 있는 무를 제외한 8인의 루아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 에공....이번 화는 한글로 자그마치 8페이지나 됩니다. 쿨럭...쓰다보니...그만큼 썼군요. 이 화만 대략 5시간 넘게 쓴 거 같은데....크흑...진도가 안 나갑니다. 머리도 아프고..ㅋㅋㅋ 자, 이제 진이 나옵니다. 푸하하하...그리고 샤넬리도 나오고요. 자,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여인들의 암투!!!!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p.s. 이벤트 참여합시다. 223화. 잠에서 깨어나는 샤넬리. 1 진의 눈치는 어렸을 때부터 단련되어 그의 사부인 에리필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여인들의 암투를 모를 리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진은 그녀들에게 자신이 그녀들의 암투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해야 되고, 어떻게 말해야 될지 감이 안 왔기 때문이다. ‘난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여자들을 좋아하는 거지?’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려 봐도 형을 봐도 자신처럼 여러 여인을 마음에 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허나 그럴 리는 없으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또한 진은 안젤리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솔직한 말로 자신을 좋아한다는 레이카와 모나코에게는 특별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예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은 남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의 마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안젤리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녀만을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는 미안했다. “하아~!” 아무리 염두를 굴려 봐도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어느 남자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를 마다하겠는가! 진은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머리를 차지할수록 안젤리나에게 미안해졌다. ‘그녀들은 잘 있을까?’ 여러 여인들을 생각하다보니 이제껏 알고 지냈으며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여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삼각지대의 유미, 천무장원의 하린,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잘 통했던 하연, 마지막으로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곳에서 곤히 자고 있을 샤넬리! ‘으아아악! 난 대체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거야?’ 진은 순간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한 여자만을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이 싫었고 미웠다. 그때, 진은 어깨를 토닥이는 손을 느낄 수 있었다. “혀엉!” 진은 괜히 목이 메여왔다. 자신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여주는 형의 손길에 괜스레 서글퍼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리오스는 따스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거야!’ 진은 이번에는 또 다른 의미로 가슴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뻔했다. 힘들 때마다 떠올렸던 형의 따스한 웃음이 지금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리오스의 따스한 음성, 진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는 슬픈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기뻤다. 이제는 힘들 때마다 아련한 기억 속 음성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난 여자들도 좋지만 그래도 형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진은 조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황성 레우카스에 도착한 진은 데이릭을 알현한 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바로 헌트와 카이슨이었다. “아저씨들!” “허허허, 다 큰 녀석이…….” “좋으면서 괜히 안 그런 척 하기는.” 헌트가 짐짓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자 카이슨이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이에 헌트가 살기를 일으키며 카이슨을 노려보자 찔끔한 카이슨이 짐짓 방어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들 모습을 보며 진은 새삼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랑 같이 있는 것이 중요한 거였어.’ 진은 지난 날, 에리필들과 함께 지냈던 곳 근처에서 홀로 지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리오스를 힐끔 보며 홀로 집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에는 비록 고향이라 할만한 곳에 있었지만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이곳이 고향은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만큼은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허허허, 진이만 보이고 나는 안 보이나 보군. 그래, 발티안 시의 전투를 멋지게 승리로 이끌었더군.” “자네야 말로 멋진 승리를 이루어내지 않았나?” “하하하, 다 알면서 그런 말을 하니 얼굴이 달아오르는군.” 에리필은 카이슨의 말에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따라서 빙그레 웃는 카이슨과 헌트. 그들 모두는 진이 대견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 할 것 없이 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세 사내였다. “아아아, 그만, 그만하세요~!” 진은 싫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했다. 그러나 세 사내의 손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얼마 뒤, 얼굴이 벌게진 진과 헛기침을 터트리는 세 사내를 보며 리오스 및 네 여인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들의 모습에서 그들은 진한 정을 보았던 것이다. 에리필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일신시키기 위해 리오스 및 세 여인을 소개 했다. 셀리나야 올슈레이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으니 소개할 필요가 없기에 그는 네 사람만 소개 했다. “여기 이 청년이 바로 진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던 진의 형, 리오스라네.” “안녕하십니까? 진이를 이렇듯 아껴주시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하 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리오스의 인사에 반가운 표정을 짓던 헌트와 카이슨은 그의 마지막 말에 안색을 순간 굳혔다. 그러나 그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리오스를 보며 이내 안색을 고치며 그를 환대했다. “오오, 자네가 바로 진이를 브라더 콤플렉스로 만든 장본인이었구만.” “만나서 반갑네.” 카이슨의 호들갑스런 인사와 헌트의 간단한 인사는 비록 표현하는 법은 다르나 그 속에는 따스한 정이 담겨 있었다. 이를 느끼지 못할 리오스가 아니었다. 에리필은 리오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웃음 지으며 세 여인을 소개 했다. 그런데 그녀들을 소개하는 것이 좀 이상했다. 안젤리나를 진의 아내라 소개하는 것은 당연했으나, 모나코와 레이카를 소개할 때의 그의 말투는 분명 진과 그녀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감지하지 못할 헌트와 카이슨이 아니었다. “오호, 진 이 녀석 능력 좋은데?” 진은 그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거기다 세 여인 모두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자 진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안젤리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모나코와 레이카까지 그러면 난 어떡하란 말이야?’ 진은 그녀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헌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 하는 것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진이었다. “사실, 셀리나 천부장과 사부님은 이미 결혼을 맹세한 사이랍니다. 그렇죠, 사부님?” 진은 에리필을 ‘자신의 말이 맞죠?’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에리필은 흥미로운 눈으로 진과 세 여인을 바라보다 진의 사악한 눈을 접하고 신음을 토했다. “끄응!” “이런이런, 결국 에리필 네놈이 우리를 배신하는구나!” 카이슨은 그의 태도에서 진실을 읽고 바로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말없이 다가와 에리필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는 헌트. “늙어서 무슨 주책이냐.” 나직하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다. 이에 에리필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고 셀리나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험험, ……미안하네!” 에리필은 이내 얼굴을 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이 정도로 봐줄까?’하며 눈을 맞춰보고 있던 헌트와 카이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은 미안하다고 하나 그의 눈은 명백히 자신들을 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슨은 너무도 억울했는지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고 헌트는 사랑을 해도 역시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이에 에리필은 승자만의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진은 마치 에리필의 발아래에 쓰러져 있는 헌트와 카이슨의 모습이 보이는 듯해 두 눈을 비비기까지 했다. 어쨌든 작은 해프닝은 에리필의 승리로 끝이 나고 능수능란한 언변을 가진 에리필에 의해 잡담이나 다름없는 대화를 시작으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웃고 또 웃고, 너무도 우스워 눈물까지 맺히는 대화는 밤이 다되어서야 끝이 나고 모두는 내일을 위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황성 레우카스에서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짧군요. 쿨럭...머리를 아무리 짜내도 나오지 않네요. 크흑... 224화. 잠에서 깨어나는 샤넬리. 2 다음날, 진은 데이릭을 알현하여 샤넬리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데이릭은 그의 말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는데 그래도 아직도 샤넬리를 잊지 않은 그의 마음이 갸륵하여 애써 웃음 지으며 허락했다. 진은 데이릭에게 샤넬리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리오스가 그에게 신신당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진도 예전과 달리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되어졌기에 만약 리오스가 치료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될 데이릭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진은 리오스와 함께 환한 빛이 들어오는 샤넬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샤넬리는 전보다 더욱 아름다워진 듯했다. 몇 년 동안 사용하지 못한 에너지가 모두 그녀의 미를 완성시키는데 사용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만큼 샤넬리는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리오스는 진과 달리 그녀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프린세리아가 있기에 다른 여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는 그녀를 환자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럼, 이제 치료를 시작할게.” 리오스는 그녀의 손목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집중하는 리오스. 진은 긴장된 눈으로 리오스와 샤넬리를 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오스의 몸에서 마기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흠칫하는 진이었지만 그는 리오스를 믿기에 그가 하는 모습을 신뢰가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았다. 마기는 리오스의 몸에서 샤넬리의 손목을 통해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샤넬리.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멈추지 않고 마기를 계속해서 보냈다. 마기는 샤넬리의 몸을 타고 들어가 그녀의 심장 부위로 다가갔다. 중간에 많은 장애가 있었지만 리오스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한 리오스였지만 심장을 뒤덮고 있는 기운과 그의 마기가 부딪히는 순간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흐음…….” 리오스가 천천히 눈을 뜨며 신음을 토했다. 이에 진은 불안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형, 뭐가 잘못된 거야?” “…….” 리오스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한 듯 자기만의 공간에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어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리오스는 지금 샤넬리를 치료하는데 집중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진이었지만 불안한 마음은 자꾸만 리오스를 부르게 했고 진이 다섯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야 먼 곳을 바라보던 리오스의 시선이 돌아왔다. “형~!” “아~! 으응? 진아, 왜?” “아니, 샤넬리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사실 샤넬리가 이 이상 나빠질 리도 없지만 진은 걱정이 되어 이렇게 물었다. 리오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진이 유독 정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웃음 지었다. “진아, 잘 들어라.” “으응!” “그래, 지금 샤넬리 양의 몸에는 마기 말고도 거대한 기운이 있는 거 같아. 그런데 문제는 그 기운이 마기를 감싸고 있어서 마기를 흡수할 수 없다는 거야. 물론 그 기운들이 없었으면 샤넬리 양은 예전에 죽었을 테지만.” “그럼, 샤넬리는 구할 수 없다는 말이야?” “쯧쯧, 진아! 전에도 말했지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지.” “미안해, 형!” 진은 오랜 만에 들어보는 형의 꾸지람에 배시시 웃으며 사과했다. 리오스는 이런 동생이 너무도 귀여웠지만 애써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잘 들어, 진아. 샤넬리 양의 마기를 감싸고 있는 기운은 마치 예전 네 몸에 있던 기운 중 하나와 비슷한 거 같아. 전에 네가 말한 바로 고니아랑 기운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리오스는 진에게 샤네리를 치료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쉽게 말해 진이 고니아와 흡사한 기운을 흡수하면 자연히 마기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사라질 테니,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리오스가 마기를 흡수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진이 리오스보고 흡수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리오스는 자신은 태고의 기운 중, 암흑의 속성을 받아들이는지라 빛의 속성인 고니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진은 리오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자, 그럼 시작하자!” 리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은 샤넬리의 심장 한 마디 위에 손을 올리 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기운을 그녀의 몸을 이동시키며 흡수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샤넬리에게 매우 위험한 방법이기에 좀 힘들지만 허공을 격해서 기운을 흡수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고오오오! 진이 기운을 일으켜 그 기운을 샤넬리의 몸 안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기운을 보내서 상대의 기운을 감싼 뒤, 흡수해야 상대의 몸에 해가 가지 않는 다고 했기에 진은 조심조심하면서도 기운을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기운을 보내기 시작하자 진의 몸 주위를 밝히는 환한 빛이 샤넬리의 몸에서도 터져 나오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몸 주위를 밝히던 환한 빛이 점차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이때다!’ 리오스는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마기 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웅웅! 리오스가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하자 짧은 공명음이 터졌고 몸에 이롭지 못한 마기가 몸을 통해 이동해서인지 샤넬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멈추지 않고 더욱 집중해 마기를 흡수했다. “휴우~!” 약 차 한잔 마실 시간이 흘렀을 때, 리오스가 손목에서 손을 떼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그리고 그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진을 볼 수 있었다. “형, 고마워!” “하하하, 녀석 하고는. 근데 그러한 인사치레보다도 그녀의 몸에 있던 기 운으로 그녀의 몸을 정화시켜주어라. 아무리 조심했어도 마기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몸을 이동통로로 사용했기에 아마도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야. 지금, 샤넬리 양의 얼굴이 은은한 흑빛을 띠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아~! 정말 그렇네. 형,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그녀의 몸을 정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들갑스럽게 움직인 것치고는 그는 그녀의 몸 안에 남아 있는 마기를 너무도 쉽게 태워버렸다. “으음, 이러면 다 된 건가?” 진은 뭔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더 이상 자신들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야. 치료가 잘못되지만 않았다면 내일 중으로 정신을 차릴 거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빨리 일어나!’ 진은 간절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마치 이 말이 리오스에게도 들렸는지 그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진아, 어떻게 할 생각이니?’ 샤넬리를 치료하고 나온 리오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진아, 간만에 산책이나 할까?” “그래.” 진은 리오스가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할 말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그렇기에 그의 대답은 평소와 다르게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두 형제는 다채로운 색들로 이루어진 화원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꽃들을 보고 있지 않고 흙으로 다져진 땅만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한 산책을 하고 있는데 리오스가 아닌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으응?” 리오스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하고 있다 갑작스런 그의 부름에 놀라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에 진이 피식 웃었고 리오스도 그를 따라 피식 웃었다. 두 형제는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로 가 앉았다. 나무의 청량한 내음과 보드라운 그림자 덕분에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경직된 공기가 점차 부드러워졌다. “진아, 우린 형제지?” “당연하지.” “그래, 우린 형제지.” 리오스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진을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찾아오는 침묵. 그러나 무겁지는 않았다. 그저 나무를 간질이며 대화를 나누는 바람처럼 그들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힘들지?” “조금.” 진은 그가 하는 말뜻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휴우, 솔직히 말해 형은 너를 이해할 수는 없어. 하지만 믿을 수는 있지. 나는 네 형이니깐.” “고마워!” 리오스는 많은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진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진은 이미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라!’라고 가르쳐 줄 필요가 없는 어른. 진은 자신이 못 본 새, 한 사람의 남자가 되어 있었고 한 사람 의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우리 진이가 벌써 어른이 된 거 같아요. 이제 저는 옆에서 말없이 바라만 보면 될 거 같아요. 든든하시죠?’ 무성한 잎들 사이로 벌어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가 왜 그리 따가운지 리오스는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그렇게 그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을 향해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안력을 돋우어 보니 그는 바로 에리필이었다. “사부님, 무슨 일이에요?” 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묻자 어느새 그들 앞에까지 다가온 에리필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샤넬리 양의 의식이 돌아왔다는구나!” ================================================================= 웜바이러스인가 무시긴가...때문에 컴터가 대략...멍하네요. 에공...컴맹인 저로서는 상당히 당황했다는...휴우... 225화. 잠에서 깨어나는 샤넬리. 3 “샤넬리야, 샤넬리야. 정말 내 딸 샤넬리가 맞느냐? 이, 이게 꿈은 아니겠지?” 데이릭은 샤넬리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아빠, 왜 울고 그래요?” 샤넬리는 데이릭이 왜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한숨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알 수가 없었다. “…….” 데이릭은 그녀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사랑스런 눈으로 샤넬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했고 만약 이게 깰 수밖에 없는 꿈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샤넬리를 담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말할 시간도 아까웠다. “아빠는 참. 애도 아니면서 울긴.” 샤넬리는 데이릭의 이해 못할 행동이 의아했지만 너무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데이릭의 눈빛이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왔고 데이릭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진짜 오랜 시간 동안 잠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끈! 그 순간, 그녀는 머리가 부서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뭔가가 떠오를 듯하면서도 안 떠올라 짜증이 나 화난 표정을 지었다. 데이릭 부부는 딸의 표정에 흠칫 놀랐다. 평소 이러한 표정을 지은 적이 없기에 오랜 시간 동안 의식을 잃은 후유증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절로 들었다. “당장 의원을 불러라!” 데이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불안감에 문 쪽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허겁지겁 어딘가로 달려가는 기사들. 얼마 뒤, 의원이 와서 샤넬리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감싸고 있었고 그것이 심해져 머리를 흔들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악! 이거 놔아! 아악!” 샤넬리는 자신을 다시 한번 진찰하려는 의원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이에 당황한 의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데이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데이릭은 그의 딸, 샤넬리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황후는 데이릭관 달리 지금 샤넬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사람! 그는 바로 진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막연하나 진이면 샤네리의 불안정한 상태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장 가서 올슈레이 진 경을 불러오세요.” 조용하나 거역할 수 없는 음성이 황후에게서 나왔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 중 다섯 명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초조한 눈으로 샤넬리를 살펴보던 그들 부부는 에리필과 함께 들어오는 올슈레이 형제를 볼 수 있었다. 진들은 황제와 황후에게 예를 차렸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그러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서, 샤넬리를 한번 살펴보게.” 황후가 간절한 목소리로 진에게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샤넬리에게 다가가는 진. “오랜 만이야.” “누…구세요.” 반갑게 인사하는 진과 달리 샤넬리는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했다. 이에 진은 당황했다. “나, 나야 진. 올슈레이 진이라고. 모르겠어? 검은 삼각지대까지 너를 호 위했던 올슈레이 진이라고.” “진…이라고요? 검은… 삼각지대?” “샤넬리야 기억이 안 나느냐?” 데이릭은 딸이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무슨?” 샤넬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척 해 몹시 혼란스러웠다. 안 그래도 머리가 지끈거려 고통스러운데 마치 자신을 환자대하는 듯한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 모두가 그러하니 샤넬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보고 어떻게 하란 거야!!!’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또한 눈앞이 일그러지며 속이 메스꺼워졌으며 귓가를 울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견딜 수 없을 만큼 역겨움을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트렸다. 얇은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비명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섬뜩한 비명을 말이다. “꺄아아아악!” 샤넬리의 행태는 광인의 그것과 같았다. 이에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는데 들어와서부터 냉철한 눈으로 그녀를 살펴보던 리오스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 손을 붙잡고 마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으음.” 마기가 그녀 몸을 어느 정도 돌자 그녀는 점차 눈꺼풀이 무거워지는지 눈을 감기 시작했다. 그녀가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눕자 데이릭의 눈에 리오스를 당장에라도 찢어죽일 만큼 커다란 분노가 자리 잡았다. “이번에는 단순히 기절한 것뿐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리오스는 데이릭의 기세를 느끼고 있었기에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에 뭐라고 말하려던 데이릭은 그의 눈이 너무도 진실해 격해진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리오스는 그녀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아침 저와 제 동생이 샤넬리 양을 치료했었습니다. 만에 하나 실패할 수도 있었기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점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하여주십시오.” 리오스는 잠시 말을 끊고 데이릭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잠시 놀란 눈을 하고 있던 데이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치료하는 과정에서 저희가 한 가지 생각지 못한 점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흑마법에 관한 것은 잘 모르지만 마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뇌에 영향을 끼친 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샤넬리 양의 몸에 있던 마기는 어떠한 기운에 막혀 있어 아주 미세한 양의 마기만이 뇌에 영향을 끼쳤을 뿐이며 그 정도 양이라면 두통 및 정신착란으로 인한 부분적 기억상실이 찾아올 수도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게다가 방금 전, 기운을 보내 뇌에 남아 있던 마기를 태웠습니다.” “그렇다 말은?” “내일 일어나실 때면 황제 폐하의 사랑스런 딸로 돌아오실 겁니다.” “…고맙네!” 데이릭이 손을 꽈악 잡으며 감사의 뜻을 전하자 리오스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는 데이릭에게 거짓과 사실을 섞어 말했던 것이다. 만약 사실을 말했으면 자신이 마기를 흡수한 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 시대에 사는 사람 중, 마기를 사용하는 자를 좋아할 이는 몇 없기 때문이다. 샤넬리가 이렇듯 일찍 깨어난 것은 리오스도 의외였다. 본래라면 내일 의식이 돌아와야 되는데 그녀는 치료한 지 얼마 있지 않아 깨어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너진 몸과 정신의 밸런스가 어긋난 상태로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리오스는 비록 마기이나 그녀를 잠에 빠뜨린 것이다. 잠이란 몸과 정신을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오랜 시간 잠을 잤었다. 하지만 그녀가 잤던 잠은 무너진 밸런스를 맞추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네.” 상념에 빠져있던 리오스는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는 데이릭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는데 그런 그를 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리오스는 이 일에 대해 좀 있다 이야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왜 예상과 달리 빨리 깨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의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샤넬리의 방을 나온 리오스는 진에게 그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어야 했는지를 설명했고 진은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형이 마기를 다루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니?” 리오스는 진이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에 작은 반감 같은 것이 생겼다. 그러나 진의 대답에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사실 난 형이 마기를 다루는 것도 별 상관없어. 형이 뭘 하든 형이 네 형이라는 것은 변함없잖아.” “……하하하, 그렇지.” 두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러다 리오스는 샤넬리가 깨어난 것에 생각이 미쳐 그것을 진에게 말했다. 그리고 두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러나 그들이 머리를 굴린다고 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이내 포기해버렸다. 사실 리오스 역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어 생각한다고 하여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진에게 말해본 거였기에 그들은 그것에 그리 큰 심력을 소모하진 않았다. 그러나 진은 리오스와 헤어져 방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혹시나 하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내가 속으로 빨리 일어나라고 해서 그런 건가? 에잉,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속으로 한 말을 의식을 잃고 있는 샤넬리에게 들릴 리가 없잖아.’ 진은 자신이 생각해도 허무맹랑하다고 웃음 지으며 리오스에게 말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은 알고 있을까?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깨운 키스는 바로 속삭이듯 속으로 중얼거린 그의 음성이었다는 것을. 다음날, 리오스의 예견처럼 샤넬리가 의식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전처럼 혼란스러워하지도 않았다. 특히 그녀가 진을 만났을 때, 한 말이 압권이었는데 그 말 때문에 진과 같이 있던 세 여인은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나의 잠을 깨운 사람은 언제나 바로 진이 너였어. 그리고 너는 언제나 내게 다가와 키스로 내 잠을 깨워주었어!” 말을 하며 얼굴을 붉히는 샤넬리를 보며 장내에 있던 기사들은 한동안 상사병을 앓아야 했고 그녀의 부모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정체야 뻔하지만 말이다. 또한 그곳에 있던 나이 지긋한 남정네들은 괜스레 헛기침을 터트렸는데 덕분에 그 당사자인 진은 푹 숙인 목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이 모습을 리오스는 ‘네 맘대로 해라!’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황제의 딸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크나 큰 경사였고 황 제는 오늘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제국은 전쟁을 치루는 가운데서도 축제의 분위기를 즐겼다. ================================================================= 샤넬리 화는 이제 끝!!!ㅋㅋㅋ 226화. 제국 통일,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1 샤넬리가 깨어나고 진은 무척이나 바빠졌다. 샤넬리의 몸에서 가져온 고니아를 신기로 바꾸어 융합시키는데 시간을 할애해야하기도 했으며 이제는 표면으로 떠오른 여인들의 싸움을 중재해야 하기도 해 진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그런 그를 황성 레우카스에 있는 남정네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진은 그야 말로 죽을 맛이었다. 한편 샤넬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뒤, 진의 옆에 있는 세 여인을 보며 속으로 헛바람을 집어삼켰었다. 진과 여행을 할 때부터 진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는 챘었다. 하지만 진과 같은 녀석을 좋아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녀였기에 그의 주위에 이렇듯 아름다운 여인들이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다 그녀는 세 여인 중 모나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또한 샤넬리는 진이 이미 안젤리나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자신은 영원할지도 모르는 잠에 빠졌는데 진은 다른 여자와 결혼이나 했다는 사실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흑마법사의 공격에 당해 선택의 기회도 없이 잠에 빠지기 전, 고통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까지 했었는데 진은 그 고백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그녀를 다시 한번 배신감에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의 왈가닥 샤넬리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잠에 빠져 있을 때, 꿈속의 왕자님은 언제나 진이었고 그런 그에게만큼은 더없이 순종적인 여인이 된 그녀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화살은 다른 여인들에게로 향했다. 진은 여인들의 싸움이 검만 안 들었다 뿐이지 그 어떠한 전투보다도 치열하고도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놓아두다가는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것이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딱 부러지게 내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는 건데.’ 알고는 있지만 쉽게 정리를 내릴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여인들의 매력이 눈에 보였고 호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들은 진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기에 일편단심인 리오스마저도 얼굴을 붉힐 정도만큼 그 아름다움과 매력이 대단했다. 그러한 여인들의 공세에 진이 버틴다는 것은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후우, 이제 나의 이런 성격 가지고 고민하는 것은 심력 소모일 뿐이다. 그러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여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진은 정말 미칠 것 같았는데 그러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이 상황을 즐긴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변태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결정을 내리는데 더욱더 힘이 드는 진이었다. 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도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여인들의 진 쟁탈전은 절정에 달했고 조금의 충격으로도 뻥하고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한 때에 여인들의 진 쟁탈전을 잠시 휴전상태로 만드는 일이 터졌다. 바로 미치광이 황제라 불렸던 제르디스가 서거한 것이다. 미치광이 황제 제르디스는 사실 꽤 오래 전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제의 죽음은 4대 공작에 의해 철저히 차단되어 그가 죽은 지 석 달이나 지난 다음에야 외부로 알려졌다. 그것도 제르디스의 시중을 들던 하인이 목숨을 걸고 외부로 나와 알리지 않았다면 제르디스는 4대 공작이 망하지 않는 날, 영원토록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제르디스의 서거는 온 제국을 격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니, 공작파였던 무가들과 귀족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이미 전력상으로 봐도 데이릭에게 한참이나 못 미치는데 거기다 올슈레이 기사단의 대장인 진이 돌아온 사실은 그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들에게 진은 죽음의 사신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제르디스의 서거를 기회로 짐짓 격분하는 척하며 데이릭에게 가담하였다. 그들에겐 그만한 명분이 있었기에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었고 데이릭 역시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기에 그들을 받아주었다. 이 모든 일이 완벽히 이루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제르디스의 죽음이 알려지고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모두가 제멋대로야!” “크큭, 결국 우리들의 결말은 이거였던가?” “마음대로 생각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즐기긴 했었지.” “그래, 그랬었지.” 네 명의 공작은 붉은 술이 담긴 술잔을 기울이며 제각기 중얼거렸다. 그들의 대화는 상대에게 말하는 듯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했다. 마치 홀로 중얼거리는 듯, 아니 자기의 중얼거림을 들어달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술잔의 붉은 술이 다 없어질 때까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술을 다 마신 뒤, 렌드린탈을 시작으로 문을 나서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금지로 선포한 곳이었다. 황제가 거하는 성을 통해서만이 갈 수 있는 건물.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어두웠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빛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곳을 좋아했다. 끼익! 커다란 문이 열렸고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는 바로 네 개의 용상! 그들은 용상을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털썩! 그들은 용상에 몸을 눕혔다. ‘그래 난 이것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렸던 거였어.’ 4명의 공작은 신기하게도 지금 이 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네 명의 공작.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바를 이룩한 것이다.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앉아 있는 것은 분명 용상이었다. ‘내가 바로 제국의 황제다!’ 그들은 차마 소리를 내진 못했다. 소리를 내는 순간 탐욕과 질투의 눈빛을 보낼 나머지 공작들의 행동이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황제가 되기로 했다. 누구도 침범하지 않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이 만든 세계. 그곳에서 그들은 영원한 시간동안 황제가 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위대한 황제 말이다. 데이릭은 삼십 만이라는 군병이 모이자 4대 공작이 있는 황궁 코린토스로 진격했다. 그러자 코린토스를 수호하고 있던 자들이 백기를 높이 들며 성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에겐 4대 공작을 위해 목숨을 바칠 충성심은 고사하고 의리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데이릭은 성문이 열리자 그의 충복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코린토스의 수비를 맡고 있는 라크리나 기사단의 단장인 게이츠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이에 데이릭은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려 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게이츠는 이미 4대 공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4대 공작의 입장에서는 충복이라 할 수 있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일말의 충성심도 없다는 듯, 금지로 선포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흐음….” 데이릭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시체 썩는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안에는 4개의 용상이 있었다. 그리고 각 용상에는 마치 그들이 주인이라는 듯 4명의 공작이 앉아 있었다. “독인 거 같습니다.” 데이릭 옆에 있던 칼바이츠가 조용히 말하자 데이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저들은 자살을 한 듯싶었다. 그것도 최후는 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권력의 최정상에 서면서 말이다. 순간 데이릭은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자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으며 이 자리가 무엇이기에 사람이 이토록 추악해지는지 알 수 없는 허무감에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러나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오늘과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황제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깐. “후우, 이곳을 모두 소각하라!” 천천히 몸을 돌리며 데이릭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명대로 이곳은 얼마 후, 소각되어질 것이다. 추악한 욕망의 잔재는 불에 태워 재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처리방법이니깐. 이렇게 제국은 한 사람의 주인을 맞이했고 그의 이름은 바로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이었다. ================================================================= 짧군요. 쿨럭... 에공... 간만에 올리는 건데...글이 잘 안 써지네요. 227화. 제국 통일,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2 데이릭이 제국의 진정한 황제가 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그의 거처를 황궁 코린토스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즉위식을 거행했다. 제국은 전쟁이 끝났음에 환호했고 모두들 축제 분위기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제국의 구중심처인 코린토스에서는 축제 분위기는 고사하고 싸늘한 한기만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몇 명의 여인들 때문이었다. “좀 봐요.” 짧으나 그 분위기로 보아 심각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세 여인은 피하지 않고 황녀인 샤넬리를 따라 화원으로 갔다. 화원은 이곳이 과연 황궁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넓고도 아름다웠다. 모나코는 평소 꽃과 나무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그녀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식물들이 너무도 많았다. 더구나 그 꽃과 나무들이 각자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니 처음 무거운 분위기로 따라나선 그녀의 마음은 편안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을 데려온 샤넬리까지도 말이다. “앉아요.” 샤넬리는 제국의 여신인 라크리나를 조각한 분수대 앞의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그제야 샤넬리를 제외한 세 여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자신들은 여기 꽃이나 감상하러 온 것이 아님을 상기한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과 함께 할 거예요.” 샤넬리가 여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들이 앉아 있는 벤치가 둥근 원처럼 만들어져 있기에 그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녀가 이렇듯 대담하게 나오자 세 여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안젤리나는 이들 두 여인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여러분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는 거 같군요. 누가 뭐래도 그이의 아내는 바로 저, 애드윈 더 안젤리나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흐음,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이죠?” 샤넬리의 당돌하기까지 한 물음에 안젤리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어쨌냐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걸까? 안젤리나는 샤넬리는 물론이고 나머지 두 여인 역시 과연 제정신인지 궁금했다. 자신은 누가 뭐라 해도 진의 아내가 아닌가? 그런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이라니. 그리고 진의 아내인 그녀가 있음에도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여인들이라니. 안젤리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으려는 것을 겨우겨우 억눌렀다. 사실 여기까지 참아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진의 아내인 자신과 아직 진의 허락도 받지 못한 이 여인들이 어떻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자신은 이 여인들 위에 있어야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샤넬리는 안젤리나가 말이 없자 자신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진의 여인은 바로 저라는 사실을 명심해주세요. 그러니 다른 분들은 더 이상 진에게 치근덕대지 말아주세요.” “하아! 지금 뭐라고 하셨죠? 제 귀가 아~주 황당한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요. 그러니깐, 당신을 제외한 다른 여인은 그이에게 치근덕대지 말아달라고 했나요? 그 말 지금 저한테도 해당되는 말인가요? 그이의 아내인 저한테도 말이에요.” 안젤리나의 음성은 상당히 격해져 있었고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매달려 있었다. 이에 샤넬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 그녀는 안젤리나를 진의 아내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안젤리나의 눈물을 보는 순간, 안젤리나가 얼마나 진을 사랑하는지 조금이지만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것은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꽈악 쥐며 부들부들 떠는 붉은 머리칼의 레이카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모나코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여인들 모두 진을 정말로 사랑하는 구나.’ 샤넬리는 괜스레 가슴이 진탕되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진을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는 순간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져왔다. 그리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이 얼마나 그녀들을 상처 줬는지도 깨달았다. 그녀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높은 위치에 그녀는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제국의 유일한 황녀가 바로 그녀의 위치 이니. “하아, 미안해요. 분명 방금 전에 한 말은 제 실수였어요. 하지만 솔직한 맘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 않나요? 나만의 진이 되었으면 하는 맘!” “그래요. 평소의 저라면 요즘과 같은 행동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솔직히 안젤리나 양에게 너무도 미안해요. 안젤리나 양은 이미 진이와 결혼까지 한 사이인데, 괜히 우리 때문에 이렇게 마음 아파하게 되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몇 백, 몇 천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었지만 그게 안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듯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흐윽, 흑흑흑!” 모나코는 말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는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녀 뒤를 이으며 말하는 레이카도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이 중에서 진의 사랑을 가장 적게 받는 사람은 바로 저 일거예요. 하지만 칠년 전, 진을 처음 본 그날 나는 맹세했어요. ‘내가 평생을 의탁할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지 흐윽,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흑흑흑!” “왜들 울어요? 누가 죽기라도 했나요? 정말 미칠 거 같은 것은 바로 나란 말이에요. 흑흑흑, 왜 다들 울고… 그러냔 말이에요. 흑흑흑!” 안젤리나는 기껏 참았던 눈물이 터져 순간 당황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여인이 울고 있으니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샤넬리의 모습도 들어왔기에 그녀는 정말로 오랜 만에 마음 편히 울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선경이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아름다운 화원은 여인들의 울음을 감춰주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진은 요 며칠 여인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고니아를 신기로 바꾸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무언가 ‘꽝!’하고 터질 것만 같아 불안하기도 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난 진인지라 괜한 생각이라며 자위하며 고니아를 신기로 바꾸는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빛이 있었다. 그러나 어둠도 있었다. 빛은 어둠의 적이었고 어둠은 빛의 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밑에서 바라본 빛과 어둠의 관계였다. 빛은 빛이었으며 어둠은 어둠이었다.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그 둘은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태초 이전부터 존재한 ‘그’가 그렇게 만들었기에 빛과 어둠은 그렇게 존재할 뿐이었다. 빛이 어둠을 물리치진 못한다. 어둠이 빛을 잡아먹을 순 없다. 이것은 태초부터 정해진 법칙이다. 둘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그러나 빛 위에 어둠이 덮을 수는 있고 어둠 위에 빛이 빛을 발할 수는 있다. 허나 밑에서 본 자들은 그것을 빛이 어둠을 물리치고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무지하기에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밑에서 보지 못한 법칙을 볼 수 있다. 진이 바로 지금 그러한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순리에 따르며 존재한다. 그것은 태초의 존재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진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에 크게 감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사실이라도 보는 관점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빛과 어둠의 관계처럼 말이다. 진이 깨달음을 받아들이자 그의 몸에 있는 신기들이 공명하듯 힘차게 온 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 존재한다는 일곱 개의 쿤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쿤은 사라졌다. 대신 진의 몸과 우주가 연결되었다. 쿤이 필요치 않는 단계. 진은 인간들이 말하는 천혜화에 다다른 것이다. 번쩍! 두 눈을 감고 있던 진이 눈을 뜨는 순간 섬광과도 같은 하얀 빛이 그의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하얀 빛은 한참 동안이나 진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다 진의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사라졌다. “예전에 내가 얻었던 깨달음이 우주를 관통하는 법칙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진은 예전 고요의 숲에서 얻은 깨달음이 아주 커다란 깨달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때의 자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몸과 마음, 그리고 기운,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 진은 그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 휘릭! 진이 손을 털었다. 그와 함께 하얀 빛이 진의 손이 그린 궤적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빙긋이 웃는 진. “그때 본 하얀 검이 내 것이 되었구나.” 진은 그 하얀 검이 바로 태초의 빛인 신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천혜화의 경지가 얻을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천혜화에 이르기도 전에 온 몸이 단전화 되었고 신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얻은 신기는 진정한 신기가 아니었다. 그때 얻은 신기가 은회색의 불안정한 것이었다면 일곱 개의 쿤이 사라지고, 나와 우주가 아무런 매개체 없이 연결된 지금에야 볼 수 있는 하얀색의 신기가 바로 천혜화에 올랐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진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천혜화에 올랐음에도 크게 기뻐하며 만족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천혜화와 자기가 직접 밟고 느껴본 천혜화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천혜화는 신의 경지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경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알겠다. 천혜화는 궁극의 마스터가 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진은 그 사실에 투지가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수련에 매진하리라 다짐했다. 천혜화의 끝에는 또 무엇이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진이었다. 진은 천혜화에 오른 사실을 리오스에게만 말했다. 진은 이미 리오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 그가 마신의 단계에 올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성취한 경지에 놀라지 않고 순수하게 축하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리오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오스는 그의 생각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축하해주었다.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것은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근데 말이야. 난 천혜화에 오르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성격이 많이 바뀔 줄 알았어. 천혜화에 오르면 신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완벽한 인격, 어찌 보면 재미없는 성격으로 바뀔 줄 알았단 말이지.” “푸웃, 꼭 너 같은 생각만 하는 구나. 물론 네 말이 완전히 틀린 거는 아니야. 하지만 그 사람이 타고난 고유의 성격은 바뀌지 않아. 그것은 루미에가 부여해준 거니깐. 그래서 점점 완성되어질수록 오히려 세상을 살면서 변하고 닳은 성격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돼.” “으음, 확실히 그런 거 같아. 예전에는 나, 솔직히 말해 막무가내였잖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걱정 따위는 개한테나 줬었는데 나름대로 세상을 살다보니깐 좀 어른스러워져 나름대로 참을 줄도 알고 고민도 할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지금은 이제껏 내가 했던 고민과 참는 것들이 허무해지는 거 있지? 아니, 허무하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어.” 리오스는 진의 이야기를 듣다 그의 말이 정확히 무엇을 짚고 있는지 금세 눈치 챘다. 그는 바로 진의 형, 올슈레이 리오스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 여인들을 모두 다 네 여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이지? 근데 무슨 말을 그렇게 빙 둘러서 말하냐? 이 형한테 말이야.” “하하하, 형 눈치 챘어?” 콩! 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리오스가 짐짓 눈살을 찡그리며 그의 머리에 꿀밤을 주었다. 진은 꿀밤을 맞았음에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그 누가 천혜화에 오른 고수로 보겠는가! 리오스는 이러한 생각을 잠시 해보다 피식 웃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진이었기에 이렇듯 어린 나이에 천혜화에 오른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마신이 되면서 알게 된 우주의 법칙은 인과가 분명했다. 진이 이만큼 거대한 힘을 얻은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리오스는 진이 위험에 빠지면 비록 자신에게 남은 기회를 모두 쓰더라도 진을 구하리라 다짐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실 부모님께 면목이 설 것만 같았다. 진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사랑스런 동생이니깐. 진은 리오스에게도 말했다시피 네 명의 여인들을 자신의 여인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 안젤리나가 가장 크게 반대할 것이며 다른 여인들 역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겠지만 진은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정을 준 여인들은 무조건 받아들이리라 마음먹기도 했다. 진이 마음을 다잡고 결의를 굳히고 있을 무렵, 네 여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진의 방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진이 말하러 가야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방문이 열리며 네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 어라? 내가 가려고 했었는데.” 진은 그녀들의 방문에 당황해했다. 그러나 네 여인은 그가 당황스러워하든 말든 별 신경 쓰지 않고 그녀들의 대표인 안젤리나가 한 발짝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우리 네 명은 의자매를 맺기로 했어요. 제가 첫째며, 샤넬리가 둘째며, 모나코가 셋째며, 레이카가 넷째예요. 이렇듯 의자매를 맺은 우리가 한 가지 다짐한 게 있어요. 바로 한 남편을 모시기로 한 거예요. 진, 당신을 말이에요.” “……어? 그, 그러니깐 안젤리나, 샤넬리, 모나코, 레이카 모두 내 아내가 되겠단 말이야? 아, 리나는 지금도 내 아내니깐 빼더라도, 하여튼 그렇단 말이야?” “예!” 네 여인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진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리고 짐짓 생각에 빠지는 진. ‘그러니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단 말이지? 하하하, 역시 신은 있었어.’ 진은 자신이 이미 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자가 되었음에도 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짐짓 고민하는 척을 했다. 총대는 자신이 쥐고 있기에 이 상황을 즐기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어내야지 하는, 진의 머리로는 좀처럼 떠오를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네 여인은 조마 조마하는 심정으로 진의 얼굴, 그 중에서도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네 여인이 이렇듯 어려운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그들 모두가 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도 다퉜지만 서로를 향해 친 벽을 허물어뜨리자 그녀들은 피를 나눈 자매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서로에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진이 허락을 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지금, 진의 입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주시하는 그녀들의 심장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 좋아.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적으로 들어야 할 거야.” “물론이에요.” 그녀들은 이번에도 약속한 듯 한 목소리로 대답 했다. 이런 그녀들의 모습에 진이 씨익 웃었지만 그녀들은 진의 웃음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니, 모르는 게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그녀들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테니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않을까? ================================================================== 후후후, 한화 올리고 이번 화를 올리는 사이에 몇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복부 쪽에 크지는 않지만 꽤 따가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뭐, 자세한 설명을 하기엔 좀 그렇지만 자전거 사고였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둘째, 으음....없군요....쿨럭...많은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쿨럭.. 어쨌든...즐겁게 봐주세요. 228화. 제국 통일,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3 루미에는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한번에 찾아와도 인간의 두뇌는 가장 시급한 문제를 찾아내어 그 문제만 생각하며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덕분에 인간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루미에가 부여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종종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거나 회피하지도 못해 정신이 붕괴되어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루미에게가 자신들에게 준 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패배에 젖은 입이 루미에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무지에다 뱉는 침과 같 할 수 있다. 이들을 우리는 패배자라 부른다. 진은 패배자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루미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현존하는 자들 중에서 루미에의 의지에 가장 가까운 자니깐. 어쨌든 진은 루미에가 준 능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힘든 일들을 하나씩 이겨낼 수 있었고 이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자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엘뤼시온의 약속! 그렇다. 요정들이 자신을 구해준 보답에 엘뤼시온이 한 약속. 진은 그것을 떠올린 것이다. 한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에 머리 한켠에 고이 눕혀두었던 것이 이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엘뤼시온, 은혜를 갚으러 가볼까?” 명상에서 깨어난 진이 두 눈을 뜨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자 엘뤼시온의 들뜬 음성이 그 뒤를 이었다. [고마워, 나는 네가 그 약속을 잊은 줄 알았어.]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녀석이 아니란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잘못했어. 그런데 언제 떠날 생각이야?] “내일 아침!” 진의 단호한 음성에 엘뤼시온은 비록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진은 엘뤼시온이 지금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엘뤼시온은 정신을 넘어 영혼으로 맺어진 사이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갚으러 유라시아드 숲에 갔다 오겠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하는 진의 이 말에 그의 네 여인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제국의 핵심요인들은 기겁하며 그를 만류했다. 전신이라 불리는 그라고 할지라도 유라시아드 숲은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저주 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곳. 그곳이 유라시아드 숲임을 알기에 그들은 진이 사지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진은 그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아~ 예, 그런가요? 하하, 그러면 가지 못하겠네요.”라는 말을 할 녀석이 아니었다. “저는 무조건 그곳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유라시아드 숲은 이미 한번 가본 적이 있기에 그곳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가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유라시아드의 그 무엇도 저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진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진이 어디 평범한 인간이었던가! 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4만의 대군을 항복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진이 아니었던가! 그런 진이 하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알 수 없는 설득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진의 네 여인은 진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담 저도 따라갈래요.” 시작을 끊은 것은 안젤리나였다. 그리고 샤넬리, 레이카 순으로 안젤리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말을 했다. 오직 모나코만이 무술을 익히지 않았기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이 보기에는 무술을 익힌 안젤리나, 샤넬리, 레이카나 무술을 익히지 않은 모나코나 똑같았다. 그녀들의 실력으로는 자신의 발목만 잡는 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사실이 그렇다고 하여 그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들의 눈에 어려 있는 진심을 단순한 무력 차이로 무너뜨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휴우, 이거 어떻게 하지?’ 진은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력자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지상 최고의 조력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프치아이오 론 데이릭이 그를 보며 씨익 웃고 있었던 것이다. 진은 그를 보며 불쌍할 정도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이에 위엄을 잃지 않던 데이릭의 얼굴에 한순간 웃음꽃이 피었다 사라졌다. “험험, 짐이 유라시아드에 가봐서 알지만 너희들이 그곳에 간다는 것은 오히려 진 경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러니 진 경을 홀가분하게 보내주도록 하거라.” “황제 폐하, 소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사옵니다.” “오호, 그래? 무엇이 궁금 하느냐?” 데이릭은 갈색 머리의 모나코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자못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에 모나코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폐하께서 방금 전에 하신 말씀은 명령이신지요?” “…….” 순간 데이릭은 할 말을 잃었다. 분명 황제의 명으로 내린 것이라면 그녀들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했다. 그녀들은 제국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 중에 샤넬리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워낙에 오냐오냐 하며 키웠기에 황제가 된 지금으로써도 감당할 수 없는 그녀에게 명령이란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면 바로 반박이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허허허, 그냥 보기에는 순진해 보이는데 이 아이가 제법 상황을 판단할 줄 아는구나.’ 데이릭은 한순간 당혹스러웠기는 했지만 그는 제국의 황제였다. 이러한 눈에 빤히 보이는 술수에 걸릴 데이릭이 아니란 말이다. “허허허, 당연히 명령은 아니지. 하지만 짐의 말은 한번 입밖에 나오면 그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단다. 비록 그것이 명령이 아닌 단순한 부탁이라 할지라도 짐의 부탁은 제국의 위엄을 담고 있기에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는 말이지.” “물론 폐하의 부탁을 그 누가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소녀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들의 부군이 사지로 가시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사지라… 으음, 짐이 보기에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진 경을 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짐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아, 아니옵니다.” 모나코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는데, 그것이 결국 그녀들의 활로를 막아버렸다. 이에 당황한 모나코는 세 여인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들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때, 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약속할게. 조금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다고. 설마 나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한 약속을 어길 사람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진의 마지막 일격에 그녀들은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다. 다음날, 그녀들은 눈물을 흘리며 진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진의 마음도 잠시 아파왔지만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은 그녀들의 눈물을 잠시 잊기로 했다. 이것도 루미에가 부여한 능력일지니, 진은 루미에의 의지에 가장 가까운 자답게 그가 부여한 능력들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고함 소리. 폐부를 시원케 하는 고함 소리. 소리를 지르는 자가 너무도 빨리 움직여 간간히 끊기는 소리. 그러나 너무도 즐거워 보이는 소리. 진은 사람들이 왜 자유를 부르짖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지금 느끼는 감 정이 자유라면 그들이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꽉 막힌 머리가 뻥 하고 뚫리는 듯한 느낌. 나른한 몸에 활력이 넘치는 듯한 느낌. 바람이 함께 하고, 대지가 흐릿한 웃음을 짓는 느낌. 온 몸을 감싸주는 태양의 포근한 느낌. 진은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는 이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바라지 않아도 함께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진의 전신을 희열에 떨게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들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은 문득 자연이 주는 자유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이에는 아무리 부정해도 소유라는 개념이 적용되었다. 자신만 해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녀들은 자신의 것이라고. 이러한 생각을 자신부터 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 이렇게 바라는 것 또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의 또 다른 모습의 표출이 아닐까? “으으윽! 아~~ 몰라!” 진은 그가 생각해도 머리를 많이 굴렸다고 생각했는지 신음을 토하다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씨익 웃는 진. “그냥 이 느낌처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대하자.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두자. 이 녀석들처럼 말이야.” 진은 신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뒤부터 보이게 된 정령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에 그의 주변에 있던 정령들이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고 진도 덩달아 웃음 지었다. 그렇게 정령들과 자연과 함께 하며 달리기를 삼일, 진은 재앙의 숲이라는 유라시아드에 도착했다. ================================================================= 상당히 절단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왜 일까요? 쿨럭..어쨌든...다음화만 해도 상당히 길어질 듯 하여...228화와 분리할 수밖에 없다는...쿨럭.. 바야흐로...이제 러브러브리 모드는 잠시 접고...본 스토리 궤도에 올랐다고 하는 게 맞을 듯..쿨럭.. 229화. 제국 통일,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4 유라시아드를 뒤덮고 있는 사람을 몽매하게 만드는 향기! 진은 숲으로 들어가며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에 새삼 유라시아드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진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거참, 이 냄새를 음식으로 만들 순 없나?” 숲을 거닐면서 진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마치 산보하듯 주위 경관을 감상하며 걸음을 옮기는 진이었다. 그러나 진의 몸은 범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자고 있던 유라시아드가 침입자를 감지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허나 그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침입자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수 없었다. 아니, 갈기갈기 찢는 것은 고사하고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지도 못했다. 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기세 때문에 그들은 악한 사념의 절대적인 명령을 수행할 수 없었다. “으음, 그때는 정말 죽을 고생을 했었지!” 진은 앞으로 나아가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그의 앞을 막고 있는, 정확히 말해 미처 피하지 못한 숲의 자식들이 그가 뿜은 기세에 소멸하는 것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난 어쩌면 이미 인간이 아닐 지도 모르겠구나.’ 물론 그의 경지는 기세를 뿜는 순간 신기가 발동해 사방으로 발산되는 경지다 보니 기세가 신기 자체이니 그것만으로도 살인적이기는 하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의 악전고투한 기억이 있는지라 진은 새삼 자신이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나의 이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별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구나. 물론 이제는 내가 이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 알 수 없는 서글픔은 무어란 말인가?’ 진은 괜스레 서글퍼져 달리는 속도를 늦추었다. 이 속도로 나아가면 미처 피하지 못한 숲의 자식들이 소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보이는 숲의 자식들은 악한 기운에 변형되어 순리에 어긋나는 존재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진은 악한 기운 안에 갇혀 있는 정령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지였다. 그는 이미 반인반령을 넘어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엘뤼시온,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닌 거 같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 정령들은 그래서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에 무디잖아. 비록 기쁨은 잘 느끼지만 슬픔에는 무감각하거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정령은 정령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인간인 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잖아.] 진은 엘뤼시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느꼈다. “후우, 그렇겠지?” 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리고 그는 보이지는 않지만 엘뤼시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이에 미소를 더욱 짙게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였다. 쿵쿵쿵! 꽈지직! “끼에엑!” 멀리서 들려온 대지를 흔드는 소리와 무언가 터지는 소리, 그리고 비명! 진은 이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엘뤼시온, 유라시아드를 상대하는 것은 너에게 맡기기로 했지만 저 녀석만큼은 내가 처리할게!” [묶은 끈은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말이지?] 진은 엘뤼시온의 되묻는 듯한 대답에 씨익 웃어 보이며 기합이 잔뜩 목소리로 외쳤다. “하압!” 순간 그의 외침에 놀란 숲의 자식들이 마치 썰물처럼 쫘악 물러났다. 사방 수 수키르 정도의 공터가 만들어지자 진이 만족어린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기다렸다. 쿵쿵쿵! 대지를 터트릴 듯한 굉음이 점차 가까워지며 귀청이 얼얼했다. 그와 함께 진은 에리필들과 생이별하게 만든 원흉이 숲의 자식들을 터트리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크크크, 여전히 무식하게 크군.” 진은 100여 라키르에 이르는 파마란트를 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는지 2 수키르를 눈 깜짝할 순간에 격하고 날아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어이, 오랜만이야!” “크아악!” 진이 바로 그의 얼굴 앞에 나타나자 당황했는지 파마란트가 괴성을 지르며 40여 라키르에 이르는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진은 대기를 파괴하며 쇄도하는 그의 팔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들려지는 오른 손! 팍! 무시무시한 거력을 품고 있는 파마란트의 공격과 부딪힌 것 치고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이 작고도 가녀린 손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파마란트의 팔에 살짝 붙인 손바닥이 슬쩍 도는 가 싶더니 100여 라키르에 이르는 파마란트의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떠오른 상태에서 한 바퀴 돌더니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졌다. 쿠아~~앙! “괜찮아?” 진은 자신이 공격해놓고도 도리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파마란트는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썼다. “아니, 너 말고.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하겠냐? 난 보드라운 땅이 너 때문에 구멍이 난 게 너무도 안타까워서 말했을 뿐이라고.” “크아오!” 파마란트는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 듯했다. 진의 말에 격분하며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진은 그의 모습에 도리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파슥!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 대기를 화끈거리게 만들었던 진이 파마란트의 머리를 발로 뻥 차버린 뒤에야 그 소음이 울렸다. “끼에엑!” 구구구구구구구! 콰쾅쾅쾅! 진의 발에 한대 맞은 파마란트의 몸이 땅을 움푹 파며 주르륵 밀려나다 허공을 격하고 날아온 신기에 온 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어때? 많이 아프지? 하지만 우리가 너 때문에 겪었던 고통은 이것에 비하면 장난이라고!” 진은 파마란트 때문에 샤넬리가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했으며 목숨을 바친 그들의 죽음이 개죽음으로 만든 원흉이 바로 파마란트라는 것을 뒤늦게 들었었다. 그렇기에 진은 유라시아드의 악한 사념보다도 파마란트가 더 재수 없었다. [진아, 이제 그만해. 너랑 저 녀석이 계속해서 싸울수록 피해 입는 것은 이 숲일 뿐이야.] “으음, 내가 잠시 깜빡하고 있었어. 미안.” [나한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어쨌든 빨리 끝내!] “알았어!” 엘뤼시온의 말을 들은 진은 뜨겁게 달궈졌던 마음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허공에다가 복잡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폭! 흡!” 진의 음성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복잡하게 그려졌던 문양에서 신기가 찬란한 빛을 발했고 그 빛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키려는 파마란트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파아앙! 빛이 들어가고 얼마 뒤, 파마란트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터졌다. 그러나 진이 흡의 결까지 운용했기에 사방으로 뻗어가는 기운은 그의 몸 안으로 한정지어졌고 덕분에 진은 파마란트의 내장물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역겨운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쿵, 쿠웅! 파마란트의 몸 안에서 터진 폭발이 대단했는지 100여 라키르에 이르는 파마란트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졌다. 이를 말없이 지켜보던 진이 뜻 모를 말을 남기고 몸을 날렸다. ‘유라시아드에 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어!’ “흐음, 벌써 10년이 다 된 건가?” 지로브는 굵다란 나무뿌리 사이에 태아처럼 웅크린 상태로 있다 두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체내시계가 아직 십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지?” 이런 일은 지난 삼십 몇 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인지라 지로브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때였다. 엄청난 기운이 외부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운 가운데……. 바로 자신의 상극인 업을 막는 자의 느낌이 감지되었다. “허허허, 하늘은 나를 또 다시 버리려 하는 가?” 지로브는 허탈했다. 전신의 모든 감각을 날뛰게 만드는 것만 보아도 상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듯 했다. ‘그때도 그랬었지. 하늘은 나를 만들고 세필로스 그 개 같은 놈을 이 땅에 만들었었지.’ 마법사들 사이에선 전설이나 다름없는 초마스터인 해키에스 지로브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출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후후후,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나는 하늘을 뒤엎을 힘을 엎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지. 나의 힘은 비록 예전보다는 강해졌으나 당년의 세필로스보다도 약하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나 나는 이 무한할 정도의 지식으로 인해 또 다른 강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바로 힘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 후후후, 나의 운명은 여기까진가!’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자신이 거하고 있는 거처를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크헉!” 지로브는 유라시아드에 전해지는 충격이 뿌리로 전해져 고스란히 그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피를 울컥 토한 지로브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유라아시드의 뿌리가 갑자기 방전현상을 일으켰고 그곳에서 생긴 기운들이 일제히 지로브의 머리로 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악!” 지로브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평소에도 방대한 양의 지식을 받아들이느라고 몸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켰었는데 그가 이제껏 얻었던 지식에 육박하는 양이 한순간에 머리로 들어오니 제아무리 천재라 자타가 공인하는 지로브라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지로브의 정신은 붕괴됐고 그의 금안은 붉은 광기를 띠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크크크!” 붉은 눈을 희번득거리며 광기어린 웃음을 터트리던 지로브는 미친 상태로도 견딜 수 없었는지 결국 의식을 잃었다. 얼마 뒤,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깔린 땅 안에 검은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유라시아드의 핵이었는데 그것이 엄청난 충격에 밑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검은빛은 이내 지로브를 감쌌고 ‘쾅쾅쾅쾅!’하며 연속으로 터지는 폭음이 파괴의 마성을 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지로브를 감싸고 어둠만이 존재하는 땅속에서 사라졌다. 진은 신기했다. 오백 라키르에 달하는 유라시아드라 불리는 커다란 나무가 왜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을 풀어줄 이는 없었다. 이미 유라시아드는 엘뤼시온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인간처럼 손을 탁탁 털며 돌아보는 엘뤼시온을 보며 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다 끝난 거야?” [응, 이제 이곳은 옛날처럼 돌아올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네가 걱정하는 것도 해결된 것 같더라.] “하여튼 너에겐 비밀을 만들 수가 없어.” 진은 자신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는, 물론 그것이 당연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엘뤼시온의 말에 짐짓 투덜댔다. 엘뤼시온의 말마따나 진은 유라시아드에 들어오며 뜻하지 않은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업을 수행하는 자를 막는 것! 샤넬리의 몸에 있던 고니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업에 대한 더욱 많은 양의 지식을 알게 된 진은 업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한 때에, 비록 다른 일 때문이기는 하지만 유라시아드에 들어오는 순간, 업을 수행하는 자만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감지한 것이다. 그리고 엘뤼시온의 마지막 일격과 동시에 그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다행히도 자신이 얻은 힘을 제대로 사용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엘뤼시온이 한 일이 곧 자신이 한 일이니 깐. 진은 모든 일이 잘 풀렸다는 사실에 절로 긴장이 풀려 엘뤼시온과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농까지 주고받았다. 그러다 곳곳에서 ‘퐁퐁퐁!’하며 요정들과 정령들이 나오는 것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진을 구해준 요정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유라시아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진과 엘뤼시온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라시아드를 떠날 수 있었다. 아니, 이제 유라시아드라는 나무는 없어졌으니 그 이름을 달리 불러야 할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후세의 사람들이 할 일이니. 진은 또 다시 자유를 느끼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물론 이 여행 아닌 여행이 끝나는 순간 그 자유는 살벌한 눈으로 바라볼 여인들에 의해 순식간에 깨어질 테지만 말이다. ================================================================== 후후후, 이번 제국 통일~ 어쩌고 장도 끝이났군요. 후후후, 아무리 생각해도 소제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듯해...송구스럽다는...에공...어쨌든...오늘 어느 정도 썼으니...슬슬 자볼까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고로 지금 시각 새벽6시 40분입니다.^^ 230화. 반갑지 않은 만남. 1 제국의 수도 가에아는 치열했던 전쟁이 끝나자 언제나 그랬듯 활기를 띠며 이곳이 과연 제국의 수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와아, 역시 제국의 수도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북궁소소는 린의 옆에 딱 붙어서 쉴 새 없이 종알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우며 린의 설명을 듣는 여인들과 짐짓 듣지 않는 척하면서 다 듣는 두 노인네들. 그들의 모습에 스테판과 아미르는 실소를 흘리며 뒤따르고 있었다. 이들 일행의 모습은 그야 말로 선계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듯 했다. 너무도 아름답고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네 여인과 여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힐 만큼 잘 생긴 린. 그리고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선풍도골의 두 노인. 오로지 2라키르 20키르에 육박하는 스테판만이 이 한 폭의 신선도의 옥의 티랄 수 있지만 그는 또 그 나름대로 천신의 신장처럼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그 누구도 관심은 가질지언정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이 걷는 커다란 대로는 바쁘게 걸어가던 사람이든 거만하게 뒷짐을 지고 걸어가든 사람이든 옆으로 길을 비켜주기 위해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들은 길을 비켜주면서도 여인들과 린을 힐끔 쳐다보며 얼빠진 표정을 짓거나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들은 스테판의 위압적인 육체와 눈빛에 속으로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 모습을 일행은 보지 않는 척 하면서도 다 보았기에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소문은 순식간에 가에아 전역으로 퍼졌다. 제국인들에겐 전쟁 때문에 졸인 마음을 풀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덕분에 일행은 새까맣게 몰린 인파를 뚫고 가야 되서 그들의 생각 보다 하루나 늦게 황궁 코린토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앗,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코린토스의 동문을 맡고 있는 수비대장은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못 차리다 싸늘한 시선을 느끼고 놀라 다급히 물었다. 이에 린은 평소 잘 짓지 않는 웃음을 살며시 입가에 걸며 말했다. “전 올슈레이 기사단의 부대장인 린이라 합니다. 형님, 그러니깐 진 형님 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수비대장은 린의 말에 한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비록 올슈레이 기사단은 아니었으나 이 사람이 전 올슈레이 기사단의 부대장인 린일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조각 같이 잘 생긴 얼굴에 카리스마적인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위압적인 기세를 뿜을 존재라면 진을 제외하면 그의 의제인 린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자였다. 그래서 고위층에서 그를 동문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한 것이지만. “린 경께선 신분을 증명할 호패를 가지고 계십니까?” 린은 그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황룡이 새겨진 은빛 호패를 보여주었다. 은빛 호패는 최소 자작 이상의 직위에 오른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이를 본 수비대장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방금 전, 무례했던 점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진 경께서는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며칠 전에 궁을 나가셨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좀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수비대장의 말에 린의 얼굴이 살짝 찌푸렸고 두 여인의 얼굴은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기 때문이다. 수비대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분명해 보이는 두 여인이 울상을 짓자 마치 자신이 큰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들을 달래 줄 방법이 없었다. 또한 그녀들에게 말을 붙일 용기조차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는 린들이 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아야 했다. 이로써 한 남자의 로망은 힘겨운 짝사랑의 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린이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황궁 코린토스 전역으로 퍼졌다. 이에 황궁의 시녀들은 괜스레 얼굴을 붉혔고 올슈레이 기사단은 기분 좋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린은 그와 함께 온 모두와 함께 데이릭을 알현했다. 데이릭은 린과 함께 온 자들이 대단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특히 두 노인의 경지는 이제는 마스터 최상급에 오른 데이릭으로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경지였다. 게다가 전에 본 아미르와 스테판의 경지 역시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 그들 역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듯해 무인으로써 호승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제국의 황제였기에 그들을 향한 호승심을 억누르고 웃음 지으며 환대했다. 한편 진중선과 북궁신은 제국의 황제라 해도 뭐가 그리 대단하겠냐 했지 만 막상 만나보니 모든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드넓은 바다를 보는 듯해 놀라고 있었다. 또한 그의 실력 역시 제국인치고는 무척이나 높아 앞서 무인의 길을 걸어간 선배로서 후배를 바라보는 눈으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데이릭 역시 그들이 자신을 대하는 분위기가 황제를 대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이렇게 대해주는 게 마음이 편했다. 린의 이야기를 들어본 바, 이들 두 노인은 한 쟈크 대륙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라 들었기 때문에 황제라는 자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져 데이릭 자신이 그들의 자연스런 태도를 환영했다. 그리고 데이릭은 린과 함께 온 여인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는데 그녀들의 인사를 받고 린의 설명을 들은 그의 얼굴은 조금 난감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저기 하린과 하연이라고 말한 여인이 결국 내 사위가 될 진이와 관련된 여인이란 말이지?’ 린이 이렇듯 직선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데이릭은 눈치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이렇듯 완벽에 가까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어찌됐든 데이릭은 난감했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내가 여러 명의 여인을 거느리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라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하기야 이미 그의 딸을 포함한 4명의 여인이 진의 여인이니 한, 두 명 늘어난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었다. 데이릭은 평소 진이 자주 사용하는 자기 합리화를 순식간에 마치며 ‘허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날 밤, 린의 회궁 축하 파티가 열렸다. 그러나 그 파티는 몇몇의 인물들 간에 벌이는 신경전 때문에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로 파티가 진행되었다. 허나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자 고위급 인사들이 좋아라 하며 즐기기 시작해 그들의 신경전은 다음날로 미뤄지게 되었다. “험험,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들어오게.” 진중선은 자신의 방 앞에서 서성이는 세 사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창한 제국 공용어를 사용하며 그들을 불렀다. 끼익!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에리필, 헌트, 카이슨이 진중선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들 세 사내는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다.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 그러나 그런 그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지는 못했는지 주름살도 몇 줄 늘었고 무엇보다도 광기에 젖어 있던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마음을 절로 무겁게 만들었다. “일단 앉게.” 진중선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눕히며 세 사내에게 말했다. 그리고 말없이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와 소파에 앉는 세 사내. 또 다시 적막과도 같은 고요함이 장내를 지배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아름다운 문양과 색상이 돋보이는 바닥 위를 덮고 있는 양탄자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그 녀석과 약속했던 대로 내가 사과를 해야겠지. 물론 입으로 한 약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룩한 녀석에 대한 예의는 차려야겠지. 그런데 린이가 말한 대로 정말 그 녀석이 지금의 나보다도 강해진 건가?’ 진중선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세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진정이 담기지 않은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그때의 일은 미안했네.” “흥, 그런 형식적인 사과를 하려고 이곳까지 행차하신 건가?” 헌트는 장내에 들어올 때부터 얼굴이 크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딴에는 지금까지 참은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어제 축하 파티가 열릴 때, 진중선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리의 십자 흉터가 피처럼 붉게 상기되었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연 사람이 다름 아닌 황제였기에 제아무리 그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그때의 당사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느끼기엔 진중선은 지금 그의 말마따나 형식적인 사과를 하 고 있었다. “허허허, 자네 많이 컸군.” 진중선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헌트를 쳐다보았다. 순간 헌트는 온 몸을 엄습하는 공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진이 사라지고 난 뒤, 엄청난 수련을 통해 마스터 상급에 오른 그였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칠신의 한명인 진중선이었다. “으으으!” “그만하십시오!” 기가 잔뜩 담긴 에리필의 외침에 진중선은 기운을 보내던 것을 잠시 멈추며 그를 보았다. ‘그때도 이 눈이었어. 흥미롭다는, 마치 장난감을 보는 듯한 눈. 정말 꿈에도 보기 싫은 눈이었지. 하지만 난 결국 꿈속에서도 그 눈을 피할 수 없었어.’ 에리필은 그가 아무런 기운도 돋우지 않고 쳐다보는데도 숨이 꽉 막히는 것을 느꼈다. 예전의 기억이 현재인 지금의 자신에게 유입되어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가 되었던 과거의 자신이 되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그때의 그가 아니었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했었다. 그 노력 위에 지금의 그가 있었다. “후웁, 하아~!” 진중선은 에리필이 숨을 고르며 흔들렸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당했던 자들이 자신의 눈을 보는 순간 보이는 반응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무력이 높아도 무의식에 각인된 공포와 두려움은 어지간해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이 사내는 그것을 극복하고 있었다. “좋군.” “뭐가 좋다는 말입니까?” “자네의 마음을 칭칭 감고 있던 나라는 쇠사슬이 풀려서 좋다는 말일세.” 순간 에리필은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눈앞에 있는 그에게 이렇듯 칭찬을 들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이 벅찬 감정은 너무도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이런 그를 놓아두고 진중선은 멍한 표정으로 있는 헌트와 카이슨을 보며 말했다. “자네들도 예전의 자네들이 아니군.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빡빡머리 친구 에게는 피의 냄새가 지독히도 났었지. 물론 지금도 피의 냄새는 나지만 그 때처럼 악취는 아니군. 아니, 지금 나는 피 냄새 때문에 지금의 자네가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자네!” “예에?” 카이슨은 생각에 잠겨 있다 진중선의 부름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중선은 그를 따스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에 카이슨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네는 솔직히 말해 이 두 친구처럼 무골이 아니었네. 그래서 자네는 벽을 뛰어넘지 못할 줄 알았지.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어. 그 점 미안하게 생각하네.” “…….” 카이슨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기억에 있는 진중선은 이런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곳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천무장원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들한테 사과를 했으며(물론 진심으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성취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세 사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중에 만나면 복수를 하리라 다짐했던 그였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이상하게도 그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들이 혼란스런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자 진중선이 소매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주머니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세 가지 물체를 들며 말했다. “내가 자네들에게 사과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걸세. 나 역시 믿기지 않 는 일이니 말일세. 하지만 자네들은 내가 자네들을 놀린다고 생각하지 말게. 나는 한 친구와 약속을 했었고 그가 그것을 이행했기에 그것을 지키려는 것이네. 자, 받게! 그리고 다시 한번 미안하네.” 진중선이 꺼낸 물체를 보는 그들의 눈은 격동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친구가 누군지 어렴풋이 떠오른 그들의 가슴은 자랑스러움으로 뿌듯했다. 자신들이 비록 복수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분신인 진이 그와 한 약속을 이행해 이렇듯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니 자신들이 복수를 한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목걸이 두개와 반지 하나. 그것은 자신들이 그에게 빼앗긴 물건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했던 그 물건! 이제야 이것들을 찾게 된 것이다. 에리필과 카이슨은 이그젝터를 증명하는 목걸이를 받아 목에 다시 걸었다. 그리고 헌트는 자신의 아버님이 유일하게 남긴 반지를 손가락에 끼며 두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드디어 찾았어요. 비록 제 힘으로 찾은 것은 아니지만 저의 분신이 찾아온 거니 아버지도 기쁘시죠?’ 헌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목걸이를 쓰다듬는 에리필과 카이슨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것을 빼앗기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힘이 없어, 장난감이 되고 그 당시 자신들의 신념이었던 그것을 빼앗겼을 때, 얼마나 하늘을 원망했던가! 하지만 더 이상 울 필요도 없으며 하늘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은 더 이상 이 문제들로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뻐서이니 울어도 상관없다. 한편 진중선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벅찬 감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하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록 그 당시에는 삶에 대한 갈망이 지나쳐 심마에 사로잡혀 행한 것들이며 그것에 익숙해져 반심마인 상태로 또 다시 과오를 되풀이 했다고는 하지만 분명 잘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로 인해 이들은 이렇듯 오랜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아온 것이다. “미…안하다.” 진중선의 입에서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사과가 흘러나왔다. 이에 모두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양탄자를 적시 는 진중선의 뜨거운 눈물을. ‘그도 인간이었던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 같지도 않은 늙은이지만 분명 세월은 그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험험,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몸을 풀어줘야지. 안 그런가?” “아, 맞아. 간만에 옳은 소리를 하는군.” 헌트의 말에 맞장구치며 카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에리필이 진중선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 사이에 있었던 은원은 이제 없는 겁니다.” 자신이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을 에리필이 하자 진중선은 고마웠다. 비록 사 과는 할 수 있었지만 그들과 엮어있는 은원에 관한 말은 할 수 없었다. 사실 처음에 한 사과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은 사과였다. 그는 그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자신의 마음은 ‘약속을 했으니 그것을 지킨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뜨거운 눈물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으며 그것을 입 밖으로 힘겹게 꺼냈다. 하지만 사과는 할 수 있을지언정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하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너무도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그 말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때, 방문을 나서던 헌트가 돌연히 돌아보며 거친 말투로 말했다. “노인장 때문에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덕분에 이 정도나마 강해졌소. 이 외상은 받을 생각하지 마시오.” “큭, 그래 알겠네. 그 외상은 애초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네.” “그럼 다행이고.” 헌트는 그 말을 하고 에리필들에 의해 끌려갔다. 그런 그들 모습을 보며 진중선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왜인지 북궁신이 보고 싶어졌다. 이러한 마음을 그에게 말하면 “드뎌 노망이 났구나!”라고 할 테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얼마 뒤, 활짝 열린 방문은 비록 진중선이 북궁신을 만나러 떠나서 허전했지만 후련한 진중선의 심정처럼 어딘가 편안해보였다. ================================================================= 음... 밑에 쓸 말이 없군요. 지금 대략 머리가 다운되기 직전이라는...역시 어쩔 수 없이 야참을 먹어야 겠군요. 이번 다운은 과도한 사고 때문이 아닌 에너지 부족 때문이라는..쿨럭!!! 231화. 반갑지 않은 만남. 2 진이 황궁으로 돌아온 것은 린들이 도착하고도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그가 이렇게 늦게 돌아온 이유는 순전히 자유를 만끽하는데 정신이 팔려서다. 그래서 황궁 안으로 들어가는 진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이 황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안으로 전해졌고 덕분에 그를 환영하는 인파들이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진은 리오스와 마치 친형제처럼 사이좋은 모습으로 서 있는 린을 볼 때는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 보여 만족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세 사부와 함께 있는 진중선과 북궁신을 보며 꿈을 꾸고 있나 싶어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의 네 여인들과 함께 있는 두 여인, 그 중에 한명은 누군지 알 수 없으나 검은 머리의 매력적인 흑장미를 연상시키는 여인은 분명 그가 아는 여인이었다. “하, 하린!” 진은 더듬더듬 거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순간 네 여인의 눈 꼬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진은 그녀들의 살기 어린 표정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하린과 함께 있는 미인, 분명 낯익은 얼굴, 아니 낯익은 눈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예?” “호호호, 설마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요?” 그 여인은 한 쟈크인인 거 같은데도 제국 공용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녀가 제국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분명 낯이 익긴 한데 그녀가 누군지 몰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여인은 진이 자신을 못 알아보자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변모한 모습에 만족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녀는 진이 자신 없는 말투로 하는 말에 크게 감동했다. “저, 혹시 하연이… 아니겠지? 하하하!” “…… 흐윽! 흑흑흑!” 진은 여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자 당황해 그녀를 달래려 손을 내밀었다. 순간 앞에 있는 네 여인에게서 전해지던 살기가 더욱 진해져 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진중선이 나서며 그를 구해주었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난 제대로 봤단 말이야. 이 아이는 자네 말처럼 하연이가 맞다네.” “에엥? 정말이에요? 아니, 근데 천골에서 안 죽었어요?” 진은 너무 오랜 만에 만나 의식적으로 반말을 하던 것도 잊었다. 하지만 진중선은 그가 매번 말을 놓다 존댓말을 쓰자 크게 감동을 받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지금 나에게 존장의 예우를 해준 건가? 하하하!” 그제야 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물리려 했다. 이 러한 낌새를 먼저 눈치 챈 에리필이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진아, 어르신과 우리는 이미 모든 은원을 깨끗이 정리했으니 더 이상 어르신께 무례를 범하지 말거라.” “…으음, 사부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렇게 할게요.” 진은 에리필의 얼굴이 매우 밝은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 도 그의 말마따나 모든 은원이 깨끗이 정리된 듯 했다. 사실 진도 진중선에게 말끝마다 반말을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많은 일이 갑자기 벌어져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진은 방금 전에 진중선이 한 말을 떠올리며 하연을 쳐다보았다. “저, 정말 하연이야?” “으응.” 수줍은 듯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병 때문 에 그런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듯 아름다운 미인이었다니. ‘하기야 하린과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면 이 정도의 미모는 당연한 것인지도.’ 진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아름다워져서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힘들 때 힘이 되어 준 하연이 병을 고쳤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진의 이러한 미소는 네 여인의 오해를 사기에 알맞았다. “당신, 우리로도 부족한 거예요!” “후우, 내가 괜한 결정을 내린 건가?” “정말 실망이에요, 흐윽!” “남자는 다 늑대야!” 자신들 나름의 서열대로 말하는 그녀들을 보며 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그가 뭐라 말하려는데 친히 이곳까지 마중 나온 데이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회포는 안으로 들어가서 푸는 게 어떤가?” 그의 말은 곧 법이니, 네 여인은 할 말이 많이 남았지만 그의 말에 따랐다. 이에 진은 데이릭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온 진은 네 여인이 쳐들어오는 것을 목도했다. “그 여인들은 또 뭐죠?” 첫째인 안젤리나가 침대에 누우려는 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따발 총처럼 쏟아지는 여인들의 질문 공세! 허나 진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할 말은 그게 다야?” “으윽, 다, 당신이 없을 때, 우리가 그 여인들과 얼마나 어색한 시간을 보 낸 줄 알아요?” 모처럼 용기를 낸 레이카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하자 진이 자리에서 일 어나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에 흠칫 놀란 표정을 지은 레이카였지만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진은 황홀한 표정을 짓는 레이카를 힐끔 보고 부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세 여인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그의 품으로 안겨드는 여인들! 진은 그녀들의 몸에서 나는 좋은 향기에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할 일이 있었다. “내가 모두를 사랑하는 거 다 알고 있죠?” 여인들은 진이 평소 사용하지 않는 존댓말을 사용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듣기 좋아 고개를 끄덕였다. 진은 그런 그녀들을 하나씩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안젤리나는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었고 샤넬리는 나에게 설렘을 가 르쳐주었죠. 그리고 모나코는 언제나 따스함으로 나를 보듬어주었고 레이 카는 마치 들장미같이 톡톡 튀는 매력이 아주 귀여워요.” 그녀들은 진에게 이러한 말을 처음 들었다. 진과 한동안 같이 살았던 안젤 리나조차도 이렇듯 직설적인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기에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진은 여인들이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듯하자 만족 어린 미소를 지었 다가 ‘방심은 금물!’이란 생각을 하며 다급히 숨겼다. 그리고 그녀들을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들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내가 안젤리나, 샤넬리, 모나코, 레이카 모두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그녀들도 사랑해요.” 순간 네 여인은 환상에서 깨어나며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달콤한 그의 목소리는 자신들의 마음을 쿡쿡 쑤시는 비수였고 몸이 으스러져라 안고 있는 그의 손은 그녀들의 육신을 속박하는 갈고리였다. 여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진의 몸을 밀었다. 이에 당황한 진은 괜히 데이릭을 떠올리며 속으로 투덜댔다. ‘이렇게 존댓말을 쓰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주며 말하면 그녀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은 그럭저럭 통한 거 같은데. 그 다음 방법인 분위기를 잡은 후,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된다는 것은 순 엉터리잖아!’ 진은 자신의 미숙함을 탓하지 않고 괜한 데이릭에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여인들을 보게 되었다. ‘휴우, 그냥 내 스타일대로 하자!’ 마음을 정한 진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일단 자리에 앉아봐.” 여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데이릭 스타일을 따른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을 달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진은 이미 자신의 스타일대로 나가기로 했다. “앉으라고 했어.” 나직하나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긴 음성이었다. 여인들은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려 했으나 몸은 그녀들의 마음을 거역하고 있었다. 진은 그녀들이 자리에 앉자 한 사람씩 쳐다본 뒤 천장을 응시하며 말했다. “일단 내 이야기부터 들어. 그 다음에 이야기를 하자. 일단 나는 한 쟈크 대륙에 갔었어.”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근 한 시간동안 이어졌고 진은 이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두 사람 다 받아들일 거야. 솔직히 그녀들 역시 내 마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든. 물론 마음이 편치 않을 거라 생각해. 그러나 불과 얼마 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 해봐. 그때의 마음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여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 일단 잘 생각 해봐. 그리고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을 마련해놓았을 때 말을 해줬으면 해. 우선 난 이렇게 시끄럽고 복잡한 일이 존재하는 이곳에 있기 싫으니깐 한동안 떠나 있을 거야. 만약 그녀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를 보긴 힘들 거야. 그럼, 안녕!” 푸스슥! 말을 마친 진은 그녀들이 말릴 새도 없이 연기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순간 놀란 그녀들은 진을 찾아 헤매며 황궁을 들쑤셨으나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진이 사라졌다고 난리가 난 황궁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리오스의 거처에는 세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리오스, 진, 린이었다. 사라졌다고 알려진 진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형님, 그런데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 까요? 계속 저나 리오스 형님한테 형님이 어디 계시냐며 물어봐요.” “험험, 너랑 형이 잘 할 거라 믿는다. 그러니 너는 다른 데는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거나 들키지 않도록 해라. 그리고 밖에 상황을 잘 살피고 보고하는 것도 잊지 말고.” 진은 린의 걱정된다는 표정을 싹 무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리오스. “그건 진이 말이 맞아. 만약 작전을 수행하다 들켜버리면 아니한 만 못하니깐.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합심하여 처리할 문제가 필요해. 진을 사랑하는 여인들은 외모나 가문 모두 훌륭해 자존심이 대단하거든. 그런 여인들을 설득한다는 건 상당한 무리가 따르지. 그러니 이와 같이 강하게 나가면서 그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상기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뭐, 그건 그렇고 린이 너나 나 같이 한 여자만을 사랑하면 이런 잔머리는 굴릴 필요도 없을 텐데. 휴우, 이게 다 업보라는 거다. 이 녀석아!” 리오스는 말을 마치며 진의 머리에 꿀밤을 주었다. 린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를 느낀 리오스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먹고 싶냐?” “예? 아, 그게……. 아앗!” 린이 말을 끌자 리오스는 가차 없이 그의 머리에다 꿀밤을 먹였다. 그리고 짐짓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린. 리오스는 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에 린도 따라 웃음 지었다. 평소 잘 웃지 않는 두 사람이 웃자 평소 잘 웃기로 유명한 진이 안 웃을 리 없었다. 그들 세 형제는 웃는 것도 힘든지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진은 괜한데 승부욕이 발동해 마지막까지 웃고 있었다. 리오스와 린은 이러한 진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멈추었다. “컥컥, 아~ 목 아파. 흠흠, 내가 이겼지?” 목이 아픈지 목을 어루만지며 진이 말하자 두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진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헤헤!’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그는 뭐가 생각났는지 리오스를 보며 물었다. “근데 형,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형이 좋아한다는 그 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진의 갑작스런 물음에 마이 페이스를 깨지 않던 리오스가 당황했다. 그리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진과 무표정하나 궁금하다는 표정 한 줄기를 그리고 있는 린의 압박을 못 이긴 그는 결국 프린세리아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들도 결국 남자이긴 했는지 대부분의 남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가 진이 실종된 지 일주일째의 일이었다. ================================================================= 에공... 정말 맹세합니다. 다음 부턴 할렘물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크흑... 그냥 옛날 구무협처럼 그냥 아무 언급 없이 여인들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또....크흑...하튼.... 진은 별로 힘이 안드는 것 같고 저만 힘이 드는 것 같군요. ㅎㅎㅎ 232화. 음모. 1 도요이프 부인, 본래 이름은 아카렌시아 드 제니스. 그녀의 가문 아카렌시아의 여인들은 단 한번만 사람을 보아도 그가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니스는 그 여인들 중에서도 순수한 혈통인 직계였기에 사람들의 본성을 간파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 프린샤와 만났을 당시 그의 본성을 간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반 호기심과 호승심 때문에 그와 가까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본성을 볼 수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도 권력과 지배의 욕망으로 똘똘 뭉친 마음! 사라진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렇게 변해서 돌아온 것이다. 제니스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 자신의 감각은 그를 피하라고 하고 있었다. 친인들까지 집어삼킬 정도로 그의 욕망은 거대했고 추악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설사 그가 자신을 배신할지라도 자신은 그를 배신할 수 없었다. ‘후우, 그렇지만 만약 내가 느낀 게 사실이라면 내 딸 프린세리아는 무슨 죄가 있어 인생을 망쳐야 하는가!’ 그녀는 그녀의 딸 프린세리아에게 생각이 미쳤다. 프린세리아는 리오스가 죽었다고 알려지자 삶을 다 살은 듯한 표정을 하며 매사를 의욕 없이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딸이지만 추악한 욕망에 잡아먹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늦은 밤, 프린세리아를 조용히 불렀다. “이 단약은 우리 가문의 직계 여인들에게만 내려오는 특별한 약이다. 우리 아카렌시아 가문은 자유의 여신 비르디아님의 축복을 받았고 그 옛날 우리 선조가 이 약을 그분께 직접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 약이 얼마만큼 큰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구나.” “엄마,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프린세리아는 제니스의 난데없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제니스는 그런 딸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 많이 힘들 거야. 너도 느꼈겠지만 너희 아버지는 돌아오신 뒤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셨단다. 그건 너도 느끼고 있지?” 프린세리아는 프린샤를 떠올렸는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느끼기로도 사라졌던 프린샤가 돌아온 뒤로는 그에게서 끈적끈적한 기운과 더럽고 추악한 기운이 그녀를 잡아먹을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제니스는 공포에 떠는 프린세리아를 조용히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괜찮아.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자유의 여신 비르디아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거다. 얘야, 너는 영리한 아이니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 거다. 부디 몸 건강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거라.” 그리고 프린세리아는 그녀가 전해주는 파란빛 단약을 먹었다. “그가 황궁에 있는 한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기는 힘들 듯 하군요.” “인파에 섞여 그를 잠시 본 적이 있는데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거 같았습니다, 휴우!” 라젠티오와 프린샤는 이마를 맞대고 고민을 해보았으나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들 개개인의 힘으로는 진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라젠티오의 눈이 순간적으로 탐욕으로 일렁거렸으나 프린샤는 그러한 기색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별 영양과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똑똑! “들어오너라.” 프린샤는 방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문이 열리며 초점 없는 눈을 한 프린세리아가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매정한 게 유일한 옥에 티요.” 라젠티오는 테이블 위에 다과를 내려놓는 프린세리아를 보며 혀까지 찼다. 하지만 프린샤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지 그녀가 차려온 다과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에 말했던 그의 형이 살아서 돌아왔다던데, 그 문제는 또 어떻 게 할 생각입니까?” “으음, 리오스 그 녀석이 살아 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뭐, 그 녀석이야 바티칸 시에 거하고 있다하니 빠른 시일 내로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 프린샤는 말을 하며 힐끔 프린세리아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이에 의미가 모호한 미소를 지은 프린샤는 프린세리아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프린세리아는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이 없는지라 허리를 숙여 보인 뒤, 방문을 나섰다. 방문을 나서는 그녀의 눈은 방금 전의 이지가 상실된 눈이 아닌 두 개의 반짝이는 별이 되어 있었다. ‘그가 살아 있어. 하지만 아버지가 그를 죽이려고 해. 안돼! 아버지가 그를 죽이도록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마음이 다급해지자 그녀의 걸음도 빨라졌다. 프린세리아는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문은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이에 의아함이 들긴 했지만 그녀는 바티칸 시로 가 그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그녀는 평소라면 놓치지 않았을 경비병들의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성문 위, 멀어져가는 두 인마(人馬)를 보는 두 사내가 있었다. “당신은 정말 냉정한 게 옥에 티요.” “후후후, 미끼로 미끼를 잡고 결국 대어를 잡으려는 수는 당신이 짜낸 것이요. 나는 단지 그것을 따른 것이고.” 프린샤는 멀어져가는 프린세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이제 황궁에 보낼 편지만 작성하면 준비는 다 된 건가?” 라젠티오는 그런 프린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참에 그의 힘을 흡수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순간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힘 그 자신이 될 거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프린샤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리오스! 당신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처음엔 잘못 들었다고 치부했지만 아버지와 어떤 분이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나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서글퍼요. 저는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가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것을 눈치 채 신 것 같아요. 황궁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해버리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 바티칸 시로 가고 있어요. 우리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그곳. 저는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하지만 너무 많이 기다리게는 하지 말아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너무도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프린세리아가! 급하게 쓴 듯한 날아가는 필체, 그러나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프린세리아의 필체였다. “프린세리아!” 그녀의 이름을 짧게 불러보았다. 그러나 가슴만 더욱 아파올 뿐이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다.’ 리오스는 당장에라도 바티칸 시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냉철한 이성은 만약의 사태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함정이라면? 프린샤 그놈이라면 분명 이러고도 남을 거야.’ 리오스는 프린샤의 잔혹하고도 치밀한 성격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가 야 했다. 이것이 함정이라도 그는 가야 했다. 프린세리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내가 힘을 얻으려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스스로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 였고, 프린세리아와 함께 넓은 창공을 벗 삼아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한 것 이 바로 나머지 하나였다.’ 리오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이것이 프린샤의 함정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비를 해둬야 했기 때문이다. ‘진에게 부탁을 해 볼까?’ 하지만 그것은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동생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의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단 말인가?’ 리오스는 봉인된 힘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인간계로 내려와 얻은 힘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의 그의 성취에 비하면 너무도 부족한 힘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올슈레이 리오스다. 자신의 여자를 자신이 책임지지 못한다면 이 이 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리오스는 현실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답지 않게 무모한 시도를 하기로 했다. 그는 지금 냉철한 이성이 아닌 뜨거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려는 것이다. ‘기다려, 프린세리아! 내가 곧 갈게!’ 리오스는 함정일지도 모르는 그곳을 향해 혼자서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한 시간 후, 리오스는 황궁을 떠나 바티칸 시로 향하고 있었다. ================================================================== 이제 슬슬 사건이 시작되는 군요. 후후후 233화. 음모. 2 진은 리오스도 떠나고 없어 무척이나 심심한 상태였다. 린은 동정을 살피러 나가 있는 상태인지라 혼자서 방안에 있어야 했다. 그때, 린이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혀, 형님! 큰일 났습니다.” “무, 무슨 일이냐?” 진은 린의 잘 변하지 않는 얼굴이 당혹스러움을 띠고 있어 그도 덩달아 놀라 물었다. 순간 린의 얼굴에 죄송스러운 감정이 스쳐지나갔지만 진의 눈은 그의 입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혀, 형수님들께서 자결하시려 합니다.” “뭐라? 무엇 때문에 그런단 말이냐!” 진은 어이가 없었다. 멀쩡히 잘 있던 그녀들이 갑자기 왜 자결하려 한단 말인가! “그게 형님께서 사라지신 게 형수님들의 질투 때문이었다며 이 죄를 죽음으로 갚으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그녀들은 어디에 있느냐?” “형님의 거처인 동궁에 계십니다.” 진은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바람처럼 사라졌다. 린은 급히 이동하는 진의 기운을 느끼며 슬며시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형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형수님들께서 협박을 하셔서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진이 이 말을 들었다면 바람을 부수며 날아가던 그의 몸이 어떻게 되었을 까? 아마도 공중에서 휘청거렸을 거다. 진은 그의 거처인 동궁으로 빛과 같은 속도로 들어왔다. 콰쾅! 문을 열 시간도 아깝다는 듯 아름답게 세공되어진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 어온 진은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결하려던 여인들이 저렇게 웃음 지으며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진은 일이 잘못 돌아간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이 자리를 피하라 말하고 있었다. 진이 슬금슬금 뒷걸음치자 조용히 웃음 짓던 여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급히 말했다. “어딜가요?” 일사불란하다. 마치 입을 맞춰놓은 듯 그녀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입을 열었다. 이에 더욱더 불안감을 느낀 진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들은 웃지 않았다. “그곳에 숨어 있으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요?” 그녀들의 맏언니격인 안젤리나가 한발 나서며 말했다. 그리고 무안한 표 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짐짓 휘파람을 부는 진. 그런 그를 보니 안젤리나는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린 도련님께서 식사를 꼬박꼬박 방에서 하시는 것과 그것이 일인분이 아닌 이인분 혹은 삼인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아셨나요? 그리고 시아 주버니께서 린 도련님의 방으로 꼬박꼬박 찾아가시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우리가 모를 줄 아셨나요?” “하하하, 알고 있었어?” 진은 그녀의 추궁에 더욱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완벽한 계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허점을 보안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들에게 자신의 계책이 들켰다는 것이 더 중요할 뿐이다. “그러니깐 그게 말이지…….” 진은 말을 하며 뒤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지금은 삼십육계 줄행랑이 적용될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여인들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서방님은 매번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만 좋아하니 이 한 많은 생 살아서 무엇 하리~ 아이고~!” 울긴 우는데 마치 노래를 부르듯 이어지는 그녀들의 말은 진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잠시 멍한 상태로 있자 바닥을 치며 짐짓 우는 시늉을 하고 있던 여인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어 진을 붙잡았다. “어, 어어!” 진은 방심하고 있다 그녀들의 손에 붙잡히자 당혹에 찬 신음을 토했으나 그녀들은 그런 그의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흘기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들의 눈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일단 이 손부터 놓고 이야기하자. 절대 안 도망갈게.” “안 돼요. 또 도망갈 거잖아요.” 진은 그의 오른팔을 잡고 있는 하린을 보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녀들과 하린이 함께 하고 있다? 으음, 혹시 그녀들이 화해를 한 건가?’ 진은 그녀들 사이에 있는 하린과 하연이 자연스럽게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두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녀들은 오로지 진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며 그녀들 사이를 감도는 살기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호오, 그렇담 어찌됐든 내 계책이 통한 건가?’ 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들을 대표하여 안젤리나가 입을 열었다. “서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더 이상 우리끼리 다투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그녀의 말에 진의 고개가 서둘러 끄덕여졌다. 이 모습이 꽤나 우스웠는지 그녀들은 그의 소매를 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은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어도 좋으니 그녀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좋아 바보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그를 보며 하린이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칫, 바보 같아!” 덕분에 동궁은 웃음바다가 되어야 했다. 프린세리아는 바티칸 시에 도착해서 리오스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티칸 시가 그리 넓은 시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사람 하나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 아버지보다 빨리 그를 찾아야 할 텐데.’ 그녀는 마음이 절로 다급해져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주위를 수소문 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마치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바티칸 시의 모두는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프린세리아는 점점 지치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를 찾아야 하는데 찾을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바티칸 시에서 그를 찾기를 삼일, 결국 그녀는 지쳐버렸고 초췌한 얼굴로 발이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는 프린세리아였다. 바티칸 시는 여느 시와 다를 바 없는 도시다. 그러나 한 가지! 바티칸 시는 다른 도시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좋은 관광명소를 가지고 있다. 유브라시온! 유르라시온은 바다와 같이 넓은 호수다. 또한 새벽녘 안개가 자욱하게 호 숫가 위에 깔려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밀며 뿌려대는 빛깔이 수줍은 아가씨의 그것과 닮아 있어 많은 총각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브라시온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호수 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섬과 육지와 그 섬을 이어주는 가교 때문이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다리를 건너 섬에서 언약을 맺은 뒤, 반대편 다리를 통해 육지로 나오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곳. 그래서 유브라시온(영원한 사랑!)이라는 고대어가 이 호수에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유브라시온을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연인들 중, 한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유브라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프린세리아였다. “하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녀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호수에다 던졌다. 그리고 ‘퐁!’하며 작은 물기둥이 솟아올랐다가 넓게 퍼지는 파문. 프린세리아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한번 돌멩이를 호수에다 던졌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돌멩이를 호수에다 던졌는지 모른다. 하늘에 떠 있던 붉은 태양도 서산으로 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퐁! 퐁! 퐁! 퐁! 퐁! 퐁! 물찬제비처럼 호수면을 나는 돌멩이 하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는 프린세리아. 곧 그녀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졌고 그녀의 입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벌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잘 있었어?” 사위에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프린세리아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밤이라 더욱 잘 들리는 목소리. 순간 프린세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앗, 울긴 왜 우는 거야?” “미워요!” 리오스는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당황했다. 그러나 그녀는 촉촉하게 젖은 눈을 흘기며 그에게 안겨 들었다. 덕분에 리오스는 연신 ‘어, 어.’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회색빛 구름에 가려졌던 노란 빛깔의 달이 남색 하늘을 밝히는 게 보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프린세리아를 울리는 것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늘이여,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어둠은 저 달빛처럼 내가 물리칠 테니 더 이상 프 린세리아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아다오!’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는 리오스는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리오스와 프린세리아는 다리를 건너 호수 위의 섬에 도착했다. 섬에는 마치 커다란 식물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식물들이 있었고 지저귀는 새와 귀여운 동물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 늦은 시각에 방문한 손님을 보고 있었다. 리오스와 프린세리아는 섬의 가운데에 있는 언약의 신전으로 가고 있었다. 언약의 신전에는 하얀 석조 건물이 있으며 그 앞에 커다란 붉은 비석이 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붉은 비석에다 자신들의 이름을 쓰고 사랑의 언약을 맺으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리오스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붉은 비석을 보았다가 프린세리아를 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어 보인 리오스가 몸을 띄어 10여 라키르나 달하는 비석 꼭대기에 올라 그와 그녀의 이름을 썼다. 보통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무술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인지라 비석의 맨 위는 비교적 깨끗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한 리오스가 한 손을 올리며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험험, 나 올슈레이 리오스는 도요이프 프린세리아와 죽어서도 헤어지지 않을 것이니 하늘은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푸웃, 그렇게 언약을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하, 그런가?” 프린세리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는 리오스를 보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에 뒷머리를 긁고 있던 리오스의 손이 멈췄고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리오스가 한 마디 했다. “사랑해!” “저두요.” 두 사람은 달빛을 받아 더욱 붉은 빛을 발하는 비석 앞에서 달콤한 사랑을 나누었다. 한편 호숫가에서 섬을 바라보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이대로 놓아두실 생각입니까?” 올리테리어의 말에 프린샤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에 올리테리어의 몸이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떨렸다. 그러나 프린샤는 금세 원래의 얼굴로 돌아와 무감정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내 딸일세. 비록 이게 마지막 행복이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아비로서 용인해주고 싶군.” 그의 말에 그들의 허리가 숙여졌다. 그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 음음음, 프린세리아와 리오스....음음음, 좋아좋아!!!! 그러나 프린샤 싫어싫어!!!!! 234화. 음모. 3 ‘왔군!’ 수면 위에 드리워진 달빛이 그의 마음처럼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리오스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인지라 이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검푸른 물 위에 고요히 웃음 짓는 달처럼. 그러나 고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스승이자 그가 사랑하는 프린세리아의 아버지이니. 지옥의 끔찍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남은 기회를 사용하여 일장에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니, 일장에 처 죽이는 것은 너무도 관대한 일이다. 죄 없는 그들을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죽였던 그.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그들의 생의 의지를 무참히 짓밟은 그. 그는 절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 부르르르! 그때의 기억이, 감각이 현재의 그에게 전이되자 리오스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에 그의 팔에 안기다시피 하며 걷고 있던 프린세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휴우, 그러나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닌가!’ 정말 난제였다. 쉽게 풀 수 없는 난제! 만약 자신이 초월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그녀가 소중하더라도 그를 단번에 죽였을 것이다. 아니, 괴롭히며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복수라는 저속한 감정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단지 예전의 기억이 남아 있어 분노하게 만들 뿐. 그러나 그는 사랑은 초월할 수 없었다. 은은한 달빛 덕분에 홍조 띤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그의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그녀를 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 그래, 모든 것을 잊자!’ 리오스는 다리를 지나 육지를 밟는 것과 동시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일단의 무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아, 아버지!” 프린세리아는 그들의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프린샤가 데려온 이들은 카오시어스에서도 엄선된 무인들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프린샤는 딸의 음성은 싹 무시하며 리오스에게 말했다. 순간 프린세리아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아버지에겐 가족이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그런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리 가슴이 아픈 거지?’ 프린세리아는 프린샤가 스치듯 그녀에게 던진 눈빛이 너무도 차갑다는 것을 상기하자 더욱더 가슴이 아파져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허리를 숙였다. “괘, 괜찮아?” 리오스는 프린세리아가 갑자기 신음을 토하며 허리를 숙이자 놀라 그녀를 부축하며 다급히 말했다. 이에 프린세리아가 애써 웃음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으나 그녀가 그럴수록 리오스의 마음은 답답해져왔다. ‘저런 인간을, 저런 인간 같지도 못한 놈을 내가 용서할 필요가 있을까?’ 리오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프린샤에게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의 옆에는 다름 아닌 프린세리아가 있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이미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자신의 입장이 아닌 프린샤에게 억울하게 죽은 그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를 내가 마음대로 용서해주어도 되는 건가?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는 우주의 복잡 미묘한 인과의 법칙을 꿰고 있는 그라도 별무소용이었다. 어쩌면 전 우주에서 가장 어려운 법칙으로 이루어진 것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만큼 리오스는 혼란스러웠다. “허허허, 달갑지 않다는 얼굴이군. 그래도 명색이 사부인데 말이지.” 프린샤는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는 리오스의 태도에 짐짓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그리 편치 못했다. 이미 인간이길 포기하고 욕망에 몸을 맡긴 그라고 할지라도 한때 기대했던 제자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이러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진정 인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 사부님, 오랜만이군요.” 리오스는 잠시 말없이 그를 보다 짧게 인사했다. 그리고 경멸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프린샤는 이 자리가 참으로 불편했다. 비록 조금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인 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자리가 편치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는 애초 계획대로 지배의 마성으로 그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 기운을 돋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여는 프린세리아 때문에 그 일을 잠시 미뤄야 했다. “흐윽, 흑흑흑! 아버지에겐 저나 어머니는 흐윽,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나요? 흑흑흑!” “…….” 프린샤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여기에는 그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분명 예전의 그는 아내를 사랑했으며 딸을 사랑했었다. 그러나 이 힘을 얻은 후에는 사랑보다 권력과 명예로 이루어진 욕망이 앞서게 되었다. 프린샤는 그의 아내인 제니스를 지배의 마성으로 꼭두각시를 만들 때가 떠올랐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하지만 제가 당신을 사랑하며 우리의 딸 프린세리아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잊지 마세요.” 그녀는 당당했다.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잔인해진 자신을 오히려 위로하기까지 했었다. 그런 그녀를…… 자신은 분명 사랑…했었다! ‘왜, 왜! 왜, 이 말이 과거형이 되어야 하는 거지? 지금의 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프린샤는 끝까지 당당했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두 눈을 감으며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떠올랐다. ‘크흑, 도대체 왜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냐고!’ 꺄오오오오! 순간 프린샤의 몸에서 끈적끈적한 욕망의 덩어리가 실체화되어 나타났다. 그것은 웃고 있었다. 모든 사람을 발 아래로 굽어보는 오만한 눈! 그것은 검푸른 불꽃처럼 일렁였으며 그가 움직일 때마다 대기는 그 추악함에 토악질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실체화된 욕망의 덩어리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실체화된 욕망의 덩어리가 프린세리아를 쏘아보며 대기마저 부르르 떨 정도로 위압적인 목소리를 발했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왜 당연한 물음을 던지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일 뿐. 그 이상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프린세리아는 실체화된 그의 음성이 프린샤의 목소리와 똑같아 더욱 괴로운 듯 했다. 그러나 실체화된 욕망의 덩어리는 프린세리아가 고통스러워할수록 쾌락을 느끼는지 검푸른 기운으로 형성되어진 눈을 야릇하게 떴다. “닥쳐라! 이 요망한 것아!” 리오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연신 ‘아냐, 아니야.’를 중얼거리는 프린세리아를 껴안으며 외쳤다. 이에 실체화된 욕망의 덩어리의 눈에 분노의 기색이 어렸다. -크크큭,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어리석은 인간이여! “흥, 말끝마다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하니 내 보여주겠다. 네 놈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를.” 화아아아악! 말을 마치자마자 리오스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색의 빛이 터졌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기운이 그의 내부에서 밖으로 발산되려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크흑, 안돼!’ 파앗! 위이이잉! 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라가는 빛의 기둥은 프린세리아를 사랑하는 리오스가 만든 작품이었다.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기운을 그는 하늘로 올려 보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을 파괴하는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푸른 불꽃처럼 거대한 욕망 덩어리는 리오스의 갑작스런 변모에 크게 당황한 듯했다. -너, 너는 아니, 당신이 어찌하여 인간계에……. “닥쳐라! 너의 더러운 입에 올려질 나의 이름이 아니다.” 리오스의 나직한 외침에 검푸른 불꽃이 눈에 띠게 작아졌다. 마신으로 돌아온 리오스는 말이 곧 권능이기에 그는 리오스가 입을 여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타격을 입는 것이다. 그리고 리오스는 이 추잡스런 욕망의 덩어리를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재빨리 말을 이었다. “내 너에게 말하노니, 태고 이전의 무(無)로 돌아갈 것을 명하노라!” 말을 마치자 그의 금안이 빛을 발했다. “안돼!!!” 검은 불꽃의 모습을 하고 있던 욕망의 덩어리가 비명을 지르며 스르륵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프린샤의 멍한 동공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듯하더니 그가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에 찬 비명을 토했다. “으아아아악!” 그의 비명이 워낙에 섬뜩한지라 리오스의 변모한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프린세리아 조차도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에 리오스는 프린세리아를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지금껏 가만히 있던 올리테리어가 그의 앞을 힘겹게 막으며 말했다. “주…군을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리오스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그는 마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앞을 막고 입을 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칭찬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리오스는 그에게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드리려는 것일 뿐.”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올리테리어는 움직이지 않는 발을 억지로 옮겨 자리를 비켜주었다. 리오스는 그에게 잠시 고개를 끄덕여보인 뒤, 프린샤의 머리에다 손을 얹혔다. 번쩍! 푸스슥! 빛이 터졌고 뭔가가 타는 듯이 프린샤의 머리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흰자위만 보이던 그의 눈이 감기며 올리테리어 쪽으로 쓰러졌다. 그와 함께 리오스의 기도가 백팔십도 변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에 씁쓸한 고소를 짓는 리오스였다. 그러다 그는 그들 뒤에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다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저들도 그 요망한 욕망에 당한 것이었군요.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은 거죠?” 올리테리어는 갑자기 변한 리오스의 기도에 적응하지 못해 어리둥절해 있다 그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프린샤를 한번 쳐다본 뒤,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도 주군께서는 나만은 꼭두각시로 만드시지 않더군. 그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러한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올리테리어는 그의 기도가 변해서인지 예전 리오스를 대하던 말투대로 돌아왔다. 그런 그를 보며 수련할 때는 엄하지만 잔정이 많았던 예전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장난스런 웃음을 짓는 리오스였다. “근데 복수할 생각은 없습니까? 저는 보시는 바대로 당신 보다 약한 존재입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생각도 없거니와 만약 아까 전처럼 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나는 승산 없는 모험은 하지 않는 편이라네.” “현명하시군요.” 올리테리어는 그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프린세리아가 다가왔다. 정확히 말해 그의 품에 안겨 있는 프린샤에게 다가온 것이지만. “아, 아버지!” “이제 괜찮을 거야.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실 거야.” 리오스는 프린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상을 짓는 프린세리아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들 부녀에게서 시선을 거둬 그 시선을 올리테리어에게 던졌다. “그럼, 이제 메테르티아 시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으음, 지금 당장은 무리일 듯 하네. 만약 지금 돌아가게 된다면 라젠티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말이야.” “라젠티오라뇨? 그 사람이 누구죠?” “그는…….” 올리테리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모두를 이야기해주었다. 이미 프린샤의 야망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기에 지금 가장 시급한 사안은 프린샤의 안위라 생각한 것이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우선 저와 같이 황궁으로 가는 게 좋을 듯 하 군요. 어떠신지?” “나는 자네의 말에 따를 뿐이네.” “하하하, 근데 저 사람들 모두를 업고 가긴 힘드니 일단 저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거 같은데요?” 리오스는 ‘몇 시간이든 저들이 깰 때 기다리자.’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올리테리어는 다르게 받아들인 듯 했다. 짝짝짝짝짝짝짝! “으윽!” 고고한 달빛이 은은한 여운을 남겨주는 밤. 이럴 때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미 추임새는 갖추어져 있으니 ‘두둥실!’ 춤을 춰야 하지 않을까? 물론 화끈거리는 뺨을 만지며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한다면 칼 맞기 십상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프린샤만이 여전히 곤한 잠에 빠져 있는 밤, 그들은 바티칸 시의 무수한 많은 여관 중 한곳으로 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리오스는 자신을 조용히 청하는 프린샤를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린샤를 따라 여관 뒤에 있는 뒤뜰로 갔다. “무슨 일이시죠?” 리오스는 이미 무엇 때문에 그가 자신을 청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말문의 열기 위해 말했다. 비록 이 이야기를 듣는 프린샤의 기분이 좋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를 배려해줄 만큼 리오스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 나는 자네가 너무도 원망스럽다네. 하지만 자네에게 복수하기란 요 원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네. 자네가 마신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일세.” 리오스는 굳이 그의 말에 부연설명을 달지 않았다. 자신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남았으며 그 기회를 사용하는 순간 소멸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순간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안 봐도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하아, 정말 허탈하군.” 프린샤는 리오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잠시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내 자신의 신세가 떠올라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프린샤의 넉두리를 들어줄 마음도 없었고 지금의 그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탈하다라… 그 말밖에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프린샤는 짜증난다는 말투로 그에게 되물었다. 이에 리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죄하고 회개하는 마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과욕이 깨졌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는 이 모습 과히 보기 좋다고는 할 수 없군요. 지금 이딴 말이나 하려고 저를 불렀다면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아~ 말하지 않은 게 있군요. 제가 비록 당신의 딸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저에게 자비를 바랄 생각은 마십시오. 그럼.” “이, 이보게!” 프린샤는 그의 직설적인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자신이 그를 청한 이유도 말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급히 그를 불렀다. 리오스가 예상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프린샤가 준비했던 말. 그러나 리오스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냥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에 짧게 한숨을 내쉰 프린샤가 그의 뒤를 향해 말했다. “내 딸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하네. 이 말을 하기 위해 자네를 청한 거라 네. 진심이라네.” 순간 리오스의 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리는 리오스. “그건 당연한 이야깁니다.” 리오스는 말을 마치고 다시 몸을 돌려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프린샤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라젠티오는 프린샤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이에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라젠티오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갔던 일이 잘못 되었단 말인가? 그렇단 말은 그 리오스라는 놈이 만만치 않은 놈이거나 그놈의 동생이 같이 왔다는 이야긴데.’ 그의 머리는 계속해서 그 다음 상황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린샤의 심복이며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올리테리어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놈이라면 분명 리오스이든 그의 동생인 진이든 간에 나의 존재를 말했을 것이다. 이런!’ 라젠티오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급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는 상인 특유의 감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기에 라젠티오는 자신에게 손해갈 일을 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마음을 정하자 라젠티오는 프린샤가 정해준 거처에서 나와 메테르티아 시를 빠져나오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꼭두각시가 아닌, 활기에 넘치는 메테르티아 시민들의 모습을. ‘모든 게 끝났군!’ 그들의 밝은 표정과 대조적으로 라젠티오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새롭게 태어난 메테르티아 시와 매우 이질적인 것인지라 그는 서둘러 메테르티아 시를 벗어나려 성문 쪽으로 갔다. “즐거우셨습니까? 좋은 여행 되십시오!” 마치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 다는 듯, 음영이 깔리지 않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경비병의 모습에 라젠티오는 고개를 숙이며 그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후, 라젠티오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 깁니다 길어요^^ 후후후, 자,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꽃을 달아들이고 잘 생각입니다. ㅋㅋㅋ 오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납니다. 제가 책 출판 한 뒤로는 처음 만나는 것인지라... 사뭇 기대되네요^^ 235화. 폭풍전야. 1 “잘 생각해보셨습니까?” 황궁을 앞두고 리오스가 프린샤에게 말했다. 이에 프리샤의 얼굴이 잠시 찡그려졌으나 이내 처연한 표정으로 변하며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진정이 담긴 음성으로 말하는 프린샤. “생각이라…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 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네.” 프린샤는 며칠 전, 자신에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던 리오스의 말을 떠올리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나에게 명예니 권력이니 하는 것들은 다 허망한 것이 되었네. 그리 고 자네 형제들이 있는 이상 나의 야망은 과욕일 뿐, 화만 불러들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네. 해주게! 자네가 말한 대로 내 무공을 폐지해주게. 그러면 마지막 남은 이 어리석은 욕망도 없어질 것이네.” 프린샤는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그런 그를 리오스는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가 손을 움직였다. 퍽! 쩌적! “크흑!” 리오스의 손은 프린샤의 단전에 닿아있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변한 프린샤. 그러나 그는 웃음 짓고 있었다. “고맙네!” 그는 몸을 돌려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 그를 리오스는 복잡 미묘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떠나지 않고 남기를 선택했다. 무인이라면 섣불리 내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말이다. 이것이 그의 진심인 건가?’ 리오스는 진정으로 바랐다. 그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진심이기를. 리오스들이 황궁으로 돌아오자 그를 가장 반긴 사람은 진이었다. 아니, 진은 리오스보다는 그의 옆에 있는 프린세리아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형, 능력 좋은데?” 리오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진이 말했다. 이에 리오스는 잠시 얼굴을 붉혔으나 이내 안색을 바로하고 말했다. “피곤하구나. 좀 쉬어야겠다.” “쳇!” 진은 그가 이 자리를 모면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은 정말로 피곤해보여 진은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진은 리오스의 방문을 받았다. “진아, 어제 본 프린샤 시장 기억하지?” “으응, 전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기억이 나.” “후후, 그래? 흐음, 어쨌든 잘 들어 봐.” 리오스는 진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과 그리고 모든 상황을 가지고 유추한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요점은 프린샤가 진이 말했던 업을 수행하는 자 중 하나이며, 올리테리어가 말한 라젠티오라는 인물 역시 업을 수행하는 자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이에 진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후후, 뭘 그리 놀래?” “그럼, 형 이제 단 한번 밖에 남지 않은 거 아냐?” “으음, 그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너무 걱정 하지 마. 이제부터 모든 일은 너에게 맡길 테니. 난 프린세리아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거라고, 후후.” 리오스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해져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진은 그에게 부여된 사명보다도 자신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오스가 그런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을 때, 진도 생각에 빠져 있었다. ‘형이 말은 이렇게 하지만 형 성격이라면 내가 위험해지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보다 좀 더 강해져 애초부터 형이 나설 자리를 만들지 않는 거야!’ 진은 속에서 뜨거운 투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그의 다짐은 확고했으며 굳건했다. “깡통을 굴려봐야 깡통 굴러가는 소리 밖에 안 나네요.” “쳇, 내가 아무리 깡통이라도 듣는 깡통 기분 나쁘다고.” 잠시 분위기가 경직되었으나 리오스의 유쾌한 농담에 진은 짐짓 투덜대면서도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업을 수행하는 자 중에 하나라는 라젠티오를 찾기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나기로 합의 하였다. 진이 또 다시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여섯 여인들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진이 모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설명하자 그녀들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여행에는 진과 리오스, 그리고 린, 스테판 아미르 이렇게 다섯이 참여하게 되었다. 올리테리어의 말(라젠티오는 진을 두려워했다)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갈 필요는 없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선 그들은 메테르티아 시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과 린이 이렇듯 가까운 곳에서 업을 수행하는 자 특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리 없기에 그는 분명 이곳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리오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가 여기 남아 있어 프린세리아의 어머니인 제니스를 위협하고 있으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걱정은 기우라는 게 밝혀졌으니 지금 리오스 는 마음이 무척이나 편안했다. 그들은 몸의 긴장을 풀며 프린샤 시장의 거처로 갔다. 그리고 제니스의 놀란 표정을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리오스 군, 살아 있었군요.”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모님.” “예? 뭐라고 하셨죠?” 제니스는 리오스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며 물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대답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한 장의 편지만 건네었다. 제니스는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제니스. “모든 게 잘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제니스는 프린샤가 보낸 편지에 상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기에 리오스가 자신들 가족에게 베푼 은혜를 알고 있었다. 물론 프린샤는 그것을 은혜로 생각하지 않을 공산이 크지만 제니스는 크나 큰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보는 제니스의 눈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는데 리오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런 그녀에게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 모습이 진의 눈에는 굉장히 빛나 보였는지 리오스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진이었다. “형은 일단 사돈어른을 모시고 황궁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스테판과 아미르 너희 두 사람도 형과 사돈어른을 모시고 함께 황궁으로 돌아 가. 나와 린은 한군데 들렸다가 갈게.” 진의 일방적인 통보,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과 린은 자신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들이며, 그들이 마음먹고 이동하면 어디를 들렀다 온다 해도 자신들보다 빨리 황궁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흔적도 발견할 수 없는 라젠티오의 행동을 봐도 그의 실력은 진보다 한참 아래임이 분명했다. 올리테리어가 한 말대로 말이다. “마음 써줘서 고맙다. 하지만 스테판과 아미르를 우리와 굳이 동행시킬 필요는 없어.” 리오스는 진이 왜 스테판과 아미르를 자신들과 동행시키려는지 알고 있었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나 나쁜 마음으로 접근하는 무리들과 조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오스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듯했다. 하지만 진 또한 고집이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 “형, 설마 이 세상에서 우리 두 사람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설마 우리를 못 믿는 건 아니지?” “허허, 너희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나를 못 믿는 거 같은데?” 리오스는 짐짓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진의 짧고도 확실한 대답에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져버렸다. “응, 못 믿어!” “푸웃!”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미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벌겋게 변한 얼굴로 호흡을 정리하는 스테판. 이에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스가 말했다. “험험, 어쨌든 형을 믿어라.” “아니, 이번엔 동생 말 좀 들어.” “으음, 정말 이럴래?” 진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리오스가 짐짓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 린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끼어들었다가 금방 사라지지만. “형님, 그럼 우린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진의 한 팔을 잡고 몸을 날리는 린이었다. 그제야 린의 의도를 파악한 진도 기운을 개방해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머엉~! 리오스는 그나마 믿고 있던 린에게 한방 얻어맞자 그야 말로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스테판과 아미르 역시 근엄하고 진지의 대명사인 린이 이런 돌발적인 행동을 할 줄은 몰랐는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든 진과 린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뭐하냐? 너희들도 저 못 말리는 녀석들을 따라가야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리오스가 말했다. 그러나 스테판과 아미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상명하복! 업을 막는 자들에게는 서열이란 절대적이죠!” 아미르가 이렇게 말하자 스테판이 뒤이어 말했다. “참고로 진 형님과 린 형님은 서열 1,2위입니다. 우린 3,4위고요.” 결국 리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 잠이 솔솔 오네요^^ 참고로 일어난 지 대략 5시간 째... 236화. 폭풍전야. 2 회색빛 머리칼의 사내는 비서가 들고 들어오는 서류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를 보며 비서는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게 서운한 표정을 짓을 필요 없습니다.. 도련님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서류들은 아직도 산처럼 쌓여있으니깐 말이죠.” “끄응!” 사내는 비서의 그 말에 끓는 듯한 신음을 토하면서도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때부터 일해 온 사람이며 자신에게는 삼촌과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 모습을 라젠티오님이 보시면 참으로 좋아하실 겁니다. 아~! 라젠티온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여기!” 비서는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는 편지를 받자마자 찢듯이 봉투를 개봉해 안의 내용물을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아리온에게! 아리온아 잘 지냈느냐? 혹시 요즘 내가 없다고 밖을 돌아다니며 여자들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있는 건 아니냐? 만약 그렇다면 이 아비는 몹시도 슬플 거 같구나. 하지만 아비는 믿는단다. 네가 지금 편지를 받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비의 집무실이라는 것을. 그렇지? 이 아비 그렇게 믿어도 되겠지? 험험, 각설하고 아비가 너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네가 조르단 상회를 맡으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아비는 일신상의 문제 때문에 한동안 어디를 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아마도 꽤 오랜 시간동안 보지 못할 거 같구나. 아~! 걱정은 하지 말거라. 아비는 잘 있으니깐 말이다. 그럼, 네가 이 아비의 기대에 부응해주리라 믿으며 이만 줄인다. 우리 아리온을 너무도 사랑하는 아버지가. 편지는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리온은 마치 자신이 잘못 읽었겠지 하며 두 번이나 더 읽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은 분명 두 번이나 더 읽었음에도 같은 이야기를 말 하고 있었다. -네가 조르단 상회를 맡으라……. 웃음이 나왔다. 이 말을 지금 자신보고 받아들이라는 건가? 지금도 갑갑해 미칠 거 같은데 이 짓을 평생 동안 하라는 말인가? 하하하!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으면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편 비서는 아리온의 상태가 발작초기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며 ‘무슨 내용이기에!’하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편지를 주워 읽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여는 그였다. “도련님, 축하드립니다!” “…… 뭐요? 지금 축하라고 하셨습니까? 이 갑갑한 일을 평생 동안 해야 되는 저에게 지금 축하라고 하셨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저를 보아온 알란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하시다니 정말 섭섭합니다.” 아리온은 괜히 알란에게 짜증을 내었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알란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잘못이라면 자식에게 모든 일을 맡겨두고 유유자적하게 놀고 있을 아버지가 잘못인 거지. 하지만 지금 당장 따지고 싶은 그는 이 자리에 없고 애꿎은 알란만이 이 자리에 있으니 불붙은 화살이 그에게 날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알란 역시 알고 있었기에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휴우, 죄송합니다. 알란 아저씨가 잘못하신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 죠.” “괜찮습니다.” 알란이 아리온을 보며 ‘이제 다 컸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말을 할 때, 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아리온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찾아온 사람이 누구라 하던가요?” 아리온은 자신에게 이런 보고가 올라올 정도의 거물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웬만해서는 밑에서 다 걸러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렇듯 자신에게 보고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올슈레이 기사단의 올슈레이 진 경과 린 경이라 하셨습니다.” 아리온은 스미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아리온을 바라보던 알란이 스미레에게 물었다. “그들이 왜 도련님을, 아니 사장님을 만나려고 하는지 말하던가?” 알란이 아리온에 대한 호칭에서 잠시 멈칫거려 아리온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만들어졌으나 스미레는 사무적인 음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만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으음, 알겠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알란은 짧게 대답한 뒤, 아리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리온이 스미레를 보며 말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죠?” “황금천로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의 말에 아리온의 고개가 예상했다는 듯 끄덕여졌다. 황금천로실은 귀빈 중에 귀빈을 맞이하는 곳이지만 그 두 사람이라면 그곳으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린만 해도 그 무력이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을 통해 경천동지하다는 것이 알려졌고 진은 이미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에 조금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가 볼까요?” 아리온의 이 말에 알란과 스미레의 얼굴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행동이 조르단 상회에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알란을 대동한 아리온이 황금천로실로 향해 갔다. 진은 회색빛 머리칼의 아리온이 사람 좋아 보이는 알란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낯설지 않아 의아해졌다. ‘언제 봤었나?’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일의 심각성 때문에 금세 사라졌다. “올슈레이 진 경과 린 경이시라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조르단 상회를 맡고 있는 조르단 아리온이라 합니다.” 아리온은 이미 조르단 상회를 맡게 된 것을 인정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진과 린에게 인사할 때, 굳이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 것이다. 이에 진과 린의 눈이 빛을 뿜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올슈레이 진이라 하고 여기 이 사람은 제 의제인 린이라 합니다. 그런데 조르단 상회의 주인이 바뀐 거 같군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조르단 라젠티오님이 조르단 상회의 사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진은 여기 오기 전에 조르단 상회의 대략적인 지식들을 숙지한 상태였다. 덕분에 그는 곁가지를 잘라내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아, 예. 어쩌다 보니 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버님께서 지금 어디계신지 알 수 있을 까요?” 진은 아리온의 말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에 아리온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간 상회를 맡으며 ‘처음부터 밀리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내심과 달리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 질문을 하신 의도가 궁금하군요.” “저희들이야 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가 황제 폐하의 어명과 관련된 일인지라 자세한 이야기를 해드릴 수는 없을 거 같군요.” 진이 그의 말에 당혹스러워하자 린이 재빨리 나서서 그의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아리온을 보며 진이 대단하다는 듯이 린에게 윙크를 해주었다. “으음, 사실 저 역시 아버지께서 어디에 계시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황제 폐하의 영명에 누를 끼치는 일을 하셨는지요?” 말을 하는 아리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처음 편지를 읽었을 때만 해도 그저 일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자신에게 상회를 맡겼다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거 같았다. 더구나 진과 린의 방문, 그리고 황제 폐하의 어명이라는 말에서 아리온은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 우회하여 말한 것 이다. 이에 진과 린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모든 것을 맡긴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의 시선에 린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황제 폐하께서 부친을 한번 보셨으면 해서 저희가 찾아온 것입니다. 조르단 상회는 명실 공히 제국 최고의 부를 이룩하였으니 황제 폐하께서도 관심이 가신 모양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쩌지요. 저는 정말 아버지께서 어디 계신지를 모르고 있으니.” 린은 그의 말에 신음을 토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약간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으음…, 혹시 최근에 부친께 편지나 연락이 오진 않았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연락이 닿았나 보군요.” 린은 그의 반응에 반색했다. 이에 아리온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린의 기세가 대단하여 그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대신 그가 궁금해 하는 점을 이야기해주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알란의 얼굴이 잠시 찡그려졌지만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사실 오늘 아버지께 편지가 왔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편지를 볼 수 있겠습니까?” “으음, 솔직히 말해 부자간 사이에 오가는 개인적인 편지를 보여준다는 게 좀 꺼려지는 게 사실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럼, 그 편지가 어디에서 왔는지 만 가르쳐 주실 순 없습니까?” 아리온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들이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제가 만나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너무 깊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황제의 권력을 등에 지고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휴우,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란, 편지를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알란이 그의 말에 대답하며 한 장의 편지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편지 봉투에 적혀져 있는 주소를 아리온이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아마리안 시, 토트란 동 192번지군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희들의 행동이 많이 무례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황제 폐하의 어명을 따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야 할 거 같군요. 귀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고 진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조르단 상회의 총단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자 아리온이 가져온 편지를 알란에게 건넸다. 라젠티오의 개인 사물함에 갖다 놓으라는 지시를 하며. 이에 알란은 알았다는 대답을 하며 라젠티오의 개인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온 알란은 개인 사물함에 편지를 넣을 생각은 하지 않고 햇빛이 쏟아지는 책상 위에 편지를 던지며 중얼거렸다. “라젠티오님이 나에게 따로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발목을 잡힐 뻔 했구나!” 말을 하는 알란의 눈은 잠시간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 점점, 막바지로 가고 있습니다. 궁극의 마스터 완결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크흑!!! 237화. 폭풍전야. 3 “어, 엄마!” 리오스와 함께 들어오는 제니스를 보며 프린세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는 프린세리아. 제니스에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가 보다. “정말 수고 했구나.” “흐윽! 흑흑흑, 엄마!” 프린세리아는 대견스럽다는 듯한 제니스의 음성을 듣자 기껏 소리 죽였던 울음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정말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잊을 거예요. 우리의 행복한 미래만을 기억할 거예요.’ 프린세리아는 속에서 웅얼거리는 많은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계속해서 흐느낌만 토할 뿐, 그녀가 원하는 말을 내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잠시 답답해지기도 했지만 제니스의 눈을 보는 순간 그녀는 가슴에 담긴 수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알고 있단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녀가 할 말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며 그녀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주는 제니스가 있지 않은가! “헤헤, 엄마 저 잘 했죠?” 결국 프린세리아는 귀엽게 웃음 지으며 칭찬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제니스의 소매를 붙잡고 칭얼댔다. 이에 제니스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를 끌어 안아주었다. “이제 괜찮단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짓던 프린세리아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리자 제니스가 쓴 웃음을 지으며 프린세리아의 등을 톡톡 두들겨주었다. 그리고 이 두 모녀를 프린샤가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오.” 프린샤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제니스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이에 제니스는 잠시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프린샤를 쳐다보았고 무안한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돌리는 프린샤였다. 실제로는 숨 몇 번 돌릴 시간이나 되었을까 하는 시간이 흘렀건만 프린샤는 몇 시간은 족히 흘렀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이 자리가 거북했다. 그도 인간이기에 자신이 얼마만큼 큰 잘못을 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니스는 그런 그를 탓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당신은 말이에요. 제국의 지배자보다는 우리 도요이프 가정의 지배자 가 가장 잘 어울리는 거 알고 있나요? 그렇기에 나는 믿고 있었어요. 당신이 이 자리로 돌아오리란 것을.” 말을 마친 제니스가 빙긋 웃자 프린샤는 눈물이 다 나올 뻔 했다. 그리고 새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털썩! “앗, 이러지 말아요!” 제니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 프린샤의 돌연한 행동에 깜짝 놀라며 그를 만류하려 했으나 그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소.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소.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잘못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고 있었던 것이고, 나의 인생에 가장 탁월한 선택은 바로 당신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오.” “그 말 정말이죠?” “물론이오.” “고마워요!” 제니스는 프린샤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으리란 것은 생각도 해 본적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진심이 담긴 고백을 들었다. 솔직히 마음속 한켠에는 서운한 감정과 미운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 말 하나로 그러한 감정들은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예전 뜨겁게 사랑했던 젊은 날의 그날로 돌아가는 자신을 보게 되는 제니스였다. “사랑해요! 당신이 이 담에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프린샤는 제니스가 무릎을 꿇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으며 안겨 들자 적잖이 당황했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 감정이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도 그녀처럼 격정적인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나는 오로지 당신과 우리의 딸만을 바라보며 살 것이오. 당신이 말한 도요이프 가정의 진정한 지배자가 될 것이오.” 제니스를 안는 그의 팔은 뜨거웠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처럼. 리오스들이 황궁에 도착하고도 며칠 후, 진과 린이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갔던 일이 잘 되지 않았나 보지?” “으응. 그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어, 하아!” 리오스의 물음에 진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오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찌 됐든 그는 너희들을 두려워해 몸을 숨긴 거잖아.” “그야 그렇겠지.” “그렇단 말은 최소한 몇 년 이내에는 그가 양지로 나설 일이 없다는 일 아 니겠어? 대개 그런 류의 사람들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법이거든.” 진은 리오스의 말을 들으며 둔기로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무작정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하여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가 눈앞에 나타날 리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는 리오스의 말마따나 지금 당장 발호할 걱정도 없으니 시간을 두고 차근히 준비하며 그가 나타나거나 혹은 그 전에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 나서도 늦지 않은 것이다. 물론 느긋한 마음으로 대처해서도 안 되지만 괜히 안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진은 마음을 편히 갖게 되었다. “혀엉~!” “으윽, 그 느끼한 표정은 뭐냐?” 리오스가 진의 얼굴을 보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진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바보처럼 웃으며 말했다. “헤헤, 혀엉은 누구 형?” “으음, 어쨌든 너의 형이지.” “하하하, 글치?” 그러며 진은 배시시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려 보무도 당당하게 방문을 나섰 다. 이런 진을 리오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릭은 요즘 샤넬리 때문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날이면 날마다 찾아와 진과 자신들의 결혼을 추진해달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응, 이참에 딸애 말마따나 확 결혼을 추진해버려?’ 데이릭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 난감하게 만드는 샤넬리가 자주 하던 말을 그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의 결혼은 이미 기정사실이었으며 진의 부모가 없는 이상 자신이 나서서 일을 추진하는 것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그 녀석 성격 상, 일단 의사를 물어보기는 해야겠지?’ 데이릭은 진의 한 성깔을 상기하며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데이릭은 의외로 진이 흔쾌히 승낙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의견이 좀 황당하기도 하면서도 흥미가 동해 괜히 웃음만 나왔다. ‘허허허, 합동결혼식이라… 모르긴 해도 제국의 모든 이목이 다 집중되겠군. 진과 린 경, 그리고 그들의 형인 리오스. 거기다 진의 사부인 에리필의 합동결혼식이라… 정말 재미있겠어! 하하하!’ 데이릭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합동결혼식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특이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질 합동결혼식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에 데이릭은 사명감마저 가지게 되었다. ‘어떡하든 이 일은 성사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의 주모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던가? 으음, 하지만 내가 그의 말에 따를 필요는 없지, 하하하!’ 데이릭은 진이 당황스러워할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만들어져 간만에 시원스런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날, 데이릭의 갑작스런 발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합동결혼식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의 말 말미에 이 일의 주모자가 바로 진이라는 사실을 빠뜨리지 않아 진은 한동안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모두는 황제의 지엄한 명을 거역할 순 없었다. 그러나 린과 결혼할 북궁소소가 한 쟈크 대륙 사람이며 그녀의 친인들이 모두 한 쟈크 대륙에 있는지라 결혼식은 반년 후로 미루어졌다. 이는 마법사들을 동원해 그곳까지 최대한 빨리 이동해 이 소식을 알리고 그녀의 친인들이 준비를 갖추고 오는데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한 뒤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에 린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합동결혼식을 할 당사자들은 크게 괘의치 않는 듯했다. 그들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합동결혼식에 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오죽하면 제국 변두리 지방에 몸을 숨기고 있던 라젠티오 조차도 그 소식을 들었겠는가! 하지만 라젠티오는 그 소식을 접하고 얼마 뒤,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 이번 화에 참 여러개의 씬이 나오는군요. 쿨럭!!! 238화. 업, 발동! 1 “…사, 사부님!” 사내는 지로브의 갑작스런 등장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격정적인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지로브는 광기 어린 눈으로 그들을 한차례 훑어볼 뿐이었다. 사내는 사부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훑자 마치 먹이를 서늘한 눈으로 살펴보는 뱀 앞에 있는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자책하며 그에게 다가가 반가움의 표시를 하려 했다. “드디어 때가 되었… 컥!”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지로브를 보았다가 그의 손을 보았다. 두근두근! 그의 손은 자신의 왼쪽 가슴을 파고들어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을 움켜잡고 있었다. 이에 사내의 눈은 급속도로 초점을 잃어갔다. ‘사부여! 왜, 왜 나에게 이런 짓을!’ 사내는 입을 벌려 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급속도로 힘을 잃고 있었고 마지막 남은 힘은 서서히 감겨오는 눈꺼풀을 지탱할 뿐이었다. 옆에서 동료와 사제들, 그리고 제자들의 경악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그들의 소리마저 ‘윙윙!’거리는 소음 이상으로 들을 수 없었다. 파아앗! 왼쪽 가슴이 화끈거리는 것과 동시에 이미 회색빛 톤으로 진하게 칠해진 세상 위로 회색빛 분수가 뿌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회색빛 분수를 고스란히 맞은 지로브가 자신의 심장을 입 안으로 넣는 것이 보였다. “쓰…벌!” 사내는 그 말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는지 힘겹게 입을 연 뒤,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자조적인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의 몸이 잠시 휘청거리다 앞으로 쓰러졌다. 쿠웅! 그리고 이것이 시작이었다. 그곳에 있던 100여명에 육박하는 흑마법사들 이 자신들이 믿고 의지했던 해키에스 지로브의 손에 심장이 쥐어뜯기며 불신의 눈을 차마 감지도 못하고 그 생들을 마감하는 것은. 라젠티오는 눈앞에 있는 사내, 아니 노인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노인을 알고 있었다. ‘업의 힘을 얻은 자!’ 자신과 같은 류의 힘을 얻은 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보다 강자라는 것이다. 이에 라젠티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으나 그의 입은 그가 염두를 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재빨리 열리고 있었다. “험험,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그는 절로 호감이 갈 만큼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노인은 그저 그 를 유심히 살펴볼 뿐이었다. 그런 그의 눈은 분명 점차 광기로 젖어가고 있었다. ‘흐음, 나에게 선의를 가지고 온 자는 아니구나!’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보는 순간 알기 싫어도 알아 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음을 토하는 라젠티오.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으나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라젠티오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보랏빛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노인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번쩍! 혈광이 노인의 몸에서 터졌고 그 핏빛 기운에 닿는 보랏빛 기운은 모조리 소멸했다. 그리고 한 순간의 정적과 그 정적을 깨뜨리는 노인의 거짓말처럼 빠른 움직임! 찰나였다. 노인이 공간을 격하고 나타나 이차 공격을 감행하려는 라젠티오의 머리를 손으로 잡은 것은. 푸욱! “크아아아아아악!” 노인의 등으로 주위에 있던 마나가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그 기운이 증폭되는 순간 라젠티오의 머리를 잡고 있던 손에서 빛이 났다. 이에 라젠티오의 입에서 처절할 정도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다. 노인은 라젠티오가 비명을 지르며 온 몸으로 반항하는 것에는 아랑곳하 지 않았다. 대신 예의 핏빛 기운을 방금 전, 충격으로 말랑해진 정수리에다 쏟아 부었다. “으으으으, 으아아아악!” 라젠티오는 얼굴에서부터 시작해 온 몸을 떨며 신음과 비명을 토했다. 그러나 노인의 손은 마치 철로 만들어지기도 한 듯 그의 발버둥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인이 나머지 한 손으로 허공에다가 작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순간 노인이 그린 원에서 공명음이 터졌고 그 원에다 얼굴을 갖다 댄 노인이 크게 입을 벌리자 엄청난 기운이 그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꿀꺽꿀꺽! 노인은 마치 별미 중에 별미를 먹는 것처럼 입까지 쩝쩝대며 그 기운들을 삼켰다. 그리고 라젠티오의 몸에 있던 모든 기운을 흡수하자 돌연 그의 몸 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점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라젠티오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기듯이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못하고 폭발의 충격에 뼈 몇 조각, 살 몇 점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퍽! 너무도 부풀어 올라 눈알이 살 속에 짓눌려 터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 의 육중해진 몸이 더 이상 부풀어 오르지 못하고 ‘뻥!’하고 터졌다. 휘리리리리리! 그 폭발에 대기가 미친 듯이 발광했고 라젠티오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기던 그 자세 그대로 먼지로 화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잉! 바람은 사방 수 수키르 이내에 더 이상 생명이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에 슬퍼하는지 구슬픈 울음을 토했다. 그러다 폭발의 시발점에서 갑자기 와류가 형성되는 것이 느껴져 울음을 잠시 멈춘 바람이 그곳으로 갔다. 와류의 중심부에는 핏빛과 보랏빛 기운이 엉켜 있었다. 그러다 그 두 기운이 합쳐지며 하나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그’의 악한 사념이었으니.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간의 모습으로 실체화된 하나로 악한 사념은 기분이 몹시도 좋은 지 광 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폐허로 변해 황량함만을 풍기는 이곳의 풍경이 보기 좋아 다시 한번 광소를 터트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음을 딱 멈춘, 악한 사념이 음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잠시 후, 그의 모습은 초토화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 무쟈게 짧군요. 쿨럭...어쨌든 이제 마지막 스퍼트입니다.^^ 239화. 업, 발동! 2 본래 이곳은 검은 기운이 액체로 화해 이루어진 검은 호수가 있던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호수라 말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단지 흑발에 흑빛 피부의 괴인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괴인은 쩌적 갈라진 바닥 가운데에 가부좌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러던 그의 몸이 어느 순간부터 공중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웅웅웅웅웅! 그의 몸이 조금씩 위로 올라감에 따라 공동은 낮으나 거력이 담겨 있는 공명음에 바르르 떨었다. 그렇게 그의 몸은 결코 낮지 않은 천장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휘리리리리리! 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편안한 표정으로 가부좌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괴인! 콰콰콰콰콰콰콰콰! 호수 바닥이 강진을 만난 듯 갈라지고 무너졌다. 그리고 더욱더 커진 공명음에 공동 안은 쉴 새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괴인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고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번쩍!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눈꺼풀이 올라가며 칠흑 같이 어두운 검은 동공이 드러났다. 키야야야약! 그의 입에서 난 괴성인가? 아니다.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렇담……. 그의 검은 눈에 갇혀 있던 그 무엇이 지른 괴성이 분명했다. 괴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고도 커졌다. 그리고 점차 무너지는 공동! 콰르르르르!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광포한 포효는 공동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괴인의 눈에서 나고 있는 괴성은 도무지 끝이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발악을 무시하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괴인의 괴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번쩍! 빛이었다. 그의 온 몸에서 발산되는 강렬한 빛! 그리고 그 빛은 산을 두 쪽으로 갈라버리며 하늘에 닿았다. 와르르르르르르! 거대한 산이 두 쪽으로 갈라져 점차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는가? 우뢰가 치듯 광포한 소음. 압도적인 몸체가 무너지고 충돌하며 일으킨 여파는 가히 천신만이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위압감은 인간들이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것인지라 지계에 있는 인간들은 하늘까지 닿은 뿌연 먼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며칠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려 이 먼지들이 사라졌을 때야 입을 쩌억 벌리며 놀라워 할 것이다. 쏴아아아아! 하늘에 닿았던 빛은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하늘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그래서 대지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비를 맞아야 했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 사방을 둘러봐도 조그만 틈도 보이지 않게 촘촘히 내리는 비. 그 사이로 검은 음영이 얼핏 보였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 크기만으로도 족히 인간의 몇 백배가 되니, 절대 인간일리는 없다. 쏴아아아아아! 비는 계속 내렸다. 그러나 그 존재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비가 닿는 즉시 스르르 사라졌다. 덕분에 그 존재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 존재는…… 흑룡이었다. 아니, 인간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악룡이었다. 예전 타일리에게 유혹의 음성을 던졌던 그! 결국 타일리는 사라지고 그 음성의 주인인 악룡이 현세에 등장한 것이다. 광활한 우주 그곳에서도 악한 기운만이 흐른다는 지옥 중의 지옥! ‘그’에 의해 사라졌던 대지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곳에서 가져온 유일한 그것이 바로 악한 기운 그 자체인 악룡인 것이다. 제국의 지붕 타클라마가니아. 그곳은 너무도 넓고도 깊다. 그리고 그곳은 인간들이 살기엔 너무도 척박한 땅이다. 그래서 몬스터들이 그곳의 주인이 되었다. 몬스터들은 척박한 땅이든 어디든 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제국의 지붕 타클라마가니아는 그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다. 몬스터들의 무덤으로 말이다. 끝을 알 수 없다는 타클라마가니아는 지옥의 겁화에 벌거숭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무(無)로 돌아갔다. 그 화염은 제국의 방패라는 실드리어까지 덮쳤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기사들 역시 한줌의 재로 돌아가 싸늘한 바람에 정처 없는 방황을 해야 했다. 이 소식은 금세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물론 타클라마가니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그곳에 갈만한 담력이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북쪽 지방에 화광이 충천하며 검은 그림자가 붉은 불길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만을 멀찍이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는 실드리어에서도 족히 수십 수키르 떨어진 곳에 있던 자가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의 시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님에도 그는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어쨌든 제국은 간만에 맞은 평화가 또 다시 깨어질 까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황궁 코린토스에까지 전해졌다. 진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직감적으로 이 일의 원흉이 업을 수행하는 자 중 한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린과 스테판, 아미르를 불렀다. “이 일은 분명 업을 수행하는 자가 한 일일 것이다. 지금 내 몸의 감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진은 평소와 달리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그의 얼굴을 보는 세 사람. 그때, 세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허허허, 이 늙은이들은 준비가 다 되었다네.” 진중선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하자 진이 슬쩍 그를 바라본 뒤, 고개를 저었다. 이에 진중선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살 만큼 살았다네. 그리고 간다고 해서 꼭 죽는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맞네. 우리들의 힘이 어느 정도라는 건 이미 자네도 알고 있을 터이니, 우리가 따라간다면 분명 힘이 될 걸세.” 진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들과 함께 온 리오스가 보였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또 다른 고민에 빠진 진은 이내 좋은 방법을 생각했는지 그들에게 다가갔다. 퍽! “컥, 진이 너…왜….” 리오스는 목덜미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기절해버렸다. 미처 놀란 심정을 다 토로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리고 진의 돌연한 행동에 모두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진이 기절한 그를 안고 침대에 가 눕혔다. “지금 이 멤버로 갈 생각입니다. 형은 따라가 봐야 짐만 될 뿐이니 말이죠.” 그제야 모두는 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은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밖에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리오스에게 한동안 슬립 마법을 걸어 둘 것을 명했다. 기절에서 깨어나 자신들을 찾으러 나설 것이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은 조금은 귀찮지만 이렇듯 일을 처리한 것이다. 여인들은 본능적으로 진이 이번에 치러야 할 전투가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진을 말릴 수 없었다. 진의 표정이 이전과 달리 굳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고 이 일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이왕 보내줄 거 웃는 낯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호호호, 잘 다녀오세요.” “나가서 다른 여자 데려 오면 알죠?” 여인들의 인사는 대개 이 두 가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내심은 다른 여자를 데려오든 무사히만 돌아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진은 눈시울이 시큼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녀올게!” 이 말이 다였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 진. 그리고 린 역시 북궁소소와 애틋 한 헤어짐을 하고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이에 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으나 이내 안색을 회복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황궁 코린토스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뒤에서 보고 있을 그들에게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 듯 걷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을 그만큼 더 오랫동안 가슴 아프게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북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속으로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말이다. 수도 가에아로부터 말을 타고 오일 정도 올라가면 발루겔 시라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도시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평화는 고사하고 비명과 화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 위, 시커먼 흑빛 악룡이 발루겔 시를 향해 검은 불꽃을 뿜어냈다. 이에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은 물론이요, 돌로 이루어진 건물들조차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이에 커다란 건물 뒤에 숨어 있던 자들 역시 한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으으으으, 오, 오지 마!” 실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흑룡의 커다란 그림자가 자신이 있는 곳을 가리자 미친 듯이 외쳤다. 이에 악룡은 지나가려다가 잠시 멈추며 그 커다란 흑색 눈을 굴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강철 같은 이빨이 두터운 외피 사이로 빛을 발했다. 아마도 미소를 짓는 것이리라. 사내는 악룡과 눈이 마주치자 영혼이 육신에서 빠져나와 악룡의 사이한 흑색 눈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단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일반인들은 악룡의 위압적인 기세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악룡은 흥미가 동한 사내가 죽자 더욱 광포하게 날뛰었다. 화염이 사방으로 비산했으며 곳곳에서 비명과 폭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한편 잠시 악룡의 공격이 멈춰 안도의 한숨을 쉬던 살아남은 사람들은 악룡이 전보다 더 무시무시한 공격을 쏟아 붓자 또 다시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망가기 바빴다. 그와 중에 인파에 깔려 죽는 사람들이 발생했지만 이미 이성이 마비된 그들은 물컹거리는 발의 감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 사람을 밀치며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나 자신들이 살기 위한 만행은 그들의 몸을 태우는 것으로 돌아올지니. 인간의 추악함의 결과는 결국 지옥의 겁화에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정녕 모르는 듯했다. 불쌍하게도 말이다. 9인의 루아들은 신의 의지를 따르는 것보다 타일리에게 복수하는 것을 우선했다. 그러나 별의 별 수를 다 써 봐도 타일리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북쪽에서 무언가가 남진하며 모든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놈이다!’ 9인의 루아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들은 창을 보았다. 그들의 대장인 창이 명령을 내리는 순간, 그들은 악마가 되는 한이 있어도 그놈을 처단할 것이다. 이러한 각오를 느꼈음인가? 창이 모두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창의 단호한 음성이 울렸다. “가자!” 이번에도 역시나 짧았다. ================================================================== 휴우, 한자한자 쓰는 게 왜 이리 힘든지...휴우.... 240화. 업, 발동! 3 진은 그의 모든 감각이 미쳐 날뛰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진은 다른 이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일행 중 진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린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 있으니 다른 이들은 보나 마나인 것이다. 진은 그런 그들을 일별한 뒤, 온 몸에 신기를 발산했다. 그와 동시에 일행들 역시 기운을 발산하자 전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위압감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다. 진은 그들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이 정도 존재감이라면 나라고 할지라도 장담할 수 없는 승부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이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그는 냉정히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린을 포함한 일행 모두가 자신에게 덤벼도 이길 자신이 있는 진인지라 그들의 힘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본 것이다. 그나마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린 정도? 그것도 상대의 힘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다르다. 만약 자신의 힘을 능가하는 존재라면 린의 힘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큰 것이다. 진의 이러한 생각은 상대의 모습이 시야에 잡히면서부터는 거의 확신으로 변했다. 기운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아미르와 스테판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일단 선공은 필수다. 그것도 모든 기운을 다 짜내어 일순간 터트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지금 4 수키르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의 생각을 진은 일행에게 알리지 않았다. 단지 선공으로 전력을 다해야 할 뿐이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상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덕분에 일행은 이미 꽤 오래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그들은 진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 즉 악룡이 전방 2 수키르에 다다랐을 때, 진의 드래고니아가 빛을 뿜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린, 스테판, 아미르의 드래고니아가 빛을 뿜었고 진중선과 북궁신 역시 모든 기운을 격발한 상태로 화려하게 수 놓여진 공간에 화룡점정을 하고 있었다. “하압!” 여섯 사람의 목소리가 한 목소리가 되어 드넓은 평원을 울렸고 그들의 검에서 각기 엄청난 기운이 터져 나왔다. 파르르르르르! 엄청난 기운에 대기마저 떨었고 그들의 공격이 지나가는 공간은 일그러지고 깨졌다. 광풍을 동반한 백호, 불꽃의 주작, 시리도록 푸른 청룡, 두 신수로 공수가 절묘한 현무! 거기다 진중선과 북궁신의 검에서 쏘아져 나간 두 줄기 빛. 이들의 앞을 막는 것은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악룡은 그야 말로 순식간에 자신에게 쇄도하는 엄청난 기운들을 보면서도 이빨을 보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이 조금 더 벌어지자 검은 불꽃이 나왔다. 그런데 그 불꽃은 웬일인지 악룡을 태울 듯, 그의 주위에서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에 의아함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악룡의 검은 눈동자가 빛을 발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피잉! 한참 후에 들리게 될 바람이 점이 되는 소리. 그의 거대한 몸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섬광이 되어 앞으로 쇄도하는 악룡은 사방신의 고유 신수들과 두 개의 빛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충돌했다. 스스스스스스스스! 강렬한 폭음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모든 공격이 소멸해버리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허탈한 감정을 즐길 시간이 없었다. 모든 공격을 해소하고 돌진해오는 악룡을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난제였다. 아니, 난제란 말은 상당히 포장해서 한 말이다. 이들에게 남아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기습이라고 한다면 기습이랄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것이 깨졌다. 그것도 혼신을 다한 공격이 말이다. 지금 당장 기운을 끌어 모아 공격을 한다 해도 방금 전의 반도 안 되는 힘일 뿐이다. 그것으로 저 무식하게 돌진해오는 악룡을 막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 한편 진은 다른 이들의 허탈한 표정을 무시하고 신기를 최대한 끌어 모았다. 그리고 수십만의 에너지 탄을 만들어 악룡에게 쏘아 보냈다. 팅팅팅팅팅팅팅팅팅팅~! 에너지 탄이 악룡과 부딪히자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악룡의 전진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이를 본 린이 에너지 탄을 만들어 악룡에게 날렸다. 그리고 스테판과 아미르, 진중선과 북궁신 역시 그들을 따라했다. 진은 어느새 300여 라키르 앞에까지 돌진한 악룡이 처음에 비하면 상당히 느린 속도로 돌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눈 깜짝 할 순간의 몇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순간에 자신들을 덮치겠지만 그 정도 시간이라면 진에겐 충분했다. “하압, 백호천광무!” 비록 꽤 많은 신기를 사용했지만 진은 천혜화의 경지에 오른 자였다. 천혜화는 사용하는 순간 모든 기운을 보충해주며 신기 그 자체가 그러한 효능을 가지고 있기에 진은 무리 없이 최강의 백호천광무를 시전 할 수 있었다. 번쩍! 광풍이 소용돌이치고 백호가 그곳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제껏 보아왔던 백호천광무 중에서도 가장 작은 백호이며 광풍인 거 같았다. 하지만 린들은 알 수 있었다. 기술이 점차 완성되어 질수록 그 크기가 작아지며 파괴력은 높아질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지금 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이 백호와 광풍을 전방으로 쏘아 보냈을 때, 악룡은 이미 150여 라키르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기술을 시전 하는 순간 곧 충돌을 일으켰다. 콰아아앙앙앙! 역시 생각대로였다. 자신들의 공격은 예상한 대로 악룡의 엄청난 속력과 그를 감싸고 있는 불꽃의 상호작용에 의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소멸한 것이다. 물론 모든 공격을 소멸시킨 것은 분명 그의 능력이었겠지만 그 능력 안에 엄청난 속도가 전제로 깔리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공격이 곧바로 소멸하지 않고 폭음을 일으키며 악룡과 뒤엉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진이었지만 이내 엄청난 타격을 받은 듯 몸을 휘청거리며 피를 게워냈다. “우욱! 쿨럭! 컥컥컥!”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그 안에서 자신의 백호와 광풍이 악룡과 몇 번 어울려 서로를 노리는 가 싶더니 금세 그의 발톱에 찢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일행들이 서둘러 공격을 가했으나 그들의 신수들이나 빛의 검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깨져버렸다. 악룡의 발톱 한번에 충격을 받고 사라지고 악룡의 날카로운 이빨에 부서지는 등, 그들은 진을 도우려다 오히려 내상만 입은 것이다. “헉헉헉헉!” 그들은 충돌의 순간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뒤로 날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안색이 창백했으며 그들의 입은 붉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하하하, 내 생애 이런 게 존재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 진중선이 입가에 묻은 피를 쓰윽 닦으며 허리를 곧게 편 뒤 말했다. 이에 북궁신도 낭랑한 웃음을 터트리며 땅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 이 정도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싸울 녀석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그는 진중선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다른 이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악룡에게 백호가 찢겨지는 순간 진은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그 상태에서 연달아 터지는 폭음과 그 여파. 그것도 바로 앞이나 다름없는 150여 라키르 앞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진은 결국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이를 알고 있는 사방신들이었기에 진중선과 북궁신의 뜻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말은 자신들이 저 악룡을 잠시간 맡고 있을 터이니 진을 데리고 도망가란 말이다. 물론 그들이 시간을 번다 해도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그나마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아,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도망치려고 무공을 잊힌 거였나? 하지만… 일단 복수도 형님이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린은 방금 전, 자신들의 공격은 단 일수에 소멸되었지만 그래도 몇 수나 버틴 진을 상기했다. ‘그래, 이 비참함은 모두 내가 감당하겠다.’ 린은 결정을 내렸다. 진을 데리고 도망가기로. 그리고 그를 들쳐 업고 도망가려는데 그에게 업힌 진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지…….”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인데도 진은 그의 어깨를 꽉 잡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에 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들의 바로 뒤에까지 다가온 악룡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형님 말씀대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며 스테판과 아미르를 바라보니 그들도 진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에 살짝 미소 지은 린이 천천히 접근해오는 악룡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최소한 그냥 죽지는 않겠다.” 북궁소소가 눈에 밟혔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 봐야 가슴만 아파올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린의 투지가 모두에게 전이된 듯, 삶을 반쯤 포기했던 진중선과 북궁신도 검을 고쳐 잡으며 악룡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악룡의 입이 살짝 열리는 것을 본 진중선과 북궁신이 남은 힘 모두를 담아 검을 던졌다. 피이잉! 대기에 구멍이 난 듯한 소리가 울리고 두 검은 벌어진 악룡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몸을 흔드는 악룡. 방심하여 얻은 상처에 몹시도 화가 난 듯했다. “꺄오오!” 괴성과 함께 쏟아지듯 날아오는 화염. 린들은 그 공격을 막기에도 벅찼다. 악룡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공격은 진의 안전을 지키며 방어하는 그들에게 절망감을 주었다. 지금은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점차 공격이 강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할 때도 화염은 그들을 노리고 대기를 태우며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 그들 오인을 향해 말이다. “차압!”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자신들 위에 나타난 현무! 그러나 그것은 공격의 의도가 아니었다. 철벽의 방어막을 펼쳐 점차 강해지는 불꽃을 막을 심산인 것이다. 쾅쾅쾅쾅쾅쾅쾅쾅! 폭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그럴수록 현무를 조정하고 있는 스테판은 괴로 운 표정을 지었고 그 압력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발이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팔에다 힘을 주었다. “하압!” 다시 한번 힘찬 기합이 터졌다. 그와 함께 코의 미세 혈관이 터지며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는 스테판이었지만 누구 하나 도와줄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사방에서 날아오는 불꽃(말이 불꽃이지 운석에다 불꽃을 태운 듯한 압력이었다)을 막고 있다 보니 스테판 보다 나을 것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한편 악룡은 이들이 자신의 공격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목에 걸렸던 검 때문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하여도 이들이 자신의 공격을 막는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감히 인간 따위가! 하는 말이 속에서 튀어나왔지만 인간들이 듣기로는 광포한 괴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알기에 악룡은 말보다는 주먹, 즉 힘으로 그들을 소멸시켜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화르르르! 수많은 불꽃이 그의 앞에 생겼다. 그리고 그 불꽃이 서로를 원하듯 끌어당겨 이윽고 엄청난 크기의 불꽃이 되어버렸다. 악룡 자신보다도 몇 배나 큰 불꽃이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은 제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마주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악룡이 보기에 인간들 역시 자신의 위대한 능력에 두려워하고 있는 듯했다. 이에 의기양양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 불꽃을 인간들에게로 떨어뜨렸다. 화아아아악! 불꽃은 공간 자체를 태워버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에 린들은 ‘이것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말라는 진의 말대로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체내에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동료를 보았다. 악전고투 동안 끝까지 함께한 동료. 여기서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었다. 이는 사방신 셋을 바라보는 진중선과 북궁신의 따스한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비록 이제 곧 죽을 것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전우애가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격인 진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압!” 외침은 하나였다. 그들의 공격도 다섯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 광참모드인가요? 하하하, 에공...하여튼 지금 미친 척하고 쓰고 있습니다. 241화. 업, 발동! 4 “여긴 어디지?” 진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빛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자신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알았다 치더라도 이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그는 이곳이 예전 깨달음을 얻을 때 왔었던 곳이며 태초의 우주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곳에서 신기가 탄생했었지.’ 진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인 냥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태초부터 존재했었던 것 같이 말하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진은 자신의 언사에 조금의 이상함도 못 느끼고 있었다. 진은 빛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탐험하고 있었다. 걷고 또 걷고 달려보고 날아보고 하지만 끝이 없었다. 그러나 답답하지는 않았다. 이곳이 원래 이런 곳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은 빛이 일렁임에 어둠이 살포시 그 빛을 덮는 것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 진은 그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진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빛 위에 어둠이 내려앉고 그 가운데에 무언가가 잉태하는 느낌! 생명!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진은 지켜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신기! 바로 어둠이 빛을 살포시 덮었을 때 태어난 것이 바로 신기였던 것이다. 이에 진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다 반대편 쪽을 보았다. 그쪽에서는 어둠 위에 빛이 덮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가 잉태하는 느낌을 받았고 생명이 태어났다. 마기! 리오스가 가지고 있는 마기였다. 순간 진은 뭔가가 깨달아지는 듯한 느낌 이었다. ‘결국 신기와 마기니 하는 것도 같은 곳에서 나왔단 말인가? 그러니…….’ 뭔가 알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더 이상은 알 수 없었다. 분명 그런 거 같긴 한데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눈으로 보았음에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분명 그랬다. 끼이잉! 그때였다.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지며 자신의 몸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뀌는 화면. 그랬다. 자신은 마치 잘 만들어진 영상물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 것이다. 그곳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3자가 되어 바라보는 느낌. 어쨌든 진은 의식을 잃기 전, 자신과 악룡의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는 자신의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내상에 의해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닌, 갑자기 머릿속에서 ‘팟!’하며 뭔가가 터지면서 잃었던 정신. 진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정신을 잃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근데 내가 왜 이 화면을 봐야 하는 거지?’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 의문에 답해줄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웅웅웅웅! 공명음이 터지며 또 다시 화면이 바뀌고 회색빛 세계로 인도된 진은 그곳에서 하나의 검을 볼 수 있었다. 그 검은 분명 드래고니아 같았다. 그런데 드래고니아가 아닌 듯 했다. 이상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외형은 분명 자신의 드래고니아와 똑같은데도 분명 뭔가가 달랐다. 웅웅웅웅! 진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또 다시 공명음이 토해졌다. 그리고 회색빛 세계에 그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드래고니아와 흡사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검무를 추는 듯하더니 황색빛이 터졌다. 그리고 그 검에 맺혀 있는 황룡! 검이 곧 황룡이요, 황룡이 곧 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움직였다. 황룡은 빠르고 아름답게 움직였으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베고 또 베었다. 그리고 더 이상 벨 것이 없어지자 황룡도 사라지고 검도 사라졌으며 마지막으로 회색빛 머리칼의 사내도 사라졌다. 린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죽음에 당당히 맞서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눈을 부릅뜨며 그 의지를 굳히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니 린은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기운과 거대한 불꽃이 충돌하기 전, 강력한 기운이 좌측에서 날아와 거대한 불꽃을 후려치는 것을.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터지고 그 여파에 주위가 폭삭 무너지며 갈라지는 등 그야 말로 초토화되어버렸다. 그러나 린들이 있는 사방 십여 라키르는 다행히도 그 여파에 초토화되지는 않았다. 비록 그 여파에 밀려 상당히 멀리 날아가긴 했으나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 덕분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린은 충돌의 여파에 밀려날 때도 진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에 날아가려는 그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진은 비명횡사로 죽는 정말 재수 없는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쨌든 진이 무사하자 린은 방금 전, 강력한 기운으로 거대한 불꽃을 후려쳐 자신들을 구해준 인물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들은 총 9명이었다. 그리고 그들 개개인이 스테판과 아미르에 육박하는 수준이었고 몇 명은 진중선과 북궁신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린은 적잖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러다 그는 이렇게 강한 사람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궁금해졌다. 하 지만 그의 궁금증은 악룡이 분노함에 차후로 미뤄졌다. “캬오오오오!” 악룡은 회심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어이가 없다 못해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든 9인의 인간들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괜스레 화가 더 나는 악룡이었다. 한편 무는 전에 봤던 그 놈보다 훨씬 강하며 외형도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확신했다. 그의 육감이 눈앞에 있는 이 놈이 자신들의 동료를 죽인 그 놈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터져 나왔으며 그에 덩달아 나머지 8인의 루아들의 몸에서도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압!”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분노했으며 그 분노를 풀어야 했다. 그리고 무의 기합에 맞춰 공중으로 몸을 날려 악룡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악룡은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했지만 그들이 녹록치 않아 보여 기운을 개방했다. 고오오오오오오! 펑! 펑! 펑! 펑! 콰쾅! 콰쾅쾅쾅! 어느 것 하나 약한 공격이 없었다. 거기다 창과 무의 공격은 그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으로도 악룡의 외피조차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오기가 생긴 그들은 더욱더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그 공격들은 악룡이 머리를 흔들며 뿌린 검은 불꽃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허허허, 이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창은 허탈했다. 자신들의 공격을 이렇듯 쉽게 막아내고 오히려 그의 공격에 놀라 허둥대는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복수의 칼을 갈고 신의 의지마저 잠시 미뤄두고 그 위에 자신들의 의지를 덮어씌웠었는데 결국 공연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이 망연자실하자 악룡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인간들 중 그 누구도 그가 이러한 표정을 짓는 다는 것을 알진 못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악룡은 이번에는 제대로 저들을 한번에 보내 주리라 마음먹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를 본 린은 비록 힘의 대부분을 소진했으나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저들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드래고니아를 굳게 쥐었다. 그리고 스테판과 아미르도 검을 굳게 쥐었다. 또한 두 노인은 검에 의지하지 않는 단계이기에 검이 없음에도 당혹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투지를 발산했다. 화아아아악! 불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척이나 작았다. 그것만 해도 이상한데 그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는 모두였지만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내려올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아까의 불꽃은 아이 장난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이에 잠시 멍해 있던 9인의 루아들도 정신을 차리며 기운을 끌어 모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것을 막는 다는 것은 무리였다. 린들 역시 그러한 생각을 했지만 이미 죽기로 각오한 몸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린과 스테판, 그리고 아미르의 드래고니아에서 영롱한 빛이 터지더니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이에 당황한 세 사람은 허둥대며 드래고니아를 찾으려했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허허허, 이렇게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는 건가?’ 이미 공격할 타이밍을 놓쳤으니 지금 준비해봐야 미처 공격하지도 못하고 죽을 확률이 백에 백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잠시 허둥댔던 세 사람은 한숨을 쉬며 바로 앞까지 다가온 초거대 불꽃을 보았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은 기적을 목도했다. 초거대 불꽃이 반으로 갈라지며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불꽃이 있던 자리에 드래고니아가 나타났으며 그 검을 잡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던 진이었다. ================================================================= 후후후후, 이번 장은 꽤 길군요. 아마도 5화가 되어야 끝이 날듯...업, 발동! 5.가 이번 장의 끝일 거 같군요. 아마도입니다. 물론!!!하하하 242화. 업, 발동! 5 린은 천천히 하강하여 자신들 쪽으로 내려오는 진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하하하, 놀랐냐?” “예, 놀랐습니다.” “짜식, 하여튼 재미없는 거 하고는.” 린은 여유로운 모습의 의형을 보며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의식을 잃기 전과 분명 달라졌기 때문이다.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여유 속의 강함이 느껴진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그래서 린은 이렇게 말했다. 진은 린의 말에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한편 창과 무를 포함한 9인의 루아들은 정신이 없었다. 분명 이 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는데 이렇듯 강한 존재였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리고 린에게 자신들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가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가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하자 적잖이 당황했다. 아마도 세 대륙을 통틀어도 가장 강할 것이 분명한 사내가 자신들에게 허리를 숙이다니. 그들 역시 무인이기에 가슴이 떨렸다. “별 말씀을. 은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평소 말이 없던 무가 급히 나서며 말했다. 이에 나머지 8인의 루아들이 피식 웃었으나 무는 그들의 웃음을 싹 무시했다. 무에 미친 그래서 이름도 무가 된 자신이기에 자신보다 강한 그것도 얼마나 강할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에겐 큰 영광인 것이다. 그러나 악룡은 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껏 움직이지 않던 몸을 움직여 빠르게 하강했다. 단번에 밟아 죽여 버리려는 심산인 것이다. 훗! 진은 그런 악룡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황룡이 감도는 드래고니아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악룡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몸을 날렸다. 쾅! 첫 충돌이 벌어졌다. 그리고 가속도가 붙었던 악룡의 그 큰 덩치가 뒤로 밀리며 멈칫했다. 그러나 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드래고니아를 뱅글뱅글 돌렸다가 다시 쇄도했다. 번쩍! 쾅! “키에엑!” 악룡은 눈이 번쩍 뜨였다. 눈앞에 있던 미개한 인간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자신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베는 것이라고 했겠지만 자신에게는 후려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의 몸은 베이기에는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크아오!” 악룡은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이 조그마한 인간은 너무도 빨리 움직이고 있어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쾅쾅쾅쾅! 연신 폭음이 터지며 악룡이 하늘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은 밑에서 전투를 지켜보는 모두의 입을 쩌억 벌리게 만들었다. 그토록 많은 공격을 퍼부었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악룡이 진의 공격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솔직히 말해 진을 볼 수 없었다.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진이다 보니 나름대로 강하다 자부하는 그들도 희미한 잔상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콰쾅! 또 다시 폭음이 터졌다. 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악룡.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듯했다. 그러나 진은 그가 고통스러워한다고 하여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콰쾅!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이 그의 드래고니아와 충돌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 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손을 내리는 그를 향해 진이 검이 또 다시 쇄도했다. 콰쾅쾅! “키에엑!” 악룡은 또 다시 얼굴을 가격 당하자 그 큰 몸을 비틀어대며 괴로워했다. ‘이 인간은 정말 잔인한 놈이다. 어떻게 한 곳만 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얼굴만!’ 치가 떨렸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자신의 몸은 그 정도 충격으 로는 깨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단지 좀 아플 뿐. 진도 그것은 느끼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황룡을 사용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아직 초보단계일 뿐이다. 물론 계속해서 전투를 치루다 보니 황룡을 사용하는데 꽤 익숙해지긴 했으나 회색빛 머리칼의 사내처럼 모든 것을 벨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진은 검을 감싼 황룡으로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저 무지막지한 놈의 공격이 시작되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있으나 이 속도도 조금 있으면 적응될 것이다. 이를 알기에 진은 겉의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속으론 무척이나 답답한 상태였다. 콰쾅쾅! “크아오오!” 또 다시 얼굴을 맞은 악룡은 크게 분노했다. 그러며 크게 포효하는데 진은 그 모습을 보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며 악룡이 들었으면 화병으로 돌아가실 소리이긴 하지만. 어쨌든 진은 그 기발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모두는 그 황당함에 입을 쩌억 벌렸다. “무슨 짓이지? 잘하고 있다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칸의 말에 나머지 8인의 루아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또 다른 무리에서 아미르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울렸다. “오라버니가 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계실까요?” “낸들 아냐?” 그녀의 말에 스테판이 툭 내뱉자 그녀가 쌍심지를 켜며 노려보았다. 이를 잠시 어이없는 모습으로 바라보던 두 노인이 주거니 받거니 말을 해 두 커플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하여튼 젊은 게 좋은 거야.” “누가 아니라던가. 젊으니 이 비상시기에도 사랑을 속 싹일 수 있지 않은가! 에긍, 늙으면 다 죽어야 돼. 죽지 못해 못 볼 거 다 봐야 되니, 에긍.” 진중선의 상당히 과장된 말에 스테판이 뭐라 말하려다 위에 상황이 급변해져 급히 입을 다물었다. 화르르르륵! 악룡은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저렇듯 움직이지 않고 있자 쾌재를 부르 며 급히 검은 불꽃을 입가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쏘아보내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 순간이었다. 번쩍! 황룡으로 감싸여져 있는 드래고니아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쏘아져 그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케에에엑!” 악룡은 순간 너무도 당황했다. 그러나 이미 한번 겪어본 바 있기에 몸 안의 근육을 이용해 그 검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베였다! 몸 안의 있는 근육들은 몸 밖의 외피처럼 단단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인간들로는 벨 수 없었다. 단적인 예로 진중선과 북궁신의 검도 악룡의 몸 안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별 피해를 주지 못했지 않은가! 하지만 진의 검은 달랐다. ‘그’가 만든 궁극의 기예 황룡! 사방신의 모든 기예 위에 존재하며 어떠한 틀도 없으나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절대 궁극의 기예! 그렇기에 악룡의 몸은 서서히 안에서 붕괴되고 있었다. 콰콰쾅! “키에에엑!” 악룡은 내부에서 터지는 폭음에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 그의 검은 눈이 진을 보았고 곧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크아아오!” 화르르르륵! 악룡은 내부를 휘젓고 있는 황룡은 상관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검은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입을 벌려 그 불꽃을 잠시 빨아들였다가 뱉어내려 했다. 그 순간 진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가게!” 콰~~~~앙! 그의 말대로 악룡은 미처 공격도 못하고 온 몸이 터져버렸다. 이에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였지만 진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악룡의 검은 불꽃은 마기, 그리고 현세계에 나옴으로써 상극이 되어버린 신기로 이루어진 황룡! 이미 그의 내부는 황룡의 신기로 칠해지다 못해 덮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 안에다 마기를 밀어 넣으니 어찌 터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동귀어진을 할 목적으로 모든 기운을 격발한 상태이다 보니 그 폭발은 악룡 자신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악룡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자 진은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이번에는 드래고니아가 걱정되었다. 그 정도 폭발이라면 제아무리 드래고니아라도 무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곧 기우임이 판명되었다. 재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드래고니아는 멀쩡한 모습으로 주인의 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에 진은 악룡을 물리친 것보다도 드래고니아가 무사한 것이 기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밑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모두는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미소라 생각하며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후우, 엄청난 광참이었습니다. 에공....대략 머리가 다운되기 직전이라는...쿨럭!!! 243화. 슬픈 결혼식. 1 -때가 되었다. 알타오 리오스여. 거부할 수 없는 음성이 울렸다. 이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리오스. 그러나 그의 몸은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있으니 지금 일어난 것은 그의 영체라 할 수 있었다. -알타오 리오스여, 그대는 지금 무얼 하는가? 뜬금없는 말이었다. 리오스 역시 그리 생각했지만 지금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이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누군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자신 위에 존재하는 신 중에 한명이 분명했다. 그가 천신이든 마신이든 간에. “누구시오. 모름지기 대화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해야 하지 않소?” 하지만 리오스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에 음성의 주인이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흐릿한 영체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스. 그의 음성을 어딘지 들어봤다고 생각했던 리오스였는데 역시나 그가 알던 존재였다. -나는 그대의 힘을 봉한 자, 그리고 그대를 이곳으로 보낸 자다. “알고 있소.” 회색빛 머리칼을 가진 존재의 말에 리오스가 무뚝뚝한 음성으로 대답했 다. 이에 존재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은 올라갈 때보다도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 이끌리 듯 영롱한 빛이 터졌다. -기억나는가? 이번 역시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당신의 업을 처리하라고 이곳에 나를 보낸 거 아니었소? 어쩐지 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느낌이 낯설지 않더라니. 결국 당신이 다 저지른 일이었소?” -그렇다. “정말 잘 나셨군.” 리오스는 그답지 않게 이죽거렸다. 그렇지 않은가? 명색이 신이란 존재가 하계에 내려와 설치는 꼴을, 그것도 자신이 행했던 과오를 수습하기 위해 나서는 꼴이란 결코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일의 한 가운데에 자신의 동생이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자신은 지금 자고 있다. 그렇단 말은? 동생이 자신을 놓아두고 떠났다는 말이다. 자신의 금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그리한 것은 알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는 무사히 일을 끝냈으니. 하지만 그는 지금 죽으러 떠날 것이다. 마지막 나의 업을 처리하기 위해. “무슨 말이냐?” 리오스는 너무도 놀라운 말에 마음이 격해져 그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그의 멱살을 잡을 수 없었다. 둘 다 영체이기는 했지만 급수가 워낙에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지금 평범한 영체가 아니라 알타오 리오스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그의 몸에 손 하나 댈 수는 없지만 말이다. -진정하라. 그래서 내가 여기 찾아온 것이다. 너에게 존재하는 선택의 권 리를 이행하기 위해서. “…말하시오.” 리오스는 금세 마음을 진정시키고 회색빛 머리칼의 존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존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지금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잠에 빠져 누가 너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 줄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네가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너의 동생이 갈 죽음의 길을 네가 대신 가는 것이다. 그러면 너의 이름은 지워지겠지. 그 일을 동생보다 먼저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기회를 사용해야 하니. 참고로 그곳이 어떤 곳이며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지는 네가 알타오 리오스로 돌아오는 순간 모두 알게 해놓았다. 존재는 말을 마치고 리오스를 일별한 뒤 스르르 사라졌다. 리오스는 존재 가 사라졌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냐 진에 대한 애정이냐!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에 미쳤다. 진이 없는 자신의 삶이 행복할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없어지면 다른 이들이 슬퍼할까? 물어보나마나한 이야기다.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전에 자신을 알고 있던 이들의 기억 속 리오스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 될 뿐이다. ‘좀 서운해질까?’ 리오스는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이미 결정은 내렸다.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오지만 자신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물론 프린세리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모를 터이니 애써 마음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후우,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리오스는 정신을 집중해 마지막 봉인을 풀었다. 그런데 이번 봉인은 이상하게도 기운의 방출이 없었다. 마치 은밀하게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에 씁쓸한 고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그는 존재의 말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에 리오스는 다시 한번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일은 일을 완수한 뒤,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오스는 소리 없이 프린세리아가 거하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새근새근! ‘자는 모습도 어떻게 하면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을까?’ 리오스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그는 한참 동안이나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뽀얀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너무도 사랑스럽구나.’ 그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다 그녀 옆자리를 힐끔 보았다. 예정대로라면 이 자리는 자신의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예정은 틀어져버렸다. 너무도 완벽히 말이다. “하아~!” 리오스는 그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 소리가 컸음인가? 잠자고 있던 프린세리아가 몸을 뒤척였다. 이에 리오스는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숨겼으나 그녀는 곧 새근새근 잘도 잤다. ‘후후후, 그냥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좋은 것인데. 이제 바라볼 수도 없겠구나.’ 리오스는 괜스레 눈물이 나오려 했다. 알타오 리오스인 상태에서 눈물이 나오려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리오스는 괜스레 하품을 나며 몸을 움직였다. 하품을 해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는 모양이다. 알타오 리오스가 잠이 온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싶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기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후우, 이제 가야 되나?’ 끼룩! 그때, 인간계로 내려온 뒤로 리오스의 품에서 잘 나오지 않았던 에쉬리온이 밖으로 나왔다. “네가 웬일이냐?” 끼루욱!                         ! “뭐어? 이곳에 남겠다고?” 끼루룩! “고맙다. 그래, 너라도 이곳에 남아 있으면 좋을 거야.” 리오스는 유독 프린세리아 말만은 잘 따르던 에쉬리온이 떠올랐다. 이는 리오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프린세리아라는 것을 에쉬리온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 역시 리오스가 사랑하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에쉬리온은 진을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어쨌든 에쉬리온이 이곳에 남겠다고 하자 리오스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일까? 황궁 코린토스를 떠나는 그의 몸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형님, 이제 돌아가시죠.” “…으응? 아~ 미안미안.” 린은 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투가 끝난 뒤부터 계속해서 생각에 잠 겨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전투가 끝나고 하나가 된 드래고니아에서 밝은 빛이 터진 다음부터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린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으나 그의 표정이 워낙에 심각한지라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소 진에게 장난을 잘 치던 진중선 역시 이상할 정도로 조심스러워하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은 말하나 마나였다. 진이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 뒤였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린아, 형은 어디 갔다 와야 될 거 같아. 아~! 그리고 형수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좀 전해줘! 알았지?” 린은 진이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표정은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다니. 뭔가 일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단호함을 읽은 린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라야 했다. 한편 9인의 루아들은 진이 자신들에게로 와 다시 한번 인사하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그의 무위가 신의 경지에 다다랐으며 아마도 천혜화에 다다랐으리라 생각하는 그들이었기에 진을 대하는 그들은 예의가 깍듯했다. 그들이 신의 의지를 행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무인이기에 이러한 감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동료들의 복수를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진은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생각들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국을 정확히 나누다 보면 정중앙인 도시가 어딘지 알 수 있다. 그곳은 바로 고고학자들이 보물로 여기는 곳이며 세상 사람들은 아틀란티스라 부르는 곳이다. 아틀란티스 시는 곳곳에 발굴된 유적지가 있으며 아직도 유적 발굴 작업이 한창인 곳이다. 그리고 초고대 문명이 발견된 몇 안 되는 곳 중 한곳이기도 했다. 리오스는 아틀란티스 시로 들어서며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이곳에 오고 싶긴 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니, 후후후!’ 고고학자가 꿈이었던 리오스. 그렇기에 그가 느끼는 감정은 처절한 안타까움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감회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그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벌써 마지막 업은 발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팟! 아틀란티스 시 입구에 있던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아틀란티스 시의 자랑인 초고대 문명의 유적지 앞에 나타났다. ‘시작은 이곳과 같은 초고대 문명의 유적지였지.’ 또 다시 감회에 사로잡히려하자 리오스는 애써 고개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오니 진아?” “……혀엉!” 리오스는 진이 이미 이곳에 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은 리오스와 달리 자신으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긴장하고 있었다. 그 기운의 주인이 리오스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형, 설마?” “미안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어.” “형!” 진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리오스에게 고함 쳤다. 그러나 리오스는 미소를 풀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모든 것은 형에게 맡겨라. 이미 돌이킬 수 없지 않니?” “혀엉!” 이번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진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 돌이킬 수는 없다. 하지만 형을 보내기는 싫었다. 형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는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보내기 싫었다. “형, 내가 갈…… 혀…어!” 리오스는 자신의 팔에 안겨 있는 진을 씁쓸히 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장정 일고, 여덟 명이 양팔을 벌려야 잡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기둥 쪽을 향해 말했다. “이제 그만 나오시죠.” “어머, 들켰네요?” 리오스는 그녀의 호들갑스런 말에 잠시 웃음 지으며 물었다. “진이를 아시죠?” “네에.” 여인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리오스의 눈이 잠깐 빛을 발 했다. ‘이 여인도 진을 사랑하는 가 보구나. 이러니 내가 나설 수밖에!’ 리오스는 지금 알타오 리오스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이 보기에 이 여인은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많이 따랐지만 그래도 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거짓은 아니니 별 상관은 없었다. “진이를 데리고 멀리 피해 계십시오.” “그럼?” “들으셨던 대로입니다.” “아~!” 여인은 안타까운 탄성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스는 그러한 여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뒤, 몸을 돌렸다. 그러다 뭔가 깜빡했다는 듯 고개 를 돌리며 물었다. “이름이 뭐죠?” “유리미, 그러나 진은 유미로 알고 있죠.” “그렇군요. 유미 양, 진이를 잘 부탁합니다.” 리오스는 말을 하며 음영이 깔린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유미가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또 다시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격앙된 음성은 초고대 유적지가 발견된 이래로 아직까지도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다. 물론 이곳을 건축할 당시 ‘그’와 관련된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설계되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광소를 터트린 사내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어딘가 이상했다. 형상은 인간임에 틀림없지만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그는 커다란 구체 쪽으로 자신의 몸을 쓰윽 밀어 넣었다. 위위윙윙윙윙! 그의 몸이 완전히 구체안으로 사라지자 사이한 공명음이 터졌으며 커다란 공동 안이 밝아졌다. 마치 무언가를 작동시킨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듯 공명음은 이윽고 공동 안에 있는 여러 장치들에 불을 켜며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웅웅웅웅웅웅웅! 공명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높아졌으며 그것은 곧 절정에 달할 듯 했다. 그때, 리오스가 천천히 공동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이미 발동된 것인가?” 리오스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알기 에 그 한숨은 연민의 감정까지 띠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단 하나군.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는 것이고.” 리오스는 조금만 더 있고 싶었다. 그것이 괜한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알타오 리오스라는 이름도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끼오오오오오오! 그러나 그의 바람은 하늘도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공동 안의 장치가 절정에 달해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듯 공명음에서 괴음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 후의 장면을 익히 알고 있는 리오스였기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커다란 구체 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그의 손이 닿자 구체가 폭발했다. 그러나 리오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 폭 발을 그대로 놓아두면 아틀란티스 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고고학자이고 싶었다. 쾅쾅쾅쾅쾅쾅쾅쾅! 처음 한번의 폭발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공동 안은 수백 번의 폭발이 터졌 다. 그것은 폭발을 위한 폭발이 아닌 폭발을 죽이는 폭발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초토화되어 버릴 뻔한 아틀란티스 시는 무사할 수 있었다. 털썩! 리오스는 폐허로 변해버린 공동 안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뻥 뚫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보였다. 붉은 태양이 중천에 자리 잡고 그 빛이 뻥 뚫린 공동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후후후, 이제 갈 때가 다 된 건가?’ 리오스는 마치 햇빛에 닿자 몸이 녹는 것처럼 그의 몸은 점차 투명해졌다. 그리고 그의 몸 대부분이 사라지고 얼굴만 희미한 모습으로 남게 되자 리오스가 애써 웃음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디 나를 잊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리오스는 그 말을 남기고 이 세상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그날, 리오스의 이름이 지워진 것을 하늘만이 아는지 하늘만이 구슬피 울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말이다. ================================================================= 이 화를 쓰면서 정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군요. 엔딩 장면을 알고 있는 저이지만 정말 씁쓸합니다. 후우~! 244화. 슬픈 결혼식. 2 정신을 차린 진은 자신의 옆에 웬 여인이 누워 있자 깜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물러났다. “허억! 이, 이!”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자신을 감싸자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밑을 보았다. 그리고 경직된 그의 얼굴! “……헉!” 너무 놀라면 한동안 사고가 마비된다고 한다. 진이 바로 그러한 케이스였는데 그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양 손으로 중심 부위를 가렸다. 그리고 서둘러 주위를 살펴보니 다행히도 속옷과 옷이 의자에 걸려 있었다. 후다닥! 진은 그의 인생에 이렇듯 빨리 옷 갈아입은 적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어쨌든 옷을 다 갈아입은 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의식적으로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으음….” 여인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몸을 뒤척이자 이불 이 돌돌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드러나는 눈부신 나신! 순간 진은 울고 싶었다. 자신이 나신이었으며 여인도 나신이다. 그리고 둘은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결국…….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진은 자신이 할 일을 늦추지는 않았다. 슬금슬금! 진은 조심하며 여인에게로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이불 끝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드러난 나신을 덮어주려는데 그의 손을 잡는 보드라운 손이 있었다. “허억!” “놀랐어요?” “예!” “호호호!” 진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멍청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것이기에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이에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여인이 이불로 나신을 가리며 말했다. “저 기억 안 나요?” 진은 그녀의 말에 용기를 내 그녀를 보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불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허억!” 정말 많이도 놀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 얼핏 봐도 인간의 심미안을 뛰어넘는 미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가늘게 웨이브 진 초록빛 머리칼과 신록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 반듯한 아미, 부드러운 곡선을 느끼게 만드는 코와 살짝 깨물어주고 싶은 만큼 잘 익은 입술. 다른 말은 필요치 않았다. 자신이 아는 한 최고의 미인은 바로 이 여인이 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었다. “호호호, 잘 생각이 나지 않나 봐요?” “그게, 어디서 본 거 같긴 한데…… 으음.” “잘 생각해 봐요. 뭐, 힌트를 주자면 검은 삼각지대 정도?” 진은 그녀의 말에 편안하게 대답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 검은 삼각지대! 그리고 최고의 미녀! 정답은? “유미?” “딩동댕!” 유미가 한 음절씩 손가락으로 찍어 말하자 진은 그녀가 너무도 귀여워 순 간 와락 달려들어 껴안을 뻔했다. 하지만 진은 극도의 인내력으로 자신의 본성을 가라앉혔다. “후웁, 후웁!” “호호호, 뭐해요?” “그냥, 뭐, 이것저것!” 진은 방금 전에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가는 유미가 놀릴 것 같아 말을 얼버 무렸다. 그러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 “저기 근데 우리…잤나요?” 진은 조심스레 물었다. 이러한 일은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 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진의 물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니, 그냥 살펴봐도 상당히 직선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니라 다를까?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는 그녀였다. “하아,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책임질 테니. 그런데 저한테는 아내들이 꽤 많거든요. 물론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알고 있어요.” 진은 힘겹게 말했는데 유미가 의외로 알고 있다하자 순간 허탈해졌다. 그 러나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더욱 가슴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아직은 참아야 할 때이다. ‘으음, 그런데 분명 이것 말고 중요한 일이…… 아~!’ 그제야 진은 업에 대해 생각해냈다. 자신이 생각해도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한 존재가 삭제되면 그와 연관된 사람의 머릿속은 잠시 공황상태를 겪게 되는데 진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를 알리 없는 진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의 뒤를 조용히 따르는 유미였다. “누가 한 일일까?” “모르겠어요.” 진의 황당한 음성에 유미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 역시 잠시 깜빡하 고 있었던 일.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자신들의 동료들이 이곳에 왔어도 예전에 왔어야 했다. 자신들의 거처에는 이곳과 바로 오갈 수 있는 워프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니, 왔다 간 것일까? 그들이 한 일일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유미가 이러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진은 리오스가 마지막으로 앉아 있던 곳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이곳에서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흐윽! 이런, 흑흑흑! 이거 왜, 흑흑흑! 러지?” 진은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 눈물은 이상하게도 멈 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이럴까?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으며 멈추려 했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답답해져왔으며 쏟아지는 눈물의 양도 많아지기만 했다. 이런 진을 보는 유미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녀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씁쓸했다. 왜 이럴까? 그들은 스스로에게 수백 번이나 물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 국 그들은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이 멈추지 않는 눈물이라도 멈출 수 있을 것 같기에. 유미와 함께 돌아온 진! 여인들은 이미 ‘진이 무사하다!’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린에게 전한 말이 마음에 걸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진이 어떤 여인과 돌아온 것이다. 그제야 린에게 전한 말이 이해가 되는 여인들이다. “린아, 형은 어디 갔다 와야 될 거 같아. 아~! 그리고 형수들에게도 미안 하다고 좀 전해줘! 알았지?” 어디 가야 되는 이유! 자신들에게 미안해야할 이유! 분명 사실과는 상당 히 다른 해석이었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어찌 보면 상식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진에게 화를 내려했다. 하지만 그녀를 본 샤넬리가 여인들을 모아두고 한 마디를 해 그녀들은 결국 ‘끄응’하며 신음만 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진이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여인이야!” 이 말에 그녀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인정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는 한 더 이상의 여인은 없다고 확신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그녀들이었다. 한편 진중선과 북궁신은 유미를 본 순간 너무도 놀라 ‘어, 어!’하는 말만 되풀이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로 전해지는 전음에 그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 정체를 말해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으니. 그냥 우리 초면인 것처럼 해 요. 알았죠? 그녀가 이렇게 말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뭐, 그녀가 화를 내면 좀 많이 무섭다는 이유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진의 귀환은 별 탈 없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진의 ‘모든 일 이 끝났다.’라는 말에 기뻐하며 화려한 이벤트가 될 결혼식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에 프린세리아는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는데 그럴 때마다 에쉬리온이 애교를 떨어 애써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 흘러가고 있었다. ================================================================= 으음, 이제 정말 궁극의 마스터가 끝이 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떻게 보면 오늘 다 써버릴 지도 모른다는...쿨럭!!! 245화. 슬픈 결혼식. 3 빠아아앙~! 힘찬 나팔소리와 함께 화려하고도 거대한 식장에 들어서는 열두 사람. 누가 보면 여섯 커플로 오인하겠지만, 두 커플과 한 사내와 일곱 여인의 결혼식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진기한 장면에 수도 가에아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물론 그 누구도 일곱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그를 욕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는 세 대륙을 통틀어 처음으로 천혜화에 오른 인물이며 전란에 빠졌던 제국을 위기에서 건져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천혜화에 오른 사실은 9인의 루아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들이 루미에를 섬기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말에는 자연적으로 힘이 실렸고 이내 진실이 되어버렸다. 이에 진은 사실이 그러하기에 굳이 부인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진의 이름은 다시 한번 제국을 쩌렁쩌렁 울리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그의 결혼식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의례적으로 한 쟈크 인들이 결혼사절로 대거 참석해 은연중에 골이 쌓여 있던 두 대륙의 관계가 호전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보는 이들이 많았다. “험험, 짐은 제국의 큰 보배들이 이렇듯 좋은 짝을 맞이하니 마치 내 일처 럼 기쁘도다.” 주례 전, 의례적으로 황제의 축하의 인사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인사말은 평소 그답지 않게 무척이나 길고도 길었다. 그 이유인 즉, 원래 그가 주례를 맡으려 했으나 그의 딸이 이 결혼식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신하들이 충언을 올렸고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례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결국 그는 주례를 맡지 못한 한을 길고도 긴 인사말로 대체했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황제만 아니라면… 쩝!’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다. 주례는 루미에의 대신관이 했는데 여기엔 9인의 루아들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 신랑 에리필 경은 신부 셀리나 양을 영원토록 사랑할 것을 맹세합 니까?” “옙!” 신랑 중 가장 연장자인 그의 음성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우렁찼다. 이 에 모두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고 신부인 셀리나의 얼굴이 옅게 붉어졌다. “신부 셀리나 양은 신랑 에리필 경을 영원토록 따를 것을 맹세합니까?” “…예.” 셀리나는 특유의 강인함과 장미의 가시는 모두 버린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올슈레이 기사단원들이 휘파람을 불며 ‘우우우우우!’했지만 순간적으로 뒤돌아보며 주먹을 살짝 들어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그들의 입은 순식간에 합죽이가 되었다. “험험, 신랑 진 경은 신부 음… 유미 양과 안젤리나 양과 샤넬리 양과 모나코 양과 하연 양과 하린 양과 레이카 양을 영원토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옙!” 진은 대신관의 원망스런 시선에 한순간 움찔했지만 크게 대답했다. 그리고 대신관은 그녀들 하나하나에게 일일이 물어보기 그랬는지 여인들 모두를 호명한 뒤, 셀리나와 동일하게 물었다. 그리고 작으나 단합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험험, 신랑 린 경은 신부 북궁소소 양을 영원토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 까?” “예엡!" 린은 평소 그답지 않게 상당히 긴장한 듯 했다. 이에 그를 아는 모두의 얼굴에 놀랍다는 표정이 지어졌으나 대신관은 그들의 표정에는 아랑곳 않고 북궁소소에게 물었다. “신부 북궁소소 양은 신랑 린 경을 영원토록 따를 것을 맹세합니까?” “예!” 신부 중 가장 큰 대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 “그럼, 이 식에서 가장 중요한 수순인 서로에게 영원을 맹세하는 증표를 교환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대신관의 말에 서로가 준비해온 반지를 서로의 손에 끼워주었다. 그런데 진의 경우에는 신부가 일곱이나 되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한 손가락에 반지를 다 끼울 수가 없어 그는 양손 모두에다 껴야 했다. 이에 다시 한번 폭소가 터졌지만 그들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프린세리아는 알 수 없는 허전함에 한숨이 나왔다. ‘내가 왜 이러지? 기뻐하고 축하해줘야 마땅한데….’ 그녀는 괜스레 눈물이 나오려 해 당황스러웠다. 이때, 에쉬리온이 그녀의 품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밀며 ‘끼룩!’하며 슬픈 울음을 토했다. 이에 프린세리아는 알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 “이상, 세 쌍… 으음, 각자의 짝들끼리 하나가 되었음을 거룩하신 루미에 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후…우.” “와아아아아아!” 삐유우웅~! 빠아아앙~! 대신관은 한순간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겨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행 히도 그의 한숨은 거대한 함성과 폭죽, 그리고 나팔 소리를 시작으로 관현악의 아름다운 연주에 조용히 덮였다. 그렇게 결혼식은 흥겨운 분위기로 막을 고하는 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랑, 신부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마치 누가 죽기라도 한 듯 그들은 모두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 자신도 자신들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모두의 가슴에 의아한 슬픔만을 남긴 채. 후세에 전해지기를 그 결혼식에 있던 모두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전해진다. 결혼식은 행복해야 하기에 슬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신랑, 신부들로부터 시작된 그 기묘한 분위기가 결혼식장 전체로 퍼져버려 그들은 결국 씁쓸한 안타까움과 슬픔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역사학자이며 고고학자인 딜리트 리오스의 저서 결혼학 中 에서 ================================================================= 이제 정말 대단원이군요. 하아, 이제 마지막 남은 에필로그와 외전 한편만 올리면 되겠군요. 물론 아직 쓰진 않았습니다. 아마, 오늘 완벽한 완결을 짓고 자거나, 아마도 못 잘 수도 있겠군요. 오늘 고등학교 때 무척이나 친한 친구를 만나야 해서리...에공.... 246화. 에필로그 얼마의 시간 동안 이렇게 있었을까? 온 몸이 다 뻐근한 것이 족히 몇 백 년은 이러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가부좌 상태로 말이다. 요즘 들어 생각한다. 시간의 무상함이란…… 세월의 무서움이란……. 모두가 다 떠나 간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거 같다. 그렇다 보니 그녀들의 모습도 이제는 희미해진다. 그렇게 사랑했던 여인들이었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여인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마지막까지 함께 한 여인은 바로 유미였다. 그러나 그녀도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죽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다. 무엇 때문에? 끝을 보기 위해서다. 이미 단전화 된 온 몸에는 신기가 넘치다 못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우주가 곧 나이며 곧 아단전인 그곳도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엄청난 양의 신기가 쌓여 있다. 하지만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를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모든 것이 무감각해졌다. 이제 끝을 봐야할 때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자조 섞인 웃음만이 돌아올 뿐이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그것이 내가 하는 유일한 행동이다. 그렇게 시 간을 보내고 세월 속에 나를 담았다. 요즘 들어 자주 본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태초의 우주라 일컬어지는 그곳. 이제는 마음대로 갈 수 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태초의 우주인 그곳. -이제 들어올 마음이 생겼는가? 요즘 들어 자주 듣는 음성이다. 아마도 인간의 탈을 벗으라는 하늘의 명인 거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의 탈을 벗고 소위 말하는 신이 되기는 싫었다. 신이 되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다른 사람으로 변할 까봐 두려운 가 보다. -이제 들어올 마음이 생겼는가? 또 다시 들려온다.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제껏 들어왔던 음성과는 다른 음성, 그리고 성난 음성이 들려왔다. -야, 임마! 너 안 들어와? 친숙한 음성이다. 이 느낌은 뭐지? -너 올슈레이 진 맞냐? 사내자식이 왜 이리 겁이 많은 거냐? 분명 친숙한 음성이고 내 이름도 안다. 그런데 왠지 화가 난다. 내가 겁이 많다니……! “너 누구냐?” 탁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이게 내 음성인가? 몇 만 년 만에 입을 열어봤는 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 음성인 거 같다. -하하하, 너 누구냐고? 이놈이 형한테 어디 말버릇 없게! 형이라고? 나에겐 그런 거 없는데…….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온다. 그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슈욱!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아, 빠져나가는 건 바로 나구나! 그런 데 그 빠져나가는 나를 누군가가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황금빛 머리칼의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역시 친숙했다. 그때, 회색빛 머리칼 사내가 언제 나타났는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시프온 진! 천신이 된 것을 축하한다. 그 순간 나의 몸에서 백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막연하게나마 알 고 있던 그리고 이미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그것들이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잊혀졌던 가장 중요한 하나, 형의 존재를 찾게 되었다. -형! -그래, 오랜 만이다. 형은 나를 안아주었다. 그 느낌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형제상봉을 하고 있을 때, 회색빛 머리칼의 사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실린디온 렌이다. 그 옛날 시프온 진이 올슈레이 진이었을 때, 막았던 업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 실린디온 렌이다. -으음, 헉! 그럼 당신이 바로 그… -그렇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실린디온 렌이란 존재가 바로 업을 만든 장본인이었다니. 거기다 우주의 수많은 법칙들을 알게 된 지금, 실린디온이란 위치가 신들 중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아울러 시프온이란 나의 위치 역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시프온, 하급신 천신의 다섯 단계 중 세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린디온은 천신 중 첫 번째 단계이며 중급 신인 천장의 마지막 서열에 매겨져 있다. 그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나에 비하면 까마득히 높은 존재! 순간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투지가 솟아올랐다. 그런 나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실린디온 렌이 웃음을 흘렸다. -뭐가 우습죠? 실린디온 렌! -너, 시프온 진은 강해질 것이다. 그의 말에 내가 아무런 말도 없자 그는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창조신 루미에님은 한 가지 법칙을 만들어놓으셨다. 신이 되는 자는 우 주의 법칙을 크게 역행하지 않는 한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참고로 궁금해 할 거 같아서 말해두지만 나, 실린디온 렌의 소원은 너의 형 알타오 리오스의 완전한 부활이었다. -…감사합니다. 실린디온 렌님! 나는 그의 말에 너무도 놀랐고 감사했다. 그리고 형을 보는데 형은 나의 시선에 담긴 뜻을 잘못 오인했는지 엉뚱한 말을 쏟아냈다. 결론적으로 좋은 정보를 얻은 것이긴 하지만. -참고로 나는 프린세리아의 영혼을 나와 함께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지. -그래서? -이루어졌지. 형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했다. 그리고 짐 짓 경건한 음성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생에 나의 아내들을 나와 함께 하게 해 주세요! 순간 두 존재가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에 나는 배시시 웃으며 두 사 람에게 말했다. -욕심이 좀 과한 가? -당연하지! -아마도! 나는 그들의 말에 적잖이 실망하며 한숨을 쉬는데 내 몸에서 빛이 쏟아져 나가 어딘가로 날아갔다. 이를 본 두 사람이 놀라는 것을 보니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너, 시프온 진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정말 황당할 정도로 재수가 좋구나. 렌의 어이없다는 표정과 황당하다는 형의 표정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 좋은 것을 왜 겁내며 안 들어오겠다고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화가 났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른 높은 위치에 있는 신들을 목표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마음먹자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많이 바빠질 것이기에 그깟 사소한 일에 신경 쓴다는 것은 심력 낭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요! 그리고 예고해두는데 빠른 시일 내에 당신 실린디온 렌을 따라잡겠어요! 이렇게 선전포고를 했지만 나는 속에 있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보는 궁극은 바로 창조신 루미에님이라고요!’ 이렇게 나의 강함을 추구하는 인생은 또 다시 시작되었다. ================================================================ 궁극의 마스터 (7권)완결~!!! --- Typed by TheYtsejaM ---